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러시아 북서 연방관구에 위치한 역사적인 지역.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그 주변 지역인 레닌그라드 주가 이 지역에 위치해있다. 북쪽으로는 카렐리아 지협의 라도가 호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에스토니아와 국경을 접한다.원래 지역 토착민은 우랄계 민족인 이조라인과 보디인이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러시아인에 동화되었다. 이조라인이 사용하던 이조라어도 현재는 소멸위기언어에 놓여있다.
1919~1920년 사이에 일시적으로 북잉그리아 공화국이라는 독립 공화국을 세웠다.
2. 언어별 표기
러시아어 | Ижора (이조라), Ингерманландия (인게르마늘란디야) |
스웨덴어 | Ingermanland (잉에르만란드) |
핀란드어 | Inkerinmaa (잉케린마) |
에스토니아어 | Ingerimaa (잉에리마) |
이조라어 | Ingermaa (잉에르마) |
라틴어 | Ingria(잉그리아) |
3. 역사
750년 무렵 바이킹 시대부터 동유럽으로 향하는 교두보 역할이었으며 키예프 루스와 고대 노브고로드의 지배를 받았다. 스웨덴에서는 고대 노브고로드가 지배한 이 땅을 올로프 3세 솃코눙의 딸이자 키예프 공국의 군주였던 야로슬라프 1세와 결혼한 스웨덴의 잉에게르드 올로프스도테르(Ingegerd Olofsdotter 1001~1050)의 이름을 따 잉에르만란드라고 불렀으며 야로슬라프 1세와의 결혼 지참금으로 하사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당시에는 스웨덴 출신의 귀족들이 이 땅을 관리했다. 수 세기 동안 이 지역은 스웨덴과 노브고로드 공화국의 전쟁터였으며 때로는 덴마크[1]와 튜튼 기사단도 개입했다. 노브고로드 공화국이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이 지역의 이조라인은 정교회 문화권으로 편입되었다.1617년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혼란 시대에 빠진 루스 차르국의 새로운 차르 미하일 1세와 스톨보바 조약을 맺어 이 땅을 스웨덴령으로 편입시켰고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를 육로로 연결했다. 이후 스웨덴은 루터파를 믿는 핀란드인과 에스토니아인을 적극적으로 이주시켜 개신교화에 힘썼고 러시아 정교회를 믿던 이조라인을 탄압했다. 그 결과 17세기 후반 무렵에는 루터파를 믿는 핀란드인과 에스토니아인이 인구 대다수를 차지했으며 이들은 잉그리아 핀인이라 불리는 새로운 인종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습한 늪 지형인데다가 발트해에서 불어오는 강풍으로 인해 스웨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역 전체 인구는 5만 여 명에 불과했다.
스웨덴과 루스 차르국과의 대북방전쟁이 벌어지자 1702년 표트르 대제는 이 지역의 중심지였던 뇌테보리(Nöteborg)[2]를 점령했고, 1703년에는 스웨덴의 뉘엔스칸(Nyenskans) 요새를 점령하고 그 일대에 새로운 신도시를 건설해 자신의 이름을 따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명명했다. 1704년 무렵에는 스웨덴령 잉에르만란드 전역이 루스 차르국 군대에게 점령당했고 1709년 폴타바 전투에서 스웨덴군이 궤멸당하자 표트르 대제는 스웨덴의 발트 영토로 진격하여 스웨덴령 에스토니아와 스웨덴령 리보니아, 스웨덴령 카렐리아의 핵심 도시 비보리까지 점령했다. 1721년 뉘스타드 조약으로 스웨덴은 패배를 인정했고 이 지역은 새로운 러시아 제국의 상트페테르부르크 현(Санкт-Петербу́ргская губе́рния)으로 편입되었다. 러시아 제국은 이 지역에 다시 러시아 정교회를 전파하였으나 러시아화를 강요하지는 않았고, 19세기에는 핀란드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잉그리아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1927년, 소련 당국은 이 지역을 레닌그라드 주에 편입시켰고 1920년대 후반부터는 잉그리아 핀인을 핀란드로 추방하기 시작했다. 1940년대에는 러시아화가 최종적으로 완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