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 |
작가 | 박시백 |
장르 | 역사 |
출판사 | 휴머니스트 |
출판 년도 | 2003년 7월 15일 ~ 2013년 7월 22일 |
단행본 권수 | 20권 (2013. 07. 22. 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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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새롭게 조명한 박시백의 역사 학습만화. 휴머니스트에서 출판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을 그대로 만화로 그려내어 많은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판매부수는 300만부를 돌파했다.2. 작품 전반의 특징
2.1. 실록을 중심으로 한 내용 전개
조선왕조실록을 원전으로 하고 있다. 권당 200 페이지를 조금 넘는 분량에 주제별로 5장을 분류, 각 장에 보통 4~5개의 챕터를 전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27명의 조선국왕 중 재위가 긴 왕들을 중심으로 하여 구성 방식을 취했다.[1]전반적으로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을 중심으로 주요 사건과 해당 사건에 관련된 핵심 인물들의 생각과 처신을 살펴보면서 조선 시대의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각 권마다 다양한 관련 도서를 참고하고 최근 역사학계의 성과를 반영해 대체로 객관적인 범주에서 조선의 역사를 서술했다. 사실 작가의 주관이 적지 않게 반영되어 있으나, 기존의 정설로 인식되는 설을 일일이 언급 해주며 작가의 해석 또한 객관적이라 생각될만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기존에 널리 퍼져 있지만 실록과 교차대조한 결과 근거가 적은 것으로 판명된 야사를 알려주는 것이 자주 나온다. 제목이 조선왕조실록이듯 실록의 정사 기록을 기본으로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 알려진 야사의 내용과는 다른 실록의 내용들이 나오고는 한다. 제목만으로 볼 때는 실록의 내용을 그림으로 옮겨 그리는 듯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록을 그대로 옮기기만 한 것은 아니고, 가끔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해석들을 덧붙이고 있다.[2] 또한 연표를 수록하여 본문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과 연관시켜 읽어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박시백은 이 만화를 그리면서 실록의 내용을 가장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록에 모든게 있다는 식의 글귀를 썼을 정도로 선조 편의 임진왜란 부분을 제외하면 실록에만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3] 실제로 정조편 후기에 의하면 심환지 어찰을 포함시킬까 했다가 실록에 없어서 배제했다고 할 정도. 이 덕분에 연려실기술을 비롯해서 야사나 뜬소문에 의존하여 쏟아져 나온 여러 학습만화들과는 차원이 다른 고증과 분석의 질을 보여주었지만 역으로 실록이 부실해지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다른 주요 문헌들을 빼고 실록만을 보았기 때문에 내용이 부실해지는 부작용이 있었다. 초기에는 막 역사만화를 그리게 되었다 보니까 이이화 등의 학자들 평가를 그대로 옮겨서 xx선생은 이렇게 주장한다더라~ 라는 식의 전개도 했지만, 뒤로 갈수록 본인도 계속 실록을 읽어서 전개 파악이 되기도 하고 자신감도 붙어서인지 학자들의 해석을 참고하는 비중이 크게 줄고 주로 개인적 분석으로 대체되었는데,[4] 이 부분 역시 작가의 주관과 정치성향 개입으로 이상해진 부분이 있다.
또 실록에 등장하는 당대의 단어들을 그대로 썼다는 점.[5] 대사도 당시의 발언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6] 이 때문에 만화의 재미를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미 시중에 이러한 만화들이 많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역사의 현실성을 최대한 살렸다고도 볼 수 있다. 책에 등장하는 단어나 대사들도 알고보면 읽기 쉽게 옮겨 적은 것이다.[7]
20권이라는 분량만큼 각 왕들로 나뉘어진 실록에 기록된 시대를 비교적 자세히 다룬다는 것과 시간 순서대로 작품을 만들고 서술을 하는 것도 장점.
특히 주목할 만한건 엄청난 양의 대사들을 전부 손으로 썼다는 것. 조광조의 정치개혁이나 이이의 경장에 나온 어마어마한 양의 대사들도 다 손으로 썼고, 그 정점은 13권 효종실록, 현종실록의 그 유명한 예송논쟁 부분에서 볼 수 있었다. 초창기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권수가 늘어나면서 실록 속의 발언을 그대로 옮기는 경우가 많아졌다.[8] 이 점은 작가 본인도 인정했다.[9]
각 책의 후기에는 본편에는 빠진 색다른 야사, 논평, 사실 등이 담겨 있다. 여기에서는 개인적 감상에서부터[10] 작가가 본편에 넣을까 고민하다가 근거가 부족하다고 여겨서 넣지 않은 견해, 이전에 나온 단행본 수정에 대한 변(선조실록에 실린 변중량 묘사 변경에 대한 해명), 그리고 만화를 그리던 시점에 대한 시사적 감상(특히 인조실록) 등이 있다.
2.2. 인물 선정과 평가
아무리 유명한 인물이라도 실록에 등장하지 않으면 찬밥 신세다. (사실 실록에 등장하지 않으면 아예 나오질 않아야 맞겠지만.) 장금이는 중종이 죽기 전에 몇번 나온게 다고, 황진이는 아예 안나온다. 정조실록에서는 정약용도 실록에 없어 딱 두 컷 나오고[11] 정조시대의 주요 인물로 자주 언급되는 박지원과 김홍도도 실록에 나오지 않아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도 후기에서 언급됐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 대신 왕에 대한 해석과 평은 반드시 넣어서 이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종이나 문종부터 중종과 명종, 순조나 헌종, 철종 등의 평가가 많이 나왔다.조선 시대의 여성 정치가들, 특히 수렴청정기의 대비들에 대한 평가가 관대한 편이다. 만악의 근원이라 낙인 찍힌 문정왕후나 정순왕후를 정치가로 재평가한 것이 특이한 편.[12] 안동 김씨 세도 정치 문을 연 순원왕후도 중립적으로 판단, 나름 최선은 다했지만 한계가 많았던 편이라 평한다. 고종을 수렴청정한 신정왕후 조씨는 대원군의 개혁 파트너로 높이 평가한다. 그 외 정희왕후도 실록에서의 기록만큼 높은 평가를 내렸다.
다만 명성황후만큼은 그리 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작중 본문에서 대부분의 왕비들은 정식 시호대로 표기하는데 그녀의 경우 '명성황후'라는 표현은 19권 본문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고 등장인물 소개에서는 고종 비 민씨라고[13] 쓰고 있다.[14] 20권에서는 명성황후가 외교적 수완과 정치감각이 있었다는 호평과 민씨일가 세도정치를 부활시키고, 구태악습을 따랐다는 비판을 함께 싣는다.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진 않아도 아주 나쁜 건 아니다. 이는 사실 고종도 마찬가지로, 비판점을 빼놓지 않지만 동시에 나름대로 자질이 있었다는 점과 어느 정도는 동정적인 시각을 보인다.
2.3. 패러디
읽다 보면 간간히 패러디도 볼 수 있다. 개국 편에서는 공양왕이 이성계 세력에 저항하였단 언급이 나오면서 '적어도 1980년의 최 아무개와는 달랐다'라고 한다. 태조실록에서는 정도전과 조깅하는 아저씨와 비교했는데 정도전은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IMF 불렀다며 깠고 김 대통령은 운동 안해서 살찐 정도전을 깠다. 선조실록에서는 진주성 전투에서 마리오가 일본병 찬조출연하고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일군이 짱구의 엉덩이춤을 춘다.2차 왕자의 난에서는 회안대군 방간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를 패러디하는 대사가 있다.
광해군 편에서는 맹꽁이 서당의 훈장님과 제자들이 출연하기도 했으며, 개그 콘서트의 유행어나 캐릭터도 간간히 보이기도 한다. 일례로 인조실록의 마지막 장에서 어울리지 않는 어질 인을 붙인 장면에서 패러디한 장면이 있다. 그 외 숙종실록에서는 공포의 외인구단의 명대사가 패러디되기도 하고,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제목(오늘도 무사히, 별일없이 산다~)도 등장한다.
인조실록에서는 이괄이 반란을 결심하면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명대사 주사위는 던져졌다를 패러디한다.[16]
영조실록에서는 BIGBANG의 태양과 타이거 JK가 출연하였으며 영조가 유인촌의 명대사를 사용한다. 정조실록에서는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와 미친 존재감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거기에 선조가 피난을 가려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넌 뒤에 "배를 만들 나무가 없도록 주변 모든 민가를 철거하고, 나무를 몽땅 못 쓰게 해라"는 대목에서 1950년의 모 아무개와 닮았다는 풍자를 하기도 했다.
2.4. 그림체와 고증
자세한 실록의 내용이나 새로운 해석 이외에도 생동감있는 그림체로 조선시대 인물들의 성격이나 이미지에 비교적 맞게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초상화가 남아있는 경우 최대한 참고해가며 그리고 있다. 어진이 남아 있는 태조와 영조, 철종의 모습은 어진을 참고해서인지 어진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한가지 재밌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초반기에 아직 얼굴이 정해지지 않은 왕들을 그려야 할 경우에는 등을 돌리거나 뒤돌아선 모습만 그린다는 것이다. 예컨대 세종 편에 등장한 성종이나 성종 편에 등장한 중종.[17] 예외가 있다면 2권에 등장한 흥선 대원군은 사진 자료가 남아있기 때문에 정면으로 등장해서 얼굴을 묘사했다. 하지만 정작 19권에 묘사된 대원군과 비교해서는 좀 다른데, 그림체 변화 등이 원인으로 보인다. 초상화가 남아 있는 경우에는 상관 없지만 초상화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묘사할지 상당히 고생했다고 하는데, 정치인의 얼굴이나 기존에 드라마나 영화에서 등장한 배우의 얼굴을 따오기도 했지만, 동네 학원 강사 얼굴을 참조하기도 했다고.단 세조는 초상화가 남아 있고 아버지와 형 못지 않게 파워풀한 수염의 소유자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책에서는 세조의 수염을 그다지 강조해서 그리지는 않았고 남아 있는 초상화와는 딴판으로 묘사되었다. 남아 있는 세조의 초상화가 호탕하거나 위엄 있는 인상을 준다면 작중에서 묘사된 세조는 상대적으로 간사함을 강조해서 묘사한 느낌?[18] 그리고 2016년 11월에 세조 어진 초본이 발견되었는데 광대뼈가 나온 작중의 세조와도 딴판으로 얼굴이 둥글넓적하고 후덕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다만 이 초본은 본작이 완결되고 3년 후에 발견된 것이고, 기존에도 언론을 통해 보도된 아주 간략한 자료 정도는 있었지만, 단종, 세조 실록편의 논조라던가 평소 박시백의 박정희 캐리커처를 감안하면 그냥 계유정난을 조선판 5.16, 12.12로 해석하고 박정희의 얼굴을 따왔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수염이 별로 없는거야 그렇다 쳐도 세조의 얼굴에 유난히 광대뼈가 튀어나온 것으로 묘사된 것에서 확실하다.
또 영조와 사도세자, 세손 시절의 정조, 순조의 얼굴들이 비슷한 듯 하면서도 모두 다른게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또한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부터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경우 서서히 나이가 드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재위 기간이 길었던 세종이나 선조, 숙종, 영조 등이 있다. 인조의 경우 제위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았지만 그 동안 겪은 풍파를 표현한 것인지, 젊은 시절인 인조반정 당시에는 후덕하게 그려지지만 말기에 가서는 광대가 도드라지고 턱이 각지게 묘사되는게 포인트.
이건 왕 뿐만 아니라 당시 신료들도 마찬가지라서 초상화가 남아 있는 황희나 이색, 조반, 신숙주, 휴정, 이항복, 이덕형, 이원익, 김육, 김석주, 송시열 등은 진짜 초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느낌을 줄 정도다. 이들 중 가장 압권은 선조실록에 나오는 휴정과 효종, 현종실록에 등장하는 김육 그리고 숙종실록에 등장하는 김석주. 특히 김석주는 상당히 권신 포스를 주는 특이한 캐릭터 디자인으로 등장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그려진 영정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정조 시기의 재상 채제공이 사시로 묘사된 것 역시 작가의 개인 설정이 아니라 채제공 본인이 영정에 사시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숙종 편의 후기에서 밝히기를 이처럼 초상화가 남아 있는 인물들은 초상화를 최대한 참고하되 박시백이 그 인물에 대해 받은 느낌을 살짝 더해서 디자인한다고 한다.
사진과 초상화가 모두 남아 있는 흥선대원군이나 고종의 경우 초상화와 사진을 적절히 조합해서 그려졌다. 특히 흥선대원군은 초반 섭정기에는 비교적 초상화에 더 가까운 외향이며 나이가 들수록 사진의 모습과 비슷해진다. 뒤에서 보듯 초기엔 정치인의 얼굴을 참고하기도 하였다. 그 외 김자점 같은 경우는 1980년대 초반에 방영한 사극 대명에서 김자점을 연기한 배우 김순철(1937~2004)의 얼굴을 따서 그린 것이다.
또 흥미로운 점은 왕들의 용포가 다양한 색깔로 나온다는 것. 선조나 인조, 숙종, 영조, 순조 등의 왕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이후부터 검은색 용포만 입고 효종은 남색 비스무리한 용포를 입기도 했다. 효종은 다소 특이한 편. 처음엔 빨간색 용포였다가 나중엔 남색으로 바뀐다.
또 세자, 세손, 세제들은 하늘색 용포만 입고 나온다. 이것도 사실 고증과는 다른 것. 세자는 초기에는 왕처럼 빨간색 용포를, 후기부터는 아청색 또는 검은색 용포를 입었으나 왕과 세자를 헷갈릴 수 있는 독자들 때문에 이리 설정한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가자. 개정판에서는 시기에 따라 각각 빨간색, 남색으로 수정되어 있다.
아쉬운 점은 왕비의 최고 예복인 적의의 조선 후기 양식을 조선 초기에 적용했다는 점. 태종실록 원경왕후 편을 보면 알 수 있다. 조선 초기 때는 '대삼(大衫)'이라 하여, 명나라 복식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그 특징 중 하나가 머리에 칠적관이라 하여 화려한 보석들로 장식된 관을 씌웠다. 이후, 인조 대에 와서 한복의 국속화로 '적의'로 바뀌면서 칠적관과는 다른, 검은색 양식의 '대수'를 씌우게 된 것이다.
청나라, 명나라의 궁중 복식 및 갑옷 고증은 거의 완벽하다. 다만 명나라 초기 홍무제가 입고 있는 곤룡포는 금색 곤룡포가 아니라 하늘색이다.
5권 단종, 세조실록에선 흉배 관련 고증을, 6권 예종, 성종실록에서는 신하들의 사모 뿔 관련 지식을 간단한 그림과 글로 설명해준다. 단종 때 지금의 흉배가 생겼고, 성종 초기에 사모가 바뀌었다. 성종의 친정 때부터 적용. 환도 관련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있는데 띠돈으로 패용하긴 했는데 칼자루가 앞으로 오게 차고 있다는 것. 10권 선조실록에서부터 칼자루가 뒤로 가는 방식이 등장한다. 사실 '아쉬운'거지 고증 오류라고 할수도 없는게 어차피 조선시대 환도는 단지 띠돈을 이용해 차고 다닌다는 게 공통점일 뿐, 칼자루가 앞으로 오게 차던 뒤로 오게 차던 등에 지고 매던 착용자 마음대로였다. 단지 활을 패용해야 하기 때문에 칼자루가 뒤로 가는 방식을 가장 많이 사용했을 뿐이다.
청나라 변발 고증도 옥의 티가 있는데 대다수 매체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인 청나라 말기 변발을 청 개국 초기 변발과 혼동한 것이다. 청 초기 변발은 그야말로 싹다 밀고 땋아놓은 머리만 남기는 건데 청 후기 변발은 상당량의 머리카락을 뒤통수 부분에 남겨둔다. 박시백은 실수로 누르하치, 홍타이지 이하 청나라 사람들에게 청나라 후기 변발을 그려줬는데 만약 실제로 당시에 누가 그따위 변발을 했으면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그래도 기타 매체에서 거의 역사 왜곡급으로 묘사되는 명/청의 복식과 비교해보면 이 작품은 매우 양호하다.
그 밖에 숙종실록에서 무품인 왕자군 숭선군(인조의 서자)이 종4품 숙원인 장희빈에게 ' 마마'라고 부르는 것이 있으며 광해군 일기의 서궁에 유폐된 인목왕후가 적의를 입고 있는 부분[21] 등 사소한 고증 오류가 드물게 있다.
주목할 점이 워낙에 실록에 집중하여 그리기 때문에 특정 사건을 묘사할 때 당시 왕과 대신들의 나이를 고려하여 그리며 예컨대 상중이면 상복을 입은 상태를 묘사하는 등 일부 역사 학습만화에서 무시해버리는 나이와 상황 고증을 아주 잘 살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습만화의 레전드라 불리는 먼나라 이웃나라만 해도 아시카가 요시미츠를 일본 국왕에 책봉하는 건문제를 마치 수염을 허옇게 기른 80살은 넘은 노인처럼 그려놨는데 그때 건문제는 24살이었다. 또 다른 예로 윤승운의 맹꽁이 서당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임오군란 시기의 위안스카이를 노회한 중늙은이로 그려났지만, 이때의 원세개는 겨우 23세의 어린 청년이었다. 한권으로 보는 00시리즈는 인조반정 파트에서 49세의 광해군은 미중년으로 묘사하면서 40세인 인목대비는 호호할머니로 그리는 등 나이 고증 같은 건 개판이었다. 조선왕조 500년에선 인목대비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정조 편에선 정조의 죽음을 묘사하는 마지막 장면을 독살설을 반박하기 위해서인지 두어장에 걸쳐 더 자세하게 묘사했고 송시열이 대동법이 소극적이었다고 서술한 것에 대해 비판이 일자 팟캐스트에서 차차 그것을 수정할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비판이 들어오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병신으로 매도하는 여러 유사사학자들과 질적으로 다른 모습이다.
그외에 뒤로 갈수록 그림체가 초반에 비해 정교해지다가 14, 15권을 기점으로 차차 굵어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에 박시백은 시력이 나빠져서 그림체 자체가 매우 굵어졌다고 고백했다.
2.4.1. 수정된 디자인
- 개국편, 태조/정종실록에 나오는 변중량이 사시의 기회주의자로 묘사되었다가 해당 묘사가 비판을 받자 정상적인 모습으로 수정된 것은 대표적인 수정사례이다.
- 태조/정종편에서 가끔 태조의 콧수염이 누락되는 일이 있었는데 다는 아니지만 다수 추가되었다.
- 태조/정종편에 한컷 나온 대원군은 19권 디자인으로 수정되었다. 세종편에 뒷모습으로 등장했던 성종도 6권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정면을 보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 중종의 경우에는 작가가 뒤늦게 확인한 선조실록의 묘사와 박시백의 기존 묘사가 비슷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유지되었으나, 다만 눈썹 사이의 사마귀를 추가하는 정도로만 디자인을 수정했다.
- 숙종 편에 한컷 등장한 노론 강경파 정호는 경종/영조 편에서 긴 수염을 기른 인물로 묘사되는데, 과거에는 숙종 편에서도 똑같은 모습으로 나왔으나 2015년 개정판에서는 정호가 젊은 시절이라는 것을 묘사하려는 것인지 수염을 짧게 만들었다.
- 경종 같은 경우는 경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 세자 때부터 몸이 비대했다는 기록이 존재하지만, 박시백이 이 부분을 늦게 확인한 탓에 역대 임금들의 묘사 중에선 가장 고증에서 어긋나는 허약하고 마른 이미지로 묘사되었다. 나중에 박시백은 2015년 개정판 서문에서 '경종실록에 '체부의 외형은 왕성'하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살피지 못하고 지나치게 야위고 허약한 모습으로 표현했다'라고 아쉬움을 표하면서 디자인을 갈아엎진 않고 개정판 이전에 두드러진 다크서클과 움푹 들어간 볼 등을 수정했다.
- 경종/영조실록에서 경종대 4번째 페이지의 윤지술의 치렁치렁한 흰 수염이 몇쇄 후 사라졌다. 나이 계산에 실패한 듯. 윤지술(尹志述,1697~1721)은 당시 성균관 장의[22]로서 숙종의 지문에 장희빈의 죄를 기록해야 한다고 상소했던 인물이며, 나아가 유생들을 선동해 권당(捲堂: 동맹휴학)까지 일으켰다. 경종 즉위 연간에는 20대의 나이였으므로 흰 수염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담으로 윤지술은 김일경 등 소론 준론에 의해 탄핵당해 사형당했다가 영조 즉위 후 신원되었다. 그런데 이만배 연재 버전은 표지와 머릿말은 다 개정판이나 정작 본문은 개정판 이전 파일을 가져온 것인지 윤지술의 수염이 그대로 있다.
- 경종/영조편에 나오는 어른 정조는 원래 수염이 없었으나 개정판에서 수염이 생겼다.
- 20권에 등장하는 홍종우의 경우, 처음에는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단발머리 양복 차림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홍종우가 프랑스에서도 항상 한복 차림을 고수했고, 김옥균을 사살할 때도 한복으로 갈아입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이 점을 지적받자, 개정판에서는 한복차림으로 그러졌으나, 단발머리에 덩그러니 두루마기만 입고 있다. 이때는 아직 단발령 이전이고, 철저한 근왕주의자이자 보수파였던 홍종우가 머리를 잘랐을리가 없다. 또한 프랑스 유학 시절에 찍은 사진이나 김옥균 살해를 묘사한 그림에서 보듯, 홍종우는 갓과 도포에 전복까지 덧입어 완벽한 사대부의 복식을 갖추고 다녔다.
- 세자의 복식에 대해서 세종 시절까지만 해도 세자들이 익선관을 쓰지 않았다는 기록을 확인한 후에 2015년 개정판으로 기점으로 세자의 익선관을 사모로 교체하였고, 색깔도 검은청색 디자인으로 통일했다.
2.5. 이덕일 주장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참고로 1-18권 뒤편에 이덕일의 추천평이 있다. 평을 보면 적어도 이덕일이 본서를 상당히 좋게 보았던건 사실로 보인다. 사실 작 초-중반부 부분은 이덕일 자신의 주장이랑 비슷한 부분도 있기도 했다. 부민고소금지법을 예로 들며 세종시대를 '사대부만의 태평성대'라고 규정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무엇보다 초창기 참고문헌에서는 '사화로 보는 조선의 역사'를 포함한 이덕일의 책들이 포함되어 있다.[23]그러나 작품 후반부에서는 이덕일의 주장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많다.
먼저 경종-영조실록의 경우 사도세자 관련 부분에서 사도세자를 영조가 죽인 부분을 비중있게 다루면서 당쟁설을 노골적으로 까는데 당쟁설은 이덕일의 대표적인 주장이다. 참고로 박시백은 영조 편에서 사도세자 문제를 분석하면서 당쟁설에서 핵심적인 부분들을 일일이 까는 모습을 보여주며, 당쟁설을 아주 제대로 부정했다. 이후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대놓고 당쟁설을 부정했다.
정조실록의 경우 먼저 정조는 개혁군주였으며 노론 벽파와 갈등을 일으키다가 독살됐다는 이덕일이 전파한 대중적 인식을 먼드라마 본 사람들은 이런 생각 한다더라 하고 언급은 한다. 하지만 바로 그 후에 박시백은 정조편에서 먼저 개혁군주 여부에 대해 능력은 뛰어났지만 보수적인 면이 있고 과거지향주의적, 이상주의적 성향이 강했고, 더 나아가 사도세자 신원에 자신의 정치철학도 버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독살설에 대해서는 영조실록 같은 정면 반박은 아니지만 정조가 죽어가는 과정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이 정조가 자연사했다고 믿게끔 한다. 참고로 박시백은 자신의 만화에서 사람이 죽는 장면은 간략하게 묘사한다. 심지어 각 권의 주인공들인 왕도 예외는 아니라 보통은 1쪽, 많아도 4쪽에, 심하면 1~3컷 정도로 묘사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 정조를 제외하고 좀 상세하게 죽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경우는 인종과 선조인데, 인종은 재위기간이 짧아 죽어가는 과정 말고는 그릴 게 없고(...), 선조는 그가 죽어가는 과정에서 영창대군을 옹립하려는 류영경과 이걸 막고, 생존해보려는 광해군의 노력까지 겹쳐서 상세히 묘사할 수밖에 없는 경우였다. 그런데 정조는 죽어가는 과정에서 딱히 정쟁이 있던 것도 아니고, 재위기간도 짧은 게 아닌데 상세하게 묘사됐다. 특히나 4쇄 이후로는 정조가 죽은 날을 자세히 묘사한 부분을 2장이나 추가했다.
거기에 더해 순조 편에서는 벽파를 무조건적으로 까던 이덕일과 달리 벽파가 있었기에 그동안 세도정치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서술하며 벽파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덕일이(사실 이건 이덕일 이전에도 있었지만) 조선을 멸망시킨 악녀로 매도한 정순왕후 김씨에 대해서도 굉장히 호의적으로 묘사하며, 오히려 나름대로 정조의 개혁을 계승하려고도 하며 조선의 병폐를 해결하려 했던 여걸이며, 명분을 쥐고 정국에 영향을 준 노련한 정치가라며 극찬하기까지 했다.
이쯤되면 이덕일이 추천평 쓴 책 맞나 싶을 정도. 특히 경종-영조 실록편에서는 이덕일 주장을 까는 수준을 넘어 아예 척을 지겠다고 선언하는 듯한 서술도 보일 정도로 독자들은 이덕일이 추천한 책에서 이덕일의 주장과 다른 주장을 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작 최후반부인 고종실록편과 망국편에선 이덕일의 추천사가 빠졌으며, 이후 쇄를 거듭하며 발행된 다른 권들과 2015년 개정판에서도 이덕일의 추천사가 실리지 않고 있다.
3. 평가
3.1. 호평
이 책을 적극 권장하고 싶다. 만화의 구성을 통해 조선시대 역사를 쉽게 전달하는 최고의 수작이다. 재미와 역사라는 두 마리 토끼를 확실히 잡고 있다.[24]
박화백을 ‘현대판 사관’으로 불러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역사학자 못지않게 많은 공부를 해가면서 집필한 것은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 #
― 신병주 (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박화백을 ‘현대판 사관’으로 불러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역사학자 못지않게 많은 공부를 해가면서 집필한 것은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 #
― 신병주 (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조선의 역사가 권력투쟁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역사, 함게 만들어가는 역사, 새로운 미래를 지향하는 역사임을 잘 보여 주고 있다.[25]
전체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정밀하게 밝히려 했고, 많은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다방면에서 공부한 점이 돋보인다. 특히 조선 개국을 서술한 1~3권과 정조의 탕평을 서술한 16권은 완벽에 가까운 수준을 보여준다. #
― 박광용 (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전체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정밀하게 밝히려 했고, 많은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다방면에서 공부한 점이 돋보인다. 특히 조선 개국을 서술한 1~3권과 정조의 탕평을 서술한 16권은 완벽에 가까운 수준을 보여준다. #
― 박광용 (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조선사 입문서로 훌륭한 작품이다. 사실 관계 오류와 여러 비판점들이 있긴 하지만 입문서 및 학습만화적인 측면에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지엽적인 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지만, 전체적인 큰 틀은 틀리지 않았다. 사실 국내의 학습만화 퀄리티를 생각하면 이정도면 준수하다. 덕분에 나무위키에서도 이 만화 관련 서술이 있고 조선시대 인물 관련 문서에도 이 책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서술들이 제법 있다.
3.1.1. 대중사회에 가져온 혁명에 가까운 '정사'적 해석
특히 이 작품이 대중사회에서 큰 호평을 받은 이유는, 이 책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조선왕조 실록의 실제적 내용들을 대중적인 도서로 편찬한 경우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학계와 대중 사회는 유리되어 있었으며, 조선왕조 실록이라는 1차 사료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또 모를까, 엄연히 멀쩡하게 존재함에도 대중 사회에선 정사가 아니라 야사만 확대 재생산해서 읊조리고 있었다는 것이다.또한, 한국 대중 도서출판계는 비전공자 문학인들로 꽉 차 있었으며, 이들은 역사 전공도 아니면서 '~(으)로 읽는 조선왕조 실록' 등 온갖 역사서 이름을 들먹이며 자신들이 역사서를 충실히 다룬다는 듯한 전문적 분위기를 어필하며 책을 발간했으나, 그 내용은 대부분 본인의 뇌피셜과 망상, 통속적 해석, 야담에 가까운 해석을 뒤섞어 독자들의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실제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함흥차사나, 양녕대군이 정신병에 걸린 척 하며 충녕에게 세자 자리를 양보했다는 얘기나, 장희빈의 입을 찢고 사약을 쏟아부었다는 얘기, 소현세자가 벼루에 맞아 죽었다는 얘기, 송시열과 이완이 진심으로 북벌을 준비했다는 얘기 등, 이러한 야담 야사의 이야기들이 대중사회에선 대부분 진실로 받아들여졌으며, '겨우' 만화에 불과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정사를 다룸으로서 이런 야사들을 대중사회에서 쓸어내 버렸다는 것은, 그간 한국 문화계에서 거장인 척하는 무수히 많은 인사들 중 단 한 명도 조선왕조실록을 해석해 대중 앞에서 다루는 노고를 감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학습 만화'가 '역사'라는 보수적이고도 범 대중사회적 흥미도가 높은 분야를 통째로 들었다 놓은 수준으로 바꿔놨다는 것에서 한국 대중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아마추어리즘과 얄팍한 상술들을 비판하는 여론 또한 존재한다.
물론, 박시백이 만평가 출신인 비전공자인지라, 작품 여기저기 지엽적인 문제들이 있고, 만평가답게 자신의 정치색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무리수를 둔 부분을 비판할 수 있을지언정, 그가 대중사회에 끼친 긍정적 파급력은 크게 평가해줘야 마땅한 부분이다. 실제, 해당 작품이 나온 후로 방송 문화계 인사들은 물론, 사극pd, 역사물 작가, 학교 교사들, 연예인, 심지어 역사물 관련 웹툰 작가들 대다수는 해당 작품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음을 다양한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26]
사실, 조선왕조실록이 cd로 완역된것도 한참 전의 일이라, 대중사회를 지배하던 것은 간간히 tv에서 틀어주던 사극들(당연히 정사와는 아득히 먼)이었고, 이런 야사류의 역사관이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2000년대 중반 그 이후부터, 갑자기 한국인들이 조선왕조실록 정사의 내용이 급 궁금해져 조선왕조실록을 완독했을리는 절대로 없기 때문에, 현대 한국사회에서 조선왕조실록 정사 내용을 다루는 대부분의 대중사회의 인물들은 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봤거나, 이것에서 파생된 정보들을 접하여 조선왕조 실록에 새삼 흥미를 느끼게 되었을 가능성이 지대하기에, 해당 '만화'가 한국 대중사회에 끼친 그 영향력의 정도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수준.
3.2. 비판
자세한 내용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비판 문서 참고하십시오.4. 작가 선정 최애/최악 캐릭터
완간 기념 출판사 후기 인터뷰에서 작가에 건네진 질문 중, 독자들의 주된 질문이기도 했던 다음 질문이 전해졌다. "가장 애착 가는 인물과 짜증났던 인물을 꼽자면?"[27]이에 대해 박시백은 애착 가는 인물은 정도전, 짜증났던 인물로는 어찌 보면 당연히 선조와 인조를 꼽으며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부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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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을 애착이 가는 인물로 꼽은 이유에 대해
"저는 위대한 정치가는 자신이 딛고 서 있는 그 시대의 현실에 기초해서 그 시대를 좀 더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자기 이상을 가지고, 그것을 현실과 결합해서 이뤄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경우 이성에 치우쳐 이루지 못하고 끝을 내거나, 또는 대부분 현실 자체에 매몰되면서 자신의 안위만 도모하다 끝내는 경우가 태반이죠. 그런데 정도전의 경우 40세라는 늦은 나이였는데도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 이상을 놓지 않은 채 현실에 접목시켜 실행해 나갔다는 점이 굉장히 멋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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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인조를 가장 짜증나는 인물로 꼽은 이유에 대해
"그 사람들 입장에선 시대를 잘못 만난 것일 수도 있지만, 왜란과 호란이라는 국가적 대 위기를 겪었고, 그 이후까지도 왕 노릇을 이어갔지요. 일단 눈에 뻔히 보이는 외환에 대처하지 못한 것만으로도 속상한데 그 이후에 일을 수습하고 과거를 반성하는 데도 도무지 치밀함이 보이지 않아 실망스러웠습니다."
그 외 이 인터뷰에 의하면 세종과 이순신 외에 강한 인상을 받은 인물로는 이성계와 정도전, 중종 때의 정광필을 꼽았으며, 정광필에 대해서는 ' 평전 같은 걸 쓸 수 있다면 한 번 써 보고 싶다'고까지 언급했다.
한가지 의문이라면 정작 박시백의 만화에서는 세종은 그렇다 쳐도 광해군과 정조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박한 편이었다는 점이다. 광해군 일기에서 광해군을 '개혁군주라는 평은 받아도 실제론 거리가 있던 인물'이라며 제법 평가절하했고 서인 측의 폐모살제 주장도 여과없이 수용하고 있다.[29] 그리고 즉위 초기 모습만 유지했어도 '실패는 안 했을 것'이라면서 아예 실패한 왕이라고 단정을 짓는 등 광해군의 치적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30] 아마 박시백이 고평가한 부분은 중립외교와 북방의 방어 정책 및 노련한 정치, 세자 시절 이순신을 탄압하며 여러 뻘짓을 한 선조와 비교해 많은 실전 경험을 성공적으로 이끈 자질 등을 말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정조만 해도 '조선을 개혁해보려다가 벽파의 음모로 죽은 비운의 국왕'이라는 음모론과 거품이 너무 끼어있다고 세간의 평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남겼는데 그의 정치색을 생각해 본다면 해괴한 일이긴 하다.[31] 역시 정조도 그의 뛰어난 자질을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세종대왕은 뛰어난 자질 답게 나라를 잘 다스린 군주로 손꼽고 있고, 반면 정조와 광해군은 뛰어난 자질에 비해 당시 시대적, 정치적, 그리고 그 자신의 한계로 인해 그것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음을 아쉬워하고 있는 것이다.[32]
5. 책 전권의 목록과 부제
표지 인물에서 흥미로운 건 각 표지인물의 모습이나 행동이 그 당시 시대의 내용이나 캐릭터의 성향 혹은 본문의 핵심 내용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 표지인물들의 특징은 인물 부분에 적어놨으니 참고.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인물사전도 있으나 한정판에 한함.- 제목 - 부제/표지 인물/색깔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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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개국 -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태조(
이성계)/초판 보라. 2판 빨강.
용포를 입고 있는 왕의 모습이 아닌 부제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처럼 젊고 패기 있는 젊은 장수 시절의 모습으로 나온다. 첫판으로는 2003년 7월 15일 출간. 여기는 등짐을 진 정도전도 함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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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태조,
정종실록 -
정도전의 개혁과
왕자의 난/정도전/초판 빨강. 2판 청색.
거침없는 개혁주의 성향을 대변하듯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으로 등장. 첫판 2003년 10월 31일 출간. 첫판에서는 칼을 뽑고 있는 이방원을 중심으로 정도전과 태조를 함께 그렸다. 3개월 반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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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태종실록 - 왕권을 세우다 / 태종(이방원)[33]/초판 연보라, 2판 풀색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으로 부제의 의미를 반영하고 있다. 첫판 2004년 2월 28일 출간. 큰 덩치의 태종과 익선관을 벗고 고개를 돌리고 있는 쓸쓸한 태조가 함께 나온다. 4개월 소요. 후판에 효령대군의 머리가 깎인 상태가 사라졌다. 이는 출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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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세종,
문종실록 -
황금시대를 열다/세종/초판 옥색, 2판 보라색
먼치킨학자 군주답게 책을 들고 정좌자세로 앉아있다. 첫판 2004년 8월 2일 출간. 한글을 반포하는 세종과 청룡포를 입은 문종, 신료들이 나온다. 이 첫판 4권은 모두 각 장 사이사이마다 작은 만화와 조선시대 사회에 대한 "길라잡이"가 있었는데, 개정되면서 모두 사라졌다. 목차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5개월 소요. 여담으로 태종은 1, 2, 3, 4권까지 출연하는데 대부분의 왕들이 자기 재위중에만 주로 나왔지만 개국, 태조재위기, 정종재위기, 태종재위기, 세종재위기(초반)까지 모두 영향력을 끼친 태종은 무려 4권에 걸쳐 출연하게 된건데 그래서 등장인물소개에 태종이 "1권-조연, 2권-공동 주연[34], 3권-단독 주연, 4권-조연 어때, 화려하지?" 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다.
-
5권
단종,
세조실록 -
반역은
또
다른
반역을 낳고/세조/하늘색
자신의 집권 과정인 계유정난을 상징하듯이 장검을 들고 서 있다. 2005년 4월 1일 출간. 1~4권과 함께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8개월 소요. 이전보다 준비 시기가 길어진 것은 책 개정작업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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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
예종,
성종실록 -
대신권력에서
대간권력으로/성종/분홍색
성종도 책을 들고 있는데 이 책은 경국대전이다. 성종 때 조선의 제도가 완전히 정비되었다는 걸 상징하는 것. 또한 역시 세종이나 정조 못지 않게 책을 가까이 했던 왕이었다. 2005년 8월 1일 출간. 비슷한 시기 헌법재판소의 경국대전과 행정수도 이전( 세종시) 그리고 그 유명한 관습헌법에 대한 떡밥이 나온 것도 같은 이유. 4개월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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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연산군일기 - 절대권력을 향한 위험한 질주/연산군/연두색
부제목을 대변하듯 입이 벌어진 연산의 표정에서 광기똘기가 드러나 있다. 2005년 12월 12일 출간. 4개월 열하루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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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중종실록 -
조광조
죽고...개혁도 죽다/조광조→중종(2021년 개정판)→조광조(2024년 개정판)/주황색
이상적인 성리학적 개혁을 꿈꿨던 인물답게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2006년 5월 29일 출간. 디자인 개정을 위한 세조실록 이후로 처음으로 5개월을 초과했다. (중종 재위가 의외로 길기도 하다) 5개월 반 소요. 초판에는 띠지가 있었다. 2021년 개정판 표지 인물이 중종으로 바뀌었으나,[35] 속지에는 조광조가 그대로 있다. 그러다가 2024년 개정판에서 다시 조광조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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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
선조실록 - 조선엔
이순신이 있었다/
이순신/빨강
후기에서 율곡 이이도 표지 인물로 손색이 없었으나, 이순신에게 밀릴 수 밖에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2007년 7월 9일 출간. 8개월 열흘 소요. 역시 분량 때문에 역대 가장 오래 걸렸다. (나중에 고종실록이 갱신.) 그리고 이 해의 유일한 출간본...10권 세트가 출간되기도 했다.
분량도 순수하게 만화의 양으로만 따지자면 276쪽으로 가장 많다. 엄밀히 말하자면 20권 망국이 순수 만화의 양은 289쪽으로 가장 많으나 망국은 따로 다루는 왕이 없기에 선조실록이 사실상 내용이 가장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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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
광해군일기 - 경험의 함정에 빠진 군주 / 광해군 / 남색.
즉위할 때의 면류관과 구장복 차림이다. 실제 이 그림이 나온 면에는 즉위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이 많이 있었다는 걸 서술하였다. 이를 증명하듯 앞부분에 임진왜란 당시 광해군의 치적과 이에 대한 선조의 무지막지한 질투를 다룬 내용이 조금 들어있다. 2008년 1월 14일 출간. 6개월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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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인조실록 - 명분에 사로잡혀
병란을 부르다 / 김상헌,
최명길→인조(2021년 개정판) / 옥색
유일하게 표지인물이 2명 이었으나 2021년 개정판에서 인조로 바뀌었다. 당시 척화파와 주화파를 대변하는 인물들. 2008년 7월 28일 출간. 6개월 보름 소요. 시기가 시기( 2008년 촛불집회)였던 만큼 작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편이라서 말이 좀 있었다.일부러 노린 것도 아닌데 절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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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권
효종,
현종실록 -
군약신강의 나라 /
송시열→효종(2024년 개정판) / 진한 초록색
송시열이 이끄는 산당이 조정을 장악한 것을 표현했다. 실제로 이 시기의 산당은 임금이 내린 명령이나 하교를 거부하거나 미적대는 방식으로개기는 등자신들의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2009년 1월 21일 출간. 6개월에서 1주일 덜 걸렸다. 사실 효종, 현종의 재위기간 자체는 그리 길진 않았으나 유일하게 내용 전체를 뒤집어 엎은 현종 개수실록이란 물건이 또 있어서(...)나중엔 경종개수실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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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권
숙종실록 -
공작 정치,
궁중 암투, 그리고
환국 / 숙종 / 갈색
엄지로 죽이라는 신호를 내리고 있다. 환국으로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다는 점을 반영. 초판에는나치식 경례가 아니라오른팔을 내민 체 앞을 쳐다보는 모습이었는데 수정되었다. 지금도 속표지에는 그 모습이 남아있다. 2009년 8월 10일 출간. 6개월 보름 걸렸다. 이후 경종, 영조 실록 출간 이전에 15권 한정판 세트도 출간. 공교롭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과 김대중 대통령의 타계가 겹친 시기에 환국을 다룬 화가 나와 또 말이 나왔다.일부러 노린 것도 아닌데 절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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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권
경종,
영조실록 -
탕평의 깃발 아래 / 영조 / 빨간색
흑룡포를 입고 곁눈질을 하며 싸늘한 표정으로 서 있다.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정치적 컴플렉스를 가져 고독함을 벗을 수 없었던 성향을 반영. 2010년 3월 28일. 7개월 18일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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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권
정조실록 - 높은 이상과 빼어난 자질, 그러나…. / 정조 / 주황색
책을 들고 서 있는데, 정조도 세종/성종에 버금가는 학자군주였다. 2010년 11월 14일. 7개월 보름이나 걸렸지만, 지연의 원인은 그만큼 떡밥이 많기 때문이기도 했다. 영조 말년(사도세자 사후 14년)의 내용도 실려있다. 4쇄 전후로 정조의 죽음에 대한 내용이 5쪽 더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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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권
순조실록 -
가문이 당파를 삼키다 /
김조순 / 보라색
순조 대신 등장한 김조순이 겸양의 처세를 대변하듯 상체를 살짝 낮추는 자세를 하고 있다. 2011년 5월 30일 출간. 7개월 보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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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권
헌종,
철종실록 -
극에 달한 내우,
박두한 외환 / 순원왕후→철종(2021년 개정판) / 파란색
순원왕후는 두 임금의 재위 초기에 모두 수렴청정을 했던 인물로 사실 인지도도 낮고 작중에서도 비중이 큰 건 아니지만, 딱히 저 시대에서 두드러지는 인물도 없었던지라 세도정치의 상징적 의미로 표지에 등장. 당대의 어려운 실상을 대변하듯 늙어 주름지고 근심으로 가득찬 얼굴을 하고 있다.[36] 2011년 11월 21일 출간. 6개월에서 조금 덜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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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권
고종실록 -
쇄국의 길,
개화의 길 / 흥선대원군 / 회색
흥선대원군하면 연상되는 관복을 입고 정면을 보는 사진과 똑같이 앉아 있다. 2012년 10월 15일 출간. 10개월 반이 걸렸으니 가장 오래 걸린 셈이다. 원래는 대원군편으로 예정되었던 편. 내용은 갑신정변까지를 다루고 있다.[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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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권 망국 -
오백 년 왕조가 저물다 / 고종
표지 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서양식 복식과 단발을 하고 나왔다. 단발령(1895년 을미개혁) 이후에 찍었던 사진. 참고로 초기 기획에서는 다른 컨셉도 고려했던 듯, 마지막 권은 몇 개의 다른 표지 시안이 존재한다. 책 제목 역시 이전 시안에서는 20권 고종, 순종실록이었고 부제가 망국이었으나, 1권의 책 제목이 '개국'이었음을 의식한듯 책 제목 자체를 '망국'으로 바꾸고 부제를 새로이 '오백 년 왕조가 저물다'로 설정하였다. 2013년 7월 22일 출간. 연표 이후에 망국 이후 1%의 가능성도 안 보이는 독립을 위해 수없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 다뤘으며 이들의 후손과 친일한 사람들의 후손을 대비해서 다뤘다. 또한 그 이후로는 조선왕실 사람들의 삶을 다룬 부분을 수록하면서 내용을 마무리하였다. 출간까지는 7개월 소요.
6. 조선 임금 브로마이드
완간 기념으로 그린 조선의 27명의 왕들. 왼쪽의 태조부터 시작해서 오른쪽의 순종까지 순서대로 서 있다. 마지막 권에도 실려 있는 그림인데, 책에 실려 있는 그림에서는 광해군이 정중앙 위치라(27명 중 15번째 임금이라 실제로도 계보상 중간 정도다.) 책장의 틈 사이에 그려져 있어서 책을 쫙 펴도 잘 보이지 않는다. 선조 다음에 인조가 바로 서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왕들의 곤룡포 색은 다 붉은 색이면 눈이 아플 거 같아 다양하게 했다는데, 그냥 무작위로 한 건 아니고 색깔별로 의미가 있다. 장수하거나 상왕으로 선위한 임금[40]은 흑색 곤룡포[41]를, 재위가 상대적으로 짧은 임금[42]은 파란 곤룡포[43]를 입었다. 연산군은 조선 왕들 중 유일하게 중국 황제의 권력에 버금가는 절대권력을 누린 왕이었으므로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을 썼으며, 숙종 역시 꽤 막강한 왕권을 행사했으므로 주황색의
2015년 개정판 출간 기념 이벤트로 이 브로마이드 배경화면도 나왔다! PC용이며, 스마트폰용은 검은 바탕에 은색 용보이다. 개정판의 수정사항을 반영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상단의 브로마이드와 조금씩 다르다. #
7. 여담
- 엔하위키, 리그베다 위키 시절부터 조선사 관련 서술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책이며, 이 때문에 엔하 시절부터 이 책을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풍조가 심하다는 우려가 있었다. 나무위키로 전환된 후에도 조선시대 인물 평가에 이 책의 내용이 들어간 사례가 상당히 많다. 심지어 책을 불법으로 스캔해서 업로드한 후 설명 대신에 붙여넣는 저작권 위반 행위가 자주 있다. 이는 나무위키 내의 조선사 전반에 대한 서술의 큰 문제로, 대부분의 출처와 근거를 박시백 만화에 의존하면서 박시백의 주장을 전적으로 옳게 보는 서술이 많다. 또 특정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도 당대의 다양한 평가나 역사학 전공자의 평가들은 모두 무시하고 박시백의 주장만을 서술하여, 마치 박시백이 조선사의 최고 전문가인 것처럼 생각되게 만든다. 본 문서도 리그베다 시절 박시백의 주장에 대한 일부 비판이 추가되자 박시백 빠들의 인신공격성 서술로 대체되었다가 다시 수정된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44]
- 동명의 팟캐스트가 있다. 방송 들으러 가기. 박시백(만화가), 김학원(휴머니스트 대표), 남경태( 인문학 저술가),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네 사람이 책의 순서대로 썰을 풀어가는 내용이다.
- 작가 박시백은 한겨레에서 '박시백의 그림세상'을 연재하다가 조선사와 관련한 역사드라마인 용의 눈물을 보면서 점차 조선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뒤 조선왕조실록을 만화로 옮길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1년에 한겨레를 그만두고 조선왕조실록 CD를 사서 1년동안 공부하였고[45], 2003년에 콘티부터 그림과 채색까지 모두 혼자서 작업한 만화 『조선왕조실록』 1권을 출간하였다.
- 원래는 아동용으로 기획했다가 5권쯤에서 아예 성인용으로 방향을 틀었고, 1권부터 5권까지는 이후 성인판이 따로 출간되었다.[46]
- 초판의 가격은 기본 11,000원이었다. 개정판은 권당 9,500원으로 내렸다.
- 초판 표지가 코팅되지 않았기에 수 회 탐독하면 표지와 모서리 부분이 손상되거나 물이나 떡볶이 국물 등을 끼얹으면 대참사가 일어난다.
- 나라로부터 받은 은혜도 없으면서 위기가 닥치면 떨쳐 일어나는 독특한 유전자를 가진 민중이 화답하여 일어나 싸웠다는 표현으로 널리 알려진, 임진왜란 시기에 활동했던 의병들에 대한 적절한 묘사로 유명한 짤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짤과 작품에서 박시백이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무능한 정권, 유능한 인민, 정권이 망쳐놓은 나라를 인민들이 일으킨다라는 식의 민중 사관, 우리민족은 반만년동안 짓밟힌 약소민족이라는 자학적 역사관 등 박시백의 극심하게 주관적인 역사관에 비판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 2014년 7월 23일부터 네이버캐스트 테마로 보는 역사 카테고리에 연재됐다. 보러가기
- 세트로 구입을 하게 되면 꽤나 멋진 박스에 들어 있는 책들을 소장할 수 있다. 붉은색이며 서예로 제목이 쓰여 있고 황금색 용보가 새겨져 있다.
- 2015년 6월에 전격적으로 개정판이 발매되었는데 표지와 박스가 더 간지나게 변했다. 개정판에서는 그간 독자들에게 지적받거나 자체적으로 발견한 각종 오표기, 캐릭터 묘사(얼굴, 복식) 오류, 계절 묘사 오류, 역사적 사실 오류 등을 바로잡았다고. 출판사에서 밝힌, 개정판 관련 FAQ 이미 구판을 구매한 상황이라 개정판 추가 구매가 부담스러운 독자들은 아쉬운 대로 출판사에서 제공되는 정오표를 참고하자.
- 2015년 8월에 개정판 내용을 기반으로 한 앱과 전자책도 출시되었다. #
- 대부분의 도서관에 비치해두고 있으니 소장까지 하고 싶진 않다면 도서관을 찾아가서 읽어보는 것도 좋다. 또한 전자책이란 저렴한 선택지도 고려해볼 수 있는데 리디 기준 권당 7500원으로 종이책보다 싸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읽은 책 중의 하나다. 4권 ‘세종.문종실록’을 62페이지까지 읽었다고 한다. 4월 4일자 일기에는 “박시백 화백이 만화로 그린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있는데 재미있고 참고가 된다.”고 적었다.[47] #
- 육군, 공군 전자도서관에 전 권이 소장되어 있으며, 만화라는 특성상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특히 1권, 4권 등 인기편은 줄 서서 예약해야 대출이 가능한 수준.
- 2021년 3월 재개정판이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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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이 작품에 대해 "재미있고 치열하며 깊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온전히 몰두한 한 사람의 기나긴 세월과 노고가 고스란히 담긴 교양만화."라는 평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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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보면 유독 비중이 매우 큰 인물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개국 편에선 이색, 정몽주 중종실록의 정광필, 선조실록의 이이, 이순신 숙종실록의 김석주, 송시열이 있다.
[1]
재위가 짧은 왕은 재위가 긴 후임 임금의 앞이나 선왕 뒤에 붙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분량을 조절했다. 예를 들어 재위기간이 2년인 문종은 세종 뒤에 붙이고, 그 아들인 단종은 세조의 앞에, 예종은 성종 앞에 붙였다. 또한 약 10년 안팎의 애매한 재위기간을 지낸 왕은 '효종+현종', '헌종+철종'처럼 둘을 동등한 분량으로 붙여 전개한다. 사실 2권 '태조, 정종실록'이나 7권 '연산군일기'도 따지고 보면 재위기간이 앞의 두 사례보다 훨씬 짧지만 굵직굵직한 사건이 많다보니 독립된 권수로 구성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2]
인터뷰에 따르면 4권 '세종, 문종실록'까진 자신의 해석보단 정사를 중심으로 사실적인 부분에 대한 전달에 더 주안점을 뒀으나 5권 '단종, 세조실록'부터 자신의 해석을 어느 정도 반영하기로 했다고 한다. 단종실록의 심각한 곡필 때문인 듯하다.
[3]
선조실록은 임진왜란 이전은 사초가 불타 부실한데다가, 임진왜란 부분도 보고 받는 부분은 잘 남아있지만 정작 현장에서의 전투 기록은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난중일기, 징비록 등의 다른 사료와 현대 연구를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인지 선조실록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중 분량은 제일 많지만, 다른 권들과 달리 기존 역사서와 큰 차이점이 없어 보인다는 비판적 시선이 다소 있었다.
[4]
전반적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던가 생활상 고증, 심화를 위해서 분명히 참고는 계속 했고 참고문헌에도 실린다. 이게 잘못되어 버린 것이 조조록 연재 초기의 사건이었던
변중량 정치철새 묘사 사건.
[5]
처음엔 풀어서 쓰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중엔 간단히 쉬운 단어로 바꿔 쓸 수 있는 부분조차 그대로 썼다. 뒷권으로 갈수록 읽기 힘들어지게 된 원인 중 하나. 심지어 옆에 한자도 잘 달아놓지 않아, 단어의 뜻을 짐작하거나 사전을 찾을 때(동음이의어 때문에) 애로가 있다. 사전에 뜻이 안 나온 경우 한자가 없으면 OTL. 참고로 임진왜란의
나고야(名護屋)는 우리가 흔히 아는 대도시 나고야(名古屋)가 아니지만, 한자가 안 달렸다. 가끔 손으로 쓴 한자의 모양이 좀 기괴하여, 한자에 대한 소양이 약간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부수로 많이 쓰이는 갈고리 궐(亅)과 벼 화(禾)가 들어간 한자를 보면 못난 점이 똑같다. 갈고리 궐 아래에 위로 삐친 부분이 없다거나 벼 화의 제일 윗 획이 너무 기울어져 다른 획과 붙어버리거나 등등. 팟 캐스트 방송에서 편집자에게, 귀찮아서 한자를 안 넣으면 찾아서 넣어줘서 고맙다고 나온다. 개정판에선 한자의 모양새가 어느 정도 정돈된 모양.
[6]
물론 정말 길면 요약하거나 중략하는 경우가 있다.
[7]
원문이 궁금하다면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에 들어가 비교해보자. 훨씬 더 어려운 말들로 기록되어 있고, 끔찍하다 싶을 정도로 길다.
[8]
그것 때문에 권이 뒤로 갈수록 글자수의 압박이 심해져 이에 대한 비판도 있다.
[9]
인터뷰에 따르면, 실록 내용을 되도록 그 자체로 전달하고 싶다는 욕망과 자신의 게으름(?)도 한몫했다고.
[10]
숙종실록 편에서는 별 감흥이 안들었는지 그냥 숙종시대의 주요 정치가들이 80 넘게 장수한 사람이 많아 건강비결을 알아보는게 어떨까 하고 썰렁한 후기를 넣고 타매해도 할말 없다고 덧붙였다. 헌종-철종실록 편에서는 이제 2권 남았다는 소회를 일러스트로 남겼다.
[11]
오히려 순조실록에서 자주 나온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12]
단
문정왕후 재평가는 무리수라는 평가도 있다.
[13]
그리고 외모부터가 다른 대비들은 후덕하거나 카리스마있게 나온다면,
명성황후는 외양도 좀 차갑고 비호감적으로 그렸다. 그리고
매천야록 등에 언급된 사치 연회 야사를 어느 정도 긍정하는 것으로 보아 결코 긍정적 이미지는 아닌 듯 하다.
[14]
다만 명성황후라는
추존적 표현이 당대가 아직 왕조였음을 생각하면 좀 애매하니 그런 식으로 소개한 것일 수도 있다. 일단 작가의 민씨를 보는 시각이 우호적이지 않은 듯하나, 그런 시각이 그대로 등장 인물 소개란에 반영됐다고 보기는 힘들 듯. 20권에서 '실제
황후로 산 적은 없다'고 간략히 해설해 준다.
[15]
이순신 장군이 파직되자 패러디한 장면이다.(…) "앗싸! 성공!" 하면서 하이파이브를 하다가 "흥!" 하며 돌아서는 장면은 영락없는 슬램덩크의 패러디.
[16]
아들을 잡으러 온
금부도사와 선전관을 베고 패러디한 장면이다.
[17]
단 이때 연산군도 미리 등장했는데 연산군은 바로 다음권이기 때문인지 정면에서 얼굴을 그렸다.
[18]
하지만,
경향신문에서 세조의 어진을 모사한 이당
김은호의 증언에 의하면, '1928년 당시 작업했었던 세조의 어진에 거의 수염이 없었다'는 증언을 했던 바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세조 문서를 참조.
[19]
대표적으로
왕의 남자에서 연산조에 구형 사모뿔을 신하들이 착용하고 나온다거나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작중 기준으로 100년도 전에 바뀌었을 구형 사모뿔을 달고 나온다거나...
[20]
성종의 친정 이후에 바뀐 사모뿔로 그린다.
[21]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1권 인조 1년 3월 15일 을사 3번째 기사 - 상이 하교하였다. "대비께서 지금까지 흰옷을 벗지 않으시니 몹시 미안하다. 의복을 바꿀 시일을 예조로 하여금 속히 가려 정하게 하라."
[22]
掌議:
학생회장
[23]
사실 참고문헌 잘 찾아보면
한권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도 있다.
[24]
추천사 참고
[25]
추천사 참고
[26]
물론, 해당 작품이 어디까지나 '만화'인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 '만화'를 주워 보고 역사관을 구축했음을 주변에서 알게 되면 '학식 수준이 얄팍하고 덜떨어진 한심한 인간'으로 취급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에, 부끄러워서 남들 앞에서 대놓고 표현하진 못하지만(...)
[27]
질문 어휘를 위키에 수록하면서 가다듬은게 아니라, 진짜로 질문 내용이 이거다.
[28]
실제로 박시백의 정조실록,순조실록 이후로 대중의 정순왕후에 대한 시선은 상당히 달라졌다.
[29]
영창대군과
임해군을 죽인 일에 대해 광해군의 의중이 반영되지 않았으며 서인 측이 반정 후에 얻은 거짓진술이라는 의혹이 조금 있다.
[30]
졸기에서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놓은 부왕 선조의 책임을 논하지만 이내 마지막에는 "극복하지 못한 본인의 몫"이라며 못을 박는다.
[31]
진보 정치권에서는 노론 음모론을 상당히 신봉하는 편이다.
[32]
정조는 성리학 근본주의자 성향이 짙었기 때문에 대중에게 알려진 나라 시스템을 바꾸려 했던 개혁 군주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33]
태종은 왕 중에서 유일하게 네 권에 걸쳐 비중있는 역할로 출연하였다. 4권 세종문종실록에서의 인물소개에서는 "1권 조연 2권 공동 주연 3권 단독 주연 4권 조연...어때, 화려하지?"라고 말하고 있다. 이성계, 대원군, 고종도 세권 정도 나왔을 정도니... 다만 어떤 의미에서는 태종이라는 사람이 조선사에 남긴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34]
태조, 태종이 주연정종은 자기 재위기인데도 조연이다.
[35]
중종의 떨떠름한 표정과 미간의 점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36]
이 두 왕의 재위기간을 합치면 29년으로 정조시대보다 조금 더 긴 시대임에도, 세도정치로 실록이 부실해져 한 권 분량 채우기 힘들었다고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정조 실록은 54권, 순조 실록은 34권, 헌종, 철종은 16+15권.) 실제로
아편전쟁과
미일화친조약 등 청나라와 일본 등 주변국의 개항(실록에는 짤막하게만 기록되어 있다.)과 조선시대를 태조 때 부터 전체적으로 정리하는 내용까지 들어가 있는데도 평균 분량으로 나온 다른 권과 두께가 비슷하니, 순수하게 헌종, 철종시대를 다룬 부분은 이전 권에 비해 적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단, 조선 역사 요약 부분이 분량채우기 고민에서 나온 건 아니라 이쯤에서 정리할 필요는 느꼈다고 밝히고 있다.
[37]
19권에서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을 다룬 부분에서 통상수교는 하지 않지만, 서양 선박에게 필요한 물품은 지원하여 밖으로 내보낸다는 대목에서 "우리는 휴머니스트"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오는데, 말풍선에는 이 책의 출판사인 휴머니스트 출판그룹의 로고가 들어있고, 그 사람의 얼굴은 같은 출판사의 대표 김학원 씨의 얼굴을 따서 그린 것으로 보인다.
[38]
사실 선조와 광해군 사이에 간격이 약간 뜬 걸 보면 여기를 책장의 틈으로 예정했던 듯하다. 틈이 너무 작아서 그렇지...
[39]
특유의 삐딱함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40]
태종,
세조,
선조,
영조,
중종(조선)
[41]
단종은 예외.
[42]
태조,
정종,
예종,
인종,
광해군,
경종
[43]
이성계는 파란 곤룡포 어진이
국보로서 워낙 유명한데 해당 어진이 그려진 시절은 태상왕 시절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만화에서는
세자들이 청색 곤룡포를 일관되게 입는 것으로 설정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원래는 왕과 같은 붉은색 곤룡포였으나 선조 때 바뀌었다.
[44]
선조편의 부실함에 대한 비판을 이승만 추종자의 궤변이라는 식으로 인신공격이 가해졌었다.
[45]
db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조선왕조실록은 이렇게 발매된 cd를 사서 봐야 하는 것이었는데, 막 출판되었을 당시 가격은 무려 600만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이었다. 하지만 너무 비싼 가격 때문에 당연히 다들 정품이 아니라 해적판을 사면서 50만원짜리 보급판이 다시 출시되었다.
[46]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일부 도서관에서 아동용으로 디자인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4권을 찾아볼 수 있다.
[47]
아무래도 정치의 중심에 있는 대통령인지라 정치사가 참고가 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