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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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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협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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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21이정협.jpg
경남 FC No. 18
이정협
(李庭恊 | Lee Jeong-Hyeop)[1]
<colbgcolor=#e83827><colcolor=#fff> 생년월일 1991년 6월 24일 ([age(1991-06-24)]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출생지 부산광역시
가족 아내[2], 아들 이민우(2021년 1월 14일생)
신장 186cm / 76kg
포지션 스트라이커
학교 부산당감초 - 덕천중 - 동래고 - 숭실대
소속팀 부산 아이파크 (2013~2020)
상주 상무 (2014~2015 / 군 복무)
울산 현대 (2016 / 임대)
쇼난 벨마레 (2018 / 임대)
경남 FC (2021~)
국가대표 파일:Korea Republic National Football Team emblem 2020.png 25경기 5골[3] (2015~)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기록
4.1. 통산 성적
4.1.1. 국가대표
5. 플레이 스타일6. 개명7. 여담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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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국적의 프로축구선수. 경남 FC 소속 최전방 공격수이다.

2. 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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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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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록

4.1. 통산 성적

4.1.1. 국가대표

이정협 국가 대표팀 득점기록
일시 장소 상대팀 경기결과 대회명
2015년 1월 4일 시드니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사우디아라비아 2-0 친선경기[4]
2015년 1월 17일 브리즈번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 1-0 2015 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2015년 1월 26일 시드니 파일:이라크 국기.svg 이라크 2-0 2015 AFC 아시안컵 준결승
2015년 6월 11일 콸라룸푸르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UAE 3-0 친선경기
2016년 3월 24일 안산시 파일:레바논 국기.svg 레바논 1-0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2016년 11월 11일 천안시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나다 2-0 친선경기
연령 출전
U - 17 0 0
U - 20 0 0
U - 23 0 0
A 대표 24 5
종합기록 24 5

5. 플레이 스타일

가장 큰 장점은 원톱으로 진영깨기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 중앙에서 포스트 플레이를 힘있게 서 주고 수비와 계속 부대끼면서 수비에 부담을 주고 수비의 체력을 있는대로 빼주는 동시에 2선에서 침투하는 동료에게 공간을 만들어 주는 '타겟맨'형에 적합하다. 아시아축구계 상향평준화로 예전처럼 단순히 중거리 슛이나 측면 크로스로 밀집수비를 뚫는건 불가능해지고 패스웍으로 상대 수비진을 쉼없이 흔들고 공간을 창출해내는게 중요해진 상황에서 딱맞는 자원이다. 애초 슈틸리케 아시안컵에서 무명의 2부리거였던 이정협을 깜짝발탁했을 때도, 시즌 25경기 4득점으로 수치화된 득점력은 한참 부족했다. 아시안컵 준결승전 기준으로, A매치 6경기 3골1도움의 이정협은 K리그 통산 52경기 6골이었다(...). 전형적인 스코어러로 발탁한 것이 아니라, 상대진영을 휘저어주는 플레이가 슈틸리케의 낙점을 받은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뛰어난 스코어러는 아니다보니, 이런 부분을 의식했는지 슈틸리케 감독도 9월 라오스전 후 자신이 원하는 원톱을 언급했는데 한마디로 4-2-3-1의 원톱, 최전방 공격수가 움직이면서 비워주는 공간을 따라 2선의 공격수가 침투하는 스타일을 원한다고 다시 한 번 못을 박았다. 즉 이정협은 이 조건에 아주 딱 맞고, 현 국대의 에이스 손흥민, 차세대 국대 에이스를 노릴 이승우, 이강인 등 세컨톱, 공격형 미드필더 타입의 공격수들에게 2선 활동 공간을 제공하고 수비수들을 끌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조광래 감독 시절에 최전방 공격수로 곧잘 기용되던 지동원이나 슈틸리케 감독 부임 직후에 원톱으로 기용된 조영철이 피지컬이 좋은 편도 아니고 중앙에 놓으면 상대 수비수와 경합하는 대신 자꾸 측면으로 빠지는 버릇이 있어 공격시 좁은 공간에 선수들이 지나치게 밀집되고 상대편 수비수의 힘을 빼는 역할도 전혀 못한 것과는 천지차이 슈틸리케 감독도 이 점을 높이 샀고 2015년 AFC 아시안컵 A조 조별 3차전 호주전부터 조영철을 밀어내고 붙박이 자리를 꿰찼다.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움직임과 위치 선정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퍼스트터치 능력은 리그 탑급이다. 이정협이 A매치에서 득점한 4골은 모두 화려한 개인기로 이뤄낸게 아니라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움직임과 위치 선정을 통해 얻어 낸 골들이다. 여기에 장신임에도 민첩성이 좋고 발기술도 제법있다. 2015 시즌에는 자신감 상승으로 슈팅 능력, 결정력, 개인기 등의 방면에서 향상된 모습을 보여줬고 특유의 피지컬, 활동량이 더해져 K리그 챌린지에선 손꼽히는 공격수가 되었다. 헤딩슛 정확도도 높은편. 국가대표경기나 리그경기에서 넣은 골의 상당수가 굴러들어오는 잡지않고 한번에 차서 넣은 골들이다.

90년대부터 꾸준히 지적받아오던 한국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골결정력은 K리그 토종 한국 공격수들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골 결정력 뿐만 아니라 더 큰 문제는 문전 상황에서 머뭇거리는 부족한 과감성인데 이정협은 이런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원톱이다. 슈틸리케 뿐만 아니라 벤투호에서도 이정협이 발탁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원톱 치고는 중거리슛이 매우 취약하다(...) 물론 원톱의 플레이스타일의 특성상 골문 앞에서 바로 공만 갖다대거나 헤딩을 해도 되긴 하지만 그래도 같은 원톱인 박주영, 석현준에 비하면 한 번 중거리슛을 시도하면 대다수가 그냥 데굴데굴 굴러간다. 지금까지 이정협이 소속팀에서도 대표팀에서도 중거리슛으로 넣은 골은 없다. 상주에서 해트트릭 할 때 두 번째 골을 박스 바깥에서 때리긴 했지만 이것도 데굴데굴(...) 굴러가서 골문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정협이 중거리슛을 시도할 때 장면을 자세히 보면 기성용, 석현준 등이 거의 발등으로 때리는 것과는 달리 발 옆면으로 차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향후 이정협이 반드시 고쳐야 할 문제이다.

아시안컵이 끝나고 15시즌을 시작한 후로 이전에 비해 스타일이 달라졌다. 활동량을 앞세우는 것 뿐만 아니라 개인기를 부리기도 하고, 상대 수비수들과 격하게 대립하는 등 성격도 적극적으로 변했다. # 국가대표가 되면서 자신의 성장한 기량에 확신을 가지면서 자신감이 오르고, 그만큼 여유도 생긴 모양.

그리고 동아시안컵 북한전에서는 그야말로 자신이 아시안컵때와는 달리 얼마나 발전되었는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 원터치패스, 세밀한 연계플레이 등을 많이 보여주면서 그야말로 슈틸리케호의 황태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부각시켰다. 하지만 골이 안 나온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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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흘려서 슈팅찬스 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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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대와 세밀한 연계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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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으로 원터치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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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훈에게 스루패스로 슈팅제공

그리고 사람들이 모르는 또다른 장점도 있는데 동아시안컵까지의 모습을 보면 골 넣어서 단기간에 주목받은 선수들에게서 한 번쯤은 볼 수 있는 일명 탐욕 플레이가 거의 없다.

득점으로 한순간에 인기가 올라간 선수들은 그 인기를 유지하려고 무리한 플레이를 선보여 오히려 공격 전개를 어그러뜨리는 경우가 정말 많은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정협은 그 자신도 분명 골에 대한 갈망이 클텐데 오히려 매 경기마다 공격전개를 원활하게 하려고 하고 완벽한 득점찬스가 아니면 슈팅을 시도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선수들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동아시안컵 중국전에서도 슈팅이 하나도 없었지만 2선과의 연계플레이와 수비 뒷공간으로 침투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고 후반에는 김승대와 이재성에게 결정적인 찬스를 두 번이나 내주었다. 한 마디로 자기의 임무와 그 범위를 명확하고 알고 있는 선수.

중앙공격수로서 포스트 플레이에 능숙하단 점이나 뛰어난 스코어러가 아니어서 까들이 따라다닌다는 점에서 영국의 에밀 헤스키와 유사한 점이 있다. 클래스야 당연히 헤스키 쪽이 훨씬 높지만 중앙 공격수에게 득점은 있으면 금상첨화지만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현대축구의 변화를 보여주는 선수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헤스키도 출전 횟수에 비해 득점이 적어서 조롱을 꽤 많이 받았다. 포스트 플레이 면에서는 알베르토 질라르디노와도 비교할 수 있다. 다만 헤딩능력은 질라르디노보다 떨어지는편.

반면 울산에서는 실패했는데 윤정환 감독은 잔뜩 웅크렸다가 빠르게 좌우로 벌려 전방의 장신 공격수에게 크로스를 올리는 뻥축구전술을 주로 쓴다. 2015년 시즌이 끝난 뒤 김신욱(197cm) 양동현(188cm) 두 장신 공격수를 과감히 이적시킨 것도 문전에서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타입의 공격수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정협이 최전방에서 싸워주는 원톱은 맞지만 싸워서 이긴다는 말은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현재 K리그 국내 공격수 가운데 원톱 자원 자체가 부족하고 피지컬로 수비수를 찍어누르고 골을 넣는 원톱은 전무하고 세계적으로 드물다.[5]

이정협에게는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에 중점을 두는 광주 FC 제주 유나이티드 같은 팀에 더 잘 맞는다.그렇다고 광주나 제주가 이정협을 원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울산에 온 만큼 이정협 자신이 울산의 팀 컬러에 빠르게 녹아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정협은 K리그 클래식에서 제대로 활약했던 적이 없다. 2016년까지 합쳐서 통산 클럽 기록이 74경기 13골 9어시스트이다. 분명 2015년 상주에서 기록한 17경기 7골 6어시스트는 괜찮은 기록이지만 챌린지에서 기록한 것이다. K리그 클래식 기록만 놓고 보면 57경기 6골 3어시스트를 기록한 선수에 불과하다. 애당초 주목을 받은 이유도 포스트 플레이가 가능한 원톱이기 때문이었지 이동국이나 황의조처럼 골잡이로서 기대치가 높기 때문이 전혀 아니다. 프로 데뷔 4년차로 신인 때깔을 겨우 벗은 정도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팀을 세번이나 옮기면서 아직도 검증을 받는 단계에 있는 선수다.

6. 개명

2013년 시즌 종료 후 이름을 이정기(李廷記)에서 이정협(李庭恊)으로 개명하였다. 2013년에 부산의 수비수인 이정호가 이름을 이원영으로 개명[6]하면서 팀의 주장도 하는 중요한 선수로 자리잡는 등 잘 풀리자,[7] 이정기 역시 그 영향으로 이름을 이정협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개명효과인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아시안 컵 명단에 합류하며 화제가 되었다.[8]

7. 여담

가정 살림이 넉넉하지 못해 축구화도 선배에게 물려받은 것을 신었다고 한다. 어머니 배필수 여사는 아들이 축구하는 것을 반대했다. 한국 학원 스포츠는 한 달에만 백만원 이상이라는 거금이 들어간다. 야구처럼 장비값이 많이 드는 스포츠는 더 하고... '차라리 게임에 푹 빠지면 축구 안 하겠지?' 하는 생각에 거금 270만원을 들여 컴퓨터를 사 줬는데, 그래도 이정협은 게임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축구만 고집했다고 한다. #

동래고 시절 최전방 스트라이커 치고는 골을 너무 못 넣는 것에 자책감을 느껴 축구를 관둘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동래고 감독인 박형주 감독이 밤늦게까지 설득을 해서 겨우 마음을 되돌렸다고. #.[9]

부산에서 뛰던 당시 윤성효 감독의 반강제적인 지시(?)를 받고 군 입대를 선택했다. 하지만 이후 그는 당시 이른 군입대가 신의 한 수였다고 회상했다. 이정협 인터뷰[10]

2015년 3월 A매치 엔트리에 발탁되어 파주NFC에 와서 "파주가 처음인데 밥맛이 정말 맛있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

부친이 추자도( 제주시 추자면) 출신이라 아시안컵 기간 중에는 이정협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추자도에도 붙었다고 한다. 추자도 출신 축구선수 지동원과는 먼 친척 사이라고 한다.

동년 3월의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 왼쪽 눈두덩이가 찢어지는 부상이 있었는데 아직 흔적이 남아있는 걸로 보아 흉터로 남은 듯 하다.

최전방에서 쉼없이 상대 수비수들과 경합하고 어그로를 끄는 원톱의 특성상 큰 부상을 당할 뻔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고 결국 크게 다쳤다. 아시안컵 조별예선 3차전 호주전에서는 심하게 떠밀려 다칠뻔 했고 3월 우즈벡과의 평가전에서는 눈두덩이가 찢어졌고 동아시안컵 중국전에서는 발에 머리를 정통으로 맞을 뻔했고 북한전에서는 무릎을 찍혀 크게 다칠뻔 했다. 그러다 2015년 8월 26일 경남전에서 배효성의 악질파울에 의해 안면복합골절이라는 치명상을 입었다. 이 정도 큰 부상을 입으면 복귀 이후에도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일이 잦아서[11] 팬들의 걱정이 크다. 당시 상무 박항서 감독도 이를 우려했고, 심리치료도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2016년 울산으로 임대된 후, 팀에서는 부진한 활약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3월 24일 레바논전에서 귀신같이 결승골을 넣는 등 대표팀에서는 제 역할을 잘 해주는 모습이 보임에 따라 울산 팬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다. 물론 부상 후유증과 K리그 클래식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부적응도 감안해야겠지만 팀에서는 삽질하는데 국대가면 날아다니는 모습이 결코 좋게만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즉, 상술했듯이 대표팀뿐만 아니라 평소 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울산 팬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불행 중 다행으로 4월 9일 있었던 광주와의 경기에서 울산 소속으로 첫 골을 넣었고, 이후로도 한결 안정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면서 리그에서도 조금씩 반등의 기미를 보였으나... 단 4골에 그치고 말아 일말의 기대마저 저버렸다.[12]

현재 상황으로는 다소 부진한 모습 때문에 팬들로부터 국대감이 아니라는 말도 듣기는 하지만, 조진호 감독에 대한 추모하는 자세[13] 등으로 "인성은 괜찮은 편"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결론적으로 실력과 인성은 별개의 문제다. 수아레스가 축구를 잘한다고 모든 팬들이 그를 좋아하지 않는것과 같다고 볼 수 있고, 게다가 축구선수라면 부진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다. 이동국도 한때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최강희 감독의 조련 끝에 새롭게 부활했다.

2017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부산이 상주와의 대결에서 승부차기 접전 끝에 석패하면서 승격에 실패한 직후, 이정협은 인터뷰에서 "서포터스석에 감독님 얼굴이 나온 사진이 보였다. 그래서 감독님께 '도와 주세요'라고 기도 아닌 기도를 했다. 그러나 모두 내 잘못이다. 더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 감독님께도 정말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렸다.[14][15]

물론 이정협이 인성은 좋고 그러한 점이 쉴드 요인으로도 작용될 수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까임방지권을 획득하려면 실력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축구선수는 축구실력으로 자신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정협이 국가대표 및 월드컵 대표로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려면 앞으로 자신의 실력이 그만한 수준이라는 것을 팬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다.

조진호 문서에 서술됐듯이 조진호 감독은 이정협을 아드리아노처럼 살려보겠다고 했었는데, 대전 시절 아드리아노를 K리그 정상급 스트라이커으로 올려놨던 이력이 있었기에, 조진호 감독이 병으로 죽지 않고 지금까지 또는 앞으로도 계속 살아있다던가 그랬다면 이정협도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더불어 은사 조진호가 살아있는 이상 이정협도 부산에 계속 남아 있었을테고 꾸준히 호흡을 맞추다보면 분명히 데뷔 때처럼 살아났을 것이기 때문. 이쯤 되면 실력이 별로가 아니라 운이 없는 불운한 케이스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16]

팬 서비스를 넘어서서 팬 사랑이 돋보이는 선수 중 한 명이다. 부산 팬들을 위해 경기장에서 사비로 커피를 대접하기도 하고 상주 상무시절 자신을 응원해 준 부부 팬과도 여전히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https://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69&aid=0000404282

2020년 8월 16일에 결혼한다고 한다. 기사.

8. 관련 문서



[1] 개명전 이름은 이정기 [2] 초등학교 선생님 [3] 2021년 3월 25일 기준. [4] 서류제출이 늦어 A매치로 인정받지 못함. [5] 굳이 챌린지까지 내려보면 김동찬이 챌린지에서 활동량과 저돌성을 바탕으로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 [6] 다만 선수 등록은 이정호로 했기 때문에 2013 시즌에는 이정호란 이름으로 뛰었고, 2014 시즌부터 이원영이란 이름으로 뛰었다. [7] # [8] 정작 이정협을 개명하게 만든 이원영은 2014시즌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주장이 되긴 했으나, 시즌 중 계속된 부상으로 결국 수원에서 임대 온 연제민에게 주전에서 밀렸으며 결국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가 2016년 다시 복귀했다. [9] 당시 동래고 시절 이정협의 동료는 동나이대 최고의 공격수 유망주로 평가받던, 2017년 부산 아이파크 동료 최승인이니만큼 비교하며 자격지심을 느꼈을 수도 있다. 최승인의 경우 너무나 두각을 드러낸 나머지 부산 아이파크 감독이 종종 프로로 올리다가 고등학교 일정과 엇갈리게 되었다. 에이스를 빼앗겨서 성적을 내는데 어려움을 겪은 고교 축구부 사이에 끼이며 최승인은 처지가 난감해져 국내에 남는 대신 일본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커리어가 왕창 꼬이면서 k3까지 떨어졌다. 이정협이 훨씬 현대적인 공격수지만 최승인의 경우 골감각만은 기가 막히다. [10] 징병제인 한국 특성상 방황하는 미필의 경우 빠른 입대가 답이 되는 경우가 많다. [11] 이는 예전부터 흔한 사례였다. 설기현은 2002년 월드컵 직후 절정을 달리다가 2004년 안면골절을 당한 뒤 폼이 확 떨어졌고, 급기야 2006년 '설기현 역주행'이라는 흑역사마저 생겼다. 김용대는 올림픽 대표 시절 상대 공격수에게 걷어 차여 부상을 입은 이후 한동안 소극적인 플레이로 일관한 바 있으며, 정성룡도 과거 크로스바에 심하게 충돌해 부상을 입은 이후 이전만큼 몸을 던지지 않게 되었다. 또 이청용도 톰 밀러에게 발목이 아작난 후 부상 우려 때문에 슈팅에 굉장히 소극적이다. 물론 이청용은 본래 슈팅이 워낙 안습인게 더 크긴 하다만... [12] 그래도 한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그도 엄연한 임대 신분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잘한다 한들 임대 기간이 끝나면 계약 연장을 추진하지 않는 이상 원 소속팀인 부산 아이파크로 돌아가야만 한다. 물론 선수 본인이 챌린지에서 더는 뛰기 싫다는 의사를 밝히긴 했다지만 개인의 감정과 리그의 규정은 별개의 문제이다. 만약 임대가 끝난 후에도 울산으로 임대될때처럼 다시 논란이 발생한다면 다소 이미지가 깎이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13] 수원FC 원정경기에서 결승골을 넣고 조 감독 플래카드에 얼굴을 파묻는 추모 세레모니를 올렸다. 위에 나온 세레모니 사진이 바로 그것. [14] 물론 2차전에서 PK를 유도하는 등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 꼭 필요한 골을 넣지 못했으니 죄책감을 갖는것도 무리는 아닐지도 모른다. [15] 남탓을 하지 않는다는 면에서도 나름 인성은 괜찮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허나" 경기 후 축구팬들의 반응은 '불쌍하긴 하지만 국대에서는 보지 말자' [16] 그럼에도 프로 생활을 하고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던 점을 가만 하면 운이 나쁜 편은 아니다. 유망주로 기대를 받다가 질병이나 사고, 컨디션 난조로 인한 정신적인 방황으로 국가대표는커녕 프로에서도 생존하지 못한 선수들이 정말 많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