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6-16 23:12:52

7세기

세기 천년기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기원전|기원전]]'''
~11 10 9 8 7 6 5 4 3 2 1
기원후
제1천년기 1 2 3 4 5 6 7 8 9 10
제2천년기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제3천년기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제4천년기 이후 }}}}}}}}}
세기
5세기 6세기 7세기 8세기 9세기
밀레니엄
기원전 제1천년기 제2천년기
세계 각 지역의 표기
서기 601년~700년
단기 2934년~3033년
불기 1145년~1244년
황기 1261년~1360년
이슬람력 X~81년
간지 경신년~ 경자
히브리력 4361년 ~ 4461년
수나라 인수 원년~X
무주 X~구시 원년
고구려 영양왕 12년~X
백제 무왕 2년~X
신라 건복 18년( 진평왕 23년)~ 효소왕 9년
발해 X~ 고왕 3년

1. 개요2. 역사
2.1. 동아시아2.2. 중동2.3. 유럽
3. 주요 사건4.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5. 연도 목록

[clearfix]

1. 개요

서력으로 601년부터 700년까지가 이에 해당한다. 이 100년 동안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대격변의 시대.

2. 역사

2.1. 동아시아

동양에서는 후한 멸망 이래 300년의 전란을 끝내고 등장한 수나라 무리한 대외전쟁과 토목공사로 국력을 소모한 끝에 50년도 못 돼 멸망해 버렸고, 이어 성립한 당나라는 중국의 근심거리였던 막북의 유목민족을 제압한 데 이어 2번째로 동방을 제압,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키고 서역까지 세력을 뻗어 동아시아의 패권을 잡아 초강대국으로 군림했다.

한반도도 이 여파에 휩쓸려 수백 년간 계속 되던 삼국 간의 항쟁이 종료되고 당나라의 최종 침략을 물리쳐 통일신라가 성립했으며, 만주에서는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결합해 발해가 세워져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만들었다.

일본도 왕실을 능가하는 권력을 가졌던 소가씨를 제압하고 다이카 개신 텐무 개혁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여 고대 율령제 국가로 거듭났다. 또한 백제의 인구집단이 일본으로 유입되면서 아스카 시대 문화의 발전에 기여했다.

2.2. 중동

동로마 제국 사산 제국의 충돌은 격해져 7세기 초가 되면 사산 제국이 동로마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가며, 동로마의 역공으로 사산 왕조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다.

이렇게 될수록 사회적 혼란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런 전쟁의 여파 속 상업으로 대성한 메카의 상인 무함마드는 610년 이슬람교를 창시하며 대안을 제시했다. 메카의 통치세력의 탄압으로 622년 메디나로 도주( 헤지라), 이후 무력을 길러 메카를 정복하면서 이슬람 제국의 등장을 알렸다.

무함마드는 632년 사망했으나, 무함마드의 뒤를 이은 아부 바크르가 초대 칼리프로 인정받으면서, 이슬람 제국의 정통 칼리프 시대가 열렸다.

동로마와 사산 제국은 각각 칼케돈 기독교와 조로아스터교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여기며 타 종교를 배척하던 배타주의를 내비쳤다. 특히 당시 상당수가 존재했던 비칼케돈파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은 동로마와 사산 모두에게 억압받는 처지에 있었다.

이러한 틈을 잘 파악한 이슬람 제국은 기독교, 유대교를 책의 백성들이라고 칭하며 신앙의 자유를 허가했고, 그 대가로 지즈야라고 불리는 인두세를 징수했다. 비칼케돈파와, 특히 장사에 밝던 유대인들에게는 지즈야를 내고 종교를 유지하는 것이 이득이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상당수가 이슬람 제국에 회유되었다.

즉 이슬람 제국의 팽창은 이슬람 제국군의 강력함뿐만이 아니라 현지인들의 손익 계산과 그에 따른 협조의 영향도 있었던 것이었다.

거센 템포로 정복 전쟁을 벌이던 이슬람 제국은 이집트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콥트교도들의 협조로 641년 이집트에 입성했으며, 651년에는 사산 제국을 완전히 멸망시켰다.

그러나 무함마드의 가족이자 제4대 칼리프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시기에 이슬람 제국은 내부 분열에 봉착했고, 결국 알리가 암살당한 후에 무함마드의 혈족만이 칼리프가 될 수 있다고 간주하는 시아파와, 능력만 있다면 누구든지 칼리프가 될 수 있다고 간주하는 수니파로 나뉘었다.

661년 알리 암살 이후 무아위야 1세가 칼리프가 되고, 중심지를 시리아 다마스쿠스로 옮긴 후 칼리프직을 혈족에게 세습하면서 우마이야 왕조가 등장했다.

무함마드-정통 칼리프-우마이야로 이어지는 7세기의 일련의 이슬람 제국의 팽창은 오늘날 '중동'으로 여겨지는 영역의 범위를 어느 정도 결정했다. 그리고 정복지의 대부분이 한때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던 지역이었기에 헬레니즘의 지식이 이슬람 세계로 유입되면서 이슬람 황금기의 서막을 알렸다.

2.3. 유럽

동로마 제국과 게르만계 국가들의 구도에서, 이슬람 제국의 위협이 나타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3세기부터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던 인구의 이동은 7세기에도 여전했다. 게르만족이 어느 정도 정착하자 슬라브족이 이동했다.

동로마 제국에서는 602년 마우리키우스 포카스에 의해 처형당하고 포카스가 8년 간 폭정을 벌이다가 610년 이라클리오스에 의해 처형당했다. 이후 들어선 이라클리오스 왕조는 사산 제국과의 전쟁을 지속했다. 한번은 사산에 의해 멸망 직전까지 몰렸으며, 한번은 역전시켜 사산 제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았다.

그러나 이러한 싸움의 여파로 제3의 세력인 이슬람 제국이 급부상하면서 사산 제국은 멸망, 동로마도 이집트, 예루살렘, 시리아 등의 주요 영역을 잃었다. 하지만 강력한 국력으로 이슬람의 공세를 버텨냈고, 서유럽 세계는 이슬람의 위협을 동로마 덕분에 피할 수 있었다.

3. 주요 사건

4.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

5. 연도 목록



[1] 삼국사기의 기록이나, 실제로는 이보다 몇년 전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2] 신라와 당의 전투는 669년에 시작됐다는 설도 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