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22:34:34

맞벌이

파일:Document_Protect.svg   편집 보호된 문서입니다.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세요.

1. 개요2. 역사3. 현재의 모습4. 장점5. 단점

1. 개요

부부가 같이 일하며 버는 것을 말한다. 반댓말은 외벌이.

2. 역사

현대에 나타난 현상 같지만, 알고 보면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현상이다. 서양에서는 맞벌이라는 개념이 처음 논의가 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 외벌이가 보편화된 19세기 중반~20세기 초반, 한국에서는 이촌향도가 활발해져 도시에서는 밭일 등을 여성이 할 수 없게 된 1960년대부터다. 다시 말해 전업주부, 외벌이와 맞벌이는 서민에게는 근대 이후에 생긴 개념이라는 것이다. 중화권과 한반도에서 생활 습관으로까지 자리잡은 유교에서는 내외관, 삼종지도, 공적 영역을 남성이 할 것을 중시하여 거의 외벌이의 가정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었으나, 경제적인 문제로 이를 실천하기가 꽤 어려웠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이 자급자족으로 이뤄지던 사회였던 만큼, 부부가 함께 일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또한 중세 유럽의 경우, 남편과 아내가 공동으로 농사를 짓거나 기술직에서도 부부가 같이 일하던 사례는 매우 흔했다. 농업이나 가내수공업은 온 가족이 일을 하므로 맞벌이라 할 수 있고, 심지어 양반 집안에서도 남편은 훈장을 하고 아내는 삯바느질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는 경우가 있었다. 강정일당이 그런 케이스. 일제강점기의 잡지에서도 팔도의 여성들이 매우 다양한 경제 활동(수공업, 장사, 농사, 나물 캐기 등)을 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1] 지금도 여성의 경제활동으로 잘 알려진 것이 제주도의 해녀, 한산 모시와 같은 것이 있다. 도라지 타령도 여성이 부르는 것으로 묘사되며, 흥부전에서도 흥부 아내의 품팔이가 묘사되며, 섬집아기라는 동요도 해방 직후에 쓰인 오래된 곡이다. 다만 이런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안일'을 하는 사대부 가문의 부인, 부유한 집의 부인보다 낮았기 때문에 이런 경제활동이 잘 알려지지 못한 것이다.

한국사를 돌이켜보면, 조선 후기 즈음에는 지금보다 훨씬 남자와 여자의 일이 구분되어 있었다. # 맞벌이기는 하지만 '농사와 길쌈[2]'이 여성의 일이고, 바깥 일로 대변되는 논농사 같은 힘든 일을 남성이 해야한다는 규범적 인식이 정해져 있었다. 아예 아내라는 말의 어원 자체가 '안해', 안 사람이라는 뜻이다. 16세기경 등장한 표현으로 과거에는 성 역할이 구분이 되기는 해도 이렇게 엄격하지는 않았다. 삼국시대 정도만 해도 정창원 신라 양탄자처럼 여성이 자기 이름을 걸고 자신의 물건을 수출하거나, 고구려 평강공주가 좋은 말을 감별할 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여성이 맞벌이를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리학 임진왜란 이후로 강력하게 교조화에 가까울 정도로 강조되며, 상류층을 중심으로 예기에 등장하는 '내외'를 강조하면서 여성이 '안일'을 할 것이 강조된 것이다. '장가'라고 하여 신랑이 여자 집에서 신혼 생활을 할 정도였던 민족 문화를 가진 과거에서 점차 남성에게 주어지는 경제적 부담이 커졌다. 게다가 유교는 자식을 부모가 돌볼 것을 가장 중시했기 때문에 육아에 있어서 여성은 더 밖으로 나가는 것이 어려웠다. 현재까지 서구의 보모 같은 문화를 한국인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에는 제주도 등 일부 해안지역, 경기도[3]나 강원도, 이북 같은 곳이 아니라면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맞벌이기는 해도 집 안이나 근처에서 일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만 해도 지역별 차이도 있어, 함경도 같은 곳은 노인 세대, 면장의 풍기문란이라는 반발이 있어도 젊은 여성이 시장에 활발히 참여했으나 현재의 남한 지역은 경기-강원 등지나 해안 지역을 빼면 여성이 시장에 가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여겼다. # 이렇게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아내를 집에 데려다놓으면 양반처럼 '문지방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는' 일을 실천할 수 있다고 여기기도 하고 길쌈과 육아만 가능하고 농사일조차 안 시키는 경우마저 있었다고 한다. (pdf) 그러나 근대화가 되면서 이정도로 보수적인 풍습은 '바깥일'에 대한 부정적인 잔재는 남겼으나 제주도나 해안가, 이북이나 그 근처에서는 저런 풍조가 약하여 여성이 시장 정도는 돌아다니는 등의 변화로 이어졌다. 제주도에는 아예 '아내'라는 말에 대응되는 단어가 없고 '각시' 등으로 결혼한 여자를 불렀다. 그런데 이런 여자의 밖일에 그리 부정적이지 않은 지역은 제주도를 제외하면 많은 곳이 북한에 넘어가서 분단 이후에도 '바깥일'에 대한 부정적인 풍조가 강했다. 한국에서 백희엽 씨 같이 여성으로 돈을 많이 번 거물도 이북 출신이었다.

미국의 경우 산업혁명 초기까지는 조선시대와 유사한 가내수공업 등이 있었으나, 생산력의 발전으로 19세기말까지 이런 노동 참여가 줄어들었다. # 그러나 1890년 이후로 계속 여성의 노동 참여율이 증가하던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고, 독일을 제외한 모든 서구의 국가가 이런 식이었다. # 독일도 제2차 세계대전 때만 맞벌이가 줄었다가 다시 느는 추세였다. 한국도 여성의 노동 참여율은 스페인보다 높고, 미국보다 낮으나 프랑스와 비슷한 추세로 증가해오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집에서 하는 일과 비슷한, 전통적 관념에서 벗어나지 않는 양잠 등을 70년대 즈음 추진하다가, 당시 이촌향도로 인해 여성이 기존에 하던 일을 못하게 되면서 아예 주부로 일하는 형식의 외벌이가 잠시 대세가 되었다. 이후 점차적으로 여성도 교육을 많이 받게 되고, 한국에서도 사회진출이 활발해졌다.

세계적으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고 노동법 발전과 함께 노동시간이 점차 줄어듬에 따라, 맞벌이는 현대사회 가족의 주요한 형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허나 한국에서는 서양에서 100년 넘게 점진적으로 나타나던 일이 30년 안쪽의 기간 동안 급속도로 진행되어 현대의 맞벌이는 문화적 적응이 어려운 것에서 비롯된 여러 문제점을 가져오기도 했다. 즉, 일터-가정 간의 거리가 멀어진 만큼, 집안에 남겨진 아이들을 관리할 시간, 수단이 부족해졌다. 반면에 노동시간은 여전히 길며, 육아를 병행하는 직장인에 대한 배려가 적기에 여전히 문제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부모와 오래 있지 못하거나, 부모와 아닌 사람과 더 많이 친하면 이상하다는 인식도 강하기에 맞벌이로 일어날 수 있는 후자와 같은 상황을 꺼리기도 한다. 이처럼 일과 가정의 병행이 한국에서 유달리 어려운 것이 저출산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시각도 많다.

3. 현재의 모습

참고로, 맞벌이 비율은 대략 중국: 76% (세계 1위), 베트남: 74%, 미국: 65%, 일본: 58%, 한국: 48%이다.[4]

보통은 남편 혼자 버는 걸 외벌이라고 말하지만 요새는 아내 혼자 버는 경우도 있다. 이를 셔터맨이라고 한다. 한국보다 일찍 전업 주부 남성이 나타나기 시작한 일본도, 여전히 한국 사회만큼 시선이 차갑다. 성평등을 강조하는 서양 역시 굉장히 수가 적다. 서양에서 남성도 전업주부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는 건 사실이나, 현실적으로는 수가 많지 않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젊은 세대의 경우 남녀 모두 과반수가 맞벌이와 공동 육아를 선호한다고 조사됐다. # # 결혼 정보업체의 데이터에 따르면 결혼 적령기 한국 남성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외모와 나이이고, 그다음으로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이 '직업이 있는가'라고 한다. 그리고 선호하는 여성의 직업은 변호사 같은 고소득 직종보다는 공무원, 교사 등 출산과 양육 등 여성의 커리어를 위협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무난하게 휴직과 복직을 할 수 있는 안정된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일본에서도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여자력이 높은 남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늘었다. 이에 아이를 돌볼 줄 아는 남성을 선호하는 일본의 이쿠멘育メン (육아育児+이케멘イケメン)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애초에 어느 쪽이 아이를 보든지 간에 상대방이 병에 걸리거나 하면 다른 쪽이 애를 봐줘야 하므로 기본적 집안일은 할 줄 알아야 한다. 의외로, 일본의 맞벌이 비율은 한국보다 높다.

중국, 북유럽 국가(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이스라엘, 비이슬람권 동남아시아(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등)처럼 여성의 강인함 내지 생활력이 중시되는 전통이 있는 나라도 맞벌이가 흔하다.

스웨덴은 극도의 평등주의 때문에 여성이 힘을 기르는 모습도 있으며, 베트남과 이스라엘은 쯩 자매, 드보라와 같은 잔 다르크 같은 여성인 전사의 이야기가 있고 특히 이스라엘은 일반인을 징병하는 여군이 있을 정도로 여성도 강인해야 함을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인들은 베트남만 보아도 여자도 궂은일을 마다않는 모습에 컬처 쇼크를 받기도 한다. 심지어 사업가는 베트남에서는 여성이 더 많다고 한다. # 캄보디아도 크메르 제국 시대부터 중국인들이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가 활발하다며 놀라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도 제주도처럼 생활력이 중시되는 지방은 60%는 맞벌이를 할 정도로 맞벌이가 좀 흔하나 저런 나라에는 못 미친다고 한다. # 비이슬람권 동남아시아에서는 자식을 다른 친인척이 종종 돌봐주기도 하고, 여성이 남성 못지않은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이나 아버지의 양육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부류의 성평등 사상이 강한 북유럽은 공공적인 양육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아이가 어려서도 생활력(아르바이트 등)이 높도록 자식 교육을 시킨다.

다만, 중국의 경우 맞벌이 비율이 높다고 여성 인권이 높다고 말하는 것은 공산주의의 여성 인권 특성상 그 의도와 맥락이 상당 부분 생략되어 있다. 이는 여성의 노동 참여를 유도하는 명분일 뿐이며, 가부장제 타파는 부수적인 결과에 불과하다. 중국은 평균 소득이 낮아서 맞벌이 비율이 상당히 높고, 여성이 일을 하지 않으면 이혼 시 재산분리법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중국에서는 불이익을 볼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경우가 흔하다.[5] 심지어, 중국의 이혼율은 동아시아 국가 중 단연 1위이자 인구 1천만 이상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전 세계 톱 10에 든다 #[6] 이러한 중국의 높은 이혼율 때문에 최근 중국 정부는 이혼을 쉽게 못하게 법을 바꾸겠다고 통보하였고, 이는 많은 중국인 여성들의 분노를 유발하여 오히려 비혼을 선언하는 여성들이 급격히 늘었고, 중국 남녀간의 젠더전쟁으로까지 불거졌다. # 그나마 중국에서 남자가 집안일을 잘하는 지역은 화둥지구와 중난지구를 의미하며, 나머지 지역은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화둥지구와 중난지구에서는 금융업이나 서비스업이 발달한 지역 특성상 경제권이 여자에게 있는 경우도 많다. 아내가 외벌이로 돈을 벌어오는 경우가 꽤 많다 보니 결혼에서 주도권을 쥐는 사회 분위기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동북지방과 산둥성은 가부장제 분위기가 굉장히 강하다.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맞벌이를 선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과거 여성은 안일을 하라던 내외 사상이 도덕 수준으로 강조되었고, 타 문화권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정성을 강조하는 집중적 양육의 풍조가 강하며, 취업경쟁이 치열한 동북아시아에서는 중국을 포함하여 임신 시 육아휴직 중 불이익을 받거나 직장을 그만두라는 압력을 받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아닌 이상, 육아휴직을 길게 쓰기 어렵고, 협박이나 발령 등의 불이익도 빈번하다. '워킹맘'은 직장 생활, 아이 양육, 가사 노동의 삼중고를 겪는다. 경력 단절 여성은 재취업 시 이전과 같은 보수를 받기 어렵다. 이로 인해 비출산을 선택하는 여성들도 있다. 전업주부가 되는 것도 여성에게 부담이다. 경력이 끊기고 경제적으로 남편에게 의지해야 하며, 시부모의 간섭 문제도 있다. 젊은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전업주부 전향에 부정적이며,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기혼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자발적 전업주부 선택이 있지만, 후회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의 경우에는 요즘 국가와 기업들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기 위해 여러 노력 중에 있다.

4. 장점

5. 단점



[1] 현대의 한국 농촌 노인도 이와 비슷하게 일을 하고, 부모나 조부모가 농촌에서 일하던 많은 한국인들은 잘 들어보면 여성의 '밭일' 같은 것이 옛날을 언급할 때 등장한다는 것을 아는 경우도 많다. 다만 몇몇 양반 집안에서는 양란 이후 성리학이 교조화되어 공자의 말이라는 소문이 돌던 삼종지도를 주장하며 여자란 '하는 일은 술과 식사를 제공하는 것에 있을 뿐'이라는 주장을 한 경우도 있었고 일부 지역에서도 이런 주장을 흉내내어 양반 행세를 하려든 경우도 있었다. 반면에 중국에서는 전족과 같은 풍습이 맞벌이는 하되 집안에서 벌어야 한다는 교조적 관념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2] 옷감을 짜는 일이다. 추석 때 고구려 건국 초기인 유리왕 때도 길쌈 대회가 있었다고 할 정도로 매우 오래된 풍습이다. [3] 안성의 여성은 유기 장사 등을 하기도 했다. # [4] # # # [5] 중국의 재산분할법에 대해 설명하자면, 중국은 결혼 전의 개인 재산은 결혼 후에도 개인 소유로 간주되며, 이 재산은 이혼 시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결혼 후 부부가 번 공동재산만을 기여도를 고려하여 분할하기에 이는 한국과 다소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한국에서는 결혼 전의 재산도 분할될 수 있다. # # [6] 여담으로, 2013년 한국의 조이혼율은 2.3이었으며, 같은 해 일본은 2.0, 미국은 3.6이었다. 동아시아와 북미의 이혼율이 다른 나라, 특히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에서는 법적 결혼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결혼 신고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이혼 통계에 포함되지 않아 이혼율이 낮게 나타난다. 반면, 미국과 남미 등지에서는 법적으로 결혼을 하고 이혼 통계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으며, 사회적 인식이 관대하여 이혼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7] 단, 맞벌이라고 다 많이 버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정말 가난한 집안의 경우에도 맞벌이인 경우가 제법 많다. 가난하니 맞벌이를 할 수 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경우 소득이 낮은 것은 (어떤 까닭으로건) 고소득의 직업을 구할 능력/형편이 안되는 경우다. 그러다 보니 두 명이 번다고 해도 둘 다 소득이 매우 낮아 웬만한 외벌이보다 훨씬 못버는 경우도 많다. 또한 둘이 일하긴 하지만 두 명이 같이 자영업을 할 경우 알바비 지출은 줄어들 수 있으나 소득이 크게 증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8] 탈북민은 70% 이상이 여성이다. [9] 출처 [10] 아내가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