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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4 01:46:39

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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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개요2. 역사 속 권신들
2.1. 한국사
2.1.1. 삼국시대 ~ 후삼국시대2.1.2. 고려2.1.3. 조선
2.2. 일본사2.3. 중국사
2.3.1. 하상주2.3.2. 춘추전국시대2.3.3. 한나라2.3.4. 삼국시대2.3.5. 서진, 동진2.3.6. 남북조시대2.3.7. 수, 당2.3.8. 요2.3.9. 송2.3.10. 원2.3.11. 명2.3.12. 청
2.4. 기타 지역
2.4.1. 고대2.4.2. 중세 ~ 근세2.4.3. 근현대
3. 대중매체4. 권신 역을 주로 맡는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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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권신()이란 전근대에 왕조에서 신하로서 권력를 휘두르던 권력자를 가리킨다.

단순히 권력이 많거나 직책이 높은 신하들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의도되거나 설계된 바 그 이상으로 신권 왕권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큰 경우나, 독자적인 권력 기반이나 군주의 총애를 믿고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면서 통제하기 어려웠던 신하를 가리킨다. 가령 조선의 의정부 정승들은 모두 국정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법제상 권력이 보장된 자리이므로 권신이라고 지칭하지는 않는다. 또 단지 직책만 높을 뿐 실권은 적은 경우도 많았다.

권신은 권력자의 속성에서도 특히 복합적 인성 부적격(특히 불충)을 강조하는 용어이다. 반대로 복합적 인성 적격(특히 충성)을 강조하는 용어로는 중신(重臣)이 있다. 쉽게 말해 똑같이 권력을 장악해도 좋은 놈이면 중신이고 나쁜 놈이면 권신이었다는 것이다.[1] 예를 들면 제갈량은 사실상 황제 대신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촉한의 국정을 장악했지만 전근대에는 제갈량을 중신이라고 했지 권신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제갈량의 충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고 같은 관료 조직이나 피지배자 사이에서의 평가가 우수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 관이오, 악의 등이 있다.

제갈량의 사례에서 보듯 이러한 평가는 주관적인 가치판단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아, 조선시대의 경우 수양대군 계유정난으로 김종서를 비롯한 당시 정치 지도부를 숙청하면서 그들이 권신이라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서서는 김종서에게서 권신이라는 오명이 지워지기도 했다. 특히 붕당정치 시대에는 각 붕당의 리더에 대한 평가에 있어 권신이냐 중신이냐를 놓고 붕당끼리 팽팽히 대립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대간에게 권신으로 낙인찍히는 경우가 많았다. 붕당은 대간을 중심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김조순은 이러한 과정에서 평가가 나뉘게 된 케이스로, 본인도 권력을 어느 정도 절제하기는 했지만 붕당의 시대가 끝나고 세도정치 시기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대간에 의해 중신으로 칭송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세도정치의 발단을 만든 장본인으로서 사실상 권신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권신들은 그 특성상 크든 작든 군주의 권력과 권위를 침범하게 되어있어서 숙청당할 때 보통 역적 타이틀을 뒤집어쓰게 된다. 반면 역으로 권신의 권세가 강해지다 못해 대세가 완전히 권신에게 흐르면 찬탈이 일어나기도 한다. 왕조 국가라면 일단 기본적으로 신하가 ' 군주'를 진심으로 섬기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데다, 권신들의 경우 절대 다수가 군주의 권력을 침해하고, 이에 따른 부작용이 생기기가 매우 쉽기 때문이다.

군주제의 특성상 외척 출신이 권신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경우에도 예외가 있는데 군주의 의도적인 외척 견제로 권좌에서 밀려나는 경우도 많이 존재한다.

그 밖에는 개국공신이나 그 후손들이 권신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개국초기에는 왕조의 기틀을 다지기 위하여 대숙청이 일어나는 경우도 빈번하다. 한나라 유방의 예가 유명하며 그 밖에도 월나라 구천, 명나라 주원장도 유명하다. 처음에는 군주와 협력하다가도 장기적으로 권신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리미리 싹을 잘라두는 것이다. 이런 일은 왕조국가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일어나며, 싹을 제대로 자르지 못했거나 자칫 싹을 자르는 사람이 권력을 장악해버리면 부패가 시작되기에 상당히 많은 국가가 이런 부패 청산 및 권력 정리 과정에서 권력을 잘못 이양하여 생긴 독재국가로 시작하는 케이스가 많다.

권신이라도 해도 사실 군주의 손바닥 위였던 경우도 많다. 특히 군주가 한국사에 유래없는 절대권력을 지녔던 조선시대의 권신들이 이런 경우가 많았는데, 권신에게 권력을 쥐어주고, 욕받이를 실컷 시키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숙청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2] 조선시대의 권신이 유독 많은 이유이다.

오늘날에는 사람에 따라 용어의 의미를 폭넓게 해석하여 김종서, 흥선대원군, 제갈량같이 군주가 어려 선대 군주의 유탁을 받은 고명대신이나 군주를 대신해 섭정을 맡는 경우에도 권신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사극에서는 그야말로 최종보스의 위엄. 보통은 이미지상 악역으로 더 많이 나온다.

2. 역사 속 권신들

2.1. 한국사

2.1.1. 삼국시대 ~ 후삼국시대

2.1.2. 고려

2.1.3. 조선[6]

2.2. 일본사

2.3. 중국사

2.3.1. 하상주

2.3.2. 춘추전국시대

2.3.3. 한나라

2.3.4. 삼국시대

2.3.5. 서진, 동진

2.3.6. 남북조시대

2.3.7. 수, 당

2.3.8.

2.3.9.

2.3.10.

2.3.11.

2.3.12.

2.4. 기타 지역

2.4.1. 고대

2.4.2. 중세 ~ 근세

2.4.3. 근현대

3. 대중매체

권신 겸 간신은 굵은 글씨 표시.

4. 권신 역을 주로 맡는 배우

당연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중견 배우들이 맡는 경우가 절대 다수이다. 가끔은 젊은 배우들이 맡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엔 대부분 '권세만 믿고 날뛰는 찌질이' 역으로 나온다.


[1] 따라서 누군가를 권신이라 부르는 것은 '저 사람이 역모를 꾸미려 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간주되었다. [2] 유자광, 조광조, 정철, 홍국영 등. [3] 대표적으로 삼국지에 나오는 후한 헌제가 유명하다. [4] 수양대군도 유명하지만, 수양대군은 출신 성분부터 왕족에다가 훗날 군주인 세조가 되었기 때문에 예외. [5] 물론 인종이 원해서 한 결혼이 아니라 이자겸에 의해 강제로 한 혼인이었고, 후에 이자겸을 숙청하고 난 후 이모 두 명은 폐위된다. [6] 여타 조선의 주요인물에 대한 내용은 조선/주요인물 문서를 참고하라. [7] 사병 혁파를 주장한 사람들을 일컬어 '한 덩어리 고기' 같다고 했다. [8] 이 일파에는 수양대군 포함한 종친들은 당연하고 이후에 사육신에 포함되는 집현전의 신진관료들까지 모조리 포함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진급 불만이다. 어린 군주 주변을 세종 시기부터 활동하던 노대신들이 둘러싸고 있으니 그 이하층에서는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자세한 것은 계유정난 참고. [9] 일례로 명종 21년의 기록을 보면 종친인 경양군이 처가의 재산을 빼앗으려고 서얼 처남을 꾀어 죽인 뒤 강물에 던져버린 사건이 있었다. 당시 군주인 명종은 자신의 종형이 간여된 일이므로 이를 조용하게 넘기려고 정철을 설득시켜 논박을 중지하도록 하였지만 정철이 명종의 요청을 거부해 명종의 눈 밖에 나서 파면되고 한직을 전전하게 된 적이 있었고, 선조에게도 '아무리 청천벽력과 같은 진노가 계시더라도 신의 말씀은 다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해 분노한 선조에 의해 삭탈관직당한적도 있다. 이런 면모와 더불어 이발을 위시한 동인들과 사이가 좋지 못해 붕당 간의 충돌을 막으려 한 이이가 자주 정철을 설득했었고 정여립의 난 때는 정개청과 이발을 비롯한 여러 동인계 인사들을 가혹하게 대했다. [10] 허적과 김만기, 김만중 형제는 인척이기도 하다. [11] 정확히 말해서는 그의 삼촌인 김우명이 바로 숙종의 외조부이고 숙종의 모친 명성왕후의 친사촌오빠다. 따라서 엄격히 말하면 숙종의 외삼촌은 아니고 외당숙이다. [12] 이로 인해서 남인 재집권 초반기에는 권대운, 목내선, 김덕원 쪽에 붙어있는 조정 대신들과 남인 중진들이 많았지만 중반기 이후 민암 쪽의 세력이 강해진다. [13] 백제계 도래인이란 주장이 있지만 아직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많다. 자세한 건 소가씨 참조 [14]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 에도 막부 [15] 일본의 쇼군들은 그 자체가 권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국의 군주인 천황을 마치 입헌군주제 국가의 군주마냥 상징적 국가원수로 만들어 놓고 막부의 쇼군들이 실권을 쥐었으니 쇼군 그 자체가 사전적인 의미의 권신이라 할 수 있다. [16] 그렇지만 쇼군들도 전부가 권력을 휘두르진 못했다. 물론 유능한 이들이야 권력을 행사했지만 쇼군들도 정치력이 부족해서 부하들이나 또다른 권신인 싯켄이나 간레이들에게 휘둘린 쇼군들도 많았다. [17] 일부 삼국지 덕후들에게 동탁, 조조, 사마의와 함께 소위 망탁조의라는 개념으로 묶이지만, 애당초 이 넷은 권신이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전혀 없는 인물이다. 전한을 무너뜨린 인물이고, 동탁, 조조, 사마의는 왕망 이후 200년 지나 후한 말기에 활약한 인물들이다. 게다가 사마의는 아예 유씨의 한나라가 아니라 조씨의 위나라를 무너뜨린 인물이다. 굳이 함께 묶일만한 인물은 후한을 무너뜨리는데 공헌한 동탁과 조조 정도지만 조조는 그래도 재평가론이 끊임없이 나올 정도로 동탁과는 차원이 다른 인물이다. [18] 난세에 능력을 바탕으로 공을 세워서 출세 후 권신화, 그러면서도 끝까지 국가를 배신하거나 말아먹지 않았고, 물러나야 할 때 잘 물러나서 천수를 누린데다 후세의 평가까지 좋다. [19] 본래는 술률평을 처단하고 술률노속의 관직도 박탈했지만 후에 다시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