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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나톨리아는 예로부터 수많은 민족들이 거쳐가고, 함께 거주하면서 각 지방마다 독특한 문화가 발달했다. 그래서 유럽이면서도 중동의 특징을 갖기도 한 튀르키예의 문화는 융합의 문화이며 오스만 제국 시대를 거치며 문화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튀르키예의 전통 문화는 유럽 각국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튀르키예 공화국 역시 오랫동안 쌓아 왔던 유무형의 문화 자산들 + 서유럽, 남유럽 국가들과의 유사성 + 다른 이슬람 국가들과 구분되는 자유롭고 세속적인 분위기를 바탕으로 신흥 문화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 특징
2.1. 남동유럽과 서아시아의 대중문화 강국
남동유럽[1]과 서아시아를 통틀어 가장 큰 국력을 갖추고 있는 나라인 튀르키예는 이 일대에서 드라마, 음악등 문화컨텐츠 제작의 양과 다양성, 질에서 독보적인 나라인 동시에 세계 시장에서 통할만한 수준의 문화 컨텐츠 제작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튀르키예는 이탈리아, 스페인과 같이 남유럽 내 문화 강국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유럽 전역을 보더라도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과 같이 음악 시장을 이끌고 있으며, 영국, 프랑스와 같이 자국 영화가 40~50% 이상 차지하는 국가가 튀르키예이다. 서아시아 기준으로 보아도 레바논처럼 적은 인구가 아닌 8천만 정도의 수준과 이집트처럼 경제적으로 그리 빈곤하지도 않고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처럼 종교적으로도 보수적이지 않은 세속적인 사회 덕에 거의 독자적이다 싶을 만큼 문화산업이 제일 발달된 나라다.
보수적인 종교관으로 인한 제약이 있는 중동 국가들[2]은 물론이거니와, 시장 규모가 작아 자체적 문화 컨텐츠 제작에 한계가있는 남동유럽( 발칸반도) 국가들 사이에서 세속적인 사회분위기를 갖추고 적절한 자본이 있는 튀르키예의 대중문화가 먹혀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범 튀르크권인 아제르바이잔과 중앙아시아 국가, 러시아의 튀르크계 민족들이 있기 때문에 이쪽 방면으로도 진출이 유리하며 실제로 이들 나라에서도 튀르키예 대중문화의 수요가 많다. 그리고 불가리아 등 발칸 반도 지역 내 동유럽 국가들의 경우 경제 수준도 낮고 시장 규모도 작기 때문에 튀르키예 문화에 의존하기도 한다.
다만 외교적 문제로 인해 주변국과 사이가 좋지 않다보니 현지에서는 튀르키예 대중 문화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란,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 서아시아에서는 이슬람의 규율에 어긋난다는 이유와 보수적인 남성들[3]이 항의하고 있고, 동유럽에서는 반튀르키예 감정 때문에 튀르키예 대중 문화 컨텐츠 수입 금지 주장이 많이 나오고 있으며 실제로 세르비아 등 발칸국가들은 자국 내 튀르키예 드라마의 인기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자국 드라마 제작을 지원을 하기도 한다.
2.2. 튀르크리
튀르키예 문화에 대한 호응은 수백년전부터 있었는데 서유럽 각국에서는 튀르크리라는 튀르키예풍 문화가 유행했다. 자세한것은 튀르크리 문서 참조.3. 튀르키예 요리
문서 참고4. 튀르키예 음악
18세기 유럽에서 전통적인 튀르키예 음악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바 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과 오케스트라에 심벌즈가 등장하는 것도 그 예시이다.현대 튀르키예 음악계는 튀르크체 팝(Türkçe Pop)이라는 대중적인 팝 음악을 기본으로 락 음악, 메탈, 기타 실험적인 뮤지션들이 활동 중이라 타 유럽 국가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뮤직비디오의 구성과 미장센 수준도 타 유럽 국가에 밀리지 않는 편이다.
또한 튀르키예는 중화권의 고풍곡처럼 전통음악풍 멜로디나 창법이 현대 가요계에서도 통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아라베스크라고 불리는 튀르키예풍, 중동풍 음악 장르가 있기도 하고 팝이나 락에서도 현대적인 멜로디 사이에 알게 모르게 전통 음악 분위기가 난다. 튀르키예 특유의 꺾어지는 창법은 튀르키예 가요의 특징이기도 하다.
5. 튀르키예 영화
문서 참고.6. 튀르키예 드라마
튀르키예의 대중문화는 유럽과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양쪽에서 동시에 인기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드라마다.그리스와 키프로스, 동유럽, 서아시아권, 북아프리카권에 만연한 반 튀르키예 감정에도 불구하고 중동판 한류에 비견될 정도로 해당 지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남미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모으면서 2000년대 이전까지 세계 문화 콘텐츠 시장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던 튀르키예를 전도 유망한 문화 콘텐츠 창작국으로 올려 놓은 장르다.
그동안 튀르키예에 대해 '경제적으로 빈곤한 저개발국'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페르시아 만 연안의 산유국들 내에서 튀르키예의 이미지를 개선시키는 역할까지 하고 있을 정도. 이 걸로 인해 중동 내에서 여행 오는 사람들이 늘었다.
7. 언어
자세한 내용은 튀르키예/언어 문서 참고하십시오.튀르키예인들은 당연히 튀르키예어를 쓴다. 다만, 과거 오스만 제국 멸망 이후 언어 순화 운동을 통해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에서 차용된 단어들을 모조리 사어가 된 고대 튀르크어로 다시 둔갑시켰기 때문에 현대 튀르키예어는 독자적인 어휘가 많은 편이다. 그래도 같은 이슬람권이라는 영향 덕에 아랍어, 페르시아어에서 유래된 외래어가 많이 잔재되어 있으며, 상류층들이 즐겨 사용하던 역사가 있는 프랑스어[4]와 그리스어도 많이 남아있다.
외국어로는 상기한대로 프랑스어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어 프랑스어가 인기이며, 독일어도 튀르키예계 주민가 많이 거주하는 곳이 독일이기에 학습 비율이 높다. 그 밖에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 유럽 언어가 주로 인기다. 그 외에도 불가리아어, 라디노어, 쿠르드어 등도 튀르키예내 소수민족을 중심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프랑스어처럼 잔재가 많은 아랍어는 종교적으로 보수적이고 아랍 난민들이 비교적 많이 거주하는 동부와 남동부를 제외하면 배우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이는 페르시아어도 마찬가지다.
한편, 튀르키예 역시 다른 나라들 못지 않은 한류 열풍 덕에 한국어를 배우는 튀르키예인들도 많다. 게다가 어순도 같고 같은 교착어라 난이도가 쉬운 것도 덤이다. 중국어[5], 일본어를 배우는 경우도 있다.
8. 종교
튀르키예 국민의 대부분은 무슬림이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튀르키예는 라이시테를 도입한 프랑스 못지 않게 매우 강경한 세속국가이다.-
공화국 헌법 서두[6]
어떠한 행동이든 튀르키예인의 이익에, 튀르키예인의 존재에, 정부와 국가가 분열되지 않음을 바탕으로 하며, 튀르키예의 역사와 정신적 가치, 아타튀르크 민족주의, 위대한 원칙과 혁명, 문명화를 수호하는, 세속주의의 원칙에 필요한 정부의 결정과 정책에 어떠한 경우든 개입될 수 없다. -
헌법 제10조
누구든 언어, 인종, 피부색, 성별, 정치적 관점, 사상, 신앙, 종교, 종파 혹은 기타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하며 법 앞에 모든 이들이 평등하다. -
헌법 제14조
헌법에 언급된 권리와 자유는 누구든, 분열될 수 없는 정부와 국가, 민족의 분열을 조장하고, 인간의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와 세속 공화국을 훼손할 목적의 행동을 위해 사용될 수 없다. -
헌법 제21조
모든 이들은 양심, 종교적 신앙, 의견표현에 있어 자유롭다. 제14조에 위배되지 않는 한, 종교의식과 행사는 자유롭다. 누구든 종교의식, 예배, 종교에 참여하고, 신앙에 대한 의견을 표하는 것을 강요받을 수 없으며, 신앙과 의견표현에 있어 누구든 죄가 되지 않는다.
물론 튀르키예인 중 98%는 무슬림이다. 하지만 통계가 실질적으로는 행정적 오류가 있는 것이, 튀르키예에 무슬림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사람의 신분증명 서류를 작성할 때 종교 항목에 별도의 작성이 없거나 따로 언급이 없는 경우 모두 '이슬람교'로 처리해 버린다고 한다. 혹은 신분 서류에 종교가 이슬람으로 기재되어 있어도 실제 본인의 종교와는 상관 없으며 이에 대해 개의치 않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즉, 튀르키예 사람의 98%가 무슬림 이라는 것이 아니라 신분서류를 작성하지 않은 사람과 작성한 사람중 자신이 이슬람이 라고 적은 사람이 98%라는 뜻이다. 실제로 10%는 비종교인이라는 통계도 있다.[7]
튀르키예가 이토록 강력한 세속주의 국가가 된 것은 케말 아타튀르크와 공화주의자들이 튀르키예 공화국을 수립하면서 이슬람을 "낡아빠지고 극복해야 할 이데올로기"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아타튀르크의 종교 배제와 세속화 정책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봐도 상당히 강경했다. 그러나 오늘날 튀르키예인의 민족성을 규정하는 것 중 하나가 이슬람인 것이 현실이기에 이슬람이 튀르키예인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강력해서, 현재도 공화주의자 + 군부와 이슬람주의자의 힘겨루기가 이어져오고 있으며, 튀르키예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갈등은 대개 이슬람 vs 세속주의이다.
에르도안 정부 이후 세속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는 하지만 이슬람 근본주의가 지배하는 인근 지역과 비교했을 때 튀르키예는 그래도 요르단, 레바논, 바레인과 함께 세속주의 원칙이 비교적 잘 지켜지는 나라 중 하나이다. 무엇보다, 케말주의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무작정 근본주의라고 몰아가는 것도 단편적인 억측일 뿐이다. 케말식 세속주의는 영어권이나 독일과 독어권의 정교분리와는 큰 차이가 있으며, 오히려 케말의 영웅적 업적이 프랑스식 라이시테에 섞인 개인숭배에 가깝다. 분명 케말주의의 반대편에는 이슬람 근본주의진영도 있지만, 반케말주의가 곧 이슬람 근본주의인 건 아니다.[8]
그러나 역시 이슬람 근본주의가 이 동네에 없는 건 아니고, 이슬람에 의거한 악습이 일어나고 있어 큰 문제로 지적받는다. 불과 몇 년 전 튀르키예에서 외국인 선교사와 개종자를 빵칼로 썰어서 죽인 사건이 있었는데, 범인은 매우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그 것도 피살자 중에 외국인이 있어서 그나마 처벌하긴 한 거지, 개종했다고 가족들한테 명예살인당하는 경우 정부는 그냥 쌩깐다.
한편 '전통 종교'로써 비록 수는 적지만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계 정교회와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남동부의 마르딘을 중심으로 한 시리아 정교회, 그리고 동부지역의 알레비파, 야지디교도 존재하며, 가톨릭의 경우도 이스탄불과 앙카라, 이즈미르와 안티오키아 교구를 보유하고 있다. 물론 쪽수도 밀리고 세속국가인 튀르키예의 특성상 정치적인 영향력은 없으나 제1야당의 총재가 믿는 알레비파나, 바티칸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 그리고 자국인이 최고지도자인 정교회에 대해 정치, 외교적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 외에도 튀르키예에서도 수피즘을 믿는 경우도 있다.
개신교 선교사들이 튀르키예 여권법을 위반하고 선교행위를 하다가 추방당하는 사례가 많다. 튀르키예와 한국은 상호 90일 관광목적으로 한 비자를 면제했다. 튀르키예는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된 국가이고 선교활동도 '국가안전을 저해하는 사이비, 광신'이 아니면 개인에 한해서는 자유롭다.[9]
하지만 이 단기 비자 면제 기간동안 튀르키예에 입국해서 하라는 관광은 안 하고 선교만 해서 문제가 되는건데, 튀르키예 법상 종교단체나 법인은 무조건 지자치단체에 등록을 해 놓고 인가를 받아야 활동[10]이 가능하다. 실제로 안타키야에서 정부 인가를 받고 사목중인 한국인 감리교 목사도 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치고 빠지는 선교단체들은 이런 규정을 전부 따르지 않기 때문에 입국관리법 위반으로 추방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튀르키예에 거주 중인 한국인에 대해서도 경찰 당국이 꽤 용의주시하는 편이다. 교포 사회에서도 "어떤 사람이 사업가로 들어왔는데 그 회사는 그냥 서류 회사고 사실은 선교사였는데 걸려서 추방됐다더라."와 같은 소리가 자주 들린다. 사실 종교인이 튀르키예에서 활동하려면 '성직자' 자격으로 비자를 받아 거주해야 하는데, 성직자 제도가 없는 개신교는 그 점에서 좀 불리한 면도 있고 당국에서 일부러 개신교 측한테는 이런저런 구실을 대며 활동을 막는 것도 있다.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 사목자들도 튀르키예 내에 존재할만큼 활동 자체가 금지된건 결코 아니다.
8.1. 현황
이슬람 민주주의 성향의 정의개발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집권하면서 튀르키예의 전제적 세속주의가 일부 완화되고 있다. 튀르키예 정부는 여경이 히잡을 착용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밝혔고 2017년 2월 22일에는 여군이 히잡착용금지를 완전히 철폐했다. #1, #2 #그러나 터키공화국 수립 이후, 더 거슬러 올라가면 탄지마트 때부터 형성된 서구화된 엘리트 집단의 문화[11] 자체가 여전히 잔류하고, 히잡 착용을 전근대적이라고 경멸하고 낮잡아보는 풍조 또한 남아있기 때문에 소위 엘리트 집단이라는 관료 사회나 군 장교들 사이에서는 히잡착용을 허용해도 하는 사람이 적으며, 유령신도의 존재와 20-30대 청년 30% 가까이가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라고 대답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파급이 크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당장 튀르키예 회사와 거래할 때조차도 비서나 사무실 직원중에서 히잡착용자는 찾아볼 수가 없거나, 아니면 말단직이라는걸 확인할 수 있다.[12]
2019년 튀르키예 국무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박물관으로 기능하고 있는 카리예 박물관(Kariye Müzesi, 구 성 코라 성당)을 모스크로 환원하는 정책을 집행했다. 카리예 박물관은 15세기의 유서깊은 모자이크화와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어 아야 소피아 대모스크 이상의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고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아야 소피아와 함께 오스만 제국 시대에 전부 회칠되어 모스크로 개조되었으나 전제적 세속주의를 관철한 아타튀르크 내각은 해당 시설에서 정교회든 이슬람이든 일체의 종교의식을 금하고 박물관으로 용도변경해 동로마 시대 예술작품을 부분적으로 복원했다. 그러나 에르도안 정부는 아야 소피아를 시작으로 카리예 박물관 마저도 모스크로 되돌렸으며, 이 정책에 대해 그리스의 허가는 필요없다”며 강경발언을 이어가고 있어 외교 마찰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13] #[14]
그런데 이러한 이슬람화와는 별도로 튀르키예 내에서 활동중인 전통종교들[15]에 대한 활동도 별개로 보장해주고 있기도 한다. 1972년에 세속주의 원칙에 따라 "모든 사립학교들은 공화국 세속주의 원칙에 대한 교육을 시행해야한다"는 법령을 제정했는데 이것에 반발해 해체한 할키 신학교(Heybeli Ruhban Okulu)는 에르도안 집권기인 2013년 이래로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통한 교환학생 및 터키 내 신학생들이 머물면서 사실상 재개교된 상태이다.
그리고 정교회 측에게 과거 박물관으로 쓰이던 트라브존에 위치한 쉬멜라 수도원(Sümela Manastırı)에서 종교행사를 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시리아 정교회에게는 모르 에프렘 성당(İstanbul Mor Efrem Kilisesi)을 이스탄불에다 국고로 지어주었고, 불가리아 정교회에 대해서도 이스탄불에 있었으나 방치되어있던 스베티 스테판 성당(Sveti Stefan Kilisesi)을 복구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는 등 에르도안 정권의 종교정책은 이슬람 일변도는 아님을 볼 수 있다. 또한 정부가 신설한 교육과정인 도덕과 종교에 대한 지식(Din Kültürü ve Ahlak Bilgisi)과목은 이슬람뿐만 아니라 다른 아브라함교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있다.
9. 스포츠
튀르키예 자체가 EU 가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등 사회문화적으로 유럽에 속하기 때문에 월드컵 예선을 포함해 대부분의 스포츠 대회를 유럽 지역에서 치르며, OCA가 아닌 유럽 올림픽 위원회 소속이기 때문에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하지 않는다.축구의 인기가 압도적이다. 특이한 점은 튀르키예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서쪽 끝 이스탄불의 빅3인 갈라타사라이, 베식타스, 페네르바흐체의 인기가 상당하다는 거다. 어느 지역 마트나 시장, 거리를 가도 이스탄불 빅3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튀르키예 축구에 대한 현지인의 자부심도 대단해서,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팬들의 왕성한 활동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이을용, 신영록 등이 튀르키예 리그에 진출했으며 튀르키예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셰놀 귀네슈가 K리그 FC서울 감독으로 부임하는 등 한국 축구와도 어느 정도 교류가 있다. 2021-2022 시즌에는 김민재가 베이징 궈안에서 페네르바흐체로 이적하며, 튀르키예 리그에서 뛰는 한국인 축구 선수가 되었다. SNS나 현지 커뮤니티에서 이적 시장에 대한 현지 팬들의 열성적인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농구도 상당히 인기가 많다. 튀르키예의 프로 농구 리그 바스켓볼 쉬페르 리그는 유럽 빅리그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배구도 인기 있다. 특히 여자배구는 세계 정상 수준의 리그 규모를 자랑한다. 미국의 온라인 배구 전문 사이트 발리우드(Volleywood)의 설립자인 에이스 페르디난드(Ace Ferdinand)는 튀르키예 리그에 대해 "세계 최고 수준의 여자 배구 리그"라고 극찬했는데 현재 이탈리아와 더불어 세계 양대 리그라고 할 정도로 투자 및 인기가 상당하다. 2011~12 유로 챔피언스리그 4강에 들 정도로 남자 배구도 강호급이지만 여자 배구 성적이 더 엄청나서 묻혀진 감까지 있는데 이미 2000년대 와서 여자 배구팀은 배구판 유로파리그인 CEV 챌린저컵과 챔피언스 리그를 여러회 우승하며 이탈리아 리그를 뛰어넘은 적도 있기 때문이다.
챔피언스 리그 여자대회에서는 소련과 이탈리아 다음으로 3번째 결승 진출에 6번 우승으로 3번째 우승 순위까지 차지할 정도로 역사적 라이벌 그리스를 압도한다. 여자 CEV 챌린저컵은 최다 우승으로 넘사벽인 이탈리아 다음으로 10번 결승에 올라가 우승 4번을 해볼 정도. 여자배구도 축구와 마찬가지로 빅3가 있는데, 바키프방크 SK, 페네르바흐체 SK, 엑자시바시 비트라이다. 사실상의 바키프방크 독주 체제에 페네르바흐체와 엑자시바시가 위협적으로 치고 올라오는 형국. 그 밖에 갈라타사라이, 베식타슈 등 축구 클럽과 함께 운영되는 팀은 현지 인기가 상당한 편이다.
튀르키예 여자배구는 대한민국을 넘어 여자배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김연경이 페네르바흐체 SK에서 7년간 뛰었었기에 대한민국 배구 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2012년 2월에 열린 2011~12 유로 배구 챔피언스리그 8강전인 라비키 바쿠( 아제르바이잔 리그 팀으로, 2010년대 초반까지는 아제르바이잔 리그 역시 세계적인 리그 중 하나였다.), 4강 디나모 모스크바(러시아 리그 팀)를 상대로 각각 19득점, 32득점을 올리며 결승으로 팀을 견인하였다. 그리고 결승인 RC 칸(프랑스 리그 팀)에서도 23득점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하며 클럽 역사상 처음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이루며 득점왕과 MVP까지 휩쓸었다. 이후 또 다른 3강 중 하나인 엑자시바시 비트라에서 2년간 뛰었다.
'포켓 헤라클레스'라 불린 역도 선수 나임 쉴레이만오울루(Naim Süleymanoğlu)가 망명한 나라이기도 하다. 원래 불가리아인이었지만 나중에 튀르키예로 망명하여 1988 서울 올림픽,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6 애틀랜타 올림픽, 2000 시드니 올림픽 등 4번의 올림픽에 나갔는데,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인간은 자기 체중의 3배 이상은 들 수 없다라는 학설을 깨고 자신 체중의 3.18배를 들어 당시 세계신기록을 세운 선수이다.[16] 그 이후에도 쭉 금메달 행진을 이어나가며 올림픽 3연패라는 어마어마한 경력을 남겼다.
레슬링에서도 강호다. 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에서 금메달 11개로 역대 5위. 자유형은 금 17개로 역대 4위.
e스포츠로는 리그 오브 레전드 리그인 TCL이 있다. 플레이-인 수준에서는 상위권으로 평가받지만, 메이저와는 수준이 꽤 많이 차이 난다. 그래도 2020년 롤드컵에서 Papara SuperMassive가 LEC의 MAD Lions에게 4대 메이저 리그 첫 플레이-인 탈락이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안겨준 바 있다.[17] 그 외에 포트나이트는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고 대전 격투 게임 쪽인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나 철권 시리즈는 유저층에 매우 부실하고 작은 편이라서 완벽한 불모지 취급을 받는다.
프로 스포츠계에 임금체불 문제가 만연하다. 세뇰 귀네슈가 베식타스 JK 감독 시절 튀르키예 축구계에 임금 체불이 만연하다고 폭로한 적도 있고, 김연경도 튀르키예에서 체불문제를 겪은 적이 있기에, 친정과도 같은 페네르바흐체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2019년에는 Galatasaray Esports의 임금체불 문제가 불거졌다. 튀르키예는 정해진 급여지급날짜가 없어 한팀내 이선수와 저선수가 받는 급여날짜가 다르고 급여받고 다음 급여받을때까지 8주 이상 걸렸다가 그 8주후 급여받은뒤 바로 10일만에 또 받을정도로 간격도 고무줄이다.
한국의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 같은 응원 구호처럼 튀르키예에도 특유의 응원구호가 있다. 이쪽은 박수를 먼저 세번 친 다음, 튀르키예!(Türkiye) 를 외친다.
G20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국제 종합 스포츠 대회 개최 경험이 없다. 14개 국가는 하계 혹은 동계 올림픽 개최 경험이 있고, 인도 (2회), 인도네시아 (2회), 사우디아라비아[18]는 아시안 게임 개최 경험이 있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프리칸 게임, 아르헨티나는 팬아메리칸 게임 개최 경험이 있다.
10. 튀르키예에서 주의해야 할 것들
1. 집에 들어갈 때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대한민국과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튀르키예인들에게 신성한 사원에 들어갈 때에도 신발을 벗어야 한다. 대한민국과 달리 튀르키예의 집은 현관이 움푹 파이지 않고 평평한데, 신발은 벗어서 다른 신발들이 놓인 카페트 위에 놓으면 된다. 아니면 그냥 현관 앞에서 벗고 들어가도 된다. 만약에 집주인과 가족들의 신발이 현관 앞에 가지런히 놓여있다면 이렇게 하면 된다.[19]
2. 신발을 벗을 때 절대로 신발을 겹쳐 놓으면 안 된다.
튀르키예인들은 집에서 신발이 서로 겹쳐져 있으면 그 집 주인에게 불운이 따른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집 문지방을 넘을 때도 왼발부터 넘으면 안 된다는 금기가 있다. 젊은 튀르키예인들보다는 기성세대 튀르키예인들이 믿는 미신이긴 하지만 주의할 필요는 있다. 몇 가지 미신을 더 소개하자면, 튀르키예에서는 다른 사람을 칭찬하거나 좋은 말을 하면 이를 시기하는 지니(악령)가 훼방을 놓는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이러한 말들을 하기 전에 항상 'Maşallah(마샬라 - 하나님의 보호가 깃들기를)'라고 말한다. 이러한 진들을 쫓아낼 수 있는 것은 푸른 눈동자를 가진 사람으로, 푸른 눈동자를 가진 사람이 드문 튀르키예에서는 푸른 눈동자 모양의 부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기념품으로도 판다. 무언가 위험한 일을 할 때 '알라의 이름으로' 라는 뜻의 "Bismillah"(비스밀라)라고 말하고 오른발부터 딛는 풍습도 있다. 그리고 손님과 작별할 때 주인은 안전한 여행이 되길 바라며 물 한 바가지를 땅바닥에 쏟는 풍습이 있다. 한국인의 경우 ' 소금 뿌리는 것'과 연관지으며 오해할 수 있지만, 집주인은 좋은 뜻으로 한 행동일 뿐이다.
3. 튀르키예에서는 존경의 뜻으로 웃어른의 손이나 이마에 키스를 하는 풍속이 있다.
웃어른을 보면 그렇게 하자. 특히 손등에 키스하고 그 손을 자신의 이마에 갖다대는 것은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존경을 의미한다.[20] 동성 간에 서로 뺨에 키스하거나 손을 잡고 걷는 모습도 볼 수 있지만, 그냥 친한 사이일 수 있으니 연인관계로 단정할 수 없다. 사실 터키에서는 이성 간의 키스를 공공장소에서 노출시키는 것이 금기시된다.[21]
4. 물건을 줄 때나 악수를 할 때, 항상 오른손만 사용해야 한다.
튀르키예어로 왼쪽은 '거짓된', '그릇된'이라는 부정적인 뜻도 갖고 있고 전통적으로 왼손은 불결한 손으로 여겨 왔다. 이건 인류 문화 전체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어에서도 현대국어에서는 사어화 되었지만 '외다'라는 말이 '그릇되다'란 말로 쓰이던 용법은 조선시대까지 남아 있었고, 오른손이나 오른쪽을 '바른손', '바른쪽'이라 부르는 관습은 아직도 남았다.("옳은→오른"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인도에서도 왼손은 볼 일 보고 뒤 닦는 손이다. 영어에서도 'right'와 'left'의 의미 중 방향을 제외한 의미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똑같이 방향을 의미하는 라틴 계열의 영어인 'dexter', 'sinister'도 마찬가지.
5. 튀르키예에 유학하거나 이민 가는 경우, 처음 이사를 오면 이웃집에 인사를 하는 것이 좋다.
인사를 하면서 한국에서 떡을 돌리는 것과 같이 보통은 사탕이나 과자, 단출한 음식을 돌린다. 이러한 음식을 받을 경우, 빈 접시를 돌려줄 때 접시를 빈손으로 돌려 보내는 것은 실례고 사탕 같은 것을 담아서 돌려주면 된다.
6. 튀르키예인들과 말하다 보면 턱을 들어 올리면서 입을 내밀고, '쯧' 하는 소리를 낼 때가 있다.
이것은 아니다/없다 라는 뜻의 부정형 표현이다. 고개를 가로젓는 것은 '모른다'는 뜻이다.
7. 결혼한 부부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절대로 아내의 외모를 칭찬해서는 안 된다.
튀르키예 남자들은 손님이 아내에게 흑심을 품는다고 믿을 수 있다. 아내를 칭찬하되, 외모와 관련없는 부분으로[22] 돌려서 칭찬하는 것이 예의 바른 행동이다.
8. 이슬람 사회에서 비 무슬림, 무신론자와 기독교인에 대한 경멸이 꽤 심한 편이다.[23] 튀르키예는 비교적 세속적이라지만[24] 대다수의 튀르키예인들은 무신론자에 대해 경멸까진 아니더라도 '세상에 뭐 저런 놈이 다있어?' 같은 표정으로 쳐다볼 확률이 매우 높다.[25] 앙카라는 세속주의의 중심지이며, 오래전부터 정착한 지역이라 그렇겠지만, 비이슬람 국가와 비교했을 땐 여타 이슬람 국가와 마찬가지로 종교색이 강한 편이다. 튀르키예인들의 생활 습관부터가 이슬람 전통에 따라 움직이며, 때때로 사고방식에서도 이슬람적이다. 튀르키예의 정치 풍토에서도 좌우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종교일 정도. 현재 튀르키예의 집권정당인 정의개발당은 보수주의 중도우파 영역에 속하는 정당이며, 그들이 종교색이 없다고 주장할지라도 실제로 튀르키예에서 종교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증가하는 중이다.[26] 가령 사립 종교학교인 이맘 하팁학교만 해도 2009년 이해 몇 년간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이며, 에르도안 총리가 한 이맘 하팁학교에 가서는 "공화인민당은 쿠란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다." 개드립을 칠 정도. 하지만 2020년대에 들어 90년대 중반이후에 태어난 세대 기준[27]으로는 당당하게 공식적으로 무교라고 밝히고 있는 비율이 늘고 있어 에르도안 정부가 강제로 이슬람주의로 드라이브 시키지 않는 한은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신정국가가 될 가능성은 적어보인다.
10. 제스처에 주의해야 한다.
한국처럼 엄지손가락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는 제스처는 같은 뜻의 욕설이고, 엄지와 검지를 고리모양으로 만드는 모양 또한 마찬가지 뜻의 욕설이다.
훌륭하다, 좋다'라고 말하고 싶다면, 다섯손가락을 한데 모아 위쪽을 가리키면 된다.
이 동영상을 참고.
11. 아타튀르크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튀르키예인들의 아타튀르크 사랑은 정말로 극진한지라, 조금의 험한 소리도 용납하지 못한다. 특히 아타튀르크에 대한 욕설과 비난은 현지법으로 처벌도 가능하다.[28] 항목에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아타튀르크는 한국사에 비유하면 이순신(외적 격침), 세종대왕(문자체계의 혁신), 독립운동가[29]급의 업적을 이루어 80여년이 흐른 2020년대에도 존경받는 국부급 위인인데 욕한다는건 우리나라에서 저 사람들을 욕하는 거나 마찬가지로 튀르키예인들 앞에서는 쿠르드족, 키프로스, 아르메니아 문제를 꺼내지 않는 것이 여러모로 신상에 이롭다.
12. 길거리 여기저기에 옛 느낌을 풍기는 찻집은 비공식적 남자 전용 공간이다.
여자가 들어가지 말란 법은 없지만 주변 남자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은 감수해야 한다.[30] 튀르키예 남자들은 시간여유가 날 때마다 찻집이나 커피집에 가서 이웃사람들과 수다를 떨거나 프로 축구 경기를 보거나 체스, 백개먼 같은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여자들은 하맘(Hamam)이라고 부르는 목욕탕에 가서 다른 여자들과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낸다. 장성한 아들을 둔 아줌마들의 경우 하맘에서 며느리감을 찾기도 했다.
참고로 튀르키예에서는 차를 마실 수 있는 찻집이 크게 세가지로 불린다. 원래는 "독서실"이라는 의미로 쓰였지만 현재는 아무도 들어가서 책을 읽지 않고 차를 마시는 크라앗하네(Kıraathane)는 영감님들 사랑방 같은 느낌이 드는 남자 전용공간이다. 애초에 안을 들여다보면 죄다 중년 이상의 아재들이나 영감님들이 죽치고 앉아 카드놀이나 백개먼이나 오케이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차이 에비(Çay evi) 혹은 차이 바흐체시(Çay bahçesi)라고 불리는 찻집은 보통 가족단위로 놀러오는 곳이라 공간도 크고 바흐체(정원)라는 말이 붙은 만큼 야외정원이나 뒷마당도 있다. 이런 곳은 보통 Aile salonu bulunur(가족 공간 있습니다)라고 광고하기도 한다. 이곳은 남녀가 함께 들어가거나 여자들끼리 들어가도 무방하다. 마지막으로 카페(Kafe)가 있는데, 이곳은 주로 젊은 남녀가 들어가는 곳이다. 커플들이 꽁냥꽁냥 염장질하는(...) 곳으로도 이용된다.
13. 선물을 받았을 때, 절대로 거절하거나 선물을 되돌려 보내서는 안된다.
명예와 겸손을 중요시하는 튀르키예인들에게 이만큼 무례한 행동도 없다. '자신의 정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거절한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 그렇다고 무언가를 대접받았을때 무조건 덥석 받아먹는 것도 실례이다. 체면치례로 하는 말도 있기 때문에. 보통은 몇 번 어정쩡하게 거절을 하고 3번째에야 "괜찮은데, 정 그러시다면…" 식으로 받는 것이 예의이다. 선물을 받을 때에도 "뭘, 이런 걸 다…" 식으로 대꾸하고, 손님이 가고 나서 열어 본다. 또한 선물을 줄 때에 칼 같은 물건을 피하는 것은 한국의 풍습과 같지만, 선물로 절대로 돈이나 상품권 같은 걸 주어선 안 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심지어 물건을 사고 나서 돈을 건넬 때도 직접 주지 않고, 테이블 위에 놓고 상대방에게 가져가게 할 만큼[31] 돈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꺼린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수입이 얼마인지 묻는 것도 매우 큰 실례다. 어른들로부터 무언가를 받을 때 처음에는 사양하는 게 예의임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14. 과거 튀르키예를 칭하는 'Turkey'라는 영단어를 칠면조를 지칭하는데 사용해서는 안된다.
문서 상단에도 나와있듯 터키는 영어로 칠면조를 뜻하기도 하고, 옛 튀르키예의 공식 명칭이기도 한데, 자신의 전 국명 이름을 말장난을 하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칠면조는 힌디라고 부르도록 하자.
15. 시리아 국경지대는 절대 가면 안 된다.
시리아의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세력을 만날 수 있고 내전 중인 국가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국경지대 일정구역 이상으로 진입하면 검문소가 있고 튀르키예군이 상당히 빡세게 검문한다. 애초에 방문목적이 분명하지 않거나 단순 관광일 경우 통과 자체가 안되며, 심지어 의심스러울 경우 구속 및 추방도 가능하니 요주의. 특히 2020년 현재 올리브 가지 작전이 벌어지고 있는 하타이, 킬리스 도의 시리아 접경지대와 PKK 진압작전이 벌어지고 있는 튀르키예 동부 쿠르디스탄 학카리, 시으르낙 지역은 현지인들도 소개된 지역들이기 때문에 외부인 출입 자체가 금지이다. 몰래 들어갔다가 테러리스트 동조자 혹은 테러리스트로 몰릴 수도 있으며 테러를 당할 위험이 매우 크다.
11. 성문화
아직까지 튀르키예에 보수적인 생활 습관이 있다. 관광지에서는 별 상관 없을지 몰라도 이스탄불, 앙카라를 벗어난 시골에서는 커플 간 스킨십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여자들의 경우 히잡까지는 할 필요 없지만 시골 지역의 경우 핫팬츠나 미니스커트 및 살을 내놓는 옷차림은 눈치 보일 수 있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카파도키아 지역도 터키 내에서 굉장히 보수적인 지역으로 유명하다.[32]튀르키예에 가보면 세속적인 느낌이 들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이슬람 중동 국가처럼 꽤 여성들에게 보수적인 것을 강요한다. 하지만 외국 여성들에게는 문란하다. 어차피 결혼 안 할 여성들이고 엔조이 인식 때문이라 여자를 무지 밝힌다. 특히 동양인 여성에 대한 섹스 판타지가 심해서 여자들을 꼬드기거나 성범죄를 일삼는 튀르키예 남자들이 많다.
좀 더 부가 설명하자면, 튀르키예의 경우 한 나라 안에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는 것처럼 극단적으로 사람들의 성향이 갈린다. 대체로 부유한 가정은 철저하게 유럽식으로 입고 생활하며, 서민 가정들이 상당히 보수적[33]이다. 그리고 이러한 케말주의+세속주의 성향의 부유층 엘리트들의 보수적이고 무식한 서민들에 대한 경멸 의식도 대놓고 엿볼 수 있다. 때문에 TV나 각종 매체에서 볼 수 있는 튀르키예의 일상생활은 굉장히 서구적이고 세련되어 보이지만 실제 피부에 닿는 튀르키예의 모습과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다른 건 다 접어두고 이게 에르도안의 장기집권의 비결이기도 하다.
단순히 여행만 하는 사람들은 거의 알 수 없지만, 사실 여기서도 젊은층은 굉장히 성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다. 일단 결혼하지 않은 남자와 여자가 동거, 혼숙은 물론 같은 공간에 앉아있는 것조차도 간통으로 여기는 이슬람 국가들이 많은데, 튀르키예에서는 아무리 보수적인 집안이라도 단순히 손님으로 앉는 건 딱히 문제 삼지 않고, 다른 지방에서 대학 생활을 할 경우 기숙사에서 살지 않는 이상 필연적으로 자취를 하게 되는데 동거하는 커플을 은근히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혼전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보다는 흔한 편이다. 특히 서부 지방으로 갈수록 무늬만 이슬람인 나이롱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 쉽게 볼 수 있다. 단 히잡을 착용하는 여성은 보수적인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튀르키예에서도 남자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칼을 선물로 주기도 한다. 시골 지방에서는 아직 이어지는 풍속으로, 아버지가 갓 성년이 된 아들에게 칼 혹은 총과 함께 화대(!)를 선물로 준다.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까 남자답게 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는 나이 25살까지 여자랑 섹스해 본 적 없는 동정은 남자 구실도 못하는 계집애 병신 소리 듣기 딱 좋다.
그런데 여자들에게는 결혼 전까지 순결하길 기대하는 남자들이 절대 다수인데, 이를테면 혼인한 부부가 첫 경험을 보내는데 신부의 혈흔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걸로 이혼 사유가 되기도 한다.한편 여자아이가 어른이 되면 어머니가 새 옷을 사 주는 풍속이 있으며, 여자아이를 둔 집안에서는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혼례일 새 살림 차릴 때 쓸 혼수품을 조금씩 사 모으는 관습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부연설명을 하자면, 튀르키예의 처녀막수술은 서남아시아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국가이다. 튀르키예보다 훨씬 보수적인 아랍권 국가들과 이란출신 여성들이 튀르키예에 와서 처녀막수술을 받고 갈정도로 이 부분에서 인정받는다. 이런점 때문에 튀르키예 여자들의 경우 부모님 몰래 안보이는 곳에서 성관계를 몰래하며 처녀시절 즐길 수 있는 것을 다 즐기고 결혼하기 전 처녀막 수술을 받고 결혼하는 것이 흔하다. 쉽게말하면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보수적인 척하고 뒤로는 이른바 호박씨까는 곳이 튀르키예 사회이다.[34]
튀르키예 남성들은 ' 남자다움'을 상당히 중시하고 강요하는 마초적인 분위기가 심하다. 덕분에 남자답지 못한 점을 지적하면 상당히 언짢아 한다. 그리고 일부는 꼴마초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아, 집안일은 요만큼도 할 줄 모르는 걸 당연시한다. 물론 모든 튀르키예인들이 다 꼴마초스럽다고 생각하는 것도 일반화의 오류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자. 튀르키예도 도농간 문화적 격차가 극심한 국가중 하나인 만큼 지역에 따라 천지 차이다.
12. 국민성
예로부터 수많은 민족들이 거쳐가고, 함께 거주하면서 각 지방마다 문화가 제각각 다른 튀르키예지만, 튀르키예의 보편적인 문화코드를 세 단어로 정의하자면, 명예(Şeref), 환대(Misafirperverlik), 이웃(Komşu)으로 정의할 수 있다.튀르키예인에게 있어 명예는 자기 자신의 체면 뿐만 아니라 다른 이를 배려하고 베푸는 마음, 아량을 가지고 잘못을 덮어주는 마음, 어른을 공경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마음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낯선 손님을 환대하고 대접하는 문화가 보편적이라 처음보는 사람에게조차도 마음을 열고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지낸 친구인양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게 튀르키예인[35]들이다. 물론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이런 환대의 문화도 옛날 같지만은 않지만 상업화된 관광지를 벗어나면 튀르키예인들의 환대 문화를 여전히 느낄 수 있다. 많은 집들이 손님이 오면 묵고 갈 수 있는 손님 전용방을 갖추고 있으며, 심지어 손님방은 거실 다음으로 화려하고 장식이 많이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명예와 환대의 문화를 바탕으로 이웃과의 끈끈한 관계도 튀르키예 문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속담에 "집이 아니라 이웃을 사라" (Ev alma, komşu al.)는 말이 있을 만큼 대도시에서조차도 튀르키예인의 이웃 문화는 매우 끈끈하다. 이웃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정도는 기본으로 알고 있고, 이웃의 생일이나 대소사, 기념일까지 다 챙겨주는 동네도 있을 정도. 전통적으로 튀르키예인들은 한곳에 터를 잡으면 웬만해선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기 때문에 한 번 이웃은 적어도 수십 년 얼굴 보고 살 것을 가정하기 때문에 일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친척보다 더 가깝게 느껴 이웃과의 관계가 웬만한 친척 이상으로 두터운 것이다.
튀르키예에서 이웃이나 친척들과 가깝게 지내는 문화가 발달한 대신 이에 따른 부작용도 크다. 흔히 데디코두(Dedikodu)라 불리는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지 않도록 하자.
[1]
튀르키예 대중 문화가 영향력 있는 유럽 지역은
남동유럽(
발칸반도)과
아르메니아를 제외한
구소련권이다. 그 외
스페인에서 일부
튀르키예 드라마가 흥행하긴 했지만 남동유럽(발칸반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건 아니다.
[2]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3]
튀르키예 드라마를 보는 아내와 딸이 타락할까봐 반대한다.
#
[4]
예를 들어, Excuse me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의 Pardon은 튀르키예어에서도 사용된다.
[5]
표준 중국어
[6]
2001년 10월 3일, 제4706/1국회결정
[7]
이 문제는 예산 문제와 관련이 있다. 튀르키예 내의 종교 기관의 관리는 이슬람 종파들(특히 순니파)은 튀르키예 공화국 종무부(T.C. Diyanet İşleri Bakanlığı)에서 총괄하는데, 지역, 인구 비율로 정부 예산이 배당된다. 그래서 종무부 측에서는 신자수가 많을 수록 더 많은 예산을 타낼 수 있고,
모스크 수가 더 많을 수록 자기 쪽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명확하지 않거나 심지어 무슬림임을 대놓고 부정하는 사람들도 일단은 호적상 무슬림으로 잡고 예산을 타내는것이다. 2021년 현재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는 모스크 신축사업이나 개선사업에 막대한 예산이 투자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며, 이는 예산착복, 부정회계 같은 부패와도 연결된다.
[8]
후술하겠지만, 에르도안이 이슬람 원클릭인 것도 아니다.
[9]
즉 기독교인(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포함)인 개인이 이웃사람에게 "예수 믿어라" 하는건 죄가 아니라는 소리다. 중동 이슬람국가들 중에서는 이것도 죄로 여기는 곳들도 많다.
[10]
이거가지고 기독교 차별한다 운운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어서 하는 말이지만, 튀르키예 내에서 활동하는 종교단체 및 법인은 이슬람교라도 무조건 등록 및 인가를 받아야만 활동할 수 있다. 오히려 아랍권, 이란에서 오는 이슬람 종교단체나 법인 중에는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정부에서 더 용의주시하게 감시하는 중이며, 이슬람의 경우 모든 종교단체 및 법인이 공화국 종교부의 심의를 거쳐야만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빡쎄다.
[11]
이 집단은 흰 튀르크(Beyaz Türk)라 불리며
보리스 존슨의 증조부인 알리 케말 베이가 그 예시이다. 반대 개념으로 검은 튀르크(Siyah Türk)가 있다.
[12]
2020년에 튀르키예의 12개 주와 18개 지구에서 표본으로 1,062명을 대상으로 터키 Z 세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전체 조사자중 28.5%가
무교라고 밝혔다고 한다. 사실 튀르키예가 Z세대 이전에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말로만
무슬림이라고 밝혔을 뿐이지 무슬림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였는데, 오히려 에르도안이 20년 넘게 독재를 하는데도
2020년대 기준으로 당당하게
무교라고 밝히는 젊은 인구가 늘었다는 것은
에르도안이
이슬람주의자라기 보다
표퓰리스트에 더 가까운 정치인으로 보는게 맞는 셈이다. 사실 튀르키예에서 한동안 아무리 기도를 하루 5번씩 안하고
라마단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어디가서
무교라고 입밖으로 꺼내고 다니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 조차도 없어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13]
다만 이 정책에 대해 그리스는 어떠한 간섭도 할 수 없는 것은 상식의 영역이다. 그리스가 비록 비잔티움 제국을 계승한 나라인 것은 맞지만 아야 소피아와 카리예 박물관의 환원은 어디까지나 튀르키예의 주권 사안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역으로 그리스도 오스만 제국시절 튀르키예인들이 지어둔 모스크들을 폐쇄하거나 철거를 한 전적이 적지않으며 역시 불가리아도 모스크를 파괴, 폐쇄를 강행하였다.
[14]
또한 덧붙이자면, 2022년 현재까지 박물관에서 모스크로 전환된 건물들에 대해서는 기존의 이콘이나 전시물에 과거처럼 회칠을 하거나 부수는건 결코 아니다라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현재 카리예 모스크는 복원공사가 한창이라 아예 들어가지 못하고, 추후 복원이 끝나도 성화가 없는 작은 공간만 모스크로 쓰고, 남은 부분은 기존처럼 개방하기로 방침이 정해졌다. 또한 아야소피아도 현재 복원이 진행중이고 1층만 개방하고있는데, 1층에서도 예배가 가능한 부분은 미흐랍 바로 앞 일부만으로 제한하고, 나머지 공간은 기존처럼 방문이 가능한 상태이다. 이곳도 2층 복원이 마무리되면, 1층은 모스크로 쓰되, 주요 모자이크들이 있는 2층은 박물관 시절처럼 개방하기로 방침이 정해졌다.
[15]
정교회, 가톨릭, 시리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유대교
[16]
하지만 당시 약물검사가 미흡했고, 올림픽에 나온 다른 선수들의 약물이 점점 적발되기 시작하자 역도연맹에서
2000년 이전의 기록을 말소했다. 결국 이 기록은 세계신기록으로 남지 못했다.
[17]
그리고 그 MAD Lions 격침의 선봉장이었던
아르무트는 아이러니하게도 롤드컵 이후 MAD Lions로 이적했다.
[18]
2034년 개최 예정.
[19]
물론 한국과 비슷해서 큰 차이는 없다.
[20]
단, 정말 나이가 많거나 존경받을만한 사람에게 하는 것. 아무한테나 하는 건 아니라 한다.
[21]
한국 역시 10~20대 여성들이 팔짱을 끼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간혹 외국인들, 특히 스킨십을 자제하는
일본인들은 이걸 처음 보면 "
한국이 이렇게
레즈비언이 많은 나라였어?"하고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외국에서 태어났거나 혹은 외국에서 몇 년만 살면 한국에서 여자끼리 팔짱 끼고 다니는 게 어색하다고 느끼게 된다.
[22]
예를 들면 요리 실력이라든가.
[23]
실제로 1970년대
중동에 파견되던
한국인 노동자들의 종교는 일률적으로
불교였다. 이슬람이면 제일 좋아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종교가 아예 없는 것보단 불교든 뭐든 있긴 있는 걸 훨씬 좋게 본다. 사실
불교라고 통일한 것은,
무신론자 말고도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일하러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아랍에 가서 열성 기독교 신앙을 자랑하며
아랍인들에게 선교하던 노동자들도 일부 있었다. 그리고 그 날부로 해고되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24]
이 '세속적'이라는 말 역시도, 종교 율법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뜻이지 무신론적 생활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마치 미국과 유럽의 어르신들이 교리적으로 엄격하지는 않고 널널하게 살지만, 그렇다고 그리스도교적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25]
튀르키예를 포함해서 이슬람권의 종교 인식은, "이슬람이 최고지만, 다른 종교 중에선 그나마 그리스도교랑
유대교가 낫다.
다신교는 안좋지만, 그래도 무신론보다는 훨씬 낫다" 정도이다. 즉 그리스도교이든 다신교이든, 사람이라면 그래도 종교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도 다짜고짜 죽이려고 달려드는 중동의 광신도들보다는 낫다.
[26]
그러나 튀르키예에는
아타튀르크 시절 강경
세속주의 정책의 흔적
종교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은 아예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되는 규정이 있다. 실제로 에르도안의 前 소속 정당이었던
복지당 또한 이런 식으로 해산되었다. 그래서
정의개발당또한 이 규정 때문에 대놓고 종교주의를 못박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
[27]
튀르키예의 Z세대로 이슬람에 대한 반감이 매우 큰 세대이다. 이전 세대는 그래도
이슬람에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밖에 나가서는 남들 앞에서
이슬람을 잘 지키는 척이라도 했다면, 튀르키예의 Z세대는 그런 것 조차도 매우 싫어한다.
[28]
튀르키예 의회에서 정한 법으로, '아타튀르크라는 이름을 언급하며 그를 비난하는 건 위법' 이다. 또한 그의 동상이나 기념비는 어지간한 도시마다 있는데, 그걸 훼손하는 것도 위법. 참고로 대단한 건, 튀르키예 의회가 아타튀르크 추종 세력의 협박이라거나 하는 걸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제정했다는 것.
태국에서 국왕과 왕실을 절대 비판, 비판해서는 안되며 역시 모독죄로 처벌받는 것과 똑같다.
[29]
김구,
김규식,
안창호,
안중근 등
임시정부 계열 지도자
[30]
몇십 년 전 한국의 동네 이발소나 기원, 지구당 사무실, 라이온스클럽 같은 영감쟁이들 커뮤니티를 떠올리면 편하다. 여자가 들어가지 말란 법은 없지만 가게 된다면 모든 사람이 주목하는 가운데 "무슨 일로 오셨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비슷한 말을 듣게 될 것이다.
[31]
돈을 빌렸다가 돌려줄 때에도, 혹은 빌릴 때에도 그 사람과 헤어지기 직전에 "아 잊은 게 있었지!" 식으로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하는 게 보통이다.
[32]
카파도키아 주변 튀르키예인들이 모여사는 마을은 보수적이지만 관광지 주변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서 개방적이다.
[33]
웬만한 나라들은 상류층이 더 보수적인데 튀르키예는 예외인 나라중에 하나이다.
[34]
만약 시간이 흘러 튀르키예가 안정적으로
경제 발전에 성공한다면,
남유럽 대표국가인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처럼 기혼자의 문화 정도만 보수적으로 남고 미혼자의 문화는 대놓고 개방적인 성문화가 자리 잡힐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 중에서 포르투갈은 보수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튀르키예보다는 옅은 편이다. 튀르키예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절대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면 포르투갈은 굳이 말하지 않는 정도. 남유럽 국가들도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전
1970년대 -
1980년대에는 튀르키예처럼 부모나 윗세대 앞에서는 정숙한 척 뒤에서는 즐길 것 다 즐기는 문화가 존재했었다. 그러면서
EU에 가입하고 선진국으로써 인정받자 미혼자들의 연애문화 만큼은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개방적이고 관대한 문화로 바뀌었던 것이다. 이들과 비슷한 기후대에 위치해 있고 전통적으로 체면과 종교적인 규범을 중요시 한다는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볼 때 튀르키예 또한 현재 남유럽 여러 국가들이 겪고 있는 저출산, 동거확산, 인구절벽, 세대와 성별 갈등 등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35]
사실
남유럽 국가와
프랑스의 문화가 대체적으로 이런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