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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9 16:29:04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파일:박시백_조선왕조실록_2024.jpg
작가 박시백
장르 역사
출판사 휴머니스트
출판 년도 2003년 7월 15일 ~ 2013년 7월 22일
단행본 권수 20권 (2013. 07. 22. 完)

1. 개요2. 작품 전반의 특징
2.1. 실록을 중심으로 한 내용 전개2.2. 인물 선정과 평가2.3. 패러디2.4. 그림체와 고증
2.4.1. 수정된 디자인
2.5. 이덕일 주장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3. 평가
3.1. 호평
3.1.1. 대중사회에 가져온 혁명에 가까운 '정사'적 해석
3.2. 비판
4. 작가 선정 최애/최악 캐릭터5. 책 전권의 목록과 부제6. 조선 임금 브로마이드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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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새롭게 조명한 박시백의 역사 학습만화. 휴머니스트에서 출판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을 그대로 만화로 그려내어 많은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판매부수는 300만부를 돌파했다.

2. 작품 전반의 특징

2.1. 실록을 중심으로 한 내용 전개

조선왕조실록을 원전으로 하고 있다. 권당 200 페이지를 조금 넘는 분량에 주제별로 5장을 분류, 각 장에 보통 4~5개의 챕터를 전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27명의 조선국왕 중 재위가 긴 왕들을 중심으로 하여 구성 방식을 취했다.[1]

전반적으로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을 중심으로 주요 사건과 해당 사건에 관련된 핵심 인물들의 생각과 처신을 살펴보면서 조선 시대의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각 권마다 다양한 관련 도서를 참고하고 최근 역사학계의 성과를 반영해 대체로 객관적인 범주에서 조선의 역사를 서술했다. 사실 작가의 주관이 적지 않게 반영되어 있으나, 기존의 정설로 인식되는 설을 일일이 언급 해주며 작가의 해석 또한 객관적이라 생각될만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기존에 널리 퍼져 있지만 실록과 교차대조한 결과 근거가 적은 것으로 판명된 야사를 알려주는 것이 자주 나온다. 제목이 조선왕조실록이듯 실록의 정사 기록을 기본으로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 알려진 야사의 내용과는 다른 실록의 내용들이 나오고는 한다. 제목만으로 볼 때는 실록의 내용을 그림으로 옮겨 그리는 듯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록을 그대로 옮기기만 한 것은 아니고, 가끔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해석들을 덧붙이고 있다.[2] 또한 연표를 수록하여 본문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과 연관시켜 읽어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박시백은 이 만화를 그리면서 실록의 내용을 가장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록에 모든게 있다는 식의 글귀를 썼을 정도로 선조 편의 임진왜란 부분을 제외하면 실록에만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3] 실제로 정조편 후기에 의하면 심환지 어찰을 포함시킬까 했다가 실록에 없어서 배제했다고 할 정도. 이 덕분에 연려실기술을 비롯해서 야사나 뜬소문에 의존하여 쏟아져 나온 여러 학습만화들과는 차원이 다른 고증과 분석의 질을 보여주었지만 역으로 실록이 부실해지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다른 주요 문헌들을 빼고 실록만을 보았기 때문에 내용이 부실해지는 부작용이 있었다. 초기에는 막 역사만화를 그리게 되었다 보니까 이이화 등의 학자들 평가를 그대로 옮겨서 xx선생은 이렇게 주장한다더라~ 라는 식의 전개도 했지만, 뒤로 갈수록 본인도 계속 실록을 읽어서 전개 파악이 되기도 하고 자신감도 붙어서인지 학자들의 해석을 참고하는 비중이 크게 줄고 주로 개인적 분석으로 대체되었는데,[4] 이 부분 역시 작가의 주관과 정치성향 개입으로 이상해진 부분이 있다.

또 실록에 등장하는 당대의 단어들을 그대로 썼다는 점.[5] 대사도 당시의 발언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6] 이 때문에 만화의 재미를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미 시중에 이러한 만화들이 많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역사의 현실성을 최대한 살렸다고도 볼 수 있다. 책에 등장하는 단어나 대사들도 알고보면 읽기 쉽게 옮겨 적은 것이다.[7]

20권이라는 분량만큼 각 왕들로 나뉘어진 실록에 기록된 시대를 비교적 자세히 다룬다는 것과 시간 순서대로 작품을 만들고 서술을 하는 것도 장점.

특히 주목할 만한건 엄청난 양의 대사들을 전부 손으로 썼다는 것. 조광조의 정치개혁이나 이이의 경장에 나온 어마어마한 양의 대사들도 다 손으로 썼고, 그 정점은 13권 효종실록, 현종실록의 그 유명한 예송논쟁 부분에서 볼 수 있었다. 초창기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권수가 늘어나면서 실록 속의 발언을 그대로 옮기는 경우가 많아졌다.[8] 이 점은 작가 본인도 인정했다.[9]

각 책의 후기에는 본편에는 빠진 색다른 야사, 논평, 사실 등이 담겨 있다. 여기에서는 개인적 감상에서부터[10] 작가가 본편에 넣을까 고민하다가 근거가 부족하다고 여겨서 넣지 않은 견해, 이전에 나온 단행본 수정에 대한 변(선조실록에 실린 변중량 묘사 변경에 대한 해명), 그리고 만화를 그리던 시점에 대한 시사적 감상(특히 인조실록) 등이 있다.

2.2. 인물 선정과 평가

아무리 유명한 인물이라도 실록에 등장하지 않으면 찬밥 신세다. (사실 실록에 등장하지 않으면 아예 나오질 않아야 맞겠지만.) 장금이는 중종이 죽기 전에 몇번 나온게 다고, 황진이는 아예 안나온다. 정조실록에서는 정약용도 실록에 없어 딱 두 컷 나오고[11] 정조시대의 주요 인물로 자주 언급되는 박지원 김홍도도 실록에 나오지 않아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도 후기에서 언급됐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 대신 왕에 대한 해석과 평은 반드시 넣어서 이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종이나 문종부터 중종과 명종, 순조나 헌종, 철종 등의 평가가 많이 나왔다.

조선 시대의 여성 정치가들, 특히 수렴청정기의 대비들에 대한 평가가 관대한 편이다. 만악의 근원이라 낙인 찍힌 문정왕후 정순왕후를 정치가로 재평가한 것이 특이한 편.[12] 안동 김씨 세도 정치 문을 연 순원왕후도 중립적으로 판단, 나름 최선은 다했지만 한계가 많았던 편이라 평한다. 고종을 수렴청정한 신정왕후 조씨는 대원군의 개혁 파트너로 높이 평가한다. 그 외 정희왕후도 실록에서의 기록만큼 높은 평가를 내렸다.

다만 명성황후만큼은 그리 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작중 본문에서 대부분의 왕비들은 정식 시호대로 표기하는데 그녀의 경우 '명성황후'라는 표현은 19권 본문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고 등장인물 소개에서는 고종 비 민씨라고[13] 쓰고 있다.[14] 20권에서는 명성황후가 외교적 수완과 정치감각이 있었다는 호평과 민씨일가 세도정치를 부활시키고, 구태악습을 따랐다는 비판을 함께 싣는다.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진 않아도 아주 나쁜 건 아니다. 이는 사실 고종도 마찬가지로, 비판점을 빼놓지 않지만 동시에 나름대로 자질이 있었다는 점과 어느 정도는 동정적인 시각을 보인다.

2.3. 패러디

읽다 보면 간간히 패러디도 볼 수 있다. 개국 편에서는 공양왕이 이성계 세력에 저항하였단 언급이 나오면서 '적어도 1980년의 최 아무개와는 달랐다'라고 한다. 태조실록에서는 정도전과 조깅하는 아저씨와 비교했는데 정도전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IMF 불렀다며 깠고 김 대통령은 운동 안해서 살찐 정도전을 깠다. 선조실록에서는 진주성 전투에서 마리오가 일본병 찬조출연하고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일군이 짱구의 엉덩이춤을 춘다. 그러고 화살을 피하느라 정신없어한다.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 슬램덩크 마지막 권의 강백호 서태웅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돌아서는 그 장면을 패러디한다.[15]

2차 왕자의 난에서는 회안대군 방간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를 패러디하는 대사가 있다.

광해군 편에서는 맹꽁이 서당의 훈장님과 제자들이 출연하기도 했으며, 개그 콘서트의 유행어나 캐릭터도 간간히 보이기도 한다. 일례로 인조실록의 마지막 장에서 어울리지 않는 어질 인을 붙인 장면에서 패러디한 장면이 있다. 그 외 숙종실록에서는 공포의 외인구단의 명대사가 패러디되기도 하고,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제목(오늘도 무사히, 별일없이 산다~)도 등장한다.

인조실록에서는 이괄이 반란을 결심하면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명대사 주사위는 던져졌다를 패러디한다.[16]

영조실록에서는 BIGBANG 태양 타이거 JK가 출연하였으며 영조 유인촌의 명대사를 사용한다. 정조실록에서는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미친 존재감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김종수는 내게 모욕감을 줬어 순조실록에서는 반란등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의도치 않게 죽었다라고 표현할때 Mr.29만원이란 자막이 달린 대머리 아무개가 나왔다.그러고 순조는 기겁 고종실록에서는 스카가 이마에 십자가를 새겼으니 천주교도라고 참수를 당하기도 한다. 베이는 효과음도 '스카'다. 다만, 작가의 나이가 나이다보니 서브컬쳐 계열의 패러디는 이 계열의 대본좌인 굽시니스트처럼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진 못하고 다소 철 지난 것을 쓰는 편이다. 작가가 서브컬쳐에 조예가 깊다기보단 그냥 예전에 봤던 만화를 떠올려서 써먹었다고 생각하면 될 듯. 이 외에도 고종실록에서 탐관오리가 현물을 삥땅치면서 '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를 말하는 장면도 있다. 그리고 가끔 작가의 오너캐(오너캐라기보단 내레이터에 가까운 듯 하지만)가 오덕체를 쓴다. 선조실록에서는 " 군사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끼는구만." 이라는 대사도 나온다.

거기에 선조가 피난을 가려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넌 뒤에 "배를 만들 나무가 없도록 주변 모든 민가를 철거하고, 나무를 몽땅 못 쓰게 해라"는 대목에서 1950년 모 아무개와 닮았다는 풍자를 하기도 했다.

2.4. 그림체와 고증

자세한 실록의 내용이나 새로운 해석 이외에도 생동감있는 그림체로 조선시대 인물들의 성격이나 이미지에 비교적 맞게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초상화가 남아있는 경우 최대한 참고해가며 그리고 있다. 어진이 남아 있는 태조와 영조, 철종의 모습은 어진을 참고해서인지 어진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한가지 재밌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초반기에 아직 얼굴이 정해지지 않은 왕들을 그려야 할 경우에는 등을 돌리거나 뒤돌아선 모습만 그린다는 것이다. 예컨대 세종 편에 등장한 성종이나 성종 편에 등장한 중종.[17] 예외가 있다면 2권에 등장한 흥선 대원군은 사진 자료가 남아있기 때문에 정면으로 등장해서 얼굴을 묘사했다. 하지만 정작 19권에 묘사된 대원군과 비교해서는 좀 다른데, 그림체 변화 등이 원인으로 보인다. 초상화가 남아 있는 경우에는 상관 없지만 초상화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묘사할지 상당히 고생했다고 하는데, 정치인의 얼굴이나 기존에 드라마나 영화에서 등장한 배우의 얼굴을 따오기도 했지만, 동네 학원 강사 얼굴을 참조하기도 했다고.

단 세조는 초상화가 남아 있고 아버지와 형 못지 않게 파워풀한 수염의 소유자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책에서는 세조의 수염을 그다지 강조해서 그리지는 않았고 남아 있는 초상화와는 딴판으로 묘사되었다. 남아 있는 세조의 초상화가 호탕하거나 위엄 있는 인상을 준다면 작중에서 묘사된 세조는 상대적으로 간사함을 강조해서 묘사한 느낌?[18] 그리고 2016년 11월에 세조 어진 초본이 발견되었는데 광대뼈가 나온 작중의 세조와도 딴판으로 얼굴이 둥글넓적하고 후덕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다만 이 초본은 본작이 완결되고 3년 후에 발견된 것이고, 기존에도 언론을 통해 보도된 아주 간략한 자료 정도는 있었지만, 단종, 세조 실록편의 논조라던가 평소 박시백의 박정희 캐리커처를 감안하면 그냥 계유정난을 조선판 5.16, 12.12로 해석하고 박정희의 얼굴을 따왔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수염이 별로 없는거야 그렇다 쳐도 세조의 얼굴에 유난히 광대뼈가 튀어나온 것으로 묘사된 것에서 확실하다.

영조 사도세자, 세손 시절의 정조, 순조의 얼굴들이 비슷한 듯 하면서도 모두 다른게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또한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부터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경우 서서히 나이가 드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재위 기간이 길었던 세종이나 선조, 숙종, 영조 등이 있다. 인조의 경우 제위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았지만 그 동안 겪은 풍파를 표현한 것인지, 젊은 시절인 인조반정 당시에는 후덕하게 그려지지만 말기에 가서는 광대가 도드라지고 턱이 각지게 묘사되는게 포인트. 병자호란 이후 폭삭 늙었다

이건 왕 뿐만 아니라 당시 신료들도 마찬가지라서 초상화가 남아 있는 황희 이색, 조반, 신숙주, 휴정, 이항복, 이덕형, 이원익, 김육, 김석주, 송시열 등은 진짜 초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느낌을 줄 정도다. 이들 중 가장 압권은 선조실록에 나오는 휴정과 효종, 현종실록에 등장하는 김육 그리고 숙종실록에 등장하는 김석주. 특히 김석주는 상당히 권신 포스를 주는 특이한 캐릭터 디자인으로 등장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그려진 영정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정조 시기의 재상 채제공 사시로 묘사된 것 역시 작가의 개인 설정이 아니라 채제공 본인이 영정에 사시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숙종 편의 후기에서 밝히기를 이처럼 초상화가 남아 있는 인물들은 초상화를 최대한 참고하되 박시백이 그 인물에 대해 받은 느낌을 살짝 더해서 디자인한다고 한다.

사진과 초상화가 모두 남아 있는 흥선대원군이나 고종의 경우 초상화와 사진을 적절히 조합해서 그려졌다. 특히 흥선대원군은 초반 섭정기에는 비교적 초상화에 더 가까운 외향이며 나이가 들수록 사진의 모습과 비슷해진다. 뒤에서 보듯 초기엔 정치인의 얼굴을 참고하기도 하였다. 그 외 김자점 같은 경우는 1980년대 초반에 방영한 사극 대명에서 김자점을 연기한 배우 김순철(1937~2004)의 얼굴을 따서 그린 것이다.

또 흥미로운 점은 왕들의 용포가 다양한 색깔로 나온다는 것. 선조 인조, 숙종, 영조, 순조 등의 왕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이후부터 검은색 용포만 입고 효종은 남색 비스무리한 용포를 입기도 했다. 효종은 다소 특이한 편. 처음엔 빨간색 용포였다가 나중엔 남색으로 바뀐다.

세자, 세손, 세제들은 하늘색 용포만 입고 나온다. 이것도 사실 고증과는 다른 것. 세자는 초기에는 왕처럼 빨간색 용포를, 후기부터는 아청색 또는 검은색 용포를 입었으나 왕과 세자를 헷갈릴 수 있는 독자들 때문에 이리 설정한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가자. 개정판에서는 시기에 따라 각각 빨간색, 남색으로 수정되어 있다.

아쉬운 점은 왕비의 최고 예복인 적의의 조선 후기 양식을 조선 초기에 적용했다는 점. 태종실록 원경왕후 편을 보면 알 수 있다. 조선 초기 때는 '대삼(大衫)'이라 하여, 명나라 복식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그 특징 중 하나가 머리에 칠적관이라 하여 화려한 보석들로 장식된 관을 씌웠다. 이후, 인조 대에 와서 한복의 국속화로 '적의'로 바뀌면서 칠적관과는 다른, 검은색 양식의 '대수'를 씌우게 된 것이다. 뭐 근데 다들 왕비의 복식에 대해서는 관심 없으니까 사실 초기 부분(1-3권)은 복장고증 면에서 중후반부보다 아쉬운 점이 있긴 하다.

청나라, 명나라의 궁중 복식 및 갑옷 고증은 거의 완벽하다. 다만 명나라 초기 홍무제가 입고 있는 곤룡포는 금색 곤룡포가 아니라 하늘색이다. 근데 개정판에 고쳐졌다.그리고 다른 역사만화나 사극은 '사모뿔' 오류[19]가 흔하게 보이는데, 이 책은 없다[20].

5권 단종, 세조실록에선 흉배 관련 고증을, 6권 예종, 성종실록에서는 신하들의 사모 뿔 관련 지식을 간단한 그림과 글로 설명해준다. 단종 때 지금의 흉배가 생겼고, 성종 초기에 사모가 바뀌었다. 성종의 친정 때부터 적용. 환도 관련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있는데 띠돈으로 패용하긴 했는데 칼자루가 앞으로 오게 차고 있다는 것. 10권 선조실록에서부터 칼자루가 뒤로 가는 방식이 등장한다. 사실 '아쉬운'거지 고증 오류라고 할수도 없는게 어차피 조선시대 환도는 단지 띠돈을 이용해 차고 다닌다는 게 공통점일 뿐, 칼자루가 앞으로 오게 차던 뒤로 오게 차던 등에 지고 매던 착용자 마음대로였다. 단지 활을 패용해야 하기 때문에 칼자루가 뒤로 가는 방식을 가장 많이 사용했을 뿐이다.

청나라 변발 고증도 옥의 티가 있는데 대다수 매체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인 청나라 말기 변발을 청 개국 초기 변발과 혼동한 것이다. 청 초기 변발은 그야말로 싹다 밀고 땋아놓은 머리만 남기는 건데 청 후기 변발은 상당량의 머리카락을 뒤통수 부분에 남겨둔다. 박시백은 실수로 누르하치, 홍타이지 이하 청나라 사람들에게 청나라 후기 변발을 그려줬는데 만약 실제로 당시에 누가 그따위 변발을 했으면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그래도 기타 매체에서 거의 역사 왜곡급으로 묘사되는 명/청의 복식과 비교해보면 이 작품은 매우 양호하다.

그 밖에 숙종실록에서 무품인 왕자군 숭선군(인조의 서자)이 종4품 숙원인 장희빈에게 ' 마마'라고 부르는 것이 있으며 광해군 일기의 서궁에 유폐된 인목왕후가 적의를 입고 있는 부분[21] 등 사소한 고증 오류가 드물게 있다.

주목할 점이 워낙에 실록에 집중하여 그리기 때문에 특정 사건을 묘사할 때 당시 왕과 대신들의 나이를 고려하여 그리며 예컨대 상중이면 상복을 입은 상태를 묘사하는 등 일부 역사 학습만화에서 무시해버리는 나이와 상황 고증을 아주 잘 살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습만화의 레전드라 불리는 먼나라 이웃나라만 해도 아시카가 요시미츠를 일본 국왕에 책봉하는 건문제를 마치 수염을 허옇게 기른 80살은 넘은 노인처럼 그려놨는데 그때 건문제는 24살이었다. 또 다른 예로 윤승운 맹꽁이 서당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임오군란 시기의 위안스카이를 노회한 중늙은이로 그려났지만, 이때의 원세개는 겨우 23세의 어린 청년이었다. 한권으로 보는 00시리즈는 인조반정 파트에서 49세의 광해군은 미중년으로 묘사하면서 40세인 인목대비는 호호할머니로 그리는 등 나이 고증 같은 건 개판이었다. 조선왕조 500년에선 인목대비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정조 편에선 정조의 죽음을 묘사하는 마지막 장면을 독살설을 반박하기 위해서인지 두어장에 걸쳐 더 자세하게 묘사했고 송시열 대동법이 소극적이었다고 서술한 것에 대해 비판이 일자 팟캐스트에서 차차 그것을 수정할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비판이 들어오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병신으로 매도하는 여러 유사사학자들과 질적으로 다른 모습이다.

그외에 뒤로 갈수록 그림체가 초반에 비해 정교해지다가 14, 15권을 기점으로 차차 굵어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에 박시백은 시력이 나빠져서 그림체 자체가 매우 굵어졌다고 고백했다.

2.4.1. 수정된 디자인

2.5. 이덕일 주장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참고로 1-18권 뒤편에 이덕일의 추천평이 있다. 평을 보면 적어도 이덕일이 본서를 상당히 좋게 보았던건 사실로 보인다. 사실 작 초-중반부 부분은 이덕일 자신의 주장이랑 비슷한 부분도 있기도 했다. 부민고소금지법을 예로 들며 세종시대를 '사대부만의 태평성대'라고 규정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무엇보다 초창기 참고문헌에서는 '사화로 보는 조선의 역사'를 포함한 이덕일의 책들이 포함되어 있다.[23]

그러나 작품 후반부에서는 이덕일의 주장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많다.

먼저 경종-영조실록의 경우 사도세자 관련 부분에서 사도세자를 영조가 죽인 부분을 비중있게 다루면서 당쟁설을 노골적으로 까는데 당쟁설은 이덕일의 대표적인 주장이다. 참고로 박시백은 영조 편에서 사도세자 문제를 분석하면서 당쟁설에서 핵심적인 부분들을 일일이 까는 모습을 보여주며, 당쟁설을 아주 제대로 부정했다. 이후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대놓고 당쟁설을 부정했다.

정조실록의 경우 먼저 정조는 개혁군주였으며 노론 벽파와 갈등을 일으키다가 독살됐다는 이덕일이 전파한 대중적 인식을 먼드라마 본 사람들은 이런 생각 한다더라 하고 언급은 한다. 하지만 바로 그 후에 박시백은 정조편에서 먼저 개혁군주 여부에 대해 능력은 뛰어났지만 보수적인 면이 있고 과거지향주의적, 이상주의적 성향이 강했고, 더 나아가 사도세자 신원에 자신의 정치철학도 버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독살설에 대해서는 영조실록 같은 정면 반박은 아니지만 정조가 죽어가는 과정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이 정조가 자연사했다고 믿게끔 한다. 참고로 박시백은 자신의 만화에서 사람이 죽는 장면은 간략하게 묘사한다. 심지어 각 권의 주인공들인 왕도 예외는 아니라 보통은 1쪽, 많아도 4쪽에, 심하면 1~3컷 정도로 묘사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 정조를 제외하고 좀 상세하게 죽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경우는 인종과 선조인데, 인종은 재위기간이 짧아 죽어가는 과정 말고는 그릴 게 없고(...), 선조는 그가 죽어가는 과정에서 영창대군을 옹립하려는 류영경과 이걸 막고, 생존해보려는 광해군의 노력까지 겹쳐서 상세히 묘사할 수밖에 없는 경우였다. 그런데 정조는 죽어가는 과정에서 딱히 정쟁이 있던 것도 아니고, 재위기간도 짧은 게 아닌데 상세하게 묘사됐다. 특히나 4쇄 이후로는 정조가 죽은 날을 자세히 묘사한 부분을 2장이나 추가했다.

거기에 더해 순조 편에서는 벽파를 무조건적으로 까던 이덕일과 달리 벽파가 있었기에 그동안 세도정치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서술하며 벽파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덕일이(사실 이건 이덕일 이전에도 있었지만) 조선을 멸망시킨 악녀로 매도한 정순왕후 김씨에 대해서도 굉장히 호의적으로 묘사하며, 오히려 나름대로 정조의 개혁을 계승하려고도 하며 조선의 병폐를 해결하려 했던 여걸이며, 명분을 쥐고 정국에 영향을 준 노련한 정치가라며 극찬하기까지 했다.

이쯤되면 이덕일이 추천평 쓴 책 맞나 싶을 정도. 특히 경종-영조 실록편에서는 이덕일 주장을 까는 수준을 넘어 아예 척을 지겠다고 선언하는 듯한 서술도 보일 정도로 독자들은 이덕일이 추천한 책에서 이덕일의 주장과 다른 주장을 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작 최후반부인 고종실록편과 망국편에선 이덕일의 추천사가 빠졌으며, 이후 쇄를 거듭하며 발행된 다른 권들과 2015년 개정판에서도 이덕일의 추천사가 실리지 않고 있다.

3. 평가

3.1. 호평

이 책을 적극 권장하고 싶다. 만화의 구성을 통해 조선시대 역사를 쉽게 전달하는 최고의 수작이다. 재미와 역사라는 두 마리 토끼를 확실히 잡고 있다.[24]
박화백을 ‘현대판 사관’으로 불러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역사학자 못지않게 많은 공부를 해가면서 집필한 것은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 #
―  신병주 (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조선의 역사가 권력투쟁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역사, 함게 만들어가는 역사, 새로운 미래를 지향하는 역사임을 잘 보여 주고 있다.[25]
전체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정밀하게 밝히려 했고, 많은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다방면에서 공부한 점이 돋보인다. 특히 조선 개국을 서술한 1~3권과 정조의 탕평을 서술한 16권은 완벽에 가까운 수준을 보여준다. #
― 박광용 (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조선사 입문서로 훌륭한 작품이다. 사실 관계 오류와 여러 비판점들이 있긴 하지만 입문서 및 학습만화적인 측면에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지엽적인 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지만, 전체적인 큰 틀은 틀리지 않았다. 사실 국내의 학습만화 퀄리티를 생각하면 이정도면 준수하다. 덕분에 나무위키에서도 이 만화 관련 서술이 있고 조선시대 인물 관련 문서에도 이 책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서술들이 제법 있다. 

3.1.1. 대중사회에 가져온 혁명에 가까운 '정사'적 해석

특히 이 작품이 대중사회에서 큰 호평을 받은 이유는, 이 책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조선왕조 실록의 실제적 내용들을 대중적인 도서로 편찬한 경우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학계와 대중 사회는 유리되어 있었으며, 조선왕조 실록이라는 1차 사료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또 모를까, 엄연히 멀쩡하게 존재함에도 대중 사회에선 정사가 아니라 야사만 확대 재생산해서 읊조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 대중 도서출판계는 비전공자 문학인들로 꽉 차 있었으며, 이들은 역사 전공도 아니면서 '~(으)로 읽는 조선왕조 실록' 등 온갖 역사서 이름을 들먹이며 자신들이 역사서를 충실히 다룬다는 듯한 전문적 분위기를 어필하며 책을 발간했으나, 그 내용은 대부분 본인의 뇌피셜과 망상, 통속적 해석, 야담에 가까운 해석을 뒤섞어 독자들의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실제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함흥차사나, 양녕대군 정신병에 걸린 척 하며 충녕에게 세자 자리를 양보했다는 얘기나, 장희빈입을 찢고 사약을 쏟아부었다는 얘기, 소현세자 벼루에 맞아 죽었다는 얘기, 송시열과 이완이 진심으로 북벌을 준비했다는 얘기 등, 이러한 야담 야사의 이야기들이 대중사회에선 대부분 진실로 받아들여졌으며, '겨우' 만화에 불과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정사를 다룸으로서 이런 야사들을 대중사회에서 쓸어내 버렸다는 것은, 그간 한국 문화계에서 거장인 척하는 무수히 많은 인사들 중 단 한 명도 조선왕조실록을 해석해 대중 앞에서 다루는 노고를 감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학습 만화'가 '역사'라는 보수적이고도 범 대중사회적 흥미도가 높은 분야를 통째로 들었다 놓은 수준으로 바꿔놨다는 것에서 한국 대중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아마추어리즘과 얄팍한 상술들을 비판하는 여론 또한 존재한다.

물론, 박시백이 만평가 출신인 비전공자인지라, 작품 여기저기 지엽적인 문제들이 있고, 만평가답게 자신의 정치색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무리수를 둔 부분을 비판할 수 있을지언정, 그가 대중사회에 끼친 긍정적 파급력은 크게 평가해줘야 마땅한 부분이다. 실제, 해당 작품이 나온 후로 방송 문화계 인사들은 물론, 사극pd, 역사물 작가, 학교 교사들, 연예인, 심지어 역사물 관련 웹툰 작가들 대다수는 해당 작품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음을 다양한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26]

사실, 조선왕조실록이 cd로 완역된것도 한참 전의 일이라, 대중사회를 지배하던 것은 간간히 tv에서 틀어주던 사극들(당연히 정사와는 아득히 먼)이었고, 이런 야사류의 역사관이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2000년대 중반 그 이후부터, 갑자기 한국인들이 조선왕조실록 정사의 내용이 급 궁금해져 조선왕조실록을 완독했을리는 절대로 없기 때문에, 현대 한국사회에서 조선왕조실록 정사 내용을 다루는 대부분의 대중사회의 인물들은 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봤거나, 이것에서 파생된 정보들을 접하여 조선왕조 실록에 새삼 흥미를 느끼게 되었을 가능성이 지대하기에, 해당 '만화'가 한국 대중사회에 끼친 그 영향력의 정도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수준.

3.2. 비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비판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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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4. 작가 선정 최애/최악 캐릭터

완간 기념 출판사 후기 인터뷰에서 작가에 건네진 질문 중, 독자들의 주된 질문이기도 했던 다음 질문이 전해졌다. "가장 애착 가는 인물과 짜증났던 인물을 꼽자면?"[27]

이에 대해 박시백은 애착 가는 인물은 정도전, 짜증났던 인물로는 어찌 보면 당연히 선조 인조를 꼽으며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부연하였다.
한편 박시백이 '최고로 꼽는 조선 군주들'에 대해서도 언급된 바 있다. 2013년 8월 26일 방영되었던 MBC 프로그램 《문화사색 364회 -만화, 역사를 기록하다!-》코너에서 조조록 완간 기념 박시백과의 인터뷰가 소개되었는데, 여기서 취재진이 "조선 국왕들 중 최고를 꼽아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선뜻 자신이 생각하는 조선 최고의 국왕으로 1위는 세종대왕, 2위는 정조, 3위는 광해군이라고 답했다. 또한 같은 인터뷰에서 정순왕후 김씨 역시 꽤 고평가하면서 세간에 퍼진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고 토로한다. ( 이 링크를 통해 해당 인터뷰를 볼 수 있다.)[28]

그 외 이 인터뷰에 의하면 세종 이순신 외에 강한 인상을 받은 인물로는 이성계 정도전, 중종 때의 정광필을 꼽았으며, 정광필에 대해서는 ' 평전 같은 걸 쓸 수 있다면 한 번 써 보고 싶다'고까지 언급했다. 정작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최명길은 언급도 안 되었다.

한가지 의문이라면 정작 박시백의 만화에서는 세종은 그렇다 쳐도 광해군과 정조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박한 편이었다는 점이다. 광해군 일기에서 광해군을 '개혁군주라는 평은 받아도 실제론 거리가 있던 인물'이라며 제법 평가절하했고 서인 측의 폐모살제 주장도 여과없이 수용하고 있다.[29] 그리고 즉위 초기 모습만 유지했어도 '실패는 안 했을 것'이라면서 아예 실패한 왕이라고 단정을 짓는 등 광해군의 치적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30] 아마 박시백이 고평가한 부분은 중립외교와 북방의 방어 정책 및 노련한 정치, 세자 시절 이순신을 탄압하며 여러 뻘짓을 한 선조와 비교해 많은 실전 경험을 성공적으로 이끈 자질 등을 말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정조만 해도 '조선을 개혁해보려다가 벽파의 음모로 죽은 비운의 국왕'이라는 음모론과 거품이 너무 끼어있다고 세간의 평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남겼는데 그의 정치색을 생각해 본다면 해괴한 일이긴 하다.[31] 역시 정조도 그의 뛰어난 자질을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세종대왕은 뛰어난 자질 답게 나라를 잘 다스린 군주로 손꼽고 있고, 반면 정조와 광해군은 뛰어난 자질에 비해 당시 시대적, 정치적, 그리고 그 자신의 한계로 인해 그것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음을 아쉬워하고 있는 것이다.[32]

5. 책 전권의 목록과 부제

표지 인물에서 흥미로운 건 각 표지인물의 모습이나 행동이 그 당시 시대의 내용이나 캐릭터의 성향 혹은 본문의 핵심 내용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 표지인물들의 특징은 인물 부분에 적어놨으니 참고.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인물사전도 있으나 한정판에 한함.

6. 조선 임금 브로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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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간 기념으로 그린 조선의 27명의 왕들. 왼쪽의 태조부터 시작해서 오른쪽의 순종까지 순서대로 서 있다. 마지막 권에도 실려 있는 그림인데, 책에 실려 있는 그림에서는 광해군이 정중앙 위치라(27명 중 15번째 임금이라 실제로도 계보상 중간 정도다.) 책장의 틈 사이에 그려져 있어서 책을 쫙 펴도 잘 보이지 않는다. 선조 다음에 인조가 바로 서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만화에서조차 폐위당하다니 낑김[38] 본래는 근정전 앞에서 다양한 포즈로 도열하는 것을 그리려고 했는데 그리기 귀찮아서 구도가 안 나와서 이렇게 그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진이의 강백호 포즈로 앉아 있는 세조[39]와 나이 많아서 혼자 지팡이 짚고 앉아 있는 영조가 포인트

왕들의 곤룡포 색은 다 붉은 색이면 눈이 아플 거 같아 다양하게 했다는데, 그냥 무작위로 한 건 아니고 색깔별로 의미가 있다. 장수하거나 상왕으로 선위한 임금[40]은 흑색 곤룡포[41]를, 재위가 상대적으로 짧은 임금[42]은 파란 곤룡포[43]를 입었다. 연산군은 조선 왕들 중 유일하게 중국 황제의 권력에 버금가는 절대권력을 누린 왕이었으므로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을 썼으며, 숙종 역시 꽤 막강한 왕권을 행사했으므로 주황색의 애매한 곤룡포를 썼다. 고종과 순종은 개화기 때의 왕이라서 그런지 서양식 복장을 하고 있다. 마침 이 복장을 입었었고 그래서인지 다른 임금들에 비해 자세가 딱딱해보인다. 그 외는 빨강/진한 분홍 정도로 되어있다.

2015년 개정판 출간 기념 이벤트로 이 브로마이드 배경화면도 나왔다! PC용이며, 스마트폰용은 검은 바탕에 은색 용보이다. 개정판의 수정사항을 반영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상단의 브로마이드와 조금씩 다르다. #

7. 여담


[1] 재위가 짧은 왕은 재위가 긴 후임 임금의 앞이나 선왕 뒤에 붙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분량을 조절했다. 예를 들어 재위기간이 2년인 문종은 세종 뒤에 붙이고, 그 아들인 단종은 세조의 앞에, 예종은 성종 앞에 붙였다. 또한 약 10년 안팎의 애매한 재위기간을 지낸 왕은 '효종+현종', '헌종+철종'처럼 둘을 동등한 분량으로 붙여 전개한다. 사실 2권 '태조, 정종실록'이나 7권 '연산군일기'도 따지고 보면 재위기간이 앞의 두 사례보다 훨씬 짧지만 굵직굵직한 사건이 많다보니 독립된 권수로 구성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2] 인터뷰에 따르면 4권 '세종, 문종실록'까진 자신의 해석보단 정사를 중심으로 사실적인 부분에 대한 전달에 더 주안점을 뒀으나 5권 '단종, 세조실록'부터 자신의 해석을 어느 정도 반영하기로 했다고 한다. 단종실록의 심각한 곡필 때문인 듯하다. [3] 선조실록은 임진왜란 이전은 사초가 불타 부실한데다가, 임진왜란 부분도 보고 받는 부분은 잘 남아있지만 정작 현장에서의 전투 기록은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난중일기, 징비록 등의 다른 사료와 현대 연구를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인지 선조실록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중 분량은 제일 많지만, 다른 권들과 달리 기존 역사서와 큰 차이점이 없어 보인다는 비판적 시선이 다소 있었다. [4] 전반적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던가 생활상 고증, 심화를 위해서 분명히 참고는 계속 했고 참고문헌에도 실린다. 이게 잘못되어 버린 것이 조조록 연재 초기의 사건이었던 변중량 정치철새 묘사 사건. [5] 처음엔 풀어서 쓰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중엔 간단히 쉬운 단어로 바꿔 쓸 수 있는 부분조차 그대로 썼다. 뒷권으로 갈수록 읽기 힘들어지게 된 원인 중 하나. 심지어 옆에 한자도 잘 달아놓지 않아, 단어의 뜻을 짐작하거나 사전을 찾을 때(동음이의어 때문에) 애로가 있다. 사전에 뜻이 안 나온 경우 한자가 없으면 OTL. 참고로 임진왜란의 나고야(名護屋)는 우리가 흔히 아는 대도시 나고야(名古屋)가 아니지만, 한자가 안 달렸다. 가끔 손으로 쓴 한자의 모양이 좀 기괴하여, 한자에 대한 소양이 약간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부수로 많이 쓰이는 갈고리 궐(亅)과 벼 화(禾)가 들어간 한자를 보면 못난 점이 똑같다. 갈고리 궐 아래에 위로 삐친 부분이 없다거나 벼 화의 제일 윗 획이 너무 기울어져 다른 획과 붙어버리거나 등등. 팟 캐스트 방송에서 편집자에게, 귀찮아서 한자를 안 넣으면 찾아서 넣어줘서 고맙다고 나온다. 개정판에선 한자의 모양새가 어느 정도 정돈된 모양. [6] 물론 정말 길면 요약하거나 중략하는 경우가 있다. [7] 원문이 궁금하다면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에 들어가 비교해보자. 훨씬 더 어려운 말들로 기록되어 있고, 끔찍하다 싶을 정도로 길다. [8] 그것 때문에 권이 뒤로 갈수록 글자수의 압박이 심해져 이에 대한 비판도 있다. [9] 인터뷰에 따르면, 실록 내용을 되도록 그 자체로 전달하고 싶다는 욕망과 자신의 게으름(?)도 한몫했다고. [10] 숙종실록 편에서는 별 감흥이 안들었는지 그냥 숙종시대의 주요 정치가들이 80 넘게 장수한 사람이 많아 건강비결을 알아보는게 어떨까 하고 썰렁한 후기를 넣고 타매해도 할말 없다고 덧붙였다. 헌종-철종실록 편에서는 이제 2권 남았다는 소회를 일러스트로 남겼다. [11] 오히려 순조실록에서 자주 나온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12] 문정왕후 재평가는 무리수라는 평가도 있다. [13] 그리고 외모부터가 다른 대비들은 후덕하거나 카리스마있게 나온다면, 명성황후는 외양도 좀 차갑고 비호감적으로 그렸다. 그리고 매천야록 등에 언급된 사치 연회 야사를 어느 정도 긍정하는 것으로 보아 결코 긍정적 이미지는 아닌 듯 하다. [14] 다만 명성후라는 추존적 표현이 당대가 아직 왕조였음을 생각하면 좀 애매하니 그런 식으로 소개한 것일 수도 있다. 일단 작가의 민씨를 보는 시각이 우호적이지 않은 듯하나, 그런 시각이 그대로 등장 인물 소개란에 반영됐다고 보기는 힘들 듯. 20권에서 '실제 황후로 산 적은 없다'고 간략히 해설해 준다. [15] 이순신 장군이 파직되자 패러디한 장면이다.(…) "앗싸! 성공!" 하면서 하이파이브를 하다가 "흥!" 하며 돌아서는 장면은 영락없는 슬램덩크의 패러디. [16] 아들을 잡으러 온 금부도사와 선전관을 베고 패러디한 장면이다. [17] 단 이때 연산군도 미리 등장했는데 연산군은 바로 다음권이기 때문인지 정면에서 얼굴을 그렸다. [18] 하지만, 경향신문에서 세조의 어진을 모사한 이당 김은호의 증언에 의하면, '1928년 당시 작업했었던 세조의 어진에 거의 수염이 없었다'는 증언을 했던 바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세조 문서를 참조. [19] 대표적으로 왕의 남자에서 연산조에 구형 사모뿔을 신하들이 착용하고 나온다거나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작중 기준으로 100년도 전에 바뀌었을 구형 사모뿔을 달고 나온다거나... [20] 성종의 친정 이후에 바뀐 사모뿔로 그린다. [21]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1권 인조 1년 3월 15일 을사 3번째 기사 - 상이 하교하였다. "대비께서 지금까지 흰옷을 벗지 않으시니 몹시 미안하다. 의복을 바꿀 시일을 예조로 하여금 속히 가려 정하게 하라." [22] 掌議: 학생회장 [23] 사실 참고문헌 잘 찾아보면 한권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도 있다. [24] 추천사 참고 [25] 추천사 참고 [26] 물론, 해당 작품이 어디까지나 '만화'인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 '만화'를 주워 보고 역사관을 구축했음을 주변에서 알게 되면 '학식 수준이 얄팍하고 덜떨어진 한심한 인간'으로 취급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에, 부끄러워서 남들 앞에서 대놓고 표현하진 못하지만(...) [27] 질문 어휘를 위키에 수록하면서 가다듬은게 아니라, 진짜로 질문 내용이 이거다. [28] 실제로 박시백의 정조실록,순조실록 이후로 대중의 정순왕후에 대한 시선은 상당히 달라졌다. [29] 영창대군 임해군을 죽인 일에 대해 광해군의 의중이 반영되지 않았으며 서인 측이 반정 후에 얻은 거짓진술이라는 의혹이 조금 있다. [30] 졸기에서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놓은 부왕 선조의 책임을 논하지만 이내 마지막에는 "극복하지 못한 본인의 몫"이라며 못을 박는다. [31] 진보 정치권에서는 노론 음모론을 상당히 신봉하는 편이다. [32] 정조는 성리학 근본주의자 성향이 짙었기 때문에 대중에게 알려진 나라 시스템을 바꾸려 했던 개혁 군주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33] 태종은 왕 중에서 유일하게 네 권에 걸쳐 비중있는 역할로 출연하였다. 4권 세종문종실록에서의 인물소개에서는 "1권 조연 2권 공동 주연 3권 단독 주연 4권 조연...어때, 화려하지?"라고 말하고 있다. 이성계, 대원군, 고종도 세권 정도 나왔을 정도니... 다만 어떤 의미에서는 태종이라는 사람이 조선사에 남긴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34] 태조, 태종이 주연정종은 자기 재위기인데도 조연이다. [35] 중종의 떨떠름한 표정과 미간의 점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36] 이 두 왕의 재위기간을 합치면 29년으로 정조시대보다 조금 더 긴 시대임에도, 세도정치로 실록이 부실해져 한 권 분량 채우기 힘들었다고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정조 실록은 54권, 순조 실록은 34권, 헌종, 철종은 16+15권.) 실제로 아편전쟁 미일화친조약 등 청나라와 일본 등 주변국의 개항(실록에는 짤막하게만 기록되어 있다.)과 조선시대를 태조 때 부터 전체적으로 정리하는 내용까지 들어가 있는데도 평균 분량으로 나온 다른 권과 두께가 비슷하니, 순수하게 헌종, 철종시대를 다룬 부분은 이전 권에 비해 적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단, 조선 역사 요약 부분이 분량채우기 고민에서 나온 건 아니라 이쯤에서 정리할 필요는 느꼈다고 밝히고 있다. [37] 19권에서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을 다룬 부분에서 통상수교는 하지 않지만, 서양 선박에게 필요한 물품은 지원하여 밖으로 내보낸다는 대목에서 "우리는 휴머니스트"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오는데, 말풍선에는 이 책의 출판사인 휴머니스트 출판그룹의 로고가 들어있고, 그 사람의 얼굴은 같은 출판사의 대표 김학원 씨의 얼굴을 따서 그린 것으로 보인다. [38] 사실 선조와 광해군 사이에 간격이 약간 뜬 걸 보면 여기를 책장의 틈으로 예정했던 듯하다. 틈이 너무 작아서 그렇지... [39] 특유의 삐딱함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40] 태종, 세조, 선조, 영조, 중종(조선) [41] 단종은 예외. [42] 태조, 정종, 예종, 인종, 광해군, 경종 [43] 이성계는 파란 곤룡포 어진이 국보로서 워낙 유명한데 해당 어진이 그려진 시절은 태상왕 시절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만화에서는 세자들이 청색 곤룡포를 일관되게 입는 것으로 설정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원래는 왕과 같은 붉은색 곤룡포였으나 선조 때 바뀌었다. [44] 선조편의 부실함에 대한 비판을 이승만 추종자의 궤변이라는 식으로 인신공격이 가해졌었다. [45] db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조선왕조실록은 이렇게 발매된 cd를 사서 봐야 하는 것이었는데, 막 출판되었을 당시 가격은 무려 600만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이었다. 하지만 너무 비싼 가격 때문에 당연히 다들 정품이 아니라 해적판을 사면서 50만원짜리 보급판이 다시 출시되었다. [46]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일부 도서관에서 아동용으로 디자인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4권을 찾아볼 수 있다. [47] 아무래도 정치의 중심에 있는 대통령인지라 정치사가 참고가 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