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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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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ST )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연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
세기
19세기 20세기 21세기 22세기 23세기
밀레니엄
제2천년기 제3천년기 제4천년기
세계 각 지역의 표기
서력기원 2003년
대한민국 85년
단기 4336년
불기 2547년
간지 임오년 - 계미
주체 92년
대만 민국 92년
일본 헤이세이 15년
( 황기 2663년)
이슬람력 1423년 - 1424년
히브리력 5763년 - 5764년
페르시아력 1381년 - 1382년
에티오피아력 1995년 - 1996년
로마 숫자 MMIII

1. 개요2. 기후3. ' 국민의 정부' 마지막 해 & ' 참여정부' 원년4. 경기도 서울의 인구수를 추월하기 시작한 해5. 2003년 문화계
5.1. 변화기를 맞은 방송계5.2. 황금기를 보낸 영화계5.3. 스포츠계 e스포츠계
6. 사건
6.1. 실제
6.1.1. 1월6.1.2. 2월6.1.3. 3월6.1.4. 4월6.1.5. 5월6.1.6. 6월6.1.7. 7월6.1.8. 8월6.1.9. 9월6.1.10. 10월6.1.11. 11월6.1.12. 12월
6.2. 가상
7. 탄생8. 사망
8.1. 별들이 진 한 해
9. 데뷔10. 은퇴
10.1. 가요계10.2. 스포츠
11. 히트작
11.1. 드라마/시트콤11.2. 영화11.3. 애니메이션11.4. 가요11.5. 개그 코너11.6. 게임
12. 유행어13. 최초
13.1. 방송 프로그램 및 코너
13.1.1. 텔레비전13.1.2. 라디오
13.2. 인터넷 웹사이트
14. 출시 상품
14.1. 자동차14.2. 식음료14.3. 생활용품
15. 관련 문헌16. 달력

1. 개요

송년기획 KBS 영상실록 2003 (대한민국편)
2003년 서울
2003년 8월 15일 청주시의 모습
2003년 8월 15일 청주시의 모습 2
2003년 9월 10일 서울 서초구의 모습

2003년은 수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자 21세기와 제3천년기의 세번째 해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2003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우왕좌왕(右往左往)'이었으며,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선정한 2003년 올해의 한자는 '虎(범 호)'였다. UN은 이 해를 '세계 물의 해'로 지정했고, 재미 한국인들은 1903년 하와이 도착을 기준으로 '이민 100주년'을 맞이했다.

2. 기후

한편 이 해는 엘니뇨의 전형적인 기온을 띠었다. 그러나 2015년과 달리 비가 많이 왔으며, 여름철 기온이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 전반적으로 포근한 해였으며 전년도 12월부터 5월까지는[1] 평년보다 높았다. 특히 5월은 초여름 더위가 나타났다. 그러나 6월이 되자 일부 지역에서는 냉해가 발생할 정도로 이상 저온 현상이 나타났다. 여름은 폭염이 없는 시원한 여름이었다. 서울에서는 이 해를 마지막으로 2022년 현재까지 폭염일수가 없는 해는 나오지 않고 있다.[2] 또한 장마가 길어졌지만 2002년에 중부 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려 큰 피해를 봤던 것과 비교하면 200 mm를 넘는 기록이 없어 별 다른 특징이 없다. 이로 인해 10월에는 이상 저온이 이어졌다. 한편 추석 전후로 해서 태풍 매미 피해까지 겹쳤다. 때문에 남부지방에서는 명절 분위기를 망치고,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다만, 11월부터 이상 고온이 시작되어서 이듬해에는 일부를 제외하고 포근해서 전국 연평균기온 6위를 달성했다.

서울 기준 월별 평균기온은 다음과 같다.
연 최저기온 연 최고기온 연교차
-15.5 °C(0105) 32.2 °C(0805) 47.7 °C

3. ' 국민의 정부' 마지막 해 & ' 참여정부' 원년

파일:김대중 대통령 퇴임.png 파일:노무현 대통령 취임 2.png
김대중 전 대통령 퇴임 관련 뉴스(2월 24일)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관련 뉴스(2월 25일)
2003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재임기(~ 2월 24일)이자 동시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첫 해( 2월 25일~)이다.[3] 이 때문에 일부 정치평론가들 사이에선 2003년이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일종의 세대교체가 행해진 원년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1946년에 출생해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일제강점기를 경험하지 못했으며, 민주주의의 기틀이 완전히 정착된 1988년에 정계에 진출해 이전 대통령들과는 달리 독재 정부와 정치적으로 대립한 바는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 대통령 중에서는 최초로 팬카페를 가진 인물인지라 이미 2002년 즈음부터 노무현을 '신세대 정치인\'으로 지목한 바 있다.[4]

허나 이 해 2월에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초기부터 이라크 파병 찬반파동을 비롯해 검란 파동, 노무현 측근 비리의혹, 불법 대북송금 사건, 대선자금 불법 수수의혹, 한총련 합법화 논쟁, NEIS 파동, 배달호, 이용석, 김주익, 이경해 등 노동/농민운동가들의 잇따른 자살, 부안 핵폐기장 유치파동, 재독 좌파 사회학자 송두율의 국보법 처리문제 등 정치/사회적으로 온갖 혼란에 시달려왔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초반에 집권당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이란 신당을 만듦으로써 진보정당 구도가 재편되었다. 이외에도 대한민국의 이혼률이 역대 최대치를 찍은 해였는데, 그 이유는 카드 대란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또, 서울특별시에서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훈령으로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청계고가가 철거되고 청계천 복원공사가 시작되었던 해였으며, 9월에는 강원도 고성군에서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금강산까지 한번에 가는 길이 개통되며 금강산 육로관광 시대가 열렸고, 그동안 뱃길밖에 없었던 금강산 관광도 관광버스 한 번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행정구역상에도 큰 변화가 있었는데, 경기도에선 포천-양주 2개 군이 시로 승격되었으며 수원시 팔달구 매탄동, 영통동, 이의동, 원천동, 태장동이 영통구로 분구되었고, 충청북도에선 증평출장소가 괴산군에서 분리되어 군으로 승격, 충청남도에서는 계룡출장소가 논산시로부터 분리되어 시로 승격되었다.

미국에서는 대량살상무기 억제를 명분으로 ' 이라크 전쟁'을 벌여 빈라덴 지지자였던 독재자 후세인을 몰아냈지만 정작 대량살상무기가 발견 안 되어 세계 여론으로부터 "전쟁 왜 했냐"며 욕을 먹었고, 후세인 정권 붕괴 후 민간정부 이양을 둘러싸고 수니파-시아파 양측이 대립하고 미군에 대한 공격이 가해지는 등 혼란기로 접어들었다. 반면 일본 정부는 국가 유사시 자위대 투입이 가능한 '유사법제 3법'을 통과시켜 군사대국화의 기틀을 마련할 단초를 마련했다. 이 때문에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되면서, 9.11 테러 등으로 대표되는 세기말적 잔재가 완전히 종료되었다.

중국에서는 이 해 3월, 장쩌민 국가주석의 퇴임과 동시에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임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후진타오 주석의 임기가 시작된 이 해에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한-중 관계의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종합적으로 볼 때 대한민국에서의 2003년은 위와 같은 정치적 논란을 빼곤 큰 이슈가 된 사건이 유독 없었던 해이기도 한다.[5][6][7] 하지만 슬프게도 큰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대구 도시철도 1호선 화재 참사. 대구광역시 중앙로역에서 범인 김대한이 일으킨 대구 도시철도 1호선 화재 참사가 발생하여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던 해로 이때는 정말로 암울하고 비극적인 순간이었다.[8] 동시에 21세기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 직전 방화사고 징크스의 맥을 잇게 되었다.[9]

4. 경기도 서울의 인구수를 추월하기 시작한 해

2003년은 경기도 도민의 인구가 천만 명을 기록한 해이자, 서울특별시 시민의 인구를 완전히 추월한 해이다. 먼저, 2002년까지만 해도 경기도 거주 인구가 970~980만 명대로 1천만 명을 넘기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이 해에 들어서면서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 그리고 각 지방 소도시에서 거주하던 시민들이 경기도로 입경하는 경우가 많아져 이 해 2월에 공식적으로 경기도 천만 시대를 열었다.

이렇게 경기도 인구의 증가를 두고 여러 전문가들이 분석을 해보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출산에 의한 자연적 증가보다 서울의 비싼 집값과 전셋값 폭등을 피해 상대적으로 주거비가 싸고 교통 여건이 나쁘지 않은 경기도로 전입하는 등 사회적 환경이 크게 기인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서울특별시의 개발에만 집중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울특별시의 위성도시에도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져 경기도 인구가 천만 명을 기록했다고 주장하는 분석도 다수 존재한다.

이후 19년 후인 현재의 경기도 인구 수는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의 인구수를 다 합친 것보다 크다.

이는 많은 인구 유입으로 인해 신설된 남녀공학 고등학교가 기하급수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경기도에 있는 고등학교들은 공립학교 남녀공학인 경우가 90%이다.

5. 2003년 문화계

소위 ' 인터넷 소설'이 귀여니를 필두로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한 것도 이 해이다. 그 외에 와피스 사건, 팥죽송, 존나세, 엽기 국어듣기평가(전국욕설듣기평가), 연꽃소녀 같은 비범한 컨텐츠가 출현했던 해이기도 하다. 웹툰에서는 역사상 큰 획을 그은 해이기도 한데 강풀의 순정만화가 세로 스크롤 형식의 웹툰을 정립하고, 장편 웹툰도 다른 매체의 장편 작품들처럼 흥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외에도 가정용 콘솔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2의 한국 출시 1주년을 맞이하여 SCEK가 업소용 플레이스테이션 2를 정식으로 판매하기 시작했고, 영상등급물위원회에서 업소용 플레이스테이션 2의 사용가능 게임 지정이 발표되었으나 이전에 이미 영업 중인 대부분의 플스방들이 불법 영업소로 취급당하는 문제가 발생하여 한동안 분쟁이 이어지기 시작한 해이다. 또한, 도타가 만들어져 AOS 장르의 서막을 연 해이기도 하다.

5.1. 변화기를 맞은 방송계

2003년은 대한민국 방송가와 연예계에 큰 변화새로운 태동기를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가요계의 경우 1990년대 후반부터 인기를 끌은 1세대 아이돌, 가수들의 마지막 전성기였던 시기다. 2세대 아이돌들이 등장하기 전이었으며, 아이돌 그룹들이 힘을 못 쓴 대신 솔로가수였던 임창정, 이정현, 보아, 장나라 등이 여전히 건재했다. 음악시장 역시 불황기였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음반업계 측은 온라인 음원사이트에 강경하게 법적 대응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이 법정 투쟁은 음반업계에 유리했지만 이렇다할 대안이 없었다.

음반 시장에서는 기성 가수들 중 김건모가 8집을 내 총 52만장으로 당해 최고기록을 달성했고, 이수영은 5집으로 42만 5천장, 조성모는 39만 8천장 등을 각각 기록해 발라드 강세는 여전했다. 또 '가왕' 조용필이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 데뷔 35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어 폭풍 매진을 달성했다.

보이그룹의 경우 1990년대 후반에 데뷔했던 NRG, 신화,[10] god,[11] 클릭비, 2000년에 데뷔한 UN이 많이 활동했다. 그 중 NRG가 2년 만에 'Hit Song'을 통해 큰 인기를 얻어 각종 1위와 시상식에서의 본상을 수상하는 등 예전에 비하면 보이그룹계 전체적으로 부진한 성적이었어도 사정이 그나마 나았지만 걸그룹은 그야말로 암흑기 그 자체 였다. S.E.S., 핑클이 2002년을 끝으로 물러가면서 여러 기획사에서 걸그룹을 데뷔시켰으나 모두 실패했다. 심지어 아이돌 명가로 불리는 SM마저도 걸그룹 시장에 실패했으니 당시 얼마나 아이돌들의 암흑기가 심각했는지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본전을 뽑은 걸그룹이 베이비복스, 샤크라, 쥬얼리, 슈가였다. 이러한 걸그룹 암흑기는 2007년 카라, 원더걸스, 소녀시대가 데뷔하고 아이돌 전성기가 시작된 2009년 이전까지 약 5년간 이어졌다.

반면 지난해의 보아 장나라에 이어 이효리 이수영의 활약으로 인해 여성 솔로 가수들의 양강구도가 이어졌다. 먼저 이효리는 소위 '이효리 신드롬'이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로 그녀는 각종 가요프로그램에서 여러번의 1위 수상은 기본에 각종 가요 시상식들에서 대상 수상뿐만 아니라 그녀의 패션이나 춤, 노래 등이 대중에게 큰 관심을 넘어 신드롬을 일으키게 만들 정도로 이 2003년을 그녀의 해로 만들었다. 실제로 이효리는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과 KMTV 코리안 뮤직 어워드 대상 수상을 시작으로, 서울가요대상 대상, SBS 가요대전 대상, KBS 가요대상 대상 등 연말의 수많은 주요 가요시상식들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이수영은 자신의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인 '덩그러니'가 수록된 정규 5집이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그 해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이효리를 꺾고 대상을 차지하였다. 참고로 골든디스크 시상식 대상은 조성모가 수상하였다.

한편 임창정이 이해 6월 10집 앨범 "BYE"[12]를 끝으로 가수 은퇴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전 해 밝은 분위기의 'Sea Of Love'로 이름을 알린 플라이 투 더 스카이는 2000년대 발라드의 정석과도 같은 곡인 'Missing You'로 인기를 모은다.

또한 음치가수로 유명세를 떨친 이재수 2001년 서태지 Come Back Home을 패러디하여 그에 대하여 씁쓸하게 앨범 판매 금지라는 맛보았는데, 그는 음치가수 컨셉을 버리고 이재수밴드라는 이름으로 송대관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차표 한 장'과 발라드곡 '일기장', 자신의 처지를 나타낸 'Normal man', 'Game of pain', 그의 동생 이승주가 직접 작곡한 '미안해요'를 발표하여 뮤지션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하였다.

한편 이 해부터 본격적으로 음반시장이 쇠퇴하기 시작하여, 음원시장으로 완전히 판도가 바뀌게 된다.[13] 그 결과, 2003년 전체 음반판매량은 2002년에 비해 800만장 이상 줄어들었다.

방송계에서는 내부적으로 민주화의 진전이 전보다 폭넓게 보이기 시작한 때인데,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언론인 서동구가 KBS 사장으로 임명됐으나 그가 전년도 대선 때 노무현 캠프에 몸담았다는 이유로 노조가 '낙하산'이라 규탄하며 파업을 일으켜 서 사장을 퇴진시켰고, KBS 이사회 측은 시민사회단체와 언론단체의 의견을 수렴하여 진보 언론인 정연주를 사장으로 선임해 종전의 내리꽂기식 선임구조를 바꾸고자 노력했으며, 신임 사장 정연주는 전임 사장들과 달리 기자 및 프로듀서들의 제작/편성권을 자유롭게 보장해줬다.

시사/교양쪽에서는 공영방송 KBS가 보수/극우 세력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물현대사>, <미디어 포커스>, <생방송 시사투나잇> 등 진보적인 프로그램들을 잇따라 편성해 관영방송 이미지를 씻고자 했으며, 예능계에서는 일요일은 101%, 웃음을 찾는 사람들, X맨을 찾아라, 야심만만 같은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들을 준비하여 인기몰이를 했다. 특히 KBS2 간판 개그프로 <개그콘서트>는 심현섭, 박성호, 김준호, 김대희 등 기존 인기스타들의 SBS 이적에도 불구하고 '갈갈이 패밀리' 사단을 중심으로 인기를 이어나갔으며, 전년도 <도레미 트리오>, <박준형의 생활사투리>에 이어 <우비 삼남매>, <대단해요> 등 킬링코너를 배출해 무명이던 권진영을 스타로 만들어줬다.

그리고 방송 기술도 새로워졌는데, 특히 자막과 CG도 많이 발전을 해 바뀌었다. 특히 2001년 ~ 2002년까진 일부 방송에서 1990년대 중후반에 많이 쓰이던 휴먼엑스포체가 간간이 보였는데, 이 해를 기점으로 거의 사라졌다.

5.2. 황금기를 보낸 영화계

가장 한국 영화가 좋았던 시절. 가장 한국 영화의 창의력이 정말 굉장한 에너지를 보여주었던 시절하면 아무래도 2003년이 아닌가.(중략) 2003년은 정말 한국 영화의 화양연화 같은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동진[14]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들 중 하나인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이 개봉하여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특히 올드보이가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으면서 그야말로 영화계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해가 되었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장준환 감독의 데뷔작인 지구를 지켜라!도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며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비평적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그 외에도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장화, 홍련, 클래식, <질투는 나의 힘>, 여고괴담 3 - 여우 계단과 같이 다양한 장르의 수작들이 개봉하여 관객과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영화 팬들에게는 축복과 같은 해. 이동진 평론가는 2003년을 한국 영화의 화양연화라고 표현하였다.

그 한국 영화계 입장에서 2003년이 특히 의미 있는 것이, 바로 직전해인 2002년에 긴급조치 19호,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따위가 개봉하면서 자칫 잘못하면 한국 영화계를 붕괴시킬 수도 있었던 때였기 때문.[15] 한국 영화계에 상업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일도 있었는데 이 해 12월 실미도가 한국영화 최초의 천만 관객을 달성하며, 천만 관객 돌파 영화라는 한국 영화계의 새로운 기준점이 만들어졌다.

5.3. 스포츠계 e스포츠계

스포츠계에서는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이 당시 단일 시즌 최다 홈런 아시아 신기록인 56홈런을[16] 쳐낸 해로 이 해 가을 전국 야구장의 외야 관중석이 홈런볼을 낚아 채려던 잠자리채로 북적이기도 했다.[17] 아울러 어윤태 사장-유성민 단장- 이광환 감독 체제를 택한 LG 트윈스 6668587667을 찍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2000년 창단한 SK 와이번스가 창단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해이기도 하다. 정규시즌 한때 1위 자리를 꿰찼던 SK는 후반기 부진 끝에 4위로 포스트시즌 문턱에 턱걸이했으나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각각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를 2전 전승, 3전 전승으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올랐으나 정규시즌 우승팀 현대 유니콘스가 SK를 4승3패로 꺾고 3년 만에 왕좌에 올랐다.

미국 MLB에선 약체팀 플로리다 말린스가 노장감독 잭 맥키언의 주도 하에 팜 출신 선수들을 주축으로 WS까지 올라가 제왕 뉴욕 양키스를 꺾어 6년만에 트로피를 들었다. 반면 시카고 컵스는 14년만에 NLCS까지 가 WS 진출 기회를 노렸으나, 6차전 파울볼 사태 때문에 WS 진출을 13년 뒤로 미루고 말았다.

해외축구에서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사상 처음으로 이탈리아 팀끼리 만나 AC 밀란 유벤투스를 승부차기로 제압하고 통산 6번째 왕좌에 오르며 밀란 제너레이션의 부활을 알렸다. UEFA 컵 결승에서는 주제 무리뉴 감독의 FC 포르투 셀틱 FC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상징이었던 데이비드 베컴을 영입하며 갈락티코 군단의 절정을 이루었다. 러시아의 부호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FC를 전격 인수하며 첼시는 로만 체제를 시작하게 됐다. 여름에 200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프랑스가 개최되었는데 카메룬의 비비앙 푀가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하며 2005년 대회부터 2년 간격이 아닌 4년 간격으로 개최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e스포츠계에서는 대회에 많은 변화들이 생기는데 먼저 그동안 2002년 네 번의 정규시즌을 진행한 KPGA 투어는 MBC GAME이 정식으로 Stout MSL을 시작으로 MBC GAME 스타리그를 런칭시키면서 본격적으로 개인리그는 양대 리그 체제에 돌입한다. 또한 온게임넷 스타리그 2003 Mycube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최초의 로고와 엠블럼이 공대되면서 사용되었고, 스폰서 캐치프레이즈 사용 시작, 스타리그 오프닝에 사용될 선수들의 이미지를 직접 촬영하고 제작하기 시작하는 등 큰 변화가 일어났다. 또한 가장 큰 변화는 기존의 한빛 스타즈 아이디얼 스페이스의 양대체재하에 군소 프로게이머 단체가 통합되고 이후 동양 오리온, KTF 매직엔스, GO 등의 팀들이 하나둘씩 대두되고 팀 팬덤이 생겨나는 것으로 인해 온게임넷 프로리그, MBC GAME 팀리그가 생겨나는 등 본격적인 공식 팀단위대회가 시작되었다. 반면 기존의 공식 대회였던 GhemTV 스타리그는 GhemTV 방송국의 위기로 3차 대회까지만 진행되고 폐지되어 버리고, 훗날 GhemTV는 게임TV로 하반기에 재탄생 하게 된다. 그리고 역대 최대 규모의 이벤트 대회였던 KT-KTF 프리미어 리그도 이 해에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그런가하면 이 해 7월, 강원도 평창군이 동계올림픽 유치에 첫 도전을 하였던 해이기도 하였지만 아쉽게도 캐나다 밴쿠버에게 3표차로 탈락하였다.[18] 이 당시 IOC 위원으로 있었던 김운용은 IOC 부위원장 출마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방해공작을 펼쳤다는 논란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다.

6. 사건

6.1. 실제

6.1.1. 1월

6.1.2. 2월

6.1.3. 3월

6.1.4. 4월

6.1.5. 5월

6.1.6. 6월

6.1.7. 7월

6.1.8. 8월

6.1.9. 9월

6.1.10. 10월

6.1.11. 11월

6.1.12. 12월

6.2. 가상

7.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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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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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별들이 진 한 해

2003년은 유독 유명인들의 사망소식이 많이 들렸던 한 해였다. 영국의 록밴드 비지스 모리스 깁, STS-107 승무원 7명, 프랑스의 축구선수 알프레드 아스통, 홍콩의 영화배우 장국영,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가 육우당, 미국의 영화배우 캐서린 햅번, 독일의 영화감독 레니 리펜슈탈, 미국의 컨트리가수 조니 캐쉬, 엘리엇 스미스, 홍콩의 영화배우 매염방 등이 이 해에 사망했다.[34]

정/재계 인사들 중에서는 현대그룹 회장 정몽헌,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주인 서성환,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 교보그룹의 창업주인 신명호, 삼풍건설산업의 건물주 이준,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 여사, '허주' 김윤환 등도 이 해에 사망했다. 이 밖에 김승훈 신부, 여행가 김찬삼 등도 작고했다.

9.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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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은퇴

10.1. 가요계

10.2. 스포츠

11. 히트작

11.1. 드라마/시트콤

11.2. 영화


11.3. 애니메이션

11.4. 가요

11.5. 개그 코너

11.6. 게임

12. 유행어

13. 최초

13.1. 방송 프로그램 및 코너

13.1.1. 텔레비전

13.1.2. 라디오

13.2. 인터넷 웹사이트

14. 출시 상품

14.1.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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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 1월은 상순과 하순의 한파로 조금 낮았다. [2] 다만 범위를 8월로 한정하면 2022년 8월의 최고 극값이 32.9도를 기록하면서 아슬아슬하게 폭염일수가 기록되지 않은 8월이 되었다. [3] 따라서 2003년 출생자들 중 2월 24일까지 출생한 자들은 국민의 정부 시대 출생, 이후 출생자들은 참여정부 시대 출생으로 갈려 미묘한 시대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4] 다만, 삼김시대의 마지막인 김종필 의원이 아직 현역이었고, 중진 의원들이 다수 당선된 제16대 국회가 유지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2003년을 대한민국 헌정사 변화의 원년으로만 판단하기에도 어렵긴 하다. [5] 물론 앞뒤인 해 2002년 2004년에 워낙 큰 사건들이 많아서 그 사이에 낀 2003년이 묻힌 감도 없진 않다. 물론 앞의 해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개최와 4강 진출 등 좋은 일이 많았으나 뒤에 해는 안 좋은 일들만 연속적으로 터졌다. [6] 여담으로 3자로 끝나는 해가 사건사고가 비교적 적은 해이며 2013년도 2010년대 중 사건이 비교적 적었다. 그러나 4자로 끝나는 해의 사건이 매우 크다. 대표적으로 이듬해와 위에 언급한 2013년 다음에 따라오는 해 역시 사건사고가 많았던 해로 기억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해상 사고 역시 이 해에 발생하였다. 대다수가 행운이라 생각하는 7자로 끝나는 해 역시 그다지 좋지 않았으며 1950년 이후 현재까지도 역대 가장 최악이라 불리는 가 있다. [7] 비슷한 경우로는 1998년이 있다. 전년도인 1997년은 충격적인 엽기적 사고들도 많이 일어나고 기업이 연쇄적으로 부도가 일어나더니 결국 IMF가 발생했고, 다음해인 1999년은 1000년도의 마지막답게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워낙 앞뒤 해가 눈에 띄여서 많이 묻힌 감이 심하다. [8] 대한민국의 건축 안전을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바꾸었다면, 대한민국의 철도 안전은 이 사건 이후로 크게 달라지게 된다. [9] 2003년 2월 18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 화재 참사, 2008년 2월 10일 숭례문 방화 사건, 2013년 2월 17일 종로 인사동 식당밀집지역 화재, 2017년 5월 6일~9일 2017년 5월 강릉-삼척-상주 산불, 2022년 3월 4일~13일 2022년 3월 울진-삼척 산불 [10] 단 이 시기의 신화는 SM과 재계약을 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는 등 그룹이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11] 2003년 상반기 조금을 제외하고는 아예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다음해인 2004년에는 멤버인 윤계상이 탈퇴하는 일이 벌어지는 등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12] 임창정 대표곡 중 하나인 "소주 한 잔" 이 수록된 앨범이다. [13] 사실 밀리언셀러는 2001년을 끝으로 막을 내렸으나, 2002년까지는 밀리언셀러 앨범은 없었어도 월드컵으로 인한 가요계 불황, 무료/불법다운 증가 등 여러가지 요소가 겹쳤었고 또한 앨범이 꽤 팔리던 때였다. [14] 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 #29 [15] 하지만 장준환 감독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가 잘못된 마케팅 때문에 손해를 봐야만 했다. [16] 이 기록은 10년 뒤인 2013년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60개의 홈런을 쳐내며 경신하게 된다. [17]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즌 이후부터 야구장에 잠자리채를 가져오는 행위는 금지됐다. 경기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물건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8] 1차 투표에서 앞서서 유치를 이루는 듯 하였으나 2차 투표에서 밴쿠버에 밀려서 역전패로 결국 탈락하였다. [19] 본격적 사용은 2004년부터. [20] 첫 적용대상은 전임 주석 후진타오. [21] 원래 8명이 사망했으나, 몇달 뒤에 사망자 1명이 추가되어 9명으로 늘어남. [22] 이렇게 되면서 수원역은 1호선은 29년만에 종착역 지위를 잃게 된다. [23] 그 후 2013년 어버이날 SK 와이번스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10점차 역전승으로 최다점수차 역전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24] 그리고 17년 후 이 날, KIA는 현대의 뒤를 이어 수원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kt wiz와의 수원 원정경기에서 kt의 2020 시즌 첫 영봉승의 제물이 되었다. [25] 이 사고는 사고 그 자체보다 아이가 선로변에서 놀고 있었는데도 이를 방치했을 뿐만 아니라 사고 후 김행균 씨에게 감사나 사과 한 마디 없이 자리를 뜬 막장엄마 때문에 국민들의 분노를 격발시킨 사고였다. [26] 10년 뒤에 일본 야쿠르트의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60홈런을 기록하면서 깨졌다. [27] 공교롭게도 해당년월일이 뽀로로의 탄생년월일이다. [28] 이 영화가 개봉되면서, 도시에서 구조물을 이용해 맨몸 스턴트를 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 국내에서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 영화의 첫 개봉은 2001년 4월 4일 프랑스이다. [29] 공사기간: 2000년 5월 22일~ 2003년 12월 30일 [30] 현 서울역사의 영업 시작은 2004년 1월 1일. [31] 8월 1일부터 8월 5일까지의 5일간을 다룬다. [32] 4월부터 8월까지의 4개월간을 다룬다. [33] 정확히는 목 수술을 위해 쉬는 것이고 이후 변신을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작에서는 이후 16세에 정식으로 자기 이름으로 재데뷔한다. [34] 특히 장국영과 매염방의 죽음 중 홍콩을 넘어 아시아 사회를 공황 상태에 빠트릴만큼 충격적인 죽음으로 각인되었다. [35] KBS2 재방영 [36] 2003년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우수 뮤직비디오 작품상 수상곡 [37] 이영현의 솔로곡. [38] 사실 다른 엽기송도 히트를 치긴 했지만 그 중에서도 숫자송과 당근송, 우유송은 1990년대~2000년대생이라면 거의 누구나 알 정도로 파급력과 인지도가 굉장하다. 물론 2020년대인 지금은 핑크퐁에 밀려 인기가 다소 떨어졌지만 그래도 유튜브 밈이나 유치원 학예회 등으로 쓰일 정도로 여전히 인기가 높은 편이다. [39] 2003년 MBC 최고인기가수상 수상곡 [40] SBS 드라마 야인시대 2부의 메인 테마곡이다. [41] 2003년 KBS 가요대상 대상/SBS 가요대전 대상/서울가요대상 대상/KMTV 대상/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 수상곡 [42] 두 노래 모두 2001년에 발표되었다.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은 영화 클래식, <보물>은 영화 선생 김봉두 삽입곡으로 유명해졌고, 그 중 <보물>이 2006년 개그콘서트 마빡이에 다시 사용되었다. [43] 2003년 골든디스크 대상 수상곡 [A] Absolution 수록곡 [A] Absolution 수록곡 [46] 개그콘서트 - 봉숭아 학당의 '노통장'. [47] 코미디하우스 - 3자 토론에서 자주 사용했다. [48] 6년 후인 2009년 개콘 남성인권보장위원회에서 개그맨 박성호가 이 발언을 따라했다. [49] 이쪽은 폭소클럽에서 나온 유행어이다. [50] 극 중 어린 장금 역 [51] 2003년 5월 8일 해피투게더에서 처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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