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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16:09:39

조 본프레레

조 본프레레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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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감독
파일: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24대, 30대
파일:카타르 축구 협회 로고(1971-2006).svg

27대, 31대
파일: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25대
파일:대한축구협회 엠블럼(2002~2019).svg

64대
}}} ||
네덜란드의 前 축구 감독
파일:external/static.goal.com/254783_heroa.jpg
<colbgcolor=#f0f0f0,#222222><colcolor=black,white> 이름 조 본프레러
Jo Bonfrère
본명 요하너스프란시스퀴스 본프레러
Johannes-Franciscus Bonfrère
출생 1946년 6월 15일 ([age(1946-06-15)]세)
림뷔르흐 주 에이스던[1]
국적
[[네덜란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8cm
직업 축구 선수 (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f0f0f0,#222222><colcolor=black,white> 선수 MVV 마스트리흐트 (1963~1985)
감독 MVV 마스트리흐트 (1983)
MVV 마스트리흐트 (1985)
KFC 겔 (1988~1990)
나이지리아 여자 대표팀 (1991)
KFC 겔 (1992~1993)
나이지리아 대표팀 (1995~1996)
카타르 대표팀 (1996~1997)
알 와흐다 FC (1998)
나이지리아 대표팀 (1999~2001)
알 와흐다 FC (2001~2002)
아랍에미리트 대표팀 (2001~2002)
알 아흘리 SC (2002~2003)
대한민국 대표팀 (2004~2005)
다롄 스더 (2007)
알 와흐다 FC (2007~2008)
허난 젠예 (2011)
바오딩 룽다 (2017)
국가대표 없음
1. 개요2. 특징
2.1. 이름과 별명2.2. 외모와 목소리2.3. 언어 구사2.4. 체격과 축구 실력2.5. 카메라 기피증과 다혈질2.6. 대인 관계
3. 축구인 경력
3.1. 선수 경력3.2. 감독 경력
3.2.1. 나이지리아 대표팀 이전3.2.2. 나이지리아 대표팀 1기3.2.3. 카타르 대표팀3.2.4. 나이지리아 대표팀 2기3.2.5. UAE 대표팀과 알 아흘리3.2.6. 대한민국 대표팀3.2.7. 대한민국 대표팀 이후3.2.8. 바오딩 룽다3.2.9. 이후
4. 명언
4.1. 3골 먹으면 4골 넣으면 됩니다4.2. 본프레레의 5대 예언?
5. 평가6. 여담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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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 축구인.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평가전에서 아시아 최초로 독일에 3-1로 승리하고 쿠웨이트에게 3연승[2][3]을 거두며 한국의 6회 연속 월드컵 진출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 후 2005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최하위[4], 월드컵 최종예선 사우디전 2연패[5] 등 성적 부진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고 결국 자진 사퇴[6]하였다.

일단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제3세계 위주로 지도자 활동을 한데다가[7] 재임 기간동안 미숙한 미디어 관리 능력 탓에 언론의 집중 공격과 KFA의 관리 부족에 계속 뒷말이 나온 터라 울리 슈틸리케 위르겐 클린스만급(?) 감독으로 오인받지만, 네덜란드 축구계의 아웃사이더임에도 나이지리아 대표팀과 여자 대표팀 감독 시절 각각 올림픽 축구 금메달(1996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준우승(2000년)과 지역 예선 6전 전승으로 여자 월드컵 첫 본선행(1991년)을 이뤄내서 명장 소릴 들은데다가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시절 '피지컬이 강한 축구'를 관철하며 조직력을 다졌을 정도로 명확한 철학이 있는 인물이라서, 슈틸리케, 클린스만과 동일선상에서 비교될 만한 수준의 인물이 아니다.

2. 특징

2.1. 이름과 별명

성(姓)인 '본프레레'는 프랑스어로 '좋은 형제(good brothers)'를 의미한다고 스스로 밝혔다.[8] 이를 비추어 볼 때, 그의 선조는 프랑스에서 네덜란드로 망명한 위그노로 보인다.

한국화된 별명이 붙여졌는데 굉장히 한국스러운 '조봉래(趙鳳來)'이다.[9] 이런 한국식 별명은 본프레레 외에 또 다른 네덜란드 출신 감독인 거스 히딩크 딕 아드보카트도 가지고 있었는데 히딩크는 희동구, 아드보카트는 아동복안복환이었다.

2.2. 외모와 목소리

미국 애니메이션 < 심슨 가족>의 번즈 사장과 닮았다.

목소리는 다소 중후한 편이며, 영어 인터뷰시에는 음절마다 또박또박 끊어서 얘기하는 스타일이다. 영상

2.3. 언어 구사

네덜란드 출신답게 무려 5개 국어를 구사한다.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을 맡는 동안에는 영어를 주로 사용했으나, 독일과의 평가전 후의 인터뷰에서는 독일 기자를 향해 독일어 답변했으며[10] 그 외 프랑스어, 아랍어도 구사한다.

특히 영어 인터뷰를 자세히 들어보면 영국식 영어에 가까운데, 전후임 감독인 거스 히딩크 딕 아드보카트 미국식 영어에 가깝게 구사하는 것과 명확히 구분된다.

2.4. 체격과 축구 실력

188cm에 걸맞게 체격적인 면에서 기골이 장대한 수준이다.

본프레레는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시절 훈련에 직접 참여하면서 프리킥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상당히 날카로웠다.

2.5. 카메라 기피증과 다혈질

한국 언론과의 관계는 매우 좋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미는 행위 자체를 극도로 싫어했다.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사우디 원정경기 당시 킥오프 전 카메라가 들어오자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젓고 쫓아냈고, 쿠웨이트와의 원정경기 때는 경기 도중 물을 마시다가 카메라를 들어오자 화내며 카메라를 돌리라는 손짓을 했다. 다수 감독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것에 비하면 본프레레의 성향이 특이한 편이다. 카메라를 수차례 내쫓은 탓인지 성적이 안 좋아지자 축구팬들과 언론들로부터 득달같이 까임을 당했다.

성격도 다혈질이었다. 부임 후 지옥훈련을 진행하던 중 선수들에게 자주 호통을 쳤다. 기사 당시 찍힌 사진들을 보면 화난 표정이 대부분이었다. 경기 도중에 골이 터져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11] 2004년 아시안컵 당시에는 현영민이 본프레레의 낡은 축구화를 보면서 "You shoes old."라고 말하자 정색한 표정으로 "You play old."라고 대꾸했다고 한다.[12]

다만 위에 일화와 별개로 팬 서비스는 매우 좋았는데, 축구팬에게는 한없이 친절했다고 한다. 싸인 요청에 일일이 다 응해줬다고 한다.[13] 또한 본인과 아무런 접점이 없었던 김선일 피랍 사건으로 희생된 故 김선일씨를 조문하고 유족들을 위로하기도 하며 공적으로 보이던 모습과 달리 인간적인 면모도 볼 수 있었다. 기사 기사

2.6. 대인 관계

마틴 욜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와 친분이 있다. 특히 판 마르베이크는 MVV 시절 후배였고, 또한 본프레레는 감독으로서 그를 지도한 적도 있다.

반면 딕 아드보카트, 루이 판 할과는 사이가 안 좋은 것으로 보인다. 본프레레는 아드보카트가 후임감독으로서 대한민국 대표팀을 맡았을 때 그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판 할에 대해서는 "그는 자기가 뭘하는지도 모른다" #며 "멍청한 감독" #이란 원색적 비난을 했다는 썰이 나이지리아 인터넷 언론을 통해 보도된 적이 있다.

3. 축구인 경력

3.1.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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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V에서 데뷔한 이래 원클럽맨으로써 평범한 선수 생활을 보낸 뒤 은퇴했다.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뛰지는 못했지만, 청소년 대표로 선발된 적은 있다.

알려진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이지만, 마틴 욜은 본프레레를 두고 "선수 시절 최고의 윙백이었다."이라며 추겨세우는 걸로 봐서는 윙백도 맡은걸로 보인다.

3.2. 감독 경력

3.2.1. 나이지리아 대표팀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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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V 감독 시절.

1980년대, 두 차례나( 1983년, 1985년) 친정팀인 MVV 감독을 했었고, 1991년에는 나이지리아 여자대표팀 감독을 맡아 여자 월드컵에 진출시켰다. 참고로 이 당시 나이지리아 여자대표팀 선수였던 치오마 아준와는 이후 육상으로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멀리뛰기에서 금메달을 차지, 아프리카 최초의 여자 육상 금메달을 획득한다. 이건 나이지리아의 유일한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로 남아있기도 하다. 아래 언급될 본프레레와 나이지리아 남자 축구대표팀의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묘한 인연이다.

3.2.2. 나이지리아 대표팀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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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 감독시절 초기 내내 주목을 받지 못 하던 그의 인생을 뒤바꾼 터닝 포인트적인 사건이 터진다.

1994년,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를 맡던 본프레레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을 경험한다. 그리고 1996년에 감독직이 공석이 된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승격되고, 1996 애틀란타 올림픽[14]에서 준결승 브라질, 결승 아르헨티나를 잇달아 격파하며 '아프리카 최초의 국제대회 우승'과 '아프리카 최초의 올림픽 축구 금메달'이라는 대기록을 세운다.[15]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전임 감독이 만들어놓은 팀이고 당시 카누, 바방기다, 바바야로[16], 올리세 등 스타 선수들이 제 몫을 했을 뿐 별로 본프레레가 한 일은 없다고 폄하하지만, 아무리 선수들이 잘 뛴다 해도 감독의 전술에 문제가 있다면 폭삭 무너지는 게 축구에서는 비일비재하며, 당시 브라질팀에는 호나우두, 베베토, 히바우두, 주니뉴 파울리스타, 호베르투 카를로스 등이 있었고, 아르헨티나팀에는 에르난 크레스포, 클라우디오 로페즈, 하비에르 사네티 등의 나이지리아보다 더 화려하고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팀 모두 격파했다는 점에서 본프레레의 업적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궤변이다.[17][18]

3.2.3. 카타르 대표팀

1996년, 월드컵 첫 본선 진출을 노리는 카타르축구협회로부터 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 제안을 받고 계약을 맺는다.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1차 예선에서 무실점 전승으로 최종예선에 합류했을때까지만 해도 그 전망은 밝았다. 하지만 최종예선 초반 무승행진을 달리며 최하위로 추락하자 급해진 카타르는 그를 경질했다.

물론 당시 사우디아라비아[19], 이란, 중국, 쿠웨이트라는 강호들이 같은 조여서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20]

문제는 카타르는 그를 경질한 이후 쿠웨이트와 중국 원정에서 이기고 홈에선 이란를 물리치며 급상승세를 탔다는 것이었으며 결국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홈경기에서 패하며 월드컵 본선 진출에 아깝게 실패했다.[21]

3.2.4. 나이지리아 대표팀 2기

1999년, 나이지리아 축구 협회로부터 연락을 받고서는 다시금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는다.

2000년, 홈에서 열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승부차기에서 은완코 카누의 실축 등의 불운이 따르며 라이벌 카메룬에 홈에서 우승컵을 내줘야 했다. 또한 국대와 더불어서 나이지리아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겸임하고 있었는데, 이 올대를 이끌고 2000 시드니 올림픽 남자축구[22]에도 출전하였다. 본선에서는 북중미의 온두라스, 개최국 호주, 유럽의 이탈리아와 함께 A조에 속해서 1승 2무를 기록하며 조 2위로 8강에 갔지만, 8강에서 그 대회에서 동메달을 딴 칠레한테 4대1로 완패하며, 디펜딩 챔피언의 위용을 선보이지 못한 채 일찍 대회를 마쳤다.[23]

2002 한일 월드컵 지역예선 땐 세계적인 아프리카 출신의 축구선수 조지 웨아가 월드컵 나가보겠다라는 각오로 나온 라이베리아 모하메드 칼론이 이끄는 시에라리온에 패하며 탈락 위기에 몰려 카타르에서 처럼 또 경질되었다. 그리고 나이지리아는 본프레레가 짤리자마자 연승 행진을 달렸고, 마침 가나가 라이베리아에 2-1로 이긴 덕분에 극적인 승점 단 1점 차이로 마지막으로 남은 아프리카 할당 월드컵 본선 티켓을 획득한다.

사실 당시 나이지리아 축구 협회와 불화가 있었다고 하며, 2000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과 평가전을 갖기도 했다. 당시 한국팀 감독은 허정무. 두 차례 평가전을 가졌는데 5-1로 한국에 진 경기에서 야쿠부[24] 페널티킥을 넣기도...

3.2.5. UAE 대표팀과 알 아흘리

2001년 UAE 리그의 알 와흐다 감독직을 맡아 UAE 걸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이번에는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키지만, 이란에 패하며 월드컵에 또 참가하지 못한다.[25]

이어서 2002년, 이집트 리그의 명문팀 알 아흘리 SC 감독을 맡지만, 준우승에 머무르며[26] 해임된다.

3.2.6. 대한민국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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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대한민국 대표팀 이후

딕 아드보카트 히딩크와 동급의 명장이 왔다는 등의 본프레레와 다른 호의적인 여론 속에서 화려하게 출발하면서 본프레레보다는 잘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자 발끈해서 네덜란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짜놓은 팀을 쓰는 것이라고 반박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한 예로 조원희 아드보카트호에 A매치 데뷔전을 뛰긴 했지만, 실제로는 본프레레가 먼저 발탁한 선수다. 2006년 초에는 본프레레도 2-0으로 이겼던 UAE와의 경기에서 아드보카트호가 첫 패를 당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아드보카트를 디스했다.

본인의 주장으로는 축구협회 고위층과 선수 선발을 가지고 불화가 있었다고 한다.[27]

이후 여러 곳들에서 감독이 될 수도 있다는 설이 주기적으로 돌았는데, 2005년 겨울에는 짐바브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될 수도 있다는 보도가 돌기도 했고, 2006년 에는 가브리엘 칼데론[28]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지원했으나, 밀란 마찰라[29]가 선임되면서 칼데론과 함께 탈락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을 앞둔 당시 전지훈련을 하던 한국 대표팀의 경기에 여러 번 나타나서 친분이 있는 오토 피스터 감독이 맡고 있던 토고에 정보를 제공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기도 하였다. 심지어 토고 선수단 불화가 심해질 때 본프레레가 감독에 부임했다는 헛소문까지도 돌았었다.

이후 중국의 다롄 스더와 아랍 에미리트의 알와다 감독을 하기도 했으나, 모두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쉬고 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나이지리아 대표팀이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부진한 샤이부 아모두 감독을 경질하자 자신에게 나이지리아 대표팀을 맡기면 결승에 갈수 있다고 주장하며 감독직 지원을 했다. # 그러나 씹혔다. 그러고는 나이지리아 대표팀이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라르스 라예르베크 감독을 선임하자 디스를 했다. # 결과적으론 나이지리아가 한국에 밀려 탈락해서 맞는 말이 되었다.[30][31]

그러다가 2011년 7월, 중국의 허난 젠예 감독으로 복귀했다. 묘하게도 경질된 김학범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한 것이어서, 한국 축구과 간접적인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오만 국내리그 팀 도파르 SCSC로 이적하였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아무리 뉴스를 찾아봐도 잡히지 않는다. 아마도 찌라시였던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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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아프리카 쪽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 모습. 확실히 많이 늙었다.

2016년, 알랭 페랭 감독의 경질로 공석이 된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에 지원을 했으나, 공한증을 최초로 깬 가오훙보 감독에게 밀렸다. #

3.2.8. 바오딩 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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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딩 룽다 감독으로 부임.

2017년 5월, 중국 갑급 리그 바오딩 룽다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 팀은 2017년 을급 리그에서 승급했으나, 리그 동네북으로 계속 연패해 꼴지를 달리고 있다. 옌볜 푸더에서 연초에 방출된 하태균이 뛰고 있다.

부임한지 얼마 안된 7월 5일, 본프레레는 주심에게 격렬히 항의했다는 이유로 2게임 출전금지 처분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구단 전체가 중국 축협에 무거운 징계를 받았다. 7월 1일 바오딩 룽다는 우한 줘얼과의 대결에서 2-1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심판이 로스 타임을 7분이나 주었고, 이때 우한이 한골을 넣어 2-2로 비겼는데, 이에 본프레레는 격렬히 항의했고, 여기에 바오딩 선수들은 한술 더 떠 탈의실에서 불을 끄고 주심과 부심을 폭행했다고 한다. 이때문에 중국 축협은 바오딩에 대대적인 징계를 내렸고, 본프레레에 대한 징계 이외에도 구단측에 홈경기 1게임 몰수 및 26만위안의 벌금을 내렸다고.

막판까지 강등권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폈으나, 결국 바오딩은 안타깝게 강등되었다. 사실 14위인 다롄 차오웨와 승점 31점으로 동률을 이뤘으나, 승자승 원칙에 의해 다롄 차오웨가 14위, 바오딩 룽다가 15위를 하여 강등되었고, 본프레레도 계약이 끝나 짐을 싸게 되었다.

이후 경력은 알려져 있지 않은 걸로 보아 감독 생활 사실상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나이도 이제 70대에 접어들었으니 은퇴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3.2.9. 이후

파일:Bonfrere 2018 House.png
2018년 6월, 22년 전 1996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금메달을 안기고 집을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제서야 받게 되었다. 나이지리아의 수도 아부자에 있는 집이라고. 나이지리아에서는 여전히 영웅 대접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파일:Bonfrere 2018 Commentary.png
또한 같은 달 나이지리아에서 축구해설을 하는 등 왕성한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32] 시기상으로 보면 2018 러시아 월드컵 기간. 같은 달 13일에도 'Channels Television'이라는 나이지리아 채널에 등장하여 인터뷰를 진행했다. #

2019년에는 나이지리아에서 꾸준히 축구 평론을 하고 있다. #1 #2 1년여 전 아부자에 소재한 집을 얻게 되면서 여생을 나이지리아에서 보내는 듯하다.


2020년 8월에는 나이지리아의 'Sport247 Najia'라는 채널에 등장하여 5분간 24년여 전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2021년 11월에는 나이지리아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게르노트 로어가 경질됨에 따라 공석이 된 후임 감독직을 노린다는 뉴스가 나왔다. # 4개월 여가 흐른 2022년 4월 기준으로 '슈퍼 이글스'의 감독직은 여전히 공석이다.[33] 이후 주제 페제이루가 나이지리아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그의 감독 복귀는 무산됐다.

4. 명언

4.1. 3골 먹으면 4골 넣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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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본프레레의 5대 예언?

파일:attachment/조 본프레레/bonfrere.jpg
한때 '본프레레의 5대 예언'이란 제목의 짤방이 돌아다녔다. 저 중 4개가 맞았다.
  1. (O): 프로 입단을 준비하던 2005년 초의 박주영에게 '훅 불면 날아갈 것 같다'며 서양 선수들과 경합할 피지컬이 없다고 지적한 게 과장된 것 같다.[34][35] 하여튼 실제로 2006년 본선 합류는 했으나 유럽 선수들의 피지컬에 밀리며 특별한 활약은 하지 못하고 오히려 실점의 빌미까지 제공했기에 결과적으로는 적중.[36] 다만 해당 발언 이후 정작 본프레레 본인이 박주영을 직접 발탁하고 '많이 발전했다'는 평까지 했기에 애매하다면 애매한 케이스.
  2. (O): 이동국은 본프레레의 황태자로 꼽히던 선수였다. 부상으로 2006년 최종 엔트리 합류가 불발되긴 했지만 후배 조재진 등으로부터 그가 있었으면 결과가 달랐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중요한 전력이었다.
  3. (X): 이건 맞다 틀렸다 이전에 이런 예언을 한 사실이 없는데, 김진규는 본프레레가 이동국 못지 않게 신뢰했던 선수다. 2005년 2월 콜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김진규가 패스 미스로 역전골을 내줬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질책을 안했고, 그 해 8월 사퇴해서 한국을 떠날 때는 통역 담당자를[37] 통해 김진규에게 전화를 해서 "넌 한국 최고의 좋은 선수가 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만약 사퇴하지 않고 2006년 월드컵 본선까지 갔다면 김진규가 무조건 발탁되었을 터이니, 김진규를 혹평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38] 실제로 김진규는 본프레레호 시절 핵심 자원으로 분류되었고 아드보카트호에서도 살아남아 2006 독일 월드컵에 출전했다.
  4. (O): 토고 대표팀 독일 월드컵에서 승점자판기였다. 게다가 축협과 선수들 간의 월드컵 포상금 문제로 인해 팀 자체가 콩가루 팀으로 악명 높았다. 한국 선수들이 보기에도 토고 선수들은 그냥 놀러온 거 같았다고 할 정도로 팀이 엉망이었다. 심지어 최진철은 아데바요르도 실제로 해보니까 별로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토고가 3전전패를 해버려서 토고는 당연히 잡아야 하는 데다 오히려 큰 점수차로 못 잡은 한국이 스위스, 프랑스에게 밀린 모양새가 되었다.
  5. (O): 대한민국 스위스 대표팀에 패배하며 16강행이 좌절되었다.

물론 이에 대한 공식 보도자료 등은 존재하지 않기에 판단은 읽는 사람의 몫. 위 해설을 보면 알겠지만 최소한 5가지 모두 본프레레가 직접 피력한 의견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리고 내용상 예언으로서의 가치가 있으려면 최소한 2006년 월드컵 개막 이전에 자료가 제시되었어야 하는데 이 쪽 증거도 없다. 결국 재미로만 봐야 할 자료.

그런데 향후에도 이 예언들 중에 여러 개들이 맞는 경우가 종종 있어 본프레레가 1승 추가하는 경우들이 생긴다.

5. 평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을 앞두고 있던 2000년, 대한축구협회에서 새 감독을 선임하기 위해서 우선협상자를 선정했는데, 이때 1순위는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프랑스의 우승을 이끈 에메 자케, 2순위가 거스 히딩크, 3순위가 조 본프레레였다. 그 다음 4순위는 역시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첫 진출국이던 크로아티아를 3위로 이끌었던 미로슬라프 블라제비치. 당시 축구협회의 판단이 정확했다면 이는 곧 본프레레가 한국 내에선 비록 인지도는 낮을지언정 실력만큼은 명백하게 검증과 인정을 받았고 평판도 나름대로 좋았다는 방증일 수 있다.

또한 이미 아프리카 중동 등에서 감독 생활을 많이 해서인지 몰라도 본인 스스로가 대한민국 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는데, 일례로 식당에서 김치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며 " 나이지리아에서는 이거보다 더 매운 것도 먹어봤다."는 말을 하는가 하면[39] 축구협회 인사들과 등산도 함께 했으며, 무엇보다 K리그 경기를 꾸준히 관전했다.[40][41]

파일:본프레레김밥.jpg

게다가 김밥을 즐겨먹는 등 다른 외국인 감독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 무엇보다 음식 적응을 굉장히 잘 한 편이었다. 가리지 않고 전체적으로 잘 먹는 편이지만, 해삼만은 보고 개깜놀한 뒤에 백기를 들었다고 한다.[42] 이 부분에서는 갈비 생선전 정도 말고는 한국 요리를 그다지 즐기지 않았던 거스 히딩크와는 대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올 때부터 히딩크로 인해 눈이 미친듯이 지나치게 높아진 대중들에겐 저 듣보잡 감독은 누구냐는 편견이 자리잡았다. 하필 전임자들인 히딩크와 움베르투 코엘류 둘은 모두 국제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감독들이었다. 그러나 그 둘은 선임 당시 실책으로 인해 몸값이 떨어졌을 때 낚아채온 인물들이었다. 2002 월드컵 4강 신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외국인 명장을 얼마든지 선임할 수 있다는 착각과 그저 감독만 바뀌면 말끔하게 해결되는 줄로만 착각하던 우물 안 개구리스럽던 한국축구 시절을 맡은 비운의 명장이었던 셈이다. 그러다 한껏 높아진 눈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알제리 쇼크 울리 슈틸리케 감독 선임에 들어서야 국내 축구 예산의 녹록지 못한 현실을 알게 되면서 다소 누그러졌다. 게다가 직전 감독이 나락의 끝을 보여주기도 했고, 또한 후임자 울리 슈틸리케마저 개선해주는가 싶더니만 오히려 정체만 왕창 시키면서 경질된 이후에 계속 긍정적으로 재평가를 받고 있는 감독이다.

더군다나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는데 있어 사실상 벤투 감독이 선임되었을 당시 김판곤 당시 감독선임위원장이 제대로 된 브리핑과 설명을 한 후에야 본프레레 감독 역시 당시 접촉 매물들 중에서는 그나마 최선이었음을 인정하기 시작하여 시대를 잘못 만난 대표적인 감독이기도 하다. 선술한 대로 히딩크와 코엘류는 각자 라리가와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이라는 감독 경력에 흠이 생겼을 때 선임이 가능했던 것이며, 이제는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의 아시아 팀들의 선전 등으로 위상이 많이 올라갔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아시아 대륙으로의 이직은 사실상 메인 스트림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커리어인 게 전반적인 인식이다.[43] 아시아 대륙에 외국인 감독이 오려면 보통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거나[44] 유럽에서는 더 이상 구직이 힘들고 수요가 없어져서 재취업을 위해 본인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줘서 재기를 해야 하는 감독들[45], 그리고 아시아나 아프리카와 같은 비주류 무대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여줘 한국 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가 감독 본인에게 또다른 커리어가 되어주어야[46] 그나마 협상을 시도해볼만한 게 현실이다. 이러한 조건들을 보았을 때 본프레레 감독 또한 나이지리아에서의 퍼포먼스와 중동과 아프리카를 오가며 쌓은 경력을 보았을 때 그의 입장에서도 한국 대표팀 감독직은 합리적인 도전이었으며, 대한축구협회 입장에서도 당시 접촉할 수 있는 매물 중에서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었다.[47]

히딩크가 언론을 상대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준 것과 달리 본프레레는 믿음과 신뢰를 보이지 못하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행태와 자신없는 표정을 보였으며, 이렇게 비롯된 언론과 불화가 심했던 것도 경질에 한 몫 했다. 경질될 즈음에는 아예 언론에서 대놓고 매장을 해버린 수준이다.[48]

그리고 그를 지지해 줄 강력한 인맥도 없었다. 히딩크는 비록 부임 당시 기세가 좀 꺾이긴 했지만 이미 세계적인 감독이었고[49] 그와 한배를 탄 정몽준 회장 이용수 기술위원장[50]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었다. 하지만 본프레레는 선수 시절은 물론이고 감독 경력 대부분도 비주류였기 때문에 그와 친분이 있는 축구계 인물들 중에 국제적으로 위상이 높은 사람들은 거의 없다.[51] 나이지리아의 은완코 카누 제이제이 오코차 정도가 그의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고, 이들이 분명 유럽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인 아프리카 선수들이 맞지만, 2000년대의 디디에 드록바 사무엘 에투,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마이클 에시엔, 그리고 현재의 사디오 마네 모하메드 살라 정도로 국제적 위상이 높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와 인연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엔 판 마르베이크가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기 전이었기에 한국에서는 페예노르트 시절 UEFA컵에서 우승하고 송종국을 지도했던 감독이라는 점 외엔 인지도가 썩 높은 편도 아니었고, 재정난으로 암흑기에 시달리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감독으로 활동할 때에도 별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리고 이건 본프레레 본인 스스로도 생각도 하기 싫었는지 아예 언급조차도 하지 않았다. 슈틸리케는 비록 감독으로는 좋은 소리를 전혀 못 들었지만, 이래봬도 선수 시절엔 레알 마드리드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맹활약했을 정도로 본프레레와는 비교하기도 힘들 정도로 굉장히 유명한 선수였기에 인맥이 차원이 다르다. 따라서 이렇게 감독의 국제적 인맥이 부족하면 월드컵 본선 준비에 다소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52] 결과적으로 이래저래 불운한 감독이었다.

본프레레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노력하는 3류 감독으로 평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본프레레호의 성적을 자세히 보면 아시아팀을 상대로 고전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스웨덴, 콜롬비아, 독일, 파라과이 등의 강팀 혹은 강호급 팀들에게는 1승 2무 1패 상당한 선전을 펼쳤다. 특히 아시아 최초로 A매치에서 독일을 상대로 3:1 완승을 거둔 것과 스웨덴, 콜롬비아에 선제골을 넣은 것은 2016년까지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일 본프레레가 2006 독일 월드컵까지 맡고 이동국이 부상을 당하지 않아서 본선에 같이 갔다면 한국팀은 더 호성적을 냈을지도 모를 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들이 삽질할 때마다 그와 비교를 하기도 하는데, 2017년, 슈틸리케호의 개막장스러운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경기들 때문에 슈틸리케와는 비교가 안 된다. 축구협회로부터의 지원은 슈틸리케호가 더 많았고, 연봉도 20억원으로 본프레레의 2배나 되었으며, 팀을 지도한 기간도 훨씬 더 길었다. 허나 본프레레는 언론의 십자포화를 받으면서도 어렵지 않게 월드컵에 진출시켰는데 반해 슈틸리케는 중국, 카타르 등 조 내의 약체 팀들에게도 패배하며 탈락 위기에까지 처하게 만들고 결국은 해고되었다. 물론 나중에 신태용 감독으로 어찌어찌해서 겨우 본선에는 갔지만 말이다.

또한 본프레레는 K리그 관람도 슈틸리케보다 훨씬 많이 했고, 형식적인 관람이 아니라 필요하고 검증이 된 선수를 잘 골라서 썼으며[53], 팀에 대한 애정도 매우 깊었다. 자세한 건 이 문서를 참조하면 된다. 슈틸리케는 2016년 10월 이란 원정경기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패배한 후 한 인터뷰에서 "나는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떠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없고 무책임한 발언까지 하며 팀에 대한 책임감과 애착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음을 스스로 드러내기까지 했다. 또한 2015 AFC 아시안컵 호주에서 상당히 좋은 활약을 보였다고는 하지만 나이가 너무 많아 전성기가 다 지났고 한쪽 눈이 실명되어 공간 감각이 떨어지며 부상에서 회복한지 얼마 안 되어서 K리그에서도 심각하게 부진하고 있는 곽태휘를 기술위의 반대에도 뽑고 선발로 기용까지 하여 카타르전 패배의 큰 원인을 제공하는 등 말도 안 되는 선수 기용까지 생각하면 본프레레랑 비교하는 건 본프레레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다. 곽태휘 뽑으면 안 된다고 기술위에서 말했는데 뽑았다는 기사.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일어난 대이변 덕분에 다시 재조명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편 감독 사퇴 이후 오랜 기간 대한민국 대표팀의 기술고문 및 코치 자리에 있었던 허정무는 '그 동안 거쳐간 외국인 감독들에게는 제각각 배울 점이 있었지만, 본프레레 감독에게만은 본받을만한 부분이 전혀 없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허정무나 본프레레나 하나같이 악의적인 들이 많은 인물들이기 때문에 이래저래 왜곡당하기 좋은 발언인데, 사실 허정무 입장에선 맞는 말이고, 본프레레 입장에선 억울한 말이다.

본프레레 이전 거쳐간 외국인 감독들이라고 해 봤자, 데트마어 크라머(1991 ~ 1992), 아나톨리 비쇼베츠(1994 ~ 1996), 거스 히딩크(2001 ~ 2002), 움베르토 코엘류(2003 ~ 2004) 4명이 고작인데다, 이들은 모두 자국 축구계의 거물들이다. 크라머 감독은 과거 한국 축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독일 축구, 말하자면 본가의 적장자였고, 비쇼베츠는 소련 축구의 계승자이다. 히딩크 감독이야 두말하면 입이 아플 토탈 풋볼 네덜란드, 코엘류 감독은 포르투갈 출신이다. 우물 안 개구리 신세였던 대한민국 축구계로선 감독이 외국인으로 바뀔 때마다 신세계를 항상 경험했던 셈이다. 반면 본프레레는 네덜란드인이긴 하지만 주로 아프리카 쪽에서 경력을 쌓았기에 네덜란드 축구계의 중심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그렇다고 본프레레가 마냥 시시한 감독은 절대로 아니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축구 나이지리아 팀으로 금메달을 땄기에 최소한 필립 트루시에[54]와 비쇼베츠랑 동급이다. 올림픽 금메달은 아무나 따나? 거기다 아프리카 대륙의 축구 최강국을 다루는 대회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도 코치로 우승 경험 한 번, 감독으로 준우승 경력이 한 번 있다. 유럽이나 남미와 비교하면 모를까 흔히 대중들이 아프리카 축구에 대해서 저평가를 자주 해서 그렇지 이들은 피지컬과 스피드부터가 유럽급이라서 아시아보다 높으면 높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55] 단지 유럽에서 경력을 잘 쌓지 않아서 태어난 곳인 유럽 쪽에서는 오히려 듣보, 3류로 인식되고 있었을 뿐이지. 이미 히딩크를 경험한 당시 한국 입장에서는 '히딩크랑 국적만 같은 3류 감독'으로 여겨질 법도 하지만, 본프레레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쾌한 취급이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3차예선부터 레바논에게 역사상 처음 패하면서 경우의 수를 따지며 고전하는 조광래호를 보면서 조봉래 감독이 차라리 더 낫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우습게도 이 본프레레를 마구 까던 게 그 조광래라서 곱배기로 까임 역습 중이다.

그리고 홍명보호 1기가 2014년 월드컵에서 참패 탈락(27등)하면서 재거론되었으며, 본프레레에게는 본받을만한 게 없다던 허정무 알제리 쇼크로 광탈한 홍명보 유임을 하다가 축협 부회장직에서 잘렸다. 이후 브라질 미네이랑의 비극으로 침몰하자 독일을 상대로 승리한 본프레레의 업적이 다시금 추앙받기도 했으며, 그리고 4년 뒤 미네이랑 대첩을 이끈 요아힘 뢰프 신태용에게 후반 추가시간에 그대로 완패한다.

또한 먼 훗날 한국 대표팀 감독이 된 파울루 벤투가 2014년 가을,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결국 자진사퇴 형식으로 경질되었던 행보와 비슷하다.

6. 여담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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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AFC 아시안컵 중국 참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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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現 에이스던마르흐라턴 [2] 2004 아시안컵 4-0 승, 2006 독일 월드컵 최종 예선 홈 2-0 승ㆍ원정 4-0 승 [3]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쿠웨이트는 거의 한국 킬러 수준이었다. 당장 1980 아시안컵 결승에서 0-3으로 대패했으며 1996, 2000 아시안컵에서도 모두 졌다. 그러나 이때를 기점으로 두팀의 상황이 역전되어 쿠웨이트는 한국의 승점자판기 수준으로 전락하고 만다. 본프레레의 업적이라면 업적이랄까. [4] 한국과 일본, 중국은 자동으로 참여하는 대회이니 그냥 꼴찌란 소리다. 그리고 현재까지 한국이 EAFF E-1 풋볼 챔피언십 역사상 4위를 기록한건 이 대회가 유일하다. [5] 원정에서는 0-2로 패하고 홈에서도 0-1로 패했다. 특히 사우디와의 홈 경기는 본프레레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음에도 졸전 끝에 패하면서 결국 이 경기가 본프레레호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6] 사실상 경질 [7] 여기서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한중일이 포함된 동아시아 지역이 오히려 아프리카 - 중동보다도 더 변방이라고 볼 수 있으니, 이런 곳을 전전한다고 해서 일부 축구팬들처럼 국내 감독보다도 역량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아프리카 축구 수준은 피지컬부터가 유럽급이라서 아시아보다 높으면 높지 결코 떨어지지 않으며, 월드컵 32강 본선으로 확대 이후로 조별리그에서 아시아끼리는 같은 조 편성이 될 수 없는 반면, 아프리카와 아시아가 같은 조 편성이 되는 이유이다. 현재 일본 대표팀의 팀 컬러에 큰 영향을 주었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일본을 16강(9위)에 올린 필립 트루시에나 한때 한국 국대 감독으로 유력했던 브루노 메추도 아프리카에서 대부분의 커리어를 보냈다. [8] 좋은을 뜻하는 bon (봉)과 남자 형제를 뜻하는 frère (프레르)의 조합으로 보여진다. [9] 그 덕에 본프레레를 극도로 깐 조광래와도 자주 얽힌다. 본 별명은 당시 WWE에서 맹활약한 프로레슬러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에게도 붙여진다.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의 이니셜이 JBL이기 때문이다. [10] 00:59 부터. [11] 2004년 독일 대표팀을 털 때도 표정 변화가 없었다. 팬들 입장에서는 본프레레가 '쟤네들 왜 이렇게 잘 하냐?'며 황당한 생각을 가진 게 아닌가 싶은 정도였다. [12] 그 이후로 현영민의 대표팀 커리어는 사실상 마감되었다. 다만 아무리 감독이 다혈질이고 유머와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었다 해도 어찌 됐건간에 본인이 어떻게 받아들였냐는 감독 본인만이 알겠지만 사회성이 심각하게 결여되지 않은 이상 선수가 농담조로 말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을 것이고 정말로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수를 아예 뽑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본인이 직접 뽑은 선수에게 You play old 라고 대답한 것도 You shoes old 라는 말에 맞춰 농담조로 대답해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이을용의 플레이가 본인의 철학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을용은 본프레레 감독의 재임기간 내내 대표팀에 선발되지 않았으며 단순히 이 일화 때문에 현영민의 대표팀 경력이 꼬였다고 하기엔 후임인 아드보카트 감독도 현영민을 대표팀에 선발하지 않았고 당시 그의 나이를 고려하였을때 그 이후에도 선발될 수도 있었지만 끝내 대표팀에 뽑히지 못하였다. [13] 한 축구팬이 본프레레가 묵고 있던 그랜드호텔에서 무서운 표정의 본프레레를 발견하고 한참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싸인 요청을 했는데, 별다른 말 없이 싸인을 해주고서는 제 갈 길을 갔다고 한다. [14] 16개국 본선 진출 대회 [15] 거기에 1996년에는 이런 대기록을 바탕으로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 사커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팀에 선정되기까지 하였다. 그것도 무려 유로 1996 우승을 차지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한 유벤투스 FC를 제치고 수상하였다. [16] 3B의 그분 맞다. [17] 실제로 당시에는 축알못이 작성한 이런 식의 글이 여러 포털 댓글이나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경질론이 우세해졌다. 그때는 전임 히딩크의 기억이 너무나 선명했기 때문에, 웬만한 감독은 대중의 성에 차지 않았고, 이런 식의 선동이 잘 먹혀들어갔다. [18] 2024년의 대한민국 대표팀을 생각해보면 더 명확하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황희찬 등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화려한 선수 구성으로 아시안컵에 나갔지만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의 없다시피한 전술이 이 선수들의 장점을 모조리 깎아먹으며 결국 졸전 끝에 대회 우승에 실패했다. [19] 당시 감독이 넬루 빙가다였다. [20] 당시만해도 중국은 지금의 아시아 중위권 수준이 아니었다. 오히려 80년대~90년대 중국은 아시아에서만큼은 이길 팀은 확실히 이기는 팀에 가까웠다. [21] 4위를 기록했지만 플레이오프를 통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이란과는 불과 승점 2점 차였으며 1위로 올라온 사우디아라비아와는 4점차였다. 그러니깐 초반 부진만 아니었으면 월드컵 본선 진출이 가능했단 말이다. [22] 16개국 본선 진출 대회 [23] 대회 8위 [24]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니가가라 16강 슛을 시전한 그 분이 맞다. [25] 결국엔 이란도 아일랜드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득실차로 밀리며 탈락했다. [26] 라이벌 자 말렉도 만만찮은 강팀이지만, 알 아흘리는 이집트 국가대표가 다수 있는 과장되어서 말하면 우승은 밥먹듯이 하는 팀이다. 물론 본프레레 시절 뿐 아니라 이 무렵은 한동안 암흑기였다. [27] 정몽준이 선수 기용에 크게 간섭했다고 밝혔는데, 정몽준은 부인. [28] 2006 FIFA 월드컵 독일 아시아 지역예선을 치를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는데, 팀을 본선에 진출시키고도 2005년 겨울에 있었던 서아시아 경기대회에서 부진한 성적을 내면서 해임되었다. 이후 2006년 봄에는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탈락했으나, 정작 2007년에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에 부임하게 된다. 이후 2008년까지 맡았다. [29] 한국 킬러로 명성이 높은 체코 출신의 감독이자 그 유명한 오만 쇼크 장본인으로, 움베르투 코엘류를 본의 아니게 경질시킨 감독이다. 이후에 바레인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아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조별리그에서 인도네시아에게 져서 탈락 위기에 내몰린 후 다음 상대 한국을 1-2로 꺾어 기사회생하게 만든다. 마찰라 쇼크는 마찰라 감독이 쿠웨이트를 맡았을 때 한국을 꺾었고, 그 이후의 그 유명한 오만 쇼크와 바레인의 역전승을 포함하는데, 이 정도면 가히 카를로스 케이로스와 함께 한국축구계에 천적이자 악연 중에 악연이라고 봐야 한다. [30] 참고로, 당시 나이지리아가 한국과 같은 조에 추첨되었는데, 본프레레 본인으로선 전임 담당 팀을 적으로 만날뻔할 수도 있었다. [31] 한편 라르스 라예르베크 감독은 스웨덴 감독으로 2010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고 나이지리아 감독으로 16강 진출도 못 하였고 결국 사퇴, 이후 아이슬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완전히 한물 감독으로 여겨졌으나 아이슬란드 UEFA 유로 2016에 진출시키는 예상을 뒤엎는 쾌거를 일으키면서 부활했다. 게다가 히딩크 감독이 맡았던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탈락시켜 히딩크는 물론 본프레레에게도 충격을 줬을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2005년 연초 평가전에서 본프레레와 만나 악수를 할 때는 그냥 의례적으로 떨떠름하게 악수를 하는데 이후 연말 평가전 때 아드보카트와 만나 악수를 할 때는 UEFA 유로 2004 때 상대팀 감독으로 만나 안면이 있는 탓도 있고 원래부터 아드보카트가 유명한 감독이라서 그런지 반갑게 악수한다. [32] 다만 영상과 사진은 축구해설이 아닌 별개의 프로그램. [33] 2022년 4월 6일, 나이지리아 축구 연맹(NFF)은 2022 카타르 월드컵 최종 예선 동안 미뤄왔던 후임 감독 선임을 하기 위해 기술위원을 뽑기로 했다. # [34] 당연한 얘기지만 아무리 싫다 한들 자기 밑에 있는 선수한테 대놓고 병신이라고 욕하는 감독은 없다. [35] 그러나 본프레레가 박주영에게 혹평만을 했던 것은 아니다. 박주영이 한창 신드롬을 일으키며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고 있던 시기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주영을 향해 "자신감을 갖고 기량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격려를 해줍시다"(2:52)와 같은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36] 이후 2010년 월드컵에서 원정 첫 16강 진출의 주역으로 성장했던 박주영이 극심한 부진으로 2014년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의 주역이 되고 이후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하게 되면서 본프레레의 예언은 사실이 되었다. [37] 2023년 현재 대한축구협회 천안NFC 건립추진단 운영팀장을 맡고 있는 박일기. [38] 실제로 김진규는 본프레레가 자신을 아끼고 중용했다고 기억하고 있으며, 해외 감독들에 비해 국내 감독들은 전방으로 롱킥을 뿌리는 본인의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39] 외국인에게 김치 먹이기는 물론 먹이는 경우도 많지만, 김치 자체가 하도 유명하고 인지도가 높은 식품이다 보니 허세성으로 외국인 본인이 자청해서 도전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40] 선수 관찰을 위해 김밥 한 줄을 도시락 삼아 전국 곳곳을 누비며 K리그 직관을 다닌 그의 행보는 추후 수도권만 돌아다니며 보여주기식 직관을 한 울리 슈틸리케와 직관은 커녕 K리그, 나아가 한국 축구를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일말의 관심도 가져주지 않고 리그를 폄훼하기까지 했던 위르겐 클린스만과 비교했을 때도 비교가 실례일 수준으로 감독직을 성실히 수행하여 성공 여부 및 호불호와 별개로 정말 열심히 일했던 감독으로 나중에서야 재평가 되었다. [41] 히딩크 이후 가장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친 파울루 벤투 또한 매주 본인 휘하 사단의 코치들과 팀을 쪼개 직관을 다니면서 각 경기장마다 벤투 감독 본인이나 다른 코치들을 경기장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이나 그때나 결국 선수 선발하는데 가장 기본적 요소는 바로 직관을 통한 관찰임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벤투와 달리 본프레레는 직접 데리고 온 사단도 없었고 축구협회로부터 받은 지원도 미미했는데다가 지금처럼 유럽 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시절도 아니었어서 실질적인 유럽파라고 해봐야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정도만 있었던 시절이었다. 사실상 지금의 대표팀과는 달리 대다수가 국내파로 대표팀이 구성이 되었던 시절에 국내파 점검 업무를 혼자 한 거나 마찬가지인 환경 속에서 선수들을 직접 관찰하고 선발하여 월드컵 본선을 어렵지 않게 진출한 것은 분명 그의 업적이라 할 수 있다. [42] 사실 해삼은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이다. [43] 다만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유럽 빅클럽에서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으며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줘 대표팀의 전력과 위상이 올라가자 제시 마시 다비트 바그너와 같이 직전 팀에서 미끌어졌어도 굳이 아시아에 오지 않고 유럽에서 구직이 가능한 감독들도 아쉬운 조건에서도 한국 대표팀을 진심으로 맡고 싶어 본인 휘하 코치진들도 대동하여 지원하는 감독들도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만 니코 코바치 에딘 테르지치에게는 역시 칼같이 거절 당하였다. [44] 대표적으로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부임했던 마르첼로 리피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부임했던 로베르토 만치니가 있으며, 대한축구협회에서 벤투 감독을 선임하기 전 접촉했던 슬라벤 빌리치 키케 플로레스 역시 직간접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을 요구하여 선임이 무산된 바 있다. [45] 대표적으로 유럽 재진입을 목표로 한국에 왔던 벤투가 있다. 또한 클린스만조차 슈틸리케 경질 이후와 벤투 감독 선임 당시 정몽규의 지시로 접촉을 시도하였으나, 당시 클린스만은 아직까지 유럽에서 구직이 가능했던 입지였어서 단칼에 거절하였다. 이후 헤르타 BSC에서 페이스북 라이브 사퇴라는 대형사고를 치며 감독 생명이 완전히 끝장이 나고 나서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부임하였다. [46] 본프레레 선임 이전 먼저 구두 합의가 되었으나 위약금 문제와 가족의 초강경 반대로 끝내 무산된 세네갈 쇼크의 주인공 브루노 메추와 모로코와 사우디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에르베 르나르 감독 등이 있다. [47] 선술한 대로 메추는 위약금 문제와 배우자의 초강경 반대 문제로 선임이 무산되었고, 함께 후보군에 올랐던 자케는 사실상 지도자 은퇴를 한 상태였으며, 비엘사 스콜라리는 각자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에 재직 중이었기에 애초에 후보군에 있다는 거 자체부터가 말이 안 되었다. [48] 심지어 경질 전 지상파 뉴스에서 본프레레를 까는 뉴스를 내보냈을 때 처음으로 틀어준 자료 화면이 히딩크 시절 2002 월드컵 영광의 순간들을 먼저 보여준 후 본프레레 체제 하에서 선수들이 삽질하는 장면만 줄창 모아 아예 화면까지 흑백처리해서 내보내며 이 모든 게 마치 일방적으로 감독 탓인 양 선동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게 좀 어이없는 게 2002 월드컵 영광의 순간과 그런 식으로 비교한다면 역대 그 어떤 감독들도 다 무능한 것처럼 비쳐진다는 것이다. 당시 이 뉴스를 시청한 축빠들도 본프레레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런 악의적인 편집을 두고 '역시 언론이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 건 일도 아니네'라고 혀를 차며 언론을 책망했을 정도였다. [49] 2002 월드컵 직전 잉글랜드와 평가전을 할 때 스벤예란 에릭손 감독이 히딩크와 반갑게 악수를 하고 그 다음에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히딩크 감독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참고로 당시 잉글랜드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과 유니폼 교환을 거부하는 등 한국 선수들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으로 잠깐 인터넷에서 말이 많기도 했다. [50] 1라운드 통과 못한 최초의 개최국이 되지 않기 위해 이들이 내놓은 특별 대책이 외국인 감독이었다. 만일 히딩크가 낙마하면 그를 영입한 이용수와 정몽준의 입지도 흔들리게 돼 있었다. [51] 참고로 히딩크는 한국 대표 감독 선임 당시 자신의 죽마고우 빔 얀선을 지지했다. FC 코리아 빠들은 본프레레 - 아드보카트 - 베어벡을 전부 국적이 같다는 이유로 더치 커넥션으로 엮지만, 본프레레는 후임 감독들과 달리 히딩크와 교분이 두텁지 않았고, 히딩크 변호 찬스로 위기를 모면하는 혜택도 누리지 못했다. [52] 사실 2013년 선임되었던 홍명보는 당시 국내파 감독에 비해 해외 인맥이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기도 했다. 전임자들인 조광래 최강희 차범근과 홍명보에 비하면 세계적으로 명성이 알려지고 해외 인맥이 있는 편은 아니다. [53] 특히 이동국이 본프레레가 떠난 후 무려 15년 가까이 된 현 시점까지도 K리그에서 꾸준한 걸 넘어 매년 두 자리수 득점을 할 정도로 레전드급에 오른 건 본프레레의 공이 상당하다. 본프레레가 부임할 당시 이동국은 그나마 광주 상무(現 김천 상무 FC)에서 활약하는 정도였지 사실상 대표팀에 발탁될 가능성이 0에 가까웠지만, 본프레레가 재발탁하여 기회를 지속적으로 준 결과 재임 내내 가장 큰 활약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에 큰 힘이 되어줬고, 이후 K리그를 호령하는 레전드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54] 2002년 월드컵 일본 감독이며, 일본을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 우승,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준우승, 2002년 월드컵 16강(9위)를 기록하였으며, 주로 아프리카에서 감독 생활을 했다. [55] 그래서 월드컵 32강 본선이 확대된 이후로 조별리그에서 아시아끼리는 절대로 같은 조 편성이 될 수 없는 반면 아프리카와 아시아가 같은 조 편성이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