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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290><colcolor=#ffffff> 울산 HD FC No. 19 | |||||
김영권 金英權 | Kim Young-Gwon |
|||||
출생 | 1990년 2월 27일 ([age(1990-02-27)]세) | ||||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용정동 (現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용정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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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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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김해 김씨 (金海 金氏) | ||||
신체[1] | 키 185cm / 체중 78kg / O형 | ||||
포지션 | 센터백 | ||||
주발 | 왼발[2][3] | ||||
등번호 | 대한민국 대표팀[4][5] | 19 | |||
울산 HD FC[6] | |||||
소속 | <colbgcolor=#004290><colcolor=#fff> 선수 |
FC 도쿄 (2010~2011) 오미야 아르디자 (2011~2012)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2012~2018) 감바 오사카 (2019~2021) 울산 HD FC (20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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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112경기 7골 ( 대한민국 / 2010~ )[7][8] | ||||
링크 | [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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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290><colcolor=#ffffff> 학력 |
전주조촌초등학교 (졸업) 전주해성중학교 (졸업) 전주공업고등학교 (졸업) 전주대학교 예체능대학 (체육학 08 / 중퇴) |
|||
종교 | 무종교 | ||||
가족 |
배우자 박세진(1991년생) 장녀 김리아(2015년 9월 6일생) 장남 김리현(2017년생) 차남 김리재(2020년 12월 29일생) |
||||
병역 |
예술체육요원 ( 2012 런던올림픽 축구 동메달) |
||||
MBTI | ESFP | ||||
연봉 | 15억 3,000만 원[10] | ||||
후원사 | 미즈노 코리아[11][12]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울산 HD FC 소속 수비수.대한민국의 15번째 센추리 클럽 가입자이며 2010년에 데뷔한 이후 2018 러시아 월드컵, 2022 카타르 월드컵의 3차전[13]에서 모두 득점하며 두 기적을 이끈 선수다.
2. 클럽 경력
자세한 내용은 김영권/클럽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3. 국가대표 경력
자세한 내용은 김영권/국가대표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4. 플레이 스타일
중앙 수비수로서는 희소성 높은 왼발잡이로 풋살 선수 출신이라 발재간이 좋고 볼터치가 부드럽다. 왼발로 뿌려주는 안정적인 패스를 통해 후방 빌드업 상황에서 좋은 옵션이 되어줄 수 있다. 감바 오사카 시절에는 드리블로 상대 공격수를 제친 후 정확하게 넘겨주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무엇보다, 현대 센터백으로서 가져야 할 필수 능력인 수비 지능이 매우 뛰어나다. 태클의 타이밍 예측은 물론, 언제 어느 위치를 선점해야 하는지를 적절히 판단해 수준 높은 커팅으로 자신보다 신체적으로 우월한 수비수들보다 더 나은 안정감을 보인다. 본디, 이러한 지능적인 면모를 활용하는 커맨더형 센터백이었지만, 대표팀 선배 홍명보와 달리 세밀한 패스 선택과 경기를 읽는 시야가 부족해서 빌드업 능력은 그저 그런 편이었다. [14][15]
한때는 풀백으로 쓰였을 만큼 발이 빨랐다. 다만 수비수임에도 피지컬을 이용한 1대1 수비, 제공권 장악, 버티는 힘 등 186cm의 작지 않은 키에 비해 다른 신체 능력은 평범하다. 키에 비해 신체 능력이 떨어진다는 약점은 같은 커맨더형 센터백인 홍정호와 장현수와도 공유하는 부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홍정호와 짝을 이뤘던 2014년 쯔음에 이 약점이 두드러져서 고생했다. 2017년까지는 광저우 헝다에서 뛰다 생긴 부상으로 인해, 회복 후에 폼이 크게 죽어버려서 국가대표팀에서 장현수와 함께 '자동문 수비 듀오'라는 멸칭이 붙었을 정도로, 형편없는 수비력을 보여주었다.[16]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시기에는 명단 제외 후에, 스스로 신체 능력을 보강하여 다시 명단에 뽑히게 되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각성했다. 수비 스킬과 센스를 바탕으로 각을 좁히는 수비를 하다가도, 필요할 때에는 전투적으로 달라붙어 적극적으로 경합하고 긴 다리를 이용해 뒤에서도 과감하고 정확하게 태클을 걸어 수비하는 투지 넘치는 센터백으로 진화했다. 적당한 타이밍에 달려들어 공을 슥 뺏어 낸 뒤 발재간을 이용한 드리블을 동반해 전방으로 이어 주는 모습이 상당히 안정적이며, 스타일 변화를 성공적으로 해내면서 더 인정받는 부분. 다만 각성한 후에도 간간이 잔실수가 나오긴 했다.
2021년을 기점으로, 점차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주력과 체력이 많이 감소했으며, 부상도 젊은 시절에 비해서 잦아졌다. 이러한 신체 능력 저하로 인한 기량 저하를 본인도 인지를 했다고 언급했을 정도.[17] 다만 이는 젊은 시절과 비교한 것이다. 2022년 울산으로 이적한 뒤에는 K리그 내에서 수위급 센터백의 활약을 보여주었다.[18] 소속팀에서의 입지는 최상, 단순 주전이 아닌 수비진의 핵심으로 꾸준히 활약하고 있고 K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센터백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피드가 떨어졌지만, 센터백으로서 여전히 나쁘지 않는 속도를 보여준다.[19] 애초에 피지컬보다도 수비 지능이 주무기인 센터백이기에 수비에 베테랑으로서의 노련미가 더해졌다. 무엇보다, 경험이 쌓여감에 따라 빌드업과 경기 조율 및 수비 조율 능력이 매우 상승했다. 감바 오사카 시절에는 국내에서 J리그 경기를 보는 사람이 적어 모르는 사람이 많았지만, 울산 현대 이적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한 빌드업 능력과 경기 조율 능력을 보여주며 많은 국내팬들에게 놀라움을 주고 있다. 2023년 6월 기준으로 3개월 연속 패스 효율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빌드업 능력을 자랑한다.
발목 힘도 상당히 괜찮아서 슈팅도 곧잘 때린다. 간혹 무회전 프리킥이나 중거리슛을 통해 득점을 하나씩 넣어주는 클러치 능력을 보여주기도 한다.[20] 특히 이러한 김영권의 클러치는 월드컵이라는 규모가 큰 국제 무대에서 더욱 두드러졌는데, 2018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결승골, 2022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전 동점골이 대표적이다.[21]
4.1. 김민재와의 팀워크
2018년을 기점으로 각성한 김영권이 대표팀 주전에서 내려온 2023년까지 센터백 파트너로 함께 활약한 김민재와 플레이 스타일을 비교해보자면, 김민재는 후방에서부터의 짧고 세밀한 패스보다는 전방에 강한 롱패스를 넣는 걸 선호하고, 수비 시 막아야겠다는 판단이 서면 라인을 깨고 올라가서 적극적으로 압박해서 확실한 태클과 뛰어난 헤딩으로 잘라먹거나 상대 공격수와 경합하며 상대팀 공격의 맥을 끊는 스타일을 보여준다. 상대의 역습시에도 측면에서 침투하는 상대 공격수에게 전혀 꿇리지 않는 속력으로 따라 붙어 경합하고 가로채거나 커트해내는 식으로 수비한다.반면, 김영권은 짧고 세밀한 패싱을 주로 하며, 종종 김민재처럼 올라가서 압박하는 플레이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김민재보다 피지컬이 떨어지기 때문에 패널티 박스에서 지키는 수비를 하며 뛰어난 블로킹 능력을 이용한 안정적이고 깔끔하면서 정확하게 공만 걷어내는 태클을 자주 보여준다. 역습시에도 김민재가 상대에게 붙어서 경합하는 동안 김영권은 후방에 머물러 뒷공간을 커버한다.
즉, 김민재와는 다르면서도 서로 보완해줄 수 있는 스타일이라는 점이 크나큰 장점이다. 김민재의 피지컬과 김영권의 노련함, 김민재의 파워와 김영권의 세밀함, 김민재의 모험성과 김영권의 안정성이 적절한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 서로의 장단점을 커버하고 조율하면서 김영권-김민재 중앙 수비라인은 2002년 이후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안정성을 자랑했다.[22]
4.2. 총평
2018년 이후 기준으로, 김영권은 수비 지능, 태클, 가로채기, 슈팅 블로킹, 주력, 킥력, 패스, 빌드업, 경기 조율, 축구 지능 등 모든 능력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국내 최상위권 센터백이다. 김영권은 비록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실패와 후술할 2017년 이란전 실언을 비롯한 대표팀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큰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에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단점을 끊임없는 노력으로 보완함으로써 2018 러시아 월드컵부터는 뛰어난 활약으로 세간의 평가를 뒤집더니, 국내 최고의 센터백 자리까지 오르고 센추리 클럽에도 가입한 대기만성형 수비수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란 것과 선수의 커리어는 선수 생활이 끝날때까지 모른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선수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늘 대표팀의 핵심 자원인 점, 그리고 무엇보다 2018 러시아 월드컵과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의 득점으로 한국 축구사의 드라마같은 기적들을 일궈내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에서[23] 홍명보 다음가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받는다.[24][25]5. 기록
5.1. 대회 기록
- FC 도쿄 (2010~2011)
- 스루가 은행 챔피언십: 2010
-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2012~2018)
- 중국 슈퍼 리그: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 중국 FA컵: 2012, 2016
- 중국 슈퍼컵: 2016, 2018
- AFC 챔피언스 리그: 2013, 2015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EAFF E-1 풋볼 챔피언십: 2015, 2019
5.2. 개인 수상
- EAFF 동아시안컵 최우수 수비수: 2015
- AFC 챔피언스 리그 드림팀: 2015
- 중국 슈퍼 리그 올해의 팀: 2013, 2014, 2015, 2016
- KFA 올해의 선수: 2015
- K리그1 MVP: 2023
- K리그1 베스트 XI: 2022, 2023
5.3. 통산 기록
5.3.1. 국가대표
-
2024년 1월 15일 기준.
연령
|| 경기
|| 득점
||대한민국 | U - 17 | 0 | 0 |
U - 20 | 20 | 2 | |
U - 23 | 23 | 0 | |
A 대표 | 105 | 7 | |
통산 | 154 | 9 |
6. 김영권에 대한 말,말,말
김영권은 레알-맨유-바르샤 급이다. 절대 이적시킬 수 없다.
마르첼로 리피
마르첼로 리피
김영권은 침착하고 센스가 가장 빠르면서 특출한 축구 기술을 가진 선수입니다. 경기장 안에서는 조용히 침착하게 뒤에서 기둥 역할을 해주고요. 타고난 능력이 있어서 팀에 가장 많은 도움이 되는 선수입니다.
정즈
정즈
김영권과 같이 발기술이 좋은 센터백은 드물다.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7. 논란
7.1. 월드컵 예선 이란전 실언
워낙 관중 소리가 크다 보니까 경기장 안에서 사실 소통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뭐 소리 질러도 잘 들리지도 않고
근데 이제 소통을 저희가 계속 연습해 왔는데 그 부분이 잘 들리지 않아서 너무 답답했고
워낙 커서 소통이 잘되지 않아 연습한 걸 제대로 펼치지 못했습니다.
김영권, 2017년 8월 31일 이란전 직후 인터뷰
상황은 이렇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9차전 이란과의 경기에서 한국은 1명이 퇴장당한 이란을 상대로 유효슈팅 한 번 못 날리는 졸전을 펼친 끝에 0:0으로 비겼다. 이것만으로도 축구팬들이 분노할 상황인데, 김영권은 경기 후
"훈련을 하면서 세부적인 전술들을 맞춘 게 있었는데 경기장 함성이 워낙 커서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연습한 걸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라는
망언을 했다.
주장님의 부당주장 여태껏 원정 경기를 가서 상대 팀 팬들의 극성맞은 응원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하는 선수는 여럿 있었다. 또 변명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영권은 홈 경기에서 홈 관중 응원 소리 때문에 경기를 못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홈 어드밴티지라는 개념이 왜 있는지, 또 무관중 경기 징계가 왜 징계로 받아들여지는지 생각해 보면 김영권이 한 말이 얼마나 위험한 발언인지 알 수 있다.근데 이제 소통을 저희가 계속 연습해 왔는데 그 부분이 잘 들리지 않아서 너무 답답했고
워낙 커서 소통이 잘되지 않아 연습한 걸 제대로 펼치지 못했습니다.
김영권, 2017년 8월 31일 이란전 직후 인터뷰
사실 말 자체는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응원 소리가 크면 운동장에서 서로의 말이 안 들리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 그러나 이 발언은 프로 선수로서의 자기 부정이자 평일임에도 시간을 쪼개고 입장료를 지불하며 상암을 가득 채우고 목청껏 응원해 준 6만 명의 관중들의 진심과 정성을 모욕하는 행위이며, 더 나아가 평소 김영권에게 애정을 갖고 응원한 모든 이들에 대한 배신이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모든 프로 스포츠는 종목을 불문하고 팬들의 관심과 투자로 그 근간이 유지되는 사업이다. 스포츠 구단에 투자하는 기업들도 대중의 관심과 지지가 있고 여기에 마케팅 효과를 누릴 수 있어서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프로 스포츠가 없더라도 얼마든지 각자의 취향에 따른 다른 방향으로 관심과 자본을 투자하며 생활할 수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없어진 프로 선수는 자신의 생계와 커리어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된다.[26]
사족으로라도 김영권의 발언을 반박하자면 반례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당시의 히딩크호를 들 수 있다. 2010년대 후반인 지금까지도 소위 신화로 일컬어지는 당시 월드컵 신화의 원동력 중 하나는 매 경기마다 관중석을 붉은색으로 물들인 홈 관중의 열광적인 응원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히딩크도 훗날 인터뷰에서 붉은 악마 덕분에 4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애당초 전 세계의 모든 스포츠 팀들은 자신의 팬들이 경기를 더 많이 직관하러 와서 선수단의 사기를 올려주기를 바라지 이를 방해 요소로 바라보는 시선은 전무하다. 또한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훨씬 시끄러운 부부젤라 소리가 경기 내내 따라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없이 주장으로서 대표팀을 이끌었던 박지성의 사례도 있다. 과거가 아닌 최근의 사례만 봐도 번리 FC, 스토크 시티 FC 등 이런 팀들은 중하위권 팀들이다. 하지만 이 팀들을 상대로 원정을 오는 강팀들은 홈 팀의 어마어마한 응원 열기에 기가 눌려 고전하기 일쑤다. 이들보다 더 하부 리그에 소속된 밀월 FC는 훌리건을 위시한 관중들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압박감 탓에 컵 대회에서 상대하는 상위 리그 팀들도 매우 힘들어한다. 그만큼 홈 어드밴티지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거기다가 이 발언은 더더욱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해당 경기는 대한축구협회, 신태용 감독, 기자들까지 나서서 대대적으로 팬들의 직관을 독려했던 경기였기 때문이다. 기자들도 홈 팬들의 응원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뜨겁지 않으니 조금만 더 응원해 달라고 기사를 썼고, 신태용도 상암을 붉은 물결로 채워야 한다고 발언했으며, 축협도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서 이란을 상대로 본때를 보여주는 것에는 관중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팬들에게 호소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 상태가 좋지 않다고 권고를 미리 받았음에도 신태용이 상암으로 경기장을 밀어붙인 이유 역시 대량의 관중을 동원하여 이란에게 위압감을 줌으로써 홈 어드밴티지 효과를 노린 것이다. 애초에 현재 한국 대표팀의 성적이 좋지 않아서 팬들의 기대도 사그라들어 있는 판이었지만, 그래도 상대 팀에게 기죽지 말라고 감독과 관계자들의 도와달라는 호소에 응답하여 평일 밤이라는 다소 부담스러운 시간대에도 일부러 응원하러 갔던 것이다. 좋은 경기력을 보이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본인들을 도우러 온 홈 팬들을 졸전의 변명거리로 팔아버린 김영권의 해당 발언은 배은망덕의 끝이라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거기다가 결정적으로 이 경기는 카를로스 케이로스의 주먹 감자 사건으로 그에게 앙금이 있던 관중들이 "이란에게 한국 팬들의 기세를 보여 주자!"라고 하여 이란에게만 야유를 퍼부었지 한국을 욕하거나 야유하거나 비매너 짓을 하는 관중은 당연히 없었다. 가족 욕을 하거나 개념 털린 짓거리를 하는 무개념 관중을 상대로 닥돌이나 비난을 해도 논란이나 문제가 되는 판에, 그냥 자기들을 응원했을 뿐인 홈 팬들을 단지 시끄럽다는 이유만으로 문제 삼고 있으니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 심지어 해당 경기는 부부젤라, 꽹과리, 북처럼 소음을 유발하는 응원 도구가 대대적으로 동원된 것도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네티즌들은 다비드 루이스의 미네이랑의 비극 후 인터뷰를 비교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미네이랑의 비극은 김영권의 상황보다 훨씬 더 안 좋았는데, 지지는 않았던 한국과 달리 브라질은 패배, 그것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준결승에서 7:1로 패배한 상황이었으며 루이스 본인도 패배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면서 비난을 받았다. 브라질은 대회 내내 우승을 하지 못하면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분위기였는데다 그런 와중에도 재미있는 축구를 하지 않으면 관중들이 야유하는, 그야말로 선수들이 진짜로 홈 관중들에게 상당한 압박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루이스는 관중 탓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 주지 못했음을 사과했다. 물론 만약 루이스가 김영권처럼 관중들의 함성 소리 때문에 우리의 플레이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면 루이스는 국대 커리어는 물론이고 일상 생활조차 힘든 상황까지 왔을 지도 모른다.[27]
게다가 마침 이 발언이 나오고 바로 다음 날인 9월 1일, 종목은 다르지만 같은 프로 선수인 롯데 자이언츠의 손아섭이 경기 후 인터뷰에서 "(관중들이 많이 와서) 야구장이 시끄럽다 보니까 타석에서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팬들의 응원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된다"라는 발언을 남겼다. 인터뷰 영상[28] 손아섭이 김영권의 발언을 의식하고 일부러 저렇게 말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워딩을 보면 확실히 의식하고 말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 대비되는 모습 때문에 대중들은 김영권의 발언을 더욱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다른 종목보다 정숙함을 생명으로 하는 양궁 경기의 경우 박성현은 2008 베이징 올림픽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개최국 중국의 장쥐안쥐안을 만나 중국인 관중들의 비열한 방해 공작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져 패배해 대한민국 여자 양궁의 올림픽 불패신화에 종지부를 찍었음에도 중국인 관중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김영권의 발언으로 인해 경기 전부터 관중들을 끌어모으던 축협의 노력은 완전히 허사가 되었으며, 그를 주장으로 임명한 신태용도 '이런 놈이 주장이니 국대가 그 모양이지'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한 명의 실언으로 인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다음 날 급히 태세를 바꿔 사과문을 올렸으나 여론을 바꾸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 게다가 이 인터뷰 내용도 논란이 있었는데, 다음부터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게끔 훈련하겠다(...)고 밝혔기 때문. 결국 관중 때문에 시끄러워서 경기에 방해됐다는 뜻은 철회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사과가 아니라 비아냥거리는 거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로써 김영권의 완전한 흑역사로 확정됐다. 차라리 큰 함성 소리에 긴장이 너무 되어서 플레이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면 모를까...[29]
여담으로 김영권은 4년 전 이란전에서 본인의 실수로 결승골을 내주고 패배했을 때 '응원해 주신 팬 분들께 감사드린다, 모든 건 자신의 책임이고 죄송하다'라는 글을 트위터에 기재한 적이 있다.
2018년 6월 11일, 세네갈과의 월드컵 직전 비공개 평가전에 선발 출전하여 2실점했다. 무관중 경기라 동료 선수들과의 소통이 안 되었다는 변명마저 통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계정을 또 비공개로 전환하며 성난 팬들의 비난에 대해서는 말디니 뺨치는 월드클래스 수비력을 보여 주었다.
해당발언 다음날 인천공항에서 진행된 우즈베키스탄 원정출국전 인터뷰에서 그런 의도로 말한게 아니었다고 울먹이며 인터뷰했다. #
해당 실언 이후 김영권이 제일 좋아하는 동료 선수가 고요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퍼지기도 하였다. #
다행히 이후 2018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승리의 주인공이 되자 이 발언에 대한 비난 여론은 그 즉시 자취를 감췄다. 오히려 영권이 형 집중하게 다들 닥치자(…)는 드립을 치는 지경이 됐다. 축빠들도 라디오 스타에서 랩 실력을 보여주자 '국힙원탑 비 콰이엇'이라는 드립을 칠 정도로 크게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매우 중대한 활약을 하자 아예 실언을 했다는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는 지경이 되었다(...).
8. 여담
- 그야말로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서 새옹지마, 대기만성이라는 고사성어들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3년 6월 18일 이란전 참패의 원흉이었고,[30] 4년 후에는 바로 윗 문단에 나오는 실언까지 저지르며 국민적인 비판을 들었다. 러시아 월드컵이 개막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김영권을 향한 비판의 정도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트롤러 장현수[31]나 훗날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롤러스케이트에서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악의 트롤러로 등극하게 될 정철원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들어서자 파트너 장현수가 열심히 삽질하는 와중에 단단한 수비력으로 수비진을 지탱하며 평가를 조금씩 바꾸더니, 2018년 6월 27일에는 전차군단 침몰의 주역이 되었다. 거기에 2022년 12월 3일에는 또 다시 강호 포르투갈을 상대로 역전의 발판이 되는 동점골을 넣으면서 대한민국이 16강으로 진출한 기적의 주역이 되었고, 아울러 본인도 16강전에 출전하여 센추리 클럽에 가입해 대한민국 대표팀의 올타임 레전드로 남게 되었다. 정말이지 새옹지마도 이런 새옹지마가 없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에 대한 댓글을 많이 보는데, 러시아 월드컵 시작까지만 해도 자신에 대해서는 대체 쟤를 왜 뽑는 거냐는 등의 악플들 밖에 없었다가 스웨덴전 이후부터 갑자기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 2015 AFC 아시안컵 호주 결승전이 있기 하루 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의 부진은 부상을 안고 출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알제리전 직전 몸을 풀 때도 걸음걸이가 어색해 다리에 테이프를 마구 감고 나왔다고 하며, 김영권 뿐만 아니라 파트너 홍정호도 튀니지와의 평가전에서 부상을 당해 제대로 된 컨디션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기사가 뜬 후로는 어느 정도 비판 여론이 사그라졌다.[32][33] 최적의 선수단 구상과 전력관리 실패에서 홍명보 감독의 월드컵은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었음을 증명했다.
- 유부남으로, 25살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하였다.[34] 그리고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는데, 2015년 9월 레바논전 이후 딸 김리아 양을 얻었고 2017년에는 큰 아들 김리현 군, 2020년에는 작은 아들이자 막내 김리재 군도 얻었다. 자녀들이 신기할 정도로 아내를 빼다 박았는데, 아내가 미인이라 그런지 자녀들도 외모도 하나같이 매우 출중하다.[35] 김영권 본인 역시도 이를 아는지 자신의 인스타에 아내와 자녀들의 사진을 업로드할 때 외모에 대한 칭찬을 적어놓는다.
- 홍정호와 마찬가지로 가끔 가다 결정적인 실수를 범할 때가 있으며, 이는 그의 평가를 깎아먹는 요인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2014 ACL 4강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광저우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 다음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 예선 최종전이었던 이란전에서도 치명적인 실수로 구차네자드에게 결승골을 허용하여 패배를 하였다.[36]
- 양팔에 레터링 문신이 있는데, 왼팔에는 "오직 나만이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라는 뜻의 영어를, 오른팔에는 "항상 가슴에 새기겠다."라는 뜻의 프랑스 어와 아내 박세진 씨, 첫째 딸 김리아 양의 영어 이름을 새겨 넣었다. 거기에 두 아들까지 얻었으니 리현, 리재 군의 이름 또한 곧 추가될지도 모른다. #
- 광저우에서 마르첼로 리피의 양아들로 불릴 만큼 리피의 총애를 받았다. 당시 광저우 팀 동료인 엘케손도 김영권을 "리피 파파"(리피 아빠)라고 놀릴 정도였다고 한다. 리피가 "영권이의 유럽 진출을 돕겠다"고 말한 것이 단순 립서비스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리피는 2016년 당시 자신의 제자였던 첼시 FC의 안토니오 콘테 감독에게 김영권을 추천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영권이 당시 부상 재활 때문에 폼이 극도로 안 좋았던 터라 성사되지 않은 듯.[37][38]
- 리피와는 달리 후임 감독 파비오 칸나바로와는 궁합이 잘 안 맞는 듯. 2015년 당시 초짜 감독이었던 칸나바로는 김영권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아챔이 아닌 리그에서는 주로 벤치에 앉혔다. 그리고 2018년에도 외인쿼터 때문인지 김영권은 굴라트, 카르발류가 못 나올 때만 선발로 출전했다.
- 고향은 전주지만 부천시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39] J리그 시절부터 가족과 함께 부천시 오정구 여월동에서 살고 있으며 월드컵에 출전해 득점 등의 좋은 활약을 펼칠 때마다 부천시에 플랜카드에 펼쳐진다. 현재도 본가는 부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자신의 이름을 딴 김영권 축구 클럽(YG FC)을 창단해 구단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 클럽의 연고지 역시 부천이다. 참고로 YG FC의 감독은 부천 유공 선수 출신 유상수 감독이고 김영권의 아버지 역시 구단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 피파 온라인 4에서는 12KH에 한국인 센터백임에도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윤석영이 있는 데다 기복이 좀 있어서 그런 듯. 또한 실축에서는 은근 준족이고 왼발 킥도 날카로운데 피파에선 전혀 구현해놓지 않았다는 점도 아쉽다.[40] 이제는 김태영의 등장으로 더더욱 사장될 예정.
- MBTI는 ESFP다.
- 중앙수비수 인데도 곽태휘에 뒤를 이어 '골 넣는 수비수' 라는 별명이 있다. 세트피스 등의 상황에서 득점력이 준수한 편이고, 게다가 본인이 선수 경력에서 득점을 기록한 경기들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역사에 남을 경기들이었다보니 더더욱 팬들에게 인상이 깊게 남을 수 있었다. 두 경기 모두 득점을 기록하고 나서 한쪽 팔로 입을 가리고 달려나가는 골 세리머니를 해서 본인의 상징이 되었다.
9. 둘러보기
울산 HD FC 2024 시즌 스쿼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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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000000,#e5e5e5 |
등번호 | 국적 | 포지션 | 한글 성명 | 로마자 성명 | 생년월일 | 신체 조건 | 비고 | |||||||
1 | GK | 조수혁 | Jo Su-Huk | 1987년 3월 18일 | 187cm, 80kg | ||||||||||
2 | DF | 심상민 | Sim Sang-Min | 1993년 5월 21일 | 172cm, 70kg | ||||||||||
4 | DF | 김기희 | Kim Ki-Hee | 1989년 7월 13일 | 189cm, 83kg |
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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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DF | 임종은 | Lim jong-Eun | 1990년 6월 18일 | 192cm, 85kg | ||||||||||
6 | MF | 보야니치 | Darijan Bojanić | 1994년 12월 28일 | 186cm, 74kg | ||||||||||
7 | MF | 고승범 | Ko Seung-Beom | 1994년 4월 24일 | 173cm, 70kg | ||||||||||
8 | MF | 이규성 | Lee Kyu-Seong | 1994년 5월 10일 | 176cm, 67kg | ||||||||||
9 | MF | 아라비제 | Giorgi Arabidze | 1998년 3월 4일 | 173cm, 69kg | ||||||||||
10 | FW | 김민우 | Kim Min-Woo | 1990년 2월 25일 | 174cm, 66kg |
VC
|
|||||||||
11 | FW | 엄원상 | Um Won-Sang | 1999년 1월 6일 | 173cm, 63kg |
VC
|
|||||||||
13 | DF | 이명재 | Lee Myung-Jae | 1993년 11월 4일 | 182cm, 68kg | ||||||||||
17 | FW | 루빅손 | Gustav Ludwigson | 1993년 10월 20일 | 182cm, 75kg | ||||||||||
18 | FW | 주민규 | Joo Min-Kyu | 1990년 4월 13일 | 183cm, 83kg |
VC
|
|||||||||
19 | DF | 김영권 | Kim Young-Gwon | 1990년 2월 27일 | 185cm, 78kg | ||||||||||
20 | DF | 황석호 | Hwang Seok-Ho | 1989년 6월 27일 | 183cm, 80kg | ||||||||||
21 | GK | 조현우 | Jo Hyeon-Woo | 1991년 9월 25일 | 189cm, 76kg | ||||||||||
22 | MF | 김민혁 | Kim Min-Hyeok | 1992년 8월 16일 | 183cm, 71kg | ||||||||||
23 | DF | 김주환 | Kim Ju-Hwan | 2001년 2월 17일 | 177cm, 70kg | ||||||||||
26 | FW | 김민준 | Kim Min-Jun | 2000년 2월 11일 | 183cm, 78kg | ||||||||||
27 | MF | 이청용 | Lee Chung-Yong | 1988년 7월 2일 | 180cm, 70kg | ||||||||||
28 | FW | 장시영 | Jang Si-Young | 2002년 3월 31일 | 174cm, 69kg | U-22 | |||||||||
30 | MF | 강윤구 | Kang Yoon-Gu | 2002년 4월 8일 | 177cm, 73kg | U-22 | |||||||||
31 | MF | 아타루 | Ataru Esaka | 1992년 5월 31일 | 175cm, 68kg | ||||||||||
32 | MF | 정우영 | Jung Woo-Young | 1989년 12월 14일 | 186cm, 78kg | ||||||||||
33 | DF | 강민우 | Kang Min-Woo | 2006년 3월 2일 | 185cm, 77kg | U-22 | |||||||||
37 | GK | 문현호 | Moon Hyun-Ho | 2003년 5월 13일 | 196cm, 87kg | U-22 | |||||||||
70 | MF | 최강민 | Choi Kang-Min | 2002년 4월 24일 | 176cm, 70kg | U-22 | |||||||||
73 | FW | 윤일록 | Yun Il-Lok | 1992년 3월 7일 | 178cm, 65kg | ||||||||||
91 | FW | 박주영 | Park Chu-Young | 1985년 7월 10일 | 182cm, 75kg | ||||||||||
95 | MF | 마테우스 | Matheus Sales | 1995년 5월 13일 | 178cm, 66kg | ||||||||||
96 | FW | 김지현 | Kim Ji-Hyun | 1996년 7월 22일 | 183cm, 79kg | ||||||||||
99 | FW | 야고 | Yago Cariello Ribeiro | 1999년 7월 27일 | 186cm, 82kg | ||||||||||
<colbgcolor=#003f98> 구단 정보 | |||||||||||||||
대표이사: 김광국 / 감독: 김판곤 / 홈구장: 울산문수축구경기장 | |||||||||||||||
출처: 울산 HD FC 웹사이트 / 최종 수정 일자: 2024년 7월 31일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e6002d>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스쿼드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0px" |
<rowcolor=#ffffff> 포지션 | 등번호 | 이름 | 생년월일 | 출장 | 득점 | 소속 구단 |
<colbgcolor=#0b090c> GK | 1 |
김승규 (Kim Seung-Kyu) |
1990년 9월 30일 ([age(1990-09-30)]세) | 81 | 0 | 알 샤바브 FC | |
12 |
김준홍 (Kim Joon-Hong) |
2003년 6월 3일 ([age(2003-06-03)]세) | 0 | 0 | 전북 현대 모터스 | ||
21 |
조현우 (Jo Hyeon-Woo) |
1991년 9월 25일 ([age(1991-09-25)]세) | 37 | 0 | 울산 HD FC | ||
DF | 2 |
황문기 (Hwang Moon-Gi) |
1996년 12월 8일 ([age(1996-12-08)]세) | 2 | 0 | 강원 FC | |
3 |
이명재 (Lee Myung-Jae) |
1993년 11월 4일 ([age(1993-11-04)]세) | 5 | 0 | 울산 HD FC | ||
4 |
김민재
(Kim Min-Jae) |
1996년 11월 15일 ([age(1996-11-15)]세) | 67 | 4 | FC 바이에른 뮌헨 | ||
14 |
조유민 (Cho Yu-Min) |
1996년 11월 17일 ([age(1996-11-17)]세) | 9 | 0 | 샤르자 FC | ||
15 |
정승현 (Jung Seung-Hyun) |
1994년 4월 3일 ([age(1994-04-03)]세) | 26 | 1 | 알 와슬 FC | ||
16 |
김주성 (Kim Ju-Sung) |
2000년 12월 12일 ([age(2000-12-12)]세) | 2 | 0 | FC 서울 | ||
22 |
설영우 (Seol Young-Woo) |
1998년 12월 5일 ([age(1998-12-05)]세) | 20 | 0 |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 ||
박민규 (Park Min-Gyu) |
1995년 8월 10일 ([age(1995-08-10)]세) | 0 | 0 |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 | |||
이한범 (Lee Han-Beom) |
2002년 6월 17일 ([age(2002-06-17)]세) | 0 | 0 | FC 미트윌란 | |||
MF | 5 |
백승호 (Paik Seung-Ho) |
1997년 3월 17일 ([age(1997-03-17)]세) | 19 | 3 | 버밍엄 시티 FC | |
6 |
황인범 (Hwang In-Beom) |
1996년 9월 20일 ([age(1996-09-20)]세) | 64 | 6 |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 ||
7 |
홍현석 (Hong Hyun-Seok) |
1999년 6월 16일 ([age(1999-06-16)]세) | 14 | 0 | 1. FSV 마인츠 05 | ||
8 |
박용우 (Park Yong-Woo) |
1993년 9월 10일 ([age(1993-09-10)]세) | 18 | 0 | 알 아인 FC | ||
10 |
이재성 (Lee Jae-Sung) |
1992년 8월 10일 ([age(1992-08-10)]세) | 92 | 13 | 1. FSV 마인츠 05 | ||
11 |
문선민 (Moon Seon-Min) |
1992년 6월 9일 ([age(1992-06-09)]세) | 17 | 2 | 전북 현대 모터스 | ||
13 |
이동경 (Lee Dong-Gyeong) |
1997년 9월 20일 ([age(1997-09-20)]세) | 9 | 1 | 김천 상무 FC | ||
17 |
배준호 (Bae Jun-Ho) |
2003년 8월 21일 ([age(2003-08-21)]세) | 4 | 1 | 스토크 시티 FC | ||
18 |
이강인 (Lee Kang-In) |
2001년 2월 19일 ([age(2001-02-19)]세) | 33 | 10 | 파리 생제르맹 FC | ||
20 |
이승우 (Lee Seung-Woo) |
1998년 1월 6일 ([age(1998-01-06)]세) | 12 | 0 | 전북 현대 모터스 | ||
권혁규 (Kwon Hyeok-Kyu) |
2001년 3월 13일 ([age(2001-03-13)]세) | 0 | 0 | 히버니언 FC | |||
FW | 9 |
주민규 (Joo Min-Kyu) |
1990년 4월 13일 ([age(1990-04-13)]세) | 7 | 2 | 울산 HD FC | |
19 |
오세훈 (Oh Se-Hun) |
1999년 1월 15일 ([age(1999-01-15)]세) | 4 | 1 | FC 마치다 젤비아 | ||
23 |
오현규 (Oh Hyeon-Gyu) |
2001년 4월 12일 ([age(2001-04-12)]세) | 13 | 2 | KRC 헹크 | ||
일정 | 2026 FIFA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 2024년 10월 10일(목) | 원정 | 요르단 | |||
2024년 10월 15일(화) | 홈 | 이라크 | |||||
출처:
대한축구협회 2024년 10월 15일 기준 |
1
이범영 · 2
오재석 · 3
김민우 · 4
임종은 · 5
김영권 · 6
홍정호 · 7
구자철 C 8 서용덕 · 9 김동섭 · 10 조영철 · 11 서정진 · 12 김승규 · 13 정동호 · 14 문기한 |
홍명보 코치
박건하 ·
서정원 ·
이케다 세이고 ·
김봉수
|
1
김승규 · 2
홍철 · 3
신광훈 · 4
김주영 · 5
김영권 · 6
홍정호 · 7
구자철 C 8 윤빛가람 · 9 박희성 · 10 박주영 [[와일드카드(스포츠)| W ]] · 11
조영철 · 12
김민우 · 13 장석원 · 14
김정우 [[와일드카드(스포츠)|W ]]15 오재석 · 16 서정진 · 17 윤석영 · 18 지동원 · 19 김보경 · 20 이범영 |
홍명보 서정원 코치
김태영 ·
이케다 세이고 ·
김봉수
|
1
정성룡 [[와일드카드(스포츠)| W ]] · 2
오재석 · 3
윤석영 · 4
김영권 · 5
김기희 · 6
기성용 · 7
김보경8 백성동 · 9 지동원 · 10 박주영 [[와일드카드(스포츠)| W ]] · 11
남태희 · 12
황석호13 구자철 C · 14
김창수 [[와일드카드(스포츠)|W ]] · 15
박종우 · 16
정우영 · 17
김현성 · 18
이범영
|
홍명보 김태영 스태프
박건하 ·
이케다 세이고 ·
김봉수
|
1
정성룡 · 2
김창수 · 3
윤석영 · 4
곽태휘 · 5
김영권 · 6
황석호 · 7
김보경 · 8
하대성 9 손흥민 · 10 박주영 · 11 이근호 · 12 이용 · 13 구자철 C · 14
한국영 · 15
박종우 · 16
기성용17 이청용 · 18 김신욱 · 19 지동원 · 20 홍정호 · 21 김승규 · 22 박주호 · 23 이범영 |
홍명보 김태영 코치
박건하 ·
안툰 두 샤트니에 ·
이케다 세이고 ·
김봉수
|
1
정성룡 · 2
김창수 · 3
김진수 · 4
김주영 · 5
곽태휘 · 6
박주호 · 7
손흥민 · 8
김민우 9 조영철 · 10 남태희 · 11 이근호 · 12 한교원 · 13 구자철 · 14 한국영 · 15 이명주 · 16 기성용 C 17 이청용 · 18 이정협 · 19 김영권 · 20 장현수 · 21 김승규 · 22 차두리 · 23 김진현 |
울리 슈틸리케 코치
박건하 ·
신태용·
카를로스 아르무아 ·
김봉수
|
1
김승규 · 2
이용 · 3
정승현 · 4
오반석 · 5
윤영선 · 6
박주호 · 7
손흥민 · 8
주세종 · 9
김신욱 10 이승우 · 11 황희찬 · 12 김민우 · 13 구자철 · 14 홍철 · 15 정우영 3C · 16
기성용 C 17 이재성 · 18 문선민 · 19 김영권 · 20 장현수 VC · 21
김진현 · 22
고요한 · 23
조현우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15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423f3f; font-size: 0.8em" |
1 김승규 · 2 이용 · 3 김진수 · 4 김민재 · 5 정우영 · 6 황인범 · 7 손흥민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cd313a; font-size: .8em"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15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423f3f; font-size: 0.8em" |
1
김승규 · 2
윤종규 · 3
김진수 4C · 4
김민재 · 5
정우영 3C · 6
황인범 · 7
손흥민 C · 8
백승호 · 9
조규성10 이재성 · 11 황희찬 · 12 송범근 · 13 손준호 · 14 홍철 · 15 김문환 · 16 황의조 · 17 나상호 · 18 이강인 19 김영권 VC · 20
권경원 · 21
조현우 · 22
권창훈 · 23
김태환 · 24
조유민 · 25
정우영 · 26
송민규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15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B090C; font-size: 0.8em" |
1
김승규[1] 4C
· 2
이기제 · 3
김진수 · 4
김민재 3C · 5
박용우 · 6
황인범 · 7
손흥민 C · 8
홍현석 · 9
조규성10 이재성 · 11 황희찬 · 12 송범근 · 13 이순민 · 14 문선민 · 15 정승현 · 16 박진섭 · 17 정우영 · 18 이강인 · 19 김영권 VC 20 오현규 · 21 조현우 · 22 설영우 · 23 김태환 · 24 김주성 · 25 김지수 · 26 양현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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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각주 ] |
[1]
울산 HD FC 공식 프로필 기준으로, 기재된 곳마다 키와 체중의 편차가 큰 편.
[2]
희귀한 왼발 센터백이다. 왼발이라는 이점을 이용하여 클럽과 국대에서 왼쪽 센터백을 전담하고 있다.
[3]
오른발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볼 터치도 오른발로 하는 모습을 경기에서 보기는 거의 드물다. 정말 급할 때만 오른발을 사용하지만 정확도는 괜찮은 편.
[4]
김영권이 사용했던 역대 등번호 (19번)
- 2015 AFC 아시안컵
- 2015 EAFF 동아시안컵
-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 2019 AFC 아시안컵
- 2019 EAFF E-1 풋볼 챔피언십
-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 [5] 그 외 김영권이 사용했던 등번호
4번
- 2012 런던 올림픽
- 2013 EAFF 동아시안컵
5번
- 2008 AFC U-19 챔피언십
- 2009 FIFA U-20 월드컵 이집트
-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6] 소속팀에서 사용했던 역대 등번호
- 전주대학교 - 16번
- FC 도쿄 - 17번
- 오미야 아르디자 - 20번
-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 28번
- 감바 오사카 - 19번 [7] 2024년 9월 5일 기준. [8]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출장 순위 9위 [9] 인스타 해킹으로 인해 2020년 6월 18일자로 인스타 계정을 다시 만들었다.
{해킹당한 뒤 첫 게시물이다. #} [10] K리그 2023년 선수 연봉 공개자료 기준. 한국인 선수 중 연봉 1위, 전체(외국인 포함) 연봉 2위이다. [11] 지금까지 10년동안 김영권을 후원해주고 있는 브랜드다. [12] (2023 k리그 BEST 11 DF)부분에서 수상 소감으로 김영권이 미즈노 후원을 언급하였다. [13] 32강 조별리그 [14] 김영권, 장현수, 홍정호, 김주영, 김기희 등 많고 많은 센터백들 중 한 명이라도 국제 무대에서 통할 만한 볼 배급 능력을 갖췄으면 대표팀이 기성용에 목맬 이유가 전혀 없었다. 기성용을 배제하진 않더라도 상대에 따라 수비력과 활동량이 떨어지는 기성용을 제외하거나, 전진 배치해서 플랜 A를 짜는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플레잉 센터백이라는 세계 축구의 흐름과 김영권의 괜찮은 볼 컨트롤이 맞물려 일어난 일종의 환상. [15] 그래도, 수비진 조율과 빌드업 전개의 지휘자 역할은 장현수라는 최고의 인재가 있었으나, 그는 병역문제로 인해 대표팀에서 영구 제명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했다. [16] 일명 김앤장(...) [17] 감스트와의 합동 방송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18] 당장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그의 파트너였던 동갑내기(1989년생) 홍정호가 2022년 이후로 부상 때문에 경기에 잘 출전하지 못하는 것과 대비된다. [19]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 우루과이전에서 최고시속 31.3km를 기록했다. .[41] [20] 수원 삼성과의 2023년 빅버드 원정 경기에서 미사일같은 중거리포 득점으로 울산 데뷔골을 넣기도 했다. [21] 두 골 모두 상대팀 선수의 어시스트(?)를 받아 골을 넣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22] 김민재가 향후 국대를 이끌 세대교체의 중심이라면, 김영권은 국대를 마무리할 맏형 라인이라는 대비점도 상당히 재밌는 점. [23] 카잔의 기적& 아라얀의 기적 참고 [24] 1990년, 1994년, 1998년, 2002년 월드컵에서 핵심으로 활약하고 브론즈볼을 수상한 홍명보는 넘지 못했다는 평가가 주. [25] 김민재는 스피드, 몸싸움, 빌드업 등 전체적인 기량이 김영권보다 앞서있는 선수이고 축구 국가대표팀과 클럽팀에서의 활약을 종합해보면 유럽에서도 탑클래스의 경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김영권보다 김민재가 더 뛰어난 센터백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두 번의 월드컵 본선에서 부상으로 크게 활약으로 보이지 못한 점(2018년 러시아 월드컵은 부상으로 낙마)을 클럽에서의 활약상과 비교하면 대표팀에서는 중요한 순간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인 것이 아쉽다는 평이다. 김영권이 실망스러운 첫 월드컵 이후 두 대회 연속으로 어마어마한 활약을 한 것과 대비된다. [26] 특히 학창시절부터 운동에만 올인해 온 대한민국 운동선수들은 더더욱 심각하다. [27] 실제로 브라질 월드컵 이후 루이스는 브라질 국대에 잘 안 뽑히고 있다. 브라질에 좋은 자원들이 넘쳐나는 것도 있지만... [28] 참고로 이날 롯데는 NC 다이노스와의 시즌 최종전을 잡아내며 느그가 프로가가 나온 지 단 1년 만에 NC와의 상대 전적을 9승 7패 우세로 되돌렸다. [29] 물론 이것도 무슨 데뷔전 치른 신인도 아니고 프로, 국가대표 선수로서 수많은 경기를 치른 김영권의 입에서 나올 만큼 정당한 표현은 아니지만 관중 소리 때문에 경기 못 했음보다는 차라리 나을 것이다. [30] 9년이 지난 2022년 3월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추가골을 기록해 2:0 승리에 공헌을 하면서 9년만에 복수에 성공하게 되었다. [31] 장현수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러시아 월드컵 당시 애초부터 주전이었고, 김영권은 원래 월드컵 출전에서 멀어지는 상태였었는데, 당시 김민재의 부상 때문에 간신히 월드컵에 나갈 기회를 다시 얻게 된 상태였다. [32] 그 상황에서는 무슨 말을 하더라도 핑계일 것 같아서 수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한다. [33] 후일담에 의하면 당시 월드컵 대표팀의 준비 과정에서 상대 팀 전력 분석 및 선수단 컨디션 관리도 엉망이었고, 현지에서는 선수들이 단체로 독감에 걸리는 등 KFA의 선수단 관리 및 지원이 매우 부실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34] 물론 운동선수들은 결혼을 일찍 하는 것이 흔한 일이다. [35] 김영권도 축구선수들 중에서는 훤칠한 외모지만 자녀들은 매우 미인인 아내를 닮아서 김영권이 상대적으로 묻히는 느낌이다. [36] 이때는 다행히 3위였던 우즈벡과 골득실 1골 차이로 간신히 월드컵 본선을 갈 수 있었으나 만약 이 패배로 월드컵 진출에 실패했다면 역대급 역적으로 낙인이 되었을 수도 있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김영권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 수도 있었다. [37] 이 부분에서 "광저우가 악의적으로 보내 주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는데, 당시 김영권은 부상 후유증으로 2016년 하반기를 통째로 날리고 1년간 재활한 뒤 2017년 하반기에야 그라운드에 나설 수 있었다. 이 탓에 월드컵 직전까지 폼이 매우 안 좋았고, 리그에서도 나올 때마다 삽질을 해서 신태용이 그를 호출하자 왜 뽑았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여기에 최종예선에서 관중 실언까지 나오는 바람에 모로코전 등 졸전할 때마다 원탑으로 까였지만 막상 본선에서 준수한 모습을 보이자 여론은 사그라들었다. [38] 김영권이 감스트 방송에서 밝히길 에버튼, 뉴캐슬, 프랑크프르트, 호펜하임에서 오퍼가 있었다고. [39] 어렸을때 친척들이 부천에 살았다고 한다. [40] 금카 정도로 붙여놔야 스피드가 붙는 정도이며 왼발 킥은 센터백으로서는 사실 슛은 사싱상 안쏘고 짧은 패스만 하는지라 무의미한데다가 금카 정도로 붙여야 좀 쓸 만 하다.
- 2015 AFC 아시안컵
- 2015 EAFF 동아시안컵
-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 2019 AFC 아시안컵
- 2019 EAFF E-1 풋볼 챔피언십
-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 [5] 그 외 김영권이 사용했던 등번호
4번
- 2012 런던 올림픽
- 2013 EAFF 동아시안컵
5번
- 2008 AFC U-19 챔피언십
- 2009 FIFA U-20 월드컵 이집트
-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6] 소속팀에서 사용했던 역대 등번호
- 전주대학교 - 16번
- FC 도쿄 - 17번
- 오미야 아르디자 - 20번
-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 28번
- 감바 오사카 - 19번 [7] 2024년 9월 5일 기준. [8]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출장 순위 9위 [9] 인스타 해킹으로 인해 2020년 6월 18일자로 인스타 계정을 다시 만들었다.
{해킹당한 뒤 첫 게시물이다. #} [10] K리그 2023년 선수 연봉 공개자료 기준. 한국인 선수 중 연봉 1위, 전체(외국인 포함) 연봉 2위이다. [11] 지금까지 10년동안 김영권을 후원해주고 있는 브랜드다. [12] (2023 k리그 BEST 11 DF)부분에서 수상 소감으로 김영권이 미즈노 후원을 언급하였다. [13] 32강 조별리그 [14] 김영권, 장현수, 홍정호, 김주영, 김기희 등 많고 많은 센터백들 중 한 명이라도 국제 무대에서 통할 만한 볼 배급 능력을 갖췄으면 대표팀이 기성용에 목맬 이유가 전혀 없었다. 기성용을 배제하진 않더라도 상대에 따라 수비력과 활동량이 떨어지는 기성용을 제외하거나, 전진 배치해서 플랜 A를 짜는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플레잉 센터백이라는 세계 축구의 흐름과 김영권의 괜찮은 볼 컨트롤이 맞물려 일어난 일종의 환상. [15] 그래도, 수비진 조율과 빌드업 전개의 지휘자 역할은 장현수라는 최고의 인재가 있었으나, 그는 병역문제로 인해 대표팀에서 영구 제명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했다. [16] 일명 김앤장(...) [17] 감스트와의 합동 방송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18] 당장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그의 파트너였던 동갑내기(1989년생) 홍정호가 2022년 이후로 부상 때문에 경기에 잘 출전하지 못하는 것과 대비된다. [19]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 우루과이전에서 최고시속 31.3km를 기록했다. .[41] [20] 수원 삼성과의 2023년 빅버드 원정 경기에서 미사일같은 중거리포 득점으로 울산 데뷔골을 넣기도 했다. [21] 두 골 모두 상대팀 선수의 어시스트(?)를 받아 골을 넣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22] 김민재가 향후 국대를 이끌 세대교체의 중심이라면, 김영권은 국대를 마무리할 맏형 라인이라는 대비점도 상당히 재밌는 점. [23] 카잔의 기적& 아라얀의 기적 참고 [24] 1990년, 1994년, 1998년, 2002년 월드컵에서 핵심으로 활약하고 브론즈볼을 수상한 홍명보는 넘지 못했다는 평가가 주. [25] 김민재는 스피드, 몸싸움, 빌드업 등 전체적인 기량이 김영권보다 앞서있는 선수이고 축구 국가대표팀과 클럽팀에서의 활약을 종합해보면 유럽에서도 탑클래스의 경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김영권보다 김민재가 더 뛰어난 센터백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두 번의 월드컵 본선에서 부상으로 크게 활약으로 보이지 못한 점(2018년 러시아 월드컵은 부상으로 낙마)을 클럽에서의 활약상과 비교하면 대표팀에서는 중요한 순간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인 것이 아쉽다는 평이다. 김영권이 실망스러운 첫 월드컵 이후 두 대회 연속으로 어마어마한 활약을 한 것과 대비된다. [26] 특히 학창시절부터 운동에만 올인해 온 대한민국 운동선수들은 더더욱 심각하다. [27] 실제로 브라질 월드컵 이후 루이스는 브라질 국대에 잘 안 뽑히고 있다. 브라질에 좋은 자원들이 넘쳐나는 것도 있지만... [28] 참고로 이날 롯데는 NC 다이노스와의 시즌 최종전을 잡아내며 느그가 프로가가 나온 지 단 1년 만에 NC와의 상대 전적을 9승 7패 우세로 되돌렸다. [29] 물론 이것도 무슨 데뷔전 치른 신인도 아니고 프로, 국가대표 선수로서 수많은 경기를 치른 김영권의 입에서 나올 만큼 정당한 표현은 아니지만 관중 소리 때문에 경기 못 했음보다는 차라리 나을 것이다. [30] 9년이 지난 2022년 3월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추가골을 기록해 2:0 승리에 공헌을 하면서 9년만에 복수에 성공하게 되었다. [31] 장현수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러시아 월드컵 당시 애초부터 주전이었고, 김영권은 원래 월드컵 출전에서 멀어지는 상태였었는데, 당시 김민재의 부상 때문에 간신히 월드컵에 나갈 기회를 다시 얻게 된 상태였다. [32] 그 상황에서는 무슨 말을 하더라도 핑계일 것 같아서 수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한다. [33] 후일담에 의하면 당시 월드컵 대표팀의 준비 과정에서 상대 팀 전력 분석 및 선수단 컨디션 관리도 엉망이었고, 현지에서는 선수들이 단체로 독감에 걸리는 등 KFA의 선수단 관리 및 지원이 매우 부실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34] 물론 운동선수들은 결혼을 일찍 하는 것이 흔한 일이다. [35] 김영권도 축구선수들 중에서는 훤칠한 외모지만 자녀들은 매우 미인인 아내를 닮아서 김영권이 상대적으로 묻히는 느낌이다. [36] 이때는 다행히 3위였던 우즈벡과 골득실 1골 차이로 간신히 월드컵 본선을 갈 수 있었으나 만약 이 패배로 월드컵 진출에 실패했다면 역대급 역적으로 낙인이 되었을 수도 있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김영권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 수도 있었다. [37] 이 부분에서 "광저우가 악의적으로 보내 주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는데, 당시 김영권은 부상 후유증으로 2016년 하반기를 통째로 날리고 1년간 재활한 뒤 2017년 하반기에야 그라운드에 나설 수 있었다. 이 탓에 월드컵 직전까지 폼이 매우 안 좋았고, 리그에서도 나올 때마다 삽질을 해서 신태용이 그를 호출하자 왜 뽑았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여기에 최종예선에서 관중 실언까지 나오는 바람에 모로코전 등 졸전할 때마다 원탑으로 까였지만 막상 본선에서 준수한 모습을 보이자 여론은 사그라들었다. [38] 김영권이 감스트 방송에서 밝히길 에버튼, 뉴캐슬, 프랑크프르트, 호펜하임에서 오퍼가 있었다고. [39] 어렸을때 친척들이 부천에 살았다고 한다. [40] 금카 정도로 붙여놔야 스피드가 붙는 정도이며 왼발 킥은 센터백으로서는 사실 슛은 사싱상 안쏘고 짧은 패스만 하는지라 무의미한데다가 금카 정도로 붙여야 좀 쓸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