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로마 왕국을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일곱 명의 왕.2. 검증
로마 왕정 시대 이야기는 너무 오래된 데다가 거의 전설이나 설화에 가까운 이야기들이며, 20세기 역사학자들은 이들의 이야기는 실제 역사와는 많이 동떨어져 있을 것으로 보았다.[1] 한 예로 로마 왕 전설에 따르면 다섯째 왕인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의 왕위 등극은 어디까지나 에트루리아 출신의 한 개인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도시국가 로마의 왕으로 선출된 것이지만, 한때 역사학자들은 실제 이 시기 로마는 에트루리아의 강력한 영향력 내지는 사실상 지배하에 있었다고 보았다. 그걸 로마인들이 나중에 듣기 좋게 윤색한 것이 이러한 로마 왕 전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역사학자들은 여기에 또 회의적인 입장이다. 당시는 민족이동이 자유로웠던 시대였고, 에트루리아 자체도 여러 도시국가들의 느슨한 연맹체에 가까웠던 만큼(에트루리아는 이탈리아 중부를 호령하던 대제국이 아니라 12개의 도시들의 연합체였고, 이들은 에트루리아인이라는 문화적 동질성과 종교를 공유했던 것을 빼면 정치적으로 별반 협력하지 않던 집단이었다.) 다른 지역을 정치적으로 지배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즉,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가 실존인물이었다면, 정말로 개인이 이주해서 도시국가 로마의 지배권을 얻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단 로마 7왕의 실존 여부는 신화와 전설의 영역이라 개인의 실존 여부는 검증이 불가능하다.재밌는 건 세르비우스 툴리우스나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와 트라야누스는 비로마시 출신에 적극적 확장 정책, 왕정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행적이 상당히 겹친다는 점이다(심지어 반대성향의 양자 겸 후계자에게 암살당했다는 소문도 동일하다). 그런가하면 2대 왕인 누마 폼필리우스의 은둔과 확장 억제는 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의 은둔과 확장 억제(이쪽은 확장이 실패한 쪽에 가깝지만)와도 겹친다.
이처럼 왕들의 실존 여부들은 차치하더라도 왕들의 행적이 훗날 로마 원수정의 황제들과 매우 흡사하다는 건 왕정이 원수정 이후에 가필된 신화가 아닌지, 그리고 왕정 신화 자체가 원수정을 정당화(비너스의 후손이 다시 공화정을 폐지하고 예전 같이 왕정을 세웠다는 식)하려는 프로파간다가 아닌지 의문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사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일부로 여겨지는 아이아네이아스도 사실은 대부분이 옥타비아누스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프로파간다성 창작물이란 점을 상기하면, 고대 왕들의 행적을 바꾸는 일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3.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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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물루스 (기원전 753년 4월 21일 ~ 기원전 716년)
- 누마 폼필리우스
-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 안쿠스 마르키우스
-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
-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4. 가계도
티투스 타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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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티우스 호스틸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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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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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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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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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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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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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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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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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퀴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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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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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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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초에 로마 왕국 시절이 250년 가까이 되는데 겨우 일곱 왕 뿐인 것도 이상하고 세대적으로도 5~7세대밖에 안 된다고 할 수 있는데 한 세대 간극이 최대 30년임을 감안하면 이것도 말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