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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16:17:07

정조국

정조국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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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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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2대 3대 4대 5대
이을용
(2009)
정경호
(2010~2011.04)
서동현
(2011.04~2011.08)
이을용
(2011.08~2011.11)
김은중
(2012)
6대 7대 8대 9대 10대
전재호
(2013.01~20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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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황교충
(2015.공동주장)
백종환
(2015.공동주장~2017)
11대 12대 13대 14대 15대
정조국
(2018.02~2018.08)
오범석
(2018.08~2020.06)
임채민
(2020.07~2021)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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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우
(2023.02~2023.06)
16대 17대 18대 19대 20대
한국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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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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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국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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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이동국
,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 MVP, 득점왕, 베스트 Ⅺ
,
김은중
, 제주 유나이티드 FC
K-리그 MVP, 베스트 Ⅺ
,
이동국
,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 MVP, 도움왕, 베스트 Ⅺ
,
하대성
, FC 서울
K-리그 베스트 Ⅺ
,
김신욱
, 울산 현대
K리그 클래식 MVP, 베스트 Ⅺ
,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이동국
, 전북 현대 모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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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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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현대 모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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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현대 모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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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김보경
, 울산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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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현대 모터스
K리그1 MVP, 베스트 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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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호
, 포항 스틸러스
K리그1 베스트 Ⅺ
,
주민규
, 울산 현대
K리그1 득점왕, 베스트 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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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국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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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FC 10주년 베스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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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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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영
MF
김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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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으뜸
DF
김영빈
DF
이한도
DF
이종민
GK
윤보상
대한민국의 축구 감독
파일:정조국 2024.jpg
<colbgcolor=#f0f0f0,#222222><colcolor=black,white> 이름 정조국
鄭助國 | Jung Jo-Gook
출생 1984년 4월 23일 ([age(1984-04-23)]세)
전라북도 부안군
(現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6cm, 77kg, 280mm, O형[1]
직업 축구 선수 (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학력 갈현초등학교 (졸업)
대신중학교 (졸업)
대신고등학교 (졸업)
소속 <colbgcolor=#f0f0f0,#222222><colcolor=black,white> 선수 안양 LG 치타스/ FC 서울 (2003~2010)
AJ 오세르 (2011~2012)
AS 낭시 (2011~2012 / 임대)
FC 서울 (2012~2015)
안산 경찰청 축구단 (2013~2014 / 군 복무)
광주 FC (2016)
강원 FC (2017~2019)
제주 유나이티드 FC (2020)
감독 제주 유나이티드 FC (2021~2022 / 공격 코치)
제주 유나이티드 FC (2023 / 수석 코치)
제주 유나이티드 FC (2023 / 감독 대행)[2]
대한민국 대표팀 (2024 / 코치)[3]
기타 한국프로축구연맹 (2024~ / TSG 위원)
국가대표 13경기 4골 ( 대한민국 / 2006~2011)
가족 배우자 김성은(2009년 12월 11일 결혼 - 현재)
장남 정태하(2010년 8월 20일생)
장녀 정윤하(2017년 5월 30일생)
차남 정재하(2020년 1월 27일생)
종교 무종교 개신교( 침례회)[4]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서명 파일:정조국서명.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경력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5.3. 통산 기록
5.3.1. 클럽5.3.2. 국가대표
6.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축구인. 현역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였으며 2003년 안양 LG 치타스에서 데뷔해 2020년까지 뛰었다.

2020년에 현역에서 은퇴한 후 2021년부터는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24년부터 한국프로축구연맹 기술연구그룹원으로서 활동한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파일:godjg.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정조국/클럽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2. 국가대표 경력

파일:natjg.jpg

고교 최고 스트라이커로 연령별 대표팀에서 큰 활약을 펼쳤던 정조국은 고3 때이던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대회 당시 대표팀 훈련장에서 선배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진행하였다.[5] 히딩크 감독은 이들을 '한국 축구의 미래'라고 표현하며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회 폐막까지 훈련 도우미로써 대표팀 경험을 쌓도록 도와주었다. 실제로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 이후부터 월드컵이 끝난 날까지 월드컵 멤버들과 똑같이 훈련받았다. 히딩크 감독이 자서전에서도 밝혔듯이 대표팀 선배들과 그리고 월드컵 가까이에서 훈련과 경험을 하면 도움이 크게 될 것이기에 훈련 멤버로 뽑은 거라 밝혔다.[6]


2006년 1월 18일 UAE와의 친선경기를 통해 드디어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2006년 9월 6일, 대만과의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예선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여 팀의 8-0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2008년 10월, 9개월 만에 국가대표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으나, 부상으로 하차했다. 2009년 1월, 이란전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소집되었고, 5월에는 부상으로 하차했다.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국가대표팀 예비 명단에 들어갔으나, 부상과 피로 누적을 염려해 최종 명단에서 탈락하였다. 2011년 6월 3일 세르비아와의 평가전 출전을 끝으로 은퇴하는 날까지 더 이상은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성인 대표팀 13경기 4득점.

연령별 대표팀부터 착실하게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국내 정상급 실력을 가진 스트라이커였지만, 정작 프로 데뷔 이후 성인 대표팀에서는 이렇다 할 임팩트를 딱히 못 보여줬는데다 많은 경기도 못 뛰었고, 메이저 대회 발탁은 전무했다.[7] 사실 사유가 있었는데, 하필 정조국이 최고의 모습을 보이던 2000년대 후반은 역대급 시기라고 불릴 만한 걸출한 공격수 스타 플레이어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안정환, 이동국, 김은중, 박주영, 이근호, 이 외에도 조재진, 최성국 등 공격수 자원이 워낙 넘쳐나던 시절이라 웬만한 실력으로는 국가대표팀 승선이 쉽지 않았다.

3. 플레이 스타일


청소년 시절에는 타이밍을 완벽하게 갖고 노는 공격수로 기대를 받았다. 당시로서는 꽤 희귀했던 타입. 발이 빠르거나, 눈을 즐겁게 하는 개인기의 소유자도 아니었고, 신체조건은 좋지만 그렇게까지 몸싸움을 즐겨하던 편도 아니었다. 오히려, 뛰어난 공간 침투력과 침착성을 살린 엄청난 결정력으로 골을 노리는 정통파 스트라이커이다. 이와 같은 엄청난 골결정력과 강력한 슛팅으로 '패트리어트' (미사일)라는 별명으로 현재까지도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있다.[8][9]

상당히 지능적이고 정석적인 플레이를 즐겨 하는 선수이다. 고전적인 골잡이에 가까우며 오프사이드 라인 침투나 수비수 교란에도 능하다. 슈팅은 잘 차지만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의 영향력은 떨어지는 편이기 때문에 동료들의 조력이 필요하다. 그래도 지능적인 편이기 때문에 공격형 미드필더, 섀도우 스트라이커, 인사이드 포워드 등 호흡이 맞는 동료가 있으면 동료를 잘 이용해서 좋은 활약을 보여 준다.

한때 움직임이 없고 수비 가담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2010 시즌 이후로는 수비에도 적극적으로 임하는 편이며 데얀과의 호흡이 일품이었다. 원톱보다는 투톱에서 제 위력을 발휘하는 공격수.

유망주 시절 당시 한국에서 독보적인 몇몇 재능을 포함해 여러 가지 재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초대형 유망주로서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 기대만큼 성장하지는 못했다. 전성기라 할 수 있는 광주시절 단 한 시즌에는 놀라운 골을 많이 넣었지만 나머지 시기에는 경찰청에서 뛰던 2부리그 시절이나 분유캄프 한 시즌 정도를 제외하고는 자신감 있게 뛰면서 득점을 책임지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못했다. 유연함이 부족해서인지 자잘한 부상을 많이 당한 편이고, 좀 소극적인 성향이나 민첩성과 스피드의 부족 등이 아쉬웠다.

그러나 축구계나 팬들 사이에서 인성이나, 품성, 리더십 등에 대해서도 상당히 평이 좋은만큼, 선수생활이 후반기에 접어들어갈수록 팀을 아우르는 라커룸 리더로서의 역할을 두루두루 인정받았다.

4. 지도자 경력

4.1. 제주 유나이티드 FC 코치

2020년 시즌 종료 후 선수생활을 은퇴하자마자, 자신이 마지막으로 몸담은 제주 유나이티드 FC의 공격코치로 부임했다. #

2021 시즌이 끝나고, 수석 코치였던 이정효가 광주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더욱 중요한 직책을 맡을 예정이다.

2022시즌이 끝나고, 마철준 코치가 아내의 병간호 등 여러 이유로 팀을 떠나자, 2023시즌부터 마철준 코치의 자리인 수석코치로 승진했다.

4.2. 제주 유나이티드 FC 감독 대행

2023년 9월 25일 성적 부진으로 남기일 감독이 사퇴하면서 당분간 감독 대행을 맡기로 했다.

자칫하면 강등권으로 추락할 수 있는 위기에 빠진 제주의 분위기를 얼마나 잘 추스를지가 관건이다.

하지만 정조국이 P급 라이센스가 없는 관계로 23시즌까지만 팀을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

34라운드 수원 삼성와의 홈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두면서 감독대행 첫승을 거두었다.

11월 1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FA컵 4강전에서는 1:1 무승부를 거둬 승부차기 갔는데, 문제는 5명의 키커 중 수비수를 4명이나 선정하며 모두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결국 임채민과 김오규가 실축하며 제주는 탈락했고, 이에 "선수들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 훈련할 때 잘해줬던 선수들이었다. 당연히 골을 넣고 싶었던 간절함이 있었을 것이다. 키커 선정은 후회 없다"고 설명했다. #

11월 11일 FC 서울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뒤 11월 12일 수원 FC가 수원더비에서 패하며 남은 두 경기 결과와 상관 없이 잔류는 확정지었다.

시즌 종료 후 김학범 감독이 내정되면서 감독대행으로서 임무를 마무리지었다.

4.3. 한국프로축구연맹 TSG 위원

2024시즌부터 한국프로축구연맹 기술연구그룹원으로 합류했다. #

4.4. 황선홍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황선홍
파일:캐나다 국기.svg 마이클 김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조용형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정조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일진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재홍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영진

2024년 2월 29일 축구대표팀 황선홍 감독 대행 코치에 합류하였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통산 기록

5.3.1. 클럽

시즌 클럽 출전 도움
2003 안양 LG 32 12 2
2004 FC 서울 30 8 2
2005 FC 서울 26 3 1
2006 FC 서울 27 6 3
2007 FC 서울 19 5 1
2008 FC 서울 21 9 5
2009 FC 서울 25 7 1
2010 FC 서울 29 13 4
2012 FC 서울 17 4 0
2013 안산 경찰청 24 9 2
2014 안산 경찰청 12 7 1
2014 FC 서울 2 0 0
2015 FC 서울 11 1 1
2016 광주 FC 31 20 1
2017 강원 FC 18 7 1
2018 강원 FC 25 4 1
2019 강원 FC 31 5 3
2020 제주 유나이티드 12 1 0
통산 392 121 29

5.3.2. 국가대표

소속 대표팀
연령
경기
득점
대한민국 U - 17 3 3
U - 20 24 15
U - 23 10 3
A 대표 13 4
통산 50 25

6. 여담



[1] # [2] 전임 남기일 감독의 시즌 도중 사임에 따른 권한 대행. [3] 2024년 2월 29일, 태국과의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2연전을 앞두고 감독 대행으로 선임된 황선홍을 보좌할 코칭 스태프로 합류했다. [4] 크리스천인 김성은과 결혼한 이후 입교했다. [5] 정조국, 여효진, 최성국, 염동균 4명이었다. [6] 같은해 U-20 대표팀으로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기대를 받았었다. [7] 그나마 프로 데뷔 이후 참가한 대회를 보자면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정도가 있다. [8] 패트리어트는 미사일 이름말고도, '애국자' (Patriot)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름이 '조국'인 것이 한 몫했다고 할 수 있다. [9] 참고로 이 별명은 정조국이 프로 입단을 했을때 안양 LG(1년 후 FC 서울)에서 닉네임 공모를 해서 당선된 이름이다. [10] 정조국은 10번 가면 2번만 안정환을 만나뵈었을 정도로 어렵다고 생각했고, 조원희는 아예 음식을 문 앞에 두고 가란 소리만 들을 정도로 아예 대접을 못받았다고 한다.. [11] 오히려 8살, 5살, 1살 많은 축구 선배 안정환, 이동국, 조원희, 어쩌다벤져스의 동갑인 강칠구, 김태술이 상대적으로 더 어려보였다. [12] 달래줄때는 잘 달래주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준다. [13] 물론 즐기면서 취미로 하는 운동이면 모두나 웃으면서 힘들땐 쉬어가도 괜찮지만, 진로가 스포츠 선수라면 엄하게 강도를 세게해야 될 수 밖에 없다. 정조국 외에도 염기훈과 조원희의 아들도 아빠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데, 이들도 훈련할때 매우 높은 강도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