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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시대/비판/역사왜곡 및 옥에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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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적 관점의 왜곡
2.1. 일제강점기
2.1.1. 항일 주먹 김두한?2.1.2. 부민관 폭탄의거 왜곡
2.2. 광복 이후
3. 재현오류 / 옥에 티 / 각색한 부분
3.1. 전반적3.2. 1부3.3. 2부
3.3.1. 군정기
3.3.1.1. 심영 습격 사건 관련
3.3.2. 정부 수립 이후
3.3.2.1. 자유당 정권기
3.3.2.1.1. 6.25 이전 및 6.25 당시3.3.2.1.2. 6.25 이후
3.3.2.2. 군사 정권기
3.4. 문화예술 관련 재현
3.4.1. 음악3.4.2. 영화
3.4.2.1. 간판
4. 관련 문서

1. 개요

"뭐, 원래 배우들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쉽고도 빠르게 전달되거든. 모든 게 영락없는 진실처럼 들리고 말이야. 그래서 대중의 인기는 정말 무서운 거야."
〈야인시대〉 64화, 문영철의 대사[1]

무리한 김두한 미화, 무비판적인 자서전 내용 수용, 드라마의 친 우익적인 성향 등으로 인해 드라마 왜곡되거나 말도 안 되는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야인시대〉 유튜브 스트리밍 채팅창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곳곳에서 나오는 야인시대가 시트콤같다는 소리 역시 〈야인시대〉 합성물의 영향도 크지만, 이렇게 허술하고,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의 과도한 김두한 미화가 사람들에게 김두한이 정말 대단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웃음거리로 다가오기 때문인 것도 있다.

주의할 것은, 김두한의 〈노변야화〉 방송이나 자서전, 혹은 소설 《 야인시대》나 다른 김두한을 다룬 미디어들과 드라마 〈 야인시대〉 내용이 다르다는 이유로 재현 오류라고 이야기하는 예가 있는데, 그 점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소재들 역시도 재현 오류가 한 두 가지가 아니며, 김두한이나 김두한 주변 사람이 직접 이야기한 바가 있는 내용 역시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되거나, 미화된 것도 다수 존재한다. 그러니 신뢰할 만한 자료로 교차검증하지 않고서는 주먹들이 직접 한 말이든, 〈야인시대〉나 다른 미디어들이든, 사실로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다만, 설명에 앞서 드라마의 친 우익 성향을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 〈야인시대〉는 어디까지나 해방 이후 백색테러 정치깡패를 미화해서 친 우익적인 것이지, 이승만이나 박정희 정권을 우호적으로 그려서 친 우익 드라마는 아니라는 점이다.[2][3] 애초에 김두한 자체가 극우 활동을 했던 것도 몇 년 정도고, 자유당 탈당 이후로는 대부분 기간을 야당 인사로 지내다보니 자연히 이승만과 박정희가 김두한에 우호적인 포지션으로 그려질 리는 없다.

2. 역사적 관점의 왜곡

이 이야기는, 암울했던 민족의 수난기와 격동기의 역사를 살다가 갔던 영원한 야인, 김두한의 삶을 극화한 것이다. 본 드라마에 소개되는 사건과 인물은 본인의 회고록과 취재록, 자료수집 등, 대부분 실화에 그 근거를 두었다.

그러나 드라마의 원만한 진행을 위하여, 시대와 역사적 상황을 운영하는 인물 일부분에서는 픽션을 가감했으며 실존 인물의 개인적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상당부분의 생존인물에 대해서는 가명을 사용했음도 아울러 밝혀둔다.
〈야인시대〉 1화, 첫 부분 나레이션.
친일 변명, 상인들한테 가한 횡포 실드, 백색테러 정당화, 김두한의 범죄 왜곡, 마지막회에서 나온 김두한에 대한 평가 등, 온통 김두한 행적 미화로 가득 찼다. 가장 심각한 악영향은 현재 유튜브로 〈야인시대〉를 보는 사람들은 1부야 지나치게 판타지성이 강하니 코웃음치며 넘어간다 쳐도, 진짜 2부처럼 김두한이 김좌진의 유지를 이어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공산당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쓴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4] 위와 같은 왜곡을 사람들이 사실로 받아들이게 하고, 김두한이 잘못한 일까지도 모조리 정당화시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2.1. 일제강점기

2.1.1. 항일 주먹 김두한?

시장통의 불쌍한 이들을 돌보는 것도[5] 독립운동일 수가 있지. 허나 너는 의 아들이다. 결코 거기에 머물러서는 아니 된다. 너는 호랑이 새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해.[6]
〈야인시대〉 26화 중 김두한의 친할머니
이 드라마에서 김두한 애국심이 투철하고 일본인에게서 조선 상인을 보호해줬으며,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조선총독부에게 협력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나마 안재모가 연기한 김두한은 총독부에 협력한 일을 자아비판하기도 했으나, 김영철이 연기한 중년 김두한은 일제와 맞서 싸운 행위로 포장했다.

하지만 김두한 미군에게 한 증언을 보면 실체가 다르다. 또한 당시 조선 주먹패들이 일본 야쿠자와 싸운 것도 어디까지나 폭력조직간 이권 싸움이었고, 합의되자 더 이상 싸우는 경우가 없었다. 오히려 이들의 행동은 일본 식민지 통치시대의 먹고 살기 힘든 조선 상인들을 착취한 것에 불과하다. 조선총독부에 내는 세금도 감안하면 세금을 두 번 내는 셈이니 정당성은 없다. 애초에 실제 김두한 본인도 주먹으로 일제와 맞섰다는 식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더욱 가관인 점은 김두한 패거리가 '힘없는 조선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란 의미를 부여하는데, 싸움질하며 상인들 가게나 물건들을 깨부수는 장면이 여럿 나왔음에도, 이를 사과하거나 보상하는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종로2정목 털보 패거리는 자신들의 영역이라는 종로회관에서 정진영을 구타하면서 테이블에 놓은 술과 안주들을 모조리 박살을 내버렸건만, 업체 측에 사과조차 하지 않고, 되레 2차 술을 마시러 나가기까지 했다.

만약 정말 상인들을 생각했다면, 아무리 상대가 먼저 시비를 걸어왔다 해도, 장터에서의 싸움은 최대한 피하거나, 좀 더 넓은 장소에서 싸워야 할 텐데, 꼭 가게 앞에서 싸운다. 이런 행위는 상인들에게 상당한 민폐다. 가게 깨부수는 것도 그렇지만, 오던 손님까지 내쫓는 행위이니 말이다. 극중 김두한 일당에게 호감을 보이는 재래시장 상인들의 모습은 사실상 스톡홀름 증후군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심지어 마루오까가 김두한 졸개들에게 세금을 왜 걷냐고 지적하자 한 상인이 "저 사람들은 아무 잘못 없고 우리가 좋아서 주는 거니 그러지 마라."라며 실드를 치기도 한다. 김두한 이전에 구마적 패가 세금을 걷어 갈 때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이거 어쩌나?" 하고 탄식만 하던 것과는 정 반대의 반응이었다.
게다가 "거리의 독립군" 미화도 묘사가 상당히 허술해서 김두한 패거리들이 도대체 왜 싸우는지에 대한 정당성을 제대로 부여하지 못했다. 혼마찌 종로에 진출하면 조선 상인들이 삶의 터전을 잃을 것이라고 하지만, 일본 상인들이 조선 상권을 잡아먹는다는 내용도 자세한 횡포 묘사없이 단 몇 마디 언급으로 퉁쳐버린다. 오히려 같은 조선인인 구마적 패거리들이 세금 걷겠다며 상인들에게 횡포를 부리는 장면이 더 자세하게 묘사되었다.[7]

그렇다고 혼마찌 세력이 조선인들 상대로 횡포를 부리거나 주도적으로 온갖 악행을 저리는 것도 아니다. 종로에 진출한 나미꼬 시바루 일행만 해도 일반적인 악역과 거리가 멀다. 이들은 말 그대로 장사를 한 것 뿐이고, 심지어 나미꼬는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 주도적으로 뭔가 이뤄내려 한 명석한 여자이며, 이들의 지적[8]은 시대상으로 보면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다.[9] 또한 시바루는 극중에서 가장 신사적이며, 정의로운 주먹 중 하나다. 게다가 하야시는 무력이나 뒷배를 이용해 종로의 상권을 빼앗거나 헐값에 강탈하기는 커녕 수많은 자금을 조선 상인들에게 지불하고, 정당하게 상권을 사들였다.[10] 그런데 여기 맞서는 김두한의 논리는 단지 '조선의 심장인 종로에 쪽바리는 절대로 들어올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작중에서 김두한 독립운동을 하려고 만주로 가려다가 좌절하여 조폭이 되는 걸로 나오는데, 정말 독립운동이 하고 싶었다면 조폭 두목이 된 이후 부하들을 이끌고, 국내에서 과격 독립운동 단체를 조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 김두한에게는 그런 행적 자체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11] 아래 서술되는 부민관 폭탄의거 사건 등의 국내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아 나도 저렇게 해야 하는데.'라는 탄식은 해도 막상 행동은 하지 않는다.[12] 딱 하나 비슷하게 한 거라고 해봐야 친일 연극에서 을 풀어서 방해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나름대로 독립운동을 하려면 할 수 있는 힘과 충성심을 가진 조직을 갖고 있어야 함에도 정작 한다는 것이 이런 장난질에 가까운 질떨어지는 행위라는 점에서 과연 김두한이 독립군 운운할 만한 자격이 되는가?라는 의구심이 든다.[13] 바로 이 부분이 〈야인시대〉가 조폭미화물이라고 불리는 이유 중 가장 큰 점이며, 영화 〈 장군의 아들〉과는 주먹패의 본질 자체가 많이 다른 특징을 보인다. 〈야인시대〉는 ' 건달들이 거리의 독립군이며 상인을 보호하고 그 명목으로 세금을 걷는다.'라는 주먹패의 활동에 정당성을 상당히 부여한다.

장군의 아들〉과 비교해볼 때 〈장군의 아들〉 같은 경우는 그저 본인들의 생활을 위해 주먹을 쓰고 상인들에게 세금을 걷는 주먹패들을 묘사했다. 〈장군의 아들〉 1탄 초반에는 상인들이 세금 문제로 인해 원성이 자자하다는 묘사를 했으며, 2탄에서는 종로 주먹패 몇몇이 강제로 을 뜯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또 그들은 자신들이 조국 독립을 위한다는 표방을 하지 않고 그들에게 이 되는 존재는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대립하여 싸우는 식으로 표현했다. 즉, 〈야인시대〉와 〈장군의 아들〉의 주먹패는 판이하게 그 본질이 다르다는 것이다. 〈장군의 아들〉 시리즈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극중 주먹패들이 자신들이 독립군이라고 운운하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종로패 오야붕이었던 김기환이 "만주에서 독립군들이 배곯아가면서 싸우고 있지만 우리는 종로에서 싸우고 있다."라는 말 정도가 거의 전부다. 2탄에서는 아예 주인공 김두한을 그저 날건달인 양 디스하는 대사도 나온다. 김두한의 라이벌 김동회가 하야시패에 속해 있던 것을 두고 괴로워하자 히로인이었던 송채환이 "두한씨도 자신을 위해서 주먹을 쓴 것이지, 조선 민중들을 위해 쓴 것이 아니에요!"라며 김동회를 위로한다. 독립군이라는 단어는 아니지만 김두한이 '협객'이라는 단어를 쓴 것도 마루오카와의 일전에서 쓰게 되는데, 이러한 면을 보면, "독립군"이니 "협객"이니 대사를 남발하는 〈야인시대〉와 〈장군의 아들〉은 정말 큰 차이를 보인다. 〈야인시대〉는 스스로 "독립군"이니 "협객"이니, 의로운 사람이라 생각하면서 주먹패 생활을 하지만, 〈장군의 아들〉은 그저 '생존'을 위해서 주먹패 생활을 할 뿐이다. 실제 〈장군의 아들〉 원작 소설에서도 '이들은 그냥 야쿠자였다.'라는 작가의 말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거기에 김두한이 스스로를 거리의 독립군으로 지칭하는 상황 묘사도 실로 엉망이다. 김두한이 거리의 독립군을 운운하는 상황들이 경찰에 체포되어 취조를 받는다던가 같은 상황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광복된지 한참이 지난 국회 오물 투척사건 직후 시점에서까지도 거리의 독립군 레퍼토리를 반복하는데, 당연히 보는 사람들에게 김두한이 진짜 거리의 독립군이구나라고 인식되는 경우는 당연히 없고, 그저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처럼 보여서 비웃음만 사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차라리 자국인들을 돕거나 소극적으로라도 반일활동을 하는 시점에서 거리의 독립군을 운운했다면 그래도 훨씬 나았을 것이다.

당시 김두한이 친구 정진룡을 죽였을 당시 미군에게 한 증언이다.
나의 오랜 친구 정…김두한의 이야기는 한국에 대한 일제 강점기까지 되돌아간다.…김의 제일 친한 친구는 정진룡인데 그는 그 들이 일본인에게 고용되어 경방단(Police Assistance Association)을 조직 운영하기 전까지는 그와 더울 일본 정부당국과 마찰을 빚고 있었다. 경방단에 가입한 후 김과 정은 일본인을 위한 합법적인 테러리스트 겸 정보제공자가 되었다. 종전과 더불어 실업자가 되면서 모든 지위를 상실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큰 고려 없이 청년들로 모아서 정치 정당의 돌격대로 고용되었다. 유일한 문제는 정은 남로당을 위해서 일하는 조선전위대를 택했고, 김은 우익주의자 장덕수의 정당에 고용되었다. 그때부터 김은 "나에 오랜친구 정"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정에게는 불행하게도 김은 한국 전체의 싸움 왕이었다. 처음에 김은 서울의 거리에서 정과 정의 부하 두 명을 때렸다. 다음에 정이 김에게 권총을 겨누었으며 김 역시 정에게 권총을 겨누고 정의 권총을 떨어뜨린 후 정의 무릎에 총을 쏘았다. 1947년 4월 우익 한국인들이 그들 국가의 미래의 국부로 간주했던 이승만의 귀국을 열렬히 기다리고 있는 동안, 좌익도 나름대로 그들의 계획을 수행하고 있었다. 정진용과 그의 무리들은 이승만을 사기꾼이고 자기중심적인 정치인이라고 비방하는 팜프렛을 배포하기 위해서 동원되었다. 4월 20일, 김두한은 이 시점이 그의 오랜 친구를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할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는 부하들을 보내서 반 이승만 유인물을 배포하는 사람들을 잡아오게 했다. 김의 부하는 극장과 서울의 시장거리를 배회하면서 정과 그의 부하를 잡아들였다. 김과 그의 부하들은 그들이 그들의 과거의 잘못을 인식하기를 희망하면서 이들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폭행을 길고 단단한 일본 단풍나무로 만든 몽둥이로 행해졌다. 정은 박헌영 부재 시 남로당의 대표였던 허헌에게서 명령을 받았다고 했고 그는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모든 명령에 복종한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이승만을 역적이라고 말했다. 이 순간에 김이 이성을 잃고 정의 가슴을 찼다. 그는 그의 오랜 친구에게 철회를 요구햇지만 정은 거절했다. 김은 또 한방을 더 때렸고 그것으로 인해 정은 체내 출혈이 시작되었고 곧바로 죽었다.
History of the Counter Interlligence Corps, pp.92-94, 김봉진, 미군정기 김두한의 '백색테러'와 대한민주청년동맹, 대구사학 97, 2009, 56쪽에서 에서 재인용.

사실은 " 일본인을 위한 합법적인 테러리스트 겸 정보제공자"를 하다가 종전 때문에 " 실업자"가 된 테러리스트다. 오히려 김두한 자신은 그 탓에 "모든 지위를 상실"했다고 한다.

2.1.2. 부민관 폭탄의거 왜곡

이 드라마에선 김두한 부민관 폭탄의거에 간접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묘사되었다. 정확히는 몇몇 노동자들이 다이너마이트를 달라고 하자, 김두한은 마치 안전 불감증에 걸린 것처럼 그냥 폭탄을 주었고, 그게 부민관 의거에 사용된 것으로 묘사되었다. 의거를 주도했던 조문기는 그걸 보고 매우 분노했다.
몇 년 전 드라마 《 야인시대》에서는 김두한 폭탄을 건네주는 것으로 나와. 유 동지가 얼마나 고생하며 구한 폭탄인데 말이지.
1945년 ‘부민관 폭파’ 주역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링크

심지어는 제작진이 미리 재현을 위해 조문기를 찾았는데, 그런데도 재현 오류를 낸 것은 고의로 볼 수밖에 없다.
〈야인시대〉 담당 PD가 드라마와 관련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싶다며 조문기를 찾아온다. 조문기도 그를 꼭 만나고 싶던 참이었다. 김두한을 항일애국지사로 부각시키는 것이 가당치도 않았고, 역사를 온통 거짓 투성이로 왜곡하는 것이 언짢기도 했지만 부민관 폭파사건에 관련해 크게 걱정되는 일이 있었다.

이환경씨가 쓴 소설 《 야인시대》에서 부민관 거사에 사용한 폭약은 김두한이 건네준 것이고 그것이 발각되어 김두한이 모진 고문을 당하고 고생하다 감옥에서 8.15 광복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그 소설가 이환경씨가 곧 드라마 작가이고,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기에 그렇잖아도 걱정하던 차였다.

조문기는 담당 PD에게 부민관 거사를 그런 내용으로 왜곡하지 말라고 호통을 쳤건만, 드라마는 소설 원작 그대로 방영되었다. 연구소에서 그 담당 PD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를 했더니 그 PD는 “그냥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주세요.”라고 하더란다.
〈야인시대〉라는 드라마는 첫화부터 마지막회까지 김두한에 관한 스토리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있었던 여러 사건들 (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부터)을 종합 선물세트처럼 모두 보여주고 싶어하는 느낌이 상당히 든다. 단지 김두한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을 모두 담고 싶어하는 경향이 보여서, 이게 드라마인지 〈 역사스페셜〉인지 구분이 안 가는 장면이 종종 있다. 아무튼 그런 시대적 여러 사건들을 드라마에서 보여주려면 김두한과 엮을 수 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니 무리수를 둔 것이 상당히 많다. 장르 자체는 드라마인데, 만약 부민관 사건을 따로 구성해서 보여주면, 다큐멘터리가 될 수 밖에 없고, 드라마 전개의 특성상 그 사건을 김두한의 스토리와 연계시켜 보여주다보니 그런 역사 왜곡마저도 서슴치 않게 하는 것이다. 〈야인시대〉를 보면 그런 내용들이 꽤 많다. 초반 2화때 김두한과 나석주가 엮이는 것도 그렇고, 대부분의 역사적 굵직한 사건들이 알고보면, 사실 김두한과 관련이 실제로 전혀 없는 내용인 것들이 많다. 원만한 드라마 진행을 위해 픽션을 넣는다고는 하지만, 이게 역사 왜곡이 되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잘못된 정보를 심어주게 되니,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2.2. 광복 이후

2.2.1. 김두한

김두한은 자기 옛날 친구였던 정진룡과 그 일행들을 불법 납치고문하는데, 그 과정에서 정진룡을 살해한다.

김두한 미군에게 한 말을 따르면 "정진룡과 그의 무리들은 이승만 사기꾼이고 자기중심적인 정치인이라고 비방하는 팜플렛을 배포하기 위해서 동원되었다. 4월 20일, 김두한은 이 시점이 그의 오랜 친구를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할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는 부하들을 보내서 반 이승만 유인물을 배포하는 사람들을 잡아오게 했다. 김의 부하는 극장과 서울의 시장 거리를 배회하면서 정과 그의 부하를 잡아들였다. 김과 그의 부하들은 그들이 그들의 과거의 잘못을 인식하기를 희망하면서 이들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폭행은 길고 단단한 일본 단풍나무로 만든 몽둥이로 행해졌다. 정은 박헌영 부재 시 남로당의 대표였던 허헌에게서 명령을 받았다고 했고 그는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모든 명령에 복종한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이승만을 역적이라고 말했다. 이 순간에 김이 이성을 잃고 정의 가슴을 찼다. 그는 그의 오랜 친구에게 철회를 요구했지만 정은 거절했다. 김은 또 한 방을 더 때렸고 그것으로 인해 정은 체내 출혈이 시작되었고 곧바로 죽었다." 고 한다.[14]

그런데 이 내용이 드라마에선 정진영 측이 김두한 측을 공격하려다가 반격을 당해 납치를 당했고, 김두한이 살려주려 했는데 김두한을 죽이려하니 김두한이 쏴죽인 것으로 왜곡을 해놓았다.

3. 재현오류 / 옥에 티 / 각색한 부분

3.1. 전반적

3.2. 1부

3.3. 2부

3.3.1. 군정기

3.3.1.1. 심영 습격 사건 관련

3.3.2. 정부 수립 이후

3.3.2.1. 자유당 정권기
3.3.2.1.1. 6.25 이전 및 6.25 당시
3.3.2.1.2. 6.25 이후
3.3.2.2. 군사 정권기

3.4. 문화예술 관련 재현

3.4.1. 음악

근현대사 시대극인만큼, 이따금씩 당시에 유행했던 가요들이 나온다. 그런데 실제와 연도가 맞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

3.4.2. 영화

주먹 시절 김두한 주 무대가 영화관 우미관이니만큼 극장 내외부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오류가 많다.
3.4.2.1. 간판

4. 관련 문서



[1] 원래는 심영과 문예봉, 황철 등의 공산당 연극 배우와 그들의 프로파간다에 대해 늘어놓는 대사다. 극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도, 마냥 심영 일당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닌 듯 하다. [2] 이승만의 인품에 대해 다소 미화로 볼 수 있는 부분은 있지만,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엔 지나치게 고집이 센 꼰대로 전략하고 측근들에게 휘둘리는 전형적인 무능한 군주로 묘사된다. 박정희 정권 역시 드라마 기준으로 우익 정치투사였던 김두한을 빨갱이라며 잔혹하게 고문하는 묘사가 있다. [3] 하지만, 어째선지 박정희가 김두한에게 다시는 정치에 손을 뻗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땅을 주고 사업을 하도록 도와줬다는, 사실과 무관한 나레이션이 흘러내린다. 김두한은 동료 의원들과 끝까지 박정희 정권에게 반항하는 인물이었기에 박정희를 통해 땅을 받은 적도, 사업을 한 적도 없다. 각본가 이환경이 현재는 무산된 인간 박정희라는 드라마를 계획한 적이 있었다. 원래 이환경은 젊은 시절인 1990년대 이전에는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는 드라마인 〈 훠어이 훠어이〉를 집필한 경력이 있었을 정도로, 군부정권에 비판적인 스탠스에 서 있었지만, 3당 합당과 김영삼 정권기 이후로 정치적인 스탠스가 변화해서 박정희에게 우호적인 인물이 되었으며, 이 때문에 박정희에게 유화적인 부분을 넣은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4] 201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 〈야인시대〉 붐이 다시 일어난 건 김두한이 우익 진영 백색 테러리스트로서 좌익 진영의 배우 심영을 습격한 에피소드가 인터넷에서 유행을 탔기 때문인데, 그에 따라 유튜브 등으로 다시 보는 시청자들 관심도 6.25 전쟁 직전 좌, 우익이 대립하던 시절의 김두한에게 쏠려 있다. [5] 사실 이것조차 제대로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6]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김두한은 제대로 된 항일 운동을 한 적이 없다. [7] 다만 당시 구마적 패거리는 야쿠자보다 더 상인들을 못살게 굴었다고 하니 아주 틀린 묘사는 아니다. [8] 왜 일본인은 여기서 장사를 하면 안 되는가? [9] 심지어 나미꼬는 김두한에게 세금까지 바치겠다고 했다. [10] 하야시는 종로 가게를 사들이며 "돈을 아끼지 말아라."라는 말을 분명히 한다. 가치가 있으니 시세보다 더 주고라도 가게를 사겠다는 의도지 절대로 무력이나 권력을 이용하지 않았다. [11] 작중에서도 이래저래 조선 상인들을 보호한다는 핑계만 나올 뿐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하는 장면은 안 나온다. [12] 극중에서도 김두한은 46회에서 이 사실을 인정하고 한탄한다. [13] 해방 이후 이념전쟁에서 우미관 패가 총격전, 폭탄테러 등 극도로 위험한 김두한의 명령을 곧이 곧대로 수행하던 점에서 김두한이 '힘이 없어서 독립운동을 못한 것'이 아니라 '할 의사가 없어서 안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좌익계를 테러하는데는 그렇게 열성적으로 총질 폭탄질을 하던 세력이 '독립군'을 자칭하면서도 일제를 상대로는 뱀이나 푸는 장난질을 하는데 그친다는 건 아무리 봐도 말이 안 된다. 다만 해방 전후의 상황이 다르다는 것은 고려해야 한다. 해방 후에야 경찰과 정치인들이 뒷배를 봐주니 얼마든지 총기로 난동을 부려도 좌익 제거로 퉁치고 넘어갈 환경이었지만, 해방 전에는 무장 봉기는 커녕 우미관패가 권총 몇 자루만 가지고 다닌다는 제보만 들어오면 바로 미와 경부가 달려와 싹 잡아가는 게 가능할 만큼 운신의 폭이 없었다. [14] US Army lnteligence Center, History of the Counter Intelligence Corps, XXX: CIC During the Occupation in Korea(March 1959), p.92-94, 김봉진, 같은책, 22, 56에서 재인용. [15] 1949년 10월 25일 《동아일보》 기사. 金佐鎭 將軍(김좌진 장군)의 慈堂 廿二日別世(자당 입이일별세). '자당(慈堂)'은 타인의 어머니를 높여부르는 말이며 '입(廿)'은 '20(二十)'을 한 글자로 쓴 것이다. [16] 언급된 번개는 〈야인시대〉 제작현장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17] 김두한이 〈노변야화〉에서 자신이 싸우러 갈 때 어떤 옷을 입고 갔는지에 대해서 꽤 자세히 설명한 부분들이 있다. [18] 광복 이후 일부 간판은 바꾸었는데, 그 수가 적다. [19] 제작진이 애초에 1920년대 ~ 1970년대라는 긴 시간대를 다루는 특성상, 세트장 내 대로변에는 재현을 어기더라도, 임의로 서양식 일반 건물 세트를 건립했다고 했다. 참고로 1930년대에는 종로 큰길가에도 기와집 초가집이 있었다는데, 그 모습대로 1960년대와 1970년대 서울 시내의 풍경을 연출하기에는 무리다. [20] 예를 들어 영화 〈 말모이〉는 러닝타임이 진행될수록 거리에서 한글 간판이 줄어들고 대신 일본어 간판들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 일제의 한국어 말살 정책을 은연중에 비판하는 연출했다. [21] 종로꼬마 이상욱의 사망이 2000년 초였는데, 〈 야인시대〉 방영 당시 부인을 포함한 그 유족들이 멀쩡히 살아있던 시절이었다. [22] 이 때 김두한이 말한 일본 야쿠자 두목은 하야시도 아닌 와께지마였다. [23] 성으로만 지칭한 사람들 중에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없다. [24] 정진룡 살해사건이나 김두한의 〈노변야화〉 그리고 훗날 《 경향신문》의 신영균, 박용직 인터뷰에 따르면 〈 야인시대〉에 등장한 우미관 패 중 언급되지 않는 사람은 실존 인물이 아니거나 실존인물로 확인되지 않은 삼수 아구, 갈치, 털보, 번개, 와싱턴, 개코 정도이다. 오히려 야인시대에 등장하지 않고, 김두한 회고에도 등장하지 않는 이름들 중 김두한의 활동에 여러 번 함께 한 레귤러급 인물들도 여럿 이름이 보이는데, 그 이름 중에도 김동회네 이상욱이네 하는 이름은 전혀 없는 것. [25] 1987년에 현재 자리인 경기도 의왕시 포일동으로 이전했다. [26] 김두한이 서울구치소 시절에도 수감된 적이 있지만, 그 모습은 나오지 않았다. [27] 한참 급이 낮은 사람 아니었느냐는 이야기도 있으나, 중앙극장 습격 사건에서 연막탄을 터뜨리는 임무를 책임진 것이 김영태라는 신영균의 증언도 있고, 정진룡(정진영의 모티브가 되는 인물) 치사 사건 당시 조선민청 대원들을 기습한 대한민청 별동대를 이끌기도 하는 등 신영균과 더불어 대한민청 관련해서 언급이 많은 인물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김두한의 측근으로 볼 여지는 충분하다. [28] 김두한이 사법계 쪽이라면 모를까, 고등계에서 촉각을 곤두세워가며 신경을 쓸 급까지는 못 되었다. [29] 김두한이 잡아 죽인 경찰은 사실 미와가 아니라 조선인 경찰 유승운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 사람도 1935년 폐결핵에 걸려 퇴직한 이후부터는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아 확인이 불가능하다. [30] 1950년, 6.25 전쟁으로 잠시 대구, 부산 등지로 옮겼다가 서울 수복 후 상경했다. [31] 이 건물을 모티브로 지은 세트는 해방 이후 대한민청이 사용한 동본원사로 나온다. [32] 현재 자리 바로 옆이다. [33] 수요미식회〉 설렁탕편에서 김두한이 아르바이트했다고 나온 적이 있다. # [34] 자세한 내용은 그리스 왕국 문서의 2번째 문단 참조. [35] 1회 시작 배경이 1924년이라 나왔고 2회에서 1년이 지났다고 하며 6.10 만세운동 직전이므로 저렇게 연도를 추론한다. [36] 이 때 폭탄은 불발했는데, 이건 재현을 했다. [A] 극 중 설정이다. [38] 수표교 거지 일행 중 한 명이 도망가다 붙잡히는데 그 곳이 열차 철로 위였다. [39] 철도 건널목 경보기를 잘 보면 경보등에 고장정지표시기가 달려 있다. 이설 전 휘경4 건널목, 현재는 폐쇄된 경원선 초성3 건널목, 학답2 건널목과 동일한 장치다. 그리고 도망가는 장면이 나올 때 [40] 소화물차 부분에 철도청 마크가 있다. [41] 잘 들어보면 디젤 기관차 구동음이 들린다. [42] 김두한 증언에 따른 스토리는 〈 장군의 아들〉1부에 잘 나와있다. 그리고 금액도 〈장군의 아들〉에서는 150원인데, 〈야인시대〉에서는 무려 5,000원. 당시 좋은 직장에 다니던 화이트칼라 월급이 100원이 안 될 때인만큼, 어느 쪽이 사실과 가까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A] 극 중 설정이다. [44] 사상에 관한 정보(경찰서장), 경종고비 제1721호 1, 1942.04.07 16쪽, 同年2月19日自宅において被疑者金斗漢の紹介により其親分俗称旧馬賊こと高時亨(京)改め高山勲を知り、前掲両名に対する如き好言を述べて獲得し : 동년 2월 19일 자기 집에서 피의자 김두한 소개로 그의 두목인 속칭 마적(馬賊), 곧 고시형(또는 고시경. 高時亨, 高時京)을 알게 되어 위 두 사람에게 한 것과 같은 감언으로 획득했다. [45] 소설판에서는 제대로 나온다. 허나 타자수로 일하기 위해서는 중등교육 이상을 받아야 했으므로, 중학교 내지 고등학교 이상 학력과, 극 중 박인애처럼 대학에 다니거나 대졸인 여성도 많이 있었다. [46] 극 중에서는 우미관 뒷 골목에서 싸웠지만, 김두한의 회고에 따르면, 서대문에 있는 동양극장(현재 《 문화일보》 자리) 뒷 골목에서 싸웠다고 한다. [47] 상당히 민망한 이야기를 직접 말한 것이다. 데이트를 한다고 한강에 놀러갔다가 역기 같은 걸 들고 운동하는 장정들을 보더니 힘 자랑한답시고 그걸 들려다 못 들어서 망신당하고 빡쳐서 장정 시비가 붙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고 박씨 여성이 꽤나 질색팔색을 했다고 한다. [48] 원래 차별하는 의미에서 일본인 구역만 '정(町)'을 사용했고 조선인 구역은 옛날 그대로 '동(洞)'으로 썼지만, 1920년대 이후 동화(同化)를 목표로 하면서 '동'을 전부 '정'으로 바꿨다. [49] 당시 사회주의 비밀결사들은 주로 일대일 점조직이었는데, 한 사람이 잡혀가면 다른 한 사람이 피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하루 이상 진술을 거부하다가, 그래도 못 참겠으면 진술하는 불문율이 있었다고 한다. [50] 당시에는 폐교된 상황이었지만, 출신 인물들이 꽤 활약을 많이 했었다. [51] 애당초 대성학교 설립자가 도산 안창호이다. [52] 玄(검을 현)과 田(밭 전)을 합치면 畜(가축 축)이 되고, 牛(소 우)와 一(한 일)을 합치면 生(날 생)자가 된다. 합치면 (畜生). [53] 엄밀히 말하면, 황병관의 후배라는 레슬링계 원로가 황병관에게 들은 이야기를 구술한 것이다. [54] 책에는 김 모라고 나오는데, 그 작가에 의하면, 훗날 국회의원까지 했다고 나오니 확실히 김두한이다. [55] 이는 이름이 있으면 임원 한 명이라도 체포되었을 시에 죄다 드러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원칙이 삼불(三不)이었는데, '말하지 않는다'(不言), '문서로 남기지 않는다'(不文),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不名)였다. [56] 음력 1945년 9월 5일. [57] 박용직은 전위대 창단식, 김후옥은 박용직 소개로. [58] 박용직 증언에 따르면, 이전부터 김두한과 형 동생 하던 사이일 정도로 꽤 가까웠으며, 그리고 정진룡과도 구면이었다고 한다. [59] 이 신문에 대한 내용은 링크 참조. 참고로 국립중앙도서관 - 국가서지LOD 홈페이지에 들어가 검색하면 《중앙신문》을 읽을 수 있다. [60] 미국으로의 인도인의 이민열풍은 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61] 현재의 명동예술극장. [62] 단, 심영이 첫 등장한 회차는 57화다. 다만 이후 64화까지는 별 비중 없는 단역 정도였다. [63] 다만, 신영균 말에 따르면, 작년 문영철의 생일 때는 한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놀았다고 했다. [64] 일제강점기에 이승만이 조선에 있던 기간은 1910년 10월부터 1912년 3월까지 약 1년 5개월 정도에 불과했다. [65] 정확히는 사진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고, "영웅의 가문이라 북한군이 살려두었다더라."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66] 사망 직후 김두한 패가 전투에 참여하는데 전투 이후 김석원이 인천 상륙 작전을 언급한다. 생략된 것을 고려하면, 8월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67] 전쟁 이후에도 가깝게 지내다가, 나중에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어서 다퉜으며, 결과는 비겼다. [68] 드라마에선 김석원 준장의 수도사단에 배속되었다고 하지만 이 당시 김 준장은 수도사단 동쪽 3사단을 맡았고, 수도사단은 송요찬 준장이 맡았다. [69] 정확히는 6촌이다. 4촌이라는 기사도 있다. [70] 나이 어린 걸로 태클거는건 좀 아니지 않나 할 텐데 조선 시대가 끝난 지 불과 40여 년밖에 안 지났음을 생각해보자. 참고로 그 당시 대부분 정치인들 평균 나이가 어려야 40대, 그리고 대부분 5 ~ 60대였으며 대통령은 무려 80대였다. 그런데 김두한은 겨우 37세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71] 유지광 자서전 대명에 언급되었다. [72] 같은 감독이 만든 〈 무풍지대〉에서는 가명 홍대호로 등장하고 처음부터 이정재 편으로 등장한다. 오히려 그 쪽이 더 잘 재현한 것이다. [73] 기사에 나온 87년은 단기 4287년, 서기로 1954년을 말한다. 당시엔 단기가 대한민국 공식 연호였다. [74] 최순주는 가결 선포 후 바로 내려왔다. [75] 1970년 1월 20일 방송. [76] 양일동, 김상돈, 이철승, 유옥우, 김두한 의원이다. # 사족으로, 유옥우 의원의 손자가 배우 유지태이다. [77] 모든 지자체장을 선출직 공무원으로 뽑는 전면적 지방자치제와 행정안전부 직할의 지방경찰청 제도가 동시에 시행되고 있는 현대와는 달리, 제1공화국은 미군청청 시절에 존재하던 경무부와 관구경찰청을 치안국과 10개 도청의 경찰국으로 축소하고 나서 내무부가 모든 도청의 고위직(예를 들면 대한민국 대통령→도지사/국무총리→부지사/내무부 장관→국장/내무부 차관→과장)을 임명하여 파견하는 방식으로 경찰국을 통제했다. 따라서 오늘날의 대한민국 행안부 산하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내무부 치안국장을 하던 사람이 일개 도지사로 전보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78] 〈야인시대〉 2부 방영 당시인 2003년에 서정학은 살아있었다.(서정학은 〈야인시대〉가 종영된 지 1년 10개월 2일이 지난 2005년 7월 2일에 별세했다.) [79] 서정학은 젊었을 당시부터 본고장인 일본에서 검도를 가르치는 사범직에 있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하여 대한검사회를 창립한 데다 중장년 시절에는 대한검사회의 후신인 대한검도회 회장직을 맡은 만큼, 해당 분야서는 원로급 대접을 받았던지라 발이 매우 넓었다. 이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대부격 인물이 〈야인시대〉에서 악역, 그것도 부정선거에 반대하다가, 강원도지사에서 쫓겨나게 만든 이기붕과 자유당 인사로서 이정재에게 국회의원 선거를 포기하라고 강권하는 역할로 나오는 것을 반기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80] 실제로 〈야인시대〉에서 묘사된 임화수에 대하여 분노한 유족들과 생전에 그와 친분이 있던 사람들이 제작진을 고소하려고 시도했으며, 드라마에서 임화수가 최무룡을 구타하는 장면을 본 최민수는 자기 아버지를 모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분노했다가, 이 나라를 떠나겠다는 말까지 한 적이 있다. 이외에도 같은 작가가 쓴 작품이자 〈야인시대〉 2부 후반부 방영분의 프로토타입격인 〈무풍지대〉에서는 눈물의 곡절(차민섭)이 드라마 내용에 불만을 품고 방송국에 폭탄을 들고 찾아가겠다는 협박을 한 적이 있다. [81] 실제로 동시대를 다룬 〈 제2공화국〉에서는 실제대로 이강욱이 청년으로 나왔다. [82] 일제강점기에 초등학교를 불렀던 이름 중 하나. 이화룡과 송찬호는 평양소학교 동창이다. [83] 이 때 차지철 대위는 "이정재가 자신에게 외가 쪽 먼 형뻘이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명하려고 하지 않았다."라고 한다. 저 말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정재는 이승만-박정희 정권 하에서 막강한 권력을 지녔던 경호실장 2명을 동생으로 둔 셈이다. (한 명은 혈연관계가 없지만, 친분이 매우 두터웠다.) [84] 정확히는 고노에 나미꼬에게 김두한 김좌진 아들이란 얘기를 들은 뒤 김두한이 고균 선생 일가라고 언급한 것과 김두한을 집으로 초청해 이야기나눌 때 김두한에게 김옥균을 "자네에겐 조부 뻘이 되실 걸세."라고 말해준 것이다. [85] 일례로 우리가 흔히 아파트 하면 떠올리는 최초의 아파트인 마포아파트는 1962년도에 건축이 완료되었다. [86] 항목을 참고하면 알 수 있듯, 쇼스타코비지차 이 음악을 정확히 언제 작곡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원곡으로 쓰인 영화의 OST가 1955~1956년에 작곡된 것이라 1956년 이후 작곡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87] 24화 마지막과 이어지는데, 그 때는 이 드라마의 OST 중 하나인 Odysseus가 나왔다. [88] 두 작품 다 1939년에 처음 나왔다. [89] 15회에서 손기정 선수 1936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수상을 다루었다. [90] 당시 및 극 중 표기로는 〈님자업는 나루배〉. [91] 춘사 나운규의 유작이다. [92] '도생록'은 44회까지 나왔다. [93] 해방 이후 ‘수도극장’, ‘스카라극장’으로 바뀌었다가, 2005년 철거. [94] 지금 명동예술극장. 실제 심영이 연극 〈님〉을 공연했던 극장이다. [95] 번안한 제목인 〈日出(일출)〉로 적었다. [96] 국도극장의 전신이다. [97] 회차 적은 순서는 오타가 아니다. 원래 대한민청 결성이 심영 습격보다 이후인데, 드라마에서는 순서를 바꿨다. [98] 김두한의 지역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