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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nzi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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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a100> 문화유산 |
1981년 킬와키시와니 유적과 송고음나라 유적 Magofu ya Kilwa Kisiwani na Magofu ya Songo Mnara |
2000년 잔지바르 스톤타운 Mji mkongwe wa Zanzibar |
2006년 콘도아 암석화 유적 Michoro ya Kondoa |
자연유산 |
1981년 세렝게티 국립공원 Hifadhi ya Taifa ya Serengeti |
1982년 셀루스 동물보호구역 Pori la Akiba la Selous |
1987년 킬리만자로 국립공원 Hifadhi ya Taifa ya Kilimanjaro |
|
복합유산 |
1979년 응고롱고로 자연보존지역 Eneo la uhifadhi la Ngorongoro |
잔지바르 Zanzibar |
||
깃발[1] | 문장 | |
명칭 |
스와힐리어: Zanzibar 아랍어: زنجبار |
|
면적 | 2,462km² | |
인구 | 1,889,773명(2022년) | |
수도 | 잔지바르시티 | |
언어 | 스와힐리어, 아랍어, 영어 | |
[clearfix]
1. 개요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위치한 자치지역.
웅구자(Unguja)섬[2]과 펨바 섬, 2개의 큰 섬과 기타 부속도서로 이루어져 있으며[3] 총 면적은 2,461㎢. 서울특별시 면적(605.25 ㎢)의 약 4배 크기이며 제주특별자치도 면적(1,850.3㎢)의 약 1.33배 크기이다.
인구는 약 130만 명 수준(2022년 기준)으로 수원시보다 조금 많고 광주광역시보다는 조금 적다. 인구와 면적은 탄자니아 전체에 비해 미미하지만 역사적인 이유로 하나의 국가에 비견될 정도로 강한 자치권을 가지고 있다. 일부 경제 통계에서는 잔지바르까지 별개의 국가로 간주하며 통계에 넣을 정도, 잔지바르에서 가장 큰 섬이자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웅구자는 다르에스살람과 20KM 정도로 비교적 가까이 위치해있어서 비행기로 15분 걸린다. 다만 비행기표값이 일반 탄자니아인들에게 매우 부담되는 가격이기 때문에,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되는 배편으로 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아랍어로 흑인의 땅 이라는 뜻이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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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e600> | 탄자니아 | 잔지바르 | 펨바 | |||
고대 | 반투족 | ||||||
반투족 |
페르시아 상인 (명목상 페르시아 식민지) |
||||||
중근세 |
반투족 킬와 술탄국 |
포르투갈 | |||||
반투족 | 오만 제국 | ||||||
잔지바르 술탄국 | |||||||
근현대 | 독일령 동아프리카 | 잔지바르 보호령 | |||||
탕가니카 | |||||||
탕가니카 공화국 | 잔지바르 술탄국 | ||||||
잔지바르 인민 공화국 | |||||||
탄자니아 |
유네스코 세계유산 | ||
이름 | 한국어 | 잔지바르 스톤타운 |
영어 | Stone Town of Zanzibar | |
프랑스어 | La ville de pierre de Zanzibar | |
국가·위치 |
탄자니아
음지니마가리비주 잔지바르시티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2000년 | |
등재기준 | (ii)[4], (iii)[5], (vi)[6] | |
지정번호 | 173 |
잔지바르의 구시가지인 '스톤 타운'
[clearfix]
2만년 전 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며 고대로부터 교역지로 알려져 왔다. 중세시절에는 인도인과 페르시아인, 아랍인들이 오고가면서 이슬람교가 전파되었다. 그러다가 1503년에 포르투갈에 점령되어서 오랜기간 포르투갈에 의해 식민통치를 받았다가 1698년부터 오만 제국의 통치를 받았고, 이 시기의 잔지바르는 노예무역의 중개지로 번영을 누렸다. 당시 잔지바르는 이슬람 국가 중에서는 오스만 제국과 함께 단 둘뿐인 식민 제국인 오만 제국의 식민지였고, 오만 본토보다 잔지바르에 부와 영화가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1739년에 나디르 샤에 의해 오만이 정복되자 잔지바르가 임시 수도가 되기도 하였다.
19세기 중반들어 사이드 왕조의 오만 내에서 술탄 직위 계승 분쟁이 일어나 잔지바르는 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그러나 잔지바르 지역은 수에즈 운하의 등장으로 인해 쇠퇴가 가속화 되어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고, 19세기 후반에 술탄이 영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 역사상 가장 짧은 전쟁을 치렀지만 결국 막강한 영국의 군사력에 잔지바르군이 참패하고 이후에도 영국의 간접지배를 받게 되었다.
1950년대 영국이 아프리카 각지에서 손을 떼기 시작하면서 잔지바르도 독립 작업에 들어갔고 1957년에 첫 제헌의회 총선이 치러지면서 잔지바르 의회가 구성된다. 그러나 게리맨더링으로 인해 흑인 계열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인 아프로-시라지당(ASP)이 득표율에서 앞섰음에도 의석수에서 아랍계 정당과 보수정당에 밀리는 사태가 연달아서 벌어지고, 술탄이 사회 불안을 이유로 흑인정당을 탄압하여 흑인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과거 아랍인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삼았던데에다가 노예해방 이후에도 다수의 흑인들이 하위층을 형성하고 아랍인이 상류층으로 군림하면서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사회구조가 변하지 않고 이어져왔기 때문에 흑인과 아랍인 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갔다.
그러던 차에 1963년 잔지바르는 ‘잔지바르 술탄국’으로 독립했다. 완전 독립을 앞두고 치러진 1963년 선거에서 ASP가 54%의 득표를 확보했음에도 게리맨더링으로 인해 의석수에서 아랍계 정당과 보수정당 연합이 선거에서 압승하자(24석 VS 13석) 소외된 흑인들의 불만감이 더욱 고조되었다. 1963년 12월에 완전히 독립했지만 독립 1달후인 1964년 1월 12일에 우간다 출신의 군소 게릴라 지도자 정도였던 오켈로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300명에서 600명 가량의 소인원 만으로 혁명에 나섰고 실제 혁명에 나섰을 때는 인원이 4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잔지바르가 작은 나라였던데다가 새벽시간대라 근무하는 경찰이 소수였기 때문에 경찰력을 간단하게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라디오 방송국을 점거하고 흑인들의 봉기를 부추기고 술탄에게 가족을 살해하고 자살을 권고하는 등 라디오 방송을 통해 지속적으로 선동했다. 결국 아침에 대세가 뒤집힌 것을 알아챈 술탄은 혁명 시작 7시간만인 정오에 각료들과 국외망명을 택하면서 혁명은 성공했고, 이후 잔지바르 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다.
혁명 직후 대대적인 보복이 시작되어 수천 명의 아랍인과 인도인들이 학살당했고[7] 살아남은 아랍인들도 대거 재산을 몰수당한 채 오만이나 인도, 탕가니카, 케냐, 영국 등 해외로 추방되었다. 참고로 학살이 집중되었던 것은 웅구자 섬이었고 상대적으로 페르시아계 후손이라는 정체성이 강한 펨바 섬에서는 보복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2월 들어서야 학살극이 마무리되고, 탕가니카로 출국했다가 황급히 돌아온 아베이드 카루메가 잔지바르의 새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가운데 오켈로와 카루메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고[8] 결국에는 카루메가 치안유지를 명목으로 혁명주동자인 오켈로를 쫓아냈고, 혁명의 주동자 단체인 자유의 전사에 대해 제재를 가했다. 그 후 카루메는 줄리어스 니에레레와 협상을 가지고 탕가니카 공화국과의 통합을 추진하게 된다. 7월 탕가니카와 연방정부를 구성하면서 현재의 탄자니아가 구성되었다.
하지만 카루메는 시간이 지날수록 괴팍한 성격을 지닌 독재자로 변모해나갔고, 니에레레는 카루메를 말려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는 결국 1972년에 암살되었다. 이후로는 탕가니카와 마찬가지로 탄자니아 혁명당 일당 독재 체제가 되었다.
3.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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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지바르는 탕가니카와 별개로 자치권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법적으로 탄자니아 부통령을 잔지바르에서 뽑도록 규정되어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영향력도 인구수에 비해서 센 편이다.
탄자니아 혁명당이 일당 독재하는 탕가니카 본토와는 다르게 잔지바르에서는 시민연합전선의 힘도 강한편이며, 그래서 선거에서 여러번 접전이 벌어져서 충돌이 벌어진적도 있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잔지바르 내에서도 운구지 섬과 펨바 섬이 따로 놀기 때문이며, 잔지바르에서 혁명이 일어나면서 아랍인을 축출하자 따로 독립하려고 하기도 했고, 이후로도 잔지바르 정부에서 펨바 섬에 별로 신경을 안써준다는 인식 때문에 불만이 많다. 한때 갈등이 심했을 때는 펨바 섬에서 수백 명의 난민이 발생했을 정도로 심각했다.
부통령였던 사미아 술루후 하산이 전임 존 마구풀리 대통령이 심장 질환으로 사망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해 세 번째 잔지바르 출신 대통령이 탄생하였다.
4. 경제
관광산업이나 수출형 농업산업이 잘 발달되어 탄자니아 내에서도 잘사는 지역으로 손꼽힌다. 특히 탄자니아가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집단농장 도입과 계획경제가 자발성이 없는 억지추진과 미숙한 운영으로 말아먹으며 경제성장이 침체하는 동안 잔지바르는 관광산업의 육성과 수출특화형 농업으로 상대적으로 부유해질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잔지바르에서 TV방송을 1972년에 시작했고 1973년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최초로 컬러방송을 시작했지만 정작 탕가니카에서는 1990년대가 되어서야 TV방송국이 개국되었다거나 하는 식이다.5. 교통
다르에스살람과 왕래하는 배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아베이드 아마니 카루메 국제공항이 존재한다.6. 기타
과거 잔지바르표범이 서식했었으나[9] 현재는 절멸된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2018년에 응구자 섬의 밀림에서 잔지바르표범으로 추측되는 고양이과 맹수의 움직임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생존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섬 바깥과의 교통은 아베이드 아마니 카루메 국제공항(Abeid Amani Karume International Airport)과 잔지바르 항구를 이용할 수 있다.
퀸의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이다. 잔지바르 혁명정부 수립 당시 아랍인, 인도인, 페르시아인 탈출행렬에 프레디 머큐리와 그의 가족들도 있었다. 그때의 경험 때문에 프레디 머큐리는 잔지바르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기 꺼렸다. 마찬가지로 프레디 머큐리가 양성애자였기 때문에 잔지바르 사람들도 그를 별로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최근들어 프레디의 출생지라는 점 때문에 퀸의 팬들이 이곳으로 성지순례를 하기 시작하면서, 돈냄새를 맡은 잔지바르인들 사이에서 그를 찬양해대는 분위기가 늘었다.
올드 포트에서 약 5분 정도 거리에 ‘프레디 머큐리 하우스’라는 호텔이 있고 그 건물 한쪽에 박물관이 있다. 건물 벽에는 프레디 머큐리의 사진과 포스터 등이 붙여져있는데, 현대에는 잔지바르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라 늘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내부에는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여러 사진들과 가사를 적은 종이, 의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교역의 중심지였던 스톤 타운(Stone Town)은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잔지바르 관광의 중심지이다.
7. 매체에서 등장
7.1. 영화
7.2. 게임
-
도미네이션즈
부두 원정 목적지 중 하나로 등장한다.
자세한 내용은 잔지바르(도미네이션즈) 문서 참고하십시오.
-
대항해시대 시리즈
거점 항구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
메탈기어 시리즈
메탈기어 2 솔리드 스네이크에서 잔지바르의 이름을 따온 용병국가 잔지바 랜드가 등장한다. 다만 이름 외에 잔지바르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8. 둘러보기
트립어드바이저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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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계의 뜨는 여행지 | |||
<colbgcolor=#FFFFFF><colcolor=#000> 1위 | 마요르카, 발레아레스 제도 | |||
2위 | 카이로, 이집트 | |||
3위 | 로도스, 도데카니스 제도 | |||
4위 | 툴룸, 멕시코 | |||
5위 | 두브로브니크, 크로아티아 | |||
6위 | 이비사, 발레아레스 제도 | |||
7위 | 나타우, 브라질 | |||
8위 | 아루샤, 탄자니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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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위 | 파라티, 브라질 | |||
12위 | 아루바, 안틸레스 제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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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 잔지바르 인민공화국 국기 상단에 탄자니아 국기를 합친 것이다.
[2]
잔지바르 제도를 대표하는 섬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잔지바르 섬'이라고도 한다.
[3]
여기에 더 남쪽에 위치한 마피아(Mafia)섬까지 합쳐서 잔지바르 제도(Zanzibar Archipelago)라고 한다. 마피아섬은 지리적 명칭로서의 '잔지바르 제도'에는 포함이 되지만 '자치지역 잔지바르'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4]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
[5]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6]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
[7]
최대 2만 명이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
지옥의 묵시록 항목에서도 언급되고 이 영화에 큰 영향을 준
이탈리아
다큐멘터리 영화이자
몬도가네로 유명한 괄티에로 자코페티(Gualtiero Jacopetti, 1919~2011) 감독(프랑코 프로스페리 1926~2004. 공동 감독)의 1966년작 <Africa addio>라는 영화에서도 다루는데 헬리콥터로 학살당한 아랍인들을 찍은 장면이 나온다. 그래도 1970년대 이후에 상당수 인도인들은 되돌아오기는 했다는 후문은 있다.
[8]
애초에 카루메는 흑인들 다수에게 지지를 굳건히 얻던 상황이라서 게리맨더링 문제만 해결되면 집권이 확정이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랍인들을 대거 죽이거나 추방할 생각 자체는 없었다고 한다. 또한 오켈로가 사회주의 성향이기는 했지만 혁명 당시 기독교적인 요소에 호소했기 때문에 이슬람 위주인 잔지바르와 정서적인 괴리감이 컸던 이유도 있었다.
[9]
별개의 아종으로 알려졌으나 분자 유전학적 분석 결과
아프리카표범과 동일한 아종임이 밝혀졌다.