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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2 19:40:56

김형일(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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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두 룽청 코치
成都蓉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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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일
金亨鎰 | Kim Hyung-Il
<colbgcolor=#ba0014><colcolor=#ffffff> 출생 1984년 4월 27일 ([age(1984-04-27)]세)
인천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7cm, 84kg
직업 축구 선수 ( 센터백 / 은퇴)
축구 해설가
축구 코치
학력 부평초등학교 (졸업)
부평동중학교 (졸업)
부평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체육학 / 학사)
소속 <colbgcolor=#ba0014><colcolor=#ffffff> 선수 대전 시티즌 (2007~2008)
포항 스틸러스 (2008~2014)
상주 상무 피닉스 (2012~2013 / 군 복무)
전북 현대 모터스 (2015~2016)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2017)
부천 FC 1995 (2017)
로얄 타이 네이비 FC (2018)
코치 청두 룽청 (2023~ / 수비 코치)
국가대표 2경기 ( 대한민국 / 2009)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가족 아내, 아들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지도자 경력6. 해설 위원 경력7. 지도자 경력8. 대회 기록9. 여담10.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축구 선수 출신 코치. 포지션은 센터백이었으며 글래디에이터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2. 클럽 경력

2.1. 대전 시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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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전 시티즌에서 데뷔해 주전으로 뛰면서 그 해 팀을 처음으로 6강 플레이오프에 올려놓는 활약으로 신인왕 후보에 올랐으나 공격수 프리미엄으로 몰표를 받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하태균에 밀려 수상하진 못했다.[1]

당시 6강 PO 진출을 결정짓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전 승리 이후 웃통을 까고 대전 시티즌 깃발을 흔들며 경기장을 도는 김형일 선수의 당시 모습은 모든 대전 시티즌 팬들의 기억 속에 훈훈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2.2. 포항 스틸러스

파일:external/img.sportalkorea.com/SK004_20100830_040101.jpg

그러나 다음 해인 2008년 포항 스틸러스의 권집과 트레이드[2]되어 둥지를 옮겼고 이후 포항 스틸러스의 4백 라인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009년 강원 FC와의 홈경기에서 강원 FC의 동점골에 연결되는 페널티 킥을 내주고 물병을 발로 차는 해프닝이 있었다. 의도적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물병은 김영후 선수 쪽으로 날아갔고, 풍문에 따르면 김형일과 관중이 서로 욕설을 주고받았다고 하는데, 이후 데닐손의 역전골로 포항 스틸러스가 경기에서 승리하며 분위기가 격화, 강원 FC의 아저씨 팬들이 그라운드 난입해 포항 스틸러스의 선수단 출입구를 봉쇄했다(...). 10여 분의 시간이 지난 후 나온 김형일은 90도 사죄, 아저씨 팬들은 박수를 치며 다음부터 잘하라는 훈훈한 마무리를...

2009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골을 성공시킨 후 그 당시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된 아버지께 눈물을 흘리며 올리는 세레머니는 감동적.

그래서인지 다른 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황재원 이적 후 거의 모든 팬들이 한 목소리로 차기 주장으로 밀었을 만큼 지지를 받았고 결국 2010 시즌 중반에 황재원에게서 주장 완장을 넘겨받았다.

파일:external/kleague.com/_201351495212.jpg

2011년 11월 28일 팀 동료 김재성과 함께 상주 상무의 합격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포항 스틸러스의 미들가장과 수비가장이 모두 군입대, 망했어요 2012 시즌 포항 스틸러스의 전력누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리고 2012 시즌 김형일이 빠진 포항 스틸러스의 수비진은 정말 헬게이트가 열렸다(...). 2013년에는 불길한 이야기도 나왔었다. 안 그래도 포항 스틸러스의 재정이 썩 좋지 않은 상황이라... 어찌됐든 군 복무를 마치고 2013년 11월 13일자로 팀에 복귀했다.

결국 그 불길함이 현실이 되어(...) 2013 시즌 종료 이후 상하이 뤼디 선화로 이적하는 듯 했으나... 상하이 뤼디 선화 쪽에서 영입을 중단하여 포항 스틸러스로 복귀하였다. 계약기간도 군 입대로 인해 자동 연장되어 2016년까지이기 때문에 포항 스틸러스 입장에서도 적어도 1년은 걱정 없는 상황. 2014 시즌은 14경기에 출장하였다.

2.3. 전북 현대 모터스

2015 시즌에는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 윌킨슨 김기희가 거뜬히 존재하는 이상, 쉽게 주전이 될 수는 없을 듯. 애초에 전 시즌에도 김광석, 김원일에게 밀리고 김준수 등과 로테 경쟁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나마 아직 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정인환이 입대로 빠지게 된다면 3수비수로 쓸만한 자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정인환이 허난 젠예로 이적하면서 전북으로 돌아온 조성환과 함께 3수비수 자원이 될 것이라 예상되었다.

일단 개막전과 2라운드 경기에서 김기희와 함께 연속 선발 출전했으며 폼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3] 김기희가 오른쪽 풀백을 겸업하고 윌킨슨이 부상으로 많이 출전하지 못하자 조성환과 짝을 이뤄 파이터-파이터 조합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끈끈한 대인마크와 노련함으로 좋은 궁합을 보여줬다.

2016 AFC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에서 헐크를 완벽하게 봉쇄하며 4강 진출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 와중에 상하이 상강 루원쥔(呂文君)의 쿵후축구에 머리를 걷어 채이는 아찔한 장면도 나왔다. 빡친 전북 선수들은 초사이어인 모드로 돌입하는데... 다행스럽게도 바로 일어나서 강력한 파이팅을 외쳤고, 관중들은 김형일 콜을 외치며 성원을 보냈다. 카를레스 푸욜이 빙의한 플레이에 더 풋볼의 투혼이었다 카더라
파일:external/my.mixtape.moe/tbvgmf.gif

2.4.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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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4일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이적이 확정되었다. # 6개월짜리 단기 계약인데 이는 기존 주전 한국인 센터백이었던 김영권이 2016년 9월에 당한 부상으로 전반기에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대체 선수로 영입한 듯 하다. #

그러나 중국 슈퍼 리그의 외국인 선수 출전 규정이 바뀌어 영입 직후에 아시아 쿼터제가 없어졌고 이때문에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가 영입할 때와의 의도와는 달리 자리가 없어져 못나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정규 리그에서는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고 6개월 단기 계약이 종료된 후 귀국하게 되었다.

2.5. 부천 FC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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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강원 FC 이적이 유력 했으나, 2017년 6월 28일, 모두의 예상을 깨고 부천 FC 1995 이적이 보도되었다.

전북 현대 모터스와 강원 FC의 FA 보상금 협상이 결렬되면서 FA 보상금이 발생하지 않는 2부리그 부천 FC 1995로 간 것이였다. #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29일, 공식 발표가 나오며 부천 FC 1995 이적이 확정되었다. #

반년동안 김형일은 노련함을 앞세워 젊은 선수들 위주의 부천 선수단을 이끄는 역할을 잘 수행해내며 준수한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부천 FC 1995는 아쉽게도 플레이오프 진입에 실패했고, 2017 시즌을 끝으로 계약 만료로 반년만에 부천을 떠났다.

2.6. 로얄 타이 네이비 FC

부천 FC 1995 퇴단 이후 무적 선수로 지내다가, 2018 시즌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6개월 단기 계약을 맺고 태국 프리미어 리그의 팀인 로얄 타이 네이비 FC에 입단하였다.

반년간 활동하였고, 2019년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이후 자신의 SNS를 통해 은퇴를 선언했으며, 당시는 별도의 은퇴식 없이 조용히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였으나 2021년 포항에서 은퇴식을 진행했다.

3. 국가대표 경력

1 이운재 · 2 오범석 · 3 김형일 · 4 조용형 · 5 김남일 · 6 김보경 · 7 박지성
C
· 8 김정우
9 안정환 · 10 박주영 · 11 이승렬 · 12 이영표 · 13 김재성 · 14 이정수 · 15 김동진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정성룡 · 19 염기훈 · 20 이동국 · 21 김영광 · 22 차두리 · 23 강민수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허정무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정해성
스태프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박태하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현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대표로도 뽑혔는데 정작 경기는 뛰지 못했다. 아니, 그전에 허정무 감독 체제하에서는 뽑히기만 하고 정작 A매치 뛴게 손에 꼽을 정도다.

이천수 유튜브 채널의 "명보야 밥먹자" 코너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본인이 회고한 바에 따르면 자신이 월드컵 엔트리에 들었지만 경기는 나서지 못할 거라 생각했단다. 그러다 조별리그 3차전에서 2:1로 리드하고 있을 때 몸을 풀고 있었고 경기를 잠그려고 투입을 기다리는 찰나 김남일이 무리한 반칙으로 PK를 헌납하여 동점이 되자 출전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K리그 팬들과 포항 스틸러스 팬들은 김형일을 제발 국대 좀 쓰라고 하지만..... 당시 국대 수비진의 실력도 좋은 편은 아니지만 김형일 역시 수비력이 국대 쌈싸먹을 정도로 뛰어나진 않다는 게 걸림돌이다. 특히 높이 위주의 수비에선 문제가 없지만 발이 너무 느려서 좌우돌파를 너무 쉽게 허용하는 게 문제.[4] 게다가 경기 중 잔실수도 많아지면서 갈수록 국대와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국대 승선을 위해선 수비의 안정성을 좀 더 높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2012년 2월 11일,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쿠웨이트 전에 대비한 최강희호 1기 소집 멤버에 발탁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장신과 탄탄한 피지컬을 활용한 저돌적이고 터프한 플레이가 돋보이는 파이터형 센터백으로, 제공권 장악과 몸싸움에 능하다. 그러나 카드도 그만큼 많이 수집하는 편이며, 스피드도 느린 편이라 스루패스라든가 1:1마크에서 종종 뚫린다는 게 문제. 더욱이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거쳐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한 황재원과 같이 가끔 정줄놓는 미스를 범한다는게 너무 크다. 횡패스하다가 뺏긴다거나, 걷어내야 할 걸 어물쩍하다 위기를 자초한다거나 등등. 그리고 대부분 이러한 위기는 PK나 본인의 퇴장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즌 전체적인 안정감을 봤을 때 페널티 킥 허용이나 퇴장은 1년에 한두 번 있는 일이라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 편이다.

본인 피셜 유튜브 원투펀치 Live 에서 K리거 커리어에 퇴장은 한번이라고 발언하였다. 다만 공중볼이 아닌 1:1 단순경합에서 뚫리는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5. 지도자 경력

파일:FB_IMG_1564709847872.jpg

자신의 SNS에 의하면 이호가 운영하는 고알레 컴퍼니에서 입사했으며 고알레 유튜브 채널에도 출연하는 등 유튜버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팟케스트 히든풋볼의 멤버이며 수석 코치 직함을 달고 축구를 좋아하는 아마추어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후 인천 검단에 위치한 김형일 축구센터를 운영했으며 2023년 서정원 감독의 부름을 받고 청두 룽청의 수비 코치로 합류했다.

6. 해설 위원 경력

2021년부터 2022년까지 JTBC GOLF&SPORTS K리그 해설 위원으로 활동했다.

2022년까지의 평은 매우 안 좋다. 해설 위원의 역할 중 하나인 각 팀의 현재 전술과 감독의 의도, 선수들의 플레이 설명 등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해설을 잘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격수는 골을 넣어야 합니다, 수비수는 공을 막아야 합니다, 현재 양팀이 치열하게 대결하고 있습니다와 같은 굉장히 원론적인 해설을 많이 하고 있다.

선수출신으로서의 장점을 보여주는 해설도 가만히 들어보면 나름대로 많이 하긴 하는데 이것을 부각시키는 능력이 없다. 비교적 호평을 듣는 조원희와 비교하자면 호들갑을 떠는 조원희와 달리 김형일은 그냥 몇 마디 툭 던지는 정도이기 때문에 많은 시청자가 그것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

위와 같은 비판점을 차치하고라도 부정확한 발음, 떨어지는 어휘 구사력, 정보 미숙지, 선수 이름 혼동,[5][6] 캐스터와의 떨어지는 호흡으로 인한 상황과 동떨어진 해설, 전술설명 미흡 등으로 인하여 청자들이 해설에 집중이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부정확한 발음의 예로는 2022 시즌 3라운드 전북:포항전을 들 수 있다. 전북은 4백에 박진성 박진섭이 같이 나왔는데 전반내내 박진성 혹은 박징성이라는 발음으로 두 선수를 계속 불러서 센터백 박진섭을 말하는지 레프트백 박진성을 말하는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7]

특히 'ㅂ'받침(박진섭을 박징성으로 발음, 오프사이드 트랩을 트랙으로 발음)과 'ㅠ'발음( 뮬리치를 물리치로 발음, 슈팅을 수팅으로 발음)에 취약한 면을 보인다. 이외에도 'ㅍ'과 'ㅎ' 발음에 혼동이 있다.(프리킥을 후뤼킥으로 발음) ~ ???~

떨어지는 어휘 구사력의 예로는 '앞전 상황', '문전 앞' 등의 표현이 있다.(2022 시즌 4라운드 전북:울산전 전반에 사용). 해설 중에 사용하는 표현도 적어서 "~선수가 잘 해줄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 "좋은 모습 보여주고 있어요" 등의 표현은 한경기당 10회 이상은 들을 수 있다.[8]

JTBC에서 다양한 해설 위원을 영입했는데도 전북과 울산의 경기같은 리그 내의 빅매치나 시청자가 많은 낮경기를 거의 전담하여 해설하는 등 많은 경기 해설을 맡음으로써 본인의 단점과 역량만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극한의 악평으로 인하여 선수출신임에도 비판받던 이천수 김병지를 넘어선 역대 최악의 해설 위원 중 한명이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현재 평이 좋지 않다.

현역 선수출신들이 해설 위원으로서 좋지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비 선수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최상위급 능력을 가진 한준희, 장지현을 차치하고라도 현재 주목받고 있는 비선수 출신 해설 위원인 임형철, 황덕연 등의 해설 위원들보다 과연 이들이 나은 게 무엇이며 과거의 영광만으로 해설을 우선하여 맡는 것에 대한 강력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2022년 시즌이 끝나가고 있는 위에서 언급한 단점은 전혀 개선되고 있지 않으며 본인 해설을 맡은 경기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숙지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설을 맡고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정말 해설에 대한 책임감이나 워크에씩이 존재하는지 혹은 지능이나 지식이 해설을 맡기에는 부족한데 본인의 의지로만 맡는지 의문이 따르고 있다.

많은 국내 축구 팬들은 제발 내년 시즌에는 보고 싶지 않으며 듣고 싶지도 않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합리적인 비판도 있었으나 질책을 넘어 과도한 비난으로인해 해설 위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많은 K리그 팬들은 김형일의 해설이 해설 위원을 포기하게 된 과정은 아쉬우나 해설 위원을 맡지 않는다는 점에서 환영하고 있다.

7. 지도자 경력

2023년 3월 11일 서정원 감독이 이끄는 청두 룽청의 수비 코치로 이적하면서 처음으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곽태휘 코치의 후임으로 합류했다. #

8. 대회 기록

9. 여담

10. 관련 문서



[1] K리그 신인왕은 해당 후보의 현재 실력이나 팀 기여도 보다는 팀 성적과 언론노출도를 더 따지는 타이틀이다. 07년의 경우 김형일이 하태균보다 훨씬 많은 경기에 출장했고 팀 기여도도 더 높았지만 상대적으로 눈에 덜띄는 수비수라서 5골 1도움을 기록한 공격수 하태균에게 밀려버렸다. 하태균은 이후 매년 부상에 시달리며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2] 이 트레이드를 기점으로 대전에는 김호의 아이들 2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듬해 김호 감독이 경질되면서 김호의 아이들 2기는 무산됐다. 거기다 권집은 이후 승부조작에 연루된 것이 발각되어 K리그에서는 더 이상 뛸 수 없다. 그래서 대전 시티즌 팬들만큼은 김호가 명장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못한다. 물론 그 이유가 이것 하나 때문만은 아닌데 자세한 것은 김호/비판 및 논란 참조. [3] 윌킨슨의 중국 이적 루머가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사실 윌킨슨이 그 동안 부상을 당하고 있었다. [4] 똑같이 발이 느린 황재원이 있을 때는 양 풀백들이 공격 가담을 적게 하면서 센터 위주로 공격했기에 큰 문제가 안됐지만 2011 시즌 이후 4백이 부실화하면서 같이 폼이 떨어졌다. 그나마 시즌 초반에는 김원일이 대신 오버래핑을 했기에 수비가 안정됐지만..... [5] 대표적인 예가 팔라시오스 팔로세비치라고 부르는 것 [6] 뿐만 아니라, 경기를 치르고 있는 두 팀을 혼동하기도 한다(...) 2022 시즌 스플릿 B그룹 1라운드였던 성남 FC 수원 삼성의 경기에서는 수원이 수비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계속해서 성남의 수비 진영이 촘촘하다고 말하는 걸 볼 수 있다. 오현규의 추가골(이후 곽광선의 자책골로 정정됨) 상황에서는 오현규를 아예 성남의 에이스(...)라고 말하다가 뒤늦게 이를 정정하였다. [7] 게다가 이 경기에서는 4백으로 나온 전북의 측면 수비를 여러번 윙백이라고 표현했는데 정확히 말하면 4백에서의 측면수비가 풀백, 3백에서의 측면수비가 윙백이긴 하지만 현장에서는 혼용되긴 한다. [8] 김형일이 이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해설 위원들도 많이들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