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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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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연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
세기
18세기 19세기 20세기 21세기 22세기
밀레니엄
제1천년기 제2천년기 제3천년기
세계 각 지역의 표기
서기 2000년
대한민국 82년
단기 4333년
불기 2544년
간지 기묘년 ~ 경진
주체 89년
대만 민국 89년
일본 헤이세이 12년
( 황기 2660년)
이슬람력 1420년 ~ 1421년
히브리력 5760년 ~ 5761년
페르시아력 1378년 ~ 1379년
에티오피아력 1992년 ~ 1993년
로마숫자 MM
인류세력 12000년
1. 개요2. 설명3. 새천년의 시작의 직전이자 20세기 제2천년기의 마무리와 마지막 해4. 2000 남북정상회담과 호전되는 남북관계5. 서울과 경기도의 공립 중학교 남녀합반 의무화6. 기후7. 사건
7.1. 실제
7.1.1. 1월7.1.2. 2월7.1.3. 3월7.1.4. 4월7.1.5. 5월7.1.6. 6월7.1.7. 7월7.1.8. 8월7.1.9. 9월7.1.10. 10월7.1.11. 11월7.1.12. 12월
7.2. 가상
8. 탄생9. 사망10. 히트작
10.1. 영화10.2. 드라마/시트콤10.3. 가요10.4. 특촬10.5. 개그 코너10.6. 애니메이션10.7. 게임10.8. 히트상품10.9. 베스트셀러
11. 데뷔
11.1. 가수
11.1.1. 그룹 데뷔11.1.2. 솔로 데뷔
11.2. 만화계11.3. 프로레슬러11.4. 스포츠11.5. e스포츠11.6. 예능인11.7. 아나운서11.8. 인터넷 방송
12. 은퇴
12.1. 스포츠12.2. 프로레슬링
13. 해체
13.1. 음악 그룹
14. 유행어15. 최초
15.1. 방송 프로그램 및 코너
15.1.1. 지상파TV15.1.2. 케이블TV15.1.3. 라디오
15.2. 인터넷 웹사이트15.3. 창간
16. 출시 상품
16.1. 자동차16.2. 식음료16.3. 생활용품16.4. 화장품
17. 서기 2000년18. 오류19. 윤년20. 관련 문헌21. 달력

1. 개요

2000년은 토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자 20세기 마지막 윤년이며, 20세기 제2천년기의 마지막 해임과 동시에 2000년대의 첫 번째 해이기도 하다.[1] 영어로는 Two tripple Oh라고 한다.

2. 설명

2000년 서울의 모습
2000년 KBS1 새천년 카운트다운 특집 생방송
2000년 새천년 맞이와 밀레니엄 베이비
미국 대한민국에 형성된 IT버블이 꺼지면서 파산자가 속출한 해이기도 하다. 2000년 미국 S&P500지수는 10.5%의 하락률을 기록했고, 한국증시는 미국보다 훨씬 더해서 코스피가 연초보다 52%,벤처기업 중심인 코스닥은 80% 하락한 채로 마감하여 세계 1위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증권 투자자들 중에서 IT버블 붕괴로 인한 주가폭락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한국경제 성장의 새 원동력으로 기대되었던 젊은 벤처기업인들이 주가조작, 분식회계 등 기존 재벌의 문제점을 답습하고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정치권에 기대는 등 도덕적 문제점마저 노출해 많은 실망을 샀다. 2001년에 터진 정현준 게이트라든가 골드뱅크 김진호 사건이라든가 기타 등등. 2000년 한국 증시 10대 사건 기사 사회적으로는 의약분업을 골자로 한 개정 약사법 시행을 앞두고 의사들이 분노해 병원을 닫아가며 시위를 해서 의료체계에 혼란이 생겨 이슈가 됐다.

그러나 정작 2020년대의 미국인들에게는 "미국이 가장 위대했던 시절"을 상징하는 해로 2000년이 이구동성으로 거론된다.[2] 이는 정당을 가리지 않는데, 이 설문의 결과는 정확히 2000년이 살기 좋았다기보다는 9.11 테러 이전이란 상징성일 것이다. 그리고 미국인들이 가장 좋았던 시절이라고 여기는 90년대 호황기의 정점에 달했던 해이기도 하고. # NBA에선 코비-샤크 라인을 내세운 LA 레이커스가 12년만에 파이널에서 트로피를 되찾아 '명가의 부활'을 알렸고, MLB에선 뉴욕을 연고로 하는 두 팀이 44년만에 WS에서 맞붙어 화제를 모았다.

한국에선 지난해부터 미군의 노근리 양민학살 의혹과 매향리 미군사격장 피해 사실이 불거지면서 '반미'가 이슈로 불거지기 시작했고, IT 분야에선 인터넷 시대가 피부에 와닿기 시작한 첫 해이기도 하다. 1999년 3월 31일에 시작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이해에 점차 정착되기 시작하였고, 기존의 PC통신 동호회를 대체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서비스가 급속도로 확대되었다.[3]

그리고 1990년대 중후반만 해도 HTML 태그를 비롯한 Java를 배운 고급 사용자나 관련 사업자들의 영역이었던 홈페이지 개설 및 운영이, 인터넷 서비스 업체 및 각종 포털 사이트들에서 무료 홈페이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일반 사용자들도 손쉽게 개인 홈페이지를 개설할 수 있게 되어 당시에 '인터넷 홈페이지 만들기' 열풍이 불며 급속도로 대중화가 이루어지기도 했으며,[4] 휴대폰으로 직접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되기도 했다.[5]

빛이 있다면 어둠이 있듯, 다른 한편으로 '정보통신의 이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통칭 통신질서확립법)' 파동으로 공권력 차원에서의 인터넷 검열이 본격적으로 시도되면서 사이버 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 침해가 우려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 통신질서확립법 반대 사이트, 2000년 통신질서확립법 반대운동 백서)

방송계에선 4월의 < 태조 왕건> 방영으로 고려사 붐이 적지 않게 일기 시작한 해이고, 그전에 1월에 MBC 특별기획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봤니?>를 시초로 실험적으로 HD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8월 31일 SBS를 시초로 일정 시간 동안 시험방송을 개시했다. 9월 KBS가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죤과 함께 3원 생방송 <백두에서 한라까지>를 만들면서 남북 방송교류가 더 활성화됐다.

가요계의 주 이슈는 조성모의 독주, 서태지의 컴백, 일본 대중문화 3차 개방, 중국행 한류열풍 등인데, 인터넷 문화의 발달에 따라 소리바다 등을 통한 MP3 불법다운로드가 막 활성화되던 시점이었기에 이듬해인 2001년과 더불어 국내 음반시장의 최전성기이자 마지막 황금기로 기록되는 시기이다. # 조성모, 서태지, god는 이 해에 발매한 정규앨범에서 1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으며, 특히 조성모의 3집 앨범은 발매 4일만에 100만 장이 넘게 팔리며 총 2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달성했다. 더불어 2.5집 리메이크 앨범도 16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여 2000년 발매 앨범의 판매고 순위 1위와 2위를 석권하는 등 그야말로 조성모의 해라 불릴 정도의 전성기를 보낸다. 또한 god도 최대의 히트곡 거짓말이 타이틀곡으로 수록된 정규 3집이 150만장 대의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2000년에는 전체 음반 판매량 3위를 기록하면서 KBS 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미국에서 사실상 은둔생활을 하던 서태지는 8월 29일 경찰과 경호원의 철통같은 경비 속에서 귀국한 후, 9월에는 머리 스타일을 붉게 물들인 드레드 헤어로 하고 정규 6집을 내 당대 한국에서 생소한 가요차트 프로 사전녹화무대를 선보였다. 이 앨범은 선 판매 90만장에 총 110만장을 기록했다.

특히 2000년에는 밀리언 셀러를 달성한 가수들뿐만 아니라 H.O.T., 이지훈, 유승준, 홍경민, 베이비복스, S.E.S., 박지윤, 김현정, 자우림, 신화, 핑클, 코요태, , 컨츄리꼬꼬, 원타임, 김범수, J.ae, 주영훈, 조규만, 이소은, 채정안, 이정현, 백지영, 드렁큰 타이거 등의 1세대 아이돌 시대(1996년 하반기부터 1999년까지)에 데뷔한 가수들과 신승훈, 윤종신, 서태지, 김원준, 이현도, 엄정화, DJ DOC, , 김경호, 조장혁, 임창정, 터보, 소찬휘, 클론 등의 1세대 아이돌 이전(1996년 상반기 이전) 출신의 톱스타나 중박 이상의 스타 가수들이 한꺼번에 컴백하여 활동하면서 당시 막 데뷔했던 신인인 보아, 샤크라, UN, 문차일드, 화요비 등의 일부 가수들만 제외하고는 량현량하, 파파야처럼 주목받았지만 단명하거나 아예 주목받지도 못 한 채 흑역사로 사라지는 현상이 시작된 시기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데뷔하여 훗날에 가장 성공한 스타는 보아가 유일하지만 거대 기획사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전략적으로 밀어준 효과가 컸다고 볼 수 있으며, 데뷔 초반에는 문희준에 버금가는 엄청난 악플에 시달리며 무척 고전했다가 일본에서 대박을 치고 2002년 발표한 No.1으로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급상승한 케이스다.

또한, 1999년 말부터 솔로 앨범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박혜경에 이어서 은지원 등 1세대 아이돌 시대부터 활동했던 가수가 솔로로 전향한 케이스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이도 했다. 같은 시기 클론과 안재욱, NRG, H.O.T. 등도 홍콩에 이어 중국에도 진출해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다만 이와는 반대로 NRG 멤버 김환성의 요절, 백지영의 비디오 파문, 강원래 오토바이 사고 등 안 좋은 사건이 터졌다.

한편 1993년생은 2000년대가 시작됨과 동시에 초등학교를 입학하였으며, 이 해의 초등학교 1, 2학년[6]부터 그 유명한 제7차 교육과정이 적용되기 시작했으며, 초등학교 3학년 이상 모든 학년[7]에 영어를 배우게 되었다.[8]

대한민국의 고령화가 시작된 해이다.( 고령화사회)

2000년 6월 15일, 1945년 남북분단 이래 사상 최초로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가졌고 6.15 남북공동선언이 체결되어 남북한 공식적인 화해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같은 해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 호주에서 열렸던 2000년 시드니 하계올림픽에서 남북한 선수단이 동시입장을 하는 등 남북관계가 급변을 하였던 시기였다. 그리하여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 평화통일 기반형성에 대한 공로로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UN은 이 해를 '세계 평화 문화의 해'와 '세계 감사의 해'로 지정했다. 광주광역시에선 5.18 민주화운동 20주년을 맞이했고, 특히 기념식장에 김대중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처음 참석해 큰 주목을 받았다.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선정한 2000년 올해의 한자는 '金(쇠 금)'이었다.

서구에서는 2000년을 시작으로 성인이 된 인구집단을 밀레니얼 세대라고 정의하고 있다.[9]

주말에 겹치는 공휴일은 새해 첫날 설날 연휴 이틀 등 3개밖에 없다. 원래대로라면 제헌절과 추석 연휴 첫날, 성탄절이 일요일에 겹쳐서 총 6개가 되어야 했으나 2월 29일이 추가되면서 요일이 하나씩 밀려 월요일이 되었다.

서방 프로젝트의 첫 작 추상옥이 나온 해이기도 하다.

3. 새천년의 시작의 직전이자 20세기 제2천년기의 마무리와 마지막 해

이 해는 2000년대 새천년의 시작의 직전이면서 동시에 20세기 제2천년기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해이다. 먼저, 이 해는 1997년 11월에 일어난 외환위기에 의한 IMF 관리 체제가 이어졌다. 또,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하기 전이라 김포국제공항이 모든 국제선 역할을 담당했던 마지막 해이며, 고속도로 노선체계 대개편과 서울특별시 시내버스 대개편이 일어나기 전이다. 방송가에서는 국내에 HD방송이 도입되기 전이고[10], SBS가 2세대 로고를 사용하던 마지막 시기이기도 하며, 강원도, 제주도, 경상남도 민영방송이 정식 개국하기 전이다. 문화계에서는 PC통신이 시민들 사이에서 애용되던 시절이다.[11] 또한 승강기 분야에서는 1990년대부터 생산된 기종들이 상당히 보였다.

4. 2000 남북정상회담과 호전되는 남북관계

2000년은 남북한 역사상 처음으로 두 나라의 정상들이 만난 남북정상회담과 평화통일을 염원한 선언인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해이기도 하다. 위의 두 사건 덕분에 햇볕정책이 빛을 발하게 되었으며, 국민의 정부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받아 이로 인하여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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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서울과 경기도의 공립 중학교 남녀합반 의무화

서울 경기도 소재의 남녀공학 중학교들이, 이때부터 모두 혼성반 학교로 고정되었다. 서울과 경기도에는 남중 여중은 있어도 남녀분반 중학교는 한개도 없다는 뜻이다. 서울과 경기도의 남녀공학 중학교 개수를 다 합치면 약 300개가 되는데, 이 300개 되는 남녀공학 중학교들이 모조리 전체 학년이 혼성반으로 운영되어 왔다.

서울과 경기도 교육청은 청소년기에 남녀가 같은 교실에서 생활하면서 이성에 대해 알아가는 걸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기에 고등학교는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별 수 없이 남녀분반을 해도, 중학교 만큼은 무조건 전체 학년 모두다 합반으로 하자는 게 서울과 경기도 교육부의 지침이었다.

서울과 경기도 소재의 중학교들은 공립학교라면 3년 모두다 남녀 합반으로 운영할 것을 장려했다. 이 때문에 사립학교들은 [age(2000-03-0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남녀 분반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충암중학교는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남녀 각반이다. 교육청의 간섭을 받는 학교는 공립학교가 아닌 사립학교이니 당연한 결과다.

그렇기에 현재 30대가 된 서울과 경기도 사람들은 고등학교는 몰라도 중학교 만큼은 공립학교만 다녔다하면 3년 내내 합반 루트만 탄 경우가 수두룩하다. 이때부터 서울과 경기도 소재의 남녀공학 중학교들이 남녀 분반으로 운영되는 곳은 사립학교들이나 해당하지, 공립 중학교라면 남녀분반인 곳은 단 한 곳도 남지 않게 되었다.

6. 기후

서울 기준 월별 평균기온은 다음과 같다.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서울 월평균기온(°C) -2.1 -1.7 6.3 11.9 17.5 23.7 26.8 26.2 20.7 14.9 7.0 0.9 12.7
평년대비 편차(°C) 1.3 -0.6 1.8 0.1 0.1 2.2 2.2 0.8 0.1 0.6 0.4 1.3 0.9

1월, 3월, 6~8월, 12월은 평년보다 높았고 2월은 평년보다 낮았으며 나머지 달은 대체로 평범했다.
연 최저기온 연 최고기온 연교차
-12.1 °C(0107) 35.1 °C(0802) 47.2 °C

7. 사건

7.1. 실제

7.1.1. 1월

7.1.2. 2월

7.1.3. 3월

7.1.4. 4월

7.1.5. 5월

* 5월 15일

7.1.6. 6월

7.1.7. 7월

7.1.8. 8월

7.1.9. 9월

7.1.10. 10월

7.1.11. 11월

7.1.12. 12월

7.2. 가상

8.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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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이 시작되던 2000년대의 첫 출생 세대란 임팩트가 강해 영어에서 따와서 '밀레니엄 베이비', 천을 의미하는 순우리말 즈믄에서 따와 '즈믄둥이'라고 불렀다. 현재 이들은 [age(2000-12-31)]~[age(2000-01-01)]세.

당시 외환위기로 경제가 어려웠지만, 희망의 의미에서 새천년에 태어날 아기를 가지려는 부모가 많았다.

새천년준비위원회는 자연분만으로 태어나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을 기준으로 새천년 첫아기를 선정했다. 전국의 주요 산부인과에 인터넷 중계시스템과 카메라를 설치한 끝에 한림대학교 성심병원에서 이용규(당시 34세)씨와 산모 김영주(당시 26세)씨 사이에서 태어나 1월 1일 0시 0분 1초에 첫 울음을 터트린 아이로 선정됐다.

밀레니엄 베이비붐의 결과 출산율이 반등해서 지난해에 비해 출생아 수가 62만명에서 64만명으로 2만여명 증가했다. 그래서 인구 그래프를 보면 유달리 툭 튀어나와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늦어진 결혼과[19] 아기를 낳을 부모 세대의 인구수가 박정희 대통령의 산아제한 정책으로 감소하는 시기였던 점 등의 요인으로 2000년 이후 출산율과 출생아 수는 계속 감소하여 2001년에는 출생아 수가 50만명대로 진입하고 2002년에는 초저출산 국가에 돌입하고 출생아 수가 40만명대로 떨어지는 등 출산율이 더 가파르게 급감했다.

9.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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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히트작

10.1. 영화

10.2. 드라마/시트콤

10.3. 가요

10.4. 특촬

10.5. 개그 코너

10.6. 애니메이션

10.7. 게임

10.8. 히트상품

10.9. 베스트셀러

11. 데뷔

11.1. 가수

11.1.1. 그룹 데뷔

11.1.2. 솔로 데뷔

11.2. 만화계

11.3. 프로레슬러

11.4. 스포츠

미국 NBA에서는 마이클 레드를 빼곤 드래프트 픽들 중 일류 선수들이 거의 배출되지 않았다.

11.5. e스포츠

11.6. 예능인

11.7. 아나운서

11.8. 인터넷 방송

12. 은퇴

12.1. 스포츠

12.2. 프로레슬링

13. 해체

13.1. 음악 그룹

14. 유행어

15. 최초

15.1. 방송 프로그램 및 코너

15.1.1. 지상파TV

15.1.2. 케이블TV

15.1.3. 라디오

15.2. 인터넷 웹사이트

15.3. 창간

16. 출시 상품

16.1. 자동차

16.2. 식음료

16.3. 생활용품

16.4. 화장품

17. 서기 2000년

18. 오류

19. 윤년

그레고리력의 윤년 계산법이 가장 복잡하게 적용되는 해였다. 그레고리력은 4의 배수의 해에 윤년을 넣되, 100의 배수의 해는 평년으로, 400의 배수의 해는 윤년으로 하는데, 2000은 4의 배수이면서 100의 배수이고, 400의 배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20. 관련 문헌

21. 달력

1월 2월 3월
1 1 2 3 4 5 1 2 3 4
2 3 4 5 6 7 8 6 7 8 9 10 11 12 5 6 7 8 9 10 11
9 10 11 12 13 14 15 13 14 15 16 17 18 19 12 13 14 15 16 17 18
16 17 18 19 20 21 22 20 21 22 23 24 25 26 19 20 21 22 23 24 25
23 24 25 26 27 28 29 27 28 29 26 27 28 29 30 31
30 31
4월 5월 6월
1 1 2 3 4 5 6 1 2 3
2 3 4 5 6 7 8 7 8 9 10 11 12 13 4 5 6 7 8 9 10
9 10 11 12 13 14 15 14 15 16 17 18 19 20 11 12 13 14 15 16 17
16 17 18 19 20 21 22 21 22 23 24 25 26 27 18 19 20 21 22 23 24
23 24 25 26 27 28 29 28 29 30 31 25 26 27 28 29 30
30
7월 8월 9월
1 1 2 3 4 5 1 2
2 3 4 5 6 7 8 6 7 8 9 10 11 12 3 4 5 6 7 8 9
9 10 11 12 13 14 15 13 14 15 16 17 18 19 10 11 12 13 14 15 16
16 17 18 19 20 21 22 20 21 22 23 24 25 26 17 18 19 20 21 22 23
23 24 25 26 27 28 29 27 28 29 30 31 24 25 26 27 28 29 30
30 31
10월 11월 12월
1 2 3 4 5 6 7 1 2 3 4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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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21세기와 '새 천년'은 2001년부터지만, 맨 앞 자리가 바뀌는 것이 상징적이라서 당시에는 '21세기의 시작', '새천년'이라고 불렸다. 이 해를 맞이할 당시 세계는 새천년을 맞이한다는 사실에 흥분해 있었지만, 서력기원으로만 새천년이지 자체 연호/역법이나 불기를 사용하는 일부 아시아 국가들과 에티오피아에서는 새천년 개념은 희미한 존재였다. 법정 스님은 "이런 호들갑은 숫자에 매달려 죽고 사는 서양의 물질문명에서 빚어진 유치한 발상이며 치졸한 논리"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법정, 「지식이 지혜로 바뀌어야」, 『동아일보』, 2000년 1월 5일, A7면 한편으로는 Y2K 문제로 인해 세기말 분위기로 사이비 종교들이 판을 치고 전세계가 공포에 떨기도 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애초에 치명적인 오류를 야기할 만큼 큰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에 무사히 지나가게 되었다. [2] 넓게 본다면 2001년 9월까지 [3] 다음 카페 다모임이 이해의 대표적인 수혜자였다. [4] 덕분에 불법 mp3 사이트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이트들은 오렌지랜드, 사마구 등이 있다. [5] 저때는 패킷이 아닌 써킷단위로 요금을 계산하였다. 나중에 CDMA2000을 채용한 컬러 피처폰들이 많아지면서 사장되었다 [6] 1992년~1993년생 [7] 3~6학년 [8] 1997년 당시 3학년이었던 1988년생부터 순차적으로 배우게 되었다. [9] 2019년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성인이 된 (1981년생~1996년생) 인구집단으로 정리되었다. # 다만 1981년생은 20세기에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제외될 수 있어 X세대와 밀레니얼 사이의 과도기에 가깝지만 1982년생부터는 완벽한 밀레니얼 세대이다. [10] 정확히 2000년 9월에 MBC를 시작으로 HD 시험방송이 시작되었지만 송출은 4:3 비율 SD로 송출했다. 2010년대에 디지털 방송의 비중이 늘어나 본격적으로 디지털 방송 시대가 개막되었다. [11] 물론 이후에도 2001년~2002년까지도 PC통신이 꽤 쓰였다. 다만, 당시의 PC통신은 1990년대처럼 주요 메신저로 쓰인 것은 아니고, 음악프로그램이나 예능을 비롯한 TV 프로그램에서나 집중적으로 사용되었다. 다시 말해 1990년대처럼 PC통신을 단순한 소통용으로 쓰기에는 철이 어느 정도 지났다. 2003년을 전후로 다음, 네이버 등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12] 2000년이 21세기라는건 옥의 티이자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고 있다. 21세기는 2001년 1월 1일부터 2100년 12월 31일까지다. [13] 현 코스닥 기준지수로 적용, 당시 기준지수로 환산하면 283.44. [14] 당초 이 콘서트는 8월 20일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비 예보가 있어서 26일로 연기했다. 그랬는데 잠시 소나기가 왔던 20일에 비해 26일에는 하루종일 폭우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비를 입고 공연을 기다려 온 팬들을 위해 공연을 강행했다고 한다. [15] 이태원역~ 약수역(6)구간, 신당역 환승통로 [16] 이 구간 공사를 담당하던 건설사가 부도처리돼서 전 구간 개통 후에도 미개통 상태로 남아있다가 이듬해 3월에서야 개통되었다. 이 구간은 난공사였던 곳이다. IMF때문에 예산도 없는데 난공사구간도 많고 난이도도 높고 예상치못한 극악난이도의 난공사구간도 발견되었으니 3번씩이나 건설사가 부도날만 했다. [17] 주인공인 류의 탄생연도 1964년을 기준으로 36세일 때, 스파 3보다 2년 후 시점이다. [18] 다만 엔딩에 나오는 결혼식 시점이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19] 외환위기 뿐 아니라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높아진 요인도 있다. [20] 2000년 MBC 최고인기가수상/SBS 가요대전 대상/골든디스크 대상/서울가요대상 대상/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우수 뮤직비디오 작품상 수상곡 [21] 2000년 KBS 가요대상 대상/2001년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 수상곡 [22] 2000년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 수상곡 [23] 이 노래는 1999년 말에 나왔다. [24] 스눕 독 주도로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25] 마스터 P 3형제 등 노 리미트 소속 7명이 만든 프로젝트 그룹. [26] 릴 웨인의 과거 여자친구였던 래퍼. [27] < 코믹 걸즈> 작가. [28] 그해 가을 개편부터 2TV로 이동. [29] 유재석이 MC를 맡았는데 국민MC로 갈수있는 기틀을 만든 프로그램이다. [30] 원래는 일밤의 코너였다가 목표달성 토요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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