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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란의 핵개발 전반에 대하여 서술한 문서.2. 상세
핵개발을 한다는 의혹으로 미국의 눈엣가시로 찍힌 이란은 대표적인 불량국가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조지 W 부시의 악의 축 발언도 이 프레임을 가두는 데에 성공했었다. 안 그래도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의 주요 변수로 부상하였다.그러나 미국은 이란을 악의 축 프레임으로 묶어두는것까지는 성공했으나, 이란의 국력이 상당하기에 미국조차도 건드릴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 손해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
때문에 대량살상무기를 명분으로 침공을 개시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던 미국이 이란에 대해서는 전쟁을 정말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고 이란과 어떻게든 외교로 타협하기 위해 끈질기게 이란 핵합의를 물색하고 있는 중이다.
이란의 핵개발 혐의와 관련된 미국과의 수십년간의 수많은 제재와 갈등은 단순한 이란의 핵개발을 넘어선 국제 정치적, 지정학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다. 세계적인 산유국이자 군사대국인 이란은 실제로 핵을 보유하고 있는 이스라엘과는 달리 현재까지도 단 한번도 핵실험을 한 적이 없으며 현재까지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반면 이란과는 달리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시험하고 개발하고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로 인한 미국과의 제재나 갈등을 겪지 않고 있다.
3. 배경
이란의 핵개발의 씨앗은 이란 혁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이전에 팔라비 왕조는 친서방 정책을 펼치면서 평화적인 원자력 에너지 사용을 위한 개발을 미국 및 주요 서방국과 하고 있었다. 1970년에는 NPT에도 가입하였다.[1] 그러나 이란 혁명으로 반서방 정부가 들어서 협력이 모두 중단되었다.신정지도자들은 원자력 개발을 단독으로 이어가기로 했다. 2000년대 IAEA사찰로 이란 곳곳 비밀 시설에서 우라늄 농축을 행하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고, 이로써 이란이 전술무기로써의 핵개발을 한다는 우려가 퍼지기 시작했다.
시아파인 이란은 중동에서도 다른 나라들과 대부분 사이가 좋지 않고[2],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 팔라비 왕조가 왕정폐지된 이후에는 서방과도 고립되어서 이에 대한 탈출책 및 협상수단의 하나로 핵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란의 직접적인 핵개발 계기는 이란-이라크 전쟁이다. 이란의 시아파 신정혁명에 위협을 느낀 이란 서쪽 이웃나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과 중동 국가들, 심지어 소련의 지원을 비밀리에 받아가며 이란과 8년 동안 전쟁을 했다. 이란은 절대 우세한 국력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의 선빵을 맞아서 휘청거리다가 간신히 이라크군을 쫓아내긴 했지만 호메이니의 국제정세 오판으로[3]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몰락을 내걸고 전쟁을 확대시켰다. 문제는 호메이니의 생각과 달리 후세인은 이라크군이 밀리는 와중에도 타국의 지원을 유지했고,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따라 이란 동쪽에도 전운이 고조되었다. 이라크는 이란-이라크전 후반에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을 대량으로 사와서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초토화시켜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결국 1988년 이라크와 이란은 UN과 소련, 미국의 요구로 강제적인 정전 협정을 맺는데 호메이니는 전쟁을 확대시켜놓고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당시 사실상 전 세계가 이라크 손을 들어준 이란-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호메이니는 분을 참지 못하고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난지 1년 뒤인 1989년 노환으로 병사했고, 호메이니의 유언에 따라 제2대 최고지도자가 된 알리 하메네이는 "국제사회에서 이란의 친구는 없다"며, 이런 고립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핵개발에 집착하게 되었다.
원래부터 이란은 수니파인 다른 중동 국가들과 사이가 안좋았다. 역사적으로 수니파와 시아파(사실상 이란) 국가들 간에 치열한 전쟁이 있어왔다. 몽골의 침략으로 한때 소강기를 맞기도 했지만 16세기 몽골계 티무르 제국이 무너지고 이란 고원에 다시 이란 민족 국가인 사파비 왕조가 들어서면서 시아파 국가인 사파비 왕조와 수니파의 맹주 오스만 제국간에 오래도록 치열한 전쟁이 이어졌다. 양국은 각각 자국내에 있던 수니파, 시아파 신도들을 수만명 단위로 대량학살하는 등 양 종파간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20세기 중반 이란은 팔라비 왕조가 들어서며 급속한 친서구화 정책을 펼치며 미국, 영국 등 서방국가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고, 이스라엘과도 비공식적이지만 적극적으로 교류를 했었다. 당시 팔레비 왕조는 친서구화 개방 정책으로 인한 산업화와 그리고 서방과의 교역으로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북쪽에서 지속적으로 남하를 시도하고 있던 소련을 저지하고, 동시에 중동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수니파 국가들을 견제하기 위해 이란을 지원해줬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당시 자국 최첨단 전투기인 F-14를 이란에만 수출을 허용해줬을 정도였다.
하지만 1979년 이란에서 이란 혁명이 일어나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고 호메이니와 하메네이, 라프산자니 등 시아파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건 지도층들이 새로 집권하면서 반미, 반서방 국가가 되어 서방과의 협력이 단절되고, 미국, 캐나다, 영국 등 서방권 국가들과 적대관계가 되었다. 동시에 시아파 근본주의가 강해지면서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던 수니파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나머지 수니파 중동 국가들과의 적대적인 관계도 계속되었다. 대표적으로 이란 혁명이 일어난 이듬해인 1980년 인접국가인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하여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사우디와 요르단, 이집트 등을 포함한 수니파 아랍 국가들이 이라크를 많이 지원해 주었고, 이란은 이 전쟁을 대 수니파 전쟁으로 규정했다. 또 극단적인 시아파 신정국가인 이란은 무신론을 베이스로 깔고 가며 종교를 허용하지 않는 공산권 국가들과의 협조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특히 부동항의 확보를 국시로 여기며 지속적인 남하정책을 추진하며 이란을 노리고 있던 소련과는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팔레비 정권이 친미, 친서방 정책을 펼친 것은 소련의 위협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란 혁명 이후 이란은 사실상 친구라고 할 만한 나라가 없었다. 한마디로 이란은 이란 혁명 이후로 놓인 처지는 그냥 샌드위치 마냥이었다.
이란의 영토와 국력은 매우 크고 인구도 많지만, 적성국들이 많아 이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와 무기 금수조치로 경제력과 군사력 또한 약해지고 있다. 결국 이를 땜빵이나마 할 수 있는 수단은 비대칭전력 뿐이다. 핵보유 선언은 수니파국가의 침략과 서방의 군사 개입을 차단하는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4] 거기다 바로 이웃나라인 이라크가 미국의 이라크 전쟁으로 허무하게 무너지고, 이라크의 또 다른 이웃나라인 시리아[5]가 시리아 내전 발발 직후 시리아 정부군과 시리아 반군,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ISIS) 등이 혈투를 벌이고 그 틈을 타 러시아, 터키, 미국 등 외세 열강들이 각자 개입 명분을 앞세워서 시리아 내전에 군사 개입하여 가까운 근방의 두 국가가 전쟁과 외세의 개입으로 만신창이가 되는 모습을 하메네이 현 최고지도자를 비롯한 이란의 정치인들과 이란 정규군 및 이슬람 혁명 수비대의 이란군 고위 장성들도 보았다.[6]
입만 열면 이란의 멸망과 쇠락을 외치는 적성국인 이스라엘의 핵개발[7] 또한 이란의 핵개발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이란은 이에 대해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미국의 영향력하에 놓인 IAEA의 이중잣대를 비판하며 성토하는 중이다.
다만 안 그래도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판에 이란의 핵개발을 시작으로 주변 나라들도 핵개발에 몰두한다면? 핵무기가 혹여 테러 집단에 넘어가서 일개 집단이 강국을 상대로 협박할 수 있게 된다고 우려도 있다.
2021년 기준으로 농축도 20%의 우라늄 210㎏과 농축도 60%의 우라늄 25㎏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 상태이다. #
4. 역사
4.1. 이란 혁명 ( 1979)
4.2. IAEA 사찰과 조지 W. 부시의 발언
4.3. 이란 핵협상 ( 2015)(해빙기)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는 기존 적성국과의 전향적인 외교를 추진했고, 이에 따라 쿠바와의 재수교및 제재 해제가 행해졌으며, 이란 핵협정도 이와 같은 연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협상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이 같이 참여했으며 협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라늄 농축
- 우라늄 농축 농도와 일정량 농축우라늄 보유량 제한
- 농축시설 증축 금지
- 일정 농도 및 시간 내에 원심력 장치를 이용한 연구는 허용
- 재처리
- 아락에 있는 중수로 시설은 연구목적으로 바뀌며, 무기로 사용가능한 플루토늄 부산물이 나와서는 안됨
- 폐핵연료는 이란외로 반출해 재처리가 불가능하게 함
- 사찰
- IAEA가 사찰 담당
- 제재 해제(IAEA가 협정사항을 준수하고 있다고 평가할 시)
- EU, 미국은 경제 제재를 해제
반응은 엇갈리는 편이 었다. 일단 협정국 수장들은 일제히 환호했고, 당시 유엔총장 반기문과 교황청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란의 중동 내 숙적 1순위를 다투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는 불편해하고 반대했고, 미국 내 야권 ( 공화당) 또한 반대하였다.
4.4.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 곧 찾아온 위기
버락 오바마가 연임제한으로 출마 못하게 되자 수장 교체가 확실해 졌는데, 당시 대선기간 도중 야권에서 바람을 몰던 후보는 기업가인 도널드 트럼프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오바마의 내외정을 비난했고, 이에 따라 오바마에 반감을 가진 유권자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선거인단 확보로 2016년 대선에 승리하자, 그는 오바마의 외교정책을 들어 엎기 시작했다.후보시절부터 트럼프는 이란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는 그가 유엔총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로켓맨 발언과 같이 드러났다. 그는 핵협정이 수치스럽고, 핵개발을 막지 못한다고 전세계에 방송하였다. 유럽 내 협상 참여국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협정 잔류를 표명했지만 말이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같은 대사로 웃은 것은 덤.
협정에 따라 유럽은 이란에 본격적으로 진출했으며, 이란 항공사가 보잉사에게 전례없는 물량을 주문하는 등 물적교류가 물오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IAEA사찰도 2년간 11회 행해졌고, 결과는 이란이 협정을 준수하고 있다라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발언은 이 분위기를 꺾어 버렸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방미중 의회에서 핵협상 잔류을 거듭 주문하며 대놓고 비판했던 정도였다.
경제제재 유예가 다가오던 2018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이 사기쳤다"라는 시청각설명회 문구를 네세우고, 모사드가 노획했다고 주장하는 비밀 핵개발정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를 부추기기 위한 여론몰이로 여겨지고 있으며 5월 8일에 트럼프는 오바마 정권이 체결한 미국-이란 핵 협정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에 미국은 협상에서 이탈한다고 선언하였다.
이는 미국에 의한 일방적인 외교 협약 파기 행위[8]였기에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장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등 유럽정상들이 이란을 몰아세우는 트럼프를 거듭 말렸으나 #, 소용 없었고 호르무즈 해협 유조선 피격 사건, 사우디 아라비아 정유시설 습격, 2020년 들어 이란 혁명군 사령관 카셈 솔레이마니 암살 등으로 인해 전쟁까지 임박한 상황이 왔다.
다행히 전쟁 수준의 큰 위기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 이유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범유행전염병으로 인해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싸울만한 여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후 프랑스·영국·독일이 이란이 합의 사항을 위반했다면서 공식적으로 분쟁조정 절차에 착수했다. # 이란은 중동 주둔 유럽 병력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또, 대화는 가능하며 핵합의 파기도 없다고 했다. #
4.5.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이란도 미국이 제재를 풀고 협정에 복귀한다면 협정 의무사항을 준수할 수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이란이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의 준수를 요구했다. #
2월에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에 대한 핵사찰을 기존보다 제한적인 수준에서 임시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4월 핵합의 회담 앞두고 이란에서는 합의의 단계적 복원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이란 외무장관이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복원를 위한 협상이 곧 재개된다고 밝혔다.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유럽연합(EU) 외교관이 14일(현지시간) 테헤란을 방문했다.
# 2021년 그 동안 중단됐던 이란 핵합의(JCPOA) 협상이 11월에 재개된다.
#이란 측 핵 협상 대표인 알리 바게니 카니 외무부 차관은 오는 29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핵합의 복원 협상을 시작하기로 유럽연합(EU)의 엔리케 모라 대외관계청 사무차장과 합의했다고 이날 밝혔다.
#미국이 이란과의 핵합의 복원 협상에 상당한 진전이 있다며 며칠 내 타결이 가능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스냅백 조항이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3월 11일 협상이 일시 중단했다. # 그리고 사석에서 바이든이 직접 협상은 죽었다고 언급한 것이다. #
농축이 84%까지 완료한 것 같다는 국제원자력기구 감시 결과가 나왔다. #
이란의 핵협상은 이란에 달려있다는 발언이 미국에서 나왔다. #
결국 보다못한 이스라엘이 핵시설 폭격을 암시하는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
또한 IAEA 측에서 협상 재개를 시사했다. #
IAEA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이 2024년 5월 6일 테헤란을 방문해 이란의 핵개발과 관련해 이란 관리들과 대화했다. #
5. 동향
이란 또한 자체 국방력은 중동 이슬람 지역에서 이집트, 터키, 사우디와 더불어 강력하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경제재제를 받고 있기는 하나 수출하고 있는 석유의 양이나 주변 시아파 국가들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미국이라도 가볍게 대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결국 전쟁으로 강제로 이란 핵개발을 해결하지 못할 거면 양국이 합의를 해야 하며 이에 미국은 합의로 점진적 개선을 추구했고 이란도 여기에 동의를 하면서 이란 핵합의를 타결하며 해결의 실타래가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핵 합의는 2018년 5월 미국이 일방적으로 탈퇴하며 위기를 맞았다.
이란계 미국인은 미국 정계에 영향을 끼칠 정도가 아니며, 그렇다고 주변에 미국과 사이좋은 주요 이란계 국가나 시아파 국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와는 종파, 정치적으로 앙숙이고, 이스라엘과는 매우 적대적이며 그나마 사이 좋은 시리아는 내전에 시달리고 있으며, 아제르바이잔과 이라크는 이제 시아파 정권이긴 하나 민족, 언어적으로도 이란과 다르고,[9] 역사, 외교적으로도 이란하고 사이가 좋지 않은 관계로[10] 이란을 상대로 한 정상적인 외교가 어렵다.
여담으로 트럼프의 2018년 이란 핵합의 탈퇴는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에도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 트럼프는 오바마가 이란의 화전양면전술에 놀아났었다는 이유로 이란 핵합의를 탈퇴했는데, 만약 트럼프가 북한 핵문제에서 애매한 수준으로 북한과 합의를 이루었다가는 반대 진영으로부터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다. 따라서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개인적인 친분과는 별개로 북한 핵문제에 있어서는 오히려 이란 핵문제 이상으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선제 결렬이었던 것이다.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북한 핵문제와 이란 핵문제가 별개의 사안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미국인들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던 셈이다. 이미 진중권 교수도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했을 때 이란 핵합의를 본받아 북한 핵합의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전적이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 또한 이란의 핵개발 동향을 주의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6. 관련 문서
[1]
그러나 NPT를 탈퇴한 북한과는 달리 이란은 현재까지도 NPT에 잔류하고 있다.
[2]
이란은 이슬람의 종교적 분파 중 하나인
시아파를 국교로 삼는 신정국가로서, 역사·교리적으로
시아파와는 서로간에 앙금이 깊은
수니파 세력 및
수니파 국가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적대한다.
[3]
호메이니는
이란이 이라크군을 이란 땅에서 쫓아내면 이라크를 지원하는 타 국가들이 이라크 지원을 중단할 것이고, 끈 떨어진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982년 후세인의 휴전 제안을 호메이니가 거부했다.
[4]
물론 전자의 의미가 더욱 크다. 이란의 탄도미사일은 대양을 넘는 사거리는 아니기 때문.
[5]
단, 시리아는 이라크와 달리 이란과는 실질 국경을 접해있지는 않다.
[6]
물론 2020년 기준으로 ISIS들은 격퇴된 상황.
[7]
이스라엘 핵보유는 확실히 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8]
영국 고위 외교관조차도 미국이 핵 합의를 파기한 것은 트럼프가 전임 대통령이였던 오바마에 대한 깎아내리기라고 평할 정도로 명분이 매우 부족했다.
#
[9]
이라크-아랍, 아제르바이잔-튀르크.
[10]
일례로 이라크와 이란의 경우 축구 등 스포츠 경기에서도 한일전 맞먹을 수준으로 맞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