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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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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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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 ||||
Tim nasional sepak bola Indonesi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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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157b3a><colbgcolor=#fff> 이름 |
신태용 申台龍|Shin Tae-yong |
|||
출생 | 1969년 5월 26일 ([age(1969-05-26)]세) | |||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원전동[1] (現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원전리)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75cm, 72kg, A형 | |||
직업 |
축구 선수 (
공격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
|||
소속 | <colcolor=#157b3a><colbgcolor=#fff> 선수 |
천안-성남 일화 천마 (1992~2004) 퀸즐랜드 로어 FC (2005) |
||
감독 |
퀸즐랜드 로어 FC (2005~2008 / 코치) 성남 일화 천마 (2009 / 감독 대행) 성남 일화 천마 (2010~2012) 대한민국 대표팀 (2014 / 감독 대행) 대한민국 대표팀 (2014~2016 / 코치)[2] 대한민국 U-23 대표팀 (2015~2016) 대한민국 U-20 대표팀 (2016~2017) 대한민국 대표팀 (2017~2018) 인도네시아 대표팀 (2020~ ) → 인도네시아 U-23 대표팀 (2020~ / 겸임) → 인도네시아 U-19 대표팀 (2020~2023) → 인도네시아 U-20 대표팀 (2022~2023) |
|||
해설 | JTBC (2019)[3] | |||
기타 | 성남 FC (2023~ / 자문 위원) | |||
국가대표 | 23경기 3골 ( 대한민국 / 1992~1997) | |||
소속사 | 에이디지컴퍼니 (연예 매니지먼트) | |||
링크 | | | |||
정보 더 보기{{{#!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colbgcolor=#fff><colcolor=#157b3a> 본관 | 평산 신씨 (平山 申氏)[4] | ||
종교 | 불교 | |||
학력 |
영해초등학교 (
졸업) 강구중학교 ( 졸업) 대구공업고등학교 ( 졸업) 영남대학교 사범대학 ( 체육교육학 88 / 학사) 용인대학교 대학원 ( 체육학[5] / 석사[6]) 경기대학교 대학원 ( 체육학 / 박사[7])[8] |
|||
주발 | 오른발[9] | |||
등번호 | 7번 | |||
가족 | 배우자 차영주, 아들 신재원, 신재혁 | |||
서명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2020년부터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2. 특징
선수 시절 K리그 최초로 60-60 클럽을 달성한 성남 일화 천마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고 등번호는 7번이었다.[10] 별명은 '그라운드의 여우'.현역 은퇴 이후로는 2009년 성남 일화 천마의 감독 대행으로 시작해 스페인 피스컵에서 스페인의 세비야와 0:0 무승부 승점 1점을 기록하는 이변을 일으켰고[11] 감독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 2010 클럽 월드컵 4위, 그리고 한요윤의 암흑기 2012 시즌에서 신태용의 성남은 2012 AFC 챔피언스 리그 32강 조별 리그를 통과했다. 2012 피스컵에서 잉글랜드의 선덜랜드 AFC를 격파하며 준우승을 기록하였고, K리그 홍보 대사, TBS 교통방송의 해설 위원 등을 맡았다.
관운(官運)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 초기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2015 아시안컵 준우승 달성하였고, 그 후 23세 이하 대표팀 이광종 감독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면서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되자, 신태용이 급하게 그 자리에 임명된다. 그리고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진출해서 독일과 3:3 승점 1점 획득, 금메달 디펜딩 챔피언 멕시코에게 승리 및 탈락시키며, 올림픽 8강 5위로 마쳤고, 그 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던 안익수가 U-20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을 겸한, 2016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2승 1패 대회 9위로[12] 탈락의 수모를 당해서 갑자기 경질된 뒤[13], 리우 올림픽에서의 지도력을 검증받은 신태용이 급하게 그 자리에 임명된다. 신태용이 이끈 U-20 대표팀은 2017년 FIFA U-20 월드컵에서 U-20 최다 우승국 아르헨티나[14]에게 승리 및 탈락시키며, 16강 10위로 마감, 그 다음에는 울리 슈틸리케가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중국과 카타르에게 패하며 갑자기 경질되면서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급하게 임명되며 힘겹게 월드컵 진출시켰고 그 후 콜롬비아를 2:1로 이기고 2017 일본 동아시안컵 도쿄에서 알제리쇼크 감독의 일본을 4:1로 격파하며[15] 2006 월드컵 우승 리피 감독의 중국까지 제치고 우승[16]하였다.
부임 1년이 안된 상황에서 A대표팀 감독으로 도전한 러시아 월드컵전까지 5승 3무 1패 13득점 7실점이라는 좋은 결과와 꽤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줬던 4-4-2 포메이션 대신 월드컵에서는 브라질과 공동 8강 스웨덴[17] 상대로 4-3-3이라는 도박수를 던졌다가 너무 수비적으로 경기하다가 아쉽게 PK 때문에 0:1로 패하는 등[18] 1~2차전에서 패배하면서 여론의 질타도 많이 받았고 2라운드 진출에는 사실상 실패한 상태였지만, 그런 와중에 마지막 3차전에서 주 포메이션인 4-4-2를 들고 나와 원정 월드컵에서 아시아 최초로 피파 랭킹 1위, 디펜딩 챔피언, 월드컵 우승 감독의 독일을 2:0 승리 및 탈락시키면서 2018 월드컵 19위를 기록했다.[19]
독일전의 통쾌한 승리로 신태용 감독 재계약론도 힘을 얻었지만, 축구협회에서는 김판곤을 감독선임위원장으로 앉히면서 슈틸리케 사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검증된 외국인 감독의 선임으로 대대적인 개혁을 원했다. 체계적인 국대 시스템의 안착을 위해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기로 했고 그 결과 파울루 벤투에게 바통을 넘기게 되었다.
3. 선수 경력
3.1. 클럽 경력
3.1.1. 성남 일화 천마 (1992~2004)
K리그에 남긴 발자취는 범상치 않다. 현역 시절 행적을 따라가 보면 윤상철[20]이나 김현석 못지 않은 기록의 사나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K리그의 레전드. 성남 일화 천마에서 현역으로 활약하던 시절 15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21][22]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일화 천마[23]에 입단하여 K리그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일화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는 K리그 3년 연속 우승 위업을 달성한다.[24] 당시 일화 감독은 이름난 맹장 박종환이었고, 발레리 사리체프, 고정운, 이상윤, 박남열 등 호화 멤버를 자랑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리더 신태용이 있었다. 특히, 박남열과의 황금 콤비는 지금도 골수 축구 팬들 사이에서 찬양을 받을 정도다.
1995년 신태용은 20득점 20도움을 기록해 20-20 클럽에 가입했고, 리그 MVP를 차지한다. 또한 연말에 열린 1995-96 시즌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마저 제패하며 일화 천마는 명실상부한 명문 구단으로 발돋움한다. 여담으로 이 해 포항 아톰즈와 벌인 챔피언 결정전은 지금도 K리그의 대표적인 명승부로 꼽는다.
1996년 성남 일화 천마는 천안시로 연고지를 이전한다. 또한, 상부와 불화를 겪은 박종환 감독이 해임되고 이장수 당시 수석 코치가 감독을 맡았다. 이후 일화는 꼴찌까지 떨어지는 암흑기를 겪는다. 하지만 신태용의 활약은 변함없었다. 시즌 초에 열린 아시안 슈퍼컵에서는 벨마레 히라츠카와의 2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대회 MVP를 수상했다. 또한, K리그에서는 득점왕까지 먹었는데, 미드필더로 뛰면서 먹은 득점왕인 데다가 K리그 MVP를 수상했다. 특히, K리그 MVP를 2회 이상 수상한 것은 2020년 기준 신태용과 이동국(2009년, 2011년, 2014년, 2015년) 단 두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기록이며, 신인상과 MVP, 득점왕을 모두 수상한 적이 있는 경력 역시 신태용과 이동국, 그리고 정조국 단 세 사람만이 보유한 기록이다. 또한, 라피도 컵에서 두 경기 연속 해트트릭 기록을 2번째로(첫 번째는 1986년 정해원) 기록한다. 역시, 그 이후 더이상 나오지 않은 기록이다.
이때까지 신태용은 프로에 데뷔한 1992년부터 1996년까지 K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으며 1997년 천안 일화는 이장수 감독 대신 벨기에 출신의 레네[25] 감독을 영입했으나, 별다른 효험을 보지 못한다.
1998년 개인 통산 30득점 30도움을 기록. 이때 독일 분데스리가 소속 한자 로스토크의 영입 제의를 받아 유럽에 진출할 듯했으나 무산이 되었다. #
1999년 차경복 감독이 천안 일화를 맡는다. 이때 첫 FA컵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0년 개인 40득점 40도움을 기록한다. 같은 해에 일화 천마는 연고지를 성남시로 옮겨 다시 한번 상위권으로 도약한다. 2001년 50득점 50도움을 달성한다. 그리고 성남 일화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또 K리그 3년 연속 우승의 전설을 남긴다. 이때도 성남은 우승 청부사 샤샤를 비롯해, 김대의, 김상식, 김영철, 김도훈, 윤정환, 이싸빅, 이성남 등 초호화 멤버를 자랑했다. K리그의 골수 팬들 사이에서는 2003년의 성남 일화 천마를 K리그 역사상 최강의 스쿼드로 거론하기도 한다. #
그렇게 리그 3년 연속 우승의 대기록을 무려 두 번이나 달성한 선수가 되었다.
2003년 K리그 최초로 60득점 60도움을 기록한다. 또한 소속 구단이 성남 일화로 재도약한 2000년부터 2003년까지 K리그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린다. 2019년 현재까지 60-60 클럽에 가입한 선수는 신태용, 에닝요, 이동국, 몰리나, 염기훈 단 다섯뿐이다. 1979년생 김은중이 50-50 기록을 달성했고, 두 번째 60-60클럽 가입은 2013년에 에닝요가 달성했다. 이어서 이동국이 2014년 7월 20일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 K리그 통산 세 번째 60-60 클럽에 가입했다.
2003 시즌에는 K리그 팬들의 기억에 길이 남을 두 명장면을 선사한 적도 있다. 하나는 모란( 성남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마계대전 경기. 수원의 서포터즈인 그랑블루[26]가 코너킥을 차러 가던 신태용을 향해 경기장에 물병을 던지자, 신태용은 그걸 집어들어서 원샷을 하고 따봉을 선사해 준 일화가 있다. 또 다른 경기인 대전 시티즌 원정 경기에서는 코너킥을 직접 골로 연결시키고, 후반에 부상으로 경기를 뛸 수 없게 된 김해운을 대신하여 골키퍼로 활약했다. 비록 두 골을 먹기는 했으나, 팀은 3-2로 승리했다.
2004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으나 성남과 재계약하지 못하며 K리그를 떠나게 되었다. 이때 성남 일화 천마에서 변변한 은퇴식조차 갖지 못해서 성남 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당시 신태용은 성남에서 더 뛰고 싶어서 플레잉 코치도 괜찮고 연봉도 구단측에 맡기겠다는 등 재계약에 의욕적이었는데 불발된 건 좀 의문이다. #
K리그 통산 401경기 99득점 68도움 2실점을 기록했다. 신태용이 남긴 도움 기록은 무려 2015년에 가서야 염기훈이 경신한다.
2017년 기준 K리그 역사상 100골 이상을 넣은 선수는 단 여덟 명뿐이다. 데얀(141골) 이동국(180골), 김은중(120골), 우성용(116골), 김도훈(114골), 김현석(110골), 샤샤(104골), 윤상철(101골)이 전부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포워드지만, 신태용은 미드필더였다. 사실 꿈의 100골 달성도 가능했지만, 100번째 골은 필드골로 넣겠다는 공약 때문에 달성에 실패한 것이다.[27]
또한, K리그1 시즌 베스트11 최다 수상자(총 9회 수상)이며 K리그 최초 400경기 출장 기록도 신태용이 세웠다. 이 기록은 한동안 최다 출장 기록이기도 했는데, 이 기록을 경신한 선수는 김병지 골키퍼로 2006년에 갱신했다. 이후 필드 플레이어로는 2007년에 김기동이 기록을 깼으며, 최고 출장 기록은 김병지[28]가 보유하고 있다. 필드 플레이어 가운데 최고 출장 기록, 최고령 골, 최고령 도움은 김기동이 가지고 있다.[29]
한편, 2023년 연맹이 기록 세분화와 기록 체계 개편을 하는 도중 K리그 챔피언 결정전의 누락된 기록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신태용의 골을 추가할 가능성이 스포츠조선 발 보도로 제기되고 있다. 만일 기록이 추가될 경우 신태용의 통산 기록은 405경기 102골-69도움이 될 전망.
그리고 2024년 4월 2일, 992시즌 리그컵 결승전 1골, 1995시즌 챔피언 결정전 2골 1도움이 추가되며 통산 네 번째 100호골을 달성한 선수로 뒤늦게 인정됐다.[30] #
3.1.2. 퀸즐랜드 로어 FC (2005)
그리고 2005년 호주로 떠나 퀸즐랜드 로어 FC에 입단해 1경기에 출장한 후, 발목 부상을 입고 그 해 9월에 완전히 은퇴를 선언하며 곧바로 퀸즐랜드 로어 FC의 코치가 되었다. 이때 알게 된 사샤 오그네노브스키를 나중에 성남 감독으로 부임한 뒤 직접 찾아가서 영입했다. 그리고 선발 수비수 겸 주장으로 중용했다.그가 코치를 맡을 당시 2006년 퀸즐랜드에 갓 부임한 감독이 프랭크 파리나였는데, 언어 문제와 지도 방향에 이견을 보여 그다지 사이는 좋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파리나 감독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그리고 파리나 감독이 2016리우 올림픽 16강 조별 리그에서 피지 축구 올림픽 대표팀을 맡으면서 U-23 사령탑으로 서로 재회하게 됐다. 결과는 한국이 8-0으로 대승했다.
3.2. 국가대표 경력
다만, 이렇게 화려한 클럽 경력에 비해 대표팀 경력은 아쉬움이 남는다.청소년 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을 거친[31] 엘리트 선수였지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K리그 골수 팬이 아니고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A매치에서 통산 23경기 3골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K리그에서 신태용의 위상을 생각해 볼 때 상당히 아쉬운 기록이다. 비슷한 예로는 김현석, 윤상철의 예로 비교하면 쉽다.
1992년에 아랍에미리트와의 평가전을 통해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지만 1994 FIFA 월드컵 미국[32]에는 뛰지 못했고, 국가대표로서 유일하게 참가했던 메이저 대회인 1996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33] 8강 이란전의 2:6 참패 탈락(7위)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는 국가대표팀 명단에 신태용의 이름이 포함되는 일이 없었다.[34]
차범근 감독 체제에서 1997년 상반기 평가전까지는 뽑혔으나[35] 월드컵 최종예선 때부터는 제외되었고, 이후 허정무 감독과 거스 히딩크 감독 때에도 소속팀과 함께 엄청난 활약을 보였는데도 대표팀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사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 국가대표 축구의 조직력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당시 신태용은 30대 중반의 노장 선수였음에도 여전히 K리그에서 맹활약하고 있었다.[36]
혹자들은 신태용이 레전드급 선수이면서도, 기본기나 퍼스트 터치와 같은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말들도 한다.[37] 또 당시 한국 축구의 플레이 메이커는 홍명보로 고정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K리그에서 뛰어난 미드필더라고 해도 홍명보와 궁합이 맞지 않다면 국가대표에서 미드필더로 뛸 수 없었던 것도 있었다. 신태용은 윤정환과 함께 그런 류의 대표격인 선수였고, 그러다 보니 국가대표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4. 지도자 경력
2009년~ 2012년까지 성남 일화 천마의 감독을 맡아 2010년 15년만에 성남의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을 이끌며 K리그를 대표하는 명장 반열에 올랐고 A대표팀 부임 1년이 안된 상황에서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암흑기에서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빛나는 기적을 일궈낸 감독이다.[38] 러시아 월드컵에서 신태용 감독이 이뤄낸 어둠 속의 빛 한 줄기는 4년 뒤 카타르에서 후임 감독이 이루어낸 한국 축구의 전성기로 이어졌다. 인도네시아 감독으로서도 인도네시아 2007 아시안컵 11위 이후 2024년 아시안컵 16위 안에 들게 하고 인도네시아 역사상 최초로 아시안컵 2라운드[39]에 위치시키고, 올림픽 지역예선까지 포함 된 2024 U23 아시안컵에서 우승후보 호주와 한국[40]을 이기며 4위를 하며 올림픽 진출에 가장 근접했었을 정도로 돌풍을 일으켰고 사상 최초로 월드컵 최종 예선에 진출하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또,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의 명제를 깨뜨린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41]자세한 내용은 신태용/지도자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
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
- 영남대학교
-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 1991
- 성남 일화 천마 (1992~2004)
- K리그: 1993, 1994, 1995, 2001, 2002, 2003
- FA컵: 1999
- 리그컵: 1992, 2002, 2004
- 슈퍼컵: 2002
-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95
- 아시안 슈퍼컵: 1996
-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96
- A3 챔피언스컵: 2004
5.1.2. 개인 수상
- K리그 MVP: 2001
- K리그 영플레이어상: 1992
- K리그 득점왕: 1996
- K리그 골든볼: 1994
- K리그 베스트 XI: 1992, 1993, 1994, 1995, 1996, 2000, 2001, 2002, 2003
- 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XI: 2013
- K리그 명예의 전당: 2023
5.1.3. 통산 성적
5.1.3.1. 국가대표
2017년 9월 5일 기준이다.연령 | 출전 | 득점 |
U-17 | 4 | 2 |
U-20 | 1 | 1 |
U-23 | 6 | 1 |
A대표 | 23 | 3 |
종합 기록 | 34 | 7 |
5.2. 감독
5.2.1. 대회 기록
- 성남 일화 천마 (2009~2012)
- K리그1 준우승: 2009
- FA컵: 2011 / 준우승: 2009
- AFC 챔피언스 리그: 2010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2015~2016)
-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 2016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14 / 2017~2018)
- EAFF E-1 챔피언십: 2017
-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2020~ )
- AFF 챔피언십 준우승: 2020
- 인도네시아 U-23 축구 국가대표팀 (2020~ )
- 동남아시안 게임 금메달: 2023; 동메달: 2021
- AFF U-23 챔피언십 준우승: 2023
- AFC U-23 아시안컵 4위: 2024
5.2.2. 개인 수상
6. 해설 위원 경력
2018년 12월 20일, JTBC의 해설 위원으로 선임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 아시안컵 동안만 단기간으로 맡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조금씩 어떻게 지내왔는지 알려지고 있다.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24강 조별 리그 필리핀전부터 해설을 맡았다. 아랍에미리트는 신태용 본인에게도 쓰라린 기억이 있는 땅인데, 상기한 국가대표 문단에서 언급한 것처럼 23년 전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있었던 한국 축구 최악의 흑역사 중 하나였던 그 경기에 신태용 본인이 출전하여 골까지 기록했고, 이 대회의 참패 이후 국가대표팀과 멀어지게 된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2018년 마지막 날에 홍보 영상이 공개되었다. #
공개 직후 얼마되지 않아 지워졌다가 재업로드되었는데 마지막 대사가 수정되었다. 'JTBC가 중계하면 맨날 진다며?'라는 언급이 실현될 줄은 몰랐다.
첫 해설의 평은 상당히 안 좋다. 감독 출신 답게 경기를 보는 안목도 있고 설명을 하는 능력도 괜찮은데, 문제는 발음이 장점을 다 잡아먹을 정도로 굉장히 안 좋다. 시청자들에게 경기 상황을 전하는 입장에서 발음의 중요성이 매우 높은데 정작 이것이 잘 안되고 있다.[42] 그런데 이상하게 아시안컵에서 벤투호의 경기력이 안 좋은 상황이라 감독으로서의 역량이 다시 재평가를 받고 있다.
다행히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중국전부터는 전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발음이 보다 정확해져 전의 부정확한 발음으로 잘 전달되지 않아 좋은 설명을 깎아먹던 점이 훨씬 나아졌다. 해설진간의 소통이 보다 원활해지기도 했다. 이때 임경진 캐스터가 들은 신태용 위원의 발음이 좋아졌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카타르전 이후 다시 재평가를 받는 중. 신태용이 상대의 전술에 따라 유연하게 전술을 바꿔 나갔고 점유율에 대한 집착이 없이 철퇴 축구로 월드컵에서 성과를 냈던 것에 비해[43] 벤투가 점유율과 같은 멤버들로의 4-2-3-1 전술에만 집착해서 8강(5위)에서 떨어진 것이 대비가 크다. 해설 중에도 후반전에는 차라리 황의조와 손흥민을 투톱으로[44] 써서 수비벽을 분산시키는 쪽으로 전술을 바꾸는 것이 더 좋겠다는 의견을 보였다. 실제로 이후 벤투 감독은 손흥민과 황의조를 투톱으로 기용하는[45] 4-4-2 형태를 사용하고 있다. 정확히는 4-1-3-2, 흔히 다이아몬드 4-4-2로 부르는 형태다.
7. 별명
- 소방수: 리우 올림픽 국가대표팀과 U-20 월드컵 대표팀, A대표팀의 지휘봉을 급작스럽게 잡으며 얻은 별명이다.
- 맥콜라리: 성남 일화 천마 감독 부임 후 생긴 별명으로, 팀 모기업의 제품이자 유니폼 스폰서로 박혀있던 맥콜에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를 조합해서 만든 별명이다. 즉 스콜라리+맥콜.
- 꾀돌이: 중원에서 공수를 능수능란하게 조율하며 붙여진 별명이다.
- 난 놈: 이 별명은 평소 저돌적인 신태용 감독에 붙은 별명 중 하나다. 신 감독은 인터뷰에서도 스스로 “난 난 놈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신태용 감독이 스스로 좋아하는 별명 중 하나이다.
- 그라운드 여우: 감각적이고 지능적인 플레이로 패스할 때와 드리블할 때를 확실히 구분하여 붙여진 별명이다.
- 아시아의 뢰브 쌍둥이, 가짜 뢰브: 신태용 감독이 패션 등을 비롯해 요아힘 뢰브 감독을 따라했다는 점을 들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에 독일 언론 등지에서 붙인 별명이다. 가짜 뢰브가 이겼다면서 악몽 같은 일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후 뢰브가 오히려 짭태용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 트릭좌: 2018 러시아 월드컵 스웨덴 전 직전에 인터뷰에서 나온 '트릭' 발언을 가지고 놀린 별명이었으나, 역대급 이변의 독일전을 선보인 후에는 신태용을 칭찬하는 의미로 바뀌었다. 그 밖에 신태용이 국가대표 시절의 행보가 나비 효과를 불렀을 때도 이 모두가 신태용 감독 덕분이었으며, 그가 노린 트릭이었다 등의 드립과 함께 불린다. 이 때문에 베니테스, 무리뉴, 벵거와 함께 축구계 4대 마법사라는 드립도 나왔다.
- 신의 한 수: 2019년 연말에 뭉찬에 출연했을 때 뭉찬 제작진이 트릭술사라는 별명을 순화해서 '신의 한 수'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
- 태용스트레인지: 독일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경우의 수라는 드립과 함께 시작됐으며, 심지어 " 손흥민의 군 면제 달성 조건으로 월드컵을 포기하고 아시안 게임에 올인하기 위해 빛을 발굴하고 다른 빛은 숨겨 두어야 했다"는 역대급 드립과 함께 이 별명이 추가되었다. 이후 2024 AFC U-23 아시안컵 카타르에서 신태용이 이끄는 인도네시아가 한국을 8강에서 제압해 파리 올림픽 본선행을 좌절시키자 "한국 축구를 되살릴 유일한 수"라며 이 드립이 다시 나왔다.
- 스타 감독: 인도네시아 팬들이 부르는 별명.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친근감 있는 팬 서비스, 자신감 있게 말하는 인터뷰 스킬 등이 인도네시아 팬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
8. 어록
솔직히
야구는
스포츠가 아니라
레저다. 배 나온 선수가 어떻게 운동선수냐. 경기 도중
자장면 먹어가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야구다. 공수 교대 시간 막간에 화장실서
담배를 피우는 선수까지 있는 것으로 안다. 친한 친구인
삼성 라이온즈의
양준혁에게 이런 얘기했더니 반박을 못하더라.
1995년 8월 9일, 경향신문에서의 인터뷰에서 축구와 야구를 비교해 달라는 질문의 답변.[46]
1995년 8월 9일, 경향신문에서의 인터뷰에서 축구와 야구를 비교해 달라는 질문의 답변.[46]
나랑
김도훈 코치가 (현역 시절에) 합작해서 넣은 골이 200개가 넘는다. 그런데, 너는 뭔데 빈둥거리냐?
- 성남 일화 감독 시절에 선수들이 부진한 모습을 보였을 때, 질책하던 잔소리였다고 한다. 신태용의 말대로, 김도훈과 현역 시절에 같이 활약하면서 기록한 득점이 200개가 넘었다.
- 성남 일화 감독 시절에 선수들이 부진한 모습을 보였을 때, 질책하던 잔소리였다고 한다. 신태용의 말대로, 김도훈과 현역 시절에 같이 활약하면서 기록한 득점이 200개가 넘었다.
내 차보다 훨씬 좋길래 차를 발로 한 대 차고 라커룸에 들어가 "
정우 임마, 차 키 좀 줘 봐. 나 한 번 몰아보자. 차 좋으면 나도 사게."
주차장에 못 보던 신형 포르쉐가 보였는데, 알고 보니 김정우가 상무에서 제대하고 새로 뽑은 차였을 때의 반응.
주차장에 못 보던 신형 포르쉐가 보였는데, 알고 보니 김정우가 상무에서 제대하고 새로 뽑은 차였을 때의 반응.
라돈치치요? 싸가지 없는 놈이죠.
방송에서 외국인 선수에 대한 평가를 요청하자 그에 대한 감독의 답변.
방송에서 외국인 선수에 대한 평가를 요청하자 그에 대한 감독의 답변.
오늘이
화이트 데이다. 오늘 너희들이 잘하면 경기 끝나고 애인과 웃으면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할 수 있겠지만, 오늘 너희가 지면 인상 쓰고 얼굴 찌푸리면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선택은 너희 몫이다.
2010년 3월 14일, 성남 일화 감독 시절 인천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던진 말. 이날 성남은 인천을 6:0으로 제압했다.
2010년 3월 14일, 성남 일화 감독 시절 인천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던진 말. 이날 성남은 인천을 6:0으로 제압했다.
나는 난 놈이다.
2010년 ACL 우승 직후 나온 발언이다.[49]
2010년 ACL 우승 직후 나온 발언이다.[49]
한국은 월드컵 기간만 되면 5천만 명이 감독이 된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던 FC 코리아들을 저격한 발언이다. 이 문장은 FC 코리아의 정곡을 찌르는 팩트인 이유는 애초부터 자국 리그를 무시하면서 국가대표는 축구 강국이 되길 원하는 것이 어불성실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축구 강국으로 불리는 국가들은 자국 리그가 약한 경우가 하나도 없다.[50]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던 FC 코리아들을 저격한 발언이다. 이 문장은 FC 코리아의 정곡을 찌르는 팩트인 이유는 애초부터 자국 리그를 무시하면서 국가대표는 축구 강국이 되길 원하는 것이 어불성실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축구 강국으로 불리는 국가들은 자국 리그가 약한 경우가 하나도 없다.[50]
신태용은 워낙 솔직하고 거침없는 언행 탓에, 인터뷰 기술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도 있다. 관련기사
9. 여담
- 2003년 7월 27일 대전 시티즌과의 원정 경기에서 교체 카드 3장을 모두 소진한 이후 골키퍼 김해운이 부상으로 아웃되자 잔여 경기 시간 동안 골키퍼를 본 경험이 있고 이 경기에서 2실점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신태용의 K리그 통산 기록은 401경기 99득점 68도움 2실점이 된다.
-
2012년 4월
AFC 챔피언스 리그 경기를 치르는 도중, 보온병에 담긴 차를 머그컵에 따라 마시는 장면이 화면에 잡히면서
친환경 감독으로 화제를 모았다. 위 사진은 이후 팬이 제작해 보내준
머그컵[51]을 쓰는 모습이다.
- 박경훈 감독과 쌍벽을 이루는 K리그의 패셔니스타로 칭송받았다. 비록 감독 초기에는 무척 젊은 40대 초반이라 과감한 패션을 보여 주지는 못하지만, 군살 없는 준수한 몸매에 적절하게 옷발이 받쳐 준다. 여담으로, 2012년 7월 피스컵에 참가했던 함부르크의 지역 언론은 신태용 감독의 패션에 관심을 보였다.
그 밖에 2012 시즌 새 유니폼 발표식 때 신태용이 직접 유니폼을 입고 공개한 것도 유명하다. 간혹 감독의 권위를 무너뜨린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감독 본인이 나서서 흥행을 위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노력은 좋은 평가를 받는다.
* 선수 시절에도 팬 서비스가 훌륭했다. 오른발로 코너킥을 차려다가도 "태용이형 왼발!"을 외치던 팬을 위해 왼발로 코너킥을 찼던 사례가 유명하다. 그 외에는 수원 삼성 원정 경기에서 수원 팬이 물병을 던지자 그걸 주워서 마시기도 했다.[52] 국가대표 감독이 되어서도 선수들에게 팬 서비스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2017년 11월 세르비아와의 평가전 경기 시작 한 시간 전 쯤 골대 근처의 잔디 상황을 홀로 확인하던 신태용 감독에게 한 축구 팬이 파이팅을 외쳐 주자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 양준혁과 같은 대학교 출신이라 그런지 친분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친분과는 별개로 야구를 부정적으로 언급하다가 야구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는데, 축구 팬들이 흔히 야구를 깔 때 쓰는 말인 스포츠가 아닌 레저라는 말의 출처가 바로 신태용이다. 나중에 '달수네' 유튜브에서 이 레저 발언을 얘기했는데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양준혁이 하도 쳐먹어 살이 너무 많이 찌니까 그거 놀리려고 레저 드립친 거고 양준혁도 크게 웃고 넘어갔다."라면서 나와 양준혁은 이러고 놀았다는 썰을 푼 건데 그 기자가 이걸 멋대로 과장했다고. 이 레저 드립은 야구를 증오하다시피 하는 자칭 축빠들이 지금까지도 열심히 사용 중이며, 반대로 야빠에게는 이 발언이 망언이자 금지어로 취급되어 신태용 감독을 증오하고 있다.
- 모교인 대구공고 선배 전두환이 가장 아끼던 선수였다. 결혼 당시 축하한다고 연희동 자택에 초대해 칼국수를 대접했다고 한다. 전두환은 신태용의 스승인 박종환 감독과도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이기도 하다.
- 장남 신재원이 U-16 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했다. 이승우를 비롯한 당시 U-16 대표팀이 축구 팬들에게 상당한 기대를 받고 있는데, 신재원이 뛰어난 활약만 보여준다면 부자가 사이좋게 러시아행 비행기를 타는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다.[53] 하지만 신태용이 코치 시절에도, 감독 시절에도 발탁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아쉽게 팬들이 기대한 풍경이 펼쳐지지는 못했다. U-20 월드컵에는 발탁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당시 감독으로 선임된 신태용이 선임 직후 신재원은 검토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했다. # 신재원은 2018년 FC 서울과 5년 계약을 맺었으나(2019년 데뷔) 2020년에 안산 그리너스 FC에 임대되었다가 2022년 수원 FC를 거쳐 2023년 아버지가 뛰었던 성남 FC에 자유 계약으로 입단, 성남도 부자(父子) 클럽이 되었다. 공격수였다 수비수로 바뀐 영향인지 아직 뚜렷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걸로 봐서는, 아버지가 냉철하게 판단한 것 같다.[54]
- 둘째 신재혁도 축구 선수로, 형이 2020년 임대 신분으로 뛰었던 안산에 1년 뒤 데뷔하였고 2년 뒤 형이 2부로 내려온 성남에 입단히면서 신태용네 형제 대결이, 그것도 시즌 첫 경기부터 성사될 가능성이 생겼다.
- 국가대표에서 그리 많이 뛰지는 않았지만 친화력이 강한 성격으로 친한 선후배와 동료들이 꽤 있는 편이다. 특히 선배들에겐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한편, 위에 있는 박항서 감독과의 모습처럼 어울리는 모습이 언론에 종종 찍힌다. 단, 서로 동남아 축구에서 국가 자존심을 건 지략 대결에 입씨름이 더해지며 박항서와는 소원해진 듯하다. #
- 감독직을 맡고 있을 때는 선수들과 굉장히 격식 없이 친구 대하듯 편하게 해 준다고 한다. 덕분에 선수들이 신태용과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한다. 유명한 태용타 영상 역시 오늘 왜 그것밖에 못했냐며 장난스럽게 질책하는 장면이라고 이야기했다.
- 축구 선수로서는 크지 않은 체격에 깔끔해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상당히 터프가이 기질이 있다. K리그의 레전드 외국인 사샤 드라쿨리치가 다소 거만한 기질이 있어서 일화 시절에 한번 신태용 앞에서 가오를 잡다가 신태용이 사샤에게 풀스윙 싸대기를 때린 적이 있다. 일반인 평균 키 정도의 신태용이 190cm에 타고난 완력을 가진 백형을 상대로 주저 없이 한방 갈길 정도로 상당한 터프함의 소유자다. 그 후 샤샤는 신태용 앞에서는 예의 바른 청년이 되었다고 한다.
* 관중석에서 빨대로 음료를 마시는 짤방이 있는데, 넋 나간 채 관망하는 듯한 표정이라 해충갤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보통 '쪼옵쪼옵'이라는 제목으로 업로드된다. 나중에 슛포러브에서 이 짤방에 대해 질문을 했는데 식사할 시간이 없어서 햄버거 세트를 먹으면서 선수들을 보던 중에 찍힌 사진이라고 한다. 컵에 그려진 그림을 보니 KFC로 추정된다.
* 인터뷰 도중 눈을 꽉 감고 찡그린 사진도 인기를 끌었다. 보통 "하나.... 둘... 셋! 꿈이다!"라는 글과 함께 대표팀이 실점하거나 처참한 경기력을 보이는 등의 상황에서 신태용이 현실 부정을 하는 것처럼 쓰인다.
- 2019 AFC 아시안컵 조 추첨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기 때문에 우승컵을 가져오겠다는 말을 남겼으나, 벤투호 체제로 바뀌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 대신 아시안컵 해설 위원으로 활동했다. #
- 2019년 10월 13일 박문성의 달수네 라이브에 출연해 여러 가지 일화를 풀었다. 방종 직전 능숙한 별풍선 유도를 시전하며 빠른 메타 적응력을 보여 주었다.
- 수도권 생활이 오래되었지만 억양뿐만 아니라 어휘도 가벼운 사투리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 일본의 영화 감독 츠카모토 신야와 닮은꼴이다.
- 상대했던 감독 중 가장 분석하기 까다로웠던 감독은 러시아 월드컵 당시 멕시코 감독이라고 한다.
- 그 누구보다 FC 코리아의 음해에 크게 시달린 인물이다. 심지어 영남대 출신임에도 연세대 파벌이라는 조작까지 당했을 정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신태용은 FC 코리아 몰락의 서막을 연 인물인데, 원체 요란했던 논란 탓에 역으로 많은 사람이 학벌 논란이 거짓임을 알게 된 데다가 탈락 위기였던 팀을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고 빠르게 수습해 베스트 11과 플랜 A를 구축하는데 성공하며 능력을 입증했고, 개막 직전까지 계속된 실험 역시 출국 직전 베스트 11 중 3분의 1 가량이 부상으로 갈려나가며 울며 겨자먹기로 실행한 것이어서[55] 월드컵 종료 이후 동정의 여론이 생겼다. 게다가 전술 자체는 괜찮았지만 이를 수행할 선수들의 역량이 부족했다거나[56], 독일전에서는 이를 깨닫고 우리가 잘 하는 단순한 전술을 내세워 기어이 승리를 따냈다는 점 등이 주목받아 부임 타이밍이 영 안좋아서 그렇지 출중한 능력을 지녔다고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FC 코리아를 위시한 이들은 끝까지 '뽀록', '축협의 개' 등의 인신공격을 해댔고, 축협도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기 위한 협상 카드로만 써먹었다.[57] 이때 생긴 FC 코리아에 대한 반발 여론은 아시안 게임, 벤투호를 거치며 점점 커져갔고, 2019년 동아시안컵 우승 이후 FC 코리아는 거의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FC 코리아에 반감을 갖고 있는 축구 팬들은 '언젠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분'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 결혼을 일찍 했다.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당시 신태용은 대학교 축구부 훈련으로 인해 까무잡잡한 피부를 갖고 있었고 유행하던 울프컷에 빨간 나팔바지와 노란 남방을 코디했지만 연애는 잘 풀려서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배우자인 차영주는 KBS 아침방송 리포터와 나레이터 모델 경력이 있으나 아내가 새벽 일정을 다니는 것이 안쓰러웠던 신태용이 내조에 전념해 줄 것을 부탁했고 아이가 생기면서 전업 주부가 되었다고 한다.
- 골프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술과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친구들 동료들과 밤늦게까지 놀고 마지막 차시는 신혼집으로 데려오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골프를 배우고 나서는 일부러 경기 다음날 새벽 라운딩을 잡아서 밤에 혼자 약간 술을 마신 뒤 일찍 자고 아침 5시에 카트 없이 골프 18홀을 돌고 오후에 팀 회복 훈련에 참석했다고 한다. 신태용은 자기 관리가 부족해 선수 생활이 짧을 것 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이런 골프 습관 덕에 결국 36세까지 현역으로 머물렀다.
- 요아힘 뢰프와 닮은 점이 많아서[58] 해외 팬들(특히 독일 축구 팬들)에게 짝퉁 뢰브 취급을 받았는데 그걸 들은 뢰브 본인조차도 신태용 감독에게 짝퉁이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월드컵에서 만났을 때는 짝퉁 소리를 듣던 신태용이 원본 뢰브에게 조 최하위로 탈락(22등)이라는 대굴욕을 선사했다. 독일에서는 아예 "짝퉁 요기(뢰브의 별명)가 이겼다."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 인도네시아 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 현지에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고 있는데,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 100만 명 돌파에 이어 최근에는 20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59] 이후 농심에서 인도네시아 현지 시장을 타겟으로 라면 CF를 광고 모델로 촬영하였는데 매우 코믹한 모습을 보여 줘서 네티즌들로부터 밈이 되고 있는 중이다.[60] 그리고, 2024년 초 신태용 감독이 출연하는 FC 모바일 해트트릭 클래스의 출시 광고도 이 농심 광고를 패러디했다. 아들 신재원도 이 CF를 보고 재미있어하는 반응을 했다.
- 정치 성향은 보수 쪽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새누리당 신영수 후보를 지지했으며[61], 22대 총선에서도 분당구 을에 출마한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를 지지했다.
- 감독으로서 마지막 꿈은 조국 대한민국으로 돌아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되어 마지막 도전을 해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 많은 상처를 받고 떠난 자리지만, 그 자리에서 본인이 직접 명예회복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여전히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처럼 땜빵용 소방수가 아닌 충분한 시간동안 준비해서 월드컵에 나가고 싶다고.
- 탤런트 오정세와 닮은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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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승규 · 2
이용 · 3
정승현 · 4
오반석 · 5
윤영선 · 6
박주호 · 7
손흥민 · 8
주세종 · 9
김신욱 10 이승우 · 11 황희찬 · 12 김민우 · 13 구자철 · 14 홍철 · 15 정우영 3C · 16
기성용 C 17 이재성 · 18 문선민 · 19 김영권 · 20 장현수 VC · 21
김진현 · 22
고요한 · 23
조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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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 참가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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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상북도에서는 대부분의 군이 1988년 이전까지
읍,
면의 하위 행정 구역으로
리가 아닌
동을 썼다.
[2]
A대표팀 코치와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겸임했다.
2016년 11월에 A대표팀 코치는 사임하고
2017년 FIFA U-20 월드컵 준비에 전념했다.
[3]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해설 위원을 맡았다.
[4]
36세손 ◯섭(燮), ◯용(容), ◯항(恒), ◯환(煥) 항렬이나
항렬자를 쓰지 않아 '용'의 한자가 다르다. 고향인 영덕군에 평산 신씨 인물이 많이 살기로 유명하기도 하고 아들이 모두 '재' 자를 쓰니 평산 신씨 신O용(容)-신재(載)O 돌림에 맞아들어가긴 하나, 한자가 전부 다르다. 중국 쪽 청소년 대회 명단에 따르면 신재원은 在, 신재혁은 宰를 사용한다.
[5]
스포츠마케팅 전공
[6]
석사 학위 논문:
프로축구 팀의 운영전략에 따른 관중만족도의 관계(1992~2001. 12)
[7]
박사 학위 논문:
프로축구선수들이 지각한 코칭 스타일, 코치-선수관계, 팀 효능감, 운동탈진의 관계모형 검증(2005~2017. 2)
[8]
무려 13년 만에 논문이 통과되어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평소에 배움에 갈증이 있었다며 구단의 고민을 알고 선수들을 위한 효과적인 코칭 스타일 연구를 위해 바쁜 일정 속에서 박사 논문을 마무리지었다고 한다.
링크
[9]
오른발을 주로 쓰지만 상황에 따라 코너킥을 왼발로 찰 때가 있다.
[10]
성남의 등번호 7번은 에이스를 상징하는 등번호로 계보가 내려져 오고 있다.
# 그래서, 신태용이 성남 일화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시절에는 등번호 7번을 달았던 현역 선수가 없었다.
[11]
2009년 7월 스페인에서 개최한
2009 피스컵 안달루시아에 출전해서 유벤투스에게 0:3패하여 아쉽게 탈락했으나, 스페인의 세비야FC와 0:0 무승부 승점 1점을 기록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12]
1라운드 16강 조별 리그
[13]
본선은 개최국 자격으로 참가. 이후 신태용 이전까지
정정용이 임시로 팀을 이끌고 정비했다.
[14]
당시 아르헨티나에는 훗날 2019 코파 3위와 2021 코파 우승, 유럽리그로 이적하는
마르코스 세네시,
후안 포이스,
곤살로 몬티엘,
산티아고 콜롬바토,
에세키엘 팔라시오스,
산티아고 아스카시바르,
라우타로 마르티네스(1차전 잉글랜드전 퇴장으로 한국전 불참)가 뛰었으며, 이 중
곤살로 몬티엘,
라우타로 마르티네스,
후안 포이스,
에세키엘 팔라시오스는 2022카타르 월드컵 우승 멤버이다.
(본선인데 예선으로 잘못 적혀 있다.)
[15]
당시 일본은 2018 월드컵 아시아 예선 2위(B조 1위)로 통과했다.(1위는 이란(승점 22점, A조 1위), 2위 일본은 승점 20점)
[16]
리피의 중국과 2:2 무승부를 기록
[17]
당시 스웨덴은 멕시코를 3:0으로 격파하고 브라질과 공동 8강을 기록한 팀이었으며, 이 팀을 상대로 무작정 공격적으로 했다가는 제 2의
알제리 쇼크,
네덜란드전 0:5 참패를 또다시 기록했을 수도 있다.
[18]
이는 기존 전술의 핵심 자원이었던
김민재,
권창훈,
이근호가 부상으로 낙마해 전술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2차전에서 4-4-2로 회귀했고 1 대 2로 석패하는 등 확 달라진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19]
2014 월드컵 27위보다 8계단 상승한 2018 월드컵 19위를 기록했다.(승점 3점 1승 2패)
[20]
역시 한때 K리그 통산 최다 득점 1위를 기록할 정도로 K리그에서의 활약은 레전드급이나, 이에 비해 대표팀과는 그다지 인연은 없었다.
[21]
최다는 17개의 이운재
[22]
원래는 대우 로열즈에 지명되어 대우에 가야 했으나 대우의 이차만 감독이 일화에 지명된 김정혁을 원했고 신태용과 이태홍을 원하지.않아 1대2 트레이드로 일화로 갔다.
[23]
이때는 서울 연고 구단으로
동대문운동장을 사용했다.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때문에
천안시로 옮긴 때는 1996년이다.
[24]
이후
전북 현대 모터스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K리그1 5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25]
천안 일화에서 해임된 뒤, J리그 팀
세레소 오사카의 감독을 맡았다. 당시
황선홍이
세레소 오사카에서 뛰며
J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26]
현재의
프렌테 트리콜로
[27]
슛포러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00골은
조기축구회에서 넣었다고 한다.
[28]
2016년에 은퇴할 때까지
김병지는 선수 생활 내내 체중을 일정하게 유지할 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한 선수다.
[29]
김기동은 2011 시즌이 끝나고 은퇴했는데 통산 501경기에 출전했다.
[30]
앞서
윤상철,
김현석,
샤샤만이 신태용보다 앞서 100골을 득점한 선수로 기록됐다.
[31]
연령별 대표 시절에 1987년
FIFA U-17 월드컵과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했다.
[32]
마지막 24개국 본선 진출 대회
[33]
12개국 본선 진출 대회
[34]
참고로 이 경기에서 신태용은 팀의 두 번째 골을 넣었다.
[35]
1997년 5월 21일 일본 도쿄에서 있었던 한일전이 그의 마지막 A매치 출전이다.
[36]
심지어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 때인 2003년에는
김도훈,
김대의,
이기형,
박충균,
김현수,
이상헌 등 대표팀과 인연이 없거나 오랫동안 뽑히지 않았던 중견급, 노장 선수들을 국대에 뽑았는데 이들 대다수가 성남 일화 소속이었고, 당시에도 신태용은 성남 일화와 함께 잘 나갔는데 이때도 뽑히지 않았다.
[37]
스페인에서 비슷한 이례로
구티가 라리가에서 탑급 미드필더였음에도 '구티의 그 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복이 심해 국가대표로서는 이렇다 할 경력이 없다. 사실 이는 2000년대 이전에 유스 시절을 보낸 대부분의 선수들의 문제점이기도 했다. 그나마 괜찮은 기본기를 갖춘 선수를 꼽으라면 1980년대의 레전드인
최순호와 1990년대의
서정원 정도. 대부분 킥과 패스를 제외하면 기본기가 2000년대 이후의 선수들에 비해 떨어지는데, 이는 당시 유스 시스템의 한계 때문이기도 했다. 기본기가 뛰어나다는 말은 사실 달리 말하면 기술의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뜻인데, 한참 기술적으로 완성되어야 할 유스 시기에 대개 팀 훈련, 전술 훈련을 위해 개개인의 능력을 조금씩 희생하도록 배웠던 탓도 있다. 그리고 팀에서 가장 재능이 있는 1인을 꼭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만 박아 두었던 게 당시 유스 시스템이었다. 이렇게 되면 각 포지션에 요구되는 필수적인 기량을 배양시킬 틈도 없었던 게 당연하다.
[38]
월드컵 19위
[39]
인도네시아는 그 전에 1996~2007 아시안컵 연속 진출하여 아시안컵 연속 11위를 기록했다.
1996~2000아시안컵 11위(12강 조별리그)
2004~2007아시안컵 11위(16강 조별리그)
그리고 2023 아시안컵은 16위로 사상 첫 2라운드(16강) 진출을 기록했다. [40] 아시안게임 축구 3회 연속 우승국 [41] 신태용 감독 외에 이 명제를 깬 한국 감독은 김기동이 있다. [42] 방송 출연이 그렇게까지 잦은 편은 아니었던지라 사투리에서 묻어나오는 억양을 크게 교정하지 못한 채 해설에 임했다. 또 다른 인터뷰 등을 보면 말을 그렇게 심하게 더듬는 건 아닌데 말을 급하게 하려다보니 발음이 꼬이고 뭉개진다. [43] 주전선수 몇몇들이 부상까지 입어 출전을 못한 상황에서 독일을 이겼다. [44] 신태용 본인이 투톱 체제인 4-4-2 포메이션을 잘 활용했다. 그리고 이겼던 경기는 바로 독일전 [45] 벤투호 초창기에는 손흥민이 톱을 맡기보다는 왼쪽 윙에 가까워진 모습이었고 아시안컵에서는 체력 문제로 플레이메이커 롤을 맡겼는데, 아시안컵 이후로는 투톱으로 바꾸었다. [46] 신태용의 어록 중에서 트릭 발언을 제외하면 가장 유명하다. 인터뷰 전문을 보면 알 수 있고, 밑에서도 후술하겠지만 사실 이 말은 절친인 양준혁을 놀리기 위해 일부러 조크성으로 발언한 것인데, 긴 시간이 흐른 뒤 "레저"라는 단어 자체가 야구를 비하하는 대표적인 멸칭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지라 신태용을 좋지 않게 보는 야구 팬도 상당하다. [47] 그동안 공신력 있는 기사나 인터뷰로 확인된 것이 아니라 팬의 전언으로만 인터넷에 떠돌고 있어서 실체가 불분명했지만, 실제로 신태용 본인이 저 발언을 했다고 증언하였다. # 사실 신태용은 J리그로 진출을 시도했으며, 일본에서 좋은 제의가 왔었는데 성남 일화와 K리그를 위해서 남은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훗날 달수네 라이브에서 한번 더 언급됐는데 J2리그에서도 오퍼가 왔었다고 한다. 1997년 벨마레 히라츠카에게 오퍼를 받았고 J리그 진출을 타진했으나, 연봉 문제로 결렬되었다. 신태용의 현역 시절 성남 일화는 K리그에서 가장 자금력이 막강한 구단이라서 대우가 좋았기 때문에 굳이 연봉을 낮추면서까지 J리그 진출을 해야 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태용은 "내가 K리그 MVP인데, 겨우 이 정도 조건으로는 J리그로 이적하지 않는다." 같은 의미로 이야기한 것인데 본인이 K리그 MVP 출신인 만큼 J리그와 비교가 되는 자존심의 문제도 있거니와, 높은 연봉으로 협상을 하는데 성공한다면 앞으로 후배들도 좋은 조건을 받으면서 J리그로 이적을 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길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 속뜻은 다르지만, 기성용이 남긴 "대한민국의 주장은 중국에 가지 않는다."라는 유사한 어록이 있어서 비교되기도 한다. 신태용의 경우는 K리그 MVP 타이틀에 걸맞게 헐값에 이적하지 않고 본인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는 곳을 선택하겠다는 뜻이었다면, 기성용은 대한민국의 주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돈을 좇기보다는 수준 높은 리그에서 활약하며 좋은 경기력과 대표팀 주장으로서의 품격을 유지하겠다는 뜻이었다. [48] 슛포러브에서 이 발언에 대해 설명했는데, 스웨덴전에 김신욱을 내보내는 것을 스웨덴 감독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했던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트릭은 더 중요한 경기에서 터졌다. [49] 슛포러브에서 해명하기를 예상을 뒤엎고 ACL 우승을 이루자 '선수들이 열심히 뛰어 줬다. 난 이렇게 난 놈 같이 된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 기자들이 앞뒤 다 자르고 기사에 '신태용, 난 난 놈이다'라고 작성했다고 밝혔다. [50] 모로코는 이집트와 더불어 아프리카 대륙의 50개 이상 되는 국가에서도 자국 리그가 아프리카 최상위권으로 강한 나라이며, 크로아티아는 자국 리그 출신의 월드 클래스급 선수가 셀 수 없이 많다. 당장에 크로아티아 최고의 레전드인 루카 모드리치부터가 자국 리그의 명문 구단 디나모 자그레브 출신이었다. [51] 성남 로고와 신태용 감독의 얼굴이 들어가 있다. [52] 훗날 슛 포 러브에 출연해 밝히기를, 선수 생활을 성남에서만 한다는 보장도 없고, 타 구단 팬에게 반감을 사는 일을 했다가 나중에 그곳으로 이적을 하면 곤란해 질 수 있으니 일부러 감정적인 대응을 안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성남의 원클럽맨이 되기도 했고, 이러한 마인드 덕에 K리그 팬들의 호감을 사서 FC 코리아의 음해로부터 보호해 주기도 했다. [53] 이렇게 된다면 김찬기-김석원 부자, 차범근- 차두리 부자에 이어 세 번째로 대를 이어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54] 다른 부자들도 본인이 지도자하면서 아들을 선발한 적이 없다. 단 예외로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농구대표팀에서 허재가 본인의 아들들인 허웅과 허훈을 뽑았다가 동메달에 그쳤다. [55] 이 정도면 웬만한 팀은 그대로 시즌 말아먹는다. 심지어 클럽팀들도 이거보다 덜한 핵심 한두 명의 장기 부상만으로 트레블할 기세로 달리다가 고꾸라져 무관을 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당시 한국은 손흥민과의 조합에 핵심이었던 주전 스트라이커 이근호, 대회 전 감독과 팬들에게 골을 기록할 것이라며 가장 촉망받던 주전 미드필더 권창훈, 주전 레프트백 김진수, 역시나 촉망받던 준주전급 센터백 김민재, 예리한 왼발 킥을 바탕으로 조커 카드로 기용될 베테랑 미드필더 염기훈 등이 모조리 부상으로 나가리를 당해 버린다. 심지어 본선에 가서도 기껏 정해 놓은 레프트백 박주호와 핵심 플레이메이커 기성용까지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독일전을 앞두고 전술적으로 쓸 카드가 바닥나 버린 암울한 상황이었다. [56] 벤투의 동아시안컵 우승 이후 이 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57] 이른바 '억까'를 하도 심하게 당하고 인도네시아 감독으로 옮겼다 보니 항간에는 신태용이 진짜 인정받아야 할 부분은 아직까지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란 평이 있을 정도다. [58] 외모가 묘하게 닮았다. [59] 100만명을 넘겼던 당시 손흥민을 제외하고 신태용보다 팔로워가 많은 국내 축구인은 없었다고 한다. 이후 조규성이 2022 카타르 월드컵을 통한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신태용 감독을 추월했다. 비슷한 사례로 인도네시아 간판 스타인 아스나위가 안산 그리너스로 이적한 이후 안산 구단의 SNS 팔로워 수가 늘어나기도 했다. [60] 특히 CM송 가사 중 농심 불고기가 병신 불고기로 들리는 몬더그린 때문에 더욱 애용되는 중이다. [61] 신영수는 6회 지방선거에서는 이재명에 패해 낙선했고, 20대 총선은 경선에서 탈락했다.
1996~2000아시안컵 11위(12강 조별리그)
2004~2007아시안컵 11위(16강 조별리그)
그리고 2023 아시안컵은 16위로 사상 첫 2라운드(16강) 진출을 기록했다. [40] 아시안게임 축구 3회 연속 우승국 [41] 신태용 감독 외에 이 명제를 깬 한국 감독은 김기동이 있다. [42] 방송 출연이 그렇게까지 잦은 편은 아니었던지라 사투리에서 묻어나오는 억양을 크게 교정하지 못한 채 해설에 임했다. 또 다른 인터뷰 등을 보면 말을 그렇게 심하게 더듬는 건 아닌데 말을 급하게 하려다보니 발음이 꼬이고 뭉개진다. [43] 주전선수 몇몇들이 부상까지 입어 출전을 못한 상황에서 독일을 이겼다. [44] 신태용 본인이 투톱 체제인 4-4-2 포메이션을 잘 활용했다. 그리고 이겼던 경기는 바로 독일전 [45] 벤투호 초창기에는 손흥민이 톱을 맡기보다는 왼쪽 윙에 가까워진 모습이었고 아시안컵에서는 체력 문제로 플레이메이커 롤을 맡겼는데, 아시안컵 이후로는 투톱으로 바꾸었다. [46] 신태용의 어록 중에서 트릭 발언을 제외하면 가장 유명하다. 인터뷰 전문을 보면 알 수 있고, 밑에서도 후술하겠지만 사실 이 말은 절친인 양준혁을 놀리기 위해 일부러 조크성으로 발언한 것인데, 긴 시간이 흐른 뒤 "레저"라는 단어 자체가 야구를 비하하는 대표적인 멸칭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지라 신태용을 좋지 않게 보는 야구 팬도 상당하다. [47] 그동안 공신력 있는 기사나 인터뷰로 확인된 것이 아니라 팬의 전언으로만 인터넷에 떠돌고 있어서 실체가 불분명했지만, 실제로 신태용 본인이 저 발언을 했다고 증언하였다. # 사실 신태용은 J리그로 진출을 시도했으며, 일본에서 좋은 제의가 왔었는데 성남 일화와 K리그를 위해서 남은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훗날 달수네 라이브에서 한번 더 언급됐는데 J2리그에서도 오퍼가 왔었다고 한다. 1997년 벨마레 히라츠카에게 오퍼를 받았고 J리그 진출을 타진했으나, 연봉 문제로 결렬되었다. 신태용의 현역 시절 성남 일화는 K리그에서 가장 자금력이 막강한 구단이라서 대우가 좋았기 때문에 굳이 연봉을 낮추면서까지 J리그 진출을 해야 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태용은 "내가 K리그 MVP인데, 겨우 이 정도 조건으로는 J리그로 이적하지 않는다." 같은 의미로 이야기한 것인데 본인이 K리그 MVP 출신인 만큼 J리그와 비교가 되는 자존심의 문제도 있거니와, 높은 연봉으로 협상을 하는데 성공한다면 앞으로 후배들도 좋은 조건을 받으면서 J리그로 이적을 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길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 속뜻은 다르지만, 기성용이 남긴 "대한민국의 주장은 중국에 가지 않는다."라는 유사한 어록이 있어서 비교되기도 한다. 신태용의 경우는 K리그 MVP 타이틀에 걸맞게 헐값에 이적하지 않고 본인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는 곳을 선택하겠다는 뜻이었다면, 기성용은 대한민국의 주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돈을 좇기보다는 수준 높은 리그에서 활약하며 좋은 경기력과 대표팀 주장으로서의 품격을 유지하겠다는 뜻이었다. [48] 슛포러브에서 이 발언에 대해 설명했는데, 스웨덴전에 김신욱을 내보내는 것을 스웨덴 감독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했던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트릭은 더 중요한 경기에서 터졌다. [49] 슛포러브에서 해명하기를 예상을 뒤엎고 ACL 우승을 이루자 '선수들이 열심히 뛰어 줬다. 난 이렇게 난 놈 같이 된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 기자들이 앞뒤 다 자르고 기사에 '신태용, 난 난 놈이다'라고 작성했다고 밝혔다. [50] 모로코는 이집트와 더불어 아프리카 대륙의 50개 이상 되는 국가에서도 자국 리그가 아프리카 최상위권으로 강한 나라이며, 크로아티아는 자국 리그 출신의 월드 클래스급 선수가 셀 수 없이 많다. 당장에 크로아티아 최고의 레전드인 루카 모드리치부터가 자국 리그의 명문 구단 디나모 자그레브 출신이었다. [51] 성남 로고와 신태용 감독의 얼굴이 들어가 있다. [52] 훗날 슛 포 러브에 출연해 밝히기를, 선수 생활을 성남에서만 한다는 보장도 없고, 타 구단 팬에게 반감을 사는 일을 했다가 나중에 그곳으로 이적을 하면 곤란해 질 수 있으니 일부러 감정적인 대응을 안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성남의 원클럽맨이 되기도 했고, 이러한 마인드 덕에 K리그 팬들의 호감을 사서 FC 코리아의 음해로부터 보호해 주기도 했다. [53] 이렇게 된다면 김찬기-김석원 부자, 차범근- 차두리 부자에 이어 세 번째로 대를 이어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54] 다른 부자들도 본인이 지도자하면서 아들을 선발한 적이 없다. 단 예외로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농구대표팀에서 허재가 본인의 아들들인 허웅과 허훈을 뽑았다가 동메달에 그쳤다. [55] 이 정도면 웬만한 팀은 그대로 시즌 말아먹는다. 심지어 클럽팀들도 이거보다 덜한 핵심 한두 명의 장기 부상만으로 트레블할 기세로 달리다가 고꾸라져 무관을 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당시 한국은 손흥민과의 조합에 핵심이었던 주전 스트라이커 이근호, 대회 전 감독과 팬들에게 골을 기록할 것이라며 가장 촉망받던 주전 미드필더 권창훈, 주전 레프트백 김진수, 역시나 촉망받던 준주전급 센터백 김민재, 예리한 왼발 킥을 바탕으로 조커 카드로 기용될 베테랑 미드필더 염기훈 등이 모조리 부상으로 나가리를 당해 버린다. 심지어 본선에 가서도 기껏 정해 놓은 레프트백 박주호와 핵심 플레이메이커 기성용까지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독일전을 앞두고 전술적으로 쓸 카드가 바닥나 버린 암울한 상황이었다. [56] 벤투의 동아시안컵 우승 이후 이 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57] 이른바 '억까'를 하도 심하게 당하고 인도네시아 감독으로 옮겼다 보니 항간에는 신태용이 진짜 인정받아야 할 부분은 아직까지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란 평이 있을 정도다. [58] 외모가 묘하게 닮았다. [59] 100만명을 넘겼던 당시 손흥민을 제외하고 신태용보다 팔로워가 많은 국내 축구인은 없었다고 한다. 이후 조규성이 2022 카타르 월드컵을 통한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신태용 감독을 추월했다. 비슷한 사례로 인도네시아 간판 스타인 아스나위가 안산 그리너스로 이적한 이후 안산 구단의 SNS 팔로워 수가 늘어나기도 했다. [60] 특히 CM송 가사 중 농심 불고기가 병신 불고기로 들리는 몬더그린 때문에 더욱 애용되는 중이다. [61] 신영수는 6회 지방선거에서는 이재명에 패해 낙선했고, 20대 총선은 경선에서 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