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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제국/작위 및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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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과 역사3. 구조4. 직위
4.1. 황제4.2. 황족4.3. 궁정 작위(8~11세기)
4.3.1. '수염을 기른 자들'
4.4. 황실관리4.5. 황실 근위대4.6. 군사관료
4.6.1. 육군4.6.2. 해군
4.7. 행정 관료

1. 개요


동로마 제국은 고대 시절로부터 물려받은 귀족정 관료주의가 혼합된 체제로 운영되었다. 관료제의 정점에는 물론 로마 황제가 있었으나 동로마 제국의 정체는 공화적 황제정이지 완전한 왕권신수설을 따르는 전제군주정은 아니라는 견해와 전제군주인 황제는 신성한 교회의 수장이다는 관점이 나뉘어 있다.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공화적 황제정이었으므로 성문화된 승계법 및 절차 같은 건 없었고 오랜 전통에 따라 군대와 원로원이 황제를 선출하곤 했는데, 황제야 물론 자기 자식이 제위를 이어받았으면 하니까 자식을 공동황제(카이사르)로 임명하는 등의 꼼수를 쓰곤 했다.

이러한 부제나 황제 자신을 위한 존엄 칭호가 동로마 제국이 이어지면서 다양하게 축적되었는데 수도가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바뀌니까 문화도 기존의 라틴/이탈리아 베이스의 문화가 주된 축이었던 시절에서 그리스 베이스의 문화가 주된 축인 것으로 옮겨가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황제 휘하에는 제국 운영을 위해 다층적으로 결합된 행정-사법 조직들이 형성되어 있었고 이들을 위한 수많은 명예 칭호들도 별도로 존재했다.

천년 이상 시간이 흐르면서 수많은 직함들이 바뀌었는데 초창기에는 동로마 제국의 정치체제도 나뉜지 얼마 지나지 않고 여전히 라틴어가 행정ㆍ법률언어이던 시절이라 이전과 같은 칭호를 썼지만 시간이 흐르며 적어도 이라클리오스 시기(610~641)에는 많은 직함들이 그리스식으로 변형되었고[1] 알렉시오스 1세(1082~1118) 시기에 재차 바뀌었으나 이후에는 대체로 유지되었다. 마지막 왕조인 팔레올로고스 왕조 때에는 점차 날아가는 영토 탓에 억지로 권위를 세우기 위해 각종 작위 인플레가 일어나기도 했다.

본 문서의 내용은 대체로 콘스탄티노스 7세의 <데 아드미니스트란도 임페리오(De Administrando Imperio)>, 필로테오스의 <클레토롤로기온(Cletorologion)>, 위 코디노스의 <데 오피키스(De Officiis)>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단일 시기의 내용이 아닌 경우가 있으므로 참고할 것.

2. 배경과 역사

4세기부터 7세기까지 초기 동로마의 정치제도는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티누스 1세의 개혁을 그대로 유지하여 민정고관과 군정고관 및 이에 상응하는 칭호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각 관직을 맡은 개인이 원로원의 일원이냐 아니냐 또한 이 칭호 및 명예에 영향을 주었던 것이 주요한 특징이다.

8세기 후반부터 11세기에는 이슬람 세력의 대두로 막대한 영토 손실을 겪으면서 기존의 체제는 크게 흔들렸고 새롭게 궁정 중심의 행정체제가 도입되었다. 테마나 타그마를 맡는 장군들이나 이국의 대공들에게 주어지던 프로토스파싸리오스[2] 칭호는 궁정의 주요 관료들에게 주어졌고 이들은 원로원의 일부로 편입하여 변화를 꾀하면서 원로원은 기존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정통 후계가 단절된 공위시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시기에 등장한 여러 명문가들이 수세기 동안 유지되었고 몇몇 제국 황제( 유스티누스 2세 티베리우스 2세)도 이들의 귀족정을 통해 옹립되었으며 이 체제는 콘스탄티노플 대도시 중심 도시-민정 귀족과 지방 군사 귀족의 두 집단으로 구분되었다. 후자는 지역에 기반해 대토지를 소유했지만 옆동네처럼 봉건제는 아니라서 군대는 제정 통수권 아래에 있었다.

11세기 후반에는 만지케르트 전투로 군사제도가 무너지면서 귀족정이 더욱 강해졌으며 새로운 가문들이 유력명문으로 등장했는데 그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은 콤니노스 왕조는 제국의 행정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해나갔다. 과거의 관직들과 칭호들을 점차 없애고 대신에 새로운 관직과 칭호들로 통합해서 왕조와 인척관계를 맺은 이들에게 수여하였다. 이러한 변화로 콤니노스 왕조와 이후의 팔레올로고스 왕조는 토지 소유 귀족정으로 흘러 소수의 귀족층이 요직을 독점하기에 이르렀다.이거 어디서 많이 봤는데?

동로마 제국은 초기에 평민들까지도 당파별로 나뉘어 자기들 의견을 표명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파벌간의 다툼이 이 시기에 이르면 귀족정으로 굳어지고 그것도 한 족벌이 위기상황 극복을 이유로 요직을 거의 독점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11세기부터 12세기에는 80개 정도의 민정 귀족 가문과 64개 정도의 군사 귀족 가문이 명확히 두드러지면서 제국의 요직을 독점하기에 이르렀고 팔레올로고스 왕조 말기에는 요르요스 코디노스[3]라는 사람이 쓴 보고서에서 기존에 있는 소수의 사람이 고관의 칭호와 존엄(황권) 칭호의 엄격한 구분들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한탄을 볼 수 있다. 이 사람이 한탄하면서 쓸 때 수세기간 축적해온 수많은 명명법들도 같이 써 준 덕분에 이 문서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니 감사하도록 하자.

종합해보면 초창기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은 한때 사법권을 강화해 권력을 시민이 통제하려는 움직임까지도 보였으나 이것이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체계화하지는 못하고 각 파벌 간의 균형이라는 형태로 유지되다가 그것이 무너져 내렸다고 볼 수 있다.

3. 구조

시대에 따라 구조는 계속 변하지만 공통적으로, 로마 제국의 황제는 군주이며 군사령관이고 교회와 행정부 수장을 맡는다.

이론상으로는 원로원과 시민, 군부의 지지를 받는 자가 황제로 선출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왕조가 유지되는 동안은 상속된다. 찬탈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역시 지지도가 중요하다. 바꾸어 말하면 동로마 황제는 한편으로는 전제군주이며 신에게서 받은 권위를 가진 정교회의 수장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원로원의 무기명 투표로 선출되고 군대와 시민들에게서 지지를 받아야만 존재할 수 있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군대의 지지[4] 외에도 정교회의 지지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황제는 제국의 재정을 통제하고 귀족을 임명-박탈하거나 부와 토지를 하사하고 몰수할 권한을 갖는다. 서유럽국가들이 정치와 종교가 느슨하게 분리되어 있는데 반해 동로마 황제는 종교의 수장으로 주교를 선임할 수 있다. 황제는 워낙 방대한 제국을 통솔해야 하므로 공식적인 관료 외에 비선조직을 갖기도 하며 이런 궁정관료들의 영향력은 7세기 이후 강화되었다.

황궁에서 근무하는 환관들도 경우에 따라서는 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황족 여성들은 대체로 구분된 공간에서 생활하고 정절이 필요했지만 학술에 큰 차별을 받지 않았던 걸로 보이고 간혹 여황제도 배출되는 게 특징.

콘스탄티노플의 원로원은 콘스탄티누스가 로마 원로원을 모델로 만든 정부의 주요기관으로 원로원 의원은 황제가 임명한다. 실질적으로는 황제는 뭐든 할 수 있지만 이론적으로는 황제는 원로원과, 보다 실질적으로는 원로원의 친한 이들과 상담하고 정책을 결정한다. 원로원은 전쟁의 결정이나 외교 수립 등에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레온 6세 시기에 권한이 축소되었다. 하지만 아무튼 로마원로원은 제국이 멸망하는 순간까지 유지되었다. 몇몇 원로원 의원은 정부의 공식 직함과 호칭을 얻어 관료로 일하기도 한다.

황제 혼자로는 정치를 담당할 수 없기에 중앙에 권력이 집중되면 중앙 행정관료들이 권한도 커지고 기구도 비대해지는 반면, 지방분권화가 되면 각지에 흩어진 유력자들이 발언권을 키운다. 동로마 제국의 관료제는 비대하고 부패한 걸로 악명 높지만 사실 9~10세기를 기록한 '관직표'[5]를 보면 중앙관청의 관료 총원이 600명에 불과하다. 그 넓은 제국 정부가 겨우 그 숫자로 돌아간다고 생각해보라. 사실 제국 관료들은 이미지와 달리 대부분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업무를 처리하는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이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말기에는 이야기가 다르지만. 행정관료들은 호메로스의 저술을 교재로 고전 그리스어 수업을 받고 인문학과 수사학, 논리학을 배웠고 군사적 재능이 탁월한 경우 외에는 이런 학문에 능숙해야 출세할 수 있었다.

동로마 제국의 중기 이후 체제는 세금 징수와 무역 관리를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었다. 황궁 관리, 속주 관리(테마의 통치와 민병대 관리 담당), 공무원(정부의 공공 정책과 재정 담당). 이를 통제하는 과정에서 견제장치는 크리티와 세크리티키 사이에 이루어진다. 이들은 모두 사법 관료이며 세크리티키는 상위 관료의 통제를 받으며 각 분과의 업무를 수행하는 로고쎄티스를 감독한다. 각 로고쎄티스는 공공 회계와 세금 징수를 담당하기도 하고 군대의 봉급이나 보급체계를 담당하기도 한다. 로고쎄티스 투 드로무(Lotothetes tou Dromou)는 정부의 외교부서나 우편업무 등을 감독하며 때로는 황제의 개인보좌관 역할을 맡기도 한다. 세크리티키 중에는 정부 감독관을 맡기도 하는 데 이들은 황실 재산의 관리를 포함해 고아원 운영, 망명자 보호 등의 사회복지 정책을 담당하기도 한다.

중앙 정부와는 별도로 지방정부들도 다수 존재하는데 4개 광역구[6]와 2개 교구 백개 이상의 속주로 구분되는 제국은 각 지역마다 지방관과 보좌기구를 갖추고 있다. 보좌기구는 해당 지역의 유력자들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고 테마 제도가 본격화된 뒤에는 각 지역의 스트라티고스들에게 보다 분권적인 역할이 주어졌다.

4. 직위

동로마의 직위가 갖는 중요성은 일종의 신분상승 같은 것이다. 동로마 제국은 로마 황제로서 갖는 휘황찬란한 명예와 그를 돋보이게 할 화려함을 연출해서 외교-정치적 도구로 활용했기에 고위직을 수여하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었다. 제국의 말기에도 누가 더 높고 명예로운 직위를 갖느냐를 두고 많은 다툼이 벌어졌다.

이하는 대체로 높은 순서.

4.1. 황제

최고 권위의 직분이며 황족이나 황제가 친분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몇몇 극소수 외국 군주들에게만 주어지는 호칭.

4.2. 황족

4.3. 궁정 작위(8~11세기)

8세기에서 11세기까지 동로마 제국은 두 가지 범주로 뚜렷하게 칭호를 구분했는데, 순전히 존칭적인 궁정 칭호이자 계층의 상징으로 수여된 수여 칭호와 제국의 고관들을 위해 황제가 내린 선포 칭호다. 전자는 세 개의 하위 범주로 나뉘었는데, "바르바티(수염을 기른 자-남자-)"와 "환관"과 "여자"에게 수여하는 칭호가 각기 존재했다. 고관들은 원래 선포 칭호를 받았지만 후대로 이어지면서 수여 칭호를 받은 황제의 친인척들이 관직을 독점하자 양쪽이 자연스레 섞였고, 예를 들면 수여 칭호 마기스트로스이자 선포 칭호 로고쎄티스 투 드로무와 같은 식의 관작을 사용하게 된다.

4.3.1. '수염을 기른 자들'

4.4. 황실관리

4.5. 황실 근위대

4.6. 군사관료

4.6.1. 육군

4.6.2. 해군

4.7. 행정 관료



[1] 사실 이전부터 그리스식으로 왕왕 쓰였었다. 이라클리오스는 이를 공식화 한 것일 뿐이고. [2] 원 의미는 '검을 품는 자들 중 으뜸'라는 뜻인데 의식에서 황제의 검을 운반하는 이를 의미한다. 최초에는 이 의무를 수행하던 근위대장의 칭호였다. [3] 일명 위(Pseudo), 또는 가짜 코디노스. '가짜'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중세시대에 쓰여진 다수의 로마 관련 기록이 과거의 유명한 작가들의 이름을 빌렸던 것처럼 코디노스의 문헌들 또한 대부분 누군가가 코디노스의 필명을 빌려 기록한 것이기 때문. [4] 정상적인 시기에는 군대는 정치와 거리를 두고 황제로 일단 즉위한 사람에게 충성을 바쳤다. [5] 그 시대의 실제 관직들을 기록한 표. 동로마 제국의 행정조직을 알 수 있는 중요 유물이다. [6] 프레토리안 프리펙트가 관리하는 구분된 지역 [7] 적통인 남녀는 꼭 황위를 계승하지 않았어도 포르피로게니투스라는 호칭을 받을 수 있었다. [8] 단순히 우연의 일치라기보다는 전근대의 중앙집권 제국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황제 개인에게 강력한 권력이 집중되어있다보니 이 권력자가 신뢰하는 심복이 권력 행사를 돕는 비서 역할을 하는 동시에 권력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 이는 꼭 전근대의 현상은 아니고, 현대의 대통령제를 보더라도 한국의 대통령비서실장이 명목상 장관급의 지위를 보장받을 뿐 아니라 정권에 따라서는 실질적인 행정부 2인자로써 부통령이나 다름없는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다고 할 정도. 하지만 현대와 같은 고도화된 관료제가 갖춰지지 못한 전근대 제국에서는 궁중에 머무르며 황제의 시중을 들던, 그리고 혈통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물려줄 수 없기에 황제 개인에게 충성할것이라 여겨지던 환관이 이러한 역할을 차지하는 경우가 흔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황제가 좀 무능할 경우 환관이 실권을 잡기 쉬웠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