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
||
|
||
<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이름 |
손대호 Son, Dae-ho |
|
출생 | 1981년 9월 11일 ([age(1981-09-11)]세) | |
부산광역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학력 |
부산서곡초등학교 (졸업) 동래중학교 (졸업)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 명지대학교 예체능대학 (체육학 / 학사) |
|
포지션 | 수비형 미드필더 | |
신체조건 | 188cm / 81kg | |
소속팀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2~2004) 전남 드래곤즈 (2005) 성남 일화 천마 (2005~2008) 인천 유나이티드 FC (2009~2013)[1] 항저우 뤼청 (2014) BEC 테로 사사나 (2015) |
|
국가대표 | 7경기 ( 대한민국 / 2007)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남자 축구선수로, 현역 시절에는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활약했다.2. 클럽 경력
2.1. 수원 삼성 블루윙즈
명지대학교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려나가고 있던 손대호는 졸업 하기 이전에 수원의 제의를 받았고, 이에 따라 이른 프로 데뷔 기회를 얻었다. 데뷔 시즌부터 김호 감독에게 간간히 출전 기회를 받았고, 2004년 새로 부임한 차범근 감독 아래에서도 김진우와 김두현의 로테이션 멤버로 나서며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2.2. 전남 드래곤즈
그러나 2005 시즌 개막을 앞두고 수원이 전남의 김남일을 영입하고, 그 반대급부로 손대호는 전남으로 이적했다.그러나 전남에서는 김태수에 밀려서 전반기 내내 리그에서 1경기 출전에 그치는 등 충분한 기회를 받지 못하였고, 반 시즌만에 이적했다.
2.3. 성남 일화 천마
2005 시즌 중반 김도균과의 트레이드로 성남에 합류했다. 성남 입단 초기에는 그리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고, 적당한 로테이션 수준의 평을 받았다.그러나 2006 시즌 후반기 김상식이 부상으로 빠진 사이 김철호와 더블 볼란치를 이루어 김두현을 지원했고 팀이 K-리그 우승을 차지히는데 공헌하며 가치가 상승했다.
2007 시즌에도 김상식, 김두현, 김철호와 중원을 형성하며 국가대표에도 선발됐다. 이 시즌 성남은 K-리그 정규 라운드 1위 자격으로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지만 포항에 밀려 준우승을 기록했다. 대신 손대호는 당시 리그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로 거듭나며 자신 커리어 최고인 리그와 리그컵 포함 26경기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08 시즌에도 주전으로 뛰었다. 지난 시즌보다 많은 29경기에 출전했고, 팀의 정규라운드 3위에 기여했으나 6강 플레이오프에서 전북에게 이변의 희생양이 되며 그대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시즌 종료 후 손대호를 중용하던 김학범 감독이 팀을 떠나며 신태용 감독이 부임했다. 신태용 체제에서 성남 구단은 김상식, 김영철, 이동국 등 몸값이 높은 선수들을 내보내는 세대교체를 단행했는데 손대호 역시 이 대상이 되며 팀을 떠나야 했다. 결국 공격수 제난 라돈치치를 원한 성남이 인천과 협상 중에 손대호를 트레이드 카드로 내놓았고, 이를 수락하며 손대호는 인천으로 이적했다.
2.4. 인천 유나이티드 FC
나름 큰 기대를 모으며 인천에 온 손대호지만, 전반기에는 출장 기회를 잡지 못했고 후반기에 나와서도 특출난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광주 상무 or 경찰청 입대를 준비했는데...
그만 날짜를 잘못 계산하여 두 곳 모두 실패했다. 결국 손대호는 2010년부터 공익 근무를 시작했는데, 본인의 실의가 컸는지 공익 근무임에도 불구하고 장학영과 다르게 K3리그 팀을 알아보지도 않았다. 실제로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고, 장사를 할지 지도자를 할지 고민을 하며 6개월간 운동을 쉬었다. 그러나 김봉길 코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손대호를 격려하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조언하였고, 결국 이 설득에 마음이 돌아서 그 이후로는 꾸준히 운동을 하며 몸을 만들었다.
2011년 말에 전역한 이후 손대호는 계약이 남아있는 인천으로 복귀하였다. 팬들도 거의 은퇴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기에 놀라운 복귀. 2년간 쉰 것으로 인해 기량에 대한 우려가 있었는데, 2012 시즌 동안에 김남일, 정혁의 후보 선수로 그들이 결장할 때 공백을 메우거나 수비력 강화를 위한 카드로 사용되는 등 조금씩 기회를 잡으며 폼을 올려나갔다. 생각 외로 폼도 나쁘지 않았던 편. 2013 시즌에도 김남일의 백업으로 출발하여 김남일 - 구본상 중원에 변화를 줄 때 출전하였고, 이 시즌 팀의 상위 스플릿 진출 등에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팀은 시즌 종료 후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본인도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한다.
2.5. 해외 진출
카타르 리그 이적설도 있었지만, 2014년은 중국 항저우 뤼청에서 보내게 됐다. 항저우에서 주전 미드필더로 뛰었고, 총 22경기를 소화했다. 그 뒤 2015년에는 태국 테로로 최고 대우를 보장받으며 이적했지만, 한 경기 출전에 그친 채 팀을 떠났다. 그리고 그 뒤 새 팀을 구하지 못하면서 은퇴.3. 국가대표 경력
명지대 시절부터 청소년 대표팀 및 올림픽 대표팀 상비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는 등 주목받는 유망주였다.
1
이운재 C · 2
송종국 · 3
김진규 · 4
김동진 · 6
이호 · 10 이천수 · 11 이근호 · 12 이동국 · 13 김치곤 · 14 김상식 · 15 김치우 · 16 오범석 · 17 김정우 18 우성용 · 19 염기훈 · 20 손대호 · 21 김용대 · 22 강민수 · 23 정성룡 · 27 오장은 |
핌 베어벡 코치
압신 고트비 ·
홍명보 ·
코사
|
2007 시즌 성남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자 핌 베어벡이 그를 국가대표로 선발했고, 2007 AFC 아시안컵 대표팀에 승선했으며 2006년 월드컵을 다녀온 김두현, 이호를 경쟁에서 밀어내며 대회 내내 김상식, 김정우와 함께 주전으로 기용되었다.
그러나 2008년부터 전남 시절 자신을 중요하지 않던 허정무가 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한 이후로는 국가대표와 인연이 없었다.
4. 은퇴 이후
은퇴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딴 손대호FC를 만들어서 유소년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한편 이 팀의 수석코치는 인천 시절의 동료 김한섭.
5. 플레이 스타일
신체 조건이 굉장히 좋고 수비적인 감각도 뛰어난 미드필더. 한때는 패싱도 괜찮은 수준이었으나 공익 생활을 한 이후로 패싱 감각은 떨어졌다.
[1]
2010~2011 공익 근무로 팀 이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