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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19 14:21:39

1942년

194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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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d1e23,#3d3e42><colcolor=#fff> 밀레니엄 제2천년기
세기 20세기
연대 1940년대
양력 1942년 음력 1941년 11월 15일
~ 1942년 11월 24일
음력 1942년 양력 1942년 2월 15일
~ 1943년 2월 4일
일수 365일( 평년)
1. 개요2. 기후3. 사건
3.1. 실제3.2. 가상
4. 탄생
4.1. 실제
4.1.1. 1월4.1.2. 2월4.1.3. 3월4.1.4. 4월4.1.5. 5월4.1.6. 6월4.1.7. 7월4.1.8. 8월4.1.9. 9월4.1.10. 10월4.1.11. 11월4.1.12. 12월4.1.13. 일자불명
4.2. 가상
5. 사망
5.1. 실제5.2. 가상
6. 히트작
6.1. 영화
7. 달력

[clearfix]

1. 개요

유럽 태평양 전선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의 광풍이 절정으로 치달았던 것과 동시에 모든 추축국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해.[2][3]특히 동부전선에서는 나치 독일이 모스크바를 코앞에서 놓쳤지만 청색 작전을 발동, 카프카스와 볼가 강까지 도달하는 등 추축국의 최대판도를 기록했었다. 그러나 소련군은 레닌그라드를 사수하고 스탈린그라드도 지켜내었고, 그리하여 이 해의 후반부에 다다르면 점점 독일의 우세가 약해지기 시작한다. 태평양에서는 일본 제국 남방작전을 통해 필리핀, 네덜란드령 동인도,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지역의 연합군을 연이어 패퇴시키며 한때 호주까지 위협하는 등 승승장구하였으나, 미군은 특공대를 보내 도쿄 한가운데에 깜짝 공습을 가하는 한편 일본의 네임드 항모 네 척을 함재기를 가지고 치열한 전투 끝에 가라앉혀서 일본 제국에게 기울어져 있던 태평양의 제해권을 백중세로 돌림과 동시에 과달카날에 상륙하며 일본 제국에 대한 반격을 개시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의 주도권은 연합국에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일제의 지배를 받고 있던 한반도에서는 8대 조선총독 고이소 구니아키가 집권하면서 징병제가 실시되어 무고한 한국 청년 및 소년들이 강제 징집 및 징병되어 전쟁터로 끌려갔고 부녀자 및 처녀나 소녀들도 정신대 및 위안부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전락당하는 비통을 겪기도 했던 격랑의 해였다. 특히 위안부를 지속적으로 부정하는 문제는 오늘날 한국 일본의 갈등거리로 남아있다.

본해 개최될 예정이었던 1942 FIFA 월드컵 당연하게도 취소된다.

2. 기후

서울의 월평균기온 통계는 다음과 같았다. 다음 해만큼은 아니지만 여름이 더웠던 해이고[4], 3월도 상당한 고온을 보였다. 다만 여름철과 3월을 제외하면 그 밖의 달에는 이상 저온이 잦았고, 이로 인해 연평균기온은 10.9°C로 당시 평년치와 정확히 같았다.[5]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서울 월평균기온(°C) -6.4 -3.5 5.9 9.9 15.3 22.0 26.0 25.4 20.0 12.5 4.7 -1.2 10.9
평년대비 편차(°C)[6] -1.4 -1.6 2.6 -0.5 -0.6 1.1 1.4 0.1 0.1 -0.6 -0.7 0.4 0.0
연 최저기온 연 최고기온 연교차
-17.9 °C(0118) 36.0 °C(0724) 53.9 °C

3. 사건

3.1. 실제

3.2. 가상

4. 탄생

4.1. 실제

4.1.1. 1월

4.1.2. 2월

4.1.3. 3월

4.1.4. 4월

4.1.5. 5월

4.1.6. 6월

4.1.7. 7월

4.1.8. 8월

4.1.9. 9월

4.1.10. 10월

4.1.11. 11월

4.1.12. 12월

4.1.13. 일자불명

4.2. 가상

5. 사망

5.1. 실제

5.2. 가상

6. 히트작

6.1. 영화

7. 달력

1월 2월 3월
1 2 3 1 2 3 4 5 6 7 1 2 3 4 5 6 7
4 5 6 7 8 9 10 8 9 10 11 12 13 14 8 9 10 11 12 13 14
11 12 13 14 15 16 17 15 16 17 18 19 20 21 15 16 17 18 19 20 21
18 19 20 21 22 23 24 22 23 24 25 26 27 28 22 23 24 25 26 27 28
25 26 27 28 29 30 31 29 30 31
4월 5월 6월
1 2 3 4 1 2 1 2 3 4 5 6
5 6 7 8 9 10 11 3 4 5 6 7 8 9 7 8 9 10 11 12 13
12 13 14 15 16 17 18 10 11 12 13 14 15 16 14 15 16 17 18 19 20
19 20 21 22 23 24 25 17 18 19 20 21 22 23 21 22 23 24 25 26 27
26 27 28 29 30 24 25 26 27 28 29 30 28 29 30
31
7월 8월 9월
1 2 3 4 1 1 2 3 4 5
5 6 7 8 9 10 11 2 3 4 5 6 7 8 6 7 8 9 10 11 12
12 13 14 15 16 17 18 9 10 11 12 13 14 15 13 14 15 16 17 18 19
19 20 21 22 23 24 25 16 17 18 19 20 21 22 20 21 22 23 24 25 26
26 27 28 29 30 31 23 24 25 26 27 28 29 27 28 29 30
30 31
10월 11월 12월
1 2 3 1 2 3 4 5 6 7 1 2 3 4 5
4 5 6 7 8 9 10 8 9 10 11 12 13 14 6 7 8 9 10 11 12
11 12 13 14 15 16 17 15 16 17 18 19 20 21 13 14 15 16 17 18 19
18 19 20 21 22 23 24 22 23 24 25 26 27 28 20 21 22 23 24 25 26
25 26 27 28 29 30 31 29 30 27 28 29 30 31


[1] Before Present [2] 2차대전에서 가장 치열했고 가장 결정적이었던 전투들은 대부분 이 해에 몰려 있는데, 대서양 전투에서 U보트가 전쟁으로 가장 큰 전공을 올린 해가 1942년이고, 일본과 미국 해군 전력 차가 잠시나마 가장 좁혀진 시점이 1942년이며, 나치군이 가장 모스크바에 근접했던 시점도 1942년, 일본에 처음으로 미군 항공기가 들어온 시점도 1942년, 롬멜을 비롯한 아프리카 군단이 가장 혈투하던 시점도 1942년, 중국 전선이 최악으로 치달았던 시점도 1942년이었다. [3] 하지만 이와 동시에 추축국의 운명이 결정되었는데, 독일은 6월 28일을 시점으로 청색 작전을 발동해 캅카스를 향한 대규모 공세를 시작했고, 이로부터 얼마지나지 않아 캅카스를 점령하기 위한 A집단군과 그들의 후방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스탈린그라드로 향하는 B집단군으로 나뉘며 스탈린그라드 전투라는 최악의 시가전으로 정예군 소모를 강요당했다.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한 소련의 반격으로 파울루스의 6군이 포위당해 전멸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동부전선의 공세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겨버린다. 한편 아시아에서는 미국이 진주만 공습을 당한지 단 6개월 만에 미드웨이 해전으로 일본 해군의 주력 항공모함 4척을 침몰시켜버리며 태평양 전선에 대한 공세능력을 궤멸시켜버렸다. [4] 다만 이는 서울 기준으로, 남부지방은 이해가 다음 해보다 훨씬 더 더웠다. 특히 대구의 경우 7월 평균기온이 29.3°C, 평균 최고기온이 36.6°C(!!!)이다. 더 나아가 이해 8월 1일에 기록된 40.0°C라는 최고기온은, 무려 2018년 7월 31일까지 정확히 76년 동안이나 한반도 공식 최고 기온 자리를 지켰다. [5] 공교롭게도 이는 이해의 한반도 공식 최고기온 기록을 갈아치운 2018년과도 비슷하다. 이해도 여름이 매우 더웠고, 3월도 강한 고온을 보였지만 다른 달들은 평범하거나 저온이 잦았다. [6] 기상청에서 제시한 평년값을 바탕으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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