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00:13:20

리세르그산 디에틸아미드

LSD에서 넘어옴

파일:나무위키+유도.png  
LSD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LSD(동음이의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한 마약류·임시마약류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문서가 있는 마약류 및 임시마약류 목록
<colbgcolor=#bdbdbd,#111>

<colbgcolor=#bdbdbd,#111> 마약[1] 가목 양귀비 나목 아편 다목 미처리 코카
라목 코카인, 데소모르핀, 헤로인, 히드로코돈, 히드로모르피놀, 모르핀, 옥시코돈, 코데인
마목 펜타닐, 메타돈 및 메타돈 제조중간체, 카르펜타닐
향정신성
의약품
[2]
<colbgcolor=#d5d5d5,#222> 비의료용 가목 부포테닌, 디메틸트립타민, LSD, 사일로시빈, 사일로신, 펜사이클리딘 유사체, 메스케치논 및 유사체( 카티논, α-PVP 등), 크라톰 및 미트라지닌, 고메오, 브로모-드래곤에프엘와이, 벤조디아제핀 계열 4종
의료용 나목 암페타민( 애더럴), 메스암페타민, 메틸페니데이트, 펜메트라진, 펜사이클리딘, MDMA, 살비아 디비노럼, 케타민
다목 바르비투르산 계열( 바르비탈, 펜토바르비탈 등), 알릴이소프로필아세틸우레아, 플루니트라제팜
라목 벤조디아제핀 계열( 로라제팜 등), BZRA 계열( 조피클론, 졸피뎀), 카틴, 클로랄히드레이트, 마진돌, 페몰린, 펜터민, 날부핀, 지에이치비, 덱스트로메토르판, 프로포폴
대마[3] 가목 대마초와 그 수지(樹脂) 나목 이를 원료로 하여 제조된 모든 제품 다목 동일한 화학적 합성품( CBN, THC, CBD)
임시마약류[4] 리세르가미드( LSD 유사체) 일부, 합성칸나비노이드( HHCH 등) 일부, 암페타민 유사체 일부, 벤조디아제핀 유사체 일부, 랏슈, 감마부티로락톤
기타[5] 환각버섯류, 데이트 강간 약물, 야바, 환각물질
[1] 법 제2조 제2호, 각 목별로 구분. 제2호의 성분을 포함한 혼합물질/제재는 바목에 의해 마약으로 분류되나, 한외마약은 제외됨. }}}}}}}}}
파일:LSD.png
LSD
Lysergic Acid Diethylamide
영어 Lysergic Acid Diethylamide(라이서직 애시드 다이에틸아미드)
독일어 Lysergsäurediethylamid(뤼제르크조이레디튈라미트)
1. 개요2. 명칭3. 위험성
3.1. 환각 작용
3.1.1. 특징3.1.2. 호프만의 수기
3.2. 기타 위험성3.3. 옹호와 논란
4. 의약적 특징
4.1. 관련 연구/실험
4.1.1. 약학 연구4.1.2. 세뇌 실험
4.1.2.1. 실험 실패 원인
4.2. 유사 약물
5. 약물 생산/사용 현황
5.1. 생산5.2. 한국에서의 처벌5.3. 유명한 LSD 복용자5.4. 매체
6. 기타

[clearfix]

1. 개요

파일:알버트_호프만.jpg
파일:f67w2134tyj.jpg
LSD의 아버지, 알버트 호프만[1]

LSD는 향정신성 의약품의 일종인 강력한 환각제이다. 인간의 체내에서 분비되는 신경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완벽한 작용 기전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군사 세뇌 실험인 MK 울트라 작전에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1960년대 미국의 히피 반문화(counterculture)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71년, 미국에서 이 약물이 불법화된 이후 UN 또한 규제 약물로 지정하였다. 때문에 40여 년간 LSD에 관한 모든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금지된 상태였으나, 2000년대 들어, 존스 홉킨스 대학교를 필두로 미국 대학 연구소들이 우울증, 알코올 의존증, 약물 중독, PTSD에 LSD의 치료적 사용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다. #

2. 명칭

미국에서는 'LSD' 혹은 ' Acid'라고 한다. 속칭으로 부르는 말에는 Blue Devil, Blue Cheer[2], Blue Heaven, Lucy[3] 등이 있다.

LSD의 정식 명칭은 Lysergic Acid Diethylamide인데, 약자가 LAD가 아닌 LSD인 이유는, 독일어 Lysergsäurediethylamid의 약자이기 때문이다. 맥각에서 추출되는 물질인 리세르그산을 연구하던 도중 25번째로 합성된 물질이기 때문에 LSD-25라는 이름이 붙었다.

LSD를 처음 합성한 사람은 스위스 알버트 호프만 박사로, 1938년 4월 19일 맥각균을 연구하던 중 합성해 최초의 경험자가 되었다. 그는 "LSD: My Problem Child"라는 책에서 자신이 복용한 후의 경험에 대해 매우 활성화된 상상력(extremely stimulated imagination), 환상적인 그림/장면의 흐름, 강렬하고 기이한 문양, 만화경처럼 변화무쌍한 색채(stream of fantastic pictures, extraordinary shapes with intense, kaleidoscopic play of colors) 등 매우 세세한 경험을 묘사했다. 복용 후 자전거를 타고 가다 환각을 경험했기 때문에 히피들과 일부 LSD 옹호론자는 4월 19일을 자전거의 날 'Bicycle day'라고 부른다.[4]

3. 위험성

강한 환각을 유발하지만, 널리 알려진 악명과 달리 의외로 위험성은 현존 마약 중 가장 적은 편이고 신체적 의존성은 없는 수준이다.[5] 복용량에 따른 치사 위험성 역시 거의 없으며, 반수 치사량 카페인보다도 많다.[6]

다만, 경험의 특성상 정신적인 의존은 발생할 수 있다. 내성은 빠르게 발달하나, 복용을 중단하면 며칠 이내로 사라진다고 알려져 있다. 독성도 매우 적은 편으로, 현재까지 LSD를 과다 복용해 중태에 빠진 사례가 손에 꼽을 만큼 있었으나, 모두 치료를 통해 회복되었다. LSD의 독성만으로 사망한 사례는 현재까지도 보고되지 않았다.

이렇듯, 약물 자체적인 위험성은 낮으나, 대마초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나게 강렬한 환각을 선사하기 때문에 알코올보단 적지만 2차적인 사건 사고의 위험성이 존재한다고 여기고 있다. 실례로, 환각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자살하는 사례는 간간이 보고되고 있다.[7]

LSD 사용자 중 4~6%[8] 정도의 일부에게서 LSD를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색채가 진해지거나 처음 LSD 했을 때의 경험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를 보통 플래시백(flashback)이라고 부른다. 의학적으로는 HPPD(Hallucinogen Persisting Perception Disorder)로 분류되며, 전체 사용자 중 1% 이하에서 강한 플래시백(환각)이 나타나고, 1~2회 사용자보다 다년간 LSD를 사용한 사람들에게서 그 발생 사례가 높다.

플래시백에 대해서는 LSD가 시냅스 구조를 바꾼다는 아래와 같은 가설이 있다.
인간은 태어나서 유아기에 혼돈의 시기, 즉 자신과 나머지 세상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갖은 경험을 해 패턴을 습득하게 되고, 그 패턴을 통해 혼란스러운 세상을 뇌 안에서 재정리하여 이해하기 쉬운, 친숙한 실재를 재창조한다. 그 패턴이란 뉴런 사이의 구조와 한 자극에 대한 연쇄 작용의 경향으로 정리될 수 있는데, 그 경향이란 오래간의 경험으로 인해 축적되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뀌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거나, 또 다른 강렬하거나 오랜 경험이 요구된다. LSD의 환각은, 일반인의 오해와는 달리, 실재하지 않는 감각 정보를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즉, LSD의 환각은 없는 사물을 본다기보다는 있는 착시 현상처럼 사물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는 것이다. LSD 체험자는 이러한 새로운 관점을 굉장히 강렬하게 체험하게 되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익숙해져 온 "실재(reality)"에 대한 관점을 바꾸게 될 정도로 강렬한 경우도 있다. LSD 체험이 끝나고, LSD 성분은 아무런 물리적인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체외로 배출되지만, 뉴런의 구조, 생각의 패턴은 LSD 체험 전과는 다르게 바뀌어 있을 수 있다. 플래시백 현상은, 그러한 새로운 - 하지만 아직 제대로 구현되지는 않는 - 패턴이 다시금 우연히 작동하게 되는 것이며, 보통은 다시 일상의 관점, 사고방식으로 곧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아직 LSD의 기전이 명확히 밝혀진 게 없고, 그 효과는 잠재적으로 위험하기 때문에 반대론자들은 LSD의 안전성이 완전히 보장되지 않아, 위험하므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모든 기작이 밝혀지고 합법화되더라도 현재의 마약성 진통제처럼 일부 한정된 의료 분야에만 전문의의 면밀한 감독 처방하에 사용될 확률이 높다. 워낙에 정신에 미치는 영향이 심대하고, 오남용 시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6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주 일대에서 일부 정신 나간 범죄자들이 지나가는 보행자들을 LSD로 무차별 테러한 사례가 있었다. 본디 피부로는 거의 흡수되지 않는 LSD를 약물의 피부 흡수율을 높이는 DMSO(다이메틸 설폭사이드)와 섞어 피부를 통해 흡수되게 만든 후, 물과 섞어 물총에 넣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쏴재꼈다. 한 번에 다량의 LSD가 피부를 통해 흡수된 피해자들은 강렬한 환각과 더불어 골반 경련[9], 염색체 손상 등의 큰 피해를 입었다고 알려졌다. 때문에 60년대 당시 사람들 중 일부는 건강을 염려해 LSD 대신 전통적 환각제인 메스칼린 등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이후 염색체 손상에 LSD가 관여하지 않음이 증명된 이후론 LSD가 미국 환각제 문화의 주류가 된다.

3.1. 환각 작용

파일:xccss.jpg

LSD 투약 상태에서 눈을 감고 시행한 뇌 스캔. 정상 상태보다 더 많은 뇌의 부위를 시각 처리에 사용한다.

LSD가 유발하는 환각 경험은 매우 다양하다. LSD는 지각 전반과 정서, 기억, 시간 경험 전반을 강력하게 왜곡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각 청각의 왜곡이 가장 흔하며, 시각적 운동 잔상, 색채의 왜곡, 기하학적인 시각 패턴의 경험, 시각 경험과 청각 경험이 교차하는 공감각이 대표적. 경험자들에 의하면, "소리를 볼 수 있다"거나 "색깔을 들을 수 있다"는 식으로 묘사한다. 감각이 교차하면서 소리가 주파수에 따라 색깔로 나타나거나, 몸이 하늘을 떠다닌다고 느끼는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기도 하며 조깅, 등산, 하이킹 등 힘이 필요한 운동에서 심폐 지구력이 증가한다. 또한 촉각 성욕도 강화되는데, 몸 전체에 작용하고 있는 촉각들 하나하나를 따로 느낀다고 말하는 수준의 사례도 있다.

또한 약물은 인간의 상상력을 극단적으로 향상시킨다. 때문에 현대에는 환각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극미량을 투여해 지적 능력을 올리려고 하는 요법이 있으며, 이를 'LSD 마이크로도스(microdose)'라고 한다. LSD가 절정에 이르던 1960년대에는 미국의 많은 예술가들이 창의성 때문에 LSD를 투약했다. 미국 정신과 의사 Oscar Janiger가 1950년대에 주도한 실험에 의하면, LSD 복용자의 예술은 기존의 예술보다 밝은 색채와 추상적인 표현으로 변화하며 캔버스 전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3.1.1. 특징

LSD의 환각 경험은 다양하며, 유쾌한 환각(good trip)과 불쾌한 환각(bad trip)의 경험이[10] 극단적으로 다르다. 이 차이는 복용 당시의 기분과 환경에 강하게 의존한다고 알려있다. 기분과 상태에 따라 환각의 내용이 바뀌는 것은 소위 ' 환각버섯 혹은 매직 머시룸'이라고 불리는 '실로시빈 버섯'의 활성 성분인 '실로시빈'[11]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본 문서의 호프만 박사의 수기가 이 두 환각의 차이를 극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예로 유명한 것 중 하나가 비틀즈 멤버들이 LSD를 처음 접했을 때의 묘사다. 당시 존 레논의 아내였던 신시아 레논의 증언에 따르면, 1965년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조지 해리슨의 치과의사 친구를 통해 자신과 존 레논, 조지 해리슨과 그의 아내 패티는 LSD를 처음 접했고, 환각을 경험한 이들은 황급히 차를 타고 그 장소를 빠져나왔다고 한다. 당황한 조지의 친구는 그들을 따라 차를 몰았는데, 차 안에서 신시아는 조지의 친구가 악마로 보였으며, 자신을 잡으러 오는 것 같아 두려움에 떨었고, 존은 차 시트를 부여잡고 울고 있었다. 조지의 아내 패티는 자동차에 내려 주변의 자동차 창문을 모두 뜯어내려 하였고, 조지는 달리는 자동차에서 뛰어내리려 했다고 한다.[12]

미국에서 지인들의 권유로 마약에 입문할 경우, LSD는 추천받지 못한다.[13] 처음 마약을 손댄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불쾌한 경험(환각)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투여는 반드시 여러 명이 있을 때 하고, 다른 사람이 bad trip에 빠지면 나올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서 최소 1명 정도는 LSD를 안 하고 제정신으로 있는 등, 저러한 단점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커뮤니티 차원에서 권유하는 규칙들이 많이 있다. Bad trip은 한번 빠지면 개인의 의지로 나오기는 매우 힘들지만, 다른 사람이 옆에서 의식을 조절해 주면 빠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단히 적은 양인 수십 마이크로그램만으로도 수 시간 동안 강렬한 환각이 지속되기 때문에 LSD의 투여량은 상당히 적다. 밑에도 나오겠지만, LSD는 다른 마약류처럼 주사나 흡입으로 투약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두꺼운 종이에 바른 후, 이것을 새끼손톱만 한 크기로 잘라 혀 위에 올려놓고 녹여 구강 내 모세 혈관으로 흡수하는 방식(흔히 blotter paper라 한다.)으로 투여한다. 더러는 마분지가 입안에서 씹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종이를 얇은 젤라틴으로 대체하기도 하고, 각설탕에 발라 복용하기도 한다.

LSD는 빛이나 열에 의해 쉽게 분해되어 쓸모없어지고, 판매/구매 시에도 종이 한 장을 구매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판매자에게 사기당할 위험이 아주 높은 약물 중 하나이다. 모든 마약 관련 범죄가 그러하듯이, 이 경우에도 판매자( 사기꾼)와 구매자(사기 피해자) 둘 다 형사처벌 된다.

3.1.2. 호프만의 수기

최초의 사용자인 알버트 호프만의 수기는 다음과 같다. 자료에 따르면, 호프만은 0.25mg(=250µg)의 LSD를 투여했는데, 이는 현대의 미국인 LSD 투약자들이 투여하는 양의 2배 정도이다.
복용 후 50분이 지나자 약간 어지럽고, 불안하고, 시각적 장애가 발생하며 웃고 싶은 욕구가 치민다. 조수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갔는데, 시야가 계속 흔들렸으며, 오목 거울에 비친 것처럼 사물이 왜곡되었다. 제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조수는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상태는 집에 온 이후 더 심화되었다.
눈 앞에 있는 얼굴들이 그로테스크한 빛의 가면처럼 보인다. 강한 흥분과 마비감을 번갈아 느꼈고 머리, 몸, 팔다리가 간헐적으로 차갑고 무감각해졌으며, 혀에서 금속 맛이 났다. 목이 마르고 색색거리는 소리가 났다. 질식할 것 같고, 혼란스럽다가도 명백한 상황 판단을 내리길 반복했다. 나는 시간에 대한 모든 통제력을 잃었다. 시공간이 점점 더 혼란스럽게 변해가고 나는 두려움에 짓눌리고, 또 미쳐가고 있었다. 그중 최악의 것은 멈출 수도 없으면서 상황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따금씩 내가 나의 몸 바깥에 나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나의 '자아'가 공간의 어딘가로 떠올랐고, 그리고 죽은 내 몸이 소파에 누운 것이 보였다. 나는 ' 또 다른 자아'가 슬퍼하며 방 안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뚜렷하게 보고 인식했다.
호프만이 강렬한 반응을 보이자 그의 아내는 의사를 데리고 왔다. 그러나 의사는 절정을 지난 상태의 호프만을 진찰한 후 극도로 확장된 동공을 제외하고는 혈압, 맥박, 체온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진단했다. 의사가 어떠한 처방도 하지 않고 돌아간 이후 호프만은 또 다른 환각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조금씩 내 감겨진 눈 뒤에 남아 있는 전례 없는 색채와 형상의 희곡을 즐기기 시작할 수 있었다. 마치 주마등처럼 변화무쌍하고 환상적인 영상이 내 안으로 밀려들어 와 번갈아 가며, 변색되고, 개폐되고, 그리고 나서 원과 나선형으로 몸을 감싸고, 색색의 분수가 되어 폭발하고, 다시 배열하고, 끊임없이 유동적으로 혼합했다. 문 손잡이 소리나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등 모든 음향 인식이 어떻게 시각적 인식으로 변모했는지가 특히 주목할 만했다. 모든 소리는 그 나름의 일관된 형태와 색채로 생생하게 변화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후 잠에 빠진 호프만은 다음 날 아침의 경험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이후 육체적으로는 다소 피곤하지만 맑은 머리를 하고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행복감과 새로워진 삶이 나 자신을 통해 흘러들어 왔다. 아침 식사는 맛도 좋고 나에게도 남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나중에 봄비가 내린 뒤 햇빛이 비치는 정원으로 걸어 나가자 모든 것이 반짝반짝 빛나며 신선한 빛으로 반짝였다. 세상은 마치 새로 창조된 것 같았다. 나의 모든 감각은 최고의 상태에서 하루 종일 지속되며 부르르 떨었다.
- LSD: My Problem Child - Albert Hoffman

3.2. 기타 위험성

신체적 위험성이 거의 없다고 해서 완전히 LSD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LSD의 초기 민간 연구에서 앞에서 서술한 하버드 대학교 티모시 리어리와 리처드 앨퍼트는 투약으로 발생할 수 있는 심리/감정 문제를 인내하고 감당할 수 있는 정신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LSD를 투여받았을 때 안전하고 긍정적인 효과를 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리어리는 본인이 LSD 옹호자였음에도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이 답한다.
... 때문에 저희는 개인의 지능, 성격, 인내력, 창의력 등의 배경 심리 정보를 수집하고 약물에 대한 이해를 평가하는 시험을 진행한 뒤 약물 전문가들의 심사를 통해 개인의 약물 사용을 허가하는 '약물 면허'를 발급하는 것을 제안드립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가장 부작용이 낮은 약물인 마리화나 자동차 운전면허 정도의 난이도라면 적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LSD는 항공기 조종 면허 정도의 난이도라면 적합할 것입니다.
리어리는 이렇게 '약물 면허' 등 복잡한 행정안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원론적으로 정부의 약물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알코올이 오남용으로 인해 전 세계에서 수십만 명의 피해자를 내지만, 금주법으로 막을 수 없었듯이... (중략) ... 닉슨을 필두로 한 관료들이 말하는 약물의 규제안은 아무런 효용이 없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약물은 우리 신체보다 길게 살아남아 불멸할 것이다.
리어리의 예언대로 닉슨이 진행한 마약과의 전쟁 이후, 미국은 여러 가지 사회 문제에 시달렸다. 폭력적이지 않은 단순 복용자들이 전과가 생겨 빈민층으로 전락하며 경제가 망가졌고, 일을 가질 수 없던 그들은 교도소 내의 강력 범죄자들에게 경도되어 진짜 위험한 범죄를 직업으로 삼기 시작했다. 남아메리카는 대륙 전체가 미국에게 마약을 밀매하기 위한 공장으로 변모했다.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소규모 마약 딜러들이 마약 카르텔로 진화했으며, 미국 정부는 자신이 키운 이 폭력배들을 박멸하기 위해 수백억 달러를 사용했다.

한편, 리어리 본인이 LSD를 'soft drug'라고 판단해 합법화하길 주장하긴 했어도, 환각제 열풍으로 인한 실제 피해자가 존재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60- 70년대 미국에서는 추정 700만 명의 사람들이 LSD를 투여했고, 그중 수백 명(약 0.0045%)이 공황 장애 또는 기타 정신 이상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66년 하버드 대학교 졸업생이자 의대 자퇴생인 스티븐 케슬러(Stephen H. Kessler)가 LSD에 취해 장모를 칼로 찔러 죽인 사건이다. 케슬러는 정신 분열을 앓고 있었으며, 3일 동안 LSD에 취해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밖에 몇 건의 자살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으며, 플래시백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부류도 생겨났고, 하단에 언급할 조직형 범죄자들도 생겼다.
파일:찰스 맨슨.jpg
미국의 연쇄 살인범 찰스 맨슨

찰스 맨슨은 미국의 사형수이다. 그는 LSD를 나눠 주며 젊은 히피들에게서 신으로 추앙받았고 맨슨 패밀리라는 조직을 만들어 잔혹한 살인 교사를 저질렀다.
파일:external/www.mohae.kr/4ce1d5f19a4fc2f6b158ef3ef8be255a.jpg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을 주도한 테러리스트이며, 이 경우, LSD를 사용하면서 과대망상이 더욱 커져 스스로를 신이라고 여겼다.

리어리와 앨퍼트의 공동 시설 또한 마찬가지였다. 본래 하버드의 학자와 과학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이 모인 그들의 연구소 또한 어느 시점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이성애, 동성애 등을 막론하고 섹스 놀이터가 되어있었다. 이들은 재미로 LSD를 남용하는 부류로 사실 캘리포니아 뉴욕 등지에서 오락으로 LSD를 하던 대다수의 당시 사람들의 약물 의식 수준은 이러한 수준에 그쳐 있었다. 그들에겐 LSD가 정신 강화 약물이나 뭣도 아니었고 그저 알코올이나 헤로인을 사용하는 것처럼 계속 취하길 원했던 것이다. 히피들의 경우, 거지 차림으로 돌아다니며, 돈이 없지만 약물로 메시아를 보게 해달라고 소리 지르고 다녔다.

리어리의 하버드 동료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학자였던 휴스턴 스미스(Huston Smith)는 초기 리어리의 환각제 연구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나 60년대 중후기의 히피 문화에 대해서는 맹비난한다.
'흥분하라, 어울려라, 이탈하라'라는 리어리의 메시지엔 종교 운동의 토대를 세우는 데 필요한 대안 사회의 모습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환각제 운동이 혁명적이고, 계시를 받은 것이고, 유토피아적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현 상황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이러한 대안이 없다면 그 사회적 메시지는 '학교를 그만둬라, 직장을 그만둬라, 막 나가라'라는 현실 도피적 소리일 뿐이다.
초기 앨퍼트는 LSD가 어떤 초월적인 무언가를 접하고 '사랑'이나 '감각의 새로운 지평' 등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했으나, 이러한 오남용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어느 시점부터는 LSD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모든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완벽한 약물이 아니라고 회의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3.3. 옹호와 논란

“LSD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심오한 경험 중 하나였다.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내 생각을 보다 뚜렷하게 해줬다. 돈을 벌기보다는 훌륭한 제품을 만들고, 사물들을 역사와 인간 의식의 흐름 속에서 파악하는 것을 도왔다.”
“...아내를 포함해, 나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환각제(LSD)를 복용해 보지 않은 사람은 나의 경험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 스티브 잡스
" 1960년대 70년대 초에 나는 많은 LSD를 복용했다. 그 당시 버클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마음을 여는 경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LSD)은 확실히 내가 들었던 어떤 과목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 캐리 멀리스(Kary Mullis, 1993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몇몇 유명한 셀럽들이 LSD를 복용하고 정신 능력의 증가로 뭔가를 만들었다는 것은 공공연하다. 애플의 CEO로 유명한 스티브 잡스, 노벨상 수상자인 캐리 멀리스와 프랜시스 크릭 등 유명인들이 LSD를 통해 인지 능력이 강화되어 업적을 남긴 것이라고 고백했다. 수백 명의 성공적인 실리콘밸리 CEO들을 인터뷰한 <타이탄의 도구들>의 저자, 팀 페리스는 ‘제가 만나본 억만장자 기업가의 전부가 사이키델릭을 주기적으로 사용합니다.’라고 말했다. 음악 분야에서도 LSD의 영향력은 상당한데, 비틀즈의 멤버들은 LSD를 음용하고 작곡 작업을 했으며 사회 저항적이거나 쾌락주의적인 음악가들은 LSD를 복용하고 음반 작업을 하기도 한다.

LSD의 발명가인 알버트 호프만 본인은 LSD를 격렬하게 옹호했는데, 70년대 이후 LSD가 미국에서 금지된 이후로도 자신의 집에서 LSD를 합성해 음용했으며, 2008년에 사망해 102세로 장수했다.

그래서 LSD는 마리화나와 함께 합법화에 있어서 큰 논쟁이 일고 있다. 또한 LSD가 알코올 중독과 군발성 두통 분야에서 현재까지 발명된 치료제들 중 가장 탁월한 효능이 있기 때문에 의료용 사용의 허가 요청도 이뤄지고 있다. 2019년 기준, 미국의 덴버 시가 미국 최초로 LSD와 유사한 환각제인 실로시빈 소지 합법화를 승인했지만, 다른 지역은 승인이 미확정인 상태이다.

4. 의약적 특징

파일:rdrug.png

미국 2003년 <National Survey on Drug Use and Health> 통계에 따르면, 한번 사용한 후 만성적인 사용으로 이어지는 빈도[14]가 가장 낮은 약물이다.[15] 약물 의존성과 신체 위험성이 모든 약물을 통틀어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심지어 카페인보다도 위험성과 의존성이 낮다.

LSD와 흡사하지만 환각 작용이 없는 2-Bromo-LSD는 군발성 두통에 효과적이다. LSD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수많은 리세르그산 계열 약물 중에도 군발성 두통이나 심한 편두통에 큰 효과를 보이는 약물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어떤 이유로 이러한 효과가 발생하는지는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사실 이것은 LSD-25의 환각 효과도 마찬가지다. LSD는 많은 세로토닌 수용체, 특히 5-HT2A 수용체에 강력하게 작용하는 작용 물질이나, 이 수용체의 활성이 환각을 유도하는 메커니즘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한편, 세로토닌이 인체에서 수행하는 기능의 다양함을 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LSD는 본래 무색무취 약물이며, 카페인같이 신체의 어느 곳에 넣어도 흡수가 된다. 이러한 점을 이용해 약물을 적셔 말린 종이, 패치, 안약, 캡슐 등 다양한 형태로 소비된다. 복용 후 인체에 최대 12시간까지 영향을 끼치며, 판단력이 흐트러지고 행동을 제어하기 힘들어진다. 복용으로 인한 신체적인 변화는 식욕 감퇴, 발한, 동공 확장, 심박수 및 혈압 증가와 몸을 떠는 증상이 있다.

LSD의 독특한 환각 증상을 통해 편집증이나 조현병 등 중증 정신병의 치료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들도 있으며[16], 아직까지도 연구가 활발한 약물이다. 그런 이유로 몇몇 연구실에서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 실험 목적으로 매우 한정적인 양을 합법적으로 생성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LSD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으며, 한 연구원은 가디언지를 통해 “이번 연구는 인간 신경 과학 분야에 있어 물리학에서의 힉스 입자 발견에 비견할 수 있는 업적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기력 작용제로 쓰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화학 무기 금지 조약 관계인들은 LSD를 잠재적인 화학 무기로 보기도 한다. 물론 리스트에 올리지는 않았다.

4.1. 관련 연구/실험

4.1.1. 약학 연구

존스 홉킨스 대학교 환각 연구 팀[17]는 50여 년간 모든 연구가 금지되었던 약물인 LSD를 다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1,700만 달러의 자금을 이용해 전문가들을 고용하고 아편 마약( 오피오이드) 중독, 코카인 중독, 니코틴 중독, 알코올 의존증, PTSD, 우울증, 알츠하이머의 치료에 환각버섯에 든 실로시빈[18]과 LSD를 이용할 수 있는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

존스 홉킨스 대학교 의과 대학의 롤랜드 그리피스(Roland Griffiths)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사이키델릭 약물은 중독( 담배, 알코올, 기타 남용 약물), 말기 암 등 생명을 위협하는 병의 고통, 강력한 우울증 등의 치료가 까다로운 병을 앓고있는 사람들에게 치료 효과가 있다고 밝혀졌다 #.

현재 다수의 미국의 정신과학자들이 사이키델릭 약물의 긍정적인 활용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으며, 뉴욕 대학교, 예일 대학교, 앨라배마 대학교 버밍햄(UAB),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위스콘신 대학교 약학 대학 등 미국 굴지의 대학들이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 뒤이어 약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4.1.2. 세뇌 실험

파일:mkultra.jpg
기밀이 해제된 MK 울트라 자료

LSD 복용자들에게서 LSD가 의존성과 유독성에 비해서, 인간의 심리에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 미국 정부 CIA는 크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냉전 시절, CIA는 LSD 연구에 엄청난 투자를 하였는데, 심지어 MK 울트라라는 인체 실험도 자행했다. 1950년대 미국의 과학자들은 LSD를 전쟁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실험에서 LSD의 주요 목적은 1. 적국 포로 및 스파이에 대한 자백제로 활용 / 2. 일시적, 영구적인 인격의 변화 / 3. 적국의 상공에 투하해 대규모 정신 착란의 발생 / 4. 사람의 감정을 제거해 '로봇 요원'의 생산이 목적이었다.
파일:lsdthemkultra.jpg
MK 울트라 작전에 사용된 LSD

CIA가 MK 울트라 작전으로 개발하려 했던 물질들은 다음과 같다.
1. 투여받은 사람이 사회에서 신뢰받지 못할 정도로 비논리적 사고와 충동성을 조장하는 물질.
2. 사람의 인지 능력과 학습 효율성을 높이는 물질.
3. 피해자의 노화를 빠르게/느리게 하는 물질.
4. 알코올의 중독 효과를 촉진하는 물질.
5. 인지된 질병의 징후와 증상을 가역적으로 생성하여 치유 등에 사용할 수 있는 물질
6. 일시적/영구적 뇌 손상과 기억력 상실의 원인이 되는 물질
7. 심문이나 세뇌 과정에서 고문, 강요, 식사와 물 금지에 견딜 수 있는 능력을 높여줄 물질.
8. 사용 후 기억 상실증을 유발하는 물질 및 물리적 방법.
9. 은밀하게 장기간의 충격과 혼동을 일으킬 수 있는 물리적 방법
10. 다리의 마비, 급성 빈혈 등 신체적 장애를 일으키는 물질
11. 물집이 생길 수 있는 화학 물질을 생산하는 물질.
12. 받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는 경향으로 바뀌도록 성격을 조종할 수 있는 물질.
13. 감지할 수 없는 양으로 사용했을 때 남성의 야망과 일반적 업무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는 물질.
14. 시력이나 청각 기능의 약화나 변형을 촉진하는 물질, 가급적 영구적인 영향이 없는 물질.
15. 인식 가능한 질병의 징후와 증상을 가역적인 방식으로 생성하여 꾀병에 사용될 수 있는 물질
16. 상기한 효과들을 나타내면서도 피험체 본인이 의사 등 전문가와의 상담에서 스스로가 약물로 조종되고 있다는 것을 알기가 어려운 물질.
17. 특정 경로에 의해 은밀하게 관리될 수 있고, 매우 적은 양으로 신체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는 물질.
미국 정부가 LSD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LSD의 주요 특징인 1. 강력한 환각 효과 / 2. 내면 심리의 변화 / 3. 극소량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어, 비밀 요원들이 적국에서 사용하기 적합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었다.
4.1.2.1. 실험 실패 원인
CIA의 비밀 실험진들과 티모시 리어리[19]의 카스탈리아 재단(Castalia Foundation)[20]은 서로 개별적으로 LSD 연구를 하며 한 가지의 결론에 도달했는데, LSD의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당대[21]의 과학 수준으론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두 연구 팀이 주목한 것은 LSD가 가진 강력한 ' 각인' 능력으로, LSD는 약물에 취해있는 사용자에게 새로운 아이디어와 행동을 '각인'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대부분의 인간의 학습은 장기적인 반복을 통해 뇌에 각인이 되지만, 이들은 LSD를 사용해 개인에게 어떤 행동을 순식간에 각인시키고, LSD에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각인이 지속되길 원했다.

리어리는 상습적인 범행을 저지르는 범죄자나 약물 중독자들에게 LSD를 투여해 '재사회화'를 각인해 치료하길 원했다. 반면, CIA의 목표는 세뇌를 통해 감정이 결여되거나 강력한 암시를 걸어 암살이나 파괴 공작 등 모든 명령을 따르는 로봇 인간들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둘은 LSD의 심리적 깨달음이나 정신병적 공격을 통제하는 게 불가능함을 깨닫게 되었다. 이 약물은 사용자들이 이전 정신 구조와 사회적 적응 수준을 뛰어넘는 고차원적인 의식 상태로 각성할 수는 있지만, 그런 깨달음의 방향성이나 유지 여부를 투약해 주는 사람이 조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 시절, 티모시의 직장 동료였던, LSD 연구로 해임된 리차드 앨퍼트(Dr. Richard Alpert, A.K.A. Ram Dass)가 실행한 밀브룩 볼링장 실험은 당시 LSD 연구의 실패를 나타낸다.
앨퍼트는 5명의 피실험자를 상대로 밀브룩의 볼링장에서 실험을 진행하였다. 이 실험의 목표는 LSD를 이용해 인간이 가진 태생적인 정신 제약을 깨고 완전히 다른 종류의 심리 상태를 가진 초인이 될 수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들은 2주 동안 4시간마다 대량의 LSD(400마이크로그램)을 투여했다.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곧 그들은 인간의 신체가 LSD에 대해 빠른 내성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성이 생긴 피실험자들은 반복적인 대량 투여를 통해서만 흥분할 수 있었다. 볼링장 실험에서 알아낸 추가적인 사실은 더 우울했다. 2주 동안의 계속적인 투약 끝에 피실험자들이 서로를 매우 싫어하게 된 것이었다. 앨퍼트는 LSD가 신인간을 창조할 수도, 세계를 구원할 수도 없음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이렇듯 LSD 연구가 지지부진하자, 이후 CIA는 말초 신경계 중추 신경계에 영향을 끼쳐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3-퀴누클리디닐-벤질레이트(3-Quinuclidinyl-benzilate, QNB, BZ 가스)를 세뇌 분야의 주요 연구 테마로 주목하였고, LSD는 후순위로 밀려났다. 실험 이후 앨퍼트는 1967년, 인도로 여행을 떠나서 힌두교 티베트 불교의 수행자들에게도 LSD를 투약해 봤는데, 이들 중 많은 수가 희한하게도 LSD로부터 별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22] 수행 중 일어나는 영적 고양감과 비교했을 때, LSD로 인한 효과는 대수롭지 않은 경험이라고 취급했다. 심지어 어떤 힌두교 구루는 915마이크로그램에 달하는 오버도스(overdose) 상태에서도 매우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며 앨퍼트에게 태연히 윙크를 하기까지 했다. 이를 보고 앨퍼트는 꽤 충격을 받았는지, 이후 한 힌두교 구루로부터 람 다스(Ram Dass)[23]라는 이름을 받고 신비주의자가 된다.

4.2. 유사 약물

LSD는 만들기 쉽지 않기 때문에 주로 북미, 유럽 쪽에서만 '퓨어 LSD'가 제작되며, 25I-NBOMe, 25B-NBOMe, 25C-NBOMe, 2C-T-7, 2C-P, 2C-I, 2C-E. 2C-B와 같은 유사 약물들이 LSD라고 유통되기도 한다. 보통 사람은 투약 경험이 없기에 LSD와의 구별이 불가능하다.

유사 약물들 중 일부는 배드 트립이나 두통 같은 부작용이 굉장히 강하며, 그중 25I-NBOMe 같은 약물은 과다복용 시 기억력 및 언어 장애, 고혈압, 혈전증, 위경련, 탈수 등과 같은 질환이 일어나서 사망할 수도 있다. 또한 정신 분야에서도 순수 LSD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지대한 악영향을 끼치는데, 2015년 미국에선 LSD 유사 약물 25I-NBOMe의 과다 복용으로 19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호주 시드니에서 어린 소년이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해 창문에서 뛰어내리거나 전신주에 올라가 감전사한 사례 등이 있다.

하지만 LSD는 대개 극미량의 블로터 혹은 젤리식으로 유통되기 때문에 구매자가 유사 약물과 진짜를 구별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며, 그래서 미국의 LSD 사용자들은 LSD kit라는 LSD의 진위 여부와 순도를 검사하는 키트를 사기도 한다.

5. 약물 생산/사용 현황

파일:rsxr.png

LSD는 미국에서 반문화와 저항 운동으로 이루어진 1960년대 후반에 유통이 시작되었으며, 70년대 초에 큰 폭으로 증가한다. 또한 세기말적 분위기에 힘입어 1999년 2000년에 차트가 가장 크게 올라가지만, 2000년대 초, LSD 최고 대량 생산자인 윌리엄 레너드 피커드(William Leonard Pickard)와 그의 파트너 클라이드 애퍼슨(Clyde Apperson)이 체포되면서 LSD의 유통은 큰 문제를 겪는다.

두 사람은 5주마다 무려 1kg의 LSD(약 4천만 달러 상당)을 생산한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LSD 제작자들이었다. 이 중 피커드는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연구원으로, 2번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는데, 그는 미국 사상 최초로 펜타닐 카펜타닐, 오피오이드의 위험성과 중독성을 경고한 연구자이기도 했다. 피커드는 최근에도 LSD를 옹호하고, 미국 정부가 자신의 경고를 들었다면, 펜타닐을 필두로 한 오피오이드로 인해 연 100,000명이 사망하는 오늘날의 오피오이드 쇼크를 막을 수 있었다며 미국 의사들이 위험한 오피오이드계 진통제를 함부로 처방하는 것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커드는 2020년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석방되었다.

2010년대에도 LSD는 미국에서 전성기에 비해 낮은 사용량을 보이고 있다. 미국 전문가들은 최근의 감소 증상은 유통의 문제보다는 LSD를 대체하는 약물들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어 그런 것이 크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인 약물들은 펜타닐, MDMA, 메스암페타민 등이다.

5.1. 생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LSD는 lysergic acid의 유도체이므로, 일반적으로 자연계에 존재하는 다른 lysergic acid 유도체로부터 일련의 화학적 변환을 거쳐 생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유기 화학계의 거장들인 Woodward[24], Fukuyama[25] 그룹을 비롯해 많은 연구 팀에서 lysergic acid의 전합성이 보고된 바 있다. 하지만 여느 전합성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수율은 상당히 낮을 뿐만 아니라, 자연계에서 lysergic acid 유도체를 비교적 풍부하게 얻을 수 있기에, 사실상 모든 LSD는 다른 전구체로부터의 반합성을 통해 생산된다.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전구체는 맥각균에서 추출한 lysergamide이다. 특히 C. purpurea를 비롯한 종이 생산하는 ergotamine이 가장 일반적으로 이용된다. 나팔꽃 종자도 lysergic acid의 간단한 유도체인 ergine을 생산하기에 이론적으로는 ergotamine에서 사용되는 것과 유사한 반응 과정이나 alkylation 등을 통해 LSD로 변환할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 해당 경로로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6]. LSD로 변환 가능한 lysergamide를 추출한 후에는 적절한 반응 조건에서 가수 분해를 거쳐 lysergic acid를 만들어낸다. 이후 lysergic acid를 다른 카복실산 유도체로 활성화시키거나 DCC, EDCin situ로 활성화된 카복실산 유도체를 형성할 수 있는 coupling reagent를 처리하고, diethylamine과 반응시키면 끝.

간단하게 서술했지만, 맥각균을 배양해 LSD를 합성하기까지는 셀 수도 없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C. purpurea와 같은 단일 strain까지는 아니더라도, 적합한 lysergamide를 생산할 수 있는 맥각균을 입수하고, 조건을 맞추어 배양하는 것까지는 어찌저찌 해내더라도, 배양한 맥각균으로부터 lysergamide를 파괴하지 않고 분리/정제하기 위해서는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각종 장비와 시약들이 필요하다. 또한 이후 공정에서도 LSD 생산에 일반적으로 이용되는 가수 분해 조건에서는 epimerization이 발생하기에, 순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효과가 없는 diastereomer[27]를 분리하는 과정도 필요하다[28]. 앞부분보다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고 간단한 과정이지만, lysergic acid를 LSD로 변환하는 과정에서도 쉽게 입수할 수 없는 반응성 높은 시약 또는 coupling reagent가 필요하다. LSD는 반응성이 상대적으로 높기에 안정하게 정제 및 보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물론 여기서 논의한 것도 굉장히 많은 부분이 축약된 것이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와 같이 LSD의 생산을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화학 지식과 실험 경험을 갖춘 인력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많은 종류의 시약, 기기, 실험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LSD 생산자들 중에는 인텔리인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어, 윌리엄 레너드 피커드의 경우에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체포 전에는 UCLA 약물 정책 연구소의 부소장이었다. Tim Scully의 경우, 중 2 때 소형 컴퓨터를 설계하고, 고 3 때 입자 가속기를 만들려고 했던 과학 영재이며, UC 버클리에 조기 입학했다.

미국의 마약 단속국인 DEA 1995년에 발표한 LSD 보고서 'LSD in the United States'( 1995)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LSD has been manufactured illegally since the 1960's. A limited number of chemists, probably less than a dozen, are believed to be manufacturing nearly all of the LSD available in the United States. Some of these manufacturers probably have been operating since the 1960's.
LSD는 1960년대부터 불법적으로 제조되었다. 총 12명도 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는 극소수의 화학자가 미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거의 모든 LSD를 생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제조자 중 일부는 아마도 1960년대부터 일을 해 왔을 것이다.
- LSD in the United States(1995)

또한 생산이 복잡하기 때문에 전문가가 일자 전승식으로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도 나온다.
Their exclusivity is not surprising given that LSD synthesis is a difficult process to master. Although cooks need not be formally trained chemists, they must adhere to precise and complex production procedures. In instances where the cook is not a chemist, the production recipe most likely was passed on by personal instruction from a formally trained chemist
LSD 합성이 숙달하기 어려운 과정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들의 독점은 놀랍지 않다. 제조자라고 해서 정식으로 훈련을 받은 화학자일 필요는 없지만, 제조자가 되려면 복잡하고 정밀한 생산 절차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화학자가 아닌 일반인이 제조자인 경우, 대개 정식 훈련을 받은 화학자가 개인 지도를 해서 비법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전수되었다.
- LSD in the United States(1995)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Sunshine Makers>[29]에 출연했던 LSD 제작자인 Tim Scully는 인터뷰에서 집에서 DIY로 LSD를 만들지 말기를 당부하는데, 왜냐면 현대에 일반인이 LSD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전문적인 화학 약품들을 구하고 다닌다면 100% 체포당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5.2. 한국에서의 처벌

LSD는 향정신성 의약품 '가'목에 해당하는데, 가목은 마약 중에서도 가장 형량이 무겁다. 대법원 양형 기준에 따르면, 투약, 단순 소지만으로도 기본 형량 1~2년을 받게 된다. 감형 사유가 있더라도 10월~2년을 받고, 가중 처벌되면 2년~4년을 받게 된다. 매매 및 알선의 경우에는 감경받아도 2년 6월~5년, 기본 4~7년, 가중 5~8년을 받게 된다. 수출입 및 제조의 경우도 매매 및 알선의 형량과 동일하다. 이것은 초범의 경우이고, 상습범이나 영리 목적인 경우의 형량은 2배로 올라간다.

5.3. 유명한 LSD 복용자

5.4. 매체

6. 기타



[1] 오른쪽의 이미지는 그의 모습이 담긴 압지 형태의 LSD다. [2] 이 이름을 딴 사이키델릭 록 밴드가 있다. 고로 Blue Cheer는 한마디로 슬픔과 기쁨을 한 번에 느끼는 LSD의 작용을 표현한 은어. [3] 비틀즈의 음반인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서 따온 것이다. 이 곡의 제목은 LSD의 역두문자어이며, 비틀즈는 1960년대 미국 사이키델릭 히피 문화의 핵심적인 존재들이었다. [4] 공교롭게도 바로 다음 날인 4월 20일 대마초의 날이다. [5] 알코올, 니코틴과 비교했을 때도 현저히 낮다. [6] 구글에 active lethal dose ratio라고 치면 관련 전문 표가 많이 나온다. [7] 밑에서도 설명하겠지만, 도시 전설과 실제 사례가 반반 섞여있어 다소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8] https://riveroakstreatment.com/hallucinogens/lsd-and-hppd/ [9] 해당 범행 수법을 소개한 한 책에서는 "...produces an involuntary pelvic action that resembles fucking( 빠구리를 연상시키는 불수의적 골반 움직임을 발생시킨다.)"라고 설명했다. [10] 사실 대부분의 사이키델릭 계통 약물의 특징이기도 하고, 좋은 환각만을 토대로 말하는 옹호론의 맹점이다. [11] 실로시빈 버섯에서 실로시빈을 최초로 분리한 것도 알버트 호프만이다. [12] 하지만 이런 충격적인 경험에 매료되었는지 비틀즈 멤버들은 모두 LSD에 중독되었다. 폴 매카트니의 전 여자친구 제인 애셔가 비틀즈 및 밴드 관련자들이 LSD로 환각 체험을 할 때 자신만 배제되었다며 폴 매카트니에게 서운함을 표시했을 정도였다. 멤버 중 불쾌한 환각을 가장 많이 겪었던 존 레논은 진정한 남자는 약에 굴복하지 않는다며 일부러 더 복용했고, 조지 해리슨은 명상을 하기 전에 LSD를 항시 복용했다고 한다. 다만 앨범 녹음 중에는 방해될까 봐 LSD를 포함한 어느 마약류도 복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13] 대부분 대마초부터 시작한다. [14] single use least likely to lead to regular use [15] 2위는 환각제 PCP. [16] ‘환각과 우연을 통해서’의 저자 스타니슬로프 그로프가 대표적이다. [17] Johns Hopkins University Psychedelic Research [18] LSD와 유사한 환각효과를 일으키는 약물 [19] 비틀즈와의 친분으로도 유명했던 사람이며, 1969년 대마초 소지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마리화나 금지법(Marihuana Sales Act)이 위헌이라고 항소하여 마리화나 금지법의 폐지를 이끌어 낸 인물로도 유명하다. [20] 리어리가 연구소로 쓰던 뉴욕 밀브룩에 있던 대저택의 민간 연구 팀을 말한다. 당시 리어리에게 저택을 대준 LSD 연구 후원자가 빌리 히치콕(William Mellon 'Billy' Hitchcock)이라는 사람인데, 20세기 세계 1위 재벌이던 카네기 멜론 가문 상속자로, 매우 많은 돈이 있었다. [21] ( 1950~ 70) [22] 예를 들어, 실험에 참가한 한 티베트 불교 승려는 LSD를 투약하고도 두통만 느꼈다며 불평할 뿐, 별다른 환각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한다. [23] 힌디어로 '신의 종'이라는 뜻. [24] J. Am. Chem. Soc. 1956, 78, 3087. doi:10.1021/ja01594a039 [25] Org. Lett. 2013, 15, 4230. doi:10.1021/ol4019562 [26] ergotamine에 비해 lysergic acid에 결합된 leaving group ability가 상대적으로 나쁘기에 반응 진행을 위해 상대적으로 격렬한 조건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8'C(amide α carbon)의 epimerization 및 각종 부반응, 열분해 등이 발생할 것으로 생각된다. [27] 8'C epimer [28] 여느 유기합성에서 이용되는 것처럼 분리한 diastereomer를 다시 epimerization시키고, 형성된 LSD를 분리, 원하지 않는 diastereomer는 다음 batch와 합쳐 다시 epimerization... 과정을 반복해야 효율을 올릴 수 있다. 당연히 이 과정에도 여러 기구와 시약이 요구된다. [29] 2020년 3월 8일, 넷플릭스 상영이 종료되었으며, 다음영화 등에서 시청할 수 있다. 비영리 단체인 인터넷 아카이브 등지에서도 시청할 수 있다. The Sunshine Makers (2015) : Free Download, Borrow, and Streaming : Internet Archive [30] 참고로 이 당시 뉴욕 맨해튼에서 눌러 살고 있던 존 레논은 약물 관련 법 위반으로 미국에서 추방당할 위기였다. 물론 이는 표면상의 이유고, 실질적인 이유는 좌파 운동권을 주도하던 존 레논에게 부담감을 느낀 닉슨 행정부가 존 레논을 추방하려고 했기 때문이지만, 일단 표면적으로는 마약 문제였기 때문에 존 레논도 몸을 사려야 했다. [31] 한번은 하루 종일 종이에 무언가를 휘갈기더니, 이내 밴드 멤버들에게 새 곡을 썼다며 종이를 들이밀었는데 그 종이가 백지였던 적이 있다고 한다존 케이지는 맨정신으로 그러던데. 즉, 매우 심각한 LSD 중독으로 보이지도 않는 환상을 보인다고 믿은 것. [32] 원인은 칠리 대회에서 위검 서장이 만든 엄청 매운 칠리라고 한다. [33] 일본의 한 세력이 한국의 문화재 보존을 막기 위한 일환으로, 농약에도 죽지 않는 재선충을 이용해 소나무를 없앤다는 계획을 세우자, 이를 한국의 경찰이 막는 내용의 소설이다. [34] 에피소드 자체가 인셉션 패러디인 반은 개그 에피소드여서 올리비아에게 윌리엄 벨이 빙의되고 꿈속에선 중간에 갑자기 스캐너 다클리 같은 애니메이션으로 바뀌면서 등장인물들이 그걸 인지하는 등 아스트랄 카오스가 벌어졌다. [35] 이름이 마법의 우표다.... 애초에 이 약이 그림 스티커처럼 생긴 걸 생각하면 우표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36] 2023년 기준 [37] LSD를 화학적으로 합성하기보다는 맥각균에 의한 생합성이 훨씬 더 수월한 편이며, 그런 이유로 옛날부터 발견되어 마녀 논란의 진원이 되었다. [38] 일부 약물을 구강으로 투여하면 효과가 없는 경우가 있다, 니트로글리세린도 약물을 내복약으로 섭취한다기보단 혀 밑의 혈관을 통해 약물을 직접 투여하는 방식의 설하정이다. [39] 한 커뮤니티에서는 적발된 LSD의 양이 3kg이라는 뉴스가 퍼졌지만 당연히 헛소리이다. 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 1그램) 단위로 사용되는 데다가 생산이 대단히 어려운 물질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마약왕조차 생산이 가능할지 의문이 가는 수치이다. 이 문서를 읽어보았다면 3kg이란 수치가 얼마나 허황된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홍정욱의 딸이 소지했던 양은 3조각에 불과했다고 한다. ## [40] 펜타닐의 위험성을 처음으로 예견한 윌리엄 레너드 피커드41.3kg의 LSD를 아편을 몰아내기 위한 사회 운동을 위해 생산했다는 얘기가 있긴 하나 이도 기자가 과장한 수치라는 얘기도 있고 198.9g가 실제 용량이라는 말이 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17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17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