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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라 유적지 전반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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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주요부와 후대의 성벽

1. 개요2. 역사
2.1. 로마 시대의 번영2.2. 중세2.3. 근대2.4. 현대
3. 관광

1. 개요

아랍어 أم قيس
영어 Umm Qais

요르단 북서부의 도시. 해발 1240m의 고원에 위치하며, 인구는 약 5천여 명이다. 고대 지명은 가다라이고, 로마 시대에 크게 번영하였다. 지금도 당시 유적이 잘 남아있어 요르단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다. 지형 상으로도 동쪽을 제외한 삼면이 협곡으로 둘러진 천혜의 요새로, 고대 시기는 물론 현재에도 이스라엘 및 시리아를 모두 경계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이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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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주요부의 창고와 열주

옛 지명은 가다라로, 셈계 언어로 '성채'란 뜻이다. 천혜의 요새인 지형에 샘까지 있기에 최소 기원전 4세기부터 도시가 있었고, 헬레니즘 시리아 전쟁 당시에 셀레우코스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접경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기원전 3세기의 지리가 폴리비오스는 가다라에 대해 일대에서 가장 강한 요새라 기록하였다. 다만 기원전 200년경 안티오코스 3세가 남하하자 가다라는 바로 항복하였다. 셀레우코스 지배기에 가다라는 안티오키아 세미라미스 (Ἀντιόχεια Σεμίραμις) 혹은 셀레우키아 (Σελεύκεια)로 명명되었고, 일대에서 가장 헬라화된 도시로 손꼽혔다. 당시 가다라 출신 인물로는 현실 풍자로 유명한 사상가 메니포스, 피소 키케로 등과 어울린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자이자 필로데모스, 시인 멜레아게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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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기 극장 유적

기원전 2세기, 로마에 의해 셀레우코스 조가 약화되자 남부 레반트 지역은 하스몬 왕조 나바테아 왕국 등 현지 세력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기원전 98년, 하스몬 국왕 알렉산드로스 야나이가 10개월의 포위 끝에 가다라를 함락하고 다마스쿠스~나바테아 무역로를 장악하였다. 이에 나바테아는 종종 가다라 일대를 습격하였다. 그러던 기워전 93년, 알렉산드로스 야나이는 반격을 위해 가다라로 출정했으나, 나바테아 국왕 오보다스 1세가 가다라의 가파른 계곡에 매복했다가 덮치는 바람에 대패하였다. 이후 예루살렘에서 바리사이파의 반란이 터지는 등 하스몬 왕조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가다라 역시 연이은 전란통에 크게 파괴되었다.

2.1. 로마 시대의 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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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기의 중심 도로 (열주)

한동안 폐허로 남았던 가다라는 기원전 63년, 일대를 정복한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에 의해 재건되었다. 로마령이 된 후 가다라는 상당한 자치권이 주어진 데카폴리스 중 하나가 되어 나바테아의 북상을 저지하는 거점이 되었다. 기원전 30년,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가다라를 자신과 절친한 헤롯 대왕에게 주어 일대는 헤로데 왕국령이 되었다. 다만 기원전 4년, 헤롯 대왕의 사후 가다라는 다시 로마 제국령 시리아 속주로 귀속되었다. 신약에 언급된 예수 그리스도의 '게라센 기적'[1]이 이곳 혹은 게라사 ( 제라시) 일대에서 벌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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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들에게 카나트 피라운 (파라오의 수로)라 불리는 수도교 유적

팍스 로마나 하에서 가다라의 인구는 급증했고, 부족해진 수자원 확보를 위해 동쪽의 하우란 산지에서 아빌라와 아드라 (현 다라)를 거쳐 내려오는 170km 길이의 지하 수도교 및 딜레 저수지가 세워졌다. 고대 세계 최장 거리의 지하 구조물로 평가되는 94km 길이의 터널 구간에는 석조 배관만 2900개가 투입되었다. 당시 근동의 최대 토목 공사 중 하나로도 꼽히는 이 공사는 서기 90년에서 210년까지 한세기 이상 걸렸다. 공사가 완공될 무렵인 세베루스 왕조에 가다라의 시가지는 서쪽으로 크게 확장되었고, 현존하는 유적들 역시 대부분 그때의 것이다.

2.2. 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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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무암 기둥으로 세워진 8각 형태의 동로마 성당 유적

기독교 도래 후 가다라는 주요 주교구 중 하나가 되었다. 636년 야르무크 전투와 함께 일대는 이슬람 제국령이 되었고, 한세기 후인 749년 1월의 갈릴리 대지진으로 크게 파괴되었다. 이후 5개의 회랑을 갖춘 바실리카 (성당)가 모스크로 전환되었고, 마을 정도로 이어지다 11세기 무렵 완전히 버려졌다. 13세기에는 현 지명의 어원인 '무카이스' 혹은 므케이스로 표기되기 시작하였다.

2.3. 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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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대에 세워진 베이트 엘루산. 1990년대 박물관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기 므케이스는 하우란 산작에 속하였고, 1596년 기준 무슬림 30가구 및 기독교도 3가구가 거주하였다. 그들은 각종 곡물, 과일, 염소, 벌꿀 등 25%의 세율로 8500 악체를 납부했다. 1806년 학자 울리히 시첸이 방문하여 가다라로 비정한 후 유럽인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1900년을 전후로 하여 히자즈 철도 부설과 함께 마을은 확장되었고, 그 과정에서 옛 무덤들이 사라졌다. 당시 최대의 건물은 행정 치소인 베이트 핫즈 마흐무드 엘루산이었는데, 1920년 그곳에선 중동 각지의 아랍 지도자들이 모여 영국과 프랑스의 중동 분할에 대응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2.4.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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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유적과 야르무크 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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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파이온 유구에서 바라본 골란고원 (우측)

트란스요르단 토후국의 설립 후 1922년, 압둘라 1세에 의해 움카이스에는 앗살트 케라크에 이은 요르단의 3번째 근대 학교가 세워졌다. 1961년 당시 인구는 약 1200명이었다. 1967년 3차 중동전쟁 당시 움카이스는 최전방이 되어 골란 고원 방면에서의 포격과 공습을 당해 시가지 및 유적 일부가 파괴되었다. 다만 후자의 수습 도중 군경에 의해 바실리카 지하에 로마 시대 지하 묘지가 발견되었고, 그중 가장 큰 방은 임시 야전 병원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3.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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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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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유구

유적지가 넓어 주요 부분 외에는 관리가 잘 되어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원형 그대로 볼 수 있는 것. 즐비한 유적 외에도 고지대라 선선한 바람과 녹지, 내려다 보이는 갈릴리 평원 & 호수 및 티베리아스 일대도 장관이다. 가끔 성지 순례차 방문하는 단체 관광객들도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3일간 머물렀다는 동굴도 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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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카이스 박물관

과거 유력자의 저택을 개조하여 만들었다. 입장료는 5 요르단 디나르로, 한화 만원에 육박한다. 다만 거주증 (이까마)이 있다면 0.25 디나르 (250 필스 / 25 피아스터)로, 무려 20배 차이가 난다. 요르단 디나르 구권 10 디나르 지폐의 모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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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기 후반부에 확장된 부분인 시가지 서부 유적

비교적 후대의 유적인 서부 주거지 일대에는 관광객이 별로 오지 않아 한적하게 둘러볼 수 있다. 광장 등이 부분부분 남아있다.


[1] 사람에 들린 귀신을 돼지로 옮겨 빠져죽게 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