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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크 호건

테리 진 볼리아에서 넘어옴
파일:E8379242-641F-4E16-9EC4-4DDE7A61F63B.png 스미스소니언 선정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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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립 교육 재단 스미스소니언 재단의 잡지,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이 “미국사 가장 중요한 100인의 인물”을 선정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뽑았기 때문에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고 부정적인 인물들도 있다.
<colbgcolor=#000047><colcolor=#ffc224> 개척자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헨리 허드슨 · 아메리고 베스푸치 · 존 스미스 · 조반니 다 베라차노 · 존 뮤어 · 메리웨더 루이스 · 사카자위아 · 키트 카슨 · 존 웨슬리 파월 · 닐 암스트롱
혁명가 & 저항가들 마틴 루터 킹 · 로버트 E. 리 · 토머스 페인 · 존 브라운 · 프레드릭 더글러스 · 수전 B. 앤서니 · W. E. B. 듀보이스 · 테쿰세 · 타탕카 이요탕카 ·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 말콤 엑스
대통령들 조지 워싱턴 · 토머스 제퍼슨 · 율리시스 S. 그랜트 · 우드로 윌슨 · 에이브러햄 링컨 · 제임스 매디슨 · 앤드루 잭슨 · 시어도어 루스벨트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로널드 레이건 · 조지 W. 부시
첫 여성들 포카혼타스 · 엘리너 루스벨트 · 힐러리 클린턴 · 마사 워싱턴 · 오프라 윈프리 · 헬렌 켈러 · 소저너 트루스 · 제인 애덤스 · 이디스 워튼 · 베티 데이비스 · 세라 페일린
범법자들 베네딕트 아놀드 · 제시 제임스 · 존 윌크스 부스 · 알 카포네 · 빌리 더 키드 · 윌리엄 M. 트위드 · 찰스 맨슨 · 와일드 빌 히콕 · 리 하비 오즈월드 · 러키 루치아노 · 존 딜린저
예술가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 앤디 워홀 ·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 제임스 맥닐 휘슬러 · 잭슨 폴록 · 존 제임스 오듀본 · 조지아 오키프 · 토머스 에이킨스 · 토머스 내스트 ·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 앤설 애덤스
종교인들 조셉 스미스 · 윌리엄 펜 · 브리검 영 · 로저 윌리엄스 · 앤 허치슨 · 조너선 에드워즈 · 라파예트 로널드 허버드 · 엘런 화이트 · 코튼 매더 · 매리 베이커 에디 · 빌리 그레이엄
팝 아이콘들 마크 트웨인 · 엘비스 프레슬리 · 마돈나 · 밥 딜런 · 마이클 잭슨 · 찰리 채플린 · 지미 헨드릭스 · 마릴린 먼로 · 프랭크 시나트라 · 루이 암스트롱 · 메리 픽포드
제국 건설자들 앤드루 카네기 · 헨리 포드 · 존 D. 록펠러 · J. P. 모건 · 월트 디즈니 · 토머스 에디슨 ·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 하워드 휴즈 · 빌 게이츠 ·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 스티브 잡스
운동선수들 베이브 루스 · 무하마드 알리 · 재키 로빈슨 · 제임스 네이스미스 · 아놀드 슈워제네거 · 타이 콥 · 마이클 조던 · 헐크 호건 · 짐 도프 · 세크리테리엇 · 빌리 진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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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LK HOGAN

1. 프로필2. 개요3. 커리어
3.1. 데뷔와 신일본 프로레슬링3.2. 본격적인 WWF/WWE 활동 시작3.3. WCW 이적 / 할리우드 호건3.4. 다시 WWE로3.5. TNA 행3.6. 두 번째 WWE 복귀(2014.02~2015.07)3.7. 인종차별 사건 그리고 복귀
4. 주 기술5. 평가6. 여담7. 같이 보기8. 둘러보기

1.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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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054b5>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본명 Terry Gene Bollea
(테리 진 볼리아)
링네임 The Super Destroyer
Hulk Hogan
Hollywood Hulk Hogan
Hollywood Hogan
Hulk Machine
Terry Boulder
Mr.America[1]
Sterling Golden
별칭 The Hulkster
The Immortal
The Fabulous
The Incredible
The Unstoppable Force
신장 201cm (6' 7")[2]
체중 137kg (303lbs)[3]
생년월일 1953년 8월 11일 ([age(1953-08-11)]세)
출생지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출신지 미국 플로리다 탬파[4]
종교 개신교
시그니처 무브[5] 빅 붓
바디슬램
해머링
헐크 업[6]
피니쉬 무브 액스 봄버[7]
아토믹 레그드랍
유형 파워하우스+ 쇼맨
주요 커리어 NWA 남동부 헤비웨이트 챔피언 (북부 디비전) 1회
NWA 남동부 헤비웨이트 챔피언 (남부 디비전) 2회
(구)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8]
WWF/E 챔피언 6회
WWE 태그팀 챔피언 1회
WWF 로얄럼블 2회 우승 ( 1990, 1991)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테마곡 Eye of the Tiger[9] (1984 ~ 1986)
Hulk Hogan's Theme (1985)
Stars and Stripes Forever (1985)
Real American[10] (1986 ~ 현재)[11]
American Made[12] (1994 ~ 1996, 1999 ~ 2001)
Rockhouse[13] (1996 ~ 1999, 2002, 2010 ~ 2013)
Voodoo Child (Slight Return)[14] (1997 ~ 1999, 2002 ~ 2003)
Kevin Nash/Wolfpac Theme[15] (1999)
Immortals[16] (2010 ~ 2011)
SNS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Real American

2. 개요

파일:a3a811ad6e7f1e8cb0f8ce4ac134b81a_crop_exact.jpg
HULK RULES
So, let me ask you something, brother!
Whatcha gonna do when Hulkamania destroys you?
You better eat your vitamins and say your prayers!
미국의 前 프로레슬러.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WWF의 메인 이벤터이자 당대 메이저 프로레슬링 업계의 최정점으로 군림했던 선수로, 화려한 쇼맨십에 강렬한 마이크웍, 개성 넘치는 기믹 등 현대 프로레슬링 업계가 내세우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라는 기본 공식은 모두 호건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자신의 인기를 바탕으로 NWA로 대표되는 춘추전국시대나 다름없이 진행되어온 지역구 단체 시스템의 시대를 내리고 TV에 방영하는 위클리 쇼 시스템과 전국구 단위로 통합시킨 현재의 프로레슬링 쇼 개념을 확립하였다. 또한 당대 최고의 탑페이스 위치에서 내려와 1990년대 중후반 WCW로 이적한 후에는 턴 힐로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nWo라는 거대 스테이블을 이끌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바 있다. 사생활 및 구설수 등을 포함한 이런저런 행적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프로레슬링 역사에 없어선 안 될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는 점에선 모두가 동의할 정도로 프로레슬링의 역사 그 자체 중 한 명이다.

3. 커리어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6d2b6e230616faa3e185ebb3808dfe1a.png 파일:nwo.png 파일:external/vignette1.wikia.nocookie.net/Hulk_Hogan.png
1980년대 ~ 90년대 초반
헐크 호건
1990년대
할리우드 호건
2000년대
커리어 말년

3.1. 데뷔와 신일본 프로레슬링

원래는 그냥 기타와 근육을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이었으나, 고등학교 및 대학 시절 때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고 반해서는[17] 무작정 레슬러들을 찾아가 연습을 시작하고, 일본 미국을 돌아다니며 경기를 가졌다. 청년기에는 기타도 매우 좋아해 실제 그의 기타 연주는 수준급이다.[18] 실제로 그의 테마곡인 Real American의 Entrance 뮤직비디오에서도 기타치는 장면이 나온다.

20대 때부터 이미 탈모로 인한 대머리에 수염 등 심각하게 삭아 보이는 얼굴이었으며 그 때문에 1980~90년대 한창 인기가 많았던 시절에 헐크가 40~50대였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다(...).[19] 실제로 헐크 호건 이후의 차세대 기대주로 주목을 받았던 브렛 하트와는 엄청난 나이차가 있는 줄 아는 사람이 많았지만 브렛 하트보다 겨우 4살 위였다. 브렛 하트가 동안이기도 해서 비슷한 터울이 아닌 삼촌과 조카뻘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1979년 11월 17일 Harry Valdez를 상대로 WWF 데뷔전을 가졌다. 이듬해 4월 WWF 챔피언 밥 백런드와 타이틀 매치를 가져 승리하지만 카운트아웃 승리여서 타이틀을 가져오는 데에는 실패했다. 영상 딱 1년만 활동하다가 다시 단체를 나왔다.

이후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참전했는데 G1 클라이맥스의 선조 격인 IWGP 리그의 결승에서 안토니오 이노키를 엑스 봄버로 한 방에 실신시키는 대사건을 벌이며 초대 (구) IWGP 헤비급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20] 이로써 호건은 미국보다도 일본에서 먼저 전설의 레슬러의 반열에 올랐으며, 지금도 일본에서는 “이치방!”을 외치며 하늘로 손가락을 올리고 엑스 봄버를 후려갈기던 모습으로 헐크 호건을 기억하고 있다.

호건의 일본 프로레슬링에서의 평가는 희대의 테크니션까지는 아니라도 2m에 달하는 레슬러 중에서도 구사할 수 있는 테크닉이나 경기 운용 모습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고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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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살기부터가 엑스 봄버 일본에서 하는 특징적인 무브는 검지 손가락을 하늘을 향하며 '이찌방!!'이라고 외치는 것.[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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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미국에서의 경기 자체가 좀 루즈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가 예전에 활동했던 일본의 스타일을 강하게 답습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화려하고 다이나믹한 움직임보다는 다소 답답할 수도 있는 간결한 움직임으로 경기 운영을 자주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낸 명경기도 꽤 된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당시 이미지를 따 온 것이 근육맨에 등장하는 넵튠맨으로, 넵튠맨의 필살기 자체가 엑스 봄버에서 따온 크로스 봄버다. 이름의 유래도 당시 일본 언론에서 엑스 봄버를 " 넵튠의 삼지창"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유래했다.

일본 쪽에서의 테크니션 레슬링을 미국 내 활동에서도 (원패턴 레슬링 대신) 적용했다면 선수 생명이 지금처럼 길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일부 있는데, 릭 플레어를 보면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헐크 호건의 캐릭터성에 원패턴 필승 무적 선역 기믹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헐크 호건의 기량과 끼는 그 자신의 것이므로, 다른 방향에서도 충분히 꽃을 피웠을 가능성이 높다. 그 꽃이 얼마나 화려한지는 둘째 치더라도 말이다.

3.2. 본격적인 WWF/WWE 활동 시작

이후 북미 AWA 단체 등에서 활동하며 상당한 인기를 누리던 중 그 재능을 간파한 빈스 맥마흔 WWF의 주연으로 발탁했다.[22] 이때 빈스 맥마흔은 측근에게 “난 이제 세계를 차지하게 될거야.”라고 얘기했다고 전해진다.[23] WWE에서의 첫 챔피언 커리어는 1984년[24] 아이언 쉬크를 이기면서 시작하는데, 당시 아이언 쉬크의 피니시인 카멜 클러치한 번도 깨지지 않은 피니시였다.[25] 전설의 시작답게 카멜 클러치를 풀어내고 레그드랍으로 승리를 거두며 전설의 시작을 알린다.

Hulk Hogan "Real American"

그 후 WWF는 ‘리얼 아메리칸’이란 컨셉으로 호건을 미국의 수호자, 미국의 영웅으로 놓고 이라크, 서아시아, 일본, 대한민국[26] 등 전 세계의 거인, 초인들이 미국에 와서 깽판을 치면 호건이 박살을 내놓는 다소 유치하면서도 국수주의적인 스토리라인을 전개했다.[27] 하지만 시대를 잘 탔던 각본에 호건의 강력한 파워, 관중의 반응에 호쾌하게 응해주는 카리스마 등이 더해지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거기다 호건은 영화, TV쇼 등에도 가리지 않고 출연해 끼를 발산한 레슬러였으며 결국 프로레슬링을 좋아하지 않는 층에도 어필하며 프로레슬링 자체를 세계에 알린 아이콘으로 자리잡는다.

당시 호건의 인기를 입증해 주는 예를 들자면, WWE 최고의 이벤트인 ‘ 레슬매니아’의 이름의 유래는 레슬 + 헐크 매니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탄생 유래 자체가 호건을 위한 대회였다.[28] 다만 여러가지로 명승부를 많이 남긴 레슬러라곤 해도 아무래도 필승 각본을 따라가는 궁극 선역 레슬러이다 보니 좀 사기성이 강한 데다가 경기가 지나치게 원패턴인 것이 헐크까들에게 주공격 대상이다.

일단 1980년대의 중요한 시합에선 거의 필승하였고, 어떤 반칙에도 쓰러지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NEVER GIVE UP!”의 시초이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에 헐크업으로 부활하여 삿대질→ 해머링 3방→ 로프반동 빅 붓→아토믹 레그드랍 콤보로 상대방을 박살낸다.[29] 그럼 관객은 즐기면 된다. WWE에서 이후 존 시나가 맡은 역할을 헐크 호건이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무적 선역 기믹의 시초로 보는 사람도 많다. 또한 세그먼트 때는 항상 어린 아이들을 위해 “기도를 잘하고, 비타민을 꼭 챙겨 먹어라 형제들이여!”를 말하며 아이들을 계몽하고 선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이러한 변함없는 단조로운 원패턴 레슬링은 당대에도 까인 적이 많았고, 최악의 선역으로 헐크 호건이 종종 뽑히기도 했다.[30]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건은 모든걸 상쇄할 만한 카리스마압도적 인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 불패의 레슬러는 아니었고, WWF 레슬매니아 6에선 최고의 명승부라는 얼티밋 워리어와의 시합에서 패해 WWF 타이틀을 잃었으나 선역답게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고 워리어의 손을 들어주기도 하였다.[31] 허나 이후 워리어가 챔피언으로서 WWF가 예상한 만큼 성공하지 못하자 불과 1년 후 흥행 보증수표인 호건을 다시 WWF 챔피언으로 올리기도 했다.[32]

그러나 WWF의 여러 프로그램들 자체가 식상해지면서 호건의 캐릭터 역시 진부해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빈스는 젊은 선수들을 선호하게 되고, 마침 그 즈음 있었던 스테로이드 파동까지 겹치는 바람에 호건을 비롯한 1980년대 스타들이 자연스럽게 밀려나게 되는 반 강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호건은 WWF 킹 오브 더 링(1993)에서 요코주나에게 패배한 후 WWF를 떠나 영화나 TV쇼 등에 출연하면서 연예계 활동에 주력하게 된다.

3.3. WCW 이적 / 할리우드 호건

1994년 7월 에릭 비숍의 요청을 받아들여 WCW로 이적한다. WCW의 아나운서에서 부사장이 된 비숍은 순식간에 쇼의 모든 것을 책임지게 되었고 당시 남부지방의 작은 단체에서 전국단체로의 성장을 위해 남부지방 억양에서 탈피하고자 아나운서도 민 진 오클랜드 바비 히난으로 바꾸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수개월 간의 설득 끝에 마침내 호건과의 계약을 이끌어냈고 이는 WCW가 미디어의 관심을 받아 전국적인 인기를 얻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세부적인 사항을 떠나 호건의 인지도와 인기만큼은 확실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이미 미국의 영웅 기믹은 식상함을 넘어 시청률도 지지부진하며 호건은 위기에 빠지게 된다. 1996년 에릭 비숍“선역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 당신이 악역으로 전환한다면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겠느냐?”며 호건을 집요하게 설득한다. 그리고 호건은 결국 그 설득을 받아들여 악역으로 전환(턴힐)하고, 링네임 또한 할리우드 호건으로 바꾼다.[33]
그리고 케빈 내시, 스캇 홀프로레슬링 사상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전설의 스테이블 nWo를 결성하여 WCW의 선역 레슬러들을 마구잡이로 짓밟고 세를 불린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WCW 배쉬 앳 더 비치(1996)의 배신은 아직도 현대 프로레슬링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반전으로 기록된다.[34]

이 장면은 WWE가 선정한 Good guys gone bad top 10 의 1위에 선정되었다. Good guys gone bad - WWE Top 10[35]
할리우드 호건의 입장씬 모음집

매일 비타민 우유를 챙겨먹고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미국 영웅이자 아이들의 우상 헐크 호건이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깡패, 무뢰배 집단의 수장으로 타락한 모습에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NEVER GIVE UP!”을 외치며 전 세계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존 시나가 시가를 피우고, 욕설을 하며, 자신의 힘을 이용해 권력을 잡고, 불응하는 사람들을 두들겨 패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악역으로 변신한 호건은 비열하고, 야비했지만 여전히 그 카리스마는 엄청났기 때문에 프로레슬링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WCW는 이 기세를 몰아 nWo 각본으로 한때 경쟁 단체 WWE를 존폐 위기로까지 몰고 갔으며, WWE 역시 살아남기 위해 전설적인 애티튜드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그렇게 두 단체는 월요일 밤의 시청률 경쟁을 이끌어내며 프로 레슬링의 황금기를 맞이 한다.

하지만 연이은 WCW의 삽질과[36] 호건의 높은 연봉, 경기 승패 여부 등으로 각본진과 잦은 마찰을 일으켰고,[37] 위태위태한 상황은 2000년 7월 WCW 배쉬 앳 더 비치(2000)에서 폭발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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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었던 제프 제럿은 호건을 상대로 타이틀전을 치르게 되어 있었고, 각본 컨트롤 권한이 있던 호건이 자신의 승리를 고집하자 경기 당일 제럿이 핀을 가져가라는 듯 벌러덩 드러눕는다. 예정에도 없었던 사태기 때문에 호건은 당황했고, 빈스 루소는 이런 호건에게 먹고 떨어지라는 듯 링 안으로 타이틀을 던져준 뒤 퇴장했다. 결국 호건은 빈스 루소를 비난한 뒤 제프 제럿을 발로 밟은채 3카운트를 따내고는 그대로 퇴장해 WCW를 떠나게 된다.[38]

그렇게 호건은 WCW에 단체 최고의 전성기를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몰락의 단초 또한 제공한 셈이 되었다. 그리고 배쉬 앳더 비치 이후 1년도 안 돼 WCW는 망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헐리우드 호건의 역사는 배쉬 앳 더 비치로 시작해 배쉬 앳 더 비치로 끝난 셈이다.

3.4. 다시 WWE로

WCW를 떠난 뒤 참여한 XWF가 망하자 2002년 스캇 홀& 케빈 내시와 함께 nWo를 재결성해 할리우드 헐크 호건이란 링네임으로 WWF로 복귀해서 깽판을 치며 다니다가 레슬매니아 18에서 더 락과 시합[39]에서 패배한 뒤 남은 nWo 멤버에게 배신당하자 더 락과 함께 이들을 몰아내고 턴페이스했다.[40] 이후 기존의 WWF 팬들이 기억하는 레드 & 옐로우 컨셉으로 돌아오면서 WCW 할리우드 호건 때의 테마곡인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Voodoo Child를 다시 사용했다.

본래 더 락 VS 호건의 경기는 호건이 비참하게 패배해 WCW의 유산을 모두 꺾어버리려는 것이 당초 WWE의 계획이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호건의 인기가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고, 상품의 매출도 좋았다. 그래서 계획이 수정되어 선역 전환 후 WWF 백래쉬(2002)에서 트리플 H를 이기고 WWE 언디스퓨티드 타이틀을 차지하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이것이 현재까지 호건의 마지막 WWE 챔피언 등극이다.
Worst Choke Slam Ever

이후 WWE 저지먼트 데이(2002)에서 당시 악역인 아메리칸 배드 애스 기믹으로 활동하고 있던 언더테이커와의 경기에서 패배하여 타이틀을 내주었다. 다만 이때 보여준 30cm 초크슬램 접수 장면을 두고 패하기 싫어서 일부러 그랬다는 낭설이 유독 한국에 퍼지고 있는데 이것을 문자 그대로 보기엔 어폐가 있다.

대립 과정에서도 초크 슬램을 몇번 당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호건의 운동신경 치고는 괜찮은 접수를 보여주기도 했으며, 동영상의 장면은 접수를 일부러 받아주지 않았다기보다는 호건의 노화로 인해 운동 신경이 많이 하락하였고, 장시간의 경기를 소화하기엔 경기력이 너무 떨어진 탓에 제대로 된 접수가 되지 않아서 생긴 해프닝일 뿐이다.[41] 그리고 위의 초크슬램은 핀폴을 당하기 전 피니시 초크슬램이 아니라 경기 중반부에 나온 초크슬램이다. 따라서 각본을 모두 알고있는 헐크 호건이 이 초크슬램을 맞는다고 해도 바로 경기가 끝나는 것도 아닌데 굳이 초크슬램 접수에 비협조할 이유가 없다. “허접한 초크슬램 접수 때문에 한번 더 피니시를 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저 초크슬램 이후 빈스 맥맨이 난입하여 심판의 관심을 흐트려놓았을 때 체어샷을 날린 후 초크슬램을 다시 해서 경기를 끝냈기 때문에 그 말도 성립되지 않는다. 실제로 경기에 지기 싫어서 그런 일을 했다면 스크류 잡이고 계약 위반이라 이후 소송은 기본으로 딸리게 된다. 프로의 세계는, 그것도 미국에서의 프로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냉혹하고 무섭다.
호건은 자신의 WWE 타이틀 매치를 보면 그의 전성기시절이던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1)에서 떠오르는 신예 언더테이커에게 패해 타이틀을 내준 경험이 있고, 11년이 지난 2002년에 펼쳐진 타이틀 매치 당시 이미 언더테이커도 WWE 최고의 스타이자 레전드 반열에 올라선 인물이었기에, 저 이야기는 헐크 호건 까의 악의적인 주장으로 보인다. 오히려 호건은 언더테이커의 데뷔 이후 그의 캐릭터와 연기력을 보고 빈스 맥마흔에게 푸쉬를 줘야한다고 건의했던 적이 있다. #

헐크 호건은 그의 최전성기이던 1990년대 WWF/WWE 시절 데뷔한지 갓 1년이 되던 언더테이커에게 패하여 타이틀을 넘겨주는 등 타이틀 매치에서 그에게 두 번이나 잡을 해줬다. 탐욕왕 이미지가 부각된 커리어 말년에도 당시 파격푸쉬를 받던 브록 레스너에게 베어허그로 실신하여 패하거나 커트 앵글 상대로 탭아웃을 했으며, 거기에 슬슬 풀타임 레슬러를 접고 영화계로 진출할 준비를 하던 더 락에게도 두 번이나 잡을 해 주는가 하면, 트리플H를 상대로 타이틀을 따낸 적이 있지만 그 반대급부로 스맥다운에선 단 6분여만에 클린 핀폴패를 당하고 트리플H의 손을 들어주는 연출까지 해 주는 등의 행보는 지기 싫어 멋대로 굴었다는 주장과는 전혀 다른 행보다. 당연히 언더테이커와의 경기에서도 명백히 잡을 해줬으니 결국 30cm 초크슬램은 그저 경기 중 실수에 불과할 뿐이다. 애초에 헐크 호건보다도 경기력이 뛰어났다는 선수들 중에도 간간히 보차가 나오는 일이 존재하는 프로레슬링에서 저 정도 접수 실수야 대단치 않은 일인데 사람이 사람이다 보니 잡음이 나오는 것이다.

그 이후 에지와 태그팀으로 활동하며 WWE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했다. 여담으로 에지가 프로레슬러의 길을 걷게된 동기가 바로 자신의 우상 헐크 호건이었기에, 당시 호건과의 태그팀 활동을 무척이나 감격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2002년 8월 브록 레스너 베어허그에 실신당하면서 패배한 후 당분간 활동을 중단했고 2003년초 할리우드를 뺀 그냥 헐크 호건으로 컴백하여 WWE 노 웨이 아웃(2003)에서 더 락과 2차전을 치렀다. 이 당시 더 락은 악역으로, 1년 전 레슬매니아 18 때와 선악역이 뒤바뀐 상태였고 선역 버프를 받은 호건은 더 락에게 레그드랍을 먹이며 승리하는 듯했지만 카운트 3이 되려는 순간 갑자기 경기장 조명이 나갔다 들어오더니 심판[42]이 기절해 있었다. 이후 빈스 맥마흔에게 시선을 뺏겨 더 락의 체어샷 & 락바텀 콤보를 맞고 패했다.

이로 인해 호건은 빈스 맥맨과 대립해 레슬매니아 19에서 스트리트 파이트 경기를 가져 서로 피튀기는 혈전 끝에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승리 후 첫 대면에서 빈스 맥마흔은 패배를 인정하는 듯하다가 WWE에서 단 한 시합이라도 더 뛰면 급여를 못 받게 된다고 선언했다. 이에 스맥다운에서 ‘미스터 아메리카’라는 기믹으로 등장했는데, 미국 국기 문양이 들어간 이상한 의상을 걸치고 마스크를 쓴 데다가 등장음악과 등장 세레모니조차 헐크 호건 시절 그대로였다.

그래서 누구나 뻔히 헐크인 걸 알지만 헐크 호건이냐고 물으면 “I'm not Hulk Hogan, Brother!”라고 답했다. 본인은 호건을 동경해서 레슬러가 된 인물일 뿐이라고 하며 절대 호건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기믹이었다. 호건은 이러한 대우에 불만을 품고 WWE를 그만뒀고 미스터 아메리카도 사라졌다. 갑작스럽게 사라졌기 때문에 어느날 빈스가 링 안에 나타나서 미스터 아메리카가 가면을 벗고 관중들에게 세레모니를 하는 장면을 리플레이로 보여주며 "헐크 호건인게 밝혀졌으므로(...) 해고되었다"고 알리는 형태로 어물쩡 수습했다. WWE를 떠난 호건은 TNA로 가려고 했으며, 제프 제럿이 일부러 일본까지 찾아가서 헐크 호건에게 기타샷을 날리는 등 충분한 떡밥까지 깔아놨지만, 부상 때문에 무릎수술을 받으면서 TNA행은 무산되었다.[43]

얼마 동안 리얼리티 쇼를 진행하는 등 프로레슬링과는 거리가 있는 활동을 보여주는 한편 풀타임 레슬러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WWE에 가끔 이벤트성으로 등장하다가 2005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WWE 섬머슬램(2005)에서 숀 마이클스, WWE 섬머슬램(2006)에서는 랜디 오턴과 경기를 가져 승리했다.[44] 랜디 오턴과의 경기는 호건이 WWE에서 가진 마지막 경기였다.

3.5. TNA 행

2010년 TNA에 등장해 경기는 하지 않고 쇼를 진행하면서 경기를 부킹하는, 즉 WWE로 따지자면 제너럴 매니저격의 역할을 맡았지만 별로 큰 반응은 이끌지 못했다.[45] 척추 수술로 인해 공백을 가지다가 2010 바운드 포 글로리의 메인이벤트에서 등장해 제프 하디에게 목발을 넘겨줘 커트 앵글 미스터 앤더슨을 공격하고 TN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오르게끔 도와준다. 경기가 끝난 뒤 에릭 비숍, 제프 하디, 어비스, 제프 제럿과의 연합인 이모탈(Immortal)을 꾸린 호건은 멤버들과 함께 챔피언이 된 제프 하디를 축하해 줬으며 분노한 관중들은 연신 쓰레기를 링 위에 던져댔다.[46]

PPV가 벌어지기 전 어비스가 딕시 카터의 남편을 공격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에 분노한 딕시 카터는 에릭 비숍이 제시한 어비스의 해고 관련 서류에 기꺼이 승인하는 서명을 했다. 하지만 이 서류는 사실 딕시 카터가 소유 중인 TNA 지분을 헐크 호건에게 넘긴다는 내용이라 헐크 호건은 TNA를 뒤흔드는 진정한 실세로 자리잡았다. 게다가 철천지원수였던 릭 플레어가 이끄는 스테이블 포춘마저 이모탈과 연합하면서 거대한 세력이 되었다.

2011 TNA 바운드 포 글로리 VII에서 스팅과 NO DQ 매치를 가져 스콜피온 데스락에 걸려 탭아웃해 TNA 경영권을 잃었다. 그러자 릭 플레어를 필두로 빡친 이모탈 멤버들이 난입하여 스팅을 집단구타했고, 폭풍처럼 쏟아지는 관중의 야유와, 스팅의 헬프 미 호건 속에 정신을 차린 호건은 셔츠를 찢으며 헐크 업했다.

비록 메인 이벤트( 커트 앵글 VS 바비 루드)는 기대에 못미쳤다는 평가를 받은 PPV였지만 이 경기 또한 못지 않은 병맛이었다는 평가가 컸다. 스팅의 호건 헬프 미의 충격도 충격이거니와, 경기에 패배한 뒤 개과천선하여 과거의 악당 동료들을 쓸어버린다는 이 패턴은 레슬매니아 18의 재현이다. 차이점이라면 상대가 신세대 스타가 아니라 같이 20여년 가까이를 굴러온 베테랑이라는 것뿐으로, 바운드 포 글로리는 예년에 비해 영 좋지 않은 흥행 실적을 거뒀다.[47]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으면 조커 스팅 연대기 참조

이후 TNA와의 계약이 끝나자 WWE와 계약하고 싶다 입질을 넣더니 TNA에 다시는 안 가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TNA에서 했던 짓을 보면 TNA 팬들에겐 이래저래 욕을 먹을 만하다. WWE 팬들도 그가 경쟁단체로 갔다가 홀라당 말아먹고 돌아와서는 30년 전 액션을 보여주며 "여러분이 그리웠어요ㅠㅠ" 하는 쇼를 볼 생각을 하니 영 좋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TNA에서 WWE로 완전 귀화한 후, 팬들 사이에선 TNA를 완전히 침몰시킨, 적장의 목을 따고 돌아온 영웅보다는 산업 스파이이라는 평가(...)가 생겼었다. 그가 WWE 외에 몸 담았던 WCW와 TNA가 모두 침몰했다보니 생긴 자연스러운 밈.

3.6. 두 번째 WWE 복귀(2014.02~2015.07)


2014년 2월 24일 RAW에서 복귀하는 한편 레슬매니아 30의 호스트로 선정되었는데, 레슬매니아라는 PPV 자체가 호건을 위한 PPV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30주년 기념으로 등장하는 건 호건이나 WWE로서는 큰 의미였다. 레슬매니아 30 당일 스티브 오스틴& 더 락과 함께 역사상 최고의 오프닝 세그먼트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연설 도중 개최장소인 슈퍼돔실버돔[48]으로 잘못 발음하는 해프닝을 일으켜 야유를 받았다. 뒤에 등장한 스티브 오스틴, 더 락도 이를 두고 훈훈하게(?) 놀려주었다.
2014년 일본 투어에 참가하여 매진 흥행에 큰 도움을 주는 한편 일본인 프로레슬러 KENTA와 WWE 계약식 세그먼트를 진행하였다.

2014년 8월 11일자 RAW에서는 생일 파티를 가졌다. 폴 온돌로프, 릭 플레어, 로디 파이퍼, 민 진 오클랜드, 지미 하트, 케빈 내시, 스캇 홀이 등장해 그에게 축하 메세지를 전했고 WWE 측에서도 그의 커리어를 담은 하이라이트 영상을 방영해 주었다. WCW 시절 영상은 보여줬으면서 TNA 시절 영상은 당연히 생략한 후 영상에는 호건의 막장 가족들의 얼굴도 나왔는데, 개막장으로 유명한 그의 前 부인은 당연히 22 생략되었다. 그 순간 브록 레스너가 등장해 공격받나 싶었으나 존 시나가 나타나 그를 구해 주었다. 이날 RAW 쇼 중간중간에 플로 라이다 등의 유명인들이 헐크 호건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방송이 끝난 뒤에는 빈스 맥마흔도 등장했다.

이에 WWE 영웅의 귀환이라는 평과 함께 WWE에 방해가 되는 단체는 가서 망쳐놓는 WWE의 수호신이란 글까지 나왔다.[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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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매니아 31에서 스팅 트리플 H의 경기에서 nWo 멤버로서 케빈 내시 스캇 홀과 함께 DX 멤버들을 공격하면서 스팅을 도와주기도 했다.

3.7. 인종차별 사건 그리고 복귀

2015년 7월 24일부터 WWE 공식 홈페이지에서 헐크 호건과 관련된 자료들이 죄다 삭제되기 시작했다. 헐크 호건의 프로필, 영상, 기록과 머천다이즈 상품들은 물론이고 WWE 명예의 전당 명단에서도 삭제되었다고 한다.[50] WWE가 갑자기 한 프로레슬러의 모든 기록을 말소하는 것은 2007년 크리스 벤와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에 대해 헐크 호건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테이프가 공개되어서 라는 소문이 있었고, 결국 기록 말살의 사유는 인종차별 발언으로 확인되었다. 과정을 살펴보면 버바 더 러브 스폰지의 아내 헤더 클렘[51]과의 대화 내용이 공개되었는데, 딸인 브룩 호건이 흑인남성과 섹스한 것을 두고 F*cking N*gger 등 여러 가지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것이 공개된 것이었다. 그동안 법정 내 비공개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으나 이번에 유출이 되었다. WWE에서는 이 사실을 파악하자마자 재빠르게 호건과 관련된 기록을 싹 다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그 이전에 알베르토 델 리오나 리카르도 로드리게스의 퇴사 이후 인터뷰 때문에 인종차별문제로 껄끄러웠던 WWE 입장에서는 재빠르게 손 쓸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무엇보다 델리오나 리카르도는 그들이 주장만 했을 뿐 증거는 없는 반면 호건의 경우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건 WWE 만의 문제가 아니라서 TNA에서도 헐크 호건의 기록과 상품들이 삭제되었다. 상품 리스트에서 내려진 호건 상품 중에는 출시된 지 1주일도 지나지 않은 호건 경기 DVD도 포함된다.

미국 내 트위터에서는 얼마전 성폭행 사건을 터뜨린 코미디언 빌 코스비와 함께 어린 시절 추억을 망친 인간 중 하나로 몰려 까이는 중이다. 또 1주일 뒤인 7월 30일에도 과거에 했던 인종 차별 발언이 추가적으로 확인되었는데 아들이 교도소에 있을 때 면회를 갔다가 이야기 하는 와중에도 “깜둥이들”이란 말을 하는게 포착되었고, 몇 달 뒤에는 동성애자 비하 발언이나 그의 이름을 딴 식당이자 호건 본인이 오너 겸 대리인을 맡았던 호건즈 비치에서도 흑인 스타일의 복장을 한 손님을 출입금지시켜 인종차별 논란이 있었던 사실이 추가로 폭로되었다.

백인 선수들 중에서는 호건 뿐만 아니라 사이가 좋은 선수를 찾기가 더 힘든 스캇 스타이너나 헐크 호건이 앞으로 다시는 WWE에 돌아와서는 안 될 인간이라며 비판한 브렛 하트 정도를 제외하면 크리스 제리코 케빈 내시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함께 하는 게 친구라며 “평소에 인종차별적 단어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 비디오는 조작된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흑인 선수들 가운데서도 반응이 많이 갈리는 편인데, 과거 헐크 호건과 동시기에 활동했던 버질은 “헐크 호건이 내게 얼마나 인간적인 대우를 해 줬는데 그건 단지 실수일 뿐이다.”라는 식으로 옹호하기도 하고 부커T도 호건을 감쌌으며, 더 락은 “그는 나의 아버지와 삼촌들과 함께 훈련했던 절친한 친구 관계였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발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다시 말하는 약간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고, 뉴 잭은 “망할 새끼 눈에 띄면 죽여주마!”라는 식의 분노를 표출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흑인과 함께하는 것 자체를 혐오하는 강경한 인종차별주의자 부터 인종적 차별과 혐오감정을 상황에따라 드러내는 케이스까지 여러 종류가 있음을 고려해서 헐크 호건이 어느정도의 인종차별주의자인지 가늠 해 볼수있다. 버질이나 부커 T[52] 등 흑인 선수들과 친분이 있는 헐크 호건의 경우 심각한 수준의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닐 것이다. 다만 마음에 안 드는 흑인들에게 비하와 욕설을 하는 버릇을 가진 정도의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53]

감정 컨트롤이 안 된 상태에서 이야기하는 발언조차 허용이 안 될 정도로 현대 미국 사회는 인종차별을 사회문화적인 터부이자 금기로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WWE는 이 발언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마자 호건의 기록을 말살하는 강경책을 쓴 것이다.

이번 일로 프로레슬링 팬들 사이에서는 투명드립이 유행하고 있다. 이를테면 “레슬매니아 3에서 앙드레 더 자이언트랑 싸운 게 누구야?”식의. 그의 중요 WCW 커리어인 nWo의 멤버를 소개할 때 그를 빼고 스캇 홀 케빈 내시만을 이야기 한다든지. 또한 WWE 공식 홈페이지에서 헐크 호건과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삭제하는 한편 포토샵 등을 이용해 헐크 호건이 등장한 모든 장면에서 헐크 호건만 삭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헐크 호건을 투명화 시킨 사진이 유행할 정도였다.(...) 2018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힐벌리 짐의 소개영상에 헐크 호건의 언급과 더불어 영상으로 모습이 나온거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듯 하다.

WWE 공식 유투브에는 아직 삭제되지 않고 남아있는 헐크 호건의 영상이 몇 개 있는데 이미 댓글란은 투명드립으로 가득 차 있다. 릭 플레어와의 경기에서 “왜 오토바이가 운전하는 사람도 없이 혼자 달리고 있지?”라든가 릭 플레어와 공기의 경기라고 하거나 크리스 제리코와의 경기 영상에서는 “제리코 술 마셨나? 왜 혼자 레슬링해?”라고 하는 식이다. 혹은 “저 노란색 티셔츠 입은 사람은 누구야? 신인인가?”라고 하면 답글로 “저건 커티스 액슬이다.”라고 하기도 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공기 취급 당했다.

다만 사람 사는곳이 다 똑같지는 않은지, 오히려 제명을 당해 편집된 레슬링 영상을 보면서 댓글로 헐크는 왜 안나오는거지? 호건 어디있냐?로 일부러 헐크 호건의 존재를 끄집어내는 미국 유저들도 많았다. 이건 WWE팬들의 일종의 트롤링이라고도 할수 있는데, WWE내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제명당해 존재가 부정당한 레슬러들을 기를 쓰고 언급하면서 그 사람 왜 안나오냐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것이다. 헐크 호건 말고도 크리스 벤와[54], CM 펑크도 이런 류로 강제소환 되는 경우가 있다.

사실 WWE 역시 인종차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본적으로 미국인 vs 비 미국인 간의 대립이나 흑인 및 인종차별이나 이슬람 혐오 등을 은근히 내포한 캐릭터와 각본을 내보내는 등 WWE의 국수주의는 역사가 깊다. 또 다른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아이언 쉬크의 경우 이란 출신임에도 미국에 사는 여러 소수 민족을 비하하는 글을 엄청나게 트윗한 적이 있고 워리어도 WWE로 복귀하기 전 각종 강연회를 돌아다니며 극우주의적 발언을 일삼으며 한번은 강연에 참가한 아랍계 출신 어린이에게 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엄청난 인격 모독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끝판왕으로 도널드 트럼프까지 있지만 WWE는 이들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고로 WWE가 헐크 호건에게만 너무한다는 이유를 들어서 동정 여론이 생기고 있는데, 문제는 암만 동정파들이 모여서 그를 변호하려고 해도 툭하면 헐크 호건 이 인간이 헛소리를 한다는 거다. 법정에서 위증을 한 건 둘째 치고, 인종차별 발언에 대해 그냥 솔직히 사과하면 될 걸 오랜 버릇인 남 탓을 하며 “내가 자라던 동네에선 이런 말 자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입에 익었다.”라고 하는 등...[55]

2016년 5월 자신의 성관계 비디오[56]를 유출해 자신을 몰락 시킨 미국의 미디어 회사 고커[57]와 법정 싸움을 벌여 승소해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받는 데 성공했다. 호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기 커리어를 불명예스럽게 끝장낸 것에 대한 추가적인 고소를 하겠다고 밝히다가 결국 고커 측과 배상금 합의를 통해 고커 측에서 헐크 호건에게 3,100만(한화로 354억원) 달러를 지급하고 고커 매각 수입 일부를 받는 조건으로 마무리 지었다. 불명예스러운 커리어와는 별개로 헐크 호건은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 게다가 고커 미디어는 미들 미디어로서 악명이 높았기에 헐크가 좋든 싫든 고커가 주저앉자[58] 여러 미국 네티즌들은 환호했다.[59]

이후에는 팟캐스트 방송이나 언론 인터뷰로만 모습을 드러내고 본인은 WWE 복귀에는 큰 기대를 안 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8년 앙드레 더 자이언트 다큐멘터리 촬영과 관련해서 오랜만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레슬링 매체들은 WWE가 슬슬 호건 복귀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루머를 보도했다.

2018년 7월 15일에 공식적으로 WWE 명예의 전당에 복권되었다. 이 날은 익스트림 룰즈 2018이 진행됐는데, 백스테이지를 찾아 WWE 소속 프로레슬러 + 직원들에게 발언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인종차별 발언에 대한 사과는 하지 않고 영상 유출에 대해 주의하자는 식으로 말해서 내부에선 반발을 샀다고 한다. 트리플 H는 직원들이 알아서 길 줄 알고 일방적으로 헐크 호건이 직원들에게 발언하는 시간을 강제로 마련했는데 오히려 WWE 내부에서 역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흑인선수들중 더 뉴 데이, 타이터스 오닐, 마크 헨리 등이 WWE의 지시에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진 않았지만 헐크 호건과 명백히 선을 긋는 발언을 했다. 다만 그렇다고 이들이 버질이나 더 락, 부커 T 등 호건을 편들어준 유색인종 선수들과 사이가 나빠졌다던지, 그들을 비판했다던지 하진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 관계자들이 2018년 11월에 열리는 WWE 크라운 주얼에 헐크 호건이 출연할 것을 요구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매체들이 보도했는데 아직도 많은 WWE 레슬러들이 그의 출연에 대해 이에 대해 심기가 불편하다고 한다.
호건이 다시 TV쇼에 모습을 드러낸 날은 2019년 1월 7일 Raw로 전 WWE 링 아나운서 민 진 오클랜드를 추모하기 위한 세그먼트를 하기 위해서였다.

위 영상에서 호건은 올드 팬들의 눈시울 자극할만 한 멋진 세그멘트를 통해 공감받는 복귀를 할 수 있었다. 민 진을 추모함과 동시에, 먼저 하늘나라로 가 있는 랜디 새비지, 얼티밋 워리어, 커트 헤닉, 로디 파이퍼, 앙드레 더 자이언트, 고릴라 몬순, 바비 히난, 패뷸러스 물라, 매 영을 자연스레 같이 언급하며 이들 모두를 추모하는 명세그먼트를 한다.

4월 7일에 열린 WWE 레슬매니아 35에도 등장해서 오프닝 세그먼트를 진행했다. 이날 등장했던 여타 슈퍼스타들을 압도할만한 환호성에 Real American 떼창까지 나올 정도로 여전히 열광적이었던 현장 반응이 다소 의외이면서도 인상적.
2019년 RAW 리유니온 특집에 등장했다.
2019년 9월 30일 RAW에서 미즈 TV에 출연해 릭 플레어와 신경전을 벌였고, WWE 크라운 주얼(2019)에서 팀 헐크 호건 VS 팀 릭 플레어의 5:5 태그팀 매치를 가지면서 승리했다.
2020년 2월 14일 스맥다운에서 자신의 비치 샵에서 위성연결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마이클 콜 WWE 슈퍼 쇼 다운(2020)에서 더 핀드 vs 골드버그의 경기에 대해 묻자, 핀드가 골드버그의 강력한 힘을 조심해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nWo 테마의 파이어플라이 펀 하우스에서 브레이가 유니버설 타이틀을 기타처럼 튕기며 자신의 흉내를 내고, 호건은 브레이가 재미있는 친구라며 골드버그와 링에 서는 것은 농담이 아닐 것이라고 한다.

브레이가 자신의 사진이 걸린 액자를 보여주며 도발하자 호건은 자신은 WWE 명예의 전당에서 나타날 것이며 탬파로 오라고 답한 뒤에 인터뷰를 마무리한다.

WWE 레슬매니아 37에서도 타이터스 오닐과 호스트 역할을 맡았다.

4. 주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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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쉬 무브인 아토믹 레그드랍 / 레그드랍 오브 둠.
시합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술은 바디슬램, 클로스라인, 빅 붓, 해머링, 아토믹 드롭, 레그드랍 등. 적어도 북미에서는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는 레슬러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서브미션도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 편.

주 피니쉬는 미국에서는 아토믹 레그드랍,[60] 일본에서는 엑스 봄버이다. 오늘 날에는 굉장히 수수해보이는 피니쉬지만 헐크 호건의 전성기 시절 다른 선수들의 피니쉬 무브들도 전체적으로 수수하기는 마찬가지였고[61], 전성기 시절 2m를 넘는 키와 137kg의 근육질 거구인 그가 높게 뛰어올라 바닥에 완전히 뻗어있는 상대의 목을 찍어누른다고 생각하면 결코 설득력이 부족한 피니시라고 평가절하 할 수 없다.

특징적인 무브로는 '헐크 업'이 있으며 설정상으로는 관객의 함성을 들으면 몸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시작하여 결국 조금씩 떨림이 오면서 몸 상태를 회복하기 시작하며, 상대방의 일반 공격은 물론 피니셔를 맞아도 이 헐크업으로 대부분 무조건 씹어버린다.[62] 그리고 호건이 완전히 일어나면 상대는 못 이긴다. 단 이것은 북미 한정으로, 일본에서는 헐크 업을 거의 선보이지 않는다.[63]

어쨌거나, 헐크업이 어느 시점 이상으로 진행되면 (주로 완전히 일어나서 머리를 흔들며 힘차게 링을 주유할 때쯤)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는 멋도 모르고 해머링을 잇달아 날리지만 끄덕도 하지 않는 호건을 보며 '저거 뭐야?' 하면서 당황하다가, 난데없이 자신을 쳐다보며 하는 삿대질"YOU!"라는 대사에 정신줄을 놓게 되고, 이후 정해진 수순에 따라[64] 패배하면서 게임 끝이다. 하지만 얼티밋 워리어, 언더테이커, 브록 레스너, 빌 골드버그, 더 락 등 그에 준하는 슈퍼스타나 호건이 악역(...)일 때는 이 패턴을 깨고 반격해서 승리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콤보가 두 번 성공하는 경우도 거의 없는데, 콤보 정타를 모두 맞았는데도 씹히면 그 날은 호건이 거의 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두 번째 콤보 때 레그드랍을 피하고 공격을 하고 이기는 식.

그 외, 일본에선 액스봄버를 피니시로 썼다. 북미에서도 액스봄버를 가끔씩 시전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65]
위 경기를 보면, 1995년 WCW인데 3분 15초경에 스팅과의 대결에서 분명히 엑스봄버를 사용하고 있다.[66] 래리어트와 크로스라인이 아닌 정확히 팔꿈치로 사용하고 있다. 오히려 비교적 근래의 일본에서 액스봄버라고 헐크가 직접 사용하는 경우에도 크로스라인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위 영상은 정말 정확히 액스봄버를 사용한다. 이후 핀 폴 시도를 하는 것으로 미뤄봤을때 준 피니시 급인 것도 유추가 가능하다.

5. 평가

단순히 프로레슬링을 애슬레틱한 운동의 관점에서만 접근한다면 헐크 호건은 당대에도 현재 기준으로도 크게 두드러지는 선수는 아니다.[67] 일부 팬들이 테크니션설을 주장하는 근거인 일본 레슬링 무대 시절을 기준으로 한다쳐도 움짤 몇 개 가지고 평가하기에는 표본이 너무 적으며, 대표적으로 안토니오 이노키와 치른 경기들을 봐도 느릿느릿한 패턴으로 대변되는 경기 운영을 비롯해 WWF 시절과 유사성이 제법 많다.

그러나 호건의 진가는 그런 운동능력과 경기 운영능력을 뛰어넘은 거대한 카리스마에 있다. 그냥 서있기만 해도 눈에 띄는 독특한 외모(태닝한 피부에 탈색하여 백금발에 가까운 모발과 수염, 어마어마한 거구 등)는 물론이요, 마이크를 쥐면 맨날 하는 입바른 소리만 읊는데도 장황하지 않게 적당히 요지만 전달하며 자신감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멘트에, 경기 중에는 관객의 호응을 대담하게 유도하고 그 호응의 정도에 따라 확실한 반응을 보여주는 특유의 선동력까지 포함하면 이 방면에선 틀림없이 긴 프로레슬링 역사상으로도 손에 꼽을 카리스마의 결정체이다. 이는 그가 운동능력의 측면에서 어필하는 레슬러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방송을 통해 전달되는 WWF(E)의 환경에 최적화된 링 사이콜로지를 깊게 이해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링 사이콜로지라는 용어가 다소 전통적인, 프로레슬링 '기술'을 통해 현장 관객과 소통하는 능력이라고 한정하면 이 또한 호건은 특출난 부분이 없지만, 신기하게도 외적인 카리스마가 그걸 커버하고도 남는데다가 오히려 지나치게 넘쳐흘러서 돌출되어버리는 탓에 라이브 현장을 뛰어넘어 TV 화면에서도 빛바래지 않는, 그야말로 현대 프로레슬링에 최적화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프로레슬링 역사상의 위치는 최초로 등장한, 티비 전국구 중계에 최적화된 압도적인 재능의 소유자였다고 요약이 가능하며, 그러한 호건의 재능과 인기는 개요에 서술되었듯이 기존의 지역구 단체 시스템이 아닌 현재의 TV 위클리 쇼 시스템과 전국구 단위로 통합시킨 현재의 프로레슬링 쇼 개념을 확립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막대한 업적과는 별개로 현역 시절 지나치게 쇼맨십에 치중된 경기 운영, 풀 타임 레슬러에서 물러난 이후로도 후진 양성보다는 자신의 위상 관리와 각본 간섭에 집중하는 태도[68], 게다가 이미지를 깎아먹는 실언 등 이런저런 비판도 많이 듣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WWE와 프로레슬링은 없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업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 한 마디로 그가 현대 프로레슬링의 아이콘 그 자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참고로 후술된 계약 조건은 그가 정점을 찍고 WCW로 이적한 후 재계약 협상 끝에 상호합의한 내용이다. 사실상 회사 최고위 임원급을 초월한 파격 그 이상의 대우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하늘을 찌를듯한 위상을 잘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헐크 호건은 비록 전성기가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단체 하나의 얼굴마담이라는 틀에서 아득히 벗어난, 그야말로 프로레슬링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1. 계약 동의 시 2,000,000달러 즉시 지급.

2. PPV 출연 시 1회당 출연료 675,000달러 지급.

3. 계약일로부터 3년차까지 2월, 7월, 11월 PPV 출연료 1,350,000달러 지급.

4. PPV 시청률에 따라 보너스 지급.

5. TV쇼, 하우스쇼 출연 시 티켓 수익의 25% 지급.

6. 헐크 호건의 이름으로 나온 머천다이징, 라이센스 수익의 50% 지급.

7. 지역 이동 시 비행기 1등석, 특급 호텔, 리무진 서비스 항시 제공.
그의 위상을 단적으로 나타낸 1998년 WCW와 체결한 계약서 내용 출처

6. 여담

* 그렘린 2에서도 카메오 출연했는데, 그렘린들이 영화 상영을 방해해서 극장 매니저가 도움을 요청하자 헐크 호건이 옷을 찢어버리며 격분 "당장 영화 안 보여주면 모두 작살을 내주마"라고 으르렁거려 그렘린들을 제압하는 포스를 보여준다.[72]
파일:external/3.bp.blogspot.com/Hero-Envy-Hulk-Hogan.jpg * 항상 두건을 쓰고 다녀서 모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헐크 호건은 대머리이다. 당시 WWF에서는 호건의 헤어 스타일( 탈모)을 언급하는 것은 대립 중이라도 금지되어 있었다. 다만 이후에 완화된 것인지 2005년 숀 마이클스와의 일시적인 대립 때 마이클스가 '대머리 가발'을 쓰고 늙은이 모습을 해서 헐크 호건을 조롱하는 등, 처음으로 헐크 호건의 머리를 가지고 프로모를 했으며, 헐크 호건의 위상이 자신의 범죄로 인해 무너지게 되면서 WWE 2K24부터 30대 호건의 탈모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됐다.
파일:attachment/헐크 호건/럴크호건.jpg *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5번째 확장팩 드레노어의 전쟁군주 클로즈 베타 서버에 헐크 호건을 패러디한 럴크 로건 NPC가 등장했다. 특히 호건의 명대사를 패러디한 "여기는 몹 젠이 안되네, 형제여(spawning is incomplete here, brother)"라는 서브네임이 압권. 아쉽게도 정식버전에는 추가되지 않았는데, 몬스터 무한 젠을 이용한 버그악용 유저들을 놀리기 위해 추가한 개그성 엔피시라 애초에 본서버에 넣었을 가능성은 없었다. 게다가 이즈음에 호건이 위에 언급된 인종차별 사건을 벌였기 때문에 개발진이 정식으로 넣으려고 마음을 바꿨더라도 무산되었을 듯.
* 미스터 T와 함께 토크쇼에 나가서 진행자에게 기술 시범을 보였는데, 진행자의 뒤통수가 정말로 깨져버리는(...) 사고가 있기도 했다.

6.1. 콩가루 집안

헐크 호건에게는 최대의 흑역사인 아들 닉 호건은 음주운전 교통사고 혐의로 감옥을 제 집 드나들듯 했으며 그 사고들 중에는 자기 친구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적도 있다.

뒷소문으로는 헐크 호건이 돈을 굉장히 밝힌다고는 하지만 사생활을 들여다보면 탐욕스러운 마누라, 람보르기니와 수프라를 부숴먹은 아들, 자신에게 빌붙어서 등골을 제대로 빼먹으려는 마누라의 내연남[80] 때문에 돈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아들이 친 사고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아내의 내연남이 저지른 사고 때문에 호건이 피해자들한테 무릎꿇고 빌어야했던 일도 있었을 정도라 이쯤되면 호건이 크리스 벤와처럼 살인 안저지른게 다행일 지경이다.

헐크 호건의 가족들 중 '그나마' 정상적인 건 딸 브룩 호건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봤을 때 그렇다는 것이지, 가수 되겠다고 하고 다닌 행태를 보면 정상은 아니다. 브룩 호건은 미식축구 선수 필 코스타와 약혼했으나 2013년 가을 파혼했다.

가수 시킨답시고 열심히 밀어준 딸은 푸쉬에 비해 죽을 쓰고 말썽만 부리고 있으며, 이런저런 일로 부인과 사이가 안 좋은 상태에서 딸의 친구와 잔 것이 들통이 나는 바람에 결정적으로 틀어져서 결국 이혼했다. 갑작스레 이혼하더니 20살 차이나는 제니퍼 맥다니엘과 사귀었다. 게다가 딸도 인터뷰에서 마구 씹어대서 거액의 위자료를 물어줘야 할 판이었다.

딸을 위해서 정말 별 짓을 다하고 눈물겨운 노력을 했으며 죽을 힘을 다했다. 딸을 가수 시켜주기 위해 영화 촬영으로 알게 된 지인들을 만나 사정하기도 했고, WWE의 디바로 만들기 위해 동료 프로레슬러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엄청나게 해댔다. 하지만 브룩 호건은 가창력이 그저 그런 수준에조차 못 미치는 데다가 몸이 글래머인 건 좋은데 등발만 좋을 뿐 미모나 운동신경 등 디바로서 갖춰야 할 요소들이 상당히 많이 부실했다. 이 때문에 헐크 호건은 혈연을 이용해서 딸을 데뷔시켜주고 있다며 호되게 까였다.

그런데 이 집안도 처음부터 이 모양이었던 것은 아니다. 업종이 연예계에 가까운 업종이다 보니 평범한 시민 가족보다는 화려하고 별난 일도 많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모범적인 제대로 굴러가던 가족들이었다. 남편과 내조하는 아내, 그리고 멀쩡한 자녀들이 있는 가정이었지만 ' Hogan Knows Best'라는 리얼리티 방송에 나오면서 망가지기 시작한다.

이 방송으로 온 가족이 모두 자기가 대단한 스타가 된 것으로 착각하게 된 것. 문제는 이 방송이 감동의 인생사 이런 류의 방송이라면 참한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이려고 자기 관리를 했을 테지만 겉만 화려한 서부 졸부 집안의 웃기는 모습이 컨셉이었다. 시청률, 판매 수익, 광고 수익 등을 노린 타블로이드급 언론들이 호건 가족에게 기이한 언행을 하라고 지속적으로 부추기는 바람에 결국 막장에 이르게 된다.

Pre-Cracked egg로 한국에도 유명한 Obvious Plant가 헐크 호건이 "부모님 말에 복종하라"는 말을 36분씩이나 해댄다는 가상의 상품 <Hulk Hogan says OBEY YOUR PARENTS>를 만들어 가족 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그의 행실을 풍자했다.

7. 같이 보기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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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020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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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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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1982,1983 1984
앙드레 더 자이언트 & 르네 굴렛 안토니오 이노키 & 헐크 호건 안토니오 이노키 & 후지나미 타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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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렛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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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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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헐크 호건
(1999)
부커 T
(2000)
파일:PWI 로고.png PWI 선정 올해의 경기 [★]
1985년
3월 31일
WWF
레슬매니아 I
태그팀 매치
로디 파이퍼 & 폴 온돌프 vs _ 미스터 T_ & _헐크 호건_
1988년
2월 5일
WWF
메인 이벤트
WWF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_ 앙드레 더 자이언트_ vs 헐크 호건(C)
1990년
4월 1일
WWF
레슬매니아 VI
WWF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 WWF 인터컨티넨탈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_ 얼티밋 워리어_(C)[82] vs 헐크 호건(C)[83]
2002년
3월 17일
WWF
레슬매니아 X8
싱글 매치
_ 더 락_ vs 할리우드 헐크 호건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최고의 흥행 보증 수표
창설 헐크 호건
(1997)
스티브 오스틴
(1998)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대립
테드 디비아시 vs 짐 더간
(1985)
헐크 호건 vs 폴 온돌프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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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가장 카리스마 있는 선수
릭 플레어
(1984)
헐크 호건
(1985 ~ 1987)
스팅
(1988)
스팅
(1988)
헐크 호건
(1989 ~ 1991)
스팅
(1992)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가장 과대평가된 선수
빅 존 스터드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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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 1986)
더스티 로즈
(1987)
시드 비셔스
(1993)
헐크 호건
(1994 ~ 1998)
케빈 내시
(1999)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 최악의 대립
릭 플레어 vs 정크야드 독
(1990)
헐크 호건 vs 서전 슬로터
(1991)
얼티밋 워리어 vs 파파 샹고
(1992)
제리 롤러 vs 도잉크 더 클라운
(1994)
헐크 호건 vs 던전 오브 둠
(1995)
빅 버바 vs 존 텐타
(1996)
D.O.A. vs 로스 보리쿠아스
(1997)
헐크 호건 vs 워리어
(1998)
빅 보스 맨 vs 빅 쇼
(1999)
빅 보스 맨 vs 빅 쇼
(1999)
헐크 호건 vs 빌리 키드먼
(2000)
WWF vs 디 얼라이언스
(2001)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최고의 선역
타미 리치
(1981)
헐크 호건
(1982 ~ 1991)
스팅
(1992)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 최악의 경기 [★]
1998년
10월 25일
WCW
할로윈 해벅
싱글 매치
워리어 vs _할리우드 호건_
-*****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연간 최고 시합상 (베스트 바웃) [★]
1991년
12월 12일
SWS[86]
슈퍼 레슬 in 도쿄 돔
싱글 매치
텐류 겐이치로 vs _헐크 호건_
역대 로얄럼블 경기 우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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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1994 1995 1996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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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1999 2000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 빈스 맥마흔 더 락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25%; min-height:2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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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 트리플 H 브록 레스너 크리스 벤와 바티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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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
1985.3.31
레슬매니아 1
태그팀 매치
헐크 호건 & 미스터 T
vs
로디 파이퍼 & 폴 온돌프
1986.4.7
레슬매니아 2 - 캘리포니아
WWF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헐크 호건 vs 킹 콩 번디
1987.3.29
레슬매니아 3
WWF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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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4.2
레슬매니아 5
WWF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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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3.20
레슬매니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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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전 슬로터 vs 헐크 호건
1992.4.5
레슬매니아 8
싱글 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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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4.4
레슬매니아 9
WWF 챔피언십
요코주나 vs 헐크 호건[88]
역대 스타케이드 메인이벤트[★]
1994.12.27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헐크 호건 vs 더 버처
1996.12.29 싱글 매치
할리우드 호건 vs 로디 파이퍼
1997.12.28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할리우드 호건 vs 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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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버바 로저스 스캇 노턴 쵸노 마사히로 랜디 새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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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스타이너 디시플 닉 페트릭 브렛 하트
스티비 레이 호러스 호건 배리 윈드햄 마크 존슨
렉스 루거 스팅 디스코 인페르노 데이빗 플레어
토리 윌슨 릭 스타이너 제프 제럿 론 해리스
돈 해리스 미다자 샤키라 타이레네 벅
에이프릴 헌터 파멜라 폴쇽크
NJPW 당시 멤버
쵸노 마사히로 사이토 히로 텐잔 히로요시 nWo 스팅
스캇 노턴 버프 백웰 무토 케이지 마이클 월스트리트
스캇 홀 케빈 내시 식스 빅 타이탄
브라이언 애덤스 코지마 사토시 나가타 유지 사이토 마사
WWE 당시 멤버
헐리우드 헐크 호건 케빈 내시 스캇 홀 엑스팍
빅 쇼 부커 T 숀 마이클스
기타 멤버
카일 페티 데니스 로드맨 폴 길마틴 클로드 만
미우라 다이스케 스즈키 타카노리 마네 타카시 이노우에 준
야마모토 마사히로 야마사키 타케시 마에다 유키나가 나카야마 마사시
오카노 마사유키 류지 치요타이카이 요시오카 토시마사 야마다 유지
야마구치 코지 다이타 쿠사나기 츠요시 산타마리아 유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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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WWE 합계
챔피언십, 횟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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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플레어
21회, 16회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9회, ※ 8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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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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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 1회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 6회
WCW 인터내셔널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임팩트 월드 챔피언 4회
랜디 오턴
14회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 4회
WWE 챔피언 ※ 10회
헐크 호건
12회
WWE 챔피언 ※ 6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 6회
커트 앵글
12회, 6회
WWE 챔피언 ※ 4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 1회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 1회
임팩트 월드 챔피언 6회
제프 제럿
12회, 4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 4회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AAA 메가 챔피언 2회
에지
11회
WWE 챔피언 ※ 4회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 7회
미키 제임스
11회, 6회
WWE 위민스 챔피언 ※ 5회
WWE 디바스 챔피언 ※ 1회
임팩트 넉아웃 월드 챔피언 5회
더 락
10회
WWE 챔피언 ※ 8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 2회
번 가니에
10회
A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0회
브록 레스너
10회
WWE 챔피언 ※ 7회
WWE 유니버설 챔피언 ※ 3회
같이 보기: 북미 메이저 월드 태그팀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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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슬매니아 19 이후 일회성으로 사용했던 성조기 모양 복면을 착용한 복면 레슬러 기믹의 링네임. 제프 하디의 윌로우 기믹과 비슷하게, 누구나가 호건인 것을 알지만 묵인해주는 기믹이었다. [2] 프로필상으로는 이렇지만 현재는 현역 시절에 비해 키가 확연히 줄어들어 보이는데, 실제로 신장이 크게 줄어든 게 맞다. 호건 본인도 인정했듯 수십 년 동안 구르고 뛰고 레그드롭을 하느라 망가진 척추와 엉치뼈에 몇 차례나 수술을 거듭하느라 키가 특히 심하게 줄어든 것. 현재는 193cm 정도로 줄었다고 본인이 밝혔다. 전성기 시절에 비해 무려 8~10cm의 키가 작아진 셈 [3] 이 역시 호건의 전성기 시절 몸무게이고 현재는 대략 265~275파운드 정도로 추측된다. 여담으로 앙드레 더 자이언트와의 경기때는 294파운드(133kg)으로 소개되었고, 얼티밋 워리어와의 경기때는 320파운드(145kg)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이미 2000년대 WWE에 복귀했을 때 275파운드(125kg)로 소개되었을 정도. [4] 아주 어린 시절인 1살 때부터 이주하여 성장한 곳이다. 할리우드 헐크 호건 기믹으로 입장할 때는 출신지가 할리우드로, 그냥 헐크 호건으로 등장할 때는 대개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베니스 해변으로 소개된다. 미스터 아메리카 기믹으로 입장할 때는 워싱턴 D.C.로 소개되기도 했다. [5] 매 경기마다 1회 이상씩 중요한 순간이면 거의 반드시 나오는 주요 기술들이다. [6] 언더테이커의 싯업과 비슷하게 쓰이는 연출이자 무브. 경기 도중 호건이 위기에 처하거나, 분위기가 돋구어지는 상황에 이르면 아드레날린이 고조되며 그가 더욱 강해졌다는 설정을 지닌 무브로, 이게 발동된 뒤에는 몇 차례의 공격을 노 셀링을 하며 공격이 통하지 않는 연출을 보여준다. 이 뒤에 상대방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해머링 빅 붓을 먹이는 게 고정 패턴. [7] 주로 일본 무대에서 쓰던 피니시. 북미에서는 시그니쳐 무브로 주로 사용했다. [8] 1983년에 열린 IWGP(International Wrestling Grand Prix) 리그의 결승에서 안토니오 이노키에게 승리를 거두며 초대 챔피언이 되었고, 378일 가량 챔피언으로 있었다. [9] 서바이버의 노래로, 영화 록키의 OST로 유명한 곡. 2000년대 이후로는 사실상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TNA 하우스 쇼에서 이걸 틀고 입장한 적도 있다고 한다. [10] 애국자 히어로 기믹으로 전환한 이후부터 헐크 호건을 상징하는 테마. 제목과 가사의 내용덕에 도널드 트럼프와 같이 엮이기도 하며, 댓글창에서도 사람의 몸은 70%가 물이고, 헐크 호건의 몸은 99%가 미국인이라는 등 국수주의 밈과 엮이기도 한다. 사실 이 곡은 원래 호건을 위해서 만들어진 곡이 아니라 마이크 로툰다와 배리 윈덤의 U.S Express 라는 태그팀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였고, 이미 경기에서도 몇 번 사용했었으나, 이 둘은 호건이 WWF로 컴백한 후 얼마 안돼서 NWA로 떠났기 때문에 마침 애국자 히어로 기믹으로 전환한 호건이 물려받게 된 것이다. [11] 1994년부터 쓰였다고 잘못 알려진 경우도 있으나, 1980년대 중반부터 헐크호건이 등장할 때는 이 노래가 재생되었다. [12] WCW에서 헐크 호건 기믹으로 활동할때 쓰던 테마. [13] nWo로 함께 입장할 때 사용하던 테마곡. [14]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곡. WCW 할리우드 호건 시절과, WWF 복귀 후 개인 테마곡으로 사용했다. [15] nWo 울프팩으로 함께 입장할 때 사용하던 테마곡. [16] TNA에서 스테이블 임모탈의 수장으로 활동할 때 사용했던 테마. [17] 헐크 호건이 동경했다고 언급된 선수엔 더스티 로즈가 있었다. [18] 현역 시절 동료인 홍키 통크 맨은 기믹과 달리 기타를 전혀 칠 줄 몰랐는데 그런 그에게 기타 치는 걸 가르쳐주기도 했다고 한다. [19] 실제로는 30대 초중반. 1990년에 37세였다. [20]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는 안토니오 이노키가 헐크 호건은 물론이거니와 회사 내 그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돌발적으로 벌인 행동이었다. [21] 또는 '엑스 봄버!!'라고 외치기도 한다. [22] 이때가 1983년인데 바로 WWF에만 전념한 것은 아니고 이후에도 일본 무대에는 1985년까지 참전을 지속했다. [23] Sex, Lies, and Headlocks에서. 당시 AWA에서 인기가 좋았으나 테크니션이 아니라는 이유로 박대받던 헐크 호건은 록키 3에 나오면서 인지도를 더 높였는데, 안 그래도 악명높은 워커홀릭이라 영화를 잘 안 보는 빈스가 그걸 본 뒤 분명 대중이 호건을 알아볼 것이라 여겨서 영입했다고 한다. 당시엔 WWE의 선역이자 챔피언은 밥 백런드였는데 그는 너무 깨끗하고 번듯한 선역 이미지에서 벗어나질 못했고 결정적으로 시대가 변하면서 모범생적인 선역에 이제 식상함을 느낀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받질 못하게 되자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빈스 맥맨은 밥 백런드를 내려오게 하고 그를 대신할 새로운 이미지의 영웅으로 헐크 호건을 점찍었다. 그는 전설의 레슬러 브루노 삼마르티노와 같은 파워에다 빌리 그레이엄과 같은 화려한 이미지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선수였기에 빈스가 찾던 아주 이상적인 선수였다. 사실 밥 백런드는 인기는 높았지만 외모만 놓고 보면 안짱다리에 키도 별로 크지 않고 근육질도 아닌 전형적인 개성없는 아마추어 레슬러 타입의 신체였다. 그에 비해 헐크는 겉모습만 봐도 삐까뻔쩍하다고 할 정도로 외모에서 차이가 엄청났다. [24] 정확하게는 1984년 1월 23일,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25] 참고로 아이언 쉬크는 1983년 12월 26일 당시 WWF 챔피언이던 밥 백런드를 이기고 챔피언에 오른 지 1년도 안된 때였다. [26] 1984년 타이거 청 리(한국명 김덕)와 경기를 해서 이겼다. 물론 재일이었긴 하지만 경기 당시 콜사인으로는 확실히 서울, 사우스 코리아라고 소개되었다. 이 당시 김덕의 기믹은 악역 일본인 레슬러였던 미스터 후지의 한국인 무술가 친구(...)라 김덕도 당연히 악역이었다. 이 당시 둘이 같이 태그팀으로 경기를 할 때 미스터 후지가 욱일기를 들고 나오는 등 한국인들 입장에선 여러모로 어이없을 기믹이긴 하지만, 앙드레 더 자이언트, 뱀 뱀 비글로, 밥 백런드, 테리 펑크 등 내로라 하는 선수들과 경기를 치르던 선수인건 확실하다... [27] 호건의 첫 WWF 챔피언 획득이 1984년 1월에 있었던 이란출신 아이언 쉬크와의 대결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때 아이언 쉬크와 그의 매니저가 후에 이라크군으로 분장한 변절자 기믹의 서전 슬로터와 함께 제네랄 아난 그리고 무스타파 대령 기믹으로 다시 등장한다. 일본 쪽 기믹은 요코주나. 이건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키, 한국 김일도 똑같았지만 (사실 일본의 국수주의 기믹의 원조는 그들의 스승인 역도산이었다.) 헐크 호건은 그야말로 세계구였다. [28] 비틀즈의 매니아 = 비틀매니아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이쪽도 나름의 설득력이 있지만, 이미 헐크매니아라는 단어가 있었고 당시 헐크 호건은 전성기를 누리던 최고의 레슬러였다. 이를 고려하면 실질 어떤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물론 판단은 이 문서를 읽는 독자의 몫. [29] 헐크 호건의 전성기 시절에 이 콤보를 씹어낸 레슬러는 얼티밋 워리어, 시드 저스티스, 요코주나 단 3명뿐인데 이 중 시드 저스티스는 각본과 실제 시합 사이의 오류로 어쩔 수 없이 각본을 씹은 것이고 요코주나의 경우 헐크 호건의 WCW 이적 전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즉, 제대로 씹은 것은 얼티밋 워리어 한 명뿐이다. 또한 보통 기술이 들어가고 나서 씹어낸 적은 거의 없다. 보통 기술을 피하고 기습적인 핀을 하여 3카운트와 어깨를 드는 순간이 아주 아슬 아슬하게 거의 일치해서 빼앗기는 등 그 지더라도 그 위상을 보완할 정도였다. 이에 추가로 랜디 새비지도 WWF 메인 이벤트 쇼에서 스페셜 게스트 심판으로 배정되었던 버스터 더글러스의 퀵 카운트 덕분에 정상정인 타이밍의 카운트였다면 킥아웃이 되었을 상황을 인정받지 못하며 패배 처리를 당했던 적이 있었다. [30] 존 시나가 무적 선역 기믹으로 인해 국내에선 ‘존나세’라는 별명이 있고 해외에선 “John Cena Sucks”이라는 구호를 외쳤었던 것과 비슷하다. [31] 에지가 이 경기를 보고 레슬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지는 2002년에 자신의 우상인 호건과 WWE 태그팀 챔피언을 지내기도 한다. [32] 물론 얼티밋 워리어의 재능과 인기가 헐크 호건에 못미치는 것도 있지만 호건은 다양한 적과 상대하면서 여러 경기를 가졌는데 워리어는 헐크 호건과 가진 상대보다 낮은 위치의 선수를 상대하거나 한번 호건과 상대한 선수를 호건 다음에 PPV도 아닌 하우스 쇼에서 상대하는 등(다들 섬머슬램에서 헐크 호건 VS 어스퀘이크의 경기는 알아도 워리어 VS 어스퀘이크 경기는 모를 것이다. 워리어 역시 하우스 쇼에서 어스퀘이크를 들어올렸는데도 말이다!) 챔피언에 올랐으면서도 호건에 비해 못한 대접을 받은 것도 있다. [33] 이는 동시에 헐크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위해 마블에 지불해야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저작권료에 대한 부담을 줄어주였다. 이후 다시 헐크 호건 이라는 링네임을 사용했을 때는 헐크에 대한 저작권이 소멸한 시점이었다. [34] 이 당시 경기중계 때 헐크 호건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해설자인 바비 히난이 “Whose side is he on?(누구 편 인거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비 히난이 헐크 호건과 WWF 시절부터 견원지간 기믹이 있었기 때문에 깐죽대는 커멘트라고 간과해 버릴 수 있는 것이 사실상 떡밥성 코멘트였다. [35] WWE가 WCW를 인수하였기에 해당 장면에 대한 판권이 WWE에 있다. [36] 일례로 빌 골드버그와 할리우드 호건의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은 PPV도 아닌 위클리쇼에서 열렸다. 사실 그 정도는 약과고 결국 PPV에서 열린 경기에서 골드버그를 케빈 내시에게 패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삽질을 저질렀다. 이로 인해 그동안 인기를 끌었으나 이제는 식상하게 된 nWo 체제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결국 호건을 비롯한 나이많은 선수들에게만 기대고 신인 선수를 통한 물갈이가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WWE가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과 더 락을 중심으로 하는 애티튜드 시대에 대항할 방법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37] 크리스 제리코의 자서전을 보면 오웬 하트의 장례식에서 제리코가 WWE로 갈 거라고 고백하자 자신도 데려가줄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호건 자신도 이쯤에서 WCW에 지치기 시작한 듯하다. [38] 이 경기는 공식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아 정식 챔피언십 변동도 없었다. 대신 즉석에서 제프 제럿과 부커 T의 WCW 챔피언쉽이 열려 부커 T가 첫 월드 챔피언에 등극한다. [39] 부제가 Icon vs Icon이었다. 악역이었던 헐크 호건이 환호받고 선역이었던 더 락이 야유를 받기도 했다. [40] 경기 내용 자체만 보면 명경기 수준은 아니지만 관중들의 엄청난 반응과 두 선수의 서로 밀리지 않는 엄청난 카리스마로 높은 평가를 받은 경기. [41] 전성기에도 호건의 경기력은 우스갯소리로도 훌륭하다고 보기엔 힘들었다. 거기다 저 시점에서 호건의 나이는 이미 50세였다. [42] 이 시합의 심판이 훗날 라 레지스탕스의 멤버였던 실반 그리니어다. 이후 WWE 레슬매니아 19에서도 나오지만 이내 저지당한다. [43] 첫번째 바운드 포 글로리도 원래는 2003년 11월에 진행하고 메인이벤트로 제프 제럿과 헐크 호건으로 계획했지만, 호건의 수술로 대립도 무산되고 첫번째 바운드 포 글로리도 2005년 10월로 연기 [44] 숀 마이클스의 경우 당시 입지가 탄탄했고 호건과 대립하며 일시적으로 악역 전환을 했기 때문에 팬들의 호응도 상당히 컸으며, 경기에서도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똘끼를 발현하여 경기 내내 오버접수를 시전하는 형태로 본인의 위상을 보호했다. 그러나 오턴의 경우 당시 레전드 킬러 기믹이라 레전드 vs 레전드 킬러라는 부제까지 붙여가며 매치업을 짰지만, 1년 전 언더테이커와의 레슬매니아 경기와 마찬가지로 오턴의 클린 핀폴패로 끝이 나버렸다. 이 탓에 골수 팬덤에서는 두 경기 모두 호건이 잡을 해줘도 모자랄 판에 특유의 정치질로 후배들을 묻어버린 경기 아니냐는 식으로 호건을 까며 일종의 의혹 제기를 하지만, 이전에 여러 차례 잡을 해준 행보에 미뤄보면 설득력이 떨어지며 오히려 호건의 마지막을 일종의 선배 대우를 해준 쪽에 더 가깝다. [45] 호건이 처음 TNA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 WWE는 14년만에 브렛 하트를 RAW에 등장시켜 숀 마이클스와 화해하는 장면을 연출하며 대중의 관심을 TNA로 가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심지어 릭 플레어 역시 같은날 TNA에 등장했음에도 그냥 묻혀버렸다. [46] 당시 장소가 충격적인 턴힐과 함께 nWo를 결성했던 데이토나 비치 오션 센터였다. [47] 사실 조커스팅 스토리 자체가 헐크호건의 턴페이스를 향해 달려간 스토리인 것은 사실이지만 스팅의 역대급 조커 스팅 기믹 수행으로 단체 전체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오른 상태였었는데 헬프미 호건 엔딩이라는 찬물로 큰 혹평을 받았다. [48] 실버돔은 호건이 앙드레 더 자이언트를 상대했던 레슬매니아 3의 개최장소이다. 안드레 추모 배틀로얄 경기 때문에 잠시 착각한 듯하다. [49] 그가 몸담은 곳 중 WWE를 제외하고 안 망한 데는 WWE 이전에 활동했던 신일본 프로레슬링 뿐이다. 물론 신일본도 망할뻔했으나 타나하시 히로시의 눈물없인 볼수없는 고생과 희생으로 살려놨다. [50] 단 명예의 전당에서 완전히 제명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51] 2012년 호건의 섹스비디오 영상의 주인공 [52] WCW 시절의 그 유명한 “Hulk Hogan, We're commin' for you, N****!”사건과(부커티도 저 첸트를 날린 직후 바로 제길,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한거지??" 하는 듯한 리액션을 했다''') 관련한 인터뷰에서, 당시 호건이 나중에 부커 T에게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하면서 “I'm a good n****”라고 드립을 쳤던 사실을 언급한 적이 있다. 백인인 호건이 흑인인 부커 T 앞에서 N-Word를 썼음에도 부커 T가 헐크 호건과 백스테이지에서 싸웠다는 이야기는 없으며(부커 T는 vs. 바티스타 현피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자기랑 안 친한 사람이 대놓고 인종차별 단어를 내뱉는데 그냥 넘어갈 성격은 절대 아니다.) 애초에 저 일화를 언급할때도 불쾌한 기색은 전혀 없이 웃으면서 언급한 것으로 볼 때, 부커 T와 헐크 호건이 1996년 당시에도 저런 드립을 쳐도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는 꽤나 친한 사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두 사람의 친분은 호건의 인종차별 발언 사건 이후에도 틀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1996년이면 흑인이 아닌 인종이 N-word를 쓰는것 자체가 금기시 되기 시작한 뒤였다. 부커 T는 2016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감옥에 갔었던 자신의 흑역사를 언급하며 “내가 그랬듯이 호건에게도 2번째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참조, 헐크 호건이 복귀한 후인 2019년에도 여전히 호건에게 감정이 좋지 않은 몇몇 흑인 레슬러들과는 달리 자신의 팟캐스트에 호건을 초대해 인종발언 사건을 언급하며 호건을 옹호해주기도 하였다. [53] 사실 호건은 하쿠와도 친하게 지내는 등 프로레슬러 사이에서 인망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54] WWE 공식계정 유튜브에서 역대 로얄럼블 우승자를 소개할때, 2004년 우승자 벤와만 빼자 댓글로 우린 벤와를 기억한다, 2004년은 로얄럼블 안했냐? 등으로 따졌다. [55] 다만 이 변명 자체는 사실인게, 그의 출생지인 조지아 주와 실질적으로 성장기를 보낸 지역인 플로리다 주는 전부 딥 사우스 지역, 그 중에서도 남부연합 최초의 7주에 속하는 지역들이고 당연히 인종차별의 영향력이 강하다. 게다가 호건의 유년기 시절은 영화 크레딧에서 흑인 엑스트라 출연자를 니거 1, 니거 2 등으로 표기하는 등의 만행도 서슴치 않았던 시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마음에 안드는 흑인에게 욕이 튀어나오는 정도에서 그치는 호건은 오히려 비슷한 조건의 사람들 중 꽤 양호한 편에 속할 수도 있다(...). [56] 호건의 주장은 버바 더 러브 스폰지와 그의 아내 클램 헤더가 짜고 계획한 일로서 영상 촬영자 자체가 버바이며, 자신은 온전히 피해자이지만 모든 비난이 자신에게만 향했다고 한다. [57] 코타쿠, 기즈모도 등의 웹진 운영사. [58] 결국 고커 계열은 미 서부의 히스패닉-스페인어 사용자들을 기반으로 한 미디어그룹 우니비시온의 자회사인 퓨전미디어그룹으로 매각되었다. [59] 이때 헐크가 돈이 대체 어디서 나서 비싼 변호사비를 치렀는지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는데 사실 고커에 의해 강제 아웃팅을 당한 게이이자 미국의 기업가인 피터 틸이 고커를 엿먹이기 위해 헐크 호건의 뒤를 봐줬다고 한다. [60] 호건 한정으로 Leg Drop Of Doom이라는 이름이 따로 있지만 거의 쓰지 않는 명칭. [61] 대표적으로 지금은 중간기술 정도로 위상이 격하한 DDT도 저 시절에는 제이크 로버츠의 피니쉬로서 굉장히 위상이 높았다. 당시 경기를 보면 DDT는 거의 일격필살 급이라 로버츠의 DDT에 당하지 않기 위해 로버츠가 목에 팔을 감기만 해도 재빨리 빠져나오는 모습이 자주 나왔는데, 특히 밀리언 달러 맨 테드 디비아시가 이런 연기에 능했다. [62] 초기 무적이었던 언더테이커의 툼스톤 파일드라이버도 헐크업으로 바로 씹혔을 정도다. [63] 아주 안 한 것은 아니고 주로 WWE 일본투어에서는 헐크업도 거끔 나왔다. 사실 헐크업 자체가 WWF에 진출한 다음부터 생긴 것이니 일본 시절에는 당연히 없을 수밖에. [64] 헐크 업→ You! 하면서 삿대질 → 다시 덤벼드는 상대 주먹을 막고 해머링 3번 → 로프반동 빅 붓 → 쓰러진 상대에게 레그드랍으로 마무리 [65] 사실 피니시로서의 위상을 잃었을 뿐 액스봄버도 알음알음 사용한 편이다. [66] 꼭 이 경기가 아니더라도 1990년 레슬매니아 6에서 얼티밋 워리어와의 경기에서도 엑스봄버를 사용했다. [67] 다만 레슬러 개개인의 평균운동능력이 상향되고 링 사이콜로지 연구가 거의 완료되어버린 현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과거의 레슬러들은 모두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고 이는 굳이 레슬러들 뿐만 아니라 구기종목을 비롯한 모든 스포츠 종목이 마찬가지다. [68] 그 유명한 WCW와 TNA의 몰락의 중심인 것은 물론이요, 트리플 H도 몇 수는 접어줘야 할 정도로 본인의 승리에 집착했다. 단, WWF(E)가 패권을 거머쥐기 전부터 활동을 시작한 북미 레슬러들에게 있어 이러한 태도는 어느 정도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자신의 몸값을 높이려면 아무래도 더 강력하고 멋진, 흔히들 말하는 높은 위상을 유지하는 것이 좋으며, NWA라는 느슨한 연합체에서 특정 거점없이 이적을 반복하면서 몸값 후려치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정치력을 동원해 자신에게 유리한 부킹을 받는 것이 프로레슬러라는 이름의 “개인 자영업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기는 게 당연하던 시절부터 레슬링을 하던 세대라 그런 것. [69] 실제로도 헐크 호건은 루 페리그노보다 근육도 훨씬 많이 붙었고 몸집이 훨씬 컸다. 키 역시 당연히 그 당시 기준 201cm인 헐크 호건이 195cm인 루 페리그노보다 컸다. [70] 국내에서는 8~90년대에 미디아트 비디오를 통해 수입되었으며 2020년 8월 17일, IB SPORTS에서 방영하였다. [71] 참고로 이 영화에서 언더테이커가 악당 콤비 중 하나로 등장한다. [72] DVD와 TV방영판에만 그가 나온다. 국내 극장 및 미국 개봉판과 국내 비디오판에선 존 웨인이 나와 그렘린들과 총격전을 가지는데, 이는 다른 영화 장면과 합성한 것이다. [73] 헐크호건이 무릎앉아 자세로 주먹을 들어올리는 형태의 우주선이였다. [74] 반대로 배드 뉴스 브라운은 헐크 호건과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실 배드 뉴스 브라운은 독고다이를 선호해서 WWE 내에서도 친한 사람이 드문 편이었다. 그래도 앞서 나온 하쿠와는 꽤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75] 전체적으로 나빴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만도 않았다. 호건은 사이가 좋은 레슬러도 꽤나 많은 편이었는데 케빈 내쉬나 스캇홀 뿐 아니라 앞서 말한 부커 T와 하쿠같은 경우도 있고 비록 자의식이 강한 면이 있긴 했어도 팬이나 동료에게 나름 친절한 구석도 있었다. 다만 마초맨과는 사생활에 너무 깊이 관여하는 바람에 사이가 나빠졌고 얼티밋 워리어는 아무래도 서로 자의식이 강한 데다가 워리어부터도 그리 인간관계가 좋은 편은 되지 못했다. [76] 아무리 열받는 일이 있어도 호건 말은 들었다고 한다. [77] 대체로 자기와 비슷한 급의, 그것도 똑같이 에고가 강한 선수와는 사이가 상당히 나쁘지만 자신보다 급수가 낮은 후배 선수들에게는 친절한 편이고 도움을 주는 일도 많아서 그런지 어지간해서는 사이가 나쁘지 않은 편이다. 실제로 호건의 인종차별 발언 때 의외로 그를 두둔한 흑인 선수들도 꽤 있었다고. 배드 뉴스 브라운과 한때 사이가 나쁘긴 했지만 이건 헐크 호건이 인종차별을 했다고(우리가 아는 그 사건은 아니다.) 브라운이 오해를 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외 ECW의 흑인 선수 뉴 잭이 헐크 호건의 인종차별 발언 때 호건을 죽이겠다고 떠들어댔지만 워낙 뉴 잭 자체가 성격이 개차반이라는 점에서는 그 스캇 스타이너를 능가하는 데다가 뉴 잭 자체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 묻혔다. [78] 스테로이드 법정 증언, WCW, TNA [79] 헐크 호건은 워낙 전설적인 선수다보니 다른 선수들은 물론이고 경영자도 어지간한 급수가 아니면 들이대기도 힘들다. 그런데 WCW나 TNA에서는 감히 헐크 호건의 명성을 넘을 만한 사람은 선수든 경영자든 없었고 오히려 호건의 명성을 이용하려고만 했기 때문에 권력을 넘겨주는 일이 많았던 것. 하지만 빈스는 호건 이상으로 권력의 화신인 데다가 WWE 또한 온전히 빈스 본인의 소유고 거기다 프로레슬링에 대해서도 잔뼈가 굵기 때문에 제 아무리 호건이라도 빈스를 넘보는 건 불가능하고 그렇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호건도 프로레슬러 본연의 일에만 충실하게 되는 순기능만 남게 된다. 게다가 애당초 호건의 재능을 알아보고 WWE에 데뷔를 시켜 지금의 전설적인 선수가 될 수 있게 팍팍 지원을 해준게 빈스다. 레슬매니아 19 프로모에서 괜히 빈스가 자신이 호건을 만들어줬다고 한게 아닌 셈. 물론 헐크 매니아 같은 것은 호건이 자체적인 인기로 만든 것이지만 이 역시도 호건이 WWE에 데뷔하지 않았다면 만들기 힘들었을 것이다. 호건 입장에서는 빈스가 상사이자 은인과도 인물이기 때문에 더더욱 빈스에게 대들기 어려우니 두 사람의 관계는 정말 복잡한 애증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80] 헐크 호건의 자가용을 멋대로 몰고 다니는가 하면 헐크 호건의 방에서 자고, 헐크 호건의 개인 소장품을 함부로 만지고 주머니에 넣는 등 별짓거리를 다 하는 데다가 심지어는 교통법규를 위반한 범칙금을 헐크 호건이 대신 물어주는 지경까지 갔다. 게다가 자신이 잘못해서 내야 할 엄청난 액수의 범칙금과 자신이 진 엄청난 빚 모두를 죄다 헐크 호건에게 떠넘기려 했다. 오죽했으면 헐크 호건 본인이 " O. J. 심슨을 철저하고 완벽하게 이해하고도 철철 넘친다."는 발언을 했을 정도였다. [★]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 [82] WWF 인터컨티넨탈 헤비웨이트 챔피언 [83] WWF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 [★]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 [86] Super World of Sports [★] 오른쪽이 도전자, 밑줄이 승리자 [88] 원래는 브렛 하트와 요코주나 였으나 브렛 하트가 경기에 지고 들어가는 도중에 호건이 등장했고 거기서 즉석으로 경기가 성사되어서 이 경기가 메인이벤트가 되었다...... [★] 오른쪽이 도전자, 밑줄이 승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