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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08:14:39

신비주의

1. 개요2. 철학과 종교로서의 신비주의
2.1. 고대 신비주의의 배경2.2. 중세의 신비주의2.3. 기독교(개신교)에서의 신비주의
3. 예술에서의 신비주의
3.1. 미술에서3.2. 음악에서
4. 오컬트5. 연예인들이 자신의 정체를 대중으로부터 의도적으로 숨기는 것
5.1. 이 컨셉을 따르는 인물
5.1.1. 실존 인물5.1.2. 가상 인물
5.2. 이 컨셉을 포기한 인물
5.2.1. 실존 인물5.2.2. 가상 인물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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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비주의 (, mysticism)

인간이 궁극적 실재와 합일되는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사상. 또한 수행을 통해 이러한 체험을 의도적으로 추구할 수 있으며, 체험을 통해 얻어진 통찰에 기초해, 궁극적 실재와 인간관계와 세계를 설명하는 종교(또는 철학) 전통”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치열한 수행 혹은 신의 은총을 통해 비범한 체험을 가졌다고 주장하며, 그 체험을 공유하기 위해 영감에 찬 시어(詩語)를 비롯해 사변적인 철학, 심지어 침묵에 이르는 다양한 방식을 채택했던 사람들로 정의내릴 수 있다.

또는, 여기서 용어와 뜻을 가져와서 '유명인이 자신의 사생활을 대중에게 노출하지 않는 전략'을 '신비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2. 철학과 종교로서의 신비주의

신비주의(mysticism)는 19세기에 서구에 동양의 종교가 알려지면서 탄생한 비교종교학적 개념이다. 흔히 단순히 초자연적이거나 오컬트적인 사상이나 현상으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신비주의는 체험(experience), 수행(practice), 사상(thought)을 통틀어서 말하는 개념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험이다. 신비체험이라고 하면 접신, 임사체험, 유체이탈 등의 다양한 종교체험을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신비주의는 신비적 합일체험(mystical union)을 말한다. 신비적 합일체험이라는 쉽게 말해 나와 신적인 존재, 혹은 우주 전체와 합일하는 경험을 말한다. 이 속에서 나와 세계가 구분되지 않음으로써 나라는 개체성이 사라진다. 이를 바탕으로한 신비주의적 사상에서는 신과 하나됨으로써 나 자신이 신 혹은 궁극적 실재임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입장에서 비교종교학적 입장에서 기독교의 신과의 합일, 불교의 (空)과 무아(無我), 도교의 물아일체, 동학의 인내천 등이 모두 신비주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오컬트에도 이러한 것들이 포함된다.

2.1. 고대 신비주의의 배경

서양 철학사가들 사이에서는 고대말 신플라톤주의 내의 신비주의적 경향부터 중세의 신비주의까지를 통틀어 신비주의라고 말한다. 보통 고대 말 신비주의자들과 중세 신비주의 철학자들을 이 분류로 보지만, 넓게 보면 성 아우구스티누스까지도 신비주의자로 본다.

신비주의의 기원을 따지자면 오르페우스 교단의 사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부활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섬기는 비밀스런 의식을 행했고, 의식을 통해 감정의 공동체적 합일, 즉 미메시스를 체험했다. 플라톤도 이 교단의 영향을 받았다. 플라톤은 영혼에 대해 설명하는 자신의 이론을 만드는 데 이 교단의 큰 영향을 받았고, 2500년 가까이 철학계의 논쟁거리가 되는 이데아론을 주장한다. 이데아론이란,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는등 현상의 세계가 이데아계, 즉 관념 세계의 '그림자'와 같아서 불완전하게 관념을 모사한다는 것인데, 이 주장은 듣고 당장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없지만 자세히 파고들면 문제가 생긴다. 관념 세계의 '그림자'가 현상 세계라면, 대체 '이데아의 그림자'가 어떻게 생기는데? 아쉽게도 플라톤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는 과정을 신화적인 서술로만 남긴다.[1]

깔끔하게 정리해보자. 플라톤이 현상 세계와 완전히 괴리된 관념들의 세계를 주장한 후, 이 세계관에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되었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관념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면 대체 둘은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건가?

신플라톤주의자들은 플라톤의 제자를 자처[2]하며 이 문제에 대해서 몇 가지 해명을 남겼다. 그들은 관념세계와 현상세계를 나누는 플라톤의 세계관을 놔둔 후, 두 세계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중간 세계'를 만들어 해명했던 것이다. 널리 알려진 해명으로는 '유출설'이 있다.

유출설이란, 그릇에 물을 너무 많이 담으면 흘러넘치듯, 완전한 이데아 세계에서 흘러넘친 '영혼'[3]의 세계가 먼저 만들어지고, 다음으로 흘러넘친 것이 현상 세계를 이루었다는 주장이다. 즉, 세계란 이데아에서 흘러넘친(유출된) 것이다. 현상 세계는 이데아 세계에서 흘러넘친 후에도, 영혼의 세계를 사이에 두고 이데아 세계와 상호작용한다. 즉, 이데아─영혼─현상의 상호작용을 통해 세계가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이 유출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본래의 이데아론과는 다른 점이 있다. 본디 플라톤은 현상과 따로 존재하는 관념에 대해 주장했는데, 신플라톤주의자들은 두 세계가 상호작용하는 것, 즉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중간자를 설정하고 세 세계의 본질을 '유출'이라는 개념으로 해명한 것이다. 관념의 세계가 현상의 세계와 중간자를 두고 상호작용한다는 이론을 통해, 신플라톤주의자들은 현상계에 존재하는 나의 정신이 이데아계로 직접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신플라톤주의자들에 따르면 이 이데아 세계로의 진입은 몰입을 통해 이루어진다. 정신의 몰입이 관념 세계와 현상의 자신을 하나로 만든다(=합일). 이것이 고대 신비주의의 핵심이다.

2.2. 중세의 신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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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상사에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사건이 발생했다. 중세 초기의 철학은 '교부 철학'이라고 불렸는데, 교부란, 기독교인들이 박해받을 때 여기저기 흩어진 경전과 종교 이론 등을 수합하고, 하나의 체계로 통일하기 위해 기여한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즉, 오늘날로 주교님들.[4] 이 교부들은 기독교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타 종교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수많은 문헌을 뒤지며 연구했다. 그 결과 중세 초기 교부들의 철학은, 타 종교들과 원래 서양에 자리잡고 있었던 그리스 철학에 대해 배타성을 띠는 굳건한 체계로 완성된다. 대체 그러면 그리스 철학의 신비주의는 어디에서 유입된 걸까?

첫 번째는 호교론자들의 존재에 있다. 생각해보자. 기독교의 사상은 원래 서양, 그러니까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적 배경에 뿌리내린 고유한 사상이 아니다. 비록 로마 정부에서 공인했다고 한들, 그리스의 문화적, 사상적 배경을 충실히 배우며 자란 로마의 지식인들을 어떻게 기독교인들이 설득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려면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직접 배우고, 그 문화를 통해 소통하는 방법밖에 없다. 즉, 그리스 문화에서 자란 지식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기독교 지식인들은 그리스의 문화를 배우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야 했다. 이 소통을 시도한 사람들을 가리켜 호교론자라고 한다. 호교론자들은 다시 기독교에 그리스 철학, 다시말해 신플라톤주의를 유입시키고, 이 과정에서 신비주의가 조금 유입된다. 그러나 호교론자들의 주장은, 교부들이 모여 교리 정립에 대해 회의한 '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어느 정도는 걸러진다. 즉, 호교론자들의 존재가 기독교에 신비주의를 완전히 유입시켰다고 보기는 힘들다. 여기에서 두 번째 이유를 설명하자.

두 번째 이유는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라는 이름 아래로 쓰인 저작들의 존재였다. 디오니시우스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나, 중세 교부들은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이 디오니시우스라는 사람이 쓴 저작을 참고하게 된다. 문제는 이 저작들이 죄다 위작이라는 것. 디오니시우스의 저작들은 얼핏 보기에는 기독교 교리를 기반으로 한 사상을 다루는 듯 했으나, 그 저작들의 근본에는 신플라톤주의, 그 중에서도 신비주의적 성향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다시말해, 아직 남아있던 어떤 신비주의자가 저술년도와 저자 이름을 속여 자신의 사상을 남겼고[5], 기독교 교부들은 교리를 체계화하기 위해 문헌 연구 과정 도중 그 신비주의를 자연스럽게 흡수한 것이다. '진리와의 합일'이라는 신비주의의 테마는 '신과의 합일'로 바뀌어 교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흡수된 신비주의는 근대 말까지 서양의 정신에 뿌리내린다.

중세 신비주의가 발달했던 지역은 주로 라인강을 낀 독일 서부, 플랑드르, 프랑스 동부 등 이른바 라인란트라 불린 지역이었고 알려진 신비주의 신학자들 역시 독일인들이 많다. 프랑스에서는 상대적으로 신비주의 전통이 적었고 스페인에서는 로욜라가 유명한 신비주의 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2.3. 기독교(개신교)에서의 신비주의

기독교에서는 보통 성령의 능력(방언·예언·환상·병고침 등)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지도자(목사 등)에게 하나님이 모든 일을 음성으로 알려주신다는 이른바 '직통계시'를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개신교의 경우 성령의 은사(능력)이 현대에는 완전히 종료되었다는 은사중지론파와 아직도 은사가 중지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쪽으로 나뉘는데 은사가 유지되었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도 성령의 능력과 신앙의 다른 요소는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성령의 능력만 강조할 경우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이라는 입장인데 반해 신비주의 계통에서는 성령의 능력을 다른 신앙의 영역[6]보다 우선시 한다. 보통 한국교회에서 신비주의 단체라고 이야기하는 곳을 보면 보통 이런 곳은 해당 단체의 지도자들은 신격화 비슷하게 포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만세전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택하신 종,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할 참 목자, 감추어진 비밀의 열쇠를 열어 우리에게 가르쳐준 스승

3. 예술에서의 신비주의

3.1. 미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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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음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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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祕主義 / Mysticism

알렉산드르 스크랴빈이 추구한 음악적 성향으로, 스크랴빈이 독자적으로 고안한 화음인 신비화음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4. 오컬트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오컬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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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연예인들이 자신의 정체를 대중으로부터 의도적으로 숨기는 것

어디까지 노출 전략일 뿐이며, 이게 심해져서 연예인 스스로 자신이 정말 남들과 다르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유는 여럿이 있는데 크게 이하와 같다.

주의할 것이 있다면 애초 이 용어는 취재 경쟁에 매달리는 기자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원래는 배우 심은하의 전성기에 기자를 잘 만나주지 않는 심은하를 비판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말이었고, 심은하 은퇴 이후 서태지가 컴백하자 역시 같은 의도에서 신비주의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심은하가 현재 활동을 하지 않다 보니 서태지 때 처음으로 쓰였다고 인식되는 듯.

창작물 속에서는 선글라스나 고글 등으로 눈의 일부만 가리거나 가면으로 아예 얼굴 자체를 가리는 경우, 아예 등장할 때 음영처리를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얼굴이 안 나오는 캐릭터도 참조.

사실, 이렇게 정체를 감추는 사람들을 팬 or 안티가 열심히 추적해서 정체/본명/신상을 기어코 찾아내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를 공개적으로 까발리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큰 지탄을 받는다. 특히 버추얼 유튜버의 경우 빨간약이라고 하여 가장 뜨거운 논란을 빚고 있는데, 자세한 건 해당 문서 참고.

실존 인물들 중 정체나 행적이 밝혀지지 않는 역사적인 인물들도 어떻게 보면 신비주의의 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7]

5.1. 이 컨셉을 따르는 인물

5.1.1. 실존 인물

5.1.2. 가상 인물

5.2. 이 컨셉을 포기한 인물

자의에 의한 공개인 경우와 타의에 의한 공개인 경우 둘 중 하나다.

5.2.1. 실존 인물

5.2.2. 가상 인물

6. 관련 문서


[1] 애초에 플라톤은 글로 사상을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플라톤은 자신의 사상을 대화를 통해 제자들에게 남겼다. 이는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영향이기도 하다. [2] 신플라톤주의자들은 플라톤 사후, 그것도 한참 후에 활동했다. 실제 플라톤의 직속 사제 라인은 아니었다. [3] 기독교에서 설명하는 영혼과 다르다. 단지 번역을 영혼으로 했을 뿐. [4] 사실 교부(Pater Ecclesia)라는 말 자체가 원래는 주교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교부가 주교였던 것은 아니지만. [5] 다만 이게 나쁜게 아니다. 고대세계에서 남의 이름을 빌려 작품을 남기는 건 흔하고, 당연시되는 일이었다. [6] 신자의 거룩성, 하나님을 앎에 대한 추구, 구제와 선교,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인 등 [7] 다만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의 경우에는 상술했다시피 아예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해, 역사적 인물들은 앞선 사례와 마찬가지로 본인이 원해서 숨기거나, 그들이 살았던 당시에는 대한 기록이 존재했을지라도 지금처럼 디지털화 문서로 남기지 않는 당시의 시대적 특성상 기록이 유실되어 현대에 전해지지 않는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 마케팅 자체가 자체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잡혔기에 그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경우에는 마케팅을 위해 의도적으로 숨겼을 가능성이 없다. [8] 신비주의 컨셉을 잡은 적은 없지만 30년 동안 활동하면서 본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야가미 토오루란 이름도 예명이다. [9] 영상 내내 하관까지만 노출되고 얼굴은 코 밑 부분까지밖에 드러나지 않는다. [10] 에르모 사건에서도 처음으로 영상 설명란에 공지가 올라왔지만 거기에서도 정보가 공개된 것이 없다. [11]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지금까지 신격화되는 여러가지 요인 중 하나다. [12] 직접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포켓몬고 영상을 보면 사는곳은 부산이다. [13] 방송 당시에도 직접적인 노출을 하지 않았고, 화면에 잡혀도 원샷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는 모습이나 풀샷이 전부였다. [14] 1978년생 싱어송라이터. 정엽의 'Nothing Better', 'You Are My Lady', 최백호의 '부산의 가면' 등을 작사 및 작곡했다. [15] 얼마나 과했는지 마약 중독으로 나치즘와 관련된 실언까지 저지른 적도 있을 정도다. [16] 그러다보니 오해도 생겼는데 선배가수인 인순이를 만나 인사를 했는데(물론 묵언 컨셉을 유지하며) 선글라스를 벗었으면 좋겠다는 인순이의 제안을 거절해 예의가 없다고 낙인 찍혔다. 그 후 미미시스터즈의 컨셉을 전해들은 인순이가 오해를 풀며 사과하러 온 장얼 멤버들과 미미시스터즈를 용서했다. [17] 독립 이후 여러 인터뷰를 통해 조금씩 자신들의 인적사항을 공개하는데, 데뷔 10주년 인터뷰 당시 본인들이 직접밝힌 정보에 따르면 작은 미미는 인도 주재원과 결혼해 인도에 살고 있고, 두 사람 다 한예종 출신으로 큰 미미는 극작과 출신으로 대기업 문화재단 공연기획팀장 출신, 작은 미미는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출신으로 본명을 걸고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해당 인터뷰에서 본명, 나이도 공개하긴 했으나, 미미시스터즈의 신비주의 컨셉을 위해 기자가 비밀로 해 실리지는 않았다. # [18] 사실 예심 통과 직후, 언제까지 복면을 쓸 계획이냐는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결승전에 가면 벗겠다'고 했다. 그런데 결승은 커녕 본선 1라운드에서 떨어지니 정체공개는 물 건너간 셈이다. 반강제 신비주의 [19] 9집 때는 펜타포트에도 참여하고, 후배들과 콜라보도 적극적으로 하는 등 기존의 행보보다 폭넓게 활동하기도 했다. [20] 허나 영상에 등장하는 목소리며, 무엇보다 영상에 게시된 채널명을 통해 누군지 금방 알아 챌 수 있을 것이다. 걍 모른 척 하고 넘어가자 [21] 실제로는 촬영·편집도 겸하고 있다. [22]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어느 날 촬영지에서 자신의 성별에 대해 묻는 어르신이 계셔서 남자·여자 양쪽 다 얘기했는데도 둘 다 믿지를 않아 그냥 신비주의로 숨기기로 했다고 한다. [23] 의외로 작사가들 중에는 전업 작사가들보다는 따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인기 작사가 중 한명인 김이나도 일반 회사원이었다가 작사가로 전업한 케이스. 아무래도 작사라는 작업이 작곡처럼 따로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보니 그런 듯. [24] 성균관 스캔들의 원작 소설. [25] 심지어 '정은궐'이란 이름도 본명이 아닌 필명이다. [26] 일각에서는 정찬우가 여러 방송이나 인터뷰에서 연예계 생활이 자신과 안 맞는다고 여러번 밝힌 점으로 보아 사실상 은퇴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27] 여담으로 웃찾사에서는 위에 나훈아, 서태지와 함께 '삼대천왕'이라는 코너를 방영했다. 물론 실제 본인들이 나오는 것이 아닌 개그맨들이 흉내를 내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28] 최근에는 작명 컨텐츠도 하고 있는데, 역시나 언어유희를 활용해서 그런지 그 센스가 남다르다. [29] 이유에 대해서는 굳이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라고 한다. 너무 허무하잖아 심지어 그가 '키크니'라는 걸 부모님조차 모르며, 유일하게 그의 정체를 친형만이 알고 있다고 한다. [30] 앞서 언급한 '톡이나 할까?' 출연 당시에 MC이자 작사가인 김이나가 그의 실물을 보고 '기만자'라고 언급했으며, 키가 크고 얼굴이 작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푸근한 모습의 오너캐와 달리 실제로는 연예인급 외모의 소유자일 것이란 의견들이 많았는데, 유퀴즈에 출연해 이런 얘기들에 대해 오히려 부담스러워 얼굴 공개를 더더욱하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31] 이를 통하여 연재중이던 이국미로의 크로와제는 완결을 내지 못한 채로 후속편이 끊겨버렸다. [32] 애니판 한정. [33] 마지막회 쿠키 영상에 뒷모습만 나왔다. [34] 관동 오박사의 본명은 '오용호'이다. [35] 다만 여러 정황상 캥카의 새끼로 추정되고 있다. [36] 정확하게는 영어버전인 'Hello Good Bye Hello'. [37] 스페인어로 '폭풍의 수도자'. [38] 심지어 V2로 재데뷔해 활동중에도 자신을 숨겨가며 활동을 했는데, 이름도 자신의 한국이름 '양준일'에서 유래한 '쟈이(JIY - Joon Il Yang)'로, 성장사도 태어나자마자 미국으로 이민갔다가 24년만에 한국에 돌아온 것으로(실제 양준일은 베트남에서 태어나 한국에 쭉 살던 중,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자세한 내용은 양준일/활동 문서로.), 나이도 1969년생에서 1977년생으로 8살이나 깎았다. 허나 V2의 노래를 듣던 사람들이 양준일을 알아보았고, 결국 양준일은 본인이 맞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당시에 이 사실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알려졌다. [39] 어느 정도로 알려지지 않았나면, 2019년 3월 라디오 코리아에 그를 찾는 사연이 방송에 소개되었다. 허나 당시 사연 신청자가 양준일이 데뷔 전후에 LA에 거주했어서 그런지 LA의 한인 방송인 라디오 코리아에 사연을 신청한 것으로 보이나, 당시 양준일은 플로리다에 거주중이었다. 이후 양준일은 해당 사연을 뒤늦게 접한 뒤, 자신의 팬카페의 가입을 해 슈가맨 출연 이전까지 활발하게 팬카페를 통해 소통했다. [40] '석호필'이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불림. [41] 이 이야기가 2017년 10월 15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소개되기도 했다. [42] 물론 그 전에도 평범한 스타일링을 선보였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시각포기헤어로 유명세를 치러 2주 활동하고 원래로 돌아가려다가 공백기를 포함해 오히려 1년 넘게 유지했던 것이다. [43] 특히 멤버들 중에서도 가장 신비주의 경향이 심했던 멤버는 장우혁이었는데, 이유가 서울 출신인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장우혁만 비수도권인 구미 출신이라 사투리가 심했기 때문. [44] 심지어 이강토는 자신의 형인 이강산이 각시탈인 줄 모르고 잡으러 다녔었다. [45] 신비주의 컨셉의 아이돌이다 보니, 대중들에게 우상의 대상이었지만. 한편으론 대중들이 거짓말로만 이루어진 자신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본모습 또한 사랑해 주길 바랬던것으로 보이며. 이후, 자신의 비밀을 폭로하려고 계획하였던듯 하나, 본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끝내 신비주의로 이미지로만 남는듯 하였으나. 사후, 자신의 아들인 아쿠아마린에 의해 루비와 아쿠아마린이 자신의 자식들이라는 사실이 대중에게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