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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0 22:41:36

김창수(축구선수)

김창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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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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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2대 3대 4대 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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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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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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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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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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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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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
* 세한자동차 시절은 제외된 불완전한 역대 주장 명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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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파일:천안 김창수2023.png
이름 김창수
金昌洙 | Kim Chang-Soo
<colbgcolor=#eeeeee,#191919> 출생 1985년 9월 12일 ([age(1985-09-12)]세)
경상남도 창원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9cm | 체중 75kg | 혈액형 O형[1]
포지션 라이트백
소속팀 울산 현대 (2004)
대전 시티즌 (2005~2007)
부산 아이파크 (2008~2012)
가시와 레이솔 (2013~2015)
전북 현대 모터스 (2016)
울산 현대 (2017~2019)
광주 FC (2020)
인천 유나이티드 FC (2021~2022)
천안 시티 FC (2023)
지도자 천안 시티 FC (2023 / 플레잉코치)
국가대표 25경기 ( 대한민국 / 2009~2017)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병역 병역특례[2]
학력 창원상남초등학교 (졸업)
동래중학교 (졸업)
부산상업고등학교 (전학)
동명공업고등학교 (졸업)

1. 개요2. 클럽
2.1. 울산 현대(2004)2.2. 대전 시티즌(2005~2007)2.3. 부산 아이파크(2008~2012)2.4. 가시와 레이솔(2013~2015)2.5. 전북 현대(2016)2.6. 울산 현대 2기(2017~2019)2.7. 광주 FC(2020)2.8. 인천 유나이티드(2021~2022)2.9. 천안 시티 FC(2023)
3. 국가대표
3.1. 통산 국가대표 기록
4. 우승 기록5. 플레이 스타일6.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국적의 전 축구선수. 현역 시절 수비수. 2023년 11월 7일 은퇴를 선언하였다.

2. 클럽

창원 상남초등학교 6학년 때 축구에 입문했다. 이후 중학교를 명문 동래중학교에 진학하고 고등학교 역시 명문 부산상고로(현.개성고) 진학했으나, 중학교 은사의 요청으로 2학년 때부터 동명공고(현.동명fc)에 전학갔다. 당시 단 한번도 전국대회 8강에 들지 못해 대학 진학은 좌절되었다.그러나 축구 센스가 좋고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 하는 지도자가 많았다.

2.1. 울산 현대(2004)

다행히 부산상고 시절 그를 좋게 본 스카우터의 도움으로 2004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하였다. 리그 1경기를 출장했다. 입단동기로는 김형범, 하대성이 있다.. 김정남 감독님께서 이뻐 하셨다고 전해진다.

2.2. 대전 시티즌(2005~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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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하였으나 그 해 부상을 입어 재활치료를 받다가 2006년 복귀하였고,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며 최윤겸 감독에게 팀의 주전으로 중용받으며 경기 출전횟수를 늘리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대전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선수였다. 2007년 핌베어백 대표팀 감독에 눈에 뛰어 처음으로 대표팀에 소집이 되었다. 대전에서 유일하게 대표선수가 되었다.

올림픽대표에선 풀타임으로 출전하였다. 그만큼 핌베어백감독과 홍명보 코치가 신뢰을 하였다.

2.3. 부산 아이파크(2008~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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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자신이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하여 활약하고 있다. 5년동안 주전 수비수로 뛰면서 6년만의 부산의 가을축구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황선홍과 안익수에 지도을 받으며 김창수는 성장했다. 그리고 런던 올림픽 와일드카드로 선발되고 동메달이라는 큰 업적을 남겼다. 황선홍 감독과 안익수 감독이 김창수는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는 선수라고..그만큼 자기알아서 잘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한편 부상의 정도가 심각해서 시즌 아웃을 당했다는 소식까지 나왔다. 다행히 11월까진 복귀해 스플릿리그 몇경기는 치를 것이라고 한다. 본인이 직접 지방언론[3] 인터뷰에서 한 말이니만큼 믿어도 될 듯 하다.

그런데...

2.4. 가시와 레이솔(2013~2015)

2013년 1월 29일, 갑작스럽게 일본 J리그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했다는 공식 발표가 떴다. 순식간에 모든 국내 축구팬들이 패닉에 빠졌으며, 당연히 소식을 접한 축구 팬사이트들은 왜 하필이면 해외 진출이 다른 나라도 아니라 일본이냐고 광분했다

이미 부산 아이파크 공홈과 가시와 레이솔 공홈에 관련 기사가 떡하니 뜨면서 사실상 끝난 거래다. 팬들은 단숨에 폭발했으며 국가대표 기량을 유지하고픈 김창수 선수의 마음을 알겠지만 좋은 선수가 J리그에 갔다가 한 사례가 넘쳐나기에 우려의 시선만 커져가고 있다.[4]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제대로 적응해서 팀의 에이스 노릇을 톡톡히 해내며 2013시즌에는 24경기에 출장하였다. 2014시즌과 2015시즌에 좋은 활약을 했다.

2.5. 전북 현대(2016)

결국 2015 시즌이 끝난 후, K리그로 돌아온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고 2016 시즌부터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뛰게 되었다. 등번호는 가시와 시절과 동일한 27번을 받았다. 전북의 주전 라이트백은 전북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최철순이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었다.[5] 그러나 초반에 잦은 퇴장에 시즌 중반에는 7개월짜리 부상을 당해 시즌 중반을 거의 날려버려 그의 계약이 성공적이었나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있는 편.

2.6. 울산 현대 2기(2017~2019)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자신이 데뷔한 팀인 울산 현대로 이적했다. 나이를 감안하면 울산에서 은퇴할 가능성도 적지 않은 편. 선수 소개 멘트는 쉽게 내주지 않는다, 열정메이커

김창수는 울산의 오른쪽 측변 수비진에서 오버래핑과 안정적인 수비력, 적극적인 공격 가담을 선보이며 활약했으며, 2017년 6월 이달의 선수상을 받으며 시즌 중반 울산의 상승세를 이끈 공로를 인정받았으며, 이어 치러진 광주 FC와의 경기에서도 김인성의 결승골을 도우며 자신의 수상 이유를 몸소 보여주었다. fa 컵 우승도 하였고..김성환 대신 주장 완정을 차고 고참으로써 팀을 잘이끌었다..

하지만 10월 22일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 상대 선수의 허벅지를 발로 밟은 위험한 플레이로 인한 경기중 퇴장으로 인한 출장정지를 포함한 4경기 출장정지 및 제재금 400만원의 징계가 내려지면서 일찍 시즌을 마감했으며, 2017시즌 한해 29경기 출장을 기록했으며, 2018시즌에도 리그 26경기에 출장하며 주전으로 활약했다.

2019년 중앙의 불투이스 윤영선과 오른쪽 측면에서 굳건히 버티면서 울산 특유의 짠물 수비를 책임졌는데, 특히 상하이 상강과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풀타임을 뛰며 활약했는데, 이날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나와 전반전부터 활발한 오버래핑과 안정적인 수비력을 선사하면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2차전 이주의 선수로 선정됐다.

2.7. 광주 FC(2020)

2020년 1월 7일 승격팀 광주 FC로 이적하게 되었다.박진섭 감독과는 부산에서 같이 선수로 뛰는 인연이 있었다.

6라운드 부산전에서 펠리페의 역전골을 어시스트했다.

2020년 광주 FC에서의 기록은 24경기 출전 1도움이다.

통산 기록 : 283경기 출전 8골 26도움

2.8. 인천 유나이티드(2021~2022)

2021년 광주 FC와 재계약이 불발되면서 은퇴를 암시하였으나, 자유계약 신분인 상태에서 운동으로 몸을 꾸준히 유지하였고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테스트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2021년 6월 19일 인천 유나이티드로 합류한다는 단독 기사가 올라오면서 # 그렇게 6월 30일 인천에서 김창수 영입을 공식발표했다. 등번호는 2번을 부여받았고, 선수 소개 멘트는 파랑검정에 나의 이름을 새긴다.

2021년 인천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합쳐 9경기 출전.

2022년 10월 8일 강원전에 교체출전하면서 k리그 통산 300경기라는 대기록을 세웠다.[6]

2.9. 천안 시티 FC(2023)

2023년, 천안 시티 FC의 플레잉 코치로 합류하였다.

김창수는 개막전 인터뷰를 통해 베테랑으로서 신생팀 천안 시티에 다방면으로 기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프로 경험이 없는 선수들에게 조언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며 플레잉 코치로서의 고충을 밝히기도 했다.

3월 12일 부천 FC 1995을 상대로 선제골을 먹자 천안 시티에서의 첫 교체 출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천안 시티는 연이어 두 골을 내주고 최종스코어 0대3 패배를 당했다. 심지어 상대 선수와의 충돌로 부상을 입게 되어 선수 개인으로도, 팀적으로도 그리고 팬들에게도 매우 안타까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2023년 9월 20일 자신의 프로 데뷔 7000일을 맞이했다. #

11월 7일, 현역 은퇴를 발표했고 12일 김포와의 경기에서 은퇴식을 치렀다. 이날 후반 교체 출장하여 루이스 미나의 득점을 저지하는 성과를 올렸고, 팀은 올 시즌 김포 상대 처음이자 마지막 승점을 올렸다.

그의 마지막 시즌은 12경기 출장으로 마무리됐다.

3. 국가대표

파일:/image/343/2014/06/08/2014060811_99_20140608055602.jpg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축구에서 지역 예선 풀타임을 뛰었다. 감독이 핌베어벡에서 박성화로 교체되면서 정작 중국에선 경기 출전하지 못했다.
국가대표 데뷔는 2009년 시리아전 2009년 2월 1일. 그 후 대표팀에는 매번 선발 되었지만, 차두리 오범석이라는 선배들 때문에 경기에 자주 출전하진 못했다.

1 정성룡 [[와일드카드(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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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오재석 · 3 윤석영 · 4 김영권 · 5 김기희 · 6 기성용 · 7 김보경
8 백성동 · 9 지동원 · 10 박주영 [[와일드카드(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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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 남태희 · 12 황석호
13 구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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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김창수 [[와일드카드(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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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 박종우 · 16 정우영 · 17 김현성 · 18 이범영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홍명보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태영
스태프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박건하 · 파일:일본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이케다 세이고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봉수


2011시즌과 2012시즌 K리그를 대표하는 풀백으로 거듭났고, 입대를 앞둔 2012 런던 올림픽 대표팀에 와일드카드로 승선하였다. 당시 대표팀 주전이자 부상으로 낙마한 홍정호의 대체를 위해 원래 홍명보 감독이 원했던 와일드카드 원픽은 이정수였지만, 이미 군 문제가 해결된 이정수가 대회에 출전할 명분이 부족했고 결국 소속팀 알사드에서 이정수의 차출을 거부해 참가가 무산됐다. 결국 또 다른 약점이던 우측 풀백 자리에 상무 입대 직전이던 김창수를 선발하며 김창수 개인적으로는 다른 와일드 카드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2회 연속 올림픽에 참가하게 됐다.

올림픽 직전 평가전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K리그는 모르는 사람들이 "저 선수는 누군데 저렇게 잘하나요"라는 말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신의 한 수 드립까지 나오는 가운데, 올림픽 예선 그룹에서도 오른쪽을 아주 견고하게 만들어주며 순식간에 전국구 네임드로 올라서게 된다. 허나, 8강 영국전에서 넘어지는 과정에서 착지를 잘못해 전반 6분만에 부상으로 아웃되었다.[7] 이후 오재석이 들어왔으나 영국에 내준 두 번의 패널티가 모두 오른쪽 풀백이 조금만 더 잘했어도 되었을 상황이었어서 아쉬움을 일으켰다. 그리고 4강 브라질전서 네이마르 마르셀루라는 세계 최정상급 라인에 오른쪽이 영혼까지 털리자 역시나 '그나마 김창수가 있었으면..'하는 말이 많이 나왔다.

11월경에 열린 호주와의 평가전에 발탁 되어서 뛰었지만, 경기 컨디션은 썩 좋지않아 미비한 활약을 보였다.

1 정성룡 · 2 김창수 · 3 윤석영 · 4 곽태휘 · 5 김영권 · 6 황석호 · 7 김보경 · 8 하대성
9 손흥민 · 10 박주영 · 11 이근호 · 12 이용 · 13 구자철
C
· 14 한국영 · 15 박종우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김신욱 · 19 지동원 · 20 홍정호 · 21 김승규 · 22 박주호 · 23 이범영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홍명보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태영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박건하 ·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안툰 두 샤트니에 · 파일:일본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이케다 세이고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봉수


홍명보호 출범 이후 런던 올림픽 시절 멤버가 주축이 되는 상황에서 대표팀 레귤러 선수가 됐다. 하지만 이용과 꾸준히 주전 경쟁을 하다 월드컵을 3개월남기고 발목 골절 삼각인대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했음에도 홍명보 감독은 다른 좋은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 대신 김창수를 월드컵에 데려갔지만..결국 본선에선 이용에게 밀려 한 경기도 뛰지 못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욕 먹었던 이용을 생각해 보면 차라리 안 나온 게 다행인 걸지도.

이후 신태용 감독 대행시절 국대에 뽑혔다. 우루과이전에서는 특이하게도 레프트 윙백으로 선발 출전해 신태용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1 정성룡 · 2 김창수 · 3 김진수 · 4 김주영 · 5 곽태휘 · 6 박주호 · 7 손흥민 · 8 김민우
9 조영철 · 10 남태희 · 11 이근호 · 12 한교원 · 13 구자철 · 14 한국영 · 15 이명주 · 16 기성용
C

17 이청용 · 18 이정협 · 19 김영권 · 20 장현수 · 21 김승규 · 22 차두리 · 23 김진현
파일:독일 국기.svg 울리 슈틸리케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박건하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신태용·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카를로스 아르무아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봉수


그리고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에도 신태용 감독은 수석코치로서 동행했고, 이미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김창수는 2015 AFC 아시안컵 최종 엔트리에 승선이 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김창수선수를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미드필드까지 멀티 자원으로 생각했다.

아시안컵을 앞두고 열린 사우디와의 평가전에서 다른 수비 라인들이 까인것과 비교해 괜찮은 경기력을 선보였으며, 남태희의 크로스를 받아 이정협에게 어시스트를 해주기도 했다.

아시안컵 본선을 앞두고 컨디션 난조를 보이던 차두리가 체력이 완성되기 전까지인 조별리그 초반 출전했으며 8강 우즈벡과의 연장전에서도 나이가 많은 차두리의 로테이션 자원으로 출전하는 등 조연으로 좋은 활약을 선보이며 대표팀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2017년 봄 월드컵 최종예선 홈에서 치러진 예선경기를 끝으로 감독이 신태용으로 교체되면서 국가대표와는 멀어졌다.

3.1. 통산 국가대표 기록

2017년 6월 16일 기준
연령 출전
U - 17 0 0
U - 20 0 0
U - 23 23 1
A 대표 25 0
종합기록 48 1

4. 우승 기록

5. 플레이 스타일

주로 우측 풀백으로 출장하며, 100m를 12초대에 끊는 걸출한 스피드와 왕성한 활동량이 특징. 특히 적극적이고 재기 넘치는 오버래핑과 날카롭고 정확한 크로싱이 주 무기이며, 수비 지역에서의 전술 이해도가 높고, 안정적인 볼 간수와 패스 공급, 경기 조율 능력으로 극찬을 받는다. 주 포지션은 오른쪽 측면 수비수이지만 왼쪽도 가능하다.[8] 꾸준함과 성실함 또한 김창수의 강점 중 하나이다.[9] 또한 현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력 수비수들 중에서는 비교적 나이가 많은 축이라 차두리가 은퇴한 후에는 같은 30대인 곽태휘와 함께 수비진의 베테랑으로서 후배 선수들을 리드하고 격려하는 역할도 어느 정도 맡고 있다.

6. 여담



[1] 이에 윤석영은 "2002월드컵 4강 - 이영표, 김태영, 최진철, 송종국. 2012올림픽 동메달 - 윤석영, 김영권, 김창수 그리고 아쉽게 빠진 홍정호. 이상 모두 혈액형 O형. 그 외 최고의 수비력 박지성 O형"이라고 적었다. 누가 봐도 최 감독의 인터뷰에 대해 반박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사 [2] 2012 런던올림픽 축구 동메달, 와일드카드로 발탁 [3] 부산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4] 하지만 사실 상황을 곰곰히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상황이다. 나이와 경력을 생각해 보자. 유럽은 물론 중동이나 중국조차 가급적이면 어린 선수를 데려가 오래 써먹을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고, 그나마 나이가 든 선수가 많이 진출하는 곳이 아시아 타 리그인데, 중국이나 중동에 진출하는 나이가 많은 선수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김창수보다 경력이 훨씬 화려하다. 이런 메리트가 전혀 없다면 선택지가 상당히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면 그냥 K리그에 남는 방법도 있겠지만, 부산 구단이 씀씀이를 줄이고 있는 마당이라 기껏 축구 인생이 풀리는 시점에 의리만 보고 남기도 힘든 노릇이다. 이근호와 이승렬의 사례도 사실 적당한 예는 되지 못하는 것이, 이근호는 K리그 시절부터 기복이 있는 선수여서 잘 안풀릴 때는 부진한 적도 여러번 있었던 선수다. 더 발전하지 못한게 아쉽다면 몰라도 멸망까지는...이승렬은 J리그 가기 이전부터 부진했고... [5] 둘의 스타일은 꽤 다른 편인데, 김창수는 적극적으로 오버래핑하는 스타일인 반면, 최철순은 본래 중앙 수비수 출신이었던지라 수비에 더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6] # [7] 차후 밝혀진 바로는 팔 골절이었다. [8] 2010년 당시, 국가대표 출신 박진섭이 우측에서 뛸때 당시 황선홍 부산 감독은 김창수를 좌측에서 뛰게 했으나...그냥 왼쪽도 '가능은 하다' 수준이었다. 당시 왼쪽에 서다 오랜만에 오른쪽에 뛰게 된 김창수를 보던 한 부산팬은 김창수가 '꺄르륵'하며 즐거워했다는 목격담을 남겼지만...에이 설마 [9] 그렇기는 한데 일본 진출 이후 국대에서 기복이 심해졌다. 컨디션 좋을 때는 미칠듯한 스피드와 체력으로 상대 측면을 붕괴시킴은 물론이고, 공격 차단도 잘해준다. 그런데 안 좋을 때는 욕나오는 똥크로스에 미칠듯하게 공 뺏기고, 수비도 불안... [10] 2번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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