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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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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반도( 대한민국, 북한) 외에 세계적으로 찾아온 한파를 시기별로 나열한 문서. 대한민국의 사례는 한파/대한민국 문서 참고.

2. 읽기 전에

예측 가능한 안정된 날씨와 함께 현대만큼 따뜻한 기온을 보인 950~ 1250년경 사이의 중세 온난기(Medieval Warm Period)가 끝나고 찾아온, 전 지구적으로 매우 추운 시기였다. 기후학자들이 소위 '소빙하기(Little Ice Age)'라고 부르는 시기이다. 따라서 특정 해가 아닐지라도 기본적으로 현대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한파가 잦았고 여름에도 이상 저온이 잦았던 시기이기에 한파 목록에 넣기로 했다.[2] 이 중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추웠던 시대는 17세기였다.

먼저 영국을 살펴보자. 현대의 겨울에 템스강이 얼어붙는 것은 아무리 추운 날씨라도 상상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1814년까지만 해도 템스강은 종종 완전히 결빙되었으며, 영국에서는 얼어붙은 템스강의 정경이 소빙하기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생각나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다. 상술했듯이 17세기가 소빙하기에서 가장 추웠던 시기인 관계로 결빙도 가장 잦았다. 종합해보면 17세기에는 템스강이 1608년, 1621년, 1635년, 1649년, 1655년, 1663년, 1666년, 1677년, 1684년, 1695년으로 총 10번이나 결빙되었다.[3] 이 중에서 1683~ 1684년 겨울이 가장 극단적으로 추워서 얼어붙은 강 위에서 'River Thames frost fairs'이라는 축제를 열기도 했다고 한다. River Thames frost fairs 축제에 대한 영문위키의 설명 참조. 아래는 1683~1684년 겨울에 토머스 와이크(Thomas Wyke)라는 화가가 그린 River Thames Frost Fair 축제 당시의 템스강 풍경화이다. 소빙하기 당시 유럽의 겨울 풍경을 생생히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파일:River Thames Frost Fair, 1683-84.jpg
17세기의 극단적인 추위는 유럽뿐만 아니라 북아메리카 아시아에서도 발생했는데, 설명이 너무 길어지므로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아래의 연도별 한파 목록에서 자세히 서술할 것이다. 소빙하기에서 17세기 다음으로 추웠던 시기는 18세기 초반이다. 그리고 18세기 중반에 이르러 잠시 따뜻해졌다가[4] 18세기 후반에 다시 전 세계적으로 기온이 하강하며 이는 19세기 초반까지 이어졌다. 템스강이 마지막으로 얼었던 해가 바로 이 시기와 맞물린다. 템스강은 18세기에 1709년, 1716년, 1740년, 1776년, 1788년, 1795년으로 총 6번 결빙되었으며, 19세기에 들어서는 인류 역사상 마지막으로 1814년[5]에 1번 결빙된 이후 20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더 이상 결빙되지 않고 있다.[6]

정리하면 14~ 15세기에 시작된 소빙하기가 17세기~18세기 초반까지 가장 추워 절정을 찍고[7][8] 18세기 중반에 잠시 잦아들었다가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에 다시 추워진 뒤[9], 19세기 중반부터 점차 기온이 올라[10] 점차 소빙하기가 끝나고 그 이후로도 현대까지는 계속 지구의 평균 기온이 오르고 있다.

다만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소빙하기가 시작된 14세기 이전에도 소빙하기에 맞먹는 극심한 한파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평균 기온의 문제이다. 심지어 중세 온난기에 해당하는 10~ 13세기 사이에도 드물게 소빙하기에 준하는 혹한이 찾아왔다. 16세기~19세기 중반이 소빙하기였던 만큼 해당 시기에 평균적으로 추운 겨울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래의 한파 목록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소빙하기가 아닌 그 이전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한파는 꽤 많았다. 다만, 시기적으로 추운 소빙하기가 다른 시대에 비해 극단적으로 추운 겨울의 빈도수가 클 뿐이다. 그러나 소빙하기 이후는 명백히 이야기가 다르다. 20세기부터는 과거에 비해 심한 한파의 빈도가 확연히 줄어들었으며, 21세기에 들어서는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한 지구 온난화, 열섬 현상 등으로 인해 소빙하기 시절과 같은 혹한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고 있다.
많은 이들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중세 온난기 이전인 6세기에서 9세기 사이에도 소빙하기와 같은 장기적으로 추운 시기가 존재했다. 당시는 유럽사에서 고전 고대(Classical Antiquity)에서 중세(Middle Age)로 넘어가는 전이 단계인 고대 후기(Late Antiquity)였다. 그 시대의 이름을 따서 '고대 후기 소빙하기(Late Antique Little Ice Age)'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시대의 혹한은 위에서 설명한 소빙하기와 맞먹거나 그 이상으로 추웠을 것으로 예상되며, 사실상 추위로는 예수님 탄생 이후[11] 최종보스이다. 어느 정도이냐면 그 추웠다는 소빙하기보다 더 추운 시기도 존재했다! 다만 너무 옛날이라서 존재감이 거의 없고, 역사적 사료도 찾기가 힘들 뿐이다. 고대 후기 소빙하기를 설명하는 영문위키 참조.[12]

아래의 그린란드 빙하 코어를 통해 추정한 지난 10,000년간의 기온 그래프를 확인해 보자.

파일:past 10000 years global temperature.png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소빙하기보다 기간은 조금 짧을지언정 6~9세기에도 상당히 추운 시기가 존재했다. 기온 변동이 상대적으로 적은 소빙하기와 달리 고대 후기 소빙하기는 매우 크게 2번의 하강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6세기에 심한 하강이 1번 있고, 그 뒤로 8~ 9세기 사이에 다시 1번 크게 하강하는데 이때의 하락폭이 특히 심해서 -32℃선 아래로 떨어진다. 이때가 소빙하기인 16세기~19세기 중반에서도 가장 추웠다는 시기보다도 기온이 더 낮다. 다만 고려해야 할 점이, 위의 그래프는 극지방인 그린란드에 한정된 추정 그래프이다. 세계적인 평균 기온을 분석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세계적으로는 8~9세기가 아니라 535~ 536년(넉넉히 잡으면 약 550년까지)의 기후가 지난 2,000여 년간 가장 추웠을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한파 목록 참조. 또한 위의 그래프는 지구의 기후가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의 주기로 더운 시기와 추운 시기가 번갈아 나타났다는 것을 입증하기도 한다. 지구에서 기후의 변화 자체는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시사한다.[13] 노파심에 추가하는 서술이지만 위의 그래프만 보면 그래프의 끝 부분의 y축 값이 낮아서 중세 온난기에 비해 현대가 비교도 안 되게 추운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이는 그래프 x축의 끝 연도가 현재 기준이 아니라서 그렇다. 그래프 x축의 끝을 자세히 보면 0이 아니라 95로 끝난다. 그러므로 저 검은 선이 그래프에서 보여주는 마지막 시기, 95년 전( 1926년) 기준점이다. 지난 100년간 지구는 과거의 그 어느 시기보다도 빠른 속도로 기온이 상승했고, 이미 현재는 중세 온난기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따뜻해졌다.

아래는 세계의 역대 한파 목록 작성에 유용한 참고 자료들이다.

3. 목록

3.1. 1~ 10세기

3.2. 11~ 16세기

대략 6세기 초반에 시작된 고대 후기 소빙하기가 8~ 9세기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세계적으로 매우 추웠던 것과 대조적으로, 10세기에서 14세기까지의 약 300~400년 동안은 전술한 고대 후기 소빙하기나 후술할 15세기 이후의 소빙하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따뜻한 시기였다(거의 현대와 비슷한 수준). 위에서 서술한대로 이 시기를 중세 온난기(Medieval Warm Period)로 분류한다. 특히 유럽 기준으로 12~ 13세기가 가장 따뜻했다고 한다.[34] 그러나 앞서 언급한대로 이 시기가 현대와 차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평균적으로는 따뜻할 시기일지라도 소빙하기급의 한파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현대와 달리 드물게 소빙하기와 맞먹는 급의 한파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3.3. 17세기

아래의 내용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17세기의 시작인 1601년을 시작으로 17세기가 저물어가는 1695년까지 현대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한파가 빈번히 찾아왔다. 당시 소빙하기의 기세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53]

3.4. 18세기

3.5. 19세기

3.6. 20세기

3.7. 21세기


[1] 소빙하기의 시작 시기를 언제로 잡느냐에 대해서는 학계 및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넓게 잡아서 14세기 15세기를 소빙하기의 시작이라 보는 학자들도 많다. [2] 물론 그에 반하는 이상 고온도 있기는 했다. 소빙하기를 상상할 때 많은 사람들이 무조건 추운 것만을 떠올리지만 이는 큰 오해이다. 소빙하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반적으로 추워짐과 동시에 갑작스러운 홍수 태풍, 폭염예측이 불가능하고 겉잡을 수 없이 불안정한 날씨의 증가이다. 자세한 내용은 폭염/사례 문서 참조. [3] 출처는 후술할 영문위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담으로 16세기에는 1506년, 1514년, 1537년, 1565년, 1595년으로 총 5번 결빙되었다. [4] '따뜻하다'의 기준이 상대적이니 주의하기 바란다. 당연히 18세기 초반까지 극단적으로 춥다가 중반에 들어 약간 따뜻해진 것일 뿐이며, 상대적으로 따뜻해진 18세기 중반조차도 20세기, 21세기보다는 훨씬 추웠다. [5] 동시에 마지막 River Thames Frost Fairs 축제가 열렸다. [6] 그나마 가장 최근인 1962~ 1963년 겨울에 템스강의 상류가 결빙된 적이 있기는 하다. 다만 이것도 상류 한정이고 도심으로 흘러가는 하류는 결빙되지 않아서 공식 결빙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다. [7] 사실 이 시기에는 거의 매년마다 현대의 한파와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의 혹한이 찾아왔다. 따라서 모든 해에 찾아온 한파를 일일이 문서에 쓰는 것은 문서의 길이가 지나치게 길어질 뿐더러 딱히 의미도 없으니, 그 시대에서도 유별나게 추웠던 해만 골라서 서술하였다. [8] 다만 이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100년 단위가 아닌 10년 단위로 끊으면 유럽 기준으로 가장 추웠던 시기는 1430년대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15세기에 전반적으로 17세기 못지않게 추운 겨울이 많기도 하다. 어쨌든, 소빙하기 초반~중반이 가장 추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된다. [9] 이 시기의 한파 증가는 화산 폭발의 영향도 지대했다. 1783년 6월 아이슬란드 라키 화산 분화, 1815년 4월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 분화 등 거대한 화산 폭발이 2번이나 발생하였다. 라키 화산 분화의 경우 그 영향이 매우 오랫동안 이어졌다. 분화 이후 관점에 따라 최소 5년, 길게는 약 10년 동안 비정상적인 한파, 잦은 홍수 등 각종 기상이변이 발생했다고 전해진다. [10] 물론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사이에도 한파가 다시 잦아지는 경향이 있었으나, 그래도 평균적으로는 기온이 오르는 추세에 있었다. 무엇보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의 한파도 현대보다는 확연히 추웠으나, 소빙하기의 절정이었던 17세기~18세기 초반에 비하면 확연히 약했다. 실제로 17세기~18세기 초반의 한파는 영국 템스강이 얼고, 북해가 얼어붙었으며, 중국 상하이 앞바다가 얼어붙을 정도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의 한파로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11] 서기 1년 시작 이후 [12] 다만 이곳에서는 고대 후기 소빙하기의 시기를 6~ 7세기로 굉장히 짧게 보고 있다. [13] 다만 그렇다고 해서 지구 온난화가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구 온난화의 주된 심각성은 기온이 오르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과 지난 수십 년간의 기온 상승 속도가 과거에 비해 적게는 수십 배, 많게는 수백 배에 달할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빠르다는 것에 있다. 이것은 인위적인 요소의 개입 없이 자연적인 변화로는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 기상학자들의 주류 견해이다. [14] 가장 유용한 사이트로, 러시아 사이트이다. 따라서 어지간하면 구글 자동 번역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해당 링크는 아시아 국가 목록이지만 스크롤을 쭉 내리다 보면 유럽, 북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심지어 남극(?!) 등 대륙 선택이 가능하다. 이 문서에 서술된 해외의 월평균 기온 자료는 대부분 이 사이트가 출처이다. [15] 다만, 20세기 이후의 기온 자료는 왠지 모르지만(사이트로 데이터를 가져오며 변환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됨) 실제 데이터와 0.1~0.5℃ 정도의 약간의 오차가 있다. 따라서 20세기 이전의 기록을 볼 때 활용하는 것이 더 유용할 것이다. 또한 전 세계 모든 도시의 기온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며 주요 도시만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서울 부산의 자료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결측된 기간은 값이 표시되지 않으며 '999.9'로 표시되니 유의하기 바란다. [16] 마운더 극소기는 1645~ 1715년 사이의 태양 흑점의 활동이 지난 2,000년간 가장 적었던 시기를 의미한다. 학술적으로 영문위키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위에서 17세기~18세기 초반이 소빙하기 시대 중에서도 가장 추웠다고 서술했는데, 원인 중 하나가 마운더 극소기이다! 그 이유는 지구의 경우 기후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인 태양의 복사에너지에 의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다만 이 시기는 너무 옛날이라 인간이 남긴 직접적인 관측 자료가 없어서 옛 문헌에 묘사된 당시 날씨 기록의 도움으로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 이 사이트이다. 해당 문서의 17세기 겨울들의 서술 내용은 많은 부분이 이 사이트 출처라고 보면 된다. [17] 해당 링크에서 'Historical Cold Waves' 항목을 펼치면 양은 적지만 북아메리카 대륙을 중심으로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은근히 얻어갈 내용들이 많다. 특히 19세기 북아메리카 대륙의 한파 자료가 상세히 적혀있다. [18] 1880년 1월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 평균 기온의 편차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19] 1870년부터 현재까지 관측한 내용이다. [20] 별별 기록이 다 정리되어 있는 사이트이다. 홈페이지 언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독일 사이트인데, 주로 유럽 대륙의 기록을 위주로 각종 소빙하기 시절의 기록, 심지어는 고대 후기 소빙하기보다 오래전으로 거의 2,000년 전인 1세기 기록(!)까지도 나와있다. 추위 뿐만 아니라 각종 기후 변화를 위한 인류의 노력과 협정들이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기후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물론이고 기후 변화로 인한 인류 역사와 문명의 변화 등 '기후 아카이브'라는 사이트 제목에 걸맞는, 말 그대로 기후에 관한 방대한 기록과 지식들을 공유하는 사이트이다. 독일 사이트라서 그런지 독일 각 지역들의 평년 기온값과 기후 극값 정보들도 자세하게 나와있다. 혹시라도 독일의 기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방면으로도 매우 유용한 사이트일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17세기 이전의 한파 자료들은 거의 이 사이트가 출처이다. [21] 양력으로 대략 6~7월로 추정된다. [22] 출처는 일본서기 권 제18 참조. [23] 보통 소빙하기에는 일사가 차단되고 화산 등으로 일조 시간이 적었는데, 이는 고대 후기 소빙하기도 마찬가지이다. [24] 연구마다 차이가 있는데, 어떤 연구에서는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을 지목한다. [25] 4℃라고 하면 감이 오지 않겠지만 소빙하기가 일반적으로 최대 1.5~2.5℃ 하강이다. [26] 이탈리아와 발칸반도 사이의 바다이다. [27] 튀르키예의 서쪽 끝에 있는 해협으로 그 따뜻하기로 유명한 지중해의 일부분이다. 바로 건너편에 그리스가 있다. [28] 추울수록 나무가 성장하지 못하여 나이테 사이의 간격이 좁아진다. 기후학자들은 이와 같은 나무 나이테의 성질을 이용해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아주 옛날의 기후 추정을 하는데 유용하게 활용한다. [29] 현재의 루마니아 동부 인근 [30] 부산이 거의 정확히 북위 35° 정도이다. [31] 20세기 이후에는 아무리 추운 날씨가 지속되어도 보하이해(渤海)까지밖에 얼지 않는다. 이곳의 최남단이 대략 북위 37°이다. [32] 29주이면 거의 7개월에 달한다! 예를 들어 10월 시작부터 이듬해 4월 말까지 계속 내리는 것. 상상이 가는가? [33] 이 논문은 후술할 1453~1454년, 1654~1655년 겨울, 1670~1671년 겨울 한파에도 등장한다. 무려 1,000년 이상의 중국 남동부 지역의 과거 겨울들을 고대 문헌에 쓰여진 바다 결빙, 호수 결빙 기록 등을 통해 재조명한다. 인류가 남긴 기상 관측 기록이 거의 없는 18세기 이전을 살펴보는 데에 매우 유용하다. [34] 당장 위에 전술한 겨울들과 아래에 후술할 겨울들만 살펴봐도 903~ 904년 겨울, 1010~ 1011년 겨울, 1076~ 1077년 겨울 등 그나마 수백 년에 한 번 찾아올 정도로 강력한 한파를 보인 역대급 네임드 겨울이 존재하는 10~11세기와는 다르게, 12~13세기는 정말로 역대급 네임드 겨울이 전무하다. [35] 다른 추운 겨울들도 유럽 주요 강들이 경빙하는 일은 종종 있었으므로. [36] 서울의 면적보다 약간 작은 호수이다. [37] 한 세기에 1번 있을까 말까라는 맥락으로 보인다. 즉 다행히 1,000년급 한파는 아니고 100년에 1번급의 한파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38] 현대에 사용되는 달력 체계가 그레고리력이므로, 당시 사용되던 율리우스력과는 차이가 있다. [39] 설명에서 대놓고 'very terrible'이라는 수사어구를 붙혔다. [40] 강의 얼음 두께가 저 정도라는 뜻이 아니라 일부 지역에 그 정도의 얼음이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41] 그 추운 겨울이 널렸다는 1690년대보다도 약간 더 추웠다고 한다! [42] 다시 말해 이 시기에는 유럽의 기후와는 다른, 한반도에 가까운 기후가 유럽 전역을 덮쳤다는 뜻이 된다. 설명을 보면 건조한 추위와 습한 더위를 띄는 한반도의 기후와 판박이다. [43] 즉 여러가지 대기의 움직임은 셀 수 없이 많은 확률이 존재하고, 그에 따라 어떠한 기압 배치가 이루어지면 계속 추운 날씨가 이어지기도 하는데 당시 10년 동안이나 그러한 패턴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44] 1430년대뿐만 아니라, 15세기 전반적인 유럽의 기온을 재건하여 재조명함. [45] 기온이 낮으면 나무가 성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심하면 아예 동사한다. 따라서 나이테도 좁아지는 것. 이러한 나이테의 성질 덕에, 고기후학자들은 과거 기후 연구에 있어 나이테의 간격을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46] 북위 31°로, 북위 35°에 위치한 부산보다도 현저히 따뜻한 곳이다. [47] 이것도 엄청나지만, 전술한 903~904년 겨울과 후술할 1654~1655년 겨울에는 이보다 조금 더 남쪽까지 결빙되어 상하이를 지나 북위 30.5°까지 결빙된 기록이 있다... [48] 양쯔강 남쪽 지역은 대략 북위 30°보다 남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49] 남위 16.8°, 동경 168.5°에 위치해있다. [50] 그러나 이것은 해당 논문이 지난 2,000여 년의 스케일 내에서 조사했기 때문이고, 영문위키에 따르면 지난 1만 년간 최대 규모라고 한다! [51] 이러한 양상은 대한민국 1916~ 1917년 겨울을 떠올리게 한다. 1916년 12월 25일까지는 대체적으로 이상 고온이었다가 성탄절 저녁 이후 기온이 급하강, 12월 26일이 되자 서울이 -19.0℃까지 떨어지고 이듬해 2월 10일경까지 한파가 계속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52] 북위 약 33.5~34.1° [53] 특히 17세기 중반에 들어 극심해진 소빙기 현상 때문에, 당시 인류의 주 무대 지역인 유럽 아시아에서 동시에 수없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나 많은 나라들이 멸망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원래 17세기 중반 전후에도 세계적으로 많은 전쟁과 반란이 있었으나, 중반에 들어 무서우리만치 전쟁과 반란이 늘어나고 아예 국가가 멸망하기까지 하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54] 무려 스페인에서 5월까지 계속 눈이 내렸다는 기록을 보면 이해 겨울 날씨는 실질적으로 [55] 하버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발간한 'The Little Ice Age and Europe’s Encounter with North America'라는 책의 내용을 발췌하여 쓴 저널이라고 한다. 따라서 신뢰도는 매우 높다. [56] 보통 아무리 추운 겨울도 스페인, 그리스 남유럽을 묘사한 기록은 드문데 이해 한파는 남유럽의 묘사도 무시무시하다. [57] 17세기의 네임드급 겨울들은 후술할 1654~ 1655년 겨울, 1683~ 1684년 겨울, 1694~ 1695년 겨울 등이 있다. [58] 기록적인 혹한이 3월 말까지라는 뜻이고, 네덜란드보다도 훨씬 따뜻한 스페인의 묘사를 보면 최소 5월까지도 겨울 날씨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59] 스페인 중부에 위치한 마드리드는 1월 평년 평균 기온이 6.3℃로 대한민국 제주보다 따뜻하고, 북부의 해안 도시인 빌바오는 9.3℃로 [60] 스페인에서 이 정도라면 스페인보다 명백히 더 추운 프랑스, 영국, 독일 등에서는 [61] 사실상 11월에서 이듬해 4월까지 [62] 조선의 서술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해는 사실상 봄인 3~4월까지도 한겨울 이상의 심한 혹한이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양력 [63] 이에 대해서는 지난 1641년에 아일랜드에서 영국에 항거하는 난이 일어났고, 한창 국왕과 내전하기 바빴던 영국은 일단 아일랜드를 기근에 빠뜨려 식인을 하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포위한 뒤, 1651년에 내란이 정리되자 아일랜드 전역을 본격적으로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에는 영국의 폭거로 인한 영향도 있을 듯하다. [64] 링크 속 논문이 이유는 모르지만 현재 다운이 불가능하다. 읽고 싶으신 분들은 이곳에서 pdf 다운하면 된다. [65] 당시 이 주변은 산해관 통과 이후 급속도로 내려온 청나라가 점령하였다가 1654년 2월에 명나라 잔당 세력이 다시 점거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이상 한파 때문인지는 몰라도 1655년 9월에 청나라가 다시 점령하였다. [66] 제주 기준 약 북위 33.5°. 상하이와 제주의 위도차가 제주와 대구와의 위도차와 비슷하다. [67] 위도도 제주도보다 낮은 곳에 위치하며, 서울 면적의 3배가 넘는 거대한 호수가 얼어붙은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 호수는 한파가 심했던 17~ 19세기에 정말 드물게 결빙되었는데(해당 논문에 따르면 1654~1655년 겨울, 1665~ 1666년 겨울, 1683~ 1684년 겨울, 1700~ 1701년 겨울, 1761~ 1762년 겨울, 1861~ 1862년 겨울, 1877~ 1878년 겨울, 1892~ 1893년 겨울로 총 8번 결빙되었다고 한다. 물론 1600년 이전에도 결빙 기록들이 있다) 한파가 극심했던 1892~1893년 겨울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130년간 얼지 않고 있다. 참고로 상하이 앞바다의 결빙과 타이호 결빙이 모두 발생한 겨울은 지난 2,000년간 우리가 지금 보고있는 1654~1655년 겨울로 단 1번 뿐이라고 링크 속 논문 자료는 설명하고 있다. [68] 상식적인 선에서 동해 서해보다 수심이 훨씬 깊기 때문에(서해는 약 100m, 동해는 최대 3,600m) 비열이 커서 겨울에 서해보다 수온이 높다. 따라서 강릉처럼 따뜻한 동해안 지역이 -25℃ 이하의 한파가 찾아오지 않는 이상, 동해는 결빙이 불가능하다. 참고로 강릉에서 공식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11년 이래 기록된 역대 최저 기온은 1915년 1월 13일의 -20.2℃에 불과하다. 심지어 현대는 물론이고, 한겨울에는 서울 -20℃ 이하, 강릉 -15~-16℃ 정도는 당연하게 내려가던, 그 혹독했던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동해가 사흘이나 얼어붙었다는 기록이 없다. 그런데 한겨울도 아니고 봄에 동해가 얼었다는 것은 상상이 불가능한 추위이다. [69] 1654년에는 백두산 분화 기록이 남아있다. 아마도 이 영향으로 1655년 한반도에 빙하기급 저온 현상이 찾아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70]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전 해와 다르게 아시아에서는 해당 겨울 내에서 극단적인 한파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특이한 기록이 있으니,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한겨울도 아니고 봄인 4~5월에 전라도에 큰 눈에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전년도의 추위가 너무나도 살인적이었던 나머지, 다음 겨울도 현대에서는 경악할 추위인데도 당시 사람들은 그다지 추위가 강하다고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71] 5~6 German Miles라고 한다. 참고로 'German Miles'는 우리가 아는 그 1마일(mile) 단위와는 다른, 현대에는 사용되지 않는 과거의 단위이다. 1 German Miles = 24000 feet = 약 7.2km이다. 따라서 5~6 German Miles는 대략 35~42km이다. [72] 정작 바로 1년 전인 1669~ 1670년 겨울에는 겨울(양력 1월)임에도 날씨가 봄 같았다는 기록이 있어서 더욱 대비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73] 이때의 한파가 얼마나 위력적이고도 참혹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음력 11월 2일(양력 12월 13일), 제주도에 거센 바람(大風)과 큰 눈(大雪)이 동시에 사납게 불어닥친 끝에 쌓인 눈이 한 길(대략 2.4m)이었다고 하며, 기근에 지쳐 열매를 주우러 산에 올라간 91명이 이 쌓인 눈에 갇혀 그대로 얼어죽은 기록도 있다. 이게 다른 것도 아니고 나라의 공식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겨울철 날씨가 따뜻한 제주도조차 이 지경이었으니, 본토인 한반도에 들이닥친 추위의 위력은 그야말로 전대미문이었을 것이다. 괜히 살아있는 사람들이 추위를 못 견뎌서 시체의 옷이라도 훔쳐입은 것이 아니다. [74] 이 정도면 [75]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조차도 현대의 관점에서는 비상식적이다. 북위 34.8°는 거제도와 비슷한 위도이다! [76] 영국의 기상 관측 데이터는 1659년부터 존재한다. 사실 영국이 전 세계에서 최초로 기상 관측을 시작한 나라이다. 그냥 [77] 이 정도의 두께라면 당연히 사람이 올라가도 안전한 것은 물론 수백 kg 이상의 무거운 물체가 올라가도 괜찮은 수준이다. [78] 현대의 북해는 아무리 기록적으로 추워봤자 수 km는 커녕 해안가 근처도 얼음이 거의 얼지 않는다. 이를 생각해보면, 당시에 도대체 얼마나 추웠던 것인지 상상이 가능하다. [79] 타이호 결빙은 17세기에도 1654~1655년 겨울, 1665~1666년 겨울, 1683~1684년 겨울밖에 없을 정도로 희귀하다. 1683~1684년 겨울이 기록적으로 추웠음을 입증한다. [80] 거의 제주도급으로 따뜻한 곳이다. [81] 일단 11월~3월 동안 조선왕조실록에 추위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런데 절기상 겨울이 다 지나간 음력 4월 8일(양력 5월 20일) 평안도 강계 지방에 서리가 눈처럼 내렸다는 기록과, 음력 5월 2일(양력 6월 13일) 평창에도 서리가 내렸다는 기록은 있다. 심지어... 음력 7월 7일(양력 8월 16일)에 진주에서 눈이 내려서(?!) 그 두께가 3치(寸)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음력 7월 28일(양력 9월 6일)자 기록에는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평안도 등지의 지역에서 며칠간 서리가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82] 이해는 겨울이 사실상 10월부터 시작되었다. [83] 예시로 영국 중부 지역은 1683~ 1684년 겨울이 가장 추웠다. [84] 1991~ 2020년 기준으로는 베를린 0.7℃, 서울 -2.0℃ [85] 다만, 이는 서울이 비교적 근대인 1907년에 와서야 기상 관측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도 분명히 21세기보다는 춥지만, 18~ 19세기에 비하면 따뜻하다. 베를린과 마찬가지로 서울도 18세기부터 관측이 시작되었다면 월평균 기온 -10℃ 이하인 달도 꽤 있을 것이다. [86] 앞서 언급한대로 1981~2010년 평년값 기준 서울의 1월 평균 기온은 -2.4℃이다. 혹자는 서울의 1월 평균 기온 평년값이 베를린보다 2℃ 이상 낮으니, 베를린의 월평균 기온 -13.2℃ 기록을 서울로 비유할 시 -13~-14℃가 아니라 -15~-16℃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평년값만 고려해서 똑같이 더하고 빼기는 힘든 것이, 베를린이 평년값은 높을지언정 서울보다 위도가 높은 지리적 특성상 북극권에서 남하하는 한기의 영향을 받을 때 더 정통으로 받기 때문에 일단 한파가 강하게 오는 겨울에는 월평균 기온이 평년 값으로부터의 편차(anomaly)가 서울보다 큰 경향이 있다. [87] 이미지가 흐릿해서 대략적인 색깔 분포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고 싶으신 분들은 서술 상단의 영문위키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이미지를 클릭하여 보는 것을 추천한다. [88] 해당 편차 지도가 1971~2000년 평년 기온 베이스로 작성된 것이므로, 비유를 할 때 같은 기준으로 1971~2000년 서울의 평년값과 비교하는 것이 타당하다. [89] 12월 0.2℃, 1월 -2.5℃, 2월 -0.3℃ [90] 공식적인 기록으로 서울의 겨울 전체(12~2월) 평균 기온이 가장 낮았던 겨울은 1944~ 1945년 겨울의 [91] 17세기~18세기 초반에 전 세계가 극단적으로 추운 겨울을 자주 겪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보는 기후학자들이 많다. [92] 또한 마운더 극소기만큼은 아니지만,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에 흑점 수가 또 다시 급감하는 구간이 보일 텐데 이 시기를 달톤 극소기라고 한다. 실제로 달톤 극소기인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도 17세기~18세기 초반 다음으로 기록적인 혹한이 자주 발생했다. [93] 많은 기후학자들은 마운더 극소기가 지난 2,000여 년간 그 어떤 시기보다도 태양 활동이 적었다고 주장한다. [94] 왜 하필 베를린이냐면, 베를린의 기상 관측이 1701년에 시작되어 세계에서 가장 빨랐기 때문이라고 해당 블로거가 설명한다. 다만, 해당 설명은 오류가 있는 것으로 실제로는 영국 미드랜드가 1659년에 기상 관측이 시작되어 세계에서 가장 빨랐으며 그 다음으로는 프랑스 파리 1675년이다. 독일 베를린의 1701년 시작이 3번째로 빨라서 세계적으로도 매우 빠른 편에 속하기는 하나 세계 최초는 아니다. [95] 이 축제는 소빙하기 시기에서도 1608년, 1683~ 1684년, 1716년, 1739~ 1740년, 1789년, 1814년으로 총 6번 밖에 열리지 않았을 정도로 희귀하다. 당연히 강 위에서 축제를 열 정도로 얼음이 꽁꽁 얼어야 하기에 어지간히 추운 겨울로는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기록적으로 춥다고 축제가 꼭 열렸던 것은 아닌데, 1649년, 1655년, 1663년, 1666년, 1677년, 1695년, 1709년, 1776년, 1795년 등은 템스강이 결빙될 정도로 충분히 추웠음에도 개최되지 않았다. [96] 당시에 우편물을 수송하는 도로 [97] 일별 최저 기온, 최고 기온 기록은 1878년부터 제공 [98] 1929년 2월 15일 기록 [99] 1927년 12월 31일 기록 [100] 추정이기는 하지만 조선왕조실록 등에 묘사된 내용들을 보면 서울도 소빙하기에서 가장 추웠던 시기인 1450년대에서 1720년대 사이에 -27~-28℃, 혹은 그보다 더 낮은 온도도 기록했을 수 있다고 보여진다. 부산이 -18~-19℃, 제주도는 -9~-10℃, 강원도 산간 지역이 -35~-37℃ 이하의 기온을 기록한 것과 비슷하다. 예시로 1655년 봄에 동해가 사흘간 얼었다는 기록을 보면 더욱 그렇다. 소빙하기보다 어느 정도 따뜻해진 20세기 초반에도 한파가 강하게 찾아오면 서울이 -22~-23℃를 기록한 적이 있는지라 더욱 그럴 것이다. [101] CET는 1659년, 베를린은 1701년. CET는 하나의 단일 지역이 아니라 CET라는 약자에서 알 수 있듯이 잉글랜드 중부 지역들에 대한 평균값이니 유의하기 바란다. [102] 1740년 베를린의 연평균 기온이 5.4℃였다. 1981~2010년 기준으로 베를린의 연평균 기온 평년값이 9.7℃임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이상 저온인 셈이다. 와닿지 않는다면 1981~2010년 기준으로 연평균 기온 평년값이 12.5℃인 서울이 8.2℃인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참고로 서울의 공식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낮은 연평균 기온을 기록한 해는 1947년으로 9.6℃였다). 베를린의 가장 높은 연평균 기온이 11.8℃이므로, 1740년과 무려 6.4℃의 차이를 보인다. 이를 서울에 그대로 대입해보면, 1740년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7.4℃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103] 이 당시에는 계절적으로 가을인 10월부터 심각한 추위가 맹위를 떨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겨울 날씨는 이듬해 5월까지 아주 길게 지속되었다. [104] 상단의 1739~1740년 겨울 서유럽 한파 단락을 보면 알겠지만 1740년은 겨울 혹한뿐 아니라 1년 내내 이상 저온이 이어져 유럽에서 영국, 독일 모두 연평균 기온이 역대 가장 낮았던 해이다. 북아메리카마저도 이러한 이상 저온이 이어진 듯하다. [105] 이러한 폭설은 1717년 3월과 닮았다. 물론 1717년보다는 약간 덜하지만. [106] 북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기상 관측은 1743년 보스턴에서 시작되었다. [107] 1934년 2월 9일 기록 [108] 물론 뉴욕 앞바다가 얼었던 적은 몇 번 있지만, 이렇게까지 두껍게 얼어붙은 겨울은 이해 겨울과 1820~ 1821년 겨울로 2번 뿐이라고 한다. [109] 월평균 최고 기온 13.5℃, 월평균 최저 기온 2.3℃ [110] 물론 미국과 중국, 대한민국의 기후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기후 평년값만 가지고 매칭시켜서 보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대략 그 정도로 충격적인 상황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111] 대구보다 겨울에 훨씬 추운 서울조차 1907년 기상 관측 이래 이러한 사건은 전무했다는 점을 상기해보자. 그나마 비슷한 사례가 2011년 1월과, 1963년 1월 낮 기온이 이틀 빼고 전부 영하였던 적이 있다. [112] 사실 1780년대 자체가 세계적으로 극한 추위가 잦았다. 자세한 이유는 후술. [113] 북위 37.8° 위치하여 서울보다 약간 높은 위도에 있다. 현대에는 아예 얼지를 않는다. 체서피크만 연안의 도시인 노퍽의 1월 평균 기온은 4.7℃. 대략 제주시 앞바다가 얼어붙은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114] 참고로 뉴올리언스는 최한월인 1월의 평년 월평균 기온이 [115] 참고로 프랑스 파리의 1981~2010년 기준 12월 평균 기온 평년값은 5.5℃로 부산의 12월 평균 기온과 비슷하다. [116] 파리보다 겨울에 훨씬 추운 서울조차도 12월 월평균 기온이 -6.8℃는 커녕 -6℃ 이하로 떨어진 적도 전무하다. 물론 기상 관측이 1907년 10월 1일부터 시작되어서 그런 것이고, 1884년 12월 서울이 1788년 12월의 파리에 비견되는 수준의 한파였을 가능성이 존재하기는 한다. 소빙하기가 막 끝난 19세기 후반이 이 정도인데, 하물며 한창 소빙하기였던 18세기의 서울은? [117] 12월로 한정짓지 않아도 1893년 1월 -21.6℃ 다음으로 낮아 역대 최저 2위이다! [118] 다만 위의 문단에서 설명한대로 이 사이트에 약간의 오차가 있다. 2011년 신의주의 월평균 기온은 -9.4℃인데 이 사이트에서는 -9.8℃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1917년 1월 서울의 월평균 기온은 -9.0℃인데 이 사이트에서는 -9.3℃로 표기되어 있고, 1963년 1월도 -9.2℃인데 이 사이트에는 -9.4℃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약간의 오차는 있어도 0.5℃ 안팎이라 어느 해가 추웠는지, 더웠는지를 확인하는 데에 유용하다. 따라서 이 사이트에 적힌 월평균 기온 표에서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자. 다행인 점은, 이 문서 내에서 직접 링크로 건 베를린,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교차검증 시행 결과 19세기의 자료까지는 문제가 없다. 다만 공통적으로 20세기 이후의 자료에서 0.2~0.4℃ 정도의 오차가 있다. 사이트에서 데이터를 가져올 때 알 수 없는 이유로 단위 변환 과정에서 뭔가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찬가지로 서울, 신의주 등은 아예 기상 관측 시작이 20세기 이후에 진행되었으니 0.5℃ 이내의 오차가 모두 존재한다. [119] 북유럽이나 러시아 북서부 지역은 1월이 아니라 2월이 최한월인 경우가 많다. [120] 대신 서울보다 2월이 추우며 스톡홀름의 2월 평년 평균 기온은 서울의 2018년 2월과 맞먹는다. [121] 1929년 2월 15일 기록 [122] 그런데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1740년 1월 3일 런던에서는 비공식적으로 무려 -24℃(?!)라는 정신나간 기온이 관측된 적이 있다고 한다. 위의 1739~1740년 겨울 한파 단락 참조. 역시 무엇이든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는 소빙하기 시대 [123] 참고로 스톡홀름은 1981~ 2010년 기준 1월 평균 기온 평년값이 고작 -1.6℃밖에 되지 않는 곳이다. 이는 서울의 -2.4℃보다 높다. [124] 1981~2010년 기준 1월 평균 기온 평년값이 -5.5℃밖에 되지 않는 곳이다(...). [125] 사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의외로 북아메리카 대륙을 제외하면 유럽이나 아시아는 이해 겨울이 (어디까지나 당시 기준으로) 엄청나게 춥지는 않았다. 다만 당시 '여름이 없는 해(The Year Without Summer)'라고 불릴 정도로 1816~ 1817년 2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여름이 쌀쌀했던 것은 사실이다. [126] 다만 여러 문헌이나 연구 결과를 보면 상술한 1779~ 1780년 겨울, 1783~ 1784년 겨울들이 더 추웠을 가능성이 높다. 1817년 2월이 역대 최저인 이유는 1779년 4월~ 1790년 12월 사이의 기간이 이유는 모르지만 결측되었기 때문이다. [127] 2위는 1792년 1월로 -8.6℃였다. [128] 다만 베이징은 하필이면 1884년 11월, 1912년 11월의 기록이 결측되어 남아있지 않기에(...) 직접적인 비교가 불가능하다. [129] 1957년 1월 15일 기록 [130] 1934년 2월 9일 기록 [131] 그러나, 일 최저 기온이 아닌 오전 7시에 측정한 기온이라 정확히 7시 정각에 -28.0℃를 기록한 것이 아닌 이상, 실제로는 1859년 1월 11일 쪽이 1934년 2월 9일의 -28.0℃ 기록보다 약간 더 낮을 가능성이 크다. [132] 이것이 사실이라면 놀라운 것이다. 뉴욕의 가장 낮은 최고 기온 기록으로 알려진 1917년 12월 30일 낮 최고 기온도 -16.7℃인데 이보다 1℃ 이상 낮다. [133] 당장 다른 나라에서 기록적인 한파를 보였지만 한반도에서 역대급이라 부를 만한 한파의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1893년 1월의 사례는 존재하지만, 사실 1893년 1월도 다른 해보다는 상당히 추웠으며 인천의 -10℃ 이하 일수가 해관기상자료 중에서 1900년 1월 다음으로 많다. 서울보다 한참 남쪽인 상하이조차 1893년 1월 평균 기온이 0.4℃로 1917년 1월 0.6℃와 비슷한 마당에, 찬 바람이 직빵으로 내려오는 한반도 지역이 그렇게 월평균 기온이 높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우선 1862년, 1893년, 1917년 1월 상하이가 저 정도라면, 1862년, 1893년 1월 서울과 인천은 1917년 1월과 비슷하게 인천은 최소 -7~-8℃, 서울은 무조건 -8~-9℃이거나 그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134] 한편 비슷한 시기에 태평양 건너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유례없는 대홍수가 발생해 호수가 생기기까지 했다고 한다. 1861년 12월에 시작된 비는 1862년 1월 내내 쉬지 않고 내렸으며, 그 기간이 40일이 넘었다고 한다. 이 홍수 때문에 수천 명이 사망하고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파산했으며, 주도를 새크라멘토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옮기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각각 동아시아는 한파가 들이쳤고, 특히 조선은 삼정의 문란으로 인해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으며, 미국은 남북전쟁 와중에 대홍수라는 자연재해가 들이쳤던 1862년 겨울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겨울이었다. [135] 1위는 공동 1885년 1월, 1922년 1월의 0.6℃이고, 3위는 1945년 1월의 1.1℃이다. [136] 즉 1981~2010년 기준 1월 평균 기온 평년값이 -2.4℃인 서울로 치환하면 1876년 1월 평균 기온은 -6.6℃인 셈이고, 서울의 편차가 더 크므로 -6.6℃보다 더 낮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서울과 도쿄의 8.2℃ 차이를 그대로 대입해보면 -10.6℃라는 정신나간 수치가 되어버린다(...). [137] 이보다 낮은 기온을 기록할 마지막 기회는 1930년대~ 1940년대까지였다. 당장 1950년대 이후로만 해도 도쿄의 월평균 기온이나 일 최저 기온이 이미 상당히 높아지는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138] 과거에 비해서 얼마나 기온이 올랐는지를 보여주는 예시로 도쿄에서 2018년 1월 25일에 -9.2℃보다 높아도 한참 높은 -4.0℃가 기록되었는데, 이를 두고 48년 만의 기록적인 한파라고 대서특필로 보도했을 정도였다. 마치 서울이 아무리 추워도 이제는 역대 최저 기온인 -23.1℃를 깨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2018년 1월 25일 도쿄에서 -4.0℃를 기록했을 때 서울은 다음 날인 1월 26일에 -17.8℃를 기록했다. 또한 1970년 1월 17일 도쿄에서 -4.0℃를 기록할 때 서울은 -20.2℃를 기록했고, 이후 48년이 지난 2018년까지(그리고 현재까지도) -20℃ 이하의 기온을 기록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로 치면 1970년 이후 48년 만에 -20℃ 이하의 날씨가 찾아온 셈이 된다. [139] 당연하지만 대한민국에 있는 한강(韓江)이 아니라, 중국에 있는 동명의 강이다. 삼국지 등 옛 중국을 다룬 역사서를 읽어본 사람들에게는 '한수(漢水)'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한 강이다. [140] 같은 날 도쿄의 최저 기온이 8.7℃에 불과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한기 남하가 일본에도 이루어지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도쿄에서 10월 초에 최저 기온 8~9℃를 기록할 때, 서울은 0~4℃가 기록되는 경향이 있던 옛 시대의 날씨상, 10월 극초반부터 서울에도 한기 남하로 인해 엄청난 저온 현상이 있었음은 명관약화하다. [141] 1927년 12월 31일 기록 [142] 도쿄의 역대 최다 적설량은 1954년 1월 24일의 33cm이다. 물론 최고 기온이 영상이라서 모두 눈으로 내리지는 않았을 수 있지만, 이를 고려해도 역대 최다치를 가뿐히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적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143] 그 와중에 2월 13일 최저 기온 기록이 누락되어 있다. [144] 참고로 2018년 1월 25일에 도쿄가 -4.0℃까지 떨어졌는데 이 기온이 당시 기준으로 48년 만의 최저 기온이었다. 그런 날씨가 1885년에는 계절적으로 봄의 시작인 3월에 찾아온 것이다... [145] 한파/대한민국/19세기 문서의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우리나라도 거의 비슷한 시기, 1884년 11~12월에 기록적인 한파가 이어졌다. 기후학자들은 1883년에서 1888년까지, 약 5년간 전 지구적으로 발생한 이상 저온과 한파에 대한 원인으로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을 지목한다. 다행히 1783년 라키 화산, 1815년 탐보라 화산처럼 막대한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미국도 1886~1887년 겨울 1888년 1월이 매우 추웠다고 한다. [146] 많은 사람들이 오이먀콘 마을에 세워진 -71.2℃ 기념비를 보며 1926년 1월 26일 오이먀콘의 -71.2℃ 기록이 북반구의 역대 최저 기온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마을 주민들에 의해 기록된 비공식 기온인 듯하다. 공식 관측소의 기후 테이블에 의하면 1933년 2월 6일의 -67.7℃가 오이먀콘의 역대 최저 기온이다. 이는 베르호얀스크보다 0.1℃ 높은 값이다. 사실 사하 공화국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그린란드 모두 인구가 희박하여 관측소가 띄엄띄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70℃ 이하의 기온을 보이는 지역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147] 동태평양의 수온이 무려 [148] 반면에 북아메리카, 일본, 한반도는 상대적으로 한파의 강도가 덜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기준으로도 굉장히 추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149] 초겨울 한파와 함께 라니냐 한파 겨울의 대표적인 특징이다(물론 라니냐라고 모두 한파 겨울은 아니다. 다만 한파를 보인 라니냐 겨울 중에서 그러한 경향이 많았다는 것이다). 전자의 예시로는 1956~ 1957년, 2017~ 2018년 겨울 등이 있으며, 후자의 예시로는 1916~ 1917년, 1917~ 1918년, 2010~ 2011년 겨울 등이 있다. 1916년 성탄절과 다음 날인 12월 26일에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져 1917년 3월까지 기록적인 한파를 보였고 1917년 12월도 12월 15일부터 한파가 본격적으로 심화되더니 라니냐가 끝난 1918년 2월까지 이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최근의 사례로는 2010년 12월 23일 한파 이후 기온이 조금 올라가나 싶더니 바로 2011년 1월은 서울에서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 날이 손에 꼽는 강한 한파를 보였다. 여담으로 2020년 하반기에도 동태평양 수온이 평년보다 낮았는데, 2020~ 2021년 겨울이 라니냐가 심해지면서 한파 겨울을 보일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평년보다 높았다. [150] 사족이지만 1893년 1월 서울의 월평균 기온을 추측해보자면, 1892~1893년 겨울과 비슷하게 매우 강한 라니냐를 보였던 1917년 1월의 월평균 기온이 베이징 -6.9℃, 서울 -9.0℃였으므로(일반적으로 베이징의 겨울 평균 기온은 서울보다는 조금 높고 인천보다는 조금 낮은 편이다. 세 지역을 비교해보자면 인천 < 베이징 < 서울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1893년 1월은 베이징이 -8.1℃였으니 바로 옆 한반도에 있는 서울도 1917년 1월을 능가하는 엄청난 한파가 기승을 부렸을 것이 자명하며, 적어도 월평균 기온 -9℃ 이하이거나 심하면 -10℃ 이하를 기록한 초강력 한파를 보였을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 물론 1893년은 아직 한반도에서 공식 기상 관측이 없었던 시기였으며, 정확한 기온 자료는 없고 1976~ 1977년 겨울처럼 서울보다 베이징의 월평균 기온이 더 낮은 경우도 있었으므로, 1893년 1월이 1917년 1월과 비슷하거나 더욱 강한 한파를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정도만 알면 될 듯하다. [151] 다만, 비공식 자료이기는 하지만 개화기 시절에 관측한 1884~ 1903년 인천의 해관기상관측자료에 따르면 1893년 1월 인천의 월평균 기온은 -5.5℃였다고 한다. 보통 서울이 인천보다 1℃ 정도 낮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해당 자료에 근거하여 1893년 1월 서울의 월평균 기온은 의외로 그리 낮지 않아서 -6~-7℃ 정도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물론 이 정도도 상당히 추운 것이지만, 19세기 말이라는 시대를 감안할 때 기록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며 특히 1893년 1월 베이징의 한파 강도를 생각해보면 의외로 높은 기온이다. 사실 밑의 1893년 1월 세계의 기온 편차 지도를 보면 시베리아, 중국 북부, 몽골, 중앙아시아, 동유럽 쪽이 커다란 파란색 점으로 잔뜩 도배되었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한파를 보인 반면 북아메리카, 일본, 한반도는 파란색 점이 그다지 크지는 않다. 즉 세계적으로는 매우 추운 겨울이 분명하나 그 정도는 지역마다 다를 수 있고, 한반도도 춥기는 했지만 1917년 1월만큼 기록적으로 춥지는 않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152] 그리고 서울보다 겨울에 훨씬 온화한 일본 도쿄에서 1893년 1월 26일 최저 기온이 무려 -7.1℃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다(우리나라에서 서울 기준 -7℃ 정도는 매 겨울마다 기록하는 최저 기온이지만, 도쿄에서는 2018년 1월에 -4.0℃를 기록했을 때도 48년 만의 추위라고 언론에 보도되었을 정도로 서울에 비해 겨울이 따뜻한 곳이다). 그리고 당시 도쿄 한파의 양상을 보았을 때 1917년 1월과 양상이 비슷하며(1월 상순에 강한 추위가 끝나고 중순에 조금 나아지다가 하순에 다시 한파) 최저 기온도 1917년 1월과 비교해보았을 때 더욱 낮아, 아마 서울의 역대 공식 최저 기온인 1927년 12월 31일의 -23.1℃ 기록을 가볍게 깼을 것으로 보이며 심하면 -25℃ 이하를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공식적인 관측 자료는 아니지만 당시 한반도에 정착해서 기상 관측을 했던 뮈텔 주교의 일기에 따르면 1893년 1월 서울의 최저 기온은 의외로 -22℃보다도 높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의 일기에 따르면 1895년 2월 2일의 -22℃가 1891~1895년 기간 동안 서울의 최저 기온이라고 나온다. 그리고 인천의 1893년 1월 평균 기온이 -5.5℃로 동시기 다른 연도보다는 확연히 낮았지만 그다지 기록적인 수준은 아니었고, 1917년 1월의 -8.0℃보다도 훨씬 높아서 바로 옆에 위치한 서울도 월평균 기온이 크게 낮지는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정확한 관측이 없던 시기이기에 진실은 저 너머에. 아니면 1893년 한기의 중심이 몽골과 베이징 등 한반도 이북에 집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한기의 축이 몇 백 km만 옆으로 빗겨가도 몇 ℃씩 차이날 수 있는 것이 기온이기 때문이다. 그 영향으로 한기의 가장자리인 베이징도 -8.1℃로 역대 가장 낮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했고... 그렇지만 서울 기준으로 베이징의 정반대에 위치한 도쿄에서도 동시기에 -7.1℃로 매우 낮은 최저 기온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의문점이 많이 든다. 서울을 사이에 두고 양 옆에 위치한 베이징과 도쿄가 이 정도로 추웠으면 당연히 서울 역시 엄청난 한파가 있었을 것이 분명한데 기록상으로는 그리 추운 겨울이 아니었으니... [153] 여러가지 말이 많고 의문점이 드는 겨울인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한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도쿄의 1월 26일 -7.1℃ 기록이 단일 기록으로서는 매우 낮은 것이 사실이지만 막상 월평균 기온 자체는 2.6℃로 의외로 기록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1900년 1월이 1.6℃로 더 낮을 정도이다. 인천도 1900년 1월이 -6.1℃로 더 낮다. 즉 1893년 1월은 일본과 한반도 둘 다 추운 겨울을(월평균 기온이 기록적이지는 않은) 보내다가 1월 26일 쯤에 한 번 한기가 정말 강하게 왔는데 그때의 한기가 유난히 일본 쪽으로 치우치는 시나리오라면 이와 같은 현상이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뮈텔 주교의 일기에는 1895년 2월 2일에 서울 최저 기온이 -22℃로 1891~1895년 기간 중 가장 낮았다고 적혀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1893년 1월은 최저 기온이 -22℃보다 높았을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지만, 그 말은 반대로 생각해보면 1893년 1월도 -21℃ 정도는 갔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엄청 기록적이지는 않지만 이것도 분명한 강력 한파이다. 더군다나 1893년 1월 도쿄의 최저 기온 극값(-7.1℃)보다 더 낮은 극값(-8.1℃)을 기록한 1922년 1월의 경우 같은 달의 서울 최저 기온 극값이 -21.0℃였던 것을 보면, 1893년 1월 서울의 최저 기온 극값은 -20~-21℃ 정도에 그쳤을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 게다가 해당 자료의 출처인 블로그에 적힌 월평균 기온 기록들이 추정치에 비해 다소 높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천의 실질적인 월평균 기온은 -6~-7℃ 정도로 추정되며, 이에 따라 서울의 1893년 1월 평균 기온은 -7~-8.5℃, 최저 기온 극값은 -20~-21℃ 정도였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154] 북위 28°에 위치해 있다. [155] 1889년 8월 관측 시작. 1904년 당시 일본 기상 관측 지역 중 가장 최북단이었고, 1938년 1월 왓카나이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되며 최북단 자리가 바뀌었다. [156] 다만 이것이 아사히카와의 역대 최저 기온은 아니다. 아사히카와의 역대 최저 기온은 1902년 1월 25일의 -41.0℃이며, 이는 일본의 공식적인 역대 최저 기온이기도 하다. [157] 1907년 10월 공식적인 기상 관측 이래로 1월 하순에 -21℃ 이하로 내려간 사례는 1917년 1월 22일(-21.1℃)이 유일한데, 이보다도 나흘이나 뒤이다. 즉 위도에 비해 혹독한 추위를 자랑하는 서울에서도 1월 하순에 -21℃까지 내려간 적이 거의 없으니, 1904년 1월 하순의 한파가 얼마나 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전술된 [158] 실제로 당시 한반도에 정착하여 비공식 기상 관측을 진행한 귀스타브샤를마리 뮈텔의 일기에 의하면 서울의 최저 기온이 1월 23일 -22℃, 1월 24일 -23℃, 1월 25일 -22℃를 기록했다고 한다. 비공식 기록이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서울의 공식적인 역대 최저 기온(-23.1℃)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낮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뮈텔이 주로 활동했던 중구와 공식 관측 지역인 종로구 청계천(1904년 당시 개천(開川))을 경계로 서로 마주 보는 형세인지라 기온 격차도 크지 않았을 듯 싶다. [159]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1916~1917년 겨울에 관측 사상 최강의 한파가 찾아왔다.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160] 베를린은 1701년부터 관측이 시작되어 전 세계에서 관측이 가장 이른 지역 중 하나이다. 다만 1711~ 1727년은 결측되었다. [161] 20세기 1월 평균 기온 최저 1위 [162] 1939년 여름의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해 연말까지 이상 고온이 지속되었다. 비슷하게 기록적인 가뭄과 폭염이 발생한 1894년, 1994년 여름 이후의 9~12월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듯하다. [163] 여담으로 해당 기사에서는 추위가 2~3일 더 지속된다고 쓰여있지만 실제로는 2주 넘게 더(...) 지속되었다. 1940년 기상학의 한계이다. [164] 월평균 기온은 높은 편이었지만 최저 기온 기록으로 보면 대한민국은 이해 겨울이 더 추운 편이었다. 특히 1941년 1월 31일에는 서울에서 1970년 1월 5일의 -20.2℃를 제외하면 마지막으로 -20℃ 이하인 -20.4℃를 기록하였다. [165] 이해 겨울은 1월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한파가 상당히 강했는데, 베를린의 1월 평균 기온이 -7.2℃를 기록해 1940년보다는 덜하지만 꽤 낮았다. 러시아는 더 심각해서 모스크바의 1942년 1월 평균 기온이 -20.2℃로 20세기 최저이며 기상 관측 전체로 확대해도 1788년 12월과 공동으로 역대 최저 2위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18.7℃로 20세기에서 가장 낮았으며, 21세기에서는 이보다 낮은 기록은 커녕 비슷한 기록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 [166] 다만, 이걸 정말로 역대 최저라고 해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결측이 많다. 1876~ 1888년, 1903년, 1907년, 1910~ 1955년 등 결측된 해만 수십 개(...)에 달한다. 참고하시길. [167] 이때, 한반도도 몽골의 한기가 영향을 미쳐서 서울의 겨울 평균기온이 12월 -5.2℃, 1월 -3.9℃, 2월 -4.3℃로 매우 낮았다. [168] 대한민국은 12월은 포근했고 2월은 적당히 추웠으며 1월만 기록적으로 추웠는데, 영국은 3개월 내내 매우 추웠다. [169] 이쪽은 1978~ 1979년, 2009~ 2010년 겨울이 더 추웠다고 한다. [170] 런던 도심으로 흘러가는 하류는 결빙이 되지 않아서 공식적으로 템스강이 결빙되었다고 간주하지 않는다. 마치 대한민국에서 한강의 상류가 얼어도 한강대교 교각 근처가 얼지 않으면 공식 결빙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처럼. [171] 1위는 1861년 1월과 1893년 1월의 -8.1℃ [172] 이는 남극의 기상 관측소가 띄엄띄엄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며, 관측소가 없는 지역까지 포함하면 -90℃ 이하의 기온을 보이는 지역도 많다.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 그린란드, 남극 모두 관측 공백이 크다. 실제로 2004년 7월 23일에는 남극 동부 고원에서 위성으로 -98.6℃도 기록한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 참조. [173] 다만 이는 아침 최저 기온 극값 통계가 1900년 이후부터 존재하기 때문이다. 1900년 이전에는 더한 한파도 많았을 것이다. 어쨌든 1900년부터 집계라고 해도 20세기 내에서 가장 낮은 기온이니 기록적인 것은 확실하다. [174] 같은 시기에 더 북쪽에 있는 도시들( 토론토, 오타와)은 체감온도가 -80℃를 밑도는 정도였다. 미국 미네소타 북부도 체감온도가 -70℃를 밑돌았다. 최저 기온조차 토론토/오타와는 -50℃, 미네소타 북부는 -48.3℃까지 내려갔다. [175] 또한 2,400km에 달하는 띠 모양의 눈폭풍지아가 미국 미주리주/ 미시간주 등 중북부 지역은 물론 동부까지 덮쳤다. [176] 참고로 같은 시기에 남반구에 위치하여 여름이었던 호주에서는 최고 기온 50℃를 기록해서 미국과 호주의 기온차가 100℃에 달했다. [177] 호남 지방의 대표 다설지인 광주는 2019년 1월에 한 달간 적설량이 31일 전체에서 3.8cm로 단 하루밖에 기록되지 않았고, 그 밖의 남부 지역도 1월 마지막 날(1월 31일)에만 눈이 쌓였다. 강원도의 대표 다설지인 강릉은 17.1cm의 눈이 내렸지만, 평년에 비하면 다소 부족한 적설량이었다. 서울 등 중서부 지방은 기상 관측 사상 최초로 1월 강수량 0mm를 기록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로부터 1~2개월 전인 2018년 11월 24일에는 서울에서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많은 첫눈이 내렸다는 것이다. [178] 영상 6~7도는 포근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인도 같은 열대 지방에는 그정도의 기온이라도 매우 추운 것이다. [179] 서울의 1963년, 1981년, 2011년과 비슷하다. [180] -17도 정도는 뉴욕에서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숫자이고 시카고에서는 -20도도 예삿일이지만, 이번에 이런 기온을 기록한 곳은 멕시코와 접경하고 있는 미국의 최남단이다. 심지어 멕시코는 북위 20도지만 연평균기온이 가장 높은 열적도이다. [181] 여담으로 휴스턴 1월의 평균은 11°C 정도로 서울의 2020년 4월과 비슷하다. 2월은 그보다 높으니 진짜로 더 강력하다. 2020년 4월 하순에 서울이 최저 2도, 최고 8도인 것은 양반이다. [182] 당시 24일부터 30일까지 연속으로 일평균 영하를 기록하였다. 특히 26~30일은 일교차가 컸다. [183] 다만 이쪽은 1월만 한파가 강했다. [184] 물론 한반도도 이 한기의 영향을 받아 12월 18~23일 동안 잠시 강한 한파가 나타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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