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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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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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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인민회의 활동 모습

1. 개요2. 특징3. 주요 권력기관
3.1. 역대 최고지도자3.2. 조선로동당의 국가 영도 3.3. 정책기관 ( 국무위원회)3.4. 행정부 ( 내각)3.5. 입법부 ( 최고인민회의)3.6. 사법부 ( 중앙재판소)3.7. 검찰 ( 중앙검찰소)
4. 선거
4.1. 실상4.2. 역사4.3. 역대 선거 결과
5. 부정부패6. 북한의 구색정당과 정치단체들7. 정치 의식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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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정치 정보
<colbgcolor=#024fa2> 부패인식지수 17점 2023년, 세계 172위[1]
언론자유지수 20.66점 2024년, 세계 177위[2]
민주주의지수 1.08점 2023년, 세계 165위[3]
북한 정치를 서술하는 문서.

북한의 정치 이념과 제도는 민주집중제, 일당제, 인민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며, 중국, 라오스, 베트남, 쿠바와 함께 공산주의에 입각한 정치체제를 냉전 이후에도 유지하는 드문 나라다. 1960년대부터 중소 갈등기에 주체사상의 도입과 반대파 숙청을 통해 김일성 1인 독재로 변모했고, 김일성 - 김정일 - 김정은의 3대 세습을 이어가고 있다.[4]

북한의 독재체제와 통치 이념은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본래 구상과는 많이 동떨어져있어서 전제군주제, 봉건제, 신정 체제로 비유되기도 한다. 특히 공화정을 자처하는 지도자가 3대 세습을 하는 역사적으로도 아주 드문 예인 데다가 주체사상을 하나의 종교로 간주하면 더욱 그럴듯(?)하다.

그러나, 이런 면은 전체주의 체제에서 보여주는 일부분이다. 현대의 정치학자들의 분류로는 예나 지금이나 북한의 체제는 전체주의 독재 체제다.[5] 유엔 인권 이사위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 또한 2014년 2월 17일 발표한 역사적인 최종보고서에서, 북한 정권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악의 전체주의 체제라고 판단했다.

2019년 취약국가지수의 국가의 합법성(State Legitimacy) 분야에서 남수단과 함께 공동 1위를 차지했다. #[6] 정권의 정당성 같은 것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그나마 남수단은 독립 후의 부족/종파/군벌 간의 내전으로 인한 정권 불안이 한꺼번에 겹쳐서 그렇지, 이 쪽은 그런 것도 없이 1위를 찍은 것이라 관점에 따라서는 남수단보다 훨씬 질이 나쁘다. 2021년에는 국가의 합법성(State Legitimacy)이 9.9점을 기록해 예멘, 리비아와 함께 공동 3위를 기록했다. (공동 1위는 10.0점을 기록한 시리아, 기니) [7]

2. 특징

2.1. 인민민주주의, 민주집중제 독재

북한이 독재 국가가 된 이유 중 하나를 찾자면 북한이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정치 체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헌법상으로 북한은 민주집중제 인민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로 스스로를 민주국가라 주장하며, 정당도 여러개 존재하는 복수 정당제 국가다.

그러나 북한 체제는 조선로동당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영도하며 군대마저도 국가가 아닌 당의 군대고 이론상 국가 체제는 사회주의 실현을 위한 중간단계의 요구 조건일 뿐으로 국가 군대 정부 모두 강력한 당우위 통제 아래 지배받는 형태다.

주류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한 기관에 권력을 몰아주면 독재로 귀결된다고 보아 행정 - 입법 - 사법으로 권력을 분리하고 상호 견제하게 한다.[8] 그리고 모든 국가 권력은 합법성에 제한받는다. 아울러 특정 집단이 권력을 독점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일반 인민의 선거를 통해 행정부와 입법부의 인원을 주기적으로 교체하며, 이를 위해 복수정당제를 통해 여러 정당의 설립을 보장하고 있으며 대의 민주주의에 기반한 정책 토의 기구가 상설적으로 가동된다.

그러나 공산 국가에서는 입법부가 행정부와 사법부의 우위에 있으며, 그 입법부를 전위당이 장악함으로써 모든 국가기관이 전위당의 통제를 받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전위당의 우위나 전위당의 국가기관 지도 따위를 명기함으로써 전위당의 일당독재를 명문화한다. 북한의 체제에서는 국가기관에는 어떠한 정책 통제 기능이 없으며 당의 정책 지도를 받아야만 행정기관이 집행할 수 있다. 그 근거는 조선로동당 규약이 헌법보다 우선한다는 것으로서, 헌법에서조차 로동당의 국가 영도를 명문화했기 때문에 명실 상부하게 당의 정치 통제를 국가기관의 행정 통제보다 우위에 두고 있다. 따라서 당의 정무적 판단과 정책지도가 국가 기관의 행정력이나 법률보다 우선된다.

이론적 기반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권력분립과 선거를 통한 권력 창출을 부르주아들의 기만적 압제의 도구라며 부정하고, 법률보다 노동자의 일반의지를 중시한 데 있다. 그들은 현대의 선거 및 권력분립을 통한 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부르주아 독재)로 보았는데, 투표를 행사하고 난 뒤에는 노동자 및 일반 인민이 다시 노예로 회귀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부르주아 계급이 타도된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권력분립을 부정하여 입법부와 행정부가 분리되지 않고, 인민의 전부가 된 노동자에 의해 선출된 대표들의 회의체에서 입법권과 행정권을 동시에 행사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또한 이런 대표가 결정한 사항은 인민의 일반의지가 반영된 것으로서 모두가 복종해야 했다. 이것이 민주집중제이다. 인민민주주의는 이러한 공산주의 정치 체제에서 노동자가 아닌 계급의 정치 참여를 일부 허용하는 사상이다.

이와 같은 사상적인 이유로 북한은 권력분립을 부정한다. 김정일은 생전에 대놓고 "부르죠아어용학자들은 립법권과 행정권, 사법권을 분립시키는 것이 민주주의의 징표인듯이 묘사하지만 사실상 3권분립은 봉건전제주의를 반대하여 부르죠아지가 들고나온 주장의 하나입니다."라고 말했으며, 2018년 10월 12일에 김일성종합대학은 홈페이지에 '3권분립론은 비과학적이며 허황한 반동론'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하며 "3권분립론이 나온 때로부터 부르죠아어용학자들은 그것이 주권조직과 실현에서 균형을 보장하는 민주주의적인 통치체계 수립의 리론적기초라도 되는듯이 떠들면서 광범히 류포시켜 왔다"며 "그러나 3권분립은 그 비과학성과 허황성으로 해 주권조직과 실현의 리론적기초로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 글은 주권이 "립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비롯한 일체 권력의 융합체이며 권력 활동 전반을 총괄하며 주도하는 최고권으로 그 어떤 경우에도 해체되거나 분할할 수 없는 유일권"이라고 주장했고, 주권기관이 유일기관, 완전권력기관으로 돼야 하고 그래야 북한 최고인민회의에 주권의 유일성과 완전성이 담보된다며 북한의 독재 체제가 3권분립보다 우월하다는 것처럼 설명했다. 그러고는 "최고인민회의를 비롯한 각급 인민대표 기관들이 주권의 유일기관, 완전권력기관이 돼 북한에서 주권은 인민에게 전속되며 인민이 주권의 주인으로서 최고권을 행사하게 된다"고 설명하고는 "3권분립에 의한 주권실현이 권력 간 제어와 견제가 설정돼 민주주의정치가 보장된다고 것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궤변"이라고 비난한 후 3권을 각각 전담 받은 기관들인 의회, 대통령과 정부, 재판기관 역시 주권기관이 아닌 것은 물론 주권기관을 대신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

하지만 공산주의 국가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인민민주주의, 민주집중제는 여러 문제점을 보이며 실패했다. '세력 간 균형이 깨져서 한 세력이 권력을 독점할 경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심도있게 고민하지 않았던 결과, 집권자나 집권정당에 대한 견제체제가 작동하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아 특정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고 반대 세력을 무력화하면서 독재 체제를 완성하는 결과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다. 견제 장치가 존재하지 않고 정권이 교체될 위협이 존재하지 않으면 국가기관은 점차 집권자 위주의 인사로 편성되며, 정적들은 자연스레 밀려난다. 그리고 절대적인 존재가 된 집권자나 집권 정당은 선거나 일반 인민으로부터의 의견 수렴 과정을 형식화하면서 독재 체제를 완성한다.

그리고 김일성은 자신의 권력을 자신의 자손들에게 세습시키면서 북한의 정치 체제를 사유물로 변질시켰다.

북한은 1970년대 이전에는 김일성이 지도자이긴 해도 조선로동당 내 견제세력이 있었고, 현재와 달리 말 한마디 잘 못했다고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동구 사회주의 국가의 일당독재와는 다르게 김일성이 조선인민군을 장악하고, 8월 종파사건이나 갑산파 숙청, 1970년대 초반 김정일 후계자 지명 때 숙청 과정에서 조선로동당과 인민군이 김일성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주며 절대 권력을 몰아주었다.

2.2. 권력 사유화

20세기의 정치학자들은 이러한 종류의 정치조직을 전체주의 국가라고 분류하였다. 이러한 국가는 소수의 권력 집단이 권위적인 지배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주민들의 생활의 모든 부문을 장악하며 공포심을 주입시킨다.
2014년 유엔 인권이사회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 (통일연구원 번역)
수령은 육체적으로만 보통 인간이지 뇌수 능력은 이 세상 천재들을 다 합쳐도 따르지 못할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중에 수령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가는 수령만이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수령이 지정해주는 사람이 다음번 수령으로 국가를 지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과 인품을 지닌 수령이 국가를 지도해야지 다른 사람이 국가 지도자로 될 수 없다는 것이 수령의 유일적 령도체계입니다. 인류 력사상에 처음으로 태어난 수령이 김일성이고 수령의 안목으로 보고 판단한 다음번 수령이 아들 김정일이고 또 그 다음번 수령이 손자 김정은이라는 것입니다.
김성일 사건의 주모자 김성일이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에게 전한 말 #

북한은 전형적인 전체주의 독재 체제다. 김씨 일가가 국가의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가산제 국가 형태까지 띄고 있다.

북한은 명색이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면서도 사회주의와는 모순된 권력 세습을 주체 사상과 10대원칙으로 정당화 하고 있다.

북한의 3대 세습을 특별한 정치 체제의 고유성으로 보나 이는 독재 체재에서 빈번히 있는 일이다. 이전의 최초의 3대세습 공화국인 니카라과( 소모사 가문)를 포함하여 대표적인 예로 시리아의 독재자인 알 아사드, 구소련의 아제르바이잔, 아프리카 가봉, 콩고민주공화국 토고는 역시 부자세습을 했으며, 우간다는 부자세습 준비중이고, 예멘과 이집트는 부자세습 하려다가 혁명으로 실패, 짐바브웨는 로버트 무가베가 아내에게 부부 세습 도중에 쿠데타로 무산, 쿠바의 독재자인 피델 카스트로가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에게 승계한 사례가 있다. 유교 문화권인 아시아에서는 싱가폴과 대만의 부자 세습이 있었기 때문에 북한 체제의 낙후성의 형태로 세습이 이뤄진 것이지 세습 자체가 북한 체제의 특성은 아닌 것이다. 왕조 드립은 봉건주의를 타도 한다는 이상아래 봉건시대와 유사한 세습을 조롱하려는 의미이지 북한 체제의 고유 특징이 세습으로 대표 되는것은 아니다. 북한은 현대 정치학에서 분류로 전형적인 전체주의 독재 국가이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사후 흐루쇼프에게서 격화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마오쩌둥도 사후 장칭을 비록한 4인방이 숙청되면서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에 대한 비판을 받는 것을 본 김일성이 자신이 권좌에서 물러나거나 죽으면 받게 될 비판에 겁을 먹어 자신의 아들 김정일에게 모든 권력을 세습하면서 자신에게 닥칠 비판과 처벌을 피하고자 했고[9], 이것이 김정일, 김정은 그리고 김씨 일족과 그 측근들의 이해 관계에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세습도 당연히 아래에 언급한 직접선거를 거쳐 이루어지므로 북한 정권은 이를 근거로 단순히 수령님의 아들이라 된 것이 아니라 인민들이 뽑아준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북한의 선거 지형 상 실제 인민의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북한의 헬게이트를 보면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인 만큼 중국과 소련의 비판을 받으면서 자신의 아들 김정일에게 세습하였고 김정일 역시 중국과 사이가 멀어질 것을 알면서도 김정은에게 권력을 세습한 것이다. 북한 지배층들도 북한 주민들의 가난과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하고 김씨 일족에게 아부하여 본인들의 영달을 누린 것을 알기에 본인들의 권력과 부를 지키기 위하여 이러한 세습체제를 옹호하고 있는 이상 북한 정권이 붕괴되기 전까지는 이러한 해괴한 세습 체제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날조된 생가인 백두산 밀영은 북한 내에서는 '위대한 계승의 만대가 열린 역사의 집'으로 언급되며, 2022년 12월 8일에는 <당의 영도력을 끊임없이 높여나가기 위한 강령적지침>에서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새시대 당건설방향을 천명하신것은 (중략) 전당강화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감으로써 우리 당의 근 80년집권사를 800년, 8,000년으로 이어나갈수 있는 진로를 명시하고 존엄높은 김일성 - 김정일주의당의 성격과 본태를 영원히 고수하며 당의 영도력을 끊임없이 높여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는 만년기틀을 마련한 역사적 사변이다."라고 언급하며 북한을 김씨 일가의 사유물로 여기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

3. 주요 권력기관

파일:조선노동당구조.png

파일:북한정부기구.png

현재의 북한 5대 권력기관은 다음과 같다.[10]

조선로동당은 북한의 국가조직을 포함한 모든 조직에 존재한다. 인민학교는 소년단, 중고등학교부터 30세까지는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결혼하면 조선사회주의녀성동맹, 직장에 가면 조선직업총동맹, 농촌에 가면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집에 가면 인민반 등등 모든 조직이 조선로동당의 지도(정치 통제)를 받는다. 4대 기관도 마찬가지다. 군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가 군의 총정치국을 통제하고, 총정치국은 군 내 모든 인사권을 통제한다.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외무성은 물론이고 내각, 중앙검찰소 등의 권력기관 곳곳에도 정치비서나 지도원이 파견되어 있으며, 이들은 단순 감시역이 아니라 해당 기관 내부의 로동당 부서로 기관장을 능가하는 권력을 행사한다.

로동당을 제외한 4개 기관은 특수기관으로 여기는데 다른 조직과 달리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김정은에게 직보가 가능하다. 다른 기관의 경우 예외 없이 당중앙위원회 산하 부서를 통해 정책 통제와 협의를 거치지 않고서는 김씨 3대에게 제의서(보고서) 한 줄도 올릴 수 없는 강력한 당 우위의 정치통제를 거친다. 특이한 점이라면 내각은 5대 권력기관에 못 든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내각이 국방부를 통해 군을 통제하고 내무부를 통해 경찰을 통제하지만, 북한 내각은 다른 나라라면 일개 부서인 외무성보다 힘이 없다. 실제로 북한 내각의 장관은 조선로동당의 부부장급 대우를 받으며 공산주의 국가답게 당이 국가를 영도하기에 로동당 부서장이 내각의 장관보다 상급지위이다. 예를 들어 조선로동당 경공업부장이 내각의 경공업상보다 상급자이며 로동당 경공업 부부장과 같은 대우이다. 실제로는 이런 당 우위 구조가 더 심하여 내각의 국장들은 내각 상이나 부상보다 당중앙위원회에서 파견온 위원들을 두려워하며 이들이 실제 정책을 지도하고 이들의 협의 없이는 문서를 보고할 수 없는 구조이다. 제의서에서도 당중앙위원회의 심의와 협의를 거쳐 보고했다고 명시해야 하기 때문에 내각의 장관들은 자기 명의로는 제의서 한 줄도 작성해서 보고 할 수 없다. 외무성의 경우 김정일 시대에 1980년에 당 국제부를 거치지 않고 보고하라는 명령과 함께 90년대 들어 북핵 협상과 식량외교에 대해 전권을 위임받으며 로동당 부서와 인민군, 국가보위성 등이 참여하는 대외 투쟁 및 협상용 태스크포스팀의 수장을 외무성 제1부상이 전담하며 내각의 권한을 넘어선 권력기관이 되었다. 고난의 행군 시절 내각의 총리는 돈이 없어 6일 동안 열차 타고 모스크바 가는 동안 외무성의 실무자들은 비행기를 잘만 타고 다닐 정도였다. 다만 탈북 외교관 고영환의 말로는 역시 특수기관이라 불리는 외무성에서 조차 국장내지 과장도 아닌 로동당 조직지도부 말단 파견 지도원이 내각 상이나 제1부상을 사무실로 오라 가라 할 정도의 영향력이 있으며 외교부장이라 하더라도 귀국시 외무성 파견 정치지도원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

5대 권력기관은 각자 외화벌이 업체를 운영하고 자체적으로 예산 통제를 허락받았기 때문에 내각에서 이들 권력기관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조선인민군 몇 군단이 김정일에게 1호명령으로 하달된 공사를 해야되는데 자체적으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바다에서 수산물 잡아서 충당하겠다 하면 수산물 잡이 회사를 운영하고 가공하고 수출해서 외화를 받아서 예산을 세우고 남는 돈은 알아서 해먹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런 특권들은 회수되지 않고, 다달이 정기적으로 충성자금만 잘 상납하면 당 간부나 장령급 군관이나 달러벌이 외화업체 간부들은 몇십만 달러 몇백만 달러씩 축재를 하는 것도 가능할 정도다.

3.1. 역대 최고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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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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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역대 국가원수 직책

3.2. 조선로동당의 국가 영도

제11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2019. 8. 개정)

다른 공산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조선로동당이 국가를 영도하고 조선로동당 규약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에 우선한다.

그러나 다른 공산당이 당이 우위에 있고 독재자라도 당에 소속되어 움직이는 데 반해서 김일성은 당마저 초월하는 절대권력의 1인자 위치에 섰다. 이념적으로 당이 중요시되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1인자를 강조하는 주체사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 경향은 특히 강해졌다. 1956년 8월 종파 사건과 지속적인 숙청을 거치며 사실상 당내 반대 세력이 소멸하자, 김일성이 당에 소속된 형태가 아닌 당 조직이 수령의 지도를 받는, 김정일의 말대로 수령, 당, 대중의 삼위일체라는 이론이 출현하며 수령을 구심점으로 당이 수령의 사상과 철학을 인민에게 교양하는 형태로 변질되었다. 그것은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결국 북한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교시와 로작이 당의 규약보다 우선하여 사실상 법치국가를 포기해버렸다.

로동당의 통제는 모든 기관에 우선한다. 로동당과 더불어 초법적 집단인 조선인민군 또한 국가나 국민의 군이 아닌 당의 군대'모든 인민군 군관은 군인인 동시에 로동당원이기 때문에 당의 통제를 받아야 하며 군 역시 총정치국이라는 인민군 내의 로동당을 통해 교육 지시 검열의 통제를 받는다. 국가안전성과 사회안전성, 중앙검찰소 역시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에서 간부사업(인사)를 담당한다.

3.3. 정책기관 ( 국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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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김정일 시대의 핵심 권력기관으로 조선로동당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위상이 있었다. 국가의 국방정책 전반과 군사력을 통제/관리하며 군대를 지휘했다. 무력을 통제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최고 권력이었으며, 김정일이 국방위원장 직함으로 국가를 다스렸기 때문에 사실상 최상위 권력기관이었다.

김정일은 선군정치 이념을 사상적 기반으로 하여 국가 운영에 나섰다. 무력의 총집결기관으로써 대단한 위상이지만 고난의 행군 등 비상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한 비상식적인 통치기구였고 선군정치에 대한 효과도 떨어지면서 김정은 시대에는 위상이 대폭 줄어들었다. 특히나 반쯤 군벌이 된 군에 대한 견제가 심해지면서 위상도 많이 내려갔다. 특히, 2012년 헌법 개정을 통해 김정일을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명시하면서, 김정은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라는 과도기적 직책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2016년 6월 29일, 헌법 개정을 통해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개편하였다. 기능 역시 국방위는 "국가 주권의 최고 국방 지도 기관"이었는데, 국무위원회는 "국가 주권의 최고 정책적 지도기관"으로 명시되었으며 사실상 국방과 행정, 경제, 외교 모두를 총괄 관리하는 초월적 기관이다. 물론, 초대 국무위원장은 김정은. 중국 주석이나 미국 대통령과 동격의 직책을 만들기 위함으로 파악된다. 쉽게 말해 위신을 세우기 위한 간판 갈이.

3.4. 행정부 (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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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서 결정하고 로동당 담당부서의 행정적 집행만을 담당하는 하부기관이다. 북한에서 모든 기관이나 기업소에는 로동당에서 파견한 정치일군(일꾼)이 파견되는데 다른 기관과 마찬가지로 행정 통제보다 정치 통제의 우위가 명문화 되었고 내각도 마찬가지로 내각의 상(장관)과 부상(차관)급이라도 로동당 담당부서 파견원과 상의없이 김정은에게 단 한 줄의 제의서(보고서)도 올릴 수 없으며 행정 집행도 로동당의 집행 감독을 받아야 한다. 현 내각 수장은 총리 김덕훈. 다른 공산권에서는 당이 정책을 세우고 조직을 관리하며 내각은 실무를 담당하는 편인데 북한 내각은 아예 실권이 별로 없다. 예를 들어 로동당 경공업부장이 내각 경공업상보다 상급자이며 북한에서 내각의 장관은 로동당 부부장과 동급의 직위로 취급된다. 실제로 부서 자리가 잡다하게 많고 서너 개 부서가 로동당 중앙위원회 산하 일개 부서의 통제를 받는다.

북한에서 내각(정부) 위에 군림하는 사실상의 상전들이 다섯이나 존재한다.

김일성은 절대 우위의 권력을 가지자 기존의 내각제 수상에서 국가주석으로 위치를 옮기면서 당과 내각을 자기 밑의 쩌리로 전락시켰고, 1970년대에는 아예 내각에서 정무원으로 격하당하면서 위상까지 내려갔다. 김정일이 집권한 1998년부터 내각으로 복원된 뒤에도[11] 김정일은 국방위원장, 김정은은 국무위원장 직함으로 통치하고 내각총리는 그저 허수아비나 다름 없는 수준이 되었다.

이래서 그런지 보면 좀 불쌍하다는 느낌도 드는데, 아무래도 직접 국가를 운영하다 보니까 현실도 알고 나름 개혁도 좀 해보고 하려는 등 어떻게든 개막장이나 다름없는 국가를 근근히 운영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실질적인 권력이 거의 없다보니 이런 행동이 효과가 크게 없다. 80 ~ 90년 대에 있었던 개혁 바람은 김정일이 해당자들을 대숙청하면서 끝나버렸고, 군대에 갈 인재들을 국가 운영에 돌려보려다가 역시 모두 박살이 났고, 심지어 김정은이 주도한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까지 지고 숙청을 당했으며 장성택이 내각을 이용해 뭘 좀 해보려다가 숙청을 당하면서 그런 상황은 더욱 깊어졌다. 북한의 경제는 공식적으로 민수경제를 제1경제, 군수경제를 제2경제, 당 재정을 제3경제로 분리하는데 우선순위는 로동당 재정경리부와 39호실로 대표되는 김정은의 사금고인 3경제가 최우선이고 여기서 남는 자금을 군수경제로 투자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민수경제는 완전히 포기 상태이다. 로동당과 인민군 뿐만 아니라 위의 나머지 3개 특수기관도 저마다 외화벌이 업체나 자체 공장이나 저장시설들을 운영하기 때문에 민수경제 분야는 심심하면 경제난의 책임을 지고 숙청당하는데 실권 제로 책임 무제한이라서 누구나 기피한다고 한다.

2016년 6월 새 헌법에 국무위원회는 ‘최고정책적 지도기관’, 내각은 ‘행정적 집행기관’으로 명시해 상하관계 가능성을 시사했다. 게다가 내각총리가 국무위원회 위원을 겸직하게 되면서 상하관계가 확실해졌다.

직제상으로 국무위원회가 내각을 통솔하지만 실제로는 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중앙위원회 건물에 입주한 로동당 서기실[12]이 실무를 담당하는 걸로 본다.

3.5. 입법부 ( 최고인민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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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국가의 의회에 해당하는 기구다. 현재 최고인민회의 의장은 박인철이며 부의장은 박금희, 상임위원장은 최룡해다. 기본적으로 공산주의 국가들이 내각 책임제 형태로 명목상 국가원수로 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내세우나[13] 실질적인 권력이나 권한은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는 조선로동당이 무조건 최고인민회의보다 상위다. 무엇보다도 최고인민회의에서 하는 일은 대의원 몇명이 제출된 의안이 채택되면 박수치기, 대의원 전체가 제출된 의안에 무조건 100% 찬성하며 제출된 의안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는점만 봐도 최고인민회의가 실권이 없다는게 보여지는 대목이다.

북한 헌법에서 최고인민회의에 권한이 있다고 해서 실제 권한이 있는걸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조선로동당 규약이 사회주의헌법보다 우선시되고 사회주의헌법에서조차 조선로동당이 국가를 영도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에[14] 최고인민회의는 조선로동당의 결정을 추인하는 수동적인 기관일 뿐이다. 그리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던 김영남조차도 실권이 없었다.

이론상 인민이 직접 선출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을 통해 대의제 정치를 하며 입법권을 가지고 북한의 법을 제정할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국가 주요 직위자를 임명하기도 한다. 김정일도 이곳에서 추대 절차를 밟아 국방위원장에 올랐다. 이념상, 이론상으로 인민의 대표로서 정통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무시되지 못하는 권력기관. 하지만 딱 여기까지이고 그 외에는 하는 일 없는 자리다. 주요 권력기관에 들지도 못한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의석 수는 88% 이상이 조선로동당 당원이다. 나머지는 천도교청우당 조선사회민주당 등에 소속된 의원이다. 그러나 이 3개 정당은 실상 한 몸으로, 단일 정치집단을 구성하고 있다. 주요 정치 집단인 조선로동당 외의 2개 정당, 즉 자칭 사민주의 정당인 조선사회민주당[15]과 자칭 천도교 민족정당인 조선천도교청우당실제로는 관제야당이다. 물론 현지에서는 당연히 관제 같은 부정적인 단어는 일체 안 쓰며, 조선로동당의 친구 정당이라는 뜻으로 우당(友黨)이라 칭한다. 어용화를 위한 합법적 근거로서, 이 세 정당이 연대하여 하나의 정치 집단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구성한 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후보를 배출하는 유일 정치 집단으로 군림한다.

3.6. 사법부 ( 중앙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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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사법부 최고 기관은 중앙재판소이다. 소장은 최고인민회의에서 대의원들의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중앙재판소 소장의 임기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임기와 같으며 인민재판소 판사는 해당 지방 인민회의 대의원의 임기와 같다. (북한 헌법 제160조) 또한 특별재판소 소장과 판사는 중앙재판소가 임명 또는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북한 헌법 제161조) 현재 중앙재판소 소장은 차명남이다.

북한은 2심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시/군 인민재판소에서 1심을 담당하고 도/직할시 인민재판소가 2심을 담당하지만 도/직할시 인민재판소에서 1심을 담당하면 중앙재판소가 2심을 담당하게 된다. 혹은 중앙재판소가 1심을 담당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단심으로 선고한다.

3.7. 검찰 ( 중앙검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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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한국과는 달리 검찰이 사법부나 행정부와는 독립되어 있다.

중앙검찰소 소장의 임기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임기와 같다. 또한 중앙검찰소는 검사를 임명하거나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북한 헌법 제154조, 제155조) 현재 중앙검찰소 소장은 우상철이다.

한국에서 보면 중앙검찰소는 대검찰청, 인민검찰소는 각 지방의 검찰청에 해당된다.

원래 이름은 최고검찰소였으나 2016년 6월 29일 헌법 개정으로 지금과 같은 이름으로 바뀌었다.

4. 선거

헌법 제6조 - 군인민회의로부터 최고인민회의에 이르기까지의 각급 주권기관은 일반적, 평등적, 직접적 원칙에 의하여 비밀투표로 선거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2012년 개정)

북한은 국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도 나와있듯이 (자칭) 민주주의 국가다. 일단 북한의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의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의 투표 의결에 의해 선출되었고, 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도 모두 주민들의 직접투표로 뽑힌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3개나 되는 정당이 합법적 승인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17세 이상의 공민, 그리고 나이에 관계 없이 군대에 복무하는 공민[16]은 선거권을 가지는데, 판결에 의해 제한을 받은 자와 정신병자는 선거권/피선거권이 없다.

최고인민회의와 각급 지방인민회의 선거는 헌법상 규정된 대의원 임기에 따라서 정기적으로 행해지고 있으나 6.25 전쟁, 김일성 사망과 고난의 행군 등의 국난으로 인해 수년간 연기되기도 하였으며 필요에 따라 별다른 설명 없이 수개월 정도 대의원 임기를 연장하는 경우도 흔하다.

4.1.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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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위의 헌법과는 별개로 이런 포스터를 공개적으로 제작한다.[17]

[ 북한의 선거 관련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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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지방 인민의회 대의원 선거에 참가한 김정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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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투표용지. 앞면은 멀쩡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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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으면 이렇게 되어 있다. 사실 이런 식의 투표용지는 여러 나라에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사진에 나와있다시피 북한은 투표용지에 도장으로 후보 이름이 찍혀있다. 단 투표소에 따라서는 지정된 후보 이름을 손글씨로 미리 적어 놓은 투표용지를 주는 경우도 있다.[19] 그나마 이건 일반적인 경우고 김씨 일가 같은 경우엔 밑의 사진처럼 아예 그냥 인쇄시켜 놓았다.




북한의 투표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일단, 유권자가 투표소에 신분증[20]을 지참하고 들어간다. 그리고 선거인 명부와 대조하여 신원을 확인하고 투표용지를 받는다. 그렇게 받은 투표용지에는 위의 사진에서 보듯 후보 이름이 미리 찍혀 있다. 투표용지를 그대로 투표함에 넣으면 자동으로 찬성표로 인정된다. 만약 반대를 하고 싶다면 기표소로 들어가서 기표소 안에 있는 펜으로 후보자 이름에 X표를 그어서 투표함에 넣으면 반대표. 참고로 기표소 앞에는 인민보안부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훤히 지켜보고 있다. 간혹 드물게 반대에 투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사람들은 이미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갈 것을 각오한 것[21]이다. 물론 이런 투표 자체가 형식에 불과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실질 권력은 인민이 아니라 김씨일가와 이에 찬동하는 핵심계층을 통해 나오기에, 설령 북한 주민들의 과반수가 반대표를 던지는 모험을 해본들 결과가 딱히 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 1949년 이후로 북한에서는 김일성 시기에 16번[22], 김정일 시기에 4번, 김정은 시기에 2번, 이렇게 총 22번의 지방선거가 치러졌는데, 1987년까지 열린 선거 13회 모두 투표율 100%, 찬성율 100%라는 대기록을 보유했고, 1989/1991/1993년 지선에서는 찬성율은 100% 그대로였어도 투표율은 99.73%/99.89%/99.9%로 감소(?)했다. 이후 김정일 시기에도 투표율은 100%를 기록하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99.82%를 기록했고, 김정은 시기인 2015/2019년에 있던 선거도 투표율이 각각 99.97%/99.98%를 기록했으며, 김정일, 김정은 시기의 선거들 역시 2019년까지 모두 100% 찬성을 기록했다. 그러나 2023년부터는 반대표가 나오게 되었는데, 자세한 것은 후술.

100%에 육박하는 투표율을 만들기 위해 북한은 재외국민[23], 행방불명자나 실종자[24]는 유권자에서 빼고 있다. 사실상 죽기 일보 직전의 심각한 중환자[25]가 아닌 이상 거처가 확인된 북한의 모든 주민들은 다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26] 김정일 시대 이후로 투표율이 정확히 100%가 되지 않는 것도 투표인 명부가 확정되고 난 이후 투표 당일까지 사이에 사망자와 탈북자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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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투표에 사용되는 투표용지
보시다시피 김정일[27]의 경우에는 이름이 도장으로 찍혀있는 것도 아니고 이름이 인쇄되어 있다. 그것도 '위대한 령도자'라는 수식어와 '동지'라는 호칭까지 붙여서.[28] 여기서 굳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싶다면 보안부와 보위부 요원들의 눈 앞에서 아름답게 새겨진 최고존엄의 존함 위 검은 줄 두 개를 그은 뒤 당당하게 이 최고존엄 모욕물을 투표함에 넣고 조용히 다른 곳으로 끌려나가면 된다.

또한 최고인민회의 및 각 선거의 실상을 열어보면 이렇다.

당선자는 미리 정해져 있고, 북한 내부에서 실시되는 투표는 형식적인 행위에 불과하다. 즉 북한의 선거는 말이 선거지, 사실상 당에서 정한 후보를 인민에게 한번 보여주면서 주민들의 당에 대한 충성심을 시험해보는 행위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연유로 인해 아무리 유권자에게 사정이 있더라도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정 몸이 안 좋아서 못 움직인다면 관계자들이 업어서라도 데려간다.

2014년 3월 김정은 집권 이후의 첫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13기 최고인민회의에 선출된 대의원은 모두 687명으로, 이 새로운 최고인민회의는 김정은을 국가 최고 지도자로 추대하는 것에 당연히 100% 찬성했다.

공산주의 국가의 총본산인 소련에서조차도 스탈린 이후에는 선거 시스템을 이용해서 최소한의 민의는 반영되었다. 50%의 찬성률을 받지 못하면 낙선되어 버리는 것을 이용해서 주민들이 집단행동을 해서 투표소에 죄다 안 나가버린다고 선언하고 그걸 막기 위해 지역구 의원들이 지역구 정책을 반영한다던지, 후보는 한명이지만 후보 선출 과정을 독립적으로 만들어서 어느 정도 검증된 사람들이 선출되게 한다던지의 식이었다. 북한에서는 이 둘 모두를 못하므로, 정말로 선거가 장식인 것이다. 공산국가들의 헌법이 보통비밀평등선거의 원칙 자체는 주장하기 때문에 진짜로 그 원칙을 지킨다면 민주선거는 할 수 있다. 실제로 헝가리는 1990년부터 한동안 공산주의 정권의 헌법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또한 나치 독일에서는 단일 후보에 대해 가부를 묻는 방식이어서 선거 방식은 실질적으로 북한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일단 비밀투표 원칙 자체는 유지되었고 적어도 100% 찬성표가 나오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억압적이기로 유명했던 동독에서도 정치가 완전히 장식인 것은 아니었다. 동독도 공개투표에 단 하나의 원내교섭단체를 상대로 찬반투표를 하는 건 같았지만 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정당들이 실제로 어느정도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1972년 동독에서 낙태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킬 때 동독 기독민주당이 반대표를 던진 사례 있다. 하다못해 중국조차도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 싼샤댐 건설 당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1/3에 달하는 반대표와 기권표가 나와 상당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북한은 이러한 국가들조차 능가하는 극악한 수준까지 도달한 것이다.

사실 선거에서 100% 찬성율을 보인 경우가 북한만 있는 것은 아니고 엔베르 호자 시기의 알바니아와 프랑수아 뒤발리에 시기의 아이티도 있다. 후자는 아예 모든 투표용지에 미리 찬성표를 표기한 후에 투표를 하게 한 케이스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북한 선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능하다.

사실 2023년 이전에도 북한 선거에서도 반대표가 나온 적이 있었다고 한다. 정확히는 2003년 진행된 지방선거에서 극소수 지역에 한해 한두 표의 반대표가 나왔으며, 으슥한 곳에 자리 잡은 담벼락과 건물 벽면에는 "선거를 타도하자"와 같은 부정적인 내용의 낙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당연히 해당 지역 정권기관과 보위기관은 발칵 뒤집혔고, 이 사건이 '국가 전복'을 꾀하는 '파괴암해분자들'의 '악랄한 책동'이라고 주장했다. # 당연히 공식적으로는 이 반대표는 무시된 채 100% 찬성으로 공표되었는데, 정황상 아주 극소수의 반대표가 나왔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100% 찬성으로 결과를 조작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웃기게도 북한은 이러면서 2023년 7월 21일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평양출판사에서 남한의 인권 실태를 다루겠다며 출판한 책 '인권동토대'[31]에서 대한민국에서의 선거의 권리가 "허울뿐인 선거의 권리"라며 "남조선에서는 누구나 대통령에 나갈 수 없고 수억원의 기탁금을 내야 선거 출마가 가능하며, 선거운동비는 그보다 훨씬 더 든다. 이건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 백두혈통'을 제외한 그 누구도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32] 그야말로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물론 북한 사람들이 '행간을 읽는' 식으로 보면 "아니, 현직 지도자와 관련이 없는 사람도 돈을 내기만 하면 누구나 자신을 지도자로 뽑아달라고 선거에 출마할 수 있어?"로 보이겠지만.(...) # 기탁금이든 선거운동비든 15% 이상 득표하면 돌려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적혀있을지도 의문이다.

얼핏 보면 북한의 100% 투표율과 찬성투표라는 것이 단순히 독재국가에서 일어나는 괴상한 일 정도로 치부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 체제의 특수성을 알 필요가 있다. 북한은 주체사상을 국시로 삼고 있는데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육체적 생명과 정치적 생명으로 구분짓고, 김일성 이전의 일제강점기와 '봉건조선'에는 인민대중의 육체적 생명만 있고 봉건왕조와 고관대작의 독점 하에 놓인 정치에는 참여할 수 없으며 그들이 던져주는 떡고물만 받아먹으며 간신히 연명하던 동물과 같은 삶으로 정의했다. 이러한 구체제를 김일성이 일제와 봉건제도를 일시에 타파하고 연이어 침략해온 미제와 싸워내며 북조선 인민들에게도 인민 스스로 정치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정치적 생명'을 내려주었다고 교육한다. 육체적 생명이 있더라도 정치적 생명이 없다면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하는데 북한에서 정치적 생명이 없다는 것은 조선로동당을 비롯한 당, 기업소, 직장, 각종 동맹 등의 사회활동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당연히 봉급이나 배급도 받지 못하니 의료나 행정 등의 서비스도 받을 수 없게 된다. 북한 인민에게 있어 정치적 생명활동의 가장 큰 표출인 선거라는 행위에 참여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멀쩡히 살아있고 북한 사회의 일원임을 증명하는 아주 중요한 행사이며 당연히 만사 제쳐놓고 참여해야만 하는 것이다. 투표에 반대표를 던지거나 불참하는 행위는 북한 정권에 있어 김일성이 하사한 정치적 생명을 갖다버리는 것 이상으로 주체사상과 그것을 주창한 김일성까지 부정하는 아주 불경한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4.2. 역사

4.2.1. 6.25 전쟁 이전

외형적으로 다양한 정치 체제가 혼합된 연립정부 형태를 지녔으나 공산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에 스탈린 치하 소련과 유사한 민주집중제였고, 매우 억압적이었다.

선거 방식도 이미 이 때부터 남한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1948년과 1957년 당시엔 선거구마다 흰색과 검은색 투표함이 2개 있었고, 찬성자는 흰색, 반대자는 검은색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어야 했다. 형식상 투표자가 투표용지를 주먹에 쥐고, 손을 먼저 흰색 투표함에 넣고, 다음에 검은색 투표함에 넣으면서 본인이 선택한 투표함 안으로 투표 용지를 넣어야 했지만, 당국에서 공개 투표를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규칙을 인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따라서 투표함이 가려져 있기는 했지만 손을 어느 쪽으로 넣는지에 따라 반대투표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선거제도는 자유 진영 국가들에서 거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

초대 지역 인민위원회 선거는 무소속과 기타 정당이 50.1퍼센트, 조선로동당이 31.8퍼센트, 그리고 조선민주당[33]과 청우당이 그 나머지를 점하는 결과가 나왔다. 당시 선거에 관한 이야기다. 찬성 투표율은 이때부터 98.5%가 나왔다.

민주적인 선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나마 반대 투표가 1.5% 정도나마 존재했고 무소속 비율이 높은데다 정당 수도 굉장히 많았다는 점에서 당시 북한이 아직 김일성의 권력이 확고하지는 못한 연립정부 형태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애초에 공산국가의 일반적인 선거인 찬반제가 아니라 '다자후보 선거'가 있었던 것은 이 시기가 유일하다.

4.2.2. 6.25 전쟁 이후

건국 초기부터 민주적인 선거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6.25 전쟁과 8월 종파사건, 도서정리사업 등을 거치면서 더더욱 상황은 나빠지기만 했다.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시행된 투표는 1957년에 이루어졌다. 1957년에 선출됐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4분의 1 이상이 숙청되었고 대의원 신분을 상실하였다. 따라서 북한 당국은 보충 선거를 진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북한 매체는 이 선거에 대한 아무런 보도를 하지 않았다. 이런 결정의 이유는 숙청된 자의 수를 숨기고 싶어 하는 의지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소련 대사관이 이 선거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당시 북한 주재 소련 대사관의 2등서기관이었던 바쿨린은 보고를 통해 이 선거에 대한 실상을 남겼다. #

바쿨린 서기관의 보고에 따르면, 1957년에 선출된 대의원 215명 중에 51명이 숙청되었고 5명이 사망하였다. 숙청된 대의원 중에 조선로동당 당원 28명, 북조선민주당 당원 7명, 천도교청우당 당원 8명, 인민공화당 당원 2명, 근로인민당 당원2명, 건민인민연합 당원 1명 그리고 비당원 3명이었다. 숙청된 사람들 중에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김달현,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김병제, 북조선민주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홍기황, 북조선민주당 평양시 위원회 위원장 김명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위원장 겸 근로인민당 위원장 리영, 북조선불교도련맹 위원장 김세률,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위원장 김창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김두봉, 내각 부수상 박의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현질종, 무역상 진반수, 식량수매상 오기섭, 석탄상업상 류축운, 수산상 주황섭, 조선중앙통신사 사장 박무, 총정치국장 최종학 등 고급 간부들도 포함되었다.

선거구마다 투표자들에게 “귀 선거구 대의원이 반인민 행위자로서 숙청되었다”고 직접 설명하였다. 이 보충 선거는 56개의 선거구에 진행되었고, 이들 중에 55개의 선거구에 조선로동당 당원들이 출마하였고, 나머진 1개의 선거구에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박식덕이 출마하였다.

1959년 7월 19일에 치러진 찬반 선거 당시엔 소련과 같은 방식을 채택하게 되었다. 선거구마다 붉은 투표함이 하나 있었고, 찬성자는 그냥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었고, 반대자는 후보자의 이름을 줄을 그어 지워야 했다. 선거구엔 칸막이도 설치되었지만, 칸막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반대 투표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행동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비밀 선거의 원칙은 지켜 지지 않았다. 선거의 공식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전체 56개의 선거구에 유권자 120만 명 중에 99.99%가 참가하였고, 14명 (0.001% 정도) 이외에는 전체 찬성 투표하였다.”

물론, 최고인민회의는 실권이 없는 조직이기 때문에 이 선거 자체가 북한 정치사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에 관련해서는 3가지 정도가 주목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숙청된 대의원 비율을 보면 당시 숙청이 얼마나 대규모였는지 짐작된다. 둘째, 선거 때 김일성에게 반대 투표를 한 14명은 2023년까지는 북한 역사상 마지막으로 반대 투표를 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재 정치체제가 얼마나 진실을 잘 은폐하는지 볼 수 있다.

물론, 북한의 선거에서도 수치상으로 변화가 있던 시기가 있었다. 자세한 바는 아직 확인된 바 없으나, 때로는 조선로동당보다 더 많은 숫자의 기타 정당이 뽑힐 때도 있었고, 재외국민의 투표권이 인정된 후에는 조총련이 원내 정당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조선로동당이 절대 다수당으로 군림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8월 종파사건을 비롯한 숙청이 있었다. 위키자료#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100% 투표율을 달성하기 위해 북한에는 각 지역마다 사실상의 봉쇄령이 내려진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선거철만 되면 '지방주권을 반석같이 다지는 선거에 공민이라면 누구든지 단 한 사람의 누락도 없이 빠짐없이 모두 참가해야 한다는 정치사업과 선전선동 교양을 선거 전날까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강조해 주민들을 각성시켜야 한다'는 취지 하에 지역 간 이동에 필요한 승인번호, 여행증명서, 출장증명서 등의 발급을 일시적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지방선거의 성과적 보장을 위해 당장 필요한 사안이라고 해도 도 밖을 벗어나는 것은 무조건 금지하고는[34] 도내에서의 인원 및 윤전기재들의 이동도 제한한다고 한다. 다만 2023년 11월 26일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예정되어 있으며 각 공장·기업소들이 11월 인민경제 계획을 100% 수행하는 데 최선을 다해 선거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킬 것을 강조하면서 경제 부문에서 성과를 낼 것을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선거 기간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건 사고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 공장·기업소, 학교. 인민반들에서 '적들과 반동분자들에게 작은 틈도 주지 않도록' 경비를 강화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하며 주민들의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 행위 단속이 한층 강화하는 분위기라고 하는데, 이 사실을 전한 양강도 소식통에 따르면 직맹·여맹·청년동맹과 안전·보위기관들의 사복 단속대들이 군중 집합장소나 학교, 골목, 장마당, 길거리들을 돌면서 주민들의 옷차림, 머리단장, 초상화 착용 상태 등을 단속하고 있고, 역전에 널브러져 있거나 무질서하게 뭉쳐있는 사람들 또는 술에 취해 돌아다니거나 오물을 버리는 행위 등도 단속 대상이며, 단속에 불응하거나 난동을 부릴 경우에는 안전·보위기관 단속대들이 바로 끌고 간다고 한다. # 선거를 앞두고 평양시에서 살던 군인 일부와 그 일가족을 함경북도 길주군의 농장, 탄광으로 추방하거나[35] # 심지어 3명 이상 모이는 것[36]까지 금지하는 등 가혹한 통제가 동반되고 있다. # 사실 지방 대의원선거 때마다 선거장을 지키는 특별경비는 강화했지만, 사적 모임까지 단속하면서 주민통제를 강화하는 것은 드문 현상이라고 하는데, 이는 코로나 방역으로 국경 봉쇄와 주민 이동 통제가 장기화되면서 민생이 악화돼 주민들의 불만이 가장 높았던 코로나 사태 후 처음으로 실시하는 선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37]

100% 찬성 투표가 옛말이 되어가는 듯한 징후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양강도 소식통은 2023년 11월 7일 각 지방 인민위원회 대의원을 선출하는 유권자회의와 예비투표가 진행되었다고 전하며 지역 주민들이 도내의 모든 선거구마다 도당위원회가 내정한 2명의 후보자 중 하나를 고르는 선거 방식으로 대의원 후보를 뽑는 예비투표가 진행됐는데, 예비선거도 북한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지만 복수의 후보를 선정해서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투표하게 한 것도 북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처음으로 도인민회의 대의원 후보자를 고르는 투표방식에 대해 생소하게 여기고 있다고 하며, 예비선거에서 투표의 비밀이 보장되는 것을 새로 경험한 주민들 속에서 선거에 대한 관심이 커진 분위기라고 한다.

이 선거는 공약을 보고 투표하는 게 아니라 후보자의 신원이나 경력을 감안하여 투표하는 것인데 소식통의 말로는 예비투표를 통해 2명의 후보[38] 중 1명[39]이 70% 이상의 찬성표로 당선되어 대의원 후보에 올랐다고 전했다. 다만 이번 예비선거에서 당선된 대의원들이 출마할 11월 26일 본선거는 선거구마다에 1인 대의원 후보자로 나가 그대로 찬성투표하게 하는 예전의 방식으로 선거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전직 고위 관리 출신 탈북자는 선거에 복수의 후보자를 낸 것이 김정은이 국가 정책에서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라고 말하며 강압적으로 규제하고 통제하고 여러 가지 법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조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이렇게 주민들에게 자율성도 주고 사회발전과 국가관리에서 민주주의적인 변화도 가져온다'는 신호를 주자는 것 같지만 앞으로도 북한 김정은 정권의 본질은 달라질 수도 없고, 달라지지도 않을 것이라면서 일부 선거방식과 인민민주주의 주권기관에서의 사업방식이 달라질 수는 있어도 북한 정권의 속성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정은이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한 것을 고려하면 김정은 입장에서는 나름의 당근과 채찍 전략인 셈. # #

북한에서는 복수 후보자를 강조하기 위해 찬성표는 초록색 투표함에 넣고, 반대표는 빨간색 투표함에 넣게 해 '반대 투표함'까지 따로 만들었다.

선거 결과에 따르면 투표자 중 도(직할시) 인민회의 대의원후보에 대해서는 찬성 99.91%, 반대 0.09%가 나왔고, 시(구역)·군 인민회의 대의원후보에 대해선 찬성 99.87%, 반대 0.13%가 나왔다. 67년 만에 북한 선거에서 반대표가 나온 것이다. 덤으로 다른 나라에 가있거나 먼 바다에 나가 투표하지 못한 선거자는 0.37%였고, 심지어 기권자도 10~14명 가량[40] 나왔다고 한다.(0.000078%)[41] #

4.3. 역대 선거 결과

역대 최고인민회의 선거 결과
연도 투표율 찬성 투표율
1948 99.97% 98.49%
1957 99.99% 99.92%
1962 100%
1967
1972
1977
1982
1986
1990
1998 99.85% 100%
2003 99.9%
2004 99.97%
2009 99.98%
2014 99.97%
2019[42] 99.99%

탈북자 학교 목사가 쓴 북한의 선거제도

5. 부정부패

"100원 떼먹은 놈은 자기비판하고 1,000원 떼먹은 놈은 호상비판을 하며, 만 원을 떼먹은 놈은 주석단에 앉아 회의를 집행한다."
북한에서 도는 풍자
북한에서는 뇌물이라는 게 아이 때부터 다 겪어오는 거라고 보면 돼요. 그런 것만 보고 배워서 어른들이 하는 말은 "야, 갖다 고이라 고이라 고이면 다 된다," 고이는 게 뇌물이에요 뇌물. 고이다는 말이 (뇌물이에요). 장난 아니에요. 그러니까 (북한은) 모든 게 뇌물 아니면 되질 않아요. (삶에) 한 70~80%는 뇌물이라고 보면 돼요.
탈북자 이순실의 증언 출처
우리 당이 세도와 관료주의,부정부패행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투쟁하여왔지만 그것이 아직도 완전히 극복되지 못하고있습니다. 세도와 관료주의가 허용되고 용납되면 부정부패가 성행하고 전횡과 독단이 생겨나게 되며 그것이 쌓이면 반당의 싹이 자라게 됩니다.

일군들속에서 나타나고있는 세도와 관료주의,부정부패행위와의 투쟁을 그것이 뿌리채 뽑혀질 때까지 근기있게, 계속 강도높이 벌려나가야 하겠습니다. 당조직들이 경제사업에 대한 당적지도를 실속있게 하지 못하고있습니다.(중략)

현시기 당사업에 인민대중제일주의를 구현하는데서 세도와 관료주의,부정부패행위는 추호도 용납할수 없는 '주적'입니다. 세도와 관료주의,부정부패현상과의 투쟁을 강도높이 벌려야 우리 당이 인민의 운명을 책임지고 보살펴주는 어머니당으로서의 본태를 고수하고 인민대중의 요구와 리익을 철저히 옹호보장할수 있습니다. 당일군들은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의 인민관을 체질화,인생관화하여 사업과 생활에서 세도와 관료주의,부정부패행위의 사소한 요소도 나타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당조직들은 여러 부문 일군들속에서 나타나는 세도와 관료주의,부정부패현상들을 해부학적으로 분석하고 그 근원을 찾아 완전히 없애버리기 위한 결정적인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세도와 관료주의,부정부패행위를 철저히 없애기 위한 사상투쟁과 조직적통제를 강화하여야 합니다.

특히 당일군들속에서 나타나는 세도와 관료주의,부정부패행위들을 빠짐없이 들춰내야 하며 당일군의 모자를 쓰고 세도와 관료주의를 부리고 부정부패행위를 하는자들에 대해서는 당적규률을 엄하게 적용하여야 합니다.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서 당의 령도적역할을 끊임없이 높여나가야 하겠습니다. 정치와 군사,경제와 문화건설,근로단체사업을 비롯한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대한 당적령도,정책적지도와 정치적지도를 확고히 실현하여야 합니다. 모든 당조직들은 해당 부문,단위들의 사업이 당의 사상과 의도,당정책적요구에 맞게 진행되도록 장악하고 통제하며 제때에 필요한 대책들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2016년 5월 7일 김정은이 발표한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 중 # 김정은이 직접 두 부분에서 강조하며 부정부패의 존재를 인정할 정도면 북한에서 부정부패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의 부패인식지수 추세[43][44]
연도 부패지수
2010년까지 집계 안 함
2011년 10
2012년 8
2013년 8
2014년 8
2015년 8
2016년 12
2018년 14
2019년 17
2020년 18
2021년 16
2022년 17

국제투명성기구(TI:Transparency International) #에서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는 100점에 가까울수록 청렴하고 0점에 가까울수록 부패했음을 의미한다. 이 지수는 공무원 정치인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국제적으로 판단하는 척도로 자주 활용된다. 국제투명성기구는 1995년부터 부패인식지수를 발표하였으나 북한만 집계를 안 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1년이 되면서 집계를 시작하였다. 처음 집계를 시작한 북한의 투명성 지수는 10점이었다. 이것은 최하점으로 세계 꼴찌인 182위를 나타내며 소말리아와 동일한 점수였다. 2012년에도 북한은 꼴찌인 174위를 기록했으며 전년도 점수에서 2점 추락한 8점을 기록하였다. 이것은 지수상으로 북한이 얼마나 정치적 후진국인지 잘 표현한 상황이라 하겠다. 이후 2015년까지 계속 안정적으로 최하위를 기록하는 중. 2022년 기준으로는 17점으로 부룬디, 적도 기니, 아이티, 리비아와 함께 180개국 중 공동 171위를 차지했다.[45]

그러나 워낙 통제가 심한 국가 특성 상, 오히려 부패의 순기능이 작동하는 곳이다. 물류 운송 수단인 '서비차'는 뇌물을 통해 도 사이의 검문소를 통과한다. # 북한의 시장 경제는 2019년 기준 부서가 딸린 '기업'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는데, 여기서 뇌물을 통해 감시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 국가 경제가 뇌물을 통해 비합리적인 통제를 느슨하게 함으로써 효율적으로 운행되는 것이다. 북한에서 외부 정보가 지도부의 차단 의지에도 유통되는 이유 중 하나도 부패 때문이다. 보위부가 뇌물을 받고 일부는 민감한 정보 유통을 할 수 있게 도와주기 까지 한다는 것이다. 덤으로 뇌물 관행 덕분에 북한의 의사 실력이 향상되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환자 수와 관계없이 의사가 받는 배급과 월급이 똑같았고 치료를 못 해도 해고는 안 됐지만, 고난의 행군으로 배급제와 무상의료제가 붕괴되면서 치료를 위해 뇌물을 건네야 하는 환자 입장에서는 실력 없는 의사에게 치료를 받기 위해 뇌물을 줄 필요는 없고, 의사도 먹고 살기 위해 뇌물을 많이 받아야 하니, 다시 말해 뇌물을 줄 환자를 많이 불러들어야 하니 의술 실력을 기를 수밖에 없던 것이다.

주성하랑 인터뷰를 한 북한 고위급 간부의 아들의 증언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내각 성 부원(지도원) 자리에는 뇌물이 10,000달러 정도 필요하며, 그보다 높은 자리는 몇만 달러씩 바쳐야 하고, 군 장령 인사를 하는 중앙당 61부나 그 아래 군관 인사를 맡은 군 총정치국 간부부에서 일하면 조직지도부 부부장보다 더 잘 살 정도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일반 병사를 좋은 부대로 빼주는 것은 500달러가 필요하며, 입대한 아들을 장령 운전기사쯤으로 넣으려고 해도 1만 달러 정도, 장령이 되려면 10만 달러 이상을 줘야 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하려면 1만 달러 이상의 뇌물을 줘야 한다고 하며, 이 때문에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 어느 학급은 30명 중 29명이 중앙당 간부 자녀였다고 한다. 이는 10,000달러 이상의 돈을 쉽게 바칠 수 있는 재력을 가진 사람이 간부, 돈주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 이 때문에 북한에서는 김일성대를 "돈이 제일 많은 학생도 김대에 있고, 돈이 제일 없는 학생도 김대에 있다."며 풍자하고 있다.[46] 이뿐만 아니라 유치원부터 고등중학교(고등학교)까지 모든 교육 기관에서는 뇌물을 바쳐야 하고, 대학교에서도 졸업, 시험에 이르기까지 뇌물이 횡행한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갓 탈북한 북한 주민 100여명씩을 대상으로 조사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 주민들은 평균적으로 가계소득의 20% 정도를 뇌물로 바치며,[47] 특히 중앙당 간부와 법 관련 종사자들[48]은 뇌물 덕에 북한에서 가장 잘 사는 직업으로 꼽힌다고 한다. 물론 단속이라는 구실로 뇌물을 받는 자리는 '최고 부자'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큰돈을 다루는 무역 기관 사람들도 제품을 수출하거나 수입하려면 노동당, 무역성, 외무성, 인민위원회 등 도장을 받아야 할 곳이 10곳이 넘는데 그 도장 하나마다 뇌물이 들어가는 지경이며, 해외 노동자 파견과 노동당 입당에도 수백 달러는 내야 하고, 1년에 15일 동안 직장도 그만둔 채 누구나 참여해야 하는 적위대 훈련에 빠지기 위해서도 뇌물을 내야 하는데, 10,000명의 훈련 불참을 눈감아주면 20만 달러가 생기니 구역당 민방위부장이 웬만한 무역회사 사장보다도 부유할 지경이라고 한다. 물론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며 이와 동시에 주민들을 수탈하는 간부의 생살여탈권을 쥔 중앙당 간부가 가장 부유한 직업인데, 위로 올라갈수록 뇌물 액수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

뿐만 아니라 무상치료를 표방하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약값과 수술에 필요한 재료비를 위해 의사에게 '뇌물'[49]을 줘야 하며, 뇌물을 주지 않으면 약이 없다느니 주사제가 없다느니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있다. 물론 직업 변경에도 50달러 ~ 수천 달러 정도의 뇌물이 필요하며, 평양에서 이사할 때에도 입주권 도장 하나에 50달러를 내야 해서 주택배정지도원은 누구나 노리는 자리 신세이고, 평양 시민권도 보안성, 보위성 등에 3000~5000달러라는 '엄청난' 거액을 주면[50] 얻을 수 있다고 하며, 심지어는 정치범을 제외한 살인범 같은 사형수도 수만 달러를 쓰면 감옥에서 꺼내올 수 있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뇌물을 담배 한 갑으로 주고받아 관공서에서 임시증명서나 거주확인서를 발급받을 때에도 담배를 주지 않으면 공무원이 이 핑계 저 핑계 내며 질질 끄는 것과 달리 담배를 주면 진짜 바쁜 일이 있어도 바로 서류에 도장을 찍어 준다. 물론 담배 외에도 현금 고급 술, 시계, 안경, 오토바이, 가전제품, 가구 등으로도 뇌물이 오고간다.[출처] 전술했듯 돈만 주면 살인범도 빼낼 수 있으니 절도범처럼 비교적 가벼운 범죄자들은 교화소에 뇌물만 주면 병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다. # 뿐만 아니라 법을 잘 모르더라도 뇌물만 바치면 법조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

얼마나 부패가 심각한지 당간부가 중국 돈 5천 위안(미화로는 680달러) 상당의 뇌물을 받고 김정은 경호원을 선발했다가 해임될 정도였으며, # 일정한 직업에 취직하려 해도 달러 뇌물을 바쳐야 하고, 특히 고위간부들은 김정은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자리를 유지할 수가 없기에 고위 간부들은 김정은의 생일인 1월 8일마다 1,008만 달러 혹은 1,080만 달러로 액수를 맞춰서 뇌물을 바치고 있는 지경이다.[52] 그러니까 맨 위에 있는 국가 지도자부터 남한 돈으로 백억을 가뿐히 넘는 뇌물을 주기적으로 받으니까 그 국가의 전체 시스템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뇌물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심지어 2005~2006년에는 탈북자 출신 대북정보원이 북한 관리에게 돈을 주고 풍계리 핵실험장 관련 정보까지 얻어내기까지 했을 정도면 말 다했다. # 2024년에는 보위국 소속 고위인사[53] 베이징에서 무기 현대화를 위한 비자금 3000만 달러(약 415억 원)를 횡령해 탈북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

뿐만 아니라 대대장급 이하 군관들은 먹고 살기 위해 200~500달러[54]의 뇌물을 주고 제대하기도 한다. # 그리고 장성택의 죄목으로는 당시 국제시세가 톤 당 130달러 안팎이던 무연탄을 75달러에 팔아넘겼다는 대목이 있었는데, 주성하의 말로는 실제로는 100달러 이상을 받고는 장부상의 가격을 75달러로 기재한 후 나머지는 장성택과 측근들이 나눠먹은 것이라고 한다.[55] 이 외에도 수출할 때에는 국제시세보다 터무니없이 싸게 팔고, 수입할 때에는 입이 쩍 보일 정도로 비싸게 사는 일이 북한에서는 매우 흔하지만 이는 장부상에 적은 수치일 뿐이지, 실제로는 장부상 수치와의 차액은 고스란히 무역을 담당한 고위층들의 뒷주머니로 빠져나가 평양의 고급 아파트, 사치품, 호화 서비스 등에 쓰인다고 한다. #[56] 외화가 충분하지 않은 무역회사들도 중국이랑 교역을 할 때 비싼 물건을 사오는 것보다 싼 물건을 가져다 비싸게 팔아 폭리를 얻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

뿐만 아니라 양강도에서는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대마다 배전부 성원들이 수시로 인민반의 전기를 검열하면서 이와 함께 주민들에게서 담배 한 갑[57]과 돈을 갈취해가고 있으며, 주민들이 뇌물을 주지 않으면 '(너희 집만이 아닌) 인민반의 전기를 한 달간 자르겠다'고 협박을 하기에 주민들은 이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 물론 노동자들에게 줘야 하는 물자들을 간부들이 횡령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

다만 뇌물로 운영되어서는 안될 교육 기관까지 뇌물이 판치는 바람에, 최고 의대인 평양의학대학에도 이런 사람들이 들어가 의료 사고가 는다는 말도 있다. # 주성하 기자 같은 탈북자는 통일 후 문제로 소위 "빨간 물"을 빼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부패를 차단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주장한다. 전자는 통제에서 벗어나면 금방 사라질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양강도 혜산시에서는 동복이 비싼 나머지 남이 입던 패딩 같은 동복을 훔친 후 시장에 팔아넘기는 강도 사건이 많은데도 사회안전성 측에서는 이를 단속하고 범인을 체포하려고 시도기는커녕 옷을 훔치는 사람이 안전원에게 신고를 해도 '밤에 혼자 다니지 말라'고 하는 것 외에는 조치가 전혀 없는데, 이는 안전원들이 본래 역할인 치안업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치안 경비를 통해 얻는 '뇌물' 등 부수입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소식을 전한 데일리NK 소식통은 "사회의 안전 질서를 유지하고 국가와 인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안전원들이 먹을 알이 있는 일만 찾아다니며 자신들의 이익을 채우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이런 세상에서 사는 주민들의 삶은 점점 더 불안하고 힘들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

2024년 2월 6일 통일부가 발간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이후 월 수익의 30% 이상을 수탈당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41.4%, 2016 ~ 2020년 탈북한 이들 중 뇌물을 제공한 경험이 있다고 밝힌 응답률은 54.4%를 기록했다. #1 #2

웃기게도 90년대 기준 김일성, 김정일의 월급은 당시 일반 노동자 월급(60원)의 4배에 불과한 240원으로 국가원수치고는 비율상으로는 적은 수준이다. 그리고 이들은 형식적으로는 북한의 모든 주민처럼 지정된 협동농장에서 '결산분배'를 받아 식량을 배급받았다. 물론 이들의 호화생활은 노동자 봉급의 4배만으로 이루기에는 불가능한 수준이었는데, 김씨 일가의 부정부패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

6. 북한의 구색정당과 정치단체들

북한은 명목상 일당제 국가가 아니므로 조선로동당 이외의 합법 정당이 존재하나, 이들은 대외적으로 북한이 정상국가임을 표방하고 명목상 복수정당제를 채택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구색정당에 불과하며, 이들은 북한 정치에서 어떠한 차별성도 갖지 못한다. 당연히 타국 정치인들도 바보는 아니기 때문에 이들을 공식 정당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실상대로 김정은 혼자 놀아나는 일당제 국가 취급한다.

1950년대 한국전쟁이 끝난 후 기존 정당들을 전부 없애버리고 하다가 여러가지 사정으로 존속하여 지금까지 이름만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가 김일성이 회색분자들과 관계를 잘 이용하라는 교시가 내려오면서 기존의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국제부에서 관리하단 타국 공산당과의 교류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노동주의 좌파 정당들과의 연대를 위해 사민당과 청우당 같은 위장 조직을 내세우게 된다. 이들 정당은 조선로동당의 일개 부서인 통일전선부에서 사용하는 위장 명칭처럼 활용되기도 하며, 사회민주당 등의 주소는 통일전선부 건물의 한층에 몰려 있고 방 하나 정도 차지하는 존재감이다.

7. 정치 의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은 매년 북한이탈주민 100명 이상을 대상으로 북한의 사회를 설문하고 있다. '2020 북한 사회변동과 주민의식'이 이 설문의 요약 자료며, 여기서 많은 참고를 했다. 다만 다른 정치 조사도 있으면 여기에 추가했다. 여기서 주민들의 종합적 의식을 알 수 있다. 2024년 발간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도 참고하면 좋다.

탈북 자체를 조국에 대한 배신으로 여기는[58] 북한 정치 특성과, 압록강 하류와 내륙 지역이 탈북이 어려운 이상 양강도, 함경북도 출신으로 편중된 면이 있으나 경향을 알아볼 수는 있다. 통제가 강할수록 정부 지지 여론이 증가하지만, 젊은 세대의 정부 지지가 높게 나오는 경향도 있다. 다만 젊은 세대는 자유를 동경하는 어떻게 보면 모순된 태도를 보인다.

다만 나이든 사람이 정권을 버려야 할 때만 탈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젊은 사람이 정권 지지율이 높은 것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나이 들면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떨어진다는 주장과, '장마당 세대'라는 젊은 세대가 더 반골 기질이 심하다는 주장이 대립한다. 어쩌면 젊은 세대가 김정은이 젊어서 국제적 수준의 개혁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도 설명할 수 있겠는데, 2017년 평양의 경우 실제로 김정은이 장사를 풀어주어 그런 여론이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김일성주의 정수분자’ ‘김정일주의 정수분자’는 20대에는 없다는데, 대신 '평양 시민들이 김정은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여서'라고 하였다. # 다른 해석으로는 젊은 사람들은 외부 문물을 동경하지만, 그 문물의 유입이 군사력 강화 선전까지 무마시킬 정도는 아니므로 전쟁의 참상을 잘 아는 나이든 세대가 오히려 이 부분만큼은 깨어 있다는 견해도 있다. 젊은 세대는 핵을 개발하면 대단한 것인 줄 알고 한판 붙자며 좋아하지만, 나이든 세대는 모두가 죽자는 소리로 들린다는 견해도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이다. # '백두혈통의 세습', '계획경제', '배급'에 대해서는 젊은 세대가 더 부정적이다.

외부 문물에 대한 관심은 2010년대 중반부터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실제 생활 모습으로 변하는 추세다.

2020년대 들어 북한에서 장사와 한류를 심하게 탄압하기 시작했고, 이와 다르게 2010년대 후반은 대화 분위기가 있어 남한에서도 김정은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던 때였다. 그래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는 지지도가 낮아졌을 가능성이 크다.

시대별 의식(2008년 이후)
연령별 의식(2018 ~ 2020년)
직업(2017 ~ 2020년)
지역

8. 관련 문서


[1] 점수가 낮을수록 인식되는 부패 정도가 높은 국가. 최저 수치는 0점, 최고 수치는 100점. 전체 순위는 180위다. # [2] 세계에서 순위가 가장 낮았으나 2024년 기준 에리트레아가 가장 낮은 순위를 차지했다.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있는 국가. 언론 자유 최상은 100점, 언론 자유 최악은 0점. 2013년 이전 자료는 수치가 넘어가는 것도 존재한다. 예시로 2012년 자료가 있다. [3] 점수가 높을수록 민주주의가 발달된 나라. 가장 발달된 국가는 10점, 최악은 0점. 2006년 집계가 시작된 이래 0점대를 기록한 단 셋뿐인 국가이자(2008년 북한 0.86점, 2021 ~ 2022년 아프가니스탄 0.32점, 2022년 미얀마 0.74점.) 15년 연속 최하위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21년부터는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미얀마와 탈레반이 재집권한 아프가니스탄에 밀려 165위를 하였다. # [4] 공화정을 표방하는 국가 중 민주적 선거 없이 2대가 세습한 경우는 투르크메니스탄이나 아제르바이잔, 시리아, 토고, 차드처럼 일부 존재한다. 다만 80년 가까이 되는 기간동안 3대가 세습하는 경우는 북한이 현재 유일하다. [5] 정치학자이며 미국의 레이건 시대 유엔 대사를 지낸 진 커크패트릭은 독재 체재를 2가지 형태로 구분하는데 하나는 권위주의형 독재이며 다른 하나는 전체주의형 독재다. 권위주의형은 점진적으로 민주화로 나갈 가능성이 있으나 전체주의 독재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 권위주의의 대표격으로 분류되는 국가는 차베스 시절 베네수엘라, 에르도안 집권 하 튀르키예, 오르반 빅토르 집권 하 헝가리,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의 러시아, 싱가포르 등 비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6.25 전쟁 이후 ~ 6월 항쟁 이전 대한민국이 꼽힌다. 이런 국가들은 체제 자체는 민주주의에 기반을 두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사실상 구색맞추기용의 민주주의 체제로, 1인 독재 국가일 뿐더러 실질적인 민주주의로 나갈 가능성도 없는 북한은 완벽한 전체주의 체제로 분류된다. [6] 모든 분야를 고려했을 때의 전체 순위는 26위다. 이 정도로도 상위 15%다. [7] 참고로 예멘, 리비아, 시리아, 기니 모두 현재 군부 쿠데타와 내전을 겪고 있는 국가이다. 국가 틀이 그나마 제대로 잡혀있는 나라 중에서는 북한이 단독으로 꼴등인 셈 [8] 내각제 국가에서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구분이 대통령제 국가와 달리 명확하지 않으나, 그럼에도 분리되어 있기는 하다. [9] 물론 김정일은 김일성이 아직 팔팔할 때부터 북한 권력 구도에서 상당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였다. 김일성-김정일 세습이 절대 잘 한 짓은 아니지만, 북한의 시각에서 볼 때, 말 그대로 갑툭튀한 김정은에 비하면 훨씬 권력 승계의 당위성이 충분했다. [10] 출처 김동수 박사 (북한외교관 출신,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11] 동시에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도 상임위원회로 복원되었다. [12] 김정은의 비서실 역할을 한다. 공산국가에서 비서직은 책임자를 의미하기 때문에 서기실이라 부른다. [13] 김정일은 김영남을 소련시절 스탈린은 칼리닌을 내세웠다. [14] 현실정치의 시각에서 보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공천하는 기관은 결국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이기 때문에 [15] 조만식 선생이 만든 조선민주당이 원형이다. 그러나 만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최용건이 빼앗았는데, 명목상 공화국의 우익 정당이라고 존재했다. 각 정치 세력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조선민주당 조직은 1960년대 후반까지 각 지역에 조직이 살아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반정부 운동도 간혹 벌이긴 했지만, 1956년 8월 종파사건과 1970년대 주석 체제의 확립으로 이해 완전히 박살이 나고 1980년대에 조선사회민주당으로 이름마저 바뀌어버린다. [16] UN 아동권리협약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 [17] 뭐가 이상한지 모르겠다면 모두 다 '찬성투표하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결과는 정해져있으며 국민들의 선택은 그 결과에 대한 찬성, 반대, 기권밖에 없고, 저 포스터는 모두 일당독재에 대놓고 찬성투표를 하자는 뜻이다. 민주주의 선거에서 정당들이 서로 자신의 정당을 찍어달라며 유세하는 것과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만약 반대가 과반을 넘는다한들 대안이 없으므로 미리 정해진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도 없다. [18] 일단은 명목상 김정은 또한 평등한 인민들 중 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선거를 하는 요식행위에는 참여한다. 물론 후보들은 모두 김정은에게 발탁된 인물들이다. [19] 투표용지를 줄 때마다 한 장씩 적어 놓고 주거나, 아니면 투표 개시 전에 미리 적어 놓은 투표용지를 준비하고 투표할 때 그 투표용지를 주는 것으로 추측된다. [20] 북한에서는 '공민증'이라고 한다.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비슷하다. [21] 이것도 쉽지는 않은게 북한에서는 연좌제를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므로 뭐든 걸리면 사돈의 팔촌까지 박박 긁어모아서 강력하게 탄압하기 때문에 정말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22] 1950년 7월 25일 ~ 9월 13일에 북한이 6.25 전쟁 때 남한 일부 지역을 점령했을 때 남한 지역에서 연 지방선거 1회를 포함하면 총 17번 있었다. [23] 이들은 유권자에서 제외되는데, 이는 이들을 유권자에 포함할 경우 투표율이 내려가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이 투표에 참여했더라면 북한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자유로운 외국에서 반대표를 던지고 그 결과는... [24] 이들도 거처를 알 수 없으므로 유권자에서 제외된다. [25] 이들도 유권자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보인다. [26] 북한에서는 100%에 육박하는 투표율을 달성하기 위해 정당한 사유 없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에게 징계를 내리는 것은 물론 이동 선거함을 든 선거위원들이 거주지를 떠나 여행 중인 사람들, 각 지역의 병환자들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1 #2 [27] 북한에서 김씨일가의 이름은 반드시 다른 글자보다 더 커야 하기 때문에 유독 김정일 세글자만 더 큰것을 알 수 있다. [28] 파일:french-ballots-are-simple.jpg
왼쪽부터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수아 올랑드. 미리 인쇄되어 있는 투표용지는 프랑스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차이점이라면 프랑스는 위와 같이 각 정당이 규격에 맞춰 투표용지를 제작하면 유권자가 그중 하나를 골라 봉투에 넣는 방식이다. 그런데 북한은 보시다시피 이 투표용지 하나뿐이라 김정일이 최고지도자로 이미 내정되었다고 대놓고 공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애초에 민주주의 국가와 전체주의 국가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긴 하지만...
[29] 이 문서에도 언급되지만 북한에서 다자후보 선거가 있었던 건 최초의 선거인 48년 단 한번 뿐이며, 조선로동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이 구색이라도 갖추고 있던 건 70년대가 마지막이다. [30] 평양에 주재하던 한 독일 기자에 의해 생생한 사진들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 # [31] 동년 3월 28일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한 것에 대한 반발로 만든 책으로, 목차 구성도 북한인권보고서와 유사하다고 한다. [32] 북한에서 김정일의 날조된 생가인 백두산 밀영에 대해 "'위대한 계승의 만대'가 열린 역사의 집"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 앞으로도 북한이 김일성의 직계 자손들에게만 최고지도자 자리를 물려줄 것은 안 봐도 뻔하다. [33] 현 조선사회민주당 [34] 코로나 19 초기 유럽연합도 봉쇄령을 실시하며 유럽연합 외 국가들의 사람들이 유럽연합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했는데도 장기 체류자, 외교관의 가족들이나 국경을 오가며 일하는 사람들과 보건 분야 종사자, 화물 운반기사들처럼 국경 넘나들기가 꼭 필요한 사람들에 한해서는 이를 적용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북한의 '선거 봉쇄'가 심각한지 알 수 있다. # [35] 이들은 추방돼 온 다음 날부터 스스로 재료를 구해 이들이 살 단칸짜리 집을 지어야 했다고 하며, 군(郡) 보위부는 해당 농장이나 탄광 주민들에게 "추방돼 온 이들을 절대 동정하지 말며 먹을 것을 모아 주거나 집에서 잠을 재워주지도 말라"고 포치했다고 한다. 물론 주민들은 추운 날씨에 제대로 된 거처도, 땔감도 없어 어쩌지 못하고 있는 그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기며 더운물을 받아서 찾아가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36] 장기놀음, 생일에 사람들을 집으로 초청해 술 마시기, 상인들이 떼를 지어 다니는 것 등. 당국은 이러한 '사적으로 만든 비조직적인 행위'를 하다가 발각된 사람들을 '이 나라 공민이기를 그만둔 인간쓰레기'로 단속하고 노동단련대 6개월 이상 처벌하라고 포치했다고 한다. [37] 3인 이상이 사적으로 모이는 것까지 통제하는 것도 역사의 모든 독재 국가들을 통틀어봐야 킬링필드로 악명이 높은 민주 캄푸치아 하나밖에 없다. 민주 캄푸치아는 감독되지 않은 2인 이상의 모임을 완전히 금지시켰는데, 이는 크메르 루주가 사람들이 서로 모여 농장에서의 참상을 공유하며 변화를 추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나마 북한은 이 모임 금지 조치가 극히 예외적인 조치여서 망정이지, 민주 캄푸치아는 정권 내내 모임 금지 조치를 지속했다. 사실 민주 캄푸치아는 문자 그대로 전국민을 북한 정치범수용소 혁명화구역에 가둬놓은 수준의 국가였다. [38] 둘 다 여성이었으며, 후보자의 본명과 나이, 직업도 정확히 나왔다. [39] 량정사업소 지배인이라 도내 주민들의 먹는 문제를 풀 수 있는 인물로 여겨졌다고 하며, 낙선한 후보자는 식당의 재정관리인이었다고 한다. [40] 기권자 수/유권자 수*100 = 0.000078%라는 공식을 이용할 수 있다. 이 경우 북한의 유권자 수가 1300만~1800만 정도 나온다. [41] 엔베르 호자 시기 알바니아에서 1978년 있던 선거에서도 기권자가 1명 나왔다. [42]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그 대신 외무상 리용호나 여동생 김여정은 최고인민회의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43] http://ko.wikipedia.org/wiki/%EB%B6%80%ED%8C%A8%EC%9D%B8%EC%8B%9D%EC%A7%80%EC%88%98 [44] http://www.transparency.org/research/cpi/overview [45] 북한보다 부패인식지수가 낮은 나라는 예멘(16점), 베네수엘라(14점), 남수단& 시리아(13점), 소말리아(12점) 5개국밖에 없다. [46] 가난하더라도 성적이 뛰어난 학생은 돈이 없어도 대학교 입학이 가능하다고 한다. 당장 주성하도 [47] 큰 장사를 할수록 뇌물액은 커져 소득의 50%가 넘기도 한다. 다만 농민 같은 저소득층은 뜯길 것도 없기에(...) 뇌물 없이도 살 수 있다. [48] 검찰, 보위부, 보안서(경찰) 등. 검사는 워낙 뇌물을 많이 받기에 검사라는 직함을 갖기만 해도 3년이면 집을 장만할 정도라고 한다. [49] 담배 한 값 건네는 것은 '기본 예의'이며, 큰 수술을 받거나 긴 입원 치료를 받는 경우에는 퇴원에 앞서 담당 의사와 간호사를 모두 초대해 한 상 차리는 것도 일상화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뇌물 규모는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에 따라 담배 몇 갑에서 수백 달러에 이르기까지 달라진다. [50] 이건 명목상 금액이고 세부적으로는 수십만 달러가 들어간다고 한다. [출처] 주성하,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 2018 [52] 사실 북한에서 100억 이상 가진 사람이라 해봤자 김정은 일가와 최고위 간부들, 극소수의 돈주들, 중앙당 산하 무역회사 최고위 간부들 정도밖에 없긴 하다. [53] 김정은의 특명을 받고 중국에서 CNC 등 군수물자를 밀수해온 자금 총책이라고 한다. [54] 500달러는 일반 4인 가정이 1년은 먹고 살수 있는 돈이다. [55] 2013년 기준 북한의 대중 무연탄 수출액이 14억 달러 가까이 됐으니 무연탄 수출을 독점한 장성택의 측근은 수억 달러는 챙겼을 거라고 한다. [56] 북한의 수출, 수입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리들에 관한 예시들이 나와 있다. [57] 기사에서는 (이하 북한 원 기준) 6,000원짜리 여명 담배를 언급하고 있는데, 북한 노동자 월급이 4,000 ~ 5,000원이고 쌀 1kg 값이 5,000원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한다. [58] 그래서 충성심이 매우 높은 북한 사람은 탈북을 안한다. [59] 북한 주민들이 주체사상에 대한 자부심이 있을 것이냐고 물어본 것이다. [60] 북한식 정치 제도에 대한 충성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