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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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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참가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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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 레이더스 현대 유니콘스
현재 참가 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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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현대그룹 삼청태현(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현대 유니콘스 2군 | 키움 히어로즈
역사 정보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구단 역사 역대 시즌 실업 현대 연고 이전
1994년 한국시리즈 1996년 한국시리즈 1998년 한국시리즈 (V1) 2000년 한국시리즈 (V2) 2003년 한국시리즈 (V3) 2004년 한국시리즈 (V4)
역대 감독 역대 주장 역대 1차 지명 선수 사건 사고 암흑기
세부 정보 선수단 등번호 유니폼 재계 라이벌 시리즈
경기장 숭의야구장(1996~1999) 수원종합운동장 야구장(2000~2007) 춘천공설운동장 야구장 원당 야구장(제2 홈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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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현대 유니콘스
Hyundai Unicorns
<colbgcolor=#007f55><colcolor=#fab93d> 창단 1982년 2월 5일([age(1982-02-02)]주년)[1]
해체 2008년 1월 7일([age(2008-01-07)]주년)
법인명 ㈜현대유니콘스
법인 설립 1987년 10월 14일([age(1987-10-14)]주년)[2]
상장 유무 비상장 기업
기업 규모 대기업
구단명 변천 삼미 슈퍼스타즈 (1982~1985)
청보 핀토스 (1985~1987)
태평양 돌핀스 (1988~1995)
현대 유니콘스 (1996~2007)
후신 키움 히어로즈[3]
주요 라이벌 - 재계 라이벌 시리즈
모기업 현대그룹
연고지 변천 인천광역시 (1982~1999)
서울특별시 (2000~2007) (연고권 없음)[4]
(사실상) 경기도 수원시 (2000~2007)[5]
홈구장 숭의야구장 (1982~1999)
없음 (2000~2007)[6]
(사실상) 수원 야구장 (1989~2007)[7]
2군 구장 원당 야구장[8]
해체 당시의 구단 사무국 (2007년)
구단주 공석[9]
구단주 대행 강명구
사장 김용휘
단장 정재호
감독 김시진
KBO 한국시리즈 우승 (4회)
1998년, 2000년, 2003년, 2004년
페넌트 레이스 우승 (3회)
단일 리그 1998년, 2003년, 2004년
양대 리그 2000년 드림
포스트 시즌 진출 (10회)
한국시리즈 1994년, 1996년, 1998년, 2000년, 2003년,
2004년
플레이오프 1989년, 1994년, 1996년, 2000년, 2001년,
2006년
준플레이오프 1989년, 1996년, 2002년
프랜차이즈 팀 기록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07f55><colcolor=#fab93d> 최고 승률 0.695
2000년 133경기 91승 2무 40패
최저 승률 0.188[10]
1982년 80경기 15승 65패
최다 승 91승
2000년 133경기 91승 2무 40패
최다 패 82패
1993년 126경기 34승 10무 82패
최다 관중 476,277명
1994년[11][12]
최소 관중 118,582명
2002년[13][14]
최고 FA 계약 3년 18억 원
2006년 송지만
}}}}}}}}} ||

1. 개요2. 구단 디자인
2.1. 엠블럼2.2. 유니폼2.3. 마스코트
3. 역사4. 팬
4.1. 인기
5. 응원가
5.1. 공식 응원가5.2. 비공식 응원가5.3. 리듬응원 및 선수 응원가
6. 역대 선수 및 인물
6.1. 주요 선수
6.1.1. 투수6.1.2. 포수6.1.3. 내야수6.1.4. 외야수6.1.5. 역대 외국인 선수6.1.6. 역대 등번호6.1.7. 해체 당시 선수단
6.2. 역대 구단주6.3. 역대 감독
7. 역대 기록
7.1. 구단 성적
7.1.1.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7.2. 개인 성적
7.2.1. 통산
7.2.1.1. 투수7.2.1.2. 타자
7.2.2. 단일 시즌
7.2.2.1. 투수7.2.2.2. 타자
8. 역대 캐치프레이즈9. 사건 사고10. 여담
10.1.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지 않았다면?
11. 관련 문서12.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KBO 리그에 소속되었던 2007년에 해체된 원년 프로야구단. 삼청태현의 역사를 마무리한 구단으로 넷 중 가장 긴 역사를 기록했던 구단이자[15]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16] 구단이었다. 연고지는 인천광역시 서울특별시·무연고[17] / (비공식) 경기도 수원시.[18] 1996년 취임해 팀 최후의 순간까지 함께 한 김용휘 단장[19] 이하 구단 프런트가 개념이 넘친 현장 지원으로 명성을 떨쳤고, 역대 감독은 김재박- 김시진이었다. 팀의 상징동물은 유니콘, 상징색은 녹색과 노란색.[20]

재계 서열 1위를 다투는 대기업이 야심차게 시작한 구단이었기에 초창기에는 그룹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재정적으로 풍족했지만, 2001년 정주영 회장의 사망 이후 현대그룹의 대분열로 인해 모그룹이 상당히 빈약해졌고, 운영 주체가 모호해져 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부채가 극심한 수준으로 누적되어 결국 2007년 시즌 종료 후 더 이상 운영을 지속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고, KBO의 관리 아래 이장석 대표의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인적 자원과 지명권을 인수해 법인을 해산하고 히어로즈로 재창단하였다.

별명은 투수 왕국. 태평양 돌핀스 후기 시절부터 좋은 투수진을 여럿 배출하던[21] 이 팀의 팀컬러는 현대 유니콘스로 팀명이 변경된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져 내로라하는 투수들이 정말 많았다. 정민태, 정명원, 위재영, 김수경, 임선동, 조용준, 장원삼 등이 현대 유니콘스에서 활약한 투수들이며 무려 4명의 투수신인왕을 배출했다. 1998년 김수경, 2002년 조용준, 2003년 이동학, 2004년 오재영.[22]

삼성 라이온즈와 더불어 쌍방울 레이더스와 포스트시즌에서 대결해본 두 팀 중 한 팀이다.[23]

2. 구단 디자인

2.1. 엠블럼

파일:현대 유니콘스 심볼.svg 현대 유니콘스 역대 엠블럼
파일:삼미 슈퍼스타즈 엠블럼.png 파일:청보 핀토스 엠블럼.png 파일:태평양 돌핀스 엠블럼(1988~1993).png 파일:태평양 돌핀스 엠블럼(1994~1995).svg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24] 태평양 돌핀스[25] 현대 유니콘스

태평양 돌핀스까지는 전신 구단들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엠블럼의 마스코트가 타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게 유지되어 왔지만 현대 유니콘스부터는 여느 다른 구단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엠블럼을 사용했다. 다만 보조 엠블럼에서는 삼청태와 동일하게 유니콘이 타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디자인을 사용했다. #

2.2. 유니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현대 유니콘스/유니폼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3. 마스코트

파일:attachment/1998년 한국시리즈/Example.jpg
파일:현대 유니콘스 마스코트 2001.jpg
파일:현대 유니콘스 마스코트 후기 버전.jpg
유니콘을 마스코트로 했으며 유니와 코니 둘이서 등장했었다.

또한 말 가면을 쓴 사람과 대결을 한 적이 있다.
파일:현대 유니콘스 2007.png

그렇게 2007년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등장하지 않는 줄 알았으나...
파일:청보 핀토스 마스코트 & 태평양 돌핀스 마스코트 & 현대 유니콘스 마스코트.jpg
2022년 올스타전에 오랜만에 등장했다.

3.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현대 유니콘스/역사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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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4.

2000년대 이후부터는 인기 구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팀으로 전락했지만 그 전까지는 이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꽤 있었고 유명인 중에서도 현대 팬을 자처하던 이들이 있었다.

2000년 연고지 이전 이후에도 줄곧 이 팀을 응원했던 유명인으로는 가수 겸 펀드매니저로 활동했던 김광진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인천광역시 출신의 배우 윤철형도 이 팀의 열성팬이었고 인천 출신인 류현진 또한 과거 이 팀의 어린이회원이었다. 기사에 나오는 두 번째 사진을 보면 친형 류현수씨와 함께 유니콘스 어린이회원 모자 착용 및 유니폼을 입고 있다. 류현진과 동기생인 이재원도 이 팀의 어린이회원이었는데 인천 연고팀 소속의 프로 선수가 되고 나서 현대 구단이 해체되니 만감이 교차했다고 자신의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쓰기도 했다.

반면 삼미 시절부터 이 팀의 열혈 팬을 자처했던 개그맨 지상렬, 염경환, 이혁재 등은 2000년 연고지 이전 이후 신생팀인 SK 와이번스로 응원팀을 옮기게 된다.

4.1. 인기

파일:2004년 한국시리즈 3차전 당시 현대 유니콘스 팬들과 치어리더들.jpg
2004년 한국시리즈 3차전 당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 모인 현대 유니콘스 팬들과 치어리더들

12년(1996~2007)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구단 역사에서 무려 8번(1996,1998,2000,2001,2002,2003,2004,2006)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그 중 5번의 한국시리즈 진출(1996,1998,2000,2003,2004),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1998,2000,2003,2004)을 이뤄낸 명문 구단이 됐지만 인기 측면에서는 타 팀에 밀렸던 비인기 구단이었다.

사실 현대도 1995년 말 태평양을 인수해서 인천에 터를 잡고 있던 1999년까지는 인천에서 인기가 꽤 높았던 팀이었다. 유니콘스 시대의 첫 해이자 돌풍을 일으켰던 1996년에는 47만5910명의 관중을 인천과 수원에서 동원하며 1994년에 태평양이 세웠던 프랜차이즈 단일 시즌 최다 관중 기록(47만6277명)을 깰 뻔 했다. 인천이나 수원에서 열리는 주말 홈경기는 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중이 많았고 어린이회원 모집 열기도 매우 뜨거웠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관중의 숫자가 30만대로 급감하더니 1999년에는 창단 첫 해의 절반 수준으로 홈 관중 수가 줄어들게 된다. 무엇보다 팀 역사상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했던 1998년에도 홈구장인 인천과 수원에서 31만766명의 관중을 동원하는데 그쳤는데 당시 현대의 홈구장 평균 좌석 점유율은 40%대에 불과했다. 결론적으로 포수 뒷쪽 지정석과 현대 쪽 내야 응원석에만 관중이 들어오고 나머지 블럭은 사실상 텅텅 비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 당시 중계 화면을 봐도 숭의야구장과 수원야구장의 외야 관중석은 대부분 비어있었다.

현대의 관중 동원이 인천에서도 하락세를 탔던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숭의야구장이 지나치게 낡고 협소했다는 점이다. 당시 숭의야구장은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거친 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보수 공사를 하지 않았다. 그나마 현대가 구단을 인수한 후 그라운드를 뒤엎고 배수 시설을 고친 뒤 인조잔디를 새로 깐 것이 유일한 보수 내역이었다. 더구나 관중석에 대한 시설 투자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는데 과거 청보 핀토스 시절부터 쓰던 관중석 의자를 계속 쓰다보니 어떤 좌석에서는 의자 지지대가 삭아서 부러진 곳도 있었다고 한다. 화장실 역시 군부대 훈련장이나 낙후된 시골 터미널에서나 볼법한 수준으로 낙후됐다

이렇게 더럽고 낡은 시설에 관중이 스스로 찾아올 리가 만무했기에 현대 구단에서도 경기장 관리권을 지닌 인천시청 측에 경기장에 대한 증축 및 전면 리모델링을 건의했으나 인천시 측에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일설에는 숭의야구장이 당국의 건축 허가를 받지 않고 지어진 불법 건축물이어서 인천시와 현대 구단 모두 어쩔 도리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어쨌든 심각하게 낡고 좁은 야구장을 시민들이 싫어했기에 열혈팬들이 아니고서는 관중들이 찾지 않는 경기장이 됐다. 다만 2002년에 문학 야구장이 개장한 점을 고려한다면 낡은 야구장 타령은 사실 변명에 불과하다. 야구장 짓는데 2년 가까이 걸리고 계획이 있었다면 수년 전부터 이야기가 흘러나왔을 것인데 현대가 이걸 모를리는 없었을 것이다.

둘째로는 1997년 말 찾아온 외환 위기의 여파다. 외환 위기로 인해 수많은 기업이 문을 닫고 근로자들이 대거 실직한 상황에서 여유롭게 야구장에서 경기 관람을 즐길 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구단의 모기업인 현대그룹은 자금력이 탄탄했지만 구단을 응원하는 팬들의 지갑은 얇아지다 못해 없어질 지경이었다. 하찮은 지출 내역도 모두 줄여야 하는 초긴축 경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축소되는 지출은 여가생활에 대한 지출이었다. 이 때문에 야구장으로 들어오는 관중의 숫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 IMF 여파는 현대라는 특정 구단만이 아닌 한국야구 전체의 큰 위기 였다. 1995년 KBO리그 창설 최초의 500만명 이상 및 평관 1만명 돌파 이후로 점차 줄어들다가 2000년을 기점으로 푹삭 주저 앉았다.

결국 상대적으로 인천보다 거대한 천만명의 인구를 가진 수도 서울로 가는 것이 관중 몰이에 적합하다는 2차원의 사고를 가지고 시도했던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천지역에서 흥행 지속이 어렵겠다고 판단한 현대 구단은 2000년 1월 연고지를 서울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현금 54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인천 연고권을 신생 창단팀인 SK 와이번스에게 넘기기로 했는데 이 결정이 결국 얼마 없던 유니콘스의 팬덤을 대거 박살내는 계기가 된다. 현대의 연고지 이전 계획이 언론에 공개되자 분노한 다수의 인천지역 야구 팬들은 현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새 인천팀인 SK를 응원하거나 아예 야구를 끊어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문제는 그 뒤의 일인데 구단 모기업인 현대전자의 살림이 어려워지고 당장의 구단 운영비에 여유가 없어진 현대가 SK로부터 받아서 기존 서울 2구단인 LG, 두산에게 줘야 하는 연고지 침해 보상금 54억원을 이미 구단 운영비로 다 써버렸다. 결국 기존 서울 연고팀들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현대는 서울 입성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인천은 물론 서울에서도 홈경기를 할 수 없게 되자 현대는 제2 홈구장으로 쓰던 수원야구장을 임시 홈구장으로 삼았다. 당시 현대는 야구장 안팎에 "수원 현대 유니콘스! 수원시민과 함께 뛰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걸며 수원시민들에게 다가서려 했지만 수원시민들은 현대의 이같은 행보를 오히려 냉대했다.

당시 수원시민들은 현대 유니콘스를 그저 "우리 동네에 잠깐 있다가 언젠가 서울로 갈 팀"으로 생각 할 수밖에 없었기에 당시 수원구장 관중석은 늘 비어 있었다. 더구나 당시 수원은 1996년부터 K리그에 참여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축구단의 인기가 막강했던 축구 도시였기에 수원시 입장에서도 뜨내기에 불과했던 현대에 마음을 줄 수 없었다.

결국 한때 막강한 자금력과 여러 스타 플레이어들을 보유한 명문 팀이었음에도 홈구장 시설의 낙후, 경제 위기에 따른 야구팬들의 경제력 악화, 구단 운영진의 실책 등이 겹치면서 팬들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지 못했던 비운의 팀이 되고 말았다.

5. 응원가

5.1. 공식 응원가


현대유니콘스 응원가
(사용년도 : 1996 ~ 2007)

(현대! 유니콘스~! 현대! 유니콘스~!)

이 함성 모아서 너희에게 주리라 이루자 신화창조를

우리의 희망을 모두 다 모아서 힘차게 달려 보아라

최강의 유니콘스[26] 꿈의 구단 유니콘스

지칠줄 모르는 너희의 용기

최강의 유니콘스 꿈의 구단 유니콘스

패기와 정열의 너희의 이름

현대 유니콘스 우리들의 이상이다

현대 유니콘스 우리들의 친구다

현대 유니콘스 너희를 사랑하리라

우리의 현대 유니콘스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1996년 창단 때부터 마지막 시즌인 2007년까지 계속 사용되었다.[27]응원가를 부른 사람은 디지몬 어드벤처 OP를 불렀던 홍종명이라고 한다. 출처

한 때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에서 응원가 관련 게시물의 댓글에 누군가가 ' 홍서범- 조갑경이 부른 것 같다'라고 개인적인 의견을 적은 것이 갤러리 내에서 와전된 후 꽤 널리 퍼져 사실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게다가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홍서범 LG 트윈스가 지면 다음날 집안 분위기가 개판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LG 트윈스의 광팬이다. 때문에 1996년 창단 당시 현대 구단에서 거액을 제시하며 응원가 녹음 제안을 했다고 하더라도 LG에 대한 충성심이 지극한 홍서범이 수긍을 했겠느냐는 의견이 있다.

서울 히어로즈 창단 초기에는 이 응원가의 현대! 유니콘스! 부분을 최강! 히어로즈!로 바꿔서 부르기도 했으나 원곡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여러 논란들이 겹치며 폐기처분돼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

5.2. 비공식 응원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연안부두(노래)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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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연안부두
(사용년도 : 1996 ~ 1999)[계승]

어쩌다 한번~ 오는 저 배는~ 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마음마다 설레게 하나~
부두에 꿈을 두고 떠나는 배야~
갈매기 우는 마음 너는 알겠지~

말해다오~ 말해다오~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빠라바라밤~ 빠바밤 빠라바라밤~ 빠바바밤~ 빠바바바바밤~)

바람이 불면~ 파도가 울고~ 배 떠나면 나도 운단다~
안개 속에~ 가물가물~ 정든 사람 손을 흔드네~
저무는 연안부두 외로운 불빛~
홀로 선 이 마음을 달래주는데~

말해다오~ 말해다오~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1979년 혼성그룹 김트리오가 발매한 대중가요.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부터 사용돼 인천 프로야구 연고팀을 상징하는 응원가인 만큼 현대 유니콘스도 이 응원가를 사용했었다. 전신 태평양 돌핀스 인수 후에도 전통을 이어받아 연안부두를 비공식 응원가를 사용했었고 2000년 연고지 이전 후로는 당연하게도 쓰이지 않았다. 여담으로 전신 팀 중 하나인 삼미 슈퍼스타즈 매각 당시와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이전 당시 성난 인천 야구팬들은 야구장 앞에서 연안부두를 부르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었다.

5.3. 리듬응원 및 선수 응원가

(정보 있는것들만)

6. 역대 선수 및 인물

6.1. 주요 선수

현역 선수 및 기타 야구인으로 활동 중인 경우에는 비고란에 표기하였다.

기준 현재 남아있는 현대 출신 현역 선수들은 총 4명이다.[29]

6.1.1. 투수

배번 이름 포지션 데뷔년도 삼청태현 소속기간 은퇴년도 비고
47 가내영 투수 1990(태평양) 1990~1995(태평양)
1996~1998(현대)
2003(KIA)
68 김동건 2004(현대) 2004~2005 2005(현대)
67 김민범 1992(태평양) 1992~1995(태평양)
1996~2007(현대)
2007(현대) 키움 히어로즈 원정기록원
50 김영민 2006(현대) 2006~2007 2021(SSG)
93 김익재 1991(OB) 1996~1999(현대) 1999(현대)
66 김선일(小) 2004(현대) 2004~2006(현대) 2006(현대)
45 김성태(투수) 2000(현대) 2000~2007 2014(넥센)
30 김수경 1998(현대) 1998~2007 2014(고양) NC 다이노스 1군 투수코치
11 김홍집(좌완투수) 1993(태평양) 1993~1995(태평양)
1996~2001.6(현대)
2003(한화) 부평구 리틀야구단 감독
48~34 노병오 2002(삼성) 2004~2007 2007(넥센) 키움 히어로즈 1군 투수코치
50 노환수 2003(현대) 2003~2007 2013(넥센) 수원시 야구레슨장 코치
57 류상문 2003(현대) 2003~2005 2005(현대)
29 마일영 2000(현대) 2000~2007 2015(한화) 한화 이글스 2군 불펜코치
93 박민주 2007(현대) 2007 2018 (NC) 야탑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38 박상진 2004(현대) 2004~2006 2006(현대)
60 박장희 1999(현대) 1999~2007 2008(우리) 두산 베어스 스카우트팀 차장
21 박정현 1988(태평양) 1988~1995(태평양)
1996~1998(현대)
2000(SK) 토론토 사회인 야구리그 (MPBL) 감독 겸 선수
49-27 박준수 2000(현대) 2000~2007 2012(KIA)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1 배힘찬 2002(현대) 2002~2007(현대) 2017(KIA)
23 신철인 2000(현대) 2000~2007 2010(넥센) 하남시 야구교실 운영
34 설의석 2001(현대) 2001~2005 2005(현대)
21 손승락 2005(현대) 2005~2007 2019(롯데) KIA 타이거즈 1군 수석코치
53 송선목 2002(현대) 2002 2002(현대)
14-19 송신영 1999(현대) 1999~2007 2017(한화) SSG 랜더스 1군 수석코치
29 안병원 1992(태평양) 1992~1995(태평양)
1996~1998(현대)
2003(LG) 북일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47 오성민 2005(현대) 2005~2007 2013(두산) 김해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59 오재영 2004(현대) 2004~2007 2021(키움) 키움 히어로즈 잔류군 투수코치
33-59-55 이대환 2002(현대) 2002~2007 2015(NC)
65 이근용 1997(현대) 1997~1998,2001(이상 현대) 2001(현대)
65 이동학 2000(현대) 2000~2007 2014(LG) 상인천중학교 야구부 코치
42 이보근 2005(현대) 2005~2007 2021(kt)
11 이상열 1996(한화) 2001~2007 2015(SK) 포천 몬스터 투수코치
52 이상현[30] 2000(현대) 2000~2005 2008(우리)
25 이정호 2001(삼성) 2005~2007 2010(넥센) KIA 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
29-48 이현승 2006(현대) 2006-2007 2022(두산)
91-22 우원식 2004(현대) 2004~2005 2005(현대)
18 위재영 1995(태평양) 1995(태평양)
1996~2004(현대)
2007(SK)
56 윤성귀 2002(현대) 2002~2004,2007(현대) 2007(현대)
54 임선동 1997(LG) 1999~2007 2007(현대) 진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55 장원삼 2006(현대) 2006~2007 2020(롯데)
38 장태종 2006(현대) 2006~2007(현대)
2008~2009(우리)
2010~2011(넥센)
2011(넥센)
40 전승윤 2005(현대) 2005-2007 2022(kt)
61 전준호(1975) 1994(태평양) 1994~1995(태평양)
1996~2007(현대)
2011(SK)
28 정명원 1989(태평양) 1989~1995(태평양)
1996~2000(현대)
2000(현대)
20 정민태 1992(태평양) 1992~1995(태평양)
1996~2007(현대)
2008(KIA) 삼성 라이온즈 1군 투수코치
21-27 조규제 1991(쌍방울) 1998~2000
2003(이상 현대)
2005(KIA) 제주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51 조용준 2002(현대) 2002~2007 2010(넥센)
57 조용훈 2006(현대) 2006~2007 2013(넥센)
41 조웅천 1990(태평양) 1989~1995(태평양)
1996~2000(현대)
2009(SK) 두산 베어스 1군 투수코치
64 조창훈 1997(현대) 1997~1999 1999(현대)
98 최동진 1999(현대) 1999~2002 2002(현대)
18 최영필[31] 1997(현대) 1997~2001.6(현대) 2017(KIA) 용인예술과학대학교 야구부 감독
45 최원호 1996(현대) 1996~1999(현대) 2010(LG) 한화 이글스 1군 감독
31 최창호 1987(청보) 1987(청보)
1988~1995(태평양)
1996~1998(현대)
2002(LG) 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40 최환인 2002(현대) 2002~2004 2006(롯데) 동산고등학교 코치
16 홍민구 1998(현대) 1998~2001 2001(현대)
45 황두성 1997(삼성) 2001~2007(현대) 2011(넥센)
배번 이름 포지션 데뷔년도 삼청태현 소속기간 현재 소속팀
18 장효훈 투수 2007(현대) 2007 한화 이글스(2020~)

6.1.2. 포수

배번 이름 포지션 데뷔년도 삼청태현 소속기간 은퇴년도 비고
12 강귀태 포수 2002(현대) 2002~2007(현대) 2013(KIA)
35 김동기 1986(청보) 1986~1987(청보)
1988~1995(태평양)
1996(현대)
1996(현대) 천안 야구교실 운영
2 김상국 1986(빙그레) 1996~1997(현대) 1997(현대)
2 김동수 1990(LG) 2003~2007(현대) 2009(히어로즈)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32 김성준(포수) 1993(태평양) 1993~1995(태평양)
1996~1999(현대)
1999(현대)
12 김성태 1994(태평양) 1994~1995(태평양)
1996~1998(현대)
1998(현대)
2-56 김필중 1998(현대) 1998~2004 2004(현대) 제물포고등학교 야구부 배터리코치
15 도명진 1995(태평양) 1995(태평양)
1996(현대)
1996(현대) 부천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6 박경완 1991(쌍방울) 1998~2002(현대) 2013(SK) LG 트윈스 1군 배터리코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배터리코치
22 유선정 2005(현대) 2006~2007 2016(넥센) 여주ID 베이스볼 클럽 감독
26 임태준 2007(현대) 2007 2019( 질롱)
25 장광호 1992(태평양) 1992~1995(태평양)
1996~1999,2001(현대)
2001(현대) 덕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53 정재엽 2003(현대) 2003~2006 2006(현대)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4-37 허웅 2002(현대) 2002~2005 2017(SK)
44 허준 2005(현대) 2005~2007 2014(NC) 백송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6.1.3. 내야수

배번 이름 포지션 데뷔년도 삼청태현 소속기간 은퇴년도 비고
34 강기웅[32] 2루수 1989(삼성) 1996 1996(현대)
25-17 강정호 유격수 2006(현대) 2006~2007 2019(PIT) [33]
52 권도영 내야수 2003(현대) 2003~2007 2011(넥센) 키움 히어로즈 2군 수비코치
55 권준헌 3루수, 투수[34] 1990(태평양) 1990~1995(태평양)
1996~2003(현대)
2008(한화)
00 김경기 1루수, 3루수 1990(태평양) 1990~1995(태평양)
1996~2000 시즌 중(현대)
2001(SK) 우신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14 김남형 내야수, 우익수 2007(현대) 2007 2014(넥센) 한화 이글스 1군 타격코치
김동현 내야수 1996(현대) 1996~1999(현대) 1999(현대)
14 김승권 내야수 1995(한화) 2005~2006 2006(현대)
0-5 김일경 내야수(2루) 1997(현대) 1997~2007 2013(LG) LG 트윈스 1군 수비코치
3 김민우 내야수, 좌익수 2002(현대) 2002~2004 2016(KIA)
17 톰 퀸란 3루수 1987(토론토) 2000~2001(현대) 2002(LG)
31 박종호 2루수 1992(LG) 1998~2003(현대) 2010(LG) 백송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7 박진만 유격수 1996(현대) 1996~2004(현대) 2015(SK) 삼성 라이온즈 감독
12 스캇 쿨바[35] 3루수 1989(텍사스) 1998 1999(투손)
3 신현철 유격수, 2루수, 3루수 2006(현대) 2006~2007 2017(kt) 비봉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9 손차훈 2루수 1993(태평양) 1993~1995(태평양)
1996~1999(현대)
2001(SK) 한화 이글스 전력 강화 코디네이터
7 서한규 내야수 1998(롯데) 2002~2007(현대) 2007(현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야구부 감독
56 안명성 내야수 1996(현대) 1996~1998 1998(현대)
12-5 염경엽[36] 유격수 1991(태평양) 1991~1995(태평양)
1996~2000(현대)
2000(현대) LG 트윈스 감독
92-66 유덕형 내야수 2005(현대) 2005~2007 2007(현대) KBO 리그 심판
68 유재신 내야수[37] 2006(현대) 2006~2007 2020(KIA) 롯데 자이언츠 1군 주루코치
9 이근엽 3루수 1991(태평양) 1991~1995(태평양)
1996~1997(현대)
1999(쌍방울)
10 이숭용[38] 1루수, 외야수 1994(태평양) 1994~1995(태평양)
1996~2007(현대)
2011(넥센) SSG 랜더스 감독
37 이재주 포수,내야수 1992(태평양) 1992~1995(태평양)
1996~2001(현대)
2009(KIA)
4 이명수 1루수, 2루수 1989(OB) 1998~2001(현대) 2001(현대)
6 이용주 내야수 1995(태평양) 1996~2002(현대) 2002(현대) 제물포고등학교 감독
50 이유섭 내야수 2003(현대) 2003~2005 2008(우리)
3-31 장교성 3루수 2000(현대) 2000~2001,2004~2005 2006(두산) 건국대학교 야구부 코치
35 조승현 내야수 1997(현대) 1997~1999,2000~2006 2006(현대)
17 조중근 1루수, 좌익수 2001(SK) 2007 시즌 중 ~ 종료(현대) 2015(kt) kt wiz 2군 타격코치
58 조평호 내야수 2004(현대) 2004~2007 2018(NC) 안산중앙중학교 야구부 코치
16 정성훈 1루수 1999(해태) 2003~2007 2018(KIA)
6 지석훈 2루수, 3루수, 유격수 2003(현대) 2003~2007 2021(NC) NC 다이노스 2군 수비코치
7 차화준 내야수 2005(현대) 2005~2007 2017(삼성)
15-9 채종국 유격수, 2루수 1998(현대) 1998~2007 시즌 중 2008(LG) 부경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3 홍원기 3루수 1996(한화) 2006~2007 2007(현대) 키움 히어로즈 감독
배번 이름 포지션 데뷔년도 삼청태현 소속기간 현재 소속팀
34 오재일 1루수 2005(현대) 2005~2007 kt wiz(2024~)
94 정훈 2루수 2006(현대) 2006~2007 롯데 자이언츠(2010~)
13 황재균 3루수, 유격수 2006(현대) 2006~2007 kt wiz(2018~)

6.1.4. 외야수

배번 이름 포지션 데뷔년도 삼청태현 소속기간 은퇴년도 비고
25-36 강병식 1루수, 우익수 2002(현대) 2002~2007 2012(넥센) SSG 랜더스 타격코치
44 강영수(大) 외야수 1989(삼성) 1995(태평양)
1996~1997(현대)
1998(쌍방울)
33 강필선 외야수 1999(현대) 1999~2001 2003(롯데) 야로 베이스볼 클럽 코치
36 공의식 외야수 1993(태평양) 1993(태평양),
1996~1997 시즌 중(현대)
1997(쌍방울) 유원대학교 야구부 감독
14 김갑중 외야수 1993(태평양) 1993~1995(태평양)
1996~1998(현대)
1999(쌍방울)
16-33 김광림 외야수 1984(OB) 1997~1998 1999(쌍방울) 분당구B 리틀야구단 감독
42 김낙관 외야수 1997(현대) 1997~1999(현대) 1999(현대)
8 김인호 내야수, 외야수 1989(롯데) 1990~1995(태평양)
1996~2001(현대)
2001(현대)
8 김병철 외야수 1995(태평양) 1995(태평양)
1996~1997(현대)
1997(현대)
33 래리 서튼 외야수 1992(캔자스) 2005 2007(KIA)
44 박기범 외야수 1999(현대) 1999~2000,2003~2004 2004(현대) 동산중학교 야구부 감독
14 박우호 외야수 2002(현대) 2002~2004 2005(현대)
62 박재홍 중견수, 우익수 1996(현대) 1996~2002(현대) 2012(SK) MBC SPORTS+ 해설위원
27 서성민 우익수 1999(현대) 1999~2002 2002(현대)
36 소중형 좌익수 2002(현대) 2002~2005 2005(현대)
14 심재학 우익수 1995(LG) 2000 2008(KIA) KIA 타이거즈 단장
44-32 심정수 3루수, 좌익수, 우익수 1994(OB) 2001~2004 2008(삼성)
17-25 송지만 외야수 1996(한화) 2004~2007 2014(넥센) NC 다이노스 1군 타격코치
3 윤덕규 외야수 1985(MBC) 1992(시즌 중)~1995(태평양)
1996~1997(현대)
1997(현대)
44 윤인섭 외야수 2000(현대) 2000,2002 1992(현대)
32 오윤 외야수 2000(현대) 2000~2007 2015(한화) 키움 히어로즈 1군 타격코치
39 유한준 유격수, 외야수 2004(현대) 2004~2007 2021(kt) kt wiz 1군 타격 보조 코치.
46 이승주 외야수 2004(현대) 2004~2007 2013(고양)
39 이종욱 외야수 2003(현대) 2003~2005 2018(NC) NC 다이노스 1군 작전·주루코치
42-31 이택근 포수, 1루수, 외야수 2003(현대) 2003~2007 2020(키움) [39] 파주 챌린저스 타격 코디네이터
63 이학균 좌익수 1998(현대) 1998~2000 2000(현대)
51 이희성 외야수 1989(태평양) 1989~1995(태평양)
1996(현대)
1997(삼성)
47 장기영 유격수 2001(현대) 2001~2007 2018(한화)
62 장요상 우익수 2004(현대) 2004~2005 2005(현대)
46 장정석 외야수 1996(현대) 1996~2002 2004(KIA)
64 전근표 외야수 2000(현대) 2000~2007 2010(한화) SDF 투칸스 U-16 감독
1 전준호 좌익수, 중견수 1991(롯데) 1997~2007 2009(히어로즈) KBS N SPORTS 해설위원
8 정수성[40] 우익수, 중견수 1997(현대) 1997~2007(현대) 2013(넥센) LG 트윈스 1군 외야수비·주루코치
63 정현택 좌익수 1998(LG) 2001(시즌 중)~2002
(이상 현대)
2003(KIA)
17 정현희 외야수 1999(현대) 1999~2000 2000(현대)
13 조재호 외야수 1998(현대) 1998~2005 2012(SK) 상무 피닉스 야구단 주루코치
24 최만호 외야수 1997(현대) 1997~2000 2009(롯데) kt wiz 1군 작전·주루코치
46-33 최익성 외야수 1994(삼성) 2002~2003 2005(SK)
4 최현종 외야수 2004(현대) 2004~2005 2012(LG)
24 클리프 브룸바 3루수, 외야수 2001(텍사스) 2003~2004, 2007 2009(히어로즈)

6.1.5. 역대 외국인 선수

년도 이름 국적 포지션
1998 조 스트롱(Joe Strong) USA 투수
스캇 쿨바(Scott Coolbaugh) USA 내야수
1999 에디 피어슨(Eddie Pearson) USA 내야수
조지 카날리(George Canale) USA 내야수 시즌중 방출
브렌트 바워스(Brent Bowers) USA 외야수 ↖ 대체 영입
2000 톰 퀸란(Tom Quinlan) USA 내야수
에디 윌리엄스(Eddie Williams) USA 내야수 시즌중 방출
대릴 브링클리(Darryl Brinkley) USA 외야수 ↖ 대체 영입, 시즌중 방출
찰스 카펜터(Charles Carpenter) USA 외야수 ↖ 대체 영입
2001 케리 테일러(Kerry Tayler) USA 투수
톰 퀸란(Tom Quinlan) USA 내야수
J. R. 필립스(J. R. Philips) USA 내야수 시즌중 방출
오스카 엔리케스(Oscar Henriquez) VEN 투수 ↖ 대체 영입
2002 멜키 토레스(Melqui Torres) DOM 투수
코리 폴(Corey Paul) USA 내야수
다리오 베라스(Dario Veras) DOM 투수 시즌중 방출
마이클 프랭클린(Michael Franklin) USA 내야수 ↖ 대체 영입
2003 셰인 바워스(Shane Bowers) USA 투수
마이클 프랭클린(Michael Franklin) USA 내야수 시즌중 방출
클리프 브룸바(Cliff Brumbaugh) USA 외야수 ↖ 대체 영입
2004 클리프 브룸바(Cliff Brumbaugh) USA 외야수
마이클 피어리(Mike Fyhrie) USA 투수
2005 래리 서튼(Larry Sutton) USA 외야수
미키 캘러웨이(Mickey Callaway) USA 투수
2006 래리 서튼(Larry Sutton) USA 외야수
미키 캘러웨이(Mickey Callaway) USA 투수
2007 클리프 브룸바(Cliff Brumbaugh) USA 외야수
미키 캘러웨이(Mickey Callaway) USA 투수 시즌중 방출

6.1.6.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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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 해체 당시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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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역대 구단주

<rowcolor=#373a3c,#212121> 구단명 이름 재임 기간 비고
삼미 슈퍼스타즈 김현철 1982년~1985년 삼미그룹 회장
구단명 이름 재임 기간 비고
청보 핀토스 김정우 1985년~1987년 청보식품 회장
구단명 이름 재임 기간 비고
태평양 돌핀스 서성환 1988년~1995년 태평양그룹 회장
구단명 이름 재임 기간 비고
현대 유니콘스 정몽헌 1996년~2003년 현대그룹 회장
2003년 별세 이후 구단주 공석[41]

6.3. 역대 감독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007f55>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현대 유니콘스
역대 감독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1982년 ~ 2007년
<rowcolor=#b21528> 초대 (삼미 초대)
2대 (삼미 2대, 청보 초대)
박현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
감독 대행
이선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
김진영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1984~1985)
감독 대행
이재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rowcolor=#b21528> 2대 (삼미 2대, 청보 초대) 3대 (청보 2대)
감독 대행
이선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감독 대행
박현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감독 대행
신용균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5)
허구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6)
<rowcolor=#fff> 3대 (청보 2대)
4대 (청보 2대, 태평양 초대)
5대 (태평양 2대)
감독 대행
강태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6)
강태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1988)
감독 대행
임신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
김성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9~1990)
<rowcolor=#ff9933> 6대 (태평양 3대)
7대 (태평양4대)
8대 (현대 초대) 9대 (현대 2대)
박영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1)
정동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2~1995)
김재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6~2006)
김시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7)
윗첨자1 : 김진영 감독이 1983년 중반 폭행 사건으로 인해 현장에 복귀하지 못했고 이재환, 이선덕 코치, 박현식 고문이 감독 대행직을 맡았다.
1985년에는 18연패로 인해 신용균 코치가 임시로 대행을 맡았고 모기업이 청보로 넘어가자 다시 복귀했다.
}}}}}}}}} ||
<rowcolor=#373a3c,#212121> 구단명 순서 이름 재임 기간 전적 비고
삼미 슈퍼스타즈 초대 박현식 1982년 13전 3승 0무 10패 (승률 0.230)
감독대행 이선덕 1982년 67전 12승 0무 55패 (승률 0.179)
2대 김진영 1983년~1985년 153전 61승 3무 89패 (승률 0.407)
감독대행 이재환 1983년 14전 5승 0무 9패 (승률 0.357) [42]
감독대행 이선덕 1983년 30전 17승 0무 13패 (승률 0.567)
감독대행 박현식 1983년 20전 8승 1무 11패 (승률 0.421) [43]
감독대행 신용균 1985년 38전 14승 0무 24패 (승률 0.368) [44]
구단명 순서 이름 재임 기간 전적 비고
청보 핀토스 초대
김진영 1985년 55전 24승 1무 30패 (승률 0.444) [45]
2대
(통산 3대)
허구연 1986년 57전 15승 2무 40패 (승률 0.273) [46]
감독대행 강태정 1986년 51전 17승 0무 34패 (승률 0.333)
3대
(통산 4대)
1987년 108전 41승 2무 65패 (승률 0.389) [47]
구단명 순서 이름 재임 기간 전적 비고
태평양 돌핀스 초대 강태정 1988년 15전 1승 0무 14패 (승률 0.066) [48]
감독대행 임신근 1988년 93전 33승1무 59패 (승률 0.357)
2대
(통산 5대)
김성근 1989년~1990년 240전 120승 7무 113패 (승률 0.515) 1989년 플레이오프 진출
3대
(통산 6대)
박영길 1991년 126전 55승 2무 69패 (승률 0.444)
4대
(통산 7대)
정동진 1992년~1995년 504전 206승 21무 277패 (승률 0.427) 1994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구단명 순서 이름 재임 기간 전적 비고
현대 유니콘스 초대
(통산 8대)
김재박 1996년~2006년 1427전 778승 36무 613패 (승률 0.559) 1996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1998년 한국시리즈 우승
2000년 한국시리즈 우승
2001년 플레이오프 진출
2002년 준플레이오프 진출
2003년 한국시리즈 우승
2004년 한국시리즈 우승
2006년 플레이오프 진출
2대
(통산 9대)
김시진 2007년 126전 56승 1무 69패 (승률 0.448)
1996년 현대 유니콘스로 팀이 개편되기 전까지는 대대로 팀 전력이 최약체를 벗어나지 못한 탓에 역대 정식 감독 중 재임 중 승률이 5할을 넘긴 감독은 김성근 김재박 뿐이다. 팀의 간판이 네 번이나 바뀌었고 현대 시절을 빼고는 하위권을 전전했지만 구단 역사 전체를 통틀어 본다면 감독 교체는 생각보다 빈번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 등은 10명 이상의 감독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졌지만 삼미부터 현대까지 정식 감독의 숫자는 삼미 초대 감독인 박현식부터 유니콘스 최후의 감독 김시진까지 9명이었다. 이는 구단의 26년간의 구단 역사 중 절반에 육박하는 11년간 김재박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영향이 크다. 물론 현대 시절을 빼고 삼미부터 태평양까지만 친다면 성적 부진으로 인한 감독 교체가 꽤 잦았다고 볼 수 있다.

7. 역대 기록

7.1. 구단 성적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bordercolor=#007f55> 파일:현대 유니콘스 심볼.svg 현대 유니콘스
역대 시즌
(삼미, 청보, 태평양 시절 포함)
}}} ||
{{{#!wiki style="color:#FAB93D; margin: -0px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982 1983 1984 1985(전) 1985(후)
6위 3위
전기 2위
후기 공동 2위
6위 6위 6위
후기 4위
1986 1987 1988 1989 1990
6위
전기 6위
후기 7위
7위
전기 7위
후기 5위
7위
전기 6위
후기 7위
3위
5위
1991 1992 1993 1994 1995
5위 6위 8위 2위
7위
1996 1997 1998 1999 2000
2위
6위 '''1위
'''
드림 3위 '''1위
'''
2001 2002 2003 2004 2005
3위
4위
'''1위
'''
'''1위
'''
7위
2006 2007 파일:현대 유니콘스 워드마크.svg
3위
6위
: 우승: 준우승 | : 포스트시즌 진출
}}}}}} ||
­ 우승
­ 준우승
­ 포스트시즌 진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 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1982 6위/6팀[49] 6위 삼미 슈퍼스타즈 80 15 0 65 0.188
1983 3위/6팀[50] 3위 100 52 1 47 0.525
1984 6위/6팀[51] 6위 100 38 3 59 0.392
1985[52] 6위/6팀[53] 6위 삼미 / 청보 110 39 1 70 0.358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 순위 팀 이름 경기수 승률
1986 6위/7팀[54] 6위 청보 핀토스 108 32 2 74 0.302
1987 7위/7팀[55] 7위 108 41 2 65 0.389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 순위 팀 이름 경기수 승률
1988 7위/7팀[56] 7위 태평양 돌핀스 108 34 1 73 0.319
1989 3위/7팀 3위 120 62 4 54 0.533
1990 5위/7팀 5위 120 58 3 59 0.496
1991 5위/8팀 5위 126 55 2 69 0.444
1992 6위/8팀 6위 126 56 3 67 0.456
1993 8위/8팀 8위 126 34 10 82 0.310
1994 2위/8팀 준우승 126 68 3 55 0.552
1995 7위/8팀 7위 126 48 5 73 0.401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 순위 팀 이름 경기수 승률
1996 4위/8팀 준우승 현대 유니콘스 126 67 5 54 0.552
1997 6위/8팀 6위 126 51 4 71 0.421
1998 1위/8팀 우승 126 81 0 45 0.643
1999 드림 3위/4팀 드림 3위 132 68 5 59 0.535
2000 드림 1위/4팀 우승 133 91[57] 2 40 0.695[58]
2001 2위/8팀 3위[59] 133 72 4 57 0.558
2002 3위/8팀 4위[60] 133 70 5 58 0.547
2003 1위/8팀 우승 133 80 2 51 0.611
2004 1위/8팀 우승 133 75 5 53 0.586
2005 7위/8팀 7위 126 53 3 70 0.431
2006 2위/8팀 3위[61] 126 70 1 55 0.560
2007 6위/8팀 6위 126 56 1 69 0.448
KBO 리그 통산 26시즌 V4 3137 1466 77 1594 0.479

7.1.1.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삼성 라이온즈 89준PO : 2승 1패
00PO : 4승
04KS : 4승 3무 2패
준PO 1승, PO 1승, KS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10승 3무 3패
KIA 타이거즈 89PO : 3패
96KS : 2승 4패
PO 1패, KS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2승 7패
한화 이글스 94PO : 3승
96준PO : 2승
06PO : 1승 3패
준PO 1승, PO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6승 3패
LG 트윈스 94KS : 4패
98KS : 4승 2패
02준PO : 2패
준PO 1패, KS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4승 8패
쌍방울 레이더스 96PO : 3승 2패 PO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3승 2패
두산 베어스 00KS : 4승 3패
01PO : 1승 3패
PO 1패, KS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5승 6패
SK 와이번스 03KS : 4승 3패 KS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4승 3패

7.2. 개인 성적

개인 커리어 전체가 아닌 삼청태현 소속이었을 때의 성적이므로 1982년부터 2007년까지의 기록만 서술한다.

7.2.1. 통산

7.2.1.1. 투수
부분 이름 기록 삼청태현 소속
등판경기 정명원 395경기 1989~2000
선발등판 정민태 269경기 1992~2000, 2003~2007
완투 장명부 61완투 1983~1985
완봉 양상문 9완봉 1987~1993
ERA 정명원 2.56 1989~2000
승리 정민태 124승 1992~2000, 2003~2007
패전 정민태 95패 1992~2000, 2003~2007
세이브 정명원 142세이브 1989~2000
홀드 이상열 50홀드 2001~2007
이닝 정민태 1827.1이닝 1992~2000, 2003~2007
탈삼진 정민태 1275개 1992~2000, 2003~2007
피안타 정민태 1774개 1992~2000, 2003~2007
피홈런 정민태 157개 1992~2000, 2003~2007
볼넷 김수경 644개 1998~2007
사구 김신부 61개 1986~1989
7.2.1.2. 타자
부분 이름 기록 삼청태현 소속
출장경기 이숭용 1566경기 1994~2007
타율 박재홍 0.292 1996~2002
출루율 박재홍 0.383 1996~2002
장타율 박재홍 0.526 1996~2002
타석 이숭용 5803타석 1994~2007
타수 이숭용 4970타수 1994~2007
안타 이숭용 1403안타 1994~2007
2루타 이숭용 278개 1994~2007
3루타 전준호 49개 1997~2007
홈런 박재홍 176홈런 1996~2002
타점 이숭용 736타점 1994~2007
득점 전준호 717득점 1997~2007
도루 전준호 289도루 1997~2007
볼넷 이숭용 626개 1994~2007
사구 이숭용 105개 1994~2007
삼진 이숭용 728개 1994~2007

7.2.2. 단일 시즌

굵은 글씨는 역대 최고 기록.
7.2.2.1. 투수
부분 이름 기록 시즌
등판경기 이상열 81경기 2004
선발등판 장명부 44선발 1983
완투 장명부 36완투 1983
완봉 장명부 5완봉 1983
ERA 정명원 1.86 1998
승리 장명부 30승 1983
패전 장명부 25패 1985
세이브 정명원 40세이브 1994
홀드 이상열 21홀드 2004
이닝 장명부 427.1이닝 1983
탈삼진 장명부 220개 1983
피안타 장명부 388개 1983
피홈런 감사용, 김수경 25개 1982, 2002
볼넷 최창호 114개 1989
사구 김신부, 멜퀴 토레스 21개 1986, 2002
7.2.2.2. 타자
부분 이름 기록 시즌
출장경기 톰 퀸란, 심정수, 이숭용 133경기 2000, 2002, 2003, 2004
타율 클리프 브룸바 0.343 2004
출루율 심정수 0.478 2003
장타율 심정수 0.720 2003
타석 심정수 601타석 2003
타수 이숭용 511타수 2003
안타 클리프 브룸바 163안타 2004
2루타 박재홍 31개 2000
3루타 전준호 8개 2002
홈런 심정수 53홈런 2003
타점 심정수 142타점 2003
득점 심정수 110득점 2003
도루 김일권 62도루 1989
볼넷 심정수 124개 2003
사구 박종호 31개 1999
삼진 톰 퀸란 173개 2000

8. 역대 캐치프레이즈

9. 사건 사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현대 유니콘스/사건사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0. 여담

10.1.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지 않았다면?

야구계에서 2007년은 그야말로 눈물의 한 해라고 할 만하다.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와 동대문야구장의 철거라는 한국 야구의 양대 비극이 모두 2007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적인데, 바로 다음해인 2008년, 한국 야구는 베이징 올림픽 우승이라는 희대의 빅이벤트 속에 엄청난 팬덤 증가와 중흥을 맞이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니콘스 매각을 진행했다면 프로야구단 인수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과 여론의 추이는 2007년보다 높았을 거라는 푸념이 있다.[71]

하지만 이미 이 시기에는 KBO가 오랫동안 모아왔던 야구기금을 유니콘스를 대신 운영하는데 다 털어먹었기에 여력이 소진된 상황이었고[72], 여기에 발전기금으로 끌어다 쓰던 유니콘스 구단측은 끝끝내 플로리다 전지훈련을 가는 등 말년의 쌍방울 레이더스나 해태 타이거즈처럼 뼈를 깎는 인건비 절감 노력을 하긴커녕 기존에 쓰던 예산을 절감하려는 노력도 아예 하지도 않고, 야구계 전체의 돈을 탕진해서 자기들 성적을 내려 한다는 인식이 박혀 다른 구단들로부터 시선이 싸늘해진 상황이었다. 2007년 시즌 말의 상황은 급박했으며, 더이상 시간을 끄는 건 불가능했다. 유니콘스가 해체되어 7개 구단 체제가 되면 '이참에 우리도 해체할까?'라며 추가로 해체를 검토하고 있다는 구단이 있다는 루머는 파다하게 퍼져 있었고 그렇다면 리그는 순식간에 쪼그라들 상황이었다. KBO가 센테니얼의 창단 의사를 거부할 수 없었던 건 이런 이유가 크게 작용했을 수 있다.

사실 2008년의 프로야구 인기의 부활[73]에는 오랫동안 야구계에 그림자를 드리웠던 유니콘스 문제가 해결된 것도 영향이 있었고, 만약은 모르는 것이지만 이 문제가 계속 되었다면 2008년 이후의 인기부활이 가능했을지는 불명확하다.[74] 이후 히어로즈 구단이 한 동안 메인스폰서를 구하는데 애를 먹은 것에서 볼 수있듯, 리그의 인기증가를 통한 경제적 효과가 기업에 얼마나 이득이 될 것이며, 기업이 이를 체감하고 투자를 결정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당시 KBO는 지나치게 일찍 협상사실을 공개하거나 기존 구단과의 물밑협상을 거치지 않는 등 매각 협상에서 많은 잘못을 저질렀으나, 이미 야구계의 여력은 소진된 상태에서 언제 또 다시 온풍이 불지 알 수없는 상황이었던 것을 감안해야 한다. 다른 대기업들마저 듣도보도 못한 센테니얼에게 유니콘스를 넘기는 선택에 동의할 정도였던걸 생각한다면, KBO의 선택을 그저 매도하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11. 관련 문서

1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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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 횟수
1982 파일:OB 베어스 엠블럼.svg OB 베어스
1회
1983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해태 타이거즈
1회
1984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75~1992).png 롯데 자이언츠
1회
1985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1982~1988).svg 삼성 라이온즈
1회
1986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해태 타이거즈
5회
1987
1988
1989
1990 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 LG 트윈스
1회
1991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해태 타이거즈
6회
1992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75~1992).png 롯데 자이언츠
2회
1993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해태 타이거즈

7회
1994 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 LG 트윈스
2회
1995 파일:OB 베어스 엠블럼.svg OB 베어스
2회
1996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 해태 타이거즈

9회
1997
1998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현대 유니콘스
1회
1999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1994~2006).svg 한화 이글스
1회
2000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현대 유니콘스
2회
2001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화이트).svg 두산 베어스
3회
2002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화이트).svg 삼성 라이온즈
2회
2003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현대 유니콘스

4회
2004
2005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화이트).svg 삼성 라이온즈

4회
2006
2007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6~2019).svg SK 와이번스
2회
2008
2009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4~2009).svg KIA 타이거즈

10회
2010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6~2019).svg SK 와이번스
3회
2011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8회
2012
2013
2014
2015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두산 베어스
5회
2016
2017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17~2020).svg KIA 타이거즈

11회
2018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6~2019).svg SK 와이번스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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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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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2021 파일:kt wiz 엠블럼.svg kt wiz
1회
2022 파일:SSG 랜더스 엠블럼(2021~2023).svg SSG 랜더스
5회
2023 파일:LG 트윈스 엠블럼.svg LG 트윈스
3회
2024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svg KIA 타이거즈

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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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삼미 슈퍼스타즈[1] 삼성 라이온즈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파일:MBC 청룡 엠블럼(1982~1985).png 파일:OB 베어스 엠블럼.svg
해태 타이거즈[2] MBC 청룡[3] OB 베어스[4]
[1]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現 키움 히어로즈의 전신
[2] 現 KIA 타이거즈
[3] 現 LG 트윈스
[4] 現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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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 리그 아이콘(1982~2012).svg 삼청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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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미 슈퍼스타즈 엠블럼.png 파일:청보 핀토스 엠블럼.png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1982년 2월 ~ 1985년 5월
1985년 5월 ~ 1987년 10월
파일:태평양 돌핀스 엠블럼(1994~1995).svg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1987년 10월 ~ 1995년 9월
1995년 9월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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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미 슈퍼스타즈의 창단일로 프랜차이즈 개시일이다. [2] 전신 태평양 돌핀스의 법인 설립일로 추정. 당시 태평양화학은 1987년 10월 6일 풍한방직 측과 청보 핀토스 구단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3] 부채 문제 탓에 법인이 해산하는 과정을 거쳤고, 이 때문에 두 구단은 같은 구단이 아니며 우승 기록과 원년 구단으로서의 자격은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히어로즈는 엄연히 현대의 권리를 인수하는 부분적 인수로서 KBO로부터 구단을 인계 받아 창단한 팀으로, 선수 경력에 있어서는 같은 팀임을 공식적으로 인정 받은 데다 현대의 SK에 대한 연고지 침해와 같은 경우에서도 현대의 책임을 이어서 지고 배상을 하는 등 사전적 의미의 '후신'에는 완벽히 부합한다. 자세한 내용은 키움 히어로즈 문서로. [4] 구단 공식 연고지는 서울이었으나, 기존 서울 연고 구단인 LG 두산에 권리금을 지불하지 못해 연고권을 행사할 수 없어 실상은 무연고 상태였다. [5] 무단으로 사용하던 수원 야구장이 위치한 수원이 사실상 연고지였다. [6] 이 당시, 목동 야구장은 아마 구장으로 인식됐으며 고교야구 경기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7] 연고 이전 후 수원 야구장에서 홈경기를 개최했고 1999년까지는 제2 홈구장이었다. 공식적으로는 현대가 서울로 가기 위해 연고지 이전으로 떠난 후 창단된 SK 와이번스에게 연고권을 매각하면서 이 야구장도 SK 와이번스의 제2 홈구장이 되었으나 서울 이전에 실패한 현대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고 무단으로 결국 이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게 되었다. 이후 후신인 히어로즈가 이때의 연고지 침해에 대한 배상금을 지불했다. [8] 흔히 '원당 야구장'이라 불리긴 했는데, 정확히는 당시 현대전자 연수원 내에 있었던 야구장이었고 이름과 달리 소재지는 일산동구 설문동에 있다. 원당이라는 지명 자체가 일산이기도 해서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유니콘스 해체 이후에도 2008년부터 2009년까지 후신인 히어로즈 야구단 강진으로 2군을 보내기 전까지 잠시 이 곳을 빌렸고, 연수원 자체는 하이닉스를 거쳐 현재는 NH투자증권 산하 NH인재원 소속이 되었다. [9] 정몽헌 회장 사망 이후 공석. [10]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에 세운 기록이다. [11] 가을 야구를 제외한 정규 시즌 기준. [12] 경기당 평균 7,560명 [13] 가을 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 [14] 경기당 평균 1,797명 [15] 현대라는 이름으로 12시즌을 보냈는데 3시즌 반을 치른 삼미, 2시즌 반을 치른 청보, 8시즌을 치른 태평양보다는 확실히 구단 역사가 길다. [16] 현대의 인수 이전에는 하위권을 면치 못하는 약체였지만 현대는 막강한 전력을 앞세워 프랜차이즈 최초로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팀으로 기록됐다. [17] 공식적으로는 서울특별시가 연고지이지만 모기업이 재정난을 겪게 되면서 기존 서울 연고 구단인 LG 트윈스 두산 베어스에게 권리금을 내지 못했고 연고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18] 당시 SK 와이번스는 현대로부터 인천광역시+경기도+강원도 연고권을 함께 양수받았는데, 연고권을 양수받을 때 현대가 서울 입성 전까지 사용할 홈구장으로 수원구장을 2001년 상반기까지 빌려주기로 했고, 현대 유니콘스는 2001년까지 서울 상암동에 홈구장을 지어서 그 곳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현대 유니콘스가 재정난에 빠지게 되면서 서울 입성에 사실상 실패하게 됐고, 유니콘스측은 구단이 해체된 2008년까지 SK 측에 어떠한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무단으로 수원시에 눌러 앉아서 수원 야구장을 홈으로 사용했다. 현대 해체 이후에는 권리를 인수한 히어로즈가 현대의 연고지 침해에 대한 책임을 가져가게 되어 SK에게 연고지 침해 배상금을 지불했다. 이후로도 경기도 연고지 권리는 SK 와이번스가 가지고 있다가 2013년 수원을 연고지로 한 kt wiz가 창단되면서 자연스럽게 넘겨주게 되었다. [19] 2000년 5월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2003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전무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사장이 되어서도 구단의 맡은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20] 공교롭게도 태평양 돌핀스 시절 1989년부터 1994년까지 썼던 상징색과도 같다. 응원 깃발의 색깔은 창단 당시부터 줄곧 녹색이었으나 막대풍선 색깔은 창단 초기에 다소 바뀌었다. 원래는 노란색 막대풍선을 썼으나 하필이면 이 당시 LG 트윈스 해태 타이거즈도 노란색 막대풍선을 사용했다. 게다가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노란색 막대풍선을 쓰는 팀끼리 맞붙다보니 색깔의 차별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한국시리즈 4차전에 붉은색 막대풍선을 사용하기도 했다. 결국 현대가 먼저 노란색을 버리고 1997년부터 해체될 때까지 하얀색 막대풍선을 사용했다. 하얀색 막대풍선에는 범현대가 계열 기업의 로고나 제품의 명칭이 광고 형식으로 삽입됐다. 구단 초창기에는 현대전자의 PC였던 멀티캡이나 현대오일뱅크의 로고가 새겨졌고 이후에는 현대증권이나 현대해상 로고가 써져있었다. 초록색을 상징색으로 삼던 팀이었지만 초록색 막대풍선은 창단 초창기 잠시 연두색 막대풍선을 쓴 이후로 한 번도 쓰지 않았다. 하얀색 막대풍선 외에도 수원야구장 시대 초기 노란색 봉투에 초록색 글씨로 "막강현대"를 삽입한 비닐봉투를 응원도구로 쓰기도 했다. 비닐봉투 응원도구는 2008년 주황색 봉다리 열풍을 일으킨 롯데 자이언츠가 원조라고 다들 아는데 사실과 다르다. 비닐봉투 응원을 먼저 발명한 건 현대였다. 이후 베이징 올림픽 시절 기준으로 야빠들의 전성기가 들어설때 롯데가 이를 활용한 것이었다. 롯데가 사용한 비닐봉투는 흔히 편의점에서 주는 소형 비닐봉투 크기였고 현대의 비닐봉투는 크기가 조금 커서 어린이의 경우 봉지에 구멍을 뚫어서 옷처럼 입을 수 있는 정도였다. [21] 사실 인천/경기팜은 전통적인 투수 강세 지역이다. 현대의 전신인 삼미 시절에는 임호균이라는 국가대표 투수가 있었고 청보 시절에는 최계훈이 에이스 역할을 했다. 투수왕국의 이미지는 태평양 시절에 들어서면서 극대화된다. 강력한 투수들이 대를 이어 배출됨에도 팀 전력이 하위권을 면치 못했던 이유는 강력한 투수력에 비해 야수들의 타력과 수비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투수진이 기를 쓰고 1실점만 해도 타자들이 점수를 아예 못 내서 1-0으로 경기를 지는 경우가 부지기수. 쉽게 말하자면 투타의 불균형이 매우 극심했던 팀이 현대 이전까지 있었던 팀들의 전통적 팀컬러였다. [22] 이동학의 사례에서 보듯 2003년은 두각을 나타낸 신인 자체가 보이지 않은 신인 흉년의 해였다. 또 다른 신인왕 후보라 해봐야 이택근이 있었는데 이택근도 신인왕을 받을 성적은 전혀 아니었다. 조용준이 전성기는 짧았지만 한국시리즈 MVP를 받기도 했었고, 오재영 싸융짱문오에 포함될 정도가 되긴 했어도 불펜에서 잘 활약해주고 있다. [23] 1996년 플레이오프에서 2패 이후 3승을 거두는 리버스 스윕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 삼성은 1997년 준플레이오프에서 쌍방울과 대결했다. [24] 1988~1993 [25] 1994~1995 [26] 몬더그린 현상으로 인해 이 대목이 ' 최강희 눈이 커'라고 들리기도 했다. 불암콩콩코믹스에도 이 몬더그린을 사용했다. [27] 느린 버전 [계승] 태평양 돌핀스의 응원가를 계승했다 [29] 오재일, 장시환, 정훈, 황재균 [30] KBO 신인 드래프트의 2000년 강원 지역 최초의 1차지명 선수 [31] 前 야구선수의 좌완투수였던 최영완의 친형이다. [32] 본인이 영원한 삼성맨이라는 자부심이 강했기에 현대로 오자마자 은퇴를 선언해버렸다. [33] 2022년 키움으로 복귀하려고 하였으나 불발. [34] 2000년 투수 전업 [35] 등록명은 스코트 쿨바였다. 다들 성만 등록명으로 쓰는걸 생각하면 특이 케이스. [36] 2007년 당시 75번을 달고 수비코치를 맡았으며 후신격 팀인 넥센 히어로즈의 제 3대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다시 올려놨다. 2016년 자진사퇴 후 2017년 SK 와이번스 단장으로 취임되었고, 2019년부터 2020년까지 sk의 감독직을 맡았다. [37] 2014 시즌에 외야수로 전향했다. [38] 히어로즈에서 은퇴. 정민태와 함께 팀의 프랜차이저 스타였던 인물이다. [39] 키움 히어로즈 소속기간은 2008~2009년, 2012~2020년 [40] 야구선수 정수근의 친동생 [41] 강명구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이 해체시까지 구단주 대행 역임. [42] 김진영 감독이 1983년 6월 1일 잠실 MBC전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 후 구속되고 자숙의 의미로 잔여 시즌을 감독대행 체제로 가게 되자 별안간에 팀 지휘봉을 잡았다. 그런데 14경기를 치르고 돌연 이선덕 코치에게 지휘봉이 가게 됐는데 이재환과 경동고 동문인 백인천이 급작스럽게 삼미에 선수 겸 코치로 이적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재환과 백인천의 사이는 매우 험악했고 이를 고려해 이재환을 한직인 2군 감독으로 내려보냈다. [43] 초대 감독을 맡았던 그 박현식 선생이 맞다. 구단 고문으로 위촉됐던 박 선생이 다시 지휘봉을 잡은 것 역시 백인천 때문이었다. 선수 겸 타격코치로 일하던 도중 간통죄로 인해 구속되면서 사실상 구단에서 퇴단 조치됐다. 그러면서 선수단 개편 차원에서 이선덕 코치에게 투수코치 임무만 맡기고 박현식 고문을 감독으로 다시 복귀시켰다. 그러나 자숙하던 김진영 감독이 복귀하면서 박현식 감독도 물러나게 된다. [44] 2020년 한화 이글스에 의해 깨질 뻔 했던 초유의 18연패 당시 감독대행. 1985년 3월 30일 구덕 개막전 승리 이후 내리 16경기를 패배하자 김진영 감독이 4월 29일 '조건부 휴가'라 쓰고 사실상의 퇴진이라 하는 절차를 밟으며 물러났다. 투수코치였던 신용균이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이름으로 치른 마지막 경기까지 팀을 지휘했다. [45] 삼미 슈퍼스타즈가 간판을 내리고 1985년 후기리그부터 청보 핀토스라는 이름으로 시즌을 치렀지만 후기리그까지만 팀을 지휘하고 퇴진하게 된다. [46]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뿌라와 으린 슨슈를 사랑하시는 그 분 맞다. 본인은 청보 감독 시절을 잊고 싶은 과거로 생각하는 듯 하다. [47] 1군 참여 2년차 빙그레 이글스에도 털릴 정도로 꼴찌를 기록한 감독이었지만 한 시즌을 풀로 채웠다. 리그 참가 6시즌 만에 처음으로 감독 교체 없이 한 시즌을 보낸 것은 이때가 처음. 물론 이미 구단의 모기업인 청보식품이 1987년 중반부터 상당한 경영난을 겪었기 때문에 감독을 바꾸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48] 태평양화학이 핀토스 구단을 인수해서 재편한 것이 1988년 시즌 개막 직전이었기 때문에 이 당시도 감독을 바꾸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이름만 태평양으로 바뀌었을 뿐 청보 핀토스와 크게 차이가 없었고 결국 시즌 초반에 경질된다. [49] 전기 6위, 후기 6위 [50] 전기 2위, 후기 2위 [51] 전기 6위, 후기 6위 [52] 전기리그에서는 삼미 슈퍼스타즈로 활동. [53] 전기 6위, 후기 6위 [54] 전기 6위, 후기 7위 [55] 전기 7위, 후기 6위 [56] 전기 6위, 후기 7위 [57] 2016년 두산 베어스가 93승을 기록하기 전까지 KBO 리그 단일시즌 최다승 기록이었다. [58] KBO 리그 단일시즌 승률 3위. 1위는 1985년 삼성 라이온즈의 0.706, 2위는 1982년 OB 베어스의 0.700. 다만 1985년과 1982년은 전후기리그로 시즌을 나눠 치르던 체제였기 때문에 1989년부터 제정된 단일시즌 체제로 한정하면 이 기록이 최고 승률 기록이다. [59] 페넌트 레이스 2위였지만, 3위 팀 두산의 우승으로 최종 3위. [60] 페넌트 레이스 3위였지만, 4위 팀 LG의 한국 시리즈 진출로 최종 4위. [61] 페넌트 레이스 2위였지만, 3위 팀 한화의 한국시리즈 진출로 최종 3위. [62] 창단 첫 해부터 해체될 때까지 이 캐치프레이즈는 변하지 않았다. 일종의 구단 기본 슬로건이 된 셈. 기본형 문구 앞에 뭔가의 낱말이 붙는 형태로 캐치프레이즈가 정해졌다. [63] 물론 삼청태현은 공식적으로 한 팀이기 때문에 이 상대전적은 현대 한정. 통상적이며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삼청태현의 통합 전적은 당연히 삼성한테 일방적으로 뒤진다. 공식적으로 현재 삼성 상대 승률이 가장 높은 팀은 47승 2무 47패로 승률이 5할인 kt wiz다. 두 번째는 178승 8무 182패로 승패마진이 -4인 SK 와이번스. [64] 투수조 조장인 정명원이나 정민태 같은 선수들. [65] 상대전적 8승9패까지 갔다가 마지막 2경기를 잡아 10승9패가 됐다. 2000시즌 현대를 상대로 가장 높은 승률을 올린 팀이었다. [66] 현대는 2002년에 LG 트윈스에게 준플레이오프에서 패배했고, 기아는 2003년에 SK 와이번스에게 플레이오프에서 패배, 2004년과 2006년에는 각각 두산 베어스, 한화 이글스에게 준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해서 두 팀이 포스트 시즌에서 붙을 일은 없었다. [67] 전신까지 포함하면 1989년 1996년에 붙은 적은 있었다. [68] 단, 인수조건을 걸면서 야구단을 제외하고 하이닉스를 인수했을 수는 있다. [69] 현대 시절 1군 출장 기록은 없다. [70] 2008년 2차 2라운드 전체 11번으로 지명. 현대가 해체되며 선수단을 인수한 우리 히어로즈에 입단했다. [71] 다만 많은 유니콘스 팬들이 바라는 구단 역사의 공식적 승계는 해당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대기업이 인수했다 해도 어려웠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 7년간 구단을 거의 내팽개치다시피 한 명목상의 모기업 하이닉스가 뜬금없이 나타나 인수대금을 내놓으라고 하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지기 때문이다. [72] 야구계 인사 일부는 기존 구단들에게서 운영비를 추렴해서 현대가 1년만이라도 더 버틸 수 있게 하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말 그대로 시간벌기밖에는 안 되는 미봉책일 뿐이지만, 어쨌든 그렇게라도 하고 봐야 했을 정도로 상황이 절박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KT의 인수시도가 사외이사들과 주주들에 의해서 엎어졌듯이 이미 적자투성이인 프로야구판에서 자신의 기업도 아닌 남의 회사를 홍보하는데 당연히, 그 어느 기업도 자기 회사의 돈을 선뜻 내놓겠다고 나서는 이 하나 없었다. [73]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2008시즌 초부터 이미 프로야구의 인기는 관중수에서 입증되듯이 부활하고 있었다. 올림픽 금메달은 그런 추세에서 부스터 역할을 했지 유일한 촉매 역할을 한게 아니다. [74] 당장 이웃종목 K리그만 봐도 2002년 FIFA 월드컵으로 조성된 리그 붐을 받아먹을 준비(대회 종료 후 축구장에 가고 싶은데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서울팀이 없고, 대구 인천 광주에도 없다던지 등)가 되어있지 않았고, 기회가 왔을때 허무하게 날려먹어서 여전히 흥행에 큰 어려움을 호소하는 실정이다. 국제대회의 호성적은 리그 붐에 기여를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리그의 앞날을 하루 아침에 밝게 비춰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