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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5:01:42

녹색당과 청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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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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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민중이 결성한 정치 및 사회적 파벌을 일컫는 용어.

2. 상세

전차경주는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대회였다. 전차 마부들은 사회적 지위가 매우 낮았지만, 우수한 실력으로 각종 대회에서 우승한 자들은 대단한 인기를 구가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가장 성공적인 전차 마부로 일컬어지는 디오클레스는 약 3,600만 세스테르티우스를 벌어들였는데, 이는 로마 제국의 1년 예산과 맞먹는 거액이었다. 그들을 지지하는 팬들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으며, 자기가 건 마부가 라이벌을 꺾고 승리할 수 있도록 못을 트랙에 던지는 등 온갖 반칙 행위를 저질렀다고 한다.

전차 경주의 인기는 로마 제국 때 절정을 구가했다. 대다수 전차 마부들은 경주를 후원하고자 결성된 파벌들 중 하나에 속했다. 이 파벌들은 충성심과 기여에 대한 대가로 회원들을 후원하고 신변을 보장했다. 후원자들은 전차 경주에 관심이 무척 많았고, 전차 마부들에 투자해 이로부터 막대한 부를 벌어들이려 했다. 이들은 서로를 구분짓기 위해 서로 다른 색상을 택했다. 테르툴리아누스에 따르면, 본래 겨울과 여름을 상징하는 흰색과 빨간 색의 두 파벌만 있었지만, 나중에는 마르스를 상징하는 빨간색, 제피로스(Zephyrs)를 상징하는 흰색, 봄 또는 대지를 상징하는 녹색, 하늘과 바다 또는 가을을 상징하는 파란색의 4개 파벌로 나뉘었다고 한다.[1] 이들에 속한 마부들은 각각의 색상을 적용한 깃발 및 망토를 착용해, 멀리 있는 관중들이 경주의 진행 상황을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줬다.

세월이 흐르면서, 전차 경주에 동원되던 이들 4개 파벌은 정치조직으로 변했다. 전차 파벌들이 민중을 동원하는 능력에 주목한 정치인들은 그중 하나를 택하여 자기 편으로 삼음으로써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자 했다. 그 결과, 관료들은 대부분 4개 파벌 중 하나에 귀속되었고, 각 조직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을 후원하는 정치인이 승승장구할 수 있도록 힘썼다. 역대 황제들 역시 이들을 절대로 무시하지 못했다. 그들은 한 파벌이 너무 강하다 싶으면 다른 파벌에 힘을 실어서 견제하는 방식을 구사하곤 했다. 몇몇 황제는 아예 특정 파벌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그들을 위주로 제국을 운영하기도 했다.

서로마 제국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멸망의 길을 걷고 동로마 제국만이 살아남은 서기 5~6세기 무렵,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는 전차 경주가 여전히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다만 이무렵에 붉은색 파벌과 흰색 파벌은 영향력을 잃고 각각 녹색 파벌과 청색 파벌로 흡수되었다. 그리하여 전차 대회는 청색 파벌과 녹색 파벌로 양분되었고, 얼마 후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민 대다수가 제각기 둘 중 하나에 가담했다. 이들은 각각 '청색당'과 '녹색당'으로 일컬어지며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를 놓고 격렬하게 충돌했다. 황제들은 즉위할 때 원형 전차 경기장인 히포드롬에서 두 당파의 지지를 받아야 했다.

통설에 따르면, 청색당은 대토지를 보유한 고위 귀족층을 대표하고 칼케돈 공의회로 정립된 정통교리를 숭상한 반면에 녹색당은 상공업자들과 궁정관료을 대표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단 하나의 본성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단성론을 지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앨런 카메론 등 일부 학자들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정치적 입장이 무엇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충돌 수위가 매우 강했던 건 분명하다. 501년, 녹색당은 히포드롬에서 청색당을 매복 공격해 3,000명을 살해했다. 4년 후 안티오키아에서는 청색당을 탈퇴하고 녹색당에 가입한 전차 마부 포르피리우스가 우승하자 폭동이 일어났다. 정부에선 이를 어떻게든 통제하려 애썼고, 유스티누스 1세 아야 소피아에서 시민이 살해당하자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두 당파의 수장을 공개 처형하기도 했다.

보통의 경우, 두 당 중 한 당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황제의 비호를 받고 친정부 성향을 보이는 반면, 정부의 비호를 받지 못한 당은 반정부적인 성향을 보였다. 아나스타시우스 1세는 녹색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가 청색당의 폭동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두 당이 힘을 합쳐 정부에 대항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532년에 발생한 니카의 반란이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두 당을 강하게 탄압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히포드롬에서 "자비로운 녹색당과 청색당이여, 부디 영속하라!"라고 외치며 히파티우스를 황제로 내세우며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이로 인해 폐위될 뻔했지만, 벨리사리우스 나르세스의 활약으로 3만에 달하는 시민을 학살하며 진압했다.

하지만 두 당파는 이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602년 포카스 마우리키우스 황제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을 때, 마우리키우스는 두 파벌의 지지를 얻어내려 애썼다. 그러나 청색당의 지지만 받고 녹생당이 정부에 맞서 폭동을 일으켜 황궁 앞 광장까지 진격하자, 마우리키우스는 자식들을 데리고 달아났다. 이후 마우리키우스의 아들 테오도시우스의 장인 게르마누스가 민중의 지지를 받아 제위에 오르려 했다. 그는 청색당 편에 속했지만 수적으로 더 많은 녹색당의 지지를 얻고자 녹색당의 지도자 세르기우스에게 지지를 부탁하고 황제가 될 경우 충분한 대가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녹색당은 게르마누스가 제위에 오르게 될 경우 입을 싹 씻고 청색당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국을 이끌 것이라 판단해 이를 거부하고 포카스를 황제로 세웠다. 이리하여 황위에 오른 포카스는 8년간 폭정을 자행하며 제국을 멸망의 위기로 몰아넣었고, 녹색당은 그때서야 자신들의 선택을 후회하고 청색당과 힘을 합쳐 포카스를 몰아내고 이라클리오스를 황제로 옹립했다.

641년 이라클리오스가 사망한 뒤, 황후 마르티나가 선제의 유언을 앞세워 황태자 콘스탄티노스 3세 이라클로나스와 함께 공동 통치자로 즉위하려 했다. 그녀는 피루스 총대주교와 원로원, 그리고 다른 고위 관리들을 원형 경기장에 불러서 공식 집회를 조직하고 유언장을 발표하면서, 자신이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청색당과 녹색당 모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애당초 이라클리오스가 조카딸인 마르티나와 결혼한 것을 혐오했고, 여자가 황제가 된다는 것 자체를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겼다. 히포드롬에 모인 군중은 다음과 같이 외쳤다.
"당신은 황제의 어머니로서 영광을 누리게 되었지만, 그들은 우리의 황제이자 주인입니다. 여인이시여! 당신은 야만인이나 다른 외국 사절들을 궁궐에서 맞이하고 대화를 나눌 수 없습니다. 성모님께서 로마 제국이 그런 고비를 맞이하는 걸 막아주시길 바랍니다."

마르티나는 결국 굴욕감을 안으며 황궁으로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청색당과 녹색당은 마르티나가 콘스탄티노스 3세의 측근들을 모조리 유배보내고 인기 없는 단의론을 교회의 정식 교리로 지정한 것에 분노하여 대대적으로 봉기했고, 결국 마르티나는 축출되고 콘스탄티노스 3세의 아들 콘스탄스 2세가 단독 황제로 즉위했다.

695년, 레온티오스 유스티니아노스 2세 황제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유스티니아노스 2세의 토지 정책에 반감을 품은 귀족과 가혹한 세금에 반발한 농민들이 전폭적으로 호응했다. 청색당은 레온티오스의 반란을 공개적으로 환영하며 아야 소피아 성당으로 행진했고, 갈리니쿠스 총대주교도 레온티오스의 황제 즉위를 승인했다. 결국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코가 잘린 뒤 케르손으로 유배되었고, 레온티오스가 새 황제로 즉위했다. 그러나 그는 2년만에 티베리오스 3세에게 폐위되었고, 티베리오스 3세는 706년 돌아온 유스티니아노스 2세에게 폐위된 뒤 레온티오스와 함께 참수당했다.

754년, 콘스탄티노스 5세 성상 파괴 운동을 수도에서 단행하고자 두 파벌을 회유해, 그들이 폭도들을 조직하여 자신을 대신하여 살인을 저지르고 주교와 수녀들이 히포드롬에서 조롱과 학대를 받고 강제로 결혼시키게 했다. 황제는 다른 지역의 총독들에게도 비슷한 일을 하도록 지시했고, 이로 인해 많은 수도자들이 제국의 통제가 미치지 않은 지역으로 도주했다.

이렇듯 동로마 제국의 역사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청색당과 녹색당은 전차 경주의 인기가 차츰 사그라들고 제국이 안정을 되찾은 9세기부터 쇠락했다. 그들은 정치적 권력을 상실하고 황제를 대신하여 의례적인 역할을 맡았다. 그러다 1204년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략할 때 히포드롬을 파괴한 후 두 번 다시 전차 경주가 열리지 않게 되면서, 두 당파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1]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보라색과 금색이라는 두 개의 새로운 파벌을 만들었다고 전해지지만, 두 조직은 그의 사망 후 기록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