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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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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채, 제명
(a): 29기 중에서 유일하게 개그콘서트에 출연하지 못했다.
}}}}}} ||
<colbgcolor=#d6eaf1><colcolor=#000> 홍석천
洪錫天|Hong Seok-cheon
파일:홍석천.jpg
출생 1971년 2월 3일 ([age(1971-02-03)]세)
충청남도 청양군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남양 홍씨 당홍계 (南陽 洪氏 唐洪系)[1]
신체 177cm|67kg[2] B형[3]
가족 아버지 홍석기, 어머니 김순겸(1935년생)[4]
누나 3명, 이복형[5]
딸 홍주은, 아들 홍영천[6]
사돈 태용
학력 청양초등학교 (졸업)
청양중학교 (졸업)
남대전고등학교 (졸업)[7]
한양대학교 ( 연극영화학 / 학사)
종교 개신교 ( 예장통합)[8]
병역 대한민국 육군 제32보병사단 방위병 소집해제[9]
소속사 포레스타 엔터테인먼트
데뷔 1995년 제4회 KBS 대학개그제 (공채 12기)
(데뷔일로부터 [dday(1995-07-10)]일, [age(1995-07-10)]주년)
정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10]
별명 탑게이, 매느님, 석천이 형, 홍 중위, 소대장,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오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형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pn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Threads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홍석천 TV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홍석천의 보석함

1. 개요2. 방송 활동3. 출연 작품
3.1. TV 프로그램/드라마3.2. 웹드라마3.3. 연극3.4. 영화3.5. 유튜브 콘텐츠
3.5.1. 게이치 말아요3.5.2. 홍석천의 보석함
4. 앨범5. 저서6. 소속 정당7. 커밍아웃8. 사업 활동9. 논란 및 사건 사고
9.1. 300명 성관계 발언 와전9.2. 2002년 월드컵 발언 논란
10.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배우 코미디언. 대한민국 연예인 중 최초로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이자 자타공인 가장 유명한 동성애자로 대한민국에서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바꾼 선구자로 유명하다.

트레이드 마크는 민머리 헤어스타일. 머리는 단순한 헤어스타일이라기보다, 젊을 때부터 탈모가 와서 아예 밀어버렸다고 한다.[11] 다른 방송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대학로에서 홍보를 하던 중 광고계 종사자 눈에 띄어 광고모델을 하기로 하였는데 조건이 삭발이었다고 한다. 안 하려 했으나 당시 대학등록금의 두 배 정도 되는 3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제안받고 삭발을 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쉬웠으나 주변 사람들에게 두상이 정말 이쁘다는 칭찬과 당시 유행한 레옹의 영향으로 민머리를 캐릭터화해서 당시 광고를 많이 찍었다고 한다.

2. 방송 활동

1994년 《생방송 TV정보센터》 리포터가 되었으며, 1995년 제4회 KBS 대학개그제로 공식 데뷔, 드라마와 시트콤 등에 출연하였고, 방송 활동 외에도 연극, 뮤지컬에도 출연하였으며 1996년부터는 MBC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했다.

파일:external/image.tvdaily.co.kr/1406938676_740921.jpg

'뽀뽀뽀'와 '남자셋 여자셋' 출연 당시 모습. 자칭 압구정 피문어(...).

남자셋 여자셋》에서 여성스러운 성격의 패션 디자이너 "쁘아송" 역으로 주가를 올렸다. 이 시기 다수의 방송에 출연하고 광고 모델로도 활약했으며[12] 2000년에는 뽀뽀뽀 진행자도 맡았다.

그러나 "쁘아송" 이미지가 너무 강했던 탓에 " 게이 아니냐"는 루머가 돌았고 결국 2000년 9월 26일 커밍아웃했다. 커밍아웃 후 한동안 모든 방송 활동을 접어야 했으나, 《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로 오랜만에 얼굴을 비췄고, 김수현의 《 완전한 사랑》으로 시트콤이 아닌 정극에 무사컴백했다. 이후 한동안 정극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활약하다, 인식이 많이 나아진 2000년대 후반부터 예능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2007년 라디오스타에 출연하여 예능감을 드러내자, 지상파 방송금지가 풀리게 된 것이다. 2008년에는 "홍석천의 커밍아웃"이라는 제목으로 게이 청년들의 커밍아웃을 방송소재로 삼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고, 각종 토크쇼에 많이 출연하면서 다시 인지도를 높여갔다.

2011년 7월 3일 개그콘서트 600회 특집 두분토론에 출연했다. 소속당은 중립당(...).[13] 등장해서 김기열에게 "귀여워서 봐주려고 했는데"라든가, 마지막에 박영진이 그에게 "대한민국 중립당들 중에 출연할 수 있는 사람은 너 하나야!"라든가, 15년 만에 쳤다는 자신의 유행어인 "미워 죽겠엉!!"이라든가 여러모로 강공세를 펼쳤다.

2012년 tvN SNL 코리아 5회에서 특별 출연했다. 참고로 5회의 주연 게스트는 신동엽이었다.

2013년 1월 19일 코미디빅리그 리마리오 변기수와 함께 신규 출연한다고 밝혔다. 결국 16라운드부터 코빅에 리마리오와 함께 '레드버터' 팀을 결성, 리마리오와 남남커플로 등장하였다.

2013년 2월 4일. SBS 힐링캠프에 출연했다.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정체성 각성부터 커밍아웃 전후의 사정, 네덜란드 남성과의 연애사 등등. 프로그램에서 밝히길, 이경규는 홍석천의 출연을 강하게 반대했었다고 한다. 실제 방송분을 보면 이경규 본인의 가치관이나 프로그램의 손익을 따진 게 아니라 워낙 민감한 사항이다 보니 홍석천을 더 상처 입힐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 비롯된 반대였다. 이경규가 이날 회상하길, 과거 한 프로그램에서 대충 뭔가 눈치를 채고 물어봤지만, 본인이 완강하게 부인하자 밝히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아 그냥 묻어두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얼마 뒤 보니 커밍아웃을 하더라고.

그리고 이날 방송을 통해 핵심이 됐던 사건 자체와는 이제 직접적인 관련 없게 됐지만 이날 MC를 하고있던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한혜진을 통해 어느 정도 해당 종교나 한혜진의 연인이었던 유명 연예인 신자 나얼의 과격발언에 대한 '심적 화해'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날 있었던 한혜진의 그분 관련 정리 멘트는, 직접적인 종교 성향 노출로 인해 비판받을 만한 부분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해당 종교 관련으로 신자이기도 한 홍석천 스스로 엄청나게 힘든 시간을 보낸 사실이 밝혀졌고, 힐링캠프 자체가 게스트 개인의 사연에 주목하는 토크쇼이니,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었다는 의견이 더 많다. 사건 자체를 알고있는 사람들이 보기엔 홍석천 개인을 향한 위로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문제시되지 않고 넘어갔다.

같은 방송으로 밝힌 바에 따르면, 심적으로 고생하고 있는 동성애자들은 물론이고 섣불리 자신의 정체성을 판단하기 쉬운 나이의 청소년들, 그리고 동성애자들의 부모까지 넓은 범위의 상담에 개인적인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 한다.

2013년 4월 24일 《 푸른거탑》 시즌2 14화에서 새로 전입온 소대장 홍 중위로 열연하였다. 성격은 말 그대로 " 상남자", 입버릇은 "남자답게". 육군사관학교 수석졸업에 터미네이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평소 방송에서 주로 보여줬던 섬세한 모습이 아닌 상남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인지 목소리 연기톤도 굵고 낮다. 강한 군인 양성을 목표로 소대원들을 혹독하게 굴리자, 지친 소대원들은 '여자를 소개시켜 주면 잠잠하겠지' 싶어서 여자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러나 홍 중위는 "내가 가는 길에 여자는 필요없다. 만약 남자 사진을 보여줬다면? 나는 대한민국을 위해 나라에 몸 바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그런데 귀신을 엄청나게 무서워해서, 그걸 알아챈 소대원들 중 한 명이 귀신으로 분장하여 공작을 펼치자, 견디지 못하고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게 된다. 여담으로 훈련 도중 상의탈의를 할 때 이용주의 반신을 보자 잠시 므흣한(?) 눈빛으로 감상하는 개그도 보여준다.

OCN의 《 뱀파이어 검사》에서 디자이너 '가브리엘 장'으로 출연하였다. '쁘아송'을 연상시키는 역이다.

세바퀴에서는 군대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선임으로 꼽혔다. 이 앙케트는 세바퀴 출연진들만을 대상으로 진행한 앙케트이다. 참고로 홍석천 본인은 방위로 군 복무를 하였다. 홍석천의 고향이 충남 청양군인데, 청양군에 거주하는 사람의 경우 인구 감소로 인하여 1980년대 이후에 입영하는 사람은 방위로 복무해야 했다.[14] 2위가 박명수인데, 이에 홍석천은 박명수를 까기도 했다. 박명수는 시력 문제로 면제를 받았다.

2015년 4월 25일 tvN의 <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코리아> 시즌6 11회 셰프 특집에서 호스트로 출연하여 위플래쉬 패러디 등 여러 개그를 선보였다.

3. 출연 작품

3.1. TV 프로그램/드라마

3.2. 웹드라마

3.3. 연극

3.4. 영화

3.5. 유튜브 콘텐츠

3.5.1. 게이치 말아요

헬스 트레이너들을 데려다가 홍석천을 운동 시키는 프로그램. 상의탈의가 빈번하다. 홍석천 본인의 유튜브 개인 계정에서 진행했다.

3.5.2. 홍석천의 보석함

4. 앨범

5. 저서

6. 소속 정당

<rowcolor=#fff> 소속 기간 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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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 ? 2004년 9월 18일 입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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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커밍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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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에 자신이 게이라며 커밍아웃 했다. 그의 커밍아웃은 대한민국 내 성소수자들의 인식 전환을 앞당기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성 소수자의 역사는 홍석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웃팅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자신이 직접 해명했다.[16]
홍석천 씨는 커밍아웃을 KBS의 방송 녹화 중 했다고 기억했다. 홍 씨는 “해당 녹화분이 방영되어도 좋다”고 이야기했지만, 담당 PD는 그의 미래를 걱정해 편집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방송으로 인해 알음알음 기자들 사이로 퍼져 나갔고, 결국 모든 매체의 관심이 집중됐다.

<여성중앙>에서 소문을 들었는지 연락이 왔다. 기자가 인터뷰를 하러 왔는데, 말을 빙빙 돌리시기에 먼저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때부터 인터뷰를 다시 시작했고 4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다. 그동안 살았던 일들과 생각, 왜 방송에서 커밍아웃을 했는지 등에 대해서. 오랫동안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이기 때문에 지면에 내도 좋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당시 일을 봐 주시던 변호사와 매니저 등 사람들과 가족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부모님에게 말씀 드린 때에도 그때였다. 부모님들은 자신의 아들이 하루아침에 손가락질 받는 연예인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에 굉장히 힘들어했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저를 믿어주셨고, <여성중앙>에도 기사를 내도 좋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잡지가 나오기만 기다렸다.

그 즈음 2000 시드니 올림픽 연예인 응원단으로 합류하게 돼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에 친했던 일간스포츠 기자가 전화를 해서 '무슨 인터뷰를 한 것이냐'고 묻더라. 그래서 '올림픽 응원 가니 기다리면 돌아와서 이야기하자'고 전화를 끊었는데, 다음 날 <홍석천, 나는 호모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갔다. 확인되지 않은 팩트로 1면 기사였지만, 데스크에서 '빨리 쓰라'는 지시가 있었던 것 같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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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용 전문.(현재는 삭제됨)

그러나 일간스포츠 편집장이 특종만을 생각하여 신문 1면에 홍석천 "난 호모다"라는 자극적인 표제로 올려 버리는 바람에, 욕은 일간스포츠 기자가 떠안아야 했으며, 일간스포츠의 보도 행태를 문제 삼은 한겨레21 기자까지 이 싸움에 휘말렸다고. 이런 일이 있은 후에도 홍석천과의 관계는 유지되고 있으며, 결혼식 때도 왔다고 한다! 참고로 이 일간스포츠 기자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인물로, 일간스포츠 기자를 지내면서는 간단한 영어 문장을 소개하는 칼럼도 썼으며 학력과 경력을 살려 2005년부터 강남대성학원에서 영어 영역 강사로 근무 중이다.[17]

사실 다들 어느 정도 홍석천이 게이라는 의심은 했지만, 막상 사건이 터지니까 일이 크게 벌어졌다. 대한민국 연예계 사상 최초의 커밍아웃이자 동성애라는 개념이 한국 사회의 수면 위로 떠오른 최초의 대사건이라 그야말로 여론이 들끓었다. 사실, 동성애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암묵적으로 존재하던 것이었다. 서구에서는 1970년대부터 " 퀴어 스터디"라는 이름으로 학술화되고 수면 위로 떠오른 지 오래였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동성애는 해외토픽으로 주로 다루어졌고, 대한민국의 동성애에 대해서 황색언론이나 일부 드라마, 일부 소설 등에서 소재로 다뤄진 적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단기간의 화제거리 정도로 다룬 정도에 불과했고, 또한 유명인이 공개적으로 게이와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그 여파가 비교적 적었다. 그렇기에 해외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서 주목했다. 타임지에서는 ' 아시아의 영웅'이라는 타이틀로 기사를 쓰기도 했다.

홍석천은 커밍아웃 이전에도 게이냐는 의심을 받았지만, "원래 저 사람은 방송컨셉만 그런 것이고, 실상은 마초적이고 열혈인 상남자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었다. 특히 90년대 말 예능프로에 남성 연예인들이 매주 팀을 짜서 각종 경기와 거친 장애물에 도전하는 모험형 쇼프로그램인 출발 드림팀 1기서 홍석천이 활동했는데, 여기서 극강의 운동실력으로 남성스럽게 날고 뛰며 각종 장애물을 돌파하는 홍석천의 맹활약을 본 사람들은 게이일 수 있다는 루머는 들으나 마나한 유언비어 내지는 개소리로 취급하고 거의 믿질 않았다.[18] 사실 남자셋 여자셋으로 떴을 때, 동료인 이의정이나 신동엽이 토크쇼나 예능에서 홍석천이 실제로는 남자답다고 말한 적도 있어서 더 그랬으며, 홍석천 본인도 커밍아웃 전에 다른 예능프로그램에 나가서 상당히 진중하고 차분한 모습[19]을 보여준 적이 몇번 있어 더욱 "실제로는 남자답지만, 연기를 위해 여성스럽고 오버스러운 역할에도 혼신의 힘을 다하는 멋진 연기자"라는 식의 이미지를 굳혔었다. 그래서 커밍아웃 이전의 홍석천의 팬 중에 여성도 많았지만 남성들이 적었던 것도 아니었다. 후술될 박수홍과의 일화를 봐도, 방송국 내에서 "실제 성격은 과묵하고 남성스러운 형"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걸 추측할 수 있다. 사실 홍석천 본인도 커밍아웃 후 세월이 지나 방송을 다시 많이 하게 되고 나서 고백한 적이 있는데, 오히려 지금이 더 여성스러운 말투와 "어응~"하는 추임새 등을 고의로 강하게 쓰는 것이라 한다. 친근하고 코믹한 이미지를 위한 것이라고 하며, 실제 사생활 말투는 여전히 커밍아웃 전 방송에서 보여줬던 진지한 말투에 훨씬 가깝다고. 즉 오히려 젊을 때 보여주던 진지하고 과묵한 모습이 사생활과 일치한다.

사실 그래서 그의 커밍아웃이 더 위대하다고 보는 의견도 많다. 왜냐하면 그가 무명연예인이거나 해서 대중관심을 받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한 게 아니고 자기희생을 했기 때문이다. 그때 그는 무명연예인이기는 커녕, 무명연예인에서 벗어나 막 스타 연예인으로서의 전성기 시작을 즐기고 있던 시점이었다. 당시 그는 여러 방송들에서 동료들에게 상술된 사생활에서의 차분하고 진지하고 사려깊은 이미지 얘기들이 나오며, 인성은 진중하지만 연기를 위해 망가질 줄 아는 연기자라며 이미지가 상당히 좋았고, 인기도 당시 여성스러운 연기를 한 연기자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만큼 최고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남녀노소 시청자 모두에게 호감을 받던 개인 인기의 정점일 때 자신의 성정체성을 폭로해버린 것이며, 사회분위기상 지킬 수 없게 될 자신의 명예와 인기와 경제성을 모두 성정체성의 자유 하나만을 위해 과감히 내던진 것이다. 스타는 모든 연예인과 연예인지망생의 꿈이며, 겨우 스타가 되어 잡은 그 기회를 던져버린다는 건 지독히도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여러 분야의 사람들도 그 위대한 용기를 매우 높이 평가하곤 한다.

홍석천의 커밍아웃에 대해 소수의 사람들[20]은 그의 용기있는 행동에 격려를 보냈지만, 동성애에 무지하고 심지어 혐오스럽게 보는 것이 주류 시각이었던 한국 사회에서 그는 더 이상 TV에 나오기가 힘들게 되었다.[21] 결국 몇 달간 방송 출연이 꽉 막히게 되었고 이후로도 방송에 간간이 나오기는 했지만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당시 절친 홍록기는 TV에서 "홍석천과 친하냐"는 모 토크쇼 프로그램 질문에 화들짝 놀라면서 "절대 안 그렇다"고 극하게 부정했을 정도였다. 홍록기가 홍석천이나 동성애를 혐오한다기보다는, 당시 홍록기가 특유의 패션 센스나 노는 성향으로 인해 연예계에서 게이로 오해받는 대표적인 스타 중 한 명이었기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 홍록기는 홍석천에게 "커밍아웃 당시 먼저 손을 내밀어주지 못해서 미안했으며 혼자 힘든 시간을 이겨내서 대견했다."라고 사과했다. 사실 홍록기는 홍석천이 커밍아웃하기 전에 이미 홍석천이 게이라는걸 알고 있었는데 홍석천은 홍록기가 그 비밀을 끝까지 지켜줘서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홍석천 커밍아웃 1년뒤에 본격적으로 데뷔한 하리수는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으며 연예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고, 이 때문에 홍석천이 빡빡머리에 그렇게 미남이 아니라서 반응이 나쁜 것이라는 얘기도 많이 나왔으며 극과 극의 사례로 많이 비교되었다. 사실 이런 말이 나오는게 당연했던것이 홍석천이 한창 욕을 쳐먹었을때는 막상 H.O.T. 젝스키스를 소재로 한 동성애 팬픽이 온라인상에서 돌아다니고 있던데다가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동성애에 대해 다룬(물론 줄거리를 따지고보면 단순 동성애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영화가 나쁘지 않은 평을 얻으며 상당한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게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몰지각한 게이들 사이에서도 잘생긴것이 커밍해야지 왜 잘생겨먹지도 않은 빡빡이가 커밍하냐고 짜증을 냈다는 썰이 나올 정도니 말 다한셈. 호모포비아 문제의 차원을 넘어 외모지상주의의 씁쓸한 단면을 느낄수있던 셈이다.

어쨌든 2003년도까지는 방송 출연이 뜸해져서 연예인으로서의 커리어가 작살날 우려가 있었을 정도. 그 기간에도 세친구나 아침방송에 출연하기도 했고, 《 주글래 살래》에 나오고, 그해 드라마 《 완전한 사랑》에 동성애자인 홍승조 역으로 출연하여 방송활동은 희미하게나마 이어갈 수 있었다. 이때 홍석천의 출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이 드라마의 작가인 김수현이었다. 제작진에게는 '이 역은 홍석천만이 할 수 있는 역'이라고 강력히 주장했으며, 2013년 2월 4일 《힐링캠프》에 출연한 홍석천의 회고로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 된다.'라고 격려해 줬다고 한다. 《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동성애를 다룬 것을 보면, 김수현 작가의 동성애에 대한 생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는 (게이) 동생들이 불러서 조그마한 바에 가서 맥주 한 잔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제가 집으로 가다가 계산을 제가 해야 되겠다 싶어서 다시 돌아갔는데요. 그전까지 저하고 "형, 힘내", "대한민국에는 형밖에 없어", "최고로 용감해" 저를 치켜 올려줬던 동생들이, 제가 문을 딱 열고 들어가는 순간, 제 뒷담화를 하고 있는 거에요. "지가 뭔데 커밍아웃을 해." 우리가 원하는 건 장동건이나 원빈 같은 잘생긴 최고의 멋진 배우들이나, 아니면 조금 더 유명하고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우리를 대신해서 대표 얼굴이 됐으면 하는 바람인데, 자기가 뭔데 나서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을까"하면서 제 뒷담화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순간 제가 몸이 얼음이 되고, 대단히 슬펐습니다. 세상에 정말 내 편은 없구나... - 강연 100℃

그러나 홍석천이 커밍아웃했을 때, 일부 동성애자들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게이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여성스러운 행동 등)을 보이는 태도를 홍석천이 지녔기 때문에, 그런 잘못된 고정관념이 더 커질까봐 비판적인 관점에서 보기도 했다.

그러다 시청자들의 시선이 변해갔다. 한번 동성애가 이슈화되자 그 충격에 둔감해진 것도 있고, 해외에서는 동성애란 것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진다는 점이 한국에 어필된 측면도 있다. 2005년 이후로 《 브로크백 마운틴》이 대한민국에서 개봉하고, 《 퀴어 애즈 포크》가 대한민국 케이블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2007년쯤에는 케이블방송에 얼굴을 비추면서, 오히려 유쾌한 게이 컨셉으로 서서히 TV에 복귀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의 덕분인지, 2010년을 전후하여 이제는 지상파의 간판 프로그램들에서, 카메오 수준도 아닌 당당한 메이저급으로 나오고 있으니 장족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본인도 방송에서 비교적 편한 입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게이 개그 쪽으로 가는 등, 자신이 게이인 걸 이용하여 분량을 만드는 입장이다. 강심장에서 한때 반고정으로 있으면서 이런 개그로 분량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역시 최초는 한가인 연정훈의 결혼식에서 빵빵 터트린 '정훈아 가지 마~!' 드립. 하지만 아직도 몇몇 호모포비아들은 그가 방송에 나올 때마다 방송사 게시판에 "홍석천의 출연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글을 쓰곤한다.

tvN의 동성애자들을 위한 프로그램 《 홍석천의 커밍아웃》에서 MC를 보기도 했다. 여기서 '게이는 당신의 가족, 형제,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을 해서 또 다시 화제가 되었다. 상기 문장을 가지고 웃음거리로 사용하는 것은 게이들의 입장에선 기분 나쁘거나 상처를 받을 수 있다. 허투로 이야기 할 것이 아니니 함부로 쓰지 말자. 위의 말은 오히려 "당신 주변에 있는 (있을 수 있는) 동성애자들이 상처를 입을 수 있으니 그들에 대해 편견을 갖지 마시오."라는 의미로 한 것이다. 하지만 호모포비아들은 이 사실 때문에 더 적극적인 증오를 일으키게 되는 듯 하다. "가만 있다가는 내 친지들 중에 있을 지도 모르는 동성애자들이 나나 내 가족들에게 접근할지도 모르니, 적극적으로 동성애에 반대해야 한다." 같은 느낌.

어쨌든 하리수와 더불어 홍석천 나름대로의 긍정적이고 열심히 살아가는, 그리고 대인배적인 모습 덕에 보수적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 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많이 희석시키는 데 크게 일조한 인물 중 하나다. 대중적인 호감도도 높은 편.[22]

인터뷰에 따르면 자신의 성 지향성을 깨달은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사춘기가 시작되면서이며, 중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뒤에도 오랫동안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대학교 때는 일부러 여자친구를 사귀어 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곧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처음 학교에 커밍아웃을 할 때 자신을 받아준 교수님과 학우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한다.

2013년 10월 아이유에게 쓴 트윗이 잠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트윗 자체는 그녀를 응원하는 평범한 내용이었지만, 하필 맨 마지막에 "오빠가 지켜 줄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오빠니까"라고 쓴 것. 이를 본 네티즌들은 "과연 홍석천답다"며 대폭소. 홍석천이 운영하는 식당 중 한 곳에도 입구에 '가장 안전한 오빠, 가장 위험한 형(...)'이란 문구를 붙여놨다.

지방선거 출마 계획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성 지향성에 큰 혼란이 왔었다고. 범인은 패리스 힐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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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론 게이가 아니고, 이게 다 여성에게 정말 안전한 오빠처럼 다가가기 위한 위장전술"이라는 드립도 있다. 이성과의 스스럼없는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위해 인생을 내던졌다고. 물론 이 말의 주된 유포자는 신동엽. 마녀사냥 2013년 12월 6일 방송에선 "가증스러운 (게이) 연기 집어치워!"라고 비난(?)했고, 2014년 9월분 방송에선 아예 (장난조지만) 저 새X 게이 아닐지도 몰라 라고도 했다[23]. 당시 출연했던 한혜진(모델)은 자신의 체형 관리를 위해 매일 몸을 촬영해서 저장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 때 홍석천이 '나 좀 보여줘. 나는 괜찮잖아'라고 말하자 신동엽이 저 말을 꺼낸 것. 아예 네이버 자동 완성으로 뜬다. 그리고 이 말은 각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여성 방송인이 "다른 남자는 몰라도 홍석천은 괜찮다"는 식의 발언이 나올 때마다 줄기차게 쓰이고 있다.

사실 이건 커밍아웃한 전 세계 유명인들이 자주 쓰는 드립이다. 닐 패트릭 해리스도 자기 자신 역으로 출연한 《 해롤드와 쿠마》에서 '커밍아웃한 거 여자 만나려고 친 구라임'이라는 대사를 한 적이 있고, 맷 데이먼도 《 윌 앤 그레이스》에 카메오 출연했을 때 이런 컨셉인 캐릭터를 맡았다.

8. 사업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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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 이후 방송 일이 끊겨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 홍석천은 생계를 위해 이태원동 이탈리아 요리 레스토랑 "아워플레이스(Our Place)"를 차렸다. 그 후 이태원 지역에만 자신의 레스토랑을 연달아 차려 성공시키면서 "이태원 재벌", "이태원 지주", "이태원 터줏대감"의 자리까지 오른다. 처음 차렸던 아워플레이스는 이후 접었고, 현재는 My Hong(아시아퓨전- 일본 요리+ 태국 요리), My Chi Chi's내 찌찌(아시아퓨전). My Thai( 태국 요리), My Thai China(아시아퓨전- 중국 요리+ 태국 요리), My X(와인바), My Chelsea(), My Noodle(면류), My Sweet(디저트 카페) 등 6개의 가게를 하고 있다. 2015년 7월 토크쇼 < 택시>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연 매출이 50~70억에 달한다고 한다.

홍석천이 처음 가게를 차렸던 2000년대 초반의 이태원동은 어둡고 지저분한 동네였고, 주로 외국인들만 찾는 동네였다. 하지만 그의 사업이 성공하고 2005년부터 집중적으로 자신의 가게들을 늘려가면서 해밀턴 호텔 뒷골목이 그의 가게들로 가득 찼고, 그 분위기를 이어가듯 점점 개성 있는 레스토랑, 펍, 카페들이 늘어갔다. 오늘날 "뜨는 동네"가 된 이태원이 있기까지 그의 기여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용산구청장에 출마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으며, 2017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재차 확인하기도 했다. 용산구 주민들을 위해 출마한다기보다는 성소수자들에게 삶의 본보기가 되기 위해 출마를 준비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원래 어두운 동네였던 이태원동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 홍석천의 식당 사업이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출마에 정당성이 없지는 않다. 또한 "정치적으로 변질되고 다른 정당 후보들의 기회를 뺏고 싶지 않아, 출마한다면 무소속으로 나올 것"이라 밝혔다.

2009년 식당 한 곳이 화재사건으로 전소되었다. 주한미군 상병이 취한 상태로 불을 피우고 잠들어 버린 것인데, 홍석천은 화재 속에서 그를 직접 구하고 선처까지 해주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라디오 스타에서 언급한 바에 의하면 피해액이 대략 3000만 원 정도였지만, 화재를 낸 군인이 젊었기 때문에 그 사람의 미래를 생각해서 "나는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게이다. 앞으로 게이에 대한 욕을 하지 말고, 게이에게 선처를 받은 사실을 평생 간직하면 용서해 주겠다" 라고 약속을 받은 뒤 한 푼도 받지 않고 용서해 줬다고 한다. 이후에 식당은 다시 개업한 듯 하며 프랜차이즈화도 고려하고 있는 듯하다. 다녀온 사람들의 평에 따르면, 위치도 좋고 인테리어나 음식 맛도 훌륭하다고. 앉을 자리가 부족할 만큼의 인기이며, 장동건 등 친분 있는 연예인들이 자주 들른다고 한다.

대한민국에 본격적으로 태국 요리를 소개한 것도 바로 홍석천이다. 현지에서 먹힐까에 출연하며 밝힌 바에 의하면 처음에 요식업에 입문할 시점엔 태국 요리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으나 전라도 이모들의 맛(...)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서 좌절하던 차에 국내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던 태국 요리에 눈독을 들이게 된 것이라고. 다만, 서태화의 누들샵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100% 정통 태국 요리 맛은 아니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약간 개량한 형태라고. 처음에 정통 태국 요리를 시도했다가, 익숙하지 않은 향과 맛에 손님들이 거부감을 나타내자 방향을 바꿨다고 한다.[24]

서태화의 누들샵, 라디오 스타에서 밝히기를 계속된 축농증 치료와 재발의 반복으로 후각을 잃어버렸다고 한다.[25] 그래서 이제는 어떤 요리의 향도 느낄 수가 없다고. 그 영향인지, 자기 입맛에 맞게 요리를 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조금 짜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해 요리를 하는 경우에는 자신의 입맛보다 조금 싱겁게 요리한다고.[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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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GS25와 계약하면서 라면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름은 "홍석천의 홍라면"으로, 이태원동의 정열이라는 캐치프라이즈로 판매 중이다. 해물맛과 치즈맛 2가지가 있으며, 불닭볶음면보다 조금 덜 매우며 맛은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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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엔 역시 GS25에서 홍라면의 인기에 힘입어 도시락 프랜차이즈를 만들었다. GS25의 기존 도시락 프랜차이즈였던 김혜자 도시락과 비교되었으며, 가격대비 양이나 맛이 괜찮다고 한다. 편의점 도시락이지만, 홍석천 본인이 외식업에 10년이상 종사했다보니 메뉴 구성이나 품질에도 신경쓰는 편이라 한다. 마더 혜례사를 이은 나이팅게이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보여주듯, 홍석천 본인도 상당한 요리 실력을 갖고 있다. 이미 여러 식당들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주 분야인 외식업 외에도 유명한 누드 퍼포먼스와 패션이라든가 인테리어, 디자인 등에도 관심이 있고 평가도 좋은 편이다.

이렇게 이태원 요식업계의 거물로 성장했지만,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국 외식업자들과 더불어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구라철에서 본인이 말하길 식당 등의 사업은 여건이 맞지않아 1개를 제외하고 모두 접었다고 밝혔다. 코로나로 인해 발길이 끊기게 된 것이 첫번째이고, 두번째로는 이태원동의 상권이 낮 시간을 중심으로 하는 홍석천의 가게와는 맞지 않게 밤 시간을 중심으로 하는 상권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2020년 8월 29일, 결국 마지막 남은 가게 하나마저 정리했다.

2021년부터는 홈쇼핑이나 자체 쇼핑몰을 통해서 사업을 하고 있다.

9. 논란 및 사건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9.1. 300명 성관계 발언 와전

그가 학창시절 때 성관계를 300명이랑 했다는 기사가 예전부터 인터넷에서 주기적으로 퍼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과거 정영진, 최욱의 불금쇼에서 "생각해봐. 중학생이 300명이랑 섹스를 할 수 있겠냐. 그게 말이 돼? 충남 시골 전교 200명이 안 되는데."라며 그 발언은 그저 농담이었다고 해명했다. 강연을 하던 중 지금까지 성관계를 한 사람이 몇이냐는 질문이 들어왔는데, 당시 유행했던 영화가 300이자 본인의 이상형이 300에 나오는 남자들이기 때문에 이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동성애자들이 자주 듣고 황당하게 여기는 편견 중에, 파트너 수가 기본 수백 수천 명이라는 둥 동성애를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어떻게든 깎아내리려는 발언들이 있다. 이런 사회적 상황 속에서 그런 인식을 비꼬기 위해 발언한 듯 하다.

이 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었는지 2020년 10월 12일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출연해서 당시의 심정을 밝히기도 했었다.

9.2. 2002년 월드컵 발언 논란

2002 한일 월드컵 포르투갈 전 이틀 전에 포르투갈 선수 4명( 세르지우 콘세이상, 페르난두 쿠투, 후이 코스타, 비토르 바이아)을 데려다가 아침 7시까지 술을 마셨다고 강심장에서 말했다.

사건의 내용은 이러하다.[27]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조별리그 3차전 경기가 펼쳐지기 이틀 전. 홍석천은 아는 여동생과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서 식사 중이었는데 때마침 외국인 4명이 단체로 레스토랑에 들어왔다고 한다. 근데 얼굴을 자세히 보니 그들은 다름 아닌 포르투갈 대표팀 선수들이었던 것. 이들을 단번에 알아본 홍석천은 테이블로 다가가 싸인요청과 함께 "내일 모레가 경기인데 이렇게 밖에 나와있어도 되느냐"고 넌지시 물었고 포르투갈 4인은 "어차피 우리가 이길 거니까 상관 없다"라며 허세를 부렸다고 한다. 예상하지 못한 도발에 살짝 당황한 홍석천이 식사를 마친 이들에게 "근데 너희들 갈데는 있느냐?"고 물었더니 한국이라는 나라를 난생 처음 방문한 이들에게 정보라는 것이 있을리 만무했고 이에 홍석천은 본인이 직접 현지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포르투갈 4인은 흔쾌히 이 제안을 수락했다고 한다.[28] 잠시 후 6명이서 술을 마시러 갔는데 홍석천은 기선제압을 위해 양주 3병으로 선제 공격을 개시했으나 유럽 정상급 축구선수들에게 이 정도는 그냥 음료수 수준에 지나지 않았고 자정이 다 돼가도록 취할 생각을 않자 홍석천은 "어쭈, 이것들 봐라? 그래 좋아! 니들 아까 우리나라 무시했지? 내 오늘 논개의 정신으로 네놈들과 함께 끝장을 볼테다!!!" 하는 마음을 먹고 아예 포르투갈 대표팀이 머물고 있던 같은 호텔에 방을 하나 잡고 술도 본인 사비로 몇 병을 더 추가한 뒤 포르투갈 대표팀의 점호가 12시라는 것을 파악한 홍석천이 "니네 점호 끝나면 우리방으로 와~" 라고 제안 했고 이후 12시 22분 경 홍석천이 머물고 있던 방에 모습을 드러낸 이들과 아침 7시까지 신나게 술을 빨아 제낀 뒤 다시 돌려보냈다고 한다.

당시 축빠들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도 그에게 욕을 할 만큼 상당히 논란이 되었다. 뉘앙스가 포르투갈 선수들이 아침까지 술을 마셨기 때문에 이긴 것이라는 뉘앙스로 받아들여졌기 때문. 게다가 증거자료도 제시하지 않아 모두 헛소리 취급했다. 하지만 2013년 맨발의 친구들에 출연했을 당시 명백한 증거자료를 제시하면서, 헛소리가 아니란 것을 증명했다. # 일각에서는 우리 선수들의 승리를 폄훼했다고 비판하긴 했지만, 홍석천이 한 행동이 실제로 있는 행동이라면 폄훼라고 볼 수 없다. 홍석천은 강심장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아닌 나 덕분에 한국이 이긴 것 같은 발언을 한 적은 없고 오직 저 얘기만 했기 때문이다.

진실은 당사자들만이 알겠지만 위에 홍석천의 주장대로라면 가이드 제안에는 그 어떠한 강제성도 없었으며, 오히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그런 술자리 제의에 응한 포르투갈 선수들의 자기 관리 실패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네 선수 모두가 당시 포르투갈 대표팀의 핵심 주전 선수들이었던데다가, 실제로 이 당시 한국과의 경기에 부상으로 인하여 한국전에 결장한 후이 코스타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모두 한국전에 그대로 나와서 풀타임 경기를 뛰었다. 특히 이들 중 페르난두 쿠투는 이 당시 포르투갈 대표팀의 주장이었고, 다른 선수들 모두 그 때 당시 30대 및 20대 후반의 고참급 선수들로, 팀 내에서 동료들 및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야하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이런 정신나간 짓을 벌인 것이니[29] 당시 포르투갈 대표팀에 대한 평가는 더욱 깎일 수밖에 없다.[30]

10.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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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7세손 석○(錫○) 항렬. 절친 홍록기와는 항렬상으로 조카뻘이다. 프로게이머 홍진호와는 같은 항렬이다. [2] 네이버 프로필 기준 [3] 네이트 프로필 [4] 방송에서 자신을 36살에 낳았다고 언급했다. [5] 홍석천은 막내이다. 큰누나는 어릴 적 골수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며, 그동안 누나만 3명 있다고 알려졌으나 사실은 집에 대 이을 아들이 없자 아버지가 밖에서 낳은 이복형이 1명 있다고 한다. [6] 홍석천은 미혼부이며, 셋째 누나 홍은실의 이혼 후 조카들을 입양했다. 2018년 "조카들이 주변의 소수자나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런 아이들로 자라주었다"며 감사해했다. # [7] 이 당시만 해도 청양에 인문계 고등학교가 없어서 타지로 유학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정산면에 정산고등학교가 있지만 청양읍과는 정반대에 있어서 차라리 대전이나 공주로 유학을 가는 편이 훨씬 나았다. [8] 모태신앙이며, 온누리교회에 출석 중이다. 하지만 교회에 가면 죄인된 심정이라 2000~2001년 이후로 교회도 잘 못 나간다고 한다. [9] 당시 그가 군복무를 하던 청양군에서 전국노래자랑에 나가 상을 받게 되어서 대대장으로부터 포상휴가를 받았다고 한다. [10] 성소수자 운동을 첫번째로 다룬 정당이어서 민주노동당에 입당했었다. 19대 대선 당시를 제외하고 2013년 이후에는 당적은 없어도 정의당과 함께 활동한다. [11] 실제로 민머리를 하는 사람들은 이런 경우가 많다. [12] 그 당시 '미워 죽겠어~!'라는 유행어가 큰 인기를 얻었고, 실제로 치킨 프랜차이즈 '치킨나라' 광고에서 '맛있어 죽겠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13] 실제로는 당시 민주노동당 당원이자 지지자였다. [14] 청양군은 충남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충남 인구수 최하위 기초단체 타이틀을 수 십년간 유지하는 지역이다. 지금도 상근예비역의 비율이 높은 지역이 청양이다. [15] 공개적으로 탈당을 선언하거나 탈당 사실을 공개한 바 없기 때문에 탈당 여부와 정확한 탈당 시점은 확인하기 어렵다. 민주노동당의 후속 정당인 통합진보당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해산되면서 해체되었기 때문에, 다른 정당에 따로 입당한 것이 아니라면 현 시점에서는 무소속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16] "(언론보도를 통해) 큰 죄를 짓고 의도치 않게 커밍아웃한 것처럼 그러졌다. 그래서 아직도 인터넷을 보면 '아웃팅'이라는 분들이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오해되는 기사들이 계속 나가 정정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그 때에는 이미 저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시기였기 때문에 기사화(정정)되지 못했다" 출처 [17] 사실 해당 기자 또한 억울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저 기레기스러운 제목은 기자가 아닌 데스크가 올렸을 확률이 높기 때문. 신문 제작 프로세스에서 기자는 취재를 해 기사를 쓰지만, 일단 기사를 써서 올린 이후엔 그 기사는 기자의 손을 떠나고 이후 업무는 데스크가 맡게 된다. (대기자나 논설위원이 아닌 평기자의 경우) 데스크란 각 부서의 책임자로 보통 부장, 부재시 차장이나 팀장 등이 일을 맡는데, 기자가 기사를 올리면 제목을 포함한 거의 모든 내용을 편집/수정할 권한이 있다. 물론 이후 오탈자나 문법적 오류를 손보는 교열과정이 있고, 최종적으로 신문에 어떤 식으로 기사가 나가는지는 편집국장이 결정하지만, 기사 제목 같은 경우 대부분 저 데스크가 결정한다. 이 때문에 각 기자들마다 정치 성향이나 신조, 생각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특정 논조가 확고한 신문에서는 해당 성향의 기사가 일관적으로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자들 개인의 의견은 각각 다를지라도 어떤 기사를 배정할지, 어떤 기사가 나갈지, 어떤 제목을 실을지를 결정하는 "데스크"는 같으니까. 즉, 홍석천은 저 프로세스를 잘 알고 있고, 기자는 제목에 대해 결정할 권한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기에 (위의 인터뷰에서도 데스크의 지시에 대한 언급이 있다) 해당 기자에 대한 악감정은 크게 없는 것으로 보인다. [18] 이 당시에는 게이는 여성스러우며, 마초적이면 게이일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게이에 대한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에 대한 훌륭한 반론의 예시가 있다. [19] 그러다가도 쁘아송 연기를 잠깐 해달라고 하면 피하기보다 오히려 웃기게 바로 연기를 보여준 뒤, 다시 원래의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갔기에, 정말 프로정신이 훌륭한 연예인이라며 시청자와 동료 출연자들의 호감을 샀었다. [20] 대표적으로 신화 이민우는 커밍아웃 당시에도 개의치않아 했으며, 오히려 주변 지인들에게 홍석천을 두고 "멋진 형"이라며 소개하는 등 그를 응원하기도 했다. [21] 2000년대 초중반까지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은 현재보다 훨씬 부정적이었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동성애를 다룬 인터넷 사이트는 청소년 유해메체로 지정되어 사이트 폐쇄와 접속 차단 등의 조치가 이뤄젔을 정도. [22] 다만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이 성소수자에 대한 시선과 인식이 곱지 않은 건 사실이라 홍석천의 커밍아웃 이후 20년이 지나가는데도 커밍아웃하여 활동하는 성소수자 연예인들은 없다시피 하다. TV 방송에서 활동하는 성소수자 연예인은 지금도 하리수나 홍석천밖에 없다. 2015년에 아웃팅 백재현이 있지만 동성 성추행 혐의로 구속된 범죄 경력이 생겼기 때문에 TV 방송에서는 활동하고 있지 않다. [23] 신동엽의 이 발언은 유명세를 타서, 패러디도 등장했다. 이를테면 저 새X 포켓몬 아닐지도 몰라 [24] 어느 나라의 것이건 식문화는 각 나라의 문화에 걸맞게 현지화가 되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태국 요리는 우리나라에서 잘 먹지 않거나 간식류에나 사용하는 고수, 민트, 라임, 바질, 레몬그라스 같은 향신료가 중요한 맛의 포인트다. 그중에서도 민트와 고수는 호불호가 극명히 갈려서, 이것 들어간 음식을 못 먹겠다는 사람들도 꽤 많다. 때문에 레시피를 100% 그대로 반영했다간 손님들이 불만을 가져 대부분의 한국 내 태국 식당은 레시피가 바뀐다. 참고로 우리가 즐겨먹는 중국 요리, 일본 요리 등도 정작 본국에서는 꽤 다르게 생겼다. 심지어 같은 중국 요리인데 미국식 중화요리 일본식 중화요리는 180도 다르다. 한국 요리 외국에서 파는 것을 보면, 이게 우리가 늘상 밥상에서 보던 그게 맞나 싶을 정도의 독특한 물건들이 가득하다. [25] 참고로 이연복도 축농증 치료의 후유증으로 후각을 잃었다. [26] "후각이 마비된 건데 왜 음식 맛이 짜게 되냐"고 의문을 가진다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인체가 맛을 느끼는 건 혀 뿐만 아니라 후각으로도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를 막고 먹으면 사과와 양파가 거의 똑같은 맛으로 느껴진다. (물론 시각을 통해 생기는 선입견을 막기 위해 눈을 가리면 더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홍석천이 특이 케이스가 아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음식 맛이 예전과 다르게 변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27] 이 내용은 어디까지나 홍석천의 시점에서 서술된 내용이므로 판단은 각자 알아서. [28] 알고보니 홍석천과 같이 있던 아는 여동생이 굉장한 미인이라서 따라왔다고 한다. 키 176에 글래머였다고. [29] 당시 비토르 바이아와 페르난두 쿠투가 1969년생으로 이 당시 34세였으며, 대한민국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홍명보와 동갑내기였다. 후이 코스타 역시 1972년생으로 30대에 접어든 베테랑 고참선수였으며, 이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적은 세르지우 콘세이상 역시 1974년생, 당시 28세로 역시 고참 선수 반열에 접어든 나이였다. [30] 대한민국 대표팀 역시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에서 당시 대표팀 주장이던 이운재 우성용, 김상식, 이동국 등 이동국을 제외하면 30대에 접어든 고참 선수들(이동국 역시 20대 후반으로 적지 않은 나이에 있는 베테랑 고참급 선수였다.)이 이 대회 당시 포르투갈 선수들처럼 대회 도중 무단으로 숙소를 이탈해 현지에 있는 룸살롱에 출입해 술을 마시는 대형사고를 저질러 네 사람 모두 대한축구협회로부터 A매치 출장정지 1년 및 대한축구협회 FA컵 등 대한축구협회 주관대회 출전 금지(주동자인 이운재는 3년, 나머지 세 사람은 2년)라는 중징계를 받은 바 있다. 가뜩이나 팀의 모범이 되어야 할 고참 선수들이 이런 짓을 저지르면 팀의 기강은 당연히 무너질 수밖에 없고 분위기는 난장판이 될 수밖에 없으니, 당연히 엄벌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1] 홍석천을 의도한 건지는 몰라도 2003년 9월 28일 방영된 도레미 트리오에서 윤성호는 또 다른 대머리 개그맨인 윤석주와 함께 립스틱까지 바르면서 개그 이재훈에게 뽀뽀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32] 박수홍의 말에 의하면 홍석천이 당시에는 쁘아송 이미지가 전혀 없었고 매우 진지하고 무거운 이미지의 조용하고 남성스러운 말투를 쓰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연히 나이가 좀 있는 형님으로 보였다고. 그것도 커밍아웃 전까지 홍석천을 남자다운 이미지의 형님으로 오랜 기간 생각했다고 한다. 쁘아송 때조차도 "석천이 형이 생각보다 더 연기를 잘한다"고만 생각했지 남자답지 않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고. 실제로도 남자셋 여자셋 배우들(이의정, 신동엽 등)이 프로그램의 인기로 당시 예능에 많이 출연했을때 홍석천에 대해 "연기역할과 달리 사생활에서 까부는 느낌이 전혀 없이 매우 과묵하고 섬세하면서도 남자답다"는 평을 한 적이 있다. [33] 처음에는 박수홍이 자청해서 했는데, 처음에는 홍석천이 만류했으나 잘 보이려던 박수홍이 사양하지 마시라며 커피를 갖다 주었다고 한다. 근데 일정기간 반복되자 어느 순간 홍석천도 당연시 여기게 되어 자기도 모르게 먼저 박수홍한테 심부름을 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박수홍은 형님이라고 생각했고, 심부름으로 친해지면서 홍석천이 형으로써 다른제작진들에게 방송에서 박수홍에게 유리할 만한 상황을 제안하는 등 어느정도 챙겨주려는 것도 있었기에, 홍석천이 자신에게 당연시하며 일을 시키는 것에 아무런 반감도 없었다고 한다. 커피 위주 심부름이었지만, 다른 작은 심부름들도 꽤 많이 했었다고 한다. [34] 당시 남성은 어느정도 있는데, 여성이 상당히 적은 것을 본 박수홍은 의아했으나 그냥 그날따라 사람이 적은 걸로 오해했다고 한다. 여자들이 피아노치는 남자를 좋아한다면서 여자들이 없는데 피아노 침 [35] 단, 이병헌은 홍석천처럼 연극영화 전공이 아니라 대학시절에 알던 사이는 아닌 듯 하다. [36] 상술된대로 홍석천이 커밍아웃을 하기 전에는 연예오락(예능) 프로그램들에서 홍석천을 남자답다고 자주 말해서 게이 이미지와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약화시킨 대표적인 연예인이었지만, 사실 그건 당시 홍석천이 게이임은 알았어도 미래에 커밍아웃을 할 것을 몰랐기에 오히려 그를 적극 보호해주기 위해 한 행동이었다고 한다. 물론 홍석천의 실제 성격이 과묵하고 섬세한 것은 맞고, 오히려 지금 방송에서의 말투에도 원래 말투에 살짝 여성스러운 느낌을 본인이 일부러 호감형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넣었다는 말도 한 적이 있다. 실제 말투는 게이라는 정체성과 무관하게 살짝 딱딱한 편이기 때문. 단, 그렇다고 진짜 마초적인 성격의 게이는 아니라고 했다. 실제로는 오히려 커밍아웃 전 전성기때 예능이나 토크쇼에 나왔을때의 진중하고 무거운 말투가 사생활 말투와 더 가깝고, 커밍아웃 이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몇번 나왔을때 자기 식당 직원들에게 한 말투들에 흡사하다. 비교해보면 지금 방송들에서 홍석천의 말투가 당시의 (연기를 제외한) 방송말투보다 더 여성스러운 말투임을 알 수 있다. [37] 특히 그를 스타덤에 올렸던 남자셋 여자셋의 쁘아송 역할 [38] 참고로 권해효는 홍석천의 학과 6년 선배다. [39] 그렇다고 해도 1960~70년대에도 남아 선호 사상이 매우 강한 집안이 아닌 이상 씨받이를 들인 집안은 극히 드물었다. 홍석천이 태어날 무렵 정도만 되어도 축첩이나 씨받이를 들이는 건 크게 손가락질 받는 행위였기 때문에, 아들을 못 낳은 집에선 차라리 친아들을 낳는 걸 포기하고 조선시대의 입후 제도처럼 아들 많이 낳은 친척을 물색해 조카 중 하나를 입양해 키우지, 씨받이를 들일 생각은 잘 안 했다. 그가 태어난 지역이 지역인지라(청양군은 남아선호 지역이 강한 지역 중 하나다.) 아마 그러한 사상이 뿌리깊게 박혀있었던 듯 하다. [40] '홍석천이 인스타를 팔로우 한 남자야말로 진정한 미남이다'라는 속설이 있다. 실제로 홍석천이 팔로우한 인스타 인물들을 보면 하나같이 외모가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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