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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슈퍼 리그 구단별 감독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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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HD FC 역대 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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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초대 | 2대 | 3대 | 4대 | 5대 |
허정무 (1984~1986) |
최강희 (1987~1990) |
최인영 (1991~1992) |
최영일 (1993~1995) |
김현석 (1996~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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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건 (1999) |
김상훈 (2000~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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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균 (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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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권 (2003) |
박진섭 (2004) |
현영민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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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16대 | 17대 | 18대 | 19대 | 20대 | |
유경렬 (2006~2007) |
박동혁 (2008) |
유경렬 (2009) |
오장은 (2010) |
곽태휘 (2011~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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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21대 | 22대 | 23대 | 24대 | 25대 | |
김영광 (2013) |
김치곤 (2013~2015) |
김태환 (2016) |
김성환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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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호 (2020) |
이청용 (2021~2022) |
정승현 (2023) |
김기희 (20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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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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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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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 2011 · 2014 · 2015 · 2017 · 20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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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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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 1986 · 1988 · 1991 |
최강희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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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e84c24> 산둥 타이산 | ||||
山东泰山足球俱乐部 | ||||
|
||||
이름 |
최강희 崔康熙|Choi Kang-hee |
|||
출생 | 1959년 4월 12일 ([age(1959-04-12)]세)[1] | |||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성덕리[2]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76cm | |||
직업 |
축구 선수 (
풀백,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
|||
소속 | <colcolor=#e84c24> 선수 |
한일은행 축구단 (1979~1980) 육군 축구단 (1980~1982 / 군 복무) 한일은행 축구단 (1982~1983) 포항제철 돌핀스 (1983) 현대 호랑이 (1984~1992) |
||
감독 |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5~2001 / 코치)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02 / 코치) 대한민국 대표팀 (2003~2004 / 코치) 전북 현대 모터스 (2005~2011) 대한민국 대표팀 (2011~2013) 전북 현대 모터스 (2013~2018) 톈진 취안젠 (2018~2019)[3] 다롄 이팡 (2019)[4] 상하이 뤼디 선화-상하이 선화 (2019~2021) 산둥 타이산 (2023~ ) |
|||
병역 | 육군 축구단 (1980~1982) | |||
정보 더 보기{{{#!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colcolor=#e84c24> 등번호 | 3번 | ||
가족 | 아내 이명성, 외동딸 최혜린[5] | |||
본관 | 삭녕 최씨 (朔寧 崔氏)[6] | |||
학력 |
강하초등학교 (전학) 서울용두초등학교 (졸업) 대광중학교 (졸업) 우신고등학교 (졸업) |
|||
서명 |
[clearfix]
1. 개요
|
1983년 프로 축구 선수로 데뷔하고 K리그 베스트 XI을 네 번 수상했다. 1988년에 국가대표로 처음 발탁 받아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조별 리그 3경기 모두 풀타임 출전했다. 2013년에는 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XI으로도 선정됐다. 현역 시절 언론에서는 강인한 체력으로 필드를 누비는 그를 '스태미너의 화신'으로 불렀다.[7]
선수 은퇴 후에는 2005년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으로 부임했다. ACL 2회 우승[8], K리그1 6회 우승[9], FA컵 1회 우승[10] 등 9개의 우승 컵을 들어올려 전북 현대를 K리그를 넘어 아시아에서도 손꼽을 만한 명문 구단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또한 레바논 쇼크로 경질된 조광래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을 맡아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을 4승 2무 2패 조 2위로 통과하며 대한민국의 8회 연속 월드컵 진출을 이뤄내기도 했다.[11]
2. 특징
2.1. 별명
선수 시절 별명은 개구리.감독 시절 별명은 2006년 AFC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 중국 구단을 격파하고 올라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중국 언론에서 붙여준 청나라의 황제인 강희제에서 따온 강희대제와 K리그에서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온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12]에서 따온 봉동 이장(님), 이장(님)이 있다. '왕년의 스타'들을 재활시키는 데에 뛰어난 능력으로 재활공장장으로 불렸다. K리그 감독으로서 언론 매체를 즐겨 이용하는 편이다. 대체로 K리그를 담당하는 미디어와 기자들은 최강희 감독의 위트 있는 유머를 좋아하는 편이다.
2.2. 특기
만화에 소질이 있다고 한다. 축구를 안했으면 만화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13] 그리고 이 그림 실력으로 선수 시절 차범근 감독을 디스하는 그림을 라커룸에 그려 구설에 올랐다.3. 선수 경력
자세한 내용은 최강희(축구인)/선수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4. 지도자 경력
자세한 내용은 최강희(축구인)/지도자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5. 평가
자세한 내용은 최강희(축구인)/평가 문서 참고하십시오.6. 수상
6.1. 선수
6.1.1. 대회 기록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1988~1992)
- AFC 아시안컵 준우승: 1988
6.1.2. 개인 수상
- 대한축구협회 베스트 XI: 1988
- K리그 베스트 XI: 1985, 1986, 1988, 1991
- 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XI: 2013
- 프로축구선수권대회 MVP: 1986
6.2. 감독
6.2.1. 대회 기록
- 전북 현대 모터스 (2005~2011, 2013~2018)
- K리그1: 2009, 2011, 2014, 2015, 2017, 2018
- AFC 챔피언스 리그: 2006, 2016
- FA컵: 2005
- 상하이 뤼디 선화-상하이 선화 (2019~2021)
- 중국 FA컵: 2019
6.2.2. 개인 수상
- K리그1 감독상: 2009, 2011, 2014, 2015, 2017, 2018
- K리그 이달의 감독상: 2014년 10월 · 11월, 2015년 4월 · 7월, 2016년 7월, 2017년 6월, 2018년 4월
- K리그 베스트 포토상: 2014
- AFC 올해의 감독: 2016
- 중국 슈퍼 리그 이달의 감독상: 2023년 6월
7. 사단
최소 두 곳 이상 동행한 적이 있는 지도자 한정.- 코치
- 골키퍼 코치
-
최은성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2014~2021)
- 피지컬 코치
-
파비우 레푼지스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2011~2017, 2023~ )
8. 여담
- 피파온라인3 전설의 선수 최강희는 한국의 람으로 평가 받으며 한국 우측 풀백으로서 밸런스가 있고 수비안정감이 있어 쓸만한 선수라고 한다.
- 2014년을 기점으로 이재성, 이주용이라는 걸출한 라이징 스타를 과감히 키워 냄으로서[14] 재활공장장이라는 이미지는 어느정도 씻어내는 데 성공. 하지만 여전히 베스트 일레븐에서는 꽤 보수적인 선택을 하는 편으로서, 기용되는 평균 나잇대가 다소 높은 편이다. 2014년 현재, 아직 데뷔하지 못한 신인들도 꽤 된다! 2015년에는 김형일, 이호, 에닝요, 에두 등을 영입하며 다시 재활 공장장 이미지가 나오나 했으나 이호와 에닝요의 활약이 좋지 않은 와중에 최보경[15]을 주전급으로 키워내며 유망주에 대한 관심을 잊지는 않았다. 그리고 에닝요가 결국 자신의 활약에 실망하여 팀을 떠나게 되자 그의 공백을 루이스(축구선수)를 다시 데려오며 해결하려 한다.
- K리그 최고의 윙 전술 감독으로 꼽힌다. 최강희 감독 자신이 선수시절에 윙백이어서 그런듯. 이 부분은 전북 현대 모터스 항목을 참조바람. 하지만 2011년 챔피언 결정전 이후 인터뷰에서 '미드필드에서 경기 운영을 잘 하는 선수를 영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언급한 것처럼 측면을 이용한 전술을 선호하지만[16] 무조건 닥치고 윙 수집 정도까지는 아니다.
- 인터넷 사용에도 능숙해서 미니홈피나 팬클럽 카페에서 활발히 활동해서 소녀팬들이 많은데 봉동에 있는 훈련장에는 선수 팬보다 감독 팬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고. 그런데 2008년 시즌 전에 조재진, 강민수 등 대어를 영입하며 나름 알차게 보강을 했으면서도 수비조직력이 막장을 치달으면서 하위권을 달려 욕을 많이 먹던 중, 9월 8일에 구단 홈페이지에 '성적에 대한 책임은 무조건 내가 지겠다. 믿고 기다려 달라' 는 내용의 장문의 글을 올리고 이후로 축구에 집중하겠다며 그때부터 미니홈피와 팬클럽 활동을 줄였다.[17] 참고로 이때부터 연승을 거두며 부진에서 탈출하여 6위로 정규리그를 마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 4위로 시즌을 마쳤다.[18] 2009년에는 팀 운영에 주력하기 위해 미니홈피와 팬클럽까지 폐쇄하더니 결국 우승. 그런데 2010년부터 축구계에 하도 트위터바람이 불다보니 그 유혹에 끌리시다가 결국 카카오톡을 하고 계신다는 듯.
- 한준희 축구 해설위원은 전북 프런트에서 선물로 준 녹-검 사선 줄무늬 넥타이를 자주 매고 다니고, 최강희 감독이 맸던 넥타이를 하사(?)받을 정도로 공인된 전북빠다. 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될 당시에 "최강희 감독 선임이 K리그와 전북에 피해를 줬다" 라며 인터뷰로 심정을 밝히기도 하였다.
- 2005년 이전 중위권에서 상위권으로 탈바꿈시킨 최강희 감독과 전북의 스토리텔링, 그리고 현재 리그 내에서의 위상으로 K리그 클래식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고 보는 시선이 있다.
- 최강희 감독이 7년동안 전북을 어떻게 이끌었는가에 대해서는 이 기사를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 창단 20주년 전북에서 고속성장의 10년을 같이 한 이철근 단장과 최강희 감독 체제는 5년 내에 구단재정의 절반을 직접 벌어 해결하고 10년 후에는 자생하는 구단으로 끌어간다는 플랜을 세웠다. 이철근 단장과 최강희 감독의 10년 특별 대담기사 1편 2편
-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전북은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 끝나는 2013년 6월까지 수석코치였던 이흥실 감독대행 체제로 가게 된다. 그러나 2012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전북이 초반 2경기 모두 1:5로 대패하고 결국 전북 팀 역사상 최초로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 탈락하는 수난을 당하자 최강희 감독을 그리워 하는 전북 팬들의 그리움이 짙어지고 있다.
- 전북 현대는 최강희 감독 부임 후, 강팀으로 도약하며 아시아에서도 대륙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아시아의 축구팬이라면 전북을 모르는 축구팬이 없으므로 전라북도와 전주시의 홍보에 도움이 되고 있다. 전주시에서 문화협력 교류차 프랑스 파리와 베르사유 등을 방문했는데 전주시에서 왔다고 하니, 베르사유에서 전북을 알고 있어 깜짝 놀랐다고 한다. 전북현대는 리옹과 자매결연을 맺고있다.
- 2015시즌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진행한 전지훈련에서 마라도나와 만나 친구를 하기로 했다.
- 결혼 이후부터 지금의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SPOTV의 <UHD 스포츠 스토리>의 인터뷰 코너에서 '리그 경기에서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서의 리그 홈 경기에서 만원 관중을 기록하면 헤어스타일을 바꿀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19]
- 2017년 7월 2일 폭우 속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18라운드 경기에서 비에 홀딱 젖은 모습으로 인해 검열삭제가 적나라하게 노출된 모습이 공식기사로 올라오며 봉동이장이라는 별명과 검열삭제가 합쳐진 봉두[20]라는 별명이 빠르게 확산되는 중이다. #
- 2015 K리그 클래식에서 김학범 감독에게 '도발하지 말고, 머리부터 심고 와라', '도발 no, 가발 이식'이라 말했다고 한다. 말한 장면.
- 2018년 1월에 손주를 보면서 환갑도 되기 전에 할아버지가 됐다.
-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 선수 시절 활약상을 기념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라이벌 구단인 전북 감독으로서의 이미지가 너무 커서 간혹 울산 팬덤에선 최강희가 벽화가 그려질 만큼 레전드가 맞냐는 질문도 나온다.
- 상술한 울산의 대우와는 다르게 전북 구단은 최강희의 그림자를 지우려는 모습이 김상식 감독-허병길 단장 시절에 자주 보여 전북 팬들 사이에서는 원망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였다. 지금은 전주월드컵경기장 내부에 역대 감독들의 사진을 걸어놓으며 최강희의 사진도 함께 았다. 그러나 최강희에 대한 예우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말이 있다.
8.1. 아 이 식빵 무지 달다 팬케이크 아니야?
2016년 K리그 클래식 최종전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가 FC 서울을 상대로 경기하던 중, 모래반지 빵야빵야, 야 우규민 나오냐, 야 계란빵 진짜 달다급의 짤방이 나왔다. 이 움짤이 처음 게시된 것은 국내야구 갤러리로 보이며 # 처음에는 심판 판정에 대해 찰진 식빵을 곁들여 항의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곧이어 '보이는 대로 들리는 짤' #이라는 제목으로 여기저기에 퍼져나가며 다양한 배리에이션이 속출하게 된다.
해당 장면은 전체 영상 1시간 17분 16초에서 볼 수 있다.
- 아 이 식빵 무지 달다 팬케이크 아니야?
- 아 양말 벗겨졌다 내 발냄새아냐?!
- 아 양말이네 약발 3왜쓰냐?!
- 야 심판 븅신짓한다 매일 이렇게 하냐?!
- 야이 시발 무슨 짓하냐[21] 페인팅 아니야
- 안지만 미친 새끼야 베팅하냐?
- 아니 스파이 미친 새끼야 메딕하라니까?!
- 아니 시발 무슨 카이사야 베인하라니까?!
- 아니 시발 무슨 겐지야 메르시하라니까?!
- 야, 피시방 몇 시까지냐? 빨리 가즈아
- 야이 시발 민재 X끼야 베이징을 가냐? 어?
- 아침밥 김치찌개 아니야? 빨리 가자!
- 아 증말 무슨 색이냐, 파란색 아냐?
- 아니 시바견 무슨 색이야, 베이지색 아냐?
- 아 시발 민증깐다 82라 하잖아
상당수가 저 발언을 심판에 대한 욕설과 항의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최강희 감독이 현장에서 한 말은 "아, 증말(정말) 미치겠네(미치겠다)! 왜 그걸 안 차?"라는 말이었다고 한다.[22] KBS의 중계 사운드에도 마침 이 말소리가 잡혔기 때문에 해당 장면을 자세히 들어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전 상황에서 김신욱이 상대편 골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절호의 득점 기회를 놓친 직후에 나온 장면이기 때문에 이쪽이 전후 맥락에도 더 맞고 설득력도 있다. 게다가 전북이 반칙을 당한 상황도 아니었다.[23]
9. 둘러보기
1
이운재 [[와일드카드(스포츠)| W ]] · 2
조병국 · 3
현영민 · 4
박요셉 · 5
김영철 [[와일드카드(스포츠)|W ]] · 6
박용호 · 7
변성환8 김두현 · 9 이천수 · 10 박지성 · 11 최태욱 · 12 이영표 [[와일드카드(스포츠)| W ]] VC · 13
김동진 · 14
박규선15 조성환 · 16 김용대 · C
|
박항서 최강희 · 최진한 · 김현태 |
[1]
공식 프로필에서는
1959년생이라고 되어 있지만 이는
호적상의 생년이며 그와 절친한 사이인
최덕주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는
1957년생이라고 주장한다.
[2]
강하아주길
[3]
시즌 전 계약 해지
[4]
시즌 도중 사임
[5]
세미프로 골퍼로 2016년 10월 8일에 결혼했다.
[6]
기사
최진한 감독에게 집안 형님뻘 정도라고 한다.
[7]
700경기 출전의 대기록을 세운
김병지가 선정한 소속 구단 베스트 XI에서는 우측 풀백으로 선정됐고 김병지는 최강희의 선수 시절을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의 화신' 영리한 경기 운영이 돋보인다."고 설명했다.
[8]
2006년, 2016년
[9]
2009년, 2011년, 2014년, 2015년, 2017년, 2018년
[10]
2005년
[11]
8회 연속 월드컵 진출을 달성했음에도
기성용을 위시한 해외파와의 갈등, 최종 예선 3차전부터 시작된 대표팀의 졸전, 이란과의 홈·원정 2연패 및
카를로스 케이로스의
주먹감자 수모 등을 이유로 축구팬들에게
최강희호의 평가는 좋지 못하다. 그러나 이것도 따지고 보면 안 하겠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감독직을 떠맡긴
대한축구협회의 근시안적 행정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어쨌든 최강희는
레바논 쇼크로 휘청이던 대표팀을 맡아 쿠웨이트와의 3차 예선 최종전을 깔끔하게 승리하고 결국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했기 때문이다. 또한 최종 예선에서도 이란과의 최종전 전까지 줄곧 조 1위를 지키다가 이란에게 일격을 맞고 2위로 내려앉은 것이지 이란과의 최종전에서 무승부 이상만 거뒀어도 한국이 1위로 올라가고 이란은 탈락하는 상황이었다.
[12]
전북 현대 모터스의 전용 연습 구장과 클럽 하우스가 있는 지역. 인근 완주산업단지에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이 있다.
[13]
1991.7.18. 경향신문. 2011년 우승이후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만화들을 공개했는데 재미있게도 현재의 닥공과는 달리 어린 시절에는 공격보다는 수비를 강조했었다.
[14]
특히 단순한 윙이었던 이주용은 아예 레프트 백으로 크게 내려갔는데 공격형 풀백으로서 주전으로 자리잡았다.
[15]
2014 시즌에 영입했으나 그 당시에는 로테이션급에 불과했다.
[16]
최강희 감독의 연령대를 고려하면 당연한 현상이다.
거스 히딩크가 등장하기 전
대한민국 축구는
독일식 축구를 롤 모델로 삼았다. 다만 당시 여러 여건상 독일 축구를 직접 전수받지는 못했기 때문에 본류와는 다른 자기류로 발전했다. 최강희나 조광래 세대 감독들이 이런 자기류 독일 축구의 마지막 계승자인 셈이다.
조 본프레레 감독 시절 독일을 대파한 것은 이 자기류 독일 축구로 종가 독일 축구를 꺾어버린 일대 사건이었다.
[17]
본문 중 'LG야구가 현재 꼴지인데, 리그 36게임 남은거 다 이기면 플레이오프 갈 수 있다는 팬들이 있는데 내가 이런 걸 바란다면 나의 사치겠죠?'가 그 구절이다.
[18]
전반기 3승 2무 8패, 후반기 9승 1무 3패. 글 초반부의
LG 트윈스 디스처럼
DTD를 시원하게 비웃었다.
[19]
전주시는
서울특별시나
수원시 같은 K리그 빅 마켓 지역이 아님에도 축구 열기가 상당하다. 이들 도시를 물리치고 홈경기 평균 관중수 1위도 찍었을 정도. 그러나 메인 연고지인
전주시 도심에서 외곽지역인 월드컵경기장으로 오는 대중교통편이 극악 수준으로 열악한 터라 웬만해서는 만원 관중 채우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실제로 A매치 경기에서는 만원 사례를 이룬 적이 있지만 K리그 경기에서는 단 한 번도 만원 관중을 기록한 적이 없다. 전북 현대의 홈경기로는
2011년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2차전 당시 찾아온 4만1805명의 관중이 전북 현대의 전주성 단일 홈경기 최다 관중 동원 기록. 다만 워낙에 전주를 비롯한 전북지역의 축구 열기가 뜨거운 만큼 교통 문제만 해결된다면 만원 관중도 어렵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
봉동유두
[21]
혹은 무식한 X끼야
[22]
사실 최강희 감독은 심판이 불리한 판정을 내리는 경우에도 현장에서 잘 항의하지 않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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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저 당시 심판은 파울 선언은커녕 휘슬 자체를 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