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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병사가 레기오 팔라티나 헤르쿨리아니 소속 군단병, 오른쪽은 코미타텐세스 부대인 솔렌세스 세니오레스 소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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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1세이후 프라이토리아니를 대체해 세워진 황제 근위대. 크게 레기오네스 팔라티나이와 아욱실리아 팔라티나이로 나뉜다.팔라티나이의 전투서열은 프라이토리아니의 근위기병대 역할을 대체한 스콜라에 팔라티나이 바로 아래 가장 높은 근위대였고, 황제 경호를 넘어 서로마 말기 야전에서 가장 뛰어난 정예병력으로 활약했다.
동로마에서는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전멸한 이후, 서로마에선 멸망할 때 대부분 사라졌으나 스콜라에 팔라티나이만큼은 11세기 십자군 전쟁 직전까지 정예 부대로 명성을 떨쳤다.
2. 창설
3. 프라이토리아니의 해체
말기 로마 시기, 수도 유일의 무력이라는 특권으로 반란이 잦았던 프라이토리아니는 더이상 황제들에게 신뢰받을 수 없었다.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프라이토리아니 근위대를 견제하기 위해, 자신의 고향인 일리리아에 주둔하던 충성스러운 두 군단 제5군단 이오비아와 제6군단 헤르쿨리아를 곁에 두며 사실상 근위대의 대체 용도로 사용했다.
이후 4세기 초, 사두정의 내전에서 프라이토리아니는 또다시 발레리우스 세베루스를 시해하고 막센티우스를 옹립하는데, 이 결정이 결국 프라이토리아니 근위대의 마지막 정변이 되었다.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막센티우스를 격파한 콘스탄티누스 1세는 불충한 프라이토리아니를 해체하고[1]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만든 6군단 헤르쿨리아, 5군단 이오비아, 내전 당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편을 든 게르만 부족 동맹군들을 중심으로 새 근위대를 창설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팔라티나이의 시작이었다.
4. 스콜라이 팔라티나이
대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프라이토리아니를 해체시킨 후, 구 프라이토리아니의 기병 편제를 대체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근위 기병대였다.[2] 근위대장 같은 보직 없이 황제에 의해 직접 지휘 되어 황제의 개인 경호원을 맡았으며, 각 '스콜라' 부대는 500~600명 정도로 편성되었으며 동로마에 약 3500기, 서로마에 약 2500기 정도 배치되었다.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내전중 제국에 충성을 맹세한 게르만족 출신들이 주로 채용되었다. 스콜라이 팔라티나이는 정말로 정예 기병대로서 많은 활약을 했으며 서로마 멸망까지 존속했다.[3]
4.1. 스콜라이 팔라티나이 부대 목록
4.1.1. 서부 마기스테르 오피키오룸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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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레기오네스 팔라티나이
상술한 5군단 이오비아와 6군단 헤르쿨리아의 기간병들과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충성스러웠던 군단을 중심으로 짜인 정예 근위군단으로 팔라티나이 코미타텐세스라고도 한다. 각 군단의 병력은 1000~3000 수준이었다.모병한 기존 군단명을 그대로 쓰기도 했으며 새로 창설한 부대들도 있다.
5.1. 서로마 레기오 팔라티나이 군단 일람
5세기 기록에 따르면 서로마 제국에 주둔한 팔라티나이 군단은 12개였으며, 보병총감 마기스테르 페디툼의 휘하에 소속되어 꼭 황제 근위가 아니더라도 최전선 각지에 배치되었다.-
요비아니 세니오레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시기부터 실질적 근위대역을 맡았던 '5군단 이오비아'가 팔라티나이로 승격하며 만들어진 군단. 로마 제국이 망조가 들던 호노리우스 황제의 시기에도 하술할 '헤르쿨리아니 세니오레스' 군단과 함께 반군과 야만인들을 격멸한 것으로 유명하다. 토탈 워: 로마2 분열된 제국 캠페인에서 로마제국 최종티어 보병으로 등장하지만 분열된 제국의 배경인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시기에는 창설되지 않았기에[4] 나오는 것 자체가 고증 오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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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쿨리아니 세니오레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시기부터 실질적 근위대역을 맡았던 '6군단 헤르쿨리아'가 팔라티나이로 승격하며 만들어진 군단. 최정예 근위대중 하나로 호노리우스 황제 시기 헤르쿨리아니, 요비아니 총합 2개 군단 5000여명으로 10배가 넘는 북아프리카 반란군을 갈아마신것으로 유명하다. 토탈 워: 아틸라와 토탈 워: 로마2 분열된 제국 캠페인에서도 각각 서로마 제국과 로마 제국의 최종티어 유닛으로 등장한다. 물론 요비아니와 마찬가지로 분열된 제국에서는 나오는 게 고증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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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비텐세스 세니오레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기 '디비텐시움'이라는 호칭을 수여받은 제2군단 이탈리카의 기간병들 혹은 벨기에의 퉁그리족을 중심으로 조직한 팔라티나이 군단. 내전기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충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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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그리카니 세니오레스
위의 디비텐세스 세니오레스와 짝지어진 군단으로 벨기에 퉁그리족, 그리고 그 인근 북갈리아 국경 주둔군단을 중심으로 재편된 근위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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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노니키아니 세니오레스
판노니아 인근에서 징집되어 모에시아 인근을 방위하던 근위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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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에시아키 세니오레스
막시미아누스 황제 아래에서 복무하던 모에시아 인근 군단병들을 모아 조직한 근위군단. 아퀼레이아에서 그들의 방패문양을 든 4세기 복식의 군단병 부조화가 나와 아퀼레이아에 주둔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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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게리 프로포그나토레스 세니오레스
아미게리는 '중무장 군단병'을 의미하는 라틴어이다. 아프리카와 콜로니아 율리아 콩코르디아에 주둔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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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키아리이 사바리엔세스
란키아리이는 '창병, 정예병'이라는 의미로, 다뉴브 전선 군단에서 차출한 병력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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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바니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절부터 활약한 '8군단 아우구스타 피아 피델리스 콘스탄스' 군단을 중심으로 재편한 유서 깊은 근위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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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베이
원래 아욱실리아 팔라티나 보조병단이었으나 4~5세기 어느 시점에 정식 근위군단으로 승격되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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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브리아니
이름의 어원은 ' 킴브리족'이지만 실제 킴브리족 출신 병력으로 조직되었다기보단 다뉴브강 인근의 국경요새 '킴브리아나'의 주둔군을 중심으로 조직된 근위군단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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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게리 프로포그나토레스 유니오레스
상술한 동명의 군단과 같은 유래를 가지고 있다.
6. 아욱실리아 팔라티나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내전 시기 다양한 게르만족, 켈트족 야만인 지원군을 운영했다. 특히 바타비족, 헤룰리족 등이 내전당시 활약했는데, 이들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제국을 통일한 이후 그대로 보조병 역할로서 팔라티나에 편입되었다.이후로 제국이 게르만족, 픽트족 등 침략자들을 격퇴하면서 포로로 데려온 적의 정예 전사들까지 부대로 편입되면서 꾸준히 수가 늘었다.
고대 로마의 보조병과는 다르게 독립적인 군단 형식의 부대로 개별 파견, 운영되었다.
6.1. 서로마 아욱실리아 팔라티나 부대 일람
위와 마찬가지로 보병총감의 지휘 아래 65개의 아욱실리아 팔라티나 부대가 있었고, 각 부대는 대대 규모에 해당하는 4~500명으로 추정된다- 코르누티 세니오레스
- 브라키아티 세니오레스
- 페툴란테스 세니오레스
- 켈타에 세니오레스
- 헤룰리 세니오레스
- 바타비 세니오레스
- 마티아키 세니오레스
- 마티아키 유니오레스
- 아스카리 세니오레스
- 아스카리 유니오레스
- 이오비 세니오레스
- 코르누티 유니오레스
- 사킷타리 네르비
- 레오네스 세니오레스
- 레오네스 유니오레스
- 엑스쿨카토레스 세니오레스
- 사킷타리 퉁그리
- 엑스쿨카토레스 유니오레스
- 투반테스
- 살리
- 그라티
- 펠리세스 세니오레스
- 펠리세스 유니오레스
- 그라티아넨세스 세니오레스
- 인빅티 세니오레스
- 아우구스테이
- 이오비 유니오레스
- 빅토레스 유니오레스
- 바타비 유니오레스
- 브룩테리
- 암프시발리
- 그라티아넨세스 세니오레스
- 발렌티아넨세스 유니오레스
- 레티
- 세콰니
- 사킷타리 베나토레스
- 라티니
- 사비니
- 브라키아티
- 호노리아니 아타코티 세니오레스
- 호노리아니 마르코만니 세니오레스
- 호노리아니 마르코만니 유니오레스
- 호노리아니 아타코티 유니오레스
- 브리시가비 세니오레스
- 브리시가비 유니오레스
- 호노리아니 마우리 세니오레스
- 호노리아니 마우리 유니오레스
- 켈타에 유니오레스
- 인빅티 유니오레스 브리타니키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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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스쿨카토레스 유니오레스 브리타니키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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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펠리세스 유니오레스 갈리카니
- 아타코티 유니오레스 갈리카니
- 퉁그리
- 호노리아니 갈리카니
- 마우리 토나테스 세니오레스
- 마우리 토나테스 유니오레스
[1]
일부 기간병들은 새 근위대에 편입되거나 변방으로 재배치되었다고 한다
[2]
후술할 레기오 팔라티나이나 아욱실라이 팔라티나 또한 중기병, 경기병 편제가 있긴 했다.
[3]
이들은 동로마 제국까지 존속되었으나 오랜 수도 배치로 전투력이 감소하여 의장병, 명예직으로 전락하였고, 훗날 재정과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류의 낭비를 허락할 수 없었던
콘스탄티노스 5세가,
타그마 기병 부대의 하나로 부활시켰다. 이 부대는 1081년 남이탈리아의 노르만족(시칠리아 왕국의 전신)과의
디라키움 전투 때까지 존속하였다.
[4]
오히려 아우렐리아누스 시기면 프라이토리아니가 아직 현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