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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06-19 13:53:40

이동국

파일:하위 문서 아이콘.svg   하위 문서: 이동국/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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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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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 불낙스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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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속 선수
<rowcolor=#FFFFFF> 종목 이름 역할 등번호
농구 허재 감독 -
농구 현주엽 해설/코치 -
쇼트트랙 김기훈 선수 7
체조 여홍철 선수 15
유도/격투기 윤동식 선수 11
배구 방신봉 선수 5
축구 안정환 선수 19
테니스 이형택 선수 36
야구 홍성흔 선수 22
야구 김병현 선수 18
축구 이동국 주장/선수 20
격투기 김동현 선수 9
핸드볼 윤경신 선수 77
연예 김용만 선수 10
연예 김성주 중계/선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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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J ENM 로고.svg 파일:EURO_2020_Logo_Lnd_OnLight_FC_CMYK.png 중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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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XtvN.png 파일:TVING 로고.svg 박용식
해설자 파일:tvN 로고.svg 파일:TVING 로고.svg 서형욱, 이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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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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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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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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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 2011 · 2014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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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파일:K리그 클래식 시그니처 문구 로고 없는거.png 팬타스틱 플레이어
2009년 2010년
상 제정 이동국
( 전북 현대 모터스)
구자철
( 제주 유나이티드)
2010년 2011년 2012년
구자철
( 제주 유나이티드)
이동국
( 전북 현대 모터스)
데얀 다미아노비치
( FC 서울)
2013년 2014~2015년 2016년
김신욱
( 울산 현대 호랑이)
이동국
( 전북 현대 모터스)
레오나르도
( 전북 현대 모터스)

2009 K리그 베스트 XI
FW
이동국
FW
데닐손
MF
최태욱
MF
기성용
MF
김정우
MF
에닝요
DF
김상식
DF
김형일
DF
황재원
DF
최효진
GK
신화용
2011 K리그 베스트 XI
FW
이동국
FW
데얀
MF
염기훈
MF
윤빛가람
MF
하대성
MF
에닝요
DF
박원재
DF
곽태휘
DF
조성환
DF
최철순
GK
김영광
2012 K리그 베스트 XI
FW
이동국
FW
데얀
MF
몰리나
MF
하대성
MF
황진성
MF
이근호
DF
아디
DF
정인환
DF
곽태휘
DF
김창수
GK
김용대
2014 K리그 클래식 베스트 XI
FW
이동국
FW
산토스
MF
임상협
MF
고명진
MF
이승기
MF
한교원
DF
홍철
DF
윌킨슨
DF
김주영
DF
차두리
GK
권순태
2015 K리그 클래식 베스트 XI
FW
이동국
FW
아드리아노
MF
염기훈
MF
이재성
MF
권창훈
MF
송진형
DF
홍철
DF
요니치
DF
김기희
DF
차두리
GK
권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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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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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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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선수 이름 / 현재 소속팀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홍명보 은퇴 <colbgcolor=#eeeeef,#191919> 136회 1990.02.04
(vs 노르웨이)
2002.11.20
(vs 브라질)
2 이운재 은퇴 131회 1994.06.11
(vs 온두라스)
2010.08.11
(vs 나이지리아)
3 차범근 은퇴 130회 1972.05.07
(vs 이라크)
1986.06.10
(vs 이탈리아)
4 이영표 은퇴 127회 1999.06.12
(vs 멕시코)
2011.01.28
(vs 우즈베키스탄)
5 유상철 은퇴 120회 1994.09.11
(vs 우크라이나)
2005.06.03
(vs 우즈베키스탄)
6 김호곤 은퇴 117회 1971.10.04
(vs 대만)
1979.03.04
(vs 일본)
7 기성용 FC 서울 110회 2008.09.05
(vs 요르단)
2019.01.07
(vs 필리핀)
8 김태영 은퇴 104회 1992.10.21
(vs UAE)
2004.07.19
(vs 요르단)
이동국 은퇴 104회 1998.05.16
(vs 자메이카)
2017.09.05
(vs 우즈베키스탄)
10 조영증 은퇴 102회 1975.03.19
(vs 베트남)
1986.10.05
(vs 사우디아라비아)
황선홍 은퇴 102회 1988.12.06
(vs 일본)
2002.11.20
(vs 브라질)
12 박성화 은퇴 101회 1975.07.29
(vs 말레이시아)
1984.12.10
(vs 카타르)
13 박지성 은퇴 100회 2000.04.05
(vs 라오스)
2011.01.25
(vs 일본)
FIFA 센추리 클럽 명단 기준 (2020.06.30 Ver.)
※ FIFA에서 공인한 기록과 대한축구협회에서 집계한 기록은 차이가 있다. 대한축구협회 선수별 A매치 기록실 참고.
}}}}}}}}} ||

파일:이동국 20번 영구결번.jpg
전북 현대 모터스 영구결번
N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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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이동국 에스콰이어 화보.jpg
전북 현대 모터스 No.20
이동국
李同國 / Lee Dong-Gook
출생 1979년 4월 29일 ([age(1979-04-29)]세)
파일:경상북도 휘장.svg 경상북도 파일:포항시 CI.svg 포항시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학력 포항제철동초등학교 (1986~1992)
포항제철중학교 (1992~1995)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1995~1998)
위덕대학교 (사회과학과 / 학사) (1998~2004)
종교 무종교[1]
직업 축구선수 ( 공격수[2] / 은퇴)
방송인
신체 187cm|86kg|280mm| A형
프로 입단 1998년 포항 스틸러스
주발 오른발 (양발)
소속 클럽 포항 스틸러스 (1998~2007)
SV 베르더 브레멘 (2001 / 임대)
광주 상무 불사조 (2003~2005 / 군 복무)
미들즈브러 FC (2007~2008)
성남 일화 천마 (2008)
전북 현대 모터스 (2009~2020)
기타 CJ ENM (2021~ / 해설위원)
국가대표 파일:Korea Republic National Football Team emblem 2020.png 105경기 33골[3] ( 대한민국 / 1998~2017)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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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ff,#00703c> 등번호 <colbgcolor=#ffffff,#00703c> 대한민국 대표팀 <colbgcolor=#ffffff,#00703c> 11[4], 12[5], 18[6], 20[7], 21[8]
포항 스틸러스 33, 20, 10
SV 베르더 브레멘 21
광주 상무 불사조 10, 20, 46
미들즈브러 FC 18
성남 일화 천마 22
전북 현대 모터스 20[9]
병역 육군 병장 전역[10]
별명 라이온 킹, 동캡, 국동이, 동궈[11], 대박이 아빠, 40 fucking 1[12], 봉동 청년회장, 동백호[13], 리덩국 왓더헬, 꾸기
배우자 이수진(1979년 7월 27일생)(2005년 결혼 ~ 현재)
자녀 이재시, 이재아[14](2007년 8월 14일생)
딸 이설아, 이수아(2013년 7월 18일생)
아들 이시안[15](2014년 11월 14일생)
가족 아버지 이길남(1949년생), 어머니 김명자(1949년생), 누나, 형 #
}}} ||

1. 개요
1.1. 상세
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4.3. 개인 기록
4.3.1. 클럽4.3.2. 국가대표
4.4. 통산 기록
4.4.1. 클럽4.4.2. 국가대표
5. 플레이 스타일
5.1. 대표팀 공격수들과의 호흡
6. 그 외 활동7. 여담8. 사건사고/논란
8.1. 부친의 병역비리 청탁 사건8.2. 2007 아시안컵 기간 숙소 무단이탈 및 룸살롱 출입8.3. 전북 현대 모터스 심판매수 사건 옹호 발언 논란
9. 둘러보기10.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파일:이동국은 영원히.jpg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K리그 통산 득점 1위, 통산 도움 2위, AFC 챔피언스리그 통산 득점 1위[16]에 빛나는 명실상부 K리그의 레전드이다.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맹활약했던 그의 등번호 20번은 전북의 영구결번이다. 또한 일명 ' 대박이 아빠'로도 잘 알려져 있다.

비운의 축구선수로 항상 뽑히기도 했고 한국 축구팬들에게 가장 애증이 많은 선수 중 하나였다.[17]

1.1. 상세

파일:이동국2020우승.jpg

K리그에서 MVP, 신인왕, 득점왕, 도움왕을 모두 석권하고 K리그 통산 최다 득점[18] ACL 통산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한 레전드. 또한 대한민국 축구선수로는 유일하게 90년대, 00년대, 10년대, 20년대에 모두 리그에서 득점을 올린 기록도 가지고 있다.[19][20]

하지만 월드컵 본선에서는 안습한 행보를 보이며 월드컵과 인연이 없는 선수로 더 유명한데, 자국에서 열린 2002 한일월드컵에서 낙마, 절치부심 후 좋은 컨디션을 보였던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십자인대 부상으로 경기에 참여조차 못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23명 최종엔트리에 발탁되었지만,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박지성이 찔러준 택배기사급 킬패스를 일명 '물회오리슛'으로 마무리 함으로서 우루과이에게 패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동국 본인은 '나한테 공이 왜 왔지'라면서 알 수 없는 정신상태를 보여줬다

2남 1녀 중 막내. 과거에는 이승엽과 같은 라이온 킹이 별명이었으나, 미들즈브러에서 크게 삽을 푼 다음부터는 영국에서 품바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지어주었다. 요새 국내에서는 품바라고는 하지 않지만 라이온 킹도 잘 쓰지 않는 편이다. 리동궈라고 부르는 사람은 간간이 있다.[21]

이동국 논쟁은 박주영, 정성룡의 국대 합류 건과 더불어 한국축구의 가장 큰 떡밥거리로 동빠와 동까가 만날 때마다 대규모의 키워가 벌어지며, 국가대표 발탁 그 자체도 찬반 여론이 들끓는 부분이다. 이 논쟁은 단순히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커뮤니티 뿐만이 아니라 비교적 온순한 아이러브사커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계속 유지되고 있다. 국대 발탁 찬성론자의 경우에는 그만한 골 결정력을 가진 공격수가 아직도 나오지 않았고 클럽에서의 활약도 상당히 준수하기 때문에 뽑아야 하는 입장이고, 반대론자의 경우에는 뽑기에는 그의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라는 입장. 다만 반대론자의 경우 단순히 이동국의 안티만이 아니라 전북의 팬들도 어느 정도는 그의 차출을 반대하는 경우도 있는데, 최강희 감독처럼 국대에서 욕 먹고 오느니, 그냥 클럽에 집중하자는 의견이나 나이가 많으니 몸을 생각해 클럽에 집중하자는 의견을 내세워 국대 차출을 반대하기도 한다.

2. 클럽 경력

파일:external/img.segye.com/20160223003555_0.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이동국/클럽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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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가대표 경력

파일:external/m1.daumcdn.net/1637D40C4C2B76611D630B?.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이동국/국가대표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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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4.3. 개인 기록

4.3.1. 클럽

2020년 현재

4.3.2. 국가대표

2017년 7월 23일 현재

4.4. 통산 기록

4.4.1. 클럽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8 포항 스틸러스 K리그 15 7 0 0 9 4 -
1999 15 7 0 0 4 1
2000 7 4 0 0 1 0
2000-01 베르더 브레멘 분데스리가 7 0 0 0 - 0 0
2001 포항 스틸러스 K리그 17 3 2 1 0 0 -
2002 21 7 4 3 0 0
2003 광주 상무 불사조 27 11 0 0 -
2004 19 1 2 0 4 3
2005 0 0 0 0 1 0
포항 스틸러스 17 3 3 0 7 4
2006 10 7 0 0 0 0
2006-07 미들즈브러 프리미어리그 9 0 2 0 0 0
2007-08 14 0 2 1 2 1
2008 성남 일화 천마 K리그 10 2 0 0 3 0
2009 전북 현대 모터스 29 21 4 4 3 1
2010 28 12 2 0 2 1 8 4
2011 29 16 1 0 0 0 8 9
2012 40 26 2 2 -[25] 6 4
2013 30 13 2 2 8 3
2014 31 13 2 0 7 3
2015 33 13 1 1 7 4
2016 27 12 0 0 11 5
2017 30 10 1 0 -
2018 35 13 2 0 9 4
2019 33 9 0 0
2020 11 4 1 0

4.4.2. 국가대표

2017년 9월 5일 기준이다.
연령 출전
U-17 0 0
U-20 9 6
U-23 28 20
A대표 105 33
종합기록 142 59

5. 플레이 스타일

파일:external/dimg.donga.com/67163164.1.jpg

포항 시절과 외국 진출 시절에 잠깐 투톱으로 뛰긴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커리어를 원톱으로 뛰었다.

가장 특징적으로 발리 깎던 노인이라는 별명에 맞게 발리슛으로 대표되는 뛰어난 슈팅 능력[26] 과 타고난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 선수치고는 노장이 된 시점에서도 발목 힘과 슈팅력은 다른 어린 선수 이상의 것을 보여준 바 있다. 사실 발리슛이란 게 그저 떠있는 공을 갖다 맞추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한 발로 중심을 잃지 않고 자세를 잡은 상태에서 다른 한 발만으로 정확한 임팩트를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하체 피지컬이 요구되는데, 젊었을 때부터 허벅지 하나가 웬만한 여자 허리 둘레 급이었던 이동국이기에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발리슛은 슛 중에서도 그 난이도가 매우 높아서 유럽 상위 리그 선수들도 경기중 발리 슛 찬스에서 헛발질을 하거나 제대로 임팩트하지 못해서 공이 민망하게 빗나가는 경우를 굉장히 많이 볼 수 있다. 특유의 슈팅 감각은 왼발, 오른발, 헤더 가리지 않으며 거기다 본인이 어떤 자세에 있고 어떤 공이 오더라도 원투 터치 이내에 위협적인 슛으로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은 독보적인데 오프사이드를 뚫는 능력이나 등지고 있는 수비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쇄도하는 능력도 국내 선수로는 최상급이다. 젊은 시절에는 묻지마 강슈터의 기질이 간혹 보였으나, 나이를 먹으면서 개선되어 중거리 슛 등의 정확도도 상당히 높다. 이동국 하면 발리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나 중거리의 정확도와 슈팅센스는 정말 뛰어나다.

패싱력도 있는 편이여서 2011년에는 K리그 도움왕도 차지 했었다. 시야가 넓어 경기중 미드필더 존으로 내려와 공간을 찾아들어가는 동료에게 좋은 공을 연결하기도 하며, 짬이 안 되던 2002년 이전에는 그의 패싱 능력을 눈여겨 본 국내지도자들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내려서 사용하곤 하였다. 포항 스틸러스에 파리아스 감독이 있던 시절에도 종종 투톱 밑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용하곤 했었고 그 역할을 잘 수행해 냈었다.

드리블 센스는 빈말로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나이가 들고 경험과 노련함이 더해지면서 좋아지기는 했으나, 이번엔 신체능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면서 결과적으로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된 것. 젊은 나이일 때엔 우당탕탕 식의 치고 달리기도 종종 보여줬었으나, 나이가 들고 나서는 노련미를 활용해서 간단한 바디페인트로 슈팅각을 열거나 동료에게 연결하는 식의 플레이를 선호하였다. 활동력의 부족 역시 지적받는데, 이 자료를 보면 활동량이 적다고는 할 수 없다. 최근 국가대표 경기나 리그에서의 모습을 보면 활동량 부족에 대한 지적은 이미 지나간 얘기라 할 수 있다.[27]

또한 심리적 압박에는 결코 강한 편이 아니다. 심리적 압박에 강하다는 것도 축구선수의 엄연한 실력[28] 중 하나임을 감안[29]하면 가장 중요한 대회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놓친 것은 완벽한 국가대표 칭호를 듣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일 수 있다. 움직임 자체는 그래도 비교적 멀쩡하게 가져가는 편인데, 슈팅이나 패스의 정확도 같은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 그것도 유명한 우루과이전 카페베네 슛처럼 판단 자체는 괜찮았고 차기도 적당히 찼는데 들어가기에는 아주 조금 모자란 그런 슛이 나오고는 한다. K리그 챔피언 결정전 때도 신나게 골대를 맞추다가 리드를 잡으니 그제야 득점을 터트린다던가 하는 등... 어렸을 때는 오히려 국대 해결사였는데 비난을 이길 정도까진 아니었던 듯하다. 이런 면은 클럽에서도 어느 정도 적용이 돼서 유망주 시절 갔다 온 브레멘은 그렇다 쳐도 미들즈브러에서 실패한 원인 중 하나가 계속 실수가 나오면서 자신감이 더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비판을 받고 동료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해 더 자신감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크게 작용했고, 성남에서도 이동국의 영입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김학범 감독 밑에서 영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중동이나 중국 등 아시아의 큰손들의 영입 제한을 뿌리친 것도 스스로 이런 면을 깨달아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젊었을 때는 피지컬을 활용하며 우당탕탕 부딪히는 플레이를 했지만 선수 말년 기준으로서는 스피드나 템포를 상당히 늦추는 스타일로 변화했다. 셰도우 스트라이커 비슷하게 변한 본인의 기질과 더불어 나이와 부상 탓이 크다.

비단 세계 무대에서의 얘기뿐만이 아니라, 이동국은 어린 시절부터 몸을 쓰면서 상대와 부딪히고 아군에게 공간을 가져다주는 플레이를 하기보다는 오히려 조금 내려간 자리에서 공간을 보거나 패스를 넣어주는 플레이를 더 좋아했다. 어린 시절에는 한국에서도 몸으로 부딪히고 열어주는 플레이는 별로 시도하지 않았다.[30] 박주영과 비교할 때 이런 점이 가장 큰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동국에 대한 저평가에는 톱 외에는 거의 쓰기가 힘들다는 좁은 활용폭도 있다. 몸빵은 좋지만 스피드가 많이 떨어지고[31], 전북 시절엔 간혹 세컨톱으로 뛰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잠깐 임시변통으로 뛰는 정도였다. 톱으로 뛴다면 원톱, 투톱을 가리지 않고 뛰어난 활약을 보이지만 원톱에서는 양 측면에 크랙형 선수가 있어야 장점이 극대화되는 타입이기도 하다. 전북이 대대로 양 날개 쪽에 최고급 외국인을 데려와 놓는 것은 이동국 혹은 김신욱을 살리기 위한 전술이기도 하다.

5.1. 대표팀 공격수들과의 호흡

이동국이 한참 대표팀 붙박이이던 초창기 시절 대세는 투톱이었고 이동국도 소속팀에서나 국대에서나 주로 투톱으로 뛰었으며 이후 원톱으로 더 긴 세월을 뛰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동국의 플레이 특성상 적성 포지션은 처진 공격수지만 국제 대회에 데려갈만한 공격수 가운데 몸빵이 되고 짬이 쌓인 지금은 사실 원톱 전문이고 투톱도 가능함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6. 그 외 활동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이동국/활동 내역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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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7. 여담


파일:external/s3.postimg.io/instagram_com_20160817_022816.jpg
일단 뭐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은데 그동안 고생 많았고, 마지막 가는 길에 큰 선물 또 해줘가지고 너무 감사하고, 형한테는 첫 (FA컵) 타이틀이기 때문에 더 값진 것 같고, 끝까지 너희들이 운동장에서 뛰는 모습 보니까 울컥하더라고. 고맙고 우리가 어떻게 되든 항상 만날 수 있고 언제든 다시 만나니까 끝이 아니고 건강하게 잘 있다가 또 연락하면서 보자 너무나 고생 많았고, 고맙다.
2020.11.08 전북 현대 모터스 FA컵 우승 후 마지막 라커룸에서

8. 사건사고/논란

8.1. 부친의 병역비리 청탁 사건

이동국의 부친이 1998년에 병무청 직원에게 뇌물을 전달하는 수법으로 아들의 병역비리를 청탁해 적발된 바 있다. 기사 이동국의 부친 이길남은 병역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되었고, 최종적으로 2천만원의 벌금형을 판결 받았다. 이동국 부친의 병역비리 사실을 밝혀낸 사람은 대선후보 이회창 아들의 병역비리 문제를 최초 제기하였던 김대업이었다. 관련기사

그의 증언에 따르면 이동국의 부친은 아주 적극적으로 아들의 병역면제를 위해 비리, 불법, 청탁행위를 저질렀고 심지어 병역비리계의 대부였던 박노항과도 접촉을 시도했다고 한다. 상당히 악질적인 방법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들의 병역비리를 청탁했기에 초범에 전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천만이라는 거금의 벌금형까지 선고받은 것. 이동국 본인은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가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특별한 상해나 질병이 없었음에도 몇차례나 부친의 병역비리 행각에 재검으로 화답했다는 점에서 의혹을 떨치기만은 어렵다.

이후 2002 한일 월드컵 대표팀 선발에서 최종 탈락한 이동국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축구 대표팀에 선발되는데, 당시 논란이 매우 거셌다. 무엇보다 병역비리에 연루된 선수를 대표팀 선수로 선발하여 병역 특례 기회를 준다는 것은 말이 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박주영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을 때의 분위기와 비슷한데, 꼼수에 가까웠던 박주영과는 달리 이동국은 엄연히 실형을 선고받은 범죄와 연루되었기에 실제 법무부나 병무청의 분위기는 몹시도 험악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홈에서 열리는 아시안 게임 축구 대표팀의 금메달을 위해서는 이동국이 꼭 필요하다는 축구계의 탄원이 이어졌고, 결국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주되, 실패한다면 곧장 군에 입대해야 한다는 절충안이 마련되었다.[48] 하지만 한국은 4강에서 이란과 승부차기 끝에 패하여 금메달 획득은 실패로 끝났고, 병역비리에 연루된데다 병역 특례 기회까지 날려버린 이동국은 더 이상 입대를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여 군에 입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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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걸개는 사실 이동국의 병역비리를 알고도 덮으며 그를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하려 했던 대한축구협회의 무책임한 태도와, 병역범죄에 연루되었음에도 병역 특례를 노리고 국가대표에 합류한 이동국의 뻔뻔함에 분노한 축구팬의 항의 퍼포먼스였다. 실제 이 두 사람은 해당 걸개를 걸기 전 PC통신 하이텔에 병역비리에 연루된 이동국은 대표팀 자격이 없는 선수였고, 그런 뻔뻔한 이가 결국 실패해 군입대하게 된 것은 정의로운 결과라며 항의 퍼포먼스를 펼치겠다고 공지했었다. 십 수년 전 당시에도 이동국의 병역비리 행각에 분노한 축구팬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죄에 비해 가벼운 처벌인지 적당한 처벌인지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16년 후 장현수가 봉사활동 서류 조작 사건으로 국가대표 자격 영구박탈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는데 확실히 이에 비하면 가히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할 수 있다. 병역비리[49]를 저지르고도 병역특례를 받을 기회를 받은 건 물론이요 국가대표 자격 박탈은 커녕 정지마저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축구계의 제 식구 감싸기와 2002년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2년 후인 2004년에 많이 적발되었던 다른 스포츠 선수들이나 연예인들의 병역 비리에서도 당시 대중들의 반응이 요즘 정도로 격하지 않았으며 이 사건과 비슷했다는 점에서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 대중들은 병역비리에 연루되었어도 병역을 다 이행했다면 죄값을 치른 것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병역대상자가 많아서 이유 없이 면제가 나오는 제도도 있었으니만큼 거의 모든 남성을 징병하는 요즘처럼 병역에 민감하지 않았다. 축구계의 제식구 감싸기나 2002년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그 후에 벌어졌던 다른 병역비리 사건과 비교해 볼 때 그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50]

8.2. 2007 아시안컵 기간 숙소 무단이탈 및 룸살롱 출입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던 2007 아시안컵 축구대회 도중, 동료 국가대표 선수인 이운재, 김상식, 우성용과 함께 자정 즈음 국가대표팀 숙소를 무단이탈해 룸살롱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신 사실이 들통나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실제 언론사 뉴시스의 현지 취재에 따르면 선수들은 룸살롱에서 접대부들과 함께 폭탄주를 마시고 2차까지 나가 새벽까지 춤추고 노래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되었다. 해당 업소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한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유흥 업소로 널리 알려진 곳이었는데, 이동국 등을 접대한 현지 접대부들은 선수들을 직접 지목하며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한 사진까지 공개하였다. 이에 인도네시아 교민들은 선수들의 부적절한 행동에 커다란 실망감과 분노감을 드러냈다. 기사

사건이 널리 알려진 직후 이운재, 김상식, 우성용 등 음주파문에 연루된 선수들은 사죄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이동국은 당시 영국에 체류하고 있다는 이유로 기자회견에 불참하였으며 서면 사과로 이를 대신하였다. 이동국은 국내로 복귀한 뒤 오랜시간 공석에서든 사석에서든 당시 룸살롱 출입사건에 대해 침묵하였고, 몇년 뒤 발간한 자신의 자서전에 자신은 룸살롱에 출입한 것이 아니라 지인이 운영하는 일반 술집에 출입한 것이며, 맥주 한 잔 마신 것이 큰 잘못이 되었다며 항변하였고, 심지어 당시 미들즈브러에서 함께 뛰었던 동료들의 입을 빌려 자신의 행동을 비판한 대중들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뉘앙스로 적시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대한축구협회 또한 선수들의 성매매는 없었다는 자체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뉴시스의 해당 취재에서도 접대부가 2차에서 성매매는 하지 않았으며 주로 한국인끼리 이야기를 했다고 증언했다.

뉴시스 기사도 좀 자극적으로 써놨는데, 얼핏 읽으면 4인의 축구선수가 두 차례 유흥에 나선 것으로 착각할 수 있도록 쓰여져 있다. 이운재가 지인들과 새벽 5시까지 술을 먹었고, 그 다음 차례에 해당 4인방과 인도네시아 한인들이 새벽 3시까지 술을 먹었다고 한다. 다른 매체에서도 흐름은 비슷하다. 이동국이나 다른 선수의 증언이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말하기엔 가장 자극적으로 취재했던 뉴시스의 취재에서조차 접대부들이 술, 이야기, 노래에 대해 말했지 성적인 것에 대해서는 증언하지 않았다.

상단 문단이 사실관계에 대해 오해를 불러일으키도록 편집되었던 것이, 룸살롱에 이어 2차까지 나갔다고 하면 누구나 성행위를 연상하기 마련이며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으며 상단 문단도 그런 뉘앙스로 편집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러 기사에서도 2차를 나가서 현지 한인들과 얘기하고 노래하고 술을 먹었다고 하지, 성행위에 관해서 언급한 기사는 없다. 접대부들이 성행위에 관해서는 증언하지 않았다.

2020년 은퇴 후 이동국의 아내인 이수진씨가 이 사건에 대해 억울하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기사

종합적으로 보자면 성매매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국가대표 자격으로 간 해외에서 숙소를 무단이탈하여 음주를 즐겼다는 점, 사후에라도 제대로 된 해명이 없다는 점에선 어디까지나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게 K리그 팬들의 중론.[51][52]

8.3. 전북 현대 모터스 심판매수 사건 옹호 발언 논란


전북 현대 모터스 심판매수 사건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여 논란이 있었다.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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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선수 이름 / 현재 소속팀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홍명보 은퇴 <colbgcolor=#eeeeef,#191919> 136회 1990.02.04
(vs 노르웨이)
2002.11.20
(vs 브라질)
2 이운재 은퇴 131회 1994.06.11
(vs 온두라스)
2010.08.11
(vs 나이지리아)
3 차범근 은퇴 130회 1972.05.07
(vs 이라크)
1986.06.10
(vs 이탈리아)
4 이영표 은퇴 127회 1999.06.12
(vs 멕시코)
2011.01.28
(vs 우즈베키스탄)
5 유상철 은퇴 120회 1994.09.11
(vs 우크라이나)
2005.06.03
(vs 우즈베키스탄)
6 김호곤 은퇴 117회 1971.10.04
(vs 대만)
1979.03.04
(vs 일본)
7 기성용 FC 서울 110회 2008.09.05
(vs 요르단)
2019.01.07
(vs 필리핀)
8 김태영 은퇴 104회 1992.10.21
(vs UAE)
2004.07.19
(vs 요르단)
이동국 은퇴 104회 1998.05.16
(vs 자메이카)
2017.09.05
(vs 우즈베키스탄)
10 조영증 은퇴 102회 1975.03.19
(vs 베트남)
1986.10.05
(vs 사우디아라비아)
황선홍 은퇴 102회 1988.12.06
(vs 일본)
2002.11.20
(vs 브라질)
12 박성화 은퇴 101회 1975.07.29
(vs 말레이시아)
1984.12.10
(vs 카타르)
13 박지성 은퇴 100회 2000.04.05
(vs 라오스)
2011.01.25
(vs 일본)
FIFA 센추리 클럽 명단 기준 (2020.06.30 Ver.)
※ FIFA에서 공인한 기록과 대한축구협회에서 집계한 기록은 차이가 있다. 대한축구협회 선수별 A매치 기록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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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관련 문서


[1] 본인의 공식 프로필 상에는 무종교로 되어 있어 딱히 신앙심이 있거나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집안 자체는 상당히 독실한 불교 집안이다. 특히 이동국 선수의 아버지가 꾸준히 절에 다니신다고. 아들이 월드컵에서 골만 넣어준다면 머리 깎고 스님이 되는게 대수겠냐는 말로 아들에 대한 애정을 표한 바 있다. # [2] 스트라이커 [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A매치 득점 공동 4위 [4] 2000 시드니 올림픽,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 [5]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6] 1999 FIFA U-20 월드컵 [7]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2005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한국, 2010 남아공 월드컵 [8] 1998 프랑스 월드컵 [9] 영구결번 [10] 국군체육부대 광주 상무 불사조에서 복무 [11] 이 별명에서 파생된 룸궈라는 멸칭이 있는데 과거 아시안컵 대회 기간 중 룸살롱 출입한 전력 때문이다. 룸살롱 출입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후술 참조. [12] 2020 K리그 개막전인 수원과의 경기에서 교체로 출전한 뒤, 극장골을 기록했는데 해외 팬들이 그의 나이가 41살이라는 소리에 "40 fucking 1"이라며 기겁해 생겨난 별명. [13] 상암 불낙스에서 사용하고 있는 별명. [14] 2019년 2월 18일에 미국 테니스 대회에 출전해 우승했다. [15] 태명은 '대박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서도 대박이로 불려 왔는데, 이 쯤 되면 태명이 아니라 아명 수준. '대박이'란 이름은 왕가네 식구들 등장인물에서 따온 태명인 듯 하다. 누나가 네 명이나 되는 막내아들이라는 점이 같다. [16] 2020. 11. 1. 은퇴시점기준 [17] 비슷한 사례로 박주영이 있다. 두 명 모두 한국 축구 정통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이을 재능으로 평가받았지만 이동국은 혹사와 부상, 박주영은 아스날에서의 몰락으로 기대만큼 대성하지 못했다. [18] 548출장 228골 77도움3도움만 했으면 80-80이었는데!!! [19] 전세계적으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엠레 벨로조글루, 로케 산타 크루즈만 가지고 있는 희귀한 기록이다. [20] 90년대 포항에서 데뷔해 첫 성인무대 골을 넣은 뒤 2000년대 대한민국 대표팀의 주포로 활약했고, 유럽무대를 경험했으며, 2010년대 전북에 입단해 전북 왕조의 개막을 알리며 K리그 최고의 공격수가 되었고, 2020년 자신의 마지막 현역 시즌에서 시즌 개막골을 넣는 등 은퇴할때까지 교체와 선발을 오가면서 활약했다. [21] 중국 축구팬들이 중국을 상대로 할 때 활약한 그를 중국식 발음으로 부르던 것이 한국에서 놀림거리로 된 경우다. 근데 시간이 흐르면서 빠도 까도 다들 동궈라고 부른다. 이승엽의 오푼, 홍진호의 콩과 같은 케이스. 심지어 축구계 후배들도 동궈형으로 부른다. 파일:external/pds.joins.com/2012032008243657512_3.jpg [22] 총 8회 우승으로 K리그 역대 개인 최다 우승 [23] 2014년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골을 기록하면서 황선홍, 박주영에 이어 3번째로 전대륙 상대로 득점한 선수가 되었다. 박주영의 경우 호주가 OFC에서 AFC로 소속을 바꾼뒤 득점 했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이동국의 경우 호주가 OFC 시절에 득점했다. 어찌보면 황선홍에 이어 2번째 전대륙 상대 득점자다. 2017년 손흥민이 콜롬비아를 상대로 득점하면서 역대 4번째 전대륙 상대 득점자가 되었고 현재까지 황선홍, 이동국, 박주영, 손흥민 등 4명의 선수만이 이 기록을 갖고 있다. 전대륙 상대 득점 기록이 힘든 이유 중 하나가 오세아니아 국가를 상대로 득점하기가 어려워서다. 대륙도 다른데다 전체적인 실력도 떨어져 국제대회에도 만나기 힘들기 때문에 A매치에서 맞붙을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호주가 OFC에서 AFC로 소속을 바꾸면서 호주를 상대로한 득점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논란 없이 전대륙 상대 득점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는 이재성이다. 국가대표 데뷔한지 얼마 안돼 뉴질랜드를 상대로 골을 기록했기 때문이고 현재까지 5대륙(오세아니아 - 뉴질랜드, 아시아 - 미얀마, 유럽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북중미&카리브 - 코스타리카, 남미 - 콜롬비아)을 상대로 득점했다. [24] 이게 얼마나 기록하기 힘든 것이냐고 하면 지금 세계 6대륙 득점에 성공한 선수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치차리토, 호나우두, 호마리우, 오카자키 신지, 팀 케이힐 등 몇 안 되는 편이다. 즉 유명한 선수들도 보유하지 못하는 이러한 기록을 지녔다는 자체가 꽤 의미있다 볼 수 있다. [25] 2011년을 끝으로 K리그 리그컵이 폐지되었다. [26] 국대에서는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욕도 많이 먹었지만 그 와중에도 발리슛만큼은 칭찬을 받았다. 전북이 리그 강호라는 것을 감안해보아도 리그 내에서 슈팅당 골 비율이 가장 높은 순위권에 랭크되어 있었다는 건 대단한 것이다. 이동국이 개발이라면 리그 내 모든 용병들도 개발, 아시아에서 개발이 강을 메울 것이다. 다른 능력이 지적받아도 순수 결정력만큼은 절대 나쁘지 않다. [27] 이제 와서는 활동량이 적다고 까는 사람은 그냥 국대조차 제대로 안 보는 사람으로 취급해도 될 정도다. 허정무는 이동국이 박혀 있으면 공격진의 활동량 부족을 지적하는데 막상 이동국이 내려오면 언급은 안 한다. 이동국의 무릎을 작살낸 장본인이 그런 소리를 하면 쓰나 전체적으로 어린 시절 묻지마 강슈터 기질과 그 둔해 보이는 움직임이 이런 편견에 기여한 바가 크다. 사실 이동국은 원래부터 활동량이 약점인 선수는 절대 아니었는데, 흔히 '받아먹기'식으로 연명하는 선수들도 골을 넣는 그 장면에만 보이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이지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에서 위치를 선정하기 위해 상대 수비수들 사이의 빈 공간을 헤집고 다니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고 오프사이드 라인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도 라인 근처에서 수시로 움직여야 한다. 활동량이 적은 스타일이라면 위치 선정으로 연명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 이동국이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는 타입의 공격수는 원래 아니었지만 이런 점 때문에 활동량이 적다는 편견이 생긴 것이지, 사실 활동량이 단점이라고 보긴 어렵다. [28] 히딩크가 이동국을 심리적 압박 때문에 쫓아냈다고는 말한 적이 없으며, 사실 이동국도 초년에는 심리적 압박에 강한 선수였다. [29] 이에 반해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 모든 쪽으로 심리적 압박에 강한 선수가 박주영이나 기성용이다. 2000년대 들어 가장 완벽한 국대 칭호를 듣는 박지성은 클럽 업적과 국대 업적이 고루 좋은 편. [30] 이런 것은 오히려 동갑내기이자 청소년대표 파트너였던 김은중이 더 잘했다. [31] 워낙 선수 생활을 오래하고 부상이 많아서 느리다고 하는 것이다. 육상부 출신인 것도 있고 부상이나 나이를 빼고 본다면 원래는 꽤 빠른 편이었다. [32] 사실 황선홍 이후 한국의 전통적인 대형공격수는 최용수였다. 실제로 황선홍 은퇴 이후 최용수가 원톱으로 나서기도 했고...그러나 2002년 월드컵 미국전 실수로 인해서 이미지가 안 좋았고 나이도 많았던지라 설기현과 조재진에 밀려났다. [33] 이동국과 안정환이 트래핑 연습 도중, 안정환이 실수를 하자 이동국이 분노하면서 안정환에게 소리쳤다. 아이스크림 내기라도 했나? [34] 하지만 둘의 부조화와 별개로 사적으로는 절친 사이다. 이동국의 "아유 진짜!"도 둘이 거리낌 없이 지내다보니 나온 말이고(안정환이 이동국을 "국동아!"라면서 친근하게 부르는 모습도 앞에 나왔다.) 안정환도 이것에 대해 유머거리로 언급할 정도. 2020년에 뭉쳐야 찬다에 같이 출연해서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참고로 안정환은 1976년생이고 이동국은 1979년생이라 안정환이 3살 형인데도 저렇게 투정을 부릴 수 있다는 것부터 격 없이 지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대표팀이 히딩크의 영향으로 선후배 관계나나 나이 차이에 개의치않고 지내게 된 것도 있겠지만. 정환아 축구야 선배지 농구는 아니잖아 안정환이 이탈리아, 이동국이 독일에 있을 때 휴일에 중간지점인 프랑크프루트에서 자주 만났다고 한다. [35] 그래서 이동국-박주영 투톱의 롤을 바꾸자는 의견도 좀 있었다. [36] 이름 때문에 많이 엮이는 그 대학교 한자 이름도 바로 저것이다. 東國이라는 이름은 예전부터 동쪽의 나라라는 뜻으로, 이 한반도를 지칭할 때 흔히 쓰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37] 李 7획+東 8획+國 11획 합 26획 [38] 음은 그대로 두고 한자만 바꾸는 개명은 어지간해선 잘 받아준다. [39] 어찌됐건 이동국도 한때 병역비리에 연루됐다는 점을 보면 묘하다. [40] 이동국이 자기보다 아이를 많이 낳았다는 뜻. [41] 다만, 이동국이나 김현정이나 그 당시의 살인적인 스케쥴을 감안한다면 실제로 만나서 얼굴은 본 적이 있을지 미지수다. [42]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직후 지상파 주말 한 예능프로에 같이 출연하여 당시 자신의 홈 구장이던 포항스틸야드에서 PK 대결을 하여 골을 허용해준 적이 있는데 처음 얼굴을 봤을 때가 이때였을 가능성이 높다. [43] 그래서 S급이 아니라 애매하게 국대에 뽑힐 듯 말 듯한 A급 중 최상위 선수와 리그 씹는 용병을 보유한 성남이 잘 나가던 시기였다. [44]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축구에서의 불문율이다. 안 그러면 대차게 까인다. [45] 2005년쯔음에 곽희주가 조절을 못해 뒷다리를 걷어차이자 멘탈이 나간 이동국이 곽희주를 때리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46] 3경기 4골 [47] 2020년 9월 8일 기준 53.4만명. [48] 일반적으로 어떻게든 병역비리에 연루된 자는 절대로 어떤 사유로든 군 입대를 연장할 수 없다. 기회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당시 이동국은 원칙에 어긋나는 엄청난 특혜를 받았다고 보면 된다. [49] 그 중에서도 가장 악질로 분류되는 청탁이다. [50] 97년에 대선을 치른 이회창인데, 이회창 전이라고 98년의 범죄와 연관시키는 것은 아예 맞지 않는 증언이다. [51] 정말 의문인것은 이동국은 은퇴 후 예능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물회오리 슈팅에 대해서는 언급하면서 이 사건에 대해서는 매우 쉬쉬하고 있다. 뭐 그건 음주운전 2번한 서장훈도 술 이야기 안할정도로 쉬쉬하긴 하지만.. 그 구설수 많은 김구라도 예능에서 자기 잘못에 대해 자폭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52] 이동국의 이러한 과거 전력 때문에 룸궈(룸살롱+동궈)라는 멸칭이 생긴건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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