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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8 16:37:47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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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oat_of_Arms_of_Comunidad_Catalunya.svg.png 카탈루냐의 주
(아래에 있는 괄호 안은 중심도시)
바르셀로나 주
( 바르셀로나)
예이다 주
(예이다)
지로나 주
( 지로나)
타라고나 주
( 타라고나)
바르셀로나
Barcelona
파일:바르셀로나 기.svg
<colbgcolor=#ad1519><colcolor=#fff> 시기(市旗)
국가 스페인
지역 카탈루냐
바르셀로나주
면적 101.4㎢
인구 1,621,000명[1]
시간대 UTC+1 ( 서머타임: UTC+2)
시장[2] 하우메 콜보니
(Jaume Collboni)
시의회 <colbgcolor=#ad1519><colcolor=#fff> 여당 10석
야당 11석
5석


4석


2석
홈페이지 파일:바르셀로나 시청 로고.svg
파일:bcncataluna.jpg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과 그 인근 건물들의 모습
1. 개요2. 역사
2.1. 중세2.2. 중세 이후
3. 인구4. 언어5. 관광 명소
5.1. 오버투어리즘
6. 교통7. 스포츠8. 문화9. 정치10. 이민11. 여담12. 그 외 사진13. 출신 인물14. 자매결연 지역
14.1. 우호 협력 도시
15. 창작물에서

[clearfix]

1. 개요


캡션

스페인 도시. 스페인 제2의 도시이자 가장 큰 항구 도시기도 하다. 지중해에 접해 있다. 동시에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 도시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최지였다.

관광업과 공업으로 유명하지만 교육, 의료, 상업, 기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비율상 더 많은 도시다. 스페인 최대 항구 도시답게 항구를 통해 여러 지중해 국가와 교역을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스페인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된 도시였고 좋은 기후와 경관으로 인한 관광업은 부가적인 것이었다. 최근에는 바이오, 나노 등 첨단 산업 육성에도 힘써 유럽판 실리콘밸리라 할 수 있는 일명 유럽의 바나나 벨트 지역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한다.

2. 역사

파일:바르셀로나 로마 1.jpg
파일:바셀로마.jpg
18세기 건물 내의 로마 신전 유적 로마 제국기 바르셀로나 (바르키노) 재현도
파일:바르셀로나 로마성.jpg
구도심에 남아있는 로마 시대 성벽 유적. 그 외에 건물에 포함된 수도교 유적 등도 있다.

고대 로마 시대 바르키노, 바르치노(Barcino)라는 소도시로 시작되었다. 이름이 과거 스페인 해안 지방을 정복했던 고대 카르타고의 바르카 가문과 유사해서 이 도시의 기원이 페니키아인과 연관되지 않았는가 가설이 많지만 아직 확실한 고고학적 증거가 나오지는 않았다. 바르셀로나 근교에는 타라코(오늘날의 타라고나)라는 대도시가 있었는데 이 도시가 부흥하면서 고대 바르키노 역시 포도주와 올리브유, 아마 등을 생산 수출하는 근교 마을 역할을 했다. 2세기 무렵 인구는 3,500여 명에서 5,000여 명으로 소도시 시장 수준이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바르셀로나에 요새(Castrum)를 건설하고 병영을 세웠는데 이 요새는 서고트족의 스페인 침공 이후부터 중요 거점으로 관리되기 시작하였다. 이 요새는 아랍인들과 베르베르인들의 서고트 왕국 정복과 뒤이은 레콩키스타 과정에서 바르셀로나 요새가 계속 보강되면서 타라고나를 밀어내고 점점 더 중요한 도시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2.1. 중세

파일:바르셀 중세.jpg
13-15세기에 걸쳐 세워진 바르셀로나 대성당
파일:바르셀로나성.jpg
구도심의 해양박물관 뒤편에 남아있는 14세기 성벽 유적

중세 시절에는 아랍인/베르베르인들이 서고트 왕국을 붕괴시키고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바르셀로나 역시 무슬림들의 지배를 받았다. 711년 이베리아 반도에 상륙한 무슬림 군대는 717년 바르셀로나로부터 항복을 받아낸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에서의 무슬림들의 지배는 그다지 길지는 못했는데 다시 샤를마뉴의 재정복으로 801년 바르셀로나 백작령이 성립되고, 이 백작령이 팽창하면서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바르셀로나 백작령은 명목상으로는 서프랑크 왕국의 카롤링거 왕조에 복속했지만 10세기 이후에는 지리적 요인 등등으로 사실상 반독립 상태가 된다.

11세기 초반 후우마이야 왕조가 붕괴되면서 이베리아 반도의 무슬림들은 여러 타이파국으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타이파국들은 서로 내전을 벌이느라 북부의 기독교 왕국들을 끌어들이는 일이 많았는데, 당시 바르셀로나 백작령은 카탈루냐 지역이 비옥한 이유로 인구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타이파국들 사이에 내전에 끼여들어 점차 영토를 넓히고 다른 타이파국들에게 보호비와 조공을 받는데 이르렀다. 이처럼 11세기 무슬림 스페인( 알안달루스)에서 기독교 스페인으로 유입된 금은 대단히 중요한 결과를 초래했다. 바르셀로나의 백작들은 이렇게 조공으로 받은 돈으로 이웃 백작령들의 영토를 매입하는데 사용하였고, 상술했듯이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지역 중심도시로 거듭났다. 또한 해안도시인 만큼 이탈리아 등과도 거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9세기에서 11세기까지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지역에 비해서도 심각하게 낙후되었던 카탈루냐 지방은 레콩키스타를 계기로 점점 부를 축적했다.

바르셀로나 백작령은 이후 카탈루냐 공국이 되는데 1137년부로 카탈루냐 공국의 라몬 베렝게르 4세가 아라곤 여왕 페트로닐라와 결혼하면서 바르셀로나는 아라곤 왕국의 도시가 되었다. 레콩키스타가 진행되고 아라곤 왕국 군대가 발렌시아 지방 발레아레스 제도를 마저 정복하면서 해당 지역 역시 카탈루냐어권으로 점차 편입되었다.

근세 시절에는 1469년 아라곤 왕국의 페란도 2세 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의 결혼이 이루어지며 동군연합이 이루어졌다. 이후 1492년 레콩키스타가 완수되고 이를 기념하여 이루어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대서양 항해가 이루어지면서 스페인 경제의 중심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전하였다. 한 때 스페인의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던 바르셀로나는 세비야가 대서양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로부터 은이 유입되는 기지가 되면서 스페인 내에서 중요성이 대폭 감소하였다. 18세기에 이르면 바르셀로나의 자치권 상당부분이 철폐되었다. 다만 바르셀로나 자체의 번영이 어디 간 것은 아니어서 12, 13세기를 거치며 급격히 발전한 바르셀로나의 상인 길드는 이 시기에도 계속 번영을 누렸다.

오히려 카스티야 레온 지방의 산업이 세파르딤 모리스코 추방과 신대륙에서 은이 유입되면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으로 자체적인 공업이 발전하지 못했던 것과 다르게 바르셀로나 일대는 스페인의 변방 지대 즈음으로 밀려난 덕분에 오히려 자체적인 산업이 지속적으로 더 발전할 수 있었다. 이미 중세 말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아 근세 형태의 은행이 세워진 바르셀로나는 금융업이 계속 융성하였고 이 당시 발전한 금융업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온다.

2.2. 중세 이후

파일:중세 바르셀.jpg
1563년에 묘사된 바르셀로나

근대에 접어든 19세기 스페인 왕국은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의 침공을 받고 이후 라틴 아메리카의 식민지들이 독립하면서 2류 국가로 전락하였다. 이 와중에 오히려 스페인의 북부 변방에 해당하는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방이 경제적으로 부흥하고 반면 근세 스페인 황금시대의 중심지였던 마드리드와 세비야는 변화된 시대 상황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낙후가 심화되었다.

카탈루냐의 중심도시 바르셀로나는 항구도시라는 이점에다가 주변에 갈탄 매장지가 많은 덕분에 또한 상술한 중세부터 발달한 금융업 등으로 스페인 다른 지역들과 다르게 서유럽의 산업혁명에 성공적으로 합류하였다. 19세기 중반 안토니 가우디가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

20세기 현대 들어선 스페인 내전 이후 바르셀로나 등을 중심으로 한 공화파가 패전하면서 프랑코 정권이 바르셀로나를 포함한 스페인 전역을 지배했다. 이 때문에 카탈루냐주에서 카탈루냐어 사용이 금지당하고 바르셀로나 민족주의가 탄압당했다. 그러나 카탈루냐는 프랑스와 지리적으로 인접한 위치였고 탄압 가운데에서도 교류가 활발하였기 때문에 프랑코 정권 하에서도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카탈루냐 민족주의는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1970년대 프랑코 사후 스페인의 군사독재가 끝나면서 카탈루냐어 사용금지 조치가 해제되었고, 지방자치가 확대되었으며 바르셀로나를 포함한 카탈루냐, 발렌시아 각 도시에서 카탈루냐어 지명 상당수가 공식적으로 복권되었다.

2017년 말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카탈루냐 독립운동이 다시 진행되었으나 같은 카탈루냐어권인 발렌시아 지방과 발레아레스 제도에서 분리 독립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결국 카탈루냐 자치정부 인사 상당수가 망명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런 카탈루냐 독립운동은 과거사 청산이나 민족 운동 이외에도 과거 프랑코 정권 시절의 탄압, 아니 그 이전부터 이어진 경제적 이유 즉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 중 하나인 카탈루냐가 왜 다른 못사는 지역을 퍼줘야 하는가 하는 불만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3.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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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언어

표준 카스티야어도 쓰긴 하지만[3] 지금도 바르셀로나에선 카탈루냐어가 제1언어다.[4] 길거리에서도 안내 표지판 같은 것들은 카탈루냐어가 가장 먼저 나오며[5], 그 외 영어나 스페인어가 혼용되는 편이다. 바르셀로나에는 그외에도 카타뇰(Catañol)이라는 카탈루냐어와 스페인어가 혼합된 형태의 언어가 쓰이는 경우가 자주 있다.

바르셀로나를 포함해 카탈루냐 사람들은 자기 지역 문화에 자존심이 강한 편이기 때문에 '카탈루냐어? 스페인어 사투리 아냐?' 같은 류의 말을 좋아하진 않는다. 극단적일 경우 카스티야어는 스페인어라기보단 그냥 마드리드가 포함된 카스티야 지방 사람들이 쓰는 언어 취급하기도 한다. 이런 연유로 당연히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어를 구사하면 그만큼 더 현지인들의 호감과 우대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카탈루냐어는 실제 스페인어(카스티야어)와 많이 다르다. 언어적으로는 차라리 프랑스 옥시타니 지방의 오크어와 더 유사하며, 실제로 카탈루냐 북부 아란(Aran) 지방에서 사용되는 오크어 방언(아란어)이 카탈루냐어, 스페인어와 함께 카탈루냐의 공식어로 지정되어 있다.

정서법에서 표준 카스티야어와 비교하면 카탈루냐어는 ñ를 안 쓰는 대신 ny로 풀어서 쓰고 표준 카스티야어에 없는 ç를 쓴다. ç는 프랑스어의 그것과 발음이 똑같다. 바르셀로나가 위치한 동부 카탈루냐 지역의 카탈루냐어는 모음 약화 현상이 많아서 바르셀로나(Barcelona)가 버르설로너(/bərsəˈɫonə/)로 발음되기도 한다.

5. 관광 명소

파일:바르셀로나 구도심 지도.jpg
항구에 접한 바르셀로나 구도심의 지도
파일:external/www.connect-123.com/90-La-Sagrada-Familia-Barcelona.jpg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비롯한 가우디의 건축을 품은 구도심 동북쪽의 신도심 일대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최대 관광도시로 일반관광뿐만 아니라 컨벤션·비즈니스 관광(MICE) 산업도 발달해있다. 2018년도 연간 방문객은 약 1,990만명이었다. 바르셀로나는 파리처럼 구도심과 신도심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어 다양한 시대를 느낄 수 있다.

주요 관광명소로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구엘 공원 등 가우디가 건축한 각종 건축물들[6], 스페인 광장(Plaça d'Espanya), 몬주익,[7] 카탈루냐 음악당, 리세우 극장, 카탈루냐 미술관(MNAC)[8], 호안 미로 미술관, 바르셀로나 동물원, 바르셀로나 현대 미술관,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9] 등이 있다. 뮤지엄 패스를 구입해 돌아볼 수도 있지만 몇군데 빼고는 규모가 작고 대중적인 곳이 아니라서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있고 정말 관심이 있지 않는 이상 추천하지 않는다.

축구 팬이라면 FC 바르셀로나의 홈 경기장인 캄 노우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관광 명소다. 대부분의 관광 명소는 바르셀로나를 관통하는 주도로 'Avenida Diagonal'(대각선 대로)를 중심으로 밀집되어 있다. 그 외에도 시간이 난다면 매일 보여주는 몬주익 분수쇼[10]같은 각종 쇼를 볼 수 있다. 또한 플라멩코로도 유명하다. 세비야, 마드리드와 함께 플라멩고 3대 도시로 불리고 있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멀리 산 위에 건물이 눈에 띄는데 티비다보 유원지(Parc d'Atraccions Tibidabo)라는 곳으로 일정에 여유가 있고 놀이기구 타는 것을 좋아한다면 가볼 만하다.

소위 '벙커'라고 불리는 분케르스 델 카르멜(Bunkers del Carmel)은 바르셀로나 야경명소 중 제일으로 꼽히는 장소이다. 또 동시에 바르셀로나 다른 관광지보다 훨씬 더 높은 한국인 비율을 느낄 수 있는데, 거의 절반 정도가 한국인일 때도 있다. 문제는 갈수록 여러 국가에서 관광객이 계속 느는데, 하필이면 야경명소로 유명하다보니 밤마다 소음으로 동네 주민들이 관광객들 보는 눈이 영 좋지 않다. 따라서 지금은 야간에는 들어갈수 없다.

스페인 어디서나 재래시장은 인기 관광지인데 바르셀로나에서는 보께리아 시장이 가장 인기가 많지만 이외의 다른 대형 시장에도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보께리아 시장이 관광지화 되면서 가성비가 그닥 좋지도 않고, 신선도도 일반적인 시장에 비해 오히려 더 떨어지기도 하니 잘 알아보고 가자. 참고로 화장실이 유료다.

바르셀로네타 해변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바르셀로나 해변은 일종의 파티장 비슷한 개념으로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수영보다는 선탠을 하러 가는 곳이고 깨끗한 물이나 좋은 경치를 원한다면 근교의 더 좋은 해변이 널렸다. 기차를 타고 근교 남쪽 타라고나, 시체스 해변으로 이동하거나 버스를 타고 북쪽의 '코스타 브라바'의 료렛 드 마르(Lloret De Mar) 혹은 토사 델 마르(Tossa Del Mar)로 이동하는 것도 추천한다. 해변 주변에 클럽들도 있다. 바르셀로나 해변이 국내에 누드 비치로 알려졌는데 유럽이나 호주의 경우 여성이 위쪽을 벗고 다니는 톱리스 비치는 누드 비치로 쳐주지 않는다.[11] 바르셀로나가 이비자나 팔마 데 마요르카와 가까운 것도 있고 페미니즘도 발달한 것도 있고 #[12] 해서 톱리스 선탠이 흔한 편이라고도 한다. 다만 해변 경치가 좋아서 사람들이 자주 사진을 찍는 장소나 지점에서는 톱리스 선탠을 피하는 편이다. 상술한 이유로 사진 찍기 좋은 자연 경관이 많은 코스타 브라바의 요렛 델 마르나 토레 델 마르는 톱리스 상태로 선탠하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이러한 연유로 한국인 배낭여행객들의 경우 여름에 바르셀로나에 갔다가 예기치 못하게 일정이 대폭 변경되는 경우가 있으니 여행 여정을 짜기 앞서서 고려해놓고 가자.

관광객을 노리는 소매치기가 있는 편으로, 특히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에서 고개 들고 성당을 보며 넋이 나간 관광객들이 소매치기의 주요 먹잇감이라는 모양. 다만 소매치기 정도만 주의하면 치안 자체는 안전한 편으로 밤 늦게까지 관광객들이 별 걱정없이 돌아다닌다.

파일:고틱 구역.webp
중세 원도심인 고틱 구역의 거리

로마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적 유물을 품고 있는 대표적인 역사 도시로 특히 이 지방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건축한 건축물들로 유명하다. 오로지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기 위해 전 세계 건축학도들이 매년 성지 순례하듯 몰려온다. 대표적인 것이 무려 100년동안 짓고도 아직도 완성하지 못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성가족성당)[13]이다. 이외에 바르셀로나 대성당[14] 또한 유명하다.

마드리드, 세비야와 비교할 때 근교 여행은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지로나같은 곳은 구시가지가 굉장히 분위기 있고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라 가볼 만 하다. 또한 시체스라는 곳 역시 바르셀로나에서 버스나 트램 같은 기차만 타면 금방 갈 수 있으며 바다가 아름답기에 시간이 나면 추천한다. 마찬가지로 근교에 로마 시대 원형 극장 유적 등으로 유명한 타라고나 시가 있다. 로마 시대에는 타라고나가 대도시이고 바르셀로나가 위성도시 급이었는데 중세 무어인들의 침공 이후 바르셀로나 백작령이 성립되면서 입장이 뒤바뀌었다. 고대 로마에 관심있다면 타라고나도 방문해보자.

배낭여행객들은 숙소를 잡을 때 보통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오스탈(Hostal)들이 많은 람블라스 거리에 잡는 편인데 람블라스 거리가 관광지가 밀집해있긴 해도 사람들이 밤새 돌아다니는데다 좀도둑도 많고 거리도 좀 지저분한 편이다. 이 점은 람블라스 거리와 인접한데다 고급 호텔들이 밀집한 카탈루냐 광장도 마찬가지이다. 람블라스에서 도보 거리로 근처의 자우메 I(Jaume I) 지하철 역이 있는데 그 쪽 호텔들이 훨씬 더 깨끗하고 조용한데다 도둑도 적다. 총알이 좀 되거나 비수기에 가면 하우메 역 근처의 숙소들을 눈여겨보자. 바르셀로나 중심 기차역에 해당하는 산츠역은 다른 도시나 공항으로 이동할 때는 좋아도 다른 관광지로 도보 여행하기는 좀 그렇다.

보통 국내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면 당일치기 위주로 명소만 보고 돌아다니는 일이 많지만, 여행 스킬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바르셀로나 같은 스페인 해변 도시의 경우는 해변에서 며칠씩 선탠하고 도보로 느긋하게 돌아다니는 방식으로 여행하는 경우도 추천된다.[15] 바르셀로나가 미국에서 유럽으로 처음 배낭 여행을 가는 초심자들에게 추천되는 장소인 이유도 바르셀로나 시 자체가 볼거리도 많고 관광 명소들이 도보 거리로 이동 가능한데다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16] 시간 여유가 있다면, 바르셀로나 여행 일정을 잡을 땐 짧아도 3일에서 보통 일주일 정도로 넉넉하게 잡는 것을 추천한다.

주변 도시 중 관광으로 유명한 곳으로는 지로나나 몬세라트가 있다.

5.1. 오버투어리즘

유럽에서 베네치아와 함께 오버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는 대표적인 도시다.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오면서 일부 관광객들이 민폐 행위와 소음 문제 등을 야기한 것. 오죽하면 2010년대 중반 난민 문제로 유럽이 한창 시끄러울 당시엔 '난민은 환영한다. 허나 관광객은 집에 가라.'라는 난민 환영 구호조차 나돌았을 지경이었다.

물론 통제가 안 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관광객 수입을 결코 무시할 순 없기에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관광객이 아예 안 오는 것이 아니라 관광객 증가로 오른 집값을 정부에서 눈치껏 통제해 주는 것이었다. 관광업이 활기를 띄면서 지역 경기도 살아났지만 문제는 건물 임대료도 폭발적으로 올라서 건물주만 쾌재를 부르고 일부 서민들은 오히려 근교 지역으로 내몰린다는 것. 2016년~2017년 일부 지역의 경우 1년 만에 같은 시즌 기준으로 숙박비가 80% 넘게 오르기도 했다는데 이 정도면 도시에 거주하면서 자가주택이 없는 시민들이 느끼는 압박은 엄청난 수준일 것이다.

2017년 하반기에는 카탈루냐 독립운동이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오버투어리즘 이슈는 묻힌 상황이었고 그래도 여전히 시한폭탄 같은 상황이었는데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유행하며 관광객이 뚝 끊겨 반강제로 소원이 성취되었다. 물론 바르셀로나 사람들도 이 정도로 끊기길 원한 건 아니었으니 관광객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주장까지 있었으나, 2022년 위드 코로나 이후 엔데믹 시대에 접어들며 각종 제한이 풀려 다시 관광객이 늘고 있는 추세인데 2022년 4월 이후에는 예년 수준으로 폭증해서 다시금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거론되는 등 파리 날리던 건 옛날 얘기가 되었다.

2024년 7월 6일, 3,000여 명의 시위대가 관광 반대 시위를 열면서 일부 인원이 식당 야외 좌석에 앉아있던 관광객들을 향해 물총을 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 #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얼굴에 알지 못하는 액체를 분사당하는 것은 개인에 따라 충분히 공포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몇몇 나라에서는 물총으로 사람을 쏘는 행위가 처벌 대상이다. 애초에 관광객인지 현지 주민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운데다, 항의할거면 정부에 항의해야지 돈 쓰러 온 관광객이 죄가 있는게 아니기도 하다.

6. 교통

7. 스포츠

한국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한 것으로 유명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스페인내 지역 감정이 드러나기도 했다. 대회 기간 내내 바르셀로나 주경기장과 공식 시설에는 스페인 국기가 아니라 카탈루냐기가 휘날렸다. 스페인 중앙 정부와 상관없는 카탈루냐의 자체 개최에 가까웠다.[17] 그나마 남아공 월드컵 우승으로 바르셀로나에서도 스페인 국기가 휘날리는 광경을 볼 수 있게 되었다.[18]

스페인 프로 축구 클럽인 FC 바르셀로나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는데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CF 마드리드 연고 팀과의 강한 라이벌 의식은 이러한 지역 감정에 편승한 바가 크다. 특히 바르사 레알과의 더비 매치 엘 클라시코라고 불리며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킨다.[19] FC 바르셀로나의 경기장인 캄 노우는 105,000명 수용으로 (유럽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는 11번째로 큰 축구장이고 가장 큰 축구전용구장이어서 일종의 관광 명소로 각인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FC 바르셀로나 이외에도 RCD 에스파뇰의 연고지이기도 한데, 에스파뇰의 경우에는 바르셀로나에 거주하는 카스티야 출신들을 위한 클럽으로 카탈루냐 민족주의를 대표하기도 하는 FC 바르셀로나와의 데르비 바르셀루니, 일명 '카탈루냐 더비' 경기 또한 엘 클라시코에 비견될 정도로 뜨겁다.

다만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주 정부가 투우를 금지했기 때문에 투우는 구경할 수 없고 투우 경기장이 있던 자리에 경기장과 각종 시설들만 남아 있다. 그리고 스페인 야구 리그인 '디비시온 데 오노르'의 야구팀을 운영해 참가하고 있다.[20] FC 바르셀로나 산하의 이 야구 팀은 2011년 스페인의 전국적인 경제 위기의 여파로 해산되고 독자적으로 운영 중에 있지만 재정 사정으로 인해 국제 대회 참가를 할 수 없어 그전보다 못한 실정이다. 아무래도 야구 불모지인 스페인의 상황상 어쩔 수 없는 듯.

포뮬러 1 스페인 그랑프리의 개최 서킷이자 각종 테스트 장소로 유명한 카탈루냐 서킷 또한 바르셀로나 근방에 위치해 있다.

놀랍게도 2030 동계올림픽 개최 신청을 했다(바르셀로나 & 피레네- 프랑스/ 안도라 공동 개최). 바르셀로나에서 북쪽으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해발 2,000m의 피레네산맥 리조트에 여러 스키장이 있다. 하지만 스페인의 피레네 지역은 겨울철 연평균 기온이 영상이라서, 그 보다 북쪽의 프랑스/안도라 동계 스포츠 시설에서 대회를 나누어 치르겠다는 복안이다.

8. 문화

GSMA가 주최하는 세계 최대 메이저 모바일 박람회 MWC가 매년 2월 말에서 3월 초 사이에 2000년대 중반부터 열리기 시작했고 2023년까지 확정되어 있다. 그야말로 전 세계 모바일 관계자들과 기자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온 도시가 가득 찬다. 2017년에 참가자가 10만명을 넘어섰다. 여행객이라면 반드시 피해야 하는 시기. 항공권 및 호텔 모두 연중 최고로 비싸다.

그리고 세계 영화사에서 비웃음을 받는 일화가 바로 이곳과 관련있다. 바르셀로나 국제 영화제라는 행사인데 1989년 2회 영화제에서는 자그마치 2억 달러나 되는 예산[21]을 써가며 개최했다가 욕만 무진장 먹고 결국 흐지부지되면서 세계 영화제 역사상 가장 돈지랄한 경우로 두고두고 까인다. 돈만 많이 들여서 까인 것이 아니라 이렇게 돈만 펑펑 들이고도 정작 미국 유럽 영화와 그나마 오스트레일리아 영화가 초청, 상영되면서 국제 영화제라는 이름이 무색했고 초청작들도 워낙에 듣보잡에 수준 이하 영화들이 꽤나 많았다. 거기에 바르셀로나 시에서 영화인들을 무시하면서 정치인들이 무모하게 진행하면서 자국 영화인들이 보이콧해버리는 통에 엄청난 손해만 보았다. 이것을 무리하게 진행한 시 정치인들 상당수는 다음 선거에 낙선된다.

1989년 당시 국내 영화 월간지 로드쇼에서 취재하며 돈지랄하고 수준 미달 국제 영화제로서 어느 것도 볼 것 없다고 악평한 것이 고작이다. 결국 영화계의 반발과 여론의 비난,정치적 공세까지 들어가 영화제는 사라졌다가 2001년에 다시 새롭게 바르셀로나 국제영화제(Barcelona International Auteur Film Festival)로 시작하여 2019년 19회까지 매해 열리고 있다. 80년대 그 영화제랑 상관없다고 밝히고 있으며 그때랑 달리 예산도 엄청 줄이고 영화인들을 초청하고 감수받고 영화인들을 간부직에 앉히면서 그럭저럭 잘 진행하고 있다.

유럽에서 몇 안 되는 아케이드 게임 전문 개발사였던 가엘코(Gaelco)라는 게임 회사[22]가 이곳에 소재하고 있다. 지금은 아케이드 게임 사업 일선에서 철수한 지 오래되었고 '래디컬 다트'라는 다트 기계만 개발 관리하고 있는 듯하다.

피라 바르셀로나라는 전시장이 있어서 MICE 산업도 강세이다.

전통 공연 중에 카스텔례르스(castellers)라는게 있는데 인간탑쌓기라고 보면 이해가 빠를 듯 하다. 팀별로 약 50~100명 정도가 참여하여 보다 높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팀이 높은 점수를 받는데, 가장 아래에는 힘 좋은 사람들이[23], 가장 높은 곳에는 작은 어린이가 올라간다.[24] 도시를 구경하다 보면 이래저래 몇번은 사진 등으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가끔씩 광장에서 경연대회를 하니 기회가 되면 꼭 보자.

매년 6월초 스페인의 대표적인 음악 페스티벌이라 할 수 있는 프리마베라 사운드가 해변 근처의 팍델포럼에서 열린다. 타 유명 음악 페스티벌에 비해 대중성보다는 다양한 장르의 신흥 뮤지션들이나 국내에서는 보기 어려운 거물들로 라인업을 꾸리는 편이라 마이너 장르를 좋아하는 힙스터들이나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음악 페스티벌로 꼽힌다.

9. 정치

파일:바르셀로나 시청 로고.svg
바르셀로나 시의회의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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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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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 성향이 강하다. 오죽하면 스페인 전국구 우파 정당인 인민당이 제대로 된 명함도 못내밀 정도. 다만 좌익 내에서도 성향들은 꽤 다양한 편인데, 카탈루냐 하면 분리주의가 유명하지만[25] 이것과 별개로 전세계 아나키스트들의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있어왔던 아나키스트 주도 혁명들 중 가장 규모와 파급력도 컸고 조지 오웰 카탈로니아 찬가를 통해 국제 자유주의 좌파에서 자주 거론되는 전국 노동 연맹의 스페인 내전 중 사회 혁명이 바로 바르셀로나와 그 일대를 중심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금도 바르셀로나에서는 선거, 정부, 의회 등으로 수면에 드러나는 정치 세력은 카탈루냐 민족주의 세력이나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면모를 보이지만, 실제 거리에서는 아나키스트들 또한 만만치 않은 세력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에도 아나키스트들이 빈 집이나 돈놀이 하려고 내놓은 부동산을 기습 점령해 주민 센터나 자치 회관으로 바꿔 놓은 것을 퇴거시키려고 경찰을 보내 서로 충돌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페미니즘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인물은 현재 여성 시장인 아다 콜라우. 선거철이 되면 도시 곳곳에서 페미니즘과 관련된 포스터, 깃발, 그래피티를 발견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여성 인권이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2019년 들어 바르셀로나 뿐만 아니라 스페인 전역에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정당이 쏟아져나왔다.

10. 이민

바르셀로나는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편으로, 인구 20% 이상이 외국인이다.

예전부터 바르셀로나에는 루마니아 출신 이민자들이 많은 편이었다. 실제 소매업 등 서비스업 종사자들하고 친해져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자기 루마니아 출신이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꽤 된다.[26] 1990년대에 동구권 붕괴로 루마니아 및 유고 내전으로 난민으로 전락한 구 유고슬라비아, 특히 스페인인들처럼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출신들이 바르셀로나에 굉장히 많이 정착했다. 루마니아계 중에는 스페인 국적을 아예 취득하고 귀화한 경우도 많고 스페인 경제 위기 이후 다시 독일이나 영국 등으로 재이민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의외라면 의외로 남아시아인들도 상당히 볼 수 있다. 람블라스 거리의 소매상 상당수가 제과점을 제외하면 대부분 파키스탄인, 인도인, 네팔인 판매원들[27]을 두고 있다. 중남미계 이민자들이 많은 마드리드와 달리 바르셀로나에서는 인도, 파키스탄 사람들이 더 눈에 많이 띈다. 이들은 더운 날씨에 에어컨 없는 뜨거운 주방에서도 잘 견디고 글을 읽고 쓰는 것은 서툴지만 말을 빨리 배우기 때문이다.[28] 힌디어- 우르두어, 펀자브어를 할 줄 안다면 다른 관광객들 몰래 더 깎아달라고 흥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국 사람들이 힌디/우르두어를 하면 신기하다고 할인해주는 경우도 있다.

남아시아 북아프리카 출신들이 많이 이주해서 이슬람 신도들도 있지만, 마드리드와 다르게 대형 모스크는 없는 도시이다.
국적별 이민 인구 통계2019년 기준
이탈리아 36,276
중국 21,658
파키스탄 20,643
프랑스 16,940
모로코 14,418
콜롬비아 12,290
온두라스 11,744
페루 10,558
베네수엘라 10,185

11. 여담

12. 그 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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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바르셀로나3.jpg

파일:external/2015.phpconference.es/barcelona-spain-1.jpg

파일:external/www.mcgill.ca/barcelona-1.jpg

13. 출신 인물

14. 자매결연 지역

14.1. 우호 협력 도시

15. 창작물에서



[1] 광역인구 기준 5,658,472명 [2] 시의원을 겸직한다. [3] 제2언어 개념으로 배우기 때문에 대부분의 바르셀로나 사람들도 카스티야어를 구사할 줄은 안다. [4] 사실 스페인 자체가 공식 언어가 여러개인 나라로, 크게 '스페인어(카스티야어)', '카탈루냐어', '바스크어', '갈리시아어'를 쓰는 네 지역으로 나뉜다. 사족으로 카탈루냐어는 카탈루냐 지역뿐 아니라 발레아레스 제도, 발렌시아, 안도라 공국, 남부 프랑스 일부 지역에서도 쓰고 있다. 발렌시아에는 발렌시아어(발렌시아노)라는 언어가 따로 있기는 하지만 카탈루냐어와 큰 차이는 없다. 발렌시아는 정치적 이유로 카탈루냐 독립운동에 찬동하지 않고 카탈루냐 민족주의에도 냉담한데 굳이 발렌시아어를 따로 정의하는 이유도 이와 관련된다. [5] FC 바르셀로나 유니폼 팔뚝에 있는 TV3는 카탈루냐 지역에서 카탈루냐어로 방송하는 방송국이다. [6] 대표적인 건축물 카사 밀라는 대부분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고 그 주변에 있는 까사 바트요 또한 접근성도 좋고 까사 밀라에서 가까워서 많이들 방문하는 편이다. 람블라스 거리의 구엘 궁전도 접근성이 좋다 [7] 실제 공성전이 벌어졌던 성으로 탄흔 등도 남아있다. 몬주익 성은 몬주익 언덕 위에 있는데 걸어 올라가면 진이 다 빠지므로 괜히 패기부리지 말고 몬주익 성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체력이 있고 미술을 좋아한다면 몬주익 성까지 버스로 올라가서 내려오는 길에 걸어서 호안 미로 미술관과 까탈루냐 미술관을 방문하는 코스도 추천할 만하다. [8] 내부에 소장품이 굉장히 많은데 티켓을 구매하면 다음날까지 재입장이 가능하다. 별도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는 전망대도 볼 만하다. [9] 큐비즘에 빠져들기 이전 시기의 그림이 주로 많다. 큐비즘 작품44으로는 Las Meninas 연작이 있다. [10] 올림픽 경기장이 있는 몬주익 언덕 시작점에 있다. 1992년 올림픽 때 처음 보인 뒤로 계속되고 있다. 다만 가뭄이 심할 경우 중지하는 경우도 있고 동절기와 하절기마다 시간이 다르니 유의. [11] 바르셀로나에는 누드 비치가 두 곳이 있는데 W 호텔 근처 산 세바스티안 비치는 젊은 여성들이 톱리스 선탠을 많이 하기로 유명한 곳이고, 완전 누드로 선탠하는 경우는 일부에 불과하다. 북쪽의 마르베야 비치의 일부 누드 구역은 선탠하는 사람이 거의 게이이며 해변 밖 외부에서 아예 쳐다보기 힘들게 되어있다. 호모포비아 성향이 있거나 이런 쪽에 예민한 경우 트라우마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혹여나 방문시 주의하자. 마르베야 누드비치 옆으로 길게 산책로가 이어져 있으며 절벽으로 분리되어 있다. 산책로에서는 벗고 다니지 않는다. 이 마르베야 해변 구역은 게이나 레즈비언이 많아서 방문한 사람들이 직접 블로그 포스팅 등에는 올리지 못하고 돌려말하는 편이다. [12] 한국의 페미니즘 사회보수주의 성향이 강한 것과 대조적으로 유럽의 페미니즘은 이런 부분과 상극이다. 보통 유럽 다른 지역에서도 해변에서의 톱리스는 흔한 지역이더라도 실내 수영장에서의 톱리스는 극히 보기 힘들다는데 이런 부분에서도 법으로 제재를 못하게 완전 허용하는 방식으로 통과시켰다. [13]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 방문하려면 예약부터 하는 것이 좋다. 대성당 블럭을 따라 길게 늘어선 줄을 제치고 예약한 시간에 곧바로 입장할 수 있다. 유명한 건축물인 만큼 대기 줄이 굉장히 길어서 예약없이 방문했다가 대성당 담벼락에서만 하염없이 기다릴 수도 있다. [14] 대성당 앞에는 자그마한 광장이 있어서 매주 토요일마다 카탈루냐 전통 춤 공연을 하고 시장이 열리기도 한다. 독특한 골동품을 좋아한다면 대성당에 방문하는 김에 간단히 둘러봐도 좋다. 그 외의 시간에도 길거리 연주가 등이 많다. [15] 다른 유럽 국가 출신 관광객들이 스페인 바르셀로나나 말라가, 베니도름, 도노스티아 및 발레아레스 제도 카나리아 제도에서 등에서 이런 식으로 여행한다. [16] 다시 말하면 바르셀로나는 가이드 투어를 돌기에 적합한 도시가 아닐 수도 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은 버스나 자가용으로 이동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가이드 투어가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도보 여행이 주가 되는 바르셀로나는 여정을 다르게 잡는 것이 좋다. [17] 사실 공식적으로도 올림픽은 '국가' 개최가 아니라 '도시'개최이다. [18] 물론 우승 당시 경기 종료 후 시상 및 셀레브레이션 자리에서 카를레스 푸욜, 차비 에르난데스 등 카탈루냐의 상징격인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스페인 국기 대신 카탈루냐 기를 두르고 경기장을 누비기도 했다. [19] 극단적인 사람들의 경우 엘 클라시코는 자국 내 리그 팀 간의 경기라기보단 거의 한일전 수준의 국가 간 A매치다. 특히 요한 크루이프는 1970년대 라리가 데뷔전에서 독재자 프랑코가 관전하는 가운데 레알을 5:0으로 완벽히 꺾어내며 지금도 신화적 존재로 남아있다. 조국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제의는 매몰차게 거절하면서도 정식 국가 대표팀도 아닌 카탈루냐 대표팀 감독 제의는 냉큼 수용했다. [20] CB 바르셀로나가 에스트로스 발렌시아를 최종스코어 3-1로 꺾고 2012년 디비시온 데 오노르 디펜딩 챔피언에 오른다. [21] 그 시절 한국 돈으로 1,800억원이지만 당연히 지금으로 치자면 5,000억원 이상 값어치다. 칸 영화제조차도 2010년대 와서 1회 개최 예산으로 1,000억원이 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나게 돈 쓴거다. 더 예시로 들자면 한국 부산국제영화제 예산도 100억원이 안 넘는다. [22] 각종 독특한 게임을 만들었지만 거의 유럽이나 미국에서만 볼 수 있었다. 동양권에서는 일본에서 '시그마'( 너구리 게임 개발한 곳)가 몇개 수입한 것이 전부다. 한국에서도 이 회사의 오락실 게임이 몇몇 가동되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썬더 후프 2 스트라이크 백이라는 런앤건 게임.(전작은 덤프되었는데 아직 MAME로 덤프되지는 못했다) 그 외에도 같은 회사에서 제작된 비치 발리볼 게임이 소수 가동된 적이 있다. [23] 하중이 더해질 수록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땀을 쥐게 한다. [24] 높이가 상당해서 때때로 무서워서 울기도 한다. [25] 카탈루냐 자체가 스페인에서 완전 독립하고자 하는 열망이 상당히 강한 곳으로, 바르셀로나는 이런 카탈루냐의 사실상 수도로 여겨지고 있다. [26] 루마니아어, 스페인어, 카탈루냐어는 같은 로망스어 계열이라서 루마니아 사람 입장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기 어렵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루마니아 출신 경제 난민들이 스페인으로 많이 이동했다. [27] 파키스탄 출신 중에는 원래 아프가니스탄에서 살다가 파키스탄으로 넘어온 아프간 난민 출신도 꽤 많다. [28] 기본적으로 영어, 스페인어, 카탈루냐어 모두 다 해야 한다. [29] 맥주를 예로 들면 바르셀로나의 Estrella Damm vs 마드리드의 Mahou 5 Estrellas [30] 플라멩코 공연을 보며 술과 안주를 즐길 수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