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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00:15:32

노벨상


파일:한시적 넘겨주기 아이콘.svg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대한민국의 소설가에 대한 내용은 한강(소설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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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10px" <tablebordercolor=#fff,#1c1d1f><tablebgcolor=#fff,#1c1d1f>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 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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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63334><colcolor=#cd9f51> 노벨상
The Nobel Prize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
설립 1895년
국가
[[스웨덴|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웨덴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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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
[[노르웨이|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노르웨이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평화상]
상금 1,100만 SEK, 115만 달러
한화 약 13억 원 (2024년 기준)
시상 분야[2] 노벨물리학상(1901)
노벨화학상(1901)
노벨문학상(1901)
노벨생리학·의학상(1901)
노벨평화상(1901)
노벨경제학상(1969)
수여 기관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물리학상, 화학상, 경제학상)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생리학·의학상)
스웨덴 아카데미(문학상)
노르웨이 노벨위원회(평화상)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역사3. 시상 및 수상
3.1. 시상 분야3.2. 수상자
3.2.1. 수상자의 국적
3.3. 수상자 발표3.4. 시상식3.5. 메달3.6. 상금3.7. 각국 수상 현황
4. 대한민국의 분야별 현황5. 관련 상6. 기록7. 논란8. 기타

[clearfix]

1. 개요

(유산에서 발생하는) 이자는 다섯 등분하여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화학 분야에서 중요한 발견이나 개발을 한 사람,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 문학 분야에서 이상주의적인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사람, 국가간의 우호와 군대의 폐지 또는 삭감과 평화 회의의 개최 혹은 추진을 위해 가장 헌신한 사람에게 준다.
- 알프레드 노벨 유언 中.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물리학, 화학, 경제학), 스웨덴 아카데미[3](문학), 카롤린스카 의학연구소(생리학·의학), 노르웨이 노벨위원회(평화)에서 매년 인류의 문명 발달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이다.[4]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사업가 및 공학자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으로 만들어졌다.

2. 역사

일설에는 1888년 알프레드 노벨인 루드비그 노벨(Ludvig Emmanuel Nobel/Лю́двиг Эммануи́лович Нобе́ль)[5]이 사망했을 때 한 신문에서 실수로 알프레드 노벨이 사망했다고 기사를 실었는데, 그 기사에 노벨을 ' 죽음의 상인'이라 지칭했고, 이에 충격을 받은 노벨이 자신의 사후 이미지를 걱정해 상을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해당 오보의 원본이 발견된 바 없으며, 심지어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 등에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언급, 인용한 바 없어서 잘못 알려진 풍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다이너마이트가 군사적으로 이용되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던 노벨은[6] 후에 유언으로 유산의 94%(약 440만 달러[7])를 기부, 노벨상을 설립하게 되었다.

알프레드 노벨의 엄청난 재산을 대부분 기부하려하자, 자기들의 몫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그의 친척들[8]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게다가 노벨은 유언장에서 국적에 상관없이 이 상을 줄 것을 당부했는데, 이것 때문에 스웨덴 내 여론과 스웨덴 국왕 오스카르 2세까지도 노벨을 비난했다. 특히 평화상 수상을 당시 스웨덴의 지배하에 있었던 노르웨이에 맡겼던 것도 이를 부채질했다. 그러나 유언 집행인 랑나르 솔만(Ragnar Sohlman, 1870~1948)의 결단으로 노벨의 재산은 안전한 유가증권으로 남게 되었다. 오늘날 노벨상의 위상을 생각하면 별 탈없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탄생된 상이다. 솔만은 상을 제정하며 가진 인터뷰에서 '욕을 그리 많이 먹어보는 것도 재미있더군요.'라며 노벨의 친척들이 벌인 온갖 방해공작이나 욕설, 명예훼손을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다만 노벨경제학상의 경우 1968년, 즉 노벨상이 제정되고 난 뒤로도 한참 후에 노벨의 유언과는 무관하게 따로 생긴 상이다. 스웨덴 중앙은행[9] 설립 300주년을 기념해 제정한 상으로서, 상의 정식 명칭은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경제학 분야의 스웨덴 중앙은행상'(The 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이다.[10] 노벨의 유언에 의해 제정된 나머지 5개 분야 노벨상은 정식 명칭은 Nobel Prize[11]로 시작되는 데 반해, 노벨경제학상은 The Sveriges Riksbank Prize로 시작된다.

즉, 노벨경제학상은 엄밀히 따지자면 노벨상은 아니고 노벨 기념상이다. 하지만 경제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는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곳이며, 수상식에 다른 분야의 수상자들과 함께 참석하고 상금 또한 동일하다. 스웨덴에서 달리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12] 그래서 일반적으로 노벨상이라고 하면 이 경제학상도 포함되는 편이다. 하지만 알프레드 노벨의 형의 후손인 피터 노벨은 노벨경제학상에 대해 크게 부정적으로, 경제학상에 무단으로 붙인 '노벨'이라는 이름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주식 옵션 투기를 조장하는 시카고학파들이 상을 휩쓸고 있다며, 인류에 공헌한 사람에게 상을 수여한다는 노벨의 취지를 크게 벗어났다고 비판하고 있다.

노벨상 시상 초기에는 지금처럼 권위 있게 여겨지지 않았지만 곧 세계적인 명성을 갖춘 상이 되었다. 이는 상의 수준을 높여가려는 지속적인 노력에 힘입은 결과였다.

3. 시상 및 수상

3.1. 시상 분야

{{{#!wiki style="margin:-10px" <tablebordercolor=#fff,#1c1d1f><tablebgcolor=#fff,#1c1d1f>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 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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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의 시상 분야는 ' 물리학', ' 화학', ' 생리학/ 의학'[13], ' 문학', ' 평화', ' 경제학'이다. 이 중 경제학상은 노벨상이 제정되고 난 뒤로도 한참 후에, 스웨덴 중앙은행 설립 300주년을 기념해 제정한 상으로서 노벨의 유언과는 무관하게 따로 생긴 상이다.

노벨상의 시상 분야들은 노벨이 생전에 몸담았던 분야와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다. 폭약을 합성, 제조하는 과정은 화학이, 폭발의 반응 에너지를 연구하는 것에서 물리학이, 그가 제조했었던 폭약인 니트로글리세린이 약으로써 사용된다는 점에서 생리 의학이, 노벨이 말년에 평화를 바라며 문학 저술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문학과 평화상이 관련되어 있고, 후대에 새로 제창된 분야이지만 노벨 역시 성공한 사업가였다는 점에서 경제학상도 연관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자연과학의 5가지 분야(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천문학) 중에서 명확히 상의 이름에 언급된 물리학과 화학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와 노벨상의 관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단순히 기초과학 업적만 수상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노벨은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에게 수여하라고 유언을 남겼기 때문에 응용과학은 물론 발명도 상당히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18] 발명이 업적인 노벨물리학상, 노벨화학상 수상자는 꽤나 많고, 특히 발명과는 제일 거리가 멀어 보이는 노벨생리학·의학상 역시, MRI(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19] 개발로 수상하거나, CT(컴퓨터단층촬영)[20]를 개발한 전기공학자가 수상했다.

수학상은 없는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노벨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예스타 미타그레플레르라는 수학자가 노벨 수학상을 받는 꼴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라는 설[21], 미타그레플레르와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는데 그가 워낙 수학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보니 수상의 공정성이 떨어질까봐 제외했다는 설, 흠모했던 여인이 수학자를 선택하는 바람에 사랑이 쫑나서라는 설 등이었는데 모두 근거는 없는 이야기다. (관련 반론) 가장 신빙성 있는 설은 공학도 출신 실업가였던 노벨이 수학은 실용학문이 아니라서 노벨상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만들지 않았고 이에 분노한 수학자들이 앞에서 언급된 소문들을 꾸며냈다는 해석도 있다. 물론 수학과 관련된 상은 필즈상, 아벨상, 울프상 등 여럿 존재하는데 이 상의 권위는 노벨상에 준할 정도로 높다. 한편 노벨상을 받은 수학자가 없지는 않는데 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시, 물리학상을 받은 로저 펜로즈 등이 있다.

3.2. 수상자

국적은 일체 불문하고 가장 적합한 수상자를 선정한다. 한 상에 대해서 최소 1명~최대 3명에게 수상하고,[22] 개인에게 주는 상이지만 평화상만은 단체도 받을 수 있다.

또한 살아있는 사람만이 수상할 수 있다.[23] 다만, 예외적으로 사후 수상한 사례가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사례로는 1961년 콩고 내전을 중재하러 가던 도중에 북로디지아(현재 잠비아)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해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제2대 UN 사무총장 다그 함마르셸드가 있다. 최근에는 2011년 노벨생리학·의학상 수상자 가운데 한 명인 랠프 스타인먼 박사가 수상자 발표 3일 전에 사망한 걸 노벨위원회가 알지 못하고 명단에 올리는 바람에 문제가 생겼으나 수상자 목록은 그대로 유지시키기로 했는데, 이 때의 이유는 수상자 명단에서 사망자를 제외하는 것은 수상자가 이미 사망한 사실을 심사위원회가 확인한 때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즉, 심사가 끝나고 수상자가 결정된 이후 사망 확인은 수상자 변동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판단. # 그래서 수상자로 확정된 사람이 시상식이 오기 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도 그 고인에게 상은 수여된다.

1년 이내에 상을 받지 않으면 수상을 거절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그리고 수상자는 6개월 이내에 수락 강연을 해야 한다. 즉, 노벨상 시상일이 매년 12월 10일이므로 다음해 6월 10일까지가 기한을 주고 있다. 수락 강연을 하지 않으면 상금이 수여되지 않는다. 강연 형태는 정해진 게 없으므로 일반적인 형태의 강연은 물론이고, 연설, 동영상이나 녹음, 공연, 노래 등의 형태도 가능하다고 한다.

해마다 노벨상 시즌이 되면 누가 후보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데 노벨상 최종 후보자와 수상 과정에 대한 정보는 무조건 50년이 지난 후 공개 여부 적합성 심사를 거친 다음에 공개 가능하다. 흔히 언론에서 누가 후보라 카더라는 영국의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의 배당률을 인용한 것이다.[24] 또한 후보는 선정자를 정해서 투표하는 게 아니라 심사위원들이 올해는 누가 받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적어내는 형식으로 결정된다. 2011년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수상이 발표되기 직전 래드브록스에서 그의 배당률이 급격히 떨어져 수상자 정보가 유출됐다는 의혹도 있었으나 의혹이 제기된 직후 스웨덴 검찰이 수사에 나설 정도로 후보나 수상자 정보에 대해서는 철통 보안이 이뤄지고 있다.

수상자를 발표할 때는 사진이 아니라 초상화를 그려서 발표한다. 2012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그림을 도맡는 사람은 스웨덴의 일러스트레이터 니클라스 엘메헤드(Niklas Elmehed). 그림 재료는 검은색 아크릴과 금박뿐이다. 보통 그림은 수상 발표 직전이 되어서야 그린다.

3.2.1. 수상자의 국적

노벨상 수상자의 공식 기록에는 국적/인종을 딱히 적지 않고, 수상자의 출생지와 (사망했을 경우) 사망지만 기록한다. 애초에 국적을 고려하지 않고 수상자를 선정하라는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이 있는데다 한편으로는 수상자의 국적 문제가 상당히 복잡하기 때문이다. 국가마다 국적을 결정하는 원칙이 속지주의/ 속인주의부터 시작해서 제각기 다르고, 수상자가 활동 기간 동안 국적이 바뀌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중국적, 미승인국 문제, 수상자 본인의 국가 정체성, 종주국- 식민지 관계 문제까지 들어가면 복잡해 진다.[25]

위와 같은 이유로 노벨상의 공식적인 국가별 집계 기록 같은 건 없다. 노벨상 수상 개수를 놓고 국가간 묘한 알력다툼이 있으며 세계 각지의 여러 매체들이 국가별 수상 통계를 집계하지만 이는 전부 노벨위원회가 공인하지 않는 비공식 기록이다. 노벨상 수상자의 국적을 기록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므로 수상자의 기록을 특정 국가 집계에 포함하면 그 국가 국적임을 공인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간혹 출생지를 기록한다는 점을 잘못 이해하여 출생지 기준으로 집계한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노벨위원회는 어떠한 국적 또는 지역별 통계를 내지 않는다.

다만 어쨌거나 비공식적으로는 많이 집계되는 편이며, 어찌보면 IOC는 공식 집계를 하지 않지만 전 세계 매체들이 집계를 내는 올림픽 메달 순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비공식 통계에서의 국적은 일반적으로 그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으로 인식되는지를 따라가는 편이다. 예를 들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수상 당시 스위스인이었지만 보통은 독일 물리학자로 인식되므로 독일 수상 집계에 포함된다. 마더 테레사처럼 국적 논란이 심한 수상자는 매체마다 다르게 잡는 경우도 있다. 애초에 그래서 공식 집계를 따로 안하는 것이다.

3.3. 수상자 발표

수상자들은 시상식 약 두 달 전인 10월의 첫 번째 월요일을 기점으로 평일마다 하나씩 월요일 생리의학상-화요일 물리학상-수요일 화학상-목요일 문학상(이상 스톡홀름)-금요일 평화상( 오슬로)-토요일 경제학상(스톡홀름)의 순서대로 현지 기준 오전 11시~오후 1시 사이[31]에 공식적으로 발표되며 유튜브로 생중계 및 녹화 업로드된다. # 당연하지만, 한국의 공휴일과는 관계가 없으므로 추석 연휴, 개천절이나 한글날에 발표할 수도 있다.

3.4. 시상식

파일:Nobel-prize-ceremony.jpg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스톡홀름 콘서트홀. 스웨덴 국왕이 직접 수여한다.

매년 12월 10일, 노벨의 기일에 시상한다. 평화상만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시상식이 열리며, 나머지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노벨이 살던 당시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병합된 상태였기에 노벨 사후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분리되며 평화상만이 노르웨이에서 시상식을 열게 된 것. 드레스 코드가 엄격한데, 남성은 연미복, 여성은 이브닝 드레스를 입는 게 원칙이다. 단, 자국의 전통의상을 입는 것도 가능하며, 신념에 따라 종교의상이나 재활용 의상 같은 특수한 의상도 허용된다. 사례 수상자들은 스웨덴/노르웨이 국왕에게 메달과 상패를 수여받는다.

시상식이 끝나면 기념 만찬이 열리며 스웨덴에선 TV로 중계된다. 수상자들은 왕과 왕비를 대면하는 자리를 가지며, 왕은 대화마다 먼저 말을 건낼 특권이 있다.

12월 11일에는 수상자들이 스톡홀름 콘서트 홀에 모여 각자의 연구 성과와 앞으로의 발전에 대해 토론하는 "Nobel Minds"가 있으며 이 역시 TV로 중계된다. 이 자리는 당해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한데 모이는 유일한 기회라는 의의가 있다. 문학상 수상자는 토론회에 참석할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공식적인 자리가 끝나면 수상자들은 각자의 수상 분야 주관처에서 여는 성녀 루치아 축일(12월 13일) 행사에 참석하게 된다. 이 행사는 시상식과 만찬에 비하면 많이 풀린 분위기이다.

모든 행사가 완료되면 수상자들은 (공식 행사가 아니고 통상 이런 과정을 대부분의 수상자가 거치는데) 고국으로 돌아가서 노벨상 수상 강연을 하고 정부, 기업, 학계 등 각계각층에서 몰려오는 초청을 받으며 인류 학문과 평화 발전의 최전선에 서 있는 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며 살게 된다.

2020년에는 코로나 19 유행으로 시상식과 연회 등 상기의 행사들이 모두 취소되면서 TV 중계로 대체했고 수상자들은 각국 주재 스웨덴 대사관이나 근무 기관에서 상을 받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노르웨이에서 시상하는 평화상 역시 시상 행사 규모가 대폭 축소되고 연회는 열리지 않아 역시 온라인 시상으로 진행되었다. 관련 기사 2021년에는 상황이 많이 좋아진 관계로 다시 오프라인 시상으로 돌아갔다.

3.5. 메달

파일:buturikagaku.jpg 파일:seiriigaku.jpg
노벨물리학상 메달 노벨생리학·의학상 메달
파일:buturikagaku.jpg 파일:152B43435016121204.jpg
노벨화학상 메달[32] 노벨문학상 메달
파일:heiwa.jpg 파일:1135D9465016123502.jpg
노벨평화상 메달 노벨경제학상 메달

노벨상 메달은 1902년부터 2010년까지 스웨덴 에스킬스투나에 있는 스웨덴 화폐제작소(Myntverket, Swedish Mint)[33]에서 제작되었다. 그러나 2011년 회사가 없어지면서, 이 회사에서 만들던 스웨덴 노벨상 메달을 2011년에는 노벨평화상 메달을 만들던 노르웨이의 Det Norske Myntverket (Mint of Norway)에서 함께 만들고 있다. 2012년 5월부터는 노벨상 메달을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Svenska Medalj AB라는 회사에서 만들기로 계약을 했고, 이 회사에서 노벨평화상을 제외한 모든 노벨상 메달을 만든다.

노벨물리학상, 노벨화학상, 노벨생리학·의학상, 노벨문학상 메달의 경우에는 뒷면에 수상자의 이름을 새기는 반면, 노벨평화상과 노벨경제학상 메달은 수상자의 이름을 테두리에 새긴다. 또한 윗 사진과 같이, 과학 분야 상 및 문학상는 전면 모양이 다 동일하지만 평화상과 경제학상은 나머지와 다르다.

3.6. 상금

아무리 노벨이 많은 돈을 남겼다지만 상금을 계속 지급하기 때문에 그 유산이 영원할 수는 없다. 따라서 노벨재단에서는 노벨의 유산을 토대로 여러 사업[34]을 진행하고 있다. 그 덕분에 노벨상 위원회는 지속적으로 투자를 하여 상금 줄 예산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1949년에 인당 지급하는 상금을 한번 줄였다가 그 이후 지속적으로 상금을 높여서 인당 140만 달러(2023년 기준으로 약 18억 1천 3백만 원)까지 지급했으며 2012년 주식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안정적인 상금 수급이 어려워지자 다시 인당 110만 달러로 줄였다고 한다. 관련 기사[35] 현재는 1,100만 스웨덴 크로나, 115만 달러 (2023년 기준으로 약 14억 8,925만 원)정도를 지급하고 있다.

노벨상 상금은 대한민국 국적자가 받으면 소득세법 시행령 18조 2항[36]에 따라 세금없이 실수령할 수 있다. 노벨경제학상은 노벨상인지 아닌지 논란이 있으나 스웨덴 중앙은행이 외국 정부 내지는 기타 외국의 단체에 포함되기에 마찬가지다. # 노벨상의 권위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37]

3.7. 각국 수상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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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한민국의 분야별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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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련 상

6.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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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다회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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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십자위원회
( 평화)
유엔난민기구
(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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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퀴리
( 물리학, 화학)
프레더릭 생어
( 화학)
라이너스 폴링
( 화학, 평화)
존 바딘
(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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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샤플리스
( 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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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논란

노벨상은 모든 나라에 공정한 것이 아니라 친서방권에 속한 국가들이 더 받기 쉬웠다는 주장이 있다. 그 예를 들어 냉전 기간이었던 1950년 ~ 1990년 기간 사이에 공산권 인물이 수상한 노벨상과 미국, 유럽 등 친서방권의 수상을 비교하면 제1세계가 수십 배 더 많다. 아무리 제2세계가 상대적으로 열세였다지만, 상식적으로 정말로 실제 각종 과학 발전이 노벨상 수상 횟수에 비례해 수십 배까지 차이났다면 두 세력의 대결 구도란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없었다고 봐야 하고, 결국 어느 정도는 과학 연구 시설, 자금 문제, 홍보 등 여러 가지로 서방 진영에 속한 출신 인물들에 당연히 유리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 횟수와 세력 간 대결구도는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 애초에 노벨상을 수상한 정도의 발명 및 발견은 해당 국가가 온전히 독점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고 세계 각국으로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간다. 오히려 발명한 나라와 그걸로 돈 버는 나라가 따로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때문에 어느 한쪽이 노벨상 100개를 가지고 있고 다른 한쪽이 노벨상 1개를 가지고 있어도 군사,정치적으로 대결구도는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실제로 현재 중국의 노벨상 수상자는 4명,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는 390명에 육박하지만 두 세력은 현재 G2로서 얼마든지 대결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중국이 미국과 거의 대등하게 대결구도를 벌이는데 노벨상 수상 횟수는 훨씬 적으니 노벨상 선정이 중국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반면 평화상이나 문학상은 일부러 좀 더 지역 안배/배려를 하는 경향이 있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평화상은 다른 노벨상들과는 달리 논란이 있는 상이다. 근본적으로 ' 평화'라는 주제로 상을 주는 것은 각 국가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문제와 연관되기 때문에 다른 노벨상과는 달리 수상자의 업적의 평가가 각 구성원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문학상의 경우, 실제로 동아시아 지역의 문학상의 경우 10년 정도 주기로 준다는 속설도 있다. 또한 문학상도 국적과 사용 언어에 따라 불리한 점이 있다는 데에는 어느 정도 동의가 있는 편이다. 한편, 작가의 국적이나 정치적 성향을 문제삼아 상을 안 주는 경우도 있는데 1회의 최유력 후보였던 톨스토이는 스웨덴과 역사적으로 불편한 관계인 러시아인에 기독교적 무정부주의를 표방했다는 이유로 탈락했고, 남미의 대문호 보르헤스는 파시스트와 독재 정권을 지지했다는 논란 때문에 수상하지 못했다.

이 외에 성비불균형이 심하다는 점도 비판을 받고 있다. 과학사회가 워낙 남초인 까닭도 있지만 실제로 노벨상이 만들어졌을 때 당시와 그 이후에도 여성차별이 만연했다.[52]

게다가 2018년에는 노벨문학상의 심사를 담당하는 스웨덴 학술원의 종신 위원 중 한 명인 카타리나 프로스텐손의 남편이자 학술원과 끈끈한 네트워크를 유지하던 장클로드 아르노가 여성 18명을 성폭행한 의혹을 받은 것으로 학술원 파문이 시작되었으며,[53] 학술원의 미온적 대응에 항의한 종신위원들이 여럿 사퇴했다. 이로 인해 학술원이 내부 심사를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마비되어 문학상 시상이 취소되는 대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관련 기사 시상 취소는 제2차 세계 대전 같은 전 인류의 위기상황에서나 일어나던 일인데, 이를 성추문 때문에 일으켜버리는 추태를 보여주었다. 다만 수상자 선정은 해뒀는지 2019년에 공동 수상하는 식으로 공란은 면했다.

8. 기타


[평화상] 노벨평화상 한정. [2] 괄호 안은 최초 시상년도. [3] 여러 왕립 아카데미 중의 하나이나 과학과 달리 공식명칭은 Svenska Akademien로 왕립의 의미인 Kungliga(Royal)가 없다. [4] 언론에서는 보통 ‘스웨덴 한림원’이 수상자를 결정했다고 보도하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며 위의 설명처럼 분야마다 수상자를 선정하는 기관이 다르다. '스웨덴 한림원'은 '스웨덴 아카데미'를 지칭하는 말이며, 또한 '스웨덴 왕립 과학아카데미'를 '스웨덴 왕립 과학한림원'이라고 옮긴다. 그래서인지 이를 분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으로 보인다. [5] 젊은 시절 러시아 제국으로 건너가 공장 사업을 벌여 크게 성공을 거두었고 후에는 블루 오션 석유 사업에 뛰어들어 아제르바이잔 바쿠에 브라노벨(Branobel)이라는 석유 회사를 설립했다. 브라노벨은 한때 전세계 석유 생산량의 50%를 차지했다고 한다. [6] 노벨은 본래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강력한 무기가 있으면 오히려 전쟁이 줄어들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그 결과는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살상무기가 될 뿐이었다. [7] 19세기 말에는 엄청난 돈이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당시 국내 방송에서 현재 값어치를 원화로 추정했더니 약 2,215억 원이라고 한다. [8] 반평생 넘게 독신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기에 노벨의 직손은 없었다. [9] 스웨덴의 화폐인  스웨덴 크로나를 조폐 및 발행하고 있다. [10] 그래서 노벨경제학상은 노벨재단에서 수상하는 상이 아니므로 노벨 재단에서 상금을 주지는 않는다. [11] 예: Nobel Prize in physics [12] 게다가 노벨이 노벨상에 대한 유언을 남길 당시에는 아직 경제학이 체계적인 분과 학문으로 발전하기 전이었고 때문에 경제학을 시상 분야의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 여러모로 곤란했다. 설령 노벨의 생전에 경제학이 하나의 체계적인 학문으로 성장해서 존재하고 있었더라도 노벨의 관심사를 따진다면 경제학을 시상 분야로 지정했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13] ' 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 시상되는 노벨상의 정식 명칭은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생리학 또는 의학 분야에 대한 노벨상)인데, 이에 대한 한국어 번역은 <노벨생리학 또는 의학상>, <노벨생리학 및 의학상>, <노벨생리학·의학상>, <노벨생리의학상>, <노벨의학상> 등 각양각색이다. 한편 최근 언론에서는 노벨의학상이라는 용어보다는 노벨생리의학상이라는 용어를 주로 쓰는 편인데, 이 용어 역시 일반인들로서는 "<생리의학>이라는 의학 분야가 있나보다. 그리고 그 분야에 대한 상인가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 이 상의 시상 분야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번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14] 더욱이 지구과학 분야는 수학의 필즈상이나 아벨상처럼 노벨상과 동급의 권위를 가진 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지구과학이 노벨상 시상 분야에서 빠져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특히 지질학은 지구과학의 근본 학문으로서 물리학, 화학, 생물학&의학 등에 비해 결코 중요성이 떨어지지 않는 분야이기에 권위있는 상을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15] 또한 천체물리학도 물리학의 한 분야이지만, 천문학의 한 분야이기도 하므로, 천체물리학 관련 업적으로 인한 노벨물리학상 수상은 천문학 분야의 업적으로 수상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16] 노벨이 유언을 남길 당시 생리학은 생물학의 여러 분야를 통칭하는 용어였다. 이에 대해서는 노벨생리학·의학상 문서로. [17] 태어나서 처음 본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인식하고 따르는 현상 [18] 심지어 과학분야의 경우 초창기에는 실용과학에 더 비중을 두었다. 특히 노벨물리학상은 초창기엔 실험물리학자나 발명가가 수상했으며 1918년 막스 플랑크가 양자론으로 상을 받기까지 이론물리학은 찬밥신세였다. [19] 2003년 노벨생리학·의학상. 폴 로터버와 피터 맨스필드 [20] 1979년 노벨생리학·의학상. 앨런 코맥과 고드프리 하운스필드 [21] 2018학년도 7월 전국연합학력평가 30번 지문에 이 설이 등장한다. [22] 어떨 때는 한 업적으로 4명의 공로자가 나오는 바람에 1명이 수상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3명이 상금을 나눠서 그 1명에게 주었다고 한다. [23] 노벨상을 수상할 수도 있었으나 사망한 대표적인 사례는 주기율표를 만드는 데 큰 공로를 한 드미트리 멘델레예프, 제1차 세계 대전 갈리폴리 전투에서 사망한 헨리 귄 제프리스 모즐리, 스티븐 호킹 등이 있다. [24] 래드브록스는 2006년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와 2015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수상을 맞힌 이력이 있다. [25] 실제로 노벨상 수상자 중에는 이중국적자나 한 번 이상 국적을 바꾼 사람, 출생 국가가 식민지었던 시기에 출생하거나 활동한 사람도 여럿 있다. [26] 관련 기사 [27] 독일인 수상자 중에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이나 알자스-로렌같은 지역이 고향인 경우. 이런 경우에 걸리는 사람이 모두 독일인인 것은 아니다. [28] 마리가 노벨상을 수상할 당시(1903년 노벨물리학상, 1911년 노벨화학상) 국적은 프랑스였다. 프랑스 출신인 피에르 퀴리와 결혼을 하면서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리 본인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고 마리 자신이 폴란드인임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폴란드는 독립 국가가 아니라 제정 러시아의 점령 하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3자의 입장인 노벨위원회가 함부로 국적을 결정하기도 어렵다. [29] '슈트라스부르크', 스트라스부르의 독일어 명칭 [30] 다만 1924년 일제강점기 시절 태어났던 김대중은 Japan Empire (now South Korea)가 아니라 Korea (now South Korea)라고 표기 되어 있다. [31] 한국시각 저녁 6시~8시 [32] 물리학상과 동일 [33] 국영은 아니다. 1,000년이 넘도록 스웨덴의 주화와 노벨상 메달을 만들어 왔던 회사이다. [34] 근데 여기에는 무기회사도 있는데, 노벨이 무엇으로 돈을 벌었는지를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35] 물론 노벨상만 받아도 엄청난 명예와 각계 각층의 각종 지원이 따르기 때문에 상금은 부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노벨상을 딸 정도의 업적을 달성하면 과학/문학 분야는 이미 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 의미가 없지만 어떤 분야던 간에 노벨상을 따기만 하면 전 세계의 온갖 명문 대학에서 제발 우리 대학 교수 좀 해달라고 러브콜이 밀려오며, 조교수나 부교수가 아닌 테뉴어를 받는 정식교수로 임용된다. 우스갯소리로 노벨상의 가장 큰 장점은 '돈 걱정 안하고 연구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도 있는데 과학, 기술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선진국의 경우에도 기초 과학을 다루는 대다수의 교수와 연구원이 비용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관측천문학이나 전파천문학 같은 학문은 관측 장비가 대학은커녕 정부 차원에서도 제작하고 운영하기 힘들 정도로 비싸기 때문에 학자들은 항상 연구비에 목말라 있는데 노벨상을 수상하면 정부, 학교, 기업의 지원이 따라오고 상대적으로 연구 분야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36] 노벨상 또는 외국정부·국제기관·국제단체 기타 외국의 단체나 기금으로부터 받는 상의 수상자가 받는 상금과 부상 [37] 물론 한국에서 노벨상이 갖는 명예를 생각하면 상금은 부차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강의 경우 발표 후 책이 팔린 인세만으로도 이미 상금을 뛰어넘었다. 이런 부분은 다른 나라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노벨상 수상 과업 정도의 업적을 남긴 학자가 경제적으로 불안정할 경우는 거의 없는데다 연구 성과를 통해 천문학적인 수익이 창출되는 경우가 많아져서 상금보다 공인된 명예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강하다. [38] 이 이공 계열 상들은 특히 노벨상에 견줄 수 있는 권위를 자랑하는 상이다. 수상시 노벨상과 동급의 큰 영광을 누리게 된다. 세계 명문대들을 비교할 때, 노벨상과 함께 해당 대학 출신들이 이 상들을 얼마나 수상했는지도 참고가 되어 순위가 매겨질 정도다. [39] 권위는 필즈상이 제일 높긴 하지만, 40세라는 나이 제한이 있기에 수학계를 이끄는 젊은 리더들에게 준다면, 노벨상처럼 그 분야의 나이 많은 대가가 받는 상은 아벨상, 울프상에 더 가깝다. 어떻게 보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준다고 볼 수도 있다. [40] 앤드루 와일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공로로 40세를 넘겨서 받은 (수상 당시 44세) 사례가 존재하긴 현재까지는 유일한 사례다. [41] 필즈상은 상금도 많지 않고, 40세 이하라는 조건이 달려있어 그러한 조건이 없는 아벨상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인정하는 추세다. [42] 한국인 수상자로는 이상엽 교수, 박남규 교수가 있다. [43] 노벨상처럼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스웨덴 국왕이 직접 시상한다는 상징성과 권위를 지니고 있다. [44] 노벨상과 수상 분야가 겹치는 상이다. 따라서 노벨상의 아성을 넘지는 못 하고 있다. [45] 물리, 화학에서는 노벨상 다음가는 상이고 수학에서는 필즈상, 아벨상과 함께 인정받는 상이며 의학쪽에서는 노벨상과 래스커상 다음가는 상이다. [46] 이그노벨상과 노벨상을 동시에 수상한 사람도 있다. [47] 혼외자이기 때문에 성이 다르다. [48] 날짜는 시상식이 진행되는 12월 10일 기준. [49] 당사자가 거부는 했지만 일단 공식적으로는 역대 선정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니콜라 테슬라의 경우 1915년 당시 로이터 통신 주장에 따르면 토머스 에디슨과 공동으로 받을 수 있었으나 '공동으로 받을 바에는 받지 않겠다'고 밝혀 다른 물리학자들이 수상을 했다고는 하나 노벨 재단에서 "본인이 상을 받기 싫다고 해서 수상자에서 제외하는 것이 말이 되냐"며 강하게 부인했고 실제로 근거로 뒷받침된 바가 없다. [50] 사르트르의 건강 악화 소식을 들은 한 사기꾼의 상금 탈취 시도가 아니었을까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51] 소수점 아래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 [52] 마리 퀴리는 노벨상을 2개나 받았지만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 이민자와 여성이라는 이유로 떨어졌고 거기에 더해 여성은 영원히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될 수 없다는 결의안이 통과되었다(지금은 폐지). [53] 스웨덴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빅토리아 공주를 성추행하고 노벨문학상 수상자 명단을 외부로 유출했다는 의혹까지 있다. [54] 문학상이 가장 늦은 현지 오후 1시, 즉 한국 시각으로 밤 8시에 발표된다. [55] 이런 방식 때문에 2024년 문학상 발표에서 한강이 처음 수상자로 언급되었을 때는 스웨덴어라서 알아채지 못했다가 이후 영어로 '코리아', '한 캉'이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알아들은 이들이 많았다. 발표 당시 민음사 유튜브 채널의 생중계 반응 영상과 관련 보도. [56] 더 나아가 구르나는 아예 욕을 하며 끊을 뻔했다고 한다. 다행히 상대방 설득에 끊지 않고 제대로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57] 평화상을 제외한다면 특히 수상자의 해당 분야가 엄청난 강세를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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