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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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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행적에 대한 내용은 홍원기/지도자 경력/2024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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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72 김창현 · 73 오윤 · 74 문찬종 · 78 홍원기 [[감독#s-1.1|
]]
· 80 마정길 · 85 권도영 · 88 이승호 · 89 박도현
· 90 박정음'''
2군
70 김동우 · 71 박준태 · 76 채종국 · 81 설종진
· 82 김태완 · 83 노병오
잔류군
77 이병규 · 86 오주원
프런트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군입대선수 등록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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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4명)
이상군
전대영
황종선 (1)
민문식
(10명)
김상국
한희민
이효봉
곽영진
김수길
김현태
윤홍식
유해덕
한연대
이원일 (1)
(3명)
김대중
이중화
안성수
(3명)
송진우
장정순
조양근
(3명)
강석천
황대연
진정필
<rowcolor=#fff>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지화동
김성한
양용모 지연규 구대성 길배진
<rowcolor=#fff>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rowcolor=#f7000d> 신재웅 홍원기
(고졸)
심광호
이상열
조성희
이성갑
(고졸)
고상천
오주상
지승민
김민규
(고졸)
김재현
임광규
조현수
박정진
(고졸)
문용민
<rowcolor=#fff>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조규수 김태균 신주영 안영명 김창훈
<rowcolor=#fff>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윤근영 유원상 장필준 (1)
최진호
박상규 김회성
<rowcolor=#fff>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김용주 (2) 유창식 (2) 하주석 (2) 조지훈 (2) 황영국
<rowcolor=#fff>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김범수 김주현 김병현 성시헌 변우혁
<rowcolor=#fff>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신지후 정민규 문동주 김서현 (2) 황준서 (2)
(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전면 드래프트 시행 년도 1R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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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기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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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3.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1

파일:KBO 로고(세로형, 2013~2021).svg KBO 포스트시즌
2001 준플레이오프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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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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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2C,#D3DADE
<rowcolor=#ffffff> 1대 2대 3대
이광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8)
김시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9~2012)
감독대행
김성갑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2)
염경엽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3~2016)
<rowcolor=#ffffff> 4대 5대 6대
장정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2019)
손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0)
감독대행
김창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0)
홍원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1~)
}}}}}}}}}}}}}}} ||

한화 이글스 등번호 23번
박승윤
(1995)
<colcolor=#FFFFFF> 홍원기
(1996~1999.5.14.)
김경원
(1999.5.15.~1999)
두산 베어스 등번호 13번
캐세레스
(1998)
<colbgcolor=#FFD700> 홍원기
(1999.5.15.~1999)
손시헌
(2003~2006)
두산 베어스 등번호 5번
김정규
(1998~1999)
홍원기
(2000~2005)
장교성
(2006)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번
장교성
(2005)
홍원기
(2006~2007)
팀 해체
서울/ 넥센/ 키움 히어로즈 등번호 78번
김정수
(2008)
홍원기
(2009~)
현역
}}} ||}}} ||
파일:24 키움 프로필_홍원기.png
<colbgcolor=#570514><colcolor=#FFFFFF> 키움 히어로즈 No.78 [[감독#s-1.1|
]]
홍원기
洪源基 | Hong Wonki
출생 1973년 6월 5일 ([age(1973-06-05)]세)
충청남도 공주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공주중동초 - 공주중 - 공주고 - 고려대
신체 187cm | 92kg
포지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6년 1차 지명 (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1996~1999)
두산 베어스 (1999~2005)
현대 유니콘스 (2006~2007)
지도자 서울-넥센-키움 히어로즈 1군 수비코치 (2009~2019)
키움 히어로즈 1군 수석코치 (2020)
키움 히어로즈 감독 (2021~)
프런트 우리-서울 히어로즈 전력분석원 (2008)
계약 2023 - 2025 / 14억원[계약내용]
연봉 2024 / 4억원
정보 더 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570514><colcolor=#ffffff> 가족 아내 이혜숙[2], 홍수아[3]
형 홍헌기
본관 남양 홍씨 당홍계[4]
상훈 체육훈장 백마장 }}}}}}}}}
파일:키움 히어로즈 심볼.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연도별 성적4. 지도자 경력5. 비판6. 기타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야구인. 現 키움 히어로즈 감독. 한화 이글스 두산 베어스를 거쳐서 현대 유니콘스에 은퇴한 내야수로 주로 내야 유틸리티 백업으로 활동했다.

2. 선수 경력

2.1. 한화 이글스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19990218000047112.jpg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1994~2006).svg 한화 이글스 선수시절

박찬호, 박재홍, 정민철, 조성민, 임선동, 염종석, 송지만, 이영우, 박종호. 차명주, 김종국, 최기문, 손혁 등과 함께 한국 야구 최고의 황금세대로 꼽히는 전설의 92학번 중 한 명이었다.

박찬호, 손혁 공주고 동기생으로[5] 고려대학교를 거쳐서[6], 1996년 1차 지명으로 계약금 2억원과 함께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한화의 주전 유격수로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3루수로 뛰게 되었다. 하지만 파워 포지션인 3루수치고는 거포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교한 3할 타자도 아니고 그저 2할 6푼 ~ 2할 7푼 정도의 어중간한 타율을 기록하는 타자라서 확실하게 주전을 꿰차지는 못했다.

하지만 클러치 능력은 어느 정도 있어서 강석천을 대신하여 3루수 포지션을 반 고정으로 맡았으며[7] 타선은 주로 하위타선에 기용되었다. 선발 출장을 하지 않을 때에는 대타로도 종종 기용되었다. 화끈한 타격과 세밀한 주루플레이로 한화의 주축으로 떠오른 입단 동기인 이영우 송지만에 비해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2.2. 두산 베어스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10515185823176A5.jpg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 두산 베어스 선수시절

1999년 5월 15일 전상렬과 묶여서 김경원과의 2:1 맞트레이드를 통해서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다.[8] 그러나 3루에는 김동주, 2루에는 안경현이 버티고 있는 두산의 내야진에선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야 유틸리티 백업으로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1999년엔 박정태의 31경기 연속안타 행진을 끝낸 다이빙 캐치를 선보이기도 하였다.[9]

2000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는 3연패를 당해 팀 분위기가 어두웠지만 선취점을 얻는 안타를 쳤고 그 후 팀은 3연승을 거두어 7차전까지 이끌고 갔다. 2001년 포스트시즌에선 주전 유격수인 김민호가 부상으로 이탈하자, 그 자리를 메우면서 수비 면에서는 아주 완벽하지는 않았어도 공격면에서 맹활약하면서[10] 2001년 준플레이오프 MVP에 오르는 등[11], 2000년과 2001년 두산에서 나름대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데다 포스트시즌에서도 맹활약하면서 '가을 사나이' 이미지도 쌓았고,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도 하나 꼈다. 그 이후에도 기복이 제법 심하기는 했지만, 내야 유틸리티로[12] 2005년까지 1군에서 꾸준히 모습을 보였다.

2.3. 현대 유니콘스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70330180754018.jpg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현대 유니콘스 선수시절

2005 시즌 종료 후 FA 신청을 하였다. 하지만 두산 베어스는 당시 장원진- 안경현- 손시헌- 김동주라는 준수한 내야진이 있었고, 홍원기는 준수한 백업이긴 하지만 기복이 심했고, 04~05시즌의 성적이 영 좋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점차 나이가 들어 노쇠화 기미가 보인다고 판단하고 홍원기와의 계약을 거절했다. 이로 인해 하마터면 FA 미아가 될 뻔도 했다. 당시 두산 김경문 감독이 은퇴 후 코치로 전업할 것을 권유하기도. 미아가 될 뻔하다 결국 두산과 재계약에 성공했다.

다행히 박종호 박진만이 삼성으로 이탈하면서 채종국 서한규가 센터라인을 보던 현대가 홍원기의 영입을 시도했다. 그래서 마감 직전 사인 앤드 트레이드의 형식으로 장교성을 상대로 트레이드되며 현대 유니콘스로 건너가게 된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이 둘에 비해 타격은 준수했지만 차화준과 더불어 백업으로 나왔고 2007년에는 젊은 김일경, 지석훈이 주전이 되면서 아예 자리조차 없었다.[13] 결국 자리가 아예 없어지면서 2008 시즌 초에 박노준 단장에게 전력분석원 제의를 받고 은퇴했다.

한편 현대 팬들과는 여러가지로 감정이 좋지 못했는데, 현대만 만나면 타이론 우즈, 장원진과 더불어 날아다녔을 정도였기 때문이다.[14] 더군다나 2001년 플레이오프에서도 맹활약을 해서 현대를 꺾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다.

3. 연도별 성적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홍원기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wRC+ sWAR
1996 한화 123 382 .262 100 20 0 9 47 46 5 42 75 .347 .385 .732 112.0 2.89
1997 90 253 .265 67 13 1 4 30 21 1 18 47 .318 .372 .689 89.1 1.09
1998 28 63 .222 14 2 0 2 9 6 1 5 12 .292 .349 .641 67.7 0.12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wRC+ sWAR
1999 한화/ 두산 98 118 .161 19 6 0 4 13 14 0 11 30 .242 .314 .556 31.6 -0.44
2000 두산 113 221 .271 60 8 2 5 30 31 2 25 54 .360 .394 .753 99.0 1.32
2001 84 242 .264 64 13 1 6 42 34 1 29 39 .353 .401 .753 93.4 1.54
2002 109 170 .171 29 6 0 1 11 17 1 15 36 .242 .224 .466 19.7 -0.83
2003 124 384 .273 105 13 1 8 42 43 0 54 65 .365 .375 .740 98.6 2.53
2004 101 160 .213 34 5 0 2 18 16 0 19 37 .303 .281 .584 54.7 -0.08
2005 92 139 .230 32 6 1 3 22 17 0 13 32 .316 .353 .669 80.9 0.49
<rowcolor=#FAB93D>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wRC+ sWAR
2006 현대 56 148 .270 40 6 0 4 20 16 0 14 29 .335 .392 .727 102.6 0.82
2007 25 28 .071 2 0 0 0 0 2 0 3 12 .161 .071 .233 -40.8 -0.45
KBO 통산
(12시즌)
<rowcolor=#191919> 1043 2308 .245 566 98 6 48 284 261 11 248 468 .326 .355 .682 83.3 8.99

4. 지도자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홍원기/지도자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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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판

투수교체는 결과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좋은 투수를 썼다면'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 2021년 10월 27일, 전날 치러진 두산전에서 김성진을 올린 이유에 대하여[15]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홍원기/비판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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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타

7. 관련 문서



[계약내용] 계약금 2억원 / 연봉 총액 12억원 [2] 기사 1~2살 연상이다. [3] 배우 홍수아와는 다른 사람이다. [4] 남양 홍씨 당홍계 36세손 '基'자 항렬, 성우 홍범기의 친척뻘에 해당된다. [5] 박찬호 손혁, 홍원기 세 사람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같이한 죽마고우이다. 참고로 공주중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박찬호가 3루수, 홍원기가 투수였으나 박찬호가 투수로 전향하자 홍원기가 박찬호 대신 3루수를 보게 돼서 홍원기가 타자로 전향하게 되었다. 당시에 박찬호의 투수 전향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투수들의 학부모의 반대가 더욱 심했는데, 더군다나 홍원기는 당시 공주중학교의 에이스였다. 홍원기 본인이나 부모로서는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게된 셈이라 자연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고, 결국 세 사람의 졸업 이후 감독은 경질되고 야구계를 떠나게 된다. [6] 고교 동기인 손혁과 함께 진학했으며 조성민, 김종국과 같은 92학번이다. [7] 강석천은 홍원기 입단 후 포지션을 중견수로 옮긴 뒤 이영우 - 강석천 - 송지만으로 이어지는 외야진을 구성했다. 홍원기가 두산으로 떠나고 제이 데이비스가 영입되면서 다시 본래 포지션인 3루수로 되돌아 온 것. [8] 당초 한화 이글스가 투수진 보강을 위해 홍원기를 트레이드 카드로 쓰려고 했는데, 원래는 현대 유니콘스 조웅천과의 트레이드를 제안했으나 결렬됐고, 곧바로 두산 베어스 김경원 카드를 제안해 전상렬과 묶여 트레이드된 것. 결론만 보면 김경원이 한화에서 불만 지르다가 2001년에 은퇴한 반면 홍원기와 전상렬은 두산에서 쏠쏠하게 활약하면서 두산의 승리로 끝났다. [9] 정작 홍원기는 아웃을 시키고 벙쪘다고 한다. 이 때문에 홍원기는 직후 롯데 팬들에게 걸쭉한 욕설을 들어야 했다. 자세한 내용은 마산아재 문서 참조. 하지만 당시 박정태 본인은 오히려 홍원기 때문에 자신의 기록이 더욱 빛날 수 있었다면서 고맙게 여겼다고 한다. [10] 8타수 4안타 1홈런(투런) 3타점. 심지어 상대는 자기 고향팀 한화 이글스. [11] KBS N SPORTS 더 레전드 "믿음으로 이룬다 국민감독 김인식" 편을 보면 자세히 나온다. 다만 이때는 배경이 2001년 플레이오프. 1차전 1:1 동점 상황에서 8회말에 결정적인 알까기 실책으로 분위기를 현대 유니콘스에 내어준 후 5:1로 경기가 종료된 후 홍원기는 메일로 욕을 수십 통 받고 새벽 4~5시까지 못 자고 있었는데, 그 다음 날 자신도 모르게 '아 오늘 선발 라인업에 안 들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인식은 특유의 믿음의 야구를 발휘, 그냥 유격수 9번타자로 넣었다고 한다. 그에 감명받아서 무엇인가라도 보답할 생각이었나 연습경기에서 홈런을 계속 때렸다고. 김인식 특유의 믿음의 야구를 잘 보여준 사례로 나온다. [12] 특히 2003년에는 김동주를 지명타자로 돌린 뒤 홍원기가 주전 3루수로 투입되며 무려 124경기나 나왔다. 그 외에도 공격력 극대화를 위해 김동주를 지명타자로 돌리고 홍원기를 3루수로 출장시킨 적이 많았다. [13] 차화준은 수비가 영 시원찮은 선수였고, 채종국은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면서 잉여 전력으로 판단되어 SK에 조중근을 상대로 트레이드되었다. 서한규와 홍원기는 얼마 나오지 못 하고 둘 다 시즌 끝나고 은퇴했다. [14]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이 우승했다면 MVP는 홍원기가 받았을 것이 유력했다. [15] 해당 경기는 두산의 베테랑 김태형 감독의 기가 막힌 투수 교체가 빛난 경기였다. 이후 김태형 감독은 인터뷰에서 선발 투수를 일찍 내린 이유에 대해 "이기려고 뺐다"며 "뒤에 좌타자들의 타이밍이 워낙 좋았고 거기서 점수가 나면 끌려가는 상황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홍원기 감독은 줄 점수를 다 내준 다음에야 투수를 교체하는 등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며, 덕분에 키움은 이정후 김혜성의 노력에도 2:7로 대패했다. 선수 탓을 일삼는 수준 미달의 감독이 팀을 어디까지 나락으로 이끌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시다. [16] 물론 프로 시범경기를 뛰기에 사회인 야구 수준인 정준하의 실력이 많이 모자란 것도 있었겠으나 사실 이숭용과 홍원기는 절친한 선후배 사이로, 평소 선배 이숭용이 후배지만 코치였던 홍원기에게 장난스러운 행동을 하던 터라 일종의 앙갚음식으로 했던 것도 있다. [17] 경기 중에만 그런 듯 하다. # [18] 당시 주전 1루수는 우즈, 2루수는 안경현, 3루수는 김동주였다. 이들의 대수비 등올 계속 자리를 옮겨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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