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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4 13:50:38

먼 나라/안 좋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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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례
2.1. 식민지 지배국 VS 피지배국2.2. 외교적으로만 나쁜 사이
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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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이가 나쁜 먼 나라의 사례를 정리하는 문서. 대개 사이 나쁜 나라는 대부분이 이웃나라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국가간 교류가 잦아지고 나서는 한 나라의 정부, 혹은 그 나라 국민의 뻘짓으로 인해 먼 나라임에도 감정이 안 좋아지는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 식민지 지배국-피지배국 관계, 냉전 신냉전 시대의 제1세계- 제2세계의 관계, 이스라엘- 이슬람 국가 관계 등이 있다. 이 문서는 그런 사례들을 다뤄본다.

2. 사례

※ 지상이든 해상이든 직접적으로 맞대지 않은 나라들끼리의 사례만 열거한다.
범례
양국 간 서로 군사적으로 대치 중이거나 국지전 이상의 무력 충돌이 발생한 경우 💥
서로 수교하지 않았거나 단교한 경우
제재중인 관계[1]로 왕래가 자유롭지 못함
회복에 성공한 관계이거나 희망적인 관계
과거에 좋았거나 무난하게 지냈다가 최근 10년 이내의 특정 사건을 기점으로 급격히 악화된 관계
물론 그 이전에 왠만큼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이 그렇듯이 구제금융 이후에 그리스의 경제상황이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임금삭감과 연금삭감, 공공요금 인상으로 서민들의 삶이 악화되자 그리스에서 EU의 수장국인 독일에 대한 반감이 일기 시작하여 국민감정이 급속히 나빠졌고, 2015년 총선 때 시리자가 집권하면서 외교적으로 반독일적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독일은 웬 적반하장이냐며 빨리 돈이나 갚으라고 재촉 중이다.
그리스는 제1세계에서 대한민국과 함께 러시아와 사이가 좋았던 몇 안 되는 나라였으며 그리스 경제위기때 EU와 그리스간의 충돌 과정에서 러시아는 EU 흔들기를 목적으로 그리스를 은근히 편들었고 지원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리스 역시 러시아를 무기로 EU에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그리스는 러시아를 비판하고 대러제재에 참여함으로서 관계가 안 좋아졌다. 특히 해당 전쟁으로 인한 폭격으로 그리스인이 사망하기도 했다.* 대만 VS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는 자국에서 보이스피싱하던 대만인들을 중국 본토로 송치해서 대만 외교부의 항의를 받은 적이 있으며, 아르메니아는 구소련권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친중, 반대만 여론이 가장 강한 나라 중 하나다. #
게다가 이전에 마다가스카르가 사회주의 성향에 친북 성향이라 대한민국에 있어서는 자연히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 사례 역시 한국 정부 차원에서 잘못한 일이 아니고 일개 기업인 대우 로지스틱스의 병크이기 때문에 적어도 현 마다가스카르 정권은 한국에 대해서 그다지 나쁜 감정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물론 민간 차원에서는 반한 감정이 존재한다.[5] 현재는 한국이 최빈국 마다가스카르에 통일미를 지원해 주는 등 현지에서는 한국을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2017년 발생한 김정남 피살 사건을 조사하는 말레이시아 당국의 수사에 대해 북한이 비협조적으로 나오면서 양국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었고 결국에는 말레이시아와 북한 모두 서로에 대한 무비자 협정을 파기하고 말레이시아 측에서도 북한 주재 공관을 철수시키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말레이시아에서는 2017년 10월부터 아예 북한을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이탈주민들이 말레이시아로 오면 북송시키지 않고 한국으로 보내고 있다.
게다가 2021년 말레이시아에 있던 대북 사업가 문철명이 대북제재를 어기고 유엔이 금지한 사치품을 북한으로 보낸 게 적발되어 미국에서 문철명을 미국으로 송환하라고 말레이시아에 요구하자 말레이시아 정부는 문철명을 미국으로 송환했고, 이를 문제삼아 북한측에서 단교를 선언했다. 이에 말레이시아도 북한 외교관과 그 가족들이 48시간 이내에 말레이시아를 떠날 것을 요구하며 양국 관계가 공식적으로 단절되었다.
아르헨티나 포클랜드 전쟁 당시 미국의 영국 지지와 2000년대 초반 경제 파탄으로 반미 감정이 생기기도 했다가 그나마 최근 들어서 어느정도 관계 개선을 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지만 갈 길은 멀어보인다. 물론 이들이 여전히 경제, 정치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지라 정부 차원에선 미국과 협력하는 경우도 많으며, 미국과 함께 베네수엘라, 쿠바, 니카라과 등 반미 국가들을 견제하기도 한다.
소련 붕괴 후 동구권에서 가톨릭 사제들의 활동이 두드러지자 이에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는 러시아 정교회는 이들의 활동을 '자매 교회에 대한 도발적인 개종 행위'라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저지하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는 교황청이 이같은 행동을 중단하지 않는 한, 교황의 러시아 방문에 동의할 수 없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 교황의 러시아 방문 계획이 번번이 무산돼 왔다.
역대 교황은 그리스,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조지아 등 다른 정교회 국가들은 방문했지만 유독 러시아 땅은 밟아보지 못했을 만큼 양 교회는 순탄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헌법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천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옐친을 포함한 역대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정교회와의 정치적 동맹을 유지해오고 있다.
중공은 관계정상화의 조건으로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함과 동시에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중국 내부 문제(인권 등)에 간섭하지 않을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바티칸은 관계 정상화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하고 있다.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종교를 정부 통제 하에 두고 있다. 종교도 정부 정책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1957년 설립한 조직이 '천주교 애국회'다. 정부 통제를 거부하고 교황에 대한 순명을 계속 고수하기로 한 사제와 신자들은 이른바 '지하 교회'에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중국 교회는 애국회와 지하 교회로 양분되었다. 중국의 가톨릭 신자는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에 충성하는 애국회 소속 교회에서만 미사를 드릴 수 있다.
현재 애국회는 교황에 대해서는 영적인 지도자로 인정하지만, 교황의 사제 주교 임명과 서품권은 거부하고 있다. 바티칸과 중국은 중국의 인권과 대만과의 외교 문제, 사제 및 주교 임명권을 둘러싸고 갈등이 고조돼 양국 간 관계 개선에 당장으로선 돌파구가 열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왔었으나 2016년에 들어서면서 대만의 외교적 고립을 노린 중국이 바티칸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등 개선, 심지어는 수교 가능성까지 보이고 있다.
거기다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었고 파키스탄의 모든 주요 정치, 경제 권력들도 서파키스탄 세력들이 독점하였고 동파키스탄을 그저 경제적인 식민지로 착취하였다. 결국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데다 경제적, 정치적으로 사실상 식민지에 가까웠던 동파키스탄의 불만은 극에 달해 1971년 3월, 방글라데시라는 새 국명으로 분리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러한 동파키스탄의 분리 독립 행태를 좌시하지 않았던 서파키스탄 중심의 파키스탄 정부는 즉시 군대를 분리 독립을 선포한 동파키스탄에 파견하면서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이 발발했고 그 과정에서 파키스탄 정부군은 방글라데시인들을 상대로 학살, 고문, 남성 거세, 현지 여성 강간 같은 끔찍한 만행을 거리낌없이 저질렀다.
결국 1971년 12월, 인도의 지원을 받아 독립에 성공하였으며 이 전쟁 과정에서 파키스탄군에게 학살당한 방글라데시인들의 숫자는 수십 만을 넘을 정도였고 독립하자마자 파키스탄 편을 들던 자국 내 민병대를 공개 처형[13]했다. 독립 후에는 서로 얼굴도 안 쳐다볼 정도로 적대 관계를 이어가다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탄 총리가 방글라데시를 방문하고 학살 등 과거사에 사과하면서 상당히 가까워졌으나 여전히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파키스탄에 대한 적개심은 여전하다.[14]
다만 최근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양국 모두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탓에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 및 팔레스타인 지지서명을 제출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문제에선 협조적인 경우도 꽤나 보였다.
게다가 이들은 시리아 내전에서 아사드 정권이 시민을 학살한다는 명목하에 시리아와의 외교 단절에 시리아의 아랍연맹 정회원국 자격 박탈까지 주도했으며, 반정부군 세력들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이슬람 근본주의 사상까지 전파하여 이슬람 국가(IS)가 세력 확장에 직간접적인 악영향을 끼쳐 시리아 내전을 악화시켰다. 특히 카타르의 경우 국제적인 자국 언론사인 알자지라를 통해서 바샤르 알 아사드 현 시리아 대통령를 학살자라고 맹렬히 비난하며 아사드에 대한 흑색 선전까지 벌였을 정도였다.
다만 쿠웨이트는 시리아 내전 이전에 1991년 걸프 전쟁에서 시리아가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에 참전해 이라크와 전쟁 중이던 모국을 지원[15]한 적이 있어서 시리아와는 관계가 복잡미묘한 편이다.[16]
그래도 바레인과 모로코, 쿠웨이트는 시리아 내전이 2010년대 말 아사드 정권에게 유리해지자 아사드 정권을 시리아의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내전 당시 단절되었던 시리아와의 외교관계를 다시 회복했지만, 시리아 반군에 대한 최대 지원국가이자 이슬람교 수니파의 종주국가인 사우디와 카타르는 이미 시리아 내전이 아사드 정권의 승세로 굳혀진 상황에서도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를 경계, 적대하고 있다.
또한 전쟁 당시 독일군에 의해 산업 파괴, 국토 황폐화, 민간인 학살 등 전쟁 피해를 크게 입었으며, 히틀러가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를 벌였을 당시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 다하우 등 집단 수용소에 보내지 않고 적극 보호하며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에 저항한 역사가 있다.[17]
2차 대전 후 독일이 UN 상임이사국 진출을 시도하자 불가리아는 독일이 추축국이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이 자국 민간인들에게 자행한 전쟁범죄를 문제 삼으며 독일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했다. 게다가 2015년에는 시리아 내전의 장기화로 유럽으로 몰려드는 시리아 난민들에 대해 독일 정부가 불가리아 등 동유럽 국가들에게 난민을 할당해 수용할 것을 제안을 요구하자 난민 수용에 결사 반대하며 독일과 대립했다. 사실 독일은 불가리아 외에도 EU에 가입한 다른 동유럽의 빈국들과 정치적, 역사적 문제로 인해 사이가 좋지 않다.
이는 북한을 아예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은 행동이다. 다만 북한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1994년 5월 7일 에스토니아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중앙년감'은 물론 당시 로동신문을 통해서도 보도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에스토니아 외교부 홈페이지상으로는 미수교 상태임은 물론, 북한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고 대한민국만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심지어 튀니지 같은 경우는 야세르 아라파트 등 팔레스타인의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튀니지에 망명 정부까지 차려 독립운동을 벌였으며, 이스라엘은 거리가 먼 튀니지에 공군기를 보내 폭격한 적도 있다. 리비아의 경우 카다피 정권 시기는 물론 지금도 관계가 좋지 않다. 특히 팔레스타인 억압 관련 문제로 이스라엘을 비판했고, 이스라엘 역시 반군을 지지했다.
알제리 역시 1960년대에 독립한 이후 팔레스타인의 저항자들을 도와주었는데 프랑스로부터 억압받았던 모습이 연상된다고 할 정도로 이스라엘을 강하게 비난한다. 모로코는 알제리나 리비아 만큼은 아니지만, 민간에서는 반이스라엘 감정이 크다. 이스라엘이 모로코에서 태어난 유대인을 아랍계라며 차별했고, 예루살렘에서도 모로코인의 거주 지역을 없앴기 때문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은 서파푸아를 간접적으로 도와주고 있는데, 이 점 때문에 인도네시아는 이스라엘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인도네시아는 심지어 U-20 월드컵에서 이스라엘 대표팀의 입국을 거부해 결국 개최권을 박탈당하고 멀리 남미의 아르헨티나로 변경되는 등 많은 반발이 일어났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어중간한 관계였으나 남중국해에서 싱가포르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2016년 이후에는 관계가 험악해졌다. 또한 중국과 수교했음에도 대만에 비교적 유화적인데, 리셴룽 현 총리는 중국과 수교 직후에 대만을 방문해서 중국의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최근에는 중국인 노동자가 많아지면서 불법체류자가 늘어나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영어를 못하는 이들 중국인 불법이민자들은 차이나타운에서 싱가포르인들이 피하는 막노동에 종사하며 싱가포르인들의 천대를 받아 싱가포르 정부에서도 중국인의 입국을 까다롭게 만들었다. 2013년에는 중국인 투자이민을 받으려다 취소하여 이미 이민비자를 받은 이들도 비자가 취소되었다. 최근 싱가포르가 확실히 중국과 틀어지면서 중국 내부에서 싱가포르를 손봐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나 배후에 서방이 있기 때문에 중국이 적극적으로 위협하지 못한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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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식민지 지배국 VS 피지배국

2.2. 외교적으로만 나쁜 사이

3. 관련 문서


[1] 해당 국가에서 사이 안 좋은 국가로의 방문을 금지하거나 심하게 제한하는 경우 혹은 해당 국가에서 안 좋은 사이의 국가의 국민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심하게 제한하는 경우. [RU] 2022년에 러시아에서 정한 러시아에 대한 비우호국 [RU] [4] 정치, 문화 성향만 봐도, 동성애를 매우 혐오하는 러시아와 달리 대만은 아시아에서 가장 동성애에 호의적인 나라인데다, 외교적으로도 미국 중국에 대한 입장은 서로 상반되어 있다. [5] 2009년 마다가스카르 정치 위기만 해도 한국과 관련이 깊은터라 민간에선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다. [RU] [RU] [8] 이때 불가리아는 추축국이었으나 소련 공격은 거부했다. 1944년 소련군이 발칸 반도로 진격하면서 교전한 것이다. [RU] [10] 나머지 나라는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 [11] 나머지 동남아 국가들은 역사적인 면에서만 그렇지 나머지 분야에서는 관계가 괜찮다. 특히 태국과 베트남은 동남아 제일가는 친일 국가들이기도 하다. [12] 다만 이는 웬만한 나라 대부분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부유층이야 돈만 있다면 미국에서 사는 게 아주 좋다보니 미국으로 이민가려고 하고 미국에 대해 우호적이다. 다른 후진국이나 북한을 제외한 반미 감정이 거센 나라들 또한 마찬가지. 실제로 플로리다 지역에 베네수엘라인들이 상당히 많이 살고 있다. [13] 1972년 퓰리쳐상 사진부문 수상작인 다카의 잔혹한 광경(Savage Scene in Dacca)이 바로 이 당시 친파키스탄 민병대원 4명을 거리에서 마구 고문한 다음 총검으로 난도질하여 공개처형하던 장면을 우연히 프랑스 사진작가가 찍었다. 자세한 건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참고. [14] 사실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는데 도움을 준 인도조차도 적대시하는 등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 모두 혐오, 경계한다지만, 그래도 정치, 경제적으로는 인도와 밀접한 편이다. [15] 실제로 걸프전쟁이 일어나기 전 1987년에 하페즈 알 아사드 전 시리아 대통령이 쿠웨이트를 방문하기도 했다. # [16] 실제로 쿠웨이트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옆나라 이라크와 달리 시리아와는 국경을 맞대지 않은 먼 나라다보니 지리, 역사적으로 악감정이 그리 깊진 않다. [17] 이 때문인지 다른 유럽 국가들의 유대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인한 사망자가 많이 나왔던데 반해 불가리아는 유대인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18] 인구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는다. [19] 물론 이 두 국가도 북한과 수교만 맺었을 뿐이지 관계가 좋은 건 아니다. [RU] [21] 비록 본토는 멀리 떨어져있으나, 포클랜드 제도가 아르헨티나와 가깝기 때문에 이웃나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물론 포클랜드 제도가 아르헨티나의 땅이었다면 그냥 먼 나라가 된다. [22] 일단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면 이스라엘하고 수교할 가능성이 있으며 무엇보다 이스라엘과 사우디는 친미 국가이다. [23] 당장 미군 기지, 영국군 기지가 싱가포르에 있다. [24] 와칸 회랑을 사이에 두고 상당히 인접해있으나 국경을 맞대고 있지는 않다. [25] 참고로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집시에게 자행한 학살에 대해서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독일에게 같은 학살과 탄압을 겪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경제적, 정치적으로 강력한 지위를 가지게 되어 독일 정부로부터 사과와 피해 보상을 받아낸 유럽 국가들이나 유대인들과 달리, 아직 제 힘조차 갖추지 못한 약소 민족과 약소국의 설움이라 할 수 있다. [26] 다만, 프랑스와 알제리 사이에 있는 바다가 해협은 아니지만 지중해 자체는 남북으로 좁기 때문에 이 둘을 이웃나라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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