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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2 16:03:42

변중량

卞仲良
(1345~1398)
파일:attachment/15-bsnmp.jpg
1. 개요2. 생애3. 기타4. 대중매체에서

1. 개요

여말선초 문신. 호는 춘당. 생에 시와 문장에 능하여서 <춘당유고>라는 문집을 남겼다. 조선 초기의 대신 변계량의 형인데 두 형제의 나이 차가 24살이나 난다.[1]

2. 생애

이성계의 이복형인 이원계의 사위이자 정몽주의 제자이다. 1392년 이방원 이제 등과 함께 스승인 정몽주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미리 눈치채고 이성계에게 문병가는 것을 말렸으나 정몽주는 정세를 살피기 위하여 이성계의 집에 다녀오다가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게 암살되었다.

이후 조선이 건국되자 조선에 입조해서 정도전의 당으로 활동한 것은 확실하다. 1398년 1차 왕자의 난 이후에도 전 신료들이 모두 이방원 밑으로 들어가 목숨을 보전하였는데 갑옷을 입지 않고 이성계를 지켜내었다고 하며[2] 결국 이방원에 의해 살해당했다.

3. 기타

4. 대중매체에서



[1] 심지어 변중량 위에 변맹량(卞孟良)이라는 형이 한 명 더 있다! [2] 당시 갑옷을 입었다는건 이방원의 편임을 의미했다. [3] 일례로 정도전에 대해서는 목숨을 구걸했다는 구절 바로 뒤에 '단검을 갖고 있었다'는 묘사가 있는 등 당일의 기사에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아서 심하게 윤색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많다. [4] 정몽주와 이성계가 대립할 때 이성계 형의 사위라 이성계 편에 서도 뭐라 할 사람 없음에도 스승과의 의리를 지켜서 암살 위험을 충고했고, 조선 조정에 출사하기는 했지만 태조가 최고시세 조준, 정도전에게 군권까지 내어주자 권한이 과도하다고 비판했다가 옥에 갇혔다. 왕자의 난 쯔음에는 정도전과 뜻을 함께 해 왕자들의 사병을 혁파할 것을 주장하고 이성계를 보호하려다 목숨을 잃었다. 왕자의 난이야 불시에 일어났으니 그렇다쳐도 정몽주를 구하려 할 때나 조준, 정도전을 비판할 때는 강약이 명확했다. 대체 어떤 기회주의자가 항상 지는 편과 손해보는 주장을 골라서 택한다는 말인가? [5] 개국파 편에 선 것마저도 변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륜, 권근, 성석린, 설장수 등 온건 성향이었으나 고려 멸망 이후에는 순응하고 새 조정에 출사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애초에 변중량은 스승인 정몽주를 해치거나 배반하는 행동을 하기는커녕 이방원의 정몽주 암살 계획을 탐지해서 정몽주에게 미리 알려주는 등 위기에 처한 스승을 살리려고 최대한 노력했으며 개인적으로도 이성계의 형 이원계의 사위로 매우 가까운 인척 관계였기 때문에 그 편에 설 명분은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