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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8 21:18:55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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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인물 소개3. 사건의 발단 및 진행4. 사건의 여파5. 사건 이후의 장영자
5.1. 2차 장영자 사건5.2. 3차 장영자 사건5.3. 4차 장영자 사건
6. 여담7. 대중매체에서8. 참고 자료9.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external/file2.instiz.net/81014600458d1a2dfeaa463868c1d7e4.jpg
사기행각을 벌이다 구속된 장영자
1982년에 발생한 경제 범죄 사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금융사기 사건으로, 사건을 당시 뉴스나 신문으로 접했던 사람들에겐 이른바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1] 명성그룹 사건, 영동개발진흥사건과 함께 5공 3대 금융부정 사건 중 하나다. 장·이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 인물 소개

장영자는 사채시장 거물로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엄청난 재력가였으며 젊은 시절부터 미모와 남다른 지략으로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 데 매우 능한 인물로도 명성이 있었다고 하며 상대방이 어지간히 영리한 사람일지라도 장영자 본인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보인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 씨가 재산을 불린 과정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장영자의 형부 이규광이 증권 정보나 거물을 소개해주고 금전 관리법을 알려주는 식으로 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견해도 있으나 미확인이다. 어쨌든 사건이 터졌을 당시 이미 부동산과 사채 시장에서 큰손으로 유명했고 사건 이후에도 대부분의 노인들은 큰손이라고 하면 으레 장영자를 뜻하는 걸로 안다. 참고로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군인 아내 시절의 이순자가 장영자를 따라 부동산 투기에 나서 연희동 집을 샀다는 내용이 나온다.

장영자는 여러모로 인맥이 탄탄했다. 먼저 남편은 중앙정보부 차장 출신인 이철희. 이 사람은 육군방첩대 SIS[2] 부대장 출신으로, 중앙정보부 창설요원이며 정보 관련 업적이 대단했다. 대북 작전에도 어느 정도 개입했고 김대중 납치 사건을 비롯한 대규모 공안사건에도 많이 끼어들었다. 박정희 김대중 납치를 직접 지시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이철희는 누가 뭐래도 핵심 라인이었다. 이러한 공로 때문에 유신정우회 소속으로 국회의원도 역임했다.

그리고 장영자의 형부 이규광 전두환의 부인인 이순자의 숙부다. 다시 말해 장영자는 이순자의 작은아버지의 아내의 여동생이다.

또 당시 야당 지도자였으며 훗날 대통령이 되는 김대중이 장영자의 사촌형부[3]라는 주장도 있지만 차용애가 사망한 이후 김대중은 1962년에 이희호와 재혼했기 때문에 재혼 시[4]부터 기존의 처가와 인척관계는 소멸되었다. 따라서 이미 1962년부터 김대중과 장영자는 법적으로 완전 남남이다.

3. 사건의 발단 및 진행

1980년 7월, 당시 국군보안사령부 보안처장이었던 정도영 육군 준장은 '어느 중년 여인이 군 부대 불교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거액을 뿌리고 다닌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 여인이 해당 부대의 부대장들과 아무런 인연도 없으면서 거액을 기부했다는 점이 수상했다. 조사 결과 여인의 이름은 장영자로 당시 나이 36세, 법명은 보각행(普覺行)이고[5] 엄청난 재력가 행세를 하지만 사실은 빚 독촉을 받는 상태였다. 곧 장영자는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었고 각 부대에는 '장영자를 조심하라.'는 지휘 조언이 내려갔다.

1981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산하 민정수석비서관실에 장영자 부부에 관한 첩보가 입수되었고 민정수석비서관인 이학봉 국가안전기획부장 유학성에게 통보해 줬다. 유학성은 처음엔 별 거 아니라고 여겼으나 곧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1982년 4월 공영토건이 장영자에게 어음 사기를 당했다며 진정서를 대한민국 검찰청에 제출했는데 검찰 내사 결과 어음 사기와 관련된 기업이 더 있음이 밝혀졌다.

1982년 5월 7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부장 이종남 검사) 장영자 부부를 구속하며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장영자는 주로 자금 압박에 시달리던 건설업체들을 찾아가 남편 이철희의 과거 경력을 들먹이며 "특수자금이니 절대 비밀로 하라."며 현금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업체들로부터 수배에 달하는 약속어음을 받아냈다. 공영토건에서는 빌려준 현금의 9배에 달하는 1,279억 원을 약속어음으로 받아냈다. 이들 부부는 이렇게 받은 어음을 할인해서[6] 생긴 돈을 다른 회사에 빌려주며 똑같은 짓을 하였다. 이걸 계속 반복해서 받은 어음의 총액은 7,111억 원이고 이 중 6,404억 원을 할인해서 사용하였다. 처음 종자돈을 제외한다면 마치 폰지사기 다단계처럼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셈이었다.

참고로 신군부가 3공화국, 4공화국의 대표적 부정축재자로 지목한 10명의 부정축재액 총액이 853억 원이었는데 장영자 부부가 받아낸 어음 총액은 7,111억 원이다. 이는 당시 한국 GDP의 1.4%, 당시 한국 정부 예산의 10%를 차지할 정도의 거액이었다고 하며,[7] 40여년이 지나 물가가 수십배 오른 2020년대에도 7,111억 원이면 대기업조차 쥐락펴락하는데 서민용으로 지은 개포동 주공아파트 18평짜리의 분양가가 600~700만 원이었던 저때는 이루 헤아리지도 못하는 거액이었다. 참고로 장영자, 이철희 부부가 횡령한 금액을 2023년 기준 소비자물가지수로 환산하면 약 2조 9100억 원이나 된다.[8] 심지어 당시 한국의 경제 수준을 고려하면 당대 사람들은 장영자 부부가 횡령한 금액을 오늘날 사람들이 수십조 원을 느끼듯이 느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9]

워낙 엄청난 규모의 사기 사건이고 장영자가 전두환의 처가와 얽혀 있다 보니 이 사건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가령 태양금속은 현금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어음을 끊어주는 등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런 의혹이 제기될 만했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포항제철에 이은 업계 2위 일신제강, 도급 순위 8위였던 공영토건[10] 등이 모두 부도가 났다. 그리고 이철희, 장영자 부부에게는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형과 미화 40만 달러, 엔화 800만엔 몰수형, 추징금 1억 6,254만 6,740원이 선고되었다. 또 장영자의 형부이며 영부인 이순자의 작은 아버지 이규광에게도 징역 1년 6개월 및 추징금 1억 원이 선고되었다. 그 외에 구속된 사람이 30여명에 이르렀으며 장영자의 집에 침입해 물방울 다이아 등 1억 2,000만원 어치를 훔친 유명한 절도범 조세형을 잡은 사례로 장영자에게 50만 원을 받았던 경찰관 8명은 면직 처분을 받았다.[11] 참고로 당시 경력 10년짜리 평교사/ 한국노총 근로자 월급이 25만 원[12] 수준이었다.

또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일은 아니지만 검찰은 사건 조사 후 ' 장영자 부부가 15개월 만에 49억 원 내외를 썼다.'고 발표했다. 링크에 이들의 돈지랄이 제대로 나온다. 이 부부는 하루에 1,089만원 정도를 쓴 셈인데 이 때문에 시민들은 아연실색했다. 장영자 부부는 서울 시내 20평 아파트가 1,000만원이 안 되었던 1980년대에 이 정도로 돈을 펑펑 썼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으로 따지면 15개월 동안 201억 원, 1개월 동안 13.4억 원, 하루 동안 빠짐없이 약 4,500만 원을 쓴 셈이다.[13]

4. 사건의 여파

이 사건으로 국무총리 유창순, 경제기획원장관 겸 경제부총리 신병현, 외무부장관 노신영,[14] 문화공보부장관 이광표, 법무부장관 이종원, 검찰총장 정치근, 국가안전기획부장 유학성, 내무부장관 서정화, 총무처장관 김용휴, 재무부장관 나웅배, 체신부장관 최광수, 보건사회부장관 천명기, 민주정의당 사무총장 권정달, 교통부장관 윤자중, 농수산부장관 고건, 상공부장관 서석준, 동력자원부장관 이선기, 정무수석비서관 허화평, 사정수석비서관 허삼수 등 당시 5공의 실세들은 물러났다.

단, 허화평과 허삼수는 바로 경질되지는 않았고 그 해 말에 경질되었다. 허화평과 허삼수는 이 사건을 계기로 김상구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사무차장 등 전두환 대통령의 친인척들을 공직에서 배제하려고까지 하였고 심지어 전두환 정권의 개국 공신들인 황영시, 유학성, 노태우, 정호용 등을 궁정동 안전가옥에 초대하여 전두환에게 친인척의 2선 후퇴를 건의할 것을 결의하기까지 하였다. 이 점 때문에 그들은 전두환의 눈 밖에 났는데, 허화평과 허삼수는 경질되기 몇 달 전부터 청와대 본관 출입도 경호원들에 의해 통제되었다고 한다.

한편 박철언은 대통령비서실 법률비서관 겸 정무비서관 신분으로 해당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을 텔레비전에 출연시켜 의혹을 잠재우는 데 기여했다고 한다.

사건 이후 장영자는 음모론을 제기했는데, 이순자의 아버지 이규동이 명성그룹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의혹으로 세간이 시끄러워지자 전두환 정권에서 이를 무마하려고 장영자-이철희 부부를 대신 희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훗날 장영자가 출소한 후에도 사기 사건을 일으켜 다시 구속 수감되는 행각을 되풀이했음을 생각하면 이순자의 친정 식구들이 비리를 저지른 것과 장영자의 사기는 별개로 보는 게 타당하다.

5공 정부는 이 사건을 무마하고 민심을 달래기 위해 2차례의 개각[15]과 1982년 5월 민주정의당 당직 개편을 단행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고 5공 정권 구호를 빗대어 '정의사회구현 좋아하네.'라고 빈정대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그리고 신병현 경제부총리는 이 사건으로 경질되었다가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으로 서석준 경제부총리가 순직[16]하면서 다시 경제부총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은 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 제2의 장영자, 이철희 사건을 막기 위해 시중의 음성자금을 양성화해야 한다는 점과 조세 부담의 불균형을 시정해야 한다는 점을 들어 전두환에게 금융실명제 시행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기득권층에서는 정치 자금 모금의 어려움, 기업 활동의 어려움을 들어 반대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17] 결국 이 때 불발된 금융실명제가 10여년 뒤인 문민정부 시기인 1993년 8월 12일 오후 8시 정각이 되어서야 시행되었고[18] 1997년 12월 31일에는 이를 확정한 법률 「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었으며 2001년 11월 28일에는 금융실명제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는지에 대한 여부는 불명이지만 당년 9월 27일에 제정된 「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어 여러차례 개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있다.[19]

5. 사건 이후의 장영자

5.1. 2차 장영자 사건

장영자는 1992년 가석방된 후에도 용인술, 처신에 대한 자신감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언론 보도를 내는가 하면 다시 시중 은행의 주요 간부들을 자신 있게 찾아다녔다. 하지만 1994년에 다시 140억원대 어음사기 사건을 저질러서 4년간 복역하게 되었다. 이것이 일명 '2차 장영자 사건'으로 여기에 연루된 동화은행 서울신탁은행에도 불똥이 튀어 현임 은행장들이 사임했고 이들 기관들도 징계를 받았다.[20]

5.2. 3차 장영자 사건

이후 1998년에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나서 '이번에야말로 좀 조용히 살려는가 보다.' 했지만 또 다시 구권 화폐 사기를 일으키며 2000년에 구속되었다가 2015년 1월에야 석방되었다. 이 기간 동안 남편 이철희가 옥중의 아내를 정성껏 돕는 모습이 다시 한 번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구권 화폐 사기가 무엇인지는 다음 기사들을 참조하면 된다. 2005년 머니투데이, 2007년 시사저널[21], 2013년 Go발뉴스

5.3. 4차 장영자 사건

2018년 12월 21일에는 출소 3년 만에 또 6억대 사기를 쳐서 구속되었고 2022년 1월에 출소했다. #

6. 여담

7. 대중매체에서

8. 참고 자료

9. 관련 문서



[1] 2011년에 이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금액 액수로 1위였다. [2] 국군기무사령부 문서에 가면 나오는 내용이지만 HID는 육군첩보부대다. 1960년 4월 SIS라는 이름으로 육군방첩부대가 설립됐고 전신인 육군특무부대 CIC는 1950년 10월에 만들어졌다. [3] 김대중의 첫 부인인 차용애는 두 아들을 낳고 일찍 사망했으며 이후 김대중은 이희호와 재혼했다. 차용애는 장영자에게 고모의 딸인 고종사촌 언니다. [4] 기존의 혼인관계를 매개로 한 인척관계는 일방 배우자의 사망후 재혼으로 소멸되었다. [5] 실제로 장영자는 불교 신자다. 원래는 천주교 신자였으나 이후 불교로 개종하였다. [6] 중앙일보 연재물인 <청와대 비서실>에서 나온 증언에 의하면 이때 불법으로 어음을 할인하지 않았던 은행장 하나는 '좋은 고객을 놓쳤다.'고 한동안 상사들에게 시달렸다는데 사건이 터지고서는 '사람 보는 눈이 있다.'며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반대로 어음을 할인해주었던 은행 중 하나인 조흥은행은 이듬해 영동개발진흥사건으로 2연타를 맞아 1985년 기업 CI를 바꿀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그야말로 인생만사 새옹지마. [7]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국가의 사활을 걸다시피 한 아폴로 계획에 든 금액이 당시 미국 GDP의 1.8%, 미국 예산의 10.3%에 달했다. 또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쓰인 돈이 당시 한국 GDP의 1.5%,  4대강 정비 사업에 쓰인 돈이 당시 한국 GDP의 1.6%에 달했다. [8] 전두환의 비자금이 1996년에 확인된 것으로만 9,500억 원이었고 2023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1조 9,427억 원이다. 독재자의 비자금보다 실질 가치로는 오히려 더한 수준의 거액을 민간인 부부가 횡령한 셈이다. [9] 그도 그럴 게, IMF가 추산한 2023년 한국 GDP는 1조 7848억 달러로, 이의 1.4%에 달하는 금액은 249억 8720만 달러, 한화로 약 33조 6400억 원 수준이다. 참고로 2023년 기준 한국 최고 부자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의 재산이 97억 달러(한화 약 12조 8,000억 원)이다. [10] 부도 이후 동아그룹으로 넘어갔으나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로 이듬해에 또 부도났다. [11] 당시 짜장면 한 그릇 값이 500원이었다. 2021년의 가치로 환산하면 어림잡아 400~500만원 정도. [12] 2023년 가치로 환산하면 102만 3000원 수준이다. [13] 심지어 그렇게나 돈을 물처럼 썼는데도 이렇게 쓴 돈은 전체 횡령 금액의 0.7% 미만에 불과했다. 장영자, 이철희 부부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금액을 횡령했는지 알 수 있는 셈. [14] 유학성의 후임으로 국가안전기획부장에 임명된다. [15] 1982년 5월과 6월에 각각 1번씩 개각이 이루어졌으며 특히 6월 개각 때는 유창순 국무총리가 경질되고 김상협 고려대학교 총장이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되었다. [16] 위에 언급된 상공부 장관에서 경질된 바로 그 분 맞다. 이 때 경질되고 1년 뒤에 부총리가 된 것이다. [17] 당장에 드라마 제5공화국 30회만 보더라도 어느날 갑자기 금융실명제가 시행되기로 했다는 뉴스를 본 허삼수와 허화평은 화가 나서 다자고짜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을 찾아 "이런 국가적인 정책을 어떻게 상의도 없이 혼자서 진행 할 수 있는 겁니까?" 라고 항의하자 "전두환 각하의 지시였소." 라는 답을 들었고 김재익은 "개혁을 강력하게 주장하더니 자기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하시오?" 라며 허화평을 비꼬았고 옆에 있던 이학봉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도 "금융실명제가 선배들이 그렇게 얘기하던 개혁 아니었습니까?" 라고 거들기까지 하자 허삼수가 열받아서 주먹을 치켜들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18] 그것도 당년 8월 12일 오후 7시 45분에 긴급재정경제명령 제16호로 발동되었다. 시간상으로는 금융기관들을 통한 현금 인출이 불가능하도록 밤중에 이뤄졌다. [19] 아무래도 금융실명제는 금융거래 정상화를 통한 경제정의 실현이라는 포괄적 목적만을 가지고 있다는 한계 때문에 추가로 별도의 법률을 제정하여 규제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 1994년 당시 유명 시사 만화 고바우 영감에서 고전영화 돌아온 장고에 비유해 '돌아온 장영자'라는 만평을 올리기도 했다. 사회활동을 재개한 장영자가 속사포 쏘듯 은행장들을 쓰러뜨린다는 줄거리. [21] 이 기사는 시사in 주진우가 시사저널 시절 작성한 것이다. [22] 즉, 이철희와의 결혼 재혼. [23] 이 사람이 누구냐면, 한지붕 세가족에서 강남길의 부인인 말자 역으로 나왔던 배우다. [24] 물론 김대중의 첫 부인은 앞에서도 설명했듯 이 사건이 터지기 전에 한참 전인 1950년대 말에 사망했다. 또 이 사건이 터졌을 당시 김대중은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신세였다. [25] 상술한 김병주의 재산보다 많으며, 이를 넘어 2022년 UN 통계 기준 북한의 총 GDP(151.8억 달러, 약 18조 원)에 필적한다. 덤으로 사라의 피해액이 당시 한국 GDP의 3.1%에 고베 대지진의 피해액이 당시 일본 GDP의 3.6%였다. [26] 참고로 베트남에서는 10억 동(약 5360만 원) 이상의 금전을 탈취하거나 50억 동(약 2억 6800만 원) 이상의 재산 피해를 입힌 범죄자는 징역 20년, 무기징역 또는 사형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7] 정확히는 해당 에피소드 삭제후 수개월 뒤 방통위에서 문제없음으로 결정하여 서비스가 잠시 개개되었으나 얼마못가 다시 삭제되었다. 정확한 원인은 알수없지만 2020년 이후 대한민국은 그 어느때 보다도 전세 및 투자사기 등의 금융사기 피해의 심각성과 피해자들에 대한 동정 여론이 커지고 있기에 방송사 입장에서도 이 리스크를 감당할수 없을것으로 판단한듯 하다. 즉 방송사 조차도 암묵적으로 인정한 꼬꼬무의 유일무한 흑역사라 봐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