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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바우두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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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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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FIFA 월드컵 실버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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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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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99 · 1999-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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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FIFA 올해의 선수 | ||
수상 지네딘 지단 |
2위 루이스 피구 |
3위 히바우두 |
1999 코파 아메리카 MVP | ||
히바우두 |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
히바우두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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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르셀로나 앰버서더 | |||||
Futbol Club Barcelona Ambassado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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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2224c><colcolor=#ffd400> 이름 |
히바우두 Rivaldo |
||||
본명 |
히바우두 비토르 보르바 페헤이라 Rivaldo Vítor Borba Ferreira |
||||
출생 | 1972년 4월 19일 ([age(1972-04-19)]세) | ||||
페르남부쿠주 파울리스타 | |||||
국적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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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86cm / 체중 78kg | ||||
직업 | 축구 선수 ( 공격형 미드필더, 공격수[2] / 은퇴) | ||||
주발 | 왼발 | ||||
소속 | <colbgcolor=#a2224c><colcolor=#ffd400> 선수 |
산타크루스 FC (1991~1992) 모지미링 EC (1992~1994) → SC 코린치안스 (1993~1994 / 임대) SE 파우메이라스 (1994~1996)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996~1997) FC 바르셀로나 (1997~2002) AC 밀란 (2002~2004) 크루제이루 EC (2004) 올림피아코스 FC (2004~2007) AEK 아테네 FC (2007~2008) FC 부뇨드코르 (2008~2010) → 상파울루 FC (2011 / 임대) 카부스코르프 SC (2012) AD 상카에타누 (2013) 모지미링 EC (2014~2015) |
|||
기타 | FC 바르셀로나 (2016~ / 앰버서더) | ||||
국가대표 | 74경기 35골[3] ( 브라질 / 1993~2003) | ||||
SNS | | | ||||
정보 더 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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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시절 주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지만 특별한 역할에 구애받지 않는 프리롤 공격수이기도 했다. 별명은 ' 악마의 왼발'.현역 시절 바르셀로나에서 라리가 2연패를 주도하며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는 등 전성기를 보냈고, 브라질 대표팀에서는 조국의 1999 코파 아메리카와 2002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2. 유년기
히바우두는 브라질 파울리스타에서 태어난다. 그는 다른 브라질 스타들처럼 빈민가에서 축구스타의 꿈을 키워나갔고 지역팀인 파울리스타의 유소년팀에서 실력을 쌓기 시작한다. 그러나 1989년 그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하지만 히바우두는 좌절하지 않고 꿈을 계속 이어갔고 1991년 산타크루스에서 프로 데뷔를 한다.3. 선수 경력
3.1. 클럽 경력
자세한 내용은 히바우두/클럽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3.2. 국가대표 경력
자세한 내용은 히바우두/국가대표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4. 플레이 스타일
자세한 내용은 히바우두/플레이 스타일 문서 참고하십시오.5. 기록
5.1. 대회 기록
- SE 파우메이라스 (1994~1996)
- 세리 A: 1994
-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1994, 1996
- AC 밀란 (2002~2004)
- 코파 이탈리아: 2002-03
- UEFA 챔피언스 리그: 2002-03
- UEFA 슈퍼컵: 2003
- 크루제이루 EC (2004)
-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2004
- FC 부뇨드코르 (2008~2010)
- 우즈베키스탄 슈퍼 리그: 2008, 2009, 2010
- 우즈베키스탄컵: 2008, 2010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2002
- 코파 아메리카: 1999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1997
- 엄브로컵: 1995
- 브라질 U-23 축구 국가대표팀
- 올림픽 동메달: 1996
5.2. 개인 수상
- 발롱도르: 1999
- 발롱도르 드림팀 후보: 2020 (LW 5위)
- FIFA 올해의 선수: 1999
- FIFA 100: 2004
- FIFA 월드컵 실버슈: 2002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98, 2002
- 코파 아메리카 MVP: 1999
-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 1999
- UEFA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 1999-00
- 볼라 지 프라타: 1993, 1994
- 라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4]: 1997-98
- 코파 델 레이 득점왕: 1997-98
- 수페르리가 엘라다 최우수 외국인 선수: 2006, 2007
- 수페르리가 엘라다 도움왕: 2008
- 우즈베키스탄 프로페셔널 풋볼 리그 득점왕: 2009
- 우즈베키스탄 프로페셔널 풋볼 리그 도움왕: 2009
-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1999
- 옹즈도르: 1999
- 옹즈 드 옹즈: 1998, 1999
- 트로페오 EFE: 1998-99
- FIFA XI: 2002
- ESM 올해의 팀: 1998-99, 1999-00
- lFFHS 세계 최고 득점자: 2000
- RSSSF 올해의 선수: 1999
- 브라질 축구 명예의 전당
6. 히바우두에 대한 언사
내가 유스 클럽에 있었을때 나는
호마리우의 플레이를 보면서 자랐고 1군에 콜업됐을 당시
호나우두의 플레이를 목격했으며
호나우지뉴와 함께 필드에서 뛰었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최고는 히바우두다.
사비 에르난데스
사비 에르난데스
그의 슈팅, 킥, 드리블은 모두 완벽하다. 나는 그를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펩 과르디올라
펩 과르디올라
히바우두는 세계 최고의 선수다. 특히 그의 왼발 슈팅은 개인적으로 배우고 싶을 정도다.
호나우두
호나우두
7. 여담
- 축구 역사상 단 9명뿐인 월드컵 + UEFA 챔피언스리그 + 발롱도르를 모두 석권한 선수 중 한 명이다. 여기에 대륙별 국가대항전 우승까지 포함하면 단 6명으로 줄어든다.[5]
- 히바우두는 사실 K리그에서 뛸 수도 있었다. AC 밀란에서 방출된 직후인 2004년 당시 안양에서 연고를 이전한 FC 서울이 오퍼를 넣었던 것. # 하지만 히바우두가 유럽 재도전 의지를 보이며 무산되었다고 한다. 히바우두는 이후 브라질을 찍고 그리스의 올림피아코스 FC로 이적했고, 2008년 분요드코르로 이적해 아시아 축구 무대에 발을 담궜다.
- 히바우두의 아들 히바우지뉴[6]도 프로 축구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다만 아버지와는 다르게 브라질 리그에서 얼마 안있고 일찍 해외로 진출했다. 디나모 부쿠레슈티로 이적하여 리그에서 30경기 5골을 넣으며 그렇게 나쁘지 않은 첫 시즌을 보냈고, 2018년에 불가리아의 레프스키 소피아 소속이 되었다. 2019년 겨울 이적시장에서 게오르게 하지가 구단주 겸 감독으로 있는 비토룰 콘스탄차로 임대를 오게 되었다. 하지의 지도 아래 꽃을 피운 선수들이 다수임을 봤을 때 히바우지뉴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다. 아직 나이가 젊은것을 감안하여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2020년에는 폴란드 엑스트라클라사의 크라코비아로 이적.
- 2015 코파 아메리카에서 브라질이 8강에서 탈락하자 쓴소리로 비난했다. "요즘은 브라질 국대에 아무나 들어온다. 나만 해도 2006년 월드컵 당시 그리스 리그나 뛴다고 하여 퇴물처럼 취급되어 국대팀 선수가 되질 못했다.[7] 이런 상황이 계속 된다면 적어도 30년은 브라질 국대팀이 발전이 없을 것이다" 이외에도 요즘 축구는 예전만 못하다, 퇴보했다는 식의 인터뷰를 간간이 하며 눈길을 끌고 있다.
- 캡틴 츠바사 road to 2002에서 주인공 츠바사의 포지션 라이벌이자 조언자 정도의 위치로 등장했으며, 작품 내에서 츠바사와의 공존에 성공한다.[8]
- 폐인 양성게임으로 악명높은 풋볼 매니저에서 불혹의 나이지만 능력치가 매우 높은편이라 에디터로 나이를 의도적으로 낮춰 사용하는 유저들이 많다. 나이 때문에 신체 능력은 형편없는 상태에서 기술/정신 부분만 굉장한 상태인데,[9] 나이를 낮춰버리면 부실했던 피지컬이 미친듯이 상승하면서 전천후 괴물이 탄생한다.[10]
- 대전축구게임의 양대산맥인 FIFA 시리즈와 PES 시리즈에서는 그닥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한다. 극한의 왼발잡이 답게 보통 오른발 정확도는 낮아 플레이에 제약이 걸리며, 보통 각종 킥과 슛에 능력치가 몰빵되어 있고 특히 스피드가 느린편에 속하기 때문.
- 네덜란드의 레전드 수비수이자 역시 왼발의 달인인 프랑크 더 부르가 자신이 같이 뛰어본 가장 뛰어난 선수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윙어 중 한 명인 피구도, 자국 네덜란드 대표팀의 레전드 베르캄프도 아닌 히바우두를 뽑았다. # 바르사에서 히바우두의 최전성기인 90년대 말~00년대 초반을 함께 했던 선수인 만큼 축구 골수 팬들은 당연하다는 반응이지만, 라이트한 축구 팬들은 말년에 노쇠화 이후 유럽 메이저 무대를 떠나는 바람이 메이저 무대에서 롱런했던 피구와 베르캄프에 비함 상대적으로 인지도에서 손해를 본 히바우두를 꼽은 것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미드필더 5인을 선정했는데, 1990년대 미드필더들 중 3위에 이름을 올렸다.
- 2022년 8월 방한하여 FIFA 월드컵 트로피 전시 행사를 가졌다. 트로피 전시 행사에는 히바우두의 참석이 꼭 필요했다. 월드컵 트로피 진품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은 국가 수반과 월드컵 우승팀에 있던 선수로 제한되므로, 행사장에서 트로피를 손으로 만질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 히바우두였기 때문이다.[11]
- 리버스: 1999라는 게임에서 언급된다. 주인공이 ‘1999년 최고의 활약을 한 선수'라고 소개한다.
- 2024년 10월 20일 아이콘 매치에 FC Spear 팀으로 출전하였다.
7.1. 콩라인
흔히들 발락을 콩락이라 부르며 축구계 2인자의 대명사로 칭하는데, 이 사람 역시 콩라인으로서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뭐 결국 둘 다 축구로 정점 찍은 사람들이니 우스갯소리긴 하지만. 히바우두의 경우 브라질의 10번으로 1998년 월드컵 준우승을 시작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우승에 기여했고 1999년 한 해는 독보적인 에이스였다.[12] 그리고 발락은 히바우두가 팀 내 2인자 이미지가 컸던 것에 반해 독일의 에이스로서 여러 차례 독일 올해의 선수 수상을 했지만 아무래도 국대가 준우승에 머물렀던 점, 팀 우승도 첼시 시절 한 번을 제외하면 왠지 당연해 보이는 뮌헨 시절에 몰려 있다는 점에서 비교할 수 있다.히바우두는 놀라운 공격 포인트에 비해 전성기가 짧은게 옥의 티라면 옥의 티였다. 1996년 올림픽 국가대표를 시작으로 1997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도 출전했지만 그 때는 아직까지 호마리우가 건재했던 시기였고 호마리우가 은퇴한 때인 1998년 프랑스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약 5년 간 그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줬지만 아쉽게도 한일 월드컵 이후로는 국대에 선발되지 않은 점이 그를 콩라인 반열에 들게 한 큰 이유일지도. 이런 점에서 이탈리아의 스트라이커였던 크리스티안 비에리와 약간 비슷한 신세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와 바르셀로나에서 라리가를 완전히 휘어잡았던 왼발신이었음에도 네임밸류가 잘 알려져있지 않은 편인데, 다른 건 둘째치고 소속팀에서 에이스로 군림했음에도 불구하고 팀 동료와 스포트라이트를 나눠갖는 상황이 커리어 내내 지속되었다. 히바우두가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며, 네임밸류도 피구보다 앞섰다. 혹자는 피구가 3년 연속으로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을 받은거를 근거로 드나 피구가 드리블과 플레이메이킹 등으로 평점은 더 높았기 때문에 당시 평점으로 주던 돈 발롱 MVP를 가져간 것이지 명실상부 에이스는 히바우두였다. 다만, 혼자 누렸어야할 스포트라이트를 분명히 피구 등 다른 선수들과 나누어 갖는 상황이 벌어졌던건 사실이고 일개인 득점랭킹 또한 1997-98, 2000-01 시즌 리그 득점랭킹 2위를 차지했다. 특히 00-01 시즌의 활약은 정말 눈부신 것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골 차로 2위였다.
브라질 국가대표에서도 다를 건 없다. 기세등등하게 국가대표에 승선했을 때는 밤새 술마시며 클럽을 전전하면서도 미친 듯이 골 넣어대는 어떤 아저씨가 버티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가 한물 가자 이번에는 페노메노라는 양반이 등장했고, 가뜩이나 늙어가는 처지에 이번에는 갑자기 웬 외계인 및 엄친아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괴물까지 나왔다.[13]
1998 월드컵에서는 3골 2어시스트, 2002 월드컵에서는 5골 1어시스트를 찍는 활약을 펼쳤음에도 그 어떤 스포트라이트도 그에게 오지 않았다.[14]
이 때문에 한때 브라질이 바그너 로베같이 선배들의 위엄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한 수준의 선수를 주전 스트라이커로 쓰던 시절엔 " 나 때는 내가 아무리 리그에서 잘해도 그리스 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대표팀에 발도 못 붙였다"라며 한탄한 적도 있다.
그러나 브라질이 원래 그런 동네고 자기 자신 역시 다른 동네 같았으면 국대 붙박이였을 사람들 앞길 막은 건 마찬가지이다. 당장 베베투만 해도 노구를 이끌고 참가한 98년 거의 경기마다 교체당했으면서도 히바우두와 같은 수의 득점을 올렸다. 자르데우, 지오반니 에우베르, 마르시오 아모로소, 아이우통 같은 유럽 4대 리그 득점왕들조차 히바우두와 전성기가 겹쳐서 쓸쓸한 국대 경력을 보냈다. 이들보다 한 끗발 떨어지는 선수들이 국가대표를 노리기는 거의 언감생심에 가까웠으니[15] 남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다는 히바우두도 남의 앞길 많이 막은 셈이다. 결정적으로 히바우두는 말이 콩라인이지 우승할 수 있는 대회는 거의 다 우승해보고 발롱도르까지 차지해본,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할 수 있는 선수였다. 일반적인 선수들이 보기엔 히바우두도 호나우두나 호마리우 못지 않은 괴물이다.
8. 같이 보기
3R | ||
호나우두 | 히바우두 | 호나우지뉴 |
1
타파레우 · 2
카푸 · 3
아우다이르 · 4
바이아누 · 5
C. 삼파이우 · 6
R. 카를루스 · 7
지오바니 · 8
둥가 ⓒ · 9
호나우두 10 히바우두 · 11 에메르송 · 12 제르마누 · 13 제. 카를루스 · 14 곤살베스 · 15 크루스 · 16 제. 호베르투 · 17 도리바 18 레오나르두 · 19 데니우손 · 20 베베투 · 21 에드문두 · 22 지다 |
마리우 자갈루
|
1
마르쿠스 · 2
카푸 ⓒ · 3
루시우 · 4
호케 JR · 5
에드미우송 · 6
R. 카를루스 · 7
히카르지뉴 · 8
지우베르투 · 9
호나우두 10 히바우두 · 11 호나우지뉴 · 12 지다 · 13 벨레티 · 14 A. 포우가 · 15 클레베르송 · 16 주니오르 · 17 데니우손 18 밤페타 · 19 주니뉴 · 20 이지우송 · 21 루이장 · 22 R. 세니 · 23 카카 |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
[1]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공동 수상.
[2]
전천후 프리롤 공격수로 뛴다. 투톱으로 배치 될 때 전형적인 스트라이커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며, 스트라이커 보다 오히려 세컨드 스트라이커와 비슷한 역할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인다. 2선과 전방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움직이며 플레이메이킹과 득점을 노리는 프리롤 포워드이다. 기본적으로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제로톱 등 거의 모든 공격수 역할이 가능하다.
[3]
대표팀 역대 득점 7위.
[4]
돈 발롱 어워드
[5]
나머지 다섯은 유로 1972를 우승한
프란츠 베켄바워와
게르트 뮐러, 유로 2000을 우승한
지네딘 지단, 히바우두와 함께 1999 코파 아메리카를 우승한
호나우지뉴, 2021 · 2024 코파 아메리카을 우승한
리오넬 메시이다.
[6]
1995년생
[7]
이런 말이 나올 만 한 것이 히바우두가 뛰던 당시에는 빅리그 득점왕들도 히바우두, 호나우두, 베베투, 호마리우 등 괴물 공격수들의 아성에 밀려 나오지조차 못할 정도였으나 2015년 브라질 국대에 중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주전이었다. 참고로 히바우두를 밀어낸 선수들은 빅리그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있던 카카, 호나우두, 아드리아누, 호나우지뉴의 판타스틱 4였다.
[8]
작내 이름은 리바울. 히바우두를 영어로 읽을 경우 리발도를 조금 바꾼것이다. 애초에 해당작품에는 실축에 나오는 선수들 죄다 이름이 살짝 바뀌어 나온다.
[9]
간단히 말해서 피지컬을 제외한 능력치는 20~30대 현역 공격수 중 그 어떤 선수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0]
훈련 방향에 따라 개인기, 골결정력, 드리블, 볼트래핑, 중거리슛, 코너킥, 크로스, 패스, 페널티킥, 프리킥 등 공격관련 기술 모두 20이 나올 수도 있다. 그걸 평균 이상으로 돌아온 피지컬이 받쳐준다.
[11]
현재 대한민국에서 FIFA 월드컵 트로피를 합법적으로 만질 수 있는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이 유일한데 트로피 하나 운반하자고 국가 원수를 부를 수는 없다.
[12]
오죽하면 당시에는 이 사람의 어시 덕분에 "호나우두가 주워먹기를 했네, 황제소리 들었네"라는 풍문이 있었을 정도였다.
[13]
그러나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호나우지뉴와 카카는 스트라이커 내지는 공격수인 히바우두와 포지션이 약간 달라 히바우두에 명성에 누가 갔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사람들의 주목도를 얘기하는 것이니까. 사실은 같은 피지컬 괴물 계열인 탕아, 아드리아누에게 밀렸다고 봐야 한다.
[14]
에이스가 스포트라이트를 죄다 가져가버렸고, 오히려 사람들은 터키전에서 그가 잠시 보여줬던 할리우드 액션만 기억해줄 뿐이었다. 그러나 2002 월드컵 결승전에서 호나우두의 2골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줬던 장면만 보더라도 기록된 공격 포인트 이상의 기여도가 있었다는걸 알 수 있다.
[15]
루이장 에디우송처럼 국대 승선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