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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셉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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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왕조 네파루드 1세 하코르 프삼무테스 네파루드 2세
제30왕조 넥타네보 1세 테오스 넥타네보 2세
제31왕조
( 아케메네스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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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셉수트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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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선정 세계의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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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은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여성들을 선정했다.
긍정적 영향을 미친 여성들뿐 아니라 '세계사에 족적을 남긴 여성들'을 뽑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물들 혹은 논란 있는 인물들도 있다.
성인들
성모 마리아 예수의 테레사 마더 테레사
지도자들
앙겔라 메르켈 베나지르 부토 예카테리나 2세 캐시 프리먼 서태후
클레오파트라 코라손 아키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달리아 그리바우스카이테 다이애나 스펜서
지우마 호세프 에디트 크레송 엘레오노르 다키텐 엘리너 루스벨트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2세 엘런 존슨 설리프 에바 페론 골다 메이어 그로 할렘 브룬틀란
한나 수호츠카 하트셉수트 인디라 간디 이사벨 1세 제니 시플리
줄리아 길라드 칼레다 지아 킴 캠벨 마거릿 대처 마리 앙투아네트
메리 로빈슨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미첼 바첼레트 미셸 오바마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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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 비케프레이베르가 빅토리아 여왕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 비올레타 차모로 측천무후
잉락 친나왓
발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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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 마이트너 마거릿 미드 마리아 미첼 마리 퀴리 마리암 미르자하니
레이첼 카슨 로잘린드 프랭클린 사카자위아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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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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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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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왕조
아흐모세 1세 아멘호테프 1세 투트모세 1세 투트모세 2세
1
아흐모세-네페르타리
2
아흐모세-시카모세세
3
아흐모세-헤누타메후
아흐모세-메리타몬 아흐모세
1
하트셉수트
2
이제트
투트모세 3세 아멘호테프 2세 투트모세 4세 아멘호테프 3세
1
사티아
2
메리트레-하트셉수트
티야
1
네페르타리
2
이아레트
3
무템위야
1
티예
2
시타문
3
이제트
아케나톤 스멘크카레 투탕카멘 아이
네페르티티 메리타텐 안케세나멘 테이
호렘헤브
무트노지메트
제19왕조
람세스 1세 세티 1세 람세스 2세 메르넵타
시트레 투야
1
네페르타리
2
이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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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타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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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타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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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베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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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누트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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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아토르네페루레
이제트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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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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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스레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 프톨레마이오스 2세 프톨레마이오스 9세 프톨레마이오스 1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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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디케
2
베레니케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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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제18왕조 제5대 파라오
하트셉수트
Hatshepsut
파일:external/images.metmuseum.org/Hatshepsut2012.jpg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하트셉수트
حتشبسوت | Hatshepsut
존호 Ma'atkara Hatshepsut-khenmetamun
진실한 영혼이신 라, 아문과 결합한 하트셉수트
출생 기원전 1507년
사망 기원전 1458년 (향년 50세)
재위 기간 이집트 파라오
기원전 1479년 ~ 기원전 1458년
(약 21년)
전임자 투트모세 2세
후임자 투트모세 3세
부모 아버지 : 투트모세 1세
어머니 : 아흐모세
배우자 투트모세 2세
자녀 네페루레
무덤 왕가의 계곡 KV20
상형문자 파일:external/www.uponreflection.co.uk/egyptian_kings_cartouches_hatshepsut.jpg

1. 소개2. 생애3. 투트모세 3세와의 관계4. 여담5.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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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이집트 신왕국 제18왕조의 제5대 파라오.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대표적인 여성 파라오이자 이집트 왕실의 공주였다. 많은 사람들이 하트셉수트를 최초의 여성 파라오라고 여기지만 고대 이집트 최초의 여성 파라오는 아니다. 그녀보다 이전 시대에 1~2명의 여성 파라오가 존재했고[1] 이중에서 확실하게 왕(파라오)의 지위에 오른 것은 소베크네페루 한명이므로, 여성으로서 파라오의 직위에 오른 것이 확실한 것으로는 두번째 여성 파라오다.[2]

2. 생애

기원전 1507년 투트모세 1세와 정비 아흐모세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친여동생 네프루비티(또는 네페르비티, 아크베트네페루)가 있었으나 그녀는 일찍 죽은 걸로 추정된다. 남매들(와즈모세, 아멘모세, 투트모세 2세) 중 한 명으로, 어머니가 달랐던 투트모세 2세와 결혼했는데, 이는 후궁 무트네페르트의 소생이었던 투트모세 2세의 왕위계승권을 위하여 치러진 정략결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형태의 남매간의 결혼은 고대 이집트 전반에 걸쳐 유행했다. 투트모세 2세와 하트셉수트 사이에는 딸 네페루레만 있고, 아들이 없어 투트모세 2세는 이세트라는 후궁을 맞아 아들이자 후계자인 투트모세 3세를 낳았다. 즉 투트모세 3세는 하트셉수트의 친아들이 아니었다. 투트모세 3세에게 하트셉수트는 계모이자 고모였다. 장모이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네페루레가 투트모세 3세와 결혼하여 첫 아들 아메넴하트(Amenemhat)를 낳았을 것으로 추정만 될 뿐, 둘이 확실하게 결혼했다는 기록은 없으며, 아메넴하트의 친어머니는 투트모세 3세의 첫 정비였던 사티아일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네페루레의 경우, 어머니 하트셉수트가 파라오로 활동하는 동안, 공식석상에서 공주 역할을 했으며 더 나아가 왕비 역할도 수행했다고 한다.

투트모세 2세가 죽고, 후계자인 투트모세 3세가 너무 어려서 하트셉수트가 공동 파라오가 되었다. 고대 이집트 시절에도 성문화된 법률로 안 보일 뿐이지, 수렴청정형의 섭정 풍습은 존재했다. 왕이 너무 어려 왕대비가 섭정을 하거나, 남편이었던 파라오가 갑자기 죽어 수년 동안 섭정 역할을 한 왕비의 기록은 신왕국 시대 이전에도 남아있었다. 하트셉수트 역시 처음에는 파라오가 아닌 섭정의 지위에서 통치를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투트모세 2세 사후에 나온 관련 문헌들도 그녀를 섭정으로 설명하고, 투트모세 2세의 공식 후계자는 투트모세 3세라고 명시했다.

하트셉수트가 섭정을 시작했을때 투트모세 3세의 나이는 10살 미만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가 완전히 파라오로 탈바꿈한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하트셉수트의 외양이 수염을 단 파라오로 묘사되기 시작한 것은 최소 투트모세 3세 치세 7년 후부터이다. 이후 20여년동안 하트셉수트는 정치•군사적 실권을 쥐고 투트모세 3세와 함께 이집트를 다스렸다. 공동 통치기에는 하트셉수트의 권력이 투트모세 3세의 권력보다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파라오' 하트셉수트를 묘사한 석조 조각이나 벽화는 남자와 비슷하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파라오가 되기 위해선 여성의 속성을 지워낼 필요가 있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파라오의 표식이 남성적인 아이템들이라 하트셉수트가 남성적으로 묘사가 되었는지는 단정지을 수 없다. 다만 확실한건 즉위 이후의 하트셉수트는 단순히 남자 파라오의 장식을 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체나 자세도 남자에 가깝게 묘사된다는 점이다. 초기 묘사는 여성적인 자세나 생김새가 두드러지지만, 후기로 갈수록 자세는 빳빳해지고 가슴이 작아진다. 장제전[3]에 조각된 하트셉수트는 설명없이 보면 그냥 남자다. 양성적인 묘사와는 거리가 있다.

참고로 가짜 수염과 같은 복장은 조각상이나 무덤 부장품에서 묘사되지만 남성 파라오 또한 실제 생전의 평상시에는 이런 길쭉한 수염 등의 복장을 유지했던 것은 아니었으며, 특수한 상황에서 의례용 가짜 수염을 붙이는 것은 남성 파라오도 마찬가지였고, 얼마나 자주 이런 복장을 했는지 여부도 불확실하다고 한다.
하트셉수트는 투트모세 1세로 변한 아문 신이 왕비 아흐모세와 동침하여 태어났다는 탄생 설화를 창작하였으며, 이름에 '아문 신과 결합한' 이라는 뜻의 '켄메트-아문(khenmetamun)' 이라는 칭호를 넣었다. 이런 탄생 설화 창조는 파라오들에게 흔한 일이었고 특별히 정통성 문제가 있어서 이렇게 한 것은 아니다. 그냥 이전의 다른 파라오들이 하던 대로 전통을 따랐을 뿐이다.

하트셉수트는 누비아, 레반트, 푼트[4] 등 주변국과의 무역에 힘써 많은 이득을 얻어내고 힉소스의 잔재를 씻어냈으며, 오리엔트 일대에 다시금 이집트의 위상을 높였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그녀를 내치에 힘쓴 군주로 평가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그녀의 무역에 군사적인 원정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트셉수트의 치세는 이집트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길고 번영한 시대의 서막을 열었으며 그녀는 이집트의 가장 성공적인 치세를 이룬 파라오들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 18왕조 번영의 토대를 이룩한 시기라고 해석되기도 하며, 그 증거로 제세르 제세루(장엄 중의 장엄)[5]이라고 불리는 하트셉수트의 거대한 장제전이 있다. 멘투호테프 2세의 장제전 옆에 세워진 하트셉수트의 거대한 장제전은 암벽을 깎아 아문 신의 성역을 조성하고, 아누비스 예배당과 하토르 성소를 비롯한 각종 제실, 그리고 자신의 탄생 설화와 푼트 원정 등을 부조로 남겨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하트셉수트가 이룬 성과를 기반으로 투트모세 3세는 제 18왕조 최대의 영토와 번영을 이룩하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Il_tempio_di_Hatshepsut.jpg
( 하트셉수트의 장제전)

기원전 1458년 1월 16일 사망하였다. 신왕국 시대 파라오들이 그랬듯이 그녀 또한 왕가의 계곡에 묻혔으며, 장제전 암벽 바로 너머의 KV20이 그녀의 무덤이다.

1903년 하워드 카터는 KV60 무덤에서 신원 불명의 여성 미라 2구를 발굴한다. 그 중 한 구는 하트셉수트의 유모로 밝혀졌고, 나머지 한 구는 여전히 신원 미상이었다. 그러던 중 2007년 하트셉수트의 이름이 적혀있는 항아리에서 발견된 치아와 미라의 없어진 치아 부분이 정확히 일치함에 따라 그 미라가 하트셉수트임을 알게 되었다. 미라는 꽤 보존 상태가 좋은 채로 남아있어서 165cm의 키에 살짝 살집이 있는 체형의 여성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연구 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50대에 즈음 암의 일종인 골종양이 전신으로 퍼졌기 때문으로 밝혀졌으며, 그 외에 관절염, 치주염을 비롯한 충치가 발견되었다.[6] 미라의 사진을 보고 싶으면 이 항목 참조.

3. 투트모세 3세와의 관계

룩소르 북쪽, 아비도스에 있는 세티 1세의 장제전에는 제 1왕조를 세운 나르메르에서부터 19왕조의 2-3대 파라오인 세티 1세 람세스 2세까지 76명의 역대 파라오들의 이름과 재위기간이 기록된 '아비도스 왕명표'가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유일신 아텐 신앙을 중심으로 개혁을 했던 아케나톤과 그 후계자인 투탕카멘, 그리고 하트셉수트의 왕명이 누락되어 있다. 또 하트셉수트가 세운 기념물이 파괴되었고 이집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행위인 '이름의 삭제'가 행해져서 하트셉수트가 세상을 떠난 뒤 왕위를 회복한 투트모세 3세가 자신을 쩌리로 만든 하트셉수트에 대한 보복으로 기록말살형에 처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한 때 정설처럼 받아들여졌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여러 매체에서 이 설을 진실처럼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 이집트학의 깊이가 깊어지고 여러 기록물들이 추가로 계속 발견되면서 투트모세 3세가 하트셉수트를 미워하여 기록을 말살했다는 설은 이집트 학계에는 거의 죽은 학설이 되었다.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두 사람의 불화설을 부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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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트셉수트의 장제전 옆에 붙어있는 잔해들 중 앞부분은 멘투호테프 2세의 장제전이고, 뒤쪽이 투트모세 3세의 장제전이다.)

마지막으로 하트셉수트의 기념물 중 파괴되지 않고 멀쩡하게 남아있는 기념물이 너무 많아서, 하트셉수트를 겨냥한 파괴 행위가 진짜 있었는지도 의문스럽다. 여기에 건축사업을 시행할 능력이 없었던 후대의 파라오들이 전대 파라오들의 기념물들에 새겨진 이름을 파내고 자신의 이름을 새겼음을 상정한다면[9], 투트모세 3세가 악의적으로 용의주도하게 하트셉수트의 흔적을 삭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워서 이름을 지운 게 아니라, 건물을 다시 짓기 버거우니 그냥 이름만 지우고 재활용했다는 얘기.[10]

왕명표 문제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역사가인 마네토가 편찬한 왕명표에 그녀의 이름이 남아있으므로, 아비도스 왕명표에서는 공동 통치를 펼쳤기 때문에 투트모세 3세의 이름만을 기입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훗날 하트셉수트 장제전과 멘투호테프 2세 장제전 사이에 건립된 투트모세 3세의 장제전은 지반이 침하되어 공중분해되었고, 카르나크 신전에 바로 이웃하여 있던 하트셉수트와 투트모세 3세의 오벨리스크 중 투트모세의 것만 뜯겨져 나가 터키 이스탄불의 히포드로메에 장식되어 있다. 범인은 로마 제국 테오도시우스 대제.

4. 여담

엘렉트라 콤플렉스 의혹이 있다. 그녀의 무덤인 KV20은 본래 그녀의 아버지 투트모세 1세의 무덤으로 만들어졌던 것인데, 하트셉수트가 후일 그 무덤을 증축하고 자신의 장제전을 그 앞에 건축함으로써 아버지와 합장되기를 원했다는 것. KV20에서 하트셉수트와 투트모세 1세의 관이 함께 발견되면서 그녀의 파더콤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다만, KV 20무덤의 하트셉수트의 석관 자체에 아예 하트셉수트가 안장된 흔적이 없어서 최종적으로는 마음을 바꾼듯 하다. 이후 투트모세 3세가 KV38로 투트모세 1세를 이장하였다.

데이르 엘 바하리에 있는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은 투트모세 2세 재위기나 하트셉수트의 섭정 시기에 왕실 관리로 들어온 세넨무트(Senenmut)[11]가 건설을 총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하급 평민 출신으로 라모세와 하트노페르(Ramose and Hatmofer)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남자 형제가 3명 여자 형제가 2명 있다고 하는데 기록으로 남은 이름은 남자 형제인 민호텝뿐이다. 센무트가 신의 아내의 집사(하트셉수트)와 왕의 딸의 집사(네페루레)로 임명된 뒤 직접 감독하여 지은 부모의 무덤이 1930년대에 멀쩡한 상태로 발굴되어 보존되었기에 왕가 출신이 아닌 이집트인 중에서는 정보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센무트는 평생 독신이었던 걸로 보이는데 그의 무덤에 있던 장례 석비에는 부모와 함께 센무트가 혼자 묘사되어 있고 그를 위한 사자의 서에도 아내없이 홀로 등장하며 결정적으로 그의 장례 실행을 한 자가 아들이 아닌 형제였기 때문이다. 센무트는 하트셉수트의 장제전 외에도 카르나크 신전에 있는 하트셉수트의 붉은 예배당 옆에 있었던 걸로 추정되는 쌍둥이 오벨리스크를 짓는 것도 지휘했는데 아쉽게도 현존하진 않는다. 몇몇 학자들은 하트셉수트와 연인 관계였다고도 보는데, 그녀의 장제전에 센무트의 이름과 그림을 새기도록 허락해주었고 장제전을 건설하던 인부들의 휴게실에 남성과 양성인 사람이 성관계를 하는 낙서를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센무트의 무덤은 두 군데로, 매장실이 없고 예배당만 있는 TT71과 예배당이 없고 지하실만 있는, 하트셉수트의 장제전 근처에 있는 TT353으로 이 둘을 합쳐야 완전한 무덤이 된다. TT353에는 천장에 상세한 성도가 그려져 있어서 천문학자였던 걸로도 추정되지만, 현재 일반인에게는 비공개이다.

모세와 관련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주로 출애굽 전기설, 즉 '투트모세 3세의 아들인 아멘호테프 2세가 출애굽 당시의 파라오일 것이다'라는 의견 쪽에서 많이 나오는데,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아기 모세를 발견한 이집트의 공주가 바로 하트셉수트라는 것이다.[12] 그러나 정확한 근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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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10파운드 지폐 뒷면의 도안이다.

5. 대중매체에서


파일:문명 온라인 하트셉수트.jpg
01권 02권 0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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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일본 국기.svg 2015년 09월 14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8년 10월 19일
파일:일본 국기.svg 2016년 0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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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일본 국기.svg 2017년 0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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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권 05권 0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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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일본 국기.svg 2018년 0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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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권 08권 0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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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11권 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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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토크리스 소베크네페루인데 니토크리스는 실존 여부가 불확실하다. [2] 다만 소베크네페루의 시기(중왕국 제12 왕조)에는 왕을 칭하는 용어로 파라오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후대에 도입된 파라오라는 용어를 칭할 수 있었던 첫번째 여성은 하트셉수트였다. [3] 葬祭殿 Mortuary.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영혼을 제사지내던 숭배전이다. [4] 지금의 아프리카 북동부 인근에 존재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왕국. [5] 훗날 콥트 정교회의 수도원이 되는데, 이 때문에 북쪽 수도원이라는 뜻의 데이르 엘 바하리라는 지명이 붙게 된다. [6] 사실 충치는 당시 이집트 사람들의 고질병이기도 했다. 사막지대에서 주식인 빵 만드는 반죽에 모래가 들어가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7] Merytre-Hatshepsut. 메리트레-하트셉수트. [8] 실제로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사람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들 중 하나가 이름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름을 중요하게 여겼다. [9] 이런 짓은 람세스 2세가 특히 유명한데, 아부심벨 대신전을 비롯한 많은 건축물과 기념물을 남기는 데 만족하지 않고 선대 파라오들의 유산에 자신의 이름을 깊이 새겨넣었다. 온몸에 람세스 2세의 이름이 도배된 아메넴헤트 3세의 스핑크스가 대표적이다. [10] 이를 뒷받침하는 예로 왕가의 계곡등 옛 이집트 무덤들을 발굴한 기록들을 보면, 한 집안의 미라를 대대로 넣어두는 가족묘는 흔했으며, 아예 새로 부장품과 관을 새로 만들 여력이 없었던 제3중간기 시절의 파라오들은 전대 파라오의 무덤이나 부장품을 자신의 것으로 재활용한 사례가 꽤 있는데, 메르넵타의 관을 자신의 것으로 재활용하는 프수센네스 1세가 대표적. 그리고 어른의 사정으로 옛 관리의 석관을 자신의 석관으로 쓴 파라오도 있다. [11] 센무트(Senmut)로도 표기된다. [12] 출애굽은 모세가 80대였을 때의 일인데, 전기설에 의거한 출애굽 당시의 파라오 아멘호테프 2세 치세로부터 80년을 역산하여 모세가 아기였을 때를 추정해 보면 투트모세 1세의 치하가 된다. 그 투트모세 1세는 하트셉수트의 아버지인 바, 결국 이스라엘인들의 장자를 학살한 파라오는 투트모세 1세이며 그의 딸 하트셉수트가 학살을 피해 강가에 떠내려보내진 아기 모세를 발견해 길렀다는 이야기가 된다. [13] 어째서인지, "여자 파라오는 아니지만, 여왕은 있어" 라는 언급이 있다. 위에서도 나오듯이, 하트셉수트는 여자 파라오 맞다. [14] 이는 탐욕스러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소년은 욕심이 없었기때문 [15] 6권 24화에서 나온다. [16] 일본에서는 헤이안 시대에 외척 견제를 위해 조기에 양위하고 상황이 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일본 독자들에게 익숙한 방향으로 각색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