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스소니언 선정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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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미국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국립 교육 재단 스미스소니언 재단의 잡지,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이 “미국사 가장 중요한 100인의 인물”을 선정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뽑았기 때문에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고 부정적인 인물들도 있다. | |
<colbgcolor=#000047><colcolor=#ffc224> 개척자들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헨리 허드슨 · 아메리고 베스푸치 · 존 스미스 · 조반니 다 베라차노 · 존 뮤어 · 메리웨더 루이스 · 사카자위아 · 키트 카슨 · 존 웨슬리 파월 · 닐 암스트롱 | |
혁명가 & 저항가들 | 마틴 루터 킹 · 로버트 E. 리 · 토머스 페인 · 존 브라운 · 프레드릭 더글러스 · 수전 B. 앤서니 · W. E. B. 듀보이스 · 테쿰세 · 타탕카 이요탕카 ·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 말콤 엑스 | |
대통령들 | 조지 워싱턴 · 토머스 제퍼슨 · 율리시스 S. 그랜트 · 우드로 윌슨 · 에이브러햄 링컨 · 제임스 매디슨 · 앤드루 잭슨 · 시어도어 루스벨트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로널드 레이건 · 조지 W. 부시 | |
첫 여성들 | 포카혼타스 · 엘리너 루스벨트 · 힐러리 클린턴 · 마사 워싱턴 · 오프라 윈프리 · 헬렌 켈러 · 소저너 트루스 · 제인 애덤스 · 이디스 워튼 · 베티 데이비스 · 세라 페일린 | |
범법자들 | 베네딕트 아놀드 · 제시 제임스 · 존 윌크스 부스 · 알 카포네 · 빌리 더 키드 · 윌리엄 M. 트위드 · 찰스 맨슨 · 와일드 빌 히콕 · 리 하비 오즈월드 · 러키 루치아노 · 존 딜린저 | |
예술가들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 앤디 워홀 ·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 제임스 맥닐 휘슬러 · 잭슨 폴록 · 존 제임스 오듀본 · 조지아 오키프 · 토머스 에이킨스 · 토머스 내스트 ·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 앤설 애덤스 | |
종교인들 | 조셉 스미스 · 윌리엄 펜 · 브리검 영 · 로저 윌리엄스 · 앤 허치슨 · 조너선 에드워즈 · 라파예트 로널드 허버드 · 엘런 화이트 · 코튼 매더 · 매리 베이커 에디 · 빌리 그레이엄 | |
팝 아이콘들 | 마크 트웨인 · 엘비스 프레슬리 · 마돈나 · 밥 딜런 · 마이클 잭슨 · 찰리 채플린 · 지미 헨드릭스 · 마릴린 먼로 · 프랭크 시나트라 · 루이 암스트롱 · 메리 픽포드 | |
제국 건설자들 | 앤드루 카네기 · 헨리 포드 · 존 D. 록펠러 · J. P. 모건 · 월트 디즈니 · 토머스 에디슨 ·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 하워드 휴즈 · 빌 게이츠 ·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 스티브 잡스 | |
운동선수들 | 베이브 루스 · 무하마드 알리 · 재키 로빈슨 · 제임스 네이스미스 · 아놀드 슈워제네거 · 타이 콥 · 마이클 조던 · 헐크 호건 · 짐 도프 · 세크리테리엇 · 빌리 진 킹 | |
출처 | }}}}}}}}} |
<colbgcolor=#000><colcolor=#fff> 베네딕트 아놀드 Benedict Arnol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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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41년 1월 14일 |
코네티컷 식민지 노리치 | |
사망 | 1801년 6월 14일 (향년 60세) |
영국 잉글랜드 런던 | |
직업 | 군인, 약제사, 상인 |
복무 |
1775년 ~ 1780년 (대륙군) 1780년 ~ 1781년 (영국군) |
계급 |
소장 (대륙군) 준장 (영국군) |
배우자 |
마거렛 맨스필드 (1767년 ~ 1775년, 사별) 페기 시펜 (1779년 결혼) |
자녀 | 8명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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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 미국 독립 전쟁 중에 활동한 장군이다. 독립 전쟁 중 배신 행위를 저질러 미국인들에게는 매국노의 대명사로 통하는 인물로 한국으로 치면 이완용 급의 인물로 취급을 당하지만 대륙군에 있을 시기 나름 전쟁 영웅급으로 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을 높으신 분들에게 가로채이거나 독립군에 내부적인 문제로 모함에 시달리고 빚을 져가면서 까지 전쟁에 참여하는 등 이리저리 치였다가 결국 이를 참지 못해서 배신을 저지른 인물이라 이완용과 같은 단순 기회주의자들이나 물욕 때문에 나라를 배신한 매국노들과 비교당하기에는 상당히 억울함이 많은 인물이다.2. 생애
코네티컷에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름대로 어릴 때는 부유한 편이었는데 아버지가 알코올 의존증으로 가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말 그대로 맨주먹으로 일어선 케이스의 인물. 전쟁 전에는 대서양 횡단무역을 하는 상인이었고, 1775년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우수한 공적을 쌓아 군인으로서의 명망을 얻었다.사실 독립전쟁 당시 전체적으로 역량이 떨어졌던 식민지군 중에서는 지휘력만으로 따지면 원톱에 들 수 있는 인물이었다. 만일 베네딕트 아놀드가 존재하지 않았고, 그 자리에 평이한 식민지군 장군이 있었다면 미국 독립전쟁은 조기에 진압되었을 것이다.
특히 1776년 가을에 있었던 발쿠르 섬 전투에서의 전략적 승리는 그의 전략적 능력을 보여주는 예로 종종 회자되곤 한다. 영국군은 캐나다에서 온 증원병을 포함한 16,000명 병력과 원주민 지원병으로 3,600여명의 독립군을 쫓고 있었다. 이 진격로에는 챔플레인 호수가 있었는데, 아놀드는 갑자기 나무를 베어서 작은 배 10여척을 만들고, 생전 처음 배를 타본 병사들을 태워서 수상방어선을 구축했다.[1] 영국군은 이 막무가내 소함대를 껄끄럽게 여겨 4주라는 시간을 들여서 제대로 된 함선과 무장을 구축했고,[2] 아놀드의 소함대를 당연히 박살냈다.
문제는 4주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영국군은 다시 캐나다로 돌아갔다. 만일 그 4주의 시간을 벌지 못했다면, 영국군은 독립군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뉴 잉글랜드 인근에 주둔지를 마련했을 것이며, 그러면 그 다음해에 뉴 잉글랜드는 박살이 나고, 독립전쟁은 그걸로 끝났을 것이다.
그와 그나마 경력을 비교할 만 하고 높은 지위에 있던 다른 지휘관이 하필이면 찰스 리로, 조지 워싱턴의 자리를 노려 그를 시도 때도 없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려고 수를 쓰고 있었으니, 미 독립군으로선 사실상 고위 지휘부가 조지 워싱턴의 적이었던 셈.[3]
2.1. 불운의 전쟁영웅
하지만 다른 장군들이 자꾸 자기 공을 가로채는 일들이 일어났다. 일례로 새러토가 전투에서는 호레이쇼 게이츠의 반대를 무릅쓰고 병력을 출동해서 2번이나 대승을 거두었다. 영국군 버고인 장군은 우회공격을 하려고 했는데, 게이츠가 반대하는 것에 강하게 항의해서 군을 돌격시켰기 때문에 초전을 승리하고 영국군의 진격을 막을 수 있었다. 두번째는 더 심했는데, 게이츠는 첫번째 전투에서 아놀드의 주장에 따라서 승리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아놀드를 막사에 감금했다. 하지만 전투가 시작되자, 아놀드는 막사를 탈출해서 전장으로 달려갔고, 용맹하게 싸우는 장군의 모습에 병사들 역시 분전한 결과 새러토가에서 승리하게 된다. 이 전투의 승리로 영국군 장군 버고인은 게이츠에게 항복했고, 이것을 알게 된 프랑스가 전쟁에 참전했다. 만일 아놀드가 없었다면 영국군은 우회전략을 성공시켰을 것이고, 인근에 있었던 다른 영국군과 합류해서 전투를 떠나 독립전쟁을 끝냈을 것이다. 이런 눈부신 공로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공은 발목 잡은 게이츠의 것이 되었고[4] 아놀드는 그대로 묻혔다. 게다가 전투과정에서 발에 총상을 입기까지 했는데 말이다.[5] 여튼 이런저런 일들로 승진이 자꾸 좌절되었다. 게다가 이 다리 부상 때문에 이후 야전에서 공을 세울 기회를 상당부분 상실하게 된다. 그야말로 자기 군사적 커리어 상당부분을 희생해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는데, 정작 돌아온 보답은 하나도 없었던 셈.1778년에는 조지 워싱턴의 명령에 의해 영국군의 퇴각으로 수복된 필라델피아의 군정장관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아놀드는 생각없이 이전의 군정장관들이 해오던 대로 치솟는 물가를 잡겠다고 필라델피아의 상점들을 일시 폐쇄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 사람들은 아놀드가 상점을 폐쇄하고 시장을 독점해서 장사로 치부하려는 술책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필라델피아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까지 아놀드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 필라델피아의 관할권을 놓고 대륙의회와 필라델피아가 위치한 펜실베이니아 주 정부가 치열한 논쟁중이었는데 당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이자 독립군 장군이었던 조지프 리드가 익명으로 아놀드를 부정부패로 맹비난하면서 상황이 더욱 안좋아졌다.
부정부패 혐의로 계속 모함을 받는데다가 오히려 수사 과정에서 빚까지 져가며[6] 전쟁에 나서서 재정상황이 영 좋지 않다는 사실마저 알려졌다.
2.2. 배신의 아이콘이 되다
1779년부터 영국군과 내통을 시작했고, 1780년 뉴욕 웨스트 포인트의 사령관이 되자 요새를 영국군에게 넘기려 했다. 하지만 요새를 점령할 방법이 적힌 문건을 가지고 있던 영국군 스파이이자 정보장교인 존 안드레 소령이 체포되자[7] 그의 배신이 들통났고, 아놀드는 조지 워싱턴의 추적을 가까스로 피해 허드슨 강을 넘어가 영국군 전함으로 도망갔다.그의 배신에 격노한 토머스 제퍼슨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배신한 아놀드는 영국군 준장이 되어 독립전쟁에서 버지니아의 영국군을 이끌었고, 독립전쟁에서 패하자 런던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영국 생활 초기에는 자리 좀 찾아보려다가 실패하고 사람들은 배신자라고 욕하고 돈마저 떨어져서 궁핍하게 살았지만, 재기하여 땅을 구입해 사업도 하고 사략선을 이끌기도 하고 그러다가 프랑스군에게 잡혀 처형당할 뻔하다가 놀라운 기지로 탈출해 살아남기도 하며 그럭저럭 살다가 1801년 사망했다. 사망 당시 '나에게 독립군 군복을 입혀달라'고 했다는 속설이 있는데 뻥이다. 실제로는 혼수상태 며칠만에 사망.[9] 이 외에도 배신한 다음에 첫번째 부인이 미쳐버렸다는 야담도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10]
2.3. 이후
조국을 배신하고 나서 잘 살기라도 했으면 모를까, 정작 영국군으로 전향한 후에도 온갖 비난을 받고 비참한 파멸을 맞이해서 이것으로 현재까지도 비웃음을 당하곤 한다. 미국에 있었을 때와는 달리 공도 제대로 못 세우고, 그의 상관이자 웨스트 포인트 거래를 시도한 제임스 클린턴 장군은 아놀드를 죽도록 싫어했다. 자기가 가장 아끼던 부관인 존 안드레 소령이 제대로 성사되지도 않은 거래 때문에 사형당했을 뿐만 아니라,[11] 클린턴의 눈에도 아놀드는 제 한 몸 잘 살고 싶어서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이자 배신자로 보였기 때문이다.사실 워싱턴이 안드레 소령과 아놀드를 교환하자고 제안했으나, 당시 명예와 약속을 중요하게 여겼던[12] 영국군은 아놀드가 싫어도 이 거래를 고사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안드레 소령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아놀드가 대륙군 장교 직위를 정식으로 포기한다는 것을 선언하고 영국군으로 투항했으면 그나마 유럽식 신사다운 절차로 인정받아 영국측에서 우대받고 대륙군 측에서는 훌륭한 장군을 잃었다고 후회하는 것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13]
하지만 몰래 음모를 꾸미고 웨스트 포인트를 대륙군 몰래 넘긴다는 수작 자체가 당시의 정서를 떠나 사람으로서 더럽고 교활한 책략으로 보였을 수밖에 없었고, 대륙군에게는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놀드는 휘하 장교들에게도 미움을 받으며 존경을 받지 못했다. 신사이자 모범임을 강조한 영국 장교들은 특히 명예나 충성심을 중요시했으므로 아놀드의 행위를 절대 좋게 보지 않았고 상관으로 존경도 하지 않았다. 한 영국군 대령은 클린턴 장군에게 "아놀드 장군의 휘하 장교들은 다른 지휘관이 이끌어 주기를 바랍니다"라는 편지까지 올릴 정도였다. 뉴욕에 있던 영국군 장교와 병사들은 아놀드가 그들이 그토록 존경하던 안드레 소령을 죽인 주범이라고 지목해서 휘하 장교들과 병사들까지 그에게 등을 돌렸다.
또 아놀드가 클린턴이나 콘월리스 장군에게 조언이나 작전을 제시하면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딱 한번 아놀드의 작전을 수락했지만 별 성과도 없이 영국군 사상자만 많아지자 클린턴도 그에게 분노하여 노골적으로 아놀드를 씹기 시작한다.
이러한 상황에 실망한 아놀드는 식민지 국무장관에게 고자질을 했지만 장관에게도 씹혔고 편지의 내용이 클린턴 장군 귀에 들어가고 만다. 이 때문에 화가 난 클린턴은 아놀드에게 행정업무만 시키고 아놀드는 결국 국무장관과 클린턴에게 사과문을 올리는 굴욕을 당하게 된다.
당대 영국군에게 아놀드의 이미지는 돈만 밝히며 장교라는 직위 자체도 가당치도 않은 인간으로 제대로 찍혔다. 아놀드가 주로 주도한 작전은 식민지의 경제적 타격을 입히기 위해 주요 항구나 경제 생산지역을 기습하는 것이었는데, 이때 본인의 탐욕이 나타났는지 노획한 물자와 현금을 본인이 챙기는 모습을 보이자 다른 장교들, 특히 병력 운송과 지원을 담당하는 해군 장교들과 마찰을 빚었다. 한 사례로는 협동작전을 해야하는 해군 대령은 대놓고 아놀드와 협동하기 거부한적도 있다. 앞서 서술했듯이 이러한 작전들이 성과보다 사상자만 눈에 띄자 휘하 부하들은 아놀드가 개인적인 물욕을 취하기 위해서 부하들을 희생시킨다는 소문도 펴졌다.
반면에 안드레 소령은 재판 끝까지 아놀드에게 불리한 말을 하지 않았으며 사형당할 때도 평정심과 용기를 잃지 않아서 독립군 장성들까지도 감동할 정도였고, 알렉산더 해밀턴 등 고위급 식민지군 인사들과 장교들은 안드레를 아놀드와 교환시켜 최대한 구원하려고 노력했다.[14] 이 때문에 아놀드의 이미지는 더더욱 나빠졌는데 안드레는 죽음까지 충정을 지켰던 용감한 소령이 되었고 아놀드는 비겁하게 나라를 팔아먹고 살아남은 겁쟁이 장군이 되었다. 큰 공도 못 세운 아놀드는 전쟁이 끝나기도 전인 1781년 클린턴에게 찍히고 기수열외를 당하다 전장에서 쫓겨나듯이 영국에 왔지만 배신자라는 낙인이 때문에 더 이상 영국군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영국 동인도 회사에 장교 직위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유는 당신같은 사람 들어오면 우리 회사 이미지 나빠진다고.[15][16] 영국에서는 정치활동을 하면서 영국은 가뜩이나 인적, 경제적 피해로 허덕이는데 더 적극적으로 식민지에 공세를 가해야된다는 눈치 없는 소리를 지껄이자 하원의원 에드먼드 버크는 아놀드에 대해서 "저런 인간이 전장에서 영국군을 지휘하면 안된다"며 그를 씹었다. 클린턴 장군이 물러나고 칼튼 장군이 북미전역 사령관으로 임명되자 아놀드는 다시 전장으로 복귀하고 싶다고 자원을 했지만 이 역시 상부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보직도 없이 떠돌다 쓸쓸히 전역한다.
훗날 1785년 당시 영국령이던 캐나다의 세인트 존으로 이사를 와서 거기서 사업을 하며 지냈으나 문제는 여기서도 모난 성격이 드러나서 잦은 시비와 다툼을 벌였고 결국 소송까지 이른 이후엔 세인트 존 시민들이 아놀드를 극히 싫어했다. 결국 가족 앞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어떤거냐하면 마을 사람들이 그의 초상화/인형을 만든 뒤 불로 태워버렸다고 한다. 그것도 자기 집 앞에서. 결국 아놀드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다. 한때 장군이자 귀족이었던 사람이 평민들에게 대놓고 다구리로 욕을 먹는건 엄청난 수치이자 모욕이었다.
영국으로 돌아간 아놀드는 다른 신사들의 놀림과 비난의 대상이었고 귀족원(영국 의회의 상원)에서는 로더데일 백작에게서 망신을 당한 후 결투까지 벌였다. 결투에서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아놀드의 평판이 얼마나 안 좋은지 확인할 수 있는 사태였다.
아놀드는 영국군 복무 이후 준장으로 예편했는데 당시 영국군에서는 준장이라는 계급은 그냥 형식적인 임시용 계급 취급[17]으로 한거지 준장까지 올라간 사람은 복무중 전사나 순직하지 않는 한 거의 100% 소장으로 진급했다. 준장이라는 계급도 한때 장군이었던 아놀드의 체면을 생각해서 준 계급이고 그 이후에 다들 진급하는 상황에서 혼자 진급이 밀렸다는 사실만 봐도 영국군에서 얼마나 취급이 안 좋았는지 알 수 있다.
3. 평가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아이 이름으로 꺼리거나 이름으로 놀림받는 일이 흔할 정도로 배신자, 매국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Play Benedict Arnold'라는 관용어도 있는데, 직역하자면 '베네딕트 아놀드를 연기하다' 정도로 번역된다. 좀 더 적절하게 옮기면 '통수치다' 정도? 미국의 유명한 가족 드라마 The Wonder Years(한국 제목 "케빈은 12살")에서 주인공 케빈이 괜시리 한 말 때문에 가족들이 전부 다 참석하기 싫었던 장례식에 가게 되자 주인공이 독백으로 "내가 우리 집안의 베네딕트가 되어야 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 집안의 성씨가 아놀드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 웃기는 장면.독립군이 싸운 이유는 세금부터 정치적 문제까지 있어서 복잡하고 이에 현대 역사학자들 중에서 오히려 왕당파들과 영국의 주장의 정당함을 재평가하는 사람들도 많지만[18] 아놀드는 열심히 독립군편에 섰다가 갑자기 배신을 때려서 문제가 된다.
아놀드는 개인적인 결점들과 주변의 복잡한 상황들이 얽혀서 인생이 꼬이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가 파산한 아버지 때문에 맨주먹으로 인생을 개척한 타입의 인물이라서인지는 몰라도 성격이 상당히 까칠하고 자기중심적이었다. 만약 성격이 유들유들했다면 전공을 가로채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더욱이 귀족적인 성격이 있었는지 화려한 복장을 하고 다니면서 영국 지지파로 의심받는 이들과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어울렸으니 부정부패 혐의를 받은 것은 억울하겠지만 결국 본인의 사생활 단속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세 판단에 어두웠던 게 죄라면 죄일지도 모른다.[19]
같은 편인 영국 사람들도 배신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며 아놀드를 겁쟁이, 배신자로 무시했고 결국 그는 기구한 인생 후에 혼자서 씁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미국에서도 그를 변호하는 입장의 프로그램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런 사정과는 상관없이 어쨌든 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미국인들 사이에서 배신자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미국 역사학계에서는 20세기부터 훨씬 더 객관적으로 아놀드를 연구하고 있다. 미국 독립전쟁 관련 권위자인 제임스 마틴 교수의 1997년 저작인 Benedict Arnold, Revolutionary Hero: An American Warrior Reconsidered 같은 것만 보아도 더 이상 아놀드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분위기는 별로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동안의 부정적인 이미지에 비하면 의외로 동정의 여지가 있다는 거지 배신 자체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영화 <The Scarlet Coat>(1955)에서 주요인물 중 하나로 등장한다.
- 티미의 못 말리는 수호천사에서도 나온다. 조지 워싱턴으로 변장해 배신을 때리려 했으나, 티미 터너에 의해 뽀록나고 체포당한다.[20] 이때 조지 워싱턴 흉내를 내며 보여준 문서의 이름이 항립선언서(The Declaration of Surrenderpendence[21]). 성우는 디 브래들리 베이커. 한국판 성우는 작중 정말로 다양한 배역을 맡은 걸로 유명한 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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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쌔신 크리드 3에서도 역시 등장한다. 본편은 아니고 베네딕트 아놀드 DLC에 등장. 워싱턴이 몬머스 전투 이후 빡친 코너를 다시 불러다가 이것을 조사해줄 것을 의뢰하는데, 초기에는 코너도 워싱턴도 아놀드를 의심하지 않았다. 착실히 방첩임무를 수행하며 영국군의 스파이를 잡아조지던 중, 내사를 위해 보낸 사람에게 계속 자꾸 화물과 탄약 배달같은 단순노가다만 시키는 아놀드가 이상해 뒤를 캐다보면, 사실 영국군의 안드레 소령과 내통하고 20,000 파운드에 웨스트 포인트를 영국군에게 팔아넘긴 사실을 알게 된다.[22] 이를 추궁하자마자 영국군이 공격을 하고 아놀드는 튀어버린다.
나중에 워싱턴이 "독립전쟁의 영웅도 배신을 하는 세상에 누굴 믿고 살아야 되냐?"이라고 하자 코너는 "이게 다 댁이 뿌린 대로 거둔 겁니다"라며 워싱턴을 대놓고 까버린다. 꼭 틀린 말이 아닌 게 베네딕트 아놀드가 전공을 제대로 인정받기만 했어도 배신은 안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퇴장하나 싶더니... DLC 워싱턴 왕의 폭정에선 미친 조지 왕의 측근으로 등장한다. 워싱턴의 충복으로서 충실하게 국경지대의 시민들과 영국군, 원주민들을 학살하다가 대모를 죽이게 되고 열받은 라둔하게둔이 찾아와 암살한다. 그리고는 웨스트 포인트에서 배신한 것에 대한 책임을 따지고 드는데 실은 패러렐 월드라 이 세계의 베네딕트 아놀드는 아직 배신하지도 않았고, 웨스트 포인트 요새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던데다, 코너는 만나보지도 못했다. 악행 자체도 워싱턴 왕의 선악과에 조종당해 저지른 거였다.
- 미국 드라마인 슬리피 할로우에서는 베네딕트 아놀드가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를 팔고 받은, 저주받은 30개의 은화 중 하나를 영국군의 위폐 유포 작전을 개발살내다 얻은 후 타락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 고어 비달의 미국연대기 1권 버에서 애런 버의 가상회고록에 따르면 상당히 개념있는 장교. 찌질하고 권력욕에 물든 조지 워싱턴에게 유일하게 쓴소리를 하는 개념장교로 나온다. 결국 정치싸움에 밀려서 영국에 투항해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언급이 나온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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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전선 이상없다'라는 보드게임에서 영국군이 운용하는 선더차일드 2세급
육상전함 중 그의 이름을 딴 전함이 존재한다.
웃기게도 화성인의 침공을 받은 미국을 돕기 위해 미국으로 파견된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외계인 침공받는 대한민국을 돕는다고 일본에서 이완용급 전함을 보내준 거다. 베네딕트 아놀드 전함과 함께 싸우는 미군의 심정은 어떨지... 물론 아놀드에 대한 영국의 평가도 서술했듯이 미국 못지 않게 좋지 않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딴 전함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 아이언 하베스트에서는 베네딕트 급이라 불리는 공중전함이 등장한다.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대체역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24]이라는 추측과 이 공중전함을 타고 등장하는 메이슨 제독의 행위가 미제국주의적임을 비꼬기 위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추측이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국 유저들은 떨떠름 하고 있다.
- 심슨 가족 할로윈 에피소드 중에 악마에게 도넛을 대가로 영혼을 판 호머가 지옥에 끌려가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지옥에 간 호머를 호머의 가족들이 구해오기 위해서 악마에게 재판을 걸었다. 이때 악마가 배심원으로 불러온[25] 지옥에 가 있는 인간들 가운데 그것도 가장 먼저 '매국노 아놀드'로 등장한다.[26] 호머측 변호사도 도망가버리고 재판이 호머에게 불리하게 판결이 내려지려는데 마지가 호머와 결혼할 때 찍은 사진[27]을 들고 와 배심원들에게 보여준다. 뒷면에 적힌 호머의 쪽지를 배심원으로 나온 해적 검은수염이 "이거 무슨 보물지도 같이 생겼네"라고 하는 것을 사진을 빼앗으며 "자네는 글자도 못 읽나?"라며 읽는다. 내용은 "사랑하는 마지, 결혼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영혼 뿐. 내 영혼은 영원히 당신 꺼야"로 이를 들은 배심원들은 모두 호머 심슨의 영혼은 마지 심슨의 소유물임을 확신한다고 선언한다. 덕분에 악마에게서 영혼은 돌려받았는데, 대신 머리가 도넛이 되는 결말로 이어진다. 그리고 경찰들이 커피컵 들면서 오늘은 나오겠지 라면서 대기하는건 덤이다.
- 사우스 파크 시즌16 3화(faith halling)에서도 스탠 마시가 카트맨, 카일, 케니랑 페이스 힐링 밈 비디오를 찍기로 약속한 척 남모르게 오 롱 존슨 밈 자세를 보이다 들키자 '미국 독립 전쟁에서 소문난 배신자가 누구랬더지?' '베네딕트 아놀드'라 디스하기도 했다.
- 힙합 그룹 N.W.A의 내분 및 힙합 디스전에도 이 인물이 인용되었다. 금전 수익 배분 문제로 N.W.A를 탈퇴한 아이스 큐브가 싱글 데뷔를 하자 N.W.A에서 '베네딕트 아놀드 새끼를 팀에서 쫓아냈다.' 라는 디스 랩을 한다. 그 순간 빡친 아이스 큐브도 '내가 베네딕트 아놀드? 염병 지금 선전포고냐?' 하며 디스 랩 No Vaseline를 만들어 갱스터 랩 디스전이 시작되었다. 이 상황은 N.W.A의 전기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에 재연되었다.
- A&E Networks 스튜디오에서 2003년에 제작한 TV용 영화 <베네딕트 아놀드: 명예의 문제>에서는 아놀드의 입장에서 그의 배신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를 매국노로 비난하는 대신 그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해주면서 비극적인 캐릭터로 그리고 있다.
- 팀 포트리스 2 코믹스 3화에서 러시아 산맥에서 조난당했다가 헤비와 그 가족에 의해 구조된 솔저 앞에 조지 워싱턴과 환상으로 등장하여, 헤비의 '공산주의자' 어머니가 차려준 수프를 먹으라고 꼬드긴다.
[1]
아놀드가 상인으로 일하면서 배 좀 타봤다는 것이 근거였다.
[2]
당시 영국군에는 26척이나 되는 제대로 된 전함이 이미 있었다. 하지만 영국 해군은 바다에 있고, 이 소형 보트들은 호수에 있었다. 기관총이나 박격포가 없던 시절이니 무거운 대포를 가져오기 전에는 처치곤란일 수밖에 없다.
[3]
영국군에서 복무하고
유럽 각지의 전장에서 경험을 쌓은
찰스 리도 능력과 경험만으로 친다면 베네딕트 아놀드를 능가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능력과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 오만함이 너무 쩔어서 문제가 된 케이스. 찰스 리는 사사건건
조지 워싱턴의 자리를 노리려고 의회에 뒷공작까지 하다가 결국 들통났고, 몰리 마운트 전투에서 퇴각하는 영국군을 공격하라는 워싱턴의 명령에 항명하여 그대로 장군에서 짤렸다. 나중에 영국군에 포로가 되는가 하면, 어지간히 열받은 조지 워싱턴의 부하들한테 시도 때도 없이 결투 신청을 받을 정도. 후에 개들 옆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처지가 되었다.
[4]
이 일로 호레이쇼 게이츠는 워싱턴의 자리를 넘볼 정도가 되었다. 존 애덤스와 샘 애덤스는 워싱턴을 시기해서 호레이쇼 게이츠를 지지했고 워싱턴의 총사령관 자리는 수시로 위협받게 된다.
[5]
전투 후에 부관이 "어디 다치셨습니까?"라고 묻자 아놀드 왈 "다리에 맞았다. 차라리 심장에 맞았다면 더 좋았을것을..."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 역사학자는 베네딕트 아놀드가 정말로 다리 대신 심장에 맞아서 새러토가에서 죽었다면 영웅으로 추앙받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따지고보면 당연한 말이다.
[6]
사실 이는 아놀드가 이 즈음에 새로 사귀게 된 '사교계에서 여러가지 의미로 유명인사'였던 여성 페기 시펀(Peggy Shippen) 때문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여성은 아놀드의 후처가 된다. 첫 부인은 일찍 사망. 여담으로 이때 진 빚은 갚았다가 다시 빚졌다가를 반복하면서 결국 아놀드가 죽은 후에야 후처인 페기가 부동산을 팔아서 갚아버린다.
[7]
이 과정이 다소 어이없는데 안드레는 사람들 눈을 피해 영국군 진영으로 가라는 조언을 무시하고, 다른 왕당파들과도 접선하겠답시고, 초면인 사람들에게 자신이 영국군이라고 밝혔다가 체포되었다. 이들은 독립군 민병대였는데, 안드레는 이들이 옛 독일군 복장을 입었다는 이유로 왕당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8]
실제로 새러토가 국립역사공원에는 다리 모양의 기념비가 있는데, 아놀드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고 '대륙군에서 가장 뛰어났던 군인'의 부상과 활약을 기념하고 있다.
[9]
페기는 일기장에서 '남편은 죽기 사흘전부터 계속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으며, 결국에는 말을 할 수도, 먹을 걸 먹을 수도 없게 되었다.'라고 썼다.
[10]
첫부인는 미국 독립전쟁 발발 직후에 사망했고, 영국과 내통할 무렵에는 이미 두번째 부인 페기와 결혼한 상태였다. 한편 페기는 결혼전부터 왕당파로, 남편의 배반을 적극 권유했고, 심지어 내통행위에 직접 가담하기도 했다.
[11]
다만 안드레는, 비록 인품은 훌륭했지만, 판단력과 신중함이 부족했으며, 음모가 발각된 것은 순전히 안드레의 잘못이다. 배신이라는 점의 도덕성을 떼고보면, 결국 안드레가 입을 함부로 놀리다가 발각되는 바람에 아놀드와 그의 가족은 배신의 보상도 못받았고 오히려 죽을 뻔 했으니, 사실 억울한 쪽은 아놀드다.
[12]
상식적으로 투항해온 사람을 그냥 버려버리면 누가 투항하겠는가?
[13]
본토의 영국 장교 출신들인
호레이쇼 게이츠나
찰스 리는 정식으로 영국군 장교 직위를 포기하고 대륙군 장교 직위를 받았다.
[14]
존 안드레 소령은 미남에다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의 4개 국어까지 할 수 있었고 미술, 음악에도 능통했다. 인품 또한 훌륭해서 영국군, 그리고 영국군을 증오하던 식민지인들에게도 존경의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아놀드의 아내와 바람피는 사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안드레 소령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부터 영국 혈통은 아니고 부친은 스위스인, 모친은 프랑스인이었다고 한다. 태어나기는 런던에서 태어났으니, 4개 국어를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모친이 프랑스인인데다, 스위스는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모두 쓴다. 사실 지금 이 사람이 묻혀있는 장소가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라는 점만 봐도 당대에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15]
당시 동인도 회사는 영국군 전역 당시 계급을 그대로 적용시켜 주었다. 아놀드는 준장이나 그에 준하는 높은 계급이나 직위를 신청했을 것이다.
[16]
동인도 회사 사장이 "나는 당신이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대중들은 그렇지 않아서 회사 이미지 차원으로 당신을 고용할 수가 없다." 라는 입장을 밝혔다.
[17]
원래 영국군에서 준장은 아주 애매한 직급이었다. Brigadier General이라는 준장 직책은 연대2개나 연대에 대대 몇개를 더 넣어 보강해 만든 여단을 지휘하는 임시직에서 출발한 계급으로 임시직에 가까워졌다가 결국 1920년대에는 General 이라는 단어를 빼고 그냥 Brigadier로 영관급 취급을 받게 된다.
[18]
미국 독립전쟁은 징세와 의회의 대표권을 둘러싼 헌정적 갈등도 있었지만, 영국 정부가 원주민 보호를 위해 식민지인들의 서부 이주를 제한한 것과, 막 정복한 캐나다의 프랑스계 가톨릭 신자들의 기본권을 보호해주기로 한 것에 대한 식민지인들의 반발 역시도 한 몫을 했다. 이러한 부분에서는 식민지인들이 영국 정부보다 더 도덕적 정당성이 있었다고 보기가 어렵다.
[19]
배신하기 전까지 그는 패배도 있었지만 독립군 측에서 큰 활약을 했다. 처세를 좀 더 잘하고 공을 제대로 인정받았다면 오히려 크게 이름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20]
티미 왈 "미국 역사상 최악의 배신자." 완벽하게 변장해서 티미도 처음에는 누가 진짜 워싱턴인지 구별 못했으나, 나무를 주자 진짜 워싱턴은 이성을 잃고 도끼로 찍으려 했고, 아놀드는 그 나무가 무슨 상관이냐며 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모든 사람들의 반응은 '(도끼로 찍으려고 한)저 사람이 진짜 워싱턴 맞네'. 티못수 세계관의 워싱턴은 야사인 '어린 워싱턴과 벚나무'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는지 나무만 보면 발작하듯 도끼를 들고 찍어대려고 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는데,
사람들 앞에서도 이 짓을 한두 번 한 게 아닌지 다들 아주 심드렁하게 "저쪽이 진짜네" 하는 것이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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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원래는 Independence(독립). 작품에서 묘사된걸 직역하면 "항복립" 또는 "항립" 정도 된다.
[22]
해상 교역 기준 교역단 하나당 순이익만 1만 파운드씩 나온다. 육로 교역단이라 해도 하나당 순이익이 최소 5천 파운드는 나온다.
[23]
사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아놀드 자신의 능력이나 충성심은 꽤 괜찮았다. 일이 잘못 풀려서 배신자가 된 것이지...
[24]
아이언 하베스트 세계관에서는
영국이
스코틀랜드 중심으로 돌아가고 대외 진출에 소극적이다.
보신 전쟁은
막부가 이겼고,
폴란드는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도 존재하고,
독일 통일은
프로이센 왕국이 아니라
작센 왕국이 했다.
[25]
호머측 변호사와 서로 한 가지씩 요구사항을 주고 받는데 호머측 변호사는 중간에 화장실 가는 시간을 허용해 달라고 했고 악마는 배심원을 자기가 고르겠다고 했다.
[26]
은근히 골 때리는 것이 세 번째로 나온 것이
리처드 닉슨이다. "난 지옥 간 게 아니야. 거기다 텔레비전 보는데 끌고 오는 게 어디 있어?"라고 항의하다가 "내가 소원 들어 줬잖아"라는 악마에게 "네 주인님"하고 데꿀멍.
[27]
호머가 결혼 케익을 혼자서 다 먹으려고 하다가 배탈이 나서 응급실에 실려간 상태에서 찍힌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