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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12:43:11

아디다스

<colbgcolor=#000><colcolor=#fff> 아디다스
adidas
파일:아디다스 심볼.svg 파일:아디다스 심볼 화이트.svg
회사명 독일어: adidas AG[1]
한글: 아디다스 주식회사
설립일 1949년 8월 18일 ([age(1949-08-18)]주년)
설립자 아돌프 다슬러 (Adolf Dassler)
전신 다슬러 형제 신발 공장 (1924~1949년)
국가
[[독일|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업종명 의류, 스포츠 장비, 신발 도매업
주요 인사
CEO
비에른 굴덴 (Bjørn Gulden)
CD
알라스드헤어 윌리스 (Alasdhair Willis)
시가총액 309억 유로 (2024년 2월)
상장시장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 ( FWB: ADS)
매출 29조 2,308억원 [기준]
영업이익 3조 1,585억원 [기준]
순이익 2조 2,704억원 [기준]
자산 20조 8,264억원 [기준]
자본 8조 4,895억원 [기준]
고용인원 57,016명 [기준]
본사 독일 바이에른주 미텔프랑켄현 헤르초게나우라흐 아디다슬러 스트라세 1
홈페이지 파일:아디다스 심볼.svg 본사 | 파일:아디다스 심볼.svg 공식스토어
공식 SNS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아디다스)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오리지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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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라인과 활동
3.1. 퍼포먼스3.2. 스포츠웨어3.3. 오리지널스3.4. 그 외
4. 마케팅
4.1. 대한민국4.2. 유럽4.3. 미국4.4. 일본4.5. 국가대표팀
5. 스폰서6. 논란 및 비판
6.1. 국정감사 선택적 영어 사용 및 태도 논란
7. 여담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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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디다스는 독일 스포츠 용품 제조사이다. 유럽 최대 규모의 스포츠웨어 제조 업체이며, 세계에서는 나이키의 뒤를 잇는다. 특유의 3선 트레이드 마크가 특징이며, 운동화를 포함해 의류나 액세서리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한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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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자 아돌프 다슬러
1900년, 아돌프 다슬러(이하 아디)는 독일 바이에른 주 헤르초게나우라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신발 공장의 봉제 기술자였고 어머니는 세탁소를 운영했다. 이런 가정 환경에서 아디 다슬러는 섬유 가공, 신발 세탁, 제단, 제본 등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당시 독일의 신발 산업은 하향세였기에 아버지는 아들이 제빵사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1920년 운동에 대한 열정이 강하고 자신 역시 운동 선수였던 아디 다슬러는 너무 쉽게 닳아버리는 운동화 대신 내구성이 강한 운동화를 만들고 싶어 스무 살 때부터 어머니의 세탁실에서 혼자 트레이닝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설립자 아디 다슬러는 형 루돌프 다슬러(이하 루디)와 함께 1924년, 뉘른베르크 인근 헤르초게나우라흐에 위치한 자택에서 축구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디는 뛰어난 손재주를 이용해 질 좋은 축구화를 만들어냈고, 외향적인 성격의 루디는 그런 동생이 만든 축구화를 팔기 위해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축구화 생산 주문을 받았다.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후 집에 돌아온 형 루디 다슬러는 동생의 신발 사업에 동참해 둘은 같은 해 ‘다슬러 형제 신발 공장(Gebrüder Dassler Schuhfabrik)’을 설립했다. 훗날 아디다스의 전신이 된 이 회사는 아디 다슬러의 가족을 포함한 12명의 사람들이 매일 50켤레의 운동화를 제작하는 가내 수공업 형태였다. 아디는 조용하고 꼼꼼한 신발 개발자였고, 형 루디는 외향적인 성격의 세일즈맨이었기에 둘은 서로의 장점을 살려 회사를 운영했다. 아디 다슬러는 자신이 만든 제품들을 선수들이 착용하기 전에 늘 테스트를 직접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좋은 제품을 선수들에게 제공하겠다던 그의 신조(Only The Best For The Athlete)는 지금도 아디다스 브랜드 철학으로 자리잡고 있다. 본인 역시 열정적인 운동 선수였던 아디는 선수들과 그들의 요구에 늘 귀를 기울였다.

1924년 다슬러 형제의 운동화 공장 창업 후, 다슬러 형제는 운동 선수들을 위한 최적의 신발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특히 아디 다슬러는 보다 더 가벼운 신발을 만들기 위해 저울을 들고 다니며 원단을 찾아 다녔고, 선수와 트레이너들을 직접 만나 자신이 만든 신발의 성능을 직접 테스트했다. 그 결과, 그는 딱딱한 가죽 대신 부드럽고 가벼운 고무 원단으로 대체해 운동화 제작에 사용했다. 이 고무 운동화는 아디다스 스포츠화의 효시였다. 1925년, 아디는 직접 손으로 스파이크를 박은 러닝화와 가죽 징을 박은 축구화를 개발해 특허권을 갖게 되었다. 이 신발들은 트랙과 필드에서 뛰어난 성능을 과시했는데, 특히 아디의 스파이크 러닝화가 처음 빛을 본 것은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였다. 리나 라드케(Lina Radke)가 이 신발을 신고 여자 800m 달리기에서 세계 최고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한 1932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아서 요나스(Arthur Jonath)도 이 신발을 신고 남자 100m에서 동메달을 따면서 다슬러 형제가 만든 신발은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1933년에 형제가 나치당 당원이 되면서 사업은 더욱 번창했다.[8] 다슬러 형제의 나치 경력과 관련해서는 대체로 루디가 나치의 사상에 공감한 반면, 신발 밖에 관심이 없던 아디는 그저 신발 장사의 수단으로 나치당에 가입한 측면이 강하다고 한다.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독일 국가대표 선수들 대부분이 아디 다슬러가 만든 운동화를 신었고, 독일 올림픽 위원회는 다슬러 형제의 신발을 신겠다는 선수들의 요구에 따라 다슬러 형제 신발 공장에서 스포츠화를 공급받았다. 아디는 이 당시 최고의 육상 스타이자 흑인 선수인 미국의 제시 오언스(Jesse Owens)에게 자신의 운동화를 보여주기 위해 바이에른에서 베를린에 있는 선수촌까지 직접 차를 몰고 찾아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아디 다슬러는 제시 오언스에게 자신의 스파이크 러닝화를 보여주며 경기에서 신어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결국 제시 오언스는 이 스파이크 러닝화를 신고 남자 100m, 200m, 400m 계주와 멀리뛰기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해 베를린 올림픽 최고의 스타가 됐다. 제시 오언스가 신은 다슬러 형제의 신발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흑인이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것을 싫어한 아돌프 히틀러를 엿먹인 제시 오언스에게 자신의 신발을 제공함으로서 그 우승에 일조하기도 하였다.[9] 이때부터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다슬러 형제의 운동화를 신길 원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1939년까지 다슬러 형제는 매년 20만 켤레 이상의 운동화를 판매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전쟁이 길어지자 형제의 사업 여건은 점점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형제는 회사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충돌하기 시작했다. 특히 루디는 아디의 아내가 회사의 경영에 간섭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리고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루디는 군대에 끌려갔지만 아디는 징집되지 않았기에 루디는 아디와 제수가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수를 썼다고 생각했다. 거기다가 1945년 7월에 루디는 미군에게 잡혀 SS로 오해 받아 포로수용소에 1년 동안 감금된다. 루디의 소속 부대가 패전에 즈음하여 재편성되면서 SS에 배속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루디는 독일의 패전을 직감하고 탈영하여 고향에 돌아왔으나, 이 때문에 게슈타포에게 끌려가 다하우 수용소에 끌려가던 중 독일의 패전을 맞이하게 되고, SS의 최후의 발악으로 인해 총살당할 뻔 하였지만 독일군 트럭 운전사의 기지로 미군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와 미군에게 다시 체포된다. 루디는 이 모든 일이 동생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석방되자마자 아디를 나치 협력자로 밀고했지만 아디는 유대인계 시장(市長)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벌을 받지 않았다.[10]

결국 루디는 집에서 나와 강건너의 다슬러 공장을 차지했고, 그를 따르는 사원들을 데리고 독립했다. 아디는 자신의 이름과 성에서 글자를 따서 아디다스를 만들었고, 루디는 푸마를 만들었다. 이렇게 다슬러는 아디다스 푸마로 나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두 회사간의 화해는 200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이루어지게 되었다.[11] 여담으로 둘 다 본사가 처음에 사업을 시작한 헤르초게나우라흐에 있다.[12]

사업가적 기질을 가진 루디와 달리, 아디는 기술자적 자질이 있었기에 아디다스 설립 후 아디의 부인 캐테 다슬러가 아디다스의 경영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편, 아디의 아들 호르스트 다슬러는 멜버른 올림픽에서 수완을 발휘한 이후 아디다스 프랑스의 매니저를 맡게 되는데 그는 야심가로서 보수적인 경영을 추구하던 부모와 충돌이 잦았고 독일의 아디다스 본사와 프랑스의 지사는 독립적으로 제품을 개발하거나 판매하여 사업상 충돌하는 경우도 있었다.[13]

1949년, 프라이부르크(Freiburg) 제화 회사를 대신하여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식 납품업체가 된 아디다스는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또 한 번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14] 서독 대표팀은 아디 다슬러가 만든 축구화를 신고 출전했다. 서독 대표팀은 조별 리그 2차전에서 당시 세계 최강이던 헝가리 팀에게 3대 8로 대패했다. 터키와 플레이오프를 치르며 힘겹게 8강에 오른 뒤 서독 유고슬라비아 오스트리아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헝가리가 워낙 막강했기 때문에 서독의 우승을 점치는 이들은 드물었다. 하지만 경기 당일 변수가 생겼다. 경기가 벌어진 베른에 폭우가 쏟아진 것이다. 경기 시작 이후 연속 두 번의 골을 넣어 주도권을 잡은 팀은 헝가리였지만, 폭우로 인해 그라운드가 진흙탕으로 변해가면서 축구화 바닥의 스터드(Stud, 징)를 교체할 수 있는 축구화를 신은 서독이 힘을 내기 시작했다.[15] 전반이 끝나고 스터드를 교체한 서독의 경기력은 후반으로 갈수록 더 살아났다. 2대 2 동점이었던 후반 39분, 헬무트 란이 결승골을 넣으며 헝가리를 무너뜨렸다. 이 승리는 서독의 승리이자, 아디다스 기술의 승리였다. 패전국으로 의기소침하게 살아가던 독일 국민들에게 대표팀의 월드컵 우승은 희망을 안겨주었다.[16] 후에 이 일화는 베른의 기적(The Miracle Of Bern)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영화에는 아디 다슬러가 축구화의 스터드를 교체할 수 있다는 걸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월드컵을 통해 아디다스는 축구 전문 브랜드로 급성장하게 되었고 독일 대표팀이 신은 아디다스의 징 박힌 축구화(Sports Shoe With Screw-In Studs)는 전 세계적으로 주문이 쇄도해 한 해 45만 켤레 넘게 생산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아디다스는 스포츠 의류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했고, 1963년에는 축구공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디다스의 텔스타(Telstar)가 공인구로 사용되면서 아디다스 축구공은 모든 FIFA 월드컵의 공인구로 채택됐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아디다스는 ‘아디다스 축구화를 신지 않으면 일류 선수가 아니다’는 말이 선수들 사이에서 나올 정도로 스포츠 용품 분야에서 독주했다. 1978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아디 다슬러의 뒤를 이어 다슬러 가문의 경영이 시작됐다. 아디 다슬러의 사망 6년 후 아디 다슬러의 아내 카데 다슬러(Kathe Dasselr)의 사망으로 그녀의 경영이 막을 내렸다. 이후, 아디다스 CEO 자리에 아디 다슬러의 아들 호르스트 다슬러(Horst Dassler)가 올랐다. 그는 스포츠 용품 전반으로 사업 범위를 무리하게 확장했고 월드컵 올림픽에서 아디다스 물품 독점 계약에 열을 올렸다. 아디 다슬러가 살아있을 당시 아버지의 사업을 도운 호르스트 다슬러는 스포츠화 제작에 주력한 그의 아버지와는 달리 토털 스포츠 용품 사업으로 진출하려는 욕심이 많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그늘을 피해 프랑스 법인으로 도망가다시피 했는데 이때 호르스트 다슬러는 아레나(Arena)라는 수영 전문 브랜드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런 마케팅으로 그는 스포츠 마케팅의 1인자가 되었다.[17]

또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농구[18] 슈퍼스타[19] 농구 선수들의 대호평을 받으며 아디다스는 미국 시장까지 석권했다. 심지어 마이클 조던은 어렸을 때 나이키보다 오히려 아디다스 농구화를 선호하였다고 한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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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 최고의 히트작이자 영원한 스테디셀러, 슈퍼스타
그러나 새로운 유행에 둔감한 채 전문적인 스포츠 용품에만 관심을 가짐으로 인해 일반 소비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점[21]과 결국에는 아디다스 전체의 경영을 이어받게 된 호르스트가 무리하여 미국 총판의 영업권을 구입해버린 점 등으로 인해 회사의 재정 상태가 어려워진 점 등으로 인하여 결국 아디다스는 혜성같이 등장한 나이키에 그 지위를 빼앗기고 아디다스는 마당의 잔디를 깎을 때 아저씨들이 입는 옷으로 인식될 정도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1987년 호르스트가 사망한 후 여동생들 간 분쟁이 일어나면서 아디다스는 혼란에 빠졌다. 최고경영자(CEO) 없이 4년간 표류하던 아디다스는 1992년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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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 옷을 입은 Run D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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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Run DMC의 콘서트에서 팬들이 아디다스 슈퍼스타를 들고 열광하고 있다.
아디다스는 이 시기 본업인 스포츠가 아닌 다른 곳에서 명성을 쌓는다. 바로 패션. 뉴스쿨 힙합의 시조격인 그룹 Run DMC가 아디다스의 파이어버드 저지를 입고 슈퍼스타, 캠퍼스 등의 스니커즈를 신고 활동하면서 힙합은 기존 방송용 디스코 패션에서 벗어나 스니커즈 문화와 스트리트 패션이 팽창하게 되고 아디다스는 언더그라운드 문화, 스트리트 패션의 아이콘이 된다. Run DMC는 아디다스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My Adidas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는데, 당연히 아디다스는 이들과 광고까지 찍으며 이를 적극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했고, 이 노래는 화면과 라디오를 타고 엄청난 파급효과를 주었다. 당시 런 디엠시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중절모와 아디다스 운동화는 전 세계 힙합퍼(Hiphoper)들을 상징하는 아이템이 됐다. 아디다스가 제작한 런 디엠시 라인의 시그니처(Signature) 제품들은 전 세계로 팔려나가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에게 벌어다준 만큼의 수익을 아디다스에게 안겨주었다. 아디다스의 트레이드마크인 삼선 트레이닝 복을 비롯한 아디다스 의류의 시작은 베르나드 타피에의 노력의 결과라는 평을 받는다. 런 디엠시와 아디다스의 콜라보레이션은 선수들을 위한 스포츠 브랜드에 국한된 아디다스의 이미지를 대중적인 브랜드로 확장시켜주었다.

아디다스를 창립한 아디 다슬러 가문의 경영권을 인수한 1990년 전문 경영인 베르나르 타피(Bernard Tapie)[22]가 새로운 아디다스의 주인이 됐다. 그는 창립자 아디 다슬러와 더불어 현재의 아디다스를 만든 주역이다.

절치부심 한 아디다스는 위기를 극복하고자 나이키 출신의 베테랑 마케터 & 디자이너인 랍 슈트라서(Rob Strasser)와 피터 무어(Peter Moore)를 영입하여, 1991년 Equipment[23] 브랜드를 런칭하고 로고를 기존 불꽃 모양[24]의 트레포일에서 산(山) 모양의 삼선 로고(Three Bars Logo)로 교체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

이후 1994년 타피의 친구인 로베르 루이 드레퓌스(Robert Louis-Dreyfus)가 새로운 CEO에 오르면서 아디다스는 드디어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사업이 점차 확장되자 아디다스는 1997년 동계 스포츠 용품 제조사인 살로몬(Salomon)을 인수했고 회사 이름을 아디다스 살로몬(adidas Salomon)으로 변경했다. 아디다스는 차후 스트릿 패션에 주력하는 Adidas Originals 라인을 생산하게 되고, 많은 셀러브리티와 디자이너의 콜라보레이션 등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했다. 폴 매카트니의 딸인 여성복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가 디자인한 라인이 특히나 유명하며, 2010년대에는 제레미 스캇이 내놓은 라인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오리지널스 라인은 대개 복고풍의 트렌디한 패션을 주도했고, 덕분에 아디다스는 패션 분야에서만큼은 점유율에서 거의 유일하게 나이키를 이긴다. 2005년에는 살로몬 사업 부문을 핀란드의 아머 스포츠(Amer Sports)에 매각하면서 회사명을 다시 아디다스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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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의 주력 모델 중 한 명인 데이비드 베컴
한동안 아디다스는 본업인 스포츠 분야에선 여전히 심각한 부진을 겪는다. 적어도 축구에서는 1인자라는 자부심이 있었으나, 뒤늦게 축구 시장에 뛰어든 후발주자 나이키가 'R9' 호나우두를 내세워 축구 산업에 전념하면서 야금야금 점유율을 내주더니 200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축구에서도 2인자로 밀리게 됐다가, 2010년대 들어와 다시 1인자로 올라섰다. 아디다스가 신경을 쓰지 않던 골프 분야를 나이키가 타이거 우즈를 내세워 대박을 터트리면서 아디다스는 더욱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이에 아디다스는 패션 라인인 오리지널스와 라이프스타일 부문에 집중하는 한편, 퍼포먼스 라인의 기술혁신을 계속하여 이를 돌파했으며, 2004년에는 Impossible is Nothing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캠페인을 시작하였다.

결국 아디다스는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거대한 미국 시장을 홈그라운드로 하는 나이키에게 밀려 스포츠용품 업계의 콩라인이다.[25] 아디다스가 나이키를 넘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2014년 미국 매출액만 보더라도 나이키 118억달러, 언더 아머 26억달러, 아디다스 16억 달러로 아주 밀리는 상황이었다. # 이처럼 미국 점유율이 매년 떨어진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해보였으나, 아디다스 입장에선 다행스럽게도 2015년 등장한 울트라부스트를 시작으로 이지 부스트, NMD 등 부스트 중창을 장착한 신발들이 나오고 튜블라 라인도 히트를 치면서 2016년 3분기에는 언더 아머를 다시 제쳤다.

아디다스는 나이키를 넘기 위해 수많은 유명 디자이너들의 영입으로 패션 분야의 지분을 점차 늘려가며 굳히기에 들어갔고, 축구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기존의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에 이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벤투스, 올림피아코스 FC와의 대형 계약을 맺어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의 최정상 클럽을 모두 후원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또한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만든 'All in or nothing' 캠페인에서 마침내 나이키를 이기면서 꿈도 희망도 없던 2000년대 중반에 비하면 미래가 긍정적인 상태다.

2005년 영국의 스포츠업체 리복 측에 합병 요구를 한 뒤 2006년 한화 약 4조 원에 인수해 북미 시장 점유율을 끌어 올렸다.

2011년엔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 파이브텐(Five Ten)과 합병했다.

2013년, 아디다스는 3년에 걸친 연구 개발 끝에 달리기에 가장 적합한 신소재인 부스트를 개발해 에너지 효율이 뛰어나고 쿠션감이 좋은 운동화 에너지 부스트(Energy Boost)를 런칭했고, 2014년에는 브라질 월드컵 공인구인 브라주카(Brazuca)와 함께 새로운 축구화 배틀팩(Battle Pack)을 선보였다.

2015년 8월, 피트니스 앱 개발사 런타스틱을 인수했다. 인수 금액은 2억 3천 900만 달러(약 2,800억 원).

2001년부터 CEO를 맡고 있던 헤르베르트 하이너가 물러난 이후, 2016년 카스퍼 로스테드[26]가 CEO로 부임한 이래 업계 1위 탈환을 목표로 아디다스는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들어갔고, 다시금 상승세를 탔다. 로스테드는 공장을 독일로 옮겨 전자동화를 도입, 인건비를 대폭 낮추었다. 아디다스는 2015년 3억100만켤레의 운동화를 생산했고, 2020년까지 매년 3000만 켤레씩 생산을 늘려 나갈 전망이다. 아시아의 인건비가 상승하고 로봇 생산비가 낮아짐에 따라, 유럽과 미국 등에 로봇 공장을 설립하는 계획을 추진해왔다. 패션 업계에서는 24시간 생산이 가능한 로봇 공장이 최신 트렌드를 즉각 반영해 빠르게 제작하고 유통하는 패스트 패션에 적합하다고 본다. 유럽과 미국 등 소비시장과 가까워 아시아에서 생산해 운송하는데 따른 비용과 시간,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줄일 수 있다. 경쟁사 나이키 역시 로봇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 브랜드 이미지 재고를 위해 스폰서십을 대폭 손보았으며, 셀러브리티와의 스폰서십을 강화하여 애슬레저 시장을 선점하였다. #

그 결과 아디다스는 북미 지역의 점유율을 빠르게 회복했으며, 2017년에는 중국 시장에서 29% 성장, 북미 지역에는 27% 성장세를 보였다. # 2017년 아디다스의 영업이익은 무려 219% 증가하는 등 경쟁사 나이키를 다시 바짝 추격했다. 여전히 나이키의 어패럴 브랜드 순위가 1위지만, 나이키의 평가 가치가 몇몇 악재로 2018년 -12%를 기록한 반면, 아디다스는 무려 41%가 성장하여 4위를 기록한 상태이다. # 2019년에는 17% 성장하며 3위를 기록했다. #

2018년에도 연매출 19억1000만 유로의 매출을 올린 아디다스는 특히 두 주요 시장에서 성장했는데, 북미 매출은 46억 8000만 유로로 10% 증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71억 4000만 유로로 12% 증가했다. 특히 중국 내 매출 증가율은 23%에 달했다. 그러나 유럽의 경우 매출액이 1% 감소해 최대 58억8000만 유로, 중남미에서는 14%로 떨어져 16억 3000만 유로에 머물렀다. 부문별로 보면 신발은 매출 1,278만 유로로 2017년 대비 3% 증가했다. 그러나 스포츠 장비는 6%로, 매출 822만 유로의 상승률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인 상품이다.

2018년 아디다스는 온라인 매출을 늘리고 오프라인 매장을 줄여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CEO 카스퍼 로스테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온라인 매출을 오는 2020년까지 현재의 2배가 넘는 40억 유로까지 늘리기 위해 디지털 분야의 투자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2017년 아디다스의 온라인 매출은 전년 대비 57% 증가한 16억 유로를 기록한 바 있다. 그는 "웹사이트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매장 중 하나다"며 "직원을 고용하고, 회사 자원을 배분하고, 기반시설을 지을 때 가장 우선순위로 작용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로스테드 CEO는 2019년까지 오프라인 매장을 소폭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2018년 초 미국 애틀랜타에 세운 두 번째 스피드 팩토리에서도 운동화를 생산한다. 뉴욕과 같은 도심에서 달리기하는 사람들을 위한 운동화다. 아디다스는 2020년까지 독일과 미국에 있는 두 개의 스피드 팩토리에서 각각 연간 100만 켤레의 운동화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2020년대 들어서 팬데믹 시기 나이키가 덩크와 에어조던1 등을 필두로 역대급 흥행에 성공한 반면 아디다스는 협업 라인들이 부진하고 이지부스트와 오리지널라인 제품도 예전만 못하면서 격차가 다시 벌어지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여성 라인에 BLACKPINK 두아 리파 등을 앰배서더로 임명하는 등 10대 여성들을 상대로 상당한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또한 피어 오브 갓 설립자 제리 로렌조를 바스켓볼 총책임자로 임명하고, 피어 오브 갓 애슬레틱스 라인 파트너쉽을 발표했다.

2021년 8월. 아디다스가 미국의 ABG(어센틱 브랜즈 그룹)에 25억 달러(약 2조9천억 원)를 받고 리복을 넘기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 ABG는 블랙록 등 여러 투자사들이 공동출자한 의류 전문 기업으로 휘하에 포에버21 등의 의류 브랜드를 둔 기업으로 알려졌다.[27]

2022년 3월 알라스드헤어 윌리스가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

2023년 1월 1일부터 푸마의 CEO였던 비에른 굴덴이 신임 CEO로 임명되었다. 카니예 웨스트 이지부스트의 남은 재고 판매 계약을 체결하고 판매량이 부진하던 비욘세의 아이비파크와는 협업 연장을 중단시키는 등 적자폭을 개선해 나가며 적극적으로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여파로 인해 11월 세 번째 이지부스트 재고 발매가 취소된 이후 소각을 통한 3억 달러 재고 손실 처리가 고려되었으나, 2024년 2월 1일 어닝 컨퍼런스에서는 남은 재고를 소각 없이 전부 원가에 다시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 # 또한 이번 분기 흑자 전환은 이지 재고를 폐기하지 않은 덕분이었다고 덧붙였다.[28]

2024년 2월 12일 CEO 비에르 굴덴이 카니예 웨스트와의 회동을 가지면서, 이지부스트 부활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 단순 재고 처리 문제를 두고 만났을 확률도 높다.

2월 26일 카니예는 발매 예정인 남은 재고들이 본인이 참여하지 않은 색상인데다 본인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없다는 이유로 불매를 촉구하며, 부활 가능성은 수포로 돌아갔다. 또한 2월부터 3월까지 발매 예정인 인기모델들[29]은 당초 아디다스가 공언한 바와는 달리, 원가가 아닌 높은 가격으로 발매되었다.

3. 라인과 활동

3.1.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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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아디다스 심볼.svg
아디다스 퍼포먼스
퍼포먼스 라인은 특유의 가벼움, 편안함을 가지는 아디다스 부스트 시리즈가 2010년대 중후반에 대박을 치면서 러닝화 시장을 재편했고, 농구화 야구화, 축구화 등의 신발에도 점차 부스트폼의 사용 빈도가 높아졌다.[30]

다만 부스트 폼의 편안함, 쿠션감은 대체로 호평받으나, 이런 편안함이 장기적으론 오히려 발에 무리를 주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예를 들어 침대나 모래사장에 서있을때 처음엔 편안하지만 장시간 서있을 경우 도리어 불편한 것처럼 말이다. 장거리보단 단거리 보행용에 아무래도 적합하지 않겠냐는 것. 사실 2020년대 기준으로는 부스트 폼도 연식이 오래되어, 더 이상 최신 기술력의 집약체라고 보긴 힘들어졌다.

또한 같은 이름의 신발이라도 개선된 버전이 꾸준히 나온다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로고에서 'adidas' 레터링을 제외한 로고를 사용한다. 이미 2021년에 내놓은 의류 제품 중에는 삼선 로고만 있는 의류를 출시한 적이 있으며 카타르 월드컵 이후로는 모든 퍼포먼스 제품과 마케팅에 적용될 예정이다.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아디다스 레터링을 없앤 로고로 변경한 이후부터는 전체적으로 팔레트 채도를 낮춘 제품을 상당수 출시하고 있다. 이에 촌스러웠던 요소가 줄어들고 있다는 호평이 상당한 편이다.

3.2. 스포츠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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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아디다스 로고 2.svg
아디다스 스포츠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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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편안한 활동을 위해 디자인되어 경기장, 피트니스, 스튜디오를 비롯하여 학교, 직장, 여행, 데이트 외 모든 장소에서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나 어울리는 것을 추구하는 컬렉션으로 2023년 새롭게 추가된 스포티브 캐주얼 라인이다. Three-Bars 밑에 'adidas' 레터링이 들어간 스포츠웨어 로고가 예전의 퍼포먼스 로고였다.

3.3. 오리지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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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아디다스 로고 오리지널.svg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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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스 라인 중 1980~90년대 위주의 모델을 현대적으로 복각한 '슈퍼스타', '가젤', '스탠스미스', '캠퍼스', ‘삼바’, ‘나이트 조거, 'EQT', 'ZX', ‘슈퍼코트’ 시리즈 같은 모델들이 인기를 끈다.

특히 201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상당한 인기를 끌면서, 아디다스 전성시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31] 과거의 블라 라인도 복각해 역시 인기를 끈 이후,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내놓았다. 특히 Y-3 이지의 디자인을 적절히 차용한 점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2023년 상반기에는 가젤로 시작해서, 삼바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32] 웨일스 보너 등 협업 모델도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선 삼바의 흥행 이후 독보적인 베스트셀러 유행 스니커즈는 새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3.4. 그 외

아디다스는 운동화 뿐만 아니라 패션 라인의 매출 비중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특히 힙합 문화와 상호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래퍼들이 아디다스의 옷이나 신발을 애용한다거나[33] 국내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에 아디다스가 협찬을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옷 스타일들이 꽤나 힙합스럽다. 스트리트 패션에서 아디다스가 한가닥 하는 이유. 아예 오리지널스 라인은 이런 스트릿 위주로 상품을 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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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anye-West-+-adidas-CMO,-Eric-Liedtke_98913.jpg
아디다스 × 이지 (Adidas × Yee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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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리지널스 라인에서 선전하다 대박을 친 예 중 하나가 바로 카니예 웨스트가 이끄는 YEEZY와의 협업이다. 그가 나이키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아디다스로 초대형 이적 후 출시한 Adidas Yeezy 라인은 스니커즈 시장의 파이 자체를 바꿔버리며 아디다스 협업의 레전드로 남게 되었다. 칸예는 원하는 모든 사람이 이지 부스트를 신을 수 있게 하겠다고 공언했으며, 2010년대 후반부터 비슷한 색상들을 상당수 양산하기 시작했다.

아디다스 이지의 2021년 추정 매출은 20억 달러에 달한다. 비록 2022년 하반기에 칸예가 반유대주의 망언을 하면서 계약은 중도 해지됐지만, 이지라는 명칭을 제외한 모든 디자인 권리는 아디다스에 있다. 따라서 로열티 지급 없이 칸예가 디자인한 쉐입을 자사 제품들에 대폭 적용시키면서 재미를 보고 있다. 또한 이지의 남은 재고는 2023년 6월과 8월 두 차례 처리했으며, 2024년에도 원가에 발매하여 모든 재고를 소진시킬 예정이다.

비록 스포츠 분야에서는 콩라인 확정이지만, 패션 부문에서는 2010년대 기준 나이키보다 매출이 앞선다. 미시 엘리엇은 2000년대 중반쯤 대박을 쳤고, 2010년부터 2~3년간은 제레미 스캇과의 콜라보레이션이 핫했으며, 이후는 상기했다시피 칸예 웨스트와의 협업이 가장 뜨거운 관심사였다. 2018년에는 배우 겸 래퍼 도널드 글로버와 아디다스 오리지널스가 파트너쉽을 체결했고 2019년 그가 디자인한 스니커즈가 발매됐다. 2019년에는 팝스타 비욘세와 파트너쉽을 체결했다. 비욘세는 자신의 의류 브랜드 ‘아이비 파크(IVY PARK)’를 아디다스와 손잡고 재론칭한다.

이외에 유명한 마케팅은 역시 1년마다 바뀌는 축구공. 시즌이 바뀌면 지난 축구공을 단종시키고 새 모델을 내놓는다. 2010년대 후반 기준 라리가 푸마, 분데스리가는 더비 스타, 프리미어 리그 나이키, 2020년대 초반 기준 세리에 A 푸마가 지원하지만, 이 리그들의 상위팀 경쟁인 UEFA 챔피언스 리그의 공인구와 남/녀 FIFA 월드컵, 올림픽 축구,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FIFA의 파트너이자 UEFA의 최대 스폰서 중 하나인 아디다스의 후원이 붙는 국제대회는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나이키가 파고들기 쉽지 않다.[34]

2022년부터 아디다스 바스켓볼의 글로벌 책임자로 제리 로렌조를 영입했다. 2023년 5월 LA 레이커스와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와의 NBA 플레이오프를 관전하러 크립토닷컴 아레나를 방문한 제리 로렌조가 피어 오브 갓 애슬레틱 라인으로 추정되는 아디다스 팬츠와 신발을 착용하고 나타났다.

2023년 10월 27일, 뉴욕 타임스는 아디다스와 칸예의 관계를 폭로하는 기사를 공개한다. 이 폭로 기사 이후 아디다스는 11월 8일 실적 발표에서 이지 부스트 재고 판매 계획을 중지하고 폐기 처분을 고려한다고 발표한다. 가자 지구에서의 이스라엘과 하마스 분쟁이 격화되면서 반유태인 발언을 했던 칸예 웨스트는 더 곤란해졌고, 아디다스는 더 이상 이슈에 휘말리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관한 내용은 슈톡에 정리되어 있다.
라인 기간 비고
Y-3 2002년~
제레미 스캇 2002년~ [35]
스텔라 맥카트니 2005년~
HuNMD 2015년~
알렉산더 왕 2017년~
프라다 2019년~ [36]
피어 오브 갓 애슬레틱스 2020년~ [37]
주요 정기 협업 라인
아디다스 이지 2013~2022년 [38]
아이비파크 2019~2023년 [39]
과거 협업 라인

4. 마케팅

4.1.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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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유럽

아디다스 유니폼 이미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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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이에른 뮌헨[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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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C.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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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 FC[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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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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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 FC[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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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이에른 뮌헨, 함부르크 SV,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CF, 발렌시아 CF, 유벤투스 , 올랭피크 리옹, 벤피카, AFC 아약스, RSC 안데를레흐트, FC 바젤 등의 유럽 명문 구단들이 아디다스와 계약을 체결한 상태이다. 그 중 상단에 제시된 5개 클럽은 아디다스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팀으로 시즌마다 킷의 디자인이 변경되고 서드킷, 스페셜킷(콜라보 제품)까지 제공되는 등 최상급 대우를 받는다. 아디다스의 자국인 독일의 분데스리가의 경우 후원팀이 많았으나 FC 바이에른 뮌헨 우니온 베를린, 샬케04로 후원 규모를 축소했다. 2부 리그에는 함부르크 SV가 있다. 뉘른베르크와 뒤셀도르프가 아디다스와 계약을 발표했는데 아디다스와의 직접 계약이 아닌 독일의 스포츠 중개업체 11teamsports를 통한 서드 파티 계약이다. 이전에는 주로 나이키와 독일팀 간 계약을 담당했는데 두 팀을 시작으로 아디다스와의 계약도 늘릴 것으로 보인다. 프리미어 리그에는 풀럼 FC, 레스터 시티 FC를 후원하기도 한다. 2010년대 중반까지는 리버풀 FC, 첼시 FC,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스폰을 담당하기도 했다. 특히 EPL 빅6팀들과 관련해서 나이키와 재계약 시즌만 되면 분탕전을 치르곤 하는데, 2010년대 초반, 나이키의 고객이던 맨유와 아스날을 현재는 아디다스가 스폰하고, 반대로 아디다스의 유니폼을 입고 전성기를 보낸 리버풀과 첼시는 나이키가 스폰서를 가져갔다. 최근에는 푸마가 맨체스터 시티의 유니폼을 스폰하면서 가세하여 경쟁이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편, 프랑스 파리에는 아디다스가 직접 명명권 계약을 맺은 아디다스 아레나가 있다.

4.3. 미국

NBA의 경우 2017년까지 후원하였고 2017-18 시즌부터 나이키와 조던 브랜드에게 넘겨주었다. 위안거리가 있다면, 2016-17시즌부터 NHL과 공식 계약을 맺어 어느 정도는 돌파구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표 모델은 과거에 카림 압둘자바,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데릭 피셔, 케빈 가넷이 있었고 지금은 시그니쳐가 나오는 선수들 이외에 카일 라우리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 존 월, 트레이 영, 앤드류 위긴스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계 코미디언 켄 정과의 아스트랄한 광고로 꽤나 주목받기도. 아디다스가 NBA를 후원하던 시절 관련 선수나 팬들 사이에는 흉흉한 소문이 있었다. 아디다스와 대표급 모델로 계약 맺은 선수치고 평탄한 선수 생활을 보내는 이가 워낙 드물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길버트 아레나스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그리고 Crazy for Rose 캠페인까지 만들며 제2의 조던으로 만들려던 데릭 로즈도 이 전철을 밟는 거 아닌가 우려중이다.[46]. 하지만 존 월 라인과 데미안 릴라드[47] 라인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 극복을 했다. [48] 당장 현 대표 모델인 로즈와 하워드도 2011-12 시즌 나란히 부상으로 시즌을 접었다. 그 중에는 팀 던컨도 있는데, 아디다스에서 경량 농구화를 만들기 위해 마루타시켰다가 선수 생활 평생을 족저근막염에 시달려야 했다. 2015년 여름에는 제임스 하든과 계약을 하게 되었다. 2019년 4월 개인 시그니처 농구화가 나오는 선수는 제임스 하든, 데미안 릴라드, 데릭 로즈[49]이며, 도노반 미첼의 시그니처도 발매했다. 존 월은 시그니처 2개를 낸 이후 계약 만료, 한동안 자유로이 신발을 신다 아디다스와 재계악했다. 새 시그니쳐가 나오지는 않고 아티스트 콜라보 모델을 내는 계약이라고 한다. 이미 은퇴한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의 모델도 꾸준하게 재발매하고 시대에 맞게 리파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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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가 후원하는 미국 대학교 농구 팀
미국에서 NFL, MLB 다음으로 초강세를 보이는 NCAA 대학 농구에서도 아디다스가 여러 대학교들을 후원한다. 아디다스 후원을 받는 대학 스포츠팀의 장비를 후원하고 연간 수십억원의 마케팅 비용을 지급한다. 이렇게 후원받는 팀의 선수들이 프로로 진출할 경우, 장래 스타와의 개인 계약도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힘을 쏟는다. 나이키, 언더아머, 뉴발란스에 비해 메이저 리그에서는 많이 밀리는 듯 한 상황이지만 미국 내 대학 야구에서는 강세를 보이고, 메이저 리그에도 나름 이름 있는 선수들을 확보했다. 대표적으로 카를로스 코레아, 크리스 세일, 안드렐톤 시몬스, J.D. 마르티네즈 등이 있다. 특히 시카고 컵스 크리스 브라이언트를 위시로 한 마케팅을 전개했다. 2018년 3월부로 뉴욕 양키스의 애런 저지와 계약에 성공했다. 그 외에도 아롤디스 채프먼이 나이키에서 아디다스로 갈아타고 글러브마저 아디다스 로고가 떡하니 박힌 제품을 쓰는 등 북미 시장 2인자 자리를 석권하면서 야구 쪽에 투자가 전보다 활발해지는 중이다.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와도 계약을 맺었으나 2022년에 금지 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적발되어 계약을 파기했다.

의외로 NFL에서 후원하고 있는 네임드 선수가 꽤 많다. 당장 톰 브래디의 라이벌인 애런 로저스, 그리고 그들의 뒤를 이을 것으로 예상되는 차세대 쿼터백 대표 주자인 패트릭 마홈스와 스폰서쉽을 맺었고, 슈퍼볼 50 MVP 출신 수비수 본 밀러와도 오랜 스폰서쉽을 이어가고 있다. 그 외에 타이릭 힐, 투아 텅오바일로아, 주주 스미스슈스터, 개럿 윌슨, 트레버 로렌스, 브래들리 첩, 커크 커즌스, 브록 퍼디, 애런 존스, 조시 앨런, 라이언 태너힐 등이 아디다스와 계약을 맺었으며 이외에도 수많은 NFL 선수들이 아디다스 스폰서를 가지고 있다. 미국 국민 스포츠 중 가장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나이키 언더아머의 선수 개인 스폰서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 같지만 아디다스 역시 이들 못지 않게 수많은 슈퍼 스타들과 선수들을 두고 있다.

MLS의 경우에는 전 구단이 아디다스의 후원을 받는다.

4.4. 일본

과거 데상트가 아디다스 본사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아 대리점을 운영했지만, 1998년부터 아디다스 도쿄를 설립하고 일본내 아디다스 용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일본 스포츠 시장이 매우 커 본사에서도 아디다스 도쿄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상황인지라 독자적인 브랜드 라인업이 있다. 참고로 국대 유니폼이나 리그 유니폼 등 아디다스 본사에서 디자인 및 제품 공급을 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은 아디다스 도쿄가 독자적으로 제작, 공급한다.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J리그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알비렉스 니가타 등을 후원한다.

2006년부터 오랫동안 요미우리 자이언츠 후원을 했다. 그러나 2014 시즌 종료 후 언더 아머와 손을 잡는다.

4.5.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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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독일[50]을 비롯하여 스페인, 일본, 알제리, 스웨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스코틀랜드, 웨일스, 벨기에, 아르헨티나, 멕시코, 콜롬비아, 헝가리 등 국가의 축구 대표팀이 아디다스의 후원을 받는다.

유럽이 강세를 보이는 종목은 아디다스의 지배력도 크다. 예를 들어 펜싱에서는 이탈리아의 남자 사브르 슈퍼 스타 알도 몬타노나 플뢰레 여제 발렌티나 베찰리를 후원한다. 그러나 이탈리아 펜싱 대표팀 유니폼의 제조업체는 카파다. 그 외에도 독일, 프랑스, 중국, 그리스, 헝가리 등의 국가대표팀에는 선수 전원에게 용품을 제공한다.[51] 한국의 펜싱 국가대표팀도 아디다스가 용품 후원을 한다.

여러 배구 국가대표팀도 후원한다.

5. 스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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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논란 및 비판

6.1. 국정감사 선택적 영어 사용 및 태도 논란

국감 온 아디다스 대표이사…작년엔 한국말, 올해는 영어로 대답 / 채널A - 2024. 10. 21
2024년 10월 21일,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아디다스 코리아 대표 곽근엽 (피터 곽)이 영어를 사용하여 논란이 되었다.

영어를 사용한다는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않으나, 곽근엽은 불과 1년 전 23년 10월 16일 진행됐던 국정감사에서 한국말을 유창하게 사용하였으며 3개월 전인 7월 6일 손흥민과 함께했던 아디다스 행사에서 역시 한국어를 사용하였기에 문제가 되었다.

이렇게 되면 의원이 한 질의를 영어로 통역하면 곽근엽 대표가 영어로 답하고 이를 다시 한국어로 통역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질의가 늘어지기 때문.

위원회에서는 '학위를 국내 대학인 연세대학교에서 수여받았고, 수업과 레포트, 논문을 한국어로 작성했을텐데 영어밖에 못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며 이른 바 시간끌기를 하는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질의자인 강민국 의원은 "이게 뭐하는 짓이냐, 석사과정 공부할 때도 통역 데리고 다녔냐" 며 비판했고,

여기에 대해 곽근엽 (피터 곽) 대표는 "한국말을 못 한다고 한 적은 절대로 없다" 며 "위원님들이 제 답 (답변)을 이해를 하지 못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며 해명했다.

이에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쇼에요 쇼”라며 질타했다.

윤한홍 정무위원장은 “증인이 여기(국감장)에 나오면 긴장을 해서 잘 못 알아듣고 답변을 잘 못한다고 (하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제지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김정중 아디다스 전국점주협의회장은 “그 중요한 전략발표회도 한국어로 저희한데 프레젠테이션했다. 저희 회의에서는 한 번도 영어를 쓴 적이 없었는데 이런 모습 오늘 처음 본다”며 영어 사용을 지적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신장식 의원이 질의할 때 곽 대표가 메모를 하는 장면이 있다.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국감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나 의도가 아닌가 짙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며 “국회 모욕죄, 국회 위증죄를 비롯해 이 부분은 특별한 조사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강민국 의원이 말씀하신 것처럼 국회 모욕죄, 국회 위증죄 관련해서 여야 간사가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곽 대표의 답변 태도도 논란이 됐다.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은 “곽 대표가 (답변을 하며) 주머니에 계속 손을 넣고 있었다. 굉장히 불쾌하다”며 “캐나다(곽 대표의 국적)와 한국의 문화가 얼마나 다른지 모르지만 캐나다 국회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건들건들대며 증인으로 나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강력하게 경고해달라”고 요청했다.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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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방군 아디다스 활동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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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 아디다스 트레이닝복 입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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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didas Aktiengesellschaft(아디다스 주식회사). 아디다스의 발음은 본토인 독일에서는 /ˈadidas/, /ˈaːdidas/. 영어의 경우 미국 영어와 영국 영어가 다르다. 미국 영어는 통상적인 3음절 단어와 같이 penultimate stress를 가져 əˈdidəs로 발음하는 반면 영국 영어는 첫음절에 강세를 받아 ˈɑdədas로 발음한다. 영국 영어가 본토 발음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기준] : 2018 [기준] : 2018 [기준] : 2018 [기준] : 2018 [기준] : 2018 [기준] : 2018 [8] 나치는 유럽 정복을 위한 병역 자원을 마련하고자 젊은이들의 체력 및 협동심을 기를 스포츠를 장려했고, 스포츠 용품 업자인 다슬러 형제는 그 수혜자가 된 것이다. [9] 이때 당시 인종차별주의자였던 히틀러 제시 오언스와의 악수를 거부했다는 썰이 있는데 이건 그냥 국가 수반이 사적으로 초청하는 것은 IOC 의정에 위반되기에 첫 번째 메달 수상자를 제외하곤 그와 만나볼 기회가 없었다. 오히려 오언스 히틀러가 본인을 친근히 대해줬고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본인을 냉대했다고 깠다. [10] 아디는 전쟁 말기 자신의 직원들을 향토방위군 훈련에서 열외시키기 위해 훈련 시간마다 초과 근무를 시켰다는 일화도 있다. [11] 1974년 루디의 사망 당시 전화통화를 통해 아디가 형을 용서하겠다고 하며 형제간의 화해가 있었다고는 한다. 그러나 루디의 장례식 당시 아디 본인은 참석하지 않고 딸 한 명이 가족 대표로 참석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두 회사 모두 다슬러 집안의 손을 떠났다. 하지만 역사적으론 같은 가문이다. [12] 참고로 ADIDAS의 뜻이 국내에선 'All day I Dream About Sports'라고 알려지기도 했는데, 이는 잘못된 사실로 실제 의미는 창립자 아디 다슬러 별명인 “Adi(Adolf)”와 성인 Dassler의 앞글자 “Das”의 6글자를 합친 것이다. 미국의 유명 뉴메탈 밴드 Korn의 대표곡 중 'A.D.I.D.A.S.(All Day I Dream About Sex)'가 있어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브랜드명을 혼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애초에 아디다스는 독일 기업인데 영어로 약어를 지었을 리가 없다. [13] 가족회의를 통해 조정되고 최종적인 결정은 어머니 캐테를 거치긴 했다. 물론 호르스트는 겉으로는 따르는 척 하면서 뒤로는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켰다. 캐테는 종종 아들 때문에 힘들어요하면서 하소연했다고 한다. [14] 현재까지도 아디다스가 독일 국가대표팀을 후원한다. 시간이 흘러 아디다스는 독일 태생 장기 후원 브랜드이기에 아디다스가 아닌 타국의 브랜드 유니폼을 입는다면 그건 팀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평도 생겼다. [15] 당연히 세계 최초의 스터드 교체형 축구화다. [16] 훗날 독일 대표팀이 메스암페타민을 복용하고 경기를 뛰었다는게 밝혀지며 평가가 많이 하락했다. 당시 축구에서 약물 복용이 규정 위반은 아니었지만 암묵적으로 신사의 스포츠라 불리던 축구에선 불명예적인 행위였다. 그래도 독일인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는 점과 아디다스 축구화가 독일 대표팀에 어느정도 기여했다는건 부정할수 없다. [17] 호르스트는 스포츠 상업화의 원흉으로 꼽히기도 한다. [18] 당시 미국 농구화 시장은 컨버스가 석권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만들던 농구화 재질은 이었다. 지금도 컨버스 매장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의 캔버스화다. [19] 의외로 수퍼스타가 농구화로 출시한 모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슬램덩크에서 안한수 강백호와 점프슛 대결을 할 때 착용한 모델도 슈퍼스타 하이탑 제품인 Adidas Pro Model이다. 이는 훗날 2015년 2월에 퓨쳐스타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판이 나왔다. [20] 때문에 컨버스도 가죽으로 농구화를 만들어야 했다. 매직 존슨 줄리어스 어빙의 시그네쳐화는 컨버스에서 제작되었다. [21] 조깅이 미국에서 유행이던 시절 조깅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며 아디다스가 조깅화의 출시를 망설이는 사이, 후발 주자 나이키는 조깅 열풍에 편승하여 아디다스를 추월하고 에어 조던을 출시해 농구화 시장을 평정한다. [22] 프랑스 사회당 의원이기도 하며, 1986~1994년까지 프로축구팀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회장도 역임했다. 다만 마르세유를 소유할 당시 상대팀 선수를 돈으로 매수해 승부를 조작하고, 부패 및 탈세, 횡령 등의 혐의로 감옥에서 살고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인물이다. 2021년 10월 3일 78세의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다. [23] 지금의 퍼포먼스 라인의 시발점이 된다. [24] 사실은 불꽃이 아니라 Trefoil이라는 식물의 잎을 심볼화한 것. 100개 이상의 안건 중에 채택되었으며 세 줄기가 각각 미주, 유럽-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를 상징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양이 불꽃이라 봐도 이상하지 않은데다, 한국에서는 한 시대를 풍미한 만화 피구왕 통키의 연상 효과라도 작용한 것인지 불꽃 마크로도 많이 불린다. [25] 아디다스 그룹이 리복을 인수한 것도, 미국 시장에서 비교적 경쟁력을 가진 브랜드인 리복을 통해 미국 시장 점유율을 높여보려는 시도였다. [26] 덴마크 출신으로 미국 하버드 대학교를 나온 그는 2016년 아디다스 최고경영자가 되기 전까지 스포츠와는 관련이 없었다. HP에서 일하다 2005년 세제로 유명한 독일 기업 헨켈에 합류했고, 3년 만에 헨켈 최고경영자로 임명됐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로 소비재 수요도 급감하던 시기였다. 그는 과감한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그가 경영하는 8년 동안 헨켈 시가총액은 3배 가까이 뛰었다. 이는 아디다스가 그를 영입한 이유이기도 했다. [27] 이와 비슷한 사례로 나이키는 영국의 스포츠 브랜드 엄브로를 인수해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후원을 넘겨받고, 다시 매각한 적이 있다. [28] 기존 예상치 대비 3억 달러는 이지 재고 미폐기, 나머지 1억 달러는 경영 덕분에 실적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29] 350 V2, 500, 슬라이그, 폼 러너. [30] 참고로 러닝화도 부스트 폼 비율에 따라 당연히 서열이 나뉜다. 2017년 기준 대중화 라인에선 울트라부스트가 가장 함량율이 높고, 그 다음 퓨어부스트, 에너지부스트, 아디매틱 이런 순이다. [31] 다만 잘못된 마케팅, 경영 등으로 인해 오리지널스 스니커즈들과 부스트 폼을 사용한 NMD(노마드) 등의 인기가 매우 빠르게 식으면서, 다시 나이키에게 절대 1강 자리를 내어주며 격차가 벌어졌다. [32] 삼바 유행 이전에 나이키가 조던 1과 덩크의 물량을 신들린 듯이 조절해내며 리셀가를 방어해냈던 것과는 달리, 아디다스는 이번에도 물량 조절에 실패하면서 삼바의 리셀가가 추락하고 하입이 빠르게 죽었다. 2015년 NMD에 이어서 이번에도 나이키를 추격할 기회를 본인들이 걷어 찬 셈이다. [33] 물론 다른 브랜드를 애용하는 래퍼들도 있긴 하다. 대표적인 예가 나이키 올백포스 매니아 닥터 드레 릴 베이비 등이 있다. 릴 베이비는 한 번 신은 포스는 버린다고 한다. [34] 무엇보다도 아디다스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공식적인 후원사였던 만큼 FIFA와 함께 성장했기에 아디다스와 FIFA의 관계는 굉장히 좋은 편이다. [35] 오리지널스의 공식 모델 2NE1이 제레미 스캇의 뮤즈 중 하나라서 특별대우를 받았었다. [36] 두 브랜드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인지도가 매우 저조한 편이다. [37] 2023년 12월에 첫 번째 컬렉션을 출시했다. 계약 기간은 2025년까지. [38] 카니예 웨스트의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인한 계약 중도해지. [39] 매출 부진과 적자 악화로 인한 재계약 불발. [40] 아디다스가 가장 오래 후원한 구단이며, 자국 축구를 대표하는 구단이기도 하다. 아디다스 자사주로 바이에른 뮌헨의 지분을 갖고 있기도 하다. [41] 현재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이 아디다스 전 CEO 헤르베르트 하이너이다. [42] 2019년, 1조 5400억에 달하는 재계약을 통해 2028년까지 후원을 지속한다. [43] 2015년 7월 1일부터 합류하였다. 기간과 금액은 6년간 2000억 규모이며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팀임에도 불구하고 아디다스와의 계약은 이번이 처음이다. [44] 2015년 8월 1일부터 합류했다. 10년간 약 1조 3000억에 달하는 대형 계약을 체결하여 나이키를 밀어내고 스폰서 자리를 차지했다. [45] 2019-20 시즌부터 합류했다. [46] 이건 사실 저주라기보다는 당연한 수순인데, 하워드와 로즈 두 선수 모두 부상 이전부터 혹사 논란의 중심에 섰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뛰어다녔다.(플레이 타임이 긴 것은 물론 비교적 작은 키를 커버하기 위해 본인들 스스로 더 많이 뛰어다닌 것이 시즌아웃의 원인이다. 로즈의 경우 PG로는 준수한 키지만 팀의 에이스인데다 사실상 듀얼 가드를 맡아 어쩔 수 없이 많이 뛰어야 했다.) 무게가 가벼우면 그만큼 발에 가는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경량 농구화 최악의 단점은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나 보다. D 로즈5 부터 372g으로 다시 무거워졌다. [47] 릴라드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식 공개전에 자신이 먼저 디자인을 공개했다. [48] 나머지 선수들은 일 터지기 전에 다른 회사로 도망갔는데, 그 중에는 코비 브라이언트도 있다. [49] 데릭 로즈가 점차 인져리 프론이 되어감에 따라 시그니처가 없어진다는 소리도 나왔지만,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50득점도 기록하고 쏠쏠한 활약을 이어가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D로즈 1.5의 디자인을 계승하는 듯 한 D로즈 10의 유출샷도 등장했고 실제로 신고 경기를 뛰기도 하였다. [50] 그러나 독일 축구 대표팀은 2027년부터 2034년까지 자국 스폰서였던 아디다스와 결별을 선택하고 아디다스의 라이벌인 나이키를 선택했다 [51] 광저우 아시안 게임 당시 남자 플뢰레 개인전 준결승전에서 최병철에 패한 일본의 오타 유키의 팔쪽을 보면 아디다스 로고가 있기는 하나, 실제 일본 펜싱 국가대표팀은 아식스와 계약했다. [52] 가격도 주로 10만원 전후를 유지하기 때문에, 노스페이스 리즈 시절에 제일 싼 바람막이가 13만원이던걸 생각하면 상대적으론 싼 편이다. [53] 하지만 독일연방군은 제외다. 독일연방군에선 소방화/안전화/전술화 메이커 HAIX사의 제품을 사용한다. 그리고 2010년대 중순 이후 독일연방군 연방기관 대테러조직에서는 LOWA사의 제품을 더 애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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