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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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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음악4. 국민성5. 언어6. 종교7. 성문화8. 영화9. 문학10. 축구11. 그 외의 스포츠

1. 개요

포르투갈은 문화, 언어 등 모든면에서 스페인과 매우 비슷하지만 좀 더 차분하고 서정적이고 덜 격정적이란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갈리시아도 포르투갈과 문화적으로 매우 가깝다. 스테레오타입은 스테레오타입 뿐이고, 현지인들은 달가워하지 않지만 사실 외부인의 관점으로 보면 큰 역사적 흐름이나, 문화적 경향이나 '좀 차분한 스페인'이란 이미지가 딱히 틀리다고도 보기 힘들다.

다만 다른 면에서 큰 문화 사회적 궤적은 스페인과 비슷한 면이 많은건 사실이지만 실질적으로 근본은 다민족국가고, 지방간 통합 과정도 늦었고 더디었으며 지금도 사실 '지역감정'이란 단어 자체가 적절하지 않을만큼 민족간 갈등이 심한 스페인과 달리 포르투갈은 비교적 작은 나라지만 포르투갈 안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이고 일찍 중앙집권 국가와 통합된 민족 정체성을 이룩했다.

카스티야, 카탈루냐, 바스크, 아스투리아스, 레온, 갈리시아, 안달루시아, 전부 자기네 지방이 얼마나 훌륭하고 독자적인 문화와 근본을 자랑하며 떠들기 좋아하고, 일부 지방에선 아예 본격적인 정치적 분리주의로까지 퍼지는 스페인과는 달리 포르투갈은 남북간 경제적 격차에 따른 미묘한 갈등 의식 빼곤 지역갈등이나 독자의식이 그렇게 강하진 않다.

애초에 나라가 작고 어느 지방에 뭐가 발달했는지도 뻔한지라 옛날부터 포르투갈 내에선 출신지가 어디든간에 공부하고 싶으면 코임브라, 정치하고 싶으면 리스본, 장사하고 싶으면 포르투로 가야하는 건 마찬가지여서 포르투갈 자국 내 통합은 스페인과는 비교 자체를 거부하고, 오히려 프랑스나 네덜란드처럼 유럽 전체 기준으로 봐도 일찍 이루어진 편에 속한다.

당장 카탈루냐어, 갈리시아어, 이건 뭐 어디서 튀어 나왔는지 알지도 모를 바스크어 같은 독자 민족어를 제외하고 카스티야어 안에서만 봐도 사투리간 차이가 크고, 안달루시아란 한 지역 안에서만 해도 세비야 일대 저 안달루시아(Baja Andalucía)와 말라가 일대 고 안달루시아(Alta Andalucía) 간 방언 차이가 큰 스페인과는 대조적으로 포르투갈 안에서는 지역간 방언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포르투갈은 작은 나라지만 적어도 자국 안에선 상당히 일찍부터 안정적으로 통일 국가를 이루었다는 점은 지금까지도 통합된 국민 국가 정체성 형성이 요원해 보이고 나라 안에선 지역간 차이가 일상적으로 크게 체감할 수 있는 스페인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2. 상세

서유럽 국가들[1] 중에서 컬러 텔레비전 본방송 개시가 늦었던 나라이기도 하다.[2] 포르투갈의 컬러 텔레비전 본방송 개시일은 1980년 3월 7일. 한국보다는 9개월 정도 빨랐다. 공영 방송사는 RTP.

포르투갈인들은 외세의 문화적 개방이 비교적 진보적으로 발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유 문화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이다. 이 덕분인지 실제로 포르투갈은 국내의 인지도에 비해 독창적인 고유의 문화가 많이 포진한 편이다.

포르투갈의 전통문화 중 전통적인 포크 댄스는 여전히 포르투갈인의 자존심으로서 전수되고 있으며, 각 지방에서는 축제의 전통도 잘 지켜지고 있다.

16세기 동안 건축에서는 마누엘 1세(Manuel I)의 이름을 따서 붙힌 매뉴린 양식이 유행했다. 이 양식은 이 시대를 풍미했던 개발과 개척 정신의 반영으로 장식에 있어서 트위스트와 소용돌이를 주제로 하는 것이 특색이다.

장식용 타일인 아줄레주(azulejo)[3]는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공예품이다. 원래 무어족에게서 전수받은 것으로 포르투갈 전역에서 쉽게 볼 수 있고, 리스본에는 아줄레주 박물관도 있다.

근처에 대학이 있다면 대학생들이 정장에 망토를 입고 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포르투갈에 잠시 거주했던 작가 JK 롤링이 여기서 해리 포터 마법학교의 교복의 영감을 얻었다. 또한 이들 대학생들 여럿이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투나(Tuna)라고 부르는 밴드로 중세시대부터 내려온 음유시인의 전통을 잇고 있다.

술은 만 16세부터 마실 수 있다. 한국으로 치면 고1 때부터 음주가 가능하다는 뜻.

포르투갈은 7월 9월에는 공휴일이 아예 없고 2월, 3월, 6월 카니발 주님 수난 성금요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의 날짜에 따라 생겼다 사라졌다 한다. 대체휴일 제도는 없다.

투우가 있다. 스페인과 비슷하지만, 스페인과 달리 포르투갈에선 소를 죽이지 않는다.

스페인과 비슷하게 북부 거리에는 낙서가 매우 많다.

3. 음악


가장 잘 알려진 포르투갈 음악은 대항해시대에 기원한 포르투갈 전통 음악인 파두(fado)이다. 초기에는 춤과 음악을 함께하는 장르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현재에는 음악만을 가리키는 장르가 되었다.

운명을 뜻하는 라틴어 'Fatum'에서 유래한 파두는 당시 선원들의 위생 및 안전 문제가 심각했던 대항해시대를 기원으로 한다. 당시 선원들은 제대로된 음식조차 먹을 수 없었으며 항상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이 중에서도 괴혈병은 많은 선원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주범이였다. 다 가마와 마젤란의 항해의 생존율이 고작 32%와 6%였다고 하니, 이가 얼마나 심각했을지는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게다가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그리 견고한 배를 만들지 못했다. 혹여나 배에서 사고가 난다 하더라도 구해주러 갈 여건이 없었기에 생존률은 현저히 하락했다.

이로인해 대항해시대 당시 먹고 살기위해 항해를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고, 이렇게 남겨진 이들이 떠나간 이들을 그리워하며 부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파두이다.

구슬픈 멜로디와 애절한 가사가 특징인 파두는 포르투갈의 전통 기타로 연주하며 검은색 옷을 입은 파디스타(Fadista)가 노래를 부른다.

2011년경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파두는 포르투갈에서 현재까지도 꽤 인기를 끌고 있는 음악 장르 중 하나이다. 버스킹으로 파두를 부르는 가수들도 꽤나 볼 수 있을 정도.

그러나 불행히도 리스본에서 듣는 파두는 상업화되어 비싼 곳에서 공연되고 있다. 그래도 포르투갈 최고의 파두 여가수인 아멜리아 호드리게스(Amélia Rodrigues)의 음반은 포르투갈 레코드 가게 어디서나 살 수 있다.[4]

다만 세월이 흐르며 안타깝게도 포르투갈의 젊은 층은 우울하기 그지없는 파두 대신 팝 음악이나 헤비메탈, 재즈 등을 들어 젊은 층으로 갈수록 파두를 듣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파두의 인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지 포르투갈어 음악 자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포르투갈과 인구과 비슷한 체코, 헝가리, 벨기에[5], 스위스 등만 봐도 자국어 음악 대신 영미팝이 도배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포르투갈은 전세계에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내수시장이 상당해서 인구 1,000만 밖에 안되는 소국이지만 다양한 장르의 포르투갈어 음악을 발매하고 있으며, 같은 포르투갈어권인 브라질, 앙골라 등 음악도 상당히 인기가 많은 편이다. 근데 파두의 국가여서 그런지 포르투갈어 대중음악 조차도 대체적으로 잔잔한 발라드 장르가 좀 많다.

4. 국민성

기본적으로 가톨릭 규범이 범국민적으로 잡혀있는 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자유가 있는 어느 유럽국가의 모습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식사예절을 엄격하게 가르치는 모습이나 타인에게 예의바르게 교육 시키는 등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도록 교육시키는데 중요시 생각하는 편이다. 공공장소에서 자녀들이 소란을 피우면 부모들이 곧바로 제지를 하면서 주변인에게 사과를 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물론 포르투갈 부모들의 가정교육이 엄격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식이 부모에게 절대로 존칭과 경어를 사용하도록 하지는 않는다. 다른 유럽국가들 처럼 부모-자식간에 반말로 의사소통한다.

포르투갈에서 존대해주는 개념은 노약자 배려, 국민 평균보다 높은 교육수준을 받고 사회를 이끌어 가는 정치인[6], 성공한 사업가, 전문인력, 중간관리자 이상으로 직급이 있는자, 군, 경찰, 검찰, 사법 등 사회의 안전과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인력들 처럼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데 책임이나 의무가 있는 인력들에게 공화주의적인 측면에서 존중해주는 개념이지 한국처럼 나이를 계급장처럼 취급하며 존대해주는 개념이 절대로 아니다. 포르투갈 사회에서 노약자 배려와 노인공경 또한 오랫동안 사회에 헌신하고 공헌을 하고 퇴직이나 퇴역을 사람들이 뒷 세대들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는 의미에서 존중을 받는 개념이다. 대체적으로 존댓말 사용 또한 가족끼리는 하지 않으며 하는 경우도 그나마 좀 보수적인 집안에서 손자, 손녀가 조부모에게 존칭, 경어를 사용하지만 요즘은 이런 것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이다.

대체적으로 유럽에서는 포르투갈을 포함한 라틴 문화권에서 가족이 아닌 타인을 대상으로는 노인-어른-아이 세 집단으로 크게 나눠서 존칭과 경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7] 영미권, 독일어권과 북유럽권인 게르만 문화권과 슬라브 문화권에서는 오로지 나이 상관없이 친소 관계에 따라서 상호존중을 할 뿐이다.[8] 대신 한국, 일본과 비교할 때는 존댓말 사용이 널널한 편이다. 다만 포르투갈이 이러한 공동체주의적인 개념이 다른 유럽의 국가들과 비교할 때 사회적으로 강한 편에 속한다.[9] 유럽식 포르투갈어의 경어와 존칭에 대한 적절한 사용법을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있는 문서가 있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그러다보니 가톨릭 규범에 맞게 타인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을 매우 중요시 생각하는 편이다. 포르투갈에서 자신의 부와 재력을 자랑하는 것은 예의 없는 사람으로 보이기 딱 좋다. 어느정도 사회 전반적으로 금욕주의가 중요시 될 때가 있다. 포르투갈이 워낙 다른 유럽국가들 보다 산업화가 늦었다보니 여전히 농촌사회에서 볼 법한 규범이 포르투갈 사회 자체에 투사되는 편이다. 남유럽의 여러 국가들 처럼 끈끈한 가족주의와 혈통주의적 유대의식이 강한편이며 추가로 포르투갈어와 가톨릭이라는 문화적 요소로 다양한 민족과 인종적 혈통을 하나로 묶는 집단주의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정도로 따지면 서유럽, 북유럽, 북아메리카, 오세아니아는 물론 같은 남유럽인 스페인 이탈리아와 비교해봐도 더 집단주의적이다. #

포르투갈 백인만 보더라도 북아프리카, 중동, 켈트, 라틴, 게르만, 유대인 등 다양한 혼혈로 이루어진 민족집단이며 거기에 포르투갈의 소수인종 중에서 가장 많이 분포하는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흑인을 시작하여 그외 인도, 네팔 등 남아시아인,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 남아메리카인, 마카오인,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등 동유럽인 이민자 혹은 포르투갈 국적자로 이루어진 다민족 사회이다. 위키페디아에서는 포르투갈 국적자가 93% 이상이라는 이유로 단일민족사회라고 나와있는데 사실 이는 엄밀히 틀린 말이고 상당수의 흑인들을 포함하여 남미, 동유럽, 남아시아, 동아시아 등 다양한 지역출신 민족들이 포르투갈 국적을 취득하였다. 즉, 포르투갈은 다양한 혈통과 민족을 하나의 국가주의로 표방하는 사회라고 봐야한다.

이러한 포르투갈 특유의 역사적, 사회적 특수성 덕분에 인종과 혈통이 다른 외국인에게도 개방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폐쇄적인 집단주의 성향인 한국, 일본, 이탈리아, 폴란드와 대조적인 모습이다.

낯선 사람에게도 먼저 조용히 다가와 말 한마디 잘 건네는 편이다. 물론 같은 대표적인 남유럽 국가인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와 과거 식민지였던 브라질에 비해서는 덜 심한 편이지만 가게 점원이나 레스토랑 종업원과도 한번 말꼬리를 틀면 끝을 모를 정도로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여준다. 만약 가족이나 친구, 지인을 만날 일이 생긴다면 거의 날이 새도록 수다를 떨 수 있다.[10]

포르투갈도 다른 지중해권 국가들 처럼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정이나 오지랖도 관찰 할 수 있는데, 차이점은 학벌, 직업, 결혼, 재산, 외모 등 호구조사를[11][12] 하는 오지랖이 아닌 취미와 기호와 같은 상대방과 친해지기 위해서 과도하게 관심을 보이는 행동이 주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지중해권 문화권에서는 한두마디 말만 섞으면 이미 지인이 되는 셈이다.

그래도 포르투갈인들이 지중해권 국가 중에서는 대체적으로 차분하고 조용한 편이지만 술만 마셨다 하면 이런 것 조차도 없다. 동유럽 국가들 뺨 칠정도로 주류소비량이 어머어마한 국가인데 이는 포르투갈이 엄격한 가톨릭 규범에 맞춰 사는 사회다 보니 나름대로 타인 앞에서 평소에 특정한 부분에서 체면치례나 금욕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술이 목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억눌러왔던 사회적 스트레스를 스스로 해제해버리는 것이다. 포르투갈인들이나 포르투갈에서 거주했던 경험이 있는 외국인들의 사견에 의하면 오랫동안 살라자르의 독재시절에 워낙 자유가 억눌려 왔다보니 국민적 분위기 자체가 금욕적인 분위기가 이어온 것이 현재까지 잔재로 남아있다고 보는 편이다. 그래서 유럽 국가에 속해있는데도 아시아의 여러 국가처럼 빙빙돌린 화법을 이야기 한다든지 정치인, 교수, 박사 등 저명한 인사들이 대중들에게 연설할 때, 핵심적인 말은 맨 뒤에 말하거나 중간에 애매하게 말하면서 경어나 호칭은 물론 긴 사족을 붙여 가면서 엄청 장황하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즉 어렵고 난해한 어휘를 쓸 지언정[13] 필요한 말만 딱딱 끊어 말하는 서유럽, 북유럽 국가들과 매우 대조적이다.

북미, 북유럽, 서유럽, 오세아니아처럼 대체적으로 사회의 성향이 개인주의적이고 민족구성이 백인이 주류인 선진국인 경우 직설적인 화법과 메세지로 의사소통을 하는 경향이 존재하는 저맥락 문화인 것에 반해, 포르투갈은 유럽에 속한 국가이면서도 일상적인 대화 뿐만 아니라 학술적인 논문조차도 빙빙돌리는 간접적인 화법을 사용하는 고맥락 문화이다.[14] 사실 여러 서양권 국가들 처럼 이민자를 받아드려서 다문화사회가 되면 불필요한 간접적인 화법이 생략이 되기 마련인데 이와 달리 다양한 혈통과 인종이 섞여서 사는 포르투갈에서 간접적인 화법이 발달되어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는 점이다. 어떨 때 보면 포르투갈은 한국, 일본에서 볼법한 기질을 가진 국가이다. 직장문화 또한 부하직원이 은근 직장상사 눈치를 보기도 하고 상사에게 직함, 호칭, 경어를 사용하는 등 때로는 수직적인 관계가 나타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나 일본 사회와 차이점도 존재하는데, 개인이나 법인이나 장기지향적인 경향이 있는 한국, 일본 같은 동아시아 사회와 달리 포르투갈인들은 단기지향적인 경향이 많이 보인다. 과거 대항해시대시절 부터 상업이 발달했던 인문역사적 기질이 후대까지 내려온 것으로 보여진다. 대체적으로 일하기 위해 살기보다는 살기위해 일하는 경향이 많다. 즉 경쟁보다는 워라밸을 굉장히 중요시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포르투갈의 산업이 첨단산업, 중화학 공업이 발달하지 못하고[15] 관광, 서비스업 위주로 발달을 한 점과 친기업, 친시장 등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으로 낙수효과를 선호하는 동아시아 국가와 달리 분배 중심의 보편적 복지를 선호하는 포르투갈인들의 국민적 성향을 볼 때 어느정도 유추해 볼 수 있다.[16]

또한 포르투갈은 교수, 과학자, 의사, 전문기술자, 법조인 등 전문인력에게 경어까지 사용하면서 깍듯하게 대우해줘야 하는 문화가 존재하는 것과 달리 정작 교육열 자체는 한국, 일본에 비해서 과열되지 않은 편이다. 오히려 서유럽 평균보다 약간 낮은 편에 속한다. 물론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기 위해서 고학력이 요구되는 것은 어느나라든 마찬가지여서 포르투갈 또한 사학비리, 학력위조 등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 것은 한국처럼 대학 서열화가 사회적으로 만연화가 되어서 교육열이 과열이 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높은 직급과 타이틀을 쟁취하기 위한 그저 하나의 과정으로써 대학교 졸업장이 필요한 것이지 학벌 하나로만 타인의 사심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나 사회가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사회는 아니지만 정작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상대방의 사회적 입지에 따라 경어나 존칭을 사용하는 것을 예절규범으로 잡혀있는 모습이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비 전문인력에 대해 무조건적인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고, 전문인력을 위한 존중이 따로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이외의 존중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사실 포르투갈에서 사회적 차별은 단순히 특정 종교, 인종, 성별을 혐오해서 생기기보다는 여러 직종에서의 경력과 숙련의 차이와 교육수준에 따른 사회적 직급의 결과물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포르투갈인들이 괜히 축구에 목을 매는게 아니다. 즉 소수의 엘리트 집안 아니면 동아시아권 문화권 처럼 아무리 공부만 열심히 해서는 계층이동이 쉽지 않다. 비록 서양 특성상 공부가 아닌 다른 것(사업적 성공)으로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유럽국가 중에서는 계층이동이 미약한 편이라 스포츠, 연예계, 유튜버 등으로 인생역전을 노리거나 학구열이 좀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예 포르투갈을 떠나 독일, 프랑스, 벨기에, 영국,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 서유럽 선진국으로 유학가서 아예 여기 대기업에 취직을 해서 정착해 살거나 브라질 앙골라, 카보베르데와 같은 언어의 부담이 없는 포어권 국가로 가서 비록 개발도상국이지만 물가는 상대적으로 싼 곳이라 적은 돈으로 사업을 해서 사장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혹은 자국 회사의 해외지역 사업부로 입사를 해서 아예 파견을 나가 고액연봉을 받는 방법도 있는데 포르투갈에서 취득하는 학력이나 자격증이 포어권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나름 고학력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젊은이들의 성문화에 관련해서는 북미, 서유럽, 북유럽, 오세아니아, 남미 문화권처럼 어느정도 개방적인 편에 속한다.[17] 동성애도 개방적 편인데 동성결혼을 2005년에 스페인과 같이 법적으로 전면 합법화 했으며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연애와 섹스를 막지 않으며 젊은이들의 동거 역시 흔하다. 윗세대들도 오히려 젊을 때 해보고 싶은거 다 해보지 언제 해보냐는 식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그나마 살라자르 독재시절이 끝난 후 강성했던 카톨릭 세력이 급격히 약해지면서 세속화가 빠르게 진행이 되었고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포르투갈 사회에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되면서 사회적인 통합을 어느정도 잘 이룬 편이기도 하고 그로 인해 윗 세대가 젊은 세대들의 성문화를 자연스럽게 인정해주는 분위기로 흘러가게 되었다.

연애와 성관계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겉보기에는 유럽의 어느나라들 처럼 자유로워 보일 수는 있지만 여전히 카톨릭에서 파생된 예절과 규범을 지키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각자 개인적으로 따로 만나서 즐길 것 다 즐기더라도 성관계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굳이 잘 하지 않는 분위기이다.[18] 아직도 포르투갈 사회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만큼은 엄숙한 분위기를 지키려고 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한마디로 청소년들이나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연애하고 섹스를 해도 상관은 없지만 그걸 굳이 기성세대들 앞에서 티를 내게는 못 하게 하는 셈이다.[19] 대체적으로 유럽에서 서쪽 가장자리에 있는 국가라 그런지 유럽이나 서구권 중에서 연인간 진도가 느린 편에 속한다. 심지어 포르투갈보다 비교적 못사는 동유럽 국가들보다도 느린 편이고 신체노출도 유럽국가 치고 보수적인 편이다. 게다가 동아시아 국가들 처럼 반드시 연애를 한 뒤에나 성관계가 수반이 되는 분위기이다. 대신 10대 청소년들의 연애 한정으로는 유럽의 어느 국가들 답게 자유롭다.[20] 그리고 결혼이후 문화는 여전히 남녀구별을 권유하거나 강요를 하는 등 여전히 사회전반적으로 보수적인 잔재가 남아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혼전후의 문화적 괴리감이 워낙 크다보니 포르투갈은 세계적으로 이혼율이 높은 국가중 하나이다.

정리해보자면 대체적으로 개인보다는 가족, 종교, 문화, 국가, 언어 등의 공통점으로 연결이된 수평적 집단주의 사회이며[21][22][23] 나름 개개인의 개성은 존중해주지만 그러면서도 범국민적으로 가톨릭에서 파생된 예절규범을 잘 지키는 것을 중요시하며 여전히 자신들의 전통적 고유의 문화를 지키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다. 타인의 눈치보기나 체면을 중시하는 것과 같은 나름대로 그 국가만의 엄격한 집단주의적인 사회적 코드가 작동하지만 그러면서도 경쟁은 그다지 심한 사회는 아니고 먼 미래의 행복보다는 지금 당장의 행복이 더 중요시되는 사회가 포르투갈 사회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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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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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자르 정권 당시의 우민화 정책으로 인해 1970년대 초반까지 문해율이 30%대에 불과했을 정도지만 카네이션 혁명 이후로는 문맹률이 줄기 시작해 1980년대 초에는 문해율이 80%~90%대로 늘어났다. 현재 포르투갈의 문해율은 생각보다 준수한 수준이다. #

주요 외국어는 영어(32%), 프랑스어(24%), 스페인어(9%)가 꼽힌다. 그리고 소수 언어로 미란다어[24]라는 언어가 쓰이고 있다.

포르투갈에서 쓰이는 포르투갈어 브라질쪽 표현과는 일부 다른 경우가 많이 있다.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이거나 젊은 층은 대체로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스페인어는 언어적 유사성 때문에 따로 배우지 않아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하는 편이다.

현대 와선 포르투갈이 소국으로 전락한지라 사람들이 의외로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포르투갈은 잘나가던 근세 제국주의 시절은 물론이고 그보다도 한창 이전 중세부터 영국과 엄청 깊고 오래된 경제적, 외교적 관계가 있었다. 그래서 영국-포르투갈 관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맹이라는 수식어가 있다.

게다가 수백년간 리스본은 국제항구, 코임브라는 국제 대학도시로 번영했으며, 포르투갈 제국주의 자체도 직접 영토를 정복하는 스페인과 달리 중남미보다 인도양, 아시아에서 포르투갈이 일방적으로 '정복'하는게 아니라 현지 여러 세력들 중 하나로서 협상과 무역이 중점이었던 상업적 성격이 더 컸다.

무엇보다 근현대사를 주름잡은 살라자르 정권이 프랑코 정권보단 확실하게 온건했던 편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스페인[25]보다는 문화적으로 외부에 더 개방적이고,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도 잘 통하는 편이다.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한번에 묶어 여행하던 관광객이 스페인에서 영어 못해서 쩔쩔매는 현지인들이랑 같이 쩔쩔매다가 포르투갈 와서 한시름 더는건 유럽 여행자들 사이엔 유서 깊은 전형적인 모습이고, 포르투갈 사람들도 덩치 큰 이웃나라 사람들 비웃을때 '영어 못하는 양반들'이라며 '애플'을 '아쁠', '예스터데이'를 '예스떼르다이'라 하며 영어에서 t, r과 모음변화 힘들어하는 스페인사람들이 참 힘들게 영어 회화하려는걸 흉내내면서 깔 정도.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이 포르투갈, 브라질 외에도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이 있다보니 이들 나라들을 중심으로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가 결성되어 있고 몇몇 나라들도 참관국에 가입해있다.

포르투갈에도 과거에 루시타니아어 #라는 미분류 언어도 쓰였지만[26], 일찍이 소멸되었다. 그리고 포르투갈내에도 유대 포르투갈어라는 유대 제어에 속한 언어도 사용되었다.

영국과 500년 넘게 우호관계를 맺은 나라다 보니, 남유럽 중에서는 영어가 가장 잘 통하는 나라로 꼽힌다. 국민들의 70%는 영어 사용이 가능하다.

6.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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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의 성모

종교는 이웃나라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가톨릭이 대다수로, 2011년 기준 81%를 차지하며, 21개의 교구가 있다.[27] 개신교인은 1만 명 이하이고, 유대교인 수는 5천 이하다.

이 지역에 처음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것은 일찍이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있을 무렵부터였다. 7세기 사라센의 침입으로 한 때 이슬람교의 영향 아래 있기도 했으나 1140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포르투갈 왕국을 세운 아폰수 엔히크스는 왕국을 교회에 봉헌하였다. 그의 뒤를 이은 산초 1세 때에는 시토회의 영향으로 반 교황적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으나 13세기에 탁발수도회가 들어와 교황의 강한 지지세력을 형성하였다.

포르투갈은 15세기 이후부터 해양진출을 시작하여 남아메리카 브라질과 인도의 고아, 아프리카의 기니비사우, 앙골라, 모잠비크 등지로 식민지 영토를 확장하면서 이들 지역에 가톨릭을 전파하였다. 1580∼1640년의 시기는 포르투갈 교회사에 있어서 최악의 시기였다. 스페인 왕이 포르투갈 왕을 겸하면서 주포르투갈 교황 사절과 예수회를 추방하고 국외 선교도 금하였다. 그러나 교황이 포르투갈의 독립전쟁을 도움으로써 관계는 다시 정상화되었다.

18세기에 들어 반교회 감정이 강해지면서, 세속주의 운동이 급격히 퍼져나갔으며, 1821년엔 모든 수도회를 폐쇄시키고 교회 재산을 몰수했으며, 1910년 이후에는 초등교육에 있어서의 종교교육을 금했었다. 그러나 1917년 정변으로 실권을 잡은 군사정권과 살라자르는 적극적으로 기독교 근본주의적인 정책을 추진하면서 교황청과의 관계가 개선되었다. 파티마의 성모 발현도 1917년에 일어났는데, 타이밍이 매우 적절했다고 볼 수밖에 없을 정도. 군사정권은 가톨릭을 제외한 다른 종교들은 모두 금지하고 박해하였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카에티누 독재 정권이 무너지면서 포르투갈은 다시 세속국가가 되었다. 독재 정권과 가톨릭의 정경유착이 매우 심했기 때문에 새로운 제3공화국은 헌법과 법률에서 국교를 폐지하고 정교분리원칙을 확고히하면서 가톨릭교회의 정치 개입을 억제했다. 그런데도 1980년대엔 가톨릭교회가 포르투갈 선거에 개입하려던 사건들이 터져서 국민들 사이에 신뢰만 더 떨어트리는 결과만 낳았다. 그로 인해 포르투갈에서의 교회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은 거의 없는 편이다.[28]

이웃나라 스페인도 독재 정권하에 가톨릭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이 막대해졌으나 그게 현대에도 이어진 점을 생각해보면, 독재 정권을 어떻게 청산했냐의 결과에 따라 극단적 차이가 발생한 셈이다. 현대엔 스스로 가톨릭 신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1/3만이 미사에 정기적으로 참례하고 있다고 하니, 통계와 실제 종교관간에 차이가 큼을 알 수 있다.

2023년에는 리스본에서 세계청년대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7. 성문화

유럽의 개방적인 면과 아시아의 폐쇄적인 면이 발견이 되는 국가이다. 이 문서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8. 영화

최고령 영화 감독으로 유명했던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를 비롯해 1960년대 포르투갈 뉴웨이브 시네마가 유명했다. 1990년대부터는 페드로 코스타라는 감독이 등장해 주목받고 있기도 하고, 히타 아세베두 고메스, 미겔 고메스[29], 테레사 빌라베르데 등의 현대 감독들이 주목받고 있다.

인구가 작아서인지 산업 자체는 큰 편은 아니라고 한다. 장르도 다양한 편이 아니고, 내수가 적은 국가여서 제작사나 배급사가 자국 회사로만으로 제작비를 충당하기 어려워서,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스페인, 브라질 제작사와 배급사와 함께 합작해서 제작비를 마련해서 영화를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포르투갈 현지 영화인들에 따르면 주로 예술 영화 위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에 포르투갈 자국 영화의 점유율은 고작 3.4%로 수준으로 규모가 매우 적은 편이고[30], 주로 프랑스, 스페인, 영미권, 브라질[31] 영화를 수입해서 방영하는 경우가 많다.

9. 문학

16세기 경 소극과 종교극에서 뛰어났던 질 비셍트(Gil Vicente)가 포르투갈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마련하였다.

16세기 후반에는 포르투갈 시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루이스 드 카몽이스 (Luis de Camões)가 오시 루시아다스(Os Lusiadas)라는 발견과 개척의 시대를 찬양한 서사시를 썼다.

19세기에는 알메이다 가헤트(Almeida Garrette)가 로맨틱 드라마를 많이 썼고,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도 이 시대에 드라마와 시작 활동을 하였는데, 포르투갈 현대 작가로는 드물게 외국까지 그의 작품이 널리 알려졌다.

20세기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페르난두 페소아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10. 축구

여타 유럽 국가들처럼 포르투갈 역시 축구가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덕분에 인구가 1,000만 수준이지만 축구 경기장 규모는 3~6만석 수준으로 엄청난 수준을 자랑한다.[32] 이러한 인프라를 갖춘 자국 리그인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는 유럽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리그로 리그의 대표적인 팀 벤피카 FC 포르투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험이 있는 유럽의 명문팀들이다.

이러한 탄탄한 자국 리그를 바탕으로 자국 축구 국가대표팀 또한 유럽의 강호 중 하나로 통한다. 과거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득점왕이자 1965년 발롱도르 수상자인 전설적인 선수 에우제비우와 함께 전성기를 맞은 바 있으며, 이후 30년 가까이 동안은 한동안 쉬어가다가 21세기 들어서는 루이스 피구를 위시한 황금 세대의 등장으로 다시 세계적인 전력을 갖춘 팀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이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10년 넘게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을 이끌고 있다. 페페 데쿠의 사례와 같이 과거 식민지였던 브라질에서 선수를 귀화시키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많은 명감독들을 배출했다. 대표적으로 주제 무리뉴, 레오나르두 자르딤,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페르난두 산투스, 파울루 소자, 카를로스 케이로스, 누누 산투, 마르코 실바, 파울루 벤투 등이 있다.

포르투갈 축구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데 이 나라 출신의 또 다른 전설적인 축구인인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기도 했었으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세 번째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끈 파울루 벤투 감독 또한 이 나라 사람이다. 석현준 선수가 2015년~2016년 시즌 초에 활약을 펼치기도 했었다. 현 한국 대표팀 주장인 손흥민의 소속팀인 토트넘의 감독 주제 무리뉴[33]와 그의 후임 감독인 누누 산투, 손흥민 못지 않은 대표팀 에이스 황의조의 전 소속팀 FC 지롱댕 드 보르도의 감독 파울루 소자, 한국의 대형 센터백인 김민재가 뛰었던 페네르바흐체 SK의 감독인 비토르 페레이라, 과거 그 무리뉴 사단 코치이자 2019년~2020년까지 전북 현대 모터스를 이끌었던 주제 모라이스, 과거 FC 서울을 맡아 K리그1을 우승시킨 바 있는 넬루 빙가다 모두 포르투갈인이다. 물론 큰 흑역사도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2019년 호날두의 노쇼 사건이 있다.

풋살도 강호라서 2021 리투아니아 FIFA 풋살 월드컵에서 전번 풋살 월드컵을 우승한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2-1로 이기고 우승했다.

한국 대표팀과는 2002년 한일 월드컵 D조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H조에서 각각 맞붙었고, 모두 한국이 이겼다.[34][35] 2002년에는 포르투갈이 미국에도 져서 16강에 진출하지 못했으나 2022년에는 포르투갈과 대한민국이 16강에 진출했다.

지브롤터 축구 국가대표팀이 홈 경기를 할 때는 포르투갈 경기장을 빌려서 한다.

11. 그 외의 스포츠

역대 올림픽 성적은 엄청나게 저조하다. 첫 참가한 1912 스톡홀름 올림픽 이래 하계 올림픽에 빠짐없이 참가했으나, 지금까지 금 4, 은 8, 동 12, 합계 24를 기록하고 있다.

격투기 파워리프팅에서 두각을 보인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UFC 선수들 중에서도 포르투갈인 선수를 찾을 수 있으며 파워리프팅 또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본국에서 유명한 선수들이 많다.


[1] 동유럽에서는 루마니아. 1983년이다. [2] 정확히 말하면 시험방송을 포함한 컬러 방송 개시 자체는 1976년부터 개시되었으나, 당시의 좋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완전 컬러 방송이 미뤄진 것. 가장 늦은 국가는 튀르키예이다. [3] 스페인에서는 발음만 스페인식으로 바꿔서 아술레호라고 한다. [4] 사실 현대에 와서는 전통음악이라는 장르 자체가 저렴하고 서민지향적인 공연이 아니게 되었다. 당장 한국의 전통음악인 판소리도 이젠 아무데서나 공연하는 음악이 아니게 되었으니 말이다. [5] 단 불어권 지역은 불어음악이 인기가 많다. [6] 물론 정치인이 제대로 민생을 살피지 않고 사리사욕만 채운다면 존대따위는 없어지고 돌맞는 것은 당연하다. 최소한 여타 다른 유럽국가들 처럼 민주주의가 사회에 깊숙히 잡혀있는 사회라면 그러하다. [7] 오히려 일제강점기 이전 조선시대와 더 비슷하다. 사실 한국에서 나이 따지는 문화도 일제시대 때 군국주의 문화가 사회 깊숙히 들어오면서 학교에서 조차 한 학급 차이라도 복종하는 군대식 문화가 생기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선후배 개념이 강해지기 시작했고 한살 차이라도 존댓말하는 문화가 사회 전반적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8] 동유럽권도 남유럽권 처럼 노인과 어른에게 존칭과 경어를 쓰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지만 공산주의를 반세기 동안 겪으면서 존댓말을 따지는 문화가 사라지고 아무리 나이차이가 많이 나도 오로지 존댓말은 친소 관계에 따라서만 사용할 뿐이다. 다만 러시아, 벨라루스 처럼 1당 독재가 심한 국가들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널널하더라도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권력거리는 꽤 큰 편이다. [9] 같은 라틴문화권인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와 비교해봐도 좀 더 빡빡하게 지키려고 하는 편이다. [10] 이런 특징은 대부분 지중해권 국가들이 다 그렇다. [11] 수평적 집단주의의 성향이 강한 지중해권 국가에서 이런 것을 캐묻다가는 예의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예를들어 이쪽 지역에서 외모지적을 하는 것은 손님을 맞이해야하는 서비스업종이나 집에 귀한 손님을 초대하는데 부하직원이나 자녀의 옷차림이 불량하고 모양새가 꾀죄죄한 채로 있을 때 단정히좀 하라고 할 때나 하는 것이지 상대방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먼저 고민이 있다고 토로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뜬금없이 지적하고 한술 더 떠서 해결방법이라고 이야기 해주는 것 자체가 사실상 절연선언을 하는 것과 다름 없는 행동이다. [12] 외모를 언급하는 것은 실례이지만, 그래도 패션이나 스타일 정도는 관심을 가지고 물어볼 수는 있다. [13] 대신 그 어휘의 뜻과 의미만 잘 알고 있다면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와 맥락을 더욱 정확하고 명확하게 파악하기가 쉬워진다. [14] 한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남유럽, 동유럽, 라틴아메리카도 고맥락 문화에 속한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의 경우는 미국과 인접한 멕시코와 다양한 민족이 섞여사는 브라질, 동유럽과 남유럽의 경우 비교적 서유럽과 인접한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슬로베니아가, 같은 서유럽에 속하지만 아일랜드가 고맥락 문화에 속하면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어 위에 언급한 타 문화권 보다 고맥락문화 기질이 덜한 편이다. 즉, 포르투갈은 유럽 서쪽 끝자락 구석에 붙어있는 국가이다 보니 유럽국가 중에서 고맥락문화 기질이 매우 심한 편이다. # [15] 이 산업들은 장기적인 플랜을 세워야만 발전시킬 수 있다. 다만 그렇다고 포르투갈이 공업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식품, 선박, 정유, 전자제품, 자동차부품 등 다양한 공산품을 생산, 수출하기도 한다. 문제는 질적인 측면에서 한국, 일본, 싱가포르, 미국, 대만, 홍콩 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16] 물론 포르투갈인들 전부다 정부의 정책에 만족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고 오히려 공산주의 국가냐며 비판하는 여론도 존재한다. 당장 한국만 봐도 대기업 재벌위주의 소득주도성장으로 인하여 터져나온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해서 강력하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17] 정확히는 이들보다는 약간 보수적인 편. [18] 특히 여자들의 경우 그러하다. 옆 나라 스페인과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보수적인 카톨릭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친한 사람들이라도 이런 민감한 이야기를 더 꺼리는 편이다. 연애와 성관계를 하는 것 자체를 막거나 눈치를 주는 것을 아니더라도 대놓고 아무한테나 문란한 사생활을 드러내는 것 까지는 허용하지 않는다. 가족들한테도 누구와 연애하고 관계가 어느정도 까지 갔는지나 말하지 절대로 성관계에 관한 민감한 상황까지 노골적이고 디테일하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 나라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만나는 이성친구가 신뢰가 갈만한 상대이기만 하면 만나서 밤을 새서 놀다 오든 신경쓰지는 않는 정도는 된다. 대체적으로 포르투갈은 외설적이고 유흥문화가 상당히 발달한 브라질, 스페인이나 성희롱, 성추행, 강간 등 반사회적이고 사회적 관념에 맞지 않는 성행위만 아니고 합법적이기만 하면 인정해주는 사회분위기인 서유럽 북유럽권 국가들 보다는 보수적이지만 대체적으로 아시아, 아프리카보다는 성문화가 개방적인 편이다. [19] 이 점에 대해서 더 쉽게 설명을 하자면,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졸고 있는 것은 봐주지만 대놓고 엎드려 자는 것은 못 봐준다고 엄포를 놓는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상당히 쉬울 것이다. [20] 물론 여기도 특유의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에 연애는 대놓고 하더라도 성관계는 부모 몰래하는 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10대들의 혼전임신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여기 부모들이 허용해주는 것은 오로지 친구로 지내거나 건전하게 연애하는 것 까지이다. [21] 오지랖이 심한 한국의 집단주의보다는 공동체주의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포르투갈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개인의 취향이나 성향을 존중해주는 경향이 있는 일본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일본 사회가 포르투갈 사회보다 외국인과 이방인에게 폐쇄적인 점을 제외하고 말이다. [22] 여기서 더 정확히, 포르투갈이나 일본은 동성애, 마음에 맞는 이성과 프리섹스와 같은 성적취향과 외모, 패션과 같은 개성, 취업과 연애와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은 자기가 알아서 하되, 가족, 직장, 국가사회 테두리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면서 중요한 사항이나 공적인 공간에서 합을 맞춰 일을 해야할 때는 개개인의 자유와 사적인 이득을 잠시 내려놓고 공적인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해야한다. 그러다 보니 웬만하면 부하직원이 상사의 결정에 토 달지 않고 따라주며 본인이 조금 손해를 봐도 집단에 이익이 되면 눈감아주고 넘어가는 점은 한국과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처럼 평소에 관심도 없는데 등산, 축구, 낚시와 같은 취미생활 영역인데도 불구하고 직장상사가 그것들을 좋아한다면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서라도 비위를 맞춰 관심을 받는다던가, 먹기 싫은 술 억지로 먹거나 밥먹을 때는 무조건 같이 먹어야 하는데 음식까지 하나로 통일시켜야 하고 더 나아가 본인이 직급과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부하직원의 개인사나 외모 및 취향의 영역까지 침범하면서 함부로 훈수나 훼방을 놓는 행동은 일본이나 포르투갈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다. [23] 참고로 일본이나 포르투갈보다 훨씬 개인주의적인 서유럽, 북유럽은 물론 남유럽이지만 스페인과 북부 이탈리아, 그리고 동유럽이지만 비셰그라드 그룹과 발트 3국은 상사와 부하직원과의 관계는 그저 회사에서 계약한대로 본인 이득에 따라서 움직이는 관계일 뿐이다. 본인이 이 일을 하게 된다면 아무리 공적으로 이득이 된다고 해도 근로계약서에도 없거나 혹은 애매한데 본인에게 이득은 전혀 안 된다고 싶으면 당당하게 하지 않겠다고 상급자나 사측에 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즉, 위에 언급한 국가들은 사측과 노측간 계약을 사소한 것까지 명확하게 합의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24] 포르투갈에서 쓰이는 로망스어파의 언어로 형태를 보면 포르투갈어와 매우 유사하다. [25] 물론 카스티야 중심으로 스페인을 봤을때 얘기다. 반대로 카탈루냐는 포르투갈이랑 똑같이 예전부터 상업이 많이 발달했던 지방이라 카스티야보다 확실히 더 국제적인 분위기에 외국어도 잘 통하는 편이고, 사람들도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26]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는 것만 알려졌지, 켈트어파인지 로망스어군인지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학계에서는 루시타니아어의 기본베이스는 로망스어군에 가까운 원시 인도유럽어족 이탈리아어파에 속하는 언어로 여기고 있으며 여기에 켈트 부족으로 부터 어휘나 문법의 영향을 받아 생긴 언어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현 포르투갈 지역에는 한때 로마에 복속되기 전에는 루시타니아어와 켈트어가 널리 쓰이게 되고, 루시타니아인과 켈트인이 포르투갈 전 영토로 들어오기전에 먼저 정착해서 살았던 셈계 혈통인 페니키아계와 함계 혈통인 이베리아계 부족들이 사용했던 일부 토착 이베리아어 언어의 어휘도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라고 한다. [27] 한국 가톨릭에는 16개의 교구가 있다. [28] 그래도 포르투갈이란 나라가 생겨날 때부터 가톨릭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1000년 가까히 살아온 역사를 무시할 수 없기에 사회 문화, 관습적으로 국민적 사고, 가치관에는 가톨릭적인 사고가 큰 영향이 미쳐있다. 실제로 정치인들도 국민들의 이러한 가치관을 어느 정도는 자극시키고 선동시키는데 이용한다. [29] <타부>(2012), <천일야화>(2015)로 유명하다. [30] 대중 음악은 인구 대비 자국어 음악이 많은 편인데 대중 음악보다도 제작비가 훨씬 많이 필요해서 내수시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화산업은 그렇지 못하다. [31] 다만 포르투갈어권에서 인구가 최다국인 브라질 조차도 자국 영화 점유율 비중이 고작 12%에 불과해서 모든 포어권 국가들의 영화 시장에 헐리우드에 점령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2] 단, 이것은 UEFA 유로 2004를 단독 개최하면서 잉글랜드, 프랑스 등도 하지 않은 10개 경기장을 신축 및 증축하는 무리수를 뒀기 때문에 벌어진 상황으로, 경기장 대충 채우기도 어려워하는 클럽들이 많다. 인구가 비슷한 스코틀랜드, 그리스 등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으며, 보아비스타 FC와 같이 유로 2004 당시 경기장 지출 때문에 잘나가던 클럽이 파탄난 사례도 있다. [33] 해외축구 팬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2000년대 중후반에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갔던 감독인 관계로 대한민국 내에서도 무리뉴 감독에 대한 팬덤이 상당하다. [34] 2002년에는 1:0, 2022년에는 2:1. 한국 측 득점자는 박지성, 김영권, 황희찬, 포르투갈 측 득점자는 히카르두 오르타. [35] 파울루 벤투 감독은 2002년 경기에서 선수로 뛰었는데, 주앙 핀투가 퇴장당할 때 난투극으로 번질 뻔한 상황에서 선수를 말리는 역할을 했다. 당시 등번호는 1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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