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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30 01:00:41

쌍팔년도


1. 개요2. 유래3. 의미 변화4. 현대의 용법5. 해외에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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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288년(서기 1955년) 또는 서기 1988년을 뜻하는 단어.

처음에는 1955년을 가리키던 것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1988년을 가리키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지칭하는 연도는 달라졌지만 용법으로 볼 때 '낡은 구시대'를 뜻한다는 점에서는 변함없다.[1] 다만 1988년은 1988 서울 올림픽도 있었고, 나름 좋은 시절로 여겨지다보니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구식적인, 구시대의, 고리타분한, 사라져야할 악습 등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2]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은 비표준어다.

2. 유래

흔히들 말하는 「쌍팔년도」(55년)에 군에 들어갔으니 서른한살 때의 일로 어지간히 늦게 입대한 셈이다.
1970년 신동아 1월호 '오늘을 사는 한국의 서민 - 자전거포 주인 황치복씨' 기사 中
부대 내에서의 말이었지만 「쌍팔년도」(50년대)까지만 해도 군대는 배고프고 춥고 잡일로 고달팠지요.
1976년 1월 30일 경향신문, 군 복무에 관한 기획인 '육해공 국군과의 대화' 중에서. #
신동아 기사를 보면 쌍팔년도가 1955년을 가리킨다고 나와 있다. 서기 1955년은 단기 4288년인데, 1948년 제헌 국회에서 '연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 대한민국의 공식 연호로 단기를 채택하였기 때문에 당시는 일반인들도 단기를 사용하는 것이 더 익숙하던 시절이다.[3]

이 단어를 처음 쓰기 시작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당연히 1955년 이전에는 쓰이지 않았을 것이고 1962년부터는 서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므로 그 사이에 만들어졌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으며, 1960년대 들어서서부터 많이 쓰기 시작해 1970년대에 가장 많이 쓰였다. 이 시절은 전쟁 직후 거의 모든 생산 시설과 자원이 파괴되고,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서 손꼽는 가난한 나라이던 시절이다.[4]

특히 그 당시 한국군 군대는 장군과 장교들이 군량과 군수물자를 빼돌려 팔아먹어 수만 명의 젊은 병사가 전쟁터에 나가보지도 못한 채, 부정부패 때문에 굶어죽는 국민방위군 사건 같은 일도 발생했으며, 병영 내 폭력과 가혹행위가 일상적인 등 부정부패와 부조리가 만연해서 모든 것이 엉망인 상황이었다.[5][6] 그래서 나온 말이 요즘 말로 당나라 군대를 의미하는 "쌍팔년도 군대"라는 말이 유행했고 이것이 사회에서도 1960~70년대에도 널리 쓰였다.

3. 의미 변화

이후 세월이 흐르고 서기 1988년도 꽤 시간이 흘러간 옛날이 됨에 따라 주로 1980년대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88년이 기준이 된 것은 역시 1988 서울 올림픽의 영향이 매우 컸는데, 6.25 전쟁이 끝난 지 불과 30여년밖에 안 된 나라가 당당히 올림픽을 개최하고[7], 이를 큰 문제 없이 진행하며 한국이 더 이상 6.25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빈곤국이 아닌 중진국이[8] 되었다는 걸 전 세계에 과시하는 데 성공하여 시대의 분기점으로서 충분한 의의가 있다.

현대에는 1988 서울 올림픽을 개최한 지도 어느덧 30여년이 넘게 흐르고 단기는 사회 어디서든 실생활에서는 전혀 쓰이지 않다 보니,[9] 198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젊은 세대 등은 쌍팔년도를 자신들이 아직 어려서 기억이 없거나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던 과거인 1980년대로 인식하고 사용하게 되고, 1960년대 이후에 태어난 386세대 X세대 역시 어릴 때 들었을까 말까 한 유래는 잊은 채 1980년대로 인식하게 되었다.[10] 쌍팔년도가 1955년임을 어릴 때부터 들어서 알고 있던 현재의 40~70대 초반역시도 50년대, 태어나기 전인 1955년보다는 한창 젊은 시절인 80년대를 더 추억하기 마련이니, 결국 노년층을 제외한 모든 세대에서 쌍팔년도는 명백히 1988년도로 받아들여지고 실제로 그렇게 쓰이고 있는 상황이다. 70대 중반부터는 1955년을 생각할 수 있고, 1988년도 다소 나이가 있는 중년층은 가야 생각할 수 있으니 1955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특히 쌍팔년도가 은어이니만큼, 공식적인 문서가 아니라 구전으로만 전달되다 보니 단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1988년보다 과거에도 쌍팔년도라는 말을 썼다는 것을 모르는 이후 세대의 경우 누가 고쳐주지 않는 이상 8이 두 개 들어간 1988년을 쌍팔년도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11] 물론 그에 따라 어감 역시 "어려웠던 과거"에서 "자신들이 없던 옛날" 또는 "경제 호황이었던 과거", " 쌍팔년도 올림픽 시절" 등으로 변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군부독재가 종식된 것은 1987년이기 때문에 엄혹한 시절을 특정하기 위한 연도로서 1988년은 부적절하다. 실제로 1988년은 희망과 민주시대의 기대, 올림픽 열기에 가득찬 분위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악폐습이 하루아침에 없어진것은 아니라서 장시간 야근과 체벌, 금권, 관권선거는 여전히 벌어졌었기는 했다.

심지어 북한, 대만의 88년(1999년)과 대한민국 연호의 88년(2006년)도 시간이 흐르면서 옛날이 되었기 때문에 쌍팔년도라 쓰는 경우도 있으나 드문 편이다.

거기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유명해지면서 이 드라마를 가리키는 은어로도 쓰이게 되었다.

4. 현대의 용법

1950년대를 뜻하는 쌍팔년도는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이란 의미를 가졌다면 1980년대를 뜻하는 쌍팔년도는 민주화 이전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고 비합리적이던 시절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어느쪽도 긍정적인 이미지는 아니지만 내포하는 의미가 바뀐 셈이다. 물론 1988년의 경우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이기는 하며, 독재 시절의 악폐습을 청산하려는 움직임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일기시작했다. 물론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것과 일선현장에서의 악폐습이 청산되는것은 별개의 일인지라, 이후로도 오랜기간 동안 야근과 체벌, 촌지같은 악폐습은 여전히 현장에서 성행하기는 했다.

즉 개인의 자유가 소홀히 여겨지고 구시대적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수식어로도 쓰인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나라 국민이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게 된 것은 1989년이다. 그 이전까지는 일반 국민은 해외를 나갈 수가 없었다. 1876년에는 개항, 구한말에는 외세의 이권 침탈에 시달리고, 1910년~ 1945년까지는 일제강점기, 1945년~ 1950년은 해방 후 혼란기, 1950년~ 1953년까지는 6.25 전쟁, 1953년~ 1961년까지는 찢어지게 가난할 뿐더러 반공 분위기 등 사회가 개방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러한 사회상에서 파생된 '쌍팔년대/쌍팔년도 사람'이라는 의미는 비유적으로 외고집이나 꼰대와 같은 의미로 쓰기도 한다. (예) 우리 부장님은 쌍팔년대 사람이다.[12]

특히 어지간한 꼰대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구시대적인 악습이 보이면 그나마 생각있는 꼰대들은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저게 뭐냐는식의 반응을 보이곤 한다. 1988년에 민주화가 되긴 하였으나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문제점이 적지 않았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90년대 항목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래도 어감이 어감이다보니 특히 197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쌍팔년도라고 하면 1988년과 그 이전을 의미하는걸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1980년대 이전 출생자들이 어떤 악습에 대해 쌍팔년도에나 통하던 것이라고 하면 특히 1990년대나 그 이후 출생자들은 의외로 가까운 과거까지만해도 한국이 그런 사회였냐면서 경악하기도 한다. 사실 개인의 자유가 인정받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사실 1990년대 영상자료만 봐도 21세기 기준으로는 경악할 만한 물건이 많다.

5. 해외에서



[1] 2024년 기준으로 전자는 69년 전, 후자는 36년 전이니 매우 오래전인 것은 둘 다 변함 없다. 물론 그 둘끼리도 33년이나 차이 나서 큰 차이는 난다. [2] 예) '쌍팔년도에나 있을 법한 일',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쌍팔년도 스타일이다', '지금이 쌍팔년도인 줄 아냐?' [3] 단기는 1961년까지 공식적으로 사용되다가 5.16 군사정변으로 박정희가 대한민국의 실권을 장악한 뒤 주도한 여러 제도적 변화로 1962년 1월 1일부터 서기가 사용되고 있다. 다만 민간에서는 80년대까지도 꽤 흔하게 쓰였다. [4] 당시 북한은 석탄과 수력 (=전력)자원이 풍부한 데다가 전후 복구 성공으로 남한보다 훨씬 사정이 나아서 1960년대 후반까지 남한보다 잘 살았다. [5] 다만 이 당시 기준으로 하자면 군대가 상대적으로 선진적이었다. 일단 전쟁이 끝난 후에 비록 부실하지만 삼시세끼 밥을 제공해주고, 병사들을 상대로 글자와 숫자 읽고 쓰는 법, 농기계 운용 및 수리같은 여러가지 쓸만한 기술들을 가르쳤기 때문으로, 일단 당시에는 훨씬 선진적이었던 미군의 지원을 받았던 만큼 이들의 체계를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군대에 가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군대에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이 동시에 유행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또한 평균 자녀수는 여섯을 넘을 정도로 많은데 전후복구는 제대로 되지 않아 실업자들이 많아서, 하급 장교들도 대우가 열악한 경우가 태반이었음에도, 제대하면 취직이 잘 안되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군대에 남아있으려고 했던 경우가 많았다. [6] 문제는 사회 악습은 2020년대에도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으며, 입영 의무가 없는 여성들이 많은 직역에서도 똥군기가 만연하다. [7] 즉 1988년 당시에 청년인 35~38세들만 해도 전쟁 시기에 태어났고 39세는 아예 전쟁 이전에 태어났다. 중년기에 접어드는 40세부터는 정부 수립 이전에 태어난 셈. [8] 물론 선진국까지는 아니었다지만 그래도 잘 사는 편인 중진국 내지는 신흥강국 정도였다. GDP 순위도 세계 19위에 1인당 GDP도 세계 평균의 1.25배 가량으로써 오늘날로 치면 튀르키예와 비슷한 포지션이었다. [9] 광복 직후에는 대한민국을 연호로 쓰다가 1948년 9월 25일에 대한민국 법률 제4호 ‘연호에 관한 법률’에서 "대한민국의 공용 연호는 단군기원으로 한다"고 하여 단기가 공식적으로 쓰였다. 그러나 박정희 5.16 군사정변을 일으킨 해인 1961년 12월 2일에 폐지 법령이 선포되어 서력기원을 공용 연호로 쓰게 되었고, 1962년 1월 1일부터는 단기의 공식적인 사용이 중단되었다. 기껏해야 종이 신문이나 일부 달력에서 쓰는 걸 볼 수 있다. [10] 2020년 들어 대한민국 인구 중 약 4분의 1은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용법의 변화는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11] 단기의 존재를 알아도, 중고등 교과서에서 갑오개혁 때 양력을 도입했다는 사실만 가르쳐 주므로 교과서 외에 공부를 하지 않거나 별도로 관심을 갖지 않으면 교과서에도 안 나오는 일인 '박정희 대통령 전까지 단기를 썼다'는 사실을 몰라 추론을 못 하는 게 당연하다. [12] 일본과 중국에도 비슷한 용법이 있다. 일본의 경우 현재는 헤이세이 시대마저 끝나고 레이와 시대가 되었는데 쇼와 시대가 무려 64년으로 워낙 오래되었다보니 지나간 시절의 대명사처럼 쓰여서 우리나라의 '쌍팔년도 사람'과 같은 사람을 '쇼와 태생/쇼와 사람'이라고 부르며 중국에서는 이런 사람을 ' 청나라 사람'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마지막 쇼와 태생은 1989년생이라 자주 볼 수 있는데 반해 마지막 청나라 태생은 1911년생이라 만약 생존한 사람은 110살이 넘어간다. [13] 실제로 일본의 연간 노동시간이 1980년대 기준으로 2200시간을 넘었고, 학교체벌 역시 1990년대 무렵까지는 흔하게 이루어졌다. 이 당시의 일본 교육상황을 비판하는 용어가 바로 관리교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