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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14:44:52

에스페란토

인공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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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란토
Esperanto
파일:에스페란토 협회 지도(2020).svg
<colbgcolor=#60b130,#62792b><colcolor=#ffffff> 주요 사용 지역[1]
유형 교착어
어순 주어-서술어-목적어 (SVO)
서자 방향 좌횡서 (왼쪽부터 가로쓰기)
문자 로마자
원어민 약 3,000명
총사용자 약 200만 명
계통 인공어
인도유럽어족 에스페란토어파
언어
코드
<colbgcolor=#60b130,#62792b><colcolor=#ffffff> ISO 639-1 EO
ISO 639-2 EPO
ISO 639-3 EPO
글로톨로그 espe1235
언어별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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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Εσπεράντο
라틴어 Lingua Esperantica
러시아어 Эсперанто
아랍어 إسبرانتو
일본어 エスペラント
중국어 世界语/世界語
프랑스어 Espéranto
히브리어 אספרנטו }}}}}}}}}

1. 개요2. 역사
2.1. 국제어의 가능성2.2. 대한민국2.3. 북한2.4. 중국2.5. 대만2.6. 일본2.7. 러시아2.8. 브라질
3. 학습4. 특징5. 음소
5.1. 자음5.2. 모음
6. 글자
6.1. 윗부호와 대체 표기
7. 문법8. 장단점9. 에스페란티도10. 에스페란티스토11. 예문
11.1. 자멘호프 예문11.2. 실생활 예문
12. 에스페란토화13. 대중 문화 속의 에스페란토
13.1. 에스페란토로만 된 매체
14. 관련 문서15.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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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페란토로 읽은 세계 인권 선언 제1 · 2조[3][4]
Namuviki: la arbo de scio, kiun vi kulturas.
나무위키, 여러분이 가꾸어 나가는 지식의 나무.

복사용 문자는 언어별 확장 라틴 문자 목록에서 얻을 수 있다.

1. 개요

파일:에스페란토 기.svg
에스페란토의 상징기인 녹성기(綠星旗).
에스페란토로 Esperanto-flago(에스페란토기), 또는 Verda Flago(녹색기)라고도 불린다.
Ekbruligis mi fajron en kor’, 내 마음에 불씨 하나 피웠네,
Ĝin estingos nenia perfort’; 그 불씨 힘으로는 끄지 못하리.
Ekflamigis mi flamon en brust’, 내 가슴에 불꽃 하나 타오르네,
Ĝin ne povos estingi eĉ mort’. 나 죽어도 꺼지지 않으리.

Brulos fajr’ ĝis mi vivos en mond’, 세상 사는 날까지 피어 오르리 그 불씨,
Flamos flam’ ĝis ekzistas la ter’. 지구가 사라지는 날까지 타오르리 그 불꽃.
Nom’ de l’ fajr’ estas am’ al homar’, 그 불씨, 인류를 향한 나의 사랑,
Nom’ de l’ flam’ estas am’ al liber’. 그 불꽃, 자유를 향한 나의 사랑.
바실리 야코블레비치 예로셴코(Vasilij Jakovleviĉ Eroŝenko), "인류의 일원(Homarano)".[5] TERanidO 238호, 2016년 12월 5일
폴란드의 안과 의사 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가 국제적 의사소통을 위한 공용어를 목표로 하여 1887년에 발표한 인공어.

에스페란토라는 명칭은 에스페란토로 '희망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자멘호프가 에스페란토 문법서를 처음 발표할 당시에 사용한 가명(D-ro Esperanto)에서 유래했다. 흔히 '에스페란토어'라고 사용하기도 하는데, 에스페란토라는 사람 무리나 에스페란토라는 나라에서 쓰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는 겹말이지만 산스크리트어 등의 예도 있으므로 무작정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에스페란토 사용자는 전 세계적으로 2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며, 이는 인공어 중에서는 가장 많은 수치이다. 에스페란토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사람도 수천 명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 경우는 부모가 모두 에스페란토를 구사해 자연스럽게 이를 모국어로 습득한 경우다.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Universala Kongreso de Esperanto)도 있는데, 1905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열린다. 1994년에는 서울특별시에서 개최되기도 했고, 2015년에는 대망의 100차 대회가 에서 개최되었다. 또한 2017년 대회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7월 29일까지 진행되었다.

2. 역사

자멘호프가 태어난 폴란드 북동부의 비아위스토크(Białystok)시는 당시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서 폴란드인, 프랑스인, 러시아인, 독일인, 유대인 등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었는데[6] 이들 사이의 반목이 극심했다.[7][8] 박사는 그 원인을 언어 소통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언어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서 누구나 배우기 쉽고 소통이 용이한 언어를 만들고자 했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에스페란토이다.

자멘호프는 언어학자가 아니라 안과 의사였다. 하지만 유년 시절부터 언어에 소질이 특출나서 이디시어 폴란드어뿐만 아니라 그리스어 라틴어, 영어 등도 배웠다. 당시 상황이 상황이라 러시아어도 모국어에 가깝게 사용했다. 오죽하면 자신이 한때는 위대한 러시아 문인이 되고 싶었다고 술회할 정도이다.

1878년 에스페란토의 시험판인 '린그베 우니베르살라(세계어)'를 만들어 고등학교 동급생에게 가르쳤다. 그 후 6년간 여러 문학 작품과 시를 번역하며 언어를 발전시켜 나갔다. 1887년 최초의 에스페란토 서적인 《첫 번째 책(Unua Libro)》를 발표했다. 이 책에는 에스페란토의 문법과 어휘, 예문과 자멘호프의 창작 시 두 수가 실렸다.

에스페란토는 발표되자마자 당시 국제 인공어계의 주류였던 볼라퓌크를 누르고 대표적인 인공어로 발돋움하기에 이른다. 1905년 프랑스 볼로뉴 쉬르 메르에서는 첫 번째 에스페란토 세계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에스페란토 문법을 자멘호프의 '에스페란토 기초'에서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는 선언이 채택되었다. 하지만 이후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며 음운과 문법 등 여러 부분에서 미약한 수준이지만 변화가 이루어졌다. 1920년 1차 국제 연맹 총회에서는 에스페란토를 국제어로 각 회원국의 공립 학교에서 가르치자는 결의안이 올라오기까지 했지만 프랑스의 반발로 통과되지 못했다.[9] 이외로는 1908년부터 중립 모레스네에서의 공용화 시도가 있었고, 국내외로 어느 정도 호응도 이끌어냈다. 그러나 나라가 얼마 안 가 독일에 점령되면서 무산되었다.

당시에는 에스페란토를 전파할 수 있는 수단이 겨우 2가지뿐이었다. 직접 만나거나 아니면 편지를 보내거나.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그 사이에 터진 대공황 등으로 에스페란토는 대위기를 맞았다. 이 시기 유럽에 퍼진 전체주의, 국가주의, 나치즘, 파시즘은 언어를 근본으로서 국가의 장벽을 없애려는 목표를 지닌 에스페란토의 확산을 경계했고, 결정적으로 아돌프 히틀러가 < 나의 투쟁>에서 에스페란토를 '유대인의 모략'이라고 주장하며 에스페란토 운동은 직격탄을 맞았다. 하필 에스페란토의 창시자인 자멘호프가 유대계라는 점에서 많은 지지를 얻었고, 이로 인해 독일, 포르투갈, 소련[10] 여러 지역에서 에스페란토는 박해를 받았다. 1935년 나치 독일이 내린 에스페란토 금지령에 관한 기사.

정작 자멘호프는 유대인의 정체성을 내세우지 않던 사람이었고, 오히려 반 시오니즘에 가까운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나치한테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결국 나치는 1942년 라인하르트 작전[11] 당시 자멘호프의 세 자녀까지 잡아들여 트레블링카 절멸 수용소에서 살해했다. 그나마 손자가 탈출하여 자멘호프가의 핏줄은 끊기지 않았고, 전쟁으로 인해 중단되었던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는 1947년에 들어서야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스페란토에 대한 박해는 1950년대까지도 계속되었다. 한편 유럽에서의 혼란상이 계속되는 동안, 두 번의 세계 대전으로 미국이 기존 유럽 열강의 헤게모니를 새롭게 장악하면서 영어가 자유 진영의 링구아 프랑카가 되었고, 이는 공산 진영의 몰락 이후 더욱 공고화되었다. 영어는 표기 심도나 불규칙 활용 등의 어려운 요소들이 있지만, 그나마 인도유럽어 중에서는 굴절이 심하지 않았기에 별 어려움이나 거부감 없이 세계 공용어로 학습되고 전파되었다. 언어 자체의 특징으로나 전파 방식으로나 유럽 세력의 영향력에 기대는 면이 컸던 에스페란토는, 그렇게 제도화된 국제어가 될 수 있는 적기를 놓쳤다.

그나마 현대, 특히 2000년대 들어서는 인터넷의 발달로 에스페란토의 보급과 확산이 더욱 쉬워졌다. lernu!나 에스페란토판 위키백과 등의 인터넷 사이트, Kurso de Esperanto 등의 프로그램, 그리고 듀오링고 같은 앱 등이 에스페란토 사용자와 학습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비록 20세기 초(세계 대전 이전)와 같은 수준의 열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에스페란토 운동에 참가하고 있다. 인터넷 등의 도구뿐만 아니라 게임화 등의 방법론도 나와 있어, 에스페란토 학습의 용이성은 초창기보다 오히려 나아졌다. 구글 번역도 에스페란토를 지원하고 심지어 ChatGPT 같은 서비스에서도 에스페란토를 지원한다. ChatGPT의 성능은 구글 번역보다 조금 더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2014년에는 세계 에스페란토 축구 협회의 주도로 에스페란토 축구 팀(Esperanta teamo de futbalo)이라는 다국적 축구팀이 창설되었다. 홈 구장은 슬로바키아 니트라에 있으며, 국가대표 팀이 아니므로 FIFA가 아닌 NF-Board에 소속되어 있다. 2017년 서울에서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가 열렸을 때 동대문 팀을 상대로 1대 0으로 승리한 바 있다.

에스페란토는 인지도나 사용자층 면에서 매우 미진하지만, 영어에 비하면 무국적성이 강하기 때문에 국제어로서의 명분은 남아있다. 이는 아직도 에스페란토 운동을 이어나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2.1. 국제어의 가능성

흔히 국제 공용어를 목표로 한다고 해서 '에스페란토는 언어의 다양성을 훼손한다'라는 오해를 하기 쉽다. 하지만 에스페란토 운동의 방향은 모든 언어를 에스페란토로 통일시키는 것이 아니라 '1인 2언어'를 갖추어서 각자가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되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 소통이 필요할 때는 에스페란토를 공용어로 쓰도록 하는 것이다.

에스페란토는 영어나 프랑스어처럼 힘있는 언어가 국제어라는 미명하에 타민족에게 강요되는 현실을 비판하고 언어의 평등을 지향하며 만들어진 인공어이다. 다만, 특정 언어가 강요되는 현실을 비판하며 개발된 언어임에도 인도유럽어족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한계를 가진다. 실제로 1992년 UN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에스페란토를 배우는 데 미국과 유럽의 아이들은 매주 2시간씩 1년이 걸리지만, 동아시아의 아이들은 매주 2시간씩 2년이 걸린다고 한다. [12]이에 근거해 결국 에스페란토에서 말하는 평등은 인도유럽어족 사용자만 누릴 수 있는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할 수 있다. 물론 에스페란토가 만들어진 때는 19세기로, 당시의 시대 상황을 감안하면 자멘호프가 비유럽권 국가들을 고려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유대인으로서 차별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유럽 중심적인 언어라는 비판의 화살을 자멘호프에게 돌리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13] 당시 시대상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한계점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런 비판점을 염두에 두어, 근래에 고안된 인공어들은 여러 대륙의 여러 언어들을 참고하거나 고안자의 출신과 다른 대륙의 언어를 바탕으로 만들기도 한다. 또는 기존에 존재하는 언어에 기초하지 않고 새로운 방식을 고안하는 경우도 있다.

에스페란토가 모든 이들의 제1외국어가 된다면 현재 영어가 하는 역할을 에스페란토가 수행하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또 다른 언어적 헤게모니가 되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있다.[14] 에스페란토가 다수 언어나 국제적 공용어가 된다면 이와 동시에 에스페란토에 반대하는 세력이 생겨날 것이며, 이렇게 되면 에스페란토에 대항하는 또 다른 인공어들이 주목받게 될 것이라는 가정이다. 이는 특히 두 에스페란티스토 사이에서 태어나 에스페란토가 모어인 사람이 아주 많아지는 경우라면[15] 높은 확률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이런 시나리오의 경우 1인 2언어를 지향하고 있는 에스페란토 특성상 부모가 에스페란티스토라고 해도 그 자손은 부모 중 한쪽의 언어나 자신이 사는 지역을 토대로 한 모국어를 가지게 될 경향이 높다. 가령, 각각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모국인 에스페란티스토 부부가 결혼하여 스페인에 자리를 잡고 산다면, 그 자식은 자연스럽게 에스페란토를 모국어로서 습득하겠지만, 동시에 학교와 사회를 거치며 스페인어 또한 모국어로 구사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모국어로서 에스페란토를 습득하였다 해도 스페인어는 여전히 그 지위를 유지한다.

유럽 연합 공용어로 에스페란토를 채택하자는 주장은 비교적 최근에 제기되었다. 이 주장의 선두 주자는 세계 에스페란토 협회이다. 법적으로 EU는 모든 가입국들의 언어를 인정하기에 통역 또는 번역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한다. 물론 외교관쯤 되면 영어는 기본이고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지만, 그렇다고 영어를 비롯하여 특정 언어를 공용어로 제정하기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통번역 비용으로 지출되는 금액도 막대하며, 각 언어마다 표현의 범위가 다른지라 이로 인한 오역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중립적인 에스페란토를 공용어로 채택하자는 주장이 있다. 생각 외로 이 주장에 호응이 커서, 20% 정도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근시일 내에는 실제로 채택되기에 불가능함이 확실하다.[16]

현실적으로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어차피 영어 등 세계적으로 힘있는 외국어를 익혀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데, 현재 사용 인구가 아주 많은 것도 아닌 에스페란토를 공용어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단순히 정치적 문제 때문에 새롭게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만약에 에스페란토 사용 인구가 많아져서 지정이 된다면 그것은 에스페란토가 '또 다른 힘있는 언어'가 됨을 의미할 뿐이다. 인터넷이 없던 20세기 초반에는 지금의 영어 같은 특정 언어권 국가들이 압도적으로 전 세계 경제력을 장악하지 않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는 국제 공용어가 영어임을 누구나 공감하므로 굳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해 가면서까지 기존의 영어를 대체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EU의 공용어 중에 하나로 등록하는 것이면 오히려 번역해야 하는 언어 수를 하나 더 늘려놓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고, 에스페란토를 대표 언어로 지정하는 것은 현시점에서 불가능하다. EU에서 활동하는 외교관 및 정치인과 EU 산하 각 기관에서 일하는 직원 상당수가 영어와 프랑스어는 알아도 에스페란토를 알기는 극히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2.2. 대한민국

최초로 에스페란토를 배운 한국인은 벽초 홍명희이다.[17] '벽초'라는 호가 '최초의 청록인', 즉 최초의 에스페란티스토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 에스페란토가 보급된 것은 1920년 김억이 YMCA에서 공개 강습회를 개최한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1920년 김억에 의해 YMCA에서 공개 에스페란토 강습회가 개최되었다. 김억은 1920년 발간된 《폐허》 창간호에 《La Ruino》(폐허)라는 에스페란토 창작 시를 발표하였다. 1922년에는 개벽에 에스페란토 교재 《에쓰페란토 자습실》(에스페란토: Verda E. Kim’a Memlernolibro de la lingvo “Esperanto”)을 발표하는 등 꾸준한 에스페란토 보급 활동을 이어갔다. 《에쓰페란토 자습실》에서 김억은 에스페란토를 한글로 표기하는 데 독창적인 표기법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이 표기법에서는 한국어에서 사용되지 않는 음운을 옛 한글의 겹자음으로 표기하였다. [18] 이때부터 조금씩 사람들이 모여 ' 조선 에스페란토 협회'가 창설되었고, 당시 유명한 동인지에는 거의 대부분 에스페란토에 대한 글이 실리는 등 많은 보급 활동이 있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찾아보면 1930년대에 동아일보 등에 연재된 에스페란토 학습 코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비 연구로 유명한 석주명 박사가 에스페란토를 사용하여 논문 내용을 발표하였다. 문학 시간에 배우는 카프(KAPF)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에스페란토 표기 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19]를 줄인 말이다.

1923년에는 신봉조가 한국어 최초 에스페란토 교재 《강습용 에쓰페란토 독본》(에스페란토: Kursa legolibro de Esperanto)을 출판하였다. 1937년엔 조선에스페란토문화사 [이] 사장 홍형의 [21] 에 의해 완전한 에스페란토 잡지인 《Korea Esperantisto》가 창간되었으나 일제의 방해로 얼마 못 가 폐간된다.

일제 강점기 동안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서 에스페란토를 배웠다. 안중근의 조카 안우생 [22], 이재현, 백남규 [23] 등이 대표적이다. 백남규는 1931년 《동아일보》에 《에스페란토 강좌》(에스페란토: Esperanta Katedro)를 연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인해 한국에서의 에스페란토 운동은 위태로워진다.

독립운동가 이재현 선생이 쓰고 김교영이 감수한 에스페란토 사전이 1969년에 발간되고, 1975년 한국 에스페란토 협회가 창립되면서 한국의 에스페란토 운동은 새 전기를 맞는다. 협회 창립 당시 회장은 최덕신이었고, 197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세계 에스페란토 협회 총회 참석 직후 미국으로 망명한다. 1985년 단국대학교에서 최초로 에스페란토를 정규 교과목으로 채택했다. 이어 1986년에는 부설 에스페란토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로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경희대학교, 원광대학교 등에서 에스페란토를 정식 교양 과목으로 개설하였다. 그러나 이상주의 및 세계주의적인 면으로 인해, 군사 독재 시기 공안 정국하에서는 에스페란티스토들이 공산권과의 연계성을 의심받기도 했다.[24] 1994년에는 제79차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가 서울에서 열렸고, 2017년에 23년 만에 제102차 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한국 에스페란토 협회는 전국에 10개 지부를 갖추고 있으며, 매년 한국 에스페란토 대회(가끔 한일 공동 대회)를 개최한다. 이를 중심으로 여러 에스페란토 강좌가 열리고 있다. 특히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는 교재와 사전을 발간하고 있는데, 대형 서점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사서 독학할 수 있다. 교재는 언어 학습 도서치고 양이 적다.

한편 원불교가 종단 차원에서 에스페란토를 후원했다. 에스페란토로 경전을 번역하고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 때마다 사람을 파견한다. 외국인들 앞에서 에스페란토로 지은 기도문을 한국의 교당에서 축문하는 식으로 낭송하기도 했다.

에스페란토 동아리로는 1983년에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캠퍼스에 생긴 콜롬보(Kolombo), 2015년에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캠퍼스에 생긴 올리보(OLIVO)가 있다. 2021년 9월에는 부산외국어대학교에 에스페로(Espero)가 생겼다.

한국 내에서도 유럽언어기준에 맞춘 에스페란토 시험 KER(Komuna Eŭropa Referenckadro)가 실시되고 있다.

2.3. 북한

북한에서는 한국 전쟁 직후, 에스페란토를 지원하던 박헌영이 간첩으로 몰려 숙청되며 에스페란토 운동은 거의 사라졌지만, 1959년에 다시 조선 에스페란토 협회[25]가 설립되었다. 이 단체는 1964년 350쪽의 에스페란토 사전을 출판했으며, 120여 명의 학생이 강의에 참여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이후로는 당국에서 에스페란토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사라진 모양으로 1989년 TEJO의 대표단이 평양의 세계 청년 대회 참가차 방문했을 때는 에스페란토 화자와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 하지만 에스페란토 중국 협회에 매년 북한의 에스페란토 화자가 1980년대에 방문했다는 기록, 그리고 에스페란토로 2004년에 북한으로부터 편지가 왔던 기록이 있는 걸로 볼 때, 정권 수립 때부터 내려오는 북한의 에스페란토 화자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볼 수는 없지만. 중국 에스페란토 화자가 북한 정부와 협의해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북한 관광 안내원을 길러내는 사업을 한 듯하다. # 그리고 북한에서 에스페란토 운동을 주도한 사람의 자손되는 분이 사적으로 유럽의 어떤 에스페란토 단체를 방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 아마 에스페란토 운동을 북한에서 주도한 사람들이 대부분 숙청된지라 마치 북한의 교회처럼 에스페란토 운동이 지하 운동화 되어 에스페란토 화자라는 걸 당당히 밝힐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현재는 조선 친선 협회 등에서 가끔 에스페란토로 된 프로파간다 등이 올라오긴 하지만 이건 사실은 스페인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북한 정부 지원 친북 단체인지라 북한의 공식 인정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북한 정부 차원에서의 공식적인 에스페란토 운동이나 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정부가 얽힌 역사 때문에 애써 에스페란토 화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하다.

2.4. 중국

중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한국과는 달리 에스페란토를 정부 차원에서 장려하려는 모습을 보여왔다. 영어는 미국의 언어라는 인식으로 지위를 상승시키기 싫고, 그 대체재로서 에스페란토를 장려하는 모양. 중국 에스페란토 대회가 개최될 즈음에 후진타오가 " 표준 중국어만 잘 배울 게 아니라 계속하여 에스페란토도 배워야 한다."라고 하였고 중국 대륙에 워낙 다른 언어라고 할 정도로 사투리가 많아 소통에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것 역시 한몫했다. 중국 정부에선 중국인들을 더욱 통합시키는 공통 언어로서 표준 중국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할 것과, 세계를 하나로 통합시켜 줄 언어로서 에스페란토를 배울 것을 권장했다. 실제로 인지도가 거의 없는 한국에 비해, 중국인들 중에서는 조금이나마 에스페란토를 구사하는 사람이 있다. 언어 교환, 펜팔 어플 등에서 중국인들이 에스페란토를 구사한다고 프로필에 적는 비율이 꽤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에스페란토를 하는 사람은 소수로, 웬만하면 영어를 배운다.

또, 역사적으로 아나키스트에 의해 도입했다는 점도 중국에서 정치적인 장점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1920년대에 국민당, 공산당 세력이 커지면서 아나키스트들도 국민당 계열과 공산당 계열로 분열되었고 조금이나마 공산당 계열 아나키스트에 의해 보급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2.5. 대만

대만에는 타이완 에스페란토 협회(Tajvana Esperantista Asocio)가 있다. 이 협회는 책도 두권 출판 했는데, Tajvana EsperantistoFormoza Folio이다.

2.6. 일본

일본에서는 오모토교(大本敎)[26]가 교단 차원에서 에스페란토를 후원한다. 창교조 데구치 나오 이후 메이지 정부로부터 탄압받아 온 종교인데, 교리에 언젠가 세계가 단일화한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2대 교주의 남편이자 실질적 교조인 데구치 오니사부로(出口王仁三郎)가 에스페란토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에스페란토 전파에 공이 큰 사람을 골라 매년 '데구치상'을 수상하는데, 이게 에스페란토계에서는 꽤 권위가 있다고 한다. 현 교조는 여자인데, 역시 데구치 나오의 후손이다.

2.7. 러시아

러시아에서는 에스페란토 발표 후 인기가 급증하였으나 소련 시절 스탈린 치하에서는 에스페란토에 대한 박해가 계속되었다. 당시 에스페란티스토 3만여 명이 체포되었고, 에스페란토 문학가인 니콜라이 네크라소프(Николай Некрасов), 블라디미르 바란킨(Владимир Варанкин), 예브게니 미할스키(Евгений Михальский)를 포함한 2천여 명이 처형되었다. 스탈린 사후인 1953년부터는 에스페란토 운동이 되살아났다. 현재 러시아 에스페란티스토 연합(Rusia Esperantista Unio)이 활동하고 있다.

2.8. 브라질

브라질에서의 에스페란토는 리우데자네이루, 상파울루 등 대도시를 위주로 성행한다.

3. 학습

에스페란토 학습용 유튜브 강좌가 여러 개 있는데 그중 가장 현대적인 코스는 에스페란토 학당이 있다. 초급 속성 강좌를 10분 내외의 짧은 동영상으로 속도감 있게 강의한다.

스마트폰 앱으로는 듀오링고 에스페란토 코스가 가장 확실한 앱인데, 아쉽게도 한국어 화자에겐 그림의 떡이다. 영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프랑스어를 이용해서 에스페란토를 배울 수 있고, 유럽 언어 표준 B2급 수준의 중급까지 도달할 수 있다.

한국에서 만든 멤링고 에스페란토는 듀오링고와 유사한 모바일 웹 앱으로, 듀오링고에서 지원하지 않는 아시아 언어권에서 에스페란토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앱이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대만어, 베트남어를 이용해서 에스페란토를 배울 수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멤링고가 듀오링고보다 더 유용하다.

학습 시 꼭 필요한 것이 사전인데, 휴대폰으로 쓸 수 있는 에스페란토 사전이 유용하다. 마영태 저 에/한, 한/에 사전을 옮긴 것으로 1천 페이지 분량의 방대한 사전을 간결하게 휴대폰으로 검색할 수 있다.

웹 기반 에스페란토 사이트로는 레르누!가 있다. 40여 개 언어로 에스페란토를 배울 수 있다. 조금 더 가볍게 체험해 볼 수 있는 사이트로는 12과로 가볍게 배우는 에스페란토 사이트가 있다. 한국어 포함 20여 개 언어를 지원한다. 에스페란토 학습 길잡이는 첫걸음부터 고급에 이르기까지 이런저런 학습 자료를 폭넓게 제시한다.

오프라인 강좌는 서울 에스페란토 문화원 강좌가 가장 좋다. 다양한 에스페란토 교재를 출판한 이중기 원장의 저자 직강으로 2개월 입문 과정을 10년 넘게 360기 이상 진행하여 상당히 권위가 있고, 만족도가 높은 강좌로 알려져 있다.

각 지역, 지부에서 열리는 강좌들이 있으나, 문화원 강좌만큼 상시 운영되지는 않는다. 지역별 오프라인 강좌는 별도로 한국에스페란토에 문의하면 안내받을 수 있다.

4. 특징

인도유럽어족 언어를 기초로 어미의 통일, 발음의 구조화, 호격 변화의 일관화 등을 통해 쉽게 배울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 문법에 예외가 없다. 인공어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장점. 또한 에스페란토가 그 당시 나타났던 수많은 인공어를 제치고 현재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자멘호프 박사가 주창했던 '언어의 공유를 통한 평등과 평화'가 현재까지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에스페란토는 언어인 동시에 세계 평화 운동으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인도유럽어족 언어가 기본이고 어휘의 선택이 라틴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로망스어군에 모여있어 유럽인에게는 배우기가 매우 쉽다. 문법은 슬라브어에 가깝고 기초 어근은 로망스어에서 유래한 게 많다.

그러나 복수와 목적격을 나타내는 접사 j와 n이 수식어와 피수식어에 모두 붙는 모습은 라틴어나 그리스어가 수식어와 피수식어가 모두 굴절하는 모습을 연상케하며, 이 때문에 굴절이 거의 완벽하게 제거된 영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들은 에스페란토의 이 규칙에 익숙해지는 데 상당히 고생한다. 심지어 로망스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도 완전히 익숙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이런 면은 오히려 한국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이 더 익숙해지기 쉽다는 평을 받는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 부분 한정이고, 언어 전체를 공부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히 유럽인이 압도적으로 배우기 쉽다. 당장 단어만 해도 로망스어군에 많이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엔 보고서에 의하면, 유럽 학생이 아시아 학생보다 에스페란토를 더 빨리 익히며, 다만 아시아 학생이 에스페란토를 배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다른 유럽어에 비해 훨씬 적게 든다고 한다.

에스페란토 기초 단어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단어가 많은데, 이는 초창기 에스페란토계에 '루이 드보프롱(Louis de Beaufront)'이라는 프랑스인이 끼쳤던 영향력 때문이다. 드보프롱은 프랑스어스러운 에스페란토 문장을 구사했는데, 이 때문에 비프랑스인 에스페란티스토들마저 프랑스어스러운 문장이 좋은 문장인 줄 알고 따라 하는 통에 드보프롱의 단점까지 널리 퍼졌다. 이후 드 보프롱은 '이도(ido)'라는 이름의 '개정 에스페란토'를 발표한다.[27]

또 다른 인물로 카지미에시 베인(필명 '카베')이 있다. 그는 적극적으로 에스페란토 운동을 펼치다 갑자기 운동을 떠났는데, 이 때문에 'kabei(카베하다)'라는 동사가 '에스페란토 운동을 아무 말 없이 떠나다'라는 의미로서 사용되고 있다. 갑자기 떠난 이유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31년 인터뷰에서 당시 에스페란토 운동에 진전이 없어 에스페란토가 국제어가 될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다. 초창기 에스페란토 운동에 크게 기여했기에 그의 업적은 무시할 수 없다.[28]

5. 음소

에스페란토의 음운은 유럽어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음소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는 폴란드어 음운과 매우 비슷한데, 폴란드어 철자법으로도 에스페란토를 그대로 전사해 낼 수 있을 정도다. 여기에는 창시자 자멘호프의 모국어가 폴란드어였던 영향도 있었다.[29]

문제는 폴란드어는 외국인들이 배우기에 발음이 매우 어려운 언어임에도 에스페란토의 창시자가 에스페란토를 만들 때 자신의 모어인 폴란드어의 발음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폴란드어의 어려운 발음을 에스페란토에도 가져와서 폴란드어와 마찬가지로 외국인들이 배우기에는 발음이 매우 어렵다는 점으로 이는 에스페란토의 최대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이 에스페란토로 말할 때 주로 할 수 있는 발음 실수는 다음과 같다:

5.1. 자음

양순 순치 치경 후치경 경구개 연구개 성문
<colbgcolor=white,#1f2023> m n
파열 p b t d k g
파찰 t͡s (d͡z)[37] t͡ʃ d͡ʒ
마찰 f v s z ʃ ʒ x h
접근 j
[ruby(접근, ruby=설측)] l
전동 r

5.2. 모음

전설 후설
<colbgcolor=white,#1f2023> i u
중고 e o
a

6. 글자

글자 이름 소리
A a 아 (a) /a/
B b 보 (bo) /b/
C c 초 (co) /t͡s/
Ĉ ĉ 초 (ĉo) /t͡ʃ/
D d 도 (do) /d/
E e 에 (e) /e/
F f 포 (fo) /f/
G g 고 (go) /g/
Ĝ ĝ 조 (ĝo) /d͡ʒ/
H h 호 (ho) /h/
Ĥ ĥ 호 (ĥo) /x/
I i 이 (i) /i/
J j 요 (jo) /j/, /i̯/[39]
Ĵ ĵ 조 (ĵo) /ʒ/
K k 코 (ko) /k/
L l 로 (lo) /l/
M m 모 (mo) /m/
N n 노 (no) /n/
O o 오 (o) /o/
P p 포 (po) /p/
R r 로 (ro) /r/[40]
S s 소 (so) /s/
Ŝ ŝ 쇼 (ŝo) /ʃ/
T t 토 (to) /t/
U u 우 (u) /u/
Ŭ ŭ 워 (ŭo) /u̯/[41]
V v 보 (vo) /v/[42]
Z z 조 (zo) /z/
음소와 글자가 거의 일대일로 대응되도록 윗부호를 사용한다.[43]

6.1. 윗부호와 대체 표기

에스페란토 글자 가운데 ĉ, ĝ, ĥ, ĵ, ŝ에는 곡절 부호(ˆ)가 있고, ŭ에는 단음 부호(˘)가 있다. 이 여섯 글자는 그대로 온전하게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유니코드를 사용하지 않는 환경 등에서 윗부호를 쓰기 어려울 때는 로마자 조합으로 바꾸어 표기한다. 대체 표기 방식 가운데 실제로 쓰이는 것은 다음 두 가지다.
ĉ ĝ ĥ ĵ ŝ ŭ
H 체계 ch gh hh jh sh u
X 체계 cx gx hx jx sx ux
H 체계는 자멘호프가 제안하여 ' 에스페란토 기초'에 게재한 방식으로, 곡절 부호(ˆ)는 대신 뒤에 h를 붙이고 단음 부호(˘)는 생략한다. 이 방식은 ĉ, ĝ, ĥ, ĵ, ŝ는 c, g, h, j, s와 다른 소리이지만, 짧은 u인 ŭ는 u와 같은 소리인 점에서 직관적이고 실용적이다. 다만 원래 글자로 되돌릴 때 h가 원래 h인지 곡절 부호 대신 쓴 것인지, 그리고 u가 원래 u인지 짧은 ŭ인지 구별하여야 하기 때문에 자동 변환은 어렵다. X 체계는 윗부호 대신 x를 붙여 표기하는 방식이다. x가 에스페란토에서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원래 글자로 정확히 되돌릴 수 있어서 자동 변환은 쉽지만 다소 낯설어 보인다.

7. 문법

7.1. 품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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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문장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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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장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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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에스페란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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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에스페란티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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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예문

11.1. 자멘호프 예문

에스페란토 문장 가운데 자멘호프 예문은 믿을 만한 본보기가 되므로 맨 앞에 둔다.
에스페란토 한국어
En la lingvo "Esperanto" ni vidas la estontan lingvon.[44] 에스페란토에서 우리는 미래 언어를 본다.
En la mondon venis nova sento 세상 속으로 새로운 느낌이 왔도다
Vi parolas sensencaĵon, mia amiko.[45] 자네는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구만, 친구여.

11.2. 실생활 예문

자멘호프 예문 외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예문.

12. 에스페란토화

Esperantigo

기존의 단어나 이름 등을 에스페란토 발음에 맞춰 변형시키는 것을 말한다. 에스페란토는 아에이오우밖에 발음 못 하는 사람을 위해 배려된 언어이기 때문에 이에 맞춰 발음에 신경 쓸 필요가 있는 단어를 발음이 쉽게 고친다. 결과적으로 모음에 아에이오우만 있는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과 같은 개음절 언어와 비슷해진다. 또한 에스페란토의 모든 명사는 o로 끝나므로, 단어의 마지막에 o가 붙게 된다.

13. 대중 문화 속의 에스페란토

에스페란토 구절을 일부분만 사용한 경우를 이 문단에 기재한다.

한국과 일본이 아닌 경우를 이 문단에 기재한다.

한국의 경우를 이 문단에 기재한다.


일본의 경우를 이 문단에 기재한다.

13.1. 에스페란토로만 된 매체

에스페란토를 일부만 사용하는 것이 아닌 작품 전체에 오롯이 에스페란토만 사용하는 경우는 이 문단에 기재한다.
wiki/Esperanto_culture, wiki/Esperanto_films 참고.

14. 관련 문서


15. 관련 사이트


[1] 색칠된 국가들은 공인 에스페란토 협회가 존재하는 국가들이다. 에스페란토 화자의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안도라로, 1백만 명당 약 620명꼴로 화자가 존재한다. # 물론 안도라의 인구는 단 85,000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화자 수 자체는 많지 않다. 대략적으로 계산했을 때 50~60명 정도 존재하는 셈이다. [2] 로마자를 쓰는 대다수의 언어, 즉 네덜란드어,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독일어, 루마니아어, 마인어, 베트남어, 스웨덴어, 스페인어, 슬로바키아어, 슬로베니아어, 아프리칸스어, 영어, 이탈리아어, 체코어, 튀르키예어, 포르투갈어 등이 Esperanto라고 표기한다. [3] 제1조,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제2조,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과 같은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 더 나아가 개인이 속한 국가 또는 영토가 독립국, 신탁 통치 지역, 비자치 지역이거나 또는 주권에 대한 여타의 제약을 받느냐에 관계없이, 그 국가 또는 영토의 정치적, 법적 또는 국제적 지위에 근거하여 차별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4] 강세가 부정확하다. [5] 에스페란티스토 시인 김억이 일찍이 이 시를 번역하기도 하였다. [6] 1897년을 기준으로 비아위스토크의 언어 사용 상황을 보면, 이디시어가 62%, 폴란드어가 17%, 러시아어가 10%, 독일어가 5%, 벨라루스어가 3%를 차지하고 있었다. # 다만 세계 대전 홀로코스트, 전후 강제 이주 등을 겪으면서 현재는 인구의 97%가 폴란드인이다. [7] 지금에서야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국력에 의해 영어가 국제 공용어로 쓰이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유럽 밖에서 그나마 힘있는 미국도 유럽에 비해 약했고 나머지 영연방 국가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당대의 초강대국인 영국도 정작 유럽 내에서는 지금의 미국처럼 압도적인 국력으로 군림할 정도가 아니었다. 또한 유럽 땅에 여러 나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긴 하지만 이웃 나라 이외에는 교류가 제한적이다 보니, 외교관이나 무역하는 사람만 여러 언어를 구사하면 되었기에 의사소통의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 [8] 더군다나 이런 외교관의 언어에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로 라틴어를 완전히 대체한 프랑스어가 있었다. 프랑스어의 링구아 프랑카 현상은 20세기 중반까지 지속되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미국을 필두로 영미권의 힘이 강력해지면서 영어가 대체한다. [9] 당대에는 프랑스어가 영어보다 일찍 링구아 프랑카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특히 외교 부문에서는 그 위상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10] 레닌 시절만 해도 에스페란토는 소련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했으나, 1936년 이후 에스페란티스토 30,000명가량이 체포되고, 그 가운데 2,000명이 사망했다. [11] 폴란드 유대인 절멸 작전. [12] 동아시아의 아이들이 에스페란토 외에 다른 언어를 배우는 데는 매주 4시간씩 6년이 걸린다. 에스페란토보다 6배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 [13] 유럽인의 정체성으로서, 차라리 자기가 알고 있는 유럽 쪽 영어, 모국어와 외국어를 가지고 언어를 만드는 게 더 쉬웠을 것이다. [14] '인공어' 분야로 한정하면 이미 헤게모니가 되었다. 에스페란토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인공어 중 높은 사용 인구'이기 때문이다. [15] 즉, 모국어가 서로 다른 부부가 에스페란토로 대화하며, 자식 교육도 에스페란토로 하여 가족끼리 에스페란토로 대화하게 된 경우 등. [16] 이에 따라 에스페란토의 EU 공용어 지정을 목표로 하는 정당도 2003년 창설되었다. # 그러나 현재 지지율을 보면 인지도 없는 소수 정당인 것 같다. [17] 다만 1906년 일본 에스페란토 협회의 기관지에 고종이 에스페란토를 연구 중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해당 문서에는 확실한 사실처럼 적혀 있다. [18] ŝpari → 쉬파으리, ĝis → ᄶᅵ쓰, vojiras → ᅄᅩ이이으라쓰, ĥemio → ㅋ헤미오 [19] 당시에는 Federacio가 Federatio로 잘못 표기되었다. [이] 단체는 시기적으로 볼 때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한 이후 조선에서 일체의 독립운동이나 사회 운동을 허용하지 않고 탄압을 가하던 시기에 창립되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21] 아나키스트. [22] 필명 elpin [23] vlfaud stelaro paik [24] 반미 성향의 운동권 학생들 중 일부가 에스페란토에 주목하거나 배우기도 했기 때문에 이런 오해를 받은 측면도 컸다. 그러나 에스페란토 자체는 공산권에서도 크게 지원받던 언어가 아니었다. 공산권의 링구아 프랑카 역할은 러시아어가 하고 있었다. [25] 일제 시대의 조선 에스페란토 협회와는 다른, 조선로동당 정권의 통제하에 있는 단체이다. 에스페란토 명칭은 Korea Esperanto-Asocio, 현재의 한국 에스페란토 협회와 같다. [26] 이 이름은 모시는 신을 오모토스메오미카미(大本皇大御神)라고 하기 때문에 붙여졌다. [27] 이 때문에 드보프롱은 에스페란토의 배신자로 평가받은 바 있으며 에스페란토 언사이클로피디아에서는 마치 에스페란토계의 이완용과 같이 서술해 놓았다. [28] 카베가 에스페란토 운동을 떠난 일을 매우 아쉽게 이야기하지만, 그를 배신자라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에스페란토 낱말을 에스페란토로 풀이한 사전을 최초로 편찬한 사람도 카베다. [29] 아예 이를 이용해서 구현된 에스페란토 TTS도 있다. [30] 한국어에는 무성음/유성음 대립이 없어서 무기음/유기음 대립으로 대체해서 발음하는데, 당연히 대부분의 유럽계 에스페란토 화자는 못 알아듣는다. [31] 외국어를 접한 경험이 있다면 C는 영어의 ts, 독일어의 Z나 일본어의 つ를 생각하면 되고, 아니라면 'ㅌ'의 혀 모양으로 'ㅊ'를 발음한다 생각하면 된다. Ĉ는 '차/촤'나 영어의 ch처럼 발음하면 된다. [32] Ĝ는 '자'/'좌'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그걸로 익히면 된다. 성대를 계속 울리면서 Z는 '으사', Ĵ는 '으샤'식으로 하다가 '으'를 빼면 된다. [33] F와 V는 아랫입술을 물고 기류를 살살 흘리며 발음하는 것이고, P와 B는 두 입술로 기류를 막았다가 터트려 발음하는 것이다. [34] Si는 '싀', Ŝi는 '시/쉬'라는 식으로 익히면 쉽다. [35] Ĥa는 '흐아', Ha는 '하'라는 식으로 익히면 수월하다. [36] 이 경우, R을 전동음으로 발음한다면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37] 이견이 있으나 /d͡z/는 대체로 에스페란토 음소로 인정된다. Wikipedia: Esperanto orthography - Consonants Lingvaj babilaĵoj, 177-180 참조. [38] 이렇게도 볼 수 있겠으나, <j>는 모음 앞에서 경구개 접근음이 되어 자음 음소 /j/로 따로 나누어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Wikipedia: Esperanto orthography - Consonants 참조. [39] 모음 앞에서는 자음 /j/가 되고, 모음 뒤에서는 이중 모음의 끝 모음 /i̯/가 된다. Wikipedia: Esperanto orthography - Sound values 참조. [40] 표준은 전동음이나 다른 rhotic 계열 발음도 허용된다. [41] 이중모음 aŭ와 eŭ에서만 쓰이며, 초성으로 사용될 수 없다. (글자 이름 ŭo는 예외.) Wikipedia: Esperanto orthography - Sound values 참조. [42] 표준 발음은 [v\]이지만 변이음 [w\]가 허용되므로 /v~w/와 같이 쓸 수도 있다. 예컨대, 화폐 단위 ‘원’의 에스페란토 vono에 가까운 소리는 /워노/지 /보노/가 아니다. 한국어 음소에 /w/와 /b~p/는 있지만 /v/는 없고, 에스페란토에서 /v/, /b/, /p/는 각각 별개의 음소이기 때문이다. [43]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d͡z/, /ai̯/, /ei̯/, /oi̯/, /ui̯/, /au̯/, /eu̯/와 같은 음소는 두 글자로 표기된다. [44] Ekzercaro §22. [45] Ekzercaro §35. [46] 경례를 뜻하는 영단어 Salute와 어원이 같다. [47] 밤에 헤어질 때는 물론, 밤중에 만났을 때에도 사용할 수 있다. [48] 독일어의 Danke, 일본어의 男根(남근)과 비슷한 발음이라서 관련 유머가 언급되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땅콩'과 엮인다. [49] 영어의 Fuck과는 발음이 유사하지만 어원은 다르다. 동사형인 Feki는 '똥을 싸다'의 의미로, 영어의 shit과 비슷한 의미. 이렇게 보통 어미가 따라붙는 단어가 어근만 사용되는 경우는 주로 감탄사로 쓰인다. Shit을 그대로 빌려 Ŝet라 하는 경우도 있다. [50] La knabo manĝas la fiŝon도 맞는 표현이다. [51] 듀오링고의 예문으로, 듀오링고에서 가장 유창한 에스페란토 표현으로 평가받는 예문 중 하나이다. [52] 다만 외국인 이름 같은 경우는 스스로 에스페란토 표기를 규정하지 않는 이상 원래 로마자 표기 그대로 쓰인다. [53] 여담이지만, 토마소(Tomaso)는 이탈리아어 인명으로도 쓰인다. [54] 이는 영어에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55] 관사 la를 so라고 쓴다거나, si를 j^e라고 쓴다. [56] 인간의 영혼을 빼앗는 주문이었다. [57] ことのはアムリラート(Kotonoha amrilato). amrilato는 amo(사랑) + rilato(관계)의 합성어로, '연인'의 의미이다. [58] mal('~아닌, ~와 반대의') + grava('중대한, 엄중한') peto('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