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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저온/대한민국/2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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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1900년대
2.1. 1900년(고종 37년, 광무 4년)2.2. 1901년(고종 38년, 광무 5년)2.3. 1902년(고종 39년, 광무 6년)2.4. 1903년(고종 40년, 광무 7년)2.5. 1904년(고종 41년, 광무 8년)2.6. 1905년(고종 42년, 광무 9년)2.7. 1906년(고종 43년, 광무 10년)2.8. 1907년(순종 1년, 융희 원년)2.9. 1908년(순종 2년, 융희 2년)2.10. 1909년(순종 3년, 융희 3년)
3. 1910년대4. 1920년대5. 1930년대6. 1940년대7. 1950년대8. 1960년대9. 1970년대10. 1980년대11. 1990년대

1. 개요

20세기 한반도에 찾아온 이상 저온을 정리한 문서.

2. 1900년대

1900년대 1890년대처럼 1월 한파도 강한 해도 있지만 오히려 고온이 잦았다. 반면 2월 중심으로 특히 강한 한파를 보인 해가 많았으며[1], 비교적 더운 여름이 많았던 1880~ 1890년대에 비해 서늘한 여름이 많아졌다.[2] 8월 하순에 늦더위가 강했던 1900년 8월 중심으로 엄청난 폭염을 보였던 1901년과는 달리 1902년, 1905년이 특히 서늘했고 나머지 해들도 폭염이 있어도 심하지 않거나 반짝 수준에 그쳤다. 또한 6월의 저온 현상이 심각했다.

당시 조선에서 처음으로 공식 기상관측이 시작된 연대이다. 지점별 공식 기상관측 시작일은 다음과 같다.
지역 관측 개시 데이터상 시작[3] 결측 기록
목포 1904년 3월 25일[4] 1906년 1월 1일 1904년 4월 8일 ~ 1905년 12월 31일
부산 1904년 3월 26일[5] 1904년 4월 9일 -
인천 1904년 4월 9일[6] 1904년 4월 9일 1950년 6월 1일 ~ 1951년 9월 30일
원산 1904년 4월 10일[7] ? ?
신의주[8] 1904년 5월 1일 ? ?
성진 1905년 5월 13일 ? ?
남포[9] 1906년 8월 1일 ? ?
평양 1907년 1월 1일 ? ?
대구 1907년 1월 7일[10] 1909년 1월 1일 1907년 1월 31일 ~ 1908년 12월 31일
서울 1907년 10월 1일 1907년 10월 1일 1950년 9월 1일 ~ 1953년 11월 30일
강릉 1911년 10월 3일 1912년 1월 1일 1950년 ~ 1950년 10월 31일
1951년 1월 1일 ~ 1951년 8월 31일

2.1. 1900년[11](고종 37년, 광무 4년)

1월 한파가 매우 기록적인 해이다. 상순과 중순도 매우 추웠고 하순이 시작되며 기온이 오른 후 내려간 끝에 1월 26일에 인천 -17.5°C, 부산 -13.3°C를 기록해 이는 19세기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한파였다. 그리고 여름은 평범했으나 8월 늦더위가 역대급으로 강력했고, 가을철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낮고 12월에는 초중순까지 1월의 장기 한파를 연상시키듯 춥다가 하순부터 기온이 올랐다.

2.2. 1901년(고종 38년, 광무 5년)

장기 한파 전년도 1월과 달리 이해 1월은 이상 고온이었으나 2월 상순 한파가 강했고, 2015년을 능가하는 역대급 가뭄을 보였고 서울연 강수량525mm에 불과했으며[14] 인천도 연 강수량이 537.9mm로 역대 가장 적었다. 이 심각한 가뭄 때문인지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폭염과 이상 고온이 강했다. 구한말 기간 중 1890년, 1894년과 함께 고온 현상이 잦았던 해이다. 한편 부산에서는 2월 강수량이 기록되지 않았다. 당시 역사에서 근대화고 뭐고 이전에 가뭄으로 인한 피해부터 신경써야 했을 듯 싶다. 그래도 부산은 4~8월에 비가 어느 정도 왔다.

2.3. 1902년(고종 39년, 광무 6년)

1월 한파가 꽤 강했고 1905년, 1980년을 능가하는 20세기에서 가장 쌀쌀한 여름을 보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나[15] 늦더위가 매우 심해서 가을~ 12월 전체가 엄청난 고온이었으며 이는 현대 기준으로도 초이상 고온이라는 말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기온이 매우 높았다.[16] 즉 상반기 편차가 매우 낮고 하반기 편차가 매우 높은, 극과 극의 날씨를 보였다.[17] 기온 분포가 8월, 12월을 제외하면 여러모로 100년 후인 2002년과 정반대이다.

2.4. 1903년(고종 40년, 광무 7년)

1년 동안 이상 저온이 고르게 분포해 있는 해이다.

2.5. 1904년(고종 41년, 광무 8년)

이해 1월엄청난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21] 또한 이해에 부산, 인천, 목포, 원산에서 한반도 최초의 공식 기상 관측이 시작되었다.

2.6. 1905년(고종 42년, 광무 9년)

1월 1898년, 2020년급으로 고온이 매우 강했으나 여름은 앞서 서술한 1902년급으로 매우 쌀쌀했다.[22]

2.7. 1906년(고종 43년, 광무 10년)

1월 9~ 10일 부산에서 역대 최악의 폭우가 기록되어 있는 해이다.

2.8. 1907년(순종 1년, 융희 원년)

서울, 대구, 평양에서 공식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27]

2.9. 1908년(순종 2년, 융희 2년)

1월은 당시 기준으로 평년보다 따뜻했으나 2월 한파가 매우 강했다. 11월 저온이 강했고 5월 7~ 8월은 평년보다 1℃ 정도 낮았으며 3~ 4월, 6월, 9월도 약간 낮았다. 대체로 극단적인 저온은 없을지언정 고르게 저온이 이어졌던 해이다.

2.10. 1909년(순종 3년, 융희 3년)

1월은 비교적 따뜻했으나 2월 한파가 강해서 매우 추웠다. 3월도 마찬가지로 추위가 남아있어서 평년보다 1.5℃ 낮았고 4월에 접어들어 평년 기온을 회복하였지만 5월 들어서서 다시 평년보다 다소 낮아졌고 나머지 달들은 모두 평범하거나 근소하게 낮았지만 10월은 유의미한 저온이 찾아왔고 12월은 상당히 추워서 월평균 기온 -3.4℃를 기록했다. 특이하게도 1월보다 2월 12월의 월평균 기온이 더 낮았다.

3. 1910년대

1910년대에는 대한민국 기상 관측 이래 연평균 기온이 가장 낮은 연대였다. 특히 1912년, 1913년, 1917년이 기록적으로 낮았다. 기상 관측 이후 모든 연대를 통틀어 저온이 강력했던 해가 가장 많아서, 1910년대 저온 = 2010년대 중반~ 2020년대 초반 고온 수준이라는 말도 나왔다. 1910년대 초~중반에는 한여름에도 서울에서 이렇다 할 폭염 기록은 없었으나 정반대로 대구는 이 시기에도 36~39℃를 넘나드는 등 매우 더웠다. 또한 굉장히 쌀쌀한 5월이 많았는데, 이는 이상 고온이 잦은 2010년대 5월과 정반대이다. 이로 인해 4-5월 평균기온 격차가 3-4월 및 5-6월에 비해 적은 기형적인 기온 분포를 보인 해가 많았다. 그나마 1914년 연평균이 12.029°C로 현대와 비슷하다.

3.1. 1910년(순종 4년, 융희 4년)

1월 3년 연속으로 따뜻했지만 1월 30일~ 2월에 큰 한파가 와서 2월 1월보다도 낮으며 1917년 2월 수준이었다. ~ 여름에는 일부 고온 현상이 있었지만 저온 현상이 더욱 강해 10월까지 월평균 기온이 꾸준히 낮았다. 다행히도 11월은 당시 치고는 평년과 비슷했고 12월 1967년 12월 수준의 매우 낮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했다. 여름철 기온 편차가 1912년, 1913년보다 심하지 않았지만 나머지 달들의 저온이 강력해서 서울 연평균 기온이 10.412℃로 역대 최저 5위를 기록해 공통 기록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3.2. 1911년

1월 한파가 꽤 강했고 2~ 3월은 평년보다 약간 높았지만 4월 꽃샘추위가 강한 편이었다. 5월도 나름대로 낮았으며, 8월은 그럭저럭 여름 날씨를 보였지만 7월도 꽤 저온이었고 10월 저온이 특히 강력했으며 12월도 상당히 낮은 축에 속했다. 다만 3월 8월, 9월, 11월 등은 그럭저럭 높아서 서울의 연평균 기온이 10.654℃로 전체로는 최저 8위이며 1910년대에서는 최저 6위에 속했다. 한편, 이해 10월 2일부터 강릉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되었다.[57] 여담으로 서울의 강수일수가 가장 많았던 해이다.[58]

3.3. 1912년

서울 월평균 기온 기준으로, 가을철 9~ 11월은 아예 전체가 하위 1위로 뒤덮여있는 해이다. 특히 4월부터 시작된 이상 저온 6~ 7월에 약해졌으나 이듬해 말인 1913년 12월까지 매우 길게 이어졌으며 1914년 1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저온이 누그러졌다. 이 영향으로 1912년 서울 연평균 기온 10.123℃로 역대 네 번째로 낮았다.[68]

특히 1912년 9월~1913년 8월에는 저온 현상이 매우 잦아 이 기간동안 서울 연평균기온은 9.3°C 로 연속 12개월 역대 최하위이다.

3.4. 1913년

저온 현상이 매우 잦아 서울의 연평균 기온이 10.086℃로 역대 세 번째로 낮았다.[81] 또한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단 하루도 폭염일수(최고 기온 33℃ 이상)가 기록되지 않은 유일한 해이다.[82][83] 월별로 고온 현상이 있어도 저온 현상이 더욱 강해 연평균 기온이 매우 낮은 것이 특히나 놀라운 부분이다.[84] 또한 고온이 적었지만 매우 강하게 온 특징이 있어서 기온 상승/하강 폭이 매우 큰 해이다.

3.5. 1914년

저온이 매우 강했던 1910년대에서 고온이 힘을 발했으며 현대 기준으로 가장 정상적인 기온을 보인 해이다. 당시 기준으로는 월평균 기온이 평년보다 낮은달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이해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12.029℃ 2011년과 같고 1907~2022년 연평균기온보다도 조금 높아 1910년대는 물론 일제강점기 중에서 가장 높다.[120] 이해는 서울에서도 7월에 35.0℃[121]의 무더위가 있었으며 6월에도 35.0℃[122] 기록이 있어 2020년 6월 하순을 연상케 했다. 일부 고온이나 저온 현상은 있었지만 12월까지 그럭저럭 수준에 그쳤다.

3.6. 1915년

서울 기준으로 7월은 그럭저럭 월평균 기온이 높았고 10월부터는 그럭저럭 따뜻해져서 12월은 현대 기준으로도 이상 고온에 속했다.[124][125] 그러나 나머지 달은 이상 저온이 잦았다. 1월의 경우 상순에는 따뜻했지만 중순 전반에 시베리아 고기압의 급확장으로 엄청난 한파가 일어났고 중순 후반에 추위가 풀렸지만 하순일부에 추위가 다시 나타나고 해서 기온의 변화가 컸다. 2월은 비교적 추웠으며 3~ 4월까지 역대급 꽃샘추위 등으로 상반기가 1931년과 유사했다.[126]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10.898℃로 기상 관측 역대 최저 10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당시 기준으로는 조금만 낮다.

3.7. 1916년

1915~ 1916년 겨울은 매우 따뜻해서 서울 연평균 기온이 10.911℃로 전체로는 최저 11위이며 의외로 1910년대 치고는 다소 높고 당시 기준으로도 비교적 평년 수준의 기온을 보였다. 그러나 1~ 2월 이상 고온을 보여서 그런 것이며 3월부터 본격적으로 낮아지기 시작해서 저온 현상 1910년, 1912년, 1913년, 1917년급으로 나름 강했다. 그나마 4월은 평년 수준이었으며, 8월은 그럭저럭 여름의 날씨를 보였다. 11~ 12월 저온의 힘이 약해지고 고온 위주로 찾아왔지만 대신 11월 12월 모두 월말 기습 한파가 매우 강했다. 이와 같은 저온을 보였던 이유는 4월부터 1892~ 1893년급의 강한 라니냐 현상을 보였기 때문이다.[134]

3.8. 1917년

1916년과 마찬가지로 기록적인 라니냐로 강한 이상 저온 현상을 보인 해이며[138], 특히 1월에는 한반도 역사상 최강의 한파가 찾아오면서 이상 저온의 끝을 보여주었다. 여름에는 서울 기준 2016년급인 36~37℃의 무더위가 있기는 했으나, 12월에도 동년 1월 한파를 연상시키는 매우 기록적인 한파가 찾아왔다. 결국 1월 12월의 월평균 기온이 압도적으로 낮아서 서울 연평균 기온이 9.858℃ 1910년대 중 가장 낮았으며, 기상 관측 이래 1936년과 함께 연평균 기온 역대 최저 2위이다.[139] 6~ 7월 폭염이 없었다면 연평균 기온 역대 최저 1위를 찍었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연평균 최저 기온은 1월의 여파와 복사냉각의 영향인지 4.8℃역대 최저 1위이다.[140]

다른 지역들의 연평균 기온은 서울보다 더 기록적이었는데, 인천, 부산, 대구 등 당시에 기상관측소가 있던 지역들은 1912년, 1913년, 1934년, 1936년, 1947년, 1956년 등 1년 전체가 이상 저온으로 뒤덮여 연평균 기온이 매우 낮았던 해들을 가볍게 넘기고 연평균 기온 역대 최저 1위를 기록했다! 인천의 연평균 기온은 9.7℃를 기록하여 1947년과 공동으로 역대 최저 1위를 기록하였고[141], 부산12.4℃역대 최저 1위[142][143], 대구 역시 11.1℃로 압도적인 역대 최저 1위[144]를 기록했다.

3.9. 1918년

1917년 12월 한파 1월 중순까지 영향을 미쳐서 1월이 매우 추웠지만[164] 2월부터는 라니냐도 풀리고[165] 4월까지 전반적으로 따뜻한 편이었다. 다만 여름철에도 동해안 지역은 오호츠크해 기단으로 저온이 매우 심했으며 5월 가을철( 9~ 10월)의 저온이 강했고[166] 12월도 편차는 강하지 않았지만 딱히 고온은 아니었다. 그래서 서울 연평균 기온 10.540℃로 전체로는 최저 7위, 1910년대 중에서는 최저 5위였다.

3.10. 1919년

이해 1~ 2월 한파가 있었지만 지난 2년( 1916~ 1917~ 1918년)의 겨울만큼 비상식적이지는 않았다. 4~ 5월에도 다른 1910년대 해보다 심하지는 않으나 저온이었고 9월 12월에 특히 저온이 강했지만 여름철의 무더위가 상당히 강해서[169] 결국 서울 연평균 기온 11.151℃로 전체로는 최저 13위이지만 1910년대에서는 1914년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시기를 감안하면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다.

4. 1920년대

1910년대보다는 아니지만 1920년대 역시 겨울이 매우 추웠다. 극값도 이곳에 있는 날들이 매우 많고 고온을 보인 겨울도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극단 한파가 장기적으로 이어지지도 않고, 그 밖의 계절도 매우 추워도 기록적 수준은 아니라 월평균 기온이 최하위를 기록한 달은 거의 적다. 즉 겨울은 전반적으로 매우 춥고 가끔 일 최저 기온이 극단적으로 낮았으나 장기 한파는 적었다. 그러나 여름의 경우 대부분의 해에 더위가 와서 연교차가 크게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폭염/사례 문서의 1920년대 문단 참조. 그리고 그 밖의 계절들도 저온이 가끔 있었다.[174] 또한 10~ 11월에 이른 추위가 오며 저온이 오는 경향이 많아졌는데, 10월 평균 기온이 13℃ 미만인 해가 많으며 11월 평균 기온이 6℃ 이상인 해는 1920년, 1925년, 1926년, 1927년 뿐이다. 다른 해들은 11월 평균 기온이 3~4℃ 정도로 매우 낮은 편이었으며 높아도 1928년처럼 5.2℃에 그쳤다.

4.1. 1920년

비록 1월 하순 끝자락이 고온이었지만 초중순이 기록적 한파라서 상당히 낮은 편이었고 2월 1월만큼 추워서 1917년 2월과 비슷한 편이었다. 3월 5월은 전반적으로 온화하고[175] 4월 꽃샘추위가 찾아왔으나 저온인 날이 그렇게 많지 않고 월평균 기온이 10.4℃로 평년 비슷범위였다. 6월 폭염 저온이 공존하였으나 저온이 더욱 강해 현재 기준으로는 낮은 편이다. 그러나 7~ 8월에는 이렇다 할 고온 저온 없이 평범한 여름 날씨를 보여 100년 후인 2020년처럼 서울에서 6월 최고 기온 극값이 연중 가장 높았다. 또한 2020년처럼 8월 상순에 집중호우가 심해 가 매우 많았다. 이후 가을철에는 9월 상순의 늦더위를 제외하고는 평범했으며 당시 치고는 이상 고온이었다. 12월까지 평범한 날씨가 이어지다 12월 하순에는 한파가 강했다. 서울 연평균 기온은 11.408°C로 일제시대 중에서는 높은 편이다.

4.2. 1921년

1910년대의 혹독한 겨울과 달리 이해 1~ 2월에는 그다지 춥지 않은 겨울 날씨를 보였다. 봄철 3월이 약간 낮았지만 4월이 약간 높아 월평균 기온이 당시 치고 평년보다는 다소 높았고 5월은 평년 수준이었다. 6~ 7월에는 별다른 더위 없이 이상 저온을 보이다가 8월 중순에는 꽤 더웠다. 하지만 9월 중하순에는 저온이 다시 시작되어 11월로 갈수록 심화되었다. 하지만 정작 12월에는 큰 추위가 없다가 다음 해 1월에는 매우 강한 장기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 서울 연평균기온은 10.969°C이다.

4.3. 1922년

그다지 춥지 않았던 전년도 12월의 날씨가 새해부터 돌변하여 1월매우 추웠다. 다행히도 2월은 따뜻해졌으나... 3월 하순의 꽃샘추위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심해서 3월 평균 기온은 낮은 편이었다. 4월에는 월말이 고온이라 월평균 기온이 12.3℃로 일제강점기 치고 상당히 높았다.[187] 하지만 5월에도 4월같은 날씨가 이어져서 월말이 고온임에도 불구하고 월평균 기온이 평년과 비슷했다. 6월은 최저 기온이 낮았지만 최고 기온은 일부 고온인 날도 있어서 월평균 기온이 21.7℃로 현재 치고는 저온이나 당시 치고는 높게 나왔다. 7~ 8월 서울에서 전년도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188] 가을철에는 9월은 낮지 않았으나 10월부터 낮아져 전년도처럼 11월 저온이 심각한 편이었다. 하지만 하순에만 반짝 추위가 찾아온 전년도와는 다르게 이해는 12월도 상당히 추워서 월평균 기온이 2005년 12월과 같았다. 서울 연평균기온은 10.873°C이다.

4.4. 1923년

전년도까지는 아니지만 1월 한파가 강력했으며 2월도 낮았다. 3월에는 중순 꽃샘추위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날씨가 풀렸지만 4월에는 매우 낮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했다. 5~ 8월 전년도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195] 9~ 10월 저온인 날들이 많아 월평균 기온이 낮은 편이었으며 11월 저온도 앞서 두 해보다는 약했으나 상당히 강했다. 12월 전년도보다는 따뜻하지만 월평균 기온은 낮은 편이었다. 서울 연평균기온은 10.698°C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4.5. 1924년

앞서 두 해와 다르게 1월 하순과 2월 하순에 강한 한파가 찾아온 것 빼고는 그럭저럭 따뜻한 편이었지만 3월에는 꽃샘추위가 강해 월평균 기온이 매우 낮았다. 4월은 11.1℃를 기록하여 2020년과 같았는데 현대 기준으로는 저온이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오히려 약간 높다. 5~ 6월도 평년과 비슷하다가 7~ 8월에는 상당히 더워서 1919년 여름 수준이었다. 가을철 저온 11월이 갈수록 역시나 심각해지는 경향을 보여서 11월도 앞서 세 해와 같이 저온이 매우 강했다. 다만 12월은 작년인 1923년보다 따뜻했다. 서울 연평균기온은 11.070°C이다.

4.6. 1925년

1~ 2월은 최저 기온 극값이 -15℃ 정도로 크게 낮지는 않지만 월평균 기온이 살짝 낮았다. 3월 전년도 수준으로 꽃샘추위가 강력했으며, 4월도 평년보다 낮았다. 여름철에도 잦은 때문에 매우 선선했으며 9월은 평년이었으나 10월은 평년보다 약간 낮았고 산발적으로 강한 저온히 발생하였고 11월은 앞선 네 해와 달리 늦가을 한파가 찾아와도 온화한 편이었으며 12월도 초중순까지는 한파가 없고 이상 고온이 심했으나 12월 16일부터 매우 추워졌다.

4.7. 1926년

1월, 2월은 월초 한파를 제외하면 그다지 춥지 않고 여름철에도 여름다운 평범한 날씨를 보였다. 하지만 3월도 나름대로 살짝 낮았고 4월 10월 저온 현상이 역대급으로 강력했다. 11월에 들어서 1920년대 11월 저온 현상 치고는 다소 높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했지만 12월은 월초 한파의 영향으로 상당히 낮았다. 자세히 보면 이 해는 유독 겨울철을 제외한 최저기온이 상당히 낮은 경우가 많았다.[206]

4.8. 1927년

1월에 접어들어서 전년도 12월과는 다르게 갑자기 따뜻해져서 고온을 보였다. 하지만 1월 하순부터 이 내린 듯한 날씨와 함께 한파가 어김없이 찾아와서 1월 전체는 평년 수준이었다. 2월도 월말까지 한파가 기승을 부려 상당히 낮은 축에 속했고 3월도 조금 낮았다. 4월은 그래도 11.7℃로 상당히 높은 편이었으나... 하지만 5월 저온 현상이 역대급으로 강력했으며, 덕분에 4월과 5월의 기온 차이는 매우 작았다. 여름철에는 꽤 더웠지만 9~ 10월 저온 현상도 못지않게 강했다. 11월은 다행히도 따뜻해져서 현대 기준으로도 높은 편이지만 12월은 월말에 엄청난 폭설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212]

4.9. 1928년

1월 상순에는 1920년 1월 수준의 강력한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 이후 2월까지 따뜻해졌다가 한파가 찾아오기를 반복했다. 3~ 4월은 그럭저럭 따뜻한 날씨를 보였고( 4월은 평년보다 높았다) 5월도 평년과 비슷하거나 약간 높았다.[219] 9월 중순까지 평범하거나 더운 늦여름, 초가을 날씨를 보이다가 9월 하순부터 급격하게 추워져 10월에는 상당히 낮았다. 11월도 낮은 편이었으나 1920년대 치고는 저온 현상이 강하지 않았고 12월도 반짝 한파를 제외하면 지난 2년과 다르게 크게 춥지는 않았다.

4.10. 1929년

1월 2월 한파가 주기적으로 찾아오기를 반복해 조금 낮은 편이었다. 봄철은 평범했지만 여름철에는 상당히 강한 무더위가 있었으나 8월 하순부터 급락해서 9월은 역대급으로 낮았다. 이 영향으로 가을철 전체가 기온이 낮았지만 12월 이상 고온이 심해서 현대에도 고온으로 평가받는 2019년 12월보다도 높았다.

5. 1930년대

1913년을 제외한 일제강점기의 모든 해가 폭염을 보이기는 했으나, 이 연대부터 폭염이 더욱 심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현대 기준으로도 1936년을 제외하면 매우 더운 여름이 많았다. 겨울철 한파의 경우 최저 기온은 1920년대보다 비교적 높았으나 월평균 기온은 여전히 매우 낮았고 1920년대와 달리 이상 고온을 보인 겨울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12월 1월의 기온 편차가 매우 컸다. 12월 고온이 잦았으나 1월 1932년 1월만이 현대 기준으로 고온에 속하며 나머지 해들은 모두 1월이 추웠다.[228] 1910년대가 매우 추웠으나 가끔 고온이 있었고 1920년대는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계속 추웠다면, 1930년대 12월 1935년, 1937년, 1938년을 제외하면 따뜻했으나 1월이 매우 추워지는 특징을 보였다. 한편 기상 관측 사상 엘니뇨가 없었던 유일한 연대이기도 하다.

5.1. 1930년

따뜻했던 전년도 12월에 비해 1월은 조금 추웠으나 그 뒤로 기온이 많이 올라 2~ 3월은 현대 기준으로도 높았으며 4월의 경우도 현대 기준으로는 평년 수준이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크게 높았다. 이 여파로 5월을 제외하고 여름까지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하지만 9월 11월 저온이 강했으며, 12월은 오히려 당시 기준으로는 높지만 월평균 기온이 영상권은 아니었다. 서울 연평균기온 11.793°C로 일제시대에서는 상당한 고온이었다.

5.2. 1931년

1~ 3월은 따뜻하다가 갑자기 초강력 한파를 보이는 날씨가 이어지며 역대 기록들을 경신하였고 4월은 매우 낮아 2021년 3월보다 월평균 기온이 낮았으나 5~ 6월은 평범했다. 7월에 다시 저온이 심해졌지만 8월에는 평범했고 오히려 반짝 폭염도 있었다. 하반기에는 산발적으로 강한 저온과 늦더위가 번갈아 일어났으며, 10월 평균 기온이 낮았으나 9월, 11월은 평년보다 조금 높았다. 12월도 중순이 추웠지만 이것도 반짝 한파였고 다음 해 1월에는 이상 고온의 날씨를 보였다. 여담으로 서울의 연교차가 58.5℃로 가장 컸던 해이다.

5.3. 1932년

1월 고온이 강했으나 2월부터 고온의 힘이 약해지고 3월은 다소 낮았으나 5월 서울에서 가장 빠른 폭염일수를 기록하여[237] 월평균 기온 17.0℃로 당시 치고는 높았다.[238] 6월은 약간 높았으나 여름철이 많이 더웠고 9월~ 10월은 상당히 낮았지만 12월에는 현대에 비해서도 약간 높았다.

울산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5.4. 1933년

그다지 춥지 않았던 전년도 12월과 달리 1~ 3월에는 매우 낮았으며 4월까지 계속 낮았다.[244] 7월 하순에 잠시 더웠던 것을 빼면 여름도 평범했고 8월 서울에서 폭염을 보이지 않았다. 가을철은 평범했고 12월은 높은 편이며 현대의 평년과 비슷하지만 월말에 한파가 발생하여 다음 해 1월로 이어진다.

서울의 기상 관측소를 (기존의 낙원동에서) 현재의 종로구 송월동으로 옮긴 해이다.

5.5. 1934년

1월이 매우 추웠으며 이 여파로 4월까지 낮았다. 5월 6월은 그럭저럭 높았지만 7월 8월은 당시 기준으로도 1℃ 정도 낮았고 가을철 저온이 매우 강했으며, 12월 한강 결빙이 관측 사상 가장 빨랐으나 중순 이후로는 고온을 보여 현대보다도 높았다. 여름철이 조금 더운 것을 빼면 1936년과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물론 5~ 8월이 조금 더 더웠고 12월도 이상 고온이라[247] 2~ 3월 1936년보다는 덜했지만 가을철 편차가 1936년보다 낮고 저온이 심해서 결국 서울 연평균 기온이 10.200℃ 1936년보다는 높았지만 1912년, 1956년과 공동으로 네 번째로 낮았다.

5.6. 1935년

이해는 12월의 장기 한파 9월 늦더위와 저온, 그 외 하반기 일부의 저온을 빼면 별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해이다. 여름철도 평범하게 더웠고 나머지 달도 5월 12월을 제외하면 월평균 기온이 그리 낮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2년 후인 1937년과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5.7. 1936년

서울의 연평균 기온 9.777℃ 1947년에 이어 역대 최저 2위인 해이다. 특히 이해는 상반기에서 8월까지의 기간이 기상 관측 사상 역대급으로 추웠으나[256] 가을철 편차는 여전히 낮기는 했지만 다소 평범해서 1917년에 비해 아주 심하지는 않았고 12월은 상대적 고온이어서 1917년과 같은 연평균 기온이 나왔다. 상반기가 앞서 서술한 1934년의 상위호환이며 1936년과 같은 기온 경향은 50년 후인 1986년에서도 비슷하게 흘러간다. 상반기 한파 저온의 영향으로 벚꽃 4월 26일에 개화하여 역대 가장 늦었다.[257]

5.8. 1937년

이해도 12월 한파와 하반기 일부의 저온을 빼면 현재와도 거리감이 없고 평범한 해이다. 전체적으로 1935년과 비슷하나 봄철은 더 추웠고 여름철은 조금 더 더웠다.

충청북도 영동(추풍령)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276][277]

5.9. 1938년

비록 1935~ 1936년 겨울만큼은 아니지만 1~ 2월 추위가 강했다. 하지만 3월부터는 5월을 제외하고[281] 당시 기준으로 온화한 날씨를 보였고 여름철도 다소 더웠다. 반대로 9월은 매우 낮았으나 아이러니하게도 10월에는 고온이 강했고 11월은 다시 또 매우 낮은 극과 극의 가을을 보인 것이 특징이며 12월도 약간 낮았다.

경상북도 울릉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5.10. 1939년

2018년을 연상시키는 역대급 폭염으로 고온 현상이 강력하기는 했지만 산발적으로 강한 이상 저온이 발생했던 해이다. 1~ 2월도 각각 한파가 꽤 강해서 평년보다 조금 낮았으며, 4월 상순에 영하로 떨어졌다. 그리고 하반기에는 중순까지 고온, 하순에 강한 저온 형태의 날씨가 연속으로 이어졌으며, 12월도 당시 기준으로 조금 높았지만 중순에 한파가 있기는 했다.

이해 5월 1일 광주에서 최초의 기상 관측이 시작되었다.

6. 1940년대

1940년대 1930년대보다 폭염이 더욱 심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점차적으로 평균 기온이 높아지기 시작하는 연대이기도 하다. 겨울 1930년대와 반대로 1월에는 1940년, 1945년 1월 말고는 장기 한파가 그닥 뚜렷하지 않았고, 대략 -3~-4도대로 다소 평범했으나 대신 12월의 장기 한파가 눈에 띄게 증가하여 12월 평균 기온이 매우 낮은 해가 많았다.[291] 특히 1942~1951년에는 전국적으로 가뭄이 심해서 일조량도 많고 일교차와 연교차 모두 큰 편이었다. 그로 인해 잘 살펴보면 여름철 폭염과 겨울철 한파의 강도가 동시에 강력해졌다.

6.1. 1940년

1월 시작부터 강추위가 찾아와서 월평균 기온이 순위권으로 낮았으나, 2월부터는 장기 한파에서 벗어났고 3월도 중순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꽃샘추위가 없었다. 하지만 4월은 꽤나 낮았고 5월에 다시 평년의 기온을 회복했지만 6월부터 8월까지의 여름철 장마가 찾아오고 이상 저온의 영향으로 세 달 모두 월평균 기온이 평년보다 1℃ 가량 낮았다. 그리고 이 저온의 영향인지 9월도 평년보다 약간 낮았으나 10월부터는 고온 위주의 날씨를 보여서 12월까지 월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다소 높게 기록되었다.

6.2. 1941년

1월 초이상 고온과 초강력 한파가 찾아오는 극과 극의 날씨를 보이며 기온 편차가 매우 컸으나[303] 2월에서 3월 상순은 평년보다 낮은 기온이 주를 이루었고 4월도 나름대로 낮았다. 시간이 흘러 한여름 7~ 8월은 매우 시원했으나 가을철에는 뚜렷한 저온을 보이지 않았고 11월 12월 고온으로 따뜻한 연말이었다.

6.3. 1942년

1월 2월 고온이 찾아온 기간을 제외하면 매우 추운 날씨가 이어져서 월평균 기온이 꽤 낮았지만 3월 고온이 강했다. 다행히 4~ 5월은 시원했으나, 여름철에는 현재까지도 전설로 남아있는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늦더위가 9월에 끝나고 쌀쌀한 날씨가 찾아와서 9월 하순~ 12월은 평년보다 다소 낮았다.

전라남도 여수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6.4. 1943년

여름철의 강력한 폭염과 달리 겨울철에는 한파가 매서웠지만, 봄철 가을철은 전체적으로 포근했다. 서울의 일조시간이 2,844.5시간으로 역대 가장 많았던 해이다.

경상북도 포항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6.5. 1944년

4월, 12월 저온 현상이 강한 해이며, 여름철도 지난 두 해보다는 아니지만 7월 하순~ 8월 상순에 35~36℃의 무더위가 순간적으로 발생했고 이례적으로 8월 하순~ 9월 상순이 매우 더운 양상을 보였다. 그 외에 2월도 평년보다 다소 낮았으며, 11월 하순에는 12월의 장기 한파와 대비되게 매우 높았다.

6.6. 1945년

광복절 이전까지 일제강점기 말기와 제2차 세계 대전의 피해로 인한 시련을 연상시키기라도 하는 듯, 4월을 제외한 1~ 7월 전체가 쌀쌀하고 저온을 보였다.[324] 하지만 광복절 이후로는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아 상반기와 하반기의 차이가 큰 해이다. 다만 1~ 3월 5월의 여파로 인해 연평균 기온은 매우 낮았다. 한편 7~ 8월의 경우 2020년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325]

6.7. 1946년

전반적으로 강한 장기 한파가 찾아온 12월, 9월~ 10월 상순과 11월 이상 고온을 빼면 평범한 해이나 3월에는 낮은 편이었으며 그 밖에도 산발적으로 이상 저온이 조금 있었던 해이다.

6.8. 1947년

1년 대부분이 이상 저온이어서 서울 연평균 기온이 9.655℃로 역대 최하위이다.[334]4℃ 낮고, 평년보다도 약 3℃나 낮았다.][335] 그나마 1월은 평년보다 높았고, 4월, 8월은 평년과 비슷하였지만 2월 6월은 역대 최저 1위이고 3월, 7월, 10월, 11월, 12월도 매우 낮았다. 5월 9월도 약간 낮았다. 또한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연평균 기온 9℃대를 기록한 해이기도 하다. 덧붙여 서울의 연평균 최고 기온도 14.8℃로 역대 최하위이다.[336]

6.9. 1948년

1월 2월 한파가 찾아온 기간을 제외하면 평년과 비슷했고 3월 4월 이상 고온을 보여서 평년보다 1~2℃ 높았다. 그리고 5월부터 10월까지는 모두 평년과 완전히 일치하는 월평균 기온을 기록하여 당시 기준으로는 가장 평범한 해였으나 현대 기준으로는 저온에 속하며, 11월은 추웠지만 12월은 매우 기록적인 초이상 고온을 보였다. 또한 서울에서 2023년까지 마지막으로 9월 폭염 일수를 기록한 해였다.

6.10. 1949년

1월 2월 한파가 찾아오기는 했으나 평년보다 높았고 3월도 그리 낮지 않았으며 봄철 4월을 제외하고 평년과 비슷했다. 여름철에는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폭염이 있었으나 의외로 6월 저온을 보인 날들이 많이 있었고 8월에는 37℃를 넘는 강력한 무더위가 찾아와서 현대의 평년과 비슷할 정도로 높았다. 대신 9월부터 11월까지의 가을철 고온이 심하지 않아 평년보다 조금 높아도 비슷한 범위였고 12월도 일부를 제외하면 뚜렷한 한파가 없었다.

이해는 서울에서 가뭄이 일어난 해인데, 연 강수량이 623.9mm에 불과해 1907년 공식 기상 관측 이후 역대 최소를 기록했다.

7. 1950년대

1940년대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겨울이 포근해져서 연평균 기온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한 년대이다. 다만 현대(1991~2020년) 기준으로 본다면 당연히 매우 추운 편으로 1월 평균기온이 -5~-6℃를 기록한 해들이 많았다. 다만 1월은 -6.0°C가 가장 낮으며 12월은 1951년, 1953년, 1955년, 1958년, 1959년이 이상 고온이 심했고[344], 2월도 1959년이 이상 고온이 심했다. 반면 여름은 1940년대의 고온 경향을 이어받아 6.25 전쟁 때(1950~1953년)까지 매우 더웠다가 1954년, 1956년, 1957년처럼 시원한 여름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1959년까지는 전반적으로 더웠다.

7.1. 1950년

여름철 폭염이 강한 해이며, 1~ 2월 한파가 찾아온 기간을 제외하면 따뜻했고 3월부터 5월까지의 봄철도 평년의 기온을 크게 웃도는 등[345] 이상 고온을 보였다. 그나마 가을철은 평범했고 9월 11월은 당시 기준으로도 이상 저온이었지만 12월은 춥지 않았다. 서울 연평균기온은 12.1°C(추정)로 당시 기준 1914년을 제치고 가장 높았다.

6.25 전쟁의 여파로 이해부터 중부 지방의 기상 관측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가, 1951~ 1953년 사이에 재개되었다.[346]

7.2. 1951년

4월, 9월이 심한 저온이었고 2월, 3월도 저온이었으나 7월, 12월은 고온이었고 특히 8월은 상당한 고온이었다. 서울 연평균기온은 11.3°C로 추정된다.

7.3. 1952년

2월, 12월은 상당한 저온이었다. 반면 7월은 고온이고 5월은 초고온이었다. 서울 연평균기온은 11.7°C로 추정된다.

7.4. 1953년

2월, 11월은 저온이지만 여름철(5~10월)을 중심으로 고온 현상이 잦아서 서울 연평균기온은 11.9°C(추정)로 상당히 높았다.

7.5. 1954년

1월 초이상 고온을 보여 서울 월평균 기온이 -1.5℃로 당시 평년치보다 3℃ 가량 높았으며[374] 2월도 평년보다 높아 이상 고온 폭우까지 내렸으나, 6~ 7월, 10월, 12월 이상 저온을 보였다. 겨울철 여름철의 기온 분포가 전체적으로 2020년과 비슷한 해이다.[375]

7.6. 1955년

겨울철 한파가 다소 강했으며 5월 10~ 11월도 평년보다 낮았다.

7.7. 1956년

1917년처럼 강한 슈퍼 라니냐의 영향으로 세계도 연평균 기온이 매우 낮았으며 대한민국 일제강점기보다 더 춥고 해방 이후로 1947년과 같이 역대급으로 이상 저온이 강력했다. 서울 연평균 기온도 10.113℃로 전술한 1912년, 1934년과 공동으로 역대 최저 4위이며, 이상 고온 자체가 없이[381] 연도 대부분[382]이 평년보다 낮아서 1년 사계절이 전체적으로 추운 날씨를 보였다.

7.8. 1957년

전년도의 강력한 라니냐의 여파로 인해 이해도 심한 이상 저온이 길게 이어졌으며 11월에 들어서야 그나마 이상 저온이 풀렸다. 역대 최저 1위를 기록한 달은 없었지만 극값 순위에 당당히 등장하는 달이 많았고 나머지 달들도 10월까지는 월평균 기온이 매우 낮았다. 서울 연평균기온은 10.516°C이다.

7.9. 1958년

전년도 전전년도의 강한 이상 저온만큼은 아니라 고온도 많이 있었지만 1월, 8~10월이 이상 저온이었다. 특히 1월 한파 8월 저온 현상이 매우 강했다. 하지만 11월 이후에는 평년보다 매우 높아 12월은 당시 평년치보다 5.5℃ 높은 초이상 고온을 보였다.

7.10. 1959년

8. 1960년대

비록 1963년 1월처럼 역대 1월 평균이 낮은 시기가 있었으나, 1960년대 전체로 치면 1월 평균기온이 대체로 -4도 전후로 평균 -4도대 후반 정도를 기록하던 일제 시절과 해방 직후보다 겨울이 조금씩 따뜻해지는 티가 나는 시기였다. 한파의 위력도 약해져 이전과 달리 한파가 와도 최저 기온이 -18°C대에 머물렀다.

한편 겨울철의 혹독한 한파와 동시에 맹렬하게 타올랐던 여름은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예전보다 그 위력이 상당히 사그라들었다. 이 기조는 1990년대 초까지 계속되었으며, 이는 옛날 사람들로 하여금 60~70년대 여름이 더웠는지도 기억을 못 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1960년대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그 기온 격차가 예전보다 작아졌다. 일교차 역시 이전보다 작아졌다.

또한 이 시기부터 봄철 기온이 오르기 시작했으며, 특히 1960년 3월, 1964년 4월, 1967년 5월처럼 지금 기준으로도 고온인 달들도 있었다.

8.1. 1960년

8.2. 1961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8.3. 1962년

봄철 저온 현상이 강한 해이다. 그러나, 이해는 한파 일수가 전혀 없었고 1월 최저 기온 극값도 -11.3℃[417][418]에 그쳤으며, 월평균 기온이 -3.4℃로 당시 평년치보다 1.3℃ 높았다.

8.4. 1963년

이해까지는 기상 관측 지점이 소수였으며, 겨울철 한파가 매우 강하고 길었으나 그 기간을 제외하면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은 기온이 잦아서 별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해라 서울의 연 평균기온은 11.312℃로 당시 평년과 비슷했다.[421] 반면 남부, 영동 지방은 연평균 기온도 매우 낮았다. 부산은 연 평균기온 13.2°C를 기록해 1980년보다 0.1°C 낮았다.

8.5. 1964년

이 해는 2월의 강한 한파, 3월 중순, 11월 일부를 제외하면 현재와도 거리감이 없고 이상 고온이 강한 해이다. 봄철은 당시 평년보다 매우 높았으며, 여름철도 현대와 비슷하게 더웠지만 가을철도 뚜렷한 저온을 보이지 않았으며, 12월은 0.2℃로 1991~ 2020년 평년치와 같았지만 1월, 4~ 5월 1991~ 2020년 평년치보다도 높아서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12.2℃로 당시 평년치보다 상당히 높았다.

경기도 수원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427]

8.6. 1965년

1월 한파가 다소 강했고 2월 상순까지 이어졌다. 입춘이 지난 후에는 그럭저럭 날씨가 풀렸으나 2월 하순부터 4월까지 이상 저온이 이어졌다. 5월에는 평범한 날씨를 보였으나 5월 하순에 이른 더위가 찾아왔고 6월에도 당시 치고 다소 높았다. 6월 하순~ 7월 상순에 35℃ 안팎의 폭염을 보였으나 이후 한여름에는 이상 저온으로 폭염이 없었다. 9~ 11월 1981~ 2010년 평년과 비슷하고 시기 치고는 다소 온화했으나 가끔 저온 고온이 있었고 12월 중순 이후 강한 한파가 왔다.

8.7. 1966년

겨울철 한파 다음 해 못지않게 매우 강한 해이다.

강원도 춘천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8.8. 1967년

충청북도 청주, 경상남도 통영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8.9. 1968년

강원도 속초, 충청남도 서산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8.10. 1969년

서울 연평균 기온이 10.928℃ 1960년대에서 상당히 낮았다. 그도 그럴 것이 뚜렷한 고온 없이 1월, 9월을 제외하고 대부분 월평균 기온이 평년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여름에는 폭염 일수가 아예 없었고 겨울철 한파도 꽤 강하고 길게 이어졌다.

대전, 전라북도 부안, 임실, 정읍, 경상남도 진주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9. 1970년대

1970년대 들어 겨울철 평균기온이 상당히 온난화되어 1월 평균기온이 초이상 고온을 기록한 해들이 많아졌고(1972~1973년, 1979년), 사실상 1981~2010년 평균과 별 차이가 없었을 정도다. 12월도 별로 춥지는 않았다. 대신 2월은 현대 기준으로 꽤 추운 편이었다. 이 년대부터 구평년(1981~2010) 기준으로 고온인 첫 해(1975)가 나타났다. 반면 여름은 더 시원해져서 이 시기에 초이상 저온 여름이 잦았다. 즉, 연교차가 가장 작았던 시기이다.

9.1. 1970년

9.2. 1971년

강원도 원주, 인제, 평창(대관령), 홍천, 전라북도 남원, 충청북도 보은, 제천, 충주, 충청남도 부여, 전라남도 고흥, 완도, 장흥, 해남, 경상북도 울진, 경상남도 거제, 거창, 남해, 밀양, 산청, 합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성산읍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되었다.

9.3. 1972년

가을철 저온 현상이 강한 해이며, 1월 한파가 없고 오히려 당시 평년치보다 5℃ 이상 높은 초이상 고온을 보여 서울 월평균 기온이 0.8℃를 기록하였고, 이는 당시 기준으로 최고 1위, 현재도 역대 최고 3위에 해당할 정도로 이상 고온이 심했다. 심지어 1월 최저 기온 극값이 -9.1℃[484][485]에 불과해 포근한 겨울을 맞았지만 8~ 9월, 11월 이상 저온이 발생하였다.

인천 강화, 경기도 양평, 이천, 충청남도 금산, 보령, 천안, 전라남도 순천, 경상북도 영덕, 영주, 영천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9.4. 1973년

1월 엘니뇨로 인해 전년도 못지 않게 이상 고온이 심했으나, 전년도와 달리 이해는 서울 최저 기온이 -10℃ 이하를 기록한 날은 있었다.[492] 그러나 6월부터 라니냐로 전환되어 10월~ 12월 동안에는 다음해와 같이 이상 저온이 상당히 강했다.

경상북도 구미, 문경, 안동, 의성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그리고 전국 단위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9.5. 1974년

1917년처럼 강한 라니냐로 인해 저온이 매우 많이 발생했던 해이다. 겨울 1917년보다는 높았으나 여름은 시원한 축에 속했다. 그리하여 이해 전국 연평균 기온은 11.1℃로 최저 2위를 기록하였다.

9.6. 1975년

라니냐의 해인데도 불구하고 앞뒤 년도와 반대로 이상 고온이 심해서[501] 5월 일부와 12월을 제외하면 별다른 저온이 없었다.

9.7. 1976년

1974년만큼은 아니지만 이상 저온이 강하게 지속된 해이다. 서울 기준으로 2~ 3월, 12월만 평년보다 높았고, 1월, 4~ 6월, 10월은 평년과 비슷하였고, 나머지 달은 모두 평년보다 낮았다. 이러한 와중에 뜬금없이 2월에 강한 고온을 보이며 2021년보다도 월평균 기온이 높았다.[503] 대체적으로 60년 전인 1916년과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흐름이 유사한 편이다.

9.8. 1977년

1~2월에는 강한 한파가 왔으나 이후로는 고온 현상이 잦았다.

9.9. 1978년

전반적으로 포근한 해였으나 2월에는 한파가 왔다.

9.10. 1979년

이해는 1~ 3월을 중심으로 이상 고온이 심했고, 특히 1월은 당시 평년치보다 5℃ 이상 높은 초이상 고온을 보여 서울 월평균 기온이 0.9℃를 기록하여 2020년 다음으로 높으며, 2019년까지는 아예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7월, 9월, 11월 이상 저온이 발생하였다.

10. 1980년대

1980~1986년까지는 1970년대에 비해 겨울이 다소 추워지면서 12~2월 내내 장기 한파를 보이는 경향이 늘어났다.[521] 다만 1987년 이후로는 사실상 겨울 평균기온이 1990~2000년대처럼 높아져 더는 극심한 한파 겨울이 찾아오지 않고 있다.

10.1. 1980년

3월 상순, 5월 하순과 11월 등 평년보다 고온을 보인 시기도 있었으나, 1월~2월, 4월~5월 중순, 7월~10월, 12월에는 저온 현상을 보여 저온이 심했다. 이로 인해 전국 연평균 기온이 11.0℃로 역대 최하위이다. 서울 1월, 3월, 6월, 11월을 제외하면 평년보다 모두 낮으며 연평균 기온이 10.824℃ 일제강점기와 비슷하거나 조금 낮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평균 기온 10℃대를 기록한 해이기도 하다.

10.2. 1981년

전년도인 1980년 이상 저온 현상에 비해 3월 중순과 12월 하순 등 비교적 확실한 고온 현상도 있었고 3월, 4월, 7월, 12월 같이 저온이 아닌 달들도 있었으나 여전히 저온 현상이 우세하였고 서울에서 가장 이른 첫눈을 기록한 해이다. 특히 가을철 이상 저온 현상이 매우 심각하였다. 그리하여 이해 전국 연평균 기온은 11.2℃로 최저 3위를 기록하였다.

10.3. 1982년

이해는 엘니뇨의 해인지라 지난 2년의 라니냐 저온 현상과 달리 1월을 제외하면 별다른 한파 저온이 없는 포근한 해이다. 하지만 가을철에는 산발적으로 꽤 강력한 이상 저온이 발생했다.

10.4. 1983년

전년도에 이어 엘니뇨의 영향으로 포근한 해였으며 봄철을 중심으로 이상 고온이 심했고, 그 밖의 달도 평년과 비슷하거나 이상 고온을 보였지만 2월 서울 기준 1월과 같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하는 등 나름 추웠고, 7월도 낮았고 11월 중순~ 12월도 조금 낮았다.

10.5. 1984년

지난 2년 동안의 엘니뇨 현상이 끝나고 약간 -중립을 띄다가 11월부터 라니냐로 전환되어 겨울철 저온 현상이 매우 강했던 해이다. 2~ 3월은 전국 평균 기온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으며, 1월 12월 하순도 꾸준히 낮았다. 다만, 4월 중순~ 8월, 10월 중순, 11월 12월 상순~중순은 당시 기준으로 평년보다 높았다.

10.6. 1985년

겨울철 저온 현상이 최저 극값 기준으로는 전년도보다 더 심한 해이다. 1월은 아예 전년도와 같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했으며, 한파까지 강했다. 11월 저온이었고 12월 전년도보다 훨씬 낮았다. 단 2월은 오히려 평년보다 높았다. 3~ 4월은 평년 수준이었고, 5~ 8월 10월은 당시 기준으로 평년보다 높았다.

강원도 태백, 경상남도 창원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10.7. 1986년

1980년, 1981년, 1993년처럼 20세기 후반에 저온 현상이 많은 해이다. 12월을 제외하면 큰 고온은 없었다. 1~2월에는 강한 한파가 왔고 3~6월에는 평범했으나 7~8월에는 시원한 여름이였고 가을철에도 저온을 보였다.

10.8. 1987년

여름철 저온 현상이 강한 해이다. 서울 연평균 기온이 11.9℃로 마지막으로 11℃대를 기록했으며, 1987년 이후 연평균 기온은 12~14℃ 사이를 오가고 있다. 또한, 이해부터 겨울이 포근한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561]

10.9. 1988년

강원도 철원, 전라북도 장수, 경상북도 봉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 한경면 고산리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10.10. 1989년

이해부터 한반도의 온난화가 본격화된 해이며, 1월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1972년 1월과 같은 0.8℃로 당시 기준으로는 최고 2위, 현재도 1972년과 공동 최고 3위일 정도로 이상 고온이 심했다. 다만 10월에는 저온도 있어서 평년보다 조금 낮았다.

11. 1990년대

1980년대까지[571] 저온이 더 우세한 날씨를 보였으나 1990년대[572]에 접어들고 지금과 같이 고온이 더 우세한 날씨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특히 겨울철은 1986~1987년 겨울부터 시작된 고온 경향을 이어받아 거의 대부분의 겨울철이 고온이었다. 하지만 5월의 상승세가 뚜렷한 2010년대와 달리 1990년대에는 5월 이상 저온을 보인 해가 꽤 존재한다.

11.1. 1990년

1월에는 반짝 한파가 있었는데 매우 강력했고[573] 서울의 연 강수량이 역대 가장 많은 해이나(2,355.5mm) 아이러니하게도 10월에는 강수량이 기록되지 않았다.

11.2. 1991년

2월은 월평균기온은 평년 수준이었으나 하순 기습한파가 강했고 7~ 8월, 10~ 11월도 조금 낮았으며 3월 5월은 평년 수준이었고 1월 9월은 평년보다 조금 높았고 12월에는 이상 고온이 왔다. 6월도 평년보다 높았다.

11.3. 1992년

강원도 동해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며, 1~ 2월 한파가 없었고 최저 기온 중심으로 이상 고온을 보여 서울 월평균 기온이 -0.2℃로 간신히 영하를 기록하였고 최저 기온 극값도 -9.1℃[577]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 없었으며, 최고 기온 극값마저 7.6℃[578]에 그쳐 한달 내내 애매한 날씨를 보였다.[579] 그러나 5~ 6월에는 저온을 보였고 10~ 11월에도 평년보다 조금 낮았다. 4월 9월은 평년 수준이였으나 겨울철 3월 이상 고온이 심해서 기온 분포가 전체적으로 2007년과 비슷한 해이다. 하지만 2007년과 달리 저온이 뚜렷하고 더 잦아 연평균기온은 2007년보다 확실히 낮았다.

11.4. 1993년

이해 여름이 매우 시원해서 제주도에 이틀간 폭염이 온 것을 빼면 폭염 일수도 없고 1980년과 맞먹는 매우 서늘한 여름이 찾아왔다. 1980년 여름, 2010년과 더불어 냉해 피해가 가장 컸다. 그리고 1980년과 같이 여름에만 이상 저온이 찾아온 것이 아니어서 평균 기온은 매우 낮았다. 1993년 이후로는 현재까지 이 기록보다 더 낮게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서울 기준으로 열대야를 단 한 번도 기록한 적이 없는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582]

11.5. 1994년

강원도 영월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3월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년보다 높은 달이 많았고 특히 여름이 매우 더웠던 해다.

11.6. 1995년

1~ 3월 10월에는 고온을 보였으나 4~ 5월, 9월, 12월 저온을 보였고 11월도 평년보다 조금 낮았다. 강원도 영동 지역은 6월도 이상 저온을 보였다.

11.7. 1996년

4월 이상 저온이 심한 해이며 2~ 3월(수도권 제외), 7월 11월도 조금 낮았다. 서울에서 4월에 영하를 기록한 날이 있는 마지막 해이다.

11.8. 1997년

전라남도 신안 흑산도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엘니뇨로 포근한 해였으나 1월 상순, 하순 및 5월 9월 중하순, 10월 이상 저온을 보였다.

11.9. 1998년

경기도 동두천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이상 고온이 심했으나 1월에는 반짝 한파가 있었고 여름은 시원한 편이였다.

11.10. 1999년

전년도처럼 전반적으로 이상 고온이 심한 해였다. 평년 수준이였던 5월 10월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년보다 높았으나 3월 하순 일부에는 강한 꽃샘추위가 왔고, 10월 중순에는 이상 저온이 와서 서울이 1.5℃까지 떨어졌다.


[1] 서울 기준으로, 1920년대 2월의 상위호환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1920년대 2월이 주로 월평균 기온 -2℃ 정도를 기록했다면, 1900년대 2월은 (추측상) -3℃ 정도로 보이는 월평균 기온을 연속으로 기록했기 때문. 부산은 아예 1905년부터 1910년까지 6년 연속으로 1월보다 2월 평균 기온이 더 낮았다... [2] 이는 이 당시 공식 기상 관측 자료가 존재하는 일본 쪽이 도드라진다. 1902년 7월, 1905년 8월과 같은 여름철의 강력한 이상 저온 현상도 이 시기에 있었다. [3] 일종의 테스트였는진 모르겠으나, 당시 기상 관측이 시작되었다지만 실제로는 시작일로부터 한동안은 결측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4] 기상청 사이트상 1904년 4월 8일. 당시로써는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시작되었다. [5] 기상청 사이트상 1904년 4월 8일. 비공식상 1883년 8월 12일. [6] 비공식상 1883년 9월 1일. [7] 비공식 1885년 8월 1일. [8] 당시 용암포. [9] 당시 진남포. 링크에 의하면, 1908년에 기상업무가 대한 제국 정부에 인계되면서 다른 지역들은 기상 관측이 계속되었는데, 이 지역만 언급이 없어 계속되었는지 폐지되었는지 불명. [10] 기상청 사이트상 1907년 1월 31일. [11] 1900년 20세기가 아니지만, 19세기에 넣으면 1900년대의 개념에서 벗어나서 더욱 부자연스러우니 20세기 문서에 정리하였다. [12] 1900년은 19세기지만, 1900년대에 있다 보니 20세기 문서에 있다. [13] 1월 1일 -11.0°C, 1월 2일 -13.0°C, 1월 3일 -12.0°C, 1월 4일 -11.0°C, 1월 5일 -13.0°C, 1월 6일 -13.5°C, 1월 7일 -12.0°C, 1월 8일 -13.0°C, 1월 9일 -12.0°C, 1월 11일 -10.0°C, 1월 12일 -11.0°C, 1월 14일 -11.5°C, 1월 15일 -13.5°C, 1월 16일 -14.0°C, 1월 17일 -15.0°C, 1월 18일 -11.0°C, 1월 24일 -10.0℃, 1월 25일 -15.0℃, 1월 26일 -17.5℃, 1월 27일 -15.0℃ [14] 월 강수량 525mm는 여름철가 많이 내리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해는 연 전체 강수량이 525mm였다는 것이다. 현대인 2011년 7월 서울 집중호우로 비교하자면 7월 26~ 27일 동안의 강수량 472.5mm와 맞먹는다. 베이징시 연강수량 평균이 이정도이다. 한수당블로그 기준으로는 서울 강수량이 525.0mm가 나오지만 경미한 차이가 있는걸 고려하면 실제 강수량은 520~530mm 내외일 수도 있다. 이것도 1770년부터 측정한 강수량 중에서 가장 낮다. [15]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1936년, 1993년, 2003년 등도 우리나라는 매우 서늘한 여름이었으나 일본 1902년, 1905년, 1980년보다 평균 기온이 조금 높았다. [16] 만약 이때부터 전국적으로 기상 관측을 시작했다면 1975년 가을철 고온을 능가하고 최고 기온 역대 1위를 차지했을 가능성도 있다. [17] 11~ 12월 고온이 매우 심했는데 11월은 역대 최고 1위인 2011년 11월에 맞먹을 정도이며 인천의 최저 기온 극값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12월도 마찬가지로 역대 최고 1위인 1958년 12월을 제외하고 사실상 대적할 만한 해가 없는 역대급 고온이었다. 인천 12월 최저 기온 극값이 고작 -5.5℃였다. [18] 도쿄 대한민국보다 이른 1875년에 공식 기상 관측을 시작했기 때문에 공식 자료이다. [19] 역대 7월 평균 기온 중 최저이다. 1981~ 2010년 도쿄 7월 평균 기온이 25.8℃이므로, 평년보다 무려 4℃나 낮은 셈. 이를 서울로 대입할 시 7월 평균 기온 24.9℃인 서울20.9℃라는 듣도보도 못할 초이상 저온이 찾아왔다는 소리가 된다(...). [20] 도쿄 1981~ 2010년 기준 8월 평년값은 26.4℃로 서울 1981~ 2010년 기준 8월 평년값(25.7℃)보다 0.7℃ 높다. 즉 서울로 치면 8월 평균 기온이 22.2℃에 머무른 것과 같다. 참고로 서울 8월 평균 기온 역대 최저치는 1936년 8월의 22.7℃이다. 1902년 도쿄 저온도 편차(anomaly)가 약간 더 심하다. [21] 비공식 기록이기는 하지만 당시 한반도에 정착해서 기상 관측을 한 뮈텔 주교의 일기에 의하면, 서울에서 1월 23~ 25일까지 사흘 동안 -22~-23℃가 관측되었다고 한다. 다만 뮈텔 주교는 기온을 작성할 때 소수점을 표기하지 않고 정수로만 표기했기에,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고 반올림값으로만 해석해야 한다. 특히 1월 24일 서울 최저 기온이 -23℃라고 적혀있는데, 반올림값인 것을 감안하면 정확한 기온은 -22.5~-23.4℃ 사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1907년 공식 기상 관측 이래 서울의 역대 최저 기온인 1927년 12월 31일의 -23.1℃보다 조금 더 낮을 수도 있다. 다만 이 기록도 신빙성에 다소 논란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22] 차이점이라면 1902년 7월, 1905년 8월에 강력한 저온 현상 한반도, 일본 열도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23] 여름철이 강조된 이유는, 가을철 9월에 발생한 늦더위로 최고 기온이 32.0℃로 갱신되었기 때문이다. [24] 인천, 부산과 비슷한 시기에 관측이 시작된 목포는 아쉽게도 연속성이 보장되는 관측이 1906년 1월 1일부터 시작되어 1905년 여름철의 기록은 거의 없다. 다만 최고 기온만 적혀 있는 7월 17일은 30.7℃를 기록했다고 한다. [25] 아닌게 아니라,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을 빠르고도 길게 받는 일본 도쿄조차 7월 평균 기온 23.3℃, 8월 평균 기온이 22.2℃ 도쿄 관측 사상 가장 낮은 8월 평균 기온을 기록했고, 최고 기온도 32.9℃로 폭염이 기록되지 못했다. 8월 평균 기온 22.2℃ 기록을 서울의 평년으로 치환할 시 21.4℃ 2020년 9월과 같다. 이를 통해 서울 역시 7~ 8월 평균 기온이 22~23℃선에 불과했을 것으로 보이나, 아쉽게도 1905년 서울에서 공식 기상 관측이 시작되기 2년 전이라 공식적인 자료가 없어서 막연하게만 추측할 수밖에 없다. [26] 1892년 서울 인천 모두 공식적인 기상 관측이 없었으나, 일제에 의해 비공식적으로 관측된 해관기상관측 자료에 의하면 1892년 2월 16일 인천의 최저 기온이 -16.6℃를 기록했다고 한다. 인천이 이 정도였으니 서울은 같은 날 -17~-18℃까지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공식 기상 관측 이후 2월 중순에 이 정도로 기온이 내려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27] 이중 서울의 기록은 나무위키에서 한파/대한민국, 이상 저온/사례, 이상 고온/사례, 폭염/사례 문서에서 기본적으로 인용된다. 만약 서울의 기록이 없다면 인천, 부산, 대구( 폭염 한정)의 기록이 인용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전란 중이던 1951년 1~ 3월 전주 수원(비공식)의 기록이 인용되었다. [28] 서울은 이때 기상 관측 시작까지 불과 다섯달 전이라 기록이 없으나, 5월 10일 중 가장 낮은 기온이 4.6℃이고 시기는 1916년 1917년이다. 이때 인천도 둘다 7.9℃가 찍혔는데, 단순 비교하자면 1907년 5월 10일 서울의 최저가 3℃에 불과했던 셈이 된다... 물론 이는 단순 비교에 불과하다. [29] 기록상 오류로 보인다. 당시 서울은 19°C였던 걸로 보아 10℃ 단위로 오기한 듯. 인천 기온 기록은 공식 기록임에도 이렇게 오류가 난 듯한 기록이 은근히 많은데 아직도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 [30] 2월 3일 -10.8℃, 2월 4일 -10.3℃, 2월 5일 -11.6℃, 2월 6일 -13.3℃, 2월 7일 -15.8℃, 2월 8일 -11.3℃, 2월 9일 -11.4℃, 2월 10일 -10.6℃, 2월 12일 -12.4℃, 2월 13일 -12.3℃, 2월 17일 -13.0℃, 2월 18일 -12.9℃, 2월 19일 -11.0℃ [31] 1위는 1947년(-5.3℃), 2위는 1945년(-4.9℃), 공동 3위는 1936년 1968년(-4.4℃), 5위는 1957년(-4.3℃) [32] 1908년 당시의 사람들이 추운기온에 더 익숙했고 하물며 최고기온도 1908년이 더 높았다. [33] 5월 4일 5.2℃, 5월 14일 5.7℃, 5월 15일 5.5℃ [34] 가장 최근인 2021년 5월 첫날의 경우 오후 3시에 9.3℃를 기록, 그 다음 날은 7.3℃를 기록했으며 그 뒤로도 계속 5월 11일까지 대부분의 날들이 한 자릿수 기온이고 최고 기온도 17~19℃에 그치자 역대급 이상 저온으로 쌀쌀하다는 말이 많았는데, 5월 중순에 연속으로 5℃대까지 떨어졌다는 말은... 심지어 상반기 중 마지막으로 최저 기온이 한 자릿수를 기록한 날이 [[5월 24일|5월 [35] 실제로도 이상 고온이 심하게 나타났던 2022년 4월의 월평균과 거의 같으며, 1998년, 2024년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밀린다. [36] 1991년 2022년 8월 28일과 비슷하다. [37] 10월 30일-0.3℃ 기록. 다만 어디까지나 '기록상' 최초일 뿐, 일제강점기 시절과 10월 평균 기온이 비등하거나 더 낮았던 것으로 보이는 구한말에도 이미 10월에 빈번하게 영하를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후술할 1934년 10월에 기록된 것도, 어쩌면 구한말 시기에 더 빠르게 기록했을지도 모른다. [38] 1911~1940 기준 10월은 13.1°C 이다. [39] 서울의 기상 관측은 1907년부터 시작되어 1901~ 1930년 기준 평년값은 알 수 없으나, 1911~ 1940년 기준으로는 평년보다 1.8℃ 낮다. [40] 1월 22일 기록 [41] 2월 6일 -11.7℃, 2월 7일 -13.2℃, 2월 8일 -11.2℃ [42] 2월 12일 -11.5℃, 2월 13일 -12.7℃, 2월 17일 -10.7℃, 2월 20일 -10.9℃ [43] 2월 21일 -12.7℃, 2월 22일 -12.8℃, 2월 23일 -12.4℃ [44] 3월 하순에 이를 능가할 정도로 추웠던 해는 기록적인 폭설을 동반한 꽃샘추위가 찾아온 1922년밖에 없다. [45] 6~8일, 10~12일, 15~16일, 19일 [46] 6월 10일 11.2℃, 6월 11일 12.4℃, 6월 12일 11.7℃ [47] 12월 11일 -10.5℃, 12월 12일 -11.2℃, 12월 13일 -12.4℃, 12월 14일 -14.3℃, 12월 15일 -13.9℃, 12월 16일 -13.3℃, 12월 17일 -12.9℃, 12월 18일 -9.7℃, 12월 19일 -9.5℃ [48] 12월 24일 -12.3℃, 12월 25일 -12.5℃, 12월 26일 -14.6℃, 12월 27일 -12.2℃ [49] 1월 30일 -18.5℃, 1월 31일 -19.9℃, 2월 1일 -17.8℃, 2월 2일 -19.6℃ [50] 이 사례를 21세기에서 찾아보면 2014년 8월과 비슷하다. [51] 반대로 해방을 맞은 1945년 8월에는 한반도가 환희에 빠진 것을 날씨도 알았는지는 몰라도 때마침 8월 중순부터 더워졌고, 광복절부터 기온이 33.9℃로 올라 폭염으로 발전했으며, 처서 8월 23일에 37.0℃까지 올라 절정에 이르렀다. [52] 9월 8일의 27.0℃가 최고 기온 극값이다. [53] 10월 10일 1.3℃, 10월 11일 1.8℃ [54] 2~3일, 8~17일, 21~24일. 특히 9~13일, 22일. [55] 이는 1944년, 1954년, 2014년과도 비슷하다. [56] 12월 2일 -9.9℃, 12월 3일 -9.2℃ [57] 다만 연속성이 보장되는 관측 시작은 1912년 1월 1일부터이다. 1911년 10~ 12월도 기상자료개방포털에 자료가 남아있기는 하나 몇몇 날들은 결측되어 있고, 자료가 남아있는 날들도 대부분 최고 기온과 최저 기온만 기록되어 있다. [58] 2위는 2010년 [59] 특히 1~2일, 11~13일, 22~25일. [60] 1911~ 1940년 기준 1월 평균 기온은 -5.0℃이지만, 1900년대는 상대적으로 1910년대에 비해 1월이 덜 추운 편이라서 1901~ 1930년 기준으로 하면 평년보다 약간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61] 심지어 1911년 4월 19일에 내린 은 기상 관측 이래 서울에서 가장 늦게 내린 기록이었으나 2020년 4월 22일 서울에서 눈발이 날려서 현재는 1위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62] 만약 13일의 고온이 없었다면 8도대 후반으로 떨어져 2021년 3월에게 추월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63] 7월 23일 19.9℃, 7월 27일 18.6℃, 7월 30일 19.2℃ [64] 감이 안 온다면, 2021년 10월 17일에 기록된 1.3℃라는 (근래에 들어 상당히 드물었던) 추위보다 1℃나 낮고, 이렇게 추운 날씨가 1주일 더 빨리 온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2021년 10월 추위 당시에도 겨울옷 챙겨라는 말이 뉴스 단위로 나왔을 정도인데, 1911년 10월은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이다. [65] 당시 기상 관측이 이뤄지지 않았던 1877년 10월은 아예 1911년 10월보다도 며칠 빠르게 기온 하강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있어서, 1911년 10월도 사실 가장 빠른 사례는 아닐 것이다. [66] 다만 이는 극도로 심한 복사냉각이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며, 최고 기온은 0.1℃라는 수치에 비해서는 매우 높은 14.6℃를 기록했다. 물론 이 역시 평년보다 크게 낮은 기온이다. 그리고 2022년 8월 28일의 사례와 비슷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최저 기온이 극히 낮아서 압도적인 기록인 것은 변함없다. [67] 후술할 1935년 9월 중순에도 이러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68] 후술할 1913년보다는 살짝 높은데, 1912년 2월은 1.0℃로 고온이었고 3월 1913년만큼의 저온은 아니었으며(당시 기준으로는 평년보다 오히려 조금 높은 4.2℃이다) 1913년 여름 1912년보다 더욱 시원했기 때문이다. [69] 5월 15일 25.5℃, 5월 16일 25.2℃, 5월 17일 29.7℃. 심지어 하순에는 25℃ 이상이 아예 기록되지 않았다. [70] 특히 22~25일 [71] 다만 일교차가 커서 최고기온은 28.3℃로 평년 수준을 보였다. 이는 2022년 8월 28일과도 비슷하다. [72]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오른 현대와 비교해보면, 이상 고온이었던 2015년, 2016년, 2019년, 2021년, 2023년 9월보다 5~6℃ 가량이나 낮고, 심지어 역대 상위 1위인 2024년 9월(25.5°C)보다 무려 7.8°C나 낮다! [73] 다만 일교차가 커서 그런지 월평균 최고 기온은 의외로 최하위가 아니다. 월평균 최고 기온 역대 최하위는 1985년 9월23.9℃. 1912년 9월24.6℃ 1934년 9월과 같다. [74] 9월 11일 최저 기온이 7.8℃까지 떨어졌는데, 최근인 2020년의 예시를 비교해보면 9월 21일에 최저 기온이 13.6℃까지 떨어지니 쌀쌀해졌다는 반응이 있었고, 시간이 지나 10월 5일 1912년 9월 11일보다 조금 높은 8.5℃까지 떨어지자 더욱 추워졌다는 반응이 많았으며, 겨울이 슬슬 오는 게 아니냐는 반응도 소수 있었다. 10월 24일에는 무려 3.2℃까지 떨어졌고 체감온도 겨울이 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다만 2020년은 연 대부분의 기간 동안 고온이 강한데다가 최저 기온이 크게 내려가지 않아 평년보다 조금만 낮아도 엄청난 추위로 과장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도 9월 내내 기온이 식어가는 현상을 겪었음에도 그렇지만 8월의 늦더위는 서울의 최저 기온을 21.5℃ 아래로 떨어뜨리지 않았으며 남부 지방은 더 심했고, 그로 인해 적응이 다른 해보다 2주 정도 늦어 평년 수준~조금 낮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초이상 저온으로 느낄 수 있었다. 2020년 1~ 3월을 제외하면 평균 기온이 그닥 높지 않았지만 최저 기온의 경우 잘 떨어지지 않거나 이상 고온을 보였다. 그러므로 다른 해였다면 연례 행사로 가는 저온도 엄청나다고 느껴진 것이다. 1912년의 경우 더운 여름철 9월 상순의 늦더위를 겪어서 추운 날씨에 적응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저렇게 기온이 떨어졌으니 체감온도가 얼마나 낮았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저런 현상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9월 하순까지 갔으니... [75] 월평균 기온이 1981~ 2010년 5월과 맞먹을 정도이며 2006년 10월보다도 낮다. 여담으로 같은 기온이어도 9월 5월보다 낮의 길이가 짧고, 여름의 더위에 적응된 몸을 가지고 있어서 체감온도가 더 낮기 때문에 5월같은 날씨가 9월에 나타나면 실제로는 더 춥게 느껴진다(반대로 9월같은 날씨가 5월에 나타나면 한여름 날씨처럼 느껴진다. 최저 기온도 높을 경우에는 체감상 열대야에 가깝다. 2014년, 2018년, 2020년 5월 일부가 이러했다). 이렇게 최저 기온이 빨리 떨어진 이유는 1912년 8월 시베리아 중부 일대가 저온을 보였는데 그 여파가 동아시아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76] 월평균 기온이 2020년 4월, 2011년 11월과 맞먹는 수준이다. [77] 역시 9월처럼 10월도 월평균 최고 기온은 최하위가 아니다. 월평균 최고 기온 역대 최하위는 1926년 10월17.1℃ 1912년 10월보다 0.4℃ 낮았다. 월평균 기온이 1926년 10월보다 1912년 10월이 0.4℃ 낮았던 것과 반대되는 부분이다. [78] 10월 17일 -0.6℃, 10월 22일 -0.1℃, 10월 23일 -1.2℃, 10월 30일 -0.1℃ [79] 한술 더 떠서, 역대 가장 높은 1월 평균 기온을 기록한 2020년 1월보다도 0.2℃ 낮으며, 같은 11월끼리 비교해보면 역대 가장 높은 11월 평균 기온을 기록한 2011년 11월보다 무려 9.3℃나 낮다. [80] 한파는 해가 넘어가면서 더욱 강해져 1913년 2월 상순 2월 9일에 -19.6℃를 기록했으며, 1913년은 매우 잦은 저온 현상으로 서울 연평균 기온이 10.0℃로 1912년보다 약간 낮아 역대 최저 3위를 달성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그러나 10월에는 유일하게 서울에서 30℃를 넘는 늦더위가 찾아온 점이 흥미롭다. [81] 1위는 1947년의 9.6℃, 2위는 공동인 1917년 1936년의 9.8℃이다. 1936년 12월이 비교적 덜 추웠던 것과는 달리 1913년 12월도 같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한 2017년 12월 수준으로 상당히 추웠다. [82] 1950~ 2000년대까지는 서울에서 이렇다 할 폭염 1994년 폭염을 제외하고는 별로 없으나, 의외로 1880~ 1940년대에는 현재까지도 전설로 남아있는 폭염 기록들이 상당히 많다. 1939년 폭염, 1942-1943년 폭염 등이 그 예시이다. 일제강점기~해방 초기에는 저온이 심한 해( 1916년, 1925년, 1936년, 1940년, 1941년, 1947년, 1957년, 1965년 등)에도 최고 기온이 폭염일수를 충족시킨 날은 적어도 하루 이상 있었다. 단 열대야가 없는 경우는 많았다. 한편 서울에서 폭염이 없던 해는 1913년, 1969년, 1979년, 1980년, 1986년, 1987년, 1992년, 1993년, 1998년, 2003년이다. [83] 여담으로 1913년 여름은 굉장히 특이한 여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중부 지방은 강수량이 그다지 많은 수준은 아니었으나 기록적 저온이 발생하였다. 하지만 대구 7월 하순에 38℃가 넘는 기록적 더위를 보였다. 중부 지방과 남부 지방이 동시기에 전혀 다른 기온 양상을 보였다는 점에서 굉장히 특이한 여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대구 7월 28일38.9℃를 기록했고 8월 17일까지도 38.6℃를 기록했다. 다만 대구와 비슷한 위도에 위치한 전라북도 지역은 이 당시에 아직 기상 관측이 시행되지 않았기에, 남부 지방이 얼마나 더웠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어서 여러모로 아쉽다. 1913년 여름의 미스테리 [84] 2020년과 반대라고도 볼 수 있다. 이쪽은 상반기의 고온이 너무 심해서 기록적 저온이었던 7월과 그 밖에도 4월, 5월 일부, 10월 등이 저온 현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평년보다 매우 높았다. [85] 다만 하순에도 한파가 조금 남아있어서인지 2월 24일 2월 27일에 -10.2℃를 기록했다. 물론 현대와 달리 일제강점기에는 2월 하순에 -10℃ 이하를 기록하는 일이 흔했지만... [86] 최고 기온은 3월 14일까지. [87] 3월 7일 -12.0℃, 3월 8일 -10.8℃, 3월 9일 -10.2℃ [88] 중순의 고온 현상이 없었다면 1915년, 1916년, 1936년, 1957년 수준의 매우 추운 3월이 되었을 법도 하다. [89] 특히 최저기온. 4월 14일, 4월 21~ 22일, 4월 30일 제외, 4월 13일 4월 15일, 4월 19~ 20일은 최저 기온 한정으로 저온이었다. [90] 여담으로 반대의 여름 날씨를 보였던 105년 후인 2018년 4월 21일도 이와 같은 기온을 보였다. [91] 4월 30일 20.6℃ [92] 5월 24일 30.0℃, 5월 25일 27.5℃, 5월 28일 25.1℃, 5월 30일 27.1℃, 5월 31일 27.0℃ [93] 그런데 정작 최저 기온은 9.2℃로 오히려 저온이었다. 사실 기상자료개방포털에서 5월 24일의 시간대별 기온을 보면 오전 6시에 10℃에도 미치지 못했던 기온이 오전 10시에 19.1℃로 상승하더니, 오후 2시에 26.6℃까지 올랐고 오후 6시에는 저녁인데도 오히려 더 올라서 29.6℃를 기록했다. 즉 5월 24일의 최고 기온 30.0℃는 오후 1~2시가 아닌, 오후 6시 쯤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이를 통해 5월 24일 오전까지는 저온을 띄다 오후부터 급속도로 고온이 유입되어 단 몇 시간 만에 날씨가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94] 사실 이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2006년 10월 19일 2020년 9월 17일가 없고 평균 운량도 '흐림'이 아닌 '구름많음'인데도 최저/최고 기온의 편차가 작았다. [95] 6월 14일 기록 [96] 특히 6월 16일 서울에서 최고 기온이 21.0℃를 기록했다. [97] 6월 23일 기록 [98] 한편 이날 최저 기온은 6월 중 가장 낮아 13.3℃를 기록하며 5월 하순같은 날씨를 보였다. [99] 25~31일 제외. [100] 이는 2018년 4월월평균기온과 맞먹는다. [101] 1위는 1976년 7월 3일에 기록된 12.9℃로 겨우 0.1℃ 차이난다. [102] 이는 마치 2020년 같은 날을 연상케 한다. [103] 이마저도 하순의 폭염으로 인해 오른 값이며, 만약 25일 이후에도 폭염이 없었고 저온이 계속 이어졌다면 아예 22℃대에 그쳐 순위권으로 낮았을 가능성이 있다. [104] 8월 상순에도 최고 기온이 8월 1일 8월 8일의 31.7℃가 극값이었을 정도로 더위가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8월 하순까지 이와 같은 기온이 이어지며 중하순의 최고 기온은 그리 눈에 띄는 저온이 아니었다. [105] 8월 1일 23.1℃, 8월 2일 22.0℃, 8월 10일 22.6℃ [106] 특히 8월 3일부터 나흘간은 최저 기온이 크게 낮았는데, 일별로는 8월 3일 17.4℃, 8월 4일 16.9℃, 8월 5일 17.0℃, 8월 6일 17.6℃였다. 주로 1년 중 가장 더울 시기인 8월 상순에 17℃까지 내려갔다는 것은 매우 기록적이다. [107] 1위는 1940년 8월 26일13.5℃이다. [108] 다만 8월 28일 최고 기온은 28.1℃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9월 하순에 이러한 최고 기온은 이상 고온에 해당하므로, 일평균 기준으로는 9월 초중순 수준이다. [109] 9월 1일 12.4℃, 9월 2일 12.5℃, 9월 3일 13.2℃, 9월 4일 13.4℃, 9월 5일 13.9℃ [110] 9월 19일 21.5℃, 9월 20일 21.3℃ [111] 9월 21일 8.0℃, 9월 23일 8.7℃, 9월 24일 8.0℃ [112] 동년 6월과 양상이 비슷하다. 월초는 평년 수준이었지만 중하순의 저온이 강한 것, 월평균 기온이 두 달 모두 각 월에서 역대 최저 7위를 기록한 것 등. [113] 특히 10월 24일, 27~28일, 31일. [114] 늦더위가 일상이 된 2010년대 이후의 10월도 깨지 못한 기록이다. 9월이 저온이었음을 감안하면 이날의 체감온도는 습기빠진 폭염 수준이다. [115] 심지어 동년 5월 9월보다도 최고 기온이 높았다. [116] 10월 11일 11.7℃, 10월 15일 12.4℃ [117] 다만 이것도 당시 기준으로 심한 저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118] 일제강점기는 이보다 추운 11월도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전년도인 1912년 11월이 압도적인 차이로 역대 최저 1위를 기록하며 매우 강한 저온을 보였다. [119] 12월 18일 -16.9℃, 12월 19일 -16.3℃ [120] 물론 1910년대 기준 서울 연평균 기온은 약 10.7℃인데, 이를 감안하면 평년보다 약 1.3℃가량 높아 2023년급의 이상 고온이다. 하지만 4월에는 꽃샘추위가 일부 존재해서 현대 평년보다는 확연히 낮다. 그러나 당시 기준으로는 평년과 비슷했다. 무엇보다 1914년 1910년대 중에서 그나마 가장 따뜻했다는 것이지, 지구 온난화로 사계절 모두 기온이 오른 현대와 비교하면 당연히 추운 편이다. 그 춥다는 2011년과 같았으니... 비공식 기록들까지 포함하면 1890년, 1894년보다 낮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21] 7월 26일 기록 [122] 6월 24일 기록 [123] 4월 3일 0.8℃, 4월 4일 0.2℃, 4월 5일 0.1℃, 4월 6일 0.8℃, 4월 7일 0.8℃, 4월 8일 1.1℃, 4월 9일 1.2℃, 4월 10일 1.8℃ [124] 10~ 11월 일제강점기 치고는 고온이었다. [125] 정확히 100년 뒤인 2015년 12월도 이상 고온을 보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126] 1월 중순에 매우 강한 한파로 역대 최저 기록을 싹쓸이하고 며칠 후 다시 평년 기온으로 돌아갔다는 점이 1931년과 매우 유사하다. 1931년 3월 5월 저온 1915년보다 강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4월의 역대급 꽃샘추위로 월평균 기온 역대 최저 1위 기록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6월 1915년보다는 높았다. [127] 만약 11일, 16~20일도 강력 한파가 있었다면 평균기온이 -10℃를 밑돌면서 역대 최하위를 기록할 가능성도 있었다. [128] 이게 단 하루만 미루어져서 3월에 나타나도 난리가 났을지도 모른다. 날짜가 며칠 미루어져 해당 월에서 기록적인 저온 현상이 나타난게 1976년 7월 3일이다. [129] 이는 현대의 1월 평균 최저 기온(약 -5℃)보다도 무려 9℃나 낮은 값이다. [130] 그런데 한파가 찾아온지 바로 며칠 뒤인 3월 4일에는 최고 기온 16.7℃, 최저 기온 2.5℃로 올랐다가 다음 날에 다시 급락했다. 1주일 안에 천국과 지옥의 날씨가 오간 셈이다. [131] 4월 23일 1.7℃, 4월 24일 1.1℃ [132] 우연이지만 1915년 4월 2010년 4월이 달력 모양과 음력 날짜가 유사하다. [133] 12월 18일 -12.0℃, 12월 19일 -12.8℃ [134] 라니냐는 2년 후인 1918년 2월에 풀렸다. [135] 1915년 12월 0.8℃, 1916년 1월 0.0℃, 2월 -0.8℃로 1월, 2월만 간신히 넘고 12월보다 낮다. 그리고 1월은 한 해 중 가장 추운 시기인 만큼, 1월 평균 기온이 0.0℃이면 일제강점기는 물론 현대와 비교해봐도 2℃ 가량 높은 기온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상 고온/사례 문서 참조. 실제로 기온이 압도적으로 높아 전국 1월 평균 기온 역대 최고 1위를 기록했던 2020년 1월 서울 월평균 기온(1.6℃)이 기록되기 전까지는 1월 평균 기온이 영상 1℃ 이상을 기록한 해는 없었다. [136] 이는 역대 가장 낮은 3월 평균 기온을 기록한 1936년 3월의 -0.3℃보다 조금 높은 값이며, 2위는 1957년 3월의 0.0℃이다. [137] 11월 28일 -8.2℃, 11월 29일 -8.6℃, 11월 30일 -9.7℃ [138] 라니냐는 이듬해인 1918년 2월에 점차 물러갔다. 이 정도로 라니냐의 정석을 보여준 해는 현재까지도 없다( 1892~ 1893년은 기온 자료가 없으므로 예외). 다만 라니냐의 특징 중 하나인 8월 하순~ 10월 늦더위는 큰 특이사항이 없었다. [139] 1963년 1월 평균 기온은 1917년보다 약간 낮았지만, 일제강점기처럼 연 전체에 강력한 저온 현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연평균 기온은 결국 순위권 밖이다. [140] 1912년(5.1℃), 1913년(4.9℃)은 물론 1936년(5.3℃), 1947년(5.0℃)보다도 낮다. [141] 3위는 1913년(9.9℃), 4위는 1936년(10.0℃) [142] 1981~2010년 서울보다도 더 낮다. [143] 2위는 1936년(12.5℃), 3위는 1947년(12.6℃) [144] 2위는 1947년(11.4℃), 3위는 1936년(11.5℃) [145] 1917년 1월 22일 서울 최저 기온 -21.1℃, 1963년 1월 23일 서울 최저 기온 -18.4℃ [146] 1963년은 최저 기온은 1917년처럼 -20℃ 이하를 기록하지 않고 -18.4℃에 그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평균 기온 역대 최저 1위를 기록한 이유는 일 최고 기온이 매우 낮은 날이 한 달 내내 이어졌기 때문이다. [147] 1917년 1월 평균 최저 기온 -14.4℃, 1963년 1월 평균 최저 기온 -13.0℃. 참고로 1936년 1월은 -13.6℃이고, 1918년 1월은 -13.4℃이다. [148] 17~20일, 27~29일 제외. 특히 5월 상순. 그 중 5월 2~3일, 5~7일, 10일이 저온이 매우 심했다. [149] 최저 1위는 1945년 5월(13.6°C), 최저 2위는 1927년 5월(13.8°C) [150] 현대에도 2016년 5월 3일, 2021년 5월 1일같이 강수로 인해 오후 3시에 9℃ 전후까지 내려간 적이 있지만 일 최고 기온은 이보다 훨씬 높았기에, 일 최고 기온 한 자릿수는 전례없는 기록이다. 그나마 2010년 4월 28일이 7.8℃라 사흘 늦으면 한 자릿수를 기록할 뻔했다. [151] 1908~ 2022년까지 114년 동안 집계된 5월 5일의 평균 최고 기온이 21.5℃이므로, 무려 11.6℃나 낮은 것이 된다. 단순 비교로 2018년 1월 24~ 27일 사이에 낮 최고 기온 -10℃를 찍을 때 평균 최고 기온이 0℃대로 10℃에 이르는 차이를 보였는데, 1917년 5월 5일은 이보다 더욱 심하다. 아마 당시 체감온도는 정말로 한겨울과 같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52] 차이점이 있다면 4월 하순은 복사냉각의 영향으로 최고와 최저평균의 격차가 컸지만, 5월은 흐렸던 날이 많은 탓인지 평균 격차가 적다는 점이다. 참고로 역대 4월 하순 최하위가 10.0°C, 역대 5월 중순 최하위가 13.1°C이다. 이 정도면 5월 하순 최하위는 11.5°C 전후 정도 되어야 하나 실제로 10.4°C가 기록된 것은 다른 기간보다도 훨씬 심한 저온이 찾아왔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모스크바 수준이다. [153] 특히 5월 26일에는 최저 기온이 8.0℃에 불과했다. [154] 1위는 1945년 5월12.8℃ [155] 하위 2위가 17.6°C(1927년 5월)이니 압도적 최하위이다. 2021~2024년 4월 최고기온 평균보다도 낮다. 심지어 역대 10월 최고기온 평균 최하위(16.9°C, 1926년 10월, 1986년 10월)보다도 0.1°C 낮고 11월 최고기온 평균 1위(15.4°C, 2022년 11월)과도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156] 5월 19일과 5월 29일 기록. [157] 1~3일 제외 [158] 최고 기온이 가장 높았던 날은 6월 16일로 36.7℃였다. 게다가 7월 31일 8월 2일에도 36.6℃까지 오르는 등 8월 상순까지 폭염이 이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폭염/사례 문서 참조. [159] 정확히 100년 뒤인 2017년과 비슷한 케이스이며, 2017년에도 8월 상순에는 무더위가 지속되다가 8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기온이 빠르게 떨어져 중하순에는 이상 저온으로 때이른 초가을 날씨를 보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160] 역대 11월 평균 최하위였던 1912년 11월과 동급이다! [161] 11월 5일, 11월 7일 -2.2℃, 11월 10일 -2.7℃ [162] 만약 12월 1~2일, 9일의 고온이 없었다면 1944년 12월을 능가하는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을 것이다. [163] 월평균 기온은 1917년 1월보다 높지만 최저 기온은 1918년 1월이 더 낮았을 정도이다( 1917년 1월 22일 서울 최저 기온 -21.1℃, 1918년 1월 3일 서울 최저 기온 -21.8℃). 다만 1918년 2월부터는 라니냐의 쇠퇴로 한파가 점차 풀려 중순의 반짝 한파를 제외하면 최고 기온은 3월같이 따뜻했다. 1917년 12월은 한 달 내내 장기 한파를 보인 1944년 12월과는 달리 초중순까지 눈에 띄는 추위 없이 보내다가 12월 15일부터 본격적으로 한파에 돌입했는데, 한파의 기간이 1944년 12월의 절반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월평균 기온이 1944년 12월과 거의 비슷한 값을 보였다는 점에서 1917년 12월 한파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위엄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다만 11월은 유난히 따뜻했던 1944년과 달리 1917년은 바로 위에 서술했듯이 11월도 최하위권에 속할 만큼 강한 저온을 보였다. 게다가 기상자료개방포털 자료 기준으로 음수는 사사오입을 하지 않기 때문에, 1944년 12월 평균 기온을 반올림하지 않을 경우 -5.7℃가 되어 1917년 12월과 같아서 공동 최저 1위가 된다. [164] 1월 상순은 아예 일평균 기온 -10℃ 이하로 뒤덮여 있다. 그래서 월평균 기온이 매우 낮았던 것. 1월 상순 이후로도 최저 기온이 여전히 영하 두 자릿수를 기록하였으며, 본격적으로 따뜻해진 시점은 라니냐가 물러간 2월부터이다. [165] 다만 2월 중순에는 잠시 한파가 찾아와서 2월 18일에 -11.4℃까지 하강했다. [166] 여담으로 이 시기에 스페인 독감 조선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저온까지 합세해 당시 사람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혔을 것으로 추정된다. [167] 다만 인천의 경우 같은 날 최저 기온 -14.4℃를 기록하여 서울보다 많이 따뜻했다. 사실 1917~ 1918년 겨울의 진행 양상을 보면 서울 인천이 좀 다른데, 서울의 경우 12월 15일에 -12℃ 이하로 내려가며 시작된 한파가 하순에 훨씬 강해져서 12월 27일에 -20.4℃를 기록한 뒤, 이듬해 1월 1~ 2일 사이에 따뜻해졌다가 1월 3일에 -21.8℃로 크게 낮아져서 극값을 재경신했고 1월 8일에도 -20.5℃를 기록하는 등 매우 추운 날씨가 상순 내내 이어지다 중순이 되어서야 한파가 한 풀 꺾였다. 반면 인천 서울과 마찬가지로 12월 15일부터 -12℃ 이하의 한파가 시작되었고 하순에 매우 추워져 12월 27일에 -17.9℃로 가장 낮았지만, 이후로는 -15℃ 이하의 한파가 찾아오지 않았고 1월 3일에도 -14.4℃에 그쳤으며, 남은 1월 상순도 -14℃ 이하의 한파가 없었다. 12월까지는 한파의 진행이 비슷하지만 1월 서울 인천의 기온 차이가 상당히 컸기 때문에(특히 1월 5일 최저 기온은 서울 -19.3℃, 인천 -11.2℃로 8℃ 이상의 차이가 나며 다른 날들도 7℃ 정도의 차이를 보였다), 1918년 1월 서울의 최저 기온은 1927년 12월 31일, 1922년 3월 25일과 마찬가지로 관측소 오류 의심일 가능성도 있어보인다. 허나 오류가 아니라 추위가 인천보다 서울에 더 집중되었다고 하며 낙원동에 있어서 복사 냉각이 심했다고 하면 오류가 아닐 수도 있다. [168] 9월 20일 8.7℃ [169] 1919년 여름 서울에서도 상당히 더운 축에 속하는 여름이다. 1919년 여름의 최고 기온 극값이 8월 1일37.5℃였는데, 지구 온난화 열섬 현상이 심화된 현대와 비교해도 2018년을 제외하면 2010년대 어느 해보다도 높고 기상 관측 전체로 확대해도 이보다 높은 최고 기온을 기록한 해는 1939년, 1943년, 1949년, 1994년, 2018년 뿐이다. 즉 현대에 들어서도 기록적인 수준의 폭염 1910년대에 찾아온 셈이다. [170] 1916~ 1917년, 1917~ 1918년 겨울 1월을 중심으로 매우 기록적인 한파가 찾아왔고, 1915~ 1916년 겨울은 정반대로 이상 고온을 보였으며, 1914~ 1915년 겨울은 전체적으로 따뜻했지만 1월 중순과 2월 하순에 역대 기록들을 경신할 정도의 한파가 찾아왔다는 특이점이 있어서, 1918~ 1919년 겨울은 이전에 있었던 겨울들에 비하면 (당시 기준으로) 오랜만에 찾아온 평범한 겨울이었다고 볼 수 있다. [171] 비교적 현대인 1996년 기준으로는 상당히 낮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조금만 낮다. [172] 9월 17일 8.6℃, 9월 18일 9.6℃ [173] 11월 19일 -5.4℃ [174] 다만 서울 기준으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한 달은 없다. [175] 다만 5월 한정으로 강릉에 엄청난 저온이 있었다. [176] 특히 1월 1~5일, 8~9일, 14~18일, 23~24일, 2월 9~13일. [177] 1월 상순으로 한정하면 역대 최저 기온 1위이다. [178] 사실 이것도 월말인 1월 28~ 31일 고온이어서 그렇지 한파가 본격적으로 찾아오며 일평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기 시작한 1919년 12월 28일부터 1920년 1월 27일까지 31일간의 일평균 기온을 합산하여 평균을 계산해보면 -8.0℃ 1922년, 1945년 1월보다도 낮다. 즉 1919~ 1920년 한파가 단 나흘만 늦게 찾아왔으면 월평균 기온이 역대 최저 5위를 기록했을 것이다. [179] 특히 최저기온이 기록적으로 낮은 날이 많아서 월 최저기온 평균은 -12.7°C로 역대 최저 8위였다. 반면 일교차가 매우 커서 최고기온 평균은 -1.9°C였다. 1월 4일에는 최저기온은 -22.3°C인데 최고기온은 -8.5°C였고 다른 날도 일교차가 10°C 이상인 날이 많았다. 기묘하게도 정확히 100년 뒤인 2020년 1월에는 한파는 커녕 제대로 된 추위도 없이 역대급 초고온으로 1월 평균기온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180] 2월 중순 역대 최저 1위 기록 [181] 7일, 12일, 15~16일, 24일 [182] 4월 6일 -0.7℃, 4월 8일 -0.5℃ [183] 6월 2일 9.6℃, 6월 3일 9.3℃, 6월 6일 9.8℃. 이중 6월 6일의 기록은 관측 사상 가장 늦게 기록된 한자릿수 기온으로 남게 되었다. [184] 이는 최근 이상 고온이었던 2019년, 2021년 9월보다 0.1℃ 높은 수치이다. [185] 참고로, 1912년 9월도 하순에는 23℃를 넘겼다. 다만 그게 전부인 것이 문제. [186] 100년 뒤인 2021년 1월이 명확한 반대 사례를 보였다. 당시에도 1월 13~ 15일 고온이었지만 상순의 강한 한파가 있어서 여전히 평균 기온이 -5℃ 이하로 21세기 치고 매우 낮았는데 하순의 초고온으로 인한 평균 기온 역전 현상이 일어났던 점. 따라서 월평균 기온만 놓고보면 심한 한파와 심한 고온 없이 평범했다고 착각할 수 있다. [187] 현대 기준으로는 평년 수준이다. [188] 8월 상순까지 그럭저럭 더위가 적었으나 광복절 전후로 폭염이 찾아온 것. [189] 특히 17~25일, 28~31일. 그 중 19~21일, 30~31일의 편차가 매우 강했다. [190] 10~17일, 29~31일 제외. [191] 2021년 [192] 3월 하순에 이러한 기온은 관측 사상 전무했으며( 3월 중순만 해도 -10℃ 이하를 기록한 해가 없으며 3월 9일까지 올라가야 -10℃ 이하를 기록한 해가 나온다), 3월 평균 기온이 계속 올라가는 현대의 날씨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비유하자면 한겨울 서울이 -23℃ 이하로 떨어져 역대 최저 기온 극값을 재경신하는 것만큼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며 인천과 기온 차이를 보면 원리도 이와 똑같다. 인천은 3월 24일 -4℃, 25일 -3.5℃밖에 떨어지지 않아서 서울과 차이가 많이 난다. 따라서 송월동으로 옮기기 전인 1927.12.31이나 1922.3.25나 강한 복사냉각으로 유난히 서울이 낮게 나온 것으로 보인다. 가장 [193] 3월 21일 3월 24일 서울 최고 기온이 각각 1.4℃, 1.2℃였다. [194] 정확히 100년 뒤인 2022년 10월 10일에도 한기 유입으로 인해 강력한 초이상 저온이 찾아왔다는 점이 흥미롭다. 또한 최고 기온 역시 1922년보다 2022년이 더 낮았다( 1922년 12.5℃, 2022년 11.9℃). 이는 평년 11월 수준이다. [195] 다만 차이점이라면 1923년 8월 초중순에 서울에서 더위가 가장 강했다. [196] 그 다음으로 1926년 4월 22일0.3℃가 0℃대의 마지막 커트라인이다. [197] 3월 21일 1.3℃, 3월 22일 0.5℃, 3월 30일 1.5℃ [198] 3월 11일 -5.3℃, 3월 14일 -6.8℃, 3월 15일 -7.0℃, 3월 16일 -6.6℃, 3월 17일 -5.7℃, 3월 18일 -5.1℃, 3월 19일 -6.0℃ [199] 3월 13일 2.3℃, 3월 14일 2.0℃ [200] 3~6일, 17~20일, 26~29일 단 6일, 19일, 28일은 최저기온 한정 [201] 8~17일, 24~28일. 특히 9~16일, 25~27일 [202] 이후 반세기도 더 넘은 56년 동안 기록을 지키고 있다가 1981년 2월 26일(-15.6℃)에 경신되어 2위로 내려갔다. 다르게 말하면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게 당연하던 옛날에도 2월 하순에 -15℃ 이하로 내려가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 [203] 비슷한 예시로 1987년 4월도 평균값 상으로는 낮지만 일평균 기온의 중앙값은 그리 낮지 않다. [204] 8월 22일 33.1℃, 8월 27일 33.6℃ [205] 사실 7월 하순에도 가 그치고 더위가 와서 폭염일수를 기록한 날이 있기는 했다. [206] 이는 1925년에 분화한 백두산의 영향일 가능성도 있다. [207] 서울보다 그나마 더 따뜻할 것 같은 대구는 아예 영하를 찍먹한 수준이 아니라 -2.1℃까지 내려가며 옛 시대 특유의 최저기온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역대 4월 하순 중에서는 유일하게 이 날만 영하이다. [208] 순별로 따져보면 중순 최저평균이 2.4℃이고, 하순4.4℃였다. 4월 중순은 둘째치고, 아무리 쌀쌀한 일제 시절 때도 4월 하순쯤 되면 기온 상승세에 가속이 붙는게 일반적이었고, 전후 년도들도 4월 하순 최저평균이 7~8℃선이었으며, 현대에는 낮은 축으로 취급되는 2010년, 2011년, 2020년 4월도 6~7℃선이었다. 그런데 유독 이 해에는 4월 하순에도 4℃선에 그칠 정도로 도무지 따뜻해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특히 최고기온은 4월 하순의 경우 현재와 큰 차이가 없다. [209] 이후의 여름 날씨를 요약하자면 7월 15일 8월 15일에 33.0℃를 기록했지만 7~ 8월은 심한 저온까지는 아니지만 매우 평범한 날씨가 지속되어 33℃를 넘은 날은 없어 여러모로 무난한 여름에 속했다. [210] 10월 평균 기온 역대 최저인 1912년 10월(17.5℃)보다 낮았다. [211] 12월 25일 -16.3℃, 12월 26일 -16.2℃ [212] 그래도 12월 중순은 고온이라서 월말에 서울 역대 최저 기온 극값을 기록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월평균 기온은 -2.0℃로 평년보다 조금만 낮았다. [213] 특히 1월 19~ 23일 [214] 월평균 최고 기온은 [215] 10월 14일 0.8℃, 10월 15일 1.2℃, 10월 16일 0.8℃ [216] 특히 12월 28~ 31일 [217] 하지만 이 -23.1℃ 기록은 공식 기록임에도 신빙성이 다소 의심된다. 같은 날 인천은 최저 기온이 -13.5℃에 불과했으며 전날까지 합쳐도 -14.2℃, 강릉이 -10.2℃, 남부 지방도 영하 한 자릿수로 오히려 평년보다 크게 낮지 않은 기온을 기록했는데, 서울 혼자 -23℃ 이하로 떨어져 역대 최저 기온 1위를 기록했다는 점이 다소 의문스러운 부분. 제주도는 당일 최저 기온이 아예 영상권이었다. 서울 공식 기상관측소가 이날만 유난히 반사율(알베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혼자 이렇게 추웠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래도 논란이 많은 기록이기는 하다. 다만 비공식적으로 같은 날 서울 북쪽의 철원에서 -31.0℃까지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고 횡성도 -29.8℃를 기록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마냥 신빙성이 의심된다고 보기도 어렵고... 내륙쪽에 반사율이 심해서 그에 따른 복사냉각으로 기온이 내려간 것으로 추정되며 이당시엔 서울이 도시 규모가 작아서 시골마냥 기온이 크게 내려갔을 확률이 높다. [218] 사실 서울의 시간별 기온페이스를 보면 1927년 12월 31일은 의외로 말이 되는 흐름을 보여주는 반면 1928년 1월 5일은 새벽에 기온이 1도 이상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22.2도라는 매우 낮은 최저기온을 기록했다는 것에서 후자가 더 의심이 되는 기록이며 1922년 3월 25일도 서울만 혼자 -10.2도를 기록해서 이쪽도 신빙성 논란 주장이 있긴 하다. 하지만 한파 기록은 거시적인 시베리아 기단뿐만 아니라 역전층, 복사냉각 같은 미시적인 요인으로도 크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 기록이 거의 유력하다. 양평 -32.6℃ 같은 기록은 역전층 같은 미시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반면 1979년 11월 14일은 인천이 더 낮았으며 전국적으로 낮아서 이런 주장이 없다. 낙원동이나 송월동이나 한두블럭 차이라 송월동에 있어도 1~2도정도만 높고 큰 차이가 없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 당시엔 서울이 높은 빌딩이 많이 없었으며 인구도 현대 기준으로 중소도시 급이라 시골마냥 기온이 크게 떨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게 사실이라면 외려 19세기엔 -25~-26도까지 떨어졌을 가능성도 있으며 수원이 현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25.8도를 기록한 적이 있다. 일본에서는 아사히카와시가 현대에 -25도 이하로 잘 안떨어져 이러한 유형의 논란이 없지 않지만 대개는 복사냉각, 역전층 등 이런걸로 보고 있다. [219] 하지만 현대의 기준으로는 저온에 속한다. [220] 1월 9~ 10일, 1월 16~ 19일, 1월 21~ 28일 제외 [221] 특히 1월 1~ 8일, 1월 12~ 14일 [222] 정확히는 반올림 -21℃ 이하가 사흘 동안 이어졌는데, 1915년 1928년 모두 -20.9℃를 기록한 날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1915년 1월 12일에 -20.9℃였고, 1928년 1월 6일에 -20.9℃였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1915년 1월 15일에도 -20.5℃였기 때문에 반올림으로 치면 나흘 연속 -21℃ 이하이다. [223] 다만 기상 관측 이전인 1904년 1월에는 비공식이기는 하나 서울에서 1월 23~ 25일까지 사흘 연속으로 반올림 -22℃ 이하의 초강력 한파가 이어진 적도 있다. [224] 최근의 사례로는 2017년을 예시로 들 수 있는데, 2017년은 최고 기온이 빨리 떨어졌으나 1929년은 최저 기온이 빨리 떨어지면서 8월 하순 내내 19℃ 이하를 보인 날이 많았으며 8월 29일에는 16.2℃까지 떨어졌다. [225] 9월 17일 8.7℃, 9월 20일 8.6℃, 9월 21일 9.7℃ [226] 이는 50년 전인 1879년 하반기와 비슷하다. 8월의 폭염, 9~ 11월 저온, 12월 고온 강수량 등등... [227] 자세한 내용은 이상 고온/사례 문서 참조. [228] 당시 기준을 감안해도 1931년 1932년 1935년, 1937년이 따뜻한 1월이었다. [229] 1889년 11월 12일에도 인천에서 최고/최저 0.8℃ / -6.3℃ 정도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230] 기상청에서는 7.7℃로 나와 있으나 이는 오류로, 4월 하순 중 일평균 값이 1.0℃로 잘못 기록된 날이 있다. 비슷한 시기 서울의 일평균이 두자릿수라 실제로는 10.0℃로 추정되며, 이 경우 실평균은 8.0℃로 서울 평균과 살짝 더 근접하게 된다. [231] 다만 월평균 최고 기온은 2010년이 더 낮았다. 이유는 2010년 5월 2일까지 기록적인 꽃샘추위가 이어진 반면 1931년 4월 하순에 본격적으로 기온이 올라가면서 하순 평균 12.1℃로 당시 기준 평년 수준으로 차츰 회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중순의 이상 저온은 도저히 커버가 불가능해서 결국 월평균 기온은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것도 모자라서 90년 뒤, 92년 뒤인 2021년, 2023년 3월9.0℃, 9.8°C를 기록함으로써 4월 3월에 추월당한 유이한 해가 되었다. [232] 7월 13일 15.2℃, 7월 14일 15.2℃ [233] 7월 2일 30.2℃, 7월 3일 32.0℃, 7월 8일 31.2℃, 7월 16일 30.5℃, 7월 17일 31.8℃, 7월 18일 31.4℃, 7월 30일 31.4℃ [234] 묘하게도 이 최하위를 기록한 해들은 이듬해에 지옥조차 학을 뗄만한 폭염이 찾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1931년 7월 - 1932년 7월, 1941년 7월 - 1942년 7월, 1993년 7월 - 1994년 7월과 비슷하다. 그리고 2020년 7월 - 2021년 7월과도 유사성이 강하다. 그러나 1954년 7월은 21.9℃로 서울 7월 평균 기온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1955년 7월도 그다지 높지 않고 낮은 편에 속하는 24.5℃의 월평균 기온을 기록하여 예외적인 사례이다. 이는 1981~ 2010년 기준의 24.9℃보다 낮고, 2010년대에서 7월 평균 기온 최저인 2011년의 24.6℃보다도 낮다. 그리고 2018년 7월은 역대급으로 더웠던 여름이지만 그 전년도인 2017년 7월도 26.9℃로 꽤 높았다. [235] 여담으로 대한민국 이상 저온 중국 기록적인 홍수 피해가 났다는 점에서 2020년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 두 해는 달력 모양까지 같다. [236] 10월 26일 -0.5℃, 10월 27일 -2.0℃, 10월 28일 -3.0℃, 10월 29일 -1.5℃, 10월 30일 -1.0℃ [237] 5월 17일 33.5℃ [238] 물론 현대에 비해서는 확실히 낮다. 월평균 기온이 2021년 5월(17.1℃)보다도 0.1℃ 낮은데, 2021년 당시에는 약 10여 년 만에 5월이 춥다고 난리친 것을 감안했을 때 1932년 5월 2021년 5월보다 추웠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치고 평년보다 높았다고 하니, 일제강점기와 현대의 기후의 차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리고 중순의 고온도 공통점이다. [239] 1월 8일 기록 [240] 11월 8일은 최저 기온 한정. [241] 11월 평균 기온은 5.8℃로 현대 기준으로 보면 저온이기는 하나, 당시에는 저온인 것도 아니었으므로. [242] 역대 11월 7일의 최고 기온과 일평균 기온 부문에서 최하위. 다만 최저 기온은 이미 1912년 11월 7일(-7.8℃)이 기록했다. [243] 11월 29일 최저 기온이 -5.5℃로 되려 22일 전보다 높다. [244] 4월은 10.2℃로 당시 기준으로 심한 저온은 아니었다. [245] 1월 26일 1월 27일 기록 [246] 2월 4일 기록 [247] 1936년 12월도 고온이나, 현대 치고는 조금 낮다. [248] 1월 16일 -8.0℃, 1월 19일 -6.8℃, 1월 29일 -4.4℃ [249] 8월 7일 33.4℃ [250] 참고로... 갑자기 여름에서 겨울로 돌변했던 2021년 10월 17일의 최저 기온이 [251] 그마저도 상순인 12월 5일에 기록된 기온이며, 12월 6일 이후로는 -5.5℃ 이하로 내려간 날이 아예 없었다. [252] 특히 1934년 12월은 최저 기온 극값이 12월 5일의 -8.7℃로 일제강점기 12월 중 가장 높았고, 1935년 1월은 최저 기온 극값이 1월 22일의 -13.1℃에 불과해 현대 수준의 고온을 보인 1916년, 1932년을 제외한 일제강점기 1월 중 가장 높았다. [253] 실제로 2월 상순에 겨울 전체 최저 기온을 기록하는 해는 생각보다 적지 않게 존재한다. 사실 2월 상순은 12월 하순과 달리 -20℃ 이하를 기록한 적은 없었지만, 평균 기온을 비교해보면 2월 상순이 12월 하순보다 낮다. [254] 대부분 운량이 많고 강수 기록이 있어서 아마도 이 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255] 추가되는 한기가 강한 눈구름을 동반하면 이러한 현상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1928년 1월 9~ 10일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256] 심지어 이 기간 동안 편차가 1917년 1934년, 1947년조차 가볍게 넘기는 역대 최하위 기록을 줄줄이 세우며 상반기가 역대급으로 추웠다. 12월 1917년만큼 추웠다면 연평균 기온 역대 최저 1위를 찍는 것뿐만 아니라 연평균 기온 9.5℃ 이하도 불가능은 아니었을 듯하다. [257] 공동 2위는 1923년 1931년 4월 25일, 4위는 1917년 4월 23일. 벚꽃은 상반기 기온, 특히 3월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2020년 2022년 3월이 월평균 기온 7.7℃로 같지만 2022년 3월 일조 시간도 적고 2월이 추웠기 때문에 4월 4일에 핀 반면 2020년 3월 일조 시간이 많고 1~ 3월이 매우 따뜻해서 3월 27일에 개화하였다. 1월 상순에 강력한 한파가 있던 2021년 1월 하순부터 강력한 이상 고온의 누적으로 한파의 영향은 사실상 사라지고 벚꽃 3월 24일에 피어,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빠르게 개화하였다. 이를 증명하듯 1936년 3월 평균 기온이 유일한 영하인 -0.3℃로 역대 가장 낮았고 2021년 3월 평균 기온이 9.0℃로 역대 가장 높았다. 참고로 21세기에서 가장 늦게 개화했던 해는 2012년 2013년 4월 15일인데, 두 해 모두 1~ 3월 저온이었다. 2011년 1월 3월이 역대급으로 낮아도 2월이 비교적 덜 추웠던 반면 2013년은 기온이 오르려고 하면 심한 저온이 지속적으로 왔기 때문에 아마도 더 늦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2012년 역시 2~ 3월이 매우 추웠고 4월 상순까지 계속 심한 저온을 보였기 때문이다(물론 4월 중순부터 크게 올랐지만). [258] 이때는 서울 공식 기상 관측이 시작되기 전이라 인천의 해관기상관측자료를 보며 서울의 대략적인 한파 강도를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17년 1922년에 버금가는 엄청난 한파를 보였다. [259] 2월 5일 기록 [260] 2월 1~5일, 12일 [261] 이것 역시 사사오입이 미반영될 시 [262] 가장 최근인 2022년 2월 끝자락에 비로소 11.5℃까지 오르자 그제서야 날씨가 따뜻해졌다는 말들이 나왔는데, 4월이 가까워지는 3월 하순에 그제서야 10℃를 기록했다면 체감이 어떨지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아마 공중파 뉴스에서 '이례적인 강력 꽃샘추위'라는 타이틀을 달고 토크를 진행하고도 남을 일일지도 모른다. [263] 요즘에는 2~ 3월 이상 고온이 강한 추세라서 2월에도 10℃를 넘는 일이 흔해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매우 대단한 기록이다. 결국 2023년 3월이 월평균 기온 9.8℃를 기록하여 역대 최저와 최고의 격차가 10.1℃에 이르게 되었다. [264] 특히 4월 26일에는 최저 기온이 2.9℃에 불과했다. [265] 4월 7일 최고 기온 19.4℃, 4월 17일 최고 기온 22.5℃, 4월 21~ 23일도 살짝 고온이었다. [266] 만발 날짜는 아예 5월 1일로 관측 사상 가장 늦다. 참고로 그 ' 홋카이도'가 평균기온이 많이 오른 지금도 4월 하순에야 개화한다는 점에서 1936년 봄날씨가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차가웠는지 알 수 있다. [267] 물론 최저 기온이 쉽게 두 자릿수를 기록하지 않았고 몇몇 저온인 날도 있었다( 5월 4일, 5월 9일, 5월 16일, 5월 19일). [268] 6월 18일 20.9℃, 6월 26일 20.1℃ [269] 그중 7월 2일은 최고 기온 22.0℃, 최저 기온 15.6℃를 기록했고 7월 4일 7월 5일도 최저 기온이 15.6℃였다. 7월 9일도 최고 기온이 23.6℃에 그쳤다. [270] 7월 23일 기록 [271] 2020년은 최저 기온이 열대야도 하루 있었고 일평균 기온도 몇몇 날이 평년 수준이었다. [272] 8월 11일 20.4℃, 8월 19일 21.0℃, 8월 25일 20.5℃, 8월 31일 20.5℃ [273] 물론 대구 1913년 7~ 8월 평균 기온도 현대와 비교하면 이상 저온이다. [274] 8월 9일의 32.5℃가 최고 극값이었다. [275] 물론 이 정도도 현대 치고는 상당한 저온이다. 13.1℃를 기록한 2018년 10월을 생각해 보자. [276] 전체에 관측 시설이 없던 충청도로써는 첫 관측 시작이고, 경기도 다음으로 늦게 시작되었다. 사실 인천은 당시 경기도 관할이었음을 감안하면 충청도가 확실히 늦기는 했다. [277] 다만 애석하게도 12년이나 지난 1949년 1월 1일부터 제대로 된 기상 관측이 시작되었고, 그마저도 1년 뒤인 1950년 6월 1일에 전란의 기운을 감지했는지 관측을 중단했으며, 그대로 1952년 9월 30일까지 시행되지 않았다가 10월 1일부터 재개된 뒤 70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78] 참고로 이 기록 때문에 84년 뒤인 2021년 10월 17일이 일제시절급의 강한 저온을 자랑했음에도 10월 17일 극값 기록에서는 완전히 묻혀버렸다. [279] 특히 21일경의 추위는 가장 최근인 2023년 12월 21일과 대등한 추위였다. [280] 1월 11일의 -13.2℃가 1월 중 가장 낮은 기온이었으며, 이는 현대 수준의 고온을 보인 1916년 1932년, 그리고 바로 2년 전인 1935년을 제외한 일제강점기 1월의 최저 기온 극값 중 가장 높다. [281] 평년보다 고온인데다 이쪽은 강수일수가 18일이다. 그 2021년과 같다. 과거 일조 시간의 경우 오류가 뜬 자료들도 있을 것 같지만 일조 시간은 2021년이 더 적었다. 사실 1938년 3월도 매우 많은 강수일수를 보여서 다소 특이한 축에 속했다. [282] 1939년 2018년 1월 둘 중 하나를 반대로 보면 기온 분포에서 많은 부분이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순에 한파가 풀려 꽤 따뜻한 편이었고 상순과 하순에는 한파가 매우 강했다는 점이 비슷하며, 차이점은 1939년은 상순 한파 > 하순 한파였지만 2018년은 반대로 하순 한파 > 상순 한파이다. 다만 1939년 쪽이 기온이 더 낮기 때문에 월평균 기온도 -5℃ 이하로 더 낮게 나왔다. 또한 두 해 모두 여름에 매우 강력한 폭염이 찾아왔다는 것을 보니 판박이인 점도 좀 있다. [283] 4월 2~ 8일, 4월 22~ 28일, 단 23일, 25일, 28일은 최저기온 한정 [284] 1985년, 2006년과 같다. 물론 이 정도도 현대 4월에 비하면 저온이기는 하다. 1985년의 경우 당시 기준으로는 평년과 비슷했다. [285] 5월 1~ 3일, 5월 5~ 6일, 5월 8~ 17일 [286] 5월 2일 5.6℃, 5월 3일 5.1℃, 5월 9일 5.5℃ [287] 8월 22일37.7℃를 기록했다. 이 기록은 8월 하순 역대 최고 기온 2위에 해당하고, 2018년조차 0.1℃ 차이로 능가한 기록이며 이보다 높은 기록은 1943년 8월 24일38.2℃ 뿐이다. [288] 10월 19~ 24일, 10월 30~ 31일 [289] 11월 1~ 2일, 11월 10~ 14일, 11월 25~ 30일 [290] 12월 1~ 3일, 12월 10~ 15일, 12월 17~ 19일 [291] 1941년, 1943년, 1948년은 월평균 기온이 영상권이었고 1948년 12월은 이중에서도 엄청난 이상 고온을 보였으나, 1944년, 1946년, 1947년 12월이 매우 추웠고 나머지 해들도 12월 평균 기온이 -1℃대라 이전에 비해 확실히 추운 12월의 비중이 높아지기는 했다. 결론은 어떤 해든 중간이 없었다. [292] 1940년 1월 -17.7℃, 2011년 1월 -17.8℃. [293] 3월 2일 기록 [294] 전날에는 -0.2℃로 더 낮았다. [295] 1911~ 1940년 기준 3월 평균 기온 3.3℃, 1921~ 1950년 기준 3월 평균 기온 3.4℃, 1931~ 1960년 기준 3월 평균 기온 3.6℃ [296] 4월 7일 -0.7℃, 4월 9일 -0.5℃ [297] 6월 20일 32.4℃, 6월 21일 32.5℃, 6월 22일 32.3℃ [298] 역대급 장마로 기록된 2011년 7월의 강수일수인 21일보다 많고, 2010년 8월의 24일과 같다. 자세한 내용은 장마/연도별 상황 문서 참조. [299] 이는 마치 2020년 7월 13일을 연상케 한다. 물론 이때는 더 기록적이어서 낮 기온이 아예 20°C 이상으로 오르지 않았으며, 일 최고기온이 새벽에 기록되었다. [300] 그나마 8월 1일에 32.9℃로 0.1℃만 높았으면 폭염일수가 기록될 뻔했다. [301] 8월 7일 18.7℃, 8월 8일 17.0℃, 8월 9일 17.2℃, 8월 10일 19.5℃, 8월 11일 17.4℃ [302] 심지어 이 늦더위는 9월을 넘어 10월까지 갔는데, 10월 4일의 최고 기온이 무려 28.5℃를 기록했을 정도였다. [303] 여기까지 보면 80년 후인 2021년 1월과 유사하다. 차이점은 상순과 하순의 날씨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며, 한파의 강도는 1941년 1월이 더 강했지만 이상 고온 2021년 1월이 더 심했다. [304] 단 하루만 늦었으면 2월 역대 최저 기온인 -19.6℃ 기록이 경신될 뻔했다. 여담으로 이날 이후 서울은 29년 동안 최저 기온 -20℃ 이하를 기록하는 날이 없었다가, 후술할 1970년 1월 5일에 마지막으로 -20℃ 이하를 기록한 이후 현재까지 더 이상 -20℃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305] 2월 1일 -18.2℃, 2월 2일 -16.3℃, 2월 3일 -10.5℃, 2월 6일 -10.9℃, 2월 7일 -13.1℃, 2월 8일 -14.8℃, 2월 11일 -13.8℃ [306] 특히 3월 20일에는 최고 기온이 19.3℃까지 올라갔다. [307] 묘한 것은, 1931년 7월 서울보다 낮은 월평균 기온, 드문드문 보이는 더위, 다음 해와 월평균 기온이 천지 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앞서 1941년 7월 대구의 월평균 기온이 최하위를 기록할 정도로 이상 저온이었는데, 이듬해 7월은 불지옥 같은 폭염이 찾아와 대구 7월 평균 기온이 29.3℃를 기록했다. 세부적으로는 1941년 7월 최고/최저 32.2℃/14.2℃, 1942년 7월 최고/최저 39.7℃/17.4℃이다. 월평균 기온부터 서로 정반대인 1931년 7월 - 1932년 7월, 1993년 7월 - 1994년 7월과 흡사하다. 그리고 2020년 7월 - 2021년 7월도 유사했다. [308] 1월 18일 기록 [309] 이런 양상은 76년 뒤 2018년과 80년 뒤 2022년에 다시 재현됐다. 이 해 역시 2월에는 저온이 길게 나타나면서 월평균이 상당히 낮았지만, 3월에는 이상 고온이 나타나면서 월평균이 2℃ 가량 높게 기록되었다. [310] 4월 11일 4월 18일 기록 [311] 4월 21일 4.8℃, 4월 22일 4.4℃, 4월 23일 2.8℃, 4월 29일 4.8℃ [312] 4월 21일 11.6℃, 4월 22일 13.5℃ [313] 엄연히 말하면 저온 6월 상순까지 이어졌다. 6월 상순에도 최저 기온이 높아도 15℃대이고 낮으면 11℃대를 기록할 정도로 선선했는데, 최고 기온은 30℃를 넘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사실상 여름에 도달했다. 다만 6월은 전체적으로 최고 기온이 높은 반면 최저 기온은 낮은 날들이 많았는데, 이 여파로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22.0℃를 기록했다. 당시의 평년보다는 1℃ 이상 높지만 현대의 평년보다는 0.7℃ 낮은데, 최고 기온에 비해 월평균 기온이 낮았던 이유는 열섬 현상이 없는 일제강점기라 낮에 기승을 부리는 뜨거운 폭염에 비해 밤이 되면 기온이 빨리 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1942년 6월은 역대 6월 일조시간 1위(304.2시간)이라 더 그런 면도 있었다. [314] 특히 10월 23~25일 [315] 이는 1년 전인 1941년 10월 23일에 늦은 이상 고온이 와서 최고/최저 26.8℃/7.1℃를 기록한 것과 완전히 대칭된다. [316] 최근의 사례로는 2018년 8월 1일 서울 최고 기온 39.6℃에서 3개월이 지난 10월 31일 최저 기온 0.7℃가 있다. 두 해 모두 여름이 덥고 10월이 평년보다 낮은 이상 저온을 보였던 것이다. 강원도 홍천은 더 심각한데 2018년 8월 1일 최고 기온 41.0℃에서 2018년 10월 31일 최저 기온 -0.9℃로 뚝 떨어졌으며 12월 29일에는 -17.3℃까지 떨어져서 불과 5달만에 60도 가까이 떨어졌다. 그러나 1942~ 1943년의 강한 한파와 달리 2018~ 2019년은 몇 번의 간헐적인 한파 빼고는 포근한 겨울 이상 고온이 나타났다는 차이점이 있다. [317] 특히 7~10일, 14~19일, 25~29일. [318] 2021년 1월과 극값이 같다. [319] 25~26일은 서울도 포함. [320] 여담으로 하루 중 가장 높은 15시의 기온은 일제강점기도 아닌 [321] 5월에 최저 기온 한 자릿수는 대부분 매년마다 있는 일이라 특별하지 않을 것 같으나, 상순이면 몰라도 중순~하순이면 거의 드물다. 2020년 5월에 10년 만에 서울이 중순에 최저 기온 한 자릿수를 기록해서 단 하루 9.2℃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이때 엄청 쌀쌀하다는 말이 많았었다. 게다가 이런 날씨가 중순~하순에 연속으로 일어나면... 심지어 5월 이상 저온이었던 2021년에도 중순에 한 자릿수를 기록한 날이 있었다. [322] 기상자료개방포털에는 이해 12월 평균 기온이 -5.7℃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사사오입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며 사사오입 반영 시 -5.8℃로 1917년 12월보다 0.1℃ 낮아 역대 최하위이다. 12월 상, 중, 하순 3개 평균값으로는 1917년 12월은 -5.6℃임에 비해 1944년 12월은 -5.8℃로 나온다. 따라서 1884년 12월 이후로 60년 만에 12월 평균이 낮았다고 보아야 한다. [323] 심지어 12월 13일부터 18일까지는 엿새 연속으로 일평균 기온이 -8℃ 이하로 뒤덮여 있다. [324] 4월 평균 기온은 서울 기준 11.0℃로, 현재 기준으로는 제법 낮은 편에 속하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평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조금 높기까지 했다. 1921~ 1950년 기준 4월 평년 기온이 10.6℃, 1931~ 1960년 기준 10.5℃로 조금 높았으며, 1941~ 1970년 기준이 되어서야 11.1℃로 평년과 거의 비슷해진다. 2020년 4월 서울 월평균 기온과 거의 비슷하다. [325] 공교롭게도 3년 전에는 7월에 더웠고 8월에 선선했고 겨울이 추웠으며, 2년 전에는 서울에 최악의 폭염이 찾아왔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러나 시작은 각각 정반대였다. [326] 당시 기준으로는 최저 1위. 후술할 1947년으로 인해 2위로 밀려났다. [327] 여담으로 1944~ 1945년 겨울에 일조량이 기록적으로 최상급을 기록했고 그에 따른 복사냉각으로 1월에는 최고 기온에 비해 최저 기온이 낮은 현상을 보여주었다. 어느 정도 과장된 수치였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겨울 시즌 내내 고온이 극히 드물다는 것은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쉽게 기록하기 어려운 것이다. [328] 5월 31일 제외 [329] 이상 고온이 찾아온 2014~ 2018년 4월, 이상 저온이 찾아온 2011년, 2018년 10월과 기온이 맞먹는다. 이상 고온이 찾아온 2001년, 2002년 4월과는 완전히 같다. 2022년~ 2024년 4월보다는 확실히 낮으며 당시 10월 평균과도 큰 차이가 없다. 현대의 프랑스 파리보다는 확실히 춥고 독일 베를린의 5월과도 비슷하다. 미국에서나 볼 수 있는 이상 저온이 나타난 것이다. 1911~ 1940년 기준으로 해도 편차는 -2.3℃이다. [330] 5월 31일 하루에 반짝 더위가 찾아와서 29.2℃를 기록했다. 이는 월평균 기온이 가장 높았던 2012년 5월의 최고 기온 극값과 맞먹는다. 하지만 1945년 5월은 나머지 날들이 높아도 22~24℃대에 그쳤으며, 6월 1일이 되자 다시 급락하였다. [331] 5월 21일 25.1℃, 5월 25일 26.4℃, 5월 31일 29.2℃ [332] 1위는 1980년의 22.9℃ [333] 11월 최고 평균이 14.9℃였으나, 76년 만인 2022년 11월(15.4℃)에 의해 2위로 밀려났다. [334] 연평균 기온이 최상위권에 드는 1998년, 2015년, 2016년, 2019년, 2021년과 비교하면 약 [335] 슈퍼 엘니뇨 서울에서 1~ 12월 전체가 이상 고온이었던 2015년과 정반대의 사례이다. [336] 연평균 최저 기온은 1917년이 기록했다. [337] 서울 3월 평균 기온 역대 최하위는 1936년-0.3℃, 2위는 1957년0.0℃, 공동 3위는 1916년 1970년0.4℃, 공동 5위는 1915년 1933년0.6℃, 7위는 1924년1.1℃이다. [338] 2023년 5월 8일에 7.9℃까지 떨어진 것과 같다. 재밌게도 두 해는 각각 연평균이 가장 낮은 해와 높을 예정인 해로 갈린다는 것이다. [339] 이것보다 더 낮은 6월 일제강점기는 커녕 구한말에서도 보기 힘들고, 현대 시대에는 당연히(...) 볼 수 없으며, 조선 시대 후기 184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겨우 멎먹을 수준이다. 1847~ 1849년 당시 중국 상하이에서는 3년 연속으로 6월 평균 기온 21℃대를 기록했고, 1849년 6월에는 21.4℃ 여름 구실은 했는지 의문일 정도로 낮았으니(참고로 현대의 5월 평년 기온과 비슷) 서울로 치면 6월인데도 월평균 기온이 17℃대 후반~18℃대 초반(...)에 그친 셈이며 실제로 1849년 6월에 서울에서 측정했다면 그렇게 나올 가능성도 있다. 보통 일제강점기 시절 서울 6월에 19~22℃를 기록할 때, 상하이는 22~25℃를 기록했었다. 그리고 1849년 6월 이후로 상하이 6월 평균 기온이 21℃대를 기록하는 사례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1947년 6월은 추측상 거의 100년 만의 초저온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 2년 전 5월처럼 미국에서나 볼만한 초저온 현상이 나타난 것이며 1911~1940 평균으로 해도 2.2℃정도 낮다. [340] 1957년 18.9℃, 1972년 19.0℃ 이후 1980년과 같이 공동 3위 [341] 1981~ 2020년 1월 중에서 1981년 -7.0℃, 2011년 -7.2℃, 1984년 1985년 1월의 -5.9℃를 제외하면 1986년 1월과 같은 -5.4℃를 기록했다. [342] 특히 1월 26~29일, 2월 3~10일. [343] 하지만 정작 다음 달인 12월은 기온이 크게 올라서 평년보다 매우 높은 초이상 고온을 보였고 최저 기온 극값 -7.7℃( 12월 3일 기록)와 월평균 최저기온 -0.2°C로 11월보다 오히려 높았다. 월 평균기온도 3.8°C로 11월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상 고온/사례 문서 참조. [344] 이중 1953년과 1955년은 월평균 기온이 0.6℃로 현대 기준으로는 근소하게 높지만, 서울 기준으로 최저 극값이 -9℃ 안팎에 그쳐 한파가 오면 영하 두자릿수를 기록하는 현대의 12월에 비하면 확실히 따뜻했다. [345] 하지만 3월은 1956년, 1957년, 1958년 3년 연속으로 때에 걸맞지 않은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346] 서울 1950년 9월 1일에 중단되었다가 1953년 12월 1일에 재개되었고, 인천 1950년 6월 1일에 중단되어 1951년 9월 30일에 재개되었으며, 강릉 1950년 6월 26일~ 7월 6일 1950년 9월 1일~ 10월 31일, 1951년 1월 1일~ 8월 31일 기간 동안 중단되었다가 1951년 9월 1일부터 완전히 재개되었다. [347] 8~16일, 20~23일 [348] 공식 기록을 강조하는 이유는, 1892년 3월 13일 당시 인천의 최고 기온이 -4.2℃에 머물러 기록상 가장 늦은 꽃샘추위로 남아있기 때문. 최저 기온도 -8.0℃였다. 1950년 3월 11일 인천의 최고/최저 기온 극값이 -4.7℃/-8.4℃였기에 서울도 둘의 꽃샘추위 강도가 비슷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349] 3월 5일에 최고 기온이 16.5℃까지 상승했다. [350] 5월 20~ 21일 [351]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서울 [352] 공식 기상 관측은 1964년 1월 1일에 시작되었으나, 이미 1951년 2월 5일 오후부터 미군에서 비공식 관측을 시작했다. 관측지는 권선구 권선동으로, 현재의 공식 관측소가 위치한 서둔동과는 거리가 좀 있다. 다른 얘기로, 1963년 1월 23일 수원 [353] 심지어 이것도 수원에서는 비교적 높게 기록된 것이고, 서울 종로구로 추정되는 지역은 아예 [354] 당대 전주의 기록을 보면 1951년 3월 1~4일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 1958년 3월 1~4일 중에 3일에 -8.6℃를 기록했지만 51년 3월 3일(-10.3℃)보다 -1.7℃보다 높았다고 나온다. 이를 서울에 대입하면 58년 3월 3일 최저가 -11.2℃였으니 51년 3월 3일은 [355] 1958년 3월 2일 -4.1℃ [356] 1936년 3월 3일 -12.2℃ [357] 추정인 이유는 수원 3월 기록 중 1주일 동안 결측이 발생했기 때문. [358] 해당 사이트는 전문이 러시아어로 작성되어 있는데, 해당 링크는 서울의 월평균 기온과 연간 기온(Средние месячные и годовые температуры воздуха в Сеуле)을 정리한 표이다. 다만 해당 사이트는 20세기 이후의 관측 기록들 중에서 실제 데이터와 0.1~0.5℃의 오차가 있는 기록들이 있다(예를 들어 1917년 1월 평균 기온이 실제로는 -9.0℃인데 해당 사이트에서는 -9.3℃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도 대략적인 기온 분포를 확인하기에는 유용한 사이트이므로 결측 기간의 기온 데이터를 확인하는데 적합하다. 강수량은 일치하지 않는 데이터가 너무 많아서 대략적인 값도 알기 어렵다. [359] 이게 사실이면 7월 1일36.3℃를 기록한지 불과 2개월하고 보름 만에 20℃나 추락한 셈인데, 이는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 다른 모델에서는 이 날 20℃까지 올라갔고, 종로구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뚜렷하게 기온이 낮았다는 표시도 없기 때문. [360] 그리고 이 저온 현상은 옆 나라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도쿄의 경우 1951년 9월 평균 기온이 20.7℃로 1931~ 1960년 기준 평년보다 2.1℃나 낮으며, 순위는 145단계 중 138위이다. 홋카이도 하코다테는 아예 이달 평균 기온이 15.7℃로 기록되어 1872년 관측 이래 1913년 9월과 함께 가장 추운 9월로 남아있게 되었다. [361] 1957년 9월도 후술하겠지만 이상 저온이 강하게 찾아온다. [362] 최저 기온 극값은 1월 25일의 -13.6℃ [363] 그런데 이 한기의 규모가 아주 컸던 것인지 한반도와 거리가 있는 제주의 최저 기온도 4.0℃까지 떨어졌다. 4월도 절반 이상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364] 1931~1960년 기준 인천의 4월 평년기온은 9.7°C이다. [365] 5월 1일 9.0℃ [366] 미군 관측을 참고한 월평균은 -2.2℃이다. [367] 더 정확히는 -2.65℃이다. 사사오입을 취하는 기상청이었다면 -2.6℃로 표시했을 듯. [368] 기록에 의하면 이렇지만, 미군이 기온이 상승하거나 하락할 때마다 0.5~0.6℃ 단위로 표시[626]해 두었기 때문에 실제 기온은 -14.6℃~15.0℃ 사이일 수 있다. 아무튼 입춘 한파 치고는 상당히 강력했던 건 사실이었던 듯 하다. [369] 공통적으로 2월 중순과 하순 초에 저온, 25일부터 기온이 상승하였다. 물론 저온은 1953년 2월이 한수 위이고, 고온은 2022년 2월이 한수 위였다. 이해 서울 벚꽃 개화일은 4월 15일 이었는데 당시 치고는 살짝 빠른 개화이다. 즉 3월과 4월 전반은 기온이 평년보다 약간 높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370] 이는 2017년과도 비슷하다. 이 해 역시 10월에는 이상 고온으로 비교적 더운 날씨가 나타났지만, 11월에는 이상 저온으로 평년보다 추운 날씨가 이어졌다. [371] 비교 대상인 2017년 11월 19일 최저기온 -6.6℃보다는 살짝 높지만, 이 역시 시기를 감안하면 꽤 강한 저온이다. [공식] 기묘하게도 전란의 여파로 기상 관측이 잠정 중단되었다가 다시 재개된 12월 1일부터 고온 현상이 왔다. [비공식] [374] 양상도 2018년 1월의 하위호환격이다. [375]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두 해 모두 1월 이상 고온이 심각했으나 2월 상순에 늦추위가 찾아왔고, 7월 이상 저온이 강했지만 8월은 무더위가 찾아와서 월평균 기온이 평년과 비슷했다는 점이 일치한다. 물론 겨울철의 난동은 2020년이 더 심했고, 여름철의 냉하는 1954년이 더 심했다는 세부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376] 6월 2012년 5월19.7℃보다도 낮았고(다만 이쪽은 최저 기온이 높아서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7월 1991~ 2020년 기준 6월의 평년 월평균 기온인 22.7℃보다도 낮다. 사실상 7월 초까지 이었고 기상학적으로도 6월이고 7월이 되어서야 여름이 시작되었다. 이후 8월 10일에 34.3℃를 기록하는 더위가 있었으나 심하지는 않아서 8월 평균 기온은 당시 평년보다 0.1°C 높은 25.7℃를 기록했다. [377] 6월 27일 30.4℃, 7월 14일 30.3℃, 7월 16일 31.9℃, 7월 20일 31.4℃ [378] 12월 27일 기록 [379] 이는 2014년, 2022년과 유사하다. 극심한 추위는 없었으나 고온 없이 꾸준히 낮게 유지된 점. [380] 5월 28일 최고 기온이 16.8℃에 불과했다. [381] 물론 일별로 보면 아예 없지는 않았다. [382] 1월, 3월, 9월 제외 [383] 제주도 제외 [384] 4월 15일, 4월 21일, 4월 22일 기록 [385] 4월 29일 기록 [386] 이는 2010년 4월과 비슷했다. 같은 월평균 기온, 20.7℃ 이상 오르지 못하는 최고 기온, 한 달 내내 계속 불어대는 찬바람, 월말임에도 최저 기온이 3.3℃까지 추락함 등등... [387] 강릉, 울릉도 제외 [388] 즉 한기가 4월은 커녕 5월까지 물러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며, 심지어 6월에도 찾아온 듯 하다. [389] 9월 9일 18.7℃, 9월 26일 19.5℃ [390] 9월 26일 9.5℃, 9월 27일 7.5℃, 9월 28일 8.1℃ [391] 이는 10월 중순에 -1℃ 미만을 기록한 둘뿐인 사례 중 하나다. 나머지 하나는 32년 전인 1924년이며, 무려 -1.5℃까지 떨어졌다. [392] 사실 그 전날인 11월 6일이 최고 기온 8.9℃로 더 낮았다. [393] 11월 15일 1.9℃, 11월 16일 -0.2℃, 11월 17일 3.5℃ [394] 1위는 후술할 1972년 11월 참조. [395] 실제 값은 -5.258도로 오사육입 하는 기상개방자료포털 기준으로는 -5.2도. [396] 더군다나 1956년 12월부터 강한 한파가 시작되어 1월에 조금 풀렸다가 2월에 다시 한파가 맹위를 떨쳤으므로, 1956~ 1957년 겨울 1월보다 12월 2월의 월평균 기온이 더 낮았다. 최저 기온 극값도 12월은 -15.1℃( 12월 23일), 1월은 -14.5℃( 1월 22일), 2월은 -17.3℃( 2월 11일)로 1월보다 12월 2월의 최저 기온이 더욱 낮게 내려갔다. [397] 이는 심지어 1916년 [398] 7월 1일 18.2℃, 7월 2일 19.5℃, 7월 3일 18.2℃, 7월 4일 18.7℃, 7월 5일 18.0℃, 7월 6일 18.8℃, 7월 7일 19.9℃, 7월 8일 18.3℃, 7월 9일 18.3℃, 7월 10일 17.8℃, 7월 12일 19.9℃, 7월 14일 19.5℃, 7월 20일 19.8℃, 7월 21일 19.9℃, 7월 22일 19.8℃, 7월 23일 18.1℃, 7월 24일 19.6℃, 7월 28일 19.8℃, 8월 1일 19.6℃, 8월 3일 19.6℃, 8월 5일 19.4℃, 8월 7일 19.9℃, 8월 12일 19.7℃, 8월 13일 19.3℃, 8월 28일 19.3℃, 8월 29일 16.9℃, 8월 30일 18.6℃, 8월 31일 16.0℃ [399] 4월 3~ 6일 제외 [400] 이는 3월 2일 최고 중 가장 낮은 값이나, 7년 전인 1951년 3월 2일에 최고 -5℃선을 기록한 적이 있어 사실 역대 1위는 아니다. [401] 가 아니라 최가 저 정도였다. 2010년대부터 3월의 기온 추세가 크게 바뀌어 3월 하순 아침에 0.2℃까지 내려가도 계절이 거꾸로 돌아간다는 소리가 나올 판국이니 한낮에 0.2℃밖에 안 올라갔을 때 체감온도는 설명 생략. 더불어 역대 3월 하순 최고기온 중 가장 낮은 값이기도 하다. [402] 6월 24일에 최고 기온이 37.2℃를 기록했는데, 이는 현재 6월 이상 고온으로 취급되는 2020년 6월보다 더 심했다. [403] 7월 13일 21.0℃, 7월 14일 19.7℃, 7월 15일 19.2℃, 7월 16일 21.8℃ [404] 어떻게 보면 한파에 있어서는 2021년 1월의 상위호환, 이상 고온에 있어서는 2021년 1월의 하위호환으로 볼 수도 있다. 2021년 1월도 연초부터 강력한 한파 1월 8일 최저 기온이 -18.6℃까지 떨어졌으나 중순 초반에 10°C 가까이 잠시 따뜻해졌다가 다시 추워져 중순 후반인 1월 19일에 최저 기온 -11.6℃까지 떨어졌고, 하순에 초이상 고온이 찾아와 1월 24~ 25일 최고 기온이 13.9℃까지 올라갔다. 다만 1959년 1월은 상순에 최저 기온 -19.8℃로 2021년 1월(-18.6℃)보다 더 낮았고, 중순 초반에는 2021년 1월과 달리 이상 고온이 아니라 상순에 비해 약간 올라간 것일 뿐 여전히 추웠으며, 중순 후반 최저 기온도 -18.0℃로 2021년 1월(-11.6℃)보다 훨씬 낮았고, 하순의 최고 기온도 9.8℃로 2021년 1월(13.9℃)에 비해 이상 고온이 훨씬 약했다. 요약하자면 한파 이상 고온의 대략적인 추이만 비슷했을 뿐 월평균 기온은 1959년 1월이 넘사벽이다. 당시 기준으로도 다소 낮은셈이며 현재보다는 3°C나 낮아 평년과 비슷했던 2021년 1월과 달리 1959년 1월은 저온이 우세했다. [405] 30~31일 제외. 특히 1월 22~ 28일. 그 중 1월 23~25일, 27~28일의 한파가 매우 강했다. [406] 1월 23일 -15.8℃, 1월 24일 -17.0℃, 1월 25일 -15.3℃ [407] 이달 최저 기온 극값도 -17.0℃로 크게 기록적인 수준은 아니고 월평균 기온은 아예 평년보다 높았기에 특별하지는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달 상순~중순까지는 대부분의 날들이 고온을 보여 1월 1~ 20일까지의 월평균 기온이 -1.0℃(2015년, 2019년 1월과 비슷한 수준이다.)였는데 하순의 한파로 인해 월평균 기온이 -3.3℃로 2.3℃나 하락했으니 하순 한파가 월평균 기온을 크게 하락시킨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408] 이 점은 2023년과도 비슷하다. 이 해 역시 초중순에는 대체로 이상 고온을 보였으나 하순에는 강한 한파가 있었다. [409] 7월 6~ 9일 [410] 특히 11월 26~ 27일 [411] 2~5일, 9~16일 제외. 특히 17~19일, 26~31일. 그 중 28~31일이 저온이 매우 심했다. [412] 1921~ 1950년 기준 -1.5℃ [413] 1월 1일 -15.0℃, 1월 5일 -16.5℃, 1월 11일 -16.4℃, 1월 12일 -16.3℃, 1월 17일 -16.2℃ [414] 사실 그냥 관측을 안 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415] 5℃대 자체는 이후로도 1976년, 1981년, 1987년 5월에 찾아왔고, 2010년 5월 첫날에도 찾아왔다. 그 뒤 12년이 지난 현재까지 찾아오지 않고 있다. 게다가 2012년같이 12°C 이상인 해도 있었다. [416] 물론 1991~ 2020년 기준으로 하면 평년보다 0.9℃ 낮다. [417] 1월 23일 1월 27일 기록 [418] 1973년, 2022년 1월과 극값이 같다! 대신 1962년 1월 이상 고온이 길었던 1973년 1월이나 한파 이상 고온이 번갈아 찾아온 2022년 1월과 달리, 한 달 내내 가벼운 한파가 연속으로 이어진 타입이라서 월평균 기온은 놀랍게도 2013년 1월과 같다. [419] 평년 기준으로 볼 때 최고 기온은 1월, 최저 기온은 2월 중순과 비슷하다. 즉 1~ 2월에 나올 법한 날씨가 4월에 나왔다는 것은 매우 기록적이다. [420] 이틀 전에 비해 최고 기온이 10℃ 이상 급하강했다. 이는 다른 지역들도 마찬가지. [421] 1월이 -9.154도, 2월이 -2.457도로 음수는 오사육입을 하는 기상개방자료포털에선 각각 -9.1도, -2.4도로 나오지만 음수도 사사오입을 하는 엑셀로 돌리면 -9.2, -2.5도가 맞다. [422] 월평균 최고기온은 무려 -4.8°C로 압도적 최하위이다. 참고로 하위 2위인 1936년 1월이 -4.0°C, 하위 5위인 2011년 1월이 -3.4°C이다. [423] 이는 한 달 내내 최악의 이상 고온으로 유명한 2020년 1월과 100% 대조된다. [424] 4월 8일 1.8℃, 4월 9일 1.5℃, 4월 10일 0.6℃ [425] 반대로 서쪽 지방에 위치한 서울은 29.8℃를 기록하여 이 저온 현상과 완전히 대비되었다. [426] 7월 5~ 7일 [427] 해방 이후 제주도 서귀포시에 이어 두번째로 빠르게 시작되었다. 다만 기상청 소관이 아닌 비공식으로는 1951년 2월 5일부터 시작되었다. [428] 1월 4일 기록 [429] 최근 사례로는 2015년 4월이 있으며 이때 서쪽 지역은 초중순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았으나 강릉 지역은 연일 동풍으로 기온이 크게 낮았으며 중순까지는 매우 기록적이었다. 하순에는 전국이 상당히 높았고 강릉 초이상 고온이 왔지만 월평균 기온은 높이지 못했다. [430] 11월 12~ 17일, 11월 19일, 11월 22일, 11월 24~ 25일, 11월 30일 [431] 그래도 1월 전체 중에서 한파 일수를 기록한 날은 8일로 비율이 크게 높지는 않다. 최저 기온 극값은 1월 12일의 -18.1℃. [432] 3월 1일 -6.2℃, 3월 4일 -6.5℃, 3월 5일 -7.4℃, 3월 6일 -5.6℃, 3월 7일 -6.6℃, 3월 10일 -5.4℃ [433] 10월 8~ 9일, 10월 14~ 18일 [434] 10월 8일 6.4℃, 10월 9일 6.0℃ [435] 12월 3~ 4일, 12월 8~ 12일, 12월 14일, 12월 19~ 22일 제외. 특히 12월 15~ 18일, 12월 24~ 25일. [436] 16~21일 제외 [437] 11월 21일 -8.2℃, 11월 22일 -9.7℃, 11월 30일 -10.7℃ [438] 12월 25일 -13.2℃, 12월 26일 -14.4℃, 12월 27일 -15.2℃ [439] 이는 2021년과도 비슷하다. 2021년에도 성탄절 전후로 -15℃ 전후의 한파가 찾아왔다. [440] 11월은 과거부터 현재보다 높은 월평균 기온이 자주 나타나서 이 당시에도 6℃대였으니 5.9℃이면 다소 낮은 기온이다. [441] 1~12일, 19~25일. 특히 1~2일, 4~9일, 20~22일. [442] 3월 1일 -6.0℃, 3월 2일 -5.4℃, 3월 3일 -4.8℃ [443] 30년 뒤인 1998년 3월 상순에 초이상 고온을 보였던 것과 대조된다. [444] 5월 26~ 30일 [445] 5월 26일 17.5℃, 5월 27일 16.9℃, 5월 28일 20.6℃, 5월 29일 19.0℃, 5월 30일 16.9℃ [446] 이는 3월 수준이며, 현대(1991~2020) 5월 하순 평년과 비교하면 무려 11℃나 낮다. [447] 6월 9~ 11일, 6월 19~ 21일 [448] 단, 6월 19~ 21일은 동쪽 지방 한정 [449] 7월 4~ 5일, 7월 14~ 16일 [450] 단, 7월 14~ 16일은 최고 기온 한정, 중부지방은 20일까지 해당. [451] 다만 비가 내렸고 7월 특성상 습도가 높아 크게 선선하다는 느낌은 거의 없었다. [452] 8월 10~ 16일 [453] 8월 13일 24.1℃, 8월 14일 22.4℃, 8월 15일 23.3℃, 8월 16일 24.8℃ [454] 반대로 서울, 전주, 광주 등 서쪽 지방은 이 기간 내내 31~33℃ 전후의 무더위가 지속되었다. [455] 2010년 9월과 비슷한 양상이다. [456] 9월 30일 8.7℃, 10월 1일 9.6℃, 10월 2일 9.9℃ [457] 11월 10일에 기록된 -6.7℃의 경우 11월 10일의 최저 극값이다. [458] 17~20일 제외 [459] 1931~ 1960년 기준 -4.7℃, 1941~ 1970년 기준 -4.4℃ [460] 8~14일, 17~18일 제외. 특히 2~ 6일, 21~ 28일. 그 중 5~6일, 24~26일이 저온이 매우 심했다. [461] 그나마 서울 2월 상순 최저 기온이 -15.9℃에 그쳤지만, 당시 도시 규모가 작아서 열섬 현상이 없었던 기타 중부 지방( 수원, 청주, 춘천)은 최저 기온이 -25℃는 가뿐히 밑도는 매우 추운 날씨를 보였으며 열거한 세 지역 모두 역대 최저 기온 1위를 찍었다. 다만 수원이나 청주, 춘천은 모두 기상 관측이 1960년대에 시작되어 서울에 비하면 한참 늦게 시작되었으므로, 만약 일제강점기에 기상 관측을 했었더라면 이보다도 낮은 최저 기온이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462] 1965년 이후 4년 만에 4월 상순 영하권 기록. [463] 1931~1960 기준으로 하면 비슷하지만 1941~1970 기준으로 하면 다소 낮다. [464] 서울 기준 최고 기온 극값은 8월 17일의 32.9℃로, 단 0.1℃ 차이로 폭염일수가 기록되지 않았다. 비슷한 사례로 2022년 8월에도 8월 4일에 똑같이 폭염 기준에 0.1℃ 못 미치는 32.9℃가 최고 극값으로 기록되어 8월 폭염일수가 없었다. [465] 7월의 경우는 1969년에는 7월 8일에 최고기온 19.1℃, 7월 16일에도 23.4℃에 그치는 등 몇몇 날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저온을 보였으나, 2022년에는 정반대로 7월 상순과 하순에 심한 이상 고온이 기승을 부렸던 것이 대조된다. [466] 정확히는 10월 13일까지. 특히 9월 30일~10월 5일, 10월 9~12일 [467] 이해 1월 5일에 -20.2℃를 기록한 이후 서울 공식 기상 관측소 기준으로 -20℃ 이하의 기온이 더 이상 기록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는 서울 도심의 열섬 현상이 심화된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열섬 현상이 비교적 덜한 도심 외곽 김포국제공항 일대의 경우 2020년대까지도 여전히 AWS로 -20℃ 안팎의 기온이 기록되고 있다. 다만 이는 공식 기상관측소에서 측정되는 기온이 아니라서 비공식 기록이다. [468] 27~30일 제외 [469] 물론 4월 8일에 0.8℃, 4월 14일에 1.0℃ 등을 기록하는 등 몇몇 날에 꽃샘추위는 있었다. [470] 하순 평균이 3.9℃를 기록했다. 3월 하순 특성상 아무리 강한 한파가 와도 초중순보다는 높아질 수밖에 없어서 잘해야 역대 3월 하순 최하위인 1922년과 비슷한 1.3℃ 정도를 기록할 것이다. [471] 반대로 서울, 전주 등 서쪽 지방은 이상 저온 현상 없이 대체로 평범한 날씨가 이어졌다. [472] 이상 고온은 없어 서울에서는 평균기온이 23.0°C였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7월 폭염일수가 기록되지 않았다. 단 8월에는 폭염일수가 기록되었다. [473] 특히 8월 12일에는 35.0℃를 기록하여 1970년에서 유일하게 폭염경보일수가 기록되었다. [474] 단 최저 기온은 22.8℃로 평년과 비슷한 정도여서 일교차가 1.5℃로 매우 적었다. [475] 물론 현대(1991~2020) 평년보다는 0.2℃ 낮다. [476] 1~4일, 8~9일, 13일, 17~21일, 26일 제외. 특히 11일, 14~15일, 22~24일, 28~30일. 그 중 15일, 22~23일, 29~30일1912년 11월에 맞먹을 정도로 저온이 매우 심했다. [477] 참고로 이 -11.2℃라는 값은 12월 최저 극값인데, 지난달의 최저 극값보다 높다는 것이다! 보통 12월 최저 극값이 11월 최저 극값보다 높은 경우는 드물다. [478] 여담으로 지난해에도 동일하게 12월 27일 12월 최저 극값이 기록되었는데, 그 값과 비교하더라도 3.7℃나 높은 것이다. [479] 1월 29일 -11.8℃, 1월 30일 -11.0℃ [480] 10월 1일, 9~10일, 16~21일, 30~31일 제외. 특히 6~7일, 11~13일, 23~26일. [481] 10월 9일 기록 [482]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11월 옆에 28~30일이라는 기간이 굳이 작성됐음을 주목해야 한다. 1971년 11월 중 저 사흘의 기간 빼고는 영하는 커녕 1℃선도 안 내려갈만큼 따뜻한 날씨가 뒤늦게까지 이어졌다. [483] 그 외에 구한말 1890년 11월의 양상과 100% 일치한다. 27일까지 1℃선도 없는 날씨가 이어지다가 28~30일에 한기가 기록되고, 29일에 -8.4℃까지 내려갔기 때문. 다만 이쪽은 인천해관에서 기록되었다는 게 유일한 차이점이다. 이 때문에 1971년 11월(8.7℃)과 1890년 11월의 월평균 차이가 거의 없다시피할 것으로 추정. [484] 1월 22일 1월 27일 기록 [485] 이마저도 1월 하순에 기록된 것이며, 상순~중순 동안에는 최저 기온이 1월 3일에 기록된 -6.5℃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어 마치 2020년 1월을 연상케 했다. [486] 2월 20일 기록 [487] 2006년 7월, 2016년 9월, 2018년 6월과 같다. [488] 이는 10월 중순에 해당하는 날씨이다. 8월 19일이 아니라 10월 19일 수준이다 [489] 특히 하순. 단 2~5일, 9~15일은 제외. [490] 실제 기록상 11월 21일에 일평균 기온마저 -4.7℃까지 떨어졌고, 전날에 비해 기온이 17.5℃씩이나 하강했다. 고혈압이 악화되는 원인 중 하나가 급격히 한랭해지는 날씨 때문임을 생각해보면, 인터넷에 떠도는 밈 치고는 의미심장해지는 이야기이다. [491] 12월 1~ 3일, 12월 12~ 13일 [492] 1월 2일 -11.0℃, 1월 3일 -11.3℃ [493] 이는 2012년과도 비슷하다. 이 해 역시 11~12월에 상당히 강한 한파가 있었다. [494] 1941~ 1970년 기준 -4.2℃ [495] 3~6일, 14~19일 제외. 특히 9~12일, 23~28일. [496] 이는 6년 뒤인 1980년, 32년 뒤인 2006년, 46년 뒤인 2020년에 또 일어났다. [497] 7월 20일27.3℃︎가 최고 극값이었다. [498] 이는 2021년 3월 서울월평균기온보다도 낮다. [499] 이 정도면 4월 평균 기온과 맞먹는 기록이다. [500] 12월 3일 기록 [501] 특히 가을의 고온이 심해 역대 1위이다. [502] 5월 3~ 5일, 5월 13일, 5월 18~ 19일, 5월 31일 [503] 그리고 2021년 1976년처럼 성탄절 전후로 한파가 들이닥쳤다. 물론 위세는 서로 비교해봤자 2021년만 처참해진다. 1976년은 지역에 따라 아예 1917년 성탄절의 추위를 비웃을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다. [504] 5월 2일 10.0℃, 5월 10일 10.8℃ [505] 일평균 기온은 [506] 특히 1~4일 [507] [[5월 29일 [508] 이와 같은 현상은 24년 뒤에도 똑같이 재현되었다. 1999년 22.0℃로 역대 최고 2위, 2000년 19.5℃. [509] 물론 0.4℃라고 해도 현재 기준으로도 0.2℃ 높으며 당시 기준으로는 고온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상 고온을 보인 기간( 12월 1~ 24일, 총 24일)이 한파에 시달린 기간( 12월 25~ 31일, 총 7일)보다 길어서 그런 것일 뿐, 하순의 한파만 놓고 보면 어지간한 일제강점기급의 12월 한파이다. [510] 월평균 기온은 2011년 1월(-7.2℃)이 조금 더 낮다. [511] 다만 이달 최저 기온 극값은 1월 29일의 -15.8℃에 불과했지만 상순과 중순, 하순 모두 -10℃ 이하를 기록한 날이 잦았다. 1월 1일 -13.6℃, 1월 2일 -15.2℃, 1월 3일 -15.1℃, 1월 4일 -15.7℃, 1월 5일 -10.6℃, 1월 6일 -12.0℃, 1월 13일 -13.0℃, 1월 14일 -12.9℃, 1월 27일 -12.6℃, 1월 28일 -14.4℃, 1월 30일 -15.0℃, 1월 31일 -15.0℃로 월 전체에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13일이 최저 기온 -10℃ 이하였다. [512] 1월까지 포함해도 역대 최저 5위(비공식 기록 포함시 역대 최저 6위)이다. 부산에서 이보다 더 낮은 기온은 1915년 1월 13일 -14.0°C, (1900년 1월 26일 -13.3°C), 2011년 1월 16일 -12.8°C, 1917년 1월 8일 -12.7°C, 1915년 1월 14일 -12.7°C 뿐이다. [513] 현대 기준으로는 약간 낮지만, 심한 저온은 아니다. [514] 1978년 3월 1일에 -8.2℃까지 내려갔으나 -10℃선을 넘보긴 역부족이었고, 이후로는 온난해짐에 따라 더 이상 불가능해졌으므로 생략. [515] 가장 낮았던 날은 8월 14일의 17.1℃이며, 월 전체에서 최저 기온 20℃ 이하를 기록한 날도 11일이나 된다. 8월 6일 19.2℃, 8월 12일 18.8℃, 8월 13일 18.3℃, 8월 18일 19.5℃, 8월 19일 19.5℃, 8월 21일 19.9℃, 8월 23일 19.4℃, 8월 26일 19.1℃, 8월 27일 18.1℃, 8월 28일 19.1℃. [516] 1월 9~ 10일, 1월 15~ 17일, 1월 21~ 22일, 1월 29~ 31일 [517] 2019년 5월도 최저 기온은 평년이나 조금 높은 수준이고 이는 가 많이 내려서 일교차가 작았던 2020년 5월보다 약간 낮았지만 월평균 최고 기온은 1위를 달성했다. [518] 특히 11월 12~ 14일 [519] 역대 최저 기온 극값으로도 11월 26일에야 -10.2℃로 다시 두자릿수를 기록할 정도였고, 그마저도 11월 14일보다 높았다. 이말인즉, 어지간한 일제 시절 한파도 울고 갈 정도로 대단한 한파가 일찍 방문한 셈인데, 동일한 강도로 보름 늦게 왔으면 절대 -11.1℃로 안 끝났을 것이다. 1922년 3월 25일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520] 과장이나 농담이 아니라 공식 기록에 이렇게 나와 있다. 인천은 해안 특유의 환경 때문에 최저기온이 미세하게 높은 게 일반적임에도 서울보다 1℃나 더 낮았다고 한다. [521] 특히 1980~1981년 겨울과, 1983~1984년 겨울, 1985~1986년 겨울 [522] 1941~1970년 기준 -4.2℃︎ [523] 강릉 4월 한정 [524] 1950 ~ 1979년 평균 대비 1.4℃ 낮았다. [525] 일제강점기에는 1932년, 1939년, 1942년, 1943년처럼 현대에도 무지 덥다고 느낄 수 있는 폭염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해방 이후보다 저온 현상이 많았다. 전국적으로 보면 1993년이 더 시원하다 볼 수 있지만 1980년 서울특별시 등 수도권에는 1993년보다 더 이상 저온이 심했고 동쪽 지역(특히 강릉)은 오히려 6월이 이상 고온이어서 그렇다. [526] 특히 10월 하순. 그 중 10월 22일, 25~28일, 31일이 저온이 매우 심했다. [527] 1941~ 1970년 기준 -1.1℃ [528] 1월 5일 기록 [529] 기온도 기온이거니와, 시기도 3월로 넘어가기 불과 이틀 전이다. 만약 이틀 더 늦게 왔으면 1915년 3월 1일(-14.1℃)을 뛰어넘어 역대 가장 늦은 극한파로 남았을 것이다... 이 -15.6℃가 3월로 옮겨져도 2월 하순의 극값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기도(1925년 2월 25일, -15.2℃) 하다. [530] 2월 하순이 잦은 고온을 보이는 현대에는 더 이상 경신이 불가능한 기록이다. [531] 3월 7일 제외 [532] 4월 2~ 3일, 4월 16일, 4월 19일 [533] 특히 5월 16~20일, 6월 1일 [534] 7월 26일 기록 [535] 최고 기온도 25.4℃로 낮았다. [536] 9월 13일 11.6℃, 9월 14일 11.6℃, 9월 15일 11.8℃ [537] 의외로 11월 상순 최저 기온 극값에서는 4위에 그쳤는데, 1~3위는 순서대로 [[1924년] [538] 2위가 1976년 11월, 3위가 2002년 11월이다. 서울의 경우 0.1℃ 차이로 1976년 11월 1981년보다 낮다. 2002년은 4.0℃. [539] 물론 현대 기준으로는 0.1도 낮다. [540] 특히 1월 12~ 14일, 1월 28~ 30일 [541] 사사오입 미반영시 -3.5℃로 평년과 완전히 들어맞는다. [542] 1991~ 2020년 기준으로는 1.6℃ 낮다. [543] 12월 6일 기록 [544] 특히 1월 8~ 11일, 1월 20~ 22일 [545] 특히 2월 9~ 14일, 2월 18~ 21일 [546] 특히 11월 12~ 13일, 11월 16~ 17일, 11월 25~ 27일 [547] 11월 25일 -3.7℃, 11월 26일 -4.2℃, 11월 27일 -4.4℃ [548] 1월 26일 1월 27일 기록 [549] 1985년 12월과 극값이 같다! [550] 2월 6일 기록 [551] 1위는 1980년-8.8℃지만 최저 극값은 1984년이 훨씬 낮았다. [552] 1월 29일 기록 [553] 9월 7일 기록 [554] 2월 14일, 2월 20~ 25일 [555] 2012년, 2017년과 양상이 비슷하며, 12~ 2월 2012년, 2017년을 연상시키게 하는 낮은 평균 기온과 강추위가 찾아왔다. [556] 12월 3~ 5일, 12월 22일, 12월 27~ 30일 제외 [557] 다만 이는 서울 도심의 열섬 현상이 심화된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열섬 현상이 비교적 덜한 도심 외곽 김포국제공항 일대의 경우 2020년대까지도 여전히 AWS로 -20℃ 안팎의 기온이 기록되고 있다. 다만 이는 공식 기상관측소에서 측정되는 기온이 아니라서 비공식 기록이다. [558] 참고로 2018년 1월 1월 10~ 13일 1월 23~ 27일에 매우 강한 한파가 찾아왔으나 1월 14~ 22일 고온 현상으로 -5℃ 이하는 실패했고, 2021년 1월도 초중순 한파는 매우 강해서 월평균 기온이 매우 낮게 기록되는가 싶었지만, 결국 하순의 2020년 1월을 능가하는 이상 고온으로 깎였다. [559] 또한 2010년대 이후 추위 자체는 잦아졌지만, 주로 한파 겨울 12월을 중심으로 찾아와서 그런 것 같다. 오히려 2월은 하순 중심으로 고온이 심해졌다. [560] 마지막으로 9월 평균 20℃ 미만을 기록했다. 즉 1986년 9월 이후로는 월평균 기온 20℃ 미만을 기록한 해가 현재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전국(전체) 월평균 기온 기준으로는 1986년 이후에도 19℃대를 기록하는 해가 종종 있었고 2012년에 19.9℃를 기록한 뒤 2013년 이후에야 20℃를 넘는 9월이 나오지 않고 있다. [561] 물론 1990년, 2001년, 2011년, 2016년, 2018년, 2021년, 2023년 1월 2012년 2월 서울 최저 기온이 -17℃ 전후로 내려가는 강한 한파 겨울도 여전히 찾아오고 있지만 과거에 비하면 빈도가 크게 줄어들었다. [562] 특히 1월 10~ 14일, 1월 25일 [563] 고온도 일부 있었고 평년 수준~약간 저온을 보인 날이 대부분이지만, 강한 저온이 찾아온 날은 기간이 짧을지언정 그 강도가 강했다는 것이다. [564] 7월 중 가장 높았던 날은 7월 20일, 31.2℃였으며 8월 중 가장 높았던 날은 8월 14일, 31.6℃였다. [565] 9월 2일 9월 3일 기록 [566] 즉, 같은 해 5월보다도 극값이 낮았다는 이야기이다. [567] 특히 최저 기온 위주로 보면 더더욱. [568] 1일 제외. 특히 3월 2~4일, 7~8일. [569] 단, 3월 10일 대관령 등 일부 지역만 해당. [570] 마지막으로 3월 초순에 기록된 영하권 평균값이다. 이후 2011년 3월 상순(0.7℃)이 그나마 낮았으며, 2014년 3월부터 시작된 온난화가 2018년 3월에 이르러 초순까지 영향이 심해진 고로 더이상 불가능해졌다. [571] 정확히는 1988년까지 [572] 정확히는 1989년 이후이며, 평년보다 낮은 1993년, 2005년, 2010년~ 2013년 제외 [573] 사실 1990년 1월의 최저 기온 극값 -17.1℃는 일제강점기 기준으로 보면 그저 평범한 수준이고 1950~ 1980년대 기준으로도 평년보다 조금 낮은 정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에서는 최저 기온 1위에 속하는 값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지구 온난화가 본격화되면서 겨울이 따뜻해지는 현상이 심화된 영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1990년대는 다른 년대들에 비해 유난히 겨울이 따뜻하고 한파가 힘을 쓰지 못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당장 2000년대만 보더라도 최저 기온 극값이 -18.6℃였고[627] 2010년대에도 -18.0℃[628], 2020년대도 -18.6℃로[629] 1990년대를 제외한 모든 년대가 서울 최저 기온 -18℃ 이하를 기록했는데 1990년대는 -17.1℃에 그쳤으니, 지구 온난화가 더욱 심해진 현대의 기준으로 봐도 유난히 한파가 적고 겨울이 따뜻한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574] 이는 2022년과도 유사하다. 11월 상순에 추위가 찾아왔으나 중~하순에 기온이 떨어지지 않은 점. [575] 특히 2월 22~24일 [576] 1월 6일 기록 [577] 1월 19일 기록 [578] 1월 28일 기록 [579] 최저 기온 극값의 경우, 1972년 1월과 극값이 같다! [580] 10~16일, 18~19일, 21~22일, 25~26일, 28일, 30일, 특히 11~15일. 그 중 12일, 15일은 2020년 4월 22일에 맞먹는다. 26일은 최저기온 한정 [581] 정확히는 6월, 9월 모두 20.850°C이며, 마지막으로 6월에 20°C대를 기록한 해이다. [582] 여름이 선선했던 2003년에도 8월 22일 열대야가 관측된 적이 있다. 2020년 열대야 없는 여름이 될 뻔 했으나, 8월에는 예보보다 최저 기온이 높게 나오고 최고 기온은 낮게 나오면서 8월에는 가볍게 열대야 기온을 넘겼다. [583] 1~3일, 18~23일 제외 [584] 8월 9일 30.5℃, 8월 11일 30.3℃, 8월 12일 30.6℃ [585] 결국 서울 7~ 8월이 아닌 5월에 연중 최고 기온을 달성하고 만다. 다시 말해 1993년 5월 29일 최고 기온이 31.9℃였는데, 이것이 1993년의 최고 기온 극값이 되어버렸다. [586] 공교롭게도 다음 년도 역시 7월 8월보다 높았다. 단 압도적으로. 참고로 가장 높은 7월 평균 기온 기록은 1994년의 27.8℃이고, 가장 높은 8월 평균 기온 기록은 2018년의 27.1℃이다. [587] 1912년 7월 25일에 이은 7월 하순 일최저기온 역대 2위. [588] 특히 울산의 경우 2002년 1월 15일의 최고 기온이 19.2℃, 1993년 7월 27일의 최고 기온이 20.9℃로 불과 2℃도 차이나지 않는다. [589] 6~ 8월을 통틀어 최고 기온 극값이 25.3℃에 불과했고, 6~ 8월 평균 기온은 각각 15.4℃, 15.4℃, 16.1℃였으며, 월평균 최고 기온마저 6월 8월19.8℃가 최고치이다. 심지어 저 극값도 6월에 기록된 것이고, 한여름 7~ 8월 최고 기온 극값은 각각 24.5℃, 24.6℃로 6월보다 더 낮았다. [590] 10월 4~9일, 11~14일, 20일, 28일 제외 [591] 그런데 2018년 여름 최악의 폭염이 와서 8월 평균 기온이 1993년보다 6℃나 높고, 서로 정반대의 성격의 여름이였다. [592] 이 점은 10년 후인 2003년과도 같다. 이해도 여름 10월 이상 저온을 보였으나 9월은 평범했고 11월 이상 고온이었다. 2018년 여름 자체, 2020년 6월 8월이 더웠던 것을 제외하면 하반기 양상이 1993년, 2003년과 흡사하다. [593] 특히 11월 21~ 24일 [594] 1월 19일 기록 [595] 4~8일, 19~21일, 31일 제외 [596] 특히 1일, 10일, 24~28일 [597] 4월 7~8일, 13~15일, 17~18일, 27~30일, 5월 1~2일, 8~9일, 12일, 16~19일, 23~24일 제외 [598] 단, 서울은 17.1℃로 평년보다 조금만 낮았다. [599] 이 정도면 서울 4월 평균 기온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600] 그러나 평창 대관령면은 기상 관측이 1971년이 되어서야 시작되었으므로, 일제강점기처럼 저온 현상이 훨씬 심했던 시절에는 이보다도 낮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601] 1~2일, 22~24일, 30일 제외 [602] 당시 기준으로 평년보다 0.6℃ 낮은데, 9월이 원래 편차가 적은 달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평년보다 낮은게 확실하다. [603] 수도권 제외 [604] 25~29일 제외, 최고기온은 5일, 8일, 23~24일도 제외 [605] 특히 4월 1~4일, 10~12일, 17~21일. [606] 그나마 이것도 하순 일부의 고온 덕분에 간신히 두자리수를 시킨 것이다. 그 고온마저 없었다면 한자리수를 기록했으며 그 기간마저도 저온이면 8도대도 바라볼수 있었다. [607] 일별 평균 기온 중앙값(median)은 [608] 전날 30.5℃에서 무려 12℃ 가량 하락했다. [609] 21~22일 제외. 특히 25~28일. 그 중 26~27일이 저온이 매우 심했다. [610] 당장 하순의 저온을 제외시키고 8월 초중순(1~20일)까지의 평균 기온을 계산해보면 무려 27.96℃ 2013년 8월보다 높고 그 유명한 2016년 8월과 거의 동급 수준으로 매우 더웠다. [611] 물론 현대(1991~2020) 평년과 비교하면 0.1℃ 낮은 수치이긴 하다. [612] 1월 10~13일, 16~17일, 26~27일 제외. 특히 1월 21~ 23일. [613] 이는 ( 서울 기준) 많은 일조량을 기록하여 역대 2위를 달성한 2019년 5월의 일조 시간 314시간의 55% 수준이며 2019년에는 이상 고온까지 덤으로 찾아왔다. 참고로 5월 일조량 역대 1위는 1947년의 315시간이다. [614] 10월 1~ 3일, 10월 17~ 23일 제외 [615] 이해 9월 상순이 엄청나게 더웠기 때문에, 며칠 만에 크게 떨어진 기온으로 체감상으로는 엄청나게 추웠을 것이다. [616] 9~10일 제외. 특히 2~5일. [617] 특히 27일. [618] 이는 2020년 7월과도 비슷한데, 실제로도 각 월별 순위에서 2020년 7월과 1998년 8월이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1951년~1953년 여름까지 합산할 시에는 아예 둘다 81위이다. [619] 4월 20일 32.1℃. 하순도 아닌 중순에 연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는 점이 놀랍다. [620] 9월 12일 32.8℃. 상순도 아닌 중순에 연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는 점이 놀랍다. [621] 하필 이 당시 기온이 급격히 내려간 11월 18일에 1999년도 수능이 있던지라 진짜로 수능 한파가 불어닥쳤었다. [622] 반대로 2017년에는 12월 이후 강력한 한파가 찾아와 다음 해 2월까지 길게 이어졌다. [623] 이런 점은 전년도 3월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하순에 뜬금없는 꽃샘추위, 이런 꽃샘추위를 능청스럽게 부정하는 월평균 기온 등등... 비슷한 사례를 2월에서 찾아보자면 2021년 2월이 비슷하다. [624] 특히 남해군 [625] 10월 16일 최고 기온은 2021년 10월 16~ 17일보다 낮았고 10월 17일 최저 기온은 2021년보다 0.2℃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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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 만약 0.8℃에서 기온이 하강하면 0.2℃, 그 다음엔 -0.3℃인 식이다. [627] 2001년 1월 15일 기록. [628] 2016년 1월 24일 기록. [629] 2021년 1월 8일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