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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10 17:58:01

리오넬 메시/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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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넬 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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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vs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 개인사 및 사생활4. 대인관계5. 대중문화 속의 메시6. 아르헨티나에서의 위상7. 광고8. 기타

1. 개요

리오넬 메시에 대한 여담을 정리한 문서.

2. vs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메호대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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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인사 및 사생활

파일:leo messi parents.jpg
가족으로는 아버지 호르헤 오라시오 메시(Jorge Horacio Messi), 어머니 셀리아 마리아 쿠치티니(Celia Cuccittini)가 있다. 호르헤는 아들의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에이전트를 맡고 있다.
파일:messi_siblings.jpg
로드리고, 마티아스라는 형과, 마리아 솔이라는 여동생도 두고 있다. 사촌 형제로는 막시 비안쿠치와 엠마누엘 비안쿠치가 있는데 이들도 프로 축구 선수이다. 아내는 안토넬라 로쿠소(Antonela Roccuzzo)이며, 자녀들은 슬하의 3남으로 티아고(Thiago, 2012년 11월 2일생), 마테오(Mateo, 2015년 9월 11일생), 치로(Ciro, 2018년 3월 10일생)가 있다.
파일:메시세레머니.jpg
메시가 골을 넣으면 팀 동료와 껴안고 서로 축하를 한 뒤, 두 손을 하늘로 가리키는 셀레브레이션을 따로 하는데, 이것은 돌아가신 외할머니 셀리아 올리베이라 쿠치티니(Celia Oliveira Cuccittini)를 기리는 것이라고 한다. 부모님이 모두 일하러 가야 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 메시를 돌본 사람이 외할머니라 애틋한 감정이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이 외할머니는 메시를 돌보는 일 외에 엄청난 일을 하셨는데, 형들이 동네 축구팀에서 축구하는 것을 보기만 하던 메시가 외할머니의 권유로 처음 축구 팀에서 축구 경기를 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첫 경기에서 골키퍼까지 제치고 골을 넣었다고 한다. 유튜브 등 동영상 사이트에서 메시가 어린 시절 축구하는 모습을 찍은 흐린 화질의 영상들을 여럿 찾아볼 수 있는데, 그걸 찍은 사람이 메시의 외할머니라고 한다.
파일:MessiBojan.jpg
바르셀로나에서 함께 뛰다 AS 로마를 거쳐 스토크 시티로 이적한 보얀 크르키치와 십촌[1] 친척 관계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메시의 할머니의 할아버지와 보얀의 어머니의 증조부가 형제였다. '최소 메시'로 불리며 세계 최고의 유망주로 각광받았지만 성인 무대에선 항상 메시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남이나 다름없는 먼 친척 관계였던 만큼 당사자들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메시의 성격은 매우 내성적이고 조용한 편이다. 처음으로 성인 국가대표로 발탁되었을 때 메시는 가브리엘 에인세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메시의 이런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에인세가 메시를 선배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건방진 후배라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인세가 메시의 성격을 알고 난 이후에는 메시와 화해하고 오히려 메시와 친분이 생겼다. 또한 메시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메시에게 인터뷰 요청을 해도 메시의 코멘트는 대부분 짧으며, 가능한 책잡힐 만한 발언을 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바르셀로나 유스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인 세스크 파브레가스 제라르 피케 역시 유스 시절부터 넘사벽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벙어리인 줄 오해할 정도로 말이 없었고 이탈리아의 한 대회에서 우승한 후부터 친밀한 사이가 됐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다만 아르다 투란이나 제라르 피케 등 가까운 동료들 말로는 영리해서 꽤나 재미있는 농담을 구사한다고 한다. 거기다 어린 시절 일화 등을 보면 매우 신중하고 침착한 성품이지만 축구 실력으로 도발당하는 것은 참지 못한다 할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승부욕과 근성은 강한 선수다. 경기장에서도 이런 성격은 자주 드러나는 편이다.

실제로 라리가 2016-17 시즌 발렌시아 CF와의 원정 경기에서 메시가 페널티 킥을 넣고 극적인 역전을 하고, 분노한 발렌시아 팬이 물병을 투척해 네이마르 주니오르가 맞자, 그들에게 욕설을 한다던가 2018 러시아 월드컵 A매치에서 브라질에게 3 : 0으로 진 뒤, 인터뷰에서 X 같은 상황, 변해야 한다라며 감정을 숨기지 않는 등 축구와 관련된 일이라면 한 성깔 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지의 일부 안티팬들에게는 별의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아르헨티나에 대한 애국심이 없다고 까일 때도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오히려 애국심이 강한 선수로 유명하다. 바르셀로나에서 말렸는데도 끝까지 올림픽 대표팀에 승선하여 우승을 차지했고[2] 201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대회 MVP를 차지했음에도 우승에 실패했다는 자괴감에 MVP 자리까지 거절해버렸다. 인터뷰에서도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대해 유난히 감정적이다. 평소 감정 표현을 드러내는 선수가 아님에도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승부차기 성공으로 결승 진출이 확정되자 눈물을 흘리며 뛰어가는 모습이나 결승전을 앞두고 트로피를 간절히 쳐다보는 모습 등을 보여주기도 했다.

자신이 축구를 하는 이유에 대해 그저 축구가 즐겁기 때문이라는 발언을 자주 한다. 특히 "축구가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온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은퇴하겠다"는 말은 메시가 데뷔 때부터 일관되게 하고 있는 발언으로 일종의 신조라고 봐도 될 듯하다. 한준 기자가 밝힌 바에 따르면 시상식 뒷풀이에서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이 축구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팀의 승리를 위해서도 있지만 축구가 가장 즐겁기 때문이며 훈련부터 경기까지 모든 순간이 가장 재미있다는 답변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동료들에게 어시스트를 많이 하는 것은 물론 PK 양보까지 곧잘 해주는 모습 덕에 라이벌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다르게 공격수임에도 개인적인 골 욕심은 많지 않은 이타적인 선수로 여겨지는 편이지만[3] 경기 욕심은 상당히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4] 메시는 이에 대해 “선발 출전해서 교체되는 것을 싫어한다. 차라리 벤치에 있다가 투입되는 것이 낫다."며, 마지막 순간에 경기의 판도가 뒤바뀔 때가 많고 그런 즐거운 순간을 놓치기 싫다고 얘기한 바 있다.

메시 자신이 존경한다고 밝힌 우상은 파블로 아이마르다. 실제로 둘이 경기에서 만났을 때 아이마르를 바라보는 메시의 눈빛을 보면 그야말로 덕심이 뚝뚝 떨어진다.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당시 월드컵의 여파로 지쳐 있었고 호날두에게 수상을 내주었던 2014 발롱도르 시상식 당시 주최측에서, 메시의 아이돌인 아이마르가 메시 본인에게 영상편지를 보내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여기서 아이마르는 메시에게 "아직도 어린시절에 축구를 즐겼던 것처럼 축구를 하는 게 즐겁니?"라는 질문을 던졌다. 상술했다시피 메시는 "어린 시절처럼 축구가 즐겁지 않은 순간이 온다면 바로 은퇴할 것이다"라는 말을 신조처럼 삼아 인터뷰에서 자주 언급해왔기 때문에 메시 입장에선 굉장히 의미있는 질문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 당시 메시의 상황이 슬럼프가 온다해도 이상할 게 없다 싶을 정도로 좋지 못했는데[5] 우연의 일치인진 몰라도 이 영상편지를 본 이후 메시는 불화설과 갈등을 봉합하고 활약하며 트레블을 이끄는 주역이 된다. 팬들 사이에선 우상인 아이마르의 편지가 메시의 동기부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냐는 이야기도 있다. 이후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이마르는 국가대표팀 코치로[6], 메시는 마지막 월드컵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서로 힘을 합해 월드컵 우승이라는 대업을 함께 이루어냈다. 아이마르 이외에도 브라질의 호나우두를 존경한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아르헨티나 매체 'TyC스포츠'를 통해 다른 선수에게 유니폼 교환을 요청하지 않지만 딱 한 번, 막 데뷔했던 선수생활 초기에 적극적으로 교환을 요청한 적이 있다고 밝혔는데, 그 선수가 바로 당시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지네딘 지단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상대팀의 아르헨티나 선수가 있을 때만 요청하고 그 외에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워낙 교환 요청을 많이 받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엄청난 유니폼 컬렉션을 보유하게 되었다. 수집당한 유니폼 컬렉션 영어권 리그에선 뛰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영어를 하지 못한다.[7][8] 카탈루냐어는 알아들을 수는 있다고 하는데 말하는 모습은 거의 보여진 적이 없다. 현지인들 앞이라 그런지 부끄러워서 웬만하면 말할 땐 사용하진 않는다고 한다.[9]
결혼식 이후 열린 파티에서 부인과 같은 쿰비아 춤을 추는 메시
쿰비아(Cumbia), 콰르테토(Cuarteto)와 같은 아르헨티나 음악 듣기를 좋아한다. 유튜브에서 메시가 쿰비아 춤을 추는 영상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 # #

메시가 축구 외에 흥미있어 하는 것은 게임으로, 평상시엔 축구 게임을 많이 좋아한다고 하는데, 파브레가스는 그의 내성적인 성격과 관련지어, 어린 시절 플레이스테이션이 없었으면 친해질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피케의 말에 따르면 매일 게임을 할 정도의 게임 덕후에다 실제로 바르사 선수들 중에서도 게임을 제일 잘한다고 한다. 평소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때도 물론 바르사나 아르헨티나 선수들로 플레이하며 경기에서 지면 굉장히 화가 나고 그럴 때면 그냥 조용히 로그아웃을 한다고 한다. 아들 티아고와 게임을 같이 하는 모습이 SNS에 올라오기도 한다. 축구 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걸 볼 바에 자신이 그냥 축구 경기를 뛰겠다고 한다. 이유는 단순한데, 아내인 안토넬라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라고 하며 그 시간에 아들 티아고와 같이 만화 애니메이션을 본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와 아들이 없을 때 틈타 보고 싶은 축구 경기를 몰아서 본다고 한다. 여기서도 메시가 얼마나 가정적인 사람인지 알 수 있다. #

보유한 자동차는 20대가 넘지만 상당수는 협찬받은 것이며, 정작 자동차에는 별 흥미가 없다고 한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차량에서 가장 아끼는 게 아우디 차량이라고 인터뷰했다. 그중에는 중국의 체리 모터스[10]로부터 여러 대를 협찬받았으나 그 역시 죄다 차고에 두고 안 탄다고 한다. 이를 두고 체리 측이 섭섭해했지만 다른 업체에게 받은 차량도 마찬가지이고 메시 본인이 차량은 별 흥미가 없어 뭐라고 하지도 못한다고 한다. 메시의 팀 공헌도를 생각해보면 스포츠카를 몰고 나와서 할 일이 팀 훈련을 하러 가는 것과 경기 끝나고 집에 갈 때만 모는 것 뿐이라 불쌍하다는 팬들도 있다.

의외로 미신을 상당히 믿는 것 같다. 한창 국대에서의 불운이 계속되던 2017년 쯤부터 선수 생활 최초로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나오기 시작해서 아직까지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전체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메시의 수염을 일종의 행운의 부적으로 믿고 있어서 우승 트로피를 들기 위해 수염을 기르기로 했다고 한다. 만약 턱수염을 밀면 동료들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다. 정작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메시가 면도를 했을 때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2021년 들어서는 수염을 풍성하게 기르지 않고 적당히 남기거나 예전처럼 아예 깔끔하게 면도한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11] 그러나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메시가 수염을 기른 상태로 우승하면서 이러한 징크스도 깨졌다. 중요한 행사나 시상식에 참여할 때는 면도를 말끔히 한다. 그러나 수염이 자라는 속도가 매우 빠른지 면도하고 며칠 안되었음도 금세 수염이 얼굴을 뒤덮고 있다.
기자가 선물한 리본을 보여주는 메시
행운의 부적에 관련된 일화도 있다. 러시아 월드컵 당시 아이슬란드전의 PK 실축으로 팬들의 비난을 받고 풀이 죽은 채 인터뷰를 하러 이동하던 메시에게 한 기자가 접근했다. 이 기자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보다도 메시를 더 좋아할 정도로 메시의 광팬이었는데, 메시를 위해서 빨간색의 리본을 손수 만든 다음 스포츠 기자인 아들에게 혹시 메시를 인터뷰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것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기자는 이런 사연을 말하면서 메시에게 이 행운의 리본을 선물했다. 다음 나이지리아전에서 메시가 골도 넣고 아르헨티나도 승리를 챙기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는데, 그 기자가 다시 메시에게 인터뷰를 하러 와서 별 기대하지 않고 우리 엄마가 준 행운의 부적을 버리진 않았느냐고 물어보자 메시가 말없이 양말을 걷어보였다. 기자의 어머니인 팬이 선물한 행운의 부적을 발목에 찬 채로 경기했던 것.

이 리본이 소중했는지 월드컵이 끝난 이후로도 계속해서 발목에 차고 다니는 모습을 보였고, 이적생인 필리페 쿠티뉴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홈팬들에게 온갖 욕을 먹고 주전 경쟁에도 밀리는 모습을 보였을 때 행운을 불러오는 물건이라며 이 리본을 빌려주고 그날 경기에서 PK를 양보해주기도 했다. 대표팀 후배인 디발라에게도 이 리본을 착용할 것을 권유했다. 2022 월드컵에선 대표팀 골키퍼인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에게 이 리본을 빌려주었으며, 마르티네스는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선방을 해내며 조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파일:리오넬 메시 WAGs 3.gif
어렸을 때부터 소꿉친구였던 안토넬라 로쿠소(Antonella Roccuzzo)와 동거하다가 2017년 6월 30일 결혼식을 올렸다.

메시가 사귄 여자는 본인이 밝힌 바로는 안토넬라를 포함해 세 명이다. 마카레나 레모스라는 모델 여친이 있었는데 2006년부터 2년 정도 교제했으나 메시의 어머니는 그녀를 싫어해서 프라이팬으로 때리려고까지 했다는 일화가 있다. 참고로 마카레나가 메시와 사귀기 시작한 시절의 나이는 14세다. 그 다음에 사귀게 된 것은 루시아나 살라사르[12]라는 7살 연상의 아르헨티나 연예인이며, 길게 교제하지는 못했다.

메시 어머니는 메시가 소꿉친구 안토넬라와 사귀게 되자 기뻐했다고 한다. 로쿠소는 뛰어난 외모로 연예인이 아닐까 싶지만, 대학교에서 영양학을 전공한 일반인 여성이다. 메시보다 1살 연하인 1988년생으로 메시 친구의 사촌이다. 6살 무렵 친구의 집에 놀러갔다가 알게된 사이라고 한다. 메시가 아르헨티나를 떠나 바르셀로나에 입단하며 잠시 관계가 서먹해지면서[13] 각자 다른 이성과 교제했었다. 그런데 2007년에 안토넬라의 친한 친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14] 학교도 가지 않고 우울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메시가 안토넬라를 위로하려고 아르헨티나로 찾아오면서 관계가 다시 시작되었다. 이후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메시는 외도를 시도해 본 적조차 없을 정도로 아내와 금슬이 좋고 가정적인 남편으로 유명하며, 최근 레시덴떼라는 가수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여 아내 안토넬라와 딥키스를 하는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평소 이미지가 워낙 범생이 느낌이라 그런지 팬들 사이에선 충격적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 한 번은, 한 시상식 레드카펫에서 메시 가족이 참석했는데 프랑스 축구 관계자가 안토넬라에게 '메시가 아들들과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비키라'고 했다. 안토넬라도 별 생각 없이 자리를 비켜주려 했는데 메시가 그 관계자를 즉각 제지하고 안토넬라가 자신의 옆에 있을 수 있도록 했다. 이때 안토넬라의 미소가 압권이다. #

2021년 메시의 첫 국대 우승 이후 아내와 영상통화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참고로 남편이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로쿠조 본인 또한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2022년 12월 기준으로 무려 2,156만 명이다.

2020년 11월 사이클형 운동기구의 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0-1F0A0F7500000578-363_634x686.jpg
장남인 티아고 메시는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메시가 유소년 시절을 보낸 CA 뉴웰스 올드 보이스와 계약했다고 한다.

아들바보 메시답게 옆집 소음으로 티아고가 계속 울음을 터트리자 옆집을 통째로 사 버리기도 했다. 또한 2014년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저널리스트가 쓴 글에 따르면 아르헨티나가 결승에서 패했을 때, 메시는 상대팀에게 축하를 전하고 카메라와 팀 동료들 앞에서 의연한 척했지만 아들 티아고를 만나자마자 눈물을 쏟아냈다. 2014년 본인과 클럽의 난조로 힘들었을 때 마음을 다잡고 다시 최고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아들 티아고가 유치원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메시의 왼발 종아리엔 티아고의 손 모양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다. 안티팬들이 메시의 집 앞에 찾아와서 "메시는 어디있나? 우리는 메시를 비웃으러 왔다"고 조롱하자 "그럼 난 당신들 부모를 비웃어 주겠다" 라고 응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아버지인 메시의 평가에 따르면 티아고는 축구에 재능이 있지만 정작 아들은 축구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다만 이후 언급에 따르면 축구에 관심이 생겨 골키퍼를 꿈꾸고 있다고 한다. 메시가 국가대표팀에서 준우승을 거듭할 당시 티아고가 아버지인 메시를 비판하는 평론가들의 동영상을 보고 슬퍼했던 것이 메시에게 다시금 국가대표 우승에 도전할 동기 부여가 되어줬다는 일화가 있다. 아버지가 마침내 꿈에 그리던 월드컵 우승을 거머쥔 뒤 기뻐서 환호하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울컥한 듯한 표정을 보이면서[15] 설움을 풀었고, 세레머니 현장에서 아버지의 어깨를 주물러주는 의젓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에 온 뒤로는 외모가 물올라서 또래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많다. #

차남 마테오 메시는 리오넬 메시의 말에 따르면 엄청난 장난꾸러기라고 한다. 한 일화로, 바르셀로나의 안필드 대참사 이후부터 자기가 이라고 메시를 놀려대기 시작했다고 한다. 게임을 할 때마다 "하하 내가 너네를 이긴 리버풀의 팬이다" 라고 하거나, 메시가 벌을 주려고 벽에 가서 서 있으라고 했을 때는 " 코너킥 빠르게 처리합니다, 오리기!"라고 말하며 뛰어갔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16] 그 외에도 형인 티아고를 화나게 만들려고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발렌시아 편을 들고, 레알 마드리드가 골을 넣을 때마다 일부러 좋아하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가 부상을 당해서 함께 관중석에서 레알 베티스 전을 관람하는데, 베티스가 골을 넣자 대환호했다. 옆 자리에서 수아레스가 당황한 모습을 보여준다. 요즘에는 많이 성숙해졌는지 메시가 바르셀로나를 떠나기 전에 눈물의 기자회견을 끝내고 기립박수를 받을 때 치로 혼자 휴대폰을 만지다가 마테오를 보면서 싱글벙글한 채로 방방 뛰자 이를 말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축구 재능에 있어서는 메시가 "티아고는 축구에 재능을 보이는데 마테오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라고 증언했다. 루사일의 기적 당시 아르헨티나가 바로 탈락한 줄 알고 울면서 뛰쳐나갔다가 형인 티아고가 경우의 수에 대해 가르쳐줘서 진정했다는 일화가 있다. 장난이 심하면서도 아버지를 좋아해서 꼭 붙어 다니는 모습이 유독 많다.

2017년 10월 15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내가 셋째를 임신함을 밝혔다. 그리고 한국 시각 3월 10일 오후 11시경 셋째가 태어났다. 성별은 남자아이이고, 이름은 치로(Ciro)다. 치로는 셋 중에서 가장 아버지와 닮고[17] 잘 웃는 모습이 귀여워서 메시 팬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맏형인 티아고도 치로를 굉장히 귀여워한다. 아버지인 메시의 언급에 따르면 치로는 형들에 비해 아직 어려서 축구적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월드컵 우승이 확정된 후 메시의 일가 친척들이 기쁨에 오열하며, 서로 부둥켜 안자 "다들 왜 우는 거야?"라고 묻는 천진난만한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형제들끼리 사이가 좋은데, 티아고가 치로를 안고 놀아주는 모습이나 마테오가 형인 티아고에게 업히려고 뒤에서 안는 모습 등을 동영상으로 찾아볼 수 있다. # 딸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듯하다. #

20/21 시즌 바르토메우의 패악질에 지쳐 확고하게 이적을 결심한 메시가 포기하고 1년 잔류를 선택한 것 역시 20년 간 몸담은 팀과 법정 싸움까지 갈 수는 없다는 팀 사랑,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하면서 부성애를 보여줬다. 메시가 이적 결심을 통보했을 때 온 가족이 눈물 바다가 되었는 데 특히 아직 나이가 어려서 이사가 뭔지 확실히 모르는 차남 마테오는 그렇다치고 장남인 티아고는 TV 매체 등을 통해 소식을 듣고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참이라 바르셀로나에 살고 싶고 학교와 친구들을 떠나기 싫다며 "가지 말고 남아요. 아빠."라고 울어서 메시를 무너지게 했다고 한다. 알려져 있다시피 메시는 어릴 때 라 마시아에 발탁되면서 바르셀로나로 이주했는 데 이당시 고향에 대한 향수병과 가족, 친구들을 두고 온 것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서 자기 자식들만큼은 똑같은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알려진 일화이다. 그러나 보드진의 삽질이 너무 심해지자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해서라도 이적을 시도하려 했으나 차마 자식들의 눈물을 보니 결심이 서지 않았던 모양. 어쨌거나 메시 이적 사가를 잠재운 것은 바르토메우 회장이 아니라 메시의 아들들이 된 셈이다.[18]

2021/22 시즌을 앞두고 메시의 재계약이 무산되어 고별식을 겸한 기자회견이 열렸는데, 이때 티아고와 마테오는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치로와는 달리[19] 시무룩한 모습을 보여 많은 바르샤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파일:메시형제 축구입문.jpg
리오넬 메시가 PSG로 이적한 직후 8살인 티아고 메시는 PSG U-10 팀에서, 5살인 마테오 메시는 U-7 팀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2023년 메시가 인터 마이애미 CF로 이적함에 따라 아들들도 마이애미에서 학교를 다닐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티아고 메시가 최근 인터 마이애미 아카데미 U-12팀에 들어갔다. 링크
파일:메시아들인터마이애미.jpg
첫째 티아고 메시와 둘째 마테오 메시 둘 다 경기당 1골이 넘어가는 괴랄한 스탯을 보여주고 있다. 도움 숫자 또한 엄청나다. 그리고 셋째 치로 메시도 취미로 축구를 하고 있는데 상당히 잘한다고 한다.


특히 이 중에서도 둘째 마테오 메시가 가장 큰 두각을 나타내는데 2024년 4월 인터 마이애미 U-9 대 FC 바르셀로나 U-9 친선경기에서 마테오 혼자 5골을 때려 넣는 위업을 달성했다. 마테오는 아버지 리오넬의 어린 시절과 거의 같은 실력을 갖추고 있으며 딱 하나밖에 차이가 없는데 마테오는 아버지 리오넬과는 달리 주발이 오른발이다.

4. 대인관계

같은 아르헨티나 출신 선수들과는 대개 돈독한 사이다. 2020-21시즌 챔스 16강 2차전에서도 경기 종료후 바르셀로나의 탈락이 확정되었음에도 앙헬 디 마리아, 마우로 이카르디 등 PSG 소속의 아르헨티나 국대 동료선수들과 친목질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을 정도. 특히 같이 청소년 대표팀부터 오래토록 대표팀 생활을 함께 한 동년배 선수들과는 매우 친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르히오 아구에로, 앙헬 디 마리아, 곤살로 이과인. 이과인의 경우 레알 마드리드 CF FC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국적 불문하고 서로 한창 으르렁거리던 시절에도 눈치 보지 않고 경기 전후로 포옹과 뽀뽀 인사를 나누고 친분을 다질 정도로 가깝다.

세르히오 아구에로와는 청대 시절부터 인연이 이어져 온 절친으로 유명하며, 국대에서도 항상 방을 함께 쓰는 사이이며 최근 아구에로가 운영하는 개인 방송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아궤로의 생일 날마다 메시가 함께 있었다고 한다.[20] 아구에로와 첫 만남 당시 아구에로가 당시에도 유명인사였던 메시를 못 알아보고 "야, 너 누구냐?"라고 이름을 물어봤다는 일화는 본인들도 방송에서 수시로 언급할 정도로 유명하다. 둘이 놀거나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무슨 만담하는 부부 느낌이 날 정도다.[21] 심지어 메시가 자신이 없을 때의 아르헨티나 10번은 ''이라고 못 박으면서 압박감 견딜 수 있겠냐고 아구에로와 함께 농담을 할 정도다. 아구에로가 맨시티와의 계약이 끝나고 바르셀로나로 간 것 역시 메시와 매일 함께 있고 메시를 더 알아가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

정작 메시가 바르사와의 재계약이 불발되는 초유의 사태로 아구에로 혼자 바르셀로나에 남겨졌지만, 대신 2022 카타르 월드컵 당시 메시가 개인 유튜브 컨텐츠 촬영차 카타르에 와 있던 아구에로를 코치로 초빙해달라고 대표팀에 요청해 메시의 마지막 월드컵을 함께 하며 코치 자격으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됐다. 8강전 당시 아구에로가 PK를 차는 메시를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머리를 묻은 채 기도하는 모습이 트위터에 올라오기도 했다. # 크로아티아 전이 끝나고 나서는 POTM 트로피를 전달하는 역할을 아구에로가 맡기도 했다. 메시 스스로 아구에로 빼고는 아무하고도 룸메이트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인지[22] 이 월드컵에선 메시 혼자 독방을 썼는데, 결승전 전날 밤은 심리적 안정을 위해 코치로 온 아구에로와 한 방을 썼다고 한다. 마침내 우승이 확정된 직후 아구에로 역시 관중석에서 뛰쳐나와 선수들과 합류해 기쁨을 나누었고, 메시를 무등 태우고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자축했다.

앙헬 디 마리아와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시절부터 친했던 것으로 유명하며, 이 둘은 2008년에 국가대표에서 처음 만나 국가대표에서 끝까지 함께 한 [age(2008-01-01)]년 지기 친구이다. 이 당시 디 마리아는 결승전 나이지리아전에서 칩샷을 날려 골을 넣었고 이 골은 그대로 결승골이 되어 아르헨티나가 금메달을 가져갔다.[23] 리그 팀에서는 PSG에서 잠깐 같이 있기도 했는데 메시는 디 마리아의 존재로 국대에서 절대 외롭지 않았다. 국대에서의 메시에게는 늘 디 마리아와 함께였다. 곤살로 이과인이 지쳐서 은퇴해도,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지병으로 더 이상 축구를 못해서 떠났을 때도 디 마리아는 언제나 메시와 함께 했다. 2010년 월드컵[24]과 2018년 월드컵[25]의 실망스러웠던 시절도, 2014년에 월드컵 우승 직전까지 갔었던 그 순간[26]에도 디 마리아는 늘 메시와 함께 웃고 울었던 그런 사이였다.

그리고 202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만났는데 여기에서도 디 마리아가 간지작살나는 터닝슛을 넣어 1:0 으로 리드하고 그걸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 골키퍼가 지켜내 끝내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했다. 코파 아메리카 우승팀 대 유로 우승팀의 대결인 피날리시마에서도 역시 디 마리아가 골을 넣으며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를 꺾고 우승했다. 2022년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디마리아가 페널티 킥을 얻어내고 이를 메시가 넣었으며, 얼마 후 디 마리아가 완벽한 역습 상황에서 알렉시스 맥 앨리스터의 패스를 받아 직접 골까지 넣으며 메시의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다. 이렇듯 메시의 국제대회 우승에는 항상 디 마리아가 있었고 늘 디 마리아가 결승전에서 골을 넣어 메시에게 우승컵을 안겨줬다. '신의 한 수'가 된 디 마리아 깜짝 선발 카드.메시와 디 마리아의 14년 인연[27] 그리고 메시와 디 마리아 단 둘만 있는 기록이 생겼는데, U-20 우승[28] + 올림픽 금메달 + 대륙컵(코파 아메리카) 우승 + 피날리시마(코파 아메리카 우승 대 유로컵 우승) 우승 + 월드컵 우승을 모두 달성한, 세계 축구 역사상 단 둘뿐인 선수로 기록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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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함께 대표팀 생활을 한 동년배 선수들 외에 까마득한 후배이자 메시 자신을 보고 자란 '메시 키즈' 세대인 현 세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주전 선수들과도 사이가 돈독하다.[29][30]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메시에 대한 사적인 충성심이 대단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특히 로드리고 데폴은 "국가대표는 조국을 위해서 뛰는 자리지만 나에게는 메시를 위해서 뛰는 자리이기도 하다"라고 수시로 발언할 정도로 팬심이 강하다.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는 오랜 무명 생활을 해왔는데 이때 메시가 네가 최고라고 칭찬해준 것을 계기로 메시의 광팬이 되었고, 훌리안 알바레스는 초등학생 때부터 메시의 팬이라 메시와 10년 전 함께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엔소 페르난데스는 15살 때 메시의 국가대표 은퇴를 만류하는 팬레터를 쓸 정도로 어려서부터 메시의 팬이었다. 알렉시스 맥 앨리스터 역시 어려서부터 메시의 팬이라 첫만남 때 손을 벌벌 떨 정도로 긴장했으며 아르헨티나에 흔하지 않은 아일랜드계라서 진저헤드라고 놀림당하는 걸 메시가 막아준 것을 계기로 메시를 더 존경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메시를 보고 자란 세대 입장에서 메시는 동료이기 이전에 자국 출신의 레전드이기 때문에 친목을 넘어 메시를 추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선수단 대부분이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서 자신들의 우승보다는 메시의 우승을 위해 뛰었다고 할 정도. 특히 데폴,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 레안드로 파레데스 같은 경우는 메시가 대장이면 전쟁에도 나갈 수도 있고 메시를 위해 전쟁터에서 죽을 수도 있다고 발언할 정도로 맹목적인 팬심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우승을 차지한 직후 모든 선수들과 감독까지 울면서 메시에게 달려가 헹가래를 해주는 명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다른 국대 경기에서도 메시가 과격한 태클을 당하면 벌떼처럼 몰려들어 상대에게 달려들거나 심판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등 선수단 전체가 메시를 중심으로 단합력을 보여주고 있다.[31] 메시 역시 바르셀로나 시절 스페인 지역에서 활동하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국가대표 스케줄이 있으면 자기 자가용 비행기로 픽업해주거나 생일파티에 국가대표 선수단 전원을 초대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등 후배들을 잘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카타르 월드컵을 계기로 리오넬 스칼로니와의 친분도 부각되기 시작했다. 둘은 2006년 월드컵에서 처음 만났는데, 이 때는 스칼로니도 호세 페케르만 감독 아래에서 현역 선수로 뛰었으나 스칼로니는 에르난 크레스포보다 약간 아래에 후안 로만 리켈메와 동갑내기인 팀의 고참인 반면, 메시는 이 팀의 막내였다. 그럼에도 메시와 스칼로니는 동향 출신( 로사리오), 같은 이름(리오넬) 등 여러 동질감을 갖고 있어서 빠르게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대회 이후 스칼로니는 급격히 내리막을 타며 국대에 더 이상 차출되지 않아 둘이 만날 일이 없었는데, 2017년 스칼로니가 호르헤 삼파올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합류하면서 다시 만났다. 스칼로니는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이후 삼파올리가 경질되며 감독 대행직을 맡다가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는데, 당시 메시는 월드컵에서의 이어지는 부침 속에 너무 힘든 나머지 국가대표 은퇴까지 고민하던 상황이었다. 스칼로니는 메시를 잘 달래서 은퇴를 말렸고 국가대표 내에서 메시에게 큰 힘이 되어줬다. 실제로도 메시는 스칼로니에게 많이 의지했다. 반대로 스칼로니 역시 대표팀을 리빌딩하는 과정에서 선수단을 장악하는데 메시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이는 결실을 맺어 코파 아메리카 2021에서 우승하면서 스칼로니는 메시에게 성인 국제대회 첫 챔피언 자리를 선물했다.

그리고 2022년 월드컵에서 둘은 월드컵 우승을 합작했다. 스칼로니 자신이 직접 밝힌 일화에 따르면 월드컵 남미 예선 브라질전에서 에이스인 네이마르가 빠진 브라질을 상대로 시원찮게 무승부를 거두어 아르헨티나 자국민들에게 비난당할까봐 불안감에 빠진 스칼로니가 메시에게 상담을 요청했고 메시의 위로를 받아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한다. # 젊은 초짜 감독인 스칼로니와 베테랑 선수인 메시는 둘 다 국대 우승에 목이 말라 있었고 둘다 자국에서 의심과 비판의 시선을 받았던 만큼 사제지간의 신분을 넘어 서로 의지할 정도로 동질감과 유대감이 컸으며 이를 바탕으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를 이끌었다. 당분간 헤어져 있었긴 했으나 동일한 선수 신분으로 뛰면서 처음 만났는데다 특히나 메시에게 월드컵 우승을 안겨준 스칼로니이기에, 메시에게 있어서 스칼로니는 펩 과르디올라를 뛰어넘는, 생애 최고의 은사이자 평생의 동반자로 남게 되었다.

라 마시아에서도 역대급 세대로 불리는 87년생 황금라인의 제라르 피케 세스크 파브레가스와도 유소년 팀부터 이어진 죽마고우이다. 피케와는 거의 20년 가까이 함께 뛰고 있는 동료이고 이적한 파브레가스와도 휴가 때마다 가족끼리 틈만나면 함께 여행다닐 정도로 친하다.[32] 처음 라 마시아에 들어왔을 당시 혼자만 외국인에다 성격까지 내성적이었던 메시가 적응하지 못할 때 피케와 세스크가 신경써줘서 친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친하지 않았던 초창기에 피케가 메시를 벙어리인 줄 알고 있었던 것과 유소년 시절 이탈리아로 원정경기를 갔을 때 비디오 게임을 계기로 메시의 말문이 트이면서 친해지게 되었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 이 친해지게 된 계기도 코믹한데 # 그 때도 장난끼가 많았던 피케가 메시에게 일종의 신고식을 치러주겠답시고 몰카를 기획했다고 한다. 당시 룸메이트였던 세스크가 메시를 데리고 나간 틈에 피케가 메시 방에 있던 모든 물건을(심지어 침대까지) 다 끌어내서 숨겨버렸고 방에 돌아온 메시가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카메라로 찍었다고 한다. 이후에 몰카라고 공개하고 메시도 슬슬 피케와 세스크에게 장난을 치기 시작하면서 친해졌다. 다만 현재는 피케와 사이가 틀어진걸로 보이는데 메시가 바르셀로나에서 자유계약으로 나가는데 있어서 피케가 보드진에게 메시의 방출을 건의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이러한 점 때문에 메시의 측근이 그를 비난한적이 있다. 또한 피케의 은퇴식때 메시는 아무 말도 없었으며 메시가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도 피케 역시 아무 말도 없었다.

바르셀로나 최전성기를 이끈 감독이자 스승인 펩 과르디올라와도 돈독한 인연을 자랑한다. 메시는 데뷔 초기에 근육에 무리가 심해서 부상 이력이 많았는데 펩의 부임이후 관리를 받기 시작하면서 부상을 줄이고 메시 중심으로 팀을 개편하면서 최고의 순간을 누렸고 메시 역시 기술은 최고지만 유리몸이었던 시절에서 한 단계 발전하여 지금의 메시가 될수 있었다. 세월이 지났지만 과르디올라는 자신이 지도한 최고의 선수로 여전히 메시를 언급하며 최고의 선수라고 치켜세우고 메시 역시 펩을 자신이 만난 최고의 감독이라며 서로 존중하고 있다.

메시에게 과르디올라 만큼 많은 영향을 끼친 감독이 바로 펩의 수석코치이자 후임 감독인 티토 빌라노바이다. 유스 시절부터 메시를 오랫동안 지도했던 감독인 빌라노바는 메시가 처음 1군에 올라왔을 때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지만 빌라노바 코치 부임 이후 그의 적극적인 지지로 많은 경기에 뛰면서 일이 잘풀릴 수 있었다. 특히 메시가 힘들때 그를 잡아준 사람도 빌라노바인데 13-14시즌 종료 이후 팀에 여러 구설수에 지쳐 팀을 떠나려는 메시는 당시 암투병 중이던 빌라노바에 병문안을 갔는데 빌라노바는 메시에게 절대로 바르사를 떠나지 않을 것을 약속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1주일후 사망하게 된다. 이에 충격받은 메시는 빌라노바와에 약속 때문에 팀에 남았고 이는 14-15 시즌 두번째 트레블을 달성하게 된다.

카를레스 푸욜과는 친형제나 다름없을 정도로 친분이 깊으며 푸욜 본인이 메시의 빽을 자처할 정도였다. 엘 클라시코에서 세르히오 라모스가 메시에게 린치를 가하자 푸욜이 화가나서 라모스를 꾸짖다가 라모스에게 펀치를 맞기까지 한 사건은 큰 화제였었다. 게다가 발롱도르 투표 기간이 다가올 때면 푸욜은 자신의 조국인 스페인의 다른 축구 선수들을 다 제치고 메시에게 발롱도르를 줘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인이고 아르헨티나에 대한 애국심이 강한 선수임에도 호나우지뉴 등 아르헨티나와 라이벌 구도에 있는 브라질 선수들과의 친분이 두텁다는 점은 특이한 점이다. 처음 1군으로 올라왔을 때 원래 성격도 내성적인 데다 나이까지 17살로 가장 어린 바람에 어색해 하던 메시를 호나우지뉴와 다른 브라질 선수들이 많이 챙겨주었다고 한다. 다른 브라질 선수들도 막내였던 메시를 귀여워해서 많이 챙겨주었고 식사를 할 때 동석을 권유하며 '메시는 이 테이블에 앉아도 되는 유일한 아르헨티나인'이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호나우지뉴와의 친분으로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시우비뉴 데쿠, 사무엘 에투 등 당시 대부분의 이적생 선수들과 굉장히 친했었다. 시우비뉴는 FA 신분으로 바르셀로나를 떠나기 전까지도 락커룸의 다른 선수들에게 메시를 잘 부탁한다고 했을 정도로 메시를 챙겨줬으며 알베스와 메시가 친해진 계기도 시우비뉴 덕분이었다고 한다. 사무엘 에투 역시 메시의 대표 절친 중 한 명인데 메시가 16살이었던 시절부터 보고 지낸 사이라 그런지 아직까지도 메시를 '내 아들(Hijo)'이라고 부른다. 메시가 어렸을 때 에투가 결정적인 조언을 해줘서 도움이 되었다고 하고 지금도 인터뷰에서 친아들만큼 사랑한다는 발언을 수시로 할 정도로 거의 친자식처럼 생각한다.

호나우지뉴와는 서로를 최고의 선수라고 치켜세우고 거의 가족이나 다를 바 없는 사이였다고 하며 호나우지뉴가 팀을 나가게 된 뒤 올림픽에서 재회하자 경기가 끝난 후 포옹을 하고 라커룸까지 찾아가는 등 여전히 친하게 지내고 있음이 보여졌다. 호나우지뉴의 경우 자신의 축구 커리어에서 유일한 후회는 메시와 좀 더 오래 뛰어보지 못한 것이라고 하며 메시와 어린 시절밖에 함께 할 수 없어 그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웠다 할 정도로 우정이 여전하다. 문제는 바르셀로나에서 메시한테 호나우지뉴의 못된 물이 들까 봐 호나우지뉴를 이적시켰다는 점이다. 메시는 호나우지뉴를 자신의 대부로 생각하며, 호나우지뉴와 함께 더 뛰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발언했다. 메시 - "호나우지뉴는 내 대부, 함께 더 뛰지 못한 것이 아쉬워"

현재 브라질 최고의 축구 선수이자, 팀 동료인 네이마르 역시 메시에게 무한 존경심을 표하고 있어서 마치 소싯적 지뉴와 메시의 관계를 보는 듯하다는 의견이 많다. MSN 라인이 메인이었던 시절, 수아레즈까지 셋이서 뭉쳐 다니면서 굉장히 친하게 지냈고 세 선수가 사적으로도 친한 것이 플레이 상의 장점으로 나타난다는 의견이 많았으며 공격수로서 케미도 좋은 편이었다. 네이마르와 메시가 마찰을 빚을수 있다는 예상과 반대로 실제로는 네이마르의 적응을 가장 많이 도와준 사람이 메시였다고 한다. 네이마르가 이적 초기 적응을 제대로 못해서 하프타임 때 혼자 울고 있었는데 메시가 다가와서 위로도 해주고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밀어줬다고 한다. 네이마르가 후일 인터뷰에서 이를 언급하며 울기까지 했을 정도다. 득점왕 경쟁으로 불이 붙은 시점에서도 네이마르에게 PK를 많이 양보해주기도 하고 네이마르가 바르셀로나를 떠나면서 소송이 걸려 팀과 마찰을 빚을 당시에도 대놓고 네이마르의 아들 생일 파티에 참석하고 이를 SNS에 올리는 등 네이마르와의 관계는 끝까지 돈독했다.

지금까지도 MSN 3인방만의 왓츠앱 단톡방이 있어 셋이서 대화를 많이 하고 여전히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에서 떠날 당시에도 끝까지 네이마르를 잡으려 했고, 떠난 직후에는 수아레즈와 자신이 네이마르를 그리워하고 있고 어디에서나 행복하길 바란다고 영상 편지를 보내서 네이마르가 감동받기도 했다.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선 마침내 결승전 상대로 만났고 결국 메시가 승리를 거뒀지만 패배한 네이마르가 먼저 메시에게 다가와 부둥켜안고 울거나 세리머니 뒤에도 친목질을 하는 훈훈한 장면을 만들어내며 두 선수의 진한 우정을 실감하게 했다. 그리고 2021년 8월 10일자로 메시가 파리 생제르맹 FC로 FA로 이적하면서 다시 같은 팀에서 뛰게 되었는데 메시의 파리 이적 배경에는 네이마르가 파리에 있는 점도 한몫했다.

돈독한 관계를 보이는 또 다른 브라질 선수는 다니 알베스다. 그는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이래 과르디올라 시절부터 사비와 함께 팀의 오른쪽 조합을 만들어냈으며 메시에게 가장 많은 어시스트를 제공한 선수이기도 하다. 전성기에서 내려오면서 기량에 많은 비판을 받고 2014-15 시즌 이후 바르셀로나를 떠날 계획도 갖고 있었으나, 트레블 이후 메시의 남아달라는 말에 클럽과 재계약을 체결할 정도. 네이마르와 알베스 모두 팀을 떠났지만 여전히 메시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고 있다.

이렇듯 브라질 선수들과 세대 불문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브라질에서 가장 인기있는 유럽 축구 클럽인 바르셀로나 최고의 레전드인 덕분에[33] 브라질에서의 인기가 높은 편이다.[34] 마라도나와의 라이벌리 떡밥 때문에 종종 메시를 까던 펠레도 네이마르가 메시의 팀 동료가 된 이후로는 덕담도 하고 좋은 평가도 내려 주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싫지만 메시는 좋아한다"는 의견도 많고 심지어 메시가 펠레, 마라도나를 뛰어넘을 거 같냐는 브라질 내 설문조사에서 둘 다 뛰어넘을 거다라는 응답이 50%에 가깝게 나온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아예 둘을 넘어서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응답이 60%를 넘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마라도나에 대해서는 그렇다 쳐도[35] 펠레 브라질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보면 파격적인 일.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 당시엔 일명 아디오스 아저씨가 결승전에서 "메시를 믿는다"는 어구를 써들고 경건한 표정을 짓는 컷이 잡히기도 했다. 이외에도 브라질 여권에 메시를 합성한 사진을 게시하거나 브라질에서 전지훈련을 했을 때 여러 명의 팬들이 훈련장에 난입하여 격한 환영 인사를 해 준 적도 있다. 이때 메시의 구두를 닦아주는 퍼포먼스를 펼친 팬도 있는가 하면 메시의 절친이자 자국의 영웅인 호나우지뉴 코스프레를 하고 들어온 팬도 있는데 이를 본 메시는 빵 터지며 좋아했다. 2021 코파 아메리카 브라질에서도 메시의 국대 우승을 기원하는 일부 브라질 유명인들과 팬들이 결승전에 앞서 아르헨티나 공개 지지를 선언하면서 네이마르가 대놓고 자국팬들에게 분노를 토로하기도 했을 정도로 브라질에서 메시의 인기는 의외로 정말 높다. 호나우두 역시 많은 브라질 사람들이 메시의 월드컵 우승을 응원했다고 인증하기도 했다.

한편 전성기 때의 디에고 마라도나와의 비교가 정말 많이 이뤄지고 있는데, 그 마라도나 본인도 메시를 아주 아꼈다. "나의 마라도나는 메시", "1986년(자신의 최전성 시절)의 나보다 메시가 더 뛰어나다."라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로 메시를 극찬하며 싸고돌았다. 물론 메시 또한 마라도나를 아주 존경하고 찬양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2017년 이후로는 두 사람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물론 메시가 뭘 한 건 아니고 마라도나가 방송에 나와서 펠레와 함께 메시가 사람은 참 착한데 소극적인 성격이라 리더의 미덕에 맞지 않다고 뒷담화를 까거나 이후로도 "경기 전에 화장실을 20번이나 가는 선수, 동료와 얘기하는 것보다 비디오 게임을 더 좋아하는 선수가 어떻게 좋은 리더인가"라며 메시의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깠기 때문이다. 레전드 선배가 안그래도 국대 부진에 대해 독박으로 욕먹어서 힘들 상황에 비난 여론에 편승해 자국 후배를 조롱하는 그림이 졸렬해 보이기도 하고 메시의 성격에 기반한 주관이 섞인 인신 공격을 했다는 점에서 마라도나의 발언은 많은 비난을 받았다. 메시의 사촌이 크게 분개하기도 했고 아르헨티나의 전설 마리오 켐페스 역시 "마라도나 본인도 완벽한 롤모델은 아닌 주제에 누굴 욕하냐"고 꼬집었으며 바르셀로나 동료인 사비 역시 "함께 생활한 동료를 욕하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 메시는 조용하지만 완벽하고 거친 리더"라고 이를 저격했다.

하여간 이후로도 마라도나가 메시의 소심한 성격을 일방적으로 저격하며 관계가 악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에서 열린 메시의 결혼식에도 마라도나는 초대되지 않았다. 메시 본인이 이에 대해 대응한 적은 없지만 아르헨티나 코치진인 로베르토 아얄라 등 국가대표 관계자들이 메시가 방에 틀어박혀서 혼자 논다거나 하는 건 어릴 때 얘기고 요즘은 어린 선수들한테도 먼저 다가가고 사교적인 리더가 되었다고 인터뷰하는 것을 보면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마라도나는 이후 메시가 은퇴 선언을 하자 메시를 설득하는 데 앞장섰고 우리가 메시를 외로운 곳으로 몰아넣었다고 후회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으며 이후 메시의 은퇴에서 주요한 원인이었던 부패한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를 비판하는 데 힘을 실어주었다.[36] 이와 별개로 메시도 마라도나를 추모하는 골 세레모니를 보여주었으며 월드컵 기간에도 마라도나가 천국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고 인터뷰하며 그를 그리워 하고 반드시 마라도나의 영전에 트로피를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이 약속은 메시가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우승하며 이루어졌다. 참고로 마라도나와 메시는 서로의 국가대표 우승의 순간을 직접 목격한 적은 없다는 기묘한 인연도 가지고 있다. 마라도나가 월드컵을 우승한 1986년은 메시가 출생하기 1년 전이었으며, 메시의 코파 우승과 월드컵 우승은 마라도나 사후에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펠레와 호나우두 등 생전에 마라도나를 알았던 지인들은 마라도나도 천국에서 기뻐하고 있을 것이라고 메시를 위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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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절친은 우루과이 루이스 수아레스로 아마도 팀 동료이면서 사적으로도 가장 친한 동료일 듯하다. 평소 사진을 보면 라 마시아 시절부터 친구였던 제라르 피케나 국대 동료인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를 제쳐두고 수아레스와 가장 많이 붙어 다녔다는 걸 알수 있다. 메시가 네이마르 주니오르, 수아레스와 친하게 지내며 공격진의 케미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바인데, 특히 수아레스와 메시의 경우 둘 다 애 아빠들이다 보니 아침에 둘이서 같이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는 사진들이 종종 찍히곤 한다. 네이마르도 전여친과의 아들 한명이 있고 교육 문제로 아이를 바르셀로나로 데려왔지만 직접 키우지는 않아선지 여기엔 끼지 않는다.

심지어 수아레스 가족이 메시 부부의 신혼여행까지 따라갔다. 2020년 8월, 19-20시즌을 무관으로 마친 뒤 바르셀로나의 새 감독이 된 쿠만이 수아레스를 예의없이 내치자 바르토메우 회장에게 6년간 꾹꾹 참던 메시가 폭발해서 이적 요청을 했다. 수아레스가 자국 리그로 돌아갈 때도 자신의 자가용 비행기를 빌려주고 영상편지까지 찍어 보내는 등 끈끈한 우정을 보여주고 있다. 메시가 월드컵을 우승한 직후 둘이 영상통화한 모습을 올리기도 했는데 수아레스 자신은 비극적으로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지만 환한 건치 미소를 보내며 친구의 우승을 축하해줬다. # 카타르 월드컵 이후 짤막한 휴가를 보낼 때도 수아레스 가족을 불렀으며, 그 외에도 수아레스를 집으로 초대해 여러번 같이 휴가를 보낸 적이 많았을 정도로 국적을 넘어서 가장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둘 다 애처가이면서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또한 공통점이기도 하다.

5. 대중문화 속의 메시

메시가 축구 외적인 부분에서 이전 시대의 축구 스타들과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이라면 바로 유튜브 시대의 축구 스타라는 점이다. 그가 경기를 뛰고 나면 수 시간 안에 해당 경기에서 메시가 볼터치를 한 장면만 모은 영상들이 유튜브에 업로드된다. 유명 축구 유튜버들이라면 한 번쯤은 메시의 커리어에서 최고의 플레이 장면을 모은 컴필레이션 영상을 만들곤 한다. 심지어 유명 축구 해설자인 '레이 허드슨(Ray Hudson)'이 메시의 플레이에 경악하는 반응을 모은 컴필레이션 영상들도 있을 정도다. 축구 선수들을 평가할 때 이른바 '현역 버프'라는 것이 있어서, 평가 대상이 되는 선수가 은퇴를 하면 버프가 사라지고 현역 때에 비해 평가가 떨어지게 된다는 시각이 있는데,[37] 메시의 경우 남아있는 영상 자체가 너무 많아서 은퇴 후에도 현역 때 받는 찬사를 그대로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반박도 있다.

여느 스포츠 스타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상품들의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커리어 초창기에는 나이키의 스폰서십을 받았지만, 현재는 아디다스의 스폰서십을 받고 있다. 원래 축구 분야 메인 모델이었던 히카르두 카카가 기량 하락으로 슈퍼스타의 지위를 잃자, 메인 모델로 자리를 잡은 상태다. 착용하는 축구화는 원래 '아디제로 F50'이었으나, 현재는 아디다스에서 '메시 15.1'이라는 이름의 시그니처 모델을 출시한 상태다. 아디다스 모델로서는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반영한 Impossible Is Nothing 광고와 There Will Be Haters 광고가 유명한 편이다. 코비 브라이언트와 꼬마팬의 관심을 얻기 위해 개인기 대결을 펼치는 항공사 CF가 재치 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 외에 호날두와 문자로 키배를 뜨는 CF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웃기는 CF는 일본 '앙파' 사의 스칼프D 세안제 광고. 임팩트 있는 대사[38]덕에 빵터졌다는 평가가 많다. 메시 기모찌~ 한국에서는 몬데그린 자막 버전이 유행하기도 했고 웹툰 작가 와싯에 의해 패러디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해당 CF는 정확히 메시가 25세였던 2012년에 찍은 CM으로, 공교롭게도 이 세안제 회사도 1987년에 설립되어 25주년이 되었던 상황이라, 메시와는 동갑내기인 회사이다. 이 회사는 샴푸 모델로는 네이마르 출연시키기도 했다. 메시는 이 회사와의 인연을 깊게 생각했는지, 2018년에 다시 한 번 이 회사의 샴푸 광고를 촬영했었다. 그리고 다단계 판매 건강식품 회사 허벌라이프의 전속 모델이기도 했다. 멘트는 "오늘도 셰이크 하셨어요?" 여담으로 리오넬 메시 다음 허벌라이프 광고 모델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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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일, 그의 축구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어 스페인에서 개봉하였다.
축구 게임에서는 메시라는 위상에 비해서는 평가가 조금 낮은데, 축구 지능을 반영하기 어려운 게임 특성상 속력이나 체격 등 피지컬이 우월한 선수들이 강력하기 때문. 메시는 현실에서 상당한 준족에 낮은 무게 중심 덕에 몸싸움도 잘 밀리지 않지만, 게임에서는 세계 정상급에서 한 걸음 내려와 있는 주력 스탯을 지녔고 몸싸움은 아무리 무게 중심이 낮아도 체구에서 밀리면 말짱 꽝이라 의미가 없다. 대신 드리블, 볼 컨트롤, 패스, 킥 등 다른 스탯은 모든 선수 중에서 독보적으로 높은 축에 속하지만, 이러한 능력치는 플레이어의 손을 많이 타기 때문에 메시의 활용도를 최대치로 뽑아기 위한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물론 손을 많이 탄다는 이야기는 다시 말해 잘만 쓰면 무지막지하게 강력하다는 뜻도 된다. 그러다보니 게임 내에서의 선수에 관한 평가치를 반영하는 이적시장 시세를 보면 게임 내 평가가 가장 좋은 선수들보다는 가격이 떨어지지만, 웬만한 월드 클래스 선수들보다는 가격이 높다.

풋볼 매니저 시리즈에서는 바르셀로나를 플레이하지 않는 이상 주적. 물론 FM 시리즈도 뇌지컬보다 피지컬 요소를 많이 탄다고는 하나 메시는 이야기가 다르다. 선수들 중에서 제일 높은 포텐셜 199-200을 찍는다. 2011에서는 많이 하향돼서 스탯은 찍지 못하는데[39] 평균 평점이 높아 항상 발롱도르를 독점한다. FM 2012에서도 사기캐인 건 여전하다. 최신작 FM 2019에서는 현실 반영으로 타고난 체력과 지구력이 낮은 편이어서 체력 관리를 잘 해줘야 한다.

FPS 게임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II와의 콜라보로 폴 포그바. 네이마르 주니오르와 함께 한정판 오퍼레이터 번들이 발매됐는데, 덕분에 그가 스포츠 게임이 아니라 FPS에서 군장을 갖추고 총질을 하며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성우 또한 메시 본인이 맡았는데 콜라보로 출시된 오퍼레이터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목소리 연기가 힘빠진 발연기를 선보여서 작은 불만이 있었다.

메시가 앰버서더로 있는 efootball 2024는 메시가 8번째 발롱도르를 수상한 다음 날 메시 뽑기 팩을 내놓았다. 21세의 어리고 재빠른 윙어 메시, 27세의 전성기를 맞은 트레블 당시의 메시, 35세의 황혼기에 월드컵을 들어올린 국가대표 메시, 이렇게 총 3개 버전의 메시가 수록되어 있으며, 그와 클럽 및 국대에서 커리어를 함께 한 선수들이 함께 들어있다. 2024 들어서 돈미새스러운 행보로 영 평가가 좋지 않았으나 이것만큼은 메시의 팬들이 추억하는 메시의 최고의 순간들을 시간에 따른 변화가 느껴지게 내놓아서 간만에 잘 만들었다그리고 돈 빨아먹으려고 작정을 했구나라는 호평이 많다. 스탯 역시 27세와 35세의 메시는 대놓고 0티어고, 21세의 메시 역시 취향을 좀 타지만 1티어는 따놓은 당상인지라 소액과금러여도 이 3메시만큼은 반드시 현질해야 한다는 평가가 많다. 이후로도 코나미는 꾸준히 메시 특카와 팩을 출시하며 앰버서더 대우를 톡톡히 해주고 있으나, 저 3메시를 넘는 메시는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6. 아르헨티나에서의 위상

리오넬 메시는 신이 아르헨티나에 보내준 선물 같은 존재다.
리오넬 메시는 항상 국민들의 마음 속에 있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제 53대 대통령(上)과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제 54대 대통령(下).
농구의 지노빌리, 테니스의 델 포트로, 유도의 파울라 파레토[40], 여자 하키의 루시아나 아이마르[41], 축구의 메시와 마라도나, 이들은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고의 스포츠 선수이다. 그러나 인기에서는 아무도 마지막 2명을 능가하지 못한다.
아르헨티나 현지인 Mateo Meul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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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에서 리오넬 메시는 승부차기에서 실축을 했고 아르헨티나는 칠레에게 패한다. 경기가 끝난 후 리오넬 메시는 갑작스럽게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고 이는 아르헨티나 전역에 큰 충격을 준다. 리오넬 메시의 은퇴를 만류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국민들, 전설적인 축구 선수 마라도나,[42][43] 대통령[44], 시장 등 모두가 나서 리오넬 메시의 은퇴를 만류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공항, 시장, 교통 등 온 나라가 "No te vayas Lio"(떠나지 마요, 리오)로 도배가 되고 시위까지 확산됐다. 리오넬 메시의 은퇴 만류는 온라인도 마찬가지였다.[45][46] 리오넬 메시에게 '떠나지마라'는 제목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수백만 명이 서명까지 했다. 이러한 너무나도 큰 파장에 리오넬 메시는 국가대표 복귀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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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기원해 2021년 7월 9일 아르헨티나의 독립 기념일에 리오넬 메시의 모습이 투영됐다.

모든 아르헨티나 축구 꿈나무들의 우상이며, 그의 활약을 보고 축구 선수가 된 경우가 많다. 대표팀에서도 메시를 추종하는 선수들[47]이 많고, 모두에게 존중받고 있다. 물론 메시도 대표팀 주장으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후배들을 잘 이끌어주고 있기에, 팀의 조직력과 선수들간의 소통과 호흡도 잘 어우러지게끔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주고 있다. 그리고 2022년 12월 18일, 마침내 카타르 월드컵에서 메시를 중심으로 뭉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은 FIFA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게다가 카타르 월드컵이 끝나고 난 후에 올라온 아르헨티나의 대선 출마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메시에 대한 선호도가 약 43.7%로 높게 나올 정도니 이 정도면 거의 민족 영웅급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자료 출처

이런 메시도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이고 거기서 더 좋은 활약을 보인다며 한때는 아르헨티나를 위해 모든걸 보여주지 않는 선수다, 아르헨티나인이 아닌 스페인 선수같다 라고 욕을 먹고 까인 적도 있었다. 특히 2014년~2016년의 3연 준우승 시절엔 리더십에 대한 지적과 함께 아르헨티나 내에서도 메시에 대한 비판이 엄청나게 일었다.[48] 메시를 자신의 후계자라며 어화둥둥 칭찬해주던 마라도나도 메시를 깠을 정도. 그러나 이후 메시가 국대 은퇴 선언을 했다가 복귀하며 아르헨티나를 위해 진정으로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축구의 신 같은 면모와 다르게 사적으로는 친절하면서도 때론 나약한 인간적인 면이 드러나자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도 정말 국가를 위해 뛰는 선수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말년에 세 번의 메이저 대회에서 부상조차 무릅쓴 하드캐리와 트로피에 대한 간절함으로 우승하며 마침내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모든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사랑하는 전설적인 존재가 되었다.

아르헨티나와 축구 내외적으로 숙명의 라이벌인 브라질에서도 메시는 추앙받는다. 원체 축구에 미친 나라라 그런지 한일 관계 급으로 양 국민의 감정이 서로 좋지 않은 나라임에도 메시만큼은 인정받는 편. 호나우지뉴는 브라질 선수들 및 메시와 식사를 하며 '이 식탁에 앉을 수 있는 아르헨티나인은 너 뿐일 것이다.'라고 말했고, 네이마르 역시 메시를 매우 좋아하는 선수다.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선 브라질 홈인 데다 재미가 없으면 우승해도 욕하는 브라질 국민들조차 자기네들 국대 응원은 안 하고 전부 메시의 한풀이 우승을 응원하는 여론이 강해서 그 네이마르가 자국 국대 좀 응원해 달라고 한 소리 했을 정도. 월드컵에서도 브라질이 탈락하자 메시의 라스트 댄스가 성공하길 기원하며 그를 응원하는 브라질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브라질의 축구 레전드들이 대놓고 옹호하고 칭찬하는 정말 몇 안 되는 아르헨티나 축구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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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의 활약으로 역사적인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우승을 차지한 후,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정말 온 국민이 집결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정말 많은 사람이 집결했다. 심지어 도시 전체가 마비될 지경이였다. 월드컵 우승을 기념하는 의미로 메시 타워를 세웠으며, 전 국민이 다 같이 즐겼다.

심지어 리오넬 스칼로니는 메시에게 2026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 너를 위해서 1자리를 비워 놓았다. 그 때 출전하고 싶으면 언제든 말만 해라라는 굉장히 파격적인 발언을 했다. # 참고로 이 때 메시의 나이는 39살이다. 만약, 이게 실현된다면 메시는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6개 대회 출전 선수(2006, 2010, 2014, 2018, 2022, 2026)라는 굉장한 기록을 남기게 된다.[49][50] 메시 또한 2024 코파 아메리카 개막 전 자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내 몸 상태가 어떤지에 달렸다' 며 2026 월드컵 참가에 대한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두지는 않았기에, 2026 월드컵 참가가 현실화 될 지는 지켜봐야 할 듯. #[51]

월드컵 우승 이후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그의 이름을 따 아기의 이름을 '리오넬' 혹은 '리오넬라'[52]로 짓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

2023년 3월 20일에는 A매치를 위해 귀국했는데, 가족과 저녁을 즐기기 위해 찾은 식당(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돈 훌리오(Don Julio))[53]앞에 새벽 2시인데도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들었다. # #

2023년 3월 새로 지어서 현판식을 거행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훈련시설의 이름이 리오넬 안드레스 메시로 결정되었다. #

2023년 6월 배구에서 아르헨티나가 프랑스를 잡은이후 배구 대표팀 선수들이 메시 유니폼을 들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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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의 활약으로 역사적인 2024 코파 아메리카 미국 우승을 차지한 후, 월드컵 우승을 기념하는 의미로 메시 타워가 세워졌던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또 다시 한번 타워 주변으로 우승의 영광을 만끽하기 위해 도시 전체가 마비될 정도로 시민들이 모였다. 역사적인 국가대표 메이저 대회 3연패 우승을 국민들이 함께 즐겼다.

7. 광고

리오넬 메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이 시대에서 가장 주목도가 높은 축구 선수인 만큼 수 많은 광고를 찍었다. 언론이나 방송 출연을 꺼리는만큼 축구 이외의 것으로 대중에게 다가오는 것은 인스타그램과 광고가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리오넬 메시가 홍보한 것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당연 아디다스의 축구화이며 그 다음으로는 Lay's이다. 본 브랜드가 챔피언스 리그를 후원하는 만큼 경기 시작 전 오프닝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과거에 진행했던 스폰서쉽은 굉장히 오랜 기간 지속된 돌체 앤 가바나가 있는데 메시가 사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면 어지간해서는 이 브랜드의 옷을 입고 있어 작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삼성 갤럭시 노트 시리즈를 광고한 적도 있다.

메시는 아디다스와 성인 데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계약을 맺어 현재까지 그 관계를 돈독히 이어가고 있으며 메시는 실생활에서도 아디다스 제품을 많이 착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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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감자칩 Lay's와의 계약을 2024년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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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시의 전속모델을 하고 있다. 과거 메시가 펩 과르디올라에게 콜라를 많이 마신다고 혼나고 트레이닝 센터에서 자판기가 사라지게 된 계기가 된 것을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계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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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루이 비통 캠페인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한[54] 화보가 공개되며 굉장한 화제가 되었다.

2023년에는 돌체 앤 가바나와의 오랜 관계를 뒤로하고 루이비통의 앰베서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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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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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의 교황 헌정 친선경기 전에 교황이 양팀 선수단을 접견하면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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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4월 23일 엘 클라시코에서 승리 후 레알 마드리드의 관중 앞에서 상의를 탈의해 등번호와 이름을 보여주는 '탈의 세리머니'를 선보여 화제가 되었다. 이날 메시는 세르히오 라모스 마르셀루의 거친 몸싸움 때문에 피를 흘려가면서도, 클럽 통산 500호 골을 포함한 멀티골을 넣어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를 침몰시켰다. 그야말로 "내가 메시다"를 보여준 경기력과 세레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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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 라리가 최다 득점자 1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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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에 타투가 많다. 원래도 발바닥이나 어깨 등 안 보이는데에 조금씩 있었으나 2014-15시즌 프리시즌을 앞두고 갑자기 오른팔과 왼다리에 바르셀로나, 아르헨티나의 전통 문양을 담은 이레즈미 형식의 거대한 타투가 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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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의 타투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몇 년 지나지 않아 타투의 막장, 블랙레그로 덮어 버렸다.

[1] 부계 직계도 아니고 이렇게 혼인을 통해 모계로 간접적으로 연결되면 촌수가 무의미해진다. 한국의 전통사회에서도 상복을 입는 가까운 친척이 부계 8촌 이내이다. [2] 물론 구단 허락도 없이 무단으로 간 건 아니고 구단에선 끝까지 반대했지만 그 당시 부임한 신임 감독 예정자였던 펩 과르디올라가 보내주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구단과 메시 사이를 중재해서 감독의 허락하에 다녀온 것이다. [3] 2019 발롱도르 시상 기념 인터뷰에 따르면 메시는 스스로 전형적인 골 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며 골을 넣는 것 이외에 플레이 메이킹을 잘한다는 역할에 만족감이 크다는 인터뷰를 여러번 한 바 있다. [4] 메시가 매 경기 선발되려는 욕심이 강하다는 것은 바르셀로나 팬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일이며 루이스 엔리케와 불화설이 터진 원인 역시 엔리케가 그를 교체 아웃시키려 하자 메시가 따봉을 시전하며 그의 지시를 무시했다는 것에서 출발한 게 원인이었다. 이 당시 당사자들인 엔리케는 원래 교체 전에 선수 의사를 물어보고 교체한다고 해명했고 메시는 선수 교체는 감독님의 권한이며 항명할 의사가 없었고 감독이 원하면 언제든 교체시킬 수 있는 게 당연하다고 해명하며 불화설을 봉합했다. [5] 국대의 경우 월드컵에서 준우승 밖에 못했다고 메시가 국민들의 원망을 다 뒤집어썼고 클럽팀인 바르셀로나도 전 시즌 무관에 그친데다 오만가지 논란이 다 터지고 감독 티토 빌라노바가 투병 중 사망하는 등 쑥대밭이 된 상태였다. 거기다 해당 시즌에도 전반기 바르셀로나가 연이은 패배로 욕을 먹은 데다 메시 본인은 신임 감독과 불화설이 터지는 등 분위기가 안 좋았다. [6] 이외에도 왈테르 사무엘, 로베르토 아얄라와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 역시 코치로 합류하였다. [7] 2017년 연말 아디다스에서 'Calling all Creators' 광고 캠페인에 등장했는데, 당시 같이 나온 엔도서들이 죄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스포츠 스타들이거나( 제임스 하든, 데미안 릴라드, 본 밀러, 애런 로저스, 디안드레 홉킨스, 크리스 브라이언트,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 등등. 스포츠 스타 이외에는 퍼렐 윌리엄스가 등장), 미국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데이비드 베컴처럼 영국인이거나 폴 포그바처럼 당시 잉글랜드에서 뛰는 스포츠 스타가 등장했다. 한마디로 영어가 안 되는 메시를 앉혀놓고 영어로 능욕을 준 셈. [8] 정확히는 영어를 알아 듣기는 하지만 영어로 말을 하는 것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 인터뷰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9] 성인팀 합류 후 본격적으로 에이스에 등극한 첫 시즌이기도 했던 08-09시즌 당시 팀이 6관왕을 기록하며 기념으로 열리는 축하 행사에서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해서는 팬들 앞에서 카탈루냐어로 연설을 하는 걸 보면 사실인 듯하다. # 평상시와 달리 꽐라가 돼서 방방 뛰는 메시를 보고 웃는 동료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10] 예전에 화제가 된 중국 짝퉁 마티즈를 제작한 회사이기도 하다. [11] 대체로 메시가 수염을 깔끔히 밀었을 때 아르헨티나의 국제대회 성적이 더 좋았다.(2014 월드컵 준우승+골든볼, 2021 코파 아메리카 우승) 반대로 메시가 수염을 길렀을 때의 아르헨티나는 힘을 영 못썼다.(2018 월드컵 16강 탈락, 2019 코파 아메리카 3위+메시 본인의 퇴장) [12] 참고로 이 사람, 디에고 마라도나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일 때 우승하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랜드마크에서 나체쇼 하겠다고 하자 그럼 자신도 동참하겠다고 한 사람이다. # [13] 어렸을 때 메시가 안토넬라를 짝사랑했었다보니 메시가 몇 번 편지를 쓰기는 했었다고 한다. [14] 이때의 일을 잘 밝히지 않다보니 한국 언론이나 해외 몇몇 언론에서는 안토넬라의 남자친구였다는 식으로 오보를 내기도 했었는데 실제로는 Ursula Notz라는 여성이었다. [15] 위의 일화에서 보듯이 티아고는 아버지가 월드컵 우승에 실패했을 당시 안티들에게 시달린 것을 직접적으로 보면서 자랐었다. [16] 오리기 관련 기사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다. [17] 눈 모양은 마테오가 메시와 많이 닮았는데 치로는 얼굴형과 코, 입모양 때문에 아버지와 인상이 굉장히 흡사하다. 실제 리오넬 메시의 아기 시절 사진을 찾아보면 치로와 굉장히 닮았다. 해외에서도 치로를 미니 메시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다. 맏형인 티아고는 어머니인 안토넬라를 닮은 편이다. [18] 메시가 인터뷰에서 바르셀로나에 잔류하지만 클럽의 현 상황에 대해 행복하지 않다는 점을 확실하게 했기 때문에 (바르셀로나가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이상) 계약이 만료되고 FA로 이적을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많지만 그때도 메시의 부성애와 가정 상황은 여전할 것이기 때문에 이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19] 너무 어려서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다가 아빠의 기자회견이 끝날 쯤에는 지루했는지 엄마 폰을 만지고 놀고 있었다. [20] 개인방송이 나간 시점인 2020년에는 코로나 사태의 여파로 모든 리그가 중단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어려워지며 처음으로 두 사람이 함께하지 못한 생일이 되었다. [21] 룸메이트로 지내면서 리모컨 가지고 싸우거나 메시가 자기 두고 딴 사람하고 방 쓰지 말라고 전화했다거나 하는 등 코믹한 일화들이 많다. [22] 메시가 부상 때문에 국가대표에 발탁되지 않았을 때 아궤로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누구하고 방 쓰냐고 물었을 때 아구에로가 혼자라고 하니 메시가 자기 두고 바람 피우지 말라고 농담했다는 일화가 있다. [23]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되려 디 마리아가 엄청난 위용을 떨쳤고 디 마리아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이후 아르헨티나 국대는 메시 이외에도 또다른 무서운 선수 역할을 디 마리아가 하게 된다. [24]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라는 이름값으로 만든 허장성세만 이용한, 무전술로 일관한 탓에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힘들었었다. [25] 특히 골키퍼 라인이 부진했었다. [26] 이 당시 아르헨티나는 암울했던 시기였는데 월드컵에서는 독일,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칠레에게 자꾸 밀리던 시절이었다. 이후 독일은 월드컵에서 2회 연속 조별리그 탈락(그것도 한국과 일본에게 져서)했으며 칠레 역시 월드컵에서 2회 연속 지역예선 탈락을 했다. [27] 그래서인지 2022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 경기가 끝나고 감격에 젖은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서로 포옹할 때 메시와 디마리아는 유독 오래 포옹하고 서로를 다독이는 모습을 보였다. 까마득한 후배들 역시 메시의 우승을 위해 필사적이었지만, 디마리아는 메시가 성인 국가대표팀에 막 들어온 2008년부터 모든 고초를 함께 했기에 서로 감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8] 이것만 유일하게 메시와 디 마리아가 같이 뛰지 않았다. 메시는 2005년도 출전, 디 마리아는 2007년도 출전이다. [29] 사실상 이것이 2022 카타르 월드컵 우승에 크게 일조했다. 모든 국가대표 선수들이 조국의 우승을 바라는 것은 똑같지만, 현세대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아르헨티나가 우승하지 못하는 것 이상으로 메시가 우승을 못하고 은퇴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속상함과 절박함이 컸기에 다른 팀보다 동기부여가 훨씬 강력했기 때문이다. 이들 중 대다수가 "절대로 메시를 이대로 은퇴시키진 않겠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메시를 위해서 우승하고 싶다." 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 [30] 실제로 메시를 향한 선수들의 충성심과 단합력을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강점이라고 꼽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와 붙어봐서 이들을 가장 잘 아는 필립 람은 2014년 당시엔 선수들이 메시에게 일방적으로 의지하는 느낌이 강했는데 현세대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메시를 위해 뛰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고 평하기도 했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로드리고 데폴에겐 메시가 곧 조국인 것 같다고 평하기도 했고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크로아티아나 다른 강팀들보다 기술적인 조직력은 부족하지만 강력한 전우애로 똘똘 뭉쳐 있고 이것이 강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31] 이 때문에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중의 아르헨티나는 팀워크나 선수들 간의 호흡, 조직력이나 팀 케미 등에서 탄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팀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갖춘 선수는 그 존재감만으로도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해 줄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일례로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의 프랑스는 감독의 무능함 및 완벽하지 못한 세대 교체, 조별 예선에서의 불안한 경기력 등으로 논란이 일었으나 지네딘 지단의 존재감을 중심으로 뭉쳤기 때문에 토너먼트에서 귀신같이 부활하여 준우승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내었다. 또 유로 2016에서의 포르투갈의 경우 결승전에서 호날두가 부상을 입고 교체당했기 때문에 당시 상대였던 프랑스에 비해 전력상으로 불리했을 상황에서도 호날두를 중심으로 뭉쳐 결국 결승에서 이기고 유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지금의 호날두의 처지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지만 당시의 호날두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에고가 강하기는 했어도 지금처럼 과도하게 팀 동료를 무시하거나 팀 케미를 흐트러트리는 존재가 아닌, 팀의 리더답게 동료 팀원들을 벤치에서 격려해 주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32] 세스크의 부인이 메시의 아내인 안토넬라와 절친인 것도 있다. [33] 호나우두, 호마리우, 히바우두, 호나우지뉴, 네이마르, 다니 알베스와 같이 수많은 브라질의 전설적인 선수들이 바르셀로나를 거치며 클럽의 위상을 드높였다. 덕분에 필리페 쿠티뉴 하피냐와 같은 후대 선수들도 바르셀로나를 드림 클럽으로 생각하는 등, 브라질에서 바르셀로나의 인기는 상당한 편이다. [34]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두 나라의 축구 라이벌 감정은 크다. [35] 셋 중에서 가장 적은 응답을 기록했다. [36] FIFA의 정계-축구 분리 원칙에 따라 FIFA는 월드컵 출전권을 빌미로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 감사에 제동을 걸었으나, 마라도나가 FIFA와 접촉하여 자국 축구협회 개혁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37]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의 입후보 투표에 괜히 5년간 유예기간을 두는 게 아니다. [38] メッシ気持ちいい(메시 기분좋아~), メッシも、アンファも、二十五歳(메시도, 앙파(해당 세안제의 회사)도, 25세) [39] FM 2011에선 피지컬이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라이벌 호날두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인다. [40] 리우 올림픽 여자 유도 -48kg급 금메달리스트. 결승에서 대한민국의 정보경을 꺾은 선수로 유명하다. [41] 대포알 포핸드로 유명한 칠레의 테니스 선수인 페르난도 곤잘레스와 교제하다가 2022년 12월에 결혼하였다. [42] 코파 아메리카 직후 실축한 메시를 향해 신랄하게 극딜하던 마라도나가 돌발적인 은퇴 선언에 깜짝 놀라면서 본인의 비난을 전부 주워담고 메시의 결정을 말리려할 정도였다. [43] 사실 말만 극딜이지 한국인이 서로에게 장난 치는 정도였다. 예시로 손흥민이 결정적 찬스를 아쉽게 놓쳤을 때 그의 형이 "에휴 그걸 못 넣냐ㅋㅋㅋ" 라고 놀리는 정도라고 보면 좋다. [44]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메시의 은퇴 결정을 만류할 정도면 메시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45] 사실 브라질 월드컵부터 코파아메리카까지 연속된 준우승에 몇몇 빡친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메시는 절대 마라도나와 비견될 레벨이 아니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마라도나는 조국을 위해 월드컵을 들어다줬는데 메시는 조국을 위해 도대체 뭘 해줬냐고 신랄하게 디스했는데 막상 메시가 은퇴한다고 하자 다들 당황해 메시를 돌아오라고 했다. 이게 당연한 게 사실 메시가 오랫동안 마라도나의 후계자로 불려왔고 어린시절부터 바르셀로나에서 커리어를 다 씹어먹으며 활약했기에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마라도나처럼 조국을 위해 월드컵을, 적어도 코파아메리카를 들어올리길 하는 바람에 비판도 했던 것인데 진짜로 메시가 나가버리면 당시 아르헨티나 국대 스쿼드 레벨은 현저히 떨어지게 되며 그냥 국대의 상품성 자체가 휴지통에 들어간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몇 년 뒤인 2022 월드컵에서는 메시를 끼고 있는 스쿼드인데도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가 결승 오는 게 이상한 전력이라고 평가했으니, 메시가 빠지면 어떨지는 안 봐도 뻔하다. 당연히 국민들이 식겁해서 우리가 잘못했다고 빌면서 메시 돌아오라고 할 만하다. [46] 한국으로 비교하면 손흥민이 국대에서 토트넘에서만큼 못한다고 비판도 많이하지만 손흥민이 젊은 나이에 은퇴한다고 하면 국민들이 죄다 당황할 것은 뻔하다. 손흥민의 인기와 상품성은 다른 국대멤버들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넘사벽인데 손흥민이 없으면 한국국대의 이미지가 심하게 격추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47] 로드리고 데폴,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 레안드로 파레데스, 훌리안 알바레스, 맥 앨리스터, 엔소 페르난데스 등. 국내 축구 커뮤니티에선 이들을 구토 해적단이라고 부르는데, 그 정도로 메시를 추종하는 수준을 넘어서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고 있다. [48] 메시가 자국민한테 이런 비난을 받았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의 비교 대상이 마라도나였기 때문이다. 비록 메시 개인은 국가대표 3연준을 하는 동안 두 차례 대회 MVP와 세 차례 모두 대회 베스트11에 들었을 정도로 할 만큼 해줬으나 마라도나는 어쨌든 고국에 우승을 안겨줬던 사람이고 거기에 어릴때 바르셀로나로 넘어가 거기에서 성장하고 데뷔한 메시와는 다르게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에서 성장하여 자국 리그를 정복하고 갔다는 그 차이점 때문에 국민 정서적으로 메시와 유대감이 형성되기 어려웠다. [49] 다만 실제로 메시가 2026년에도 출전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이미 월드컵 우승을 달성한 상태라 더 이상 증명할 것도 없고, 미련도 적을 수도 있다. 또한 메시 본인이 카타르 월드컵이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가대표로썬 2024년 코파 아메리카를 마지막 메이저 대회로 예정하는 중이다. [50] 사실 산 시로 참사만 아니었다면, 잔루이지 부폰이 월드컵 6대회 진출이라는 해당 기록을 달성해냈을 것이다. 2018년에조차 부폰을 이길 수 있을 수준의 기량을 가진 이탈리아 골키퍼가 없었고 그가 여전히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2022년 부폰은 여전히 6번째 월드컵을 위해 파르마의 주전 골리로 뛰며 현역이었기에 이탈리아가 카타르 월드컵에 진출이라도 했으면 상징성을 고려해 돈나룸마 다음의 백업 골키퍼로 엔트리에라도 들었을 확률이 있어서 기록 달성을 할 수 있었겠지만 팔레르모 참사가 터지며 그 기회도 날아갔고, 이미 40대 중반의 초고령인 부폰도 더 이상 현역 커리어를 이어가기 힘들어 은퇴를 선언했다. [51] 물론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준우승 직후에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대대적으로 캠페인을 벌이면서 리오넬 메시의 은퇴를 만류한 끝에 그를 국가대표팀으로 복귀시킨 사례가 있기 때문에 2024년 이후 또 한번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해도 말릴 가능성도 있으나 2016년처럼 전국 단위로 캠페인을 벌일 정도까지 커질 가능성은 낮다. 이는 그가 처음으로 국대 은퇴를 선언한 2016년과 2022년 12월 하순 이후의 상황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2016년 은퇴 선언 당시 그의 나이는 이제 막 29세가 되었던지라 (당시 기준으로)2년 뒤에 열리는 러시아 월드컵과 3년 뒤에 열리는 코파 아메리카 브라질(더 나아가 4년 뒤에 열리는 2020 코파 아메리카와 6년 뒤에 열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승을 위한 도전이 가능한 나이였고, 2014-15 시즌 바르샤의 트레블과 2015-16 시즌에 거둔 더블 달성 당시 주전으로 뛰면서 막대한 공헌을 했을 만큼 실력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의 이탈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있어서 여러 방면으로 대규모 손실을 가져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또한, 2010년대 중반의 아르헨티나는 2000년대 후반에 발굴된 황금 세대와 그 이전에 활약했던 선수들의 고령화가 상당히 진행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대체할 수 있는 실력과 잠재력을 가진 신예 자원이 없는 상황에서 메시의 은퇴는 남은 구성원들에게 크나큰 동요를 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코파 아메리카 센타나리오 준우승 이후 아구에로와 같은 나머지 고참 선수들도 은퇴를 진지하게 고려하기도 했는지라 메시의 은퇴는 무조건 말려야 할 상황이었다. 또한, 메시가 코파 아메리카 센타나리오 결승전 때 패배한 이후, 메이저 국가대항전에서 세 번이나 우승할 기회를 날리는 바람에 심적으로 크게 무너진 사실이 알려짐에 따라 그래도 메시 덕분에 거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된 아르헨티나 국민들 스스로가 죄책감을 느끼고 은퇴를 말렸었다. 반면 이 인터뷰가 나온 시점에서 메시는 이미 코파 아메리카 브라질과 카타르 월드컵을 우승하면서 두 개의 마지막 퍼즐을 맞춘데다 북중미 월드컵 시점에는 만 39세가 되는만큼 폼 저하로 인한 참가 불발 가능성도 높으며, 과거 자신의 활약을 보고 자란 어린 선수들이 그의 마지막 월드컵 도전을 해피엔딩으로 끝내는 데 크게 기여할 정도로 세대교체까지 잘 되고 있는지라 메시가 없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축구 특성 상 자이언트 킬링, 업셋 등이 빈번한 상황에서 메시를 북중미 월드컵에 포함시켰다가 본선이나 최종예선에서 패배를 당하고 더 이상 다음 라운드로 나갈 수 없게 된다면 메시의 마지막 월드컵과 국대 경력을 완전히 망쳐버리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메시가 은퇴한다 하더라도 이전처럼 대대적으로 말리지는 않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우리를 위해 할 거 다 해준 메시가 코파-피날리시마-월드컵 3연패로 박수를 받을 때 떠나보내자", "그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 "언제까지 메시에게 의존할 셈이나"라는 여론이 강하게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52] 리오넬의 여성형이다. 아들의 이름은 리오넬, 딸의 이름은 리오넬라인 것. [53] #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유명한 아사도 식당이며,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순위에서 10위권에 들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 국내에서는 워낙에 유명한 식당이어서 메시가 방문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몰려드는 게 가능했던 것. 육식맨 돈 훌리오 방문영상 [54]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다른 장소에서 촬영하고 합성했다고 한다. [55] 이것만 유일하게 메시와 디마리아가 같이 뛰지 않았다. 메시는 같은 나이대의 다른 선수들에 비해 급이 한 단계 높은 판정이었기 때문에 1대회 일찍 출전했다. [56] 코파 아메리카 우승 vs 유로컵 우승 [57] 아르헨티나는 혈통에 관계 없이 자국에서 출생한 사람에게 국적을 부여하며 국적 포기를 법으로 금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메시는 이탈리아계 혈통에 따라 이탈리아 국적을 취득했으며 스페인 국적법은 스페인어권 국가 출신자가 스페인 영내에 2년을 체류하면 손쉽게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58] 브라질 대표팀에서 리더십이 제일 좋은 선수는 치아구 시우바 다니 아우베스이다. 네이마르는 PSG에서 주장단에도 못들고 있었고, 네이마르가 주장직을 벗은 이후, 두 명이 번갈아서 다시 주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59] 다만 케인은 소속팀에서도 부주장을 맡을 정도이다. 물론 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케인 자체의 리더십도 꽤 뛰어나다. 다만 잉글랜드 대표팀에는 리더십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리버풀 FC의 주장인 조던 헨더슨이 더 주장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실제로 대표팀의 부주장인 헨더슨이 실질적인 리더를 수행하는 중이다. [60] 국내에서는 흔히 메정은 컷(...)이라고 부른다. [61] 첼시는 수비라인을 완전히 내려놓고 공격수까지 수비로 가담시켜서 선수간의 간격을 촘촘하게 하는 이른바 10백 수비(일명 버스 세우기)에 능한 팀이라, 메시와 바르사의 플레이 특성상 가장 득점하기 어려운 상대이긴 하다. [62] 유망주 티를 온전히 벗지 못했던(REM 트리오 시절) 2007년 초에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만난 적은 있으나 크게 활약하진 못했다. 경기도 리버풀이 크레이그 벨라미 욘 아르네 리세의 골로 원정에서 승리하며 8강에 진출했고 이후 리버풀은 결승까지 진출했다. [63] 광탈한 2014/15, 유로파 2015/16을 제외하면 레알을 지겹게 만났다. 아틀레티코도 한 번이다. [64] 그런데 이 액수는 연봉 1위 사무엘 에투의 절반 수준. 바르사와의 인연으로 헐값 계약하고 있다. 바르사는 재계약하며 연봉을 1250유로로 상승했다. [65] 30년 동안 이어진 탈레반과 정부군의 싸움으로 매년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그 중 37%가 여성과 어린이이다. 그리고 450만 명의 어린이들이 목숨을 걸고 피난길에 올라있는 막장 국가다. [66] 소년이 유명해지자 메시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받았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인간 말종들이 협박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지역 유지들까지 나서서 대놓고 "메시에게 받은 돈을 내놓지 않으면 소년을 납치하겠다"는 말까지 서슴치 않았다고. [67] 문제는 소년의 가족이 현지 소수민족 중 하나인 하자라족이라는 것인데, 하필이면 탈레반의 공격 대상 중에 하자라인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었다. 결국 파키스탄에서의 난민 생활도 더 버티지 못하고 다시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로 이주해서 집에 숨어지내는 처지였다고 한다. [68] 비슷한 시기 레알 마드리드는 북미 투어에 월드컵 우승 멤버인 이케르 카시야스 세르히오 라모스를 모두 포함시켰으며 선수 보호 차원에서 경기는 출전시키지 않았지만 주요 행사에는 모두 참석시켰다. 경기엔 내보내지 않더라도 최소한 얼굴은 비춰주는 것이 예의라고 할 수 있다. [69] 30분 이상을 뛰지 않았으므로 위약금을 냈다. 그러나 0분을 뛰든 15분을 뛰든 위약금을 내기는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메시는 벤치에만 있지 않고 관중들을 위해 15분이라도 뛰었다. [70] 당장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인터뷰에서 메시가 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었다. 그 안좋은 몸을 이끌고 경기 나간다는 메시를 뜯어말리려고까지 했으나 실패. [71] 해당 기사 # [72] 멘탈이 거의 쓰레기(...) 수준으로 좋지 않았고, 연습도 게을리 하고 식탐도 자제하지 못하는 등 프로 선수로서의 워크 에식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그럼에도 한때 판타지스타의 계보를 이을 수 있는 선수로 평가받았을 정도로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던 선수가 카사노다. [73] 메시는 팬 서비스가 굉장히 좋기로 유명하다. 사인이든 뭐든 팬 서비스를 요구하면 다 들어주는 편이다. 코파 아메리카 우승 후 자택에 찾아온 엄청난 수의 팬들에게도 다 사인해줬다. [74] 실제 2014-15 시즌 전후로 메시의 이적설이 잠시 나온 적이 있었는데, 소시오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보드진 중 일부가 사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보드진에 앞서 소시오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일인 것. [75] 결국 메시는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하게 되었지만, 연봉을 50%나 삭감하면서도 남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어떻게든 팀에 남기를 원하고 있었다. [76] 그래서인지 메시는 클럽을 초월해서 국적이 아르헨티나인 모든 선수들과 친분이 깊다. [77] 마르티노와 함께 가장 유력한 후보중 하나였으나 셀타 비고의 감독이 된 지 6주밖에 지나지 않은 터라 3백만 유로(44억원)가량의 위약금을 문뒤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데다 같은 라리가 팀인 셀타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탈락된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마르티노의 경질 후 2014-15 시즌부터 바르사를 맡게 되었다. [78] 마르티노 감독이 선수들 사이에서 인망은 상당히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79] 굳이 '사적으로'라는 수식을 붙인 이유는, 마르티노가 메시의 첫 소속팀이었던 뉴웰스 올드 보이스 최고의 레전드 선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메시의 아버지 호르헤 메시가 마르티노의 광팬인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사적인 친분 관계는 없었더라도,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80] 실제로는 컨디션 난조와 스트레스가 겹친 것일 가능성이 높지만. 축구라는 스포츠가 많이 뛰는 스포츠고, 강팀에서 뛰는 선수는 시즌 일정도 빡빡하다 보니 경기 중에 구역질을 하는 선수는 생각보다 많다. [81] 실제로 메시 같이 어린 시절 가난한 남미 사람들은 단 음식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82] 여기에 추가로 어릴때부터 즐겨온 음식중에 밀라네사 나폴리타나 라는 음식이 있는데, 잘 튀긴 소고기 커틀렛에 치즈와 토마토 소스, 슬라이스 햄 등을 얹어 구운 다음 감자튀김을 곁들여 먹는 고칼로리 음식이다. [83] 파울리노 알칸타라의 바르셀로나 최다골,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엘 클라시코 최다골, 텔모 사라의 라리가 최다골, 라울 곤살레스의 챔스 최다골, 세사르 로드리게스의 카탈루냐 더비 최다골 전부 다 해트트릭으로 경신했다. 이 변태스러운 행각은 클럽 통산 400골을 한 골만 넣고 끝냄으로써 일단 마무리되었다. 이후 다시 이런 짓을 다시 하게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84] 국가대표팀 경기에서도 새로운 기록을 하나 작성했는데, 2021년 9월 10일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펠레의 남미 A매치 역대 최다골 기록을 경신했다. 그리고 대표팀 통산 100번째 골도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넘어섰다. [85] 어떤 인물인지는 부정선거 논란 기사 나무위키 가봉 정치 항목을 참조. 50년에 걸친 2대 세습이다. [86] 이름만 이런 거고 실제 성행위 하는 파티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냥 야하게 입고 노는 파티라고 한다. [87] 일본 최고 인기 개그맨인 아카시야 산마가 한 질문이다. [88] 이중적인 의미. 재미있게도, 메시는 공격수, J.J. 왓은 수비수이다. [89] J.J. 왓은 196cm, 미국식으로 6' 5"이고 메시가 170cm, 미국식으로 5' 7"이다. 다만 나이는 메시가 2살 위. [90] 그 대회 아르헨티나의 토너먼트 경기 중에서는 가장 경기력이 좋았다. [91] 프리킥이나 PK 등 본인이 부족하다고 지적받은 부분에 대한 보강은 집중적으로 한다고 한다. [92] Greatest Of All Time를 줄이면 GOAT이다. [93] 2위는 호날두가 뽑혔으며 전설이 된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티에리 앙리가 3~6위로 그 뒤를 이었다. 현역 중에서 메시, 호날두 다음으로 높은 순위에 오른 선수는 차비 에르난데스(알 사드)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비셀 고베)로 각각 7위와 8위였다. [94] 이 유사성으로 해당 선수가 여자 메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사진. [95] 후에 나온 기사에 의하면 메시가 불만을 표시한 다음날, 훈련 중에 아비달이 보이자 메시는 훈련을 멈추고 아비달에게 다가가 직접 화를 내어 동료들이 메시를 말릴 정도였다고 한다. 어지간한 일로는 화를 내지 않는 메시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알 수 있다. [96] 메시 본인이 아끼는 동료였던 네이마르나, 라이벌이긴 해도 2019년 시상식 때 올해의 선수 후보 중 하나로 뽑아주기까지 한 호날두는 들어가지 않았는데 이는 초상권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97] 아르헨티나 공군이 관리하는 전용기를 사용하는 것 보다 당연히 개인에게 임대료를 지불하고 사용하는 것이 더욱 저렴하기에 이러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98] 일반적인 비슈트의 경우 서구의 턱시도와 흡사한 의미로 사용되며 결혼식 때 신랑들이 많이 입는다. 다만 메시의 경우 국왕이 직접 하사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99] 이전에는 벨라 포치의 틱톡영상. [100] 해당 장면을 놓고 보면 메시가 드리블을 시작하기 전 부스케츠가 약 1-2초간 공을 홀딩해준 것 이외에는 그 어떤 바르셀로나 선수도 공격에 가담하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메시 혼자서 만들어낸 골이기에 공을 1-2초간 홀딩해준 부스케츠가 진짜 공로자라는 식 반어법 드립인 셈이다. 사람 생각은 어디나 다들 비슷한 것인지 해외 유튜브에서도 busquets best assist ever 등으로 지칭되며 댓글들도 사실은 메시가 아니라 부스케츠의 패스가 하드캐리했다는 식의 칭찬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101] 팀 회식에서 다른 선수들이 가벼운 샐러드를 먹고 있는 와중에 메시 혼자서만 치즈 피자를 먹고 있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102] 다르게 말하자면 남들보다 빨리 데뷔했음에도 남들보다 더 오래 롱런한 선수라는 말이기도 하다. 커리어 하반기에 반전을 일굴 수 있었던 것 역시 단순히 드라마틱한 기적이나 운이 아니라, 그 나이를 먹을 때까지 메시 스스로가 현역으로서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정도로 기량을 잘 유지해왔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