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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테리아(Ἑταιρεία)는 동로마 제국의 근위 연대이다. 헤타이로이의 계승이라고 볼 수 있다. 기록상으로는 14세기까지 남아있었으나 군사적 용어로는 13세기경까지만 쓰였다. 제국의 기나긴 존속기간 만큼이나 의미가 다양하게 분화되었지만, 여기선 군사적 용어로써만 설명한다.2. 大 에테리아와 小 에테리아
동로마제국이 처음 에테리아라는 단어를 사용했을때는 그 용례는 프랑크, 알란, 카자르, 아랍계열에서 모집한 정예군 근위대에 가까웠다.[1] 에테리아는 813년 레온 5세가 불가리아 차르국과 맞서 싸울 때 함께한 근위대로써 첫 기록이 등장하였다. 이 근위대는 메갈리(大) 에테레이아'혹은 바실리키 에테리아라고 불렸으며 이들의 수장은 메가스 에테리아크라고 칭해졌으며, 황제의 최측근으로써 군사적,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 제위를 찬탈한 경험이 있는 로마노스 레페카노스와 그 족벌들이 황제의 위에 오르기 전에 메가스 에테리아크의 작위에 있었으며, 콘스탄티노스 7세 포르피로게니투스는 자신의 저서 '의례에 관하여'에서 메갈리 에테레이아는 황실의 경호와 전시 상황의 어전 막사의 수호를 일임한다고 기술했다. 그들의 경비와 연봉은 다른 군대와는 분리되어 황실 지출로 유지되었고, 황궁의 무기고에서 항상 최고의 무구로 무장되었다.이와 다르게 미크라(小) 에테레이아라는 다른 부대들도 존재했다. 이들은 미하일 3세시절 야만인으로 이루어진 중앙군을 칭하면서 나타났으며, 앞에 붙은 '미크라(小)'라는 뜻은 편제가 적다는 뜻보다는 황실에서 중요성이 적다는 뜻이었다. 병력의 숫자는 메가스 에테레이아보다 훨씬 많은 1200명 수준이었다. 주로 중기병, 카타프락토이로 복무하는 외국 군인들이었으며 지휘관은 미크로 에테레이아크, 혹은 코메스 에테레이아크였다. 이들은 하자르인과 페르가몬인들로 나뉜 중앙군 타그마였으며, 이 모든 부대들의 장들은 대부분 로마인들이었다.
3. 부대의 통합
10세기로 접어들면서 제국은 회복의 시대에 들어갔고, 수 많은 수복, 정벌을 거치며 병력의 양적, 질적 확대가 시작되었다.이런 시대적 요구에 따라 에테리아 부대 또한 단순한 근위병의 역할 이상을 수행해야했다. 에테리아의 황실 근위대 역할은 조금씩 축소되었지만, 그 병력은 오히려 대, 소 에테레이아가 통합되면서 확대되었고, 지휘부도 메가스 에테레이아크 단일 계통으로 통합되었다. 조직 재편은 인적 구성의 재편또한 가져왔다. 하자르, 프랑크, 알란인들이 중심이었던 기존 에테리아와 다르게 통합된 바실리키 에테리아는 자국민 중심의 카타프락토이 중기병들로 채워졌다. [2] 외국인 근위대라는 포지션은 타그마 톤 바랑곤, 즉 바랑기아 친위대로 넘어갔다.이들은 10세기부터 12세기까지 최정예 기병연대로 이름을 떨쳤으며 만지케르트 전투와 디라히온 공방전의 참사 이후 바랑인 친위대와 함께 콤니노스 왕조까지 유이하게 살아남은 기존 중앙군 타그마가 되었다. 11세기경에는 젊은 로마인 귀족들과 중산층으로 에테리아의 병력을 채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통용되는 관습이었다고 니키포로스 브리엔니오스가 기록한다. 이들의 일부는 디라히온의 참패 이후 아르콘토풀레의 창설에도 기여한것으로 추측되며, 양자는 당시에도 흔히 혼동되어 화자되었다.
11~12세기경에는 이 부대의 정치적, 궁정적 성격이 완전히 분리되어, 메가스 에테레이아크는 오로지 궁정직을 맡는 환관의 장, 혹은 고위귀족을 뜻하게 되었다. 디라히온 전쟁 당시의 관구장 요르요스 팔레올로고스가 바로 메가스 에테리아크였다.
중앙군으로써의 에테리아는 마누일 1세의 중흥기와 원정 당시에는 흔히 보였다가 4차 십자군의 참상 이후로는 소멸한듯 보인다. 다만 궁정직으로서의 역할은 남아서 대귀족들과 황제의 족벌들에게 내려지는 명예직인 메가스 에테리아크의 이름으로 14세기 팔레올로고스 왕조까지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